2018년 3월 봄, 우리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너는 나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아름답고 반짝였던 그 추억에 대하여
한국사람인 나, 스페인사람인 너. 우리가 알게된 곳은 엉뚱하게도 일본어플이었다. 일본어를 사용하려고 받아두었던 어플에서,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도 못하는 너와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을까, 운명이었을까? 그때 당시 나는 영어도, 스페인어도 하지 못했고 다른 외국인들과의 교류는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다가온 너에게 신선함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부담도 됐었다. 처음부터 좋아한다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낯선 너에게 내가 느낀 부담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료한 일상 속에서 매일 계속되는 연락과 영상통화로 들려주는 너의 악기연주로 인해 나는 너와 연락하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내년 여름에 스페인에 가고싶어"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그저 빈말이었다. 관심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었거니와 일본여행도 일본어를 잘 하게 된 이후 갈 만큼 나는 새로운 장소는 무서워했다. 그런데 내 말에 너가 한 말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번년도 여름에 널 스페인에 초대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우리가 알게된지 겨우 5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였을테다. 갑자기 니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처음엔 가볍게 수락했던 너의 제안이 내 머릿속에 부풀고 부풀어 여러가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그 상상은 너와 연락했던 며칠간의 좋았던 기억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너에 대한 무지가 너를 두렵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너에 대해 알아가고 싶었다. 니가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너에 대한 일말에 믿음을 놓치기 싫어서였을까? "난 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 없어" 라고 말하는 것이 왜그리 무서웠는지 모른다. 니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한몫했을테다.
너는 항상 그랬다. 내 목소리로 내 상태가 어떤지 참 잘 맞췄다. 아마 그때도 그랬을거다. 무슨일이냐고 말하라는 너의 말에 못 이겨 울면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내 울음에, 또한 내 말에 너는 당황해했다. 너를 믿지 못하는 듯한 나의 모습에 너의 전부를 1년 단위로 세세하게 알려주겠다며 말하며 너도 같이 울었다. 니가 내 앞에서 보인 첫 울음이었을것이다. 이상하게도 너의 눈물에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정말로 1년 단위로 너의 삶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니가 사는 곳, 부모님이 사는 곳, 니가 다니는 대학교 등 모든 것들을 구글맵으로까지 세세하게. 너는 행동함으로써 나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나는 너를 신뢰하게 됐고 너가 처음부터 나에게 보인 관심에도 나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되지 않았다. 일상을 공유하고 매일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조차도 한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너는 날 좋아하는걸까?" 너는 내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니가 어느나라 사람인지 그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아. 스페인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일본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너는 너일뿐이야. 너의 웃음, 너가 나를 보는 눈빛, 똑똑하고 아름답고, 뭔가를 열심히 하려는 니 모습이 좋아. 도와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어. 문득 이게 사랑이란 걸 깨달았어."
생각해보면 너는 눈물이 많았다. 여느 연인들처럼 자기 전에 자장가를 불러줬을 때도 넌 울었고, 4월 너의 생일날 긴 장문의 메세지를 남겼을 때도 너는 울었다. 또, 너는 옛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너가 너무 좋았다. 작은 것에도 감동하며 감정표현이 풍부한 니가 좋았고, 그런 감수성은 나에게 세심한 배려로 다가왔다. 너의 사랑 안에서 나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그런 너의 눈물이 슬픔의 눈물이 된 건, 5월달 무렵 내가 서울로 올라오고 난 후였다.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게 된 우리는 너무 예민했다. 너는 서울에 있는 남자들을 질투하며 많이 불안해했다. 가끔씩 그 불안감에서 비롯된 날카로운 말이 나를 찔러대기도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홀로서기에 적응하느라 외로웠고 전에 살았던 곳과는 다른 화려함에 압도됐다. 친구의 권유로 가게 된 언어교환카페와 펍들, 그곳에서 또다른 외국인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서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너와의 대화(영어)를 좀 더 이해하겠다는 명목 하에, 서울에서의 친구들을 사귀겠다는 명목 하에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놀러다녔다.
그때 당시 우리는 자주 싸웠다.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도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서로에게 화를 냈고, 울었고, 다시 화해했다. 그러면서 지쳐갔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외국인들을 만날때면 나는 내심 부러웠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때때로 너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너가 너무 좋았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언어의 장벽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사랑하는데 있어서 언어나 거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영어가 버겁다는 나에게 너가 울면서 나에게 한 말이다.
한달 후, 나의 방황이 잦아들었을 무렵 우리는 다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스페인으로 가 널 만날 날이 정해졌기도 했고 다행히 좋은 상사를 만나 안정된 업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핸드폰 화면 속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일 수 있었다. 가끔은 그리움에 사무쳐 울기도 했지만. 실로 안정된 나날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너를 만날 7월이 되었다.
13시간의 비행 끝에 나는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출국장 문을 나가기 직전,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이 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니가 있을 것이다. 내가 그토록 보고싶어했던 너가. 격한 긴장과 떨림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가방에선 기다림을 참다 못한 너의 문자가 울리기만 할 뿐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떨림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그리고, 나는 출국장 문을 나섰다.
>>13 고마워 덕분에 힘난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단번에 너를 찾았다. 좀 진부한 말이지만, 너밖에 보이지 않았다. 영상통화에서 매일 보던 너가 실제로 내 눈 앞에 있는게 조금은 어색했다. 너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너도 너의 새로운 모습에 신기해하고 있었으니까. 약간은 허둥대는 너의 모습이 귀엽게 다가왔다. 어색했던 분위기도 이내 사라졌다. 날 바라보는 너의 눈빛은 영상통화 속 그대로였다. 심장의 고동이 점차 빨라져 숨이 막혔다. 살짝 어지럽기도 했다.
>>27 읽어줘서 고마워!
>>28 아니야 내가 더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