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쓰는 것도 들키면 안 될 거 같아
친구가 구두를 주워오고 미쳐버렸어
내 친구는 원래 꾸미는 거 좋아하고 악세사리 같은 것도 엄청 모아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새 구두를 샀나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얘가 내 윗집에 살아서 자주 왔다갔다 하거든 그래서 걔가 스틸레토힐 하나 구했다고 너무 예쁘다면서 보러 오라는 거야 근데 내가 그때 귀찮다고 안 갔거든
그냥 뭐 똑같은 취향 구두겠거니 하고 난 신발 같은 데 관심 없으니까 근데 애가 계속 보러오라고 전화를 해대는 거야 처음 두번은 장난으로 넘겼는데 내가 잘 거니까 전화하지 말랬는데 계속 오더라고
삐졌나 하고 신경 끄고 자다가 일어나서 폰을 보니까 부재중이 수십통인거야 그래서 난 무슨 구두 하나 때문에 사람을 이렇게 귀찮게 하나 싶어가지고 좀 짜증이 난 상태였고
진짜 얼마나 예쁜가 보자 하는 마음에 짜증 반 호기심 반으로 올라갔거든 근데 내가 비번 찍기 직전에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거야 내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는데 친구가 얼굴을 쑥 내밀고 당황한 나를 보면서 깔깔 웃었어
내가 욕 좀 섞어서 사람 놀라게 왜 그러냐니까 내가 올 걸 알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대 그러고선 내 팔을 확 끌어당겨서 빨리 구두를 보라는 거야
근데 구두가 신발장에도 안 넣고 방에다 놔뒀대 그래서 뭔 구두 하나에 이렇게 지극정성이냐 싶었지 그래도 같이 들어가서 봐줬어 걔 화장대 위에 올려놨대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고개를 돌렸는데 소름이 확 끼치는 거야
누가봐도 신을 수 있는 수준의 구두가 아니더라고 누가 몇년은 신다 버린 것 같은? 군데군데 긁힌 자국도 있고 색도 좀 바랬고 벗겨졌고 밑창이 막 축축하게 불어있는 거야
근데 그걸 애가 자꾸 너무 예쁘다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신었던 구두는 신발도 아닌 거 같다면서 막 좋아라 하는 거야 나보고 진짜 예쁘지 않냐고 계속,,, 예쁘단 말을 반복하더라고
근데 이상하게 화를 못 내겠는 거야 날 놀리는 건가? 싶었는데 놀리는 사람 얼굴이 아니고 진짜로 구두를 너무 소중하게 들더라고 나 이제 이것만 신을 거라고 나랑 잘 어울리지? 하면서
그래서 내가 너 진짜 이게 예뻐보이냐? 하고 걔가 안은 구두에 손을 댔는데 애가 몸을 확 돌리는 거야 거의 뒤돌듯이 그리고는 날 죽일듯이 노려보더라 내 거야 내 거야 하면서
그 때 약간 기분이 싸해지더라고 뭔가 있으면 안 될 곳에 있는 느낌? 그래서 그냥 기분 상했으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집으로 내려가려고 했어 그러니까 또 깔깔 웃는 거야 그리고선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어색하게? 구냐는 듯이 말했던 걸로 기억해
난 그때 그냥 집에 내려가고 싶은 마음밖에 안 들더라 그 구두랑 같이 있기 싫었거든 근데 애가 안 보내주는 거야 만지게도 못하면서 그 불어터진 구두를 예쁘다고 쓰다듬고 그러더라 무슨 애기 다루듯이
내가 그거 어디서 샀냐고 물으니까 대답을 안 해줘 구두의 출처를 물으면 대답을 계속 회피하고 예쁘다고만 하는거야 나는 진짜 정신병 걸릴 거 같아서 나 일 있다고 급하게 걔네 집에서 나갔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