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이 처음과 끝을 제시, 한 사람이 쓰는 놀이

창작소설 2021/01/01 12:53:12

#1 이름없음 2021/01/01 12:53:12

한 명이 글의 첫 문장을 적고 한 명이 글의 끝 문장을 적으면 한 사람이 넣어서 글을 써보는 거야 예) 2. 금붕어를 사 왔다 3. 금붕어는 여전히 살아있다 4. 금붕어를 사 왔다 ~내용~ 금붕어는 여전히 살아있다

#2 이름없음 2021/01/01 12:54:01

내가 먼저 제시해볼게! 오늘도 평범한 아침이다

#3 이름없음 2021/01/01 12:54:40

내일은 없다

#4 이름없음 2021/01/01 13:14:48

오늘도 평범한 아침이다. 늘 그랬듯이, 그래야 했었다. 늘 평범하게 먹던 아침을 꺼내어 늘 그랬던 것처럼 TV앞의 식탁으로 들고 가, TV를 켰다. 그런데 이게 왠걸. 뉴스에서는 온통 비관적인 소식만을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가르키는 것은 단 한 가지, 내일은 없다.

#5 이름없음 2021/01/01 19:55:57

너와 하고픈 게 너무나도 많은데, 넌 알까.

#6 이름없음 2021/01/01 19:58:38

그런데 넌 이렇게 죽어있다.

#7 이름없음 2021/01/01 20:13:42

너와 하고픈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넌 알까. 추운 겨울날엔 너와 3개에 1000원짜리 붕어빵을 사서 나눠먹고 싶었다. 벚꽃이 휘날리는 봄날엔 떨어진 벚꽃을 손으로 모아다가 네게 흩뿌려주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날엔 찬 얼음물이 담긴 페트병을 네 볼에 가져다 대는 그런 사소한 장난을 서늘한 가을날엔 따스한 목도리를 네게 선물하는 그런 사소한 사랑을 그래, 너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렇게 몇년을 함께 보내다 가장 아름다운 날에, 네게 청혼하려 했었다. 넌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될 터였다. 그리고 영원히 넌 나의 가장 아름다울 신부가 될 터였는데. 그런데 넌 이렇게 죽어있다.

#8 이름없음 2021/01/01 22:31:53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나 봐

#9 이름없음 2021/01/01 22:52:52

네게 감염되고 있어.

#10 이름없음 2021/01/01 23:42:16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나 봐' 넌 한때 그렇게 말했다. 그것이 너의 고백이었던걸까, 이제 와서야 되돌아 생각한다. 무심한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일 뿐 대답을 하지 않았고 분명 상처받았을 너는 그럼에도 내 곁을 떠나가지 않았다. 일주일에 몇번씩 너는 나를 찾아왔다. 내 곁에 머물며 그 아름다운 웃음을 흩뿌리고 떠나갔다. 그 웃음은 너의 사랑을 가득히도 담고 있어서 그 웃음을 본 나는 네 사랑에 천천히 젖어갔다. 사랑은 옮는다, 라는 말을 이제야 믿게 되었다. 누군가의 짝사랑으로 시작된 사랑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는것도 그런 이유이리라. 그래, 맞아. 네게 감염되고 있어. (>>7 쓴 사람인데 너무 쓰고 싶어서 또 쓴다ㅜㅜ 혹시라도 같은 사람이 여러번 쓰는 거 싫으면 말해줘)

#11 이름없음 2021/01/02 00:01:34

집 앞 화단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

#12 이름없음 2021/01/02 00:58:44

다행이다.

#13 이름없음 2021/01/02 01:06:17

집 앞 화단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 발견한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우고 싶은데. 냄새가 조금 고약하고, 금세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소란스러운건 질색인데 말이지. 당연한 수순이다. 뛰어내린 사람에게 주어지는 벌은, 지옥이니 뭐니가 아니라, 서서히 부패하고 증발하는 육체의 향을 맡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던 꽃을 깔아 뭉개지 않았다. 피도 묻지 않았어. 돌계단에 조금 튀었을 뿐이니, 청소하기 쉬울 것이다. 다행이다.

#14 이름없음 2021/01/02 01:19:21

매서운 바람이 나를 부드럽게 휘감는다.

#15 이름없음 2021/01/02 03:28:34

바람이, 그쳤다.

#16 이름없음 2021/01/02 15:13:34

매서운 바람이 날 부드럽게 휘감는다. 바람이 서서히 나를 감싼다. 저 어두운 하늘에서 난 자유고, 아무도 나를 제지할 사람은 없다. 하늘을 태양빛이 물들인다. 이내 총소리가 들리고 난 떨어진다. 바람이, 그쳤다.

#17 이름없음 2021/01/02 15:30:15

빛이 보인다.

#18 이름없음 2021/01/02 15:52:05

나는 혼자였다.

#19 이름없음 2021/01/02 22:13:03

빛이 보인다. 드디어 끝이구나, 하는 해방감에 앞으로 몸을 던졌다. 이제 더 이상의 끝나지 않는 암흑은 없으리라. 이제 더 이상의 끝나지 않는 습기는 없으리라. 그래, 더 이상은. 밖으로 나가면 사랑하는 나의 연인인 너에게 청혼을 할 것이다. 함께 고생을 해주었음에도 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묵묵히 따라와주는 네게 너무 감사했고, 또 사랑스러웠다. 앞으로는 내가 사랑해주리라. 손에 물 한 방울, 눈에 눈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것이다. 아아, 그래. 너도 있었지, 렉스. 나의 반려견. 너도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가장 좋아했던 간식을 잔뜩 줄께. 매일 뛰어놀아도 질리지 않을 만큼의 넓은 정원을 너에게 선물할께. 마지막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따스한 햇살이 나를 향해 내리쬔다. 얼마만의 햇살인가. 얼마만의 건조감인가. 뒤를 돌아보며 모두에게 말했다. "드디어 나왔어. 드디-" 아무도, 없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내 옷과 손의 말라붙은 핏자국은 또 뭐지? 아니야, 그럴리 없어. 왜, 왜 없는거야. 왜 아무도 없어. 아아, 그래. 내가 죽였구나. 연인의 절망에 찬 울음소리가 역겨워 굶주림에 지쳐 렉스의 살덩이가 군침이 돌아서. 하. 그래. 결국. 가장 아름다운 햇살 아래 나는 혼자였다.

#20 이름없음 2021/01/02 22:16:05

선생님 왜 웃어요?

#21 이름없음 2021/01/02 22:18:03

웃는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22 이름없음 2021/01/02 23:30:45

“선생님, 왜 웃어요?” 열아홉의 은하는 불쑥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그렇게 묻곤 했다.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아 연주할 때면 종종 팔이 겹치거나 어깨가 닿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열 오른 얼굴을 감추기 위해 어색하게 웃었다. 피아노 학원에서 알바하는 음대생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어리고 장난스러운 그 애의 사랑을 받아 줄 만큼 분별이 없지는 않았고, 차갑게 밀어내기에는 연륜이 부족한 때였다. 입시철이 끝나고, 내가 유학 때문에 학원을 그만둔다고 말했을 때, 은하는 그 자리에 서서 코가 빨개지도록 울었다. 제가 싫어요? 그래서 도망가시는 거에요? 그 애의 물음에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끝까지 나쁜 년은 되기 싫었던 나의 이기적인 대답이었다. 잠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마지막으로 은하를 보았다. 그때의 나처럼 어깨에 닿는 단발머리를 하고, 무대에서 드뷔시를 연주하던 그녀는, 이제 완전히 어른스러운 미소를 띄고 있었다. 한국에서의 그해, 너는 열아홉이었고 나는 스물하나였던 그때, 연습실 작은 방에서 너를 제외하면 내가 웃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23 이름없음 2021/01/02 23:37:14

너는 정말 최악인 사람이었다.

#24 이름없음 2021/01/03 00:03:55

너는 정말 최악인 사람이었다. (처음과 끝이 같은 글을 보고싶었어 문제 시 지울게!)

#25 이름없음 2021/01/03 00:57:47

너는 정말 최악인 사람이었다. 모든 면이. 어떻게 너란 존재는 이기적이고 악의적이고 욕심과 치욕으로 가득찬 몸뚱아리를 가진것이지? 세상에 네가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욕이다. 우린 너를 본 것이 곧 벌이고 구원이다. 너를 봤음을 통해 난 죄를 씻을 수 있으니 이거 하나는 고맙게 받으마. 허나, 이건 명심해라 너는 정말 최악인 사람이었다.

#26 이름없음 2021/01/03 01:15:19

정말이지, 바보같은 사람이다.

#27 이름없음 2021/01/03 01:15:34

그럼에도 나는 무엇도 바꿀 수 없었다.

#28 이름없음 2021/01/03 01:58:52

정말이지, 바보같은 사람이다 왜 앞만 보고 질주하는 지 묻고싶었다. 브레이크 따윈 없다는 듯이 구는 너는 참, 바보같아서. 그렇게 질주하다 어딘가에 부딪혀 사라져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넌 그 사람을 그리도 사랑하니 제대로 듣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네 옷 소매를 붙잡고 부탁했었다. 너는 제발 나 먼저 죽지 말라고. 사랑이 뭐라고, 그 사람이 뭐라고 네가 그렇게 온 몸을 던져 그 사람을 지키는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모른다한들, 내가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한들 너는 계속 질주하겠지. 늘 그랬듯 나를 홀로 남겨두고. 그래, 결국엔 우리의 마지막 문장은 이거겠구나. 「그럼에도 나는 무엇도 바꿀 수 없었다.」

#29 이름없음 2021/01/03 03:51:40

검을 맞댄다는건, 정말이지 두근거리는 일이다.

#30 이름없음 2021/01/03 19:29:43

그렇기에 내가 네 목숨을 뺏었겠지.

#31 이름없음 2021/01/04 15:17:27

검을 맞댄다는 건, 정말이지 두근거리는 일이다. 날카로운 검의 공명 맞선 자의 거친 숨소리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심장박동 상대의 피에 잠겼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안도 곧 찾아오는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적막과 공허 아ㅡ 그렇기에 내가 네 목숨을 뺐었겠지.

#32 이름없음 2021/01/04 15:18:45

영원했던 당신은 어째서 스러졌나

#33 이름없음 2021/01/04 15:47:34

널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아직까지 안 잤어

#34 이름없음 2021/01/06 09:06:24

영원했던 당신은 어째서 스러졌나. 약하디 약한 말 한마디에 없어졌나. 겨우 이 작은 꼬마의 말에 무너진 걸까. 꼬마는 늘 당신을 그리워한다. 눈물에 당신의 모습이 고이는 밤은 잠을 못 이룬다. 행여 더 날카로운 말이 될 수 있기에 이 말은 고이 접어둔다. 널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아직까지 안 잤어.

#35 이름없음 2021/01/06 10:30:35

붕어빵 관찰일지 제32일차.

#36 이름없음 2021/01/06 10:49:35

누군가는 부디 이 글을 발견하고 저 괴물을 막아주길 바란다.

#37 곰팡이... 2021/01/06 11:07:13

붕어빵 관찰일지 제32일차. 오늘도 붕어빵은 접시 위에 그대로 있다. 이 일지를 쓰는건 소용없는 짓일까? 하지만 나는 저 괴물의 정체를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붕어빵의 악함을 밝히기 전까지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붕어빵 관찰일지 제33일차. 오늘 드디어 붕어빵이 움직임을 보였다. 자고 일어나보니 붕어빵에 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저 털의 정체는 뭘까? 일단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다. 붕어빵 관찰일지 제34일차. 붕어빵의 털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다. 지금은 붕어빵의 절반이 털로 덮인 상태다. 털의 길이는 짧은 편이고, 색깔은 초록색과 흰색이 섞인듯한 색이다. 붕어빵의 냄새를 맡아보니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것은 필히 저 털 때문일것이다. 털을 조금 뜯어 혀를 가져다대었더니 찌릿찌릿한 맛이 느껴졌다. 전기가 흐르는걸까? 일단은 조금 더 관찰하기로 했다. 붕어빵 관찰일지 제35일차.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우리집 뽀삐가 붕어빵을 먹어버렸다. 입에 넣자마자 뱉기는 했지만 현재의 상태는 좋지 않다. 묽은 토를 하고 시름시름 앓는다. 또 갑자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저 붕어빵의 정체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위험한 물건임은 분명하다. 연구하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나는 계속 연구를 할테지만, 누군가는 부디 이 글을 발견하고 저 괴물을 막아주길 바란다.

#38 이름없음 2021/01/06 11:19:59

포퓰 더 포퓰리테 나는 원하고 바라노니.

#39 이름없음 2021/01/07 16:34:52

끝맺음은 아름답고 창대하리라.

#40 흠 좀 별로... 2021/01/08 16:00:56

포퓰 더 포퓰리테 나는 원하고 바라노니, 내 앞의 가련하고 작은 생명의 길을 터주거라. 그의 앞에 있는 장애물들을 그의 성장으로 이어지게 하며, 그의 주변에는 선한 자들이 가득하게 하거라. 그가 겪을 모든 일이 그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만들거라. 비록 지금은 미미하고 보잘것없는 아이지만, 만일 그가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그의 끝맺음, 동료의 끝맺음, 제국의 끝맺음 그리고 세계의 끝맺음은 아름답고 창대하리라.

#41 이름없음 2021/01/08 16:26:37

내 손글씨가 맘에 든다

#42 이름없음 2021/01/08 17:00:55

글을 쓰는 내 모습은 어땠을까.

#43 이름없음 2021/01/26 16:40:25

내 손글씨가 맘에 든다 다행이었다. 나는 지금 손편지를 쓰고 있다. 내일은 졸업식이고 내가 그 애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나는 차피 두번 다시 못볼테니 편지를 주며 고백이라도 해보려고 한다. 편지의 시작은 인사로 시작했다. 한 줄 두 줄.. 다행이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깔끔하게 썼다. 오랜만에 또박또박 쓴 내 글씨도 맘에 들었다.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글로 고백하고 나니 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개진게 느껴진다. 다 쓰고 난 내 모습은 이런데 내일 고백할 내 모습은 어떨까 글을 쓰는 내 모습은 어땠을까.

#44 이름없음 2021/01/26 20:06:06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대량학살이라고요!

#45 이름없음 2021/01/26 20:06:47

늦었어

#46 이름없음 2021/01/26 23:18:12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대량학살이라고요! 잠시 숨을 고르던 내게 마음속의 일말의 양심, 죄책감이 말을 걸어왔다. 저 앞의 쓰러진 사람들을 보았다. 전율이 척추 끝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아아, 그렇구나. 난 이제, 늦었어.

#47 이름없음 2021/01/26 23:19:21

입이 쓰다.

#48 이름없음 2021/01/26 23:49:56

눈을 감았다

#49 이름없음 2021/01/26 23:50:29

입이 쓰다.독한 것을 삼킨 듯 목이 타오르는 것만 같았고,모든 것들은 엉망인 것 처럼 보였다. 미칠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고,그녀를 잃었다는 슬픔에 서서히 정신을 놓았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더 많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며 안아주었다면 이럴 일은 없었을 텐데. 미안해,사랑해.모든 감정들이 입 안에서 맴돌자 입 안은 써졌다.어떻게 하면 너에게로 다시 갈 수 있을까.어떻게 하면 다시 그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까. 오늘도 달콤한 꿈을 청한다.눈을 감았다.(미안!)

#50 이름없음 2021/01/27 02:46:13

너는 정말이지, 나쁜사람이다.

#51 이름없음 2021/01/27 03:05:13

너도 나쁜 사람이라, 정말 다행이다.

#52 이름없음 2021/01/27 23:00:51

너는 정말이지, 나쁜사람이다. 언제든 나를 향해 달려온다면서, 어디든 나만 있으면 괜찮다면서, 그날 사라진 너를 찾지 못한채로 가만히 그날의 네 사진을 바라보았다. 잠깐, 뒤에... 누구지? 나는 황급히 그날 찍은 사진을 모두 꺼냈다. 칙칙한 폴라로이드 안에는 웃고있는 너와나, 그리고.... 휴대폰과 지갑만 챙겨 집을 나섰다. 너를 처음 만났던 골목길, 안의 너의 아지트라던 새끼고양이의 집, 그곳을 지나면, "오랜만이다" "너... 그날 우리랑..." "우리? 너와 누구를 말하는거지. 그 아이라면 이미 내쪽의 '우리'인걸" "건들이지 않기로 했잖아!" "하지만 네가 이곳을 떠난뒤 한 짓을 봐. 조용히 지냈다면 이런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거야" "그 애는... 이번일에 연관 없어. 그곳에 몸 담근 사람은 나야!!" "모르겠지만, 그 애는 원래 네가 '우리'였다는걸 알았어. 본인도 마찬가지니까" 머리가 새하얘졌다. 분명 외국에 있었다고...아니 그 전에 저들의 흉터는? 본 적도 없는.... 순간, 그의 팔에 새겨진 작은 시계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인건, ".....안녕" -3년후 나는 오늘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사람과 같이 산다. 나는 참 나쁜 사람이지만, 너도 나쁜사람이라, 정말 다행이다.

#53 이름없음 2021/01/27 23:49:09

처음-피고인이 범인이 아님은 알았지만,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54 이름없음 2021/01/27 23:49:53

그래, 난 그런 사람이었지.

#55 이름없음 2021/01/28 00:16:01

처음 피고인이 범인이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스펙과 경력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사람의 인생을 강탈했어야만 했다. 그게 누구든간에 난 최상급에 올리가려 발벙둥쳐야하니까. 또한 나의 숙명은 이런 것이다. 나의 악을 뭐라할 수도 없는 숙명. 난 악인이다. 난 악인인 걸 인정하고 산다. 그 누구보다도 내가 악하다는 걸 아니까. 이젠 후회도 없다. 밤하늘을 보며 달에게 속삭였다. 그래, 난 그런 사람이었지

#56 이름없음 2021/01/28 02:42:08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57 이름없음 2021/01/28 21:21:30

조금씩 앞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58 이름없음 2021/01/29 11:46:23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몸 속으로 들어가는 산소에 사랑을 담았고 밖으로 나오는 이산화탄소에 후회를 섞었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은 내가 힘들 때 산소처럼 몸 속 곳곳으로 침투해 기운을 복돋아주겠지. 세포가 사용하고 심장으로 다시 모여드는 이산화탄소처럼 나는 너와의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댓가로 나에게서 등 돌리는 너의 모습을 떠올리겠지. 마지막은 아플 것이라는 걸 알면서 널 떠올리는 걸 멈출 수는 없다. 기억 속 마저에도 너가 없는 건 더욱 아프기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너를 가득 담은 채로 오늘도 조금씩 앞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59 이름없음 2021/01/29 11:59:59

도끼 날이 깊숙히 박혀 빠지지 않는다.

#60 이름없음 2021/01/29 12:06:50

그렇게 네 숨은 죽어버렸다.

#61 이름없음 2021/02/12 22:26:11

도끼 날이 깊숙이 박혀 빠지지 않는다. 힘을 아무리 줘도 미동이 없다. 나오란 말야, 내 애원에도 도끼는 무덤덤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자신이 갉아먹는 중인 생명의 주인처럼, 도끼는 핏빛으로 물든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대체 누가 도끼로 자신을 내리칠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러니 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계의 존재가 인간인 척 하려니 힘들었겠지, 그래서 도끼로 내리친 모양이지. 마치 나무처럼. 나무, 너야말로 나무였다. 세상의 압박에도 자신을 굽힐 줄 몰랐다. 바람이 불면 적당히 휘어져야 하건만 그럴줄을 몰랐다. 사계절 푸르른 소나무처럼, 대쪽같이 굳은 심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너를 어찌 인간이라 부를까? 아, 나는 아직도 그 날의 네가 잊혀지질 않는다. 손가락이 독침이 되어 너를 찌르고 은근한 모멸이 독안개가 되어 네 폐부를 조일 때 너는 어땠는가, 그 악의의 숲에 고고히 서있지 않던가. 너는 그런 존재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인간이 만든 무언가에 쓰러질 존재가 아니었다. 비록 자신의 선택이라 해도, 나는 네가 좀 더 안락한 방법을 취할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것은 일종의 데모가 아닐까, 너와 같은 초록존재들에게 보내는 경고가 아닐까, 나와 같은 회색인간들에게 내리는 저주가 아닐까. 산소를 호흡하는 나는 여전히 의중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알 수 있다. 너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나무였다. 인간의 문명에 스러질지언정 그렇기에 나무였다. 그런 네게 내가 무슨 감정을 더 보낼 수 있을까?. 더 빠지지도 않는 도끼에 대한 미련은 버렸다. 그 대신, 너를 바라보았다. 너를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언젠가 찾게 될 네가 남긴 씨앗, 잎, 꽃을 그냥 넘어가지 않도록. 그렇게 네 숨은 죽어버렸다.

#62 이름없음 2021/02/12 22:27:33

그만하세요.

#63 이름없음 2021/02/12 22:56:07

>>62 ? 왜

#64 이름없음 2021/02/12 23:02:50

>>63 이게 제시어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65 이름없음 2021/02/13 00:12:22

>>64 아 헐 >>61 난 또 완전 잘쓰셨는데 갑자기 그만하라길래 ,, 죄송

#66 이름없음 2021/02/13 00:14:32

앜ㅋㅋㅋㅋㅋ 개웃겨 칭찬은 고맙고 >>62가 처음제시어니까 다음 레더가 뒤에 제시어 쓰고 그 다음 레더가 글 쓰면 된다!

#67 이름없음 2021/02/13 09:58:48

웃기고 있네.

#68 이름없음 2021/02/13 20:20:24

"그만하세요." 한없이 작고 힘없는 그 말에 나는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고집스러운 눈망울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우린 큰 돈줄을 놓쳤어. 네가 물어주기라도 할 거야?" 옛날처럼 순수하게 수다를 떨던 우리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비겁한 사채업자와 정의감으로만 똘똘 뭉친 여자만 있었을 뿐. "그래도, 이런 짓을 하시면 안 되죠!" 웃겼다. 전이랑 달라진 게 없는 네가. 그리고 그걸 잠깐이라도 사랑스럽다고 느낀 내 감정 따위도.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웃기고 있네."

#69 이름없음 2021/02/13 21:12:49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70 이름없음 2021/02/13 21:13:17

책 모서리로

#71 이름없음 2021/02/14 02:16:14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식도를 타고 역류하는 화를 이기지 못해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입니다. 누군가는 저를 향해 자신의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라 일컬을 수도, 사회의 악이라 칭하며 삿대질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경찰관님, 후회 안 합니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해도 저는 망설임 없이 살인을 행할 겁니다.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반성이라는 말을 꺼내지 마십시오. 반성을 하고 있지 않으니깐요. 존경하는 경찰관님,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책 모서리로요.

#72 이름없음 2021/02/14 10:00:36

영원히 춤 춰요.

#73 이름없음 2021/02/14 10:06:22

나의 뮤즈.

#74 이름없음 2021/02/15 08:29:10

영원히 춤춰요.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요. 한떨기 장미같은 당신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고혹적이랍니다. 특히 당신의 춤사위는 나를 즐겁게 만들어요. 마치 장미 꽃잎이 살랑, 살랑 떨어지는것 같거든요. 새빨간 구두가 역시 제일 잘 어울리네요. ...아, 이런. 또 피가 나나보죠? 괜찮아요, 가만히 있어요. 구두와 색이 똑같네요, 딱이에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워 보여요, 나의 뮤즈.

#75 이름없음 2021/02/16 03:11:44

날 위해 날 죽여줄래?

#76 이름없음 2021/02/16 13:53:54

고마워

#77 이름없음 2021/02/17 18:33:07

날 위해 날 죽여줄래? 파리한 인상의, 살아있음에 감사한 네가 꺼슬한 입술을 힘겹게 열었다. 내가 그렇게 못하는 거 누구보다 잘 알면서. 아픈 너는 누구보다 잔인했으며, 가장 불쌍한 존재였다. 내 뺨에 흐르는 눈물을 눈치챌 새도 없이 너는 그 앙상한 손으로 나를 어루만져주었다. 왜 네가 울어, 조금 있다가 어쩌려고. 너의 그 한 줌 손이 내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메어오는 목에 나는 침묵을 뱉을 수 밖에. 내 눈물이 너를 죽인다. 눈물이 너를 적실수록 내 품에서 익사하게 된다. 숨 쉴 수 없는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 짠한 감정이 코 끝을 치고 간다. 너는 졸린 듯 눈을 감는다. 떠나기 전 네 한마디가 기억에 남아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오늘도 살려줘서, 고마워.

#78 이름없음 2021/02/17 20:13:36

제1 화성열차 4번 플랫폼에 열차가 들어옵니다.

#79 이름없음 2021/02/17 21:27:29

내릴 문은 없습니다.

#80 이름없음 2021/02/20 16:40:27

제1 화성열차 플랫폼에 열차가 들어온다. 열차에 탄 사람들은 서로를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실로 실뜨기를 하는 아이들. 창밖을 바라보며 뭔가를 생각하는 사람. 겉옷을 얼굴에 덮고서 곤히 잠든 사람. 우리는 주로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끝없이 달리는 열차에 타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보낸다. 소음을 내지 않는 것은 이 곳의 규칙이다. 휴식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목에 빨간 선이 그어진 사람들이 주로 그랬다. 어딘가 고장난 듯한 그들은 자신이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했다. 창밖에 보이는 검은색, 언뜻 빛나는 점들. 별들. 우리 별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희미하게. 오랜만에 고향을 보자 여러가지 생각이 난다. 가족 생각을 한번 하고. 이 곳에 오기 전에 헤어진 애인 생각을 한번 하고.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던 영단어들 생각을 하고. 형편없이 써놓았던 유서를 생각하고. 돌아가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다 혼자 킥킥 웃기도 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린다. 이 곳에 탄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릴 문은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에게 두번째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81 이름없음 2021/02/20 20:49:31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82 이름없음 2021/02/20 20:50:55

도망칠 곳은 없다

#83 이름없음 2021/02/22 02:19:15

오늘이 마지막 밤이다. 내일은 동이 틀 수 없다. 지구 역사 상 최초의 밤이자 최후의 밤. 돈이 있는 자들은 이미 다른 행성으로 튀었다. 대통령, 국회위원도 튀었다. 다섯살짜리 여동생이 배가 고프다고 엉엉 운다. 어르고 달래서 다시 등에 업고 달린다.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에 살던 집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눈물이 어른거린다. 달빛이 지붕을 비춘다. 조그만 판잣집, 하지만 네 가족이 행복은 했던 집. 부모님을 기억하는 집. 손가락을 빨고 잠든 동생을 눕힌다. 먼지 덮힌 마루에 나도 쓰러진다. 동생아. 깨지 마라. 우리 그냥 여기에만 있자. 도망칠 곳은 없다.

#84 이름없음 2021/02/22 02:56:56

그 달콤한 눈빛이 독인걸 알아

#85 이름없음 2021/02/22 11:03:23

정신차리니 나는 다시 네 품 속이었다.

#86 이름없음 2021/02/23 00:33:06

그 달콤한 눈빛이 독인 걸 알아. 그래서 벗어나려 해봤어. 혹여나 네가 날 떠났을 때 널 잊지 못해 미칠까 봐. 네 그 다정한 눈빛이 차갑게 변했을 때 가슴이 무너져 내릴까 봐. 도망치는 방법도 모르면서 애써 달아나려 노력해봤어. 그런데 이런 내 노력도 모르고 넌 항상 다정하게만 굴어. 앞으로 뻗은 내 손조차 보이지 않은 안갯속을 뛰어다니는 것만 같아. 너무 힘든데, 이 안개가 좋아서 더 달리고 싶어져. 숨이 차오르는데, 폐를 차지하는 공기가 너무 맑게 느껴져서 오히려 정신이 아득해져가. 그리고 정신 차리니 나는 다시 네 품 속이었어.

#87 이름없음 2021/02/23 02:50:10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영원한건 없으니

#88 이름없음 2021/02/23 02:53:17

그렇지만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어

#89 이름없음 2021/02/24 05:38:38

언젠가는 사라질거야. 영원한 건 없으니까. 네가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는데. 왜인지 그 말을 입에 담는 너의 눈은 늘 슬퍼보였어. 그게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파서, 그 눈에 나만을 오롯이 담으려고 애를 썼지. 검은색 구슬에 내 모습이 비치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아득해져. 어쩌면 사랑이란건 말이야, 생각보다 그렇게 깨끗한 감정은 아닐거야. 내가 널 사랑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 줄 알아? 네가 나만큼 더러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아무데도 가지 못한 채로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로 어둠속에서 나만을 사랑하길 바랬어. 너는 이런 날 이해해주었지. 난 이 사랑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모르겠어. 영원한 건 없다고 말이야. 다들 그러잖아. 그 말은 아마 사랑에게도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일거야. 그렇지만, 그럼에도..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어.

#90 이름없음 2021/02/24 14:32:29

둠바둠바 두비둠바

#91 이름없음 2021/02/24 14:34:58

발가락이 부숴졌어

#92 아니 너무 어려운거 아니냐ㅋㅋㅋ 2021/02/24 18:02:08

움파룸파룸 두비두바룸 둠바둠바 두비둠바 슬프지가 않아 노랫소리에 맞춰 턴 다시 발목을 꺾고 높이 서서 모두가 날 바라봐 움파룸파룸 두비두바둠 둠바둠바 두비둠바 멈추지가 않아 박자에 맞춰 사랑에 빠져 입맞춤은 짧게 끝내버리고서 모두가 날 사랑해 점점 다시 다시 춤을 추고 춤을 추고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시선 시선 시선 시선 모두가 나를 죽인다 열 발가락이 부서졌는데 어떻게 춤을 추는건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

#93 이름없음 2021/02/24 18:04:45

>>92 잔혹동화 베이스로 한 동요 가사를 써버렸네ㄷㄷㄷ 여름이었다

#94 이름없음 2021/02/24 20:27:04

이제 우물에는 물 대신 네가 흐르겠지

#95 이런글은 처음써봐 2021/02/25 00:42:38

>>93 >>94 잘 써졌나? 조선의 한 여름이었다, 이곳은 정말 먹을것이 없어 삐쩍 말라버린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여름이나 겨울엔 우물의 물이 모두 말라 물조차 먹기 힘들어 죽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응애-" 김씨의 집이었다. 몇년 전 그녀의 남편인 조씨는 장터에 나가 먹을 것을 훔치다 잡혀 맞아 죽었고 김씨는 17살의 나이로 과부가 되었다. 김씨는 17살에 4살짜리 아들을 두고 지금 껏 이런 거지 꼴로 산 것같지 않은 외모였다. 눈코입은 뚜렸했고 머릿결 마저 비단같았다. 다그닥- 이런 별 볼일 없는 동네에는 항상 부잣집 나으리가 한 번씩 들린다. 그 이유는 바로 김씨 때문. 부잣집 양반 아들 최씨는 김씨의 외모와 그의 마음씨에 홀라당 빠져버렸다. 허나 김씨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 최씨에게 마음을 주지않았다. 그래도 계속되는 최씨의 구애에 김씨는 마음을 열고 교재를 하는데.... 며칠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최씨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다. 짜악- 최씨가 무릎을 꿇고 아버님- 아버님- 빌었다. 최씨의 아버진 그와 김씨의 교재를 알아버린 것. 한 번만 다시 만난다면 자신의 손으로 김씨를 죽여버리겠다 말한다. 며칠간 최씨가 방안에서 나오지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씨에게는 자신의 시종들을 통해 계속하여 쌀을 보내는 등 김씨에게 물건을 보내었다. 한편 김씨는 최씨가 며칠동안 자신을 찾아오지않아 괜히 서러운 마음에 목을 놓아 엉엉 울었다. 삼일 밤낮을 우니 김씨의 목에선 곡소리 하나를 못낼정도로 쉬어버렸다. 며칠간 계속 되는 최씨의 투쟁에 그의 아버지는 최씨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하거라, 너의 뜻을 잘 알겠으니! 혼인을 허락하겠다!" 최씨는 너무 기뻐 바로 뛰쳐 나가 김씨에게로 갔다. 그런데 김씨의 집에는 그의 아들뿐이었다. '우물가에 물을 뜨러간거구나!' 최씨는 당장 우물가로 향했다. 그런데 우물가엔 김씨가없었다. 우물도 대충 보아하니 물 한방울 없었고 최씨는 생각했다. '내가 이 우물에 물을 채워서 김씨에게 보여주면 감동받을거야! 마을사람들과 김씨가 한동안은 편하게 물을 나를 수 있겠지!' 김씨는 반나절을 우물에 물을 퍼다 날랐고 드디어 물을 모두 채웠다. "휴유'' 최씨가 뿌듯하게 우물에 채운 물을 바라보는데 물 위로 무언가 둥둥 떠올랐다. '이런, 설마 동물 사체가 있었던건가?' 물 위로 모두 둥둥 뜰 때까지 최씨는 우물을 바라만 보고있었다. 다 떠오르자 최씨는 우물을 보았고 이미 죽어버린 김씨의 시체가 한 구 떠올랐다. 최씨는 충격받고 그자리에서 기절을 했다. 사건은 이랬다. 최씨의 아버지가 최씨가 매일 쌀 등을 김씨에게 보내는것을 알아채고 김씨에게 가던 음식에 소금을 한포대씩 섞어 보냈던 것. 갈증을 느낀 김씨의 아들에게 물을 떠다주기위해 우물가에 갔지만 지금은 한 여름, 우물가에 물이 없던것이다. 김씨가 직접 우물로 들어가게 하기위해 우물에 밧줄을 짧은 썩은 동아줄로 바꾸고 물을 한 바가지만 부어놓은 것이다. 허리를 숙여 물을 뜨려다 결국 우물에 빠져 기절을 한 김씨 김씨가 정신을 차려 소리를 지르려했을땐 이미 그녀의 목까지 물이 차있었고 김씨의 목이 쉬어버려 소리조차 지르지못했던 것. 쓰러진 최씨는 3일만에 깨어났고 깨어나 우물을 보니 퉁퉁부어 알아 볼 수 없는 형태의 시체가 되어버린 김씨가 그대로 물에 잠겨있었고 반 쯤 미쳐버린 최씨는 이 우물속 물을 모두 마셨고 우물에 들어가 퉁퉁 부어버린 김씨의 시체와 함께 우물속에서 병에 걸려 죽었다.

#96 이름없음 2021/02/25 13:26:53

신은 죽었다... 크큭

#97 이름없음 2021/02/25 13:48:55

내가 곧 신이다

#98 이름없음 2021/02/25 14:10:29

>>10 뭐야...아니..와, 글이 예쁘다 레더..감동 받았어.

#99 이름없음 2021/02/25 14:23:47

신은 죽었다.. 크큭 6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 누구보다 주를 따르고 그 누구보다 주를 섬겼다. 분명 이렇게 하면 구원이 올 것이라고, 머리 속으로 계속해서 되새겼다. 주말 예배를 갈 때마다 집안 형편은 더욱 나빠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믿었다. 언젠가 구원이 온다는 것을 깊게 알고 있었기에. 지금은 겨울일 뿐이다. 지금이 지나면 주가 손을 내밀어주실테고, 나는 드디어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떠난 동생을 그리며 죽은 눈으로 방청석에 앉은 나와 주의 십자가를 목에 걸고 피고석에 앉은 그 놈. 우리가 같은 존재라니. 집행유예로 입꼬리에 미소를 띄우며 사라지는 그 놈과 엉망이 된 동생의 시체를 기억하는 나. 소중한 사람을 빼앗고 죄 없는 자에게 고통을 선사하는 것이 그게 바로 신인가 말인가? 나는 그동안 무엇을 믿어왔는가? 그 때, 그 놈의 어린 여동생이 그 놈에게 달려가 꼭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방긋 하고 크게 웃었다. 그래, 그런게 당신이 말하는 신이라면, 내가 곧 신이다.

#100 이름없음 2021/02/25 14:27:24

>>99 돌았.. 나란 미물은 그저 중이병 오지게 걸린듯한 글이 써지는 그런 1차원적인걸 상상했음 진짜 돌았다 대박 와... 당신들은 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

#101 이름없음 2021/02/25 14:36:42

가엾게도, 이 역겨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리라.

#102 이름없음 2021/02/25 15:59:19

어 미안 위에 못봤다 레스 먹었네 쏴리 와! 접었다!

#103 이름없음 2021/03/08 07:59:33

당신들은 이제 도망칠 곳이 없어 애초에 도망칠 곳을 찾는 게 이상했지 이곳은 모든 게 틀어진 세계 선인들은 유린당하고 악인들은 죗값을 받지 않는 공간 죄책감이란 병에 걸려 쓰러지고 쾌락에 짓눌려 눈이 멀어 벌이는 시간 여기에서 태어났건, 발을 들였건, 납치당했건, 선 안에 들어온 이상 숨을 수도, 나갈 수도 없어 그건 네 의지를 목표를 물어보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쇠고랑이 네 발목에 차지는 순간부터 그랬던 거야 그러니 얌전히 너에게 다가오는 낙원을 받아드리렴 가엾게도, 이 역겨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그런 의미니

#104 이름없음 2021/03/08 08:03:28

아무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려 한다는 것은 언제나 힘들지

#105 이름없음 2021/03/08 12:19:58

그래, 난 끝까지 너의 행복을 바랬다. 그거면 됐다

#106 이름없음 2021/03/08 20:11:49

아무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려 한다는 것은 언제나 힘들지 나에겐 너가 내 모든 세상이었어 아마 너가 이걸 본다면 세상이 그렇게 작냐고 우스갯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네 (방금 너랑 똑같이 말했는데 들려줄 수 없어서 아쉬워) 우리가 헤어진 건 서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인걸까 어떻게 운명이 이렇게 가혹할 수가 있는지 너무 원망스러워 하필 왜 그날이였던 걸까 우리가 식을 마치고 가는 그때였던 걸까 그날 넌 내가 함께 하기만 한다면 행복할 거라고 했지 어떤 상황이든지 말야 이런 뜻으로 한 말 아니란 거 알아 하지만 그래도 한 번만 눈 감아줘 멍청하다고 하겠지 넌 자기 생각은 안 하냐고 하겠지 하지만 그래, 난 끝까지 너의 행복을 바랬어 그거면.. 된 거야

#107 이름없음 2021/03/09 09:45:54

그저 마지막으로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108 이름없음 2021/03/09 11:02:11

달이 아름답네요

#109 이름없음 2021/03/28 10:50:13

그저 마지막으로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이제 떠날 너의 끝자락이나마 잡으려는 손짓. - 왜 가려고 하는데? 네가 고개를 숙이자 검은 머리칼이 허공에 날렸다. 난 너에게 속삭였다. - 네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여기 있잖아. 자유와 평등에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을 버릴 만한 가치가 있어? - 너를 위한 일이야. 이 나라의 모든 사람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난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을 거야. 말릴 수가 없었다. 내가 붙잡는다면 넌 힘없이 말라가겠지. 신념에서 나오는 힘으로 몸을 일으켜오던 너니까. 하지만 순간 원망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어서 나는. - 오늘 달이 아름답네. 달이 서쪽 하늘로 사라지면 포기해줄 거야? 너의 머리색인 하늘에 네 눈빛의 원이 떠다닐 때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어. 네 대답을 알았다. 날카로운 가시를 찔러넣으면 밤하늘을 볼 때마다 상처가 아프겠지, 하며 말을 던졌으니. - 미안해. 그만둘 수는 없어. 소년 시절, 별이 반짝이고 달이 빛날 때 네가 말했었다. 달이 아름답네요.

#110 이름없음 2021/03/28 11:20:57

양치기는 별을 동경했다.

#111 이름없음 2021/03/28 12:36:58

나는 너를 동경했다.

#112 이름없음 2021/03/28 20:04:24

양치기는 별을 동경했다. "나는 저 별처럼 반짝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던 말. 별을 동경하던 그 양치기는 자유롭고 평화로웠다. 항상 빡빡한 생활 속에 죽어가고 있던 나와는 달리. 평소와 똑같은 생활 중, 너무 갑갑한 나머지 새벽에 몰래 후드를 뒤집어쓰고 성을 나와 산책하였다. 문지기들과 시녀들의 교체시간을 몇 번 이고 확인하여 그 틈을 타 밖으로 나왔다. 그저 발 닫는 대로 걷던 중, 풀밭에 양들과 함께 누워 하늘을 보던 한 남자아이. 평범한 외형이었지만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는 금색의 눈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새벽 그곳에 있었고, 나는 매일 새벽 그 양치기를 몰래 보았다. 무슨 이유였을까? 양치기의 반짝이던 눈? 자유로운 행동?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항상 똑같고 꽉 막힌 생활을 하던 나에겐 정말 부러운 삶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새벽에 몰래 나오는 생활이 익숙해져갈 쯤에는 그 양치기와 친해져 있었다. 매일 새벽마다 그가 여행하던 이야기를 듣고, 양들과 놀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다시 성으로 들어가던 생활을 반복하였고, 그는 나와 만나 이야기를 해줄 때면 항상 그 이야기의 끝은 저 반짝이는 별처럼 되고싶다는 말이었다. 낮에 외출할 때 양치기를 몇 번 보았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나는 그저 그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할 뿐이었다. 그는 항상 자유로워 보였고, 별처럼 웃고 있던 그의 눈동자는 그 무엇보다 반짝였다. 시간이 지나고, 아니니다를까 잠이 오지 않아 새벽에 성 안을 걷고있던 어머니에게 들켜 나는 더 이상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내 갑갑하고 답답한 삶에 숨을 불어넣어 주던 그와의 이야기, 새벽 공기, 양치기의 자유로움이 너무나 부러웠으나, 내가 다시 성을 나갈 수 있게 되었을때 너는 여행을 다시 시작해 이미 이 지역을 떠나고 멀리 가버렸을 때였다. 나는 그 후 예전처럼 다시 빡짝한 생활 속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그때의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별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가끔 새벽에 성을 나와 산책할 때면 그때가 생각난다. 다시 그 양치기를 만날 수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나는 너를 동경했다고.

#113 이름없음 2021/03/29 17:18:44

나는 오늘 죽을 것이다.

#114 이름없음 2021/03/29 17:20:11

살아라. 그래도 살아서 이 세상에 일부가 되어라

#115 이름없음 2021/03/30 02:41:40

나는 오늘 죽을 것이다. 미리 준비해둔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위이잉 하고 돌아가는 컴퓨터의 소리를 음악 삼아 마지막 남은 박스를 품에 안았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해야할 일 목록에 적힌 '정리' 칸에 체크 표시를 새기며 문 밖으로 나왔다. 새벽 5시. 새의 지저귐을 느끼자 새삼스럽게 죽는다는 것이 다가왔다. 멈춰있던 것 도 잠시, 이내 상자를 내려놓은 후 트렁크를 닫았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남았던 확인 버튼을 눌렀다. 20년간의 평범한 사람의 인생이 죽어버린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돌고있다. 이번 신분은 그래도 꽤나 정이 들었던 참인데... 뭐, 어쩌피 그날 이후로부터 평범한 삶은 포기했지만.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럴때 마다 감상에 잠기는 건 슬슬 그만둘때도 되었지. 별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누군가 했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을 느끼며 나는 목적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살아라. 그래도 살아서 이 세상에 일부가 되어라.'

#116 이름없음 2021/03/30 02:43:13

심리학은 쓰잘데기 없다.

#117 이름없음 2021/03/30 02:43:39

역시, 심리학은 쓰잘데기 없는 학문에 틀림없다.

#118 이름없음 2021/04/24 21:28:26

심리학은 쓰잘데기 없다. 다들 왜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겠다. 왜 궁금해 하는거지? 난 어떤 사람이 갑자기 넘어지든 살인을 당하든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내 발 밑에는 묶여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러나 울부짖든 빌든 관심이 없다. 흥미였지만 재미도 없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내게 자비를 베풀어 달란다. 내가 왜? 이 사람은 심리학을 전공했던 사람인데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난 그저 시끄러울 뿐인데. 역시, 심리학은 쓰잘데기 없는 학문임에 틀림없다.

#119 이름없음 2021/04/24 21:49:21

내일, 수도에 핵폭탄이 떨어집니다.

#120 ◆g2E3Bhz9iqp 2021/04/24 22:00:11

저 외계 문명의 파괴를 위하여! (인코고의아니야미안)

#121 이름없음 2021/05/10 23:11:43

ㄱㅅ

#122 이름없음 2021/07/24 17:50:26

ㄱㅅ

#123 이름없음 2021/07/25 08:53:20

[내일 수도에 핵폭탄이 떨어집니다.] 이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드디어 언론이 미쳤나 싶었다. 내일 당장 수도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니. 나는 말도 안되는 음모론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장 수도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면, 그 주최는 누구며 감히 어떤 존재가 북한과 맞닿아있는 대한민국 수도를 내려 친다는 소린가. 이 터무니 없는 인터넷 기사, 욕이나 잔뜩 써줄까 싶어서 기사를 클릭했다. 작성일은 어제.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핵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 아닌가. 나는 다시 한번 더 조소를 날렸다. 막상 내용을 보자니 이건 무슨 소설보다도 더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 나는 초반부만 읽고선 대충 스크롤을 내리고 댓글창을 열었다. 역시나 댓글창은 나와 같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껏해야 달려있는 댓글은 7개. 댓글 작성칸을 클릭했다. 그리고 손을 자판에 가져다 대려던 그 순간. 지구상에 존재하는 핵폭탄, 아니 애초에 핵폭탄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일종의 수류탄 형태가 내 앞에 날아왔다. 그리곤 삽시간에 굉음을 내며 터져버렸다. 주변의 모든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막상 그 바로 앞에서, 죽겠구나 싶던 나 또한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외계 문명, 최대한 많은 외계인을 살릴 것. 노동력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 쩌렁쩌렁하게 울려대는 소리. 귀가 아플 정도였다. 아니 무엇보다, 이 소리의 근원지인 곳이 청와대임을 감안하자면 이건 분명 침공이다. 적어도 화성인, 아니면 외계인. 주변에서 홀로그램과 같은 것들이 지직 대더니 이내 마치 에일리언 처럼 생긴 것들이 등장했다. 순식간에 내 뇌리에 단 하나의 단어만이 스쳤다. 아포칼립스. 그리고 그 에일리언들은 일제히 소리쳤다. "저 외계 문명의 파괴를 위하여!"

#124 이름없음 2021/07/25 13:10:26

우리 놀러 가자. 멀리 나가는 건 어렵겠지만 옆 마을 바닷가 정도는 괜찮지 않아?

#125 이름없음 2021/07/25 17:20:31

그리고 나비는 추락했다.

#126 이름없음 2021/07/25 20:03:01

우리 놀러 가자. 멀리 나가는 건 어렵겠지만 옆 마을 바닷가 정도는 괜찮지 않아? 그 말을 하는 윤의 표정은 어땠던가. 웃고 있었나, 아니면 무표정이었을까. 해성은 그렇게 묻던 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자신을 수없이 저주하며 손에 얼굴을 묻었다. 윤이 무언가를 제안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윤을 떠올리면 매일 학교가 끝나고 두어 시간씩 공을 차는 해성의 가방 옆에 나른히 앉아 해성을 기다리거나, 가끔 지나가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눌 때는 눈을 휘어 미소짓기도 하고, 구름 너머로 새빨간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손을 크게 흔들어 해성을 부르는 모습이 더 익숙했다. 우리 이거 먹으러 가자, 이 게임이 재미있대. 야, 너 이 영화 봤냐? 새로운 걸 찾아내 먼저 제안하는 건 항상 해성이었다. 해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언가를 들이밀면 윤은 그저 가만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쪽이었다. 그런데 그런 윤이 처음으로 놀러 가자고, 그것도 구체적인 장소를 들이밀었다. 고3의 여름이었으니 먼 곳에 갈 수는 없겠으나, 야자를 째고 바닷가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자는 것이었다. 해성은 윤이 세운 계획이라기에는 좀, 아니 많이 파격적인 제안에 놀랐으나 이내 보조개가 패이도록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그때 그러자고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그전에 다른 걸 하자고 말했어야..... 해성은 기백 번 되뇌이던 후회를 다시 읊조리며 고개를 떨궜다. 여행의 시작은 완벽했다. 햇빛은 좀 따가웠지만 7월의 한복판이라는 걸 감안하면 습기도 없고, 화창하게 개인 하늘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이 떠 있었다. 사실 해성은 구름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둘 중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아름다움을 기민하게 알아채는 건 언제나 윤이었다. 지금처럼, 붉은 노을이 깔리면서 하늘이 기묘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윤은 해성의 가방을 챙겨들고 운동장을 누비던 해성을 손짓해 부르곤 했다.... 지금 하늘 예쁘다. 해성은 그렇게 말하며 작은 손으로 곧게 하늘을 가리켜 보이던 윤의 잔상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윤은 바다에 도착해서도 그 말을 했었다. 그날의 바다는 파랗고, 시원하고, 끝없는 자유의 냄새를 품고 있었다. 윤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그 앞에 서서 해맑게 웃었고, 둘은 그 근처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조개구이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때 돌아왔어야 했다고, 해성은 다시 한 번 후회했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전망대로 유명하다는 높은 바위에 올라선 윤은 꼭 나비 같았다. 시야 가장자리를 맴돌며 팔랑거리다가, 막상 저에게 초점을 맞추면 어지럽게 허공으로 사라지는 흰 나비. 해성은 손을 내밀었고, 윤은 까르르 웃으며 걸음을 물렸다. 해성은 숨이 막혀 오는 기분에 목덜미를 긁었다. 검게 탄 목덜미와 하얀 턱밑을 긁고 지나간 손톱이 붉은 선을 그었다. 윤의 얼굴이, 너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던 윤의 표정이 기억나지 않았다. 물이 나를 죽일 거야. 해성의 폐 속으로 덥고 습한 공기가, 아니 바닷물이 밀려들었다. 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너는 그때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니. 해성은 햇살 아래서 화사하게 빛나던 윤의 미소를 기억에 새겼다. 그리고 나비는 추락했다.

#127 이름없음 2021/07/26 00:23:41

눈이 오는 날에 생각한다.

#128 이름없음 2021/07/27 02:48:59

나는 아직도 가끔 너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129 이름없음 2021/07/27 10:11:55

눈이 오는 날에 생각한다. 겨울, 특히 이맘때쯤이면 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하얀 겨울날에 새빨간 목도리를 두르며 조잘거렸던 너와의 기억. 나는 겨울이 제일 좋아. 참 이상하지? 난 여름에 태어났는데. 넌 어때? 난 싫어. 눈 오는 건 더더욱. 길도 더러워지고... 그래도 눈 내리는 풍경은 예쁘지 않아? ..딱 그것뿐이라면 나쁘진 않지. 눈 쌓인 길을 걸으며 나눴던 대화, 입김을 내뱉으며 장난치던 너, 둘이서 꿈꾸던 막연한 미래. 그리고 죽음. 따스한 햇살을 밭으며 평화롭게 자는 듯 죽어있던 너. 화윤아, 난 아직도 나를 탓해. 그 길을 걸을 때면, 손 잡은 연인들을 보면, 추워진 날에 입김이 나오면 나는 우리의 기억을 그리듯 곱씹고는 해. 벌써 몇 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너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130 이름없음 2021/07/30 11:16:47

여름이 싫었다. 너무 뜨거워서 너조차 녹아버릴 것만 같아서.

#131 이름없음 2021/07/30 19:37:44

나는 이제 여름이 좋다.

#132 이름없음 2021/07/31 23:40:45

여름이 싫었다. 너무 뜨거워서 너조차 녹아버릴 것만 같아서. 우스운 생각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덥고 뜨거운 여름이라 한들 사람을 녹일 순 없었으니까. 아이스크림처럼 줄줄 흘러 쉽게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었다.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을 했던 건 그만큼 네가 무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이든 영화든 슬픈 것을 보면 제 일인양 펑펑 울어버리는 사람, 자신이 불이익을 당해도 세상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 한 몸을 바칠 사람. 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다, 풀 한 포기 마저도. 이제 와 말하자면 일년열두달 내내 불안했다. 봄에는 황사먼지에 숨 막힐까, 가을은 낙엽처럼 바스러질까, 겨울은 드센 바람에 꽁꽁 얼어버릴까 전전긍긍했던 사실은 나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네가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지레짐작할 뿐이다. 망가진 세상은 걷잡을 수 없었다. 사계절은 점점 사라져 여름과 겨울만이 남았고, 올해만 해도 몇 개의 섬이 푸른 바닷 속으로 가라앉았다. 사회는 혼란에 빠졌고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살고 싶다는 본능과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사람들을 집어 삼켰다. '이성'적인 사고 역시 불가능해져 갔다. 과학의 발전, 현대 문명을 자랑할 땐 언제고 지금은 주술, 마법, 오컬트와 같은 비 과학적인 것들이 성행하고 있다. 그래, 네가 죽은 건 그 빌어먹을 '산 제물'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전 지대에 속하긴 했지만 안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지진, 해일, 태풍, 별별 이상기후들이 한반도를 덮쳤다. 그러자 혜성처럼 등장한 무당은 이상 기후 몇 개를 예고했다. 처음에 무시했던 사람들도 그게 하나 둘 들어맞으니 신뢰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치는 굿판까지 벌어진 것이다. 산 제물의 조건은 태어난 생년월일, 성별이었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그 조건에 부합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네가 왜 제물이 된 걸까. 너는 왜 그 제물에 자원했을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네가 세상을 사랑한다고 세상이 너를 사랑해 주는 것은 아닌데. 그 예가 너의 죽음이 아니었나. 세상은 너를 버렸고 나의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뜨거운 여름에 녹지 않도록 내가 잘 했어야 했는데... 후회만 남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집안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아니 차가웠나. 사실 이런 기억이야 좋을 것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너와 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여름이다. 네가 녹아버린 그 여름, 세상이 나의 세상을 녹여버렸으니 나도 너의 세상을 녹여버리려고 한다. 모든 것이 뜨겁게 작열하고 그 형체를 없앤다. 아마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먼 미래에는 새로운 세상이 생겨날 것이다. 그때가 되어도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은 힘드려나. 그래도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너무 뭐라고 하지마. 네가 얘기했던 '싫은 것도 사랑하는 방법'을 이제 깨우친거니까. 나는 이제 여름이 좋다.

#133 이름없음 2021/08/01 01:17:35

골목길의 밤에는 가로등 빛 한 줄기와 그저 담벼락을 걷는 고양이 발소리뿐이었다.

#134 이름없음 2021/08/01 02:22:54

이제는 나 혼자 뿐이다.

#135 이름없음 2021/08/01 02:25:27

골모끼레 바메는 가로등 비찬줄기와 그저 담벼라글 거ㄷ능 고양이 발소리뿌니였다 아니 이럴수가?? 어제 지구에 날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내가 이미 다 머겄을텐데!!! 그래서 남은 고양이를 머겄다 이제는 나혼자뿌니다.

#136 이름없음 2021/08/01 02:27:13

>>135 술.. 마셨니?

#137 이름없음 2021/08/01 02:27:56

전남친을 주겼다

#138 이름없음 2021/08/01 02:28:41

술마셨니??? 또 지긋지긋한 ㄱㅡ샤끼가 이빨을 턴다 나는 너무 짜증이 나서 어떨수엊ㅅ이 전남친을 주겼다

#139 이름없음 2021/08/01 04:03:28

전남친을 죽였다. 산에 묻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 천으로 둘둘 감싸고 벽돌과 함께 드럼통에 넣어 바다에 던졌다. 이것도 꽤 만만찮았다. 사람 죽이고 처리하는 것을 너무 우습게 봤나 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잘만 하던데 역시 현실은 현실인가 보다. 저 자식이 죽었다는 것이 알려져도 괜찮다. 워낙 여기저기 원한을 많이 산 사람이라 용의자는 나뿐만이 아니다. 알리바이도 괜찮다. 나는 서해에 있는 민박집에서 휴학을 만끽하고 있고 이곳은 동해니까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것이다. 이 날만을 위해 서해에 머무르는 동안 지금 하고 있는 차림새와 정 반대의 이미지로 지내왔다. 옷은 하나만 검정이면 이상하니 몇 벌 더 챙겨와 가끔씩 입었다. 숙소로 들키지 않게 돌아와 잠을 청했다. 밤새 너무 무리했는지 점심이 돼서야 눈을 떴다. 오늘은 뭘 할까 고민하다가 어제 거슬리던 것을 드디어 치웠단 사실을 떠올렸다. 기쁜 마음으로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 전남친을 왜 죽였나고? 그래 술. 술 때문이다. 내가 애주가이긴 하다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자식은 자꾸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한다. 만취해서 집에 들어간 적도 별로 없었고, 그 자식한테 술주정을 부린 적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가끔 술 마시고 연락하면 잔소리부터 퍼붓는다. “또 술 마셨어? 그만 좀 마시라니까.” 얼핏 다정하게 들려 연애 초에는 저 잔소리마저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자식을 떠올리니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 오늘은 좋은 날이니까 마시고 취하자. 술을 들이킨다. 기분 좋게 술을 마시던 중 옆에 사람이 앉았다. 자기도 술 마실건데 같이 마시잔다. 나는 신이나서 소리쳤다. “끄래!!” 발음이 조금 뭉개진 것이 살짝 취한 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그 사람도 신경쓰지 않았다. 술냄새가 나는게 이 사람도 한창 마시다 온 듯 하다. 우리는 건배를 했다. 오늘 같은 날이면 마시고 죽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내 한이었던 그 자식도 사라졌으니 이제 난 미련이 없다. 다음날이 되었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퍼부어 마셨지만 아쉽게도 죽진 않았다. 뭐 상관 없다. 그저 언젠가 죽을 때까지 여유를 만끽하면 되니까. 이제 거슬리는 것은 없으니까. 나는 신이나 콧노래를 부르며 바다를 거닐었다. 걷다보니 누가 말 걸어왔다. 어제 같이 술 마시던 사람이었다. 훤칠하니 내 취향인 남자였다. 우리는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오늘은 친구들과 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헤어져야 했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바다에서 놀다가 다시 저녁과 술을 하며 놀았다. 그렇게 며칠 지내다가 집으로 갔다. 서해에 있는 동안 그 남자와 연락을 계속했다. 남자는 내가 떠나기 하루 전에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연락을 하며 가끔 만나기도 했다. 그러면서 호감이 쌓여갔고 결국 연인이 됐다. 전남친을 죽인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우리의 연애는 순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복학을 해 정신이 없었고 남자친구도 자기가 하는 일로 바빴다. 비교적 가볍고 얼렁뚱땅 시작된 인연이라 그런가? 삐걱거림이 심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우리는 오래 만난 사이도 아니라 안 맞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싸움이 잦아졌고 결국 헤어졌다.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누군가를 만났다. 바다에서 만났던 전남친이었다. 나는 혀가 꼬여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 상태로 꺼지라고 짜증을 냈다. 전남친이 내 이름을 부른다. 순간 내가 죽인 구남친과 겹쳐 보였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똑같은 놈이었다. “술 마셨니??” 또 지긋지긋한 그 새끼가 이빨을 턴다. 나는 너무 짜증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전남친을 죽였다.

#140 이름없음 2021/08/03 14:53:03

하필이면 여름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해서

#141 이름없음 2021/08/03 17:02:22

그저 겨울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142 이름없음 2021/08/04 12:22:04

하필이면 여름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을 사랑해서 나 또한 덩달아 여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별 수 없지 않는가, 나의 애틋한 S를 위해서라면 그까짓 화창한 계절 따위의 의미는 잃어도 상관없다. 비록 그는 지금 내 곁에 없지만 그 열기를 싫어했던 S의 흔적은 계속해 남아있으니까. 더위와 습도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날씨에 우린 처음 만났다. 너는 아름다웠고, 영원할 것 같았으며, 나만을 바라보았다. 아, 나의 사랑스런 S. 우리가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너는 생각보다 빠르게 내 곁을 떠나갔지만 너의 모든 모습들은 내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기에 내가 직접 달아 준, 네가 남기고 떠나간 너의 일부는 네가 돌아올 때가 될 때까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어. 나의 S와 함께한 찰나의 시간들은 내가 그를 사랑할 영원한 시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자태, 순수한 흰색, 한 발 늦게 찾아온 쪼개질 듯한 손의 아픔. 나의 아름다운 Snowman. 나는, 그저 겨울이 오기만을 바라고 있다.

#143 이름없음 2021/08/04 20:42:53

나는 무엇인걸까

#144 이름없음 2021/08/04 21:21:59

나는 그저 마른 나뭇가지였을 뿐이었다.

#145 이름없음 2021/08/05 04:32:09

'나는 무엇인걸까' 한여름이지만 이곳은 계절을 가늠할 수 없다 그저 코 끝이 시린 공기만이 이곳을 감돈다 나도 공기를 잔뜩 머금어 타오를 때가 있었던가 창밖은 너무나 환하고 따뜻해서 쳐다보기가 무서운 느낌이 든다 오늘도 그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시린 공기를 느낄 뿐이다 끝없는 권태감에 눈을 꽉 감고 이불을 둘둘 만다 이마저도 많은 체력이 소비됨을 느낀다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하며 살아있는 시체가 다름없음을 생각하다 태양이 하나도 훑지 않은 가냘픈 팔을 바라본다 마치 타인의 것처럼 느껴지는 그것은..나는..그저 마른 나뭇가지였을 뿐이었다

#146 이름없음 2021/08/05 16:59:28

따스한 햇빛조차 버거운 날이었다

#147 이름없음 2021/08/05 17:08:58

그런 날 조차도 난 바보같이 네 연락을 기다린다

#148 이름없음 2021/08/05 19:08:08

따스한 햇빛조차 버거운 날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를 넌 아무런 말도 없이 반겨주었다 나름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이런 사랑을 받는것이 이젠 너와의 안좋은 기억도 그저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내겐 너무나 과분하고 소중한 사람. 초반의 우리, 사랑스럽기만했던 너까지 이 모든게 과거의 일이다 꽤 애틋하던 나날들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유독 너가 더 미워지는 날 그런 날 조차도 난 바보같이 네 연락을 기다린다

#149 이름없음 2021/08/05 19:23:11

언제나처럼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150 이름없음 2021/08/05 22:40:15

그저 내 마음에는 참혹한 후회만 남았다.

#151 이름없음 2021/10/02 08:33:14

언제나처럼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달라 매일 같이 신께 빌었건만 오늘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듯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절함 보다는 죄책감을 덜 생각으로 계속하게 된 기도이니 그 누구도 원망하진 않는다. 다만 오늘따라 밖이 조금 소란스러운 것이, 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1년 전 그 날에도... 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핸드폰을 확인하니, 큼지막한 시간 옆에 2021년 10월 2일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정신없이 일에 치여 살다보니 네 기일도 잊고 있었구나. 오늘부터는 다시 한가하니... .... ....? 2021..? 순간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꿈인가? 아니, 꿈이어야한다. 설마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렇게, 순간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작은 비명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나는 충격에 휩싸여 천천히 주저앉았다. 차마 창문 밖을 내다 볼 수 없었다. 이건.. 이건 꿈일 것이다. 내가 너를 잠시 잊어서, 감히 네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미래 따위를 상상해서, 벌을 받은 것이다. 이제 깰 수 있겠지? 다시 돌아가겠지? 다급해진 마음에 울음을 참으며 손을 모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기도해야 한다. 딱 10분만이라도 다시 시간을 돌려달라고. 말해야 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걸까, 다시 눈을 뜨기 두려웠다. 계속 기도를 해야 하는데.. 조심스럽게 눈을 떠 창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밤이구나. 차라리 해가 뜨지 않았으면... 그저 내 마음 속에는 참혹한 후회만 남았다.

#152 이름없음 2021/10/03 13:51:16

지나가는 계절에 세상이 울었다.

#153 이름없음 2021/10/03 15:30:19

그럼에도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이였으리라.

#154 이름없음 2021/10/08 16:11:18

지나가는 계절에 세상이 울었다. 자연은 아무런 목적없이 질서 있게 흘러간다. 가을 지나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또 여름이 오는건 변함없는 일과였다. 가을은 화르륵 수많은 생명을 피워낸다. 그 속에서 자그만 생명 하나가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새끼는 정처없이 떠돌았다. 물을 얻기 힘들어 1층 배란다 앞 화분에 뒹굴고 있으면 가끔 물을 얻었고, 떨어진 것을 먹으며 살아 갔다. 몇개월 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딱 맞는 날씨였다. 새하얗고 커다란 눈이 무덥게 쌓이기 전까지는. 우수수 아이의 몸에 지독하게 하얀 눈이 떨어졌다. 아이의 몸이 떨렸다. 시시나무 떨듯이. 계속 낮은 체온이 계속 낮았다. 너무 이른 날씨였다. 아이를 위해 스티로폼과 박스를 준비하러 했었지만. 아이가 지나다니던 상점 앞 뉴스가 틀어졌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빠르게 추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라져가는 가을 이번년도도 빨라진 시기 라는 뉴스 앞으로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고양이 겨울집 빨리 갔다놔야겠다." 지나가는 계절에 세상이 울었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이였으리라.

#155 이름없음 2021/10/08 16:14:01

내 곁에 있어주는 네가 살짝 서글펐다.

#156 이름없음 2021/10/08 23:34:46

결국 내 곁을 떠나는 너가 사랑스러워보였다.

#157 이름없음 2021/10/09 01:11:07

내 곁에 있어주는 네가 살짝 서글펐다. 그 감정이 분명한 사랑이 아닌 연민과 동정과 그 외의 것들.. 즉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베푸는 관용이라도 되는 그런 머뭄은 오히려 내게 독이 되어 상처만을 남겼다. 나는 언제나 모질게 굴었고 아이러니하게 떠나지 않는 네게 은근 안도했다. 알 수 없는 여자의 마음과도 같이, 그것을 가장 혐의하였던 내가 그들과 같은 꼴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안도와 시기와 상처와 두려움 그런 감회들이 모여 어느새 입은 손으로 옮겨가였고 손은 곧 발이 되어 나조차도 알지 못하는 희열을 느끼며 안도에 빠지고 두려워하였다. 끝끝내 그녀의 떨리는 음성에 담긴 그 이별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그 희열은 또다시 두려움과 노기로 바뀌어 손과 발을 움직였고 그 차가운 몸으로 연고없이 불타는 네가, 결국 내 곁은 떠나는 네가 사랑스러워 보였다.

#158 이름없음 2021/10/09 01:14:01

결국 이럼에도 멸망은 찾아오는구나

#159 이름없음 2021/10/09 01:19:02

그렇지만 단 한번이라도

#160 이름없음 2021/10/09 04:30:41

결국 이럼에도 멸망은 찾아오는구나. 용사는 시체로 뒤덮힌 벌판에서 머리가 터져 뇌수가 흘러나오는 법사의 머리와 방패와 함께 가슴이 창에 꽂힌 탱커의 시체를 돌아보았다. 한꺼번에 형체도 없이 잿더미가 된 성직자와 궁수, 어쌔신의 흔적을 눈으로 훑었다. 운명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죽음을 친구로 삼는 건 각오했으나 결심이 흔들릴 사건은 너무 자주 찾아왔다. 곁에 있는 이들만큼은 무사할 거라는 안일한 사고 탓이었을까. 여정의 시작에서부터 모두가 예상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최악의 미래가 현실로 닥쳐왔다. 마왕을 처치한 게 무슨 소용인가, 이미 세상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셀 수도 없는 후회와 자책이 몸을 휩쓴다. 사라진 동료들의 흔적 외면했던 이들의 형상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뒤집는다. 내가 수련을 더 했더라면. 왕을 처단을 했더라면. 마을 주민을 제물로 바치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였다면. 종말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나마 잡을 수 있었을 텐데. 고된 노력과 헛된 희생의 말로가 이것이라니, 헛웃음만 나온다. 석양이 지면서 풀이 물드는 것이 명관이었던 들판은 이제 탁한 붉은빛으로 어지렆혀져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침략이 일면서 붉은빛으로 덮인 건 들판 뿐만이 아니다. 결전을 앞두고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한번밖에 없다며 주의를 주던 지난날의 동료가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기회는 꼬투리만 잡은 셈이다.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나 뿐이니까. 용사는 칼끝을 자신에게 향하며 마지막 후회를 곱씹었다. 놓친 기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단 한번이라도,

#161 이름없음 2021/10/09 17:10:58

이 세상에 만약이라는게 있다면

#162 이름없음 2021/10/09 19:27:11

그런건 없어

#163 이름없음 2021/10/10 00:09:49

'이 세상에 만약이라는게 있다면..." 차가운 새벽공기를 들이쉬며 열린 창문사이로 줄곧 다가갔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새벽공기가 피부에 닿을때마다 소름끼치는 기분이 스며들었고 그런 기분마저 감사하다는듯이 감응했다. 정말, 이 세상에 만약이라는게 존재한다면 지금 나는 이렇게 삶의 단락에 서있지는 않겠지. 너를 그리워하며 하루를 보내다보니 벌써 한달이 지났다. 아직 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잠 못 이루는 하루가 길어지고 횟수가 많아지고 사람이 피폐해져가는 걸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여명이 들 무렵, 가끔 잠을 이루는 날에는 느닷없는 꿈결속에 니가 죽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처음엔 나더러 살려달라고 굳게 소리지르는 니가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내가 너무 싫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며칠을 들어대니 이젠 현실에서마저 니가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래, 이것도 그냥 그저 내 환상일 뿐이야. 그리 매달리지 말자..' 한달이 지나니 나도 현실을 자각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마음을 다 잡고 이젠 나도 현실에 집중해야한다. 이게 현실이고 곧 네 바램이자 내 행복일테니..' "누가 그래?"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굴곡진 얼굴을 타고 흘렀다. 내 앞에 놓인 거라곤 니가 피우던 담배 한 보루뿐인데, "내 행복?" "...좋아해" "그게 니가 할 말이야?" "응 넌 내 전부니까" "... 그런건 없어"

#164 이름없음 2021/10/10 00:12:49

내 인생은 무한하게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일 뿐이었다.

#165 이름없음 2021/10/10 01:49:56

나는 다시 그 무한에 굴레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166 이름없음 2021/10/12 02:29:04

내 인생은 무한하게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일 뿐이었다. 단조롭기가 기계와 같았다. 정해진 틀대로, 정해진 규칙대로, 정해진 행동을 차근차근 진행해가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一生. 기계가 고장이 나면, 노동자가 이를 발견하고 수리공이 이윽고 찾아와 수리하겠지. 그러나, 사람을 닮은 인간기계가 고장난다면 누가 그를 발견하지? 누가 내 고장을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요, 여기가 고장났단 말입니다! 어서 이 수리해주세요. 이 기계가 고장나면 한 일생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구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대로 인생이 뭔지를 고민하기도 전에, 나는 제멋대로를 감추고 정해진 대로를 떠올리며 잘 굴러가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고장날 순 없지. 그래도, 제대로 된 인생이란 무엇일까? 기계의 제대로? 인간의 제대로? 인간으로서 나는 어디까지가 제대로지? 기계로서는 어디까지 맞춰야하지? 인간이 기계일 수 있을까? 아니, 그건 말도 안 돼!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세요. 빨간불에는 건너시면 안 됩니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면 어떻게 되지? 누가 죽기라도 해? 아닌데. "기계는 시키는 대로 군말없이 따라야 해요. 허, 참! 이 말도 참 이상해요. 애초에 기계에 의지고 뭐고 강철 덩어리일 뿐인데 말이죠." 그래...기계면 군말이 없어야지. 나는 초록불에 건너야지. 어? 인간은 무단횡단하기도 한다고? 나는 인간인가? 맞는데... "인간이 가진, 그 자유의지는 무엇보다 강렬하죠. 그 자유의지가 폭정에서 자유를 떠올리게 하고, 폭정을 부수고 시민의 사회를 만들었잖아요?" 나도 자유의지가 있어! 하지만 나는 기계야...아니야. 인간과 기계가 하나일 순 없어. 아니 그렇지만 그건 또 말이 안 돼. 나는 도대체 뭐지? 아니, 기계를 만들어내는 건 뭐고. 인간임을 나타내는 건 뭐지? "음, 환자분? 듣고 있는 거 맞나? 아, 가끔 이런다고? 음 알겠어. 나는 금방 다시 공장으로 복귀할 테니. 너는 이 인간기계 좀 알아서 해줘. 뭐? 고장? ...고장이란 게 뭔데?" 생각이 천천히 다시 톱니바퀴처럼. 째각, 째각. 삑! 415번! 복귀합니다! 나는 다시 그 무한의 굴레로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167 이름없음 2021/10/13 01:09:49

아저씨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168 이름없음 2021/10/13 13:28:22

줄곧 가엽게 뛰다가 이내 고요히, 그러나 호젓하게 두근대는 심장을 말이다.

#169 이름없음 2021/10/14 14:32:19

아저씨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매일 같이 그 자리를 지켰다. 호선역 5번 출구 옆 벤치는 그의 지정석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곳에 앉아 역을 지나는 사람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이제는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마저 익숙해져 그의 존재를 이상하다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희한하지, 나는 그곳에 없는데. 난 언제나 저 멀찌감치 떨어져 그를 지켜봤다. 그의 영혼없이 공허한 눈은 때론 섬득함을 느끼게 했다. 그는 늘 언제나 역을 오가는 사람들을 넘어 도로 위의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무언가 중얼거렸다. 아야어여오유. 그는 무엇을 말할까-? 그를 생각할때면 머리가 아팠다. 이상한 기억의 파편이 내 머리로 흘러들어왔다. 아마 내가 살아있을 적의 기억. 난 그가 나와 꽤 깊은 관계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그것을 캐내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왜? 머리가 아팠다. 아픈 것은 싫었다. 그가 싫었다. 아파, 너무 아파, 어? 넌- 왜 그 곳에 있는 거야. 나의 사랑스런 첫사랑. 나의 계절. 나의 우주. 그래, 넌 언제나 날 기다렸구나. 열여섯 봄의 나와 서른 여섯 겨울의 너. 우리들은 그제서야 서로를 진심으로 마주쳤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 나의 우주. 내가 널 기다릴테니. -아저씨, 아저씨는 늘 왜 그곳에 있어요? -내 사랑이 저기 있거든. -그럼 아저씨는 왜 떠날려 해요? -그녀가 그걸 원하니까. -이상해요. -나도 알아.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난 기다렸다. 그가 내게 돌아오기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오래오래 백년이 지나고 몇백년이 지나서야 돌아오기를. 그리고 그 기다림의 어느날, 나는 붉은 장미 꽃다발을 쥔 흐릿한 미소의 사내에 일어나 뛰쳐나갔다. 이 감정을 사랑이라 정의한 그것에 마치 하나의 연출처럼 손을 얹고선 말이다. 그래, 줄곧 가엽게 뛰다가 이내 고요히, 그러나 호젓하게 두근대는 심장을 말이다.

#170 이름없음 2021/10/14 14:44:18

마침 타이밍 좋게 총소리가 들렸다.

#171 이름없음 2021/10/14 15:49:22

시계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우리의 최후를 고하는 듯 했다.

#172 이름없음 2021/10/15 01:42:44

마침 타이밍 좋게 총소리가 들렸다. 지금이다. 거사가 시작된 것이다. 아아,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광복을 쟁취하는 이날을. 나는 주머니에서 폭탄을 꺼내 오른쪽에 쥐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섣부른 기대는 언제나 독이 될뿐. 한걸음. 두걸음. 그리고, 세걸음. . . . 눈 앞에 보인건 순사를 제압한 동료가 아니었다. 한발의 총성은, 동료의 것이 아닌 순사의 것. 나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배에 박힌 총알은 뜨겁게 내 몸을 불태웠다. 희미해지는 의식을 차려보려 애쓰며 손에 든 폭탄을 그 거대하고 잔인한 석조건물에 던졌다. . . 아, 불발이다. 들려야할 폭탄소리는 어디에, 댕, 하는 둔탁한 소리만 나의 귓가를 장식했다. 시계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우리의 최후를 고하는 듯 했다. 타이밍이라는 단어가 좀 안어울리긴 하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걍 써봤어

#173 이름없음 2021/10/15 01:51:19

오늘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174 이름없음 2021/10/15 21:48:34

까마귀의 울음 소리는 영원히 들리지 않았다.

#175 이름없음 2021/10/18 03:23:09

오늘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죽기로 결심한 순간 영혼을 잃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꼭두각시 마냥 의미없는 나날을 보낼 뿐이었던 지난 날의 기록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그 먼 과거에 있었던 자취를 추억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삼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내 인생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처음으로 간 곳은 학교였다. 지금은 아무도 없는 이곳,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노래 소리만이 적막을 깨부순다.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우리들이 함께했던 교실들에서 떨어뜨린 기억 한 조각을 주워. 행복, 기쁨 그외의 양지의 기억들을 음미한다. 두 번째로 간 곳은 바다. 항상 가고 싶었던 장소이면서 결국 가지 못했던 장소. 네가 없는 이 곳에서 너와 함께 수면 위를 잔류한다. '바다 가고 싶었는데 너와 가게돼서 참 기뻐 정말 기대된다. 너도 그렇지?' 들리지 않는 과거의 말을 들으며 모래를 밟는다. 마지막으로 넓은 들판. 언제나 힘들 때면 너와 함께 여기에 서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지금은 혼자이지만 홀로 이곳에 서, 내면의 감정을 분출한다. 까마귀 울음 소리, 한 발의 총성. 까마귀의 울음 소리는 영원히 들리지 않았다. 으악 소재 너무 예쁜데 필력이 딸려!!

#176 이름없음 2021/10/18 20:45:31

손이 뜨겁고, 축축하다.

#177 이름없음 2021/10/19 12:34:02

그는 눈을 감았다

#178 이름없음 2021/10/25 03:09:56

손이 뜨겁고, 축축하다. 붉은 무언 것. 그래, 피. 피가 내 손 위에서 무언가의 것을 흘리고 있었다. 어? 피가 무엇을 흘릴 수가 있나? 이상하다. 무엇이? 피가? 아니, 그것은 분명한 피였다. 그렇다면 그게 왜 내 손 위에 있는 거지. 고개를 이제는 올려야- 왜? 싫어. 나는 무엇을 숨기나. 그것을 파헤치겠다는 건 곧 나를.. 내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 나는 뭘까. 그래, 저것은 사람이다. 사람. 내가 끝엎이 사랑하고 -저주하고- 행복한, 그래. 그 사람. 그런데 어째서 붉은 것을 흘릴까. 마치 내 손에 쥐어진.. 어? 나를 봤다. 보고 있었다. 계속. 시체가. 말린 생선의 눈이 날 보듯이, 건조한 눈이 날.. 징그럽다. 이걸 사랑한다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게 아니야! 그래, 그를 만들자. 내가 사랑하는 그를. 곱게 씻겨 비단옷 입히고 날벌레가 꼬이지 않게 방부제를 뿌리고 고운 신 신겨 침대 위에 놓이면.. 아, 맞다! 긴 속눈썹을 잡아 당겨 내려야지. 그가 잘 수 있도록. 그는 눈을 감았다.

#179 이름없음 2021/10/25 03:58:25

아... 나 진짜 미쳤나?

#180 이름없음 2021/10/25 07:29:23

내가 미쳤지...

#181 이름없음 2021/10/28 09:52:56

아...나 진짜 미쳤나? 과 후배랑 원나잇을 하다니. 어제 그렇게 술을 처먹어서는 안됐다. (-)는 현관문에서부터 이어진 옷가지들에 한숨을 내뱉더니, 주섬주섬 옷을 주워입었다. 태평한 얼굴로 잠들어있는 애를 보니 앞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지 걱정이 앞섰다. 심지어 둘 다 학생회라 연락을 주고 받을 일이 더 많아서 총체적 난국이었다. (-)는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대화를 나눠봐야할 거 같아서 후배가 깨어나기 전에 숙취해소제를 사오기로 했다. 여사친 문제로 헤어졌던 전남친이 예상했던대로 그 여사친과 붙어있는 것을 본 심정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나쁜새끼, 차라리 마음이 떠났다고 하던가. 부득불 얘는 내 친구일 뿐이라고 우기더니 결국 붙어먹는 꼴이란. 술을 진탕 퍼마신 것은 당연한 순서였으나 술김에 후배를 부른 게 문제였다. 친하지도 않은 애를 왜 부른 건지는 둘째치고 어쩌다 끝까지 간 건지. 술을 다시 먹으면 내가 개라면서 친구한테 다짐했던 게 불과 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고를 친 것도 재주였다. 모텔에 다시 들어서자 후배가 깨어있었다. "선배 도망친 거 아니었어요?" "나 그렇게 책임감없는 사람 아니거든." "난 선배가 어젯밤에 하도 울어서 부끄러운가보다 했지." 맞다. 얘 나 좋아하지. 여지주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그걸 내가 하고 있었네. 내가 미쳤지...

#182 이름없음 2021/10/28 10:00:00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이다.

#183 이름없음 2021/10/28 14:48:43

결국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약속하자.

#184 이름없음 2021/10/28 15:56:51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이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달리며 생각했다. 숨은 이미 턱 끝까지 차올라 주변의 나무가, 건물이, 하늘의 구름이 핑그르르 돌았다. 한여름의 공기는 뜨겁고 집요하게 끈적거려서, 그저 숨을 쉬는 것으로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공원을 지나고 학교 정문 앞을 지나쳐 서서히 발걸음을 멈췄다. 낡은 4층 건물의 옥상 바닥은 자신의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체념한 듯 태양빛을 그대로 받아 뜨거웠다. 난간으로 한 발자국 나아갈 때마다, 거친 숨이 그나마 안정되어갔다. 마침내 다다른 뜨거운 철제 난간에 기대어 고개를 치켜들었다. 눈이 부셔 태양을 잡을 듯 손으로 빛을 가렸다.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렀고 바뀐 것은 다만 이 세상이다. 도시 구석구석 자라난, 다듬어지지 못한 식물들. 한 때 인간이었을 괴물들. 뒤집힌 일상 속에서 너와 속삭이던 밤은 아직도 생생하다. 곧 꺼질 듯 위태로운 숨을 내뱉으며 반짝이는 눈은 나를 올곧게 바라보고 있었고, 애써 웃던 입을 열어 말했던 건 너의 유언이자 지켜지지 못한 약속. -결국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약속하자.

#185 이름없음 2021/10/28 17:37:57

우연이 계속되면 인연이라던데, 필연은 인연이 될 수 없었나 보다

#186 이름없음 2021/10/29 21:28:39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187 이름없음 2021/11/11 23:06:35

우연이 계속되면 인연이라던데, 필연은 인연이 될 수 없었나 보다. 너는 겨울을 사랑했고, 나는 여름을 사랑했다. 너는 아이스커피를 달고 살았고, 나는 커피를 쉬이 삼키지 않았다. 너는 침대 속에서 늘 메마른 울음을 삼켜냈고, 나는 입술만 잘근잘근 깨무는데 온 신경을 바쳤다. 너는 혀끝에서 맴도늘 말들에 쉽게 사랑을 말했고, 나는 말로서 사랑을 전하는 것에 있어 쉽게 의문을 가졌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달라, 찰나의 눈맞춤에도 서로를 다 알리라 믿었고, 그럼에도 속삭이는 악마의 그림자를 모른채했다. 그러니 이 모든 빌어먹을 상황들은 절대로, 절대로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188 이름없음 2021/11/12 02:12:27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다

#189 이름없음 2021/11/12 03:44:08

또 다른 시작이다

#190 이름없음 2021/11/12 18:37:05

엔딩 크래딧이 올라간다 꽤 기대했던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허무한 결말. 남자주인공이 한때 사랑했던 여자의 새로운 시작을 지켜보고 결국 행복을 빌어주는 내용. 맘에 들지 않는다. 대체 왜? 사랑했던 사람의 행복을 빌어준단 이야긴 다 가식이잖아. 누구보다 힘들길 바라고 힘듦을 핑계삼아 돌아오길 바라는게 보편적인 심리 아닌가? 짐을 챙겨 계단을 내려가고 출구에서 잠시 멈춰 제작사 출연진.. 등등이 나열되는 대형스크린을 멍하니 쳐다본다. 말도 안되는 영화, 이상한 결말. 이해할수 없는 신파다. " 기분 참 더럽군 "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진 말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이 가끔 목구멍에 걸림 없이 툭 튀어나오는 그런. " 저기요, 그렇게까지 말할건 없잖아요? " 뭐야 이 여자는, 나한테 하는 말인가? " 뭡니까, " " 아니, 좀 생긴것 같아서 번호좀 달라 물어본게 그렇게 기분 나쁠 일이에요? " 무슨 말이지 대체, 그녀의 손에 들린건 본인의 휴대폰과 다이얼 화면. 아-나 번호 따인거구나. 짜증스러운 기분에 먹혀 주위를 둘러 볼 겨를이 없었다. " 죄송합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불만이었어요. " 가볍게 고개숙여 사과하곤 백팩을 어깨쪽으로 고쳐매고 끙 하는 짧은 신음을 내뱉고 영화관 출구로 도망치듯 벗어나려 했다. " 저기요 " " ? " " 사과는 됐고요, 저도 기분 상했으니까 부탁 들어줘요. " " 무슨.. 부탁이요? " 잘못 걸렸다, 단단히 잘못 걸렸다. 뭘 요구할만한 잘못은 아니지 않나? " 저랑 커피 한잔해요. 요 앞 스타벅스에서요. " " 돈 없습니다. " " 제가 살게요. " " 카페인 안 먹습니다. " " 스무디라도 드세요 그럼. " " 굳이요? " " 네 굳이요. " 곤란하다, 이 여자 굉장히 저돌적이다. " 거절하겠습니다. " 짧게 던지곤 도망치듯 뛰어나왔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바닥에 널브러져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며 한동안 찝찝함에 사로잡혀 가만히, 시체처럼 아무것도 하지않고 누워있었다. 만약 제작년이었다면 아까의 그 여자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천장에는 서툴게 붙인 조잡한 야광스티커가 가득했다. 떼어내야지- 미련도 추억도 묵혀두면 마음속에 남아 썩기 마련이니까. ' 띠링-띠띠띠띠 ' 현관문 비밀번호 소리다. 아마 지영이겠지, "있었네..?" 그녀의 목소리에 당황이 묻어나온다. 이래서 평소에 보지도 않는 영화를 보러 간 건데, 대체 뭘 하다 이제 온 걸까. 어두운 방 덩그러니 켜진 현관 센서등 그 너머엔 지영이와 그 남자가 서 있었다. "하.. 뭐 하러 왔냐, 그 사람까지 달고." "..." 떼던 형광스티커를 쓰레기통에 욱여넣고 미리 정리한 캐리어를 그녀 손에 들려준다. " 다 정리했어 짐은, 앞으론 마주치지 말자. " " 응.. 그럴일 없을거야. " 이번에 들린 그녀에 목소리엔 당황함 대신 미안함이 묻어나왔지만, 죄책감이라기보단 그냥 자신의 마음 속 불편함을 덜기위한 위선이겠지. 뒤에 우두커니 선 남자는 시종일관 내 시선을 피한다, 그때 그 카페에서도. 모텔 앞에서도. 그리고 지금도. 이 남자는 단 한번도 자신의 사랑을 위해 나선 적이 없는것이다. 차라리 그녀를 변호하거나 날 원망하는 남자였다면 덜 비참할까. 수동적인 그 모습에 역겨움이 치밀어 올라 그녀를 현관에서 밀어내고 문을 닫아버린다.사실 난 지영이를 축복해주고 싶어서 그 영화를 봤던게 아닐까,영화 속에서의 어떤 서사든 모방해서라도 지영이를 축복하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실망이었겠지, 영화에서처럼 멋들어진 남자는 없으니까. 누가봐도 남주인공보다 멋진 그 남자와 여주인공의 사랑을 축복하는건 쉬우니까.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야겠다. 이 역겨운 감정이 덜어질때까지 걸어야겠.. 없다. 목도리가 " 아까 영화관.." 아, 두고 왔나보다. 젠장. 히터때문에 벗어둔것도 잊고 있었다. 옷가지를 대충 걸치고 영화관쪽으로 뛰었다. 나온지 얼마되지 않아 그 자리에 있을거라고, 그런 생각으로 뛰었다. " 네? 아 목도리요? 잠시만요- " 찾아야 한다. 고작 목도리라고 하기엔 나에게 꽤 많은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마지막 미련이라 생각한것인데, 지금 그것까지 잃을순 없다. " 아..죄송합니다 목도리 분실물은 들어온게 없네요 오늘. " 허탕이다, 뭐- 잘된 일인가. 이제 미련 둘 물건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으로 돌아가던 도중, 영화관 앞 스타벅스에 아까 그 여자가 보인다. 앞자리엔...에? 저거 내 목도리잖아. 황급히 뛰어가서 앞자리에 놓인 목도리를 채 들곤 말한다. " 뭐에요 이거. " " 음 아, 아까 떨어뜨리고 가시던데. " " 돌려줬어야죠 그럼 " " 불러도 쌩하니 도망가더니만 " " 하.. 그럼 분실물로 맡기고 가셨어도.. " " 음, 제가 왜요? " 어이없는 말이었다. " 예? " " 이거 갖고 있음 그쪽 또 볼지도 모르는 일이었잖아요. 생각보다 일찍이긴 하지만 정말 또 봤고요. " " ..? " 뭐하자는걸까. " 저 아십니까? " " 아뇨? " 한마디 따지고 들려던 찰나 알바생의 저기요- 가 우리의 대화를 깨고 들어왔다. " 저희 1인 1잔이라.. " " 아 이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 " 요거트 스무디 한 잔이요. " 그녀의 갑작스런 주문에 황당함이 앞서 아니라는 부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을수밖에 없었다. " 지금 뭐하자는.. " " 일단 시켰으니 앉아요. " " 제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그러시는겁니까? " " 풉 " 뭐지 이여자 진짜? " 그정도로 잘생기진 않았어요 그쪽, 사실 엄밀히 따지면 제 취향도 아니고. " " ? 그럼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거에요. " " 사실 봤거든요. 여자친구, 아니 전여자친구가 바람피는 모습을 보는 그쪽 모습이요. " " .. " 아, 뭔가 치부를 들킨것 같다. 내가 핀 바람도 아닌데 내가 바람 핀 것보다 더 부끄러워지는 그런 기분. " 그래서요. 하고싶은 말이 뭡니까. " " 부러웠거든요 그냥, " " 네? " " 바람핀걸 두 눈으로 봤지만 화도 내지 않고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는 모습. 그리고 아직 사랑하는 그 마음, 그 사랑의 방향이 나라면 행복하겠다.. 하는 생각이요. " " 지금은 누굴 다시 사랑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가가는것 조차도 부담이에요 이젠. " " 당장을 말하는건 아녜요. " " - " " 영화 주인공이 되고싶었던거죠? " " 네 뭐 그랬던것 같네요. " " 덤덤한 척 했지만 사실 자기보다 못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친구를 보고 비참했을거고요. "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니까. " 잘난 사람과 사랑에빠진 여주인공을 축복하는 멋진 남주인공이 이해가 가지 않아 화났고요 그쵸? " " 이런 대화에 영양가가 있습니까? " " 엔딩 크레딧 끝나고, 쿠키영상이 나오더라고요. " " 네? " " 다 안 보고 가셔서, 말씀해 드려요? " "뭐.. 네." "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축복하고 돌아가는길에 본편에서 보이지 않은 서러운 눈물을 보여요. 비를 맞으며 우는 남주인공에게 다가오는 여자가 있고요. 남주인공은 여자를 밀어내지만 그 여자는 어떤 이유에선지 무턱대고 남주인공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려 하고, 결국은 본편 내내 보였던 웃음을 되찾아요." " 그렇군요. " " 저도 그쪽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 " 장담은 못하지만, 가능성은 있겠죠 " " 높은? " " 아직은 낮은. " " 아 맞다 쿠키 영상 마지막 나레이션이 뭐였는지 알아요? " " 아뇨, 하지만 알것 같네요. " 그래, 또 다른 시작이다.

#191 이름없음 2021/11/12 18:47:18

사랑보다 진한 고백을 해 줘요

#192 이름없음 2021/11/12 23:03:12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193 이름없음 2022/04/04 01:36:02

ㄱㅅ

#194 이름없음 2022/04/04 02:10:16

사랑보다 진한 고백을 해줘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했을까. 싫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음에 기뻤고 감사했고 동시에 안도했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그 몸을 껴안고, 당장이라도 키스를 하며, 나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마 그녀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사랑한 사람, 당신에게 잔인하지만 내 마음을 외면하면서까지 내뱉은 그 말. 당신의 말은 또 다른 고백이었기에 나는 그런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한 그 말이 당신에게 상처를 줘서 하루 빨리 잊어버리기를 바랐다. 내가 사랑한 아니, 사랑하는 당신이 상처받기를 원치 않기에. 만약 다음 생이라는 게 있다면 다음 생에는 우리 다른 성별로 만나요. 그러니까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195 이름없음 2022/04/09 20:37:35

빗물이 덩어리와 함께 빨갛게 흩어진다.

#196 이름없음 2022/04/09 20:45:07

빗속에서 너는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197 이름없음 2022/04/10 13:25:39

빗물이 덩어리와 함께 빨갛게 흩어진다. 이 붉음은 나의 것일까, 아니면 당신의 것일까 안된다. 너는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상의 따뜻함을 주고 왜 떠나가려 하는가. 사랑하였소, 나의 님아. 당신에게 바친 내 모든 사랑은 내 인생 마지막 사랑이 되어버렸네요. 죽지 마라. 살아라. 나는 아직 네 사랑에 보답조차 해주지 못했다. 이제야 그 감정을 알아버렸다. 너무나도 길고 고통스러운 짝사랑의 끝은 당신에 대한 헌신이라는 사실이 우스우면서도 즐겁습니다.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너의 눈빛은 나를 향한 그 따뜻한 애정이 담겨있다 이번 생에는 당신의 곁에 있지 못했지만 다음 생에는 당신의 곁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너의 눈꺼풀이 무겁게 닫힌다 너의 손가락이 툭, 떨어진다. 빗속에서 너는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198 이름없음 2022/04/10 16:48:51

좋아해요.

#199 이름없음 2022/04/10 17:09:54

그리고 너는 떠났다

#200 이름없음 2022/04/11 01:53:12

좋아해요. 내 생애 그렇게나 힘겨운 고백은 처음이었다.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생각만으로 심장은 사정없이 두근거렸고 설렘이 느껴졌다. 마침내 당도한 그 날, 나는 당신에 앞을 가로막고 내뱉었다. 내가 당신을 연모하고 있노라고. 저 짧은 말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에도 목소리는 겨울이 온 것 마냥 덜덜 떨려왔고,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우며 눈을 깜빡이고, 당신이 눈썹을 움직이고, 내가 침을 삼키려 목울대를 움직이는 것까지 생생히 느껴졌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조차 생생히 기억나지 않았다. 온통 주변이 멍했다. 세상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당신만 제외하고서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나, 혹은 찰나였나. 영겁과도 같은 잠깐의 정적 끝에, 당신은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은 크게 뜨였고 두 눈은 사정없이 떨려왔다. ...허, 한숨인지 모를 것을 툭 내뱉은 너는. ...네가 나한테. ...좋아한다고. 어? 응, 응! 그, 좋아해. 정말, 진심이야. 처음부터...!! 왜? 어떻게? 감히? 네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어. 어떻게 나를 보고.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는 너는 기어코 내게 역정을 냈다. 그런 짓을 해놓고 뻔뻔하게 말을 할 수 있냐며, 차분하고 고요한 호수같던 너는 그렇게 동요하며 화를 표출했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쏟아내던 너는 울었다. 강렬한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분노의 눈물을 떨어뜨렸다. 닦으면 제 감정이 희석된다고 믿는 냥 닦지도 않고서 그저 표독스럽게 나를 노려봤다. 아, 저 눈이 오롯이 나를 향한 것은 얼마만이지? 나는 환하게 웃으며 너에게 다가갔다. 하나 둘 뒷걸음치던 당신은. 너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돌아 달렸다. 그리고 너는 떠났다.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201 이름없음 2022/04/11 07:16:14

가장 가까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멀기만 했던 너에게, 내 모든 의문들을 담아 이 편지를 보냅니다.

#202 이름없음 2022/04/11 07:51:14

부디 평안하십시오.

#203 이름없음 2022/04/11 13:59:53

.

#204 이름없음 2022/04/11 18:21:23

자, 10년 후에 다시 와서 꺼내보는 거야! 잊으면 안 된다?

#205 이름없음 2022/04/11 18:51:44

너는 우리의 찬란했던 순간의 흔적이었고, 그랬기에 이 작은 상자에는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차있어 차마 태우지도, 가지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206 이름없음 2022/05/08 01:27:02

ㄱㅅ

#207 라고 하자 2022/05/15 02:49:03

자, 10년 후에 다시 와서 꺼내보는 거야! 잊으면 안 된다? 그 약속을 지키러 나는 왔다. 이제는 문닫은 폐교의 운동장 한 구석탱이를 파다보면 얼핏 모습을 드러내는 감색 상자. 넌 파랑이 좋다, 난 빨강이 좋다 해서 투닥대던 어린날의 우리가 담긴 곳.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너와 내가 함께하는 곳. 상자는 바랬고 처연했다. 자물쇠에는 축축한 흙이 달라붙어 약간은 녹이 쓸어 있었고 청록색 자물쇠는 페인트칠이 벗겨져 듬성듬성 은색이 보였다. 비밀번호는... 네 생일과 내 생일. 둘 다 한자리수라면 신기해하던 1327이다. 자물쇠를 돌리자 들어간 모래가 뭉툭한 느낌을 낸다. 어쩐지 기름칠을 해줘야만 할 것 같은 성능에 무표정하게 마지막 숫자를 내던 난 7을 맞추고도 열리지 않는 자물쇠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아닌가...? 그럴리가. 그후로도 몇 번을 더 시도해봤지만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다. 36도 아니고 92도 아니었다. 혹시나 했던 15도 역시나. 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나만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된거니, 바보야. 언젠가 다시올 널 위해 메모를 해두마. 근처 문방구로 가야지. 분명 네임펜이 있을 거다. 700원짜리 두꺼운 촉만 있는 네임펜을 사서 상자에 두텁게 써놓았다.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게. 나의 비번은 우리들의 생일, 1327. 거기에 네 비번을 더하면 이 상자는 열리겠지. 선생님께 둘 다 모르게 더한 값을 자물쇠로 맞춰달라는 엉터리 요구를 난 왜 까먹었을까. 그때의 웃음을 나도 잊은걸까. 이건 여기에 둘게. 상자를 여는건 네가 될거야. ...사실, 자물쇠를 따는 것쯤이야 쉬운 일이었다. 이 가는 쇳덩이를 잘라내는 것은 일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상자를 남겨둔 것은, 너는 우리의 찬란했던 순간의 흔적이었고, 그랬기에 이 작은 상자에는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차있어 차마 태우지도, 가지지도 못할 것만 같았다.

#208 이름없음 2022/05/15 22:14:40

너희들은 개미처럼 걸어갔다.

#209 이름없음 2022/05/16 16:48:00

너희들은 그렇게 짓이겨졌다.

#210 이름없음 2023/04/16 06:42:12

너희들은 개미처럼 걸어갔다. 이곳에 들어온지 꼬박 일주일째, 이제는 별 반응도 없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처음에는 넷이었지만 하나는 두려움에 못이겨 내 안내도 없이 뛰쳐나가는 바람에 더이상 이곳에서 볼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세 명의 인간만이 이곳을 걷고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다시 같은 길로 돌아오는 것에 한번은 나를 들고 있던 인간이 크게 화를 내며 나를 내던지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이정도 충격으로 꺼지지 않게 설계되어 있어 길 안내가 끊길 일은 없었다. 애초에 길 안내역을 맡다보면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망가졌다면 지금 여기서 이들을 이끌어주고 있진 못했겠지. 하지만 불쾌한 것은 어쩔 수 없어 다소 험한 길 쪽으로 길을 살짝 틀었다. 처음에는 새로운 길목이 나왔다 환호하던 그들은 이내 두려움에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치려했다. 아, 그 방향은 지금 위험한데.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빛의 세기를 줄이니 그들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처음 가던 방향으로 다시 움직이면 세기를 키우고, 뒷걸음질치던 방향으로 움직이면 세기를 줄이니 그들도 그곳이 위험함을 깨달은 듯 했다. 그렇게 내가 안내하는 대로 움직이는 개미 인간들이 탄생한 것이다.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이번에야말로 바깥 나들이를 나가볼 수 있는걸까. 선배 길잡이로부터 들었던 인간 세상이 보고싶었다. 푸른 하늘과 거기에 떠다니는 보드라운 구름, 파릇하게 살아있는 초목과 만찬이 초라해보일 정도의 인간 떼. 하나같이 신기하고 보고싶은 것들 뿐이었다. 그러니 어서 이 인간들을 안내해야지. 이곳의 주민들은 멍청하긴 해도 게으른 것은 아니라 틈을 찾기가 어려워 그나마 파악한 빈틈 속에서 일주일째 맴돌고 있지만, 금방 틈을 찾을 수 있을 거다. 초롱불 선배는 길을 안내하는데 1년이 걸렸댔다. 나도 그쯤 걸리지 않을까? 1년이면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이니 아무리 인간들이 시간에 약하다해도 버틸 순 있을 것이다. 아, 다른 선배들이 안내에 실패했을 때 시간이 얼마쯤 지났었는지도 들어볼 걸 그랬어. 한달쯤 지났을까, 인간들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졌다. 유독 약한 인간들이었던 모양이다. 빨리 안내하지 않으면 돌발 행동으로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는데. 위험하지만 그래도 한번 입구를 뚫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종종 해오던 대로 입구 쪽의 길을 안내하니 주민들의 소리가 들려도 인간들은 묵묵히 걸었다. 운좋게도 주민들의 발걸음이 우리를 피해간다. 이대로면 수월하게 나갈 수 있겠는데? 종종 음식을 가지러 가는 방을 지나자 입구가 성큼 가까워진 것이 느껴진다. 아, 드디어 나도 신입 딱지 떼보겠구나. 기쁨에 겨워 화사한 빛으로 길을 비췄다. 그곳에는 수십의 인간들이 어리둥절한 낯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 이런. 하필 오늘이 만찬 날이라니. 있지도 않은 혀를 차며 인간들을 다른 길로 보내려는 차, 이번 만찬의 주최자일 존재가 붉은 등을 들고 우리를 비췄다. 허공에서 내리쬐는 붉은 불빛에 인간들이 고개를 드는 것이 그들에 대한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너희들은 그렇게 짓이겨졌다.

#211 이름없음 2023/04/16 10:53:32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212 이름없음 2023/04/16 15:18:18

나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야,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