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흩뿌려진 누군가의 조각이 그 먼 곳에서도 살아 있다고 안부 전하며, 아직 지구별 여행을 끝마치지 않았을 너에게. 덧붙임, 몇 자라도 적고 싶을 때 적고 감. 편지 받았으면 답신해 줘.
닻별에서 발신할게
타인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를 혈연보다 애틋히 여기며 결코 보답 받지 못할 감정에 시간을 쏟는 거지. 뭐든 과도하면 해롭다고 하더니 딱 사랑이 그 모양이더라. 덜 익은 건 물렁하고 다 익은 건 딱딱해. 결국 어쩔 도리 없이 완성하고 나서야 후회하게 되는 거야. 좀 더 깊은 맛을 넣어 볼 걸, 좀 더 예쁜 모양을 잡아 볼 걸, 하고. 대상이라는 준비물이 없어 굽지 못한 반죽에서는 꼭 널 닮은 풋사과 향이 풍겨. 어쩌면 나에게서 나는 향일지도 모르겠다. 철 지난 낭만이 아직도 내 안에 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가 좋아하는 걸 나도 좋아하게 되어서 기뻐. 의미를 두지 않던 계절에 네가 들어오고야 겨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거야. 맹목적인 애정 뒤에는 궁금증이 따라붙으나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좋겠지. 고백하자면 나는 네가 좋아. 이 계절에 도취된 내가, 그 향에 의미를 두게 된 내가. 입에서 굴려보고야 깨달은 진실이 어느 정도인지 나도 가늠이 되질 않네. 어영부영 함께 보낸 추억은 언제부터 이름을 명명했을까? 중략하자면 사랑을 봄에만 하라는 법은 없더라. 그러니까, 겨울이야. 일 년 전 겨울에 뭉쳐 둔 반죽은 여전히 내 일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 덧붙임, 이젠 굳어서 움직이지도 않더라. 아무래도 이걸로 완성인 모양이지?
내게 있어 찬란한 것이 너에게는 영감조차 줄 수 없다는 사실. 한때 저 너머와 날 잇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 인생은 싸구려 단막극 같은 모양이라 불이 켜지면 비로소 진짜가 시작되는 거지. 수억 명의 배우들 중에서도 주인공이 있을 것이고, 그게 내가 아니라는 명확한 근거조차 없던 시절. 여기서 바라본 이들은 모두 같은 눈을 하고 있어. 보답 받지 못할 노동을 이어가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저항하듯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들. 그 어떤 별보다 나약하며 미미한 빛으로 우주를 덮으려 하는 어리석음이지. 해서 그걸 비판하는 것이 목적이냐 물으면 아마도 아니지 않을까. 씨앗은 꿈을 꿔. 다만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씨앗은 움트지 못할 확률이 크다 이거지. 비종교인이냐 무교냐 물으면 첫 마디는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ㅡ왜 그런 걸 물어요?ㅡ 단순한 의문점이야. 신을 믿지 않는 것과 신이 필요 없다는 것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거든. 내게 묻는다면 신은 이름을 폐기한 지 오래라고 답할 것 같아. 머리를 조아리고 기도를 외치는 성음 속 신에 관한 내용은 없으니까. 정작 들어주는 쪽은 신인데도 말이야. 나를 이루는 것은 이토록 허황되고 기이한 물음들이야. 척 봐도 주인공의 자리에는 맞지 않지. 그러니 그 자리는 네가 꿰차도록 하자. 짭 주인공 대신 진짜가 나선다면 나도 미련 없이 이 별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추가, 전보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