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不語怪力亂神(자불어괴력난신)

괴담 2022/03/03 18:41:26

#1 이름없음 2022/03/03 18:41:26

안녕 나는 향교 다니는 유림이야. 다른말로 하면 유교인이지. 전통적인 성리학보다는 스토아와 칸트를 중심으로 현대의 정보량에 힘입어 재해석되어가고 있는 실천 유학을 따르긴 한데 스레를 어디다 세울지 고민하다가 여기로 가라는 조언을 듣고(왜 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제는 여기가 어울린다네...?) 세워봤음. 아무거나 물어봐 ㅇㅇ

#5 이름없음 2022/03/03 20:58:24

>>2 자(子) : 군자는 불(不) : 않는다 어(語) : 말하지 괴(怪) : 괴이한 일 력(力) : 초인적인 힘 난(亂) : 어지러운 일 신(神) : 신비로운 일 子不語怪力亂神(자불어괴력난신) : 군자는 괴이한일, 초인적인 힘, 어지러운 일, 신비로운 일 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논어의 에 나오는 대표적인 말로 군자는 귀신이나 요괴 같은 거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무신론... 이라고 오해할수도 있지만 오히려 현세적/대중적 불가지론에 가까운 무관심주의적인 유교의 스탠스를 들어내주는 말로 "그런 것들은 잘 몰라. 거기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으니 논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거임. 왜 이게 제목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반 어그로 성으로 달아놓은 제목이긴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함. 여기에 뭔가 귀신이나 사후세계 그런것에 관심있는 애들이 많아서 유교에 대한 오해들.. 예를 들어, '제사를 지내는 건 귀신을 실제로 믿기 때문이 아닌가요??'

#6 이름없음 2022/03/03 20:58:57

즉 그런쪽에 관심없는 k-유교 스레주가 그런쪽에 관심있는 레스주들에게 하는 괴력난신 이야기라는거지 세상에 젤나가 맙소사 이 무슨 아이러니 뿌슝빠슝

#7 이름없음 2022/03/03 21:01:15

>>2 향교(鄕校) : 고려·조선시대 유교교육을 위해 지방에 설립한 관학교육기관으로 현대에 유교가 죽었다라고 하는 이 시대에도 살아있는 유교 교육기관이지. 그냥 성당 or 교회 ver.유교 라고 생각하면 됨. (단지 심하게 고령화가 되었다는 것은 함정) 아이러니 하게 난 젊음 ㅇㅇ

#8 이름없음 2022/03/03 21:09:20

>>2 유림(儒林) : 유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 이라고 하지만 보통 향교를 다니는 사람들을 말함. 스토아 : 스토아 학파. 이성에 따르는 삶인 동시에 자연에 따르는 삶 인 자연법을 따르는 삶이 하늘이 인간에게 바라는 올바른 생각, 올바른 태도 즉 보편정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쪽 '의'와 유사. 넓게는 극기복례와 비슷하고 칸트 : 칸트. 칸트의 정언명령이 하늘이 직접 명령하는게 아니라 패시브로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쪽 천명사상과 상당히 유사 실천유학은 말그대로임.

#9 이름없음 2022/03/03 21:11:40
>>3 향교에선 경전 읽고 생각 나누고 토론함. 본질적인 목적은 "인"과 "예"와 같은 윤리적 덕목을 가지고 자아를 닦는거고

>>3 향교에선 경전 읽고 생각 나누고 토론함. 본질적인 목적은 "인"과 "예"와 같은 윤리적 덕목을 가지고 자아를 닦는거고

#10 이름없음 2022/03/03 21:12:07

>>4 ㅎㅇ

#12 이름없음 2022/03/03 21:53:11

Q : 유교는 왜 제사를 지내고 조상신을 모시는 등 행위를 할까? A : 子不語怪力亂神(자불어괴력난신)에서 말했듯이 귀신이나 조상신에 대한 유교의 공식적 입장 FM은 "I don't know" 유교는 초자연적인 것들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사실 그걸 떠나 관심자체가 없는 불가지론에 가까운 무관심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 가끔 子不語怪力亂神(자불어괴력난신)을 무신론적인 늬앙스로 귀신 뚝배기 깨고 다니는 선비 캐릭터를 모 만화에서 본적이 있는데... 그거 아님 ㅇㅇ 공자라고 해서 무신론자는 분명 아니었음. 상주 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 조상신에 대한 신앙 등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걸 죄다 부정하지는 않았다는 거임 일단 이건 부정할 수 없는데, 상고시대에는 '하늘'을 어떠한 신격체로 모신 듯한 흔적은 팩트임. 반고니 여와니 하는 신화에서 볼 수 있듯 어떤 종교에서의 '신' 같은 비슷한 개념들이 초기에는 분명 존재했지. 그런데 춘추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천명사상'이 발전하면서 점점 '하늘'은 어떤 인격신처럼 그 신적인 권위나 의지를 발휘하는 신성의 존재이기보다, 세상의 섭리, 이치를 상징하는 인문주의적인 존재가 되었지 그래서 유교에서는 '인'과 '예'에서 출발한 공자의 사상에다 점점 '하늘이 인간에게 바라는 올바른 생각, 올바른 자세'='보편정의'가 존재한다고 여기기 시작했지. 다른말로 하면 천명이지. 즉, 지상에서 인간이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늘이 인간에게 명령(정언명령적인 늬앙스)하는 천명(운명이 이루어지는 운명이라고 하면 천명은 이루어내야 하는 운명) 을 따르는 것이며, 그 수단이 인과 예를 닦는게 극기복례이지. 그렇다고 하늘이 그 자체로 신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데... 유교의 하늘이라는 개념은 비유하자면 오늘날 현대사회의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많은 사람들이 숭상하고 그것을 따르며 실천한다고 하지만 민주주의 그 자체가 신성의 존재로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 것과 비슷해. '하늘'이라는 것은 숭배의 대상이기보다는 '인간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추상적인 정당화의 기재로서 숭상을 받은 거지. 그렇기에 유교에는 전문적인 제사장 층이 없어. 유교의 이상은 현세에서 모든 인간이 군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수양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렇기에 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자'야. 그런데 공자가 '인'의 모범으로서 사회에서 권장할만한 미덕으로 간주한게 가족간의 사랑이야.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해주는 그 가족적인 관계가 모범인 것이었고, 공자가 살던 그 당시의 문화에서 그 가족의 사랑은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을 굽어살펴주는 조상신이 된다는 믿음으로 이어졌지. 공자는 신의 존재 같은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당대의 가치기준에서 가족애를 중시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즉 제사를 지내고 그들을 기리는 그 마음은 인간으로서 극도로 중요한 예라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유교에서 제사는 예식으로서 중요한 거야. 조상신이 있냐? 없냐?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는거지. 유교에서 숭상하는 것은 부모를 아끼는 마음으로 인해 마땅히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고, 천명을 본받고 그 미덕을 흠숭하는 그 의지이며 그 마음이 중요하니까 말임.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거임. 유교적인 풍습을 따라서 성묘도 하고 차례도 지내고 제사도 올리는 사람들 중에서 삼황오제를 믿고, 진짜로 조상의 영혼이 와서 식사 자시고 계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유교인은 없음. 있다면 유교가 아니라 더 이상 유교가 아니라 도교나 무속임. 유교의 제사에서 어차피 그건 중요하지도 않음. 그 초자연적인 신을 섬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애써서 수고를 하더라도 예식을 정하고 그에 맞춰 꾸준히 하고자 하는 그 의지가 '예'를 실천하고자하는 마음으로서 '인'을 닦는 기본이 된다는 거임 귀신 논쟁 이런거는 유교가 오래 지속되고 교조화 되면서 할일 없어지니까 나온 문제들일뿐.. 정작 유교의 역사에서 중요하지도 않은 지엽적인 문제들이지, 실제로 학문적 의의를 가진 논쟁들이였다기 보다는 정치싸움의 일환인 게 더 크기도 했고. 그래서 사실 제사에 뭐 올리지 마라 이런것도 유교의 풍습은 아니야. 막말로 제사상에 치킨, 피자를 올리는 것도 가능하지. 만약 그게 애써서 수고를 하더라도 예식을 정하고 그에 맞춰 꾸준히 하고자 하는 그 의지가 '예'를 실천하고자하는 마음으로서 '인'을 닦는 기본이 된다고 한다면 OK. 즉, 그 사람을 기리는 예에 치킨이나 피자가 더 맞을 것 같다 -> 유교적 입장에서 O, 오히려 더 권장함 제사 귀찮은데 그냥 치킨 배달시키면 안됨? -> 유교적 입장에서 X 그래서 이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거긴 한데... 전통적인 방식의 제사보다 가정에서 행하는 제사를 대체하는 '무언가'가 그것이 더 '예'에 맞다고 생각해서 그걸로 제사를 대체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 대체방식을 더 권장하는 것이 유교의 FM임. 유교의 제사는 본질이 그 형식이 아니라 '천명을 드러내는 예'이며 그 '예'를 번통적인 방식의 제사보다 더 잘 드러내는 수단이 있으면 그걸 하는게 맞거든. 특정한 형식이 있다 라고 여겨지는 것? 제사의 폐해? 그것은 유교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활용되면서 얻은 백해무익한 악습..

#13 이름없음 2022/03/03 21:56:22

>>1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4 이름없음 2022/03/03 22:30:21

Q : 유교의 사후관? A : 뭐... 보통 종교라는 것은(정확히는 religion이라는 것은) 사후에 어떻게 되냐는 답을 어느정도 내리고 있다는게 특징이지. 대표적인 사후세계로 불교의 극락과 지옥, 기독교의 천국과 지옥, 연옥(연옥은 서방교회 중 천주교 한정이지만) 등. 근데 유교는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 대표적인 것이 공자가 말한 未知生 焉知死(미지생 언지사).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라는 구절이지. 공자에게 있어서 죽음 이후는 삶을 다 이루고 나서야 걱정할 물건이지 그 이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에는 사후관이 없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있다고 할수 있음. 사후관의 역할은 뭘까? 는 보통 민중의 교화 라는 역할을 가지고 있지. 즉, '나쁜 놈들이 잘되는 이 세상이 너무 억울해 미칠 거 같아!'라는 것에 대응하는 '교화기준'이 있다는 거야. 이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어느정도 교화 기준을 가져다 줘.(물론 불교는 좀 깊게 파면 해탈이 목적, 즉 윤회를 벗어나는게 목적이지만) 그리고 유교는 여기서 이런 사후관의 역할을 "역사비평서"가 대신하고 있어. 『맹자』 「등문공 하」,에 이런 말이 있지. “世衰道微, 邪說暴行有作, 臣弑其君者有之, 子弑其父者有之. 孔子懼, 作春秋. 春秋, 天子之事也. 是故孔子曰, ‘知我者其惟春秋乎! 罪我者其惟春秋乎!’”(세쇠도미, 사설폭행유작, 신시기군자유지, 자시기부자유지. 공자구, 작춘추. 춘추, 천자지사야. 시고공자왈, ‘지아자기유춘추호! 죄아자기유춘추호!’) “세상이 쇠퇴하고 도리가 미약해지자 그릇된 학설과 포악한 행위가 다시 일어나서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일이 일어났다. 공자는 이를 두려워하여 ‘춘추’를 지었다. ‘춘추’를 지어 기리거나 내치는 것은 천자가 하는 일이다. 이런 까닭에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춘추’를 통해서요, 나를 꾸짖는 것도 오직 ‘춘추’를 통해서 하리라!’라고 말했다.” 공자는 역사에 기록된 구체적 사례를 통해 후세 사람들이 옳고 그름의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춘추』를 짓게 되었다는 거야. 그 결과 맹자가 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공자께서 춘추를 완성하시자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였다)라고 평하였지. 유교 세계관에 있어서 춘추는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당신이 죽었음에도 당신의 역사는 사후에 남아 끊임없이 평가 받을 것이요" 라는 선언이라는 거야. 이런 유교의 세계관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은 단순한 사관이 아닌, 하나의 신관이 되며, 유교에서는 '역사의 신성성'을 지키기 위한 순교라는 개념도 성립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유교 국가에서 괜히 역사를 중요시 한게 아니지

#16 이름없음 2022/03/03 22:45:18

>>15 응 아니얌 ㅜㅜ

#19 이름없음 2022/03/04 23:50:18

Q : 유교는 점술을 긍정적으로 보는가? A : 많이들 오해하는 것들 중 하나이지만, 유교는 공식적인 FM대로 하면 점술 및 기복을 지양함. 항상 천명을 따르면서 사는 것이 유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며, 일반적인 기복이나 점술 등은 천명에서 어긋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지. 근데, 정확히는 점술이라는 '행위 자체'가 천명에서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건 아니야(예를 들어,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벌칙이나 차례를 정하는 단순한 제비뽑기도 어찌보면 그런 류잖아? 그런 '행위 자체'가 천명에서 어긋나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임). 일반적인 의미의 점술이 유교에서 지양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이기심'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야. '천명'에 우선하지 않고 '자신의 사적인 이기심'이 '천명'을 거르스는 형태로 보았거든. 그럼 역경.. 주역(요즘은 주역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거 같아서 주역이라고 부를게)이라고 부르는 경전은 뭘까? 흔히 주역이 점치는 책이라곤 하는데... 정확히는 점치는 용도로도 '쓸 수 있는' 책이야. 주역을 점치는 책으로 본 것은 주희의 단독 입장이긴 한데, 원래는 유교에서의 주역은 현실적인 사상과 그 이치를 담은 메뉴얼로 보는 정이의 입장을 따라. 논어 양화편만 봐도 공자가 자신의 말보다 하늘과 땅 실상 자체를 통해 제자들이 배워갈것을 주문하고 있지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자왈 여욕무언 자공왈 자여불언 즉소자하술언)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자왈 천하언재 사시행언 백물생언 천하언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후학들에게 무슨 말을 전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그래도 사계절이 막힘없이 운행되고 만물은 변함 없이 생장한다. 하늘은 아무말도 안하지 않느냐. 사시행언 백물생언 (사계절이 막힘없이 운행되고 만물은 변함 없이 생장하는)에서 발견하고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도덕적 지침을 발견하는것이 주역의 본 목적! 실제로 주역은 점술서보다는 삶의 실천적 지혜를 강조한 처세서에 가까웠지. 원래 주역은 점술서가 아니라 '사시행언 백물생언'를 보고 윤리를 추출하는 식의 특성상 점술서로도 쓸수 있는 처세서이었기 때문에, 실제로도 순수 100%의 주역으로 점을 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주역으로 점술을 본다? 장담컨데 순수 100% 주역이 아니라 주역의 일부를 따온 육효점이나 사주명리와 습합해서 보는 방식일걸? 애초에 주역의 본질은 점술서가 아니라 처세서 였으니까. 아, 주역에 대한 오해를 얘기 하는김에 마침 유교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 관해서 생각난게 하나 있어 적어보자면... 흔히 사람들이 공자의 주유열국에 대해서 공자가 제후들 돌아보면서 사랑 외치고 다녔다고 하는데. 사실 공자는 엄밀히 말하면 종법 질서를 회복하고 예라는 제도로 모든 사회제도를 재정비하자는 주장을 한 것이었지, 단순히 사랑(그 사랑도 仁이지)해라 이게 아니었어. 덤으로 여말선초(고려말 조선 초기의 정치적 격동기)의 사대부들이 성리학을 통해 나라를 재건한 것도 단순히 공자왈 맹자왈 이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를 만든거임. 주자가례 같은 동아시아 도덕질서에 기반한 가족법 같은 걸 기반으로 예치 제도를 나름 정교하게 짠게 사대부들이었지. 사랑 이야기도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유교에서 말하는 사랑인 인(仁)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가페적인 사랑과는 많이 다른 개념이야. 유교의 인(仁)에서 미워함은 사랑의 뒷면이고 사랑의 반대말은 미워함이 아니라 무관심이거든. 논어 이인편에서 그 테마를 자세히 다루는데 실제로 보면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인한 사람은 좋아할 사람을 좋아하고 미워할 사람을 미워한다)라는 언급과 함께 미워함(惡)라는 단어가 상당히 많이 등장해. 유교의 인(仁)을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칼을 드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지. 예를 들면, 아가페 정신의 대표적인 문장인 '원수를 사랑하라'를 유교의 입장으로 보면 '내 마음 안에 네가 들어있지 않다고도 볼수 있으니 상대방의 존재가 내 마음에 끼어들 공간이 없다는 무관심'으로 보거든. 그래서 원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그 원수를 마음에 품고 미워하는 것이 유교의 인(仁)이야. 원수를 무조건적으로 미워하는게 아니라,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 원수의 존재를 마음에 담고 관심을 갖고 미워한다! 라는 입장인거지. 즉, 인(仁)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정의(천명)를 바탕으로 어떻게 진심을 갖고 어떻게 관계를 정립하냐의 자세인거지. 엄밀히 말하면, 인(仁)은 사랑보다는 사람다움과 옳은 인간 사회에 대한 도덕적 방향성이 더 맞지만.

#20 이름없음 2022/03/04 23:50:33

>>17 ㄳㄳ

#25 이름없음 2022/03/06 14:16:33

>>24 1. 배우기 시작한 계기는... 흠 이전에 정말 자유롭게 살아서(자유로움 보다는 자기도취적인 허무주의적 쾌락주의에 가깝긴 하지만...) 오히려 질서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어서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고등종교에서 말하는 '수양(자신의 부인)'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지 그리고 전에 기수련쪽도 해보고 타종교도 믿어봤는데, 대다수가 너무 영적 운운하면서 신비를 강조하는게 내 성향이랑 진짜 안 맞아서... 영적인거에 관심없는데 왜 기수련을 했느냐? 라고 의문이 들수가 있는데, 저거 내가 배우고 싶어서 등록한게 아니라 집에서 배우라고 시켰던게 컸음. 내가 꼬꼬마 시절에 소설 단? 붐이 일어나서 단전호흡같은게 유행했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태권도학원이나 피아노학원처럼 선원 같은 곳에서 그런류를 동양학 리더십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학원처럼 운영하던게 있었음. 그걸 집에서 나보고 가서 창의력을 기르라고 그 프로그램 등록했던게 시작이 되어서 어쩌다 배우게 됨. 근데 그게 기수련이더라고... 생각해보니 저 기수련이 모든 고생의 원흉이었긴해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질서'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수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게, 저 기수련 다니던 중이었거든. 근데 내가 여태까지 경험해본게 only 기수련 이었기 때문에 '수양의 수단= only 기수련' 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말이야. 그래서 정확히 내 수양 성향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기수련에서 쓰이는 도그마를 억지로 내면화하려고 했었던게 참.... 좀더 공부하고 나서 내가 추구하는 수양 성향이 '영적이고 신비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무언가'라는 걸 깨닫고, 기수련을 버리고 무종교인이 되었지. 그러다 내 의문점을 해소하던 중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다 '신의 존재가 요청된다'라는 걸 파트를 보고 기독교에 흥미가 생겨서 배워보기로 했었음. 뭐, 여태까지 경험했던 기수련이 동양틱하니 새출발하는 마음으로 서양틱한 걸 경험해보자는 기분전환도 있었고. 기독교 쪽이 사회봉사도 활발하긴 하니까 그리고 현대사회의 베이스가 인권이라는 개념이 기독교에서 온 거라는 걸 보고, 내가 원하는 수양이 이곳에 있을것 같다는 기대도 들어서... 내가 원하는 수양이 있다면 말뚝을 박으려고 했었지. 근데, 기수련보다는 내가 원하는 수양에 가까운 것은 맞았지만, 내가 원하는 수양 형식은 사회참여가 곧 수양이 되는 그런것을 원한거라 '내가 원하는 수양'은 아니었지. 그래서 나는 다시 무종교인이 되었어. 정교회를 제외한 천주교와 개신교를 모두 경험해보긴 했는데, 천주교는 수양 문화가 있지만 수도승의 그것은 나랑 정말 안맞고(기수련보다는 맞긴 했지만), 개신교는 역사가 짧다 보니 형성된 수양 문화라고 할게 없더라. 그나마 구세군의 사회사업을 중시하는 것이 내 수양 성향과 가장 비슷하긴 했는데, 아쉽게도 개신교는 수양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지금 생각해봐도 만약 구세군의 역사가 좀더 오래되었고, 그로 인해 구세군 특유의 사회를 중요시하는 수양 전통이 형성되었다면 구세군에 남아있을지도 몰랐다고 생각함. 정교회는 왜 안 갔냐면, 헤시카즘은 그냥 겉만 봐도 내가 추구하는 성향과는 상극이고. 불교는 공부해보니 남방이든 대승이든 할것 없이 사회에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내 가치관이랑 완전반대라서 안 감.. 다만 한국불교 한정으로 실천성을 강조하는 정토회는 마음에 들었음 (사실 내 성향하고 완전반대인건 불교보다는 자이나교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내가 원하는 형식의 '수양'은 없는건가... 라고 완전히 포기할 무렵, 우연히 논어를 다시 읽게 되었음. 근데, 머리가 크고 나서 읽어서 그런가 그때 당시 기수련 배우던 선원에서 읽었었던 논어와 다르게 다가오더라고. 특히 이인편을 읽다가, 내 사상이 기독교의 아가페보다는 유교의 인에 더 가깝다는 것을 깨달은 동시에, 유교의 수양방식을 접하고 내가 원하는 수양방식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환희에 찼었지. 유교의 수양은 수기치인- 즉, 사회경영이 곧 수양이 되는 방식이었거든. 그 방편으로 '극기복례'가 있었고 그리고 내 인식론적 스탠스도 그때 깨닫게 되었는데, 나는 '믿는다'가 아닌 '필요해서 쓴다'에 가까웠음. 그니까 나에게 범신론(기수련)이 진짜든, 유신론(기독교)이 진짜이든 이런건 중요하지 않고, 필요하기에 내면화해서 믿으려고 한거였다는 거지. '필요해서' 범신론이나 유신론을 내면화하려고 했던 것을, 나 스스로 범신론자다, 유신론자다 라고 착각을 했었던 거였음. 내가 칸트에 '신의 존재 요청'을 읽고 상당한 공감을 한 이유도 나의 이런 성향 때문이었다는 것도 그때 알았지.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내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공감했던 칸트 사상은 일반적인 기독교 사상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유가의 입장과 가깝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지) 즉, 내 원래 스탠스는 '진리탐구', '나는누구인가'이런거는 관심이 없었지만, 단지 그것이 '필요하기에' 그런 태도를 내면화하려는 것에 가까웠다는거야. 그런데 유교는 신이나 초자연존재의 유무를 논하는 것을 넘어 그런부분에 관심이 없는 신론 무관심주의 성향의 종교였단 말이지? 수양론도 그렇고 그런 인식론적 관점도 그렇고 '내 성향에 딱 맞는 종교다'라고 느꼈지. 정리하면 내가 원하는 수양은 영적 신비 운운하는 그런게 아니라 거대한 사회담론의 흐름에 맡기는 그런 것을 원했거든. 내 성향도 신비주의적인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관심 자체가 없지만), 사회참여적이고 문명을 중시하는 방향이기도 하고. 그니까 자기를 부정하고 거대한 사회담론의 흐름에 맡기는 수양이 있되, 그 수양은 신비적이고 영적 뭐시기적인 수양이 아닐것이며, 사회참여를 중시하고 문명에서 진리를 추구할 것. 이라는 조건으로 거르고 거르고 보니까 유가의 극기복례, 수기치인에서 그 답을 찾았던 거지. 아, 거른다고 해도 그 타종교들을 싫어한다는 건 아니야. 좋아하고 공경하나 내가 추구하는 성향과 안 맞을 뿐이지. 질서의 도덕률 - 자신을 부인함으로서 자신을 자신으로서 성립되게 할수 있는 방편-을 제시해주는 고등종교들- 유교 기독교 불교 도교 이슬람 힌두교-는 정말 위대한 사상들이라고 생각함. (종교가 아니어도 자기긍정을 위한 자기부정의 도덕률을 제시해주는 하이데거, 칸트, 수동적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선악관을 정립할수 있다는 능력이 있는 사람 한정의 니체 생철학도 긍정적으로 평가함)

#26 이름없음 2022/03/06 14:54:49

>>24 악함에 대해서는 미워하고 칼을 들어라... 라는게 우리 사상이야. 우리는 악한 자에 대해서 미워할수 있는 마음 자체가 그 자에 대한 사랑이자 관심이 있기에 가능하다라고 하기 때문이라 보거든. 직관적으로 말하면 '거룩한 분노'이며, 빅토르 위고가 말한 "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품는다.." 하고 입장이 비슷하지 흔히 하는 오해와 달리 악한 권력도 예외가 아닌데,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위정자가 위정자로서 역할을 못하면, 촛불을 들고, 그래도 안바뀌면 횃불을 드는 게 우리 사상이야.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개념이 있는 이유이기도 하지. 악한 권력은 천명을 따르지 않는 권력이기 때문이야. 드라마의 오해와 달리, 이황과 이이 등 전성기때의 사료들만 봐도 노비가 양반을 소송 비스무리한걸해서 지방수령이 그것을 주구장창 심판하고 과로사 해서 지방수령으로 내려가는 것을 꺼려했다는 기록이 있고 하급 관리들이 임금 행차할때 주위 구석에서 시위했다는 기록이 나오지...(참고로 정사) 유교의 천이라는게 현대사회에 비교하면 상당히 자연권에 가까운 개념이라서. 물론 그 직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난리통이 터지면서 현세지향이었던 성리학이 현실을 똑바로 못보기 시작하며 과도한 이론성만 나오고 '유학의 교조화'가 일어나면서 변질된 유교적 전통들이 나오는 바람에 망했지만... 뭐, 그래서 한때 이슈가 되었던 드라슈스 케디스 사건 같은 경우도 유림들의 의견이 갈리긴 한데, 대체적으론 천명을 대행하여 발한 거룩한 분노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

#30 이름없음 2022/03/18 14:25:47

오우... 댓글이 더 달렸는지는 몰랐는데, 좀 있다 답할게!

#31 이름없음 2022/03/18 14:44:44

>>27 혹시 선악을 대립관계로 보는거야? 일단 나는 선악을 우열관계로 본다. 선을 우열, 악을 열등으로 뭐, 나도 한때 선과 악이 어딨어? 우리가 믿는 선악의 모든 건 기초적으로 허구 아닌가?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인용하자면, 선행이라는 것은 남에게 좋은 감정을 받고 싶어서 하는 일종의 채권자-채무자 관계가 아닌가? 그리고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이 선행의 본질이 아닌가? 이타심이란 개념은 그저 위의 감정의 채무관계 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기심이 아닌가? ...라고 허무주의에 빠져있을때 저렇게 생각을 했었지. 뭐, 저건 어디까지나 사실이기에 부정하는 건 현실도피지. 저걸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원죄며 무명 그리고 니체옹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연이지. 나는 어떻게 극복을 했었냐면, 뭐.. 내가 하던 선행의 의도가 거짓이든 진실이든 간에, 내가 남을 돕고 보람을 느꼈다는 마음 자체는 사실이었거든! 도덕과 의도가 허상이라는 등 진실과 거짓이 어떻든 간에, 그렇다고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이 거짓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지(맹자식으로 말하면 측은지심) 내 성향 자체가 '진실이 뭐든 진리가 뭐든 뭐 어때?' 어차피 마음에 안드는데 그것을 따라줘야 하나? 라는 마인드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질서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게 된 방법론이 유가에서 성선론으로 극복하는 방식과 비슷하네 참고로 이런 허무주의에 정면으로 극복하는 방식은 유교 뿐만 아니라 불교, 도교, 이슬람, 기독교 등 고등종교라 불리는 종교에는 다 있는 개념이야.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유교가 성선론으로 극복한다면 기독교는 신존재 믿음, 불교는 윤회와 업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하지. 기독교 신정론에서 말하는 '악은 선의 부재다.'라던가 불교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사람이 변하는 이유는 선을 이루기 위해서다'라던가..

#32 이름없음 2022/03/18 15:00:24

>>27 일단 유교에서는 '예'가 그걸 위한 '교화' 수단으로 먼저 작동해. 유교에서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교화'때문이고. 혹해서 묻는거지만, '악한자에겐 칼을 들어라 사랑할수있고 관심을 가질수있기에 할수있는것이다'를 혹시 '그 악한 자를 갱생하기 위해서다'라고 해석했는지 묻고 싶어. 만약 그 '옳게 쓰인다'를 혹시 '갱생한다' 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아니야. 군자는 그 악한 자의 '갱생'을 위해서 화내는게 아니야. '교화'를 위해서 화내는거지. 갱생과 교화는 유교에서 좀 다른 개념이야. 정의는 그 안에 분노를 품는다... 라는 말을 인용한것도 이런 늬앙스에서 쓴거고. 차이가 뭐냐면... 갱생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궁극적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상태에 도달하려 하는 것, 즉 군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거야. 교화란 악한 성품이 발현되지 못하게 억누르는 거야. 외부의 압력을 통해서라도 결과적으로 악한 성품이 억눌러지는 것을 의미하는거지. 子曰(자왈) 唯上智與下愚(유상지여하우)는 不移(불이)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오직 지극히 지혜로운 자와 지극히 어리석은 자는 변하지 않는다” 즉, 유교는 지극히 어리석은 자의 갱생 가능성은 부정하는 사상이야. 공자가 왜 소정묘를 죽였을까? 물론 갱생이 불가능 하다고 해서 교화를 안하는건 아니야. 유교에서는 맹자의 성선론에 따라 모두가 선한 본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누구가 그 선한 본성을 깨우칠 수 있다고 본 것은 아니야. 정확히는 '깨우칠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모른다'이지 누구나 선한 본성을 갖고 있다는 것과 누구나 그 선한 본성을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은 별개거든. 역성혁명론이 성립되는 이유도 그렇지. 정말 누구나 선한 본성을 깨우침을 얻을 수 있다면 왕이 왕답지 않게 행동을 하면 갈아치울 필요가 있겠어? (이걸 로크의 Tabula Rasa에 기반한 웨슬리의 성결론하고 비교해 보면 상당히 재밌어)

#33 이름없음 2022/03/18 15:40:50

>>28 동성애..? 동성애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자연계에도 동성애 행위가 만연하기도 하고... 동성애는 동성애지 뭐. 유교는 공식적으로 동성애를 긍정하는것도 아니고 부정하는 것도 아니야. 사실 그냥 관심이 없어. 다만 동성애를 기반으로 형성될 사회적 제도나 질서는 관심이 있지. 사실 동성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적 제도나 사회질서는 유림의 관심분야- 교리를 FM대로 따르면 누구보다도 사회참여에 적극적인 종교가 우리-거든 예를 들어, 동성결혼의 활성화 라던가... 유교에서 가정은 '아이를 낳고 양육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동성결혼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유림의 관심영역이겠지. 예를 들어, '동성결혼의 활성화'와 함께 '동성 부부의 아이 입양'이 적극적으로 활성화된다면 사회의 플러스 효과가 되는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보겠지.

#34 이름없음 2022/03/18 16:04:48

>>28 페미니즘은 좀 애매한데, 페미니즘 자체가 명확히 규정된 개념이 아니라 선언에 의해 구성되는 가족유사성 개념이라서.. 일단 대중적인 의미로 쓰이는 개념을 기준으로 얘기해본다면.. 경력단절, 임금격차 같은 페미니즘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하는 편인데, 페미니즘... 특히 래디컬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운동 자체는 부정적으로 바라봐.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 주류가 30대 이상이 아닌 10-20대라는건 확실히 비정상적이거든. 다만 레디컬 페미니즘이 왜 그만큼 널리 퍼지는 건 그만한 차별감이나 이런 것을 느낄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대두하게 된 사회의 '욕망'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함. 즉,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사상이 나왔던 '욕망' 자체는 긍정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운동' 자체는 부정적으로 보는 편이야. 왜냐면 이게... 이데올로기로 활용되게 되면 정말로 수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보상이 안갈수도 있거든, 사실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모든 사상이 이데올로기로 쓰이게 되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지금 너가 페미니즘 다음으로 언급한 기독교도 마찬가지고 내가 믿는 유교도 마찬가지야. 이데올로기를 규정화하면 그거에 따른 집단을 나누고 소속감을 느끼고자 막 기준을 나누고 서로를 차별화하게 될 수도 있을 가능성이 높거든. 이게 사상 자체는 좋은데 그것이 '이데올로기'로 쓰여지면서 문제이지...

#35 이름없음 2022/03/18 16:45:29

>>28 기독교 사상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해. 근데 그것이 이데올로기화 되면서 발생한 문제들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야. 기독교 뿐만 아니라 종교 이전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절대적 진리라는 게 없었기에(한마디로 도덕률에는 공리가 없었다는 말) 그 공리의 역할을 국가 단위에서는 종교가 만들어져서 바로 이 역할을 했다는 거지.. 서방세계는 특히 기독교를 통해서 공리를 세우고, 그 공리를 바탕으로 사회적 정의를 합의할 수 있었던 거야. 그런 의미에서 유교도 종교의 교리 역할을 했으며, 그렇기에 유교를 종교라 하는거고.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말했던 것은 종교가 더이상 공리가 될 수 없기에 회의주의를 반박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에서 말한거야. 그래서 회의적인 세상을 극복(Selbstüberwindung)하는 극복인(Übermensch)이라는 교리를 내세운 거고. 그런 종교가 이데올로기화 되면 어떨까? 인간은 살아가면서 스스로 생각하기 위한 준거를 만들어 가지. 그런데 그 기준은 완전히 자의적이므로 선악이 없어. 그리고 우리는 그런 준거를 신념으로 삼아 살아가게 되지.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가장 쉬운 직관적이고 교화체제로써 유익하지. 기독교만 하더라도 사랑하고 용서해야 천국간다는 신념이 이기주의적 신념보다는 사회적으로 유익하다는 거지. 그러나 그렇기에 종교는 위험하지. 왜냐하면 매우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으므로 소수가 다수를 설득하여 소수가 권위를 얻기 쉽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빠져들기가 다른 이념보다 쉽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거임. 그리고 그것이 통치자에 의해 수행될 경우는... 위진남북조시대, 십자군전쟁, 왕즉불사상 같은게 일어나는거지. 서양사 이데올로기의 가장 핵심적인 줄기가 기독교였지만, 정작 그 기독교라는 것은 그 가르침을 따른 적이 콘스탄티누스 1세 이후로 없지. 사실 종교 뿐만 아니라 사상이 이데올로기화 되면 문제가 되지. 프랑스 혁명 당시 계몽주의자들과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는 대학살을 이루었고, 지배계층의 교체 후에는 혁명의 불길은 평민을 위해 사용되지 않았어. 역사적으로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자성을 막고, 편을 나누어,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도구였었지.. 그리고 몽골의 대학살, 세계대전, 6.25때 마을 사람간의 학살... 각각의 사상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한 사건들.. 인간은 유사 이래로 항상 이데올로기를 통한 정치질과 선동으로 악행을 저질러왔지. 자성하지 않는 종교인은 여타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위험한 신념을 갖게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위험하다는 거야. 인류사에서 종교도 이데올로기의 일부일 뿐이었고, 정치와 이데올로기 앞에서는 신도 부처도 없는 법..

#36 이름없음 2022/03/18 16:46:27

>>28 내가 유교로 간 이유가 여러가지 있지만, 큰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 사회에서 유교는 종교로서 기능이 죽었다"라는 것 때문이었어. 좀더 정확힌 한국 사회에서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하는 것이 완전히 죽었으니, 오히려 그렇기에 종교의 이데올로기화에서 자유로울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음. 실제로 우리가 흔히 종교에 너무 빠져 문제라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전혀 그 종교에 안 빠져 있지. 기독교? 초세기 기독교인 군인들은 살생이라 하여 세례와 동시에 직업을 바꾸었지. 군인조차 용납못해 직업바꿀 사람이 남을 해칠까? 불교? 석가모니의 출신 종족인 석가족은 살생이라서 전쟁이 일어나도 공격을 전혀 하지 않아 부족 전체가 몰살당하고 나라가 멸망했지. 국가 멸망도 감수하는 자가 남을 해칠까? 이슬람교? 무함마드는 기독교 수도원 파괴하지 말고 살생하지 말라고 본인인증으로 손자국까지 찍어서 파괴되지 않은 수도원이 있지. 그게 오늘날 가장 오래된 성경사본을 소장한 성 카타리나 수도원이지...

#37 이름없음 2022/03/18 16:59:26

>>29 어... 아마도? 5년 전인가 기수련이 나랑 전혀 안 맞다는 걸 슬슬 자각하고 현타와서 여기와서 심심풀이로 글썼던 기억이 나긴 한데.. 제목이 아는것을 알려준다 였다?? 잘 기억이 안나긴 하네 글 쓸 당시 그때 당시 유학준비 하느라 바쁘고 그런 영적 분야가 나랑 안 맞는거 같아서 도교식 기수련을 사회담론으로 묻어가는 윤리적 수양으로 변형시킨 '삶속의 수련화'를 만들려고 하다가.. 그런 사회참여적인 수양은 도교식 세계관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그런 영적 분야에 대해서 아예 관심을 관뒀던거 같은데. 뭐.. 내 원래 성향과 내가 원했던 수양 방식이 영적 신비 운운하는 그런게 아니라 거대한 사회담론의 흐름에 맡기는 그런 윤리적 수양들을 원했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런 기수련 영적 분야는 더 이상 관심자체가 없어

#38 이름없음 2022/03/18 17:13:22

>>27 자신의 부정 보다는 자기인정을 위한 자기부정이 더 맞지 않을까 싶어... 좀더 직관적으로 표현하면 자기극복? 난 자기극복을 하는 모든 방법론을 수양으로 보거든. 그래서 나는 칸트의 정언명령의 출처를 따르는 삶이나, 스토아 철학의 에피테이아도 수양으로 봐.

#40 이름없음 2022/03/18 17:33:36

>>39 읭 의도가 있남.. 그냥 심심해서 쓴 똥글임. 인공어 만들려고 아이디어 없나해서 구글링하다가 앵커판에 인공어 스레가 검색되길래 호기심에 들어갔다가 스레딕인거 보고 그냥 온김에 충동적으로 썼다고(쉽게 말해 똥글...) 해야하나?? 와 그나저나 스레딕에 쓴 이 스레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방문기록 정리하다 누른 스레딕 링크에 위에 빨간 알림이 떠서 놀랐음 ㅎㄷㄷ 많이 발전했구만 스레딕

#41 이름없음 2022/03/18 17:38:09

와 근데 공지 뭐야? 정치떡밥 허용??? 내가 잘못본거임????? 오 쉣 ㄷㄷ 스레딕 탈퇴해야 겠네... 스레 스톱할게. 즐거웠음 ㅂ2ㅂ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