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말하지만 썰 길게 안 풀거임. 자폐인지 아스퍼거인지 뭔지 정확한 진단명은 모르지만 특별반이 사라지면서 우리반으로 왔던 친구라 아마 다른 애들이랑 조금 다른 친구였었던 것 같아. 이름이랑 외모가 특이하고, 독서광에 뭔가 상식이 되게 많고 똑똑했는데 말을 어눌하게 했었어. 반 여자애들은 귀엽다고 자주 말걸고 좋아했었는데 당시 나도 눈치나 그런 사회성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던지라 진짜 어울려서 노는건지 놀리면서 장난치는건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음.
중학생때 팩트에 집착하던 자폐인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정도로 독서광이었냐면 수련회 수학여행때 책가방에 책만 다섯권 싸들고 가고 (무슨 종류의 책이었는지는 못봤어) 체육시간에도 체육복 안에 책을 숨겨와서 체육쌤한테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그늘막 스탠드에 앉아서 책 읽는 그런 정도. 그래서인지 상식이 풍부해서 여자애들이 뭔가를 물어보면 쉬는시간 10분 내내 쉬지않고 설명을 술술 잘 하곤 했어
아 중간에 잠깐 말하자면 제목에서의 팩트는 화장품 팩트가 아니라fact를 말하는 거야
책 말고도 통이나 봉지에 담긴 벌크 간식? 코스트ㅋ나 이마ㅌ 트레이더스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에서 팔 것 같은 큰 통에 담긴 간식들을 가져와서 여자애들한테 나누어주는 걸 좋아했었어. 자기가 직접 나눠주러 돌아다니는 건 아니고 여자애들이 그 애 자리로 찾아왔었음.
근데 여기서 이 친구 소문이 이상하게 난 게, "ㅇㅇ이는 여자애들한테만 간식 준대~", "ㅇㅇ이 일진들한테만 간식 준다며?" 라는 소문이 퍼졌어
그런 와중에 내가 진위 확인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아이가 항상 여자애들한테 간식을 나누어주던 걸 봤던지라 여자를 참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었고... 결국 그 애한테 가서 하면 안 될 말을 해버렸어.
"ㅇㅇ아 너 여자애들한테만 과자 준다며? 나한테는 왜 안 줘?"
그러자 평소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있는 평소의 표정에서 갑자기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이 싸늘하게 확 변해버리더니, 엄청 빠르게 말하더라고. 화나면 엄청 빠르게 말해. "아닌데? 넌나한테준거없잖아. ㅁㅁㅁ은 나한테 제티줬고 ㅂㅂㅂ은 샤프심줘서 준건데? 애들 다 나한테 과자줘서 나도 똑같이준건데? 정당한물물교환인데? 왜 사실이아닌말을하는거야? 너는나한테준거없잖아 너한테는과자안줘."
나 진짜 개깜짝놀라서 얼음되어있다가 종치길래 그냥 그대로 내 원래 자리로 돌아갔는데, 수업시간에 친구가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쪽지에 뭘 적어서 나한테 주는 거야.
'레주야 지금 ㅇㅇㅇ(독서광 과자친구)가 30분째 너 뒷통수만 살기어린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고있어. 쟤 지금 책도 안읽고 계속 너만 쳐다보는데?' 라는 식으로 적혀있었다.
그 쪽지 받자마자 티안나게 고개 살짝만 돌려서 옆눈으로 그친구를 봤는데 진짜 나를 계속 눈도 안 깜박이고 빨간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거야 진짜 너무 무서워서 남은시간 집중안되고 덜덜 떨고있었음
ㅂㄱㅇㅇ
내가 오바하나 싶기도 할텐데.. 그 친구에 대한 소문은 진짜 많이 들었거든. 억시 또 소문일 뿐이긴 한데, 자기 심기 거슬리게 한 애들은 어떤식으로든 복수하고, 지난 학기에는 자기한테 띠꺼운? 말 한 여자애 엎드려서 자고 있는 거 쉬는시간 되자마자 일어나서 손바닥으로 등짝을 ㅈㄴ 세게 내려쳤다는 거야. 맞은 여자애는 엄청 울었고. 또 언제는 자기 괴롭힌 어떤 일진 남자애 손등을 샤프로 찍어버렸다는 얘기도 돌았으니 진짜 무서워서 미칠뻔했지
>>12 고마워 근데 그냥 좀 아픈친구고 살짝 섬뜩할 뿐인데 별내용은없을거야 혹시 기대에 못미칠까봐
쉬는시간 종 치자마자 친구들 두 명이 나한테 쪼르르 와서는 너 빨리 ㅇㅇ이한테 사과하라고. 너가 잘못했든 안했든 무조건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ㅇㅇ이라는 친구가 되게 특이했던 게, 자기 심기를 건드리거나 아님 심하게 괴롭혔더라도 '미안해' 라고 또박또박 말하면서 사과하면 없던일처럼 기분 다 풀리면서 더이상 원한어린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 걸로 소문났었음. 아 또 소문이네 ㅜ 근데 이건 나도 반에서 몇 번 봤었음.
진짜 덜덜 떨면서 ㅇㅇ이한테 가려고 일어났는데 나 계속 쳐다보면서 두 주먹 꽉 쥐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더라. 종 치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거 아닌가 하고 겁먹었는데 좀 안심됐어
쭈뼛쭈뼛 ㅇㅇ이 자리로 가서는 옆에 서서 진짜 무슨 대역죄인마냥 "ㅇㅇ아 내가 아까 오해해서 미안해. 나는 너가 받은 거에 대한 보답으로 과자 주는 것도 모르고 함부로 말해버렸어. 미안해." 모 대충 요런 식으로 말했던듯. 남자애들 몇명은 긴장하면서 쳐다보고 나머지는 별 신경 안 쓰고 자기들끼리 놀더라고. 그만큼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걸 보어주고 싶어서 덧붙여봤어 ㅋㅋㅋ
그랬더니 진짜 노려보던 표정 싹 풀리더니 "아. 사과했으니까 됐어. 괜찮아. 너도 뭐 주면 과자 줄게. 앞으로는 팩트만 얘기해줬으면 해." 하는거야 진짜 순간 안심되는 마음에 울뻔했음 근데 한편으론 그게 더 무서웠다 그냥 미안하단 한마디에 표정 나노초단위로 싹바뀌는거 무슨 스레딕 괴담판에나오는 귀신같았음.
그렇게 팩트 팩트를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누가 자신에 대한, 또는 자기가 보는 책 내용에 대한 허위 정보를 얘기하거나 하면 말 엄청 빨라지면서 어떻게든 사과를 받아내고야 마는 친구였고, 사과를 받고나면 세상 쿨하게 잊는 진짜 신기한 친구였음....
그냥 이 늦은 새벽까지 다른 커뮤에서 어떤 사람이랑 한심하게 키보드로 배틀뜨다가... (별것도 아닌 주제였음) 서로 팩트따지기 오지게 하는 와중에 나랑 싸우고 있는 사람 말투가 좀 정상적이진 않아보여서 쎄한 느낌에 담백하게 사과하고 그만하자고 말했는데,, 나 두 줄짜리 댓글 하나 달 때 막 서너개씩 너댓줄로 띄어쓰기도 제대로 않고 오타 내면서 댓글 달던 사람이 저 짧은 사과 한마디에 '팩트를 아셨으니 됐습니다 다음부턴 뇌피셜로 글쓰지마세요 그런거 못참습니다 늦었으니 주무세요 제가 팩트를 왜곡하는건 못참아서 말을너무많이했죠. 팩트는 @@(우리가 대화하던 주제)이라는것 잊지마시고 올바르게 인터넷하세요' 하고 너무 점잖게, 하지만 뭔가 무섭게 ㅜㅜㅜㅜ 끝내버리더라고
근데 걍 그렇게 끝내고 나니까 갑자기 학창시절 그 친구랑 비슷한 패턴이라고 생각되었는지 야심한 새벽에 ptsd ㅈㄴ 눌려서 손떠느라 아직까지 잠못이루다가 여기에다라도 털어놓으면 좀 안정될까 싶어서 적어봤어. 정신사납고 횡설수설해보였다면 미안해 지금 좀 정신나간듯
모모사이트의 이름모를 익명님, ㅇㅇ중학교 ㅇㅇ이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이제 그만 날 놓아줘. 원래는 괴담보단 뒷담에 가까워보여 뒷담판에 쓰려다가, 뭔가 특정 까스레 세워서 줄줄이 레스 다는 형식으로 진행될만한 이야기는 아니고, 개인적으로 무서웠던 기억이라 괴담판에 올려봐.
잘봤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24 고마워 누구 하나 읽어줬다는 사실을 안 거랑 과거 기억 끄집어내서 텍스트로 하나씩 열거해본 것만으로도 많이 진정이 되었어.
ㄷㄷ
근데 그러면 일은 이미 전부 해결된거 아냐?
>>27 엉 일어나서 다시보니까 왜 ptsd온지도 모르겠당 새벽이라 그랬는듯 역시 사람은 제시간에 잠을 자야해
Ptsd는 트라우마기 때문에 이미 끝난 일이라도 비슷한 일을 겪거나 하면 언제든 발현될 수 있는거지 뭐.. 요즘엔 말싸움도 함부로 하기 무서운 세상이야ㄷㄷ 다들 말 조심해서 안 좋을건 없으니깐 웬만큼 말 안 통한다 싶으면 바로 끊어내버려. 그냥 더러워서 피한다는 마음으로 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