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외연은뭐라고정의해야하나요

창작소설 2023/10/02 02:22:12

#1 이름없음 2023/10/02 02:22:12

심심할 때마다 쓰는 장편 청레 감상 및 난입 환영

#2 이름없음 2023/10/02 02:22:24

만듦새가 단정해 잘 직조된 피륙 같던 사랑이 오늘 끝났다. 예컨대 그것에 생명은 없었다는 소리다. 메신저 몇 번에 끊긴 감정이 창밖에 툭툭 범람했다. 툭툭. 아 미친 날씨가 왜 이래. 일은 거슬리는 빗소리를 동력 삼아 자질구레한 기억들을 펼쳤다. 데이트 몇 번에 농도 얕은 스킨십. 그게 다였다. 썩 좋지도 않았다. 단지 거개 한다기에 한 번쯤 간수하고 싶던 경험이었다. 이제 와 적성에 맞지 않음을 절절히 체감했지만. 톡. 톡톡. 빗소리를 따라 무릎을 두드렸다. 샤프를 쥐고 싶었다. 손에 딱 맞던 몸체 단단한 샤프. 작금에야 쥐어도 비참함을 환기할 뿐이나 심상 한 켠에 눌러둔 버킷 리스트는 당최 수정되지 않았다.

#3 이름없음 2023/10/02 02:22:43

도외시하던 계절이 지척이었다. 애초 의도는 아니었다만 사랑 그거 어설프게 흉내내던 것도 전부 이맘때여서니 싶었다. 아무리 궂은 나날을 보내도 순환 끝에 가을이라면 어김없이 한 낯이 떠올랐다. 애써 올리지 않아 발음이 생경하게 되어 버린 이름. 일은 혀를 끌면서 나오는 석 자를 느릿느릿 발음했다. 지수빈. 누구는 부르기 쉽게 이름도 두 글잔데 이 새낀 왜 이름부터 삐딱선을 타지.

#4 이름없음 2023/10/02 02:22:52

그렇기 때문에 모교 방문은 기나긴 연휴 동안 팔자에도 없던 일정으로 잡혔다. 본래 우울에 깊게 파고들지 않는 성정은 명쾌하게 답을 내렸다. 사 년이 지나도 떠오르네. 그러면 아주 잊는 건 포기하자. 고교 졸업 후 2년, 스물둘의 유일도 명쾌하지 못한 것들이 무량했다. 이를테면 열여덟의 지수빈이라든가. 열여덟의 우리라든가. 때 아닌 잡념에 노란 우산 하나 달랑 들고 닿는 대로 걸으니 교문 앞이었다. 마침 익히 면을 텄던 호방한 경비원이 단박에 반겼다. 오랜만이야 유일이 이제 완전 아가씨가 다 됐네. 선생님 뵈러 왔구나? 보자 아직 퇴근 전이셔 얼른 가 봐. 무턱대고 발을 디딘 학교에서는 늦여름 심록의 향과 샤프 소리가 났다.

#5 이름없음 2023/10/02 02:23:00

유일아. 유일아아. 수빈의 일상에는 생활형 애교가 즐비했다. 일 학년을 반추하면 차분하고 삭풍처럼 냉랭하던 모습이 허상이듯이 그냥 배 잘 까는 고양이였다. 가만히 있으면 참 정가한 낯으로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이목구비 선이 짙어 절로 진중해 보이는 손끝에서 나오는 건 개발새발의 난필. 사 년 전을 복기하던 일이 잇새로 웃으며 책상 위 글씨를 아닌 척 쓸었다. 2학년 3반. 1분단 첫 번째 자리에는 사 년 전의 네임펜 흔적이 여실했다.

#6 이름없음 2023/10/02 02:23:08

김유일 수업 듣지 말고 나랑 놀아라

#7 이름없음 2023/10/02 02:23:16

이게 누구 멋대로 아버지를 갈아치워 하고 싸웠던 기억. 주관 확고하게 생겨서는 응 그래 알았어 설설 맞춰 주던 수빈도 엄한 데에서 고집을 부렸다. 그게 호칭이었다. 멀쩡한 두 자 이름을 석 자로 늘리질 않나 사자성어로 부르질 않나. 근데 니가 일이면 내가 월이어야 맞지 않아? 또 별 이상한 타령을 시작하길래 씹었더니 뒤에 붙은 말이 더 충격이었다.

#8 이름없음 2023/10/02 02:23:26

“지월이, 어때. 지월이.” “이제는 멀쩡한 네 이름까지 바꿔?” “아니, 어떠냐고. 응?” “기생 이름 같아.”

#9 이름없음 2023/10/02 02:23:33

마침 훑던 게 한국사 교과서였다. 별 의미 없이 대꾸했더니 이제는 내 미적 센스 품평회가 개최됐다. 그렇게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게 결국 내 관심 한 가닥 붙잡으려는 항의인 걸 알아 책을 덮고 말았다. 내 성적 하향 곡선 그리면 평생 너 저주할 거야. 그랬더니 수빈은 한 술 더 떠 화답했다. 평생 내가 책임지면 되지.

#10 이름없음 2023/10/02 02:23:43

그러던 새끼가…. 문득 빠작 열이 받았다. 첨예한 손끝이 낙서를 지울 듯 힘주어 문질렀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울리는 구두 소리. 어머! 교실 미닫이문이 열리며 노래 같은 탄성이 뒤를 이었다. 일은 뒤를 돌았다. 아, 선생님! 안녕하셨죠 보고 싶었어요…. 2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음악 전공은 말도 음악하듯 한다는 편견을 심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11 이름없음 2023/10/02 02:23:52

“웬일이야, 일아. 어쩌다 왔어? 졸업하고 죽은 줄 알았잖아!” “바빴어요. 완전요. 지금은 휴학한 지 얼마 안 돼서 한가해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애들 가르치는 맛에 살지. 근데 무슨 일이야. 너무 말랐다. 공부 많이 힘들어?” “간호학과가 다 그렇죠…. 아하하, 그래도 열심히 살아서 뿌듯해요.”

#12 이름없음 2023/10/02 02:24:00

근황을 묻는 인사가 섬세하고 길었다. 물을 안부가 동이 나서야 선생님은 떠오른 듯이 작게 꺼냈다.

#13 이름없음 2023/10/02 02:24:08

“일아, 수빈이는….” “…….” “여전히 소식 없어?”

#14 이름없음 2023/10/02 02:24:15

하마터면 그래서 온 건데요 대답할 뻔했다. 영롱한 눈망울에 어린 건 순수한 걱정 태반에 의문이라 일은 말을 삼켰다. 이 작은 나라에 더 작은 도시에 배는 좁은 학교에 너를 걱정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이 철없는 새끼야. 내 안의 너를 조립할 게 이 심록 찬 콘크리트 건물 속 시간뿐이라 사 년간 모교 등진 내가 여기 있다고.

#15 이름없음 2023/10/02 02:24:26

“걔야 어디서든 잘 살겠죠. 사진 찍고 싶다고 외국 나간 애니까.” “그래도, 어떻게 매정하게 연락 한 번…. 너희가 학교 다닐 때 좀 친했니. 부부보다 더 붙어 지내던 애들이 갑자기 떨어지니 신경이 어떻게 안 쓰여. 심지어 너는 아닌 척해도 얼굴이 어두워서는 수척했잖아.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선생님 그때 걱정 많이 했어.”

#16 이름없음 2023/10/02 02:24:46

매정하게 연락 한 번 없이 고국을 뜬 지수빈. 실은 무언가에서 도망치듯 떠난 지수빈. 행선지도 출국일도 알리지 않고 사라진 지수빈. 그렇다면 왜 지수빈은 시기도 애매한 고 2의 10월에 항공을 감행했는가. 그 모든 의문의 근간에는 내가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미래에 관한 몇 마디를 나눈 선생님은 이윽고 회의가 있다며 아쉬운 듯이 자리를 떴다. 다시 고요한 교실에 혼자였다. 일은 책상에 걸터앉아 창밖에 시선을 두었다. 비가 초입보다 거셌다.

#17 이름없음 2023/10/02 02:25:00

지수빈은 어떤 사람이었냐. 등신이라는 단어로 간추릴 수 있다. 포장지 예쁜 등신이었다. 나붓거리는 새카만 담흑색 머리에 투명한 홍채. 이목구비 짙은 유백색 살갗. 양지옥 같은 모양에 시초는 괄목할 정도였다. 쟤는 뭐 저렇게 예뻐. 여고인데 남자보다 인기가 많았다. 문제는 성격이었다. 열 마디 이상 꺼내면 돌연사하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입을 안 열었다. 붙임성 좋게 대화를 시도해도 돌아오는 건 어 아니 그래 별로. 웃기게 더러는 거기에 미쳤다. 분위기 있다나. 반면 도처에 사람 끌어모으는 병 걸린 일은 그런 수빈을 일별한 게 다였다. 생득적인 언변과 성품으로 이미 피곤할 정도로 인맥이 넓었다. 인세에 척진 것 같은 애랑도 굳이. 1학년은 별다른 접점 없이 흘러갔다. 일은 말이 많았고 수빈은 말이 없었다. 2학년 반 편성이 뜨기 전까지는.

#18 이름없음 2023/10/02 02:25:18

“어? 같은 반이네.”

#19 이름없음 2023/10/02 02:25:26

봄 방학 전날, 수빈은 2학년 3반 앞에 붙은 명렬표를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미 1반부터 샅샅이 살피던 일의 걸음이 멈췄다. 낯익은 이름들을 예사롭게 죽 훑던 눈길이 한 곳에 머물렀다. 여기 있네, 내 이름. 기척을 느낀 수빈이 고개를 돌렸다. 1학년 내내 말 한 번 섞지 않은 사이에도 마주친 시선이 예사로웠다.

#20 이름없음 2023/10/02 02:25:35

“하이. 2년 내내 얼굴 보겠다. 반갑고.” “… 어.” “그으, 수빈아. 그리고 너 말 너무 없어서 다들 좀 무서워해.”

#21 이름없음 2023/10/02 02:25:42

수빈이 물끄러미 일을 바라봤다. 그때 든 생각은 딱 하나.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장신이래. 유전인가 생활 습관의 영향인가.

#22 이름없음 2023/10/02 02:25:49

“너도 그래?” “음? 아, 나는 별로. 근데 가끔 그래. 예를 들어 지금?”

#23 이름없음 2023/10/02 02:26:14

기분 탓인지 지수빈 정가한 낯이 불쑥 어두워 보였다. 장난이었는데 상처받은 건 아니겠지?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교실에서 틈틈이 보던 모습을 생각하면, 은근히 떠도는 항간의 말처럼 싸가지 말아먹지 않아서. 오히려 겉은 버석한데 속이 시끄러운 축이었다. 말이 없는 건 그냥 성격이고.

#24 이름없음 2023/10/02 02:26:26

“장난이야. 얼굴 펴라. 응?”

#25 이름없음 2023/10/02 02:26:33

검지 손가락으로 볼을 쿡 찔렀다. 말랑하고 따뜻해서 귀엽다는 감상이 앞섰다. 얘 이런 낯도 할 줄 알았네. 얼빵하기보다 정지한 듯한 꼴에서 약간의 모자람을 읽었다. 얼추 170 훌쩍 상회하는 체구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건 제법 즐거운 볼거리였다.

#26 이름없음 2023/10/02 02:26:40

유일아! 뭐 하냐! 아, 간다고! 기다려!

#27 이름없음 2023/10/02 02:26:48

복도 끄트머리에서 고동 같은 채근이 이어졌다. 자연히 시선을 거두고 이어 몸이 떠났다. 발 떼기 전 관성처럼 손 몇 번 팔랑거린 게 다였다. 그마저도 곧장 멀어져 되돌아온 반응은 안중에 없었다.

#28 이름없음 2023/10/02 02:26:55

"일아. … 안녕."

#29 이름없음 2023/10/02 02:27:02

그러나 신명께 맹세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때 그 귀엽고 모자란 낯을 똑똑히 봤을 거라고.

#30 이름없음 2023/10/02 02:27:12

"아, 어? 하이. 방학 잘 지냈어? 머리 다듬었네?" "어, 응…. 어울려?" "네 얼굴에 안 어울리는 머리가 어디 있냐. 쥐 파먹은 머리로 살아도 곱다 그러지." "뭐야, 그게."

#31 이름없음 2023/10/02 02:27:18

개학 초일, 요란한 교실에서 수빈이 툭 웃었다. 물방울처럼.

#32 이름없음 2023/10/02 02:27:28

예컨대 실바람에도 굴려질 듯 미약하고 사랑스러웠다는 소리다. 앞 옆 뒤가 사이좋게 아연한 낯을 하는 건 신경 밖이었다. 그저 탐미적인 태도로 조목조목 감상할 따름이었다. 웃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그간 관심이 없어서 그랬나. 반원 그리는 눈가가 국가 제일 미색으로 내보내기에 손색이 없어 수빈이 첫 입실 직후 곧장 내게로 왔다든가 그간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든가 지엽적인 문제 또한 신경 밖이었다.

#36 이름없음 2023/10/02 19:15:42

>>34 나도 문체 여러 번 바뀌었지~ 근래 들어 뭐든 많이 읽으니까 영향이 누적되어서 이렇게 굳어진 것 같아 많은 건 없고 그냥 순문학이든 웹소설이든 고전이든 가리지 않고 읽으면 장점만 흡수할 수 있어 그러니 활자 중독 완전 추천 문체가 취향이라고 해 줘서 고마워 거짓 안 보태고 처음 듣는다

#37 이름없음 2023/10/02 19:16:34

>>33 >>35 감사합니다아 남은 연휴 다복하게 보내세요

#38 이름없음 2023/10/02 19:17:09

“자주 웃고 다녀라, 너. 되게 예쁘네.”

#39 이름없음 2023/10/02 19:17:20

그 말에 삐딱선 타듯 입꼬리가 뚝 하향했다. 다시 내처 짓던 무상한 표정이었다. 몰랐는데 이게 수빈의 디폴트 값이자 당황의 내색이었다. 3월 초순의 관계에서야 알 도리가 없으니 장난의 메타포인 줄 알았다.

#40 이름없음 2023/10/02 19:17:31

“좀 웃으라니까 우리 수빈이는 말도 더럽게 안 듣지?” “……!”

#41 이름없음 2023/10/02 19:17:39

그렇다면 호응해 주는 게 인지상정. 검지 손가락으로 수빈의 양 입꼬리를 꾹 올렸다. 반응이 제법 웃겼다. 흠칫대면서 굳어 버리는 게 영락없는 고양잇과였다. 그게 또 신선해 친구끼리 점잖게 놀았던가 일말의 의아가 스쳤다.

#42 이름없음 2023/10/02 19:17:54

“웃… 웃는다고…. 손 떼….”

#43 이름없음 2023/10/02 19:18:04

파고든 손가락에 이라도 닿을까 복화술처럼 속삭이는 게 재미였다. 내친김에 더 할까 싶다가 순진한 양 놀려 먹는 늑대 꼴이라 관두었다. 좌우간에 그게 기점이었다. 무구하던 수빈이 점차 대담해져 구름 같던 면면들을 헤치고 일의 옆을 꿰찬 건.

#44 이름없음 2023/10/02 19:18:12

“너희 사귀어?”

#45 이름없음 2023/10/02 19:19:29

긴 우기였다. 장마에 기껏 만 앞머리 뭉그러졌다며 양냥거리던 친구가 대뜸 물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여하튼 부단한 호사가였다. 작은 입에서 반개한 항설이 지상 5층을 휘돈 게 수어 번쯤 됐다. 그렇다고 곧장 부정하기도 애매했다. 장신 구겨다가 제 어깨에 턱 얹어 놓은 수빈이 무료하게 눈을 굴렸다. 이 모양으로 역정이어야 의혹만 반증하는 꼴이었다.

#46 이름없음 2023/10/02 19:19:50

“그렇냐는데?” “? 뭐가.” “자기야, 해 봐. 자기야.” “자기야.” “봤지? 우리가 이런 사이다.”

#47 이름없음 2023/10/02 19:20:26

흥이 죽은 친구가 고갤 모로 돌렸다. 일이 키득거리며 문학 교과서를 넘겼다. 정철의 속미인곡이 컬러 인쇄 된 양면을 어지럽게 활보했다.

#48 이름없음 2023/10/02 19:20:46

“우리 수빈이 참 잘했어요~” “… 죽고 싶어?” “아이고, 너무 무섭다.”

#49 이름없음 2023/10/02 19:20:58

애견 다루듯 낫낫하게 턱 두어 번 긁어 준 일이 묵묵히 고전을 훑었다. 내 얼굴 이 거동이 님 괴얌즉 한가마는.

#50 이름없음 2023/10/02 19:21:17

“괴얌즉이 뭐였더라.” “관심 없는 척하고 보고 있었네?” “내가 언제에. 그런데 진짜 기억 안 나. 너 공부 잘하잖아. 뭐였어?” “괴다가 고언으로 사랑하다야. 괴얌즉 한가마는 이건 사랑함직 한가마는 그런 뜻.”

#51 이름없음 2023/10/02 19:21:29

수빈이 누구냐. 속골까지 T인 인간. 사실 엠비티아이 문제로 이월하기보다 자체의 사회성인지 꼭 이상한 데에서 태클을 걸었다.

#52 이름없음 2023/10/02 19:21:38

“왜 괴다가 사랑하다야. 말이 너무 안 맞는데?”

#53 이름없음 2023/10/02 19:21:52

이러면 어쩔 도리 없이 대거리의 타이밍이었다. 기실 먼저 웃기지도 않는 반론을 제기한 게 저쪽이니 항변은 정당했다.

#54 이름없음 2023/10/02 19:22:14

“너도 나 좋아해서 턱 괴고 있잖아.” “뭐?” “대충 그런 거라고 쳐. 원래 이런 건 따지고 들다가 골로 간다.”

#55 이름없음 2023/10/02 19:22:38

고개를 치들어야 할 수빈이 잠잠했다. 영문 모르게 눈길을 내리다 알았다. 2학년부터 급격하게 변화한 지수빈. 어디 있든 곧장 바투 다가붙던 지수빈. 막내 같은 애교에 외동이라는 의외성을 보이던 지수빈. 이거 해 줘 저거 해 줘 하면서 정작 제가 안기는 게 더 많던 지수빈. 은창한 집 내버리고 하교 후 나 따라 좁은 열람실에 몸 구기던 지수빈.

#56 이름없음 2023/10/02 19:22:52

“야.” “…….” “너 진짜 나 좋아하지.”

#60 이름없음 2023/10/23 14:20:34

얼굴을 묻은 수빈의 귀에 이른 단풍이 만개했다.

#61 이름없음 2023/10/23 14:20:43

“뭐래.”

#62 이름없음 2023/10/23 14:21:11

이 기묘한 조합에 거개는 흥미로 호응했다. 사철의 동태 눈이 2인분의 생기와 붙으니 그게 관전 포인트였다. 유일이는 정말 얼굴 값 하지. 본인이 예쁘더니 예쁜 수빈이랑 절친이구나. 미지수 계산에 돌입한 면면들을 지루하게 보던 수학 선생님이 툭 말을 굴렸다. 에이 제가요? 저 얼굴 안 봐요. 항변은 분위기를 타 어물쩍 이월됐다. 한 예외를 공란에 넣고.

#63 이름없음 2023/10/23 14:21:18

“지랄. 너 얼굴 존나 봐.”

#64 이름없음 2023/10/23 14:21:25

넌 무슨 그런 말을 나 급식 먹을 때 하니. 대중없는 직구에 숟가락 들고 정지한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떴다.

#65 이름없음 2023/10/23 14:21:32

“뭐…. 야, 갑자기 무슨?” “거짓말했잖아. 얼굴 안 본다고.”

#66 이름없음 2023/10/23 14:21:41

수빈이 가지런히 속눈썹을 내리깔았다. 가붓한 농담은 1교시였고 현재는 4교시 직후인데도. 설마 내도록 묵묵하던 게 저 생각 때문이었나. 얼굴 값 깜찍하게 못 하는 지수빈은 말만큼 허튼 생각도 많았다. 매번 색다르게 핀트가 어긋난 게 문제였지만.

#67 이름없음 2023/10/23 14:21:50

“말로 안 하더니만 머리로 허튼 생각 중이었네.” “죽고 싶어?” “아이고, 우리 수빈이 말하는 싸가지 보게.” “사실이잖아. 너 내 얼굴 아니었으면 인사도 안 했을걸.” “이제 점점 나를 나쁜 새끼로 몬다?”

#68 이름없음 2023/10/23 14:22:10

후식은 감튀였고 슬슬 동이 나던 차였다. 별 웃기지도 않은 삽질 하는 꼴이 어이가 없어서 마지막 조각을 지수빈 입에 물렸다.

#69 이름없음 2023/10/23 14:22:19

“얼굴은 삼 일이야. 몰라?” “……” “네가 아무리 천하제일 미색이라도 그거 빼고 볼 거 없으면 일주일 안에 유기했다는 뜻. 그러니까 다물고 감튀나 먹자.”

#70 이름없음 2023/10/23 14:22:26

수빈이 얌전하게 턱을 움직였다. 확언하건대 지수빈은 한 번 땅을 파면 끝도 없었다. 화재도 아니고 초기 진압이 중요하다니. 내처 짓던 표정이 풀어진 게 자명해서 그제야 좀 웃겼다.

#71 이름없음 2023/10/23 14:22:36

“야, 근데.” “응?” “예쁘다는 건 부정 안 하네.”

#72 이름없음 2023/10/23 14:22:45

아까의 지수빈과 지금의 지수빈. 누가 더 골치인가.

#73 이름없음 2023/10/23 14:22:52

“나 예뻐?”

#74 이름없음 2023/10/23 14:22:59

유비하던 일이 가는 한숨을 냈다. 입매가 속 나쁜 웃음을 그렸다. 답이 정해진 질문. 이걸 문학에서는 설의법이라고 하던데. 좌우간에 의문은 미명일 뿐이다. 일이 대강 명답을 냈다.

#75 이름없음 2023/10/23 14:23:06

“어, 당연하지. 예쁜 것도 모자라 내 취향으로 생겼지. 경국지색이지. 내가 황제였으면 울 수빈이가 황후 감이지.”

#76 이름없음 2023/10/23 14:23:12

좋단다. 진 빠진 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77 이름없음 2023/10/23 14:23:18

“맞아… 그런 적도 있었는데.”

#78 이름없음 2023/10/23 14:23:41

이어서 희끗한 시간을 채우는 기억. 광막한 일생 속에 기껏 일 년이 고작임에도 여과는 요원했다. 이건 상대가 지수빈인 탓인가, 내가 나인 탓인가. 가늠하던 눈이 달 아래 호수처럼 깊어졌다.

#79 이름없음 2023/10/23 14:23:49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 버리면 좋겠어

#80 이름없음 2023/10/23 14:23:56

일견 저주처럼 보이던 음절의 나열.

#81 이름없음 2023/10/23 14:24:03

그래서 너랑 나밖에 남지 않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가 나밖에 사랑할 수 없었으면 좋겠어 네가 사랑할 거라곤 오직 나뿐이면 좋겠어

#82 이름없음 2023/10/23 14:24:13

다만 속에 든 것은 출처 모를 절절함이라 돌이키면 목만 멨다. 아니지 걔가 나한테 목을 맸지. 그렇다면 지수빈은 어떤 사람이었냐. 정말 등신인가? 사랑에 최후까지 묵비를 행사하려 드는 멍청이인가? 그럼에도 간추릴 줄 몰라 어설프게 고해하던 풋내기인가?

#83 이름없음 2023/10/23 14:24:24

잠든 줄 알았던 사람과 잠들지 않았던 사람.

#84 이름없음 2023/10/23 14:24:32

늦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아침 자습, 고작 둘인 교실에서 자백하던 음성은 첫 울음보다 연약했다.

#85 이름없음 2023/10/23 14:24:47

그래서 눈을 떴다. 그러나 지수빈의 겁이 그렇게 무거운 줄 알았더라면. 불안정한 시선이 맞물리고, 머리칼을 넘겨 주던 손이 멎고, 그 애가 진동하는 손으로 가방을 단말마처럼 끌며 나갈 줄 알았더라면. 지난 미래에 대한 가정은 곧 망향이다. 작금의 심정은 노스탤지어와 이음동의어였다.

#86 이름없음 2023/10/23 14:25:09

우선 달래 주고. 달래 주고? 겁이 눌린 다음에는. 다음에는? 차차 생각을 해 보자고, 그렇게 말할 심산이었는데.

#87 이름없음 2023/10/23 14:25:19

네가 내게 이끌린 것이 필연인지, 우연인지. 오롯한 둘의 공간에서 휘돌던 대기는 우정이었는지, 사랑이었는지.

#88 이름없음 2023/10/23 14:25:49

너 그거 사랑 아니야, 어쩌면 그런 대답을 예비라도 했던가. 문간을 박차고 떠난 지수빈은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맞춘 몸체 단단한 샤프만이 할당량을 채웠다. 셔터 누르는 걸 좋아하던 지수빈의 사진첩은 절반이 내 차지일 텐데. 사진 전공하겠다던 걔의 뮤즈는 나였을 텐데. 이날 처음으로 양손잡이가 아니라는 사실에 곯았다. 세간에 둘뿐이라던 샤프는 이제 한 사람 몫이 됐다. 그럼에도 두 개로 쓰고자 했다.

#89 이름없음 2023/10/23 14:25:59

< 사랑 아닌 거 ) 3:01am < 나도 알아 미안 ) 3:01am

#90 이름없음 2023/10/23 14:28:32

쾌청하던 10월. 지수빈은 떠났고 샤프는 버려졌다. 도무지 병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91 이름없음 2023/10/23 14:28:40

그럼 사랑이 뭔데?

#92 이름없음 2023/10/23 14:49:44

타의로 남겨진 사람은 답을 찾고자 했다. 여러 형태의 사랑을 담았다. 다만 농도 짙은 애정만은 도저히 생기지 않아서. 회백색 콘크리트 건물 2층에 두고 온 향수도 다정도 무엇 하나 발치만큼 뒤쫓는 감정이 없었다. 풍랑에 헤메이다 연애도 시도했다. 그것도 오늘 멎었지만. 진짜 거지같이 살았네 나. 고개를 올린 일이 열없이 웃었다.

#93 이름없음 2023/10/23 14:50:03

그때, 짧은 마찰음이 빈 교실을 메웠다.

#94 이름없음 2023/10/23 14:50:16

“…….”

#95 이름없음 2023/10/23 14:50:28

단언하건대 그때 네가 한 게 사랑이었다면 우리는 반드시 운명일 거라고.

#96 이름없음 2023/10/23 14:50:43

“… 이, 씹새끼야.”

#97 이름없음 2023/10/23 14:50:54

열린 틈으로 보인 낯짝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었다.

#98 이름없음 2023/11/01 23:42:03

“…… 일아.” “너, 지금, 왜, 아니, 아니…. 내 이름 부르지 마.”

#99 이름없음 2023/11/01 23:42:16

예비하지 않은 대면임은 자명했다. 마주한 낯이 처참했으므로. 현기에 목전이 핑 돌았다. 악력 주어 지탱한 책상에서 요란한 소음이 울렸다. 그 모자란 낯이 참담한 낯이 예사처럼 손 뻗다가 우뚝 멎은 동작처럼 짜증이 나서. 회상의 어느 시간처럼 축을 잃은 몸을 받쳐 주겠답시고 흔들린 것도 닿지 못한 손도 서러웠다. 그럴 거면 움직이지나 말지 개새끼가. 앞에서 기절하든 쓰러지든 마저 튀기나 하지 왜.

#100 이름없음 2023/11/01 23:42:47

“너 진짜 내가 우스워?” “…….” “꼴 받으라고 이러는 건가? 목표 달성, 짝짝짝. 얼굴 좋아 보이네. 누구는 따라갈 수도 없는 외국에서 마음 놓고 행복하게 살았나 봐. 튀었으면 내도록 거기 붙어 살지 그랬어. 이왕이면 평생 안 보이게.”

#101 이름없음 2023/11/01 23:43:12

해묵은 감정과 언어가 난반사했다. 누수도 아닌 범람이다. 틀어막을 수도 틀어막힐 리도 없었다.

#102 이름없음 2023/11/01 23:43:54

“아… 나는 이딴 델 왜 왔지. 하필 오늘 왜 비가 와서.”

#103 이름없음 2023/11/01 23:44:02

고행의 끝은 기어이 낙루였다.

#104 이름없음 2023/11/01 23:44:13

“하필 오늘 왜 가을이어서.” “… 일아.” “하필 오늘 왜 마주쳐서…….”

#105 이름없음 2023/11/01 23:45:06

보통의 거리에서 호명만 이어졌다. 고해하자면 사 년 간의 몽중은 꼭 그랬다. 한 번을 다가오지 않고 멀어지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눈만 맞대는 장면이 예사였다. 오롯한 두 사람의 영화관. 한 필름을 아주 길게 늘여 맞댄 그 영화는 여전히 상영 중이었다.

#106 이름없음 2023/11/01 23:45:29

“수빈아.”

#107 이름없음 2023/11/01 23:45:53

그건 어떠한 결심이었다. 고동 없던 사랑을 쓸어 보낸 날. 하필 거세진 빗소리와 지나간 청춘의 메인 테마.

#108 이름없음 2023/11/01 23:46:00

“묵비권은 죄를 지었을 때나 행사하는 거고.”

#109 이름없음 2023/11/01 23:46:08

그러니 내 청춘의 시련은 네 몫이 온당함을 똑똑히 보이기 위해서.

#110 이름없음 2023/11/01 23:46:16

“너 나한테 죄 지은 적 없잖아.”

#111 이름없음 2023/11/01 23:47:07

망설이지 않고 거리를 좁혔다. 내도록 정지한 꼴이 우스웠다. 한 손을 들어 뒷목을 감쌌다. 고개를 당겨 맞춘 시선에 담긴 것은 단단히 비틀린 자신이었다.

#112 이름없음 2023/11/01 23:47:24

“아니야?”

#113 이름없음 2023/11/01 23:47:31

목을 끄는 손에 저항은 없었다. 가벼운 동작으로 입술을 물었다.

#115 이름없음 2023/11/02 11:16:50

>>114 주접은 가장 큰 원동력... 이 레스 하나가 오늘 한 여성을 살게 합니다 🥺

#116 이름없음 2023/11/02 15:00:56

체감은 숫제 프레임 끊긴 미디어였다. 깨문 입술이 망설이듯 개문하고 무른 혀를 쑤셔넣을 때까지. 사용자 심정대로 사나운 기색에 수빈이 움찔했다. 달래듯 얽어 오는 혀가 내처 물렀다. 유능제강이라는 성어가 지금 왜 떠오르는지. 불온한 생각이 잇따랐다. 나는 네가 어떻게든 아팠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그게 외부든 내부든 다를 건 없잖아. 내가 지금 너랑 좋아서 애인 놀음 부리는 줄 아니. 그렇다면 완전히 틀렸다. 일의 번잡한 머리는 노상 수빈을 다치게 하고자 골몰했다.

#117 이름없음 2023/11/02 15:01:05

“… 아.”

#118 이름없음 2023/11/02 15:01:11

그래서 힘껏 깨물었다. 비칠 피가 분수 같길 바라며.

#119 이름없음 2023/11/02 15:01:33

참 앞뒤 안 맞는 상황이었다. 먼저 입술 박을 땐 언제고 혀를 깨물어. 물론 이건 일이 생각한 수빈의 입장이었으니 다르다 한들 아쉽진 않았다. 더 나아가자면 어쩌라고. 넌 네가 가엾어? 나는 내가 가엾어. 이딴 새끼 하나 못 잊어서 허비한 사 년이 서러워.

#121 이름없음 2023/11/03 16:18:16

>>120 감사합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놓지 않고 쓰겠습니다...

#122 이름없음 2023/11/03 16:18:38

“해 봤는데, 적성은 아니더라. 연애질 하는 거.”

#123 이름없음 2023/11/03 16:18:56

한 발짝 물러선 일이 입을 문질렀다. 수빈의 잇새로 선혈이 언뜻 발로됐다. 새붉은 입술을 어쩔 마음도 없는 듯 수빈의 먹먹한 시선은 시종 일을 향했다.

#124 이름없음 2023/11/03 16:19:03

“너 왜 돌아왔는지 알 바 없어. 아니, 이젠 알고 싶지도 않다. 지쳤어. 4년 내내 너만 신경 쓰며 사느라. 몰랐는데 안 보일 때가 나았네 너는. 앞에 있으니까 체한 것 같고.”

#125 이름없음 2023/11/03 16:19:14

생득적인 기질이었다. 느꼈다면 반드시 뱉어야 하는 것. 어리숙한 시절에야 삼켰다 앓았지만 성년은 그러한 과도기보다 단단했다. 난사되던 물길이 기어코 자리를 찾았다. 스물둘의 우리는 해연이었다. 네 번의 계절은 불가해를 키웠으므로.

#126 이름없음 2023/11/03 16:19:39

“내 손으로 매듭도 못 지어서 내내 헤맸어. 너는 네 말만 전하면 다냐? 그러면 차라리 꺼내지 말지 왜. 평생 숨기고 사는 건 또 싫었어? 그래서 몰래 꺼내고 들키니까 튀고. 너만큼 회피형이 또 없어, 등신아. 남겨진 사람은 알 바도 아니라는 거지.” “… 그때는, 내가.” “변명 듣고 싶어서 하는 말 아니거든? 나는 너랑 다르게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냥 씹으면 되는 너랑 굳이 이렇게 얼굴 보는 건 화풀이 겸 매듭이라고.”

#127 이름없음 2023/11/03 16:19:56

말마따나 씹으면 되는 새끼랑 말도 섞고 입도 섞은 건 어떠한 확신. 맞물릴 때 허공에서 얽혔던 투명한 홍채에 깃든 애정의 반증.

#128 이름없음 2023/11/03 16:20:04

“그딴 식으로 살지 마, 수빈아.”

#129 이름없음 2023/11/03 16:20:12

향수는 향수로만 남기고자 했다. 사 년의 공백에도 여전한 감정을 확신한 순간. 그러니 이번에는 네가 앓을 차례라고.

#133 이름없음 2023/11/06 21:29:26

>>130 >>131 >>132 이렇게 무수한 감상이 쏟아질 줄 몰랐는데... 내내 글 쓰면서 살아온 사람으로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날이 추운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고 오늘도 내일도 재미있게 읽어 줘야 돼

#134 이름없음 2023/11/06 21:29:42

“다시는.”

#135 이름없음 2023/11/06 21:29:51

그리고 불현듯 자문했다. 여기서 종점인가.

#136 이름없음 2023/11/06 21:30:07

고별은 응당 무 자르듯 단칼이어야 옳다. 적어도 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발신자의 측면에서는 더더욱. 함축된 첨예한 비수들을 지수빈이라면 필히 이해했을 터였다. 종내 어떠한 필연마저 느껴졌다. 오늘은 묵은 유물을 청산하는 날. 그리하여 내일로의 걸음을 시원하게 뗄 수 있도록.

#137 이름없음 2023/11/06 21:30:16

그렇게 제1보를 딛은 순간, 팔이 휘청하는 것은 누구의 악력인가.

#138 이름없음 2023/11/06 21:30:22

“…… 제발.”

#139 이름없음 2023/11/06 21:30:36

잡힌 곳이 뜨끈했다. 문자 그대로 불쾌한 온습도였다. 몰랐는데 너 다한증 있었니. 의문할 새 없이 신체가 돌려세워지고 묶였다. 수빈이었다. 끌어안다는 표현이 어긋나리만치 절박했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 자조는 그 섬세하지 않은 동작에 궐기한 풍랑이 기여했다. 일은 덴 듯이 움칠대다 화급히 다른 마음을 먹었다. 첫 생각은 악력이 무슨 사진 찍다 셔터 부수는 거 아닌가. 잇따른 건 얘 키가 더 컸나. 그리고 최후는….

#140 이름없음 2023/11/06 21:30:45

“조금만 더 있다 가….”

#141 이름없음 2023/11/06 21:30:55

아, 우는구나.

#142 이름없음 2023/11/06 21:31:04

이건 나 때문이야? 내 어디가 널 아프게 했어? 애보다 광대한 증? 함축된 고별사? 그렇다면 급소를 찔린 거지. 네 급소는 4년 후에도 여전히 거기구나. 비로소 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혹은,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143 이름없음 2023/11/06 21:31:12

후자라면 넌 진짜 개새끼시발새끼좆같은십새끼, 전자라면 직선인 마음이 둘.

#144 이름없음 2023/11/06 21:31:24

수빈은 어깨에 고개를 파묻은 채 얕게 호흡했다. 역시 버릇은 수정되지 않는다는 명제가 정립됐다. 잡힌 팔목보다 더한 습도가 왼쪽 어깨에 내려앉았다. 한 뼘은 더 큰 체구가 간헐적으로 들썩였다. 사실을 내자면 조금 측은하고 많이 통쾌했다. 와중에도 가지 말란 소리를 비트는 심산이 미웠다. 조금만 더 있다 가라니. 그럼 내가 감긴 팔을 풀고 문간을 딛는 순간 영원히 작별이야. 넌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145 이름없음 2023/11/06 21:32:28

수동 측정 펄스 100. 아직도 이렇게나 좋아하면서.

#146 이름없음 2023/11/06 22:36:49

“지수빈.” “…….” “똑바로 말해. 가지 말라는 건지, 조금만 있다 가라는 건지.”

#147 이름없음 2023/11/06 22:36:58

수빈이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헤아릴 수 없이 얽히곤 했던 시선을 마주했다. 수빈은 저 눈을 알았다. 색소 옅은 담갈색 홍채. 깃든 기의가 투명히 읽히는 강직하고 곧은 사람의 눈을.

#148 이름없음 2023/11/06 22:37:07

이윽고 반추했다. 이미 열일곱에 만개한 애정에 관하여.

#149 이름없음 2023/11/06 22:40:47

명도 높은 기억이었다. 여름의 색채는 매양 엇비슷해 보는 눈을 피곤하게 했다. 교시는 아마도 이동 수업. 칠판에 비뚜름히 쓰인 행선지를 읽다 문간을 나섰다. 교실 소식도 모를 만큼 형성되지 못한 관계는 익숙했다. 딱히 그 사실이 수빈을 죽이진 않았다. 인류와 내가 상충하는 기질이 있나 보지. 날 적부터 기민하여 탐나지 않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다만 차분하고 정가한 것에 이끌렸다. 예시로는 무생물. 카메라. 필름에 박제된 적막 그런 것 따위.

#150 이름없음 2023/11/06 22:42:27

진보적 시대에 앤티크를 추구하는 생명은 도태될까. 아니라고 확답할 수 있겠다. 까닭은 진보적 갈애를 머금었기에.

#151 이름없음 2023/11/06 22:46:04

이동 중에 같은 반 애를 봤다. 일방적 시선이었다. 수빈은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걘 반대로 갔다. 신경 끄려고 했다. 5층에 머무른 20인승 기계를 기다리는 데에 지치기 전까지는. 진작 반에 처박힌 걔는 뭘 하는지 도통 나오지 않았다. 맞다 나오면서 뒷문 안 잠갔을 텐데. 외치기도 귀찮았고 미약한 호기심이 대가리를 치들었으므로 직접 거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다다르자 창 너머로 걔가 보였다. 텅 빈 교실에서 눈길에 운동장을 적막하게 담는 걔가.

#152 이름없음 2023/11/06 22:51:16

익몰한 시체를 발견한 기분. 하필 최초 신고자가 나일 수밖에 없는 부조리하고 귀찮은 일에 휘말린 듯한 불안. 찝찝한 기의를 해소하려 재게 걸음을 놀렸다. 기다리기도 귀찮아서 두 계단씩 뛰어 이동 수업으로 들어갔다. 종 치기 전에 돌아온 걔는 언제 죽었냐는 듯 시종 웃고 웃겼다. 난사되는 대화에서 이름을 건져 냈다. 유일. 드물게 거개에서 걔 좋은 애지 호평받았다. 지척에야 사람이 무수했고 일관되게 시끄러웠다. 활발하게 잘린 머리칼과 웃음기 가득한 눈망울. 진작 다른 영역으로 에둘러 선 그었다. 다만 이따금 의문할 뿐이었다. 너 그날 뭐에 숨이 막혔어? 왜 익사한 건데?

#153 이름없음 2023/11/06 22:52:27

여름의 끝, 우연에 의거해 시선이 맞물리고야 직감했다.

#154 이름없음 2023/11/06 22:52:36

그때의 너를 필름에 박제하고 싶다.

#155 이름없음 2023/11/08 12:31:56

그게 여타의 애정임은 계절이 순환하고야 깨달았다. 가치를 부여하니 전보다 곱절은 눈에 걸렸다. 잦지 않아도 이따금 일은 사라졌고 수빈은 공석을 보며 어렴풋이 동향을 추측했다. 그렇게 해가 돌았다. 봄의 초입에 내걸린 새 학년 명렬표엔 이름이 나란했다. 일방적 시선이 한 학년을 웃도는가 싶었다. 외사랑의 입장이라면 과연 호사인가. 의문하며 낯선 기의를 감각했다. 일이 불쑥 말을 붙이기 전까지는.

#156 이름없음 2023/11/08 12:32:13

걔의 화법은 능숙하고 비약적이다. 일견으로 면식 없던 관계도에 선을 그을 정도였다. 애정이 가시적이라면 저 애는 필시 선천이겠구나. 짧은 대화를 매듭짓고 팔랑이며 떠난 일을 복도 끝의 친구가 채근했다. 일방 통행을 단숨에 쌍방으로 돌릴 희망을 엿본 찰나. 장벽 없어 사랑스럽던 일은 만민에게 평등했다. 그리하여 거슬렸다. 채근하던 소음도, 그 소음의 근원도.

#157 이름없음 2023/11/08 12:32:32

네가 나한테 유일하면 좋겠어. 너는 나에게만 유일하면 좋겠어.

#158 이름없음 2023/11/08 12:32:40

문제는 그 애의 사랑이 광막하다는 거였다. 그 작은 몸에 얼마의 애정이 휘도는지 가늠도 어려웠다. 자각하면 불유쾌가 단전에서 치솟았다. 곁을 차지하고도 그랬다. 팔랑이는 손, 시혜적인 웃음, 그런 것들이 무상하리만치 창생에게 동등해서. 이쪽이 제일임을 익히 알아도 걔를 이루는 모든 것을 탐내지 않을 수 없어서. 가장 내세울 수 있는 반반한 무기로 재차 마음을 확인하곤 했다. 어쩔 수 없잖아. 날 적부터 원한다면 독식하는 성미였으므로.

#159 이름없음 2023/11/08 12:32:57

“난 너만 있으면 돼.” “…….” “왜 넌 나만 있으면 안 돼?”

#160 이름없음 2023/11/08 12:33:04

잠든 뺨을 찌르며 의문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161 이름없음 2023/11/08 12:33:13

분명 비틀린 감정이다. 수빈은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꺼낼 생각은 요만큼도 없었다는 말이다. 만듦새가 조악했고 형상이 저속했다. 정가한 네가 사랑스럽되 내 사랑은 사랑으로 정의할 수 없다. 그러한 낭만의 틀에 붓기에 죄책감이 따랐다. 다만 렌즈 너머의 일을 볼 때면 함께 출사하는 상상을 했다. 분명 박제된 걔는 어느 명소보다 찬란할 테니 그 말만은 언젠가 건넬 심산이었다.

#162 이름없음 2023/11/08 12:34:14

그리고 삼키지 못해 고해하던 10월의 아침. 잠들지 않은 일을 두고 수빈은 도망쳤다.

#163 이름없음 2023/11/09 15:47:21

날조한 명목에 본의는 가려지는가. 적어도 그 눈이라면 그렇지 않을 테다. 끝을 상정한 언어들에 내처 이해가 따르길 기도했다. 의도는 불순하나 그 눈에는 불결로 비치지 않길 바라며. 제발. 수빈은 거듭 되뇌었다. 타국에선 여명이 요원했다.

#164 이름없음 2023/11/09 15:47:41

캐나다 영주권자는 부모 중 모였다. 고국을 등지고도 하나뿐인 피붙이를 익애하여 건너오라 종용했다. 마침 도피처를 요하던 수빈에겐 기회였다. 세상 사람 다 죽고 둘만 남아 사랑하면 좋겠다는 뭔 미친 개싸이코 같은 말을 어물쩍 넘기기 적합한. 애당초 개싸이코 같은 걸 아니까 도망친 거였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야. 언어가 감퇴한 것처럼 반복했다. 이게 어떻게 사랑이야 걔가 남한테 주는 애정 한 자락 못 견뎌서 저주나 뱉어 놓은 주제에….

#165 이름없음 2023/11/09 15:48:12

그런데도 내가 너한테 지은 죄가 없어?

#166 이름없음 2023/11/09 15:48:52

“가지 말라고 하면 안 되잖아.” “야.” “그래도 돼? 내가? 그때, 그렇게 버리고 갔으면서. 사람이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167 이름없음 2023/11/09 15:49:02

귀국은 너 이제 슬슬 보고 싶지 않겠니 하던 모친의 영문 모를 권유. 지레 찔려 의중을 되물었다. 가벼운 어조로 답이 따랐다. 한국 보고 싶지 않겠냐구. 다들 그래 와서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고선 앓지. 게다가 넌 사 년째 안 갔잖아. 다들 이맘때쯤이면 보고 싶어 못 견디던데.

#168 이름없음 2023/11/09 15:49:15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발을 못 떼나, 내 사랑은.

#169 이름없음 2023/11/09 15:49:28

“근데 가지 말라고 하고 싶어.” “…….” “말하면… 안 갈 거야? 이번엔 내가 기다리면 되는 거야?”

#170 이름없음 2023/11/09 15:49:41

만나길 바랐다. 반면 얼굴 맞댈 자신도 없었다. 공항에서 잡은 택시에 거처 대신 학교 주소를 댄 건 해묵은 충동. 4년 전 뜰 때부터 실은 이러고 싶었다는 미약한 본의. 계절이 네 번 돌았고, 나 없는 졸업식에 네가 갔을 테지만, 그럼에도 오늘 네가 여기 있길 바란다고. 이것 또한 날 적부터 불온했던 욕심이라고.

#171 이름없음 2023/11/09 15:49:51

“4년 동안 달라진 게 하나도 없네.”

#172 이름없음 2023/11/09 15:49:58

일이 가는 한숨을 냈다. 수빈의 눈가에 쉴 틈 없이 매단 방울을 쓸었다.

#173 이름없음 2023/11/09 15:50:07

“넌 뭐가 그렇게 어려워.” “…….” “따라해 봐. 가지 마.” “가지 마.” “좋아해.” “좋아해….”

#174 이름없음 2023/11/09 15:50:49

반복하는 사이로 일의 팔을 쥔 악력이 느슨해졌다.

#175 이름없음 2023/11/09 15:51:01

“너는 이 두 마디를 못 해서 나 없이 살았던 거고, 나한테는 말할 기회도 안 줬던 거고. 그래서 내가 가을이면 거지 같은 기분 누르며 살게 했지. 네가.”

#177 이름없음 2023/11/09 21:57:23

>>176 내 취향만 담은 글이라 혼자 재미있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잦았는데 고마워 힘이 된다 그것도 엄청

#180 이름없음 2023/11/12 15:01:21

>>178 나도 이 레스 볼 때마다 웃어서 잇몸 말랐어 어떡하지 책임져 줘야겠다 네가...

#181 이름없음 2023/11/12 15:04:47

>>179 소중하게 읽어 준 것 같아서 내내 적어 준 레스가 기억에 남았어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드물고 특별한 일이지 사랑스러운 감상 달아 줘서 고마워 쓸 때마다 떠올라서 더 행복하게 썼어

#182 이름없음 2023/11/12 15:05:22

문득 지척이 숨을 죽였다. 해가 나고 있었다.

#183 이름없음 2023/11/12 15:05:30

“동갑이면 동갑답게 굴어. 연하랑 대화하는 기분 들게 하지 말고.” “응….” “여전히 좋아해?”

#184 이름없음 2023/11/12 15:05:38

맞댄 시선에 열기가 번졌다. 풍랑이 그쳤다. 곱게 여기던 눈매가 습한 확신으로 휘었다.

#185 이름없음 2023/11/12 15:05:45

“여전히 사랑해.”

#186 이름없음 2023/11/12 15:05:51

126144000의 별리였다.

#187 이름없음 2023/11/12 15:05:59

네가 기꺼워한 감정이 명명됐다. 그러므로 더는 의문하지 않았다. 수없는 기의가 범람하고 빚어진 형상을 사랑이라고 정의해 준다면.

#188 이름없음 2023/11/12 15:06:07

“그럼 됐다. 4년 떨어져 있었다고 장난 아니게 어색하네.”

#189 이름없음 2023/11/12 15:07:18

부드럽게 팔을 떼어 낸 일이 우산을 접었다. 일견 예사로워도 귀 끝이 온통 새붉었다.

#190 이름없음 2023/11/12 15:07:27

“완전히 귀국이야, 아니면 기착이야?” “귀국이야. 이젠 안 나가.” “다 정리하고 왔어?” “지금 정한 건데.” “뭐?”

#191 이름없음 2023/11/12 15:07:36

일이 황당하게 수빈을 돌아봤다. 눌러앉을 계획치곤 부피 적은 캐리어가 참을 방증했다.

#192 이름없음 2023/11/12 15:07:49

“수빈아, 내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다짜고짜 결혼부터 꺼내면 어떡하냐? 외국은 무드 중시하지 않아? 너 사실 한국 어디 박혀 있다 온 거지?” “겠어? 씹…. 네가 여기 있는데 내가 어딜 나가.”

#193 이름없음 2023/11/12 15:08:17

일순 손끝이 찌릿했다. 말단에서 피어난 전류는 이윽고 전신을 휘돌았다.

#194 이름없음 2023/11/12 15:08:33

“야, 네가 그러니까, 좀….” “좀?” “… 됐다. 외국 물 헛으로 먹고 온 건 아닌가 보네.”

#195 이름없음 2023/11/12 15:09:29

격조한 기간이 길었다. 사 년의 틈은 우리가 모를 서로를 키우기 적절했다. 감정이 상통한들 분명 어긋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저것 보라지 지금도 낯간지러운 멘트 치는 모습하며 한 뼘은 더 자란 키하며 허리를 언뜻 스치는 머리칼까지. 눈에 설익었고 나아가 심란했다.

#196 이름없음 2023/11/12 15:09:36

“물어볼 거 있는데.” “응, 뭐?”

#197 이름없음 2023/11/12 15:09:42

잇따라 좁혀진 거리는 온전한 수빈의 의지였다.

#198 이름없음 2023/11/12 15:09:49

“몇 명 만났어?”

#199 이름없음 2023/11/12 15:09:57

다시 시선이 맞물린 순간, 그 눈에 빼곡히 들어찬 건 익히 아는 기의라.

#200 이름없음 2023/11/12 15:10:14

“…… 어?” “나보다 예뻤어?”

#201 이름없음 2023/11/12 15:10:22

찰나에 격세감 대신 오롯한 고양감이 범람했다.

#202 이름없음 2023/11/12 15:10:47

“어땠을 것 같은데?” “제대로 대답해.” “셀 수도 없이 만났고, 다 너보다 예뻤다면.” “… 야.” “질투해?”

#203 이름없음 2023/11/12 15:11:35

속삭임 끝에 하순이 물렸다. 다급한 입질 뒤로 물기 가득한 혀가 침입했다. 시초에 둘 곳 없던 손길이 이젠 뒷목을 감쌌다. 누구한테 옮았는지 번연했다. 비집고 들어선 주제에 허락을 요하듯 입천장을 간지럽혔다. 가당치도 않지. 일은 혀 밑을 건드리다 어렴풋한 쇠 맛을 인지했다. 종전의 흔적이었다. 잇새로 웃음이 샜다. 집중하라는 듯 혀가 빨렸다. 질척이는 소리에 신경이 휘발됐다.

#204 이름없음 2023/11/12 15:12:21

“거짓말.”

#205 이름없음 2023/11/12 15:12:40

숨 고르며 겨우 낸다는 소리가. 일은 잠시 연하가 취향이었나 고민했다. 아무래도 그냥 얘가 취향인 것 같지. 나름의 결론은 참인 명제였다.

#206 이름없음 2023/11/12 15:12:51

“맞아. 거짓말이야.”

#207 이름없음 2023/11/12 15:12:59

까닭에 일은 순순히 자백했다.

#208 이름없음 2023/11/12 15:13:08

“이것도 나보다 못했지.” “뭔… 너 잘하는 건 어떻게 아는데?” “네 얼굴을 봐. 모를 수가 있는지.”

#209 이름없음 2023/11/12 15:13:20

내 얼굴이 어떤데. 확인하려다 말았다. 추후의 정신 건강에 해로움은 자명했기에.

#210 이름없음 2023/11/12 15:13:29

“… 연애는 적성 아니라며. 그거 핑계로 먹버하지 마. 내가 잘할게.” “너나 튀지 마. 할 말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하고. 이번만 봐주는 거야. 다음은 없어.”

#211 이름없음 2023/11/12 15:14:22

뒷말은 삼켰다. 연애가 적성에 맞지 않음은 사실. 다만 내 적성은 너로부터 기인한다고. 이것까지 불었다간 정말 재회 초일에 자멸이 목전이었다.

#213 이름없음 2023/11/12 20:41:21

>>212 노렸는데 알아 줘서 좋다... 그래도 죽지 마 죽진 말고 ㅠㅠ 결말이 거의 보이는데 여기까지 쓸 수 있던 게 다 레스주가 봐 준 덕이야 고마워 원체 금방 질리는 성미라 이 글도 버릴 성싶었는데 보내 준 감상이랑 마음들에 매듭까지 지을 수 있을 것 같아 감기 조심하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

#214 이름없음 2024/01/27 14:03:37

"유일아."

#215 이름없음 2024/01/27 14:04:15

일은 가늠했다. 저 호명에 색채를 표상한다면 어떤 빛깔일지.

#216 이름없음 2024/01/27 14:10:13

"나 좀 재워 줘." "… 방금 사귄 애인한테 이게 할 소린가?" "알잖아, 갈 데 없어. 오랜만에 와서. 그리고…."

#217 이름없음 2024/01/27 14:12:53

있대도 안 갈 거야. 망각했던 엄한 고집이 여기서 발로됐다. 드물게 단호한 어조였다. 어이가 출타한 일이 입을 벌렸다. 뒷말을 부연한 건 역시 수빈의 성음이었다.

#218 이름없음 2024/01/27 14:15:56

"떨어져 있기 싫어." "……." "이미 4년을 그렇게 보냈는데." "얘 봐라, 진짜." "너도 그렇잖아. 아니야?"

#219 이름없음 2024/01/27 14:19:48

게임이라면 벌써 케이오가 목전이었다. 눈을 내리뜬 수빈이 여상히 쐐기를 박았다.

#221 이름없음 2024/01/27 14:20:45

"적어도 난 그래."

#222 이름없음 2024/01/27 14:22:31

>>220 동접?! 이 스레 완전 오랜만인데... 신년 잘 보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