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얀종이

창작소설 2024/07/07 03:18:09

#1 이름없음 2024/07/07 03:18:09

단편소설 문장 짧은 글귀 오로지 나만 적을 수 있는 내 종이

#2 이름없음 2024/07/07 03:24:40

사랑이 고팠다. 언제부터였는지 어떤 계기때문이었는지 이젠 알 수 조차 없었다. 내 마음은 텅 빈 궤짝같았다. 안에 구멍이 뚫려 무언갈 넣어도 금방 빠져버리는, 그런 낡은 궤짝. 아무나 붙잡고 날 고쳐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원망받을까 두려워 섣불리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나는 미움받는게 죽는것보다 무서웠으니까.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니, 원래 타인은 타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당연한 이치였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외로웠다. 사랑이 고팠던 아이는 커서 사랑이 고픈 어른이 되었다.

#3 이름없음 2024/07/07 03:42:39

선배를 좋아했어요. 열여덟살 첫 동아리 활동에 만났던 선배. 전 그 날 선배의 첫인상을 평생 잊지 못해요. 까맣고 두꺼운 머리칼, 은은하게 빛나던 두 눈, 곱게 잘 자란 복숭아같은 피부. 사랑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사람이었어요. 자연스레 시선은 언제나 선배에게 머물러 버렸어요. 혹여나 들킬까 노심초사하며 흘깃, 흘깃. 두근거리던 심장마저도 선배를 향해 있었어요. 뙤약볕에 정신을 차릴 수 없던 한 여름, 매점으로 가는 도중 선배를 만났었어요.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걸어가던 선배는 제가 알던 선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 신선했어요. 곧바로 아는체 하고 싶었지만 땀냄새가 날까봐 그러지 못했어요. 끈덕지게 달라붙은 앞머리, 후줄근해진 셔츠. 누가봐도 볼품없어 보일게 뻔했어요. 슬쩍 눈치를 보며 재빨리 지나쳐가려고 했지만, 선배는 애석하게도 날 발견했어요. 두 눈을 빛내며 나에게 손인사를 건네는데 차마 그 모습을 미워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덥썩 손을 붙잡곤 먹으라며 건네주던 포카리스웨트를 잊지못해요. 차가운 방울이 몽글몽글 맺힌 병을 양손에 쥐어주며 화사하게 웃어 주었었죠. 사실 전, 그 날 햇살보다 선배의 웃음이 더 눈부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