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한 좋은 일이 일어난다.
죽을 때까지 살아갈 생각이다
요즘은 AI가 발전할수록 무능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연락하기에는 너무 오랜 간격이 생겨버린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로 숨 닿을 거리에서 지낼 땐 모두 꿈이 있어 보였는데, 그 중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처음으로 고집을 부렸을 때, 날 만류하던 사람들을 보며 저런 어른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벌써 난 그런 어른이 되고 있다.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누군가를 만류하고 싶어지는 어른.
꿈과 낭만을 뒤로 하고 돈이 오간다. 얘는 얼마. 쟤는 얼마. 글쎄, 나는 얼마짜리 사람일지. 돈에 매여 살고 싶지 않았는데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내가 살 수 없는 건 괜찮다. 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살았으면 한다. 아마도 아직 사는 법을 잘 모르는 엄마, 아빠, 오빠. 물론 나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 있겠지만. 나의 엄마와 아빠는 점점 더 힘을 잃어갈 것이고 오빠는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 어딘가 고장난 가족들. 그래도 고장난 채로 계속 내 옆에서 살아주었으면 한다.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은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들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자꾸만 빙빙 도는 느낌이라고. 그러게, 남들이 본다고만 생각하면 나 또한 글을 쓰다가도 손이 턱턱 막힌다. 하지만 지금같은 순간에는 막히는 일이 잘 없다. 남들에게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을 싹 다 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토록 고집을 부려 걸어온 길을 이제와 후회하고 있다는 말. 꿈이 사라지고 있다는, 혹은 벌써 사라진 거나 다름없다는 말을. 인정하자. 이제는 꿈이 없다. 너무 멀어져 버렸다. 딱히 다른 사람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아무것도 끊어내지 못하는 내가 가장 큰 문제다.
결국 누가 나를 받아줄 수 있을까 떠올리면 돌고 돌아 지금의 가족밖에 없다. 내가 그렇게 떨쳐내고 싶어하는 가족들. 온전한 방 하나 주지 못하고,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무관심하고, 육중한 몸으로 내 인생을 깔아뭉개버린 가족. 그 생각만 하면 온몸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기분이다. 같이 쿰쿰한 집 안에서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채 썩어가는 듯한. 그 기분이 싫어 독립을 하고 싶다가도 돈이라는 게 얄궂어진다. 지금 가족들을 피해 나오면 나중에 가족들을 부양할 수가 없을 것만 같다. 가족이 영원히 나를 붙잡는다. 그 누구도 내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지만.
오른손이 시큼시큼하다. 잠을 자야 하는데 시계도 안 보고 생각을 쏟아내기만 했다. 내일의 운동을 위해 이만 스포츠웨어를 빨아야 한다.
아주 오래 전부터 노래방에서 불러보고 싶었던 내 안의 폐허에 닿아를 드디어 한곡반복으로 듣고 있다. 아주 가벼운 변화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 아직까지는 후련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대표. 지긋지긋한 남자친구. 그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나.
다른 사람의 글을 많이 읽고 내 이야기를 자주 써야 어휘력이 늘어난다는 글을 읽었다. 마음의 여유는 물론이거니와 시간적 여유도 녹록치 않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글을 자주 쓰자.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일기를 자주 쓰자. 그제 세상이 다시 한 걸음 바뀌었고, 내가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내 세상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지긋지긋하다고 평하긴 했지만 대표님의 말은 정확하다. 이제 감에 의존해서 일할 순 없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만큼의, 어쩌면 그보다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모든 방면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내 일을 대하자. 그리고 내가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에는 일이다. 내가 원하고, 그와 동시에 나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은 일터밖에 없다.
불과 저번 주만 하더라도 날 받아줄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냥… 정해두지 말자. 그 어디든 나 하나만 온전한 모습으로 나와 함께하고 있어준다면 그만이다.
자우림의 윤아 언니가 SNS에 시시콜콜한, 그러나 결정적인 일상의 순간들을 짧은 문장으로 공유해 주었다. 이유는 그냥. 그냥이라는 두 글자 사이사이에는 사무치는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나는 왜 아직도 살아가는가? 그 답 또한, 그냥. 모든 사소한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서.
사소한 것들을 적어보자. - 새롭고 흥미로운 보드게임을 몇 개 배웠다. - 좋아하는 퍼즐북의 새 시리즈를 아껴가며 풀고 있다. - 10년 넘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다. - 오늘 귀여운 새끼 강아지를 두 마리 연달아 보았다.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24시간 무인카페의 선곡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일이 되면 다시 무너질 마음이더라도 오늘만큼은 최대한 단단하게 세워두도록 하자. 오늘의 일기 끝.
p.s. 기분이 안 좋아질 때 볼 것. https://youtu.be/7atZfX85nd4
실력 있고 꼼꼼해 보이는 신입이 들어왔다. 행복하다. 최근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의 퀄리티가 전보다 높아졌다. 반면 나의 나스닥은 그대로 수직 하락. 경제가 안 좋은 건가. 이 작은 회사가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는 신호인 걸까.
작년에 쓴 글에도, 제작년에 쓴 글에도 나는 계속해서 나를 받아들여 줄 영원불멸의 질긴 인연을 원하고 있다. 살면서 몇 기대해 보았는데 다들 신통치 않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결론은 항상 똑같다.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게다가 특히, 요즘은 대표님이 말하는 종류의 정을 순순히 믿어서는 안 된다.
그건 아주 교묘하고 위험한 정이다. 당분간 스위치는 꺼둔 채 살아갈 테니 일한 만큼 돈이나 잘 챙겨주시도록...
흥. 퉤, 다.
대표님과는 그린나이트의 결말에 대한 감상이 크게 엇갈린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나와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허리에 줄을 묶은 채 반대방향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기분.
이제 와서 제목을 바꾸고 싶어지는데. 지금은 딱히 저런 기분은 아니다. 저런 생각이 들어봐야 별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오래 사는 거면 오래 사는 거지.
아주 오래오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에 파묻혀 살아야겠다.
올해는 포멀한 옷을 많이 사야지. 가진 거라곤 회색 후드티, 또 회색 후드티, 그 옆에 회색 후드티...
https://www.youtube.com/watch?v=nvIGCMhjkvw 이 영상의 모든 요소가 좋다.
그리고 회색 후드티는 사랑스러워. 노동복으로 이만한 게 없다.
드라마 현장을 가면 회색 후드티, 또 회색 후드티, 그 옆에 회색 후드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아무 생각 않고 바쁘게 용의 꼬리 역을 하던 시절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 수많은 회색 후드티들.
그렇다고 지금을 뱀의 머리라고 하자니 또 그건 아니고. 그래도 비단뱀의 허리쯤은 되는 것 같다.
도망치고 싶다. 평생을 이런 불안감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오빠를 죽일 만큼 미워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내 삶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동시에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립지만 이제는 만날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범함에 대한 감각을 끌어내는 사람들을 잘라내야 한다. 그렇게 아무도 남지 않을 때까지.
아주 오래 전에, 가끔은 비열해 보일 정도로 현실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특히 주로 뒤에서 흐르는 돈의 흐름이나 타인에게 본인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감각을 타고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아직도 무당이나 귀신 따위를 믿는다. 그 친구를 떠올리면 똑똑하게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의심스러워지곤 한다.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사는 게 제일 똑똑한 거라면 나는 평생 바보다.
올해는 게임을 싹 다 끊기. 실크송이 나오면 그것만은 논외로 하고.
https://youtu.be/QxUBLArs_us?si=zs4BD54dP--sCn6J 베러맨 예고편만 보면 딱히 끌리진 않지만 이 씬 연출은 정말 좋다.
어쩔 도리 없이 이 외로움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하지만, 지난 몇십 년 동안 같은 고민을 반복한 결과 끝내 나는 타인에게 닿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아무 걱정 없이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던 시절이 그립다. 걱정이 많아질수록 공상을 하던 아이는 사라지고 현실에 발 묶인 채 살아가게 된다. 달, 담장에 비친 그림자, 비 오는 날 도로에 비친 자동차 불빛 같은 걸 들여다보지 않고. 그 모든 걸 걷어내고 이제 내가 신경쓰는 거라고는 결국 돈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조그만 화면 속 숫자 뿐이다.
뭐가 됐든 행복해지는 일을 하자. 브랜드 필름은... 잘 모르겠다. 행복하지 않다.
시덥잖은 유튜브 콘텐츠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더라도 새로운 이야기를 꾸준히 써볼 것. 다만 이제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 찾아낸 것들을 모아 새로이 잘 벼려내는 것도 훌륭한 능력이다.
며칠 전 대표님에게 서러운 것들을 조금씩 토해내고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고로 제목을 바꿨다.
다른 일을 시키고 있으면서 클라이언트한테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티를 내면 안 되는데 아득바득 어떻게든 둘 다 해냈더니 님도 내가 그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까먹으면 어떡해요.
남자친구라고 있는 건 '그건 알아서 처리하고, 난 잘래' 선언. 아무도 내 일을 존중하지 않고 나도 내 일에 존중감은 커녕 권태랑 이제는 역겨움까지 느껴지는데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맞나?
그래도 재밌자고 이 일을 하는데 요새는 재미도 없고 아주 돈만, 돈 생각만 가득하다. 돈 적게 주네. 돈 덜 써야지. 돈 더 달라고 하네. 돈 더 들겠네. 여기 돈 모자란데 돈 어디서 뺄까. 내가 PD도 아닌데. 나야말로 돈을 적게 받고 일하면서도 남들에게 돈을 적게 줘야 한다는 사실을 굽신거리며 말하는 데에는 이제 도가 텄다. 왜 맨날 남는 거 없냐. 돈도 적게 주면서 바라는 건 왜 이리 많냐. 이 업계는 대체 왜 이러냐.
일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타고나길 돈 많은 사람들이 이길 때가 많다. 유학. 좋은 옷. 좋은 냄새. 좋은 인상. 값진 브랜드에 대한 순수한 호의와 해박한 지식. 구태여 관심 갖지 않더라도 주변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었던 지식들. 워킹 클래스는 감히 따라잡기도 힘든 것이다.
삼성 광고를 하려면 애플워치를 쓰다가도 하루만에 갤워치로 척 바꿔버리는 정도의 센스와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아무래도 그런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
https://youtu.be/dNMp2mPN0Do?si=uElCynC_HPsfSTQq 정신 테라피.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테라피.
https://youtu.be/gz9BRl7DVSM?si=iz7rbNOPMgExO7W_ 너무너무 좋자나. 요즘 같은 때라 더 소중하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죽은 듯 잠든 얼굴들을 마주한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만나지 못한다. 그 얼굴들이 쌓이다가, 쌓여가다가, 어느 날이 오면 관 속에서 잠든 듯이 편안하게 눈을 감고 있을 거다. 그러면 난 엉엉 떼를 쓰다가도 그들의 옆에 다가가 모르는 척 작게도 불러볼 거다. 불안한 인내를 안고 불러보면 여느 밤처럼 깨어나 주기라도 할 듯이.
언젠가는 두 사람 모두 다시 깨어나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살아가야 한다. 어린 나의 약속은 관 속에 함께 묻어둔 채.
이 집이 아주 큰 관일지도 모르지. 사람들은 줄기차게 살아가는데 우리는 이 나무 벽 안에서 다같이 죽어가고 있다. 새로운 생명은 아무 데도 발 디딜 곳 없다. 개념적으로만 그랬으나 지금은 물리적으로도 그렇다. 생명을 준비할 장기가 없다.
자식운을 일에 할애한 관계로, 몸이 멀쩡했어도 아기를 가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남의 아기를 보며 행복감에 겨워 눈을 떼지 못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면 가끔 가슴이 저릿할 때도 있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평생동안 남의 행복이기만 할 거다.

이러나저러나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일하다가 발견한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 한 장.
영화 세 편 연달아 보면서 뒹굴뒹굴 하고싶다.
탈출이 답이다. 대표는 확실히 비정상적인 사람이 맞다. 지난 몇 년 간 왜 그모든 싸인을 무시하고 살았나. 이젠 진짜 정말로 이직을 해야 할 때다.
오래도 일했다.
나가면 손절할 거다.
모르고 있었다고 생각하셨지만... 으로 시작하는 그러나 사실은 모든 이가 아는 그 말을 기어코 꺼내 입을 다물리고 다시는 사적으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야지.
누구나 A의 보조만 시키고, 다른 사람이 A보다 좋은 결과물로 A의 자존감을 해할까 본인이 직접 나서 견제하질 않나, A의 비단길을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게 포트폴리오를 쌓아주고, 언제나 A에게 쩔쩔매고, A 스스로도 그걸 잘 알고. A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다른 모든 것을 망치고 있는 이 곳을 떠날 거다.
그래도 챙길 건 챙기고 가야디.
마음을 다리미로 좀 펴내고 싶다. 그 어느 때보다도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다. 아팠던 뒤로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도, 내가 찾지도 않으리라 생각했던 충동이 머리를 윙윙 울린다. 멤돌다가 터져나간다. 그 모든 잔해를 견디기가 이제는 힘에 부친다. 다시 평생을 이 충동과 살아가야 할텐데. 생각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부터 한결같이도 맑고 마음이 편해지는 여자가 이상형이다. 그래서 조금 좆됐다. 이 또한 나를 찾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마음이었는데. 하지만 정작 원래 있던 것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대표가 A를 사랑하는 이유를 이제야 이해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좆됐다. 대표를 이해하고 싶지도, A를 받아들이고 싶지도,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싶지도 않다. 이게 한꺼번에 다 무슨 난리냐.
호기심과 기대 정도로 이해해두면 되겠다. 궁금해지는 날들은 금세 지나가고 그 후에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다.
몇 친구들에게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있다. 가끔은 그게 부럽기도 해.
엉망인 얼굴로 웃고 소리지르고 울고 깔깔대고
내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 좋아했던 배우가 스스로 명을 달리했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해가 지나고 날이 갈수록 마냥 뿌옇던 그의 고단한 마음이 더욱 투명해진다.
그래도 오래 살아갈 거다. 그건 내가 이 좁은 집을 떠날 때나 세상을 떠날 때나 그 누구보다도 엄마가 아주 슬프게 울기 때문일 거다. 다만 엄마가 떠나면 나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거다. 지켜지지 않을 말이라도 일단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마음이다.
행동이 감정을 따르게 하지 말자. 사람들에게 미소를 자주 보여줄 수 있도록 하자.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고 늦지 않을 때쯤 안부를 묻자.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음 깊숙이 느낄 때조차 그로 인해 허무해 하기보다 마음 놓고 모든 것을 더 열렬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잊기 힘든 순간이나 향, 목소리나 기쁨 같은 걸 더 모아 빈 가슴을 채우자.
내게 이제까지 무슨 일이 있었든 거기에만 매여 한 번 뿐인 삶을 비관하고 싶지 않다. 남의 탓을 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내 탓만 하며 살고 싶지도 않다. 다시 꽃이 피면 걱정 없이 자전거나 타러 나갈 수 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라고 말하고 벌써 미소를 잊은 월요일.

불안하면 새끼손가락을 들어!
그래도 용이라면 용 꿈을 꿔서 그런가 오늘 하루는 꽤 좋았다.
복권이라도 살 걸 그랬네. 끔찍하게 바쁜 와중에 한 숨 돌릴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요즘은 나 자체가 그리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작업자는 못 되더라도,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과 여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걸로 만족스러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기본이나 그 이상을 하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 없다. 돌고 돌아 결국은 보는 눈이 가장 중요해진다. 틈 날 때마다 취향을 아주 날카롭게 벼려내는 연습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아주 많이 담자.
집은 떠나지 않기로 했다. 엄마를 두고 민들레 홀씨처럼 훌훌 떠나버릴 수는 없다. 지금의 집 또한 뭐랄까, 다시 안식의 공간이다. 벗어나고 싶어 그토록 괴로워했던 썩은 나무 관이 아니다. 집 안에서는 나와 가족들, 그러니까 살아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살아간다.
그리고 몇 번이나 얘기했지만, 계속해서 살아갈 거다. 올 한 해 내가 계속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있을 거다!
현관문, 그 전의 계단 몇 단, 그보다 더 전에 있는 작은 은빛 문. 외부 세계와 우리의 사이를 막아주는 그 문의 양 옆에서 엄마가 잘 가꾼 화분들이 수호신처럼 나를 훤히 내려다본다. 나도 그들을 올려다본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가. 가만히 바라보면 가로등 빛에 금새 눈이 멀고, 비는 진작 그쳤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촉촉한 실루엣이 보인다. 잎사귀 위에 각자 자리를 잡은 물방울들이 날카롭고 세밀하게 반짝인다. 다른 빌라 창문 너머로 어슴푸레한 누군가의 그림자가 번져 보인다.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지옥문처럼 느껴지던 현관문이 사랑스러워진다.
집에 보내줘.
돈을 최대한 많이 벌어두고 싶다.
죽기 전에는 사막에 홀로 서보고 싶다. 혹은 죽기 직전에 그 풍경에 있어도 좋겠다. 아무도 나를 바라지 않는 곳에서 나 또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긴 긴 시간을 보내고 싶다.
https://youtu.be/JyZK5gP-na4?si=mVerB4vlM-qXhmVy 너무 조코.
다들 결혼 멈춰. 축의금을 지키게 내 주변 사람들만 좀 참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남자친구랑, 아니 애초에 그 누구와도 좋은 소식 들려줄 생각 없으니까 그만 물어봐 줘.
남자친구만 없으면 정신건강이 훨씬 좋아질 것 같다. 역시 연애는 안 맞는 듯. 왜 이렇게 길게도 끌었는지?
힐링을 위해 할로우 나이트를 켜고 딥빡하며 끄다.
깊게 잠드는 것에 집중하자. 꿈도 꾸지 않도록.
잘 보면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는 것도 같다. 괴로운 기억들을 뒤로 하고 여전히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의 친절을 마음 깊이 새길 줄도 안다. 묵묵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음에도 불구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것들은 그 모든 친절함에 대한 기억이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의 친절이 나와 평생을 함께하고 있다.
라고 한껏 미소를 지으며 비닐봉지를 건네주는 편의점 사장님을 보고 생각했다. 편의점 안의 손님들도 사장님과 유쾌하게 사담을 나눈다. 엄마도 그런 사람이었다. 모든 이가 죽어가는 병실을 환하게 밝혀주는.
요즘은 너무 바쁜 나머지 대화를 나눌 일이 많이 없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털어놓으면 모든 불안이 사라진다. 그 지옥같은 현관문에 도사리고 있던 갖은 악몽들이 엄마와의 대화로 아무렇지 않게 씻겨 내려갔다. 내가 있어도 될 곳은 어디인가,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불안해 할 필요 없이 엄마는 당연스럽게도 나를 필요로 한다. 늦지 않은 때에 엄마와 여행을 가야겠다.
인생이 어떻게 되려나.
걱정했던 모든 게 괜찮아지고 있는데 되려 부담감에 토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2년이나 나의 존재를 거부했던 사람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어주며 커피를 내어줄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커피도 멜론도 무기력도 돈도 주기적인 쓰라림도 다 집어치우고 싶다. 아무런 잡념에도 방해받지 않고 일 생각에만 몰두하고 싶다.
끝내 시간이 우리 모두를 죽일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감독, 그 어느 축에도 들지 못하지만 자비에 돌란이 사라진 방식에 대해서는 연민을 느낀다. 스무 살 남짓의 나이에 를 만든 천재성과 총기는 저물고 빈자리에는 무기력이 들어선 듯하다. 본인이 시네필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 부류의 허영심 가득한 사람들은 일련의 트렌드에 따라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다가, 곧 사실은 썩 훌륭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덧붙였고, 이어 하나같이 칸의 오버스러움을 지적했다. 이 칸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타고 그 당위성에 대한 의혹이 매즈 미켈슨의 눈빛과 함께 전 세계의 인터넷을 떠돈 것이 그의 나이 불과 27세의 일이었다. 욕먹기 딱 좋은 얄미운 짓을 좀 많이 하긴 했지만, 그대로 시들어 버리기에는 너무 가혹한 나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자아도취가 심하다고는 해도 그 나이에 그만큼의 성공을 맛봤으면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정작 나도 자비에 돌란을 싫어하는 건지 두둔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냥 문득 세상이 그를 다룬 방식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정아는 대중에게 구애하는 마음으로 를 썼다고. 아무리 개성있고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도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애절함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해외의 어느 VFX 작업자는 본인의 예술적인 작업물보다도, 자신이 사막을 걷는 모습을 1인칭 시점으로 찍은 짧은 영상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고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무엇일까. 단 몇 사람의 마음도 온전히 얻어내지 못하는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생각해본다.
끝도 없이 싱숭생숭하네.
이런저런 얘기를 잔뜩 나누었으나 끝내 내 마음은 정해지지 않았다. 시간은 여전히 우리를 죽이고 있다.
틱틱붐을 영화로 봤을 때나 뮤지컬로 봤을 때나 늘 작은 째깍 소리에도 눈물이 흘렀다. 내 인생 전방향으로 시한폭탄이 깔려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을 마칠 때, 하늘에서 노란 볼풀 공이 잔뜩 쏟아졌으면 좋겠다.
https://youtu.be/nVbPr7x_Ws4?si=mSAutYK6EcBLs3wu 결혼은 안 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하게 된다면 이 씬의 모든 요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다.
시간이 엄마를 죽일 거다. 아빠도. 붙잡으려 하는 모든 게 흙으로 돌아갈 거다.
https://youtu.be/HyMm4rJemtI?si=tlIvKNNa0f39vXuB 모든 게 제자리로.
https://youtu.be/_Jtpf8N5IDE?si=CFBBHhPHwLSYz1NS 누가 영원히 살고 싶어 할까.

이거 하고 자야겠다.
https://youtu.be/WK7qh4NYj40?si=VFq5oFIYC2YvTRp4 뭘 잘못한 걸까요?
https://youtu.be/mPjUSgTw2Wk?si=-qHjZmcoAhJ4PgNm 살아있으면 잘 될 거야.
>>103 손끝이 부르틀 때까지 흙을 그러모아 꼭 쥐고 잠에 들 거다. 매일같이 다시는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잠들어도 멈추지 않고 지긋지긋할 만큼의 내일을 맞이할 생각이다.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싶은데 정확히 그 위치에 벨이 달려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어제 L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귀가하는 전철 안에서 언제나처럼 질질 짰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잘 안 울게 될 줄 알았는데, 다들 어디선가 혼자 울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L은 나의 상황에 자신의 경험을 투영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아를 짓누르고 삶을 망쳐버리게 된 경험을.
K를 마음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나 자신을 더 사랑한다. 내 가족, 내 목소리, 내 행동, 내 능력, 내 경험, 내 결함, 그 외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죽일 듯이 미워하고 또 사랑한다. 이들을 짓누른 채 살고 싶지 않다.
L과 가까이 지낸지 몇 년 됐지만 L이 당시의 경험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내어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대가로 나는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인가. L의 경험과 비슷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K를 끊어내는 것? 그렇지만 L과 K는 아무래도 무관하다. L이 나에게 무언가를 내어주었다거나, 그 화답으로 나 또한 무언가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도 나만의 착각일 수 있다.
https://youtu.be/IZI1INOARtc?si=V2YhHf1KwXF1vwh8 제발 내려가기 전에 볼 수 있었으면.
이름을 지었다. 본명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어제 새벽에 오랜만에 B 선생님을 만났다. 징그러울 정도로 민첩한 그의 몸놀림에 숨을 참고 30분간 대치했다. 나와 선생 사이에 마치 30년같은 30분이 흘렀다. 결국 그는 서랍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나의 어떤 회유와 겁박에도 아랑곳 않은 채... 감탄스러울 만큼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가 향한 곳에 블랙홀 내지는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틈이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퇴근. 퇴근시간이 B 선생님의 출근시간과 겹친다. 젠장이다.
미쉐린 가이드의 미쉐린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미쉐린이었다니.
해피엔드 너무 좋다. 어떤 방식의 삶을 택하든 (혹은 택할 수밖에 없든) 결국 즐거워질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점심으로 종이팩에 포장된 김밥을 골라 재료 하나하나를 느끼려 애쓰며 씹어보았다. 가지각색의 재료들이 어느 하나 튀는 부분 없이 한 데 어우러졌다. 아이들이 밥알 하나하나 마음에 꾹 눌러가며 씹었을 김밥의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김밥을 먹는 내내, 영화 속 아이들이 소중한 시간 속에 영원히 멈추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상충했다.
돈만 잔뜩 바른 저급한 작품들이 판치는 와중에서도 아직 이런 보물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포기하지 않게 되는 듯하다.
더 플랫폼의 속편이 나왔다는 소식. 그렇게 깔끔한 마무리를 지어 놓고 속편을 낸 것에 1차 띠용, 넷플릭스 제작이라는 것에 2차 띠용, 처참한 별점에 3차 띠용 총 3띠용을 달성했다. 좋은 기억을 망치고 싶은 게 아니라면 평생 볼 일은 없을 듯.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애정을 느낀다. 요즘은, 특히 늙어가는 나의 어른들에게.
행복이든 고통이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더라도 끝은 온다. 기억도 관계도 의미도 전부 희미하게 옅어질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최대한 천천히 흐려지도록 진하게 칠해두는 것. 매 순간과 모든 관계에 몰입하며 살자. 기필코 끝이 오고 말 테니까.
책을 잔뜩 사두고 영 읽지 않는다. 를 손에 넣어 읽어보는데 먼저 자리하고 있던 영화의 플롯과 이미지가 되려 몰입을 방해한다. 책을 보고 영화를 한 번 더 다시 보는 게 좋을 듯 하기도 하다.
K와 L에게 갖는 애정의 종류는 크게 다르다. K와는 주로 나의 한심한 부분들을, L과는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훌륭한 부분들을 공유한다. K와 함께하는 것은 즐겁지만 초조하다. L과 있는 것은 두렵지만 그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내가 나의 어느 부분을 사랑하는지에 따라 시시각각 애정의 크기가 달라진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땐 K가 그렇게 한심해지며 L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러다가도 살아가는 것에 지쳐 나가 떨어질 것 같으면 K와의 시간이 간절해진다.
전에도 적었나, 둘은 양립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L은 일이고 K는 사랑이다. 일을 사랑하는 순간 사랑을 일처럼 다루게 된다. 일을 일처럼, 사랑을 사랑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행복할 테니. (단, 그 모두에서 L은 제외하기로 한다.)
이래저래 많이 바쁘고 그로 인해 행복하다!
오늘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다. 여유가 생긴다면 건강에 해롭지 않은 디퓨저를 하나 사야겠다. 그럼 더 자주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거다.
어제 좋은 꿈을 꿨나? 오늘은?
사무실에서 쓸 용도로 치는 맛이 있는 키보드를 하나 샀다. 키보드에 집착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운명의 키보드를 만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건샵 직원의 말에 의하면 3~4시간 정도나 고민하는 분들도 허다하다고. 오늘 샀는데 벌써 다른 맛으로 하나 더 사고 싶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키보드로 바꿔가며 소설을 쓰고 싶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에게서 삶의 영감을 받았다고, 기억 한 켠 눅눅한 곳에 계속 남아주어 고맙다고, 그리하여 지금의 내가 형성되었다고. 말은 쉽다고들 하지만 내겐 그 말 하나가 제일 어렵다. 말만 잘 하면 모든 게 간단해질텐데. 무언가 말하기를 포기하면 할수록 삶이 점점 더 괴로워진다. 내가 하는 말들이라고 해야 곧 내 인생에서 우러나온 것일 테니 그 초라한 한 조각을 내미는 게 항상 두렵다. 또 두려운 것은 언제나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 사실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혼자 어떻게든 괴로워지고 마는 것.
정신만 바짝 차리고 살자. 찾아보면 얼마든지 기쁜 일이 있을 거다.
사람들의 온기 없이는 살 수 없다.
미지근한 온도라도 없는것보다는 훨씬 낫고.
가끔은 안식이 그리워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지. 이제와서는 아무 신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중하다. 친구, 가족,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의 신이다.
(삭제)
너무 오바스러운 말이다. 같이 있어주는 사람들한테 죄 짓지 말고 그냥 평소에 잘하자.
나는 언제나 붙잡히는 사람이었지 누군가를 붙잡고 싶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 사람들과 다같이 서로의 노래를 들어주며 따뜻한 술을 나누고 싶다.
아무도 떠나지 않고 시간도 흐르지 않는 곳에서
디지게 졸리구 힘들다. zzZ
다시 불안에 익사하는 중. 심장이 평소보다 10cm 위에서 뛰고 있는 듯하다.
대체 뭐가 문제야
이렇게 사니까 암에 걸렸던거다 이렇게 사니까
무엇이라도 글을 읽으면 다시 마음이 차분해진다. 여전히 사람들이 궁금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 누구도 날 궁금해하지 않는 세상은 외롭다. 자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봐야 하는 걸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 없는 환경에 익숙해져야 하는 걸까. K는 왜 날 더 알고 싶어하지 않는 건가.
오래 안 사람들이 써내려가는 글들을 보면 그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어느새 저런 멋있는 글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그들 한 명 한 명이 굴리는 생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지고 사람들이 책을 내거나 어딘가에 이름을 올리는 등 자잘한 꿈을 이루는 사이, 나만 제자리에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어딘가로 움직일 생각도 않고 늘 하던 걸 한다. 그마저도 요즘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기분이다.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때인데 K가 자꾸 나를 멤돈다. 가만히 끌어안은 채 영원히 이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된다. 그런 K가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냥 겨울과 따뜻한 술. 그리고 사람이 필요하다. 근데 누가.
아, 사람들의 표정이 좋지 않다. 길에서나 일에서나.
그게 요즘 느낀 불안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불안해 하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사람들은 괜찮고 내 표정이 제일 좋지 않고만?
난 존내 잘하고 있다. 프로젝트 세 개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억대급 프로젝트에는 제작부 하나 없다. 파이팅.
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게 없지만 나는 어쨌든 주어진 여건 안에서 존내 잘하고 있다. 잘 안 돼도 어쩔 수 없지 뭐.
그러나 최선을 다해 잘되게 할 것이다.
트렌드를 따라 살아야지. 뭔가 많이 봐야겠다.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파티를 했다. 또 새로우면서도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느끼는 정이 깊어질수록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해진다. 언젠가는 떨쳐내야 할 사람들인데. 늘 그랬듯이 나는 또 어딘가로 깊이 숨어버려야 할 텐데.
누군가는 주목을 받고 누군가는 사랑을 받고 누군가는 초대받지 못하고 누군가는 잊혀진다. 나는 어디에 있나. 아무 데도 걸쳐있지 않은 외딴 섬같다. 언제든 아무 부담 없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술 몇 잔 걸친 채 사람들을 뒤로 하고 시끄러운 곳을 등져 나오는 날이면, 집에 가는 길 모든 풍경에 이슬이 맺히고 눈물이 내린다. 찢어내서 다칠 사람들이라면 왜 정답게 지냈나 하는 의문은 결국, 사라질 목숨이라면 왜 힘들여 부지하고 있나 하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여의도에 있던 모두가 함성을 지르고 영화처럼 호외가 흩뿌려지던 날 홀로 회색 빛 깃발을 들고 다니던 누군가를 눈여겨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 모든 곳을 헤치고 도착한 곳에서, 결국 많은 일을 겪고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진심 어린 글을 남겼다. 그들의 외로움과 결단력을 기억한다. 처음으로 마주했던 또 다른 회색의 조심스러운 메시지를 떠올리며.
그들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혼자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버티거나, 받아들이거나, 끝내 익숙해졌을 것이다.
상당히 큰 일을 앞두고 있는데 긴장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다시 노래를 듣고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다 지나갔지만 세트로 들으면 더 좋은 노래들. https://youtu.be/3AxHQ8vc4k8?si=frHLubjcvJyL35-M
볼 때마다 투박하게 찍은 느낌의 라이브 영상인데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뒤에 모거동이라는 팀이 있었다. 사이트도 초 귀엽고... 이렇게 살면 참 재밌겠군 싶다.
무슨 일을 하든 작업을 하는 것의 근간은 결국 글쓰기가 되는 듯 하다. 책을 많이 읽고 관찰력을 기르자. 세상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기로 하자.
몇 년이 지나도 가장 애틋한 꿈은 끝없는 악몽 속에서 나를 구해준 꿈이었다. 비누거품 계단을 타고 하늘을 오르다 익사 직전 사랑하는 인형을 발견하고 무적이 되었던 꿈. 인형을 발견한 건, 수십 일 연속 이어지는 악몽 속에서 이내 체념하고 스스로 거품에 잠기는 순간이었다. 그 꿈을 꾼 이후로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늘 나를 지켜준다. 그러니 더 많은 것을 사랑해야 한다.
내가 있는 모든 곳에 못 할 짓을 하고 있는 기분.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보다 몇 배는 더 긴 한숨을 쉰다. 모든 것을 비워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이르다. 천천히, 아주 길게 죽음에 이르고자 한다. 아직은 그럴 생각이다.
떨어질 때 줄이 끊어졌다면 좋았을걸. 암세포가 나를 파먹었으면 좋았을걸. 불이 우리를 집어삼켰으면 좋았을걸. 그 모든 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면 좋았을걸.
모든 괴로움은 남에게서 비롯되었으나 언제나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만다. 거울과 호수와 유리 문에 사는 모든 나야 나는 너한테 제일 미안해야 하는데. 너에게도 목소리를 높여가며 오버스러운 액션을 취하고 잘 웃어줬어야 했는데.
오늘은 유독 이 말이 좆같지만 그래도 살자. 일단은 엄마가 살아있을 때까지. 그 뒤의 일은 그 때 생각하기로 하고. 여전히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사라지기를 원하지만. 휴!
>>169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오히려 반대로, 내가 있는 모든 곳이 나에게 못 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왠지 그런 사람들을 놓지 못한다. 언제나 혼자 남을 정도로 (또는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붙잡아야 하는), 어느 곳에서는 최악으로 분류되곤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옆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면 제법 흔치 않은 종류의 마음들을 얻을 수도 있다. 아마도.
내가 가진 최악으로 소중한 사람들은 K, L, Z(new)다. 모두 정말 사랑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내 곁을 떠나 주었으면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혹은 내가 떠나도 좋고.) 결국 이러나 저러나 마지막에 깊은 마음 한 구석을 내어줄 수 있는 것도 그 셋 뿐이다.
셋 다 정말 사랑하고 부탁이니 다음 생에서는 제발 만나지 말자. zzZ...
간만에 여유로운 주말을 맞이하여 씨너스 막차 탑승 완료. 얼떨결에 포스터까지 받았다.
흐름도 신선하고 블루스와 모든 음악의 역사, 불멸성 그 자체에 대한 해석의 여지도 낭낭해서 참 좋은 영화였는데 그 중에서도 대단히 훌륭한 씬이 하나 있었다. 이제까지 본 음악 영화(대충 음악 영화라고 하자) 중 손에 꼽힐 만큼 좋은 씬이었다.
내친김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봤는데, 해석할 거리라곤 하나도 없이 단순하고 투명한 플롯이었지만 그래도 여러 방면에서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둘 중 뭐가 더 좋은 영화인지 생각해보면 단연 씨너스겠고... 나중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자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취한 아저씨 plz not in my personal space
이사를 가야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동네를 떠나야 한다. 재개발을 피해 도망가면 재개발에, 그 집 또한 재개발에... 끝까지 밀려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밀려날 곳이 남아있다. 마음이 심란하다.
우린 이 구석탱이에 사는 것조차 자격 미달이다.
내가 알고 지낸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부르주아 척결하라
친구랑 싸웠다. 예전같았으면 미안해서 쩔쩔매고 무릎이 나가도록 사과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떠날 거라면 떠나라지,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모른 채 최대한 많은 것을 지키고 싶고 그런 와중에 억울한 마음은 사치일 뿐이다.
최근 K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왜지?
싸운 친구랑 다시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큰일. 갈등을 대하는 그녀의 유치뽕짝한 태도에 너무나도 지쳤고... 이제는 주변에 진득하고 어른스러운 사람만 남았으면 좋겠는데 나부터도 아무런 깊이가 없는 사람이니 그건 글렀다.
기분이 멜랑콜리할 땐 역시 음악이 짱. 한 때 짝사랑 마스터였는데 이제는 그 감각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https://youtu.be/TQ8WlA2GXbk?si=2lGcIL46Gk6rAhF1
아는 사람이 히게단 영업을 위해 콘서트 표를 구해다 준 일이 있었다. 콘서트 전날 급하게 프리텐더만 몇 번 듣고 가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 가면 훨씬 재밌을 듯. 영업을 당했다는 뜻이겠지요.
그 아는 사람을 P라고 칭하자면 P는 내가 살면서 본 모든 사람들 중 사랑하는 것에 가장 진심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덕질을 하는 사람이야 잔뜩 봐 왔지만 그 중에서도 P는 무언가가 달랐다. 밴드 음악, 해외 드라마, 애니메이션, (당최 P말고 누가 할지 모르겠는) 소담스러운 게임 등. 관심 분야가 넓어서 매번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 모든 순간에서 P의 눈은 꼭 반짝이는 보석 같았다.
P는 글, 사이트, 디자인, 분야를 가리지 않고 창작 욕구를 불태워 작은 판에서는 이따금 네임드가 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난 특히 P의 글을 좋아했다. P가 투박하지만 깊은 애정으로 이 세상을 써내려가는 방식을 좋아했다. 그 글이란, 별 탈 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흉내만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문장들이기도 했다.
아무튼 P가 가진 성질은 지금 내 이상형을 이루는 조건 중 하나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 혹은 꿈에 대해 말할 때 진심으로 눈을 반짝이는 사람.
K는 이제 꿈과 멀어졌지만, 아직도 어릴 때 꿈꾸던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눈을 반짝인다. 본인에게 제대로 말한 적 없지만 나는 정확히 그 모습에 홀렸다.
그러니까 K는 말하자면 P의 덕을 봤다. P가 없었다면 지금 K를 만나지 않았을 듯. 흥!
https://youtu.be/ReCnlwVZj1M?si=q2e0mBspRbDOzx3c
가라로 급하게 믹싱하는 법을 배웠는데 오 뭐야 정말 도움된다 이거.
몇 개 프로젝트가 마무리 단계를 밟는 동안 사람들이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 간만의 B2C 프로젝트라 그런지 다들 예전보다는 의욕이 나는 듯하다. 다시 솟아날 구멍이 보이나?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베일리석을 사랑하게 된 나
>>196 맞나? 아닌 것 같다. 의욕이 나는 건 아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잼는 CG를 넣고싶다. 이런 것도 예쁜듯. 디자인만 보면 살짝 웹소 느낌이 나지만? 모션이랑 같이 보면 이쁘다.
오랜만에 불타는 덕질거리를 찾았는데 남들 보기에 내 눈도 보석처럼 반짝였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언젠가 엄마가 떠나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워야겠다.
레종 블루. 아마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날 거다.
'빠른 시일 내로 볼 것' 이라고 자신있게 써 놓은 작품 5개... 단 1개도 안 봤다.
영화를 좋아헤서 이 길을 선택했는데 애석하게도 영화를 볼 시간이 없다. 교수님도 그랬다.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도 참 좋아하지만 분석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 정도로 몰입력 있는 영화가 보고싶다. 얼마 전에 본 해피엔드가 너무 좋았던 탓.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L에게 비슷한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한없이 우울해지는 영화만 잔뜩 추천받았다. 언젠가는 봐야지. 언젠가는...
행복은 어느 곳에나 있지만 그 모든 행복을 손에 넣으려고 하면 결국 아무것도 건질 수 없는 듯. 일단 오늘은 먼 곳에서 지내던 친구들을 만났다. 내일은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 아주 행복하다.
밑빠진 독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반창고 하나. 독이 터질 듯 부어대도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다. 강철 반창고.
꿈에서 K에게 말실수를 했더니 인상깊을 정도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요즘은 그다지 K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겼는데도 잠에서 깨어나니 가슴이 아주 아렸다. K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K는 원래 분노도 슬픔도 익숙하다. 그러면서도 내심,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는지도.
살아있으면 괴로운 사람들이 늘어난다. 살아있으면 즐거운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 중에서도 제일 괴롭고 즐거운 건, 나.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죽음을 생각한다. 그만큼이나 살아가는 것을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감각과, 지긋지긋하지만 아직도 다 소모하지 못해 끝내 여전히 새롭고 말 세상들을. 넌더리 나는 생명을 꾸준히 안고 살아가는 여타 사람들과 친구들과 가족들과 동료들과 선배들과 후배들을 비롯한 모든 인연들, 최후에는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K는 지독하지만 영영 놓을 수 없을 것만 같다. K는 나의 스페셜 존에 있다. 스페셜-K.
K가 이 세상에서 더는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들도.
하지만 나쁜 사람들은 너무 많고. 나쁜 사람들은 나쁘게 죽어야 해. 이 말을 해서 내가 나쁜 사람이 된다면 나도 기꺼이 나쁘게 죽어야 해.
힘내자 !
사람들로 가득 채워 바쁜 주말이었다. 요즘 내 주말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다. 내 작은 그릇에 사람들이 넘칠락말락 해, 누군가는 금방 떨어져내릴 듯하다. 아직까지는 신기할 만큼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곧 무슨 일인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을 이렇게 많이 알고 지낼 작정이 아니었는데. 버겁다. 기억해야 하는 얼굴들과 이름들이 너무 많다. 몇 년 만에 만난 나름대로 친했던 후배의 이름을 떠올리기까지도 5초 남짓의 로딩시간이 필요했다.
그릇은 애진작에 넘치고 사방에서는 나를 탓하는 말뿐이다. 남을 탓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은 건지, 내가 탓하기 좋은 사람인 건지.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나도 이따금 화를 낸다. 같이 있으면 마냥 즐거운 사람, 눈에 띌 만큼 타인과 마찰 없이 지내는 사람 등으로 분류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아닌 말에는 아니라는 표현도 하지만 그게 정말로 아닌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다만 지구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그 모두에게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라는 게 있겠냐는 생각으로 산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으면 나는 그런 사람 내지는 요런 사람인 거고. 애초에 좋은 사람이라는 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가 있겠냐고. 내가 화를 내기 시작한 건 일종의 포기이거나 체념일 수도 있겠다.
오늘은 해가 지는 모습이 아름다워 아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일과 삶의 구분 없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감격스러워졌다. 하늘을 들여다보는 긴 시간동안 어떤 슬픔도 기쁨도 환희도 없었으나 다만 결국 살아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떠올라 머리 안을 가득 채웠다.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어떤 슬픔이 나를 찾아와도 풀은 여전히 풀의 색이고, 바람은 여전히 바람의 향이고, 해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뜨고 진다. 모든 세상의 이치는 영원하며 변하는 것은 오직 내 마음 뿐이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 낯선 사람과 함께하는 건 나에게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지만, 남의 마음에 조심스레 들어가 샅샅이 살펴보고 나오는 그 순간이 좋다.
존나 F같다는 생각이 문득. 나는 INFP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INFJ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요근래 나의 무계획성에 답답해 죽은 사람들이 한사바리는 되는 듯하다.
남은 인생은 계획적으로 살아야지... 일단 지금은 잘 계획 zzZ
https://youtu.be/lei-nFxWSoA?si=MVDz4D1lNKXS4qV1 왜 모두 죽고나면 사라지는 걸까 난 그게 너무 화가 났었어
https://youtu.be/gHdDxKy2QW0?si=4-ahA_bY0_TMN0fg ㅋㅋㅋㅋㅋ
https://youtu.be/rsgZnWJ1tto?si=9eJ1fLWoN1qSUcgI 몬티 파이튼 최애 장면
>>226 나도 남몰래 그 누구를 몹시 미워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동시에 그 누구를 몹시 믿고 싶기도 했다. 이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거다.
시간이 우리 모두를 이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2025년의 서른 번째 화요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 처음 만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일지도 모를 작별인사를 나눌 거다. 그 사이 나의 세상이 가만히 존재한다. 어떤 노력을 할 필요도 없이, 오직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 세상은 이미 나의 것이다.
노매드랜드를 다시 보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프기 전까지, 오빠의 개짓거리 때문에 몇 년간 어리석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엄마만 없으면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겠다고. 모두가 잠든 밤마다 육중한 악몽에 짓눌려 오빠를 죽이고 싶었다가, 아빠가 한없이 미워졌다가, 기어코 엄마를 원망스러워 하다가, 그 모든 날카로운 감정을 모아 다시 가슴에 쑤셔 넣으며 꺽꺽 울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없어지지 않았다. 영화를 본 건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영화 속에서 만난 많은 노매드 중 단 한 인물이 특히 눈에 띄었는데, 캠프 씬에서 자신들의 사연을 나누는 무리 중 한 명으로 러닝타임 대비 아주 짧게 등장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모친과 함께 노매드가 되어 세상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엄마와 살아가는 것을 꿈꾸던 나는 단숨에 그녀의 이야기에 몰입했다. 엄마와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낯선 세계를 유랑하는 삶이라니. 하지만 어느 날인가 그녀의 모친은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녀가 뜨거운 모닥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 심장에 쿵 닿았다. '이제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계속 살아간다.' 정확한 상황과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땐 내가 죽고 싶으니 엄마가 빨리, 가능하다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후에 병으로 죽어가는 내 손을 붙잡고 제 딸이 진짜 죽을까 겁이 나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엄마를 목격한 후에도, 내가 수술대 위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도무지 어떤 심정으로 보냈을지도 모를 서툴고 긴 문자를 발견한 후에도, 모든 위기를 넘긴 다음부터는 다시 이따금 죽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다만 영화를 만난 후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위의 캠핑 씬이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둘러싸며 모든 충동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거다. 여전히 나는 때때로 죽고 싶지만 그 전에 엄마와 세상을 유랑하고 싶다. 먼 훗날 엄마가 사라지더라도, 죽고 싶은 마음을 계속 안고서 끝내 살아갈 거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할 때까지.
인생 베스트 씬 중 하나라 그런지 매우 뚱뚱한 글이 나왔다. 아무튼 바꾼 스레 제목과도 연관된 이야기.
그 사막에서는 엄마가 울면 비가 내리고 악몽보다 무거운 현실이 흘렀다.
다들 말라가는 중일까
자기관리를 하니 요즘은 적당히 행복하다. 사실 이보다 행복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다.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긴키를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에는 내 안의 무언가가 도저히 허락하지 않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오랜만에 만난 취향저격의 작품이다. 후반부의 파워레인저같은 CG마저 웃기고 사랑스럽다. 보여줄 건 다 보여줬으니 이제 가던가 말던가, 라고 말하는 듯한 허술함. 공포영화니까 감히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그 허술함마저 킥이다.
영화도 좋지만 특히나 스레딕같은 게시판을 이용해 본 사람이라면, 그 중에서도 괴담판을 관심 갖고 들여다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원작 소설을 추천하겠다. 영화는……추천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후반부에 대한 기대를 아예 내려놓고 본다면, 파운드 푸티지 장르가 주는 특유의 몰입력과 스산함만 즐기러 가기에도 꽤 훌륭한 영화다.
주말에는 이번에 개봉한 컨저링도 봤다. 꽤 무서웠으나 서양 오컬트, 특히 악마가 등장하는 쪽에는 영 매력을 못 느끼겠다. 점프스케어만 견디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바로 무감각해지고 만다. 유전만 빼고.
실크송도 천천히 아껴먹는 중. 자의로 아껴먹는 건 아니다. 보스들이 나를 앞으로 안 보내준다.
메이플을 할 때 난 인내의 숲과 슈미가 잃어버린 돈 시리즈에 미친 어린이였는데, 지금은 그냥 미쳐버리겠는 어른이 된 듯. 실크송은 재미와 빡침이 아슬아슬하게 1:1 비율을 유지하는 게임이다. 분노가 재미를 느끼는 감각을 덮으려 할 때마다 바로 게임을 꺼버리는데 매 순간 분노할 일 투성이니 영 진행이 안 된다.
나름대로 제일 예뻐했던 신입이 회사를 떠난다. 또, 어느 멀어진 인연은 멋지고 끈기 있는 작업으로 기어코 상을 탔다. 세상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
어떨 땐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서 이대로 멈췄으면, 싶다가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날 때 이를 지켜보는 건 무진장 재밌다. 이 사람들이 또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눈치 보지 말고 속마음을 얘기하는 습관을 들이자. 조바심 내지 않는 습관도!
열등감, 위기감, 아무튼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잔뜩 닥쳤다. 글쓰기를 더 잘 하고 싶은데, 나는 글을 오직 나를 위해 쓸 줄만 알았지 막상 남을 위해 쓴 적이 없었다. 사실은 있었겠지만 매번 실패했다고 봐야겠다. 아무 생각이나 배설하지 말고 정돈된 글에 가까운 걸 쓰도록 하자. 다정하게 말을 건네듯이.
다정한 사람부터 돼야겠다. 나에게나 남에게나.
영화를 좋아하던 어린이는 커서 체인소맨 레제편과 어쩔수가 없다를 놓고 무엇을 볼지 고민하는 어른이 되었다.
두 개 모두 보고 난 후에도 체인소맨에 더 여운을 느끼고 마는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레제는 그 카페에 가려고 했어.
눈치 보지 않기로 결심한 김에, 주변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 종류의 자랑도 하나. 오늘 주식으로 40만원 벌었다!
딱 코스피 상승폭만큼만 올랐지만 그래도 승리한 기분.
https://youtu.be/nVbPr7x_Ws4?si=cmykrobNX_sIro8r 센 터 센 터 !
경쟁의 인플레이션때문에 누구 하나 눈에 띄기 어려워진 세상이지만 그래서 더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고. 괴물같은 사람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너무 많지만 그런 와중에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자리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자기만족에 취해 멈출 생각은 없으나 이전보다 해이해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그런 와중에 기대감도 사랑도 아닌 오직 불안함으로만 세차게 뛰는 심장박동이야말로 성장의 핵심 원동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불안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더 불안한 일이라고. 끝도 없는 불안함 속에 살아가면서.
그 모습이 어리다거나 과해 보인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채로 마냥 평온하게 살아갈 생각도 없다. 누군가의 강한 목소리에 함부로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을 거다. 이미 내 마음부터도 꼬인 목걸이 줄처럼 어지럽기만 하니 도와주려거든 더 꼬이지나 않게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던가.
깊게 생각하지 말기. 라고 다짐하면서 깊게 생각하기.
세상이 너무 많이 망가졌다.
재밌는 거 하려고 왔는데 왜 재미가 없지?
AI나 쇼츠같은 정크 컨텐츠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아무도 서로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말을 했던가 안 했던가.
Song 소희의 새로운 뮤비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https://youtu.be/YENUe7tTa9k?si=trZwnZVQxnvVkdLa
베일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멋있고 귀엽다. https://youtu.be/Yk1CZdrPHOc?si=Rn-2tjlesNF7ZEP4
일하고 싶은데 일하기 싫다. 지금 하는 일 말고 원래 하던 일 하고 싶다. 노잼 문서작업 말고 온갖 프로그램이나 만지면서 두구당땅 내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내는 일.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들의 실낱같은 미감에 맞춰 찍어내는 일 말고. 돈만 보고 하는 일 말고...
그리고 하나마나 뻔한 이야기지만 잘생긴 사람이 좋다. 잘생긴데 일까지 잘 하는 사람은 더 좋다. 일만 잘 하는 사람보다는 물론 잘생기고 일도 잘 하는 사람이 좋다. 일을 잘 하지 못하면서 잘생기기만 한 사람은 글쎄.
물론 누군가를 잘생겼다고 느끼는 것과 그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생긴 사람이 입사한다는 것은 사무실에 보기 좋은 화분 내지는 멋진 그림이 생기는 기분.
기분 좋은 일 하나 더. 어제 주식으로 60을 더 벌어서 이번 달만 총 160을 얻게 되었다. 내일은 고생하는 나를 위해 1,500원이 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어야지.
휴학하고 일할 당시에는 본업에 집중하지 않고 주식이나 신경쓰는 사람들이 정말 한심해 보였는데. 이제는 주식 하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한심한 사람이 된 건가?
그렇지만 돈은 정말 중요하다.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투자를 통해 돈을 더 불려서 그 돈으로... 그 돈으로 대체 뭘 한다냐.
일단 차가 갖고싶어잉.
(경) 난생 처음 주식으로 한 달 만에 200을 벌어버리다. (축) 코스피 상승폭도 며칠째 계속 이기는 중! 너무 올라와서 이제 고소공포증 오겠다.
은 참 좋은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보는 데까지 9년이 걸렸다니. 누군가가 낡은 기억 위에 덮어놓은 천을 들추어 본 듯 한 생생함과, (내가 그 기억 안에서 누구로 자리했든) 어쩌면 그건 내 기억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자책감이 공존한다. 선뜻 돌아가고 싶지 않은 여름에 대한 짙은 향수가 느껴지기도.
술을 마시니 드디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기분. 수도꼭지를 잠근 양 우울감이 잦아든다. 입에서는 헛소리가 멎고 사람의 말이 나온다. 이게 나의 정상 세계였다.
살아있는 한 좋은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나쁜 일이 있었더라도 반드시 기쁜 일이 생기고 만다.
나나 당신들이나 사람은 너무 입체적인 거야. 12면체 주사위 같은 거야.
한 사람의 삶은 결국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당장 나 하나의 가정환경 위에도 수많은 가정환경이 있었을 텐데. 엄마의 아빠의 엄마의 아빠의 엄마의 아빠의… DNA를 타고 넘어 수백 수천 단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엔 아담과 하와 내지는 단군왕검과 같이 우리 모두의 수원지같은 존재가 있었을 텐데도. 결국 무엇으로 결정된 걸까.
연출하기싫어~ 아니 하고싶어 그러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예산이었다.
이 정도면 꽤 잘 버텼지. 덕분에 나쁘지 않은 사이즈의 책임을 안고 있다. 라고 하기에는 세상에 난 놈들이 너무 많았고. 능력은 안 되는 주제에 욕심만 많아서 귀찮게 구는 놈들도.
학교 사람들도 계속 신경쓰인다. 대부분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잘 나가는 선배 후배들만 보인다. 누구는 유튜버나 AI 광고 덕션처럼 내가 함부로 천박하다고 치부했던 일에서 자기 자리를 단단히 마련하기도 하고…
대표님과는 요즘 다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이꼬르 사생활 안에서의 내 입지가 위험하다.
좋은 결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일보다 사생활을 끊어내는 것을 먼저 고려한다.
아무튼 좋은 날이 오겠지.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고 싶다. 또는 레퍼런스가 될 만한 걸 만들어내고 싶다.
오디오 타임라인 위에 유명한 성우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를 연기하신 분이다. 듣기만 해도 그냥 웃음이 실실 난다. 프로젝트가 네새끼에서 다시 내새끼가 되는 순간. 열심히 해야지.
세계의 주인 얘기를 안 했나, 영화관에서 눈도 못 뜨고 울면서 인생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다. 과장 보태 말하자면 해묵은 고통에서 드디어 완전히 해방된 기분. 영화를 마주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속이 찢어지는 듯 하다가도 아주 후련해졌다. 이제 반평생 나를 괴롭혀 온 질문에 머리를 싸매고 답을 찾아 헤메일 필요가 없어졌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오빠에 대한 글이나 한 바닥이나 썼다. 개새끼.
캐릭터나 대사에서 자의식과잉이 많이 느껴져 불호라는 후기 글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남은 인생동안 사람이 자의식과잉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의식이 비참할만큼 거대해져서 나를 짓누른다. 평생동안. 그래도 영화를 보고 글을 한 바닥 쓰고 나니 자의식이 작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다.
불구덩이 속에서 다시 안정권을 찾아가는 기분. 나를 받아줄 곳이 없어도 좋다. 내가 있을 곳은 내 안이다.
- 게임이나 유튜브 등 쓸데없는 컨텐츠로 시간 죽이지 않기 - 게임을 한다면 차라리 스토리가 고트한 것으로 (단순 퍼즐류 자제) - 시간을 더 좋은 곳에 쓰기 - 영양제 잘 챙겨먹기 - 가능하다면 책 많이 읽기 - 다시 의지를 다지기 -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찾기
따뜻해지자 연말이니까!
오늘도 불면증. https://youtu.be/5aszKdiyDlo?si=gA807Q1ulqDYVdj_
이제 떠날 시간이다. 어딜 가든 잘 할거야.
얼마 전 K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헤어지지 않았다. L에게도 이제 그만 하겠다고 말했다. 이쪽은 오히려 별다른 일 없이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나와 이 세계의 접착력이 생각보다 약했던 걸까. 원래는 그냥 이 일이 하고 싶었던 건데. 다른 곳으로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막막하다. 이제는 여기가 아니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떠나야 한다.
나는 충동적이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충동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회사에다가는 갑자기 그만 두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갑자기 지난 시간들을 더 잘 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게 느껴졌다가. 연인에게는 헤어지자고 했다가. 바로 다음 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도 하고. 어디서부터가 합리고 어디까지 불합리인지 구별도 가지 않는 와중에 나를 잃어가고 있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와서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된 것처럼. 옆에 그 누가 있어주지 않아도 나는 내 안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 내가 사라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자꾸만 고개를 돌리려는 내 얼굴을 붙잡고 현실을 직시시킨다. 내가 함부로 선택했던 혹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했던 나의 역할들이 보인다. 이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진다.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다. 그 모든 역할로부터 사라지고 싶다는 충동 하나만 남은 느낌.
아주 충동적으로... 예전에 알았던 사람들을 한 데 모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과 모순되게도 어딘가에 단단히 소속되고 싶다.
아, 그냥 최근에 나는 무엇이든 좆박고 있고. 이젠 그냥 끝장이다. 여기서 이제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없을 듯. 이게 다 진작 K를 끊어내지 못한 탓이다. 애초부터 나는 결혼을 할 생각이 없었는걸. 그렇지만 또 혼자 살아갈 자신은 없는걸. 주식도 망하고... 직업 수명도 짧고... AI의 반란으로 갈 곳은 점점 바늘구멍이고. 등등등.
지금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건 드디어 나에게도 현실이 보인다는 신호인 걸 수도. 그렇다면 좋은 일이겠다.
아무튼 잘 살아봅시다.
언제나 가족 대신 나를 받아줄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치고 박고 싸우면서도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곳. 그게 허상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 먼 옛날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굳이 이제 알았다고 말해본다.
기어코 닿길 두려워 했던 곳보다도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1. 당연히 누구나 모든 곳에서 부단히 그러고 있으니까.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누구보다 높이 있는 사람이고 싶으니까.
내가 모든 걸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면서도 사실은, 그 생각이 오직 나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니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죽고 싶다. 내지는 남은 삶을 죽은 듯이 의미 없이 이어가고 싶다. 그와 동시에 모순되게도 역시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 죽음을 한 번 마주하고 난 뒤에 무심하게도 이어지고 있는 이 삶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간절히 믿으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있다.
지지 마! 그리고 현상을 왜곡하지 말 것.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1은 1이다.
30년 가까이 되는 인생에 처음으로 정신과를 갔다. 사실 다녀온 지는 꽤 됐다. 2주 정도? 스스로 많은 부분이 녹슬거나 고장이 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든 것을 말끔하게 고치고 싶었다. 내 일부라고 받아들였던 모든 치부까지도. 예전처럼 마냥 버티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들이 많았다.
놀라왔던 일은, 평생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 내가 죽는 날 함께 재가 되어 사라질 거라고 스스로 그렇게 으름장을 놓았던 일들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순간 눈물 몇 방울과 함께 한번에 툭 떨어져 나갔다. 15년을 그렇게 아팠는데! 물론 갑자기는 아니겠고. 긴 빌드업과 지난 몇 달 사이 놀라운 우연들이 겹쳐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서야 깨끗하게 인정하는데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천성이 게으르고, 내가 남들을 보고 못됐다고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나도 제법 못된 사람이다. 타고난 재능은 점점 녹슬어 가고, 남들처럼 노력을 한 게 없으니 남들보다 더 잘난 구석도 없다. 가장 최악인 점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쓸데없는 정이 많다는 점이다. 그래서 놓아야 할 때를 알지 못했다. 이 부분은 현재진행형으로, 단박에 고쳐지지는 않는 듯하다.
그런데 뭐 이제는 슬프지도 화가 나지도 스스로가 안타깝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산다. 모자란 부분들은 그냥 안고 살아야지 어쩌겠어, 하는 생각이다. 그래야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되는데 말도 못하고 너무 오래 아팠다. 이제는 지지 말자. 당신들도 지지 마.
AI가 세상을 장악한 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낀다. 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예술 작품을 보고 감탄하는 경험이 사라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이제 누구나 쉽게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만큼이나 쉽게 남의 노력을 폄하한다. 한 사람이 인생을 담아 긴 시간 견고하게 쌓아 올린 탑은 사실 파도 한 번에 쓸려 내려갈 모래성이었다고. 그렇게 온 세상이 비웃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을 나열할 수 없다. 내 영혼 안에 있던 어떤 열기가 빠져나간 기분이다.

군체 포스터가 너무너무 좋다! 하루만에 다시 열기가 돌아온 듯, 이제 AI든 뭐든 상관없이 오늘 이걸 볼 수 있어서 행복한 기분.
스스로 느끼기에 좀 더 솔직해 진 것 같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예전이었다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생각들을 나누기도 하고, 문을 닫고 들어가 온기로부터 숨지도 않는다. 진솔한 의견을 공유하고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족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혼자 있다는 기분도, 혼자 있고 싶다는 기분도 들지 않고 세상에 애정 어린 소속감마저 느낀다. 어쩌면 모두가 힘든 시기여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살자.
눈을 감을 때 그래도 재밌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거. 그게 내 새로운 꿈이다.
울고 화내는 사이에 지나가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네가 묵묵히 하루를 견뎌낸 후에는 웃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건조해 바스라진 마음을 심어 물을 뿌리고 다시 꽃을 피웠으면. 힘들었던 일이나 괴로웠던 일은 가능한 빠르게 잊어줬으면 한다.
끝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와 있을까? 어느 시간동안 침묵을 더 견뎌야 하고 몇 번을 더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을까? 웃을 수 있을 때 더 많이 웃어둘 걸 그랬다.
당신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걸 보며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 그렇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면.
날마다 날카롭게 심장을 겨누는 이 균열이 당최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인식도 하지 못 하는 사이에 이렇게까지나 벌어질 수 있었던 건지
열차를 탈 때마다 생각이 가득해지니 굳이 노래로 머리를 채우지 않아도 된다.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질 때면 여기로 온다. 무엇이든 밖으로 배출해내지 않으면 내가 터져버릴 것 같다.
그래도 어찌저찌 살아남아 살아가고 싶어
틈이 나면 책을 읽어 새로운 세상을 채우고 알았던 세상은 닿지 않는 곳까지 밀어낸다. 그대로 두기엔 너무 뾰족하니까 꺼내 오면 자꾸 마음만 따갑다.
잠에 들어서야 현실을 꿈꾸는 듯하고 현실에서는 내내 몽롱한 기분이다. 그만 잠들고 싶다. 혹은 영영 꿈을 꾸고 싶다.
장조림에 고기가 하나도 없어. 욕심 많은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 해. 평생에 걸쳐 그렇게 살아왔지. 뭐가 잘못인 줄도 모르고. 그런데도 벌은 내가 줄곧 받아왔지.
장조림 속 고기를 뽑아 먹는 것처럼 쉽게 다른 사람들의 노력, 그리고 내 살과 영혼을 파먹었지 나는 고기가 아닌데 내 살은 사람의 살인데
지옥에나 가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믿으려고도 하지 않는 이기적인 놈들은 지옥에나 가서 서로를 살찌워 파먹기나 해
그렇게 된다고 믿어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루종일 마음이 따가워 피가 나고 멎기도 전에 가시들이 상처를 자꾸 후빈다. 그 송곳 끝을 잡고 있는 손은 결국 나의 것이다.
평화를 등한시하고 뒤룩뒤룩 살찌기 바쁜 돼지들. 누군가를 해쳐야 자기 몫이 돌아온다고 믿는 바보들. 어쨌거나 나도 그 안에서 끝끝내 살아갈 작정이라면 세상에 아직 아름다운 무언가가 남아있다고 믿어야 한다. 동시에,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싶다.
무슨 이유로 우리는 벌을 받고 있는 걸까
불합리하게도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안다. 애초에 이유라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만약 이유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불합리한 일일 테니까.
좋아하는 밴드의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 나를 도무지 잠재우지 않았던 모든 불안이 사라져 간다. 가사로, 또 잉크로 말을 거는 목소리들을 들으면 혼자였다고 느낀 것은 나의 섣부른 착각이었을 뿐이라고. 위안이 된다.
https://youtu.be/65Dj1sbFF84?si=-1NI9A0KThGhbyOf 최근에 참 좋아하는 노래.
강한 사람들이 좋다. 작은 체구로 세상을 강하게 맞부딪혀 가는 사람이. 누구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믿고, 또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사랑해 왔던 건 그런 부류였다.
작게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부터, 노래와 춤으로 우리를 다른 세상에 함께 실어다 주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랑하는 것들 안에서 눈을 빛내는 사람들이.
책을 단짠단짠으로 읽고 있다. 자기파괴적인 작가의 에세이를 끝낸 뒤, 읽으면 영혼이 따뜻하게 차오를 것 같은 책을 집었다.
그렇게 고른 책은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 . 세 편의 단편을 읽었는데, 매 편마다 깊숙이 몰입하게 된다. 웬만한 장편보다 더 흠뻑 빠져들었다가 이야기를 다 삼키기도 전에 현실로 세차게 돌아온다.
아주 긴 이야기의 조각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 장편으로 만나고 싶었지만 단편이어서 더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다.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많아서 나는 갈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해.
사람들에게는 다들 사람들이 있다.
오늘 나도 사람들과 몇 번이나 크게 웃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뭐랄까 패배자가 된 기분이야.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그럴 거고.
나에게도 사람들이 있지만 언제나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나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가 떠나온 모든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있었던 그 모든 곳으로.
하지만 나는 과거와 내일을 떠나 바로 오늘로 돌아가야 한다. 무언가를 붙잡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지금을 살아야 한다. 돌아갈 곳은 정해져 있었는데, 이제는 바꿀 수도 없는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봤다. 아주 오랜만에 영화를 보는 기쁨을 상기시켜 준 작품이었다. 사람이 많았던 나머지 좌석 곳곳에 빌런이 있었는데, 심지어 바로 옆자리 사람은 몇십 초간 통화를 이어갔는데, 그런 일조차도 오랜만이라 반가울 지경이었다.
왕사남때와는 다르다. 그 땐 결국 사람들은 이런 걸 원한다는 체념과 그래도 오랜만에 영화관에 생기가 돈다는 기쁨이 같이 있었는데 헤일메리를 보고 난 후에는 좋음. 좋음. 좋음이 가득하다!
원작 책도 너무 보고싶다. 읽어야 하는 것들은 자꾸 쌓여만 가는데 내가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현저히 느리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글을 펴내는 속도도 참 빠르고. 어쩌면 평생동안 원하는 책을 다 못 보고 가겠지.
그러니까 더 열심히 무언가를 읽어야겠다!
영화는 꼭 혼자가 된 존재들이 만나 함께 추는 왈츠같았다.
나는 사주를 믿지 않는다. 흔히들 사주는 통계학이라고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이 가득 모여 만들어진 평균값보다도 내가 범주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 굳게 믿었다. 그 어떤 쪽에도 이렇다 할 근거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런 사주가 올해 초에 내게 말했다. 이번 해에는 가족과 친구,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게 될 거라고. 10년 넘게 나만 들여다보며 살아온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그 무엇보다도 신경쓰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다. 사람들과의 관계. 한 때는 쓸모없다고 생각했었고, 내 손을 놓아주지도 않아 원망했고, 언제나 그로부터 도망치거나 숨고 싶었다.
분명히 오늘도 다를 것 없는 하루였을텐데. 문득 내 옆에 있는, 그리고 나를 스쳐지나간, 그 모든 사람들이 아주 소중하게 느껴졌다. 추위가 누그러져서 그런 걸까. 마음에도 다시 꽃이 피고 있는 걸까.
오늘은 오랜만에 숨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이었다. 거리낌 없이 말을 걸고, 떠들고, 웃고, 때로는 다투는 식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마음을 편히 기대어 놓고 싶었다.
‘만약 내가 죽으면…‘ 으로 시작하는 가정법의 뒤에 어떤 마음들이 숨어있을지 생각해 본다. 죽어서라도 누군가에게 중요하게 여겨지고 싶다는 마음. 나는 아주 오래 전의 경험을 통해 그 기분을 알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듯한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스스로 얼마나 오래 되뇌어 왔을지도.
그래서 오늘만큼은 K와 최대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최근 내 머릿속을 쿡쿡 찌르던 충동도 사라지고 있다. 오늘 들었던 말에 내가 슬퍼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나를 슬퍼할 테니까.
끝. 오늘은 할 말이 많았다. 좋은 날이었다는 뜻이다.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중이야
다정한 사람들만 있으니까 운이 좋았지
좁은 에어프라이어에 쿠키를 네댓 개씩 오래 구워내는 마음은 다정함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나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다.
초콜릿이 녹아 손에 찐득하게 묻어버리는 일에, 버터와 설탕을 잔뜩 넣어 구운 반죽이 몸을 해치는 일에, 전혀 개의치 않고 커피를 가져와 함께 먹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안에서 내가 가진 것보다도 따뜻한 다정함을 느낀다.
쿠키 반죽을 준비하는 와중에서도 어김없이 내 마음은 항상 일방통행이라는 생각이, 아무도 원치 않는 마음일 거라는 불안이, 채에 거른 박력분처럼 소복이 쌓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 너무 많았다, 두서도 없고
이 일이 하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들 어디까지, 대체 무엇까지 양보할 수 있는 건데 이러다가 누군가는 목숨을 잃고 새로운 규칙이 피로 쓰여 나갔다 그들을 기억하지만서도 나는 여전히,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믿는 내가 잘못된 거라고는 도무지 믿고 싶지 않다 비현실적인 꿈만 품은 채 아직도 떼를 쓰고 있다고는
그로인해 얻는 결과가 무수한 상처와 고통뿐이래도 나는 마지막까지 다정해지고 싶다. 세상을 떠날 때 비로소 후련해지기보다는 미처 돌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가득했으면 한다.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 기어코 나를 떠나는 길에는, 무언가를 다정하게 여겼던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고 싶다.
제일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다정한 사람들이 대단하다.
소파에 쪼그려 누운 엄마가 그대로 구겨져서 사라질 듯하다. 그 자리에는 마치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움푹 패인 자국만 남을 것 같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다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그대로 죽어가야 할 지,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른 채.
엄마는 내 세상이다. 엄마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엄마는 내 유일한 미련이다. 엄마는 내 모든 것이다. 아무도 사랑할 수 없게 된 내가 이제는 유일하게 온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라고, 아마 엄마도 나에게 그것을 바랄 것이다. 나 또한 엄마의 세상이자, 이유이자, 미련이자, 모든 것이기 때문에.
거의 끝났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경탄도 눈물도. 이젠 모든 게 끝일 거라는 터무니없는 착각도.
나는 계속해서 살아내야 한다. 시간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원래부터 그랬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자명한 일이다. 아주 잊어버리고 싶었지만 굳이 다시금 깨닫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깨달은 만큼 현실이 미워진다.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리만치 무거울 이 날들이.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할, 남은 삶들이.
달리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다.
세균. 추락. 총알. 날붙이. 물. 또는 불.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사인을 희미하게 더듬어 본다. 그 무시무시한 것들 사이로 언제나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내가 있다.
그 옆에는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과 입,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많은 눈빛. 공중에 떠다니는 그들의 말과 생각들. 보통의 날들 속에서 그것들은 얇은 실처럼 맥없이 나부낀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기어코 그들을 단단하게 엮어내어 목에 걸고 마는 것은 나의 손이다.
까지. 오늘의 무기력을 무기력하게 무기력하다 뱉어내는 건 그만두고 이 기분을 떨치기 위해 좀 달리고 와야겠다.
내가 모든 걸 다 망치고 있어.
K와는 생각보다 홀가분하게 헤어졌다. 이제 자유다. 몇 날, 몇 달, 몇 년, 심지어는 평생이 될지도 모르는 시간동안이나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아도 될 자유를 얻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나에게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4일 내리 사람들을 만나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둔 덕분이다. 내가 아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에게서 나 또한 씩씩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K에겐 너무나도 미안하지만 헤어져서 진심으로 행복해!
다시 여자아이들과의 우정을 다지는 일이 특히 그렇다. 아무래도 연애 중에는 사랑과 우정에 내 마음을 공평하게 나누어 줘야 하니까. (심지어는 대부분의 경우 사랑 쪽에서 더 높은 우선순위를 바란다.) 친구들과 모여 여자와 여자 사이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일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헤어지기 전, 한창 연애를 하던 어느 날엔가는 스스로 배신자가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나는 언제 어디서나 회색지대에 있기를 택하는 사람이지만 당분간은 친구들과 있어야겠다. 그 반대편에 너무 오래 있었기 때문. 뭐……이제 와서 말하자면, 전 애인이 되어버린 K는 유독 그런 편이었다. ‘사람을 살덩이로만 봐선 안 된다’는 종류의 일에 대해서는 눈치를 보지 않고 심지어는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
헤어질 이유야 많았지만 그게 제일 싫었다.
당분간은 독서에 집중해보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단 한 권도 접해보지 않은 주제에 에세이를 집어 읽고 있다. 부쩍 런닝에 관심이 많아진 탓이다. 뒤늦게나마 꿈을 쫓으려는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아무래도 체력일 테니까.
제목은 .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런닝에 몰두했다가 싫증이 나 그만 두고, 지금은 뛰는지 마는지 혹은 간간이 마실 정도로만 나갔다 오는지 알 수 없는 장기하의 에세이 를 함께 보면 좋다. 책을 읽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꼭 한번씩 달려 보는 습관을 들이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이거 채우고 싶음 어림도 없지…….
드디어 머리를 잘랐다 새로운 희망이 마구 샘솟는다!
행복해라~
나에게는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평생을 그렇게 믿어왔고, 모두가 그렇게 말해왔다 오직 K만 빼고!!!!!!!!!!!!!!!!!!!!! 생각보다 훨씬 후련한 기분
♫♪~
무언가에 중독된 모습은 새삼 참 보기 흉하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아버지가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이참에 나도 게임을 끊고 열심히 살아볼 예정 오늘부터 1일차! 아빠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근래 심장이 다시 뛰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쉬는 모든 숨이 빠르게 혈류를 생성해내고 죽기 전까지 망한 삶이란 그 어디에도 없다는 믿음이 자리한다 오랜만에, 그 무엇보다도 오직 죽음만이 가장 나쁘다는 생각이다
1가정 1로키를 보장하라
떠나지 않을 명분이 필요하다. 선인장이든 물고기든 뭐든. 마음껏 돌보고 나를 아무리 퍼부어도, 메아리쳐 돌아오는 마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마음을 주고받는 일이 무서운 게 아니다. 주는 건 주는 거고, 받는 건 받는 거니까. 그렇게나 단순한 거니까. 내가 더 퍼부을 마음이 없어 주저하게 될 때, 상대가 그걸 깨닫게 되는 그 순간이 가장 무섭다.
아무리 바보같은 상대라도 그것만큼은 안다. 누구나 마음에 예민하고 모두 마음을 위해 살고, 그런 와중에 난 마음을 하나도 숨길 수 없어서. 이제는 구태여 숨길 생각도 없어서 더 그렇다.
창백한 푸른 점. 그 안의 수십억 년 역사에서 전전두엽의 출현으로 모든 게 뒤집혔다. 모두가 끓는 물에 담긴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불현듯 선명해질 때면, 비범하거나 혹은 비상식적이게도 지구를, 그리고 그 안의 우리 모두를 구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 난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떻게?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경고한 지 몇십 년째다. 땅 위의 모두가 끝의 시작을 느끼는 와중에서도 세상은 점점 뜨거워지기만 한다.
내 근방의 현실에서 멀어질 때에서야 비로소 진짜 현실이 보인다. 그럼 모든 게 의미 없이 느껴지다가도, 뭔가 노력이라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하나 우습기도 하고. 모든 게 우스워지는 순간 다시 내 현실에 갇히는 순환 속이다.
그래서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게 슬퍼져서 이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반대로 내게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는 뜻이니까 그 점이 다행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뭐가 됐든 매 순간 매분 매초 균형을 찾으려는 내게 나도 지쳤다. 행복을 행복으로만 느끼지 못하고, 고통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계속해서 중간값을 유지하려는 일종의 관성이 나를 계속 묶어둔다. 이유는 모르겠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저 태생이 그렇기 때문인 건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꾸만 무감각을 향해 가려는 건, 터져나오려는 뭔가가 가득 차 있다는 뜻인 걸지도 모른다. 때로는 시한폭탄처럼 느껴지지만 그게 있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확신마저도 생긴다. 그게 뭔지도 모른 채로 평생, 그냥 계속 그렇게.
>>401 제발 단순하게 살자.
두쫀쿠 먹고싶다. 두쫀쿠 사가야지.
마음놓고 샀다. 따봉하이닉스야 고마워!
잠이 안 온다. 어제에 두고 온 것들이 너무 많다.
요즘 영화관에 가면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하다. 상상 이상으로 행복해진다.
영화관에서의 경험이란 게 다 죽을 줄 알았는데 올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 해서 기쁘다! 크레딧이 올라간 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 엘리베이터 앞에서 영화의 좋고 나쁨을 얘기하며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나누는 순간들이 사랑스럽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도. 최근 작은 관에서 세계의 주인 관람을 마치고 다른 한 쪽에서 일어나던 누군가와 눈을 오래 마주쳤을 때에도 큰 기쁨을 느꼈다. 이야기를 나눌 순 없었지만, 영화가 다 내려간 지금까지도 기획전을 붙잡아 마지막까지 주인이를 지켜보러 왔다면 시선을 몇 초 섞는 것만으로도 얘기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았겠냐고.
단순 오해일 수도 있고.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오빠와의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낸 기분이 살짝 들었다.
어제 친구들에게도 잠깐 오빠에 대한 내 불쾌감을 내비쳤다. 과하게 솔직해져 가고 있는 것에 후회는 없다. 후회하기에 나는 너무 오래 참아왔다. 중요한 이야기는 여전히 아무에게도 전할 수 없었지만, 다른 이유라도 핑계삼아 오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다.
그 말을 할 때 난 취해 있지 않았다. 이게 가장 큰 진전이다.
생각보다 백룸을 괜찮게 본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최초로 레딧에 올라온 단 하나의 게시글을 발견했을 때 그게 세상의 모든 인간사를 초월하는 무신경한 느낌이여서, 그래서 괜히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영화는 생각보다 더 인간적인 감상이 섞였다는 느낌이다. 서사나 이유. 원인. 하지만 영화에는 그런 게 꼭 필요하기도 하고.
어쩌면 감독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여러 우려 섞인 시선들이 개입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수직적인 공간이 끝없이 나열된 곳에서 느끼는, 도저히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순수한 공포도 전혀 다른 주제의 영화인 더 플랫폼에서 더 강하게 느꼈었다.
일단 크리쳐가 하나도 안 무서웠다. 그게 가장 크다. 어쨌든 공포영화를 보러 간 건데.
게임으로 등장한 백룸이나 여타 다른 설정들과,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아류 리미널 스페이스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2017년의 인터넷 게시글에서 처음 마주했던 공포감이 잘 구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감독 본인이 유튜브에서 구축했던) 기타 설정들이 어슴푸레 섞여서 더 실망스러웠던 것 같기도. 근데 애초에 그걸 바란 사람들도 있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일 뿐인가 싶기도 하다.
오리지널을 무엇으로 기억하느냐에 대한 문제같기도 하다.
나쁜 감정은 나를 지키기 위해 있다. 그들은 내가 내 삶을 애정한다는 증거로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도 조금 더 다정할 필요가 있다. 나쁜 감정은 마음 세상의 백혈구같은 거 아닐까.
엄마는 만성적인 우울증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무리 무기력할 때라도, 사람이 배가 고프면 뭐라도 집어먹게 된다는 말. 엄마가 그 말을 하던 순간 그 자리에는 만성 우울증 환자 3명이 있었다. 나는 의 한 장면을 떠올렸으며 아빠는 실제로 늘 에너지가 넘치던 친구가, 가족을 떠나보낸 후 아사를 선택한 얘기를 했다. 배가 고파도 무언가를 입에 넣을 의지가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 스스로를 투영하고, 자신이 이해받고 싶은 마음으로 그들을 변호했다.
아빠는 본인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런 아빠를 더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엄마가 유달리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자기 안에 파묻히는 일 없이 외부에서 오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언제나 그것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에너지를 뻗어 보낸다. 그러면서도 회한에 잠기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없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아주 좋은 글. 신피질과 고양이에 대해서. https://www.ppss.kr/news/articleView.html?idxno=63540
다른 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떠날 수 있을 만큼 화성이 궁금하다. 그런 마음으로 많은 것들을 지나오고 있다.
버려진 것들을 위해서라도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가야 한다.
누군가에게 얘기하고 싶으면서도 소통에 지쳐 있던 날, 숨을 곳을 찾아 일기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났어도 많은 얘기를 나눈 뒤에 숨고 싶어지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래서 사람들과 꽤 많이 대화한 날이면 일기를 찾아오게 된다.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나 뒤늦게 찾아온 생각. 그런 것들을 남기러.
그러니 나에게 영감이 되는 것들은 결국 대화다.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앞으로 가는 발걸음이 더딜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한테 화가 나는 걸 보면 이제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어지기도 해
알콜과 주식에 중독된 아빠가 엄마한테 빌려간 천만원과 돈을 빌려준 뒤로 이빨 고칠 돈이 없어서 치과에 안 가는 엄마나 바닥의 반 이상이 거매질 때까지 곰팡이가 스미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징그러운 벌레가 나오는 집이나, 오갈 데 없이 30년째 그런 집만 전전했던 이 상황이나, 내 인생을 반쯤 부수고도 여전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어떤 외부 활동 없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오빠나 그런 게 다 지겨워 갑자기 소리가 지르고 싶어지는 내 마음이나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할 폭력적인 기억에 10년 넘게 짓눌리다 숨구멍을 찾아 한 번 뻐끔 한 뒤엔 결국 다시 숨기기로 결정하는, 영원히 무한한 쳇바퀴를 스스로 굴려대는 내 답답함이나, 그로부터 시작된 무감각이 내 모든 고통을 마비시켜서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거라는 단단한 남탓 내지는 착각이나.
불륜으로 사람들을 기만했던 동료와 상사, 그게 싫어 사람들이 떠나고 다시 새로운 풀이 찰 때까지 아무것도 모른 척하고 꿋꿋이 남아있었던 나만의 기만과, 그럼에도 깨끗이 지우지 못하고 마음 한 구석에 남았던 적개심. 인정욕구, 억울함, 미움, 애정, 질투, 온갖 감정이 섞인 하수구와 어느새 어떤 냄새를 맡고 와선 나를 은근하게 깔보던 사람들. 대체 내게서 언제 어떤 냄새를 맡았던 걸지 알 수 없더라도.
곰팡이 냄새를 맡았나, 하수구 냄새를 맡았나. 조금이라도 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싶었을 따름이다. 이조차 누군가에게는 기만이겠거니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서 화성에 가고 싶어지는 거다.
화가 많아진 걸 보니 코노에 갈 때가 된 듯.
30분 내리 락을 부르고 심신의 안정을 되찾자! 오락가락도 락이다.
나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사람들은 대부분 능력 대비 인정욕구가 과했던 자들이다. 능력이 없는데 쓴소리를 못 견뎌 하거나 능력이 있지만 겸손함을 가지지 못했거나… 나도 니네가 싫어! 후자는 그나마 입체적이라서 몰래 애정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적어도 난 그들보다 친구가 많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현실의 나는 유머감 넘치는 재롱둥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투로 글을 쓰거나 함부로 징징대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나마 근엄하게 징징대기로 했다. 앞으로 1년 정도는 고통의 시간일테니… 이전보다 더 자주 징징댈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참 좋아!
이따금 오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못 배기는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괜히 집에 들어가기 싫어 쓸데없이 밖에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결국 눈물을 펑펑 쏟으며 택시를 타고 귀가하게 되는 숱한 날 중의 하나.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강렬한 충동은 결국 늘 그렇듯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말을 하면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한두 명 정도는 있다. 난 그들을 붙잡고 앉아 침묵처럼 어두운 슬픔 안에서 조심스레 단어를 더듬어가며 어떤 날에 대해 고백하는 상상을 하고, 이 상상 속에서 그들은 대개 인내심 있게 나의 말을 들어준다. 내가 아는 그들이라면 현실에서도 틀림없이 그래줄 것임을 믿는다. 상상이 그 쯤까지 진행되면, 그제서야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발칙한 생각까지도 해 본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평생 남을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면 내가 틀린 게 아닐까 하는 바람에서 기인한, 소망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종류의 생각. 상상 속의 상대방이 흘린 눈물이 마치 마법의 세제라도 되는 양 온갖 부정한 것들을 씻어줄 거라는 망상에 흠뻑 빠진다. 그 고백의 끝에서 나의 대사는 언제나 ‘오빠를 죽이고 싶다’, 내지는 ‘사고를 당했으면 좋겠다.’와 같이 험한 것이다. 십여 년 전 오빠는 나를 이미 여러 번 죽였으니까. 이런 마음에 죄책감 같은 불순물은 감히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말을 들은 상대방은 살짝 놀라지만 곧 내 어깨를 토닥여 주거나 안아주곤 한다. 이 상상의 끝은 언제나 따뜻한 느낌이다. 택시에서 내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문을 기점으로 마치 바깥과 집 안을 가르는 투명한 막이라도 있는 듯 모든 감정이 순식간에 씻은 듯이 사라지고는 한다. 문간에서 몇 걸음 더 걸어 안으로 들어오면 현실에 존재하는 오빠가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쯤 되면 내가 누구를 그렇게 미워하며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상상 속의 오빠와 현실의 오빠는 같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전혀 다른 사람이다. 여전히 나는 마음 속으로 오빠를 몇 번이나 죽인다. 슬퍼하는 엄마 옆에서 전혀 슬퍼하지 않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아무도 모르게 후련함을 느낀다. 그러나 상상 속 오빠와 현실의 오빠가 이제 내게 다른 사람이듯, 내 상상 속의 나와 현실의 나도 다른 사람일 것을 잘 안다. 현실에서 오빠의 장례식장에 가게 되는 날이면 나는 끝내 울고 말 것이다. 모든 게 불합리하며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끝도 없이 뻗어나가는 원인을 찾아 실타래를 풀고 풀다가, 애초에 우리는 물고기였을 때에 만족하고 바다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에 이른다. 물고기의 삶이 나은가, 사람의 삶이 나은가. 피해자의 삶이 나은가, 가해자의 삶이 나은가. 돌고 돌아 또다시 모든 생각과 상상과 고민이 부질없음을 깨달을 때 쯤이면 비로소 잠이 찾아온다.
당신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과 나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상충한다.
생애 처음 락페 비슷한 무언가를 간다! 촌스럽지만 꼭 김치말이국수를 먹어봐야겠다.
느슨하게 바쁘다! 할 일도 책임도 여전히 많은데 잠은 오지 않고
김치말이국수는 먹지 못했다. 두부도. 하지만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모든 걱정이 의미 없이 느껴질 정도였고… 아무도 입지 않을 티셔츠라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이방인을 읽고 난 뒤 별첨되어 있던 해설 논문을 읽는 중, 고전이 고전으로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연구되어 온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책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가장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만들어지고, 좋든 나쁘든 모든 순간과 경험에 온 세포를 집중해서 삶을 더 비옥하게 일구어 놓아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 비슷한 감각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러기에 지금이 최적의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매 순간이 그랬다.
우리 눈을 가리는 안경을 벗고 매 순간을 몽땅 들이켜 마셔버리고 싶다.
https://youtu.be/aJNjC6JgavA?si=Mc8R3apTU_9oG4PT 해피 해피 해피밀
https://youtu.be/ahxdD5h06ew?si=lAt9ya0OyEHS8LTY 쭉 흘러가다가 1:36쯤 살짝 튀어나오는 드럼 변주가 넘 좋다.
https://youtu.be/jfXNLHi9yNQ?si=EPOp7Q7hzXaSo-3Q 증말 좋다…
퇴사했는데도 이 시간에 퇴근하고 있는 사람이 됨. 내탓이오… 내탓이오…
이렇게 된 이상 도망가지 말고 반드시 책임을 지자.
라고 책임회피 마스터인 사람이 말했다.
페스티벌을 갔다 온 뒤로 상당히 긍정적인 사람이 된 느낌. DMZ라서 그런 것 같다. 다른 곳이었으면 어땠을지 모르겠음. 모두가 평화를 노래하고… 러쉬 요정들이 춤추고… 자유로웠다!
첫 페벌이 여기라서 정말 행운이었을지도! 무엇보다 좋은 밴드를 많이 알게 돼서 그게 짱이다.
https://youtu.be/ZWuVHHLfVfM?si=MQVeENr8sw1VWIV6 가사가 참으로 사랑스러운 노래
난 내가 너무 좋아 미치도록 내가 좋아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 👍
난세상이 너무 좋아 눈물 나게도 참 좋아 누가 만든 건진 잘 모르겠지만 < 👍👍
https://youtu.be/c95gZLRmAKI?si=ktkN32FTiMQRN06F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최고의 수확 한낮의 잠을 번쩍 깨우던 사운드의 밴드가 있었다. 그냥 들어도 괜찮지만 현장음이 정말 좋았음. 그 때의 풍경과 분위기도 무지 잘 어울렸고.
그리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같이 잠에서 깨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그게 가장 좋았다. 다같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해버리기. 그렇지만 꿋꿋이 자리에서 일어나 약속한 삼겹살에 맥주를 갈기기 위해 숙소로 돌아가기. 푹신푹신한 빵을 잔뜩 품에 안고서 택시를 타던 그 기억들이.
두 레스 연속 그리고로 시작하는 게 신경쓰여 수정을 눌렀더니 비밀번호에 오타가 있어 어쩔 도리가 없어졌다는 비극이 발생. 이제 잠이나 자야겠다.
좋은 일이 일어나고 말 거다! 당신들과 나 우리 모두에게
친구가 내 블로그를 종종 구경하고 있다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까 게시물을 쭉 훑어보았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도 건방지다는 생각만 들고 말았다.
붙잡고 싶은 순간, 지나갔으면 하는 순간. 모두 언젠가는 끝을 맺는다. 눈 딱 감고 이 하루만 지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야. 라고 생각했던, 나름의 첫 대규모 촬영으로부터도 4년이 지났다. 생각보다 많은 인연을 쌓았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어 준 그 모든 이야기들이 새삼 너무나도 소중해지고… 두 손 가득, 가능한 만큼 그러모아 소복하게 담아가고 싶다.
꽤 많이 울었지만 그보다는 더 많이 웃었다. 그 시간동안 깨달은 것들은, 나는 나를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이었구나. 난 일종의 가족 안에 소속되길 바라고 있구나. 전혀 다른 남을 이해하게 되는 건 성장이구나.
이제 그 많은 것들을 뒤로 하고 안녕이다.
모두 흩어지지만 각자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갈 수 있겠지. 아니, 난 답답해서 씩씩댈지도 모르겠다. 다들 멋있는 분들이니… 나만 잘하면 될 듯.
멋진 이별에 걸맞는 노래 https://youtu.be/N_dUmDBfp6k?si=9g3PhFuqaC49AfN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