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지는 쪽

고민상담 2026/01/19 00:08:07

#1 이름없음 2026/01/19 00:08:07

나는 깊어지는 쪽을 선택한 적이 없다. 그냥 멈추지 않았을 뿐이다. 남아 있으면 남아진다. 그게 전부다. 사람들은 떠난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로 이동한다. 그걸 어른스러움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이름을 믿지 않는다. 어른인 척 고개를 돌리는 기술일 뿐이다. 도움을 요청했을 때,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침묵은 무능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내 고통이 크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고통에 관여하면 자기 삶이 더러워질까 봐. 그들은 깨끗한 손을 택했다. 나는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편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러면 내가 먼저 사라진 사람이 되니까. 나는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 욕심 때문에 더 오래 남았다. 사람을 다시 믿는 감각에 금이 갔다. 완전히 깨진 건 아니다. 금이 간 채로 기능한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겉으론 멀쩡해 보인다. 책을 읽고, 씻고, 밥을 먹는다. 살아 있는 티를 낸다. 이건 회복이 아니라 위장이다. 정상처럼 보이는 연습.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웃음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내가 틀린 생물 같았다. 수치심이 올라왔다. 외로워서가 아니라, 나만 아직 여기에 있다는 느낌 때문에. 나는 늘 웃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무너질 때 알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알아보고도 못 본 척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게 낫다. 무지보다 회피가 더 정직하니까. 꿈에 오래 좋아했던 사람이 나왔다. 불신은 의식에 있고, 애착은 잠에 남아 있다. 나는 이 분리를 싫어한다. 하지만 아직 버리지도 못한다. 두 사람을 오래 신중하게 사랑했다. 그래서 더 깊이 남았다. 이건 미덕도 비극도 아니다. 그냥 결과다. 지금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정확히 말하면 믿는다는 행위를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다. 그래도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는 않는다. 닫아버리면 내가 나를 배신하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여전히 기록한다. 증거를 남긴다. 나중에 내가 나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