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9/10/13 23:00:50 ID : E3BbA6o5glA 1
사람 많은 커뮤니티에서 말하기에는 자존심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하고, 스레드 형식의 게시판이 가지는 효과를 원하기에 여기서 중얼거려보는 영화에 대한 단상. 스레 낭비는 싫으니 나하고 이야기를 해주세요! 0. 김영하의 단편소설 <옥수수와 나> 중에서 인용, "재미있게 읽으셨음 됐지, 무슨 얘기인지가 뭐가 중요합니까?"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는 말을 인용한 제목으로 여행기를 펴낸 한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를 사회운동으로 설명했지만, 단지 그렇게 보기에는 이 영화가 너무 아까워서 한 마디.
2 이름없음 2019/10/13 23:01:02 ID : E3BbA6o5glA 0
1. 고전 오페라는 5막 형식(도입 - 전개 - 정점 - 하강 - 파국)으로 구성되는데, 이 5형식은 다시 큰 세 가지 내용으로 구분된다. (1) 사건 진전을 위한 자극적 요소 / (2) 주인공의 운명이 반전되는 비극적 위기(Peripetie) / (3) 최후의 긴장의 순간(Moment der letzten Spannung) <조커>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아서"는 총 5번 혼자서 춤을 추는데, 이 5번을 기준으로 영화를 나눠서 보면 이해가 쉽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자세히 말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주요 사건을 벌인 후 처음으로 춤을 추고, 머레이쇼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춤을 춘다.)
3 이름없음 2019/10/13 23:01:52 ID : E3BbA6o5glA 0
2. 아서든, "조커"든, 이 인물이 등장할 때 화면 양 쪽이 막혀있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포스터에도 그려진 계단이든, 정신병원 복도든, 이 인물의 좌우는 항상 막혀있다. 그가 자기만의 세상에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회구조에 억압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중요한 건, 그를 바라보는 우리만이 그런 구도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화면 속에 있고, 심지어 (머레이쇼 등에서는) 화면의 화면 속에 있기도 하니까! 그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상승-하강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조커는 내려가고, 아서는 올라간다? 그건 중요치 않다. 아서의 몰락이야말로 그의 상승을 그리고 있으니까. 아서가 가장 자신만만할 때는 조커가 되었을 때가 아니던가? 그런데 조커로서의 아서는 항상 (영화 화면 상에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
4 이름없음 2019/10/13 23:02:03 ID : E3BbA6o5glA 0
3. 아서는 마지막에 "코미디언"이 되는 꿈을 이루는데, 그가 차 위에 올라서있을때 환호하는 관중은 그의 아래에 있고, 그의 좌우는 막혀있지 않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정신병원에서 그는 다시 좌우가 막힌 복도를 달린다. 왜? 사회구조가 다시 그를 억압해서? 그의 꿈이 이루어졌을 때야말로 사회적 억압을 뚫어낸 건가? 그러면 다 때려부수고 폭동으로 가득한 그 풍경이야말로 이 영화가 말하는 "아름다운 모습"인가? 이 영화를 사회적 운동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마지막 장면의 유머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방금 조크가 생각났거든. (...)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거야."
5 이름없음 2019/10/13 23:02:35 ID : E3BbA6o5glA 0
4. 어떤 철학자는 웃음과 "경고하는 짐승의 울음"이 얼마나 유사한가에 대해 말한다. 찡그린 웃는 얼굴은 경고하는 짐승의 얼굴과 유사하다. 사실 웃음이 왜 발생하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웃음은 "우리의 예상이 빗나갈 때" 발생한다. 짐승의 경고도, 자신이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본능적인 "힘"의 추구를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통제와 상실은 한 쌍이다. 아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는다. 세상이 언제나 그의 예상을 빗나가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개같은 코미디"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제력을 잃고 웃을 때만, 다시금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한다.
6 이름없음 2019/10/13 23:02:58 ID : E3BbA6o5glA 0
5. 그래서 차 위에 올라선 아서가 양 팔을 벌리고, 다시금 "코미디언"이 되어 사람들에게 "해피"를 전파할 때 그 순간 이 영화가 완성된다. 왜? 상실과 통제가 다시금 한 쌍을 이루기 때문이다. 웃는 사람은 웃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사람들이 그 미친 사람에 호응할 때, 아서의 말이 조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다시 무대로 불러낼 때 "조커"가 완성된다. 아서는 장광설을 풀면서 (스포일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도덕적이라거나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이는 "교양있는 상식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끔찍하다"고 말하면서도 "이제 우리는 모두 광대다"라고 말한다.
7 이름없음 2019/10/13 23:04:16 ID : E3BbA6o5glA 0
6. 이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비극(멀리서 보면 원인-결과가 맞지 않는 광대극)일수도 있고, 그 광대극에 호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비극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선 게 조커라는 사실이 아니다. 거기서 죽은 것이 "아서"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스 비극은 영웅이 그의 죄를 인정하고 죽는 것으로 끝난다.
8 이름없음 2019/10/13 23:04:25 ID : E3BbA6o5glA 0
7.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이 영화를 소비하는 순간, 우리는 이 광대극에 동참하는 것이다. 심각하게 이 영화를 보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말하고, 우리는 모두 조커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내 말을 진지하게 읽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낚였다. 머레이는 비웃었지만, 아서도 계속 말하지 않았나? "내가 어릴 적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말했을 때는 모두 웃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웃지 않네요!" 이 영화는 좌우가 막힌(옛날 자료화면의 필러박스를 연상시키는) 구닥다리(고전 오페라의 형식을 빌린) 코미디다. (인터넷에 널려서, 다들 알고 있을 "<조커>는 '코미디의 왕' 등의 영화를 참조했다."는 해석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문제를 우스꽝스럽게 그린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격식차린 사람들 사이에서 보며 웃던 아서와 다름없다.
9 이름없음 2019/10/13 23:06:31 ID : E3BbA6o5glA 0
8. 왜 다들 이 영화에 진지한가? 왜 <조커> 영화를 본 인셀들이 사람들에게 총을 갈길까봐 두려워하지? 그들의 걱정이 이 영화의 조크를 완성시킨다. 이 영화 밖에서 벌어지는 일(미국의 총 가격이 아프리카의 하루 식량가격보다 싸다는 것)이 더 웃기지 않나? 진지해야 할 건 이 영화 밖에 있다. 눈을 영화에서 떼시길. 당신이 극의 종반부에서 조커에 호응하던 사람들처럼 <조커>에 호응하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방금 조크가 생각났거든. (...)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거야."
10 이름없음 2019/10/13 23:13:22 ID : E3BbA6o5glA 0
9. 결론: 재미있었어. 그리고, "재미있게 보셨으면 됐지, 무슨 얘기인지가 뭐가 중요합니까?"
11 이름없음 2019/10/13 23:16:12 ID : E3BbA6o5glA 0
10. 보론: 누군가는 말하겠지. "인셀들이야말로 영화와 현실을 구분 못하는 거 아니야?", "이 영화는 인셀들을 무시하지 말고 관심을 주자는 것 아닌가?" 그 말도 맞다. 그런데,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장된 "고전영화" 형식을 보여주는데, 왜 누군가는 현실의 이야기를 꺼내는걸까? 이 영화는 그냥 영화고, 비난이든 동조든, 아서가 아니라 "조커"로 영화를 설명할수록 수렁으로 빠져드는게 아닐까? <모던타임즈>를 재미있게 즐기고, 생각 끝에 "노동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그건 좋지만, <모던타임즈>를 즐긴 후 "영화를 본 노동자들이 찰리 채플린에게 심각하게 감정이입해서 공산혁명을 일으키면 어쩌지?"라고 말하는 건 코미디다. 또는, "<모던타임즈>는 노동소외를 다루고 있다."고 단언하는 건 영화를 죽이는 일이다. 코미디는 코미디로,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12 이름없음 2019/10/13 23:16:37 ID : E3BbA6o5glA 0
자, 내가 할 말은 끝! 혹시 영화 봤다면 이야기하자!
13 이름없음 2019/10/13 23:22:55 ID : Y8i3A7s65hB 0
난 사회문제고 뭐고 걍 가정폭력을 받으며 자란 한 정신병자의 드라마정도 라고 느껴지던데 재밌었음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네
14 이름없음 2019/10/14 22:47:09 ID : VaqZba8rxTR 0
난 이웃주민 스토킹 하는 장면은 실제로 자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너무 범죄자의 시각에서 꽃밭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했음... 자기혼자 망상 펼치고 왜 안 만나줘 찡찡 하고 칼부림 사건이 얼마나 많이 나는데.. 게다가 흑인 미혼모... 좀 그 장면은 아서가 조커로 되기까지의 장면에서 필요 없었다고 봄... 카메라워킹은 좋았지만 아동성야자의 음악을 굳이 썼어야했나 싶기도 하고 요즘 자극적이고 수위높은 범죄들이 갈수록 증가하는데 도화선이 되는건 아닌가 싶음... 범죄 저지르는 계기가 아주 사소한거에서 시작더ㅣㄹ 수도 있잖아... 그리고 불행서사... 이건 할 말이 없다 이렇게까지 안 좋은일이 연속적으로 겹치고겹치서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사건들도 마음에 안 들었고... 아서는 어쩌다보니 시위의 트리거가 되어서 이끄는 선봉단처럼 되어버렸는데 인셀들의 망상을 그대로 나타낸 것 같았어...
15 이름없음 2019/10/18 18:01:39 ID : O9s2nClzRA2 0
음..꽃밭? 무슨말인지 모르겠네 범죄자의 시선에선 저게 좋게 보인다 이말인건가? 애초에 꽃밭이라고 할만한 상황이..흑인 미혼모는 아서의 정신병증세를 보여주기위한 도구아니었나? 얼마나 정신병이 심각한지? 그리고 애초에 영화를 보면서 범죄를 생각하면 그사람이 이상한거지 그렇게 따지면 참 많은 영화들과 매체들이 없어져야할텐데 사기꾼들이 이로운역할 하는것도 요번에 도박 영화도 있고 범죄오락영화는 참많고 거기애들은 다 성공하는데 왜 그런영화들은 안막는거야? 그리고 불행서사가 마음에 안든다면 그냥 이영화의 주제나 장르가 마음에 안든다는거 아닌가..넌 우울한거 보면 안되겠다. 인셀들의 망상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그냥 넘어갈게 답답해서 ..
16 이름없음 2019/11/01 15:50:26 ID : wK0oLdXwFeN 0
오늘 조커 보고왔는데. 흠. 새 스레 파기엔 뭐해서 나도 감상평 여기다 남겨봄. 그냥 몇몇 장면 기억나는거, 생각하는거 대충 싸질러봄. 1.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정신병원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바닥에 피묻은 신발자국이 남잖아. 그리고 복도끝 빛이 들어오는 창가 앞에서 화려한 포즈를 취하고 오른쪽으로 가지. 거기서 끝인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시 돌아와서 왼쪽으로 뛰어가고 뒤에서 직원이 쫓아오고. 이 장면에서 대사 한 마디, 말 한마디 안 나오지만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딱 떠오르더라. 아무튼 꽤 인상깊은 장면이었음.
17 이름없음 2019/11/01 16:04:01 ID : wK0oLdXwFeN 0
나도 이거 공감함. 물론 중반부 넘어가면서 왜 그런 장면이 들어갔는지 이해는 갔음. 긍정적인 요소로 들어간것 보다는 부정적인 요소로 들어간게 맞는듯. 조커 너무 영웅화(?)되지 않게 부정적인 요소 넣어준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초반부에.. 뒷내용 모르고 딱 봤을때는..와.. ㅅㅂ.. 미쳤나 ㅋㅋㅋ 싶었어 ㅋㅋㅋ 무슨 ㅋㅋ 스토킹한 남자가 문 두드리고 열리자마자 키스하는데, 문 열어준 여자가 받아주고.. 이게 뭔... 말도 안 되는건가 싶었는데 ㅋㅋㅋ 음..머.. 나중엔 이해 되더라.
18 이름없음 2019/11/01 16:10:59 ID : wK0oLdXwFeN 0
그리고 영화 조커를 보고 사람들이 모방할까봐 논란이 있었다던데. 조커 안 봤을때는 오버한다 생각했는데 보니까 뭔지 알겠더라. 특히 심한 정신병환자들 영화 보고 과몰입하면 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들었음... 이 영화는 소수자나 약자/아싸가 공감하는 내용보다는 중증 정신병자들이 더 공감할것 같은 내용인거 같음..
19 이름없음 2019/11/01 23:15:33 ID : k01eMkk7800 0
며칠된 레스지만 내가 아는 내에서 말해봄 1. 계단씬에 사용된 브금이 Gary glitter(아동성애자)가 지은건 맞는데 흑역사 취급하는 영국과는 달리 미국에선 스포츠경기할때 승리를 고조하는 브금으로도 상당히 자주 쓴다고 함. 이런 분위기 차도 있고 결정적으로 지난달에 계단 브금이 원작자한테 수익은 안돌아간다고 기사났음. 2. 인셀..? 니 해석을 부정하는건 아니긴한데 아서는 전형적인 사회적 약자인데. 중증의 우울증 + 가난하고 궁핍한 환경과 아픈 어머니를 모시는 아픈 아들 + 아서가 가진 장애를 생각하면 인셀이라고 보기 어렵지. 난 이 영화가 오히려 뭐랄까.. 요즘 우리나라 사회와도 살짝 비슷하다 느꼈고 전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얘기 나오는거보니 사람사는 곳 다 똑같이 흘러가는구나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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