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3/10 19:19:23 ID : 0tBArvu6Zin 7
아까 그 스레 맞음. 처음껀 다 펑했어 미묘했던 관계 기간이 너무 길어서 다쓰다간 천레스 넘길것같아서 썸타기 시작한 후부터 다시 쓰려고. 쭉 보던 레더 미안
2 이름없음 2020/03/10 19:22:09 ID : wJRA2Fa7aoN 0
헉 재밌게 보고있었는데ㅠㅠㅜ 나 계속 볼게!
3 이름없음 2020/03/10 19:24:41 ID : 0tBArvu6Zin 0
이전거 못 본 사람도 있을테니 대충 설명하자면 남친과 나는 같은 대학. 각각 미술원과 문예원. 나는 한창 우울증에 걸렸었고, 그 때 남친을 처음 만나고 아무 말 오가지도 않았는데 위로받고, 가까워짐. 처음엔 운명인가, 운운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관계는 처음이라 흥미가 갔던 듯. 둘 사이 관계는 굉장히 나른하면서도 날 서 있는. 굉장히 편안하면서도 서로 알게 모르게 벽을 치고 있는. 폭풍전야 같은 관계? 서로 잘 얘기도 안하고 웃지도 않아. 또 가끔 서로 뚫을 듯이 쳐다봐서 제3자가 보면 싸웠나, 생각할 정도. 둘 다 소음에 굉장히 예민해서 아주 조용한 방에서 말 없이 둘만 있는 걸 선호하고, 그때문에 처음부터 사귄다고 온 캠퍼스에 소문 난 상태.
4 이름없음 2020/03/10 19:25:13 ID : 0tBArvu6Zin 0
미안해 이어쓰기엔 끊기는 느낌이 들어서.
5 이름없음 2020/03/10 19:29:57 ID : 0tBArvu6Zin 0
아, 가장 중요한 거 또 하나 둘다 예외적으로 이과도 아닌데 두뇌회전력 좋음. 걔 아이큐는 156넘고, 나는 140대 정도. 나는 확실히 천재보단 멍청이에 가깝지만, 그냥 대충 ‘감수성 풍부한 천재들’이라고 생각하고 봐도 무방. 외려 염두하지 않고 보면 두 미친놈처럼 보일 수도. 또한 서로 대화할 때도 실상 대화는 몇 마디 안나누면서 각자 저 인간은 뭘 생각하나, 생각하고 대답하는 타입. 15분 전 던진 말에 15분 후에 대답하고 할 때도 있음. 어떻게 보면 나른한 퀴즈놀이 같은거지. 예를 들면 -...추워. -몇 도? -1도만. 원래는 추워. 추워? 응. 난방 켜져있는데. 더 높일까? 응 1도만 더 높여줘. 알았어. 인데 둘 사이에선 그냥 저렇게 기본 의사소통 몇 단계를 뛰곤 말함.. 그러니까 처음 읽는 레더들은 약간 이상한 대화가 있어도 참고해줘
6 이름없음 2020/03/10 19:31:33 ID : 0tBArvu6Zin 0
가장 중요한 것만 썼어. 나머지 읽다가 이해 안되는 건 질문해도 돼. 원체 관계 자체가 이상해서. 그 당시에는 썸인지도 몰랐지만 지금 와서 분류해보자면 썸이었던 기억부터 쓸게
7 이름없음 2020/03/10 19:39:41 ID : 0tBArvu6Zin 0
그렇게 계속 미대건물 안 동방이나 카페에서 시간 보내다가, 처음 학교 사정권을 떠나 같이 갔던 곳은 충무로 뮤지컬 극장. 그 약속 잡았던 날도, 그냥 평소처럼 동방에서 같은 공간에서 각자 할 거 하며 있었는데, 걔가 먼저 입을 떼더니 티켓이 생겼다고 같이 가자 해서. 복기하자면 - 뮤지컬 좋아해? 왜? - 티켓 생겨서. ..응. 이렇게 뭐 여느 때와 같이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이 잡히고. 그리고 며칠 뒤에 만났지.
8 이름없음 2020/03/10 19:48:28 ID : 0tBArvu6Zin 0
같이 충무로로 갔는데 둘 다 별 얘기는 없었어. 늘 그랬듯이 정말 필요한 말만 몇 단어 내뱉고. 뚱한 무표정 얼굴에. 그래도 서로에게 모든 신경이 향해 있었지. 눈빛만 잠깐 마주쳐도 서로 방금 쟤 무슨 생각으로 쳐다본건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각자 또 생각하고. 뮤지컬이 시작하고, 나는 뮤지컬엔 전혀 흥미 없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 그냥 보고 있었어. 뮤지컬 도중에도 뭐 은근슬쩍 손을 잡는다던지 그런 건 전혀 없었고. 근데 그렇게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뮤지컬도 끝나갈 무렵,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어. 또 이유 없는 우울감이 도졌던거지
9 이름없음 2020/03/10 19:52:17 ID : 0tBArvu6Zin 0
별다른 생각은 없었고, 뮤지컬 내용도 트리거 요소는 아니었고. 그냥 막판에 갑자기 화려한 무대를 보고 있으니까 슬픔이 몰려와서. 그렇게 뮤지컬이 끝나고 나오는데 걔가 내가 운 걸 눈치챘어. 근데 놀라질 않은건지 놀란 티를 안낸건진 모르겠지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아무말도 안하고 눈물 닦아주더라고. 왠지 나도 별로 부끄러워하거나 당황하진 않았고. 첫만남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서 대충 우울증이란 건 눈치 챘겠지만, 딱히 내게 묻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어. 그냥 아무 말 없이 그 뚱한 얼굴로, 눈물 떨어지면 닦아주고, 떨어지면 닦아주고. 그렇게 잠깐 아무 말 안하고 있다가, 걔가 밥 먹을래, 물었고. 그냥 같이 밥 먹으러 갔고.
10 이름없음 2020/03/10 19:58:58 ID : 0tBArvu6Zin 0
참 신기한 게 같이 카페도 가고 매일 둘이서만 동방에 있었는데도, 밥은 그 때 처음 같이 먹었어. 걔도 그냥 매너도 꽤 좋았고, 음식도 괜찮았고. 헤어짐도 형식적이었고. 그게 첫 외부 데이트의 끝이었어. 밥 먹을 때는 몇 번 웃었던 듯. 그 뒤로 또 평소처럼 종종 동방에서 만나고 하다가, 두 번째 같이 갔던 곳은 걔 화실. 걔네 집이 잘살았는지, 화실이 내가 알던 보통의 화실보다 좋았어. 물론 여기저기 종이 있고 더럽긴 마찬가지였지만. 간이 침대도 있었고 가구도 있고. 화실보다는 작업실 느낌.
11 이름없음 2020/03/10 20:04:24 ID : 0tBArvu6Zin 0
걔네 집과 학교가 꽤 가까웠는데, 그 중간지점에 화실이 있었어. 학교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였지. 늘 그랬듯이 만나서 동방을 가려는데, 그 방을 누가 쓰고 있었어. 그래서 오늘은 날이 아닌가보네, 하고 다음에 만나자 하려는데 얘가 잠깐 고민하더니 자기 화실로 가자고 했어. -...내 화실 갈래? 있어? -가까워. 개인? -응. ...그래. 대충 이런 대화. 그러곤 별 말 없이 같이 화실로 향했지. 며칠만에 만난거라 둘 다 헤어지긴 싫었나봐
12 이름없음 2020/03/10 20:09:42 ID : 0tBArvu6Zin 0
걸어서 15분 정도. 둘 다 말도 없이 앞만 보고 걸었지만 한없이 편안한 분위기였어. 화실이 어딨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안물어봤지. 걔가 작업하고 창작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직접 보고 싶어서. 그렇게 한 오피스텔에 도착해 올라갔고, 그때 걔 화실을 처음으로 들어가봤지. 일반 의자 몇 개에, 그림 그리는 도구들 있고.
13 이름없음 2020/03/10 20:12:18 ID : 9xSLe0pQr9b 0
ㅂㄱㅇㅇ
14 이름없음 2020/03/10 20:16:19 ID : 0tBArvu6Zin 0
폐쇄된 공간이 남녀 둘이 있는데 전혀 어색한 느낌도 없었어. 동방이랑은 다르게 아예 누구도 찾아올 수 없는 공간이었음에도. 걔는 그냥 익숙하게 들어가서 자리에 앉고, 나는 그 옆에 앉고. 걔가 커피를 타와 잠깐 마시면서 조용히 몇 마디 나누다 다시 각자 할 일로. 또다시 고요한 방 안에서 가끔씩 말 주고받고. 그러다가 시간 지나서 헤어지고. 그게 다였는데. 둘 사이가 호의적이면서도 항상 서로 벽을 친 느낌이었는데, 확실히 시간이 흐르면서 벽이 좀 허물어졌다는 게 그날 화실에서 확 느껴졌어. 별다른 언행도 없었는데 그냥 그랬어. 더 이상 서로 날을 세우고 퀴즈놀이를 하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15 이름없음 2020/03/10 20:20:39 ID : 0tBArvu6Zin 0
그뒤로도 동방에서, 혹은 걔 화실에서 가끔씩 같이 있었지. 벽은 점점 허물어지고 있었지만, 그러다 확실히 관계가 발전된 건 방탈출 카페에 갔었을 때였어. 발전됐다기보단 드디어 서로에 대한 마음이 표면적으로 드러났다고 보는 게 맞긴 한데. 그 때가 방탈출 카페가 완전히 전성기였을 때. 재미있어보이길래 둘이 그냥 가볼래, 해서 갔었거든. 근데 얘도 멘사급이고 나도 꽤 머리 좋고. 둘이 조용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좋은데 그게 심지어 머리굴리는 게임이니까 너무 재미있는거야. 종종 신기록도 세우고. 그러다보니까 둘이 같이 방탈출을 굉장히 자주 다니게 됐어
16 이름없음 2020/03/10 20:23:43 ID : 0tBArvu6Zin 0
보통 별 다섯 개가 최고난이도였는데 언제 한 번은 자기네는 별 여섯 개 방이 있다고 하는 곳이 있었어. 엄청 어려운 난이도라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한거지. 거길 걔랑 나랑 갔었는데, 아마 우리가 갔을 때 그 테마 최고기록이 35분인가 그랬을거야. 방탈출은 스포하면 안되니까 대충 말하자면, 고전 유럽풍 배경의 집이었고 약간의 공포 난이도가 있었고. 유령 대저택?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네.
17 이름없음 2020/03/10 20:26:46 ID : 0tBArvu6Zin 0
하는 방탈출마다 거의 매번 신기록을 세웠었는데 그 별여섯개 방에서 갑자기 둘 다 잘못된 쪽으로 하나를 풀어서 시간이 훨씬 지연된거야. 아무튼 마지막 탈출구까지 풀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시간이 37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신기록은 못 세우는 시간이었어.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으니까, 마지막 자물쇠까지 풀고 나가려고 했는데, 걔가 뒤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그냥 있자, 라고 입을 뗐어.
18 이름없음 2020/03/10 20:36:47 ID : 0tBArvu6Zin 0
37분, 아깝네. 하더니 내가 마지막 자물쇠 풀려는 데 하지말라고 하는거야. 그냥 있자고, 시간도 남는데. 하면서. 방탈출이란 게 가진 목적이 단 하나 ‘탈출’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이해가 안 되지. 그래도 뭐 신기록도 아니고, 언제 나가든 상관 없어졌으니까 나도 그냥 아무 질문 없이 따라줬어. 테마가 은근 고풍스러웠어서, 맘에 드나보다, 싶어서. 근데 얘가 처음 방으로 가지도, 소품 침대에 앉지도 않고 망부석처럼 그냥 또 나를 나른하게 쳐다보면서 벽에 기대고 서있는거야. 동방이나 화실에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근데 여긴 방탈출이고. 걔가 기대고 있는 벽에 달린 빨간 디지털 시계는 초단위로 계속 흘러가고. 내 입장에선 굉장히 이질적인 장면이었지. 그래서 결국 못참고 (안나가면) 뭐하게, 물었는데. 걔가 여전히 빤히 보면서 시간 남으면 하는 거, 라고 답을 했어.
19 이름없음 2020/03/10 20:44:23 ID : 0tBArvu6Zin 0
이젠 서로 대화할 때 딱히 주어 없이 말하거나 예상할 수 있는 말은 건너뛰고 말하는 건 익숙했는데. 시간 남으면 하는 거, 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뭔지 모르겠어서. 뭐. 하고 물었는데 걔가 그냥 단조로운 말투로 키스, 라고 하는거야. 황당하고 어이 없어서 그냥 코웃음 치는데, 걔도 더 이상 말 없고. 그렇게 잠깐 정적이다 걔가 뭐에 홀린듯이 그대로 나른하게 걸어오더니 진짜 키스함. 글로 쓰니까 어떻게 써도 오글거리네. 근데 이전 스레부터 쭉 본 레더들은 알겠지만 얘랑 나 사이 관계 자체가 항상 잔잔하면서도 터질듯 말듯 했던 관계라. 별로 놀랄 건 없었어
20 이름없음 2020/03/10 20:47:59 ID : 0tBArvu6Zin 0
그러다 탈출 실패 직전에 방을 나왔지. 거의 20분을 그러고 있었던 거니까 cctv로 카운터 알바생들은 다 봤겠지. 딱 봐도 그런 눈치였고. 근데 원래 얘도 나도 항상 뚱한 표정이었다 했잖아. 말도 별로 안하고. 주로 서로 행동이나 눈빛을 보고 대하니까, 방 나와서도 평소대로 똑같이 있었는데 알바생들이 궁금했나봐. 방금까진 키스했던 두 남녀가 방 나오더니 별 말도 스킨십도 아예 안하니까.
21 이름없음 2020/03/10 20:53:29 ID : 0tBArvu6Zin 0
탈출 성공하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데 우리는 항상 얼굴 사진이 아니라 그냥 그 카운터 사진, 바닥 사진, 이런 걸 랜덤으로 찍어달라 했어. 그냥, 그렇게 찍으면 그 날 분위기랑 그런 게 많이 담기거든. 인물 사진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왠진 모르겠지만 서로 같이 사진을 찍거나 기록을 남기려곤 하지 않았어. 이것도 그 보이지 않는 벽 때문이었겠지 아무튼, 그러다보니 우리는 폴라로이드 필름에 우리 대신 카운터에 있는 인형이나 장식 등을 담았고, 알바생은 저 인간들 관계가 더 궁금해졌나봐
22 이름없음 2020/03/10 23:03:13 ID : 0rfhs63TQtt 0
악!!!!!! 보고 있어!!!!!! 더 써쭤어!!!!
23 이름없음 2020/03/11 00:35:28 ID : bzXzdTXvCly 0
ㅂㄱㅇㅇ
24 이름없음 2020/03/11 01:01:39 ID : bzXzdTXvCly 0
ㅏ아 와 뭔가 막 뭐라고해야하냐 감정표현 쩌는 낭만주의 소설 읽는 것 같아 ㅠㅠㅠㅠㅠ
25 이름없음 2020/03/11 01:04:59 ID : wJRA2Fa7aoN 0
보고있어
26 이름없음 2020/03/11 01:22:52 ID : 0tBArvu6Zin 0
과찬이야 고마워 아, 하나 말하자면 갑자기 키스한 건 아니고 이미 이전부터 연인 비슷한 관계였어. 아 그냥 이전 스레 펑하지 말고 이어서 쓸 걸 그랬나... 정확히 정의할 순 없지만, 사랑하는진 모르겠는데 어쨌든 서로 없으면 절대 안되는 사이.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게 매일 공기 사이로만 서로를 훑다가 처음으로 진짜 닿은거지. 그래서 드디어 관계가 표면적으로 드러났다 쓴거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상징적인 키스였지 근데도 난 얘가 왜 그때 하필 키스 하려 했는지 몰랐어. 취할 정도의 무드도 아니었고 나 그때 특별히 예쁘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얘 생각을 못읽겠어서 그만 뒀는데, 나중에 사귀면서 알았지. 얘가 평소엔 공기 흐름까지 계산할 정도로 아주 계산적인 놈인데, 가끔씩 취한 듯이 본성이 나오면 황당한 짓을 한다는 거. 뭐 내가 볼 땐 큰 매력이었어
27 이름없음 2020/03/11 01:29:06 ID : 0tBArvu6Zin 0
작품을 쓰는 게 아닌 썰을 푸는거라, 평소에 작품 쓸 때 쓰던 비유 표현은 최대한 안쓰려 자제중이야. 시놉시스 쓰듯이... 그래도 티 나나보네 알바생이 사물함 키를 건네주면서 은근슬쩍 물어보더라, 혹시 관계가 어떻게 되시냐고. 커플이시면 재방문시 할인 이벤트 하고 있다고. 근데 내가 알기론 그 별여섯개 방 깨면 무조건 재방문시 할인이었거든
28 이름없음 2020/03/11 01:34:23 ID : 0tBArvu6Zin 0
속이 뻔히 보이는지라 그냥 대답 안하고 있었는데, 걔가 말했어. 별 거 아니라고. 친구예요 혹은 네 커플이에요 도 아니고, ‘별 거 아니에요.’ 만약 걔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런 대답을 했다면 좀 서운할 수도 있겠는데, 걔라는 이유 자체로 하나도 안 서운했어. 오히려 우리 사이엔 별 거 아닌 게 더 특별하고 편한 관계인 걸 직감적으로 느꼈거든.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서로 통했는지는 모르겠어. 늘상 고요한 공간에서 둘만 있으며 서로를 꿰뚫어보고 싶어 머리만 굴려대던 탓인지. 이상하게 서로의 말을 알아듣겠어.
29 이름없음 2020/03/11 01:37:42 ID : 0tBArvu6Zin 0
당연히 알바생은 그저 내뱉은 말 곧이곧대로 알아들었을거고, 게다가 우리 둘 다 항상 무표정이니. 괜히 지들이 질문하고 지들이 갑분싸 되고. 키 건네받아서 사물함 열러 가려고 뒤도는 순간 걔랑 눈이 딱 마주쳤는데 역시나 둘이 통했더라. 너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싶은 눈빛. 약간은 앞에 있는 알바생들을 바보라 비웃는 눈빛. 시간 남으면 하는 거 하는 별거 아닌 관계. 실제로 우리가 사귀고 나서도 남들이 들으면 오해할만한 표현을 가끔 썼어. 규칙이라도 정한 것처럼. 둘 사이엔 키스, 커플 따위의 원래 있던 용어보다 훨씬 와닿았으니 뭐 그거면 됐지. 아니 근데 갑자기 키스하고 나왔는데 둘 다 어떻게 그렇게 태평했는지 몰라. 걔랑 있으면 그렇게 돼
30 이름없음 2020/03/11 01:43:50 ID : 0tBArvu6Zin 0
첫키스는 그거였고. 이번엔 첫고백(?)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사귀자고 직접 말로 한 첫 번째 날. 방탈출 키스사건 뒤로도 그냥 평소처럼 만났어. 그 뒤로 변한 게 있다면, 이상하게 손잡기나 포옹은 안했는데 키스는 종종 한 것 같아. 나는 원래 스킨십 별로 안좋아하는 편이고. 걔는, 나중에 들어보니, 손 잡는 것보다 그냥 지켜보는 게 더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서 그냥 보는 게 더 좋대. 미친놈같지. 나도 그 얘기 듣고 너 미친놈이구나, 했어.
31 이름없음 2020/03/11 01:52:38 ID : 0tBArvu6Zin 0
아무튼, 그 뒤로도 평소처럼 똑같이 만났어. 키스에서 사귀자로 넘어가는 이 기간이 꽤 길어. 몇 개월 쯤. 그 사이에 관계도 했는데, 그냥 이렇게만 쓸게. 지극히 우리다운 관계였지. 이렇게만 들으면 진짜 이상하겠지만, 아니 이상한 거 맞긴 해. 나도 그때 정상적인 멘탈 상태가 아니었고 걔는 원래 미친놈이니까. 근데 걔랑 나 사이엔 처음부터 항상 말 없고 같은 공간에서 따로 앉아 있어도 애정을 갈구하는 눈빛이 너무 확고했어. 그냥 그렇게 몇 개월 더 지내다가 인간이니까 몸도 섞은거지. 근데 그때도 되게 조용했다, 보통에 비하면. 웃기지
32 이름없음 2020/03/11 01:56:51 ID : 0tBArvu6Zin 0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걔 화실 간이침대에서 자고 있고 걔는 밤새 야작하다 등교하고. 시험기간은 아니었는데, 아직도 미술원들은 왜 과제 제출 기한 한참 남았는데 야작을 하는지 의문이네. 작품 완성이 오래걸리나 내가 열한시 쯤 눈을 떴는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이미 늦은거 그냥 오전강의 자체휴강 때려버리고 화실에서 쉬고 있었어. 그러다 걔 강의 끝날 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는데 안받는거야. 나중에 등교하려고 나가려는데 알고보니까 걔가 화실에 폰을 두고 간 상태. 무음으로 해놔서 벨소리는 안들린거고.
33 이름없음 2020/03/11 02:01:38 ID : 0tBArvu6Zin 0
근데 부재중전화가 꽤 많이 와있길래 학교 가는 김에 갖다주려고 들고 나왔지. 그러곤 학교에 도착하고 우선 미대건물로 들어가 걔가 자주 있는 층으로 갔는데, 안보이는거야. 찾으려 잠깐 돌아다니다가 다행히 미대건물 입구에서 걔 친구들을 만났어. 나는 못알아봤는데 걔네가 나를 알아봤어. 그래서 얘가 화실에 휴대폰을 두고 가서 갖다주려고 왔다 말하고, 다행히 이따 걔랑 강의 겹친다는 친구가 있어 건네줬지.
34 이름없음 2020/03/11 02:05:42 ID : 0tBArvu6Zin 0
근데 폰 받으면서 친구들이 얘기하는데. 혹시 걔 화실 들어가신가냐고. 자기들은 구경도 못해봤다고. 원래 개인 화실 있으면 거의 공개도 안하고 누구나 외부인이 들어오는 걸 꺼린대. 특히 걔처럼 예민한 애들은. 정말 아무도 걔 화실을 들어가본 애가 없대. 술에 취한 애 어디든 넣어놓으려고 딱 한 번 화실 현관까지 들어갔었는데, 술 취한 상태로도 나가라고 화를 내더래.
35 이름없음 2020/03/11 02:09:18 ID : 0tBArvu6Zin 0
그 얘기를 듣고나서 직후엔 의아했지. 난 거기를 이제 내꺼처럼 쓰는데.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기분이 좋은거야. 변태같지만, 걔의 온전한 공간에 왠지 내가 침투하는 걸 간접적으로 허락받은 것 같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 걔가 자기의 영역을 그냥 내어준거잖아. 뭐 정복욕 비슷한거지. 그러더니 또 친구들이 하는 말이, 근데 혹시 여자친구 맞으시녜. 내 동기들도 다 그 소리를 했는데, 확실히 얘랑 나랑 항상 둘이서만 붙어있는데도 말도 안하고 웃지도 않고 하니까 자기들도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야. 나는 내 동기들에게 해명이라도 했는데 얘는 딱히 그런것도 안했나봐
36 이름없음 2020/03/11 02:13:03 ID : 0tBArvu6Zin 0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사귀자는 말은 없어서. 물론 얘랑 나랑 둘 다 말보단 언행으로 서로 알아맞히는 편이지만. 아무튼 괜히 이상하게 말했다 얘 곤란해질까봐 그냥 여친 아니라고 얼버무렸지. 그 날은 만나기로 한 날은 아니라 서로 보진 않았는데, 평소에도 땅을 기던 기분이 더 가라앉았지. 근데 근래들어 우울한 기분에 정확한 이유가 있던 건 처음이라, 우울하긴 한데 한편 좀 좋기도 하고.
37 이름없음 2020/03/11 02:17:47 ID : bzXzdTXvCly 0
아ㅜ너무좋다 보고잇어
38 이름없음 2020/03/11 02:22:42 ID : 0tBArvu6Zin 0
아, 걔랑 나랑은 문자는 거의 안했어. 전화는 좀 했는데. 그래서 다른 커플들이 싸우는 가장 큰 이유, 연락 문제로는 전혀 안싸웠어. 사귀고 난 뒤에 가끔 싸울때도 밉고 죽이고싶어서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너무 집착해서 싸우는 거라 해야하나. 근데 그 날, 집에 가려고 하는데 걔가 문자가 온거야. 진짜 놀랄 일이야. 걔랑 나랑 문자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할 정도로 안했었을거야. 상대방도 내 앞에 없는데 글자만 주고받으며 실실대는 거, 나도 그닥 좋아하진 않았거든
39 이름없음 2020/03/11 02:27:05 ID : 0tBArvu6Zin 0
고마워 늘 행복하길 바라 그러니까 걔 이름 석자가 뜬 문자 알림이 온 순간부터 놀랐지. 그때 아직 아무 약속도 더는 안 잡은 상태였는데, 얘가 내일 만날 수 있냐고 연락이 왔어. 보통 사람같으면 그냥 약속 잡으려 하는구나, 생각이 했겠지만 얘가 문자로 온거니까 내일 당장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겠구나. 급하구나. 생각이 들었어. 얘도 솔직히 문자로 하면 내가 그런 의도를 알아들을거라 생각하고 보냈겠지. 종종 짧게라도 하던 전화 놔두고. 뭐 그래서 나는 알겠다고 보내고. 그렇게 다시 약속이 잡히고.
40 이름없음 2020/03/11 02:31:49 ID : 0tBArvu6Zin 0
아, 갑자기 재밌는 거 생각났는데 얘랑 나랑은 겉모습만 보면 절대 전공 못맞췄어. 얘가 미대생이고 내가 문창과인데, 겉모습만 보면 둘이 반대였음. 나는 맨날 밝은색 염색모에 화려한 옷에 악세사리 엄청 하고 다니고. 이제와 보면 그게 썩어 문드러진 속을 들키기 싫은 일종의 무의식적 자기방어였지만. 걔는 항상 약간 긴 펌 머리에 브라운 계열이나 모노톤 옷만 입고 다녔으니까. 누구한테 물어본들 거꾸로 맞혔을거야
41 이름없음 2020/03/11 02:45:01 ID : bzXzdTXvCly 0
으아 진짜 이런 스레 너무 조아 레주 문창과같어 정말 필력 쩐다ㅜㅜ
42 이름없음 2020/03/11 11:46:30 ID : 0tBArvu6Zin 0
고마워 레주 문창 맞아 최대한 거추장스런 필력 안쓰려고 하지만 직업병인가보네. 좋은 일 가득하길 바라 사랑이라 치기엔 잔잔하고 조용하지. 근데 또 뭔가 답답하고 이질적이고. 예술하는 사람들이 대개 우울한 성향이라는 건 맞는 말 같아. 다만 둘이 같이 있어서 극한으로 시너지까지 난거지. 그래서 몰입해 읽다보면 예민한 누구는 토할 것 같기도 할거야. 나도 지금 생각하면 그러니까.
43 이름없음 2020/03/11 11:54:03 ID : 0tBArvu6Zin 0
그렇게 문자로 약속잡히곤 다음 날에 학교에서 만났어. 근데 평소처럼 동방이나 화실 가지 않고 카페로 갔지. 학교 앞에 브라운 인테리어의 한적한 개인 카페 같은 곳 있잖아. 햇빛 받기 좋을 것 같은. 난 아직도 그 카페 좋아해 아무튼, 한가한 시간대라 사람도 두어명 정도밖에 없고 조용해서 스피커로 나오는 피아노소리만 잔잔하게 깔리고. 우린 맨 창가 쪽 테이블로 가서 앉았어. 커피를 시키고, 창 밖 도로와 나무 풍경이 너무 예뻐서 둘 다 평소처럼 말 없이 각자 창 밖 풍경만 바라봤지
44 이름없음 2020/03/11 11:57:10 ID : 0tBArvu6Zin 0
근데 꽤 긴 시간이 흘러도 얘도 계속 창밖만 바라보곤 아무 말도 없길래. 분명 문자로 한 건. 특별히 말할 게 있다는 의도로 보낸걸텐데, 그냥 단순히 나 보고싶었던건가. 괜히 헷갈리게 한 번 문자해본건가, 생각이 들었지 근데 이유가 있든 없든 굳이 재촉하고 싶지 않아서 먼저 묻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 피아노소리 창밖풍경 내앞에앉은 걔. 이렇게 삼박자가 아주 절묘하게 잘 맞기도 했고. 계속 그냥 이렇게 있고 싶을만큼.
45 이름없음 2020/03/11 12:00:46 ID : 0tBArvu6Zin 0
시간이 또 흐르고. 아, 얘를 만나고 내가 조금씩 멘탈이 나아진 게, 원래 아름다운 걸 보면 슬펐는데 이젠 그냥 마냥 예쁘다, 생각할 수 있게 됐어. 따지자면 얘 덕이 크지. 그냥 같이 있어준 것 만으로도. 뭐 그렇게 이런 저런 영양가 없는 생각 하고 있는데, 드디어 얘가 입을 뗐는데 그 말이. -...나랑 만날래. 정확히 딱 이거였어. 서론도 없이. 난 솔직히 갑자기 좀 놀랐지만 안놀란 척 계속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지. 얘도 그렇고.
46 이름없음 2020/03/11 12:05:41 ID : 0tBArvu6Zin 0
진짜 예 아니오를 바라고 고백한 건 아닐거야. 얘랑 나랑 관계가 그랬댔잖아. 사랑하는진 모르겠는데 일단 없으면 절대 안될 사이. 그동안도 연인인 것 마냥 서로 알아듣고 할 거 다 했는데, 이제와서 나에게 우리 사이를 각인시키려는 이유가 뭘까, 생각했지. 그러다 어제 잠깐 미대건물 앞 걔 친구들 만났을 때 여자친구 아니라고 말했던 게 떠오르고, 그것 때문인가 생각이 들었지. 아니 육감적으로 어제 일 전해들었구나, 확신이 들었어. 근데 평소같으면 그렇게 멋대로 추리하고 넘기는데, 왠지 지금은 그러고 싶지가 않은거야. 못 알아들은 척 바보처럼 되묻고 싶었어. 그냥 걔 입에서 정확히 듣고싶은 마음? 그래서 그냥 말해봤지. 지금 만나고 있잖아, 라고.
47 이름없음 2020/03/11 12:08:59 ID : 0tBArvu6Zin 0
얘도 알아들었을거야. 내가 다 알면서 이렇게 묻는 이유를. 내가 뭘 원하는지도 파악했을거고. 비웃듯 피식 웃더라. 근데 무언가를 정확히 단정짓기 싫었나보지. 항상 그랬었거든. 그제야 풍경에서 눈을 떼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나도 같이 쳐다봤어. 얘 눈빛이, 그 말 아닌 거 알면서 바보연기하지마. 이런 말이 담겨 있었지. 난 그제야 다시 질문을 바꿔서. 왜냐고 물어보고. 왜 나랑 사귀고 싶어해 가 아니라, 왜 확인하려는거야. 왜 이제야 말하는거야. 이런 의도였지
48 이름없음 2020/03/11 12:15:07 ID : 0tBArvu6Zin 0
와 근데 이거 말 하나하나 의도를 설명하는 것도 힘들다. 그냥 봐줘 ...왜 -... ... 왜, 를 끝으로 침묵이 이어지는데, 이번엔 서로 각자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얘가 나한테 시간을 주는 듯한 표정이었어. 그렇게 시간이 약간 지나고 얘 표정이 이제 알겠지? 라는 표정이었고. 아님 이제 알겠지 라고 한 게, 연기 그만하고 네가 포기해 라고 전하고 싶어 일부러 그랬을수도.
49 이름없음 2020/03/11 12:20:45 ID : 0tBArvu6Zin 0
아무튼 얘가 다시 먼저 입을 떼더니 대답은, 이러는데. 더이상 지배욕 같은 오기 부리는 것도 유치해보이고 해서 알겠다고 답했지. 그렇게 평범한 연애로 따지자면 우리 1일이에요~ 인 좋은 날인데. 우린 그런 거 없었고 그냥 둘 다 서로 날카롭게 바라보는 눈빛에 뚱한 얼굴에. 누가 보면 큰 계약 체결하는 줄 알았겠지. 근데 난 그때 걔가 너무 멋있어서 취한 듯 바라보고 있었던건데. 해가 내려오기 시작할 때 쯤의 그 햇빛이 걔 머리로 드리워져 머리가 갈색으로 빛나는데 그게 너무 예뻤어. 걔도 나를 볼 때 마찬가지였겠지. 이제 나는 걔가 일부러 알 수 없는 눈빛을 할 때도 꽤 속내를 읽을 수 있게 됐거든. 가끔 기계같은 눈빛 아래에 애정의 눈빛이 있어. 그렇게 관계가 정확히 애인으로 단정지어지고. 둘 다 극도로 나른해진 상태라, 그 날 저녁에 또 이끌리듯 사랑도 나눴고.
50 이름없음 2020/03/11 12:37:37 ID : bzXzdTXvCly 0
보고있엉!!!!
51 이름없음 2020/03/11 13:05:46 ID : Xs2k02ty7vw 0
스레주 글을 읽으면 흘러갔던 감정들이 떠올라. 그리고 네 이야기에 다시 반하게 돼. 적어줘서 고마워. 웃길수도 있지만... 알 수 없는 지금의 연애에 위안과 보탬이 되고 있어. 되는 날의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지켜볼게. 좋은 하루 돼:)
52 이름없음 2020/03/11 16:19:18 ID : 9xSLe0pQr9b 0
ㅂㄱㅇㅇ
53 이름없음 2020/03/19 01:57:53 ID : cKY9y3Ve6i3 0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으로 이끌었다니 기분이 좋다. 고마워 늘 행복하길 바라
54 이름없음 2020/03/19 02:00:57 ID : cKY9y3Ve6i3 0
아 나 레주인데 인코 안달아도 되겠지 적을 건 많지만 일단 얘 이야기를 해볼까 내가 얘를 처음 만났을 때가 심한 우울에 빠져있을 때였는데 얘가 다 이해하는 듯 위로한다 했잖아. 그리고 위에 내가 써놓은 것들만 봐도 약간은 미친놈.. 이라 생각이 될 수도 있고. 근데 뭐 얘 뇌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고, 지금부터 그 얘기부터 써볼까 해
55 이름없음 2020/03/19 02:05:15 ID : cKY9y3Ve6i3 0
내가 얘의 진짜 모습이라 해야하나... 얘의 속을 처음 직접 겪은 일이 있었어 이제 그 뒤로 얘가 이해가 되기 시작하고 더이상 단순히 미친놈이라고 생각은 안했지 얘가 며칠간 학교에 안나온 적이 있어. 뭐 그건 그럴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내가 전화를 걸어도 받지도 않고 다시 걸지도 않았다는 거였지. 원래 늦긴 해도 다시 걸어주긴 했거든. 근데 며칠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는거야 동기들에게 찾아가서 물어봐도 아무도 모르고, 뭐 어디 간다는 말도 없었다 하고.
56 이름없음 2020/03/19 02:10:12 ID : cKY9y3Ve6i3 0
근데 얘가 잠수타기 이틀 전 날 나랑 같이 있었거든. 그 날도 소음 없는 방에 둘이 각자 할거 하고. 정말 별다를 거 하나 없었던 만남이었는데 마지막에 같이 방에서 나가려 할 때 얘가 갑자기 나를 안고 내 체취를 맡았었어 아 이거 위에서 얘기 안한 것 같은데 얘가 내 체취 되게 좋아해. 나도 물론 얘 냄새 좋아하지만 얘는 좀 과장하자면 병적으로 집착할 정도로 좋아해. 맨날 목덜미에 얼굴 묻고. 손목 가져다가 냄새 맡고. 근데 그 날은 진짜 계속 안고 있는거야. 나는 그냥 사소한 일 있나보다, 혹은 얘 또 이러네(방탈출 키스 때처럼) 그런 생각으로 가만히 있어줬어
57 이름없음 2020/03/19 02:13:22 ID : cKY9y3Ve6i3 0
그 때는 못느꼈는데 이제 얘가 연락도 안되고 학교에서도 계속 보인 적 없다 하니까 그게 생각나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한거지 인간의 육감 있잖아. 그런거였어. 얘 분명히 무슨 일이 있구나, 싶은. 계속 몇 시간마다 전화를 해봤는데 다 안받아. 그렇게 며칠을 더 있다 결국 얘한테 직접 찾아가려 마음을 먹었는데, 얘네 집주소는 몰라. 얘에 대해서 아는 게 대충 개인정보랑 화실 위치, 미술용품 사러 자주 가는 방 그렇게 정도밖에 몰랐었거든
58 이름없음 2020/03/19 02:19:01 ID : cKY9y3Ve6i3 0
그래서 뭐 어쩔 수 없이 화실부터 찾아갔지. 근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아무도 대답 안하고 기척도 안나는거야. 화실엔 없나보다 싶어서 그 미술재료 자주 산다던 골목으로 가서 아저씨께 여쭤봐도 요즘엔 통 본 적이 없대. 한 번 더 전화해봤는데 안받아. 그래서 결국 다시 화실로 발을 돌렸지. 걔에 대해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우리가 진짜 괴이한 관계구나, 싶었지. 다시 화실에 도착했는데 문 앞에 서자마자 뭐가 쪼개지는 소리, 부수는 소리가 희미한데 들리는거야. 내가 확신했던 건 그 사이 섞여있는 소리지르는 걔 목소리. 그냥 악-! 거리는 거 있잖아. 서러움 복받치면 나는 소리 같은 거. 그런거랑 비슷했어.
59 이름없음 2020/03/19 02:24:35 ID : cKY9y3Ve6i3 0
나는 문 앞에 다가서자마자 들리는 온갖 파열음에 문 앞에서 잠깐 얼었다가, 소리지르는 걔 목소리 들리자마자 다급하 초인종 누르고 문 두드리고 난리가 났지. 그러더니 안이 조용해져. 아무리 계속 두드리고 벨 눌러도 반응도 안하고 계속 조용해. 또 마치 빈 집인 척 하려는 것처럼. 몇 분을 이런 상황만 이어지다 나는 내 추측을 확신을 했지. 얘가 지금 뭐가 단단히 있구나 그래서 아무도 안만나려는거구나, 이런 느낌의. 근데 나도 얘랑은 좀 다른 경우지만 한없이 슬프고 우울해져봐서 알거든. 10분 정도는 괜찮아도, 절대 긴 시간은 혼자 두면 안돼. 무조건 사람이 같이 있어야 하거든. 조금이라도 악화되는 걸 막고 진정시키려면
60 이름없음 2020/03/19 02:31:32 ID : cKY9y3Ve6i3 0
그래서 나는 두드리는 건 포기하고 문 앞에 대고 말했지. 얘를 지금 저기에서 꺼내려면 널 위하는거라고 너는 소중하다고 뭐 이딴 식으로는 짓껄이면 안돼. 이미 자기 스스로 구석으로 몰아넣은 애한테는 씨알도 안먹히거든. 그냥 반대로 나를 이용하기로 했지. 너는 너 자신은 다치고 아픈 걸 놔두겠지. 나 같았어도 나 따위는 그냥 고통 속에 내버려 뒀을거야. 근데 내가 아프면? 너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면 네가 가만있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었지. 어떻게 보면 자만한거고 나에 대한 걔의 애정을 이용한거지
61 이름없음 2020/03/19 02:31:56 ID : s61CmFa2pWm 0
ㅂㄱㅇㅇ!!
62 이름없음 2020/03/19 02:39:29 ID : cKY9y3Ve6i3 0
두드리는 걸 멈추고, 나도 조용해지고 안은 원래 조용하고. 그렇게 잠깐 고민하고 있는 양 입 다물고 있다가 입을 뗐어. 아 물론 안까지 다 들리게 소리지르다시피 말했지. 너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오라고. 너 나올 때까지 나 안갈거라고. 나 보고있어? 되게 얇게 입었지? 나 지금 되게 추워. 밤 되서 더 추워. 바람도 불어. 나 너 나올 때까지 여기 서있을거야. 나 안가. 되게 태연한 척 하면서 말했던 것 같은데. 마음은 정말 너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지. 무슨 일인지 걱정되고. 아무튼 뭐 이런 내용으로 말을 하고 일부러 인터폰에 제일 잘보이는 자리에 가서 기대 섰지 남들이 봤다면 땡깡이었겠지만 나는 그 때 사랑하는 사람이 혼자 스스로 가둬놓고 소리지르고 뭔가를 깨부수는데, 그렇게라도 했어야 했어. 진짜 걔를 끄집어낼 최고의 방법이었기도 하고.
63 이름없음 2020/03/19 10:49:06 ID : bzXzdTXvCly 0
허얼 왜 그랬던 거지 보고있어
64 이름없음 2020/03/19 13:09:05 ID : u05SNvu5Qlf 0
헐 보고있다
65 이름없음 2020/03/19 13:09:20 ID : u05SNvu5Qlf 0
스레주 필력 너무 좋다 빨려들어가듯이 보고 있어
66 이름없음 2020/03/19 13:46:46 ID : 0rfhs63TQtt 0
헐헐 그래서
67 이름없음 2020/03/19 22:22:25 ID : 9xSLe0pQr9b 0
ㅂㄱㅇㅇ
레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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