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1/11/15 17:55:17 ID : AZa60slzU3Q 0
주절주절
2 이름없음 2021/11/15 17:56:12 ID : AZa60slzU3Q 0
새벽감성으로 써내려간 글인데 이과라서 그런가 지금 보니까 이불킥. 그래도 어딘가 풀면 좀 속이 시원할까 싶어서.
3 이름없음 2021/11/15 17:58:23 ID : AZa60slzU3Q 0
단비는 가뭄 든 땅을 적시지만 그것이 그 땅을 온전히 되돌려놓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비가 그만 내리고 싶다면 그런 것이다. 말라비틀어져선, 단 한 방울이라도 좋으니 제발, 을 외치며 문드러져 가는 땅의 입장 따위 알 게 뭔가.
4 이름없음 2021/11/15 17:58:33 ID : AZa60slzU3Q 0
봄비는 그래서 잔혹했다.
5 이름없음 2021/11/15 18:02:29 ID : AZa60slzU3Q 0
너를 보았다. 어느 순간, 사실 정확히는 그 순간이 언제인지 알고 있지만. 네가 피아노 건반을 유려하게 두드리던 소리를 듣고 뭐에 홀린 듯이 음악실까지 달려 올라갔었다. 멈춘 내 시야에 네 뒷모습만이 가득 찼는데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 누가 빠져들지 않고 배겼을까. 거짓말이다.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 혼자만이 그 순간이 하염없이 영원하길 바랐다. 그 누구도, 정말로 상관없어 했을 것이다. 아무튼 너는 그날 나에게 네 존재를 조금은 다른 의미로 각인시켰다.
6 이름없음 2021/11/15 18:02:42 ID : AZa60slzU3Q 0
하지만 비는 땅에게만 물을 주지 않는다.
7 이름없음 2021/11/15 18:06:14 ID : AZa60slzU3Q 0
공평하고 한결같은 그 모습이 좋았다. 나에게는 언뜻 기억 저편에 희미한 잡다한 것들을, 너는 어찌 그리도 잘 알고 있는지. 나는 아무래도 유식한 이를 좋아하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내게 그 무엇보다도 참. 그러나 알고 있었다. 네 다정함과 포용이 나에게만 주어질 리 없다는 걸 알았다. 착각 따위 해본 적 없다. 그런 모습마저 한결같은 너. 잔인하고 지독하게도. 그래도 그렇게, 모두에게 똑같이 대했다면. 내가, 내가, 내가. 좀 더 행복했을까?
8 이름없음 2021/11/15 18:06:32 ID : AZa60slzU3Q 0
너는 아무리 봐도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9 이름없음 2021/11/15 18:08:37 ID : AZa60slzU3Q 0
그 아이는 키는 작지만 입담도 좋고, 재밌고, 축제 때 무대에도 당당히 오르는 그런 사람. 진중하고 조용하고, 또 키도 큰 너와 그렇게도 반대면서 또 그렇게도 잘 어울린단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이미 두 번째의 짝사랑. 처음보다 비참하진 않겠지. 네게 대놓고 말을 전하기도 전에 거절당할 일은 없지 않은가.
10 이름없음 2021/11/15 18:09:03 ID : AZa60slzU3Q 0
하지만 그것이 더 잔인한 일이라는 걸 나는 진즉 깨달았어야 했다.
11 이름없음 2021/11/15 18:11:13 ID : AZa60slzU3Q 0
그 아이와 같은 기숙사 방을 쓰는 나. 차마 말할 수 없는 나의 마음. 나도 모르는 새에 네 얘기만 주구장창 했는지, 교실에서 네게 너무 붙어있었던 건지. 널 좋아하냐며 놀리듯 묻는 그 아이에게 나는 질색하며 손사래쳤다. 아니야, 내가 걔를 왜, 그럴 리가 없잖아. 너무하네. 그냥 친구인걸. 이상한 소리하지 마.
12 이름없음 2021/11/15 18:11:30 ID : AZa60slzU3Q 0
그리고 나는 그런 나에게 질색해 당장이라도 구역질하고 싶었다.
13 이름없음 2021/11/15 18:14:09 ID : AZa60slzU3Q 0
네가 매점에 있는 그 아이를 2층에서 내려다볼 때마다. 네가 길을 가다가 마주치면 그 아이에게 장난을 치고 웃고 그러면서도 먹을 걸 사주고, 근데 왜인지는 죽어도 안 말해준다며 짜증 내는 그 아이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냥 칵 사라져버렸음 했다. 내가. 너희를 갈라놓는 죄인인 양 사이에 낀 내가 그러길 바랐다.
14 이름없음 2021/11/15 18:14:27 ID : AZa60slzU3Q 0
(밥먹구..와야지...*^^*)
15 이름없음 2021/11/15 18:49:00 ID : AZa60slzU3Q 0
물론 그 아이는 너에게, 그리고 모든 남자아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나는 안도했다. 그러나 내게는 독이었다. 나는 몰랐지만. 안심하면서도 불안에 떨었다. 네가 차라리 용기를 내서, 네가, 네가. 그 아이와 어떤 관계든 되어버렸으면. 했다.
16 이름없음 2021/11/15 18:49:18 ID : AZa60slzU3Q 0
그리고 그런 일은 없었다.
17 이름없음 2021/11/15 18:51:52 ID : AZa60slzU3Q 0
반이 바뀌었지만 너는 여전히 그 아이가 있는 교실에 찾아가고, 그 아이와 수업이 겹치면 꼭 맨 뒷자리에 나란히 서서 수업을 듣고. 그 모든 걸 신경 쓰는 나조차 역겹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와 성격차이로 갈라서고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된 나에게 그 아이가 어딨는지 아냐고 묻던 너 내 이야기 와중에 그 아이의 이름을 꺼내던 너
18 이름없음 2021/11/15 18:55:19 ID : AZa60slzU3Q 0
너가, 너가 그랬다. 모르겠지. 눈치채도 모른척하겠지. 날 밀어내지조차 않겠지. 이미 다른 여자애가 그러는 꼴을 보았다. 어찌나 가엾던지. 네 마음을 이해한다. 마음을 강요할 생각이 아니다. 다만 너의 그 한결같음은 그 여자아이에게, 그리고 곧 나에게도 목을 조여오는 꼴이 될 것만 같다. 그런데도 난, 네가 그러면 또다시 비에 빠져 허우적댈 것이 아닌가. 마치 오늘 다른 아이들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이름을 불러놓곤 정작 둘이 남자 저만치서 먼저 가버리던 너처럼. 그러니까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19 이름없음 2021/11/15 18:55:45 ID : AZa60slzU3Q 0
유ㅏ앙 오글거려!! 또 먼일 생기면 놀러올 생각
20 이름없음 2021/11/20 22:43:20 ID : AZa60slzU3Q 0
너는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도 내 SNS에 좋아요를 누른다. 좋아요 따위에 의미부여하는 게 아니다. 그냥 단지 그것조차 내 마음속 호수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고 전하고플 뿐이다.
21 이름없음 2021/11/20 22:45:50 ID : AZa60slzU3Q 0
안다. 네가 운영하는 우리 동아리 계정으로 날 굳이굳이 찾아와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하지만 고백하건대, 그 사소한 일에도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네 팔로잉 목록을 들어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러는지 볼 수 밖에 없었다. 왜 굳이 그 계정으로 찾아오는 건지 모르겠어서. 떨리는 맘을 어쩔 줄 모르고.
22 이름없음 2021/11/20 22:47:32 ID : AZa60slzU3Q 0
언제나 마음속으로 전한다. 나는 단 한순간도 너를 오해한 적이 없다. 너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 얘기를 하니 또 한 가지가 생각이 난다. 실은 얼마 전에 익명으로 네 친구와 연락하다가. 내가 널 좋아한다고 털어놓았다.
23 이름없음 2021/11/20 22:48:31 ID : AZa60slzU3Q 0
그 친구는 네 친구에게 물어보러 갔고, 이내 와서는 네가 좋아하는 애가 있다고 하는 걸 전해들었다 하더라. 그런데 초성이라도 알려달라며 징징댄 나에게 돌아온 대답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24 이름없음 2021/11/20 22:50:36 ID : AZa60slzU3Q 0
나는 줄곧 네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 여자아이와 초성 세 글자가 모두 같았는데. 그 남자아이가 말하길 내가 물어보는 초성은 전부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럼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란 동시에, 결국 나에게도 희망은 없다는 소리였다. 그럼 나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지. 다시금 속이 울렁거려오고 말았다.
25 이름없음 2021/11/20 22:52:07 ID : AZa60slzU3Q 0
그럼 너는 누구를 마음에 품고 있지? 설마 내가 생각하는 다른 아이인가. 그렇다면 우리 같은 수업 듣는 것도 참 많은데, 그렇지 않나. 그렇다면 너는 너의 마음을 참 곱게도 갈무리해 넣어뒀던 것이겠구나 싶어 서글퍼졌다.
26 이름없음 2021/11/20 22:54:20 ID : AZa60slzU3Q 0
그럼 그 아이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기회에 왜 날 초대했어? 왜 나에게 자꾸만 말을 걸어? 나에게 친절하게 굴어? 굳이 나를 통해서 그렇게 다가가야만 해야 하나. 오늘도 결국 속이 역겨워질 뿐이다. 너의 생각을 하면 가슴이 붕 뜨는 동시에 바로 곤두박질쳐 산산조각이 나버리는데. 또 월요일. 또 학교에 가면. 네 얼굴을 봐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절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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