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적방송 2025/06/20 00:51:07 ID : 2Gk08rBxTVf 0
리무스 존 루핀에게 친구가 많은 것은 그가 릴리 에반스처럼 똑똑하고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몰리 프레웨트처럼 다정다감하고 유머러스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리무스는 어느 쪽인가 하면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에 가까웠다. 친구가 많을 만한 특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무스 본인도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는 걸 원하지 않았다. 다가오는 사람들을 멀리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묘하게 선을 긋는 리무스의 태도를 알아차리고 빠르게 그와 멀어지곤 했다. 리무스는 그렇게 떠나버린 인연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데 익숙했다. 솔직히 슬픈 것도 처음 몇 번이지 그런 일들이 반복되곤 하면 아, 난 어차피 곁에 누군가를 두지 못하는 사람이었지, 하고 체념하게 되는지라 딱히 슬프지도 않았다.  … 그런데 내가 어쩌다 그리핀도르, 래번클로, 슬리데린에 아는 사람이 있는 처지가 되어버린 거지?  리무스 루핀은 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된 시리우스 블랙을 향해 눈을 흘겼다. 물론 그 원흉은 태연히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리고 있었다.  “이봐, 블랙.” 괜히 여기까지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말고 그리핀도르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축객령이었다. 블랙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싱글싱글 웃던 시리우스의 얼굴이 빨랫감처럼 구겨졌다. “나를 그 빌어먹을 성으로 한 번만 더 부르면 키스해버릴거야, *무니.” “…… 망할, 시리우스 블랙!” 기겁을 하며 언성을 높인 건 리무스 본인이 아니라, 리무스의 옆에 앉아 포리지에 소금을 치던 릴리 에반스였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 색만큼 강렬한 짜증을 표출하며 리무스에게 눈짓으로 말했다. 네 친구 좀 제발 여기서 꺼지라고 해. 그러나 리무스는 말간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언제나 모든 이들에게 지나게 친절하고 무른 리무스를 내심 안쓰럽게 여기는 릴리 에반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리무스. 혹시 저 개자식한테 협박을 당하고 있다거나…” “응?”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나한테 말해줘.” “무니! 네 엄마 잔소리 진짜 장난 아니다, 그치?” “그거야 네가 그리핀도르인데도 매일 아침마다 래번클로 테이블에 앉아서 난리를 피우니까 그렇지!” 한쪽 팔을 리무스의 어깨에 턱 올려놓은 시리우스는 리무스의 양쪽 귀를 막아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무스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커다란 미트파이 조각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냈다.  “이거 완전 슬리데린 자식들 순혈주의보다 더하네. 다른 기숙사랑은 밥도 먹지 말라 이거야? 나 진짜 서운해, 릴리.” “그건 아니지만 리무스가 불편해하잖아.” “…… 난 괜찮아, 릴리.” “역시 무니는 내 편이야. 잘했어.” 자신이 반려동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조곤히 머리칼을 헤집는 시리우스의 손길에 리무스의 속도 덩달아 뒤집혔다. 입에 미트 파이 조각을 밀어넣고는 있지만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포리지를 떠먹던 릴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슬리데린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세베루스랑 같이 아침을 먹으려는 모양이다. 슬리데린의 재수 없는 순혈주의자들은 꾸역꾸역 세베루스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밥을 먹는 릴리에 대해 온갖 소리를 떠들어댔지만, 릴리는 개의치 않고 세베루스와 같이 식사를 즐겼다. 심지어 릴리는 세베루스를 향해 ‘낯을 가릴 뿐 친해지면 귀엽다’ 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도대체 저 우울하고 어두운 낯이 어딜 봐서 귀엽다는 말인가. 테이블 너머로 릴리가 온통 검은색인 소년에게 해맑게 인사를 건네는 장면을 바라보던 리무스는 아주 근거리에서 어떤 시선이 어깨를 콕콕 찌르는 것을 느꼈다. 릴리와 비슷한 붉은 머리를 가진 소녀, 몰리 프레웨트였다.  “아침부터 어디를 갔나 했는데.” “내가 우리 무니 옆 말고 갈 곳이 있어?” “네가 지난번에 슬리데린 테이블을 마법으로 홀라당 불태워서 기숙사 점수가 100점이나 깎인 것 때문에 아즈카반이라도 간 줄 알았다.” 자신의 어깨에 슬쩍 얼굴을 기대오는 시리우스를 바라보는 리무스의 속이 점점 더 답답해졌다. 그는 목을 옥죄는 셔츠의 단추를 하나 풀어냈다.  “무니도 아침부터 시리우스 때문에 고생이 많아.” “… 아니야. 난 괜찮은걸.” “그럼 이따 약초학 수업 시간에 보자. 시리우스, 너는 무니 좀 그만 괴롭혀.” “이런 망할! 왜 나를 죄다 무니를 훔쳐간 도둑놈 취급하는 거지?!” 몰리 프레웨트는 그리핀도르 출신의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큼직한 갈색 눈동자에 오뚝한 콧날, 도톰한 붉은 입술. 시리우스가 어째서 자신의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자신이 시리우스와 호그와트 급행열차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몰리와 사귀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심술궂은 생각이 든다. 리무스는 자신을 반짝거리는 낯으로 바라보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손으로 쳐냈다. 그의 수려한 회색 눈동자가 강아지처럼 아래로 축 쳐졌다.  이런 순간이 오면 자꾸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는 것이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미소년이 열차 칸의 문을 손으로 열어젖히며 ‘난 시리우스 블랙이야. 너네 중에 나 아는 사람 없지?’ 같은 말을 하는 순간부터.  그때 리무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블랙이라는 성씨를 들어본 것 같기도 했지만 굳이 소년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제서야 시리우스 블랙은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비어있는 리무스의 옆자리에 앉았고, 호그와트에 도착할 때까지 리무스에게 지겹도록 말을 걸어댔다. 그가 내뱉은 첫 마디를 리무스는 절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너 다쳤어? 설마 쟤네랑 싸운 건 아니지?’ 제 얼굴과 손에 가득한 흉터를 보고 놀란 시리우스가 한 말이었다. 리무스는 예전에 다친 것이라며 뻔한 변명을 했고, 시리우스는 신기하다는 듯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본인도 목이며 뺨에 흉터가 남아 있으면서. 입학식 다음 날 시리우스는 씩 웃으며 래번클로 테이블에 침입했고, 리무스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블랙 가의 호울러가 날아들었다. 호울러는 연회장의 샹들리에가 바닥에 떨어져 깨질 정도로 엄청난 고함을 내지르며- 어떻게 네가 그리핀도르에 갈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시리우스에게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몇몇 교수들마저 귀를 틀어막고 도망칠 정도였다. 시리우스의 뺨과 이마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그는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은 채 호울러의 공격을 받아냈다. 보다 못한 리무스는 호울러를 해기스 안에 처박았다. 얼이 빠진 시리우스를 들쳐업은 리무스는 그를 폼프리 부인의 병동에 밀어넣고 자리를 떴다. 병동에서 뛰쳐나온 시리우스는 래번클로 기숙사에 무작정 쳐들어왔고, 당황한 리무스에게 사귀자는 폭탄 발언을 내뱉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방 밖으로 따라나온 릴리는 시리우스가 리무스에게 성희롱을 한다고 생각해 그의 턱에 주먹을 꽂아 넣으려 했다.  다행히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사귀자는 말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던 어린아이의 실수에 불과했다. 그는 ‘사귀다’ 와 ‘친구로 사귀고 싶다’ 는 말의 차이를 이해한 뒤로 더 이상의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리무스 루핀을 행운의 부적처럼 여기며 애인처럼 곁에 두고 싶어했다. 심지어 리무스를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안 되냐는 발언을 했다가 릴리에게 완전히 미친놈으로 낙인찍혔다. 물론 시리우스로서는 나름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호울러를 무슨 양피지 조각처럼 가볍게 한 손으로 잡아 푸딩에 처넣었다니! 시리우스는 몇 번이고 리무스에게 비결을 알려 달라고 했지만 리무스는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아마 블랙 가문의 호울러가 보낸 저주가 통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늑대인간이기 때문일 터였다. 늑대인간 마법사의 피는 평범한 마법사의 피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어느새 시리우스와 리무스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관계가 되었고, 자신의 허리춤을 붙잡고 따라다니던 시리우스 블랙은 제법 키가 커져 청소년 티가 났다. 제멋대로 구불거리던 검정 머리는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눈썹이며 턱에 골격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봐. 뭐 하는 짓이야!” “블랙 도련님은 꺼지시지?” … 문제와 엮이다 못해 문제를 제 발로 찾아다니는 성질머리는 여전하다.  초록빛 머리를 한 소녀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그 주위를 몇 명의 후플푸프 소년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소녀의 머리 위로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은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불꽃을 튀겼다. 소년들이 외우는 오르치데우스 주문에는 평범하지 않은 저주가 걸려 있는 모양이다.  그는 소녀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아데어 모브. 아데어는 후플푸프 소속으로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외모를 지녔다. 초록빛 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머리에 늘 씌워진 화관, 어린 아이의 애착인형처럼 들고 다니는 히아신스 화분. 게다가 그녀는 화분에 대고 이따금씩 말을 걸기도 하는 등의 기행으로 유명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후플푸프 내부의 멍청이들에게 주기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의미다. 보통 슬리데린의 순혈주의자들이 대표적인 멍청이들로 거론되곤 하지만, 기숙사를 막론하고 멍청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시리우스는 후플푸프의 소년들과 언성을 높이며 싸우더니 냅다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아마 덤블도어가 마법으로 두 소년의 지팡이를 허공에 날려버리지 않았다면 연회장에서 마법 결투가 벌어지는 장관을 목격했을 것이다. 덤블도어는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아데어의 히아신스 화분을 향해 가벼운 마법을 걸어주었다. 보랏빛 꽃다발 사이로 아름다운 오색빛의 나비들이 날아다니며 찬란한 빛을 뽐냈다. 그는 후플푸프 소년들을 향해 거역할 수 없는 온화한 목소리로 꾸중을 내뱉더니, 후플푸프의 점수를 깎은 뒤 연회장 전체에 오색빛 나비들을 흩뿌리며 교수석으로 돌아갔다.  “… 고마워, 시리우스 블랙.” “제기랄, 진짜 성을 화이트(white)로 바꿔버릴까, 무니?” 아데어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지 래번클로 테이블까지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시리우스의 말투에 아데어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그가 이를 드러내고 친근하게 웃는 것을 보고 강한 어조에 별다른 적의가 없음을 깨달은 듯했다. 리무스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 네 머리를 흰색으로 염색하면 좀 어울릴지도 모르겠네.” “하긴, 내 얼굴이면 뭔들 안 어울리겠어.” 리무스는 시리우스의 입에 베이컨을 쑤셔 넣었다. 아데어는 화관을 만지작거리며 시리우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그 기색을 눈치챈 시리우스가 아데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데어, 그 자식들 신경 쓰지 마. 완전 얼간이들이니까. 순수혈통주의자들만큼이나 얼간이들이지.” “…… 하지만 너는 블랙이잖아.” “그까짓 혈통이 뭐라고.” 그리고서는 아데어에게 같이 앉아서 식사할 것을 권했다. 아데어는 시리우스의 권유에 기절할 듯 놀랐지만, 곧 그가 날렵하게 지팡이를 휘둘러 빵이 담긴 접시를 놓자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덤블도어의 작은 장난이 여전히 연회장을 감싸고 있는 통에 시리우스 블랙은 빛무리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은회색의 눈동자가 빛 속에서 투명해지는 장면을 작게 접어 마음속에 넣은 리무스 루핀은 자조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골탕 먹이는 장난을 지독하게 좋아하고, 혈통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자신의 가문에 적대적이며, 릴리에게 변태 개자식 취급을 당하면서도 꾸역꾸역 래번클로 테이블에 찾아와 자신과 같이 아침을 먹으려 하고, 자신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을 늘 구하려 드는, 검은 머리에 은회색 눈동자를 가진 시리우스 블랙. 소속감과 인정에 목말라 있던 리무스 루핀이 시리우스 블랙을 짝사랑하게 되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우정이라 여겼다. 그러나 우정의 탈을 뒤집어 쓴 사랑은 점점 짙고 깊은 속내를 드러냈다. 늑대인간으로 변모하여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동안에도 어렴풋이 시리우스를 떠올리기 시작했다는 걸 인지한 순간, 리무스는 패배를 인정해버렸다. 시리우스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회색 눈동자로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키스해버릴 거라는 질 낮은 농담을 던져대는 모든 순간이 지독하게 견디기 힘들었고 동시에 지독하게 유혹적이었다. 그러니 리무스는 평생 이 모든 것을 비밀로 해야 했다. 늑대인간이 블랙 가의 장손에게 품은 욕정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호울러의 저주가 아니라 아즈카반의 디멘터가 리무스를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 타 사이트에서 본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비밀로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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