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구레딕에 있었지 않아?그리워져서 만들었어...;ㅁ; 내가 먼저 주제 쓰면 되는거겠지? '여름'(누군가...해줘...제발...)
앞사람이 정해준 주제로 소설쓰기
>>2 내가 안적었구나ㅜㅜ밑에사람이 쓸 주제를 써줘야돼!
바다
삭제된 레스입니다.
>>4무례해. 재미 없다면 틱틱대면서 괜히 상처받을 말남기지말고 네가 사라져. 어릴적 내가 처음으로 그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아름다움에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보다도 진하고 푸른 색을 띄었던 그 것은구름 대신에 물이 요동쳤고, 별과 달 대신에 플랑크톤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어릴적 보았던 그 바다는 분명 제 2의 하늘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라면
"라~면, 라면, 라면, 라~면~" 신이 꽤나 났었나보다. 박자없이 나조차 모르겠는 음을 흥얼거리며 뜨거운 열기 앞에 서 있었다. 푸흐흐... 누군지 살필 필요없는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 들었다. '그게 노래야?' 등 뒤쪽서 들려온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다분했다. 굳이 대꾸할 것 없이 시간만 얼추 판단해 휘젓던 손부터 멈추고 천천히 불을 껐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묵직한 냄비를 들고 나는 뒤돌아 섰다. "라면 먹을래?" 그 말에 내내 거실에 팽개쳐있던 그 애가 헐레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퍽-소리 나게 부딪힌 무릎도 아랑곳않는 그 얼굴이 활짝 개어 있었다. "먹을래!" 배는 고팠나 봐. *바다
실컷 취해 떠드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몰래 건물을 빠져나왔다. 하여간, 집안 행사는 한 번도 재미있었던 적이 없다. 터덜터덜 혼자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밤바다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바다로 오라고, 바다가 나에게 얘기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바다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나도 막지 못했고, 막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손짓했다. 이리 와. 나는 거부할 수 없었다. 바다는 반짝거리고, 아름다웠고, 시끄러웠다. 눈을 뜬 것은 병원에서였다. 내가 익사하기 직전 한 관광객에 의해 구출되었다고 의사는 말해주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 내 뇌리에 문득 무언가 스쳐지나갔다. 달빛에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답던. 뒷사람 글감
매일 똑같은 쳇바퀴도는 생활속에 바짝 움추려서 정작 내 반짝이던 작은 것을 멀리 떠나보내었다. "하아... 지친다. 괴롭고... 아무것도 하기싫어진다." 그렇게 바닥에 누워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던중 갑자기 하늘에서 뭔가 떨어졌다. "악! 뭐야, 일기장이잖아?" 지나간 시간의 기록을 읽던중 다시금 마음속 작은 보물이 반짝인다. "그래. 어쨌던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는 너무하잖아. 으읏차 다시 힘내보자! 아자!" 내 소중한 보물이 다시 빛을 낸다. 다음분 주제는 이에요.
가을이 너무 싫어. 이유는 뻔하지,뭐. 네가 나를 떠난 계절이잖아. 아직까지 너를 못 잊었냐고 친구들은 한마디 하지만, 안 잊히는 걸 어떡해. 야. 나 죽고 싶어. 이게 뭐야. 네가 뭔데 내가 널 그리워 하고 있는 거야. 매일 자기 전에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해서 다시 눈을 뜨면 차라리 네가 죽어 있길 바랐어. 그게 진짜 이뤄질 줄은 몰랐어. ...미안해. 거짓말은 하나도 없어. 아직까지 너를 사랑하는 것도, 너를 너무 그리워해서 차라리 죽기를 바란 것도 다 진짜야. 어쩌겠어, 내가 이렇게 미련한 걸. 그래도 진짜 네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댔어. 처음엔 머리가 너무 복잡하다가, 그 다음엔 아무 생각도 안 들다가, 이젠 내가 죽고 싶어. 너를 따라가고 싶어. 나 어떡해? 다음 주제 '친구'
내가 처음 외국으로 떠났을때 낮가림이 심해 혼자있는 나에게 다가와준 어릴적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새하얀피부에 주근깨가 있는 활발한 아이였다 그녀는 나에게 첫 친구이자 첫 사랑이였다. 지금 쓴 이글은 어릴적 내 첫사랑이야기다
나 >>11인데 다음 주제 '빵'
...배고파. 꼬르륵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아, 정말 돌아가실지도 모르겠는걸... 배고프면 눈 앞이 노랗다는건 거짓말이었다. 이렇게 배가 고픈데 없는 색을 만들어 볼만한 기력이 어디있겠어. 대신 눈앞이 팽팽 돌기는 했다. 한걸음 내딛기도 어려울 만큼 팽팽. 한걸음 더 내딛어 보려다 그대로 발이 꼬여버려 넘어지고 말았다. 잔뜩 쌓여있는 낙엽위로 넘어진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까. 살이라곤 별로 남아있지도 않은 이 몸을 바닥에 그대로 부딪혔다간 아작이 날테니까. 일어나보려고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앙상한 팔을 바닥에 짚은 순간 나는 물컹한 무언가를 눌렀다. 손을 떼보니 크림이 약간 삐져나온, 그나마 깨끗한 빵이었다. 어쩌다 이런게 이렇게 묻히게 된거지? 별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크림빵을 입안으로 쑤셔 넣으며 나는 소리없이 울었다. 다음 주제 < 심연 >
몽롱한 상태에서 차가운 감촉에 정신이 들었다. 밑을 내려보다 철렁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발 한쪽이 심연으로 들어갈 듯 물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홀렸나. 멍하니 중얼거리며 심연에서 멀리 떨어지려 발을 뒤로 빼려하는 순간 무언가가 볼 새도 없이 빼려던 발을 휘감아 끌어당겼다. 턱턱 막혀오는 숨에 미간을 찌푸리며 허우적거렸다. 제 발을 휘감은 서늘하고 소름끼치는 감각이 이제는 온 몸에 가득 들어찼다. 아무래도 저를 빨아들인 건 심연이었나보다. 아무 생각이나 하며 몸 속으로 들어오는 물에 서서히 잠식되었다. "허억!" 정신이 듦과 동시에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고르지 못한 호흡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 이마와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땀을 얼마나 흘려댄건지 온 몸이 마치 꿈에서처럼 심연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이 푹 젖어있었다. 숨이 어느정도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끼익하고 방문이 열렸다. 그때 꿈에서처럼 서늘하고 소름끼치는 감촉이 발목에서 잘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느껴져왔다. 다음 주제 '반쪽 날개'
추억이라는 길위에 너라는 반쪽날개를 두고 떠나. 널 사랑했다. 그러나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이젠 널지울거야. 널 잃은 나는 반쪽짜리 날개를 지닌 천사마냥 추락해버리겠지만 언젠가 널 떠올리며 웃을수있는 날이 오게되면 다시 날아오를수 있겠지. 다음 주제 치킨
카드에 돈이 많다는걸 알고 있기에 친구들한태 치킨을 쐇음 부르마블 하면서 치킨을 기다리고 있었지 그런데 카드에 돈이 없네?! 맷돌 손잡이 알아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그래요. 어이 맷돌에 뭘 갈려고 집어넣고 맷돌을 돌리려고하는데? 손잡이가 빠졌네?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 그래요 황당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될일을 못하니까 지금내기분이그래 어이가없네
>>16 주제...
다음 주제:겨울
무더움이 끝나자 쉴틈없이 코끝이 시린 바람이 불어온다. 놋쇠그릇에 담긴 식어버린 라면 국물에 찬 밥 한 공기 어렵게 받아 말아서 수저도 없이 사발로 들고 후루룩 마신다. 가로등 아래 신문지 서너장 깔고 웅크려 눈도 감지 못하고 밤을 지샌다. 어서 따뜻한 해가 뜨길 바라지만, 영원히 해가 뜨지 않기를 동시에 기도한다. 다음 주제는 연애로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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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는 것,은 나에게 사치라고 생각했어.학교 다니고,학원 다니면서도 분초를 쪼개 애인이랑 데이트를 하는 녀석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지.나만 연애를 못 한다는 불안감 같은 것도 없었어.사람이 연애 안 하고 살 수도 있지,뭐. 그런데 있잖아.요즘 내가 바뀐 것 같아.데이트 한다고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자꾸 부러워지고,남들 다 하는 연애 왜 나는 못 하고 있나 한탄도 하게 되고,자꾸 보고 싶고,안고 싶고,만지고 싶어.나도 연애를 하고 싶다고,너랑 말이야. 다음주제 >빈혈
헉 두개올려졌다...ㅜㅜ
핏줄 속에 꽉 채워진 혈액이 심장 고동에 따라 사지말단에서 심장으로, 심장에서 다시 사지말단으로 이동한다. 옛 사람은 피를 생명이라 생각했고 피를 흘리는 걸 생명을 흘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어떤 종교에선 피를 먹는 걸 금했고 괴물만이 피를 먹는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건강을 위해 피를 먹고 의료 활동을 위해 헌혈을 하고 반대로 피를 받기도 한다. 옛 사람이 보기에 오늘날 현대인은 괴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알 수는 없지만 자주 피가 부족한 빈혈이라는 특성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음 주제 : 오늘
내 시간이 오늘에서 멈추게 된다면... 내 뼈는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내 살과 피는 누군가의 양분이 되겠지 하지만 네 기억만큼은 머리 한구석에 남아 영생을 기원할수 있겠지 여기서 약속해줘 그림속 노을처럼 지지않을 이 노을을 영화처럼 식지 않을 내 밀크티를 또 영원한 오늘을 그런 말을 하는 동안 병실의 흰 레이스 커튼 새로 스며드는 따뜻한 노을 빛이 은은하게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나는 흐려진 눈동자로 홀리듯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그녀의 마지막...아니 영원한 오늘을... 다음주제:열등감
또다. 또 떨어졌어. 눈에서 눈물이 한두방울씩 떨어졌다. 울지않으려 입을 막았다. 그렇지만 흘러나오는 눈물을 막을수는 없었다. 주변에서 나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입술을 꼭깨물고 밖을 향해 달렸다. 남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지않았다. 알고있다. 이것은 나의 추악한 열등감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끅끅거렸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달려왔는데 왜 남들은 고 나는 떨어지는 거야? 닿지않을 누군가에게 소리없이 외쳤다. 소리없는 외침은 닿지 못했다. 학습된 열등감이 또다시 나를 덥쳤다. 다음 주제 : 사랑에 빠지는 순간
향기 지울 수 없는 추억 또 다시 내게 다가온 그 향기 다음주제 : 눈물
우리는 사귄지 500일이나 되는 커플이다. 우리 여친을 소개하자면 긴 생머리에 웃을때 보조개가있는 매력적인 여자다. 우리의 만남은 학교에 지각을 해 뛰어가다가 한 여학생의 옷에 음료수를 흘리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로 시작되었다가 연인으로 넘어가게되고 나는 지금 500일 기념이벤트을 준비하고있다. 드디어 만나기로 한 시간이 오고 여친이랑 근처 레스트랑에서 스테이크를 먹기로했다. 왠지 여친의 얼굴이 어두워져있었다. 이렇게 기쁜날인데........ 무슨일 있나? 나는 걱정스런마음에 여친을 불렸다 "OO아 무슨일 있어 표정이 어두운데" 여친은 괜찮다며 웃었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지자" 순간 나는 머리를 크게 맞은것처럼 아무생각이 않들었다. 애써 당황감을 감추고 이유를 물으려하자 여친은 나가버렸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나는 레스트랑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들켜버렸네 오랜만에 괜찮은 여자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접시을 치우려온 여직원에게 실수로 음료를 쏟은척 연기를 하며 생각했다
앞사람이 주제를 정하지 않았으니까 그 전 주제를 사용해볼게. 눈물이었지? 당신을 무척이나 사랑했어. 내 모든 것을 내어줘도 아까울 것 같지 않았고 당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도 내놓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근데 있잖아, 나는 생각보다 당신을 많이 좋아하지 않았던 거 같아. 날 따뜻하게 바라봐주던 당신의 두 눈이 뽑혀나가고, 당신이 좋아하는 향수를 뿌리고 만난 날 하루종일 내 냄새를 맡던 당신의 코가 갈려나가고, 내 귀에 대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준 당신의 혀가 잘려나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던간에 들어줬던 당신의 두 귀가 으깨져나갈 동안 나는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어. 미안해, 내 이기심때문에 당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줘버려서.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아무래도 나는 당신에게 내 목숨을 줄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모양이니까. 그래도, 당신을 위해 흘리고 있는 이 눈물만큼은 진심이야. 당신을 향한 사랑. 그러니까, 지금 난 이 눈물을 마지막으로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어차피 당신은, 이제 곧 죽어버리잖아? 다음주제 : 학교
흔히 낮에 보는 것과 밤에 보는 것이 다르다고 말해지는 것들이 있다.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도시의 멋진 야경이 그렇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나오는 방송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밤에 나오면 괜히 신경을 쓰게 된다. 동의하는 사람이 적을 지도 모르겠지만, 낮밤이 다른 것이란 학교가 가장 그렇지 않을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이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친구를 만들고, 올바름을 깨치고, 실수를 경험하기도 하는 학교는 보통 낮의 모습이다. 야간 학습이 존재하면서 학교는 밤에도 불을 밝히는 장소가 되어버렸지만, 원래 밤의 학교는 낮의 학교과 그렇게 괴리가 클 수 없다. 수 십 명이 뛰노는 교정은 텅 비고, 글 읽고 분필이 칠판을 두드리던 소리가 사라진 교실은 조금 허전한 감각을 넘어서 황량한 기분도 든다. 빛이 아주 들지 않는 곳이 없어, 구름이 햇빛을 가린 날에도 거닐던 장소는 침침한 자판기의 불빛에 의존해 날벌래들만이 비틀비틀 날고 있고. 곧 자판기의 불빛도 삼킬듯한 어둠이 낀 복도가 유리창 문턱을 넘실대며 밖을 바라본다. ...누군가에게 겁을 주려는 문장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낮의 잔상이 남지도 않을 만큼 밤이 깊게 베어드는 장소인 학교는. 그 텅 빈 공허함이, '으스스함'을 넘어서 약간의 '공포'가 느껴지지 않는가. 하고 생각한다. 그렇게 느낀다. 다음 주제는! 화살표!
당신은 아무 말 없이 흰 분필을 들고 무언가를 회반죽 벽에 그렸다. 드르르륵, 드륵. 천천히 그리고 선명하게 그어지는 선은 익숙한 모양을 이루었다. 분필이 닳아 없어질 때 까지 계속해서 그려댔다. 수없이 많은 화살표. 그 끝은 나를 향해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 눈이 한없이 두려웠다.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힐끔, 시선을 조금 올리자 당신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하얗고 무수한 화살표. 당신은 내게 무얼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두 눈을 들어 벽에 묻은 당신의 한을 바라봤다. 아니, 사실은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나는 대체 어떤 감정에 사로잡힌 것일까. 뇌내에 둥둥 떠다니는 조각들을 붙잡으려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버려 어느 것도 잡을 수 없었다. 울고 있었다, 당신은. 나의 착각인지 환영인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분필을 잡은 손 끝이 사정없이 떨렸고 유순히 휘어져있던 예쁜 눈매는 핏방울을 매단 채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미친듯이 화살표를 긋고 긋다가 결국 얼마 남지도 않은 분필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달려가버렸다. 우리에겐 마지막 인사도 사치였다. 화살표 끝의 날카로움이 나를 찔러 죽일 것만 같았다. 다음 주제는 음.... 기차로 할까? 칙칙폭폭 기차.
"도착하면 연락줄거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는 질문을 하는 날 보면서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웃어주며 당연하다고 이야기 하는 당신을 보며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당신이 끝까지 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설사 연락이 안된다고 해도 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당신은 자신의 짐을 들고 곧 출발할 예정인 기차 안에 몸을 실었다. 끝까지 당신에게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날 보면서 또다시 미소지은 당신은 서서히 닫히는 문 너머에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잘 있어." 닫혀버린 문 사이를 두고 시선이 교차하는 우리들. 그리고 우리들의 사정따위는 알 바가 아니라는 듯이 매정하게 출발해버리는 기차. 기다란 기차가 어느새 저 멀리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게 될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부디 이 기다란 여정을 끝마치고 당신이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거짓말이라고 해줘. 방금까지만 해도 날 보며 웃어주던 다정한 당신이 타고 있던 기차가 떠난 길에서 들려온 폭발소리와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가,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라고 말해줘. 다음 주제는 뭘 할까. 그래, 반복으로 하자.
꿈에서 깬다. 이 감정을 수첩에 기록한다 365일 매일 반복되는 내 습관이다. 나는 왜 이런 짓을 하고있는거지?라는 의문 언제부터인지 이런 의문조차 사라지고 습관이 나를 자리잡고 있다. 이 행위는 거의 숨을 쉬는거나 다름없다 오래 걸리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단지 나는 알고 싶을 뿐이다. 어째서 내가 꿈을 꾸는지 그 꿈은 어디서 오는지 나는 아마 그 정체가 궁금해서 기록하기 시작한게 아닐까 적은 걸 정리해보면 한가지 그림이 나온다. 그래 난 이세상 사람이 아니다. 다음 주제는 -연민-
사람들은 연민과 동정을 다르게 생각한다. 대체 무엇이 다른 거야. 두보는 내가 동정을 말하면 가차없이 밀어냈고, 연민을 말하면 눈빛을 조금 누그러뜨린 채 나를 다시금 집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두보를 향한 나의 마음은 명백한 동정이었음을 알고 있다. 두보는 이미 동정받는 것에 지쳐있음도. 나는 두보를 괴롭게 하기 위해 이곳에 존재한다. 다음 주제는 유성우
세상에.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 난다. 그 때 너와 내가 함께 있었음은 아마 운명일 지도 모른다. '몇백년 만에 있을까 말까 한 천체 쇼'라는 수식어보다도 나는 내가 유성우를 함께 본 사람이 너였다는 것이 더 황홀했다. 네가 그때 내 곁에 있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하늘은 단지 반짝이는 사선이 내리그인 검은 도화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네가 있었고, 그 광경은 세상 모든 별들이 마치 우리를 축복해 주는 것처럼 쏟아져 내리고, 그 별들이 내 마음 속에도 떨어져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퐁당퐁당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세상에 꼭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던 그 순간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디저트보다도 훨씬 더 달았다. 그때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날 이후로 '유성매직'이라는 단어에도 네가 떠오른다. 너도 나처럼 그 순간이 황홀했을까. 너도 그때 나를 좋아했을까. 하지만 이제는 너무 멀어져버려 마음을 전할 수 없다. 그 날 내가 얻은 건 그 황홀한 감각과, '유성매직'에 대한 묘한 기분 뿐이다. 아무렴 어떤가, 네가 나에게 선물한 추억이라면 그걸로 좋다. 다음 주제는 관찰
관찰. 관찰. 또 관찰. 그렇게 관찰해봤자 나오는 것은 없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는 그보다 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고 또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는 존재들. 너는 관찰을 명목으로 내게 접근해왔고 나를 사랑한다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은 진정한 사랑일까. 아니야, 그것또한 네 실험의 일부일 것이다. 나는 구십퍼센트 확신한다. 너는 네가 나를 사랑한다 했을 때 내가 보일 반응을 관찰하려 한 것이다. 너는 그렇게 나를 끝없이 관찰해라. 나는 관찰할 힘이 없어 그저 너를 주시한다. 네가 너라는 것도 모르고 점차 멍하게 주시한다. 끝없이 주시. 주시의 끝은 멍. 그래. 나는 지금 멍하고 멍하니 숨을 쉰다. 너는 그런 나를 관찰한다. 다음 주제는 300년 전의 첫사랑
모든것은 변한다. 한때나마 불같이 타로으던 그 사랑도 이제는 차갑게 식어 아무것도 비추거나 데우지 못한다. 영원이란, 결국 모든것이 바뀌어갈때 그 자리에 항상 변하지 않고 서있는것이다. 모든것이 살아있을때 쌓아놓았던 수많은 추억들은 오래된 사진처럼 여기저기 헤지고 찢겨저간다. 더이상 그 사람을 볼수 없다는 고통 마저도 세월의 무심함 앞에 깍여나간다. '그때는 사랑했었지' 그 한마디만이 내 가슴속에 자리잡아, 커다란 바위를 치우고 남은 구덩이처럼 세월앞에 흘러가는 기억의 조각을 부여잡고있다. 강줄기가 마르고 강바닥의 구덩이에 마지막 웅덩이가 남듯, 언젠가는 지워질 사랑이라는 기억을 부여잡고있다. 다음 주제는 망각
나는 왜 나일까? 무엇이 나를 정의하는 걸까? 만약 내가 내 이름을 잊어먹는다면 나는 나일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이, 가족, 친구, 집 주소, 단골 가게,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는 음식,...나의 모든 것을 잊어먹게 된어도, 나는 여전히 나일까? 나는 한낱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소나 돼지로 태어나는 편이 나앗을지도 모르겠네. *시계
이거 보여? 아직도 흐린 새벽이야, 내일이 오기까지 너무나도 멀다. 너를 만나고 싶어. 너와 얘기하고 싶어. 안고 싶어, 웃고 싶어, 세상에 둘도 없는 너와 같이 살고 싶어. 지금은 적막한 새벽 1시 44분이야. 너를 만나기까지 앞으로 7시간은 더 남은 듯해. 우린 정말 가깝지만, 아주 멀게만 느껴져. 찬 밤에 이따끔 들리는 자동차 소리, 사람 말소리 같은 게 더 가깝지. 그 사실이 나를 힘들게 해. 전혀 모르는 타인 말고, 무기질한 물질 말고. 말고, 나는, 나는 너랑 있고 싶어. 내 품 안에 있던 온기는 7시간을 버티지 못해. 이건 사랑일까, 아니. 아니 사실은. 온기와 사랑, 낯선 타인에 허덕이는 우리란 걸. 사실은 눈을 가리고 아웅거리고 싶었어. 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싶었어. 너무나 쓴 사실이라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어. 때때로 이 적막감에 눈을 감아. 눈을 감고, 나를 지우는 거야. 이런 한정적인 공간 말고, 육체 말고. 저 하늘이라도 떠올리며 펄펄 날아올라 가는 거야. 아, 눈을 떴어. 시계초침 소리가 시끄러운 오전 1시 48분이야. * 다음 사람 글감, 사죄
나는 사람이 고개 숙이는 걸 싫어한다. 그 중에서도 나에게 미안하다며 울먹이는 것도. 무릎과 고개를 내 발등까지 숙이는 것도. 처음으로 숙인 고개의 주인은 형이었다. 스르륵 커튼이 펼쳐지듯이 앞으로 넘어진 형은 경찰이 올 때까지. 아빠가 내 눈을 가릴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매일 글을 대신 써주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머리를 쓰다듬는 표현밖에 못해준다며 사과할 방법을 못 찾았다고 그랬다. 그 때가 나에게 하는 깊은 사죄의 방법이었다. 아빠는 이렇게 된 형과 나한테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인생에서 듣기 싫은 소리였다. 고개를 숙일 때 흔들리는 이삭들처럼 사그락거리는 머리칼 소리... 지금은 아빠가 이렇게 될 때까지 소홀했던 자신의 책임을 나에게 사죄라는 명목으로 넘기고 있다. 나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당신들은 사실, 너가 뒷바라지를 못 했던 거다. 먼 관계인 우리도 싹싹 비는데 너는 왜? 라는 말을 하고 있어. 나는 사죄다운 사죄를 하기로 했다. 아빠. 곧 사과할테니까 기다려요. * 다음 사람 글감, 모시떡
모시떡을 제일 좋아한다고ㅡ, 너는 나에게 말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의 너는, 한 줌 절망이라곤 없이 줄곧 티없는 행복을 빛내고 있었다. 그날따라 나는 피곤했었고 너는 여전히 활기찼었다. 외식하러 나가자는 너의 청에 나는 역정을 내며 거절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약간은 성이 난 너의 얼굴이 마지막으로 볼 네 모습일 줄 그때 알았다면야 당장에라도 현관으로 뛰쳐나가 너를 세게 끌어안았으리라. 나는 언제나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 이건 진심이었다. 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를 너에 대한 진심이다. 지금도 난 네가 어디선가 모시떡을 먹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진심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너의 유일한 흔적에 내 보잘것없는 국화꽃을 한 송이 남긴다.
주제를 말 안했네...다음 주제는 만년필
민 선생님은 만년필을 고집하셨다. 어느날은 내가 물었다. ”선생님, 왜 만년필만 쓰세요? 타자기로 쓰는게 편하지 않으세요?” 선생님은 서재 구석에 먼지가 쌓인 타자기에 한 번 눈길을 주시더니 고개를 저으셨다. ”정이 안 가. 역시 난 만년필이 체질인가봐.” ”그러세요? 그럼 이번 생신 때 제가 새 만년필 선물해 드릴까요? 그 만년필도 많이 낡은 것 같네요.” 선생님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으셨다. ”이건 내 분신이야. 미안하지만 만년필은 사와도 안 쓸 것 같으니, 사오지 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의 배우자가, 그것도 선생님이 온 몸을 다해 사랑했던그 분이 선물해 주신 것이니, 당연히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서글퍼졌다. 아니, 많이 서글퍼졌다. 이 이야기를 나눌 때가 1963년이었다. 그리고 5년 후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사랑했어요 선생님. 20살이란 나이차도 이길만큼요. 다음 주제: 미국에서 사온 구두
...그러니 이 구두는 내가 열 여섯이 되는 날, 가죽공장에서 일하던 삼촌이 내게 건넨 것이다. 삼촌은 남들이 알아주는 공장의 사장이었고 그런 삼촌이 나에게 왜 호감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철호야!" 삼촌은 오랜만에 만난 나를 반갑게도 불렀다. 나 역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정이 없다느니, 인사성만 밝다느니 하면서도 삼촌은 웃고 계셨다. "무슨 일이세요?" 나는 정 없게도 이유부터 물었다. "인석아. 조카 보려고 온 삼촌에게 너무 매정한 것 아니냐?" 그러면서도 삼촌은 들고 있던 상자를 턱 하니 건네는 것이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상자를 쳐다보니 영어로 Alden이라고 적힌 작은 상자가 들어있었다. "네 나이 곧 열일곱. 사내가 구두 한 벌 없어서 쓰겠냐." 비싼 거라고 말하는 삼촌에게 벙찐 얼굴로 답하면서도 귀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 품에 잘도 안았다. "그거. 네 숙모가 네 선물이라면서 샀다. 그거 하나에 수천 달러야. 달러." 수천 달러라는 말을 듣고 내 마음이 무너지는 듯 했다. 수천 달러라니! 그 돈이면 얼마든 호위호식할 돈인데 이깟 구두 한 켤레가 그리도 비싸다니 믿기질 않았다. 미국에서 사온 그 구두는 작은 세계에서만 살던 내게 다가온 대포였다. 삼촌과 나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 그 사실을 체감하게 만든 것이다. * 비틀어진 쥐 시체
오래 전 일이다. 공허한 감정으로 인해 아무일에 손을 대지 않기 시작한건. 일을 손대지 않으니 집안도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창문 밖을 보려다 창문 앞에 있는 비틀어진 쥐 시체를 보았다. 문득 울컥한 감정이 든다. 이 아이는 무슨 죄일까. 왜 여기서 죽어버렸을까. 내가 능력이 없는 탓이다 . 오랜전부터 아무 일에 손을 대지 않아 집안에 먹을 수 있는 음식 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 이상한 감정에 휩쓸려 학업에 손놓아 버린 것은 . 정말 언제부터였을까 .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할까 . 주섬주섬 옷을 입고 비틀어진 불쌍한 쥐 시체를 조심스럽게 휴지로 감싸 밖으로 나가서 근처 놀이터에 묻어주었다. 새벽에 하얗게 내린 눈이 온 날씨치고는 꽤 따뜻하다. 다음 주제! 꽃말 !!!
시체를 묻어준 너 정말 상냥하구나. 오랜만에 인간의 감정을 느꼈다. 이런 것이 사람이려나. 멀리서 바라본 너의 모습은 마치 천사같았어. 난 너를 로즈메리라 칭할래. 고마워, 로즈메리. 다음주제 ! 눈꽃 !!
어느새 찾아온 시린 겨울. 마냥 춥기만 했던 작년 겨울과는 무언가 다르다. 그를 용서해서일까, 포기해서일까. 조용히 찾아오는 겨울의 아침. 새하얀 커튼을 열면 창문 밖으로 아름답게 내리는 새하얀 꽃잎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무심코 창 밖으로 손을 내었더니, 하늘에서 내리는 차가운 눈꽃잎들이 따스한 손에 닿아 스르르 사라졌다. 너무 부드러운 꽃잎들은 아주 옅게 자국을 남기고 사라졌고 나는 그 자국을 꼬옥 쥐었다. 가만 눈꽃을 바라보던 겨울보다 시린 눈 위에 눈꽃이 살며시 내려와 앉았다. -담 주제는! *잠꼬대*!-
너와의 연락이 끊긴지 2년 나는 아직도 그시간에 머물러 있는것만 같다. "춥다" 말 한마디에 눈 사이 사이로 입김이 퍼져나가 나도 입김처럼 하늘 사이 사이로 퍼져나가 너의 소식을 들을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하고 불빛이 넘치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를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왠지 쓸쓸해져 내 귓가에 스며드는 크리스마스의 캐롤을 듣고있자니 더욱 시린 옆구리가 나를 조여왔다. "나도 참" 주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한번만 너를 볼수 있다면 이런 외로움 따위 이겨낼수 있을텐데 하던 찰라 익숙하던 향기가 내 코끝에 맴돌아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자 그립던 니가 내 눈앞에 옛날 그 얼빵한 미소를 배시시 짓곤 양팔을 벌려 보고싶었단 말을 내뱉는다. 나는 약간 촉촉한 눈가로 너에게 달려가 안기며 내뱉겠지 "너무 늦었어" 나는 그렇게 니품에서 이건 현실이 아니라는걸 알고 그리움에 꿈에서 깨어나 내 잠꼬대에 섞인 마음이 너에게 들렸으면 하고 나는 내일도 너의 꿈을 꾼다. 다음주제 (급똥)
푸르딩딩한 새벽이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하디 고요한 새벽.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랫배가 살 살 아팠다. 엉덩이가 묵직하다. 나는 이것이 급똥 신호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챘다. 그러나 나는 종일 피곤했다. 밤 늦게까지 과제를 하고 막 잠이 든 참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아침까지 내리 잠을 자고 싶었다. 부르르륵. 그러나 내 장은 그런 태만을 용서하지 않는다. 나는 엉덩이를 꽉 붙잡고 용수철이 튀어오르 듯 침대에서 뛰어 내렸다. 와다다다. 재빨리 문을 열고 새하얀 변기 커버로 엉덩이를 붙인다. 끄응. 끙. 으으으으. 주먹을 꽉 쥐고 힘을 주었다. 저절로 미간은 팔 자를 만들어냈다. .....퐁! 청량하고 맑은 소리였다. 이것은 승리의 소리였다. 나의 게으름을 이긴 청명하고 맑은 쾌변의 소리. 나는 엄마가 듣지 못하게 작게 소리낸다. *발 행복하다... 다음 주제 (푸른 밤)
>>47 7월의 밤이었다. 매미들이 시끄럽게 노래하던 날, 나는 가출을 했다. 연이은 면접탈락에 자존감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나를 찾기 위함이라는 대의명분으로 가벼운 일탈을 느끼고 싶었다. 엘리베이터의 소름끼치는 사슬소리를 들으며 나는 밤의 세상으로 내려갔다. '어디로 갈까' 어릴적, 돌아가신 할머니의 농장이 떠올랐다. 친척들이 고추를 따고, 할머니가 만든 달달한 식혜를 마시던 곳. 내 기억 속 유년기의 작은 침낭. 나는 사람없는 버스를 타고, 적막한 시골길을 따라 달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청량한 귀뚜라미 소리. 할머니댁으로 걸어갈수록 가로등은 점점 사라져갔다. 농장입구. 할머니가 열어주시던 철문. 모든 것이 그리웠다. 목줄기를 흐르며 나를 고양시키던 식혜. 밥알 남기지 말라며 다그치던 할아버지. 마당에서 꼬리를 흔들던 똥개. '끼익' 어느새 내 손으로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깜깜함. 그럼에도 포근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헛간에 들어서자 뚫린 지붕 사이로 구름이 걷히고 보름달이 드러났다. 모든 어둠을 거두는 그런 빛.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를 한없이 밝혀주는 보름달과 청아하게 빛나는 무수한 별들. 판타지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장관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상기시켜주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 샘솟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제 유년기의 침낭 대신 그 푸른 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다음 주제 (첫사랑)
첫사랑, 첫사랑을 물어오는 너에게 나는 그저 흔히 있는 그런 얘기를 했었다.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때 인기가 많으셨던 선생님. 그 선생님을 짝사랑 하였다고, 그 선생님이 애인이 있다는것을 알고 그 날은 펑펑 울었다고. 넌 영원히 모를것이다. 내 진실된 첫사랑은 네 짝이었다고, 아직도 그 첫사랑을 놓지 못하고 있다고. 네가 알면 나에게 뭐라 할까? 분노에 가득찬 눈으로 미쳤냐고 욕을할까, 안타까움을 담아 조용히 날 보기만할까. 여러번 생각해봤지만 내게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단지 내가 단 하나 알고있는것은, 내가 이 사실을 고백했다가는 너와 다시는 친구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고, 아슬아슬하게나마 이어지던 네 짝과의 가느다란 실이 끊어질것이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첫사랑을 네게 말 할 수 없다. 내 이 마음이 식기 전까지는. 다음주제 [마지막]
"대체 왜 우는거야? 만나고 싶으면 연락하면 될 텐데," 친구가 저만치에서 울고 있는 동급생들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혼자 조용히 흐느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서로 부둥켜안고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기야 친구 말도 맞긴 한데, 저 친구들 심정이었다면 말이 좀 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중학교 생활 마지막이잖아. 넌 별로 안 슬퍼?" "딱히." 내 말에 친구는 매우 짧게 대답했다.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탓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얘는 원래부터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슬프지 않은 게 아니라 슬프지 않은 척 하고 있는 것이라고, "고등학교 졸업식 땐 울거야?" "몰라," 그 짧은 말을 하는 중에도 친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이내 친구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는 들릴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마도..."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바닥에 물방울 같은 것이 떨어졌다. 물방울은 비가 내리듯 점점 더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친구는 고개를 숙인 채 소매로 눈가를 비볐다. 나는 친구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며 말했다. "왜 울고 그래? 네 말대로 나중에 연락하면 되지. 그래도 내 친구인데 연락 안 할 거 같냐?" 친구가 소리내어 흐느꼈다.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와 만난 지 꽤 오래된 절친이었지만 친구의 우는 모습만큼은 조금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무덤덤한 모습만 오래 봐서 익숙하지 않은 것일까. "나... 없어도 꼭 연락할거지...?" "당연하지, 내가 너를 어떻게 잊어 임마. 전학가서도 기죽지 말고 하던 것처럼 해. 너도 나 잊으면 안된다?" "아우 목 아파." 나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 상한 건지 친구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목 뒤를 주무르며 화제를 바꿨다. 빨간 눈시울에 눈동자가 촉촉히 젖어 있었다. 고개는 계속 숙이고 있던 터라 볼에 눈물이 흐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머리 숙이고 있으래? 아무튼 이제 그만 울어. 우리 헤어질 때도 뒤끝없이 멋지게 헤어져야지."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깔끔히 헤어지고 싶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곳에 놓여질 친구가 조금 걱정되는 마음이었다. 친구의 말대로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똑같이 주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음 주제는 (마리오네트)
그저 자유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나왔다. 당시에는 자유라는 것에 정신이 팔려 몰랐었다. 내 신세가 이렇게까지 처량해질 것이라곤. 나를 과보호하는 부모님이 나의 꿈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지금에 와서야 그런 내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것이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깨닫기 전에 내가 실에 묶인 마리오네트였다면, 지금의 나는 실이 끊긴 쓸모없는 인형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음 주제 [봄꽃]
오늘따라 봄꽃이 예쁘네요. 그 작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봄꽃이 좋다고 했었던 그대 생각에 싱긋, 미소가 지어졌어요. 그러고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요. 그대가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려 할 때 제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벚꽃잎을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져!" 라며 해맑게 웃었었는데. 그대가 생각나네요. 봄꽃처럼, 개나리처럼 해맑았던 그대가. 벚꽃처럼 아름다웠던 그대가. 진달래처럼 부드러웠던 그대가. 길가의 이름모를 풀꽃들처럼, 그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웠던 그대가. 그대는 이른 봄꽃처럼 너무나도 빨리 피어버렸어요. 추위에 떠는 꽃을 제가 안아 보살필 수는 없었지요. 당신이란 꽃은 너무나도 빨리 져버렸어요. 제가 보듬을 수 있는 건 떨어진 꽃잎뿐, 꽃은 아니였네요. 오늘은 떨어지는 벚꽃잎을 하나 잡았어요. 그리고 소원을 빌었지요. "부디 당신이, 영원토록 봄에서 살 수 있길 바래요." 추운 겨울도, 더운 여름도 아닌 아름답게 봄꽃이 만발한 봄에요. *고양이
고양이가 나를 사랑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고양이는 생선이 필요했을 뿐이다. 나는 왜 생선이 될 수 없었을까. *교무실 소파
항상 느끼지만, 교무실 소파는 되도록이면 딱딱한게 좋다. 어저깨도 거기서 껌벅 졸아 수학 선생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국어 선생이 소파가 문제라기도 했고. 그런데 며칠이 지나 생각을 해 보니, 교무실 소파가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딱딱한 책상과 의자에서도 너무 많이 자고 있던 걸 발견했을 때에 뼈저리게 느꼈다. 문제는 덮는 방법이 있고 파고들어 파내는 방법이 있다고. 하지만 다들 덮는 것만 생각하고 파내는 것은 싫어했다. 깔끔하지 못하다나? 그래도 속이 곪아 전부 썩어버려서 잘라 버리는 것보다는 나은데, 의외로 그런 생각은 잘 못하나 보다. 선생이건 어른이건. *사상
너와 나는 항상 다른 길을 걸었어. 그래, 처음부터 말해보자면 사상. 쉽게 말하면 생각부터가 너무나도 달랐지. 사랑하는 사람이 이미 짝이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 짝이 자신의 너무나도 소중한 은인이라면? 난 그 은인을 위해 평생 아픔을 참아왔어. 몇년, 아니 몇십년을. 혼자만 사랑하는 그 아픔. 넌 알아?.. 알 리가 없지, 넌 네가 사랑하던 여자를 위해 은인을 저버릴만큼 어리석은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널 얼마나 신뢰하고 아꼈는지, 넌 모를거야. 언제나 넌 나에게 말했지. 내가 물러터졌다고. 너무 물러서 이미 죽은 사람의 연인에게도 사랑을 전하지 못하는 얼간이라고. 내 사상따위는 그저 시간이 지나 썩어버린 것을 붙잡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잘못되지 않았어. 내가 평생동안 지켜왔던 규칙은, 나를 위해서 정해놓았던 것이니까. 네가 아무리 비웃는다 해도 난 바뀌지 않을거야. 그게 운명이니까. * 후회
"...한다. 하지않는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빈털털이 백수. 비실비실하다는 이유로 알바자리 하나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그의 가문 초유의 무능력자. 사실 나름의 직장도, 기술도 있었지만 능력을 키워보지도 못한 채 다른 걸 해보겠노라고 나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온 핸드폰 문자 하나. -빨리 빚 갚아야지?- 그의 앞에 종이가 휘날리는 것을 잡고 본 뒤 고민하던터였다. 더 높은 수당에 각종 복지 혜택도 있다. 다만... "바보같은 자식. 그래도 부모님을..." 어머니가 벌써 자리에 누우셨다. 아직 정정하신 아버지도 어찌될 지 모르는 일이다. 마음을 잡았다. 종이를 손에 꼭 쥐고 자리를 털었다. 온갖 더러운 짓이란 더러운 짓은 다 했다. 그리고 지금 말한다. 돈이 없으면 무엇도 없는 세상이었노라고... •문
나는 문 닫힌 세상에서 살아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한 적 없었다. 누군가는 외롭지 않냐고 말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편했다. 누군가와 트러블 날 일도 없고, 간섭이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어 온전히 내 세상을 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내 착각이었다. 나만의 세상이라고 여겼던 이 문이, 사실은 감옥의 쇠창살이었던 것이다. 나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가 나를 일깨워주었다. 감옥같은 내 세상을 부숴주었다.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을 때, 그것은 빛이었다. 나를 새롭고 넓은 세상으로 인도해주는 빛. 나는 그 빛을 따라가진 않을 것이다. 당당히 두 발로 나아가 내 눈으로 다양한 세계를 볼 것이다. 그리고 훗날 그 빛을 다시만나면 "고마웠어요."하고 웃으며 말할 것이다. 내 문을 열어준, 고마운 너에게. * 카페
나는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커피를 좋아했다. "이 집 커피가 맛있어"라며 그는 매번 같은 카페로 나를 데려갔다. 자기처럼 커피를 좋아했으면 좋겠단다. 그가 주절주절 얘기하며 커피를 주문했다. "오늘은 새 종이에 찍어주세요!" 직원은 알겠다며 종이 하나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받으라 손짓했다. 도장이 2개가 찍힌 쿠폰이었다. "너도 이제 쿠폰 찍기위해 커피를 마시러 오게될걸! 나의 큰그림이야." 대단한 걸 생각한 사람처럼 뿌듯해하는 그 표정이 웃겨서 웃어버렸다. 그 후로 그와 나는 각자의 쿠폰지에 도장을 찍어왔다. 얼마 후 나와 그는 또 그 카페에 들렀다. 도장 1개를 찍고보니, 쿠폰 종이에 도장이 다 찍혔다. 다음에 들르면, 음료가 무료라는 글씨가 보였다. 하지만 난 그 음료를 받지 못했다. 그 날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그 후로 다시 카페를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잊었다 생각했는데 지갑을 정리하다 발견한 쿠폰지에 마음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마음은 나를 그 카페로 이끌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직원은 바뀌지 않았다. 나에게 처음으로 도장을 찍어주었던 그 사람이다. "이거..." 나는 쿠폰종이를 내밀었다. 아. 다 모으셨었죠! 하며 평소 드시던 것을 드시겠냐 묻기에 그렇다 대답했다. 쿠폰종이가 내 손을 떠나가자 마음이 다시 편안해졌다. 이제 또 카페를 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만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시계
나는 남을 위해 움직인다. 오늘도 남을 위해 시간을 알려주었다. 나 자신이 이렇게 열심히 해도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이제는 쉬고싶다. 나는 쉬고싶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 열심히 해내도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일. 하지만 쉴 수 없었다. 난 이제 시간을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지금을 기억하면서 시간을 멈출 것이다. *아침
짹짹 새가 지지배배 나른히 우는 소리가 물길마냥 흘러들어왔다. 떠오른 아침의 태양이 이제 일어날 시간 이라고 재촉 하면서 일깨웠다. 무의미한 하품을 내뱉으며 늘상 익숙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렸다. 하얀 침대보는 밤새 뒤척이기라도 한것일까 잔뜩 구겨져 엉망이 되어있었고. 밤새 몸을 움직인 탓에 선명히 몸에 남아있는 핏자국이 새하얀 피부 사이로 흘러내려 이불보를 적셨다. 밤에 있었던 전투만 아니라면 창문 사이로 부서지며 빛나는 아침 햇살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을것이었다. 문득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니 겨우 지친듯 자는 호랑이의 모습을 보며 소녀는 낮게 웃었다. 아침 햇살에 눈이 가려졌다 생각하며 호랑이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며 때 이른 아침과 평화를 좀더 만끽 하기로 했다. *게임
"먼저 우는 사람이 지는 거야." 눈물이 많은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게임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이기는 걸 좋아했다. 그녀는 항상 내 위에 있었다. 나는 그 아래서 발바닥을 핥는 개였다. 그녀의 구두가 나를 짓밟을 때면 기분이 좋았다. 졌으니까 벌 받아야지, 강아지야. 그럼 나는 좋다고 배를 뒤집어깠다. 주인님 예뻐해 주세요. 그녀와 그런 게임을 평생 하며 살고 싶었다. 오후의 빛이 바닥을 반 쯤 적시는 좁은 반지하 방에서. 빛에게 들킬까 봐 햇살을 피해 섹'스를 하며 우리는 몰래 웃었었다. 그런데 어느 차가운 밤에. "누가 이랬어요." "저리 가. 가까이 오지 마..." 그녀가 나를 피한다. 개새끼는 달려가서 눈물을 핥는다. 무너져내리는 작은 몸을 안아든다. 낯선 냄새가 난다. 울지 마요, 슬프면 내 몸을 줄게요. 이거 먹고 웃어요. 바닥에 몇 시간을 웅크려 있었는지 모르겠다. 새끼손톱만한 햇살이 눈두덩을 파고든다. 눈깔을 파내고 싶어서 눈을 떴다. 그녀가 없었다. 빛을 피해 도망갔을까. 바닥에 떨어진 햇살을 닮은 노란 메모지를 보았다. '먼저 우는 사람이 지는 거야.' 나는 이번에도 졌다. *시체
휴대폰이 꺼졌다. 까만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치고 어딜 눌러도 반응 하지 않는다. 차갑고 딱딱하다. 방금 전까지 오던 연락도 오지 않는다. 외롭다. 지금이 몇시인지 몰라 집안 어딘가에 있을 시계를 찾아본다. 내 손에 쥐어진 이 까만 고철이 환한 불빛을 냈을땐 보지도 않았을 거다. 간만에 봐서 그런가 시계는 열심히 돌아간다. 내가 보고있지 않아도 시계는 돌아간다. 그걸 알기에 난 시간만 확인 한 후 다시 시선을 원래 위치로 옮겼다. 째깍째깍 소리가 방안에 들린다. 이 방이 초침소리가 선명할 정도로 조용했던가. 휴대폰에 충전기를 꼽으면 다시 켜질 것이다. 망가진건 이니기에. 마치 잠깐 잠을 잔것 처럼 다시 나에게 빛을 보이고 시간을 보일것이다. 너도 그럴까. 너의 눈빛이 꺼졌다. 까만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고 어딜 눌러도 반응 하지 않는다. 차갑고 딱딱하다. 얼마전 까지 나에게 말을 걸던 입이 열리지 않는다. 슬프다. 몇 시가 됐을까. 너에겐 이제 의미 없는 숫자겠다. 너의 시간은 멈췄으니까. 초침소리가 선명하다. 아무도 찾지않더라도 저 시계는 움직이 겠지. 너가 날 더 이상 부르지 않아도 난 흘러가겠지. 망가지기 전까지. *시간
시각과 시각 사이를 시간이라고 일컫는다. 방금 전 시각, 오전 1시 33분. 켜 둔 히터가 녹아내리고 있다. 핸드폰은 침묵한다. 초침이 아슬아슬하게 걸어간다. 밖의 네온사인 빛이 커튼을 건드린다. 암청색의 커튼이 수상한 무늬를 바닥에 그린다. 문득 커튼을 젖히고 싶다. 비명소리가 들린 것 같다. 방금 들은 건 사람의 목소리인가, 그믐달의 울음소리인가. 푸르고 하얀 빛이 번쩍였다. 네온사인 빛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건 그저 엊그제 죽은 이의 유서에 비친 달빛일 뿐이다. 지금 시각 1시 39분,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조용해졌다. 다만 방금 전부터 핏자국이 창밖을 때리기 시작했다. *가위
그 날 따라 어머니는 상냥하셨다. 살쾡이처럼 희번떡 거리던 눈빛은 마리아처럼 자애로웠다. "...아-" 다정한 말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손길이 나의 머리를 스친다. 앗, 외마디 비명과 함께 움츠린 내게 그녀는 톱니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아닌 따스함을 주었다. 그 온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뻣뻣하게 엉킨 머리카락을 풀어내는 손길이 이따금씩 아팠지만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웃었다.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 어머니의 손이 멀어졌다. 그리고 나의 행복 또한 끝이 난 것을 느꼈다. 그녀의 눈에서 탐욕이 서리고 그 차갑고 시린 은빛이 이를 드러낸다. 밑바닥에 고여있던 나의 행복이 말라간다. "아주 조금만이야." 거짓말. 가식적인 말투로 끝내 내 목 가까이에서 멈춘 가위의 촉감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눈물은 나지 않았다. 싹둑. 다음 주제는"여우비"
태양이 '나'를 파고든다. 그 열기가 나의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집요하게 꿰뚫어 나의 몸 그 안까지 타는 열기와 갈증을 느낀다. 열기는 나를 잠식해 버리고 눅진하게 가라앉는다. 이 갈증의 기원은 대체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길래 나를 이토록 혼란스럽게 만드는가 하늘을 응시하며 자그마한 탄원을 넣어본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깊은 고독뿐. '존재하지 않는'이라는 어구가 나의 가슴을 때려박는 듯하다. 깊은 상실감은 타는 열기로 변화되고 고독감과 무기력함은 내 몸뚱아리를 파고든다. 어찌 이리 내려치는지 나를 식혀줄 물 한방울이라도 내려지기를 하는 깊은 갈망을 해본다. 황량한 사막을 걸으며 오아시스를 찾는 나그네의 심정이 이리도 절박할까 이 내려치는 태양을 담은 하늘에 비 한방울이 내렸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강하게 소원해본다. 다음주제-외로움
회색 승용차가 순환선을 달리고 있다. 달리는 자동차는 작은 밀실이다. 이 밀실에서 살아있는 것이라곤 핸들을 잡고 있는 나 뿐이다. 답답함에 차 창문을 조금 내렸다. 톡, 톡. 빗물이 뺨을 적신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엇인가가 섞여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도로는 꽉 막혀 정체다. 나는 이 속도가 오히려 반갑다. 이 밀실에 조금이라도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 언제부턴가 혼자 있는 공간이 편했다. 자동차, 화장실, 내 방 침대 같은. 시원한 바람이 사념을 헤집는다. 그런데 정말 혼자였어? 바람이 나에게 묻는다. 옷을 적시는 빗방울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점점 추워진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창문을 올렸다. 이제 완벽히 혼자가 되었다. 때마침 정체가 풀리기 시작했다. 도로가 한산해진다. 나는 여유를 느끼며 순환선을 벗어났다. 수많은 차들이 내 옆을 비껴나간다. 나는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렸다. 아,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핸들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 '추락 위험' 빨간 삼각형의 표지판이 말을 걸었다. 나는 웃으며 표지판에게 양손을 흔들었다. 작은 자동차 속 밀실이 점점 작아지더니 내 눈꺼풀 위에 덮였다. *블랙아웃(필름이 끊기는 현상)
벌써 몇 일째인지 모르겠다. 잠드는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눈만 감으면 까무룩 잠에 들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싫다. 매일 밤, 소스라치게 하며 잠에서 깨게 만드는 악몽도, 내 사정은 모르는체 편히 쉬라며 자라고 하는 동료 직원들도 모두. 악몽을 꾸기시작한 이후로 모든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좋아하던 방향제를 내다 버렸다. 째깍이는 시계를 소리없는 것으로 바꾸고, 가로등 불빛을 가릴 커튼을 달았다. 식기는 천에 꽁꽁 싸 달그락거릴 수도 없게 만들었고, 수도꼭지에서 하나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거슬려 손수건으로 감싸 싱크대에 맞닿게 해놨다. 침대밑이 신경쓰여 매트리스만 두고 버렸다. 이 외에도 신경쓰이는 모든 것들을 갈아엎었다. . 잠을 자지 않고 버티기 시작한지 24시간. 아직까진 나쁘지 않다. ㆍ 40시간이 넘어가니 머리가 어딘가 닿으면 잠에 들것 같아 오히려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A씨, 좀 쉬는게 어때?" "괜찮아요. 아- 그거 제가 할께요." ㆍ 50시간이 넘어갔다.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집안의 구석진 곳. 어린 아이가 검은 크레파스로 자기 얼굴을 색칠하고있다. [안-녕-?] 눈이 마주쳤다. 새카맣기만 한 눈, 귀까지 벌어지는 입, 삐쭉한 이들과 입속 목구멍 부분의 데록거리는 노란 눈동자, 그림자가 거미줄처럼 퍼지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하도 자지 않았더니 헛게 보인다. 내 상상력이 좋아진 걸까. ㆍ 또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째깍거리는 초침이 신경쓰인다. ㆍ 모조리 갈아 엎었다. (암전) 버틴지 24시간째 ㆍ [곧이야-] 내 상상력이ㅡ (지지직) 40시간ㅉ ㆍ 잠자지 않고 버티기 시작한지 50시간째. 내 앞의 어린 아이와 눈이 마주쳤던 것 같ㄷ.. ㆍ A의 눈이 감기고 몸이 옆으로 넘어갔다. 바닥에 널부러진 A를 바라보던 아이는 그녀의 몸에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어서와-] A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아이가 몸을 숙여 자신과 같은 새카맣기만 한 눈을 마주봤다. 그림자가 둘을 감싸기 시작했다. A는 기괴하게 웃는 표정을 지었고 인외의 소리가 방에 마지막 자취를 남겼다. 그래, □□□. 다음 키워드 0 과 1의 교집합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이의 경계에는 무수한 신호와, 잡음 그리고 무수한 교란이 존재한다. 존재하지않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사이에는 무수한 잡음들이 존재하고 또한 그 잡음들 사이에는 또 존재하지 않은 것들이 무수하다. 무엇을 포함시키는가 무엇을 갈망하는가 무엇이 존재하길 바라는가 또 무엇이 존재하지 않길 바라는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가는 굴레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해답을 구해본다. 다음주제 : 붕괴
천천히, 천천히 이곳이 무너져내리네요 보이시나요 부디 보아 줄 수 있나요 사랑한다는 말은 바라지도 않아요 미안하다는 말은 할 필요 없어요 내 마음 속 유일한 세상 굵디굵은 나무의 뿌리와 줄기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너져내리고 있네요 조그만 가지들로 다시 세상을 세워볼까요 당신이 준 그대가 준 얄팍한 나뭇가지로 다시 뿌리를 심고 그 나무뭉치를 감싸 줄기를 만들고 다시 가지를 만들어내니 그대에게 줄 나뭇가지가 자라났어요 미안해요 줄기를 주지 못해서 고마워요 이런 저의 나뭇가지라도 받아주어서 커다란 아무리 커다란 붕괴가 일어나더라도 나무는 없어지지 않을 거에요 그대가 아주 조그만 나뭇가지라도 주는 한 나무가 있어야 할 이유는 흘러 넘치죠 누구보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그리고 그리고 고마워요 제 붕괴된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주어서 주제:생명
병에 찌든 두 눈꺼풀이 생명처럼 파르르 떨린다. 지독한 두통은 뇌세포를 알알이 곤두세운다. 세포마다 연결된 처절한 시냅스가 두개골 속을 파고든다. 그 고통에 익숙해질 쯤, 세상이 파랗게 변했다. 하늘에선 물 비린내가 났다. 휘몰아치는 파도가 별빛을 담고 일렁인다. 반짝임이 별을 중심으로 굽이친다. 생을 다하고 폭발하는 별, 오리온 삼태성, 시리우스, 이름 모를 하얀 별... 별들이 다가온다.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듯 나에게로 다가온다. 나는 검은 사이프러스 나무 뒤에 숨는다. 별이 폭발한다. 생명을 빛으로 불태운 것이다. 이 적막한 세상에 별들이 낳은 생명이 악바리를 쓴다. 생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내 병마가 몸을 일으켜세웠다. 나약한 생명을 무릎꿇게 만든 병마는 달려나가 생과 싸운다. 내 손은 시퍼런 피를 흘리며 그 전쟁의 소리를 기록했다. 아, 별이 빛나는 밤이구나. *귀
너는 귀를 깨무는 버릇이 있었다. 다소 유치한 애무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귓바퀴에 입을 맞추고, 귓볼을 깨물 때, 아프다고 몸을 비틀면 키득키득 애 같은 웃음소리를 흘려넣곤 했었다. 네가 만들어 낸 소음만 내 귓속을 빠듯하게 채우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이 벅찼다. 호흡이 가쁘고, 가슴이 저릴 만큼 그랬다. "넌 부끄러워 할 때면 귀끝까지 빨개지더라." "네가 깨물어서 그래." "깨물기 전부터 그랬어." "아니거든." "맞거든. 애초에 빨갛게 익어서 깨문 거니까." 도무지 받아칠 말이 없어서 애꿎은 귀를 머리카락으로 숨기고 있으면 너는 다시 웃었다. 청량한 웃음소리가 머리카락을 헤치고 귓가에 닿도록. * 다음 키워드: 위태롭게
하염없이 걸었다. 내가 처음 그 사람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은 그가 마치 ' 위태롭게 ' 보였다. 텅 빈 공원 의자 끝자락에 앉아 초점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는 그 모습이 마치 엄마를 잃은 아기 같아 보였다. "아아 -" 알 수 없이 끌리는 그 사람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그의 모습에 탄식이 흘러나왔고 인기척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이내 나는 고개를 돌린 그 사람과 마주쳤고, 나의 몸에는 알 수 없는 전율이 흘렀다. 아아- 그는 내가 아주 먼 과거속에서도 그토록 찾았던 '그' 였다. 다음 키워드: 치킨
냉장고에서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꺼냈다.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를 맞춰 놓고 돌렸다. 눅눅한 치킨은 딱 질색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오후 8시. 이때가 되도록 한 끼도 먹지 못했다. 고소한 치킨 냄새가 방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뜨거워진 치킨을 뜯으며 W는 다시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다. 선연한 하얀 빛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잠을 못 자서 눈동자가 퀭해져 있었다. 거칠게 치킨을 씹는 입술은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 나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죽여 버릴까?... 그러면 주인공이 제일 먼저 의심을 받을 텐데...' '시체는 어디다가 처리하는 걸로 하지?' '아니다, 그냥 죽이지 말고 주인공을 계속 협박하는 걸로 가 볼까...' 어느새 접시에 닭뼈가 쌓였다. 그 말은 수족냉증을 앓는 W의 손가락이 급속도로 차가워질 거라는 뜻이다. 기름기 때문에 반짝거리는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은 W는 물끄러미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음식이었는데. 닭뼈는 죽은 사람 뼈처럼 차갑게 식어 공기 중에 미약한 향을 남기고 있었다. W의 발바닥이 슬슬 차가워졌다. 손발에 땀도 나는 것 같았다. 후우, 점점 차가워진다. 마치 먹다 남은 뼈처럼. [ a는 h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아니, 살해하는 것에서 끝이 아니라 그를 먹기로 했다. h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도록. a는 플레이팅을 시작했다. 도구는 집에 전부 준비되어 있었다. 적당한 탄력의 밧줄, 날카로운 칼, 기타 자질구레한 소품들. a는 h의 손을 떠올렸다. 그 보드랍고 작은 손이 자신을 쓰다듬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손, 아니 손가락부터 먹어야겠다.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정도 돌리면 따끈하게 맛있을거야. ] W는 타자기에서 잠시 손을 떼고 목을 감쌌다. 방금 전에 치킨을 두어 조각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허기가 졌다.
* 다음 주제 : 이불
어제 밤은 시리도록 춥더라, 집에 오자마자 이불 속으로 들어갔는데 잠이 안오는거야 적막이 이불 위를 둥둥 떠다니는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래서 영화를 한편 봤어. 그리고 또 한편 더 봤지. 영화를 다 볼 때 쯤엔 이불 개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직도 이불 속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똑같은 이불에 똑같은 시림인데. 고작 너 하나 빠졌다고 뭐가 이렇게 많이 다른지 다음 주제 “고양이”
학교를 끝마치고 집앞 편의점에 들려 하얀 우유와 빵두봉지를 샀다. 하나는 진한 초코크림이들은 초코크림빵이였고,다른하나는 치즈맛빵 이였다.내가 이런행동을 하는이유는 점심을 못먹은 배고픔 때문이였다. 같이밥먹을 친구가 없어서 못먹은 것이였지만 이렇게 빵을 사가는것또한 창피하고 씁쓸한건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 치즈빵에는 동물을 캐릭터화한 귀여운 쁘띠씰도들어있었고 같은 반 아이들은 그것을 한참 모으기 바빴다. 사실 초코맛을 좋아하는 내가 치즈맛 빵을 산것 또한 쁘띠실을 모아 친구들에게 관심을받기 위함이였다. 지익- 아.또실패군.오늘도 허탕이였다. 왠지 아침부터 학교에 늦더라니 불길한 예감은 절대 틀리지 않는지. 3개나있는 고양이 모양의 쁘띠실은 내게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 집에가서 동생이나 줘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쓸모를 다한 빵을 다시 봉지에 넣었다.그렇지만 내게서 그 빵을 갈구하는녀석이 있었으니. 쁘띠씰에 나온 고양이와 비슷한 외모를 가졌고, 고등어 모양의 등패턴이 예쁘게 자라 난 고양이'나비'는 내가 새끼때부터 보았었던 우리동네의 길고양이들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길고양이들이 더럽고, 음식물 쓰레기나 뜯어 놓고 그것들을 파헤친다며 싫어했지만 고양이들은 내게 언제나 배고픈존재 만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관심에 배고픈 나와같이. "너 배가고프니?" 나비는 야옹- 소리를 내며 내말에 대답했다. 나비의 눈을 보니 그렇다고 내게 대답하는것 같았다. 나비의 눈은 초롱하게 빛이 나는듯했다. "그럼 내가 이 빵을 줄게" 야옹- 빵을 그녀석쪽으로 던지니 고맙다는듯 내말에 대꾸하는듯 야옹소리를 내고는 덥썩물어 제갈길을 가는 녀석에게 잘가라는 인삿말을 던졌다. 그리곤 진한 초코크림빵을 덥썩물고 초코크림이 터져나오는것을 보며 달콤하고 행복해짐을 느꼈다. 이제 내 배고픔은 해소될것이고 나비녀석의 달콤함도 해소 될것이다.
다음주제 소파
푸식, 하고 다 낡은 인조 가죽 소파가 꺼지는 소리가 난다. - 오늘도 어김없이 거지 같은 하루를 우울하게 보내고 역 앞 편의점에 들러 할인하는 맥주 두 캔을 꺼낸다. 안주로는 육포를-역시 비싸구나 하고 과자 코너에서 새우깡 꺼내드는 게 고작. 한창 모바일 게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알바생을 위해 한 게임 끝날 때까지 여유를 부려준다. 카운터로 터벅 걸어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들으며 계산하고 맑은 차임 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간다. 슬슬 맛이 가기 시작하는 가로등 밑을 걸어가며 빌어먹을 과장 새끼를 열심히 씹어댔다. 지랄맞은 놈. 프로젝트 한 번 무산된 이후에는 더 막 대하기 시작했다.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도착한 빌라에서 불 꺼진 403호 문을 따고 들어간다. [다녀왔어-]라고 냄새나는 구두를 벗으며 캄캄한 집에 인사해준다. 하얀 신발장 위 웃고 있는 두 연인 사진을 소리 나게 덮어버리고 내일 출근하며 또 저기다 대고 인사하겠지-라는 쓸데없는 생각에 잠긴다. 항상 그렇듯 피곤에 절어버렸다. 힘들고, 우울하고, 짜증 나며, 암울한 미래만 눈앞에 보인다. 이런 날은 씻기조차 귀찮다. 양말만 널브러져있는 옷 무더기에 휙 벗어던져놓고 편의점 봉투를 들고 소파에 눕는다. 혼자 쓰기엔 지나치게 크다. 혼자 썼다기엔,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빨리 낡았다. 내 무게 하나만 견뎠다곤 볼 수 없이 쿠션은 쉽게 꺼져버렸고 싸구려라 치부하기엔 비싼 게 좋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선명하다. 그냥- 나는 그냥 맥주 한 캔을 따고 예능 방송이나 틀었다. 추억에 들기엔 너무 쓴 기억이었고 아픔에 빠지기엔 내일 또 출근이었다. 그렇게 코미디언들의 웃는 소리를 듣더니 슬금 잠이 들었는 듯싶다. 다음 주제는 고서점
우리 집 근처엔 오래된 골목이 있다. 그 골목의 모든 것은 지독히도 낡았다. 경사가 급한 시멘트 계단이나 먼지 낀 유리창, 빙글빙글 돌아가는 미용실 간판. 아무것도 아름답지 않았다. 투박하고 촌스러운 것들의 향연이었다. 그래도 밤이 되면 좀 봐줄 만했다. 가로등 빛만 두꺼운 창문에 무늬를 그리며 번졌다. 색 바랜 것들은 사라졌다. 짙푸른 밤하늘과 오렌지색의 작은 태양들이 거리를 비추는 시간이 이 골목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아름다움이었다. 하지만 가장 빛나는 건 그 낡은 골목 속에 숨어있었다. 그건 잠긴 고서점이었다. 고양이만 줄달음치는 새벽에 나는 집에서 빠져나왔다. 고서점에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뛰었다. 가로등이 만든 오렌지색 카펫이 다른 세계로 가는 길 같았다. 고서점은 커다란 자물쇠 하나로 잠겨 있었다. 작은 나이프로 이리저리 쑤시니 탁 하고 자물쇠가 풀렸다. 손전등을 켰다. 먼지가 꽃가루처럼 흩날리는 게 보였다. 손전등 빛이 나를 이끌었다. 이제부터가 여행길의 시작이었다. 조심스럽게 첫 발걸음을 뗐다. 살금살금 걸어 소설 칸으로 왔다. 소설을 읽을 때면 꿈을 꿀 수 있다. 가난한 회색의 거리를 벗어나는 꿈을. 책 표지를 덮을 때까지 어두운 고서점은 황홀경으로 물들었다. 오늘은 사막을 횡단하는 모험가였다. 나는 모험가가 되어 끝없이 이어진 모래 위를 걷고 또 걸었다. 타는 듯이 목이 말랐다. 땀을 너무 흘려서인지 하늘도 노래졌다. 노란 하늘에 물빛이 비쳤다. 신기루일까. 저 멀리 푸른 물의 반짝임이 보인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푸른 물속으로 달려간다. 물방울이 아스라히 부서지며 나를 적셨다. 동이 트고 있었다. 붉은 태양이 서점을 물들인다. 조금 있으면 고서점 주인이 올 것이다. 책을 덮고 원래 자리에 꽂았다. 눈에서 푸르른 반짝임의 잔상을 지워냈다. 내 짧은 여행이 끝났다. 손전등을 끌 시간이다. 딸깍. *연필
그의 필통엔 언제나 세자루의 파버카스텔 연필과 지우개, 커터칼만이 들어있었다. 다들 형형색색의 샤프와 볼펜들을 쥐고 글자를 써내려갈때 그는 언제나 노오란 파버카스텔 연필로 적당히 두껍고 적당히 무른 흑연을 종이 위에 가볍게 문대며 두툼히 서걱이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언제인가 그의 이 사소한 괴벽에 호기심이 동하여 한자루 빌려 하루정도 연필로 필기를 해보았지만, 기능성 샤프의 몰캉한 펜대에 길들여진 나의 손가락은 고작 두시간만에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었다. 그러자 나는 그도 좋은 샤프를 한번 써본다면 그 기묘한 집착을 버리지 않을까하여, 그의 필통을 숨기고 내가 가장 아끼는 샤프를 빌려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몇글자 써보고 머리를 긁적거리는가 싶더니 '에이 모르겠다.' 하며 내게 샤프를 슥 내밀더니 필기노트를 치워버리고 아예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그의 숭고하기까지 한 고집에 더 이상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지만 가끔 이렇게 그를 바라보면, 귓가를 간지럽히는 마찰음을 듣다보면 어렴풋이 그의 마음 한조각을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사방에서 샤프심들의 가녀린 척추뼈가 서늘한 금속 지지대에 꺾여지는 뚜둑하는 소리, 그 무참한 비명들 속에서 따닷하고 부드러운 갈색의 나무가 빈틈없이 감싼 튼실한 연필심은 거센 풍랑 속 조막만한 양철 통통배들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대항해시대 무적함대의 나무 군함과도 같은 시대착오적인 안온함을 가진것이다. 거기다 내가 부러진 샤프심을 재촉하듯 뒷꽁무니를 꾹꾹 눌러 괴롭히며 새 심을 뽑아내는 사이에 그는 커터칼로 나뭇결을 따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연필을 살살 달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숨어있던 심이 빠끔히 고개를 내미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깎인 연필은 심은 딱 쓰기좋게 나와있고 나무는 균형있게 심을 받치는, 화목하게 단합된 모습인 것이다. 그 모습은 필시 주인의 끈질긴 애착과 정성이 만들어냈을 것이고 그를 가능하게 하는 연필과 그의 기묘한 유대는 보는 나에겐 하여금 철근과 콘크리트 빌딩 사이의 나무 한그루와 산새 같은, 의아하지만 그만큼 편안한 모습인 것이다. 다음 주제는 경성
>>80 미안한데 경성이라는거 뜻을 모르겠다. 인터넷에 쳐봐도 이런저런 여러가지가 나오는데 레주가 원하는건 알 수가 없어. 그래서 그냥 뜻들중 한 가지인 경성硬性 : 단단한 성질로써 글을 쓰려고 한다. 겨울 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길을 계속 걸어갔다. 집에서 대충 이십여분쯤 걸으면 도착하는 한 카페가 약속장소다. 오늘따라 유달리도 추운 바람에 발을 더 급하게 놀려 걸어가길 얼마. 약속시간 보다 이십여분은 더 일찍 도착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이 자주 마시는 그린티 라떼와 내가 주로 먹는 홍차라떼를 주문해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창가쪽에 자리를 잡아, 앉아있는 장소를 보냈다. 거의 보내자 마자 읽은듯 홀연히 사라져버린 숫자 1의 모습에 오는길 핸드폰을 내려놓지 않음을 쉬이 짐작했다. 뜨거운 잔의 위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와 공중으로 흩어진다. 김이나 나나 그게 그거같은 단단함에 스푼으로 휘휘 저으며 온도를 내렸다. 탕그락 거리는 소리. 기묘하게 웅성거리는 듯 한 카페안. 의자가 끌리는 소리, 사람들의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대화와 섞여 맡아져 오는 연은 담배향기. 창문에 머릴 기대서 그런지 머리가 띵해졌지만 끝끝내 들진 않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더 예민해진다는 말은 내게 해당되지 않는 것인지, 그 사람이 내 앞에 앉나 발 끝으로 내 발끝을 툭 차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담배향기는 역시 그 사람이였다. 내가 썩 내켜하지 않는 그 향이 어쩔수 없이 익숙해지다 못해 종종 향만으로 이 종류를 알아 맞출 수 있을 정도가 된거 내 코는, 감각은 저 사람에게 죽 쏠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업이 차이고, 깨지고, 넘어지며 다시는 이러지 않겠다 다짐했지만.. 사람마음이 그렇게 쉽게 됬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직업들중 많은것들은 앳저녁에 사라졌음이 옳다. 잘 지냈어? 그렇죠 ,뭐. 아, 맞다~ 너가 연 사진전 나 갔었어. 멋지더라 역시. 당신이 요번에 쓴 책 재밌더라구요.. 뭐 편집자도 잡아내지 못한 맞춤법 오류 제가 발견해서 그쪽에 연락 했었죠. 그게 너였어!? 혹시 이전에도 내가 책만 내면 설정오류라거나 그런것도 전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됬네요. 나 싫어하지? 글세요. 뭐야, 정말이야? 너무하네. 딱히..별로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데요. 평범하게 시시콜콜한 이야기속에 당신은 알아 챌 수 있을까. 또 아플것 같지만 예전보단 단단해졌겠죠. 모락모락 김에서 유리컵정도 까진. 당신이 내가 단단해지는 또다른 내 양분이 될지, 아니면 어떻게던 될진 모르겠지만 난 또 도전해볼렵니다. 좋아해요. 엉? 아하하하 나도 좋아해. 좋아합니다. ... ...에이 뭘 세삼스럽게 그렇게 말ㅎ. 당신은 연인적인 느낌으로 좋아한다고요. 아.. 난 또 뭐라고. 그렇구나. -END- 다음 주제. 가루약
쓰다. 하지만 달달한 물약은 벗어나야 한다. 어린이로만 남아있는건 안 되니까. 라고 생각하며 가루약을 삼킨다. 쓴 맛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물, 쓴 맛을 덜하게 하려면 물이 더 필요하다. 때문에 물을 뜨러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방 밖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환자분, 요즘 어떠신가요?" 문이 열리면서 모습을 보인 건 간호사. 아마도 상태를 체크하러 온 거겠지. 대충 대답한다. "네... 괜찮은 거 같아요." "다행이네요." 덜컥, 문이 닫히면서 간호사가 나간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화를 하면 쓴 맛이 가시는건지. 쓴 맛이 가셔서 물은 필요없게 됐으니,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천장을 바라보던 눈을 감고 말한다. "너, 내 옆에서 그만 가줄래?" "아니, 난 네 옆에 없어." 어린애로 남아있기 싫다고 쓴 가루약을 삼킨거지만, 아직은 어린애로 남아있다. 상상의 친구인 나는 더이상의 유통기한은 없어야 정상인데, 왜 아직도 나를 상상하고 있을까. "사라지길 원하면, 나를 그만 생각하면 끝이야." "하지만 그래도 너는 존재하지." "아니야. 아니야." 넌 더 이상 어린애로 남아있으면 안 돼. 나도 더 이상 상상의 친구로 남아있으면 안 돼. 하지만 그래도, 너는 아직 어린애구나. 다음 키워드! 타자기
타닥거리는 타자기 소리는 그를 어지럽게 했다. 그는 타자기를 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실체가 없는 허공이 그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을 움직이자 흰 바탕에 글자가 뿜어져나왔다. 검은 글자들이 밧줄처럼 그를 옭아맸다. 그는 억울했다.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인데 왜이렇게 힘들어. 이제 그의 곁에 남은 것은 그녀 뿐이었다. 그녀는 병신이었다. 돈 한푼 안나오는 이기적인 타자기 놀음에 그녀의 젊음이 바스라져갔다. 나 대신 요리를 하던 그 손이 텄다. 내 이기적인 손과는 다르게. 나 대신 그녀는 공장으로 일하러 가다가 사고로 다리를 잃고 나비가 되었다. 나는 벌레처럼 땅 위를 기는데 그녀는 하늘로 날아갈 날만 기다렸다. 어느 화창한 오후 나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 날아오르지 않을래. 저 창밖으로 날개짓해서 날아가지 않을래. 이 타자기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지 않을래.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햇살이 창처럼 내 몸을 찌른다. 오늘 내가 지나온 아파트들이 한 점이다. 이제 날아오를 시간이다. 흰 종이 밖으로 검은 글자가 탈출하는 지금. *케첩
부욱- 그녀는 내 얼굴을 향해 케첩을 있는 힘껏 짰다. 케첩이 내 얼굴과 그 사방으로 퍼졌고, 내 얼굴은 붉은 그것으로 덮어졌다. 그녀는 그런 내 몰골을 보며 깔깔깔 웃는다. 종종 이렇게 날 황당하다 못해 어처구니 없게 만드는 그녀에게,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무 말 없이 일어난 나는 싱크대로 가 얼굴을 물에 적셔 그것을 닦아낸다. 그리곤 다시 식탁 앞에 앉아 식사를 계속 한다. 그런 나의 반응을 본건 지 시끄럽고 앙칼진 웃음소리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싫증을 내며 마른 다리를 꼬고 앉아 한 손에는 포크를 쥐고 한 손으론 긴 머리카락을 빙빙 돌린다.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마주 칠 수가 없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된거니, 우리는. *사랑
눈을 뜬 맨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꿈 속을 유영하는 느낌일까. 괜시리 가슴 한 구석이 시리고 고요한 내 주위와는 달리 나는 소란스럽다 나의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삶을 사는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일이라지만 이것이 나의 인생의 순리라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이런 순리는 진즉에 때려치웠을 것이다. 나의 감정들이 바다가 되어 나의 무의식을 파도로 덮는다 .빠져나오려 헤엄을 연거푸 쳐보지만 짜디짠 바닷물이 내몸 속을 채워가는 불쾌한 기분 뿐이다. 그 정도인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은 너가 사라졌음 좋겠다. 널증오한다.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순이다 마음에서는 널 꺾었다. 넌 타락했다. 나의 마음 속의 넌 꺾인 장미에 불과하다. 가시에 찔려 난도질이 되는 줄도 모르고 정신팔려가며 널 꺾는다. 그것이 바로 나의 사랑이다. 바다의 파도가 날 덮어와도 가시에 찔리면서도 장미를 꺾는다. 나의 사랑은 다음주제 -소라색
그는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인지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봐도 이젠 덤덤하게 반응했다. 게다가, 젓가락질마저도 잊어버렸다. "기억 나?" 오랜만에 그에게 또 물어보았다. 그는 고개를 도리질했다. 역시 아직도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찾아와선 말했다. 헐떡이는 목소리였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 기억났어..." 놀랐다. 놀라울 따름인 사실이었다. 그는 기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무엇이?" "내가... 좋아하는 색..." 그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손 끝에는 약간 보랏빛이 감도는 듯 한 하늘색이 있었다. 일명, 소라색. 색을 보자마자 입에서 절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 소라색." "응... 소라색." 그는 말에 답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나 더 말해줘야 할 게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였다. "... 그리고?" "이 색, 이 색을 내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어." 그가 말했다. 항상 소라색을 좋아한다고 말할때면 말하던 그 말. 됐다, 확실하게 그는 기억이 돌아온 것 같았다. 다음 사람에게는 오케스트라
'미이야 지금 대강당으로 와' 아까부터 대체 뭐 하잔 건지 휴대폰 진동에 놀라 확인한 액정 화면에 친구의 문자가 표시되고 있다. 오늘도 따로 피아노 매장에서 연주 하기로 약속을 해둔게 있었는데 이 녀석의 성화에 그 약속 까지 캔슬하고 대학교 부지에 들어와 있다. 그런데 멋대로 잠시 돌아다니라는 말만 남기고 멋대로 급한 일이 생겼다며 사라져버린 친구녀석 이러면 날 불러낼 필요도 없었잖아... 오랜만에 연주에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 까지 캔슬하고 와줬더니 녀석이 한다는 말이 '대학은 처음와보지? 내가 구경 시켜 줄게' '아니 별로 관심 없어'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나? 하고 묻는 다면 남들은 다 가는 곳이니까 확실히 나도 가고는 싶었다.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 전형으로 더 쉽게 들어갈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않은건 어머니에게 너무 부담을 주기 싫어서 아니 분명 대학나와서 좀더 좋은 기업에 취직 해서 어머니 호강 시켜드릴수도 있었겠지만 그 몇년을 더 고생시키기 싫어서 난 그냥 공장에 취직해버렸다. 피아노 연주도 결국 취미로 가끔 치는 정도고 '그런데 이렇게도 들어와 보네' 고등학생때 대학교 체험 시켜준다며 여기 저기 둘러보게 하던때도 나는 일부러 가지 않았다. 처음부터 안 갈 사람은 안가도 되지 않냐며 선생님에게 말했을 땐 장난 하냐 라는 말만 돌아왔지만 난 결국 그날 그대로 수업을 째 버렸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그땐 예민 했었구나 싶다. 지금은 이것도 뭐 그다지 특히한것도 아니고 대단한것도 아니란걸 알고 있다. 난 태어났을때부터 이렇게 자랐으니 남들의 평범함은 나에게 평범함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익숙해진단건 무서운거야. 이런 생각도 하게 되고 나도 이제 어른이 구나. 뽀득 뽀득 소리를 내며 눈길을 걷는다. 사람이 많이 지나는 길이다보니 눈은 별로 쌓이긴 않았지만 덕분에 더 미끄럽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더니 하얀색 김이 나온다. '어라? 눈이 내리네?' 여우비가 아니라 여우눈 인가 아직 햇빛이 나고 있는데 진눈깨비가 갑자기 날리기 시작해서 놀랐다. 아아 슬슬 춥네 빨리 대강당인지 뭔지나 찾아서 오늘 하루 허탕치게 만든 친구놈 한테 딱밤이라도 먹여줘야 성이 풀릴것 같다. 눈에는 별로 좋은 추억이 없다. 그래 나는 농아다. 태어날때부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구술을 배웠다면 일반인과 편하게 대화가 가능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그냥 수화를 배웠다. 원래 나는 수화를 배우는게 맞는 타입이었고 억지로 언어를 익혀야 할 타입에 구술을 배우게 했다가 언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딱히 불만은 없다. 수화 쓰는 사람끼리는 엄청 시끄럽게 떠들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처럼 악착 같이 내 옆에서 문자로 대화하면서 내 곁에 남아주는 일반인 친구를 보면 역시 구술도 배웠어야 했나하고 아쉽기도 하다. 뽀득 뽀득 마음에 안 드는 눈 감촉 서둘러 걷다가 역시나 휘청하고 넘어져 버렸다. 으아 오랜만에 이쁘게 꾸미고 나왔는데 화장 다 망가졌다. 역시 그녀석은 한대 패야 겠다. 뽀득 뽀득. 마음에 안드는 의성어. 휘청 그래 너도 마음에 안들어. 펑펑 내리는 눈. 너도 마음에 안들어. 어렸을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던 난 어째선지 의성어에 엄청나게 집착을 했다. 소리가 어떤건지 듣고 싶었던 걸까. 찌개는 보글 보글 끓고 바람은 휭휭 불고 태양은 쨍쨍 하고 내리 쬔다. 온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며 그런 소리가 쓰여진 만화책을 아주 좋아라 읽었었다. 그러던 어느날 창밖을 내다 봤더니 커텐 너머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난 어머니를 깨웠다. '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어요' "어머나 그렇구나 자느라 몰랐네" '어째서죠? 이렇게 시끄럽게 눈이 펑펑 내리고 있잖아요' 그리고 나선 어머니깨선 날 끌어안고 펑펑 우셨다. 딱히 책에 쓰여 있는 소리가 정말로 현실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 건 아니라는걸 그때 처음 깨달았었다. 비실비실 일어나서 괜히 바닥을 퍽퍽 차준다. 덕분에 별로 좋지 않은 기억만 떠올랐잖아! 그때 소리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소리가 듣고 싶다고 엄청나게 떼를 썼지만 그런다고 안 들리는게 들릴리가 없고 어머니가 당시 엄청 나게 힘들게 피아노를 배우게 해주셨다. 어머니가 피아노를 치면 소리가 들리진 않지만 진동으로 느껴진다고 하셨다. 나도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진동은 느껴진다. 옆에서 뭐가 큰게 떨어지거나 뭐가 빠르게 움직이거나 위험 상황에 빠지면 진동으로 느끼고 반응한다. 아버지도 내가 농아라고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 빠듯하고 어려운 상황에 그렇게라도 내소원을 이뤄 주셨다. 어찌보면 좋은 기억. 어찌보면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계기. 하지만 우리 형편에 피아노 전공을 할수 있을리가 없고 가끔 매장에서 게릴라로 연주회를 여는 정도고 이렇게 계속 연주를 하고 있다보면 내 분수도 모르고 계속 꿈을 꾸게 된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어'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싶어' 관둬라 관둬 내 분수에 어딜 넘봐. 쓸데 없이 눈도 내린다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올라 버렸다. 대학은 또 왜 이리 넓은지 건물마다 너무 뚝뚝 떨어져 있고 가르려준대로 가려고 해도 건물 위치도나 건물을 가리치는 곳 그리고 또 그건 물안의 어떤 방을 가리키는 말이 거의 암호수준이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이런걸 두고 눈뜬 장님이라고 하는 건가. 30분 넘게 해매다가 간신해 대 강당을 찾았다. 나름 큰 건물인데도 이지경이니. 괜시리 앞으로 혼자 어떻게 길 찾아돌아 가지 하고 서러워 진다. 이건 전부다 그놈 때문이다. 그놈만 패고 빨리 돌아가 쉬자. 모처럼의 공장 휴일인데 피아노도 못치고 쉬지도 못하고 최악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대강당 입구 문을 열었다. 그렇게 단단한 쇠문을 열어 젖히자마자 얼굴을 때리는 거대한 진동. 어...어..?? 이거 대체 뭐야?? 강당 안으로 들어오자 갖가지 진동들이 내 전신을 후려친다. 그리고 한참후에야 그 진동에 익숙해지고 나서 내 눈안에 들어오는 대강당 무대에서 연주중인 오케스트라 너무나 놀라 그대로 얼굴을 가리고 주저 앉아 버렸다. 뭐야... 이거 대체 뭐야...? 무슨일이 일어난 거야?? 이게 왜 여기 있어?? 아까부터 전신을 후려치는 이 진동은 연주를 하고 있는거야?? 그런거야??? 정신을 못차리는 내 어깨를 누군가가 툭툭친다. 아까부터 나한테 이 고생을 하게 하고 있는 친구 놈이다. 진정하란 듯이 웃어보이곤 휴대폰에 문자를 처서 보여준다. '뜬금 없지만 내 깜짝 선물 ^ㅡ^ 방송사에 네 사연을 제보 했더니 이런 깜짝 이벤트를 준비해주더라. 너 이제 계속 피아노 칠수 있어' "뭐으야... 재이 어서" 어이가 없어서 말까지 나와 버렸다. 제대로 발음도 못하면서. 눈내리는 날의 오케스트라 또 쓸데 없는 추억이 생겨버렸다 다음 주제는 Etc
나는 황실의 흑발 주제에 분류되지 못한 기타 등등이었다. 나의 아버지인 이 나라의 왕은 날 자신의 치부로 여겼다. 나는 유일한 아버지의 친자였다. 과거인 이유는 작자에게서 벗어나려던 어머니의 노력이 나의 아버지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그랬겠지. 어느것하나 빠짐없는 내게 아버지는 언제나 고기 대신 빵을, 검과 책 대신 백정의 칼을 쥐게했다. 나의 어린 왕자는 어느샌가 어느 향락가의 백정이 되어있었다. 나라의 황실에서만 발현되는 검은 머리칼과 검붉은 눈. 그 기품있는 깊이와 눈매와는 달리 백정은 돼지의 피가 튀긴 낡은 옷과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머리카락 밖에 남지 않았다. 난 아버지라 부르기도 싫은 그 추악한 작자를 원망한다. 나의 어머니는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 게야. 내 눈 앞에 비릿한 피냄새가 풍기는 일은 그것이 첫 번째였다. 흩뿌려진 피는 내 얼굴과 온 몸에 뭍었다. 돼지의 찬 피와는 달랐던 그 어머니의 드레스 위 난 울고 있었다. 반드시 밟아버리겠단 의지를 그득그득, 검붉은 눈동자가 빛이 났다. - 다음 주제는 꽃과 향락
꽃에 머무르는 것은 사치요 쾌락뿐이다. 부정이요 타락이며 그 향기의 안개로 모든걸 감싼다. 다만 보이지 않게 감싸버리는 것뿐 일개 미천한 신분으로 사치요 쾌락을 꽃이라는 이름에 담아 생을 유지해가는 것이다 모든 향락은 나의 입에서나오고 모든 사치의 시작은 손짓에서 비롯되리라 화대의 댓가는 웃음이여 향기니 열꽃이 피어나 이 방을 적신다 한들 마르지 않을 것이며 비틀어지지 않을 것이라 금의 줄을 타며 손을 휘두르는 향락의 꽃이 어찌 질 것이라고 예견하겠는가 지지 않는 태양이 있듯 썩지 않는 향기도 존재하리니 이 부정을 정분이라 합리화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꽃을 내어주리라 다음주제 -무능한 아버지
어릴적부터 원하는 것은 곧 잘 이루어지곤 했다. 게임기같은 물건부터 다른 사람들의 호의까지. 무엇이든. 마치 신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그 속에서 너는 나에겐 오류 같은 존재였다. 무엇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유일하게 나와 동등한 인간. 그런 너가 애인이 생겼다며 수줍게 웃는 모습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넌 나에게 미소조차 보여주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날 밤 네가 죽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그 동안 너만큼은 건들지 못했던 내 소망이 이루어졌다. 어째서? 왜 하필 이건데? 미친듯이 기도했지만, 무능력한 신은 죽음따윈 되돌리지 못 했다. 다음 주제: 희망 고문
아버진 무능했다. 무얼 하든간 남에게 고개를 숙이기 일상이었고, 그 흔하다는 휴대폰조차 사주질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의눈에 집앞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무릎을 꿇고 연신 사과를 하고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들은 돌아갔고,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돈을 빌렸다고... 그것도 1억을.... 가족들도 모르게 빌린돈 1억으로 조심스레 사업을 준비중이셨던 아버지지만 사업은 망해버렸고... 그 사실을 알게된 난 아버지를 향해 삿대질을 해가면서 소리쳤다. '그런걸 왜 혼자하냐?!', '적어도 우리에게 알려는 줘야할것 아니냐!', '이제 어떻할것이냐?!'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아버지를 도저히 보기 힘들어 집을 뛰쳐나갔다. 발길이 가는데로 걷다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아직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열불이 난다. 그때 나의 휴대전화(2G폰)에 걸려온 전화... 어머니다..... 이제 그만 들어오라는 소리를 예상하고 받은 전화. 하지만 들려온 소린 충격적이었다. '...그이가... 자살했다...' 방금전보다 더욱 큰 충격에 휩싸여 제정신을 차릴틈도 없이 나는 집으로 뛰어가고있었다. 집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싸고있었다. 아침에 봤던 검은색 양복의 사내들.... 등교할때마다 봤던 이웃집 아줌마들.... 학교내에서 보던 친구들..... 울고있는 어머니에게 질문을 하는 경찰들... 그리고...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천이 덮혀있는 누군가.... 조심스레... 한발자국씩 다가갔다..... 분명히 조금만 다가간다면 벌떡 일어나 방금전 일들은 미안했다고 다시 손을 모아 용서를 빌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대를 하고 다가갔다.... 그런 나를 근처의 경찰이 제지하더니 봉투를 건냈다. 유서란다... 유서.... 그 단어를 들은순간 정신이 붕괴했다. 진실이라고. 이제 더이상 무능하며 매사에 사과만 하던 아버지를 볼수 없다는것이 진실이라고... 목이 매어왔고, 입술이 말랐다... 경찰은 조심스레 내 어깨를 토닥이고 다시 어머니에게로 갔다. 몇분일까? 아니 몇초일까? 아버지에게서 전혀 시선을 때지 못했다. 간신히 손에 힘을 주어서 유서가 담겼다는 봉투를 뜯었다. 그곳에 들어있는 한장의 종이와 작은'통장'하나. 조심스레 종이를 들어올려 보았다. 쓰여져있던 글은 적었다. '미안하다. 못난 애비라 미안했다. 그동안 조금 모아온 돈이다. 정말로 미안했다.' 통장을 꺼내어 열어보았다. .....500만원.... 1억을 빌리고, 사업도 망하고, 모아놨다는 돈도 500이다... ...정말 무능했다. 죽어서까지 사과를 하는... 정말로 무능한 아버지였다... 하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선 비처럼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다음주제---- 희생
내 첫 기억은 어두운 공간에서 시작됐다 이 공간을 벗어난 기억은 없다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앞으로도..... 우연히 밖에서 들리는 소리로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딱히 나가고 싶진 않다 밖에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니까 나중에 후회하기 싫기에 그저 가만히 있는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지금 내갠 본적 없는 빛보다 어두운 이 공간이 더 익숙하니까 . . . 쿵! "아얏!" 언제나처럼 어두운 공간에 있을때였다 갑자기 한줄기의 빛이 들어오며 소리가 들렸고 처음보는 빛이 널 비추고 있었다 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와~! 안녕? 넌 이런곳에 살고있는거야??" 이것이 그 아이와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내가...내가.....!!! 꼭! 절대로 데리고 나가줄께!!!!!! 약속이야! 정말로...너와.......!!!" . . . 그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처음 본 빛도...그 아이도..... 나는 이제 옛날과 같은 마음으로 어두운 공간을 바라볼 수 없게되었다 벌써 까마득해진 옛 기억...차라리 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의 주제랑 맞는지 모르겠네....? 설정도 좀 오묘해진 것 같고.... 다음키워드는......인형
>>93 흠... 내가 생각한거랑 좀 다르지만.... 어찌됬든 썼으니 뭐...
>>94 사실 나도 맞나 하는 느낌이랄까 희망고문하면 진짜 고문해야되는건가 싶어서
어렸을 때다. 어느날 내가 끈질기게 조르자 탐탁치 못한 얼굴로 친구가 나에게 준 바비인형. 가지고 싶던걸 갖게 되어 뛸듯이 기뻤다. 하지만 이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소중히 다루던 손길과 달리 그 손길이 무색해질 만큼 차갑고 싸늘하게 변해버린 행동..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하다.. 인형은 그대로고 시간만이 묵묵히 흘러주었을뿐인데 과거에 본 모습과 지금의 눈으로 본 모습이 대비가 된다. 결국 난 이 인형을 버렸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후회하는건 어릴때 이 인형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형뿐이지만 인형입장에서는 자신에게 질린 주인에게 버림받은거니까.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거면 아예 소유하지 않는것만 못하다. 이래서 `무소유`라는 말이 있는걸까.. 다음주제..`책`
나른한 감각을 애써 곧추세웠다. 담담히 종이를 넘기는 모습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도서관에서 풍겨오는 책 내음은 때때로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다. 책이라고 해보아야 누군가처럼 대단하게 철학이나 경제 따위를 읽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재미를 위해 읽는 소설책들 뿐임에도 책을 읽지 않는 학부모들이 보기에는 그저 대단하고 영특한 아이로 보일 것이 자명했다. 어느 책이든 읽는다면 최근은 읽지 않는 아이들에게 본보기로서 내세우는게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책을 집고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던 책을 읽었었다. 재미가 들린 이후로는 딱히 그러지도 않았지만. 영리하다면 영리했고, 사악했다면 사악한 이유를 들어서 책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책, 같이 읽을래?" 이제는 여느 학생처럼, 책을 단순히 즐기는 학생에 불과했다. *** 마무리가 허술하네. 하핳. 다음 주제는, 음. "쉬는시간" 어떠려나.
쉬는시간 난 쉬는시간이 싫다- 수업시간은 수업에 집중할수 있어서 좋았고 내 질문에 대답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지만 쉬는시간에는 없다 엎드려서 자는것- 아니면 화장실을 다녀오는것 또는 다음시간의 책을 가져오는것 마지막으로 체육복으로 갈아입는거 정도 이게 내 쉬는시간에 하는일 대다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도 해보고 기지개를 한번 펴본다 어깨가 아프다 10분 정말 더럽다 싶을 정도로 안간다 점심시간은 잠이라도 푹잘수있어서 좋지만 쉬는시간은 아니야- 이따금씩 들려오는 내 별명과 웃음.. 예상이 간다 ————— 너무 네거티브하게 썻나;; 다음 주제는 ‘엄마’ 잘부탁해
그녀의 손은 나보다 2도 높았었다. 그래서 시도때도 없이 손을 잡았다. 화로를 연상케하는 온도가 참 좋았다. 고작 2도 차이인데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더라. 그런데 엄마, 다시 만져보니 내가 더 높네. 겨울 때문일 거야, 엄마가 누워만 있어서, 활동을 안 해서 그럴거야. 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래도 난 언제나 엄마 곁에 가서 손을 잡는다. 어떻게든 최후의 불꽃만큼은 지켜내겠다는 대장장이의 심정으로 열심히 풀무질 한다. 이젠 내가 온도를 나눠줄게. 엄마가 2도를 되찾을 때까지 나는 오늘도 화롯불이 될게. 다음 주제는 '기적'이에용.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시야가 뿌옇고,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는다. '얼마나 잔거지...' 핸드폰 전원을 켜 시간을 확인한다. 이틀 하고도 4시간 반이 지났다. 수면제를 삼십 알 넘게 삼켰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벽을 짚고 겨우 일어난다. 세상이 어지럽지만 쓰러질 정도는 아니다. 염병, 이틀만에 일어났더니 배가 고프다. 얼마나 있더라, 입고 있던 츄리닝 주머니를 뒤쳐 삼천 얼마를 찾아낸다. '젠장, 담배는 못사겠군.' 배가 요동친다. '그래 그래, 지금 편의점 가고있다, 시발것아.' 끈 한 쪽이 떨어진 슬리퍼를 찍찍 끌며 골목길로 향한다. "기적이에요." 몇년 만에 나타난 망할 옛 와이프는 그렇게 말했다. 낡은 수건 몇 장에 애를 싸고, 내게 보여준 그 아이는 태어나고 며칠되지 않은 아직 손과 얼굴에 주름 몇 개가 남아있는. "아이 이름을 기적이라고 지었어요. 이기적." "시발, 내가 만든 새끼도 아닌데, 어쩌란 말이야." 히뿌연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아 염병 담배도 몇 개 남지 않았는데. 빈 속이라 더 담배가 쎄다. 그녀는 행여 담배연기가 아이에게 해가 갈까 아기를 가슴 속에 안으면서 말을 계속했다. "만든 놈은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는 다음날 사라졌어. 나는 이제 3개월 남은 몸이야. 당신이 없으면 이 아이는 죽어. 이 아이에게 살 수 있다는 기적을 보여줘. 나는 그것만 있으면 편히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나에게 온 것부터가 이 새끼의 기적은 끝났어.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너보다 먼저 죽어있을거다." 아이를 부둥켜 안은 시커먼 여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뒤로 한채, 나는 연신 시발, 시발만 뱉어내며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다음 키워드는 의자에요.
주인님이 오늘따라 이상하다. 평소같으면 내게 기대 식사를 하시거나 커피한잔에 독서를 즐기시는 분이신데 오늘따라 초조해 보이신다. 연신 피우는 줄담배에 기침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전화로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윽박을 지르기도 하고 울며 사정하기도 하고 체념한듯 헛웃음을 지으며 웃기도 한다. 주인님을 보고있자니 왠지 모르게 1인 가면 무도회를 보는것 같았다. 한사람이 가면을 쓰면서 인격을 바꿔가며 무대를 이어나가는 가면 무도회. 누군가가 집문을 두드린다. 주인님이 문을 열자 사람들이 들어와 집안 곳곳에 붉은 스티커를 붙인다. 내게도 그걸 붙였는데 뭐라고 쓰여져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색깔이 참 곱고 예뻤다. 하지만 하나씩 붙을때마다 주인님의 표정은 점점 침통해지고 비참해져만 갔다. 주인님이 슬퍼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내 마음도 찢어졌다. 몇시간뒤 주인님은 정장을 입고계셨다. 처음보는 넥타이를 가볍게 어루만지다가 옷매무세를 갖춘다. 어디 좋은곳에 가시려는 모양이다. 주인님은 나를 밟고 섰다. 아..! 이 장면 본적이있다. 새가 날아갈때 바위나 절벽 또는 나뭇가지위에 서서 박차고 날아가는 모습. 우리 주인님이 새가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가는걸 본다는것만으로 나는 기뻤다. 곧 주인님의 발이 나를 박차자 큰소리를 내며 내가 넘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기뻤다. 주인님이 공중에서 힘찬 도약을 하고있었다. 어찌나 기쁘하시는지 발을 휘저으시며 날고계셨다. 주인님은 이제 새가되어 하늘을 날고있다. 날 써주는 사람이 이제 없다는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난 새가 된 주인님의 마음만은 영원히 함께할것같았다. 사랑해요 주인님. 그리고 날 써주셔서 감사했어요. 다음소재는 장갑입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된 날 나는 어느 동네 놀이터 그네에 앉아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평균 이하고 잘 하는 것 하나 없고 친구도...... 없었다. 아이들이 서로 방학 잘 지내라며 인사하고 까불 때 나는 묵묵히 학교를 빠져나왔다. 홀가분하면서도 우울해서 집에 바로 가지 않고 늘 가던 하교길에서 벗어나 놀이터를 찾아왔다. 코를 훌쩍이며 그네를 흔들고 있는데 그림자가 다가왔다. 고개를 드니 낯선 어른이었다. 학생 지금 몇시지? 세 시 삽십이분이요. 나는 폰을 꺼내 확인하고 말했다. 폰을 두고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발로 흙을 문대며 그 어른이 가기를 기다렸는데 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불편해서 발에 시선을 집중하며 생각했다. 시간 알려줬잖아, 이제 가버려. 하도 안 가길래 내가 일어설까도 생각했지만 워낙 소심해서 몸이 굳어버렸다. 그때 그 어른이 입을 열었다. 학생, 이 장갑 줄까? 손이 시러워 보이는데. 아뇨. 사양말고, 자. 손이 빨갛네. 모르는 사람한테 뭔가를 받기가 싫어서 용기를 끌어모아 자리에서 일어서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그 어른이 내 무릎에 장갑을 두었다. 내가 돌려주려고 하자 그 어른은 웃더니 말했다. 사양하지 말아. 사실 말이지, 그 장갑을 끼면 뭐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 그러면서 그 어른은 성큼성큼 가버렸다. 나는 그네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서 뒷모습을 바라봤다. 손에는 장갑의 맨들맨들하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가죽장갑이었다. 이런 걸 내가 써도 되나. 손에 끼워봤다. 딱 맞았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부터 장갑은 내 제2의 피부가 되었다. 어쩐지 장갑을 끼면 혼자라는 느낌은 사라지고 왠지모를 밝은 기운이 솟아났다. 공부할 때도 산책할 때도 심부름 갈 때도 언제나 끼고 다녔다. 도서관에서도 꼈는데 사람들이 흘금거리며 쳐다봐도 개의치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같은 반 아이 둘이 걸어가는게 보였다. 전에 같으면 고개를 푹 숙이고 못봇 체 하며 갔을 텐데, 나도 모르게 장갑 낀 손을 번쩍 들고 인사를 했다. 좀 놀란 아이들이 이내 반갑게 인사해주었다. 그 뿐이었지만 내겐 놀라운 변화였다. 겨울방학 내내 장갑과 함께 하면서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과제도 미리 끝내고 추운 날씨에도 나가서 운동을 했다. 그 덕 분인가 학년이 올라서 본 첫 시험에서 등수가 확 올랐다. 몸도 튼튼해져서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과도 적당히 인사도 하고 수학문제도 같이 풀고 가끔 농담도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같이 점심도 먹게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장갑을 낄 수 없어서 가방에 넣어 두지만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갑을 꼈다. 날씨가 많이 풀렸지만 털장갑이 아니라 가죽장갑이라서 보기에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학년이 오르고 처음으로 엄마한테 혼났다. 여름방학 때였다. 내 손이 짓무른 걸 엄마한테 들켰다. 이 더운 날씨에 장갑을 끼고 있으니까 그런 거라며 당장 갖다 버리라고 했다. 엄마는 내 손에 약을 발라 주셨다. 장갑은 너덜너덜했다. 가죽소재를 다루는 법을 몰랐던 나는 더러워지자 물로 빨았다. 갈라져서 가루가 떨어지는 장갑을 나는 절대 버릴 수 없었다. 엄마한테는 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한테 받은 선물이라고 해두었다. 엄마는 선물받은 걸 소중히하는 건 좋지만 너무 낡았다며 새로 사줄 테니까 버리라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이 더위에 무슨 장갑이야. 당장 갖다 버려.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이 장갑이 없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작년 겨울 방학이 시작됐을 때 왜 집으로 곧장 오지 않고 남의 동네 놀이터에 갔었는지 어떻게 설명하겠나. 낯선 어른에게 이 장갑을 받았다고, 이 장갑을 끼면 뭐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고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나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고 그 때문에 엄마한테 더 혼났다. 결국 장갑을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졌다. 장갑 생각에 잠을 못 이루던 나는 한밤중 몰래 나갔다. 후래시 불빛에 의지해 봉투를 하나하나 뜯다가 경비아저씨한테 걸려서 결국 집으로 전화가 갔다. 한바탕 난리가 가라앉고 나서, 또 한번 울고 나서야 나는 울먹이며 엄마에게 그 겨울날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 진작에 말했으면 좋았겠지만 그제야 입이 터졌다. 나를 토닥이던 엄마가 물었다. 학교에선 안 꼈다며? 응. 근데. 응? 장갑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거잖아. 공부도, 친구 사귀는 것도. 그런가? 그럼. 그럴까? 응. 다음날은 좀 우울했다. 하지만 점점 진정되었다. 엄마의 재촉에 피부과 병원에 갔다와서는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해봤다. 손이 허전했지만 그뿐이었다.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평소처럼 시덥잖은 농담을 좀 하고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장갑이 없이도 잘 해나갈 수 있을거 같았다. 그 장갑을 끼면 뭐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 그때 그 어른이 한 말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 어른은 내게 거짓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의기소침하게 혼자 그네를 밀고 있는 내게 마침 갖고 있던 가죽장갑을 내밀며 희망을 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거짓말이 먹혀들었다. 그 추운 겨울 내 손을 감쌌던 가죽장갑은 유난히 따뜻하고 멋있었고 뭐든 해볼 용기를 주었다. 속으로 그 이름도 모르고 얼굴고 가물가물한 어른에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계속 공부도 잘 했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내 평생 이렇게 즐거운 한 해는 처음이었다. 겨울방학이 되었을 때 엄마가 내게 새 가죽장갑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고마워. 근데 가죽장갑 없이도 잘 하는데 뭐. 날씨 추워졌으니까 껴. 어. 새 가죽장갑을 껴봤다. 안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엄마의 성의를 생각해서 엄마가 볼 때 가끔 끼었지만 나는 그 장갑을 최대한 끼지 않고 아꼈다. 겨울이 가면 잘 보관해 둘 것이다. 보관해 두었다가 어른이 되면 겨울에 주머니에 넣고 다닐 것이다. 그러다 어떤 아이가 의기소침해서 텅 빈 놀이터나 공터에 혼자 앉아 있으면 다가가 별 시덥잖은 질문을 던지며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이 장갑을 건네줄 생각이다. 그 장갑을 끼면 뭐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 아이고~ 너무 길게 써버렸네. 다음 소재는 시계방 아저씨.
나는 시계방 아저씨다. 뭐 그 외엔 나를 설명할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시계를 좋아했고, 돌잔치 때 잡은 것도 어떤 좋은 시계를 찬 아저씨가 재미로 놔둔 시계를 골랐다고 한다. 그래서 좋아하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늘 시계에 관심이 있었고 아빠한테 매일같이 졸라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첫 카시오 시계를 살 수 있었다. 정말 행복했다. 시간을 확인하는 일도 그와 동시에 시계를 보는 시간이 흐뭇했다. 그러면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굉장히 정확한 성격이 되었다. 모든지 내 시계의 시간을 기준으로 계획을 짜곤 했다. 습관처럼 시계를 보다보니 몸까지 시계가 된 건지 배꼽시계보다 더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는 능력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약속시간을 나는 굉장히 소중히 하는 사람이 되었고,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런 성격은 사회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시계방 아저씨가 되기 전까지 꽤 이름있는 기업의 차장으로 있었다. 하지만 뭔가 늘 과제를 끝마치는 느낌이 싫어서 퇴사를 하고, 내가 뭘 제일 좋아하나 생각해보니 답은 시계를 보고있는 내 눈이 알려주었다. 아 나는 시계를 좋아하는 구나. 그 때부터 번 모든 돈을 들여서 시계를 샀고, 여러가지 자격증도 땄다. 시계를 좋아만했지 자격증도 따야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여차저차해서 3년이란 시간이 지나고서야 나는 시계방을 차릴 수 있었고, 약간은 영화 아저씨에 나오는 전당포하는 아저씨같은 가계를 만들었다. 만족스러웠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물건과 함께 인 것이. 나는 평범한 시계방 아저씨지만 내 시계들은 특별하다. 시계야 말로 내가 되고자 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소재는 '도서관'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은 삼촌의 집에 있었다. 그는 졸부였고 책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일찍 죽은 자신의 아내의 취미를 동경했기 때문에 그녀가 죽은 이후 집 안에 도서관과 비교될 만한 서재를 만들었다. 새로 시공한 넓은 실내의 삼층 전부를 차지한 책장은 어딘가 으스스할 정도로 골동품이었다. 이것 또한 삼촌이 아내를 따라 흠모했던 것이다. 그 안에는 동화책이나 청소년 소설, 현대 외국 서적은 물론 라틴어로 적힌 책이나 고전 작품들이 꽂혀 있었는데 저명한 작가들의 책부터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좋아했던 삼류 작가들의 책까지 뒤죽박죽 꽂혀져 있었다. 삼촌이 새로 산 책도 있었으나 그녀가 죽기 전 그녀의 작은 서재에 있었던 책들도 있었다. 그곳을 자주 쓰는 건 주로 나였다. 어릴 적부터 엄마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삼촌과 꽤나 친했던 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삼촌의 집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었다. 커서는 도서관을 갔지만 가끔 추억 삼아 삼촌네 집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내가 그 곳을 유독 좋아하는 건 삼촌의 아내였던 숙모가 어릴 적 내게 다정하게 굴었던 일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하얗고 도도해 보이는 얼굴,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성격이었다. 피 하나 통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처음 그녀의 작은 서재에서 본 담배곽이라던가, 은색 파이프, 만년필, 온갖 그림과 회화 등 방 안을 구성하는 중후하고 빈티지한 것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먼지가 금빛으로 산란하는 곳에서 책을 읽는 그녀의 얼굴이 날 향해 우아하게 웃던 모습, 동화책이나 내가 직접 고른 책을 읽어주던 음성이 나를 안온하게 했다. 또한 커가면서 점차 알아챈 그녀의 우울도 내게는 미의 일종이 되었다. 다음 소재는 "손"
서른 살 그는 손이 없다. 예닐곱 살 쯤 되었을 무렵에 골목길에서 공놀이를 하던 것이 화근이 되어 그만 교통사고로 양 손을 모두 잃게 된 것이었다. 워낙 어릴 때 있었던 일인지라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없어서 그저 원래 없다, 생각하고 산다. 서른 살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다리가 불편하다. 휠체어 없이는 벽을 짚고 근근히 움직인다. 서른 살 그는 일용직에 종사하고 있다. 손이 없어 다소 불편한 점은 있어도 일은 잘 해낸다. 그녀는 장애인 교육 센터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최근 들어 그녀가 직장 일을 힘들어 한다. 강사 숫자가 부족한 탓에 많은 사람을 홀로 감당하려니 스트레스가 소리 없이 쌓여 가는 듯 했다. 더군다나 요즘따라 그녀는 다리가 불편한 것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드는 것 같았다. 한때 운동선수를 꿈꾸었던 사람이니 운동이 하고 싶은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따라 그녀가 더 불안해 보였다. 서른 살 그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나 정말 뛰고 싶어. 당신은 다리가 멀쩡하잖아. 나도 차라리 손이 없었으면 좋겠어. 당신처럼 손만 없었다면, 다리가 아니라 손이 마비됐다면- "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미안했다. 위로하려는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 것 같았다. 그저 다리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있어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줄은. 그는 등 돌린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 그러나 서른 살 그는 그녀의 왜소한 어깨를 감싸안을 수가 없다. 서른 살 그에게는 움츠린 등을 토닥여 줄 두 손이 없다. 멍청한 새끼. 등신같은 놈. 서른 살 그는 이십 여 년 만에 처음으로 간절하게 손이 갖고 싶다.
>>105 다음 소재를 안 썼네.. 다음 소재는 발바닥
그는 가끔씩 내 발바닥을 쳐다본다. 물끄러미 또 집요하게. 나는 묻는다. 왜 그렇게 쳐다보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고 웃는다. 그런 그의 행동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사고를 당했다. 내 두 다리는 망가졌고, 발레리나였던 나는 더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울었고, 그도 울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내 다리는 물론, 발바닥도 쳐다보지 않게되었다. 나는 물었다. 왜 쳐다보지 않느냐고. 그는 역시 웃었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는건가 싶어 시선을 돌리는데 어쩐지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내가 울자 그는 크게 당황하며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내 눈물을 쉽게 그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 쳐다보지 않느냐고, 내 못생긴 발바닥이 쓸모가 없어졌으니 이제 쳐다볼 가치도 없어진 거냐고. 그러자 그는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도, 지금도 너를 위해 희생한 네 발은 너무 아름다워." 그가 나의 볼품없는 발바닥을 쓰다듬었다. 그동안 혹사당해 뒤틀린 못난 발은 그의 손에서 소중히 쓰다듬어졌다. "아름다워." 나는 울었고, 그는 웃었다. 급 찌통물로 변신시키기 ㅋㅋ 다음 소재는
더운 날씨다. 상당히 덥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차가운 물을 물통에 담으려 자리에서 일어선다. 정수기는... 제 1영업팀 바로 옆이였던가. 물통의 새겨져 있는 이름을 만지작거린다. '이가온'.벌써 7년 전의 이야기다. 한창 더울 때. 지금같은 날의 여름에, 우리가 만났을 때, 나는 전학생이었다. "어.... 가평에서 전학온 하시운이라고 해. 잘 지내자." 아이들이 수군거린다. 이런건 역시 싫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을 때쯤 선생님이 자리를 지정해주셨다.길고 길게 느껴졌던 자기소개 시간이 지나고, 나는 교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자리에 앉는다. '안녕! 난 이가온이야. 잘 지내보자!' 자리에 앉자 옆의 여자아이가 귓속말로 말을 걸어온다. 짝은 검은색 장발의 여자아이. 활발한 분위기다. 딱 보니 인기가 많은 스타일이다. 솔직히 말해 상당히 예뻐서, 나도 모르게 첫만남인데도 넋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 '아... 아니야. 잘부탁해. 나는 아까 들었다시피 하시운이야.' 그런 나의 모습에 배시시 웃으며 '뭐야~' 라고 말하는 너. 그런 너의 모습에 저절로 우리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게 된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어느새 학교에서 절친으로 떠오르게 된다. 조금은 사귄다고 의심하는 아이들의 의혹을 받으며. 그 또한 웃어넘기면서, 동시에 너를 의식하면서. 그날 밤, 나는 너와 단둘이 만나게 된다. 소년의 설레임을 마음에 담아두며 나갔던 약속장소에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있었던, 그 어느때보다 예뻐보였던, 그리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었던 네가 있었다. 그리고 너는 말하겠지. '나... 이사가...' '...뭐?' '아버지 일 때문에... 급하게... 내일 바로...' 항상 밝았던 너의 목소리는 힘없게 들렸다. 할말을 잃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안타까워서, 네가.... 가지 않기를 바라서. 당황한 눈으로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이미 울고있었다. 자신이 울고있는 것 조차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우리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진 두 개의 노란 물병을 건네며. '이거... 마지막 선물이니까...' '...' '계속... 가지고 있어줄거지..?' 간신히 물병을 손으로 받아든다. 어느새 내 눈가도 촉촉해져 있었다. 목이 메인듯한 느낌을 받으며 간신히 몇마디를 한다. '고마워. 잘가.' 그 말을 들은 넌 미소를 짓고는 이쪽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그리고 눈치챘을때 나는.... 첫키스를 하고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너의 모습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하였다. 네가 적어준 주소로 가봐도 이미 또 다른 곳으로 이사갔다고만 할 뿐. 회상이 끝났다. 나는 어느새 정수기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정수기 앞에서는 너를 생각나게 하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가 노란 물통에 물을 받고 있었다. 명찰을 봤다. 신입사원...... "이가온?" "....하시운?" 너가 나를 보았다. 나도 너를 보았다. 우리는 서로를 보았다. 물통은 드디어 나머지 반쪽을 찾았다. 우리도였다. 우리가 만났을 때는, 아주 더운 여름이었다. 좀 길게 썼네... 재밌다... 다음 주제는 '기차'
바닥에 주저 앉아, 아득히 뻗어나간 철길을 망망연히 보았다. 선로에 귀를 대었더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네가 영영 떠나가버린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로에 손을 때질 못했다. 아주 미약한 진동이나마 느껴지면 그게 네가 아직은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다는걸 확인시켜 줄 것 같아서. 차가워지는 바람에 이가 딱딱 맞부딪힌다. 저 궤로가 중간에 끊겨버렸으면. 기차의 엔진이 원인도 모르게 아예 멎어 버렸으면......철길은 끝이 없고 기찻길을 따라 점점 멀어지는 너의 냄새가 아예 없어질까봐 겁이 났다. 애처럼 엉엉 울었다가, 짐짓 무던한 척도 해봤다가, 궤도를 따라가 보려고 일어났다가, 포기하고 다시 앉았다가. 널 뺏어간 철길이 야속하기만 했다. 나는 내 심장을 가로지르는 철길을 떠나지 못했다. 비릿한 피냄새가 몸에 배도록 꼭 껴안을 수 밖에 없었다. 바람이 세지고 덩달아 날카로워지는 바람소리에 혹시나 들려올지도 모르는 기차 소리 마저 듣지 못하게 되니,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너를 실은 기차에 몸을 던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다 내 머리칼을 파고드는 바람이 네가 떠나간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만약 그렇다면 기차 소리를 듣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하는 말이 바람을 타고 너에게 가기라도 할테니. 나는 울음을 그치고 목이 쉬도록 외쳤다. 넌 어디쯤 있냐고. 하지만 넌 분명 그렇게 말하겠지. 기차 소리 때문에 못 들었어. 너무 정신없이 써서 글이 엉망이야 ㅋㅋ큐ㅠㅠ 다음 주제는 [익사] 어때?
눈 앞에 아득히 멀어져가는 하아얀 빛을 보며, 그저 생각하였다. 아, 내가 물에 빠지고 있구나. 죽는다는 것에 아무런 감흥도 들지 않았다. 다만, 이런 순간에서야 어릴적의 기억들이 떠오른다는 것이 혐오스러웠다. 만약 내가 물에서 빠져 나갈 수 있다면, 동생에게 더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언니에게 다음에 함께 노래방을 가자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그 사람, 누구였더라. 내 마지막까지 따라붙었던 그 사람이 기억나지 않았다. 망할, 끝까지 도움조차도 안되는 사람. 그 사람을 비웃을 거야, 라고. 단순하디 단순한, 어리석은 것을 생각한 순간ㅡ 나는 파랗고 또 파란 하늘속에 스며들어가는 착각을 하였다. _ 음 으음 다음 주제는..,,, 애증!
카페에서 담배를 태우는게 자유로왔던 2004년 7월 어느날. 그날은 유난히 소파 속으로 더 꺼지는것만 같았다. 서둘러 담배를 한개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튕겼다. 막힌 숨을 들이키듯 담배 한모금을 삼켰다 뱉어내니 먼저 카페를 나선 그녀가 유리창 너머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다 이내 돌아서 가버렸다. 그녀는 내가 담배를 태우는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담배 한개피 입에 물기 무섭게 아랫입술을 툭 내밀고 미운소릴 해댔는데. 담배를 물고 있는 내 모습에 저렇게 예쁜 얼굴로 작별인사를 하니 정말 이별이구나 실감이 난다. 남자가 생겼댔다. 오래 만난만큼 놓아주는것도 편하게 놓아주자 했다. 느닷없는 이별 통보에 반박도 하지 못했다. 아직 널 사랑한다고도 말하지 못하였다. 그녀를 허무하게 보낸 그 해 여름을 나는 사랑하고 또 증오하였다. *수제비
형이 늦는다. 밥이나 차려놓으라던, 그런 퉁명스러운 말을 하면서도 올때 아이스크림을 사가겠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해주던 형이 늦는다. 괜히 걱정되어 전화해보지만 부재중을 알리는 음성만이 전화기에서 들려올 뿐이었다. 수제비를 해놨는데. 형이 좋아하는 수제비를 해놨는데. 어째서 오지 않는 걸까. 이미 수제비는 차갑게 식어버린지 오래. 벌써 새벽 1시다. 왜 이럴까. 아무 이유 없이 늦는 형이 아닌데. 자꾸 올라오는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려 방을 이리저리 걸어다닌다. 새벽 3시. 형의 직장에도 전화를 걸어보고 형의 여자친구에게도 문자를 넣어보았지만 답은 오지 않는다. 포기하고 잠을 자려던 순간 전화기에서 벨소리가 울린다. "네 ...입니다." "아... 저 ...씨 동생분 맞으신가요?" 전화기에서 낯선 음성이 들린다. "맞습니다. 무슨일이시죠." "경찰입니다." 경찰이라는 말이 조금 불안해짐과 동시에 안도감이 든다. 누구랑 싸운 걸까. 아니면 술먹고 길에서 잔 걸수도. 이런 저런 추측을 하던 중 이어진 경찰의 말이 이어진다. 그래서- "뭐라고요?" 툭. 핸드폰이 떨어진다. 물건을 놓친 손은 단지 허공을 맴돈다. 핸드폰에서 나는 소리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 시계는 계속해서 흘러간다. 내 시간은 멈추었다. 밖에서는 새가 지저귀기 시작한다. 나에겐 소음일 뿐이다. 새벽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활기차다. 나에겐, 더 이상-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수제비가 담긴 그릇에 고정된다. 이내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걸어가 한숟가락 떠먹어본다. 놀랍게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휭설수설했나. 새벽이라... 다음 주제는 '우주'
본인의 뱃속에서 발길질을 해도 그저 기쁘해주시던 그대. 응애 하고 태어났을뿐이었는데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시던 그대. 두발로 일어나 걸었을뿐이었지만 박수치며 기뻐하시던 그대. 받아쓰기 만점을 받자 천재라며 칭찬해주시던 그대. 사춘기에 접어들며 일탈행위를 해도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주시던 그대. 하지도 않았던 공부타령을 하며 온갖 응석과 반항을 그저 가여운 눈으로 나를 보듬어 주신 그대. 대학에 합격하자 나보다 더 기뻐해주셨던 그대. 군대간다는 말에 울며 나를 보내셨던 그대. 취업전선에서 힘들어 하며 포기를 생각할때 동기부여로 유일한 아군이 되어주셨던 그대. 이제는 더 이상 내앞에 없는 그대. 밤하늘에 모든 별을 품어 나를 빛낸 그대여. 그 어떤 은하수보다 아름답고 여명과 황혼보다 더 빛나는 그대여. 어머니라는 이름의 우주. 오늘따라 별 한점없이 흐린 밤하늘이 야속하기만 하다. *다음 주제는 장갑입니다.
그 날은 추운 겨울이었다. 당신은 손이 차가운 사람이었고, 나는 손이 따듯한 사람이었다. 당신과 길을 걸을 때면 나는 늘 손을 잡아주는 게 일상이었다. "당신 손은 늘 따듯하네요." 하고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그 후론 줄곧 미적지근한 손을 억지로라도 따듯하게 데우려 입김을 후후 불었다. 따듯하지 않으면 당신의 손을 잡아주는 의미가 없어질까, 아니 실은, 손을 잡을 명분이 사라질까 안절부절 했던 것 같다. "장갑이라도 살까봐." 따듯했던 나와 당신의 손이 만나 미지근해 질때면 당신은 늘 나에게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손 잡아주면 되는데. '손 잡는 게 더 좋은데.' 하지만 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당신은 날 무뚝뚝하다며 입을 비죽 내밀곤 했다. 그런 당신이 귀여워 더 말을 않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거 봐, 예쁘지?" 결국 당신은 민트색 벙어리 장갑을 사서 내게 자랑을 했고, 내게 이제 손이 시렵지 않을 거라며 좋아했다. 그 때는 그 모습이 그렇게 귀여웠다. 비록 직접 온기를 느낄 수는 없지만, 벙어리 장갑을 꼈음에도 내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손을 가진 당신이. "딸, 장갑 껴야지." 당신은 딸의 손을 감싸준다. 당신은 알까. 작은 딸아이가 자신을 닮아 손이 차다며 분홍색 장갑을 사주는 당신이, 그 작은 손에 장갑을 끼워주며 귀엽다고 딸아이를 보고 배시시 웃는 당신이, 내겐 더 귀여워 보인 다는 것을. 딸 아이와 함께 장갑을 낀 채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가 연애할 때 잡았던 당신의 손과 나의 손을 맞잡으며 온도를 맞춰가던 그 때가. >>우와 어려워. 마지막에 갈수록 흐지부지 되는 느낌이라 아쉽다. 다음 주제는 '혼밥' 이야!
혼자가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우울한 마음으로 책가방을 맨 채 집을 나섰다. 깜박거리는 가로등, 아침임에도 약간 어둑한 것 같은 회백색 거리. 어쩐지 으스스해서 무심결에 한숨이 나왔다.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나왔다. 벌써 겨울이 다가왔구나. 거리를 더듬듯이 걸어가다보니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사나운 노란 간판, 눈에 확 드러오는 화려한 글자들. 편의점이었다. 어둑한 거리에서 빛나는 그 모습이 뭔가 어색해서 살짝 망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하는 벨소리가 귓가를 때리는 것 같았다. 평소 자주 보는 편의점 알바와 시덥잖은 인삿말을 나누고는 선반에 놓여있던 샌드위치와 음료 하나를 고른 뒤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언제나 앉는 익숙한 자리에 앉아서 기계적으로 포장지를 뜯고 샌드위치를 입안에 우겨넣었다. 마지막으로 누구랑 같이 식사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아. 이제는 맛조차 외워버린 싸구려 샌드위치에서는 왠지 씁쓸한 맛이 나는 것 같은, 그런 착각이 들었다. 으에에, 왜 이리 글은 쓰기 어려운 걸까나. 누구 고쳐야 할 점 지적좀 해주지 않을래. 다음 주제는 '티비'야!
그 사람이 나를 보고있었다. 그 사람의 존재를 알게된것은 얼마전이었다. 평범하게 퇴근을 한 뒤에 집에 누워 tv를 켰더니 그 사람이 날 지켜보고있었다. 그 사람 역시 나처럼 매우 편안한 복장을 한 체 손에는 몇 모금 마신 맥주캔이 들려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 사람도 다가왔고 내가 멀어지자 그 사람도 멀어진다. 내가 울면 그 사람도 울었고 내가 기뻐하면 그 사람도 기뻐했다. 사람을 안만난지 꽤 됬지만 유독 그 사람은 미소가 아름다웠다. 그 사람에게 잘보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자신의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싶다며 약속장소와 날짜를 잡고 우린 헤어졌다. 몸을 만들며 스타일이라던가 평소에 신경쓰지않던 것들을 조금씩 바꾸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나 스스로 완벽하다는 생각을 하고 옷을 차려입은 뒤 약속장소로 향했다. 한적한 공원에는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를 주워먹는 비둘기와 젊은 연인 몇쌍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이다. 우린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지내왔던 것처럼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가졌고 다음에 볼것을 약속하며 서로의 번호를 교환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와서 문듯 깨달았다. 우리집에는 TV따위는 없었다. 이 일이 믿겨지지가 않아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받은 그 사람은 나와 정확히 똑같은 말을 동시에 했다. "오늘 내게 기적이 일어난것같아." *생각나는데로 막썼는데 우리집 구피가 써도 이것보단 잘쓰겠네 망할.. 다음 주제는 '옷걸이'야!
오늘도 어김없이 평범한 길거리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옷가게 직원들. 유명한 브랜드에 쓰는 인력들도 많아서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그중에 너는 없었다. 나는 무의식에 문을 열고 들어갔고 그때조차 네가 없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 옷이나 들어서 대충 거울을 보고 대보면서 사는 척하며 나는 그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당신이 있을까봐. "필요한것 있으세요?" 모르는 직원이 와서 물을때 나는 이 옷을 좀 본다고 둘러대곤 했다. 손은 자연스럽게 옷과 옷걸이를 분리해서 옷걸이는 아무대나 던져놓고는 나는 그 옷을 한번 더 몸에 대보았다. 사지도 않을 무의미한 행동. 단지 이곳에 조금이라도 오래 있으려고. "옷걸이 그렇게 막 던지면 안돼요" "옷이 빛나는것은 이런 부속품들이 있어서라구요. 그러니까 조금은 아껴주세요" 그때 너의 얼굴은 그 무엇보다 희망차고 행복해보였어. "손님, 손님?" 한 직원의 부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빠르게 그곳을 나왔다. 나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너를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네가 더 행복한 곳에 있기때문이라고, 적어도 이런곳에서 빠져나왔으면 더 행복해야한다고. 이런상황에서 조차 너의 행복을 비는 내가 참 원망스러워. 다음 주제는 낭만적인 키워드로 ㅎㅎ '불빛'
"아...오늘 버스 끊겼네." 대학에서 뒷풀이를 하고 집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오지 않아 핸드폰을 보니 시간은 새벽 1시. 할수없이 나는 힘 없는 발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진짜 술 적당히 마셔셔 다행이지. 석준오빠가 계속 마시라고 한거 계속 마셨으면 길거리에서 곯아 떨어졌겠네." 새벽이라 그런가? 터벅터벅 걸어가는 소리는 내 발걸음 밖에 소리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문닫은 가게들. 아무리 내가 둘러봐도 여는데는 없었다. 그런 가게들을 보면서 걷는 나는 왠지모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뭐야...갑자기 웬 눈물이야. 휴지도 없는데. " 갑자기 저 가게들이 내 심정에 이입되는 건 뭘까? 항상 사람과 대화하면서 느꼈다. 난 얘기하고 있지만 상대는 항상 문닫은 가게처럼 안 듣는다는 것. 항상 얘기해도 그 사람들은 '겉'으로 들어줄 뿐. 내 말을 들어주질 않았다. 그런데도 멍청하게 쓸때없이 눈치보고, 사소한 말에 신경쓰는...그런 내가 너무밉다. '진짜 나 왜 사냐...' 그렇게 자기비하를 하면서 집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우리동네는 주택가라 불빛이 잘 들지 않는 곳이였다.그런데 조금 멀리서 어느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이 보이는 곳을 쳐다보며 아직 켜져있는 데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거의 다 보였을 쯤에 그 불빛은 다름아닌 편의점이였다. "여기 편의점 새로 생겼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포스터 글 내용이 보였다. 딱 봐도 연예인이 나온 홍보용 포스터. 하지만 내용은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가는 내용이였다. '많이 힘들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그런데 그럴수록 더 강하게 단련해야 된다는 거. 이런분들을 위한 특별한 음료! 00샤워! 00샤워를 마시고 힘든 나를 샤워 하자!' 뭔가 절묘한 포스터라 생각했다. 마침 숙취 때문에 뭔가를 먹어야만 했던 나는 그렇게 편의점으로 들어가 음료수를 사서 계산을 하려고 했다. "이거 1+1원인데 하나만 계산 할까요?" "아뇨. 하나 더 가져올게요." 그렇게 계산 하고 있을 때 점원을 슬쩍 쳐다보았다. 상당히 밝아보이고 씩씩해 보이는 여자 점원이였다. 이런 야간에 여자 혼자서 한다니.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여기 새로 생겼어요?" "네~ 일주일 전에 새로 생겼어요." 인상이 좋아보였다. 싱글벙글한 모습으로 이렇게 힘든세상에도 꿋꿋하게 알바하며 계산하는 모습을 보니 저 점원의 성격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여기 주택가라 문 여는데가 저희 편의점 밖에 없더라고요. 참 재밌어요~" 정말 밝은 성격의 소유자구나. "일 때문이나 진상들로 힘들텐데 안 힘들어요?" "힘들죠~ 근데 그런 재미로 사는거죠. 이렇게 힘들맘큼 언젠가는 대박나겠지 하고요~" "아, 그렇구나..." "그리고 여기 사람들이 들어 올때 재밌어요. 다들 사람살기 다 갑갑한 모양이더라고요. 이런저런 얘기도 해주신 손님들도 있었구요." "요즘 세상이 다 그렇죠." "그래서 요즘 그런 분들 보면서 더 잘 대접해드리고 싶고 더 웃게되요." 웃으면서 현금 거스름돈을 주는 점원. 마음도 선량하고 옳곧다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성공할 것 같았다. 아니, 분명 성공할거야. "그래서 전 손님들이 나가실 때 더 크게 인사하려고 해요. 많이 힘들만큼 더 기운내라고요." "아, 하하.." "요즘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되고, 여기 치이고, 저기 치여도, 눈 딱 감고 참으면 언젠간 내가 편해질 날이오겠죠~" "그랬으면 좋겠네요." 방긋 웃으면서 올껄요? 하는 점원의 말을 듣고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편의점을 나와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나왔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던 걸까. 저렇게 세상을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 비교되었던 걸까. 나도 저렇게 살고 싶었고 언젠간 꽃밭이 열리는 순간이 올꺼라 생각했는데...언제부터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까. 점원의 말 한마디가 정곡을 찌른 기분이다. 나도 저 사람처럼 힘들어도 꿋꿋이 살아간다면. 분명 길이 열릴까? 지금까지 치인 관계들도 버텨낸다면 더 나은 길이 열릴지도....모르겠다...이런 생각하고 참 나도... 분명 난 힘들다. 지금도 힘들다. 그런데 왜일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이 험한 세상에 불빛같은 느낌. 새벽에 다 닫힌 가게에서 불빛처럼 환하게 켜진 편의점을 보고 조금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점원. 말 참 잘하네. 사람으로 태어난거 힘들긴 해도 한번 끝까지 살아봐야겠지." 아마 난 저 편의점을 자주 갈 것 같다. 어두운 새벽에 길 잃었을 때 저 편의점의 불빛을 보고 길을 찾을 수 있게. . . . 다음은 코미디로 감당~
코미디, 그래, 희극. 희극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밝게 웃으며 막을 내리지만, 너와 나는 그렇지 않았다. 비극적인 눈물을 샘에 담은 니가 차디 차고 울먹이는 목소리를 뿜을 때면, 그 목소리가 내 폐부 깊숙히를 찍어눌러 결국 내 생을 종결 하는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를 만나지 않았다. 너를 만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지만, 어리석은 머리는 너를 만날 수 있는다 해도 다시 눈을 감아 환상을 청하기를 요청할 뿐 이었다. "...헤어지자." 호환마마 같은 천둥번개의 목소리, 가녀리지만 관능적인 니 입술이 나에게 고한다. 작은 희노애락이 목 끝 부터 내 귀까지, 끝을 모르는 사람들 처럼 불타게 사랑한 우리는 그 말로써 끝을 맺는다. "..응." 아쉽지만 나는 너를 붙잡을 형편이 안된다. 불우한 인생사에 너란 희극을 끼얹을 수는 없으니, 너를 그만 보낸다. 코미디 같고 희극의 반전을 더해 아름답고 찬란하였던 우리의 생의 종지부를 맺는다. 따뜻한 품결의 아름다움은 결국 멀어져 잊혀지고, 사랑의 찬란함을 숭배하던 나는 그저 죽어버릴 뿐이다. 내 안의 악령은 그저 욕망만을 태우며 사라져갔고, 나는 너란 가시에 묶인 채, 평생을 눈물짓는 밤을 보내며 살아 갈 것이다. 안녕, 나의 희극아. 주제에는 좀 안맞는거 같지만.. 휴 아래 주제는 장미!
`` 있잖아, 수소의 이온을 뭐라고 부르게? `` 라고 또 나타나 쓸데없는 질문만 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항상 장미꽃잎이 흩날리고 있다. 라고 표현해야 될까.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소장하고 싶어. 줄기를 꺾어 물이 가득 담긴 꽃병 안에다가 꽂아놓고 싶다. . . . `` 윽... 머리야...? `` 여긴 어디? 탈색을 한 듯한 흰 머리를 가진 여자가 입을 열었다. 어두운 방 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왠지 보기가 꺼려지는, 기분나쁜 곳. 역겨운 듯한 어둠밖에 느껴지지 않지만, 억지로 벽을 찾아 잡고 일어난다. 이내, `` 일어났네? `` 라고 어느 벽 밖에서 들리는 굵은 목소리. 그곳은 벽이 아니고, 문이라 생각된다. 열쇠구멍에 열쇠가 들어가고, 열쇠가 돌아가며, 찰칵. 하고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노란 듯 하얀 빛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주변에는 기분나쁜 어둠만이 있을 뿐. `` 백장미여, 이제 붉은 장미로 거듭나라, `` 라는 말을 끝으로, 여자의 가슴에는 날카롭고, 예리한 칼이 꽂힌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서서히 다가가 칼을 뽑고, 칼에 의해 생긴 구멍으로 피가 솟구친다. `` 으윽.. `` 의식이 희미해지고, 어지럽다. 칼에 찔렸기 때문, 이려나. 여자의 흰 머리가 피로 붉게 물들어가고, 털썩. 쓰러져버렸다. 그래도 출혈은 계속되어 여자의 정수리 쪽 까지 붉게 물들어버렸다. 이 광경을 보던 남자는, 만족한다는 듯이 씨익, 웃으며 `` 장미 한 송이 추가. `` 라는 말을 남긴 채 그 방을 떠났다. 소설은 난생 처음써봐 너무 어려워ㅜㅜ 다음 주제는, 부엌!
나의 아내는 며칠 전, 살해당했다. 그것도 처참하게 난도질 당해서. 범인은 택배기사인 척 들어와 아내에게 성관계를 시도하려다 계속 저항하자 화가 나 우발적으로 죽였다고 했다. 하. 우발적. 그래. 그 때의 집 안은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걸 보여주듯이 매우 처참하였다. 내가 발견한 뒤 곧바로 경찰들이 몰려와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히 느껴졌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냄비와 썩은내 사이에서 미미하게 느껴지던 향. 분명 아내는 그 날 저녁 메뉴일 뻔 했던 순두부찌개를 끓이고 있었을 것이다. 처참하게 깨진 화분, 내 와인들, 아내가 아끼던 유리잔부터 장식품들까지. 다 아끼던 물건이였는데. 분명 저것들이라도 던져서 막으려고 했겠지. 부엌 여기저기 흩뿌려지고 끌린 듯한 혈흔....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머릿속에 계속해서 밀려들어왔다. 겁에 질려 물건을 던지며 소리치는 아내를 쓰레기 같은 자식이 미친듯이 칼로 찔러대는 장면말이다. 꿈에서도 나왔고, 집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나왔고,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머릿속에서 불쑥불쑥 떠올랐다. 항상 아내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살려달라고, 도와주라고. 그건 날 더욱 괴롭게 하였다. 결혼식 당일의 꿈을 꾸었다. 그 때의 모든 감각들이 생생하게 느껴져 사실 아내가 죽은 것이 꿈이 아닐까 했었다. 나는 웃으며 하객들을 맞이했고, 입장할 차례가 되자 쿵쾅대는 제 심장소리를 들으며 제대로 걷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한 상태로 입장했다. 그 후 장인어른과 함께 새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는 아내는 다시 보아도 아름다워 반쯤 넋을 놓아 그 뒤에 있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잊을 수가 없는 얼굴을 한 쓰레기 같은 남자가 갑자기 칼을 들고 아내에게 달려가기 전 까지는. 내가 막기도 전에 그 날처럼 아내는 내 눈 앞에서 난도질 당했었다. 역한 시체 썩은내와 순두부 찌개 향이 섞인 그 날의 냄새가 나는 듯 하였다. 나는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처음 발견했던 날처럼 멍청하게 서 있을 뿐. 아내는 날 똑바로 쳐다본 채 쓰러져 있었다. 흐리멍텅하게 초점을 잃은 눈이였지만 그 눈은 어느때보다 날 또렷하게 쳐다보는 듯 했다. 원망의 눈빛인지 슬픔의 눈빛인지 알기도 전에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일어났다. 정말 끔찍한 꿈이다. 꿈에서 맡은 역겨운 냄새 때문인지 일어나자마자 구토가 쏠리는 감각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최근에 먹은게 없어 나는 그저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만 몇 번 하다가 입을 헹구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은 꿈 때문인지 헛구역질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한 뒤, 아내가 쓰러져 있던 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내 꼴을 아내가 본다면 엄청난 화난 표정으로 꼴이 이게 뭐냐면서 잔소리를 늘여놓다가 뭐든 먹이려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편식하는 당신이 더 잘 먹어야 한다며 티격태격하다 결국은 같이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고는 또 서로가 만든 게 맛없다며 티격태격 했을텐데.......... 라는 생각이 미치자마자 의식하기도 전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가없어. 장례식때도 다른사람들앞에서도 참아냈던눈물이한심하리만큼쉴새없이터져나왔다.미친듯이당신의이름을부르며미안하다고흐느꼈다. 한참을 꼴사납게 울었다. 이젠 너무 울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지듯 누웠다. 눈 앞이 희미해지는 듯 하였다. 희미해 진 시야의 끝에 당신이 있는 듯 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지었다. 잔소리 들을 각오를 하면서.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도 첨 써보는데 넘 어렵다..;; 사실 토할 때 부터 점점 띄어쓰기 제멋대로 해서 남자가 무너지고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읽을 때 힘들까봐 펑펑 울 때만 띄어쓰기 안 했는데 괜찮은건지 모루겠당...ㅎㅎㅋㅋㅋㅋㅋㅜㅜㅠ 다음 주제는 노트!
항상 밝게 지내던 지연이가 세상과 맞잡았던 손을 놓고 떠나버린지 1년. 나는 보잘것없는 내 고등학교 인생을 빛내주었던 지연이의 마지막을 조금이나마 정리하고자 했다. 그동안 많이 망설였었다. 내가 지금 찾아가도 되는걸까. 너무 늦은건 아닐까. 1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지연이와 이별을 하기가 두려웠던 나는 그 이별을 미루고 미뤘다. 얼마전 지연이가 내게 남겼다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들은 후에서야 겨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렇게 그 아이를 붙잡고 있는것보단 쿨하게 이별을 택하자. 말라버렸다 생각했던 눈물이 다시 터져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막고 지연이의 집으로 향했다. 지연이가 떠난 이후로 타지 않았던 17번 버스를 타고 익숙한 풍경들을 보다 내렸다. 내 앞에 보이는 익숙한 풍경. 그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열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는 이미 가버리고 없는데, 여기는 여전이 그대로구나. 너와 함께 장난치며 지나가던 이 거리도, 봄이면 활짝펴서 흩날리던 이 벚꽃나무도, 너의 집앞에서 헤어지길 싫어하며 서로를 꼭 안고는 했던 이 놀이터도 그대로였다. 지연이와의 추억이 막아놨던 둑을 뚫고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울지 않으려 했는데. 적어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려 한 오늘은 너에게 웃어주려 했는데. 또 다시 눈물을 흘려버렸다. 주머니에 접어두었던 손수건을 꺼내 조금이나마 진정시키려 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지연이의 어머니를 뵙는 날이였으니까. 겨우 진정을 한 후, 시계를 보자 벌써 1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지연이의 집 엘레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손이 떨렸다. 수십번이고 눌렸던 너의 집을 가는 버튼을 누르는 내 팔이, 무거웠다. 아니야. 오늘 이별하기로 했잖아. 스스로를 타박하며 버튼을 눌렀다. 띵- 침묵속에서 울려퍼지는 경쾌한 종소리에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몇 발짝만 더 디디면.. 무거워지는 다리를 들어 발걸음을 옮겼다. 띵동- 이번에도 팔이 무거웠다. 오늘 이별하기로 했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안되는데. 지연이의 어머니께 최대한 밝은 모습을 보이고자 표정관리를 했다. 나름의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열리는 문을 보며 심호흡했다. "안녕하세요." 1년전과는 달리 부쩍 피곤해보이는 지연이의 어머니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어머니께서는 별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지연이의 방으로 안내해주셨다. 못본새에 많이 여윈 어깨가 눈에 띄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괜히 내가 죄송스러웠다. "그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냐. 지금이라도 찾아줘서 고마워." 힘없이 미소를 지어보이는 지연이 어머니를 보며 또 한번 울컥했다. 이게 이렇게나 힘겨운 일이였나. "지연이가 남긴건 이거야." 어머니께서 건네주신건, 지연이와 내가 문구점에서 장난삼아 샀던 자물쇠가 잠긴 노트 한 권이였다. [지연이가 연보라색 자물쇠 노트를 손에 들었다. 분명 문구점을 구경하러 오긴 했지만, 이런걸 사러 온건 아닌데. "이거는 왜 사는거야?? 노트는 이거말고 많은데." "왜? 비밀스럽고 재밌지 않아?" "야, 고딩이 유치하게..차라리 이걸 사." 옆에 있던 파스텔톤의 줄공책을 건넸다. "왜애~이거 귀엽잖아!"] 하지만 지연이는 끝까지 거부했다. 분명 재밌을거라면서. 그리고 내게 열쇠 2개중 하나를 건냈다. 그냥 기념으로 가져라면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지연이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열쇠는 분명 그때 받아서 지갑에 넣어두었었다. 그냥 기념으로 가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연이는 이 날이 올거란 걸 예상한걸까. 그때의 지연이가 생각나 노트를 한번 손으로 쓸었다. 가방에서 지갑을 열어 기억속의 열쇠를 꺼내들었다. 딸깍. 가벼운 소리가 나며 잠겼던 자물쇠가 열렸다. 혹시나 잃어버릴까 자물쇠를 지연이의 책상위에 올려둔 후 의자에 앉았다. • • • 10일 간격으로 이상한 문자가 왔다는 기록이 있었다. 처음 이상한 문자가 왔다는 기록에 '또'라는 단어가 붙어있으니 처음이 아닌듯 했다. 나한테 이런말은 한번도 해준 적은 없었는데. 기록은 뒤로 갈수록 감정이 격해지는것 처럼 보였다. 계속 이상한 문자가 오더니, 이번에는 스토커가 따라붙었다는 내용이였다. 처음에는 다른 잡담이 적혀있었지만, 뒤에는 오로지 스토커와 문자에 대한 내용들 뿐이였다. 갈수록 심해지는 강도에 신고는 왜 하지 않았나 생각도 들었지만, 지연이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기록이 끝났다. 손이 떨려왔다. 2월 17일은..지연이가 죽은 날이였다. 지연이가 이걸 왜 나한테 남긴걸까. 내가 그 범인을 찾아주길 바라는걸까? 하지만 이걸 어쩌지..? 내가 이 기록의 주인공인데. 쓰다보니까 개판이다ㅋㅋㅋㅋ좀 차분하고 담담한 글을 원했건만 막판에ㅋㅋ결국 자폭함ㅋㅋㅋㅋ 이걸 읽을 다른 레스주들을 위해 풀이해보자면, 자신의 친구인 지연이 자살하게끔 만든건 '우연'이라고 칭해진 주인공이야. 그 이유는 단순히 지연이 싫어서일수도 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지연을 증오해서야. '우연'은 세상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흘러가는걸 보며 즐거워하는 소시오패스라고 볼 수 있어. 우연은 자신이 살아가던중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는데, 그게 지연이야. 우연이는 지연이와 겉으로는 친한척 하면서 스스로가 죽게끔 유도했어. 왜냐고? 증거가 안남으니까. 문자같은거도 자신의 폰이 아닌 대포폰(명의 등록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휴대전화) 여러개를 돌려가면서 보내는 완전범죄를 계획하지. 스토커인척 한것도 우연이인데, 문자만 보내서는 금방 끝나지 않을것 같아서 심적으로 더 몰아붙이기 위해서 그런거야. 노력끝에 우연이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지. 겉으로는 지연이와 가장 친한 친구였으니 아무것도 모른다고 모르쇠로 일관했어. 그런데 1년이나 지나서 남겨진 물건이 있다는걸 알게 된거야. 지연이가 뭐 때문에 자살했는지 알려지면 자신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증거인멸을 위해 지연이의 집을 찾은거야. 우연이가 묘사한 감정들은 다 평범한 사람인척 연기를 한거라 볼 수 있어. 그래야지 지연이의 어머니 앞에서 슬픈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 자신이 웃어보이면 안되잖아? 1년간 안찾아간건 당연히 고의야. 자기랑은 상관이 없었으니까. 역시 난 장편소설이 전공인듯..단편 쓰기 넘나 힘들다ㅋㅋㅋ또 궁금한거 있으면 레스 달아줘ㅎㅎ 살짝 막장인 감이 있지만..욕은 하지말고ㅋㅋ 다음주제 : 장미꽃 한송이
"안녕" 안녕 "보고싶어서" 나도 "일찍 온다는게 , 너무 늦었네" 아냐, 보고싶었어 "여기 너무 멀어. 버스가 일찍 끊기더라" 미안, 너무 멀리와있지 "보고싶었어" 나도. 보고싶었어 "이건 선물인데, 음... 그냥" 고마워 "너랑 안어울린다. 그래도 그냥 지금 우리가 이런거 같아서, 샀어" 알아. "내 마음 알지? 알면 좀 와라. 어떻게 한 번을 안오냐..." 미안, 그 동안 밀린 잠 자느라 바빴어 "알겠어. 기다린다 나?" 응 기다려 "갈께. 또 올꺼고" 사랑해 "잊지마, 나. 이건 여기 두고 간다" 몇 마디 안한 것 같은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너를 위해 사온, 아니 그냥 내 마음이 담겨진 그 선물은 너의 얼굴 옆에 가지런히 두고, 나는 이른 막차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파란 장미꽃 한 송이 너를 함께 손 잡고 걷는 기적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이라는 걸 잘 알기에.. 나는 네게 줄 수 있는 꽃이 고작 이 파란 장미꽃 한 송이 뿐이였더랬다. 다음 주제 '덕후'
살아간다는 것은 망한 게임을 억지로 플레이 하는 것과 같다. 고 생각하던 소년은 주저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털며 일어났다. 허연 콘크리트 먼지가 마른 건초를 도리깨로 두드린 마냥 뿌옇게 일어 퀴퀴한 호흡을 일으켰지만 괘념치 않고 그는 익숙하게 나동그라진 가방을 주워 어깨에 들쳐 매고 힘없이 털래 걸음을 옮겨 등나무 벤치 아래를 벗어난다. 오늘 하루는 꽤 완벽한 날이었다고 소년은 생각했었다. 시답잖은 장난에 휘말리는 일도 없었고 심부름도 별 트집 없이 넘어가서 점심시간 동안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교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제품만 산다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이다. 한달 3만원 남짓한 용돈을 6개월정도 모았더니 지갑이 부푼 식빵 같아 그의 마음도 한껏 부풀었건만.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되뇌어 보면 물밀듯이 생각이 머리를 덮쳐왔다. 냄새를 맡은 승냥이 무리 같던 놈들, 부리부리한 눈으로 위협하던 한수, 말리는 척하며 쿨해 보이려는 진태. 아니 점심시간에 행스와 우진이에게 자랑한 것이 잘못이었나, 자랑한 내 잘못인가. 나는 왜 지갑을 학교에 들고 갔을까, 바보인가 나는. 나는 되는 것이 없지. 너무 불공평한 거 아냐?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발끝에서부터 뜨뜻하고 저린 기분이 소년을 타고 올라간다. 잠깐 식었던 분노가 휴화산이 다시 끓듯 했지만 이미 가방을 힘껏 내동댕이 치기 위해 한껏 움직였던 터라 신체적으로 표출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가 걸음을 옮기며 할 수 있는 것은 저주를 머릿속으로 퍼붓는 것이 다였다. 연병장에 일렬종대로 세운 병사들이 번호 매기듯 한 사람 두 사람 생각의 끈을 붙잡고 올라간다. 교문을 나설 즈음에는 자기비하가 되어버렸지만 분을 풀기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속앓이 멈춘 것은 생각이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게 머뭇거려진 것이, 저도 모르게 옮긴 발걸음이 모형취미가게 앞에 도달한 것이 동시였을 때였다. 소년은 쇼윈도 너머 펼쳐진 환상향에 시선이 닿자 깊고 검게 타버린 한숨을 내 뱉었다. 더 이상 소년을 위한 거신의 로봇을, 불세출한 영웅과 오매불망 소년만 바랄 것 같은 소녀를 손에 넣을 돈이 없었기 때문에. 빌린다는 명목을 한 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15년 인생만으로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이런 불공평의 끝을 달리는 세상이 굴러가는지 이해 못 할 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이 있다면 이런 세상의 신을 무찔러 죽이고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소년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학교를 나선 것이 꽤 늦은 탓에 집에 들러 옷만 갈아 입고 학원을 가야 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살포시 짜증이 고개를 치켜 들었지만 그때 소년의 주의를 끌며 한 무리의 소녀가 꺅꺅대며 쇼윈도 앞에 다가왔다. 인근고등학교 여학생인듯한 3명의 소녀 무리는 쇼윈도 안에 있는 고양이모양 피겨를 유리라도 뚫어 만질듯한 기세로 손으로 찔러댄다. 연신 귀엽다는 감탄사가 터져 나오는 와중에 소년은 쇼윈도를 보는 척 그녀들의 대화에 귀를 세운다. 한 명이 그 고양이가 요괴로 만화에 나온다는 이야길 하고 한 명은 다른 한 명은 열심히 반응을 하며 일문일답하는 식의 대화였다. 별거 없는 대화지만 으레 그 나이대의 소년의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하이 톤의 목소리가 소년의 짜증을 누그러뜨리는듯했다. :”어휴, 십덕들” 그저 단순한 농담이었겠지만 귀를 찌르듯이 그 말이 소년에게 날아와 박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든 총알을 찾듯 그는 소녀무리를 흘긋 본다. 안중에도 없이 셋이서 깔깔대며 웃고 있는 그녀들을 향해 오늘 겪은 분노가 담긴 한마디 던져주고 싶은 기분에 휩싸인 소년은 그러나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쇼윈도에서 등을 돌릴 뿐이었다. 딱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역시 세상은 불공평함으로 가득하다고도 생각했다. =============== 다음 주제 '은방울꽃'
은방울 꽃 꽃말: 행복의 방문 후우.... 무미건조한 한숨을 조용히 내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매캐한 연기가 입사이로 물밀듯이 한꺼번에 빠져나왔다. 그렇게 빠져나온 역하면서도 진하고 익숙한 말보르의 담배 냄새는 잠시동안 주위를 뛰놀듯이 맴돌다.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런 담배연기를 흐리멍텅하게 응시하다, 필터에 제법 가까워져 짧아진 길이의 담배를 바닥에 툭 떨어트리고는 익숙하게 신발로 비벼껐다. 그러자, 담배는 막혀있던 소심한 비명이라도 내뱉는지, 작은 소리를 내고는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그라 들었다. "......." 무턱대고 독립을 하겠다고 패기롭게 집을 뛰쳐나온지 어느덧 반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도망이겠지만... 아무튼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뛰쳐나온 사람 답게, 생활은 엉망이었다. 식사는 매번 건너뛰고, 먹는다 하더라도 부실하거나 인스턴트 식품이 고작이었다. 밤에 먹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알콜로 만든 맑은 이슬들뿐... 그런 영향덕인지, 내 모습과 생활은 예전과는 다르게 꽤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후회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후회를 할 것이었다면 그 집을 이렇게 성급하게 도망쳐오지는 않았겠지. 아무튼 그건그렇고, 무심히 서서 바라보는 맑은 하늘이 오랜만에 참 밝았다. 해는 보석마냥 빛나고, 바람도 하늘도 정말 좋았다. 허나, 나는 그런 풍경을 보고도 섣불리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잘 알고 있기에 입을 더욱 다물었다 그렇게 멍한 눈으로 높은 하늘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는데,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크게 울기 시작했다. 뭐지?, 이 시간에 전화 올일은 없는데... 스팸인가?. 욕을 바가지로 퍼다줘야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서 계속해서 울고 있는 휴대전화를 가늘게 찌푸려진 눈으로 멀뚱히 응시하다, 일단 전화를 대충 받아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흘러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욕은 자동적으로 목구멍 뒤로 삼켜지며, 놀람 때문에 눈이 커졌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나의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 왜 갑자기 전화를 하신걸까? 어머니는 외국에 나가계셔서 일때문에 바쁘실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일단 빠르게 전화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안부를 묻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잔잔하게 흘러들어왔다. "여보세요, 아가니?" "....어머니...?" "다행이다. 우리아가, 잘 지내니?, 어디 아프지는 않고?" "....예, 저는 뭐 똑같죠...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다행이구나" 그나저나, 바쁘실텐데 무슨 일이세요?. 변동 없으면서도 작은 의문을 담은 나의 질문에, 어머니는 곱게 입을 여셨다. 으응, 그이랑 아버님이 거기에 계시잖니... 궁금해서... 나도 곧 일자리를 정리하고 그쪽으로 가려는데, 아직은 못가잖니?, 그래서 네 안부도 묻고 아버님이랑 그이 안부도 물을겸 전화했단다. 그것에 나는 속으로 작은 수긍을 보내왔다. 그렇게 작은 대화를 소소하게 이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가 말을 멈추시고는 다음말을 잇는 것을 머뭇거리기 시작하셨다. 그것에, 나는 속으로 물음표를 띄우다가, 조금씩 이어지는 어머니의 뒷말에 본능적으로 빠르게 표정이 굳어갔다. "....거기는 잘 찾아가니?..... 그 아이는 잘 있니?" ".......!" "...엄마라는 작자가, 내 아가가 있는 곳에는 한번도 가보질 않았구나.... 아가, 우리아가는 잘 있니?" "..............." "말은 걸어봤고?, 거기는 편하다고 하니?" "...어머니" "곧.... 그날이니까... 엄마도 곧 올거라고... 전해줄 수 있을까? " "..........." 미안하구나, 그럼 이만 끊을게... 사랑한다, 우리아가. 그런 말을 마지막으로 단번에 전화가 끊겼다. 뚜뚜뚜... 전화가 끊겼다는 특유의 기계음이 한참동안 길게 울려퍼졌지만, 나는 그 자세 그대로,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바보같이 서있기만 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시야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흐려졌다. 심장이 내려앉고, 무언가가 나의 목을 조르는 느낌이 온몸으로 생경하게 퍼져나갔다. 두 발은 돌 처럼 굳었고, 무언가가 스믈스믈 뱀처럼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말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절대 잊혀질 수 없는 낙인 같은 무거운 감각이었다. 그런 감각들에, 자동적으로 입안이 써졌다. '거기는 잘 찾아가니?' "......." 어머니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퍼지며 주먹에 자동적으로 힘이 실렸다. 제기랄.... 이유도 모르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쏟아져 나와, 본능적으로 아랫입술을 세게 짖이겼다. 기분이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이유는 역시나 잘 알고 있었기에 얼굴을 찡그리다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어머니의 말은 내가 더 잘알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유는 아까도 말했다 싶이, 도망쳤으니까... 그곳에서, '그 아이'에게서... 그것들은 내 책임이자, '죄'였다. 그래서 도망쳤고, 지금도 도망치고 있었다. 끝없이...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안다. 허나, 그것들이 너무도 아파서 그것들을 차마 마주할 용기가 나지않았다. 그래서 성급하게 집을 뛰쳐나와 자취라는 되도않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다시 자각하자, 심장이 극심하게 죄어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걸어가고 있는 두 다리를 점점 빠르게 굴렸다. 그래도 아파서 이제는 전속력으로 뜀박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쉬지않고 빠르게 달리길 한참...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풀릴 그 순간, 누군가와 꽤나 강하게 부딪혔다. 그것에 부딪힌 사람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것에 나는 놀라서 발을 얼른 멈추고, 그 사람에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죄송스럽게 안부를 물었다. 그것에 고통의 신음을 뱉으며 자신의 손으로 엉덩이를 살살 문지르던 이는, 짜증으로 인상을 벌컥쓰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놀란 토끼눈을 뜬체로 나를 부르며, 꽤나 당황스러워 했다. 그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씨이..... 어, 마루형님?!" "...하아...하아... 장..준혁?" "...헐, 형님이 여기에는 어쩐일이세요?!?!?!" "...글쎄...." 갑자기 찾아온 우연치 않은 만남에, 서로 당황하길 잠시... 그 당황감은 준혁이라는 아이의 특유의 분위기와 입담 덕에 금방 풀렸다. 그렇게 의도치않게 녀석의 동행길에 멍하니 함께 오르게 된 나는, 녀석의 시답지않은 이야기를 멍하니 들어주며, 같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문득 그 녀석 품에 고이 안긴 조금은 큰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준혁이에게 입을 열어 꽃다발의 정체를 물었다. 옆에서 얼핏보이는 꽃다발에는 여러가지 꽃이 예쁘게 꽂혀있었다. "갑자기 물어서 미안한데, 그 꽃다발은 뭐냐?. 어디 고백하러 가니?" "네?, 아 이거요?. '그 녀석' 만나러가요" "....어...?" "우리 5총사 중에서 가장 병신이었던 친구.... 제 절친이자 형님 '동생'인 미르녀석 만나러가요. 며칠있으면 기일인데, 그날은 시험 하루 전날이어서 못갈 것 같아서 미리보고 오려구요" "........" ㅡ욱씬... 준혁이의 뜻밖의 말에, 또다시 가슴께가 고통으로 차올랐다. 순간, 죽은 동생의 얼굴이 잔상처럼 떠오르다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형님도 보러 오신거죠, 그자식... 그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질문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듯 순간적인 얕은 발작이 일어났다. 그 발작에 반응하듯 반사적으로 조용하지만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미안, 나 일이 좀 있어서, 다음에 보자. 그것에 잠깐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는 준혁이었지만, 나는 말을 마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죽어라 달렸다. 그것에 준혁이는 내 이름을 급하게 불렀지만, 나는 들은체도 하지않고, 얼른 그곳에서 도망쳤다. 내 책임이자, 죄 인 인물... 미르...그아이는 나보다 여섯살 아래인 남동생이었다. 특출난 것 하나없고, 미술은 더럽게 못했던 평범한 아이였다. 특별한 것이라고는 어머니를 따라 푸른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엉뚱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사고를 치고 다닌다는 것이 그 아이의 유일한 특징이었다. 그 아이는 나와는 상반되게 항상 밝았고, 웃음끼가 가득했다. 장난스러운 미소가 매력적인 녀석이었다. 그런 아이는 일을 위해 해외로 출장을 간 부모님을 대신해, 가사일을 도맡아 했고. 항상 집을 지키고 있던 작은 기둥이었다. 그런 그를 싫어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자주 돌아오시지 못하는 두분을 대신에 서로 의지했던 형제였다. 항상 내 뒤에 서 있었고, 항상 나를 믿어주며 지지해주었었다. 항상 행복이라는 것을 들고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두들겨,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밝고도 조금은 엉뚱한 녀석이었다. 그래, 언젠가 네가 나에게 딱지가 앉도록 말했던 단 하나의 꽃과 그 꽃말... 마치 은방울꽃 같았던 너였다. 하지만 네가 은방울 꽃과 다른 흰꽃에 둘러싸여, 달랑 사진한장으로 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내가 너의 미소가 담긴 그 거무죽죽한 사진을 들고, 다른 이들의 울음소리와 곡소리를 들으며 화장터 안까지 걸어가게 될줄은... 정말 몰랐었다. 사망 동기는 살인이었다. 그것도 묻지마 살인... 범인은 잡았지만, 이미 모든게 끝나있었다. 그것에 나는 무너져 내렸고, 가족은 슬픔에 잠겼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렸다. 가족들은 힘겹지만 어떻게든 상처를 털고 일어났다. 허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형이라는 직책, 지금은 그만둔 경찰이라는 직책... 이 둘을 전부 가지고 있었음에도 나는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으로 내 죄는 크게 성립됐다. 가족이자 형인 사람이 동생을 무심히 방치하면서 안일하게 생각했으며, 경찰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가장 중요한 내 가족을 한명도 지켜주지 못했다. 그것들이 크게 작용하여 죄책감과 자괴감을 만들었으며, 트라우마를 세겨넣어 나를 바닥으로 까지 끌어내리며 처참히 무너트렸다. 결국 나는 버티지 못했고, 그 아이의 숨결이 가득했던 원래의 집을 뛰쳐나왔다. 그곳은 이제 아버지가 채우고 계신다. 이게 잘못되고, 비겁하며, 겁쟁이 인 행동이란 것은 잘 안다. 그런데도 나는 도저히 녀석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주보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처참하고 잔혹한 모습을 하고 싸늘하게 누워있는 체로 발견된 너의 모습과, 관에 넣기 위해 삼배로 둘둘 감싸지던 너의 고요하고 딱딱한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아서, 도저히 네 앞에 설 수가 없었다. 숨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괴로웠다. 그래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흑...끄흑.... 아팠다. 그 단어 말고는 떠오르는 다른 종류의 짧은 단어는 없었다. 많이 달려서 괴로운걸까, 동생에게서 도망치는 내 모습이 괴로워서 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동생의 추억과 자책감때문에...?. 몰라, 도저히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괴롭고 아파서 눈물이 흐른다는 것이었다. 눈물은 서서히 빠르고 많이 흘렀다. 땀과 뒤섞여, 아스팔트바닥을 한방울 한방울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 동생은 내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내게, 가족에게 배풀어주었다. 시시콜콜한 대화와 농담도, 장난끼 있지만 그 누구보다 진실한 위로도, 소소한 노래도... 매일매일 내 마음을 방문하여 행복을 놓고갔다. 그 사소한 행복에 나는 작지만 웃을 수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던 꼬꼬마 시절에도, 반항과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학생시절에도, 방황의 길을 걷던 풋풋하고 고민 많았던 청년의 시절에도 너는 변함없이 내 곁을 맴돌며 내게 소리없이 방문했다. 그래, 그건 '행복의 방문'이었다. 그리고 그 방문이 서로 영원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너는 더이상 내게 방문하지 않았다. 모든게 한순간에 끝나고 말았다. 3일의 이별의 여정을 밟고 돌아온 거실의 탁자에는 네가 마지막으로 놓고간 은방울 꽃만이, 수수한 꽃병에 꽂혀있는 체로 조용히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그것이 너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나는 그 기억들에, 길거리에서 오랫동안 괴로운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것은 행복의 방문이 사라진 것에 대한 내 비참한 후회였다. **** 대충 썼다...! 다음 소재는 '커피와 그 사람'
이른 아침, 고요했던 새하얀 방에 커피포트의 시끄러운 소리와 연기로 가득찼다. 소리가 멈추고, 커피믹스를 담은 컵에 물을 담았다. 새벽빛을 받아 새파래진 손이 컵을 살짝 떨며 잡았다. 컵 하나 드는 것조차 힘이 드는 것에 픽하니 실소가 터져나왔다. "전부 그 사람 탓이야." 그렇게 싫어하던 커피를 마시게 된 것도, 혼잣말이 늘어난 것도, 방을 새하얗게 꾸민 것도, 날이 갈수록 기운이 빠지는 것도 전부. 그를 닮은 고요한 하얀색으로 방을 꾸몄고, 그를 잊을까봐 그가 항상 마시고 풍겼던 커피를 마셨고, 동거하던 그에게 말을 거는 것 마냥 혼잣말을 중얼거렸고, 그가 없어서 점차 메말라갔다. 그러니 전부, "네 탓이야." 다음 주제, "해거름"
야, 이새끼야 같이 좀 가자. 아, 니 뭔데. 덥다, 떨어져서 다녀. 저 개새끼. 내가 자기 좋아하는것도 모르고 자꾸 떨어지랜다. 눈치도 어지간히 없어야지. 아, 왜그러는데! 전엔 싫다해도 지가 어깨동무 하고 가더니!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여자애가 내숭이 없어. 젠장... 나즈막하게 욕이 새어나왔다. 저 눈새. 이 짓거리를 더이상 하고싶지 않았다. 3년간 짝사랑이라니! 이 무엇보다 참혹한게 있을까. 저는 모르겠지만 나는 3년동안 자기 좋아한다고 들어오는 고백도 다 찼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열불이 났다. 이제는 끝내야겠다. 입술을 꾸욱 깨물고는 다다다 달려가 그 녀석의 앞에 섰다. 야, 너는 왜그렇게 눈치가 없는데? 뭘. 하하... 분위기만 봐도 모르겠어? 우리 이때까지 친구였잖아. 근데 난 아니야, 너한테 난? 밥먹어주는 친구? 영화사줄친구? 장난쳐도 받아줄사람? 그정도겠지. 근데 난 아니야. 하아.. 내가 너 - 한순간이였다. 귀가 멍했다. 으응? 부딪힌 옆쪽뺨이 시큰했다. 귀옆으로 그 녀석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너야말로 어떻게 그렇게 눈치가 없냐. 오늘 집가서 전화해서 내가 얘기하려고 그렇게 모르는척했는데. 일부러 심장뛰는 소리 들릴까봐 떨어지라 한건데 그것도 몰랐지, 너는? 좀 얌전히 집가서 전화만 받으면 좀 좋아. 꿈만같았다. 황홀함의 향까지 내 코 끝을 스치고 지나갔나. 내 눈 바로 앞에 그녀석의 얼굴이 있었다. 얼둘이 터질것만같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석은 내 얼굴을 보고 장난기섞인 얼굴로 웃더니, 세상에서 가장 예쁜말을 나에게 내뱉었다. 좋아해. 그날, 하교하던 길의 평화롭던 해걸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해걸음과 다르게 요란스러웠던 나와 그녀석의 심장소리도. 다음주제 ' 청춘 '
청춘 연습구장에 잔뜩 쬐이는 여름의 햇빛이 따갑다. 매일 있는 아침훈련을 마치고 어김없이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그가 불렀다. "잠깐 얘기좀 하자." 왜 불렀는지 대충 짐작은 간다. 내 성과때문이겠지. 누구와는 다른 수준의.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들. 형편없는 성과 말이다. 그는 나를 구장 뒤로 데리고갔다. "너 왜그러는건데?" "뭘." "무슨 말인지 알잖아." 나는 잠시 침묵했다. 넌 모르겠지. 마운드에서의 너는 여전히 빛났고, 또 아름다웠다. 고작 불펜에 서는 게 다인 나를, 빛나는 너의 뒷모습을 잡지도 못하고 보고만 있는 내가 무슨 기분인지, 너는 모르겠지. 나는 그래서 침묵했다. 말해도 모를테니까. "1년이야." 뜬금 없는 그의 말에 의외다싶어 살짝 고개를 들었다. 처음 제대로 마주친 그의 눈빛은 어쩌면 약간의 불안감도 스려있었다. 내 착각일까? "고작 1년 남았어. 우리의 고교야구는." 새삼 머리가 띵해져왔다. 1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러나 11년간 해왔던 야구가 1년 후에 끝난다고? 내 동요를 눈치챘는지 그가 조금 차분한 눈으로 날 힐책한다. "보여줘." 그는 곧바로 등을 돌려 샤워실로 향했다. 주어는 없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명확했다. 이 시간을. 이 청춘을 이대로 쉽게 보내지 말라고. '파앙-' "오, 이경원이. 오늘 미트소리 착착 감기는데?" "감사합니다." "그래. 진작 그렇게 하지. 잘하고있어." 이 팀에 들어와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매번 소리만 지르던 코치가 보기 드물게 웃고있었다. 계속되는 투구가 오늘따라 버겁다. 그동안 설렁설렁 한 탓일까. 나는 투구연습을 끝내자마자 배트를 집어들었다. "저 새끼가 웬일이래? 제일 뻗대던 놈이." 팀원 중 하나가 들으라는 식으로 말한다. 나는 그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1년, 남았잖냐." 내 말에 다른 팀원들이 하나 둘 다시 일어선다. "네가 그러니까 쉬는 게 불편해지잖아." 그리고는 훈련을 바로 시작한다. 항상 '그'와 호흡을 맞추던 주전포수인 녀석도 내 어깨를 도닥여준다. 나는 이번에는 배트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그저 휘두르기만 하던 전과는 달리, 온 몸의 근육 하나하나에, 세포 하나하나에 신경쓴다. 점점 타율도 올라갔다. 새삼 왜 야구를 시작했는지 상기했다. 어렸을 때도 이렇게 즐거웠다. 공을 던지는 게, 배트를 휘둘러 공을 맞춰날리는 게 즐거웠다. 이제야 다시 느낀 것이다. 여름 해가 산 너머로 서서히 스려질때도, 달이 중천에 뜰 때까지도, 하염없이 연습에 매진할 뿐이었다. 주전이 되고싶다거나 그런 욕망보다는 그저 이 즐거움을 느낀 것 뿐인 것 같다. "이번엔 이경원. 니가 선발 서라." 믿기 힘들었다. '그'가 아니라? 난 나도 모르게 그를 돌아봤다. 표정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썩 유쾌해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담담했다. 훈련이 끝나고, 이번에는 내가 그를 불렀다. "왜?" "어... 미안하다." "뭐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네 자리잖아." 그가 내 말에 잠시 눈매를 찌뿌린다. "내 자리는 뭔데?" "어... 주전?" 그가 잠시 한숨을 쉰다. "원래라면 나 혼자 차지할 자리는 아니었지. 네가 제대로 했다면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걸. 나는 그게 기분이 나빴어. 네가 포기해서 내가 이 자리에 선 것 같았으니까."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잘 몰랐으니까. "됐어. 그게 원래 네 실력인 거야. 네가 함부로 포기해서 손에서 놓친 거였고." 이번에도 그가 먼저 뒤돌아서 걸어갔다. "----." 그러나 저번과는 달리 잠시 걸음을 멈춰 한 마디 뱉는다. 다시 샤워실로 향하는 그를 보며 내 입가엔 점점 미소가 든다. 짜식. 이빨까는 소리 하고는.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윗옷을 벗어재껴 그를 따라 샤워실로 향했다. '그래도 내가 너보다 위인 건 바뀌지 않아. 남은 1년동안 열심히 따라와보든가.' 햇빛이 유난히도 뜨거운, 한 청춘들의 이야기다. -------------- 크게 휘두르며의 미친팬인 나는 '청춘=고교야구'라는 공식을 갖고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족한 필력이지만 나름 핸드폰 자판 하나하나 눌러서 짧게 써봤어ㅜㅜ 핸드폰이라 더 힘든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청춘 러브를 기대했을 윗 레스께는 사죄를.. 청춘 야구를 써버렸으니까..ㅎㅎ 완벽하진 않지만 즐겨줘!! 다음 키워드는 '탈모' 가즈아
>>128 헐ㄹ 나 윗레스주인데 나 이런청춘 원한거 맞아ㅠㅠㅠㅠㅠ 학창시절이 청춘의 피크잖아ㅠㅠㅠ고마웡ㅇㅠㅠㅠㅠ
>>129 엇 그럼 다행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부끄러운듯 살짝 가발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게 내 원래 모습이야, 이래도? 정말 이런 모습인데도?" 나에게 질문을 한 사람 그 사람은 내 모든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너무나 사랑하는 내 여자친구였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이 사람의 모든것이 좋았다. 이 상황을 알기 전까지는 아무리 이 사람이 아프다고 해도 평생 곁을 지키리라 생각했다 "...괜찮아" 어렵게 입을 떼었다. 나와 평생을 함께할 사람 나의 모든것을 주고싶은 사람 그 사람이였기에 괜찮다고 얘기했다. "역시..괜찮지 않은거지?" 내가 살짝 당황한 모습을 본 모양이다. "아니야, 나는 너의 모습이 어떻든지 상관없어 너와 함께할수 있다면 그거면 된거야" 그 사람이 운다. 알수없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이 떨어진다. 나에게 몇 발자국 뒤로 떨어진 후 나에게 얘기한다. "사랑해, 사랑했고 사랑할께" 그 말을 뒤로 그녀는 나의 모든 추억과 함께 사라졌다. 다음 주제는 '노래'
내 노래를 듣고 미소 짓는 당신의 모습이 좋았어- 우리는 어렸을때부터 늘 함께 였는데, 슬픈 날에도 기쁜 날에도.기억나? 우리가 처음만났던 날. 장난감 가게에 진열 돼 있던 나를 당신이 꺼내주었던 날. 사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요즘같은 시대에 누가 노래하는 인형을 사겠냐며 내 주인은 나를 소홀히 대했어. 매일이 고통스러웠어. 내 친구들은 하나 하나 새로운 주인을 만나서 이 곳을 떠나가는데, 나는 여전히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갔거든-. 초라했어. 내가 노래하는 인형이라는게 원망스러웠지. 근데 당신을 만난거야. 진열장에 있는 나를 은하수를 닮은 큰 두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당신의 시선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어. 그 후부터 난 열심히 당신을 위해 노래했어. 그 전에는 항상 노래를 부를때 힘들고 부르기 싫었지만, 당신 앞에서는 아니었어. 노래를 부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어. 당신과 함께라면 노래를 부르다 죽어도 행복 할꺼라 생각했어. 당신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단어를 말 할수 있었던 날, 당신은 내게 이름을 지어줬어. 이름이 생긴적은 처음이라 말로 표현 할수 없을정도로 기뻤어. 그래서 더욱 더 노래를 불렀지. 무리를 할 정도로. 그게 원인이 될 줄은 몰랐는데, 어느날 부터인가 점점 내 목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노래를 잘 부를 수 없게 되었어. 절망스러웠어.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다면 당신이 날 떠날거라생각했거든. 그건 싫었어. 정말. 난 내 금이 간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어. 내 몸을 바쳐서. 힘들었어. 노래를 그만 멈추고 싶었어. 근데 내 앞에서 활짝 웃는 당신의 모습을 보니까 멈출 수없더라. 세월이 흘러 당신은 훌쩍 자라 어른이 되어있었어. 성숙해진 당신의 모습을 보니 마음 한켠이 시큰해졌어. 어디 가는 듯 한 모습으로 방 정리를 하는 당신을 난 바라 봤어.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 둘 챙겨 박스에 담는 당신을. 그때 밑에서 당신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어. 이사를 가는 둥의 대화였어. 아 정들었었는데 이 집. 아마 10년은 넘었겠지. 내가 여기 있었던 기간이. 짐을 다 챙긴 듯한 당신은 내게 다가왔어. 나는 당신의 짐칸에 들어 갈 준비를 하고 이 집에게 작별인사를 하려했어. 하지만 당신은 나를 다시 내려놓았고, 방 문을 닫고 나갔어. 혼란스러웠어. 왜 나를 데려가지않는건지. 어째서 나를 버리고 가는건지. 무서웠어. 당신을 다시는 보지 못 할거라 생각하니. 밖에서 이삿짐을 실은 차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어. 그 소리를 듣고 나니 현실이 와 닿더라. 당신이 나를 버리고 떠난 사실이.. . 눈에서 눈물이 흘렀어. 뺨을 타고 내려와 뚝 뚝 내 옷자락을 적셨어. 노래를 불렀어. 너무 오랜만에 불러서 목에 있는 금이 더 갈라졌어. 신경쓰지않고 계속 계속 있는힘껏 불렀어. 내 노래가 당신에게 닿도록. 점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 목에 금이 너무 심해져서 쇳소리밖에 나오지않았어. 그럼에도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어-. 아무리 불러도 내 노래소리는 당신에게 닿지 않겠지. 하지만 괜찮아 나는 이 자리에서 계속 당신과 함께 노래를 불렀던 그 때를 추억하며
있을테니까.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노래를 부를게. 다음 주제는 ‘곰인형’!
하늘. 까맣다. 3번째 밤. 오늘도. 춥다. 여자. 아니, 소녀. 허리를 숙인다. 하늘. 날다. 따뜻하다. 따뜻한 이 집. 들킨다. 아줌마. 하늘. 또 난다. 큰 원통. 빙글빙글. 물 한가득. 축축하다. 무거운 몸. 꼬집힘. 뜨거운 햇빛. 바싹바싹. 건조한 피부. 하늘. 맑다. 점점 마른다. 좋은 냄새. 햇빛 냄새. 소녀. 화장. 처음의. 더이상 소녀가 아니다. 남자친구. 입맞춤. 서로만 보는. 난 이제 없어? 필요? ...슬픔. 혼자. 혼자. 혼자. 누구 없어? 혼자. 이곳은 밤. 없어. 외로워. 외로워. 소녀? 아니, 이젠 여자. 여자. 여자. 또 하늘 날아. 날아. 추워. 이곳. 어디? 비닐? 하늘 안보여. 흐릿해. 냄새. 쓰레기냄새. 어디?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타는 냄새. 누구에게서? 팔 한쪽은 어디? 발이 사라졌어. -------------. 아무것도 보이지 않... ...날 기억해 주긴 하는거니?.... ---------------- 띠용 내용 이해는.. 되겠지? 곰인형 하니까 생각나서ㅋㅋㅋ 곰인형은 항상 언젠간 버려지더라고 다음 주제는 '소맥'
언제나 항상 미안해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너였다. 사랑한다면서 미안해, 내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이런 말을 난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지. 오늘도 한숨을 쉬곤 폰을 조심스레 내려 놓은 뒤 냉장고로 힘 없이 터덜터덜 걸어갔다. "소주랑 맥주..." 소주랑 맥주를 찾은 이유는 단순하다, 이 꿀꿀한 기분을 풀 방법은 이 두 친구밖에 없다는 것을 난 매우 잘 알기 때문이다. 상당히 차가운 소주병과 맥주캔을 제 양 손에 든 뒤 탁자로 가져갔다. 잠시 내놓자 송골송골 물방울이 맺힌 병 표면을 손으로 닦곤 소주부터 먼저 땄다. "망할 놈." 평소에 하지도 않던 욕을 하곤 컵에 소주를 미친 듯이 콸콸콸 부었다. 이내 맥주를 딴 뒤 마찬가지로 그 컵에 부었다. 노랗게 변한 소주를 보곤 허탈한 듯 웃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지, 그 놈 하나 때문에. 컵을 들곤 제 입에 소맥을 털어 넣었다. 짜릿한 맛과 쓴 맛이 제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이내 다 원샷을 하곤 컵을 탁자에 내려 놓았다. "미안해라는 말, 더 이상 안 받아." 가소롭다는 듯 웃었지만, 이미 제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있었다. ㅡ 다음 주제는 무용수
나는 다른 애들이 야자를 할 때 학교 무용실에서 연습한다. 어느 날은 더워서 바닥에 누워있는데 갑자기 선풍기가 꺼지는 소리가 들려서 쳐다봤다. 꼰대같이 생긴 여자애가 나한테 걸어와 욕을 하며 따졌다. 우리는 공부해서 지방대 가는것도 힘든데 너같은 년은 교장이 밀어주니 춤만 추고 대학을 간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장이랑 잤냐, 교장한테는 섹시댄스를 추냐, 허리는 잘 돌리냐 등.. 나를 조롱하는 말만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교장은 내가 입학할 때 부터 나를 보고있었다. 내가 좀 성숙한 편이라 그런 것 같다. 내가 무용을 준비하는 것도 어떻게 알았는지 한 번은 교장실에 불러서 무용을 준비하는 학생은 내가 유일하다며 밀어주겠다고 했다. 순수했던 나는 그걸 그대로 믿었고 교장이 하자는 대로 했다. 교장은 무용실을 쓰게 해주고 봉사활동을 빼주기도 했다. 물론 대가도 치렀다. 짧은 치마를 입고 있는데 교장 앞에서 펜을 줍게 시키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무용실 열쇠를 뺏겼다. 다시 야자를 하라는 말만을 하고 교장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그 뒤에도 교장실에 몇 번 찾아갔으나 번번히 쫓겨났다. 야자가 끝나 무용실 앞에 가봤다. 항상 잠겨있더니 오늘은 열려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불이 켜져 있고 아무도 없다. 무용실 창고에서 삐걱대는 소리만 나고 있다. 창고 커튼을 조심스레 젖혀보니 교장이 어떤 년이랑 몸을 섞고 있었다. 들킬까봐 숨어서 지켜보는데 그 년의 발이 많이 울퉁불퉁 한 것으로 보아 무용이나 발레를 준비하는 듯 하였다. 교장과 내가 저 짓을 할 때, 사실은 나도 교장을 이성의 상대로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교장을 증오한다. 배신감도 든다. 교장실 창문을 깨고 들어가 정수기 안에 수면제를 타 두었다. 깨진 창문은 안 쓰는 교실 창문과 갈아 끼웠다. 다음날, 야자가 끝나고 교장실 근처에 숨어있는데 교장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교장이 물을 떠 마신다. 생각했던대로 교장이 쓰러졌다. 난 그대로 교장의 허리벨트로 목을 감아 천장에 매달아 두었다. 창문은 블라인드를 쳐 두고 선생님들 채팅 앱이 켜져 있길래 그걸로 교감에게 출장간다고 전해두었다. 적어도 시신은 2일 뒤 발견 될 것이고 수면제는 분해될 것이다. 교장실 문을 잠그고 문앞에 출장중 이라는 종이를 붙여두었다. 가방을 챙기러 교실에 갔다가 무용실 생각이 나서 가보았다. 문이 열려있다. 좀 더 연습하고 가야겠다. -- 다음 주제는 주기율표
너와 나의 거리감을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넌 가볍고 저 높이 올라가는 수소가 있는 곳이고 내가 있는 곳은 우누녹튬이 있는 곳이다. 주기율 표에서 끝과 끝에 있는 두가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지도 못할 희안한 이름의 녀석의 자리만큼, 내 존재감도 딱 그정도로 없다. 그리고 이 거리감은 결코 변할 일은 없을 거다. 너가 거기서 이쪽으로 내려올 일도 없고, 내가 그쪽으로 올라갈 일도 없으니까. * 여느 때와 같은 날이다. 미세먼지 잔뜩 끼어 흐린 하늘. 텁텁한 공기. 시끄럽게 울리는 클락션 소리와 횡당보도를 바삐 건너가는 사람들. 특징적일 것 하나 없는 이 무리 속엔 나또한 들어가 있으니. 얼마나 평범할지. 버스안의 흔들림조차 평균적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히 정신을 놓고, 졸음의 세계로 빠졌다. * 졸음에 이기지 못해 멍한 와중에도 버스에서 제 때에 내린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여." "...!" "놀랐어? 미안. 버스에서 내내 졸길래 깨울까 했었거든. 근데 신기하게 때 되니까 비틀 거리면서도 잘 내리더라?" "아, 응. 뭐.. 습관인거지. 여기에 벌써 3년째니까." "벌써 3학년이라니.. 선배들한테 얻어 먹었던게 어제만 같은데. 하하." * 거리가 변했다. 한... 1족 만큼. =다음 주제 [과거에서 온 편지]
잘 지냈어? 그녀는 대답없이 환한 미소만을 지어보였다. 육년 전과 다름없이 웃었을 때가 가장 예쁜 친구다. 이런 아이를 때려 죽인 건 여섯 살 많은 애인 이었다고 한다. 동거 중이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언제는 혼전순결을 그렇게 주장하더니.. 빈 방이 고요하다. 벌써 늦은 밤이다. 나의 많은 동창들이 이곳에 찾아왔다가 하나같이 벌건 눈으로 돌아갔다. 나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기위해 속을 뒤적거리다 분홍색의 얇은 공책 두어권을 집었다. 오늘 장례식장에 미처 참석 하지못한 친구가 내게 들려준 공책이었다. 고개를 쳐들어 눈물을 대강 삼키고 '교환일기'라고 쓰여진 공책을 바라보았다. 표지 밑부분에 조그맣게 적혀진 여섯명의 이름들. 너의 이름 바로 뒤에 나의 이름이 빠짐없이 줄지어 적혀 있었다. 문득 웃음이 났다. 난 결혼을 할거야. 꼭 멋진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는 한 두세명은 꼭 낳아야지. 일기장을 펼쳐 그녀가 쓴 페이지를 넘겨보다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는 것이 백마 탄 왕자님인지, 천사같은 아이들인지, 아니면 그 둘 다 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나의 소중한 친구가 원하는대로 다 잘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른 하교를 하며, 우리는 시덥잖은 얘기를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길을 가다 이야것거리가 떨어지면 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조금씩 박자를 타고 맞잡은 손을 흔들곤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는 이 곳에 두고갈 생각이었지만 이 속도로는 날이 샐 것이 틀림없기에 일단 집으로 가서 남은 밤동안 일기를 마지막 장까지 느긋히 감상할 요량이었다. 그 순간, 노트에서 반듯이 접은 종이쪽지 하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나는 쪽지가 떨어져나온 마지막 장을 펼쳐보았다. 날씨, 조금 비. 우리 벌써 졸업이야~ 시간 진짜 너무 빠르다 그치ㅠ 이 교환일기도 내가 마지막 타자네. 교환일기치고는 사람이 좀 많아서 한 바퀴 도는데 좀 오래 걸리긴했지만 정말 재밌었어. 우리 우정 영원하자! 너희는 앞으로 뭐하고 싶어? 물론 일단은 즐거운 대학생활이 먼저겠지만ㅋㅋ 난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일찍 결혼할거야! 예쁜 아기도 낳고 싶어ㅎㅎ 이 일기는 십년 후에 꼭 다같이 펼쳐보면 좋겠다. 이건 그 때 다음 타자가 펼쳐볼 쪽지. 먼저 보면 안돼! 그럼 안녕~ 밑을 향하도록 그린 화살표, 살짝 뜯어진 테이프 자국. 거짓말해서 미안해. 첫사랑에게
>>138 다들 너무 길게길게 잘 써서 부담된다.. ㅠㅠ 다음 주제는 '미소'
그녀를 향해 싱긋- 하곤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녀도 나를 향해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맞받아주었다. 학교에서 음료를 뽑으려 만난 너는 오늘도 내게 예쁜 웃음으로 인사 했다, 마냥 해맑은 어린 아이처럼. 그녀에게 말을 붙이려 다홍빛 혀를 쪼고맣게 내밀곤 입을 열었을까. 가버리는 너였다. 왠지 모를 실망감에 너의 뒷자락만 빤히 쳐다보았다. 다시 돌아 내게로 와 예쁜 미소로 인사해 주기를 바라며. 한 달은 반복했다. 그녀가 오늘도 내게 와 변하지 않는 예쁜 웃음을 자아냈다. 왠지 모를 이질감에 바로 말을 덧붙혔다. "저기요." 몇 초간 망설이더니 입을 뗀 그녀의 목소리는 청아했다. 상상조차 못 할 만큼의 아름다움이었다. 마냥 천사가 있다면 진짜 이럴까, 하고 생각할 무렵에 "기다렸어요." 무얼 기다렸다는건지 알 수 없었다. 이내 다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알 수 있었지만, "당신이 말을 건네길 기다렸어요." "수줍어서 말을 못 건넸거든요." 귀여웠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파 대답 대신 싱긋 웃어보았다. 다음 사람 주제 자각몽.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에게 고백을 못한게 후회가 되서.. 자각몽이라도 꾸고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싶다고 생각한지 벌써 7년 그 사람을 좋아한지는 10년이 다 되어간다 '근데 어떻게 꿈에 한 번을 안찾아오냐고.. 보통 좋아하는 사람은 꿈에 나오고 그런다는데 고등학교 입학때부터 좋아했으니까 학교 다닐때는 주말빼고는 봐서 그저 보고만있어도 좋았는데.. 지금은 졸업하고 다른지역이라 볼 수도 없는데 꿈에라도 나와주라 좀!!' 생각을 마치자 팀장님이 찾으신다 "주영씨 잠시 이리좀" "네.. 팀장님 부르셨어요?" "주영씨.. 주영씨가 타는 커피 맛있는거 알고 있었는데 그 맛에 비법이 오래저어주는건가?" "네?" "아니 주영씨가 타준커피가 맛있어서 집에서 타먹어 봤는데 주영씨가 타준 커피맛이 안나더라고" 하며 웃으신다.. 아마 내가 탕비실에 들어가서 오래 안나오고 있으니까 본디 착함이 몸에 베인 사람이라 뭐라고 하지는 못하고 농담하시는거겠지.. "죄송해요 팀장님ㅜㅜ 제가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웠죠? 이제부터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요..^^" '하.. 이 모쏠 생활을 청산하던지 해야지 팍팍 묵은 묵은지 같은 짝사랑인데 쉬어도 버리지도 못하고 씻어서 보관하고 있는 꼴이라니..' 또 짝남 생각을 해버렸다 일에 집중하자는 의미로 머리를 때리고 모니터 앞에 앉아 하던 일을 마저했다 마무리를 하고있는데 퇴근시간이 됐는지 팀장님이 "퇴근시간인데 다들 의자에서 궁둥이 떼고 회사 밖을 벗어 납시다!" 라고 얘기하셨고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직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움직이는게 줄어들자 누가 뒤에서 콧바람을 불었다 "으악! 깜짝이야!" 뒤를 돌아보니 친구였고 난 친구를 째려보면서 얘기했다 "조금만 기다려 이거만 마저하고 가자" 친구는 일하는 시간에 짝남 생각한다고 시간 뺏어먹더니 퇴근시간에 일한다고 투덜댔다 하던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는 간단하게 골뱅이에 소주한잔 어떠냐고 물어봐서 나는 바로 콜했고 우리가 자주가는 포차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하고 친구와 한창 얘기하고 있는데 그림자가 져서 보니 팀장님 포함 직장동료 셋이 서있었다 "합석해도 돼?" 직장동료 2가 물어왔고 친구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직장동료들이 모자란 의자를 들고와 앉았고 안주를 추가해서 나올때까지 기본찬으로 술을 먹기 시작했다 술을 못하는 나는 3잔 째 알딸딸한 기운이 돌때 쯤 안주가 나왔다 술을 잘 먹는 친구와 직장동료 그리고 팀장님은 본격적으로 술을 먹기 시작했고 나는 안주를 먹으면서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홀짝이다보니 어느새 주량을 넘어서고 있었고 술자리 분위기는 2차를 향하고 있었다 친구도 알딸딸한지 평소 안하던 스킨십을 하면서 "쥬용아~~ 우디 노래봥가쟈~~" 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칭구야~~ 나눈.. 이미 술이 턱끝까지 챠올랐댠다.. 여기서 더마시면 내일 출근 못할거 같우니까 나는 먼져 둘어갈게" 친구는 내 주량을 알기에 더 잡지는 않고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면서 "아랐또.. 구대쉰 이번주 금요일 같이 데이뚜 하는고다" 라고 했고 난 "웅웅! 꼭 데이뚜하자" 하면서 친구 볼에 가볍게 뽀뽀해주고는 직장동료들과 팀장님한테 인사를 했고 뒤돌아서 집으로 가려는데 발이 갑자기 멋대로 움직이면서 넘어질뻔 했지만 뛰어난 운동신경으로 중심을 잡는줄 알았지만 결국 넘어지고 말았다 놀란 친구와 동료들은 잠깐 멈칫하다 다가왔지만 팀장님은 어느새 옆으로 와서 나를 부축해주고 있었다 "오! 튐장니임~ 술 마셨는데도 반사신경이 뛰어나시네요 짱입니다" 하고 엄지척을 한뒤 배꼽인사를 하려는데 이번에는 엉덩이가 멋대로 튀어나와 엉덩방아를 찢고 말았다 친구는 배꼽을 잡고 웃었고 직장동료들은 웃음을 참으면서 괜찮냐고 물어왔다 나는 괜찮다고 괜찮다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한번 인사를 하고 이번에는 꼭 제대로 걸어서 집에 가야지 다짐을 하면서 신중한 한걸음 한걸음을 하고 있을때 옆에 누가 말을 걸어왔다 "데려다 줄게요 괜찮으시면 제 손잡고 기대서 가요" 팀장님이였다 항상 앉아있는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보니 키가 참 크다라는 생각을 했고 팀장님 입장에서는 아무말도 없이 보고만 있으니까 답답했는지 그냥 내 손을 끌어 부축을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팀장님.. 괜찮은데요 진짜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네.. 아는데요 근데 이렇게 혼자 보내면 내일 회사에 제대로 걸어서 못나올거 같아서 그래요" 또 시덥잖은 농담을 한다 사실 술김인지 모쏠이여서 남자사람 냄새를 못맡아서 인지 구분은 잘 안갔지만 포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아무말 없이 걸었다 한참을 걷는데 팀장님이 물어왔다 "근데 주영씨 집이 어디에요?" '포근함에 취해 집도 안가르쳐주고 걷고 있었구나' "쭉 직진하다가 첫번째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예요" 집이 술집에서 조금만 더 멀었으면 좋겠다는 응큼한 생각을 하고 있을때 집에 다와갔고 팀장님은 집근처 계단에 앉혀주고 아이스크림을 사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뛰어가셨다 앉아있으니 어질어질 땅이 움직이는 느낌이 들어서 잠깐 누워있었는데 팀장님이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뛰어오시더니 아이스크림을 건네 주셨다 다시 앉으면서 아이스크림을 건네 받고 아이스크림을 뜯고있을때 팀장님이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내 옆에 앉았고 둘이 한동안 아무말 없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람들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정적이 깨진건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때쯤 내가 "팀장님 오늘 데려다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안다치고 무사히 집앞에 왔으니 내일도 출근 잘하겠습니다" 라고 얘기했고 팀장님은 "그래요 근데 난 앞으로도 주영씨가 걱정되서 술안먹을때도 매번 이렇게 데려다 주고싶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뭐지.. 또 농담인가' "안그러셔도 돼요ㅜㅜ 술은 친구랑만 먹는데 매번 친구가 데려다 줘서 그럴일 없을거예요" "아.. 사귀자는 말이였어요 당황스럽겠지만 주영씨 좋아한지 꽤 됐어요 대답은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라는 말만 남기고 팀장님은 집으로 돌아가셨고 난 한동안 벙쪄서 팀장님이 사라진 길목만 바라보다가 정신이 돌아와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돌아와서 옷갈아입고 씻고 잠자리에 눕는 동안 계속 팀장님의 고백만 생각이 났다 평소같으면 묵은지같은 짝남 생각을 했을텐데.. 그 고백을 들어서 놀랐는데도 여전히 술은 깨지 않았고 나는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묵은지 같은 짝남이 10년만에 처음으로 내 꿈에 나타났다 꿈인걸 알아서 였을까.. 짝남을 좋아하면서 하고 싶었던 데이트를 다해봤다 손잡고 놀이동산도 가고 사진도 찍고 술도 마시고.. 그렇게 행복한 데이트를 마치고 짝남이 집에 데려다 주고 집 앞에서 짝남이 얘기했다 '예쁜사랑하고 그 동안 나 좋아해줘서 고마워' 라고 얘기하면서 짝남이 뒤돌아 설때 꿈이 깼다 짝남이 마지막에 한 말은 뭐였을까.. 정신이 없고 몽롱함에 취해 있다가 정신차리고 시계를 보니 출근시간이 얼마남지 않은걸 보고 허겁지겁 준비해 출근을 했다 그렇게 원하던 짝남이 꿈에 나왔으니 오늘 좋은 일이 있을것만 같은 느낌을 가지고.. 다음주제는 출근 입니다
날이 밝았다. 창 밖에선 새가 짖어대고, 윗 집도 꽥꽥 울어대고. 아주 그냥, 자명종이 필요없다. 개같은 아침. 솔직히 말야, 야근을 하면 출근 시간 정도는 늦춰 줘야하는거 아냐? 이게 한 두번도 아니고. 이래서 받아준다고 좋다구나! 하고 오는게 아니였는데. 괜스레 입을 삐죽이며 몸을 일으켰다. 무거운 머리를 마지막으로 올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참... 말도 안나온다. 양말이랑 티셔츠는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청바지는 뭘 했는지 책장 꼭대기에서 달랑거리고 있다. 저 멀리선 가방이 내용물을 열심히 토해내고, 이러다 구더기라도 나올 것 같다. 더럽다, 더러워. 기분도 더러워진다. 팍! 씨. 결근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어떻게든 잘 참아냈다. 먹고 살려면 까야지 뭐. 얼굴에 대충 물 좀 끼얹은 다음에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옷을 집어 들었다. 가방에 토사물을 겨우 욱여놓고나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아침밥은 오늘도 물 건너 갔나보다. 회사 앞 편의점에서 뭐라도 사먹을 생각을 하며 난 집 밖을 나섰다. 태양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겨우겨우 버스 정류장에 왔다. 시간이 꽤나 남았다 싶었더니, 이번에는 버스가 늦는다. 후... 진정하자. 나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 진정하는 것이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돌아다니는 아지렁이를 멍하게 보고있자니 잡 생각들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학생때는 그래도 밥만큼은 잘 챙겨먹었는데... 이렇게 여유없이 사는 게 과연 좋은 걸까. 노후생활이라, 흠... 한 삼십년후에나 올려나? 12분도 이렇게 긴데, 삼십년은 개뿔. 아, 진짜. 어떻게 하지? 확 내 자아찾기 여행이라도 가? 짜증나는 부장 얼굴에 사표라도 던져? 새벽 감성도 아니고, 오전 감성이냐. 웃기지도 않아. 이러저러 정신을 놓고 있으니 드디어 버스가 온다. 그래, 회사나 가자. 하루 살기도 힘든데 몇 십년 후를 생각해서 뭐하냐. 나는 오늘도 나를 구겨넣으며 출근을 한다.
다음 주제는~ 양초야!
아이가 양초를 만들어 왔습니다. 색이 특이하여 물었더니 아로마 오일을 넣었다고 합니다. 기어코 그런 감식안이 생겼니, 대견하구나 말하니 아이가 화를 냅니다. 강사가 시켰을 뿐이라고. 창의력을 기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마음에 들어하던 하얀색을 기어코 없애버렸다면서. 한 번 다른 색이 섞여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되니, 조원들이 하나 둘 씩 초록 염료를, 보라 색소를, 마신 적도 없는 커피 가루를 넣었다고. 아이의 말을 잠자코 들어줍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니? -그대로 두었어. 더는 더럽힐 수 없어서. 아이가 자신이 만들었다던 양초를 제 손에 담아줍니다. 소주잔 크기의 유리잔에 담겨있습니다. 칙칙한 색입니다. 질 나쁜 기름을 썼는지 불쾌한 악취가 납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무엇인가 달라질까요. 다만 폭탄처럼 터질 것만 같은데. 방 하나도 골격 하나도 무너뜨리지 못하고 오직 사람 한 명만 박살낼 것 같은데. -태도를 보니 후회하지 않는구나. 잘했어.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줍니다. 아이는 불만을 드러냅니다. 좋은 징조입니다. 아이는 아직 저를 믿고 있습니다. -후회해. 색을 넣는 편이 좋았어. 이대로는 보기에 흉해. -아냐. 우리 딸 잘 만들었어. 어찌 이리 위를 평평하게 했니. -엄마는 바보야. 그거야 자연 법칙이고. 흰 색이 되지 못한다면 성심껏 꾸몄어야 했는데 괜히 고집을 피워서. 딸이 침대에 앉습니다. 저에게서 양초를 돌려받습니다. 자신의 철없는 투정을 만회하겠다는듯이, 모처럼 대견스러운 말을 합니다. -그래도 건강에 좋대. 아로마 오일을 넣어서. 우리도 다시 타오르는 거다, 알지? -난 곧 죽어. 이제 아흔이잖니. -시끄러워. 엄마는 안 죽어. 죽어도 엄마는 내 엄마야. 딸이 제 옆에 붙어 앉습니다. 그녀도 이제 늙었습니다. -난 진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지금도 늦지 않았어. 그래서 말이지, 엄마가 죽으면 난 딱 30년 뒤에 죽을게. 그리고 신문에 커다랗게 부고를 내는 거야. 훌륭한 이 선생 돌아가시다. 그날 신생아를 낳은 사람 중에 가장 예쁜 사람이 우리 엄마라고 기자에게 적도록 부탁할게.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엄마는, 자기 아이에게 내 이름을 붙이면 되는 거다. 알겠어? -그러면? -난 또 엄마 딸이 되는 거지. -관두렴. 넌 나보다 좋은 엄마를 만나야 해. -엄마는 다음생에 더 좋은 엄마가 될 거야. 경험이 쌓이잖아. 우리 딸을 나보다 더 잘 길렀듯이. 아이는, 우리 아이는 탁자 위에 양초를 올립니다. 불을 붙입니다. 저는 만류합니다. 아깝다고, 그 조그만 양초는 너무 빨리 닳고 만다고. 심지에 비해 직경이 너무 넓어, 양초가 다 타지 않고 한가운데만 뻥, 자식 잃은 어미 마음처럼 비어버린다고. -건강에 좋아. 제발, 엄마는 몸 좀 챙겨. 딸이 잔소리를 합니다. 정말 못된 아이입니다. 저는 흰색이 아닌, 꾸미지 않은, 딸이 만든, 다 타오르는 대신 중간에 구멍을 낼, 건강에 좋다는 양초의 향기를 맡습니다. 아이는 기어코 그 동안에도 투덜대고 마는데, 하루는 굳혀야 단단해질 양초를 강사가 시간이 없다며 두 시간만 굳히고 말았다는 겁니다. 저는 원래 우리네 삶이 그렇다고, 굳을 새도 없이 태어나 남의 손아귀에 잡힌다고, 그리고는 아이가 양초를 더 굳힐 시간을 주기 위해 제 몸을 깎는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늙은 어미의 잔소리일 것이 뻔해, 이만 입을 다뭅니다. 빛도 아닌 것이, 향도 아닌 것이, 음도 아닌 것이, 양초에서 나오는 것만 같으나 이 좁은 단칸방도 다 채우지 못합니다.
음... 이번 주제가 양초였으니까, 다음 주제는 생일잔치로!
생일이다. 잔치를 열었다. 초대손님은 없다. 내가 손님이자 주인공이다. 너무 기분이 좋았고, 소원을 빌었다. 내가 죽길바란다고. 내가 태어난 날, 날 누군가 먹어삼켜 없어져버린길 원한다고. 이깟 나따위년 사라져봤자 세상이 슬퍼하지않으니. 그말을 끝으로 나는 손목에 세상깔끔한 직선을 긋기시작했다. 다음 주제 ' 고열 '
형이 앓는다.처음에는 미열로 시작해서 밤새 고열로 번진 모양이였다.애들과 펜션에서 몇박 뒹굴다 오니 그 꼴이 돼 있다.온 몸에 묻은 알코올 냄새를 숨기지 않고 기세 좋게 단칸방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가니 형은 하얗던 얼굴이 발갛게 익은 채로 이불에 파묻혀 있는 것이였다.내가 오자 힘겹게 눈뜨면서 하는 말이 이거였다. "야.......술마셨냐 내가 너 콜록,술마시면 어떻게 한다 했어" 아니 술 마신게 문제냐고.지금. "형 뭐하다가 또 아파?" "술 마시면 어떻게 한다 했냐고,"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결국 내 걱정이다.형이 병을 얻어 올 공간은 딱 세 군데 밖에 없다.공사판,대리 운전,편의점.그중에서 도 제일 악질인....... "소장새끼가 뭐 철야라도 돌렸어?" "어.존나 아프다.콜록,야 너 계속 술 마시고 애들이랑 그딴식으로 놀아봐"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 나오기 일보 직전이다. "그날부로 일 더 잡을거니까." 왜?대체 왜 그렇게 열심일까.형은 늘 내가 너만큼은 대학 졸업하는거 보고 죽을거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본인은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주제에.나이도 겨우 네 살밖에 차이 안 나면서 죽긴 뭘 죽어.내가 형이 그 말만 하면 짜증을 냈기 때문에 요즘은 별로 하지 않는 눈치다.그 대신 형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새벽에는 공사판,늦은 오후부터는 편의점,자정쯤에는 대리운전까지.솔직히 내가 겉돌게 된 건 형 책임도 있다.새벽즘 되서 들어오고 또 새벽즈음 되서 나가는 형을 기다리며 혼자 집에 있는 건 죽어도 싫었으니까. 그저께 친 모의고사에서 난 또 바닥을 기었다.씨발.이딴 놈이 뭐가 예쁘다고. 언젠가 인근 술집에서 대리 운전 손님에게 머리채를 잡히던 형을 본 순간,나는 그만 빡 돌아버렸다.그 자리에서 튀어나가 형을 잡고 있는 손을 꺾었다.경찰서까지 가서 형은 또 죄인처럼 쉴새없이 용서를 구했다.잘못했다면 죄는 내게 있는 건데. 왜 형이. 그날 집으로 가서 차라리 내가 학교를 그만두고 같이 일하겠다고 난리치다 뺨을 얻어맞았다. 형,형은 왜 그러는 거야?왜,친동생도 아닌데 왜.......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구겨넣었다. 몇마디 더 하려던 입술이 바짝 마른듯 잠잠해졌다. "병원은?" "보험 안 되는거 알잖아." 잔뜩 쉰 목소리가 대답했다.형은 다시 눈을 감았다.잔뜩 붉어진 얼굴이 위태롭다. 사람은 열이 40도가 넘으면 죽는다고 했는데.눈앞의 형이 금방이라도 사라질것만 같다. "형 죽으면 안돼." "죽긴 뭘 죽어 임마.갑,자기 애기가 됐네.너,콜록 어릴때 귀여웠는데." "지금은?" 형이 웃는다.기침 사이로 간간히 말하면서도 꽤 힘겨워 보였다. "형 가만 있어.내가 죽 사올게.그거 먹고 병원도 가자." "새끼 다컸네 " 형이 내가 나가기 전 흐릿한 시선을 던졌다.나는 문이 닫기기 전까지 그 시선을 맞추었다. 사거리 죽집으로 달려가면서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다행이 바람이 얼굴에 맞부딪히며 눈물을 식혀주어 죽집에는 멀쩡한 얼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쓸데없이 길어진 느낌이다....... 다음 주제는 평상!
우리집 옥상 한켠에는 커다란 평상하나가 있다. 엄마가 어렸을적 엄마의 아버지.. 그러니까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줬다는 평상. 가난한 시골 농부의 딸인 엄마가 부잣집 아들인 아빠에게 시집올적에 바득바득 우겨 가지고 온 평상. 바람이 솔솔 잘 부는 날이면 옥상에 있는 그 평상에서 우리 세 사람은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펼쳤었다. 너무 낡아버려 이젠 그 위에 올라설수도 없지만 그곳에 깃든 추억을 버리기 아까워 여전히 옥상 한켠에 놓여 있는 평상. 그 평상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따스해진다. 다음 주제는 '지하실'!
'대체 내가 왜....' 새벽 2시 학원갔다가 오는 길 뒷통수를 쎄게 맞고서 정신 차려보니 햇빛이 아주 조금 내려오는 지하실이다. '아프다.. 뒷통수 꼴에 상처는 나지말라고 치료해준건가' 나를 때린 누군가가 상처를 치료 해 주었다. 이럴꺼면 그냥 눈만 가리고 데려가지 굳이 때렸어야 했나? 감옥같이 생긴 창살이 있는 6평 남짓하는 이방. 나만 있는건 아닌듯 여기저기 자그마한 목소리들이 들린다. "여긴 대체 어딜까요?" "암호는 다 푸셨나요?" "그래도 밥이라도 주니까 다행이에요." "내가 살던 방보다 좋은걸요 아예 눌러 살고싶네요 돈걱정 안하고..." " 난 우리집 아이들이 너무 걱정이에요... 어서 풀어야할텐데" . . . 암호? 하긴 나 방금 눈떴구나.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6평 남짓한 방 오른쪽에 꼴에 화장실이라고 분리 해놓은건지 귀여운 칸막이와 좌식변기 그 옆에 세면대가 있다. 왼쪽을 보아하니 누가봐도 나는 침대에요 라고 하는 침대와 누가봐도 나는 책상이에요 하는 독서실에서 쓸법한 책상에 접혀있는 쪽지가 있었다. 쓰라린 뒤통수를 부여잡고 쪽지를 폈다. "햇빛은 15g 시멘트는 30g 휴지는15칸 물은 50ml 어떻게 하시겠어요?" 무슨말이야? 빛은 무게가 없다고 개새끼들아!! 그리고 여기서 무게를 어떻게 재라는거야 사람잡아놓고 이거 납치 감금이잖아 나가기만해봐 일단 뒤통수 후린 새끼부터 똑같이 깜방에 쳐 넣어 줄테다. 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문제 푸신분 계신가요? 정보 공유 좀 해주세요 정도다. 그래도 사람들은 착한건지 무게를 재는 방법과 계량 하는 법 정도는 알려주었다. 이 닭장같은 지하실에 지내고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총 10명. 10명중 제일 먼저 온 사람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그랬다. 문제를 다 풀면 나갈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래 아직 젊고 공부도 하다가 왔으니 이정도는 금방 할 수 있을꺼야. 그리고 당장 뛰쳐 나갈테다. 라는 생각과 이 병신같은 지하실에서 이 사람들과 얼마나 생활을 해야할까 라는 고민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다음주제 : 인형
뜨겁다. 피부가, 피부 아래 근육이, 뼈, 내장, 그 위에 얹힌 신경들이 눌어붙는다. 육신과 정신을 한 데 뒤섞어 주조틀에 들어붓는 느낌이다. 고통스럽다. 물. 물이 급하다. 난 어째서 이딴 짓을 하는거지? 멍청이들. 한 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익숙한 목소리. 누구더라?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영 떠오르지 않는다. 이 빌어먹을 열기 때문이다. 꺼내줘! 빨리! 죽을것 같아! 소리를 질렀다. 목이 아프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긴 했는 지도 모르겠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무섭다. 난 여기서 죽어선 안되는 사람이다. 내게는 숭고한 사명이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 얼굴이 떠올랐다. . 그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설렘이란... 나도 어서 작품을 완성해야한다. 이념과 사상,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이 모든 감정을 쏟아부을 대작을, 나도 만들던 중이었다. 여기 오기 전까진 말이다. 그 작품은 불현듯 떠올랐다. 여느때처럼 전시회 작품을 그리던 와중이었다. 아름다운 곡선. 그 속에 담긴 진중한 메세지. 누구도 도전하지 못할 창의성. 난 머릿속에 떠오른 그 작품이야말로 신이 내게 남긴 사명이라 확신했다. 다빈치, 고흐, 데미안 허스트를 따라 나에게까지 이어진 숭고한 임무. 의심치 않았다. 난 작업중이던 모든 작품들을 다 버리고, 이 작품 하나에 매달렸다. 모두 날 미쳤다고 했다. 동료들은 점점 날 피했다. 내 구상을 무시했다. 멍청이들. 놈들은 항상 그랬다.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가 입버릇이었다. 서로 그린 그림들을 칭찬하며 자위했다. 그 새끼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리라. 돈과 지위와 명예를 넘어선 어떤 경지를 말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우매한 인종들을 일깨워줄 의무가 있다. 그렇다. 난 보여주어야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미학을. 서로의 상처나 핥아대는 꼴사나운 짓거리들을 멈추고 예술을 찬양해야한다. 잠깐.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 작품. 구상. 뭐였지. 방금 전 까지도 작업중이었는데. 정신이 몽롱하다. 예술. 죽음. 뭐더라. 잡힐 것 같으면서도 멀어져가는 이 감각... 야. 걔 소식 들었어? 난 마시던 커피를 잠시 내려놓았다. 누구? 걔 있잖아. 왜 맨날 혼자서 작업하던 걔. 아 걔. 모를 리가 없다. 뉴스에도 나왔던 일이다. 하지만, 별로 달갑진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와 하기에는 너무 음침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내 심중은 거들떠도 안 보고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대학 시절에도 이런 괴담들을 좋아했다. 정말, 난 걔가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상상도 못했어. 원래도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참 나, 항상 우릴 깔보듯 보고 말야. 정이 가는 놈은 아녔지. 확실히. 그래도 자살할 줄은 몰랐어. 정말. 글쎄. 근데... 그녀가 내게 몸을 기울였다. 목소리를 낮추고는 걔가 유언장에 뭐라고 써놨는 줄 알아? 하고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작품 카탈로그를 써놨대. 카탈로그? 그러니까, 작품 제목하고 의미하는 바를 써놨다는거야. 어떤 작품? 왜, 걔, 마지막에 화덕에 들어가서 죽었잖아. 석고를 치덕치덕 바르고. 그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근데? 유언장에 적힌 작품 제목이, '인형' 이었다나.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재치있는 말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말을 했지만, 난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별로 구미가 동하는 이야기도 아니어서 아 그래? 하고 넘겼을 뿐이다. 그녀는 김이 샜다는 표정을 했다. 다음 주제는, 위에서 고열을 재밌게 봐서 형제 로 합시다
'큰 형 편지야.' 막내가 흰 봉투를 던지듯 건넸다. 편지 주인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그저 목적지와 이름 석 자 만이 버젓이 적힌 심심한 것이었다. 막내는 썩 내키지 않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는 '난 싫어.' 라고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이내 자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싫을 만도 하지. 봉투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편지를 빼내었다. 가로로 4번 반듯하게 접힌 종이는 습기 때문에 조금 눅눅했다. 열어보지는 못했다. 용기가 나지 않았을 뿐더러 사실 내용이 빤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해보자면 형의 필체를 보면 창피하게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희미하게 멀리서 들리는 빗소리가 우울했다. 가지런히 접힌 편지의 모서리를 보다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천천히 뱉었다. 어찌나 꼭꼭 접어놓았는지 온전히 펼쳐지지 않았다. 집에 봉투가 남았는가, 펜은 서재에 있을텐데. ** 편지가 와서 놀랐어. 사실 잊고있지 않았다면 그건 또 거짓말이거든. 막내는 싫다고 방에 들어가버렸는데 걱정은 말아, 제 호기심 못이겨서 찾아볼 게 뻔하니까. 우리 막둥이가 좀 착해. 용서는 빌지 마.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어, 형. 우리 모두 솔직하지 못했던 것 뿐이야. 내뱉고 적고 울 줄만 알지 전하고 받는 걸 배우지 못했잖아. 그러니까 사과하진 말아줬음 좋겠어. 죄라고 치부하고 감정을 홀대하지 마. 나도 막내도 자랐고 이제 배웠으니까 이제 나아지겠지. 우리도 점점 더 괜찮아 질 거야, 형. 여긴 심심하면 비가 오는데 거긴 어때? 똑같나? 막내는 요새 요리에 맛이 들렸나 봐. 날이 갈수록 솜씨가 늘고있어. 이제 슬슬 얼굴 좀 비춰. 오라고 강요는 안 할게, 막내도 정리할 시간이 좀 필요할거야. 형도 그렇겠지. 장마 그치고 낙엽 질 때쯤에 다시 한 번 더 편지할게. 안녕. 다음주제는 새벽!
ㄱㅅ
곧 알았다, 나는 과분하게도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구나.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침을 삼키기를 계속한다. 세 도막의 스케르초가 오직 피아노 하나만으로 연주된다니. 이런 떨림은 단수의 악기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앞의 관람객을 본다. 뒤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전화로 피아니스트를 찍고 있다. 무례하다. 분명 가문도 없는 졸부겠지. 마침 손을 들면 그의 머리를 떄릴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앉아 있다. 그러나 참자. 레닌이 말하기를, 베토벤의 음악은 마땅히 맞아야 할 자들을 보듬어 주고 싶게 한다 하였다. 영광스러운 자리다. 16분 음표의 트레몰로가 들린다. 사람들은 지금 저 명망 높은 피아니스트만을 보고 있다. 그러나 틀렸다. 이 곡을 지은 이는 다름 아닌 내가 후원하는 예술인인 것을. 피아니스트는 악보에 담긴 기교의 채 절반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병에 걸렸다며 자살 시도까지 했던 그녀를, 나는 어르고 달래 예술적 열망을 회복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꽃이 핀 것이다. 베토벤으로 치자면 영웅 시대의 개막이다. 발트슈타인 소나타가 공개된 순간인 셈이다. 이제 우리 가문의 구호가 예술 작품의 제목이 되어, 문명에 새겨지겠구나. 나는 당연하다는듯 담담히 받아들인다. "어떠셨나요?" 그녀는 특실에 있다. 한강이 보이는 위치다. 오한이 드는지 가디건을 걸치고, 싸구려 녹차를 들고 있다. 나는 지갑에서 명함들을 꺼낸다.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이야. 모두가 앞다투어 자기 이름을 건네려 했지." 그녀는 창문을 연다. 내가 문을 닫지 않은 탓에 바람이 강하게 분다. 그녀의 건강이 악화될까 걱정되어 다가갔더니, 그녀는 나를 만류한다. 투신을 막기 위해 쇠창살이 걸려 있다.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이 싫다 하여, 창살은 매끄럽지 않은 재질로 되어 있다. 그녀가 손톱으로 티백을 꺼낸다. 창살 사이로 던져 버린다.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베토벤이라더군. 들었어? 베토벤이라고." "그런 칭찬이야 잡지 호마다 거듭돼요. 신진 예술가의 이름만 바뀌지요." "서둘러. 소나타 이름을 확정지어 전해 주어야 해." 그녀는 발로 차인 말처럼 나를 바라본다. 가소로움과 경외심이 뒤섞여. "저는 정했습니다. 아실 텐데요. 가문의 구호를 그대로 쓰겠다고." 카펫을 보고 있었다. 실이 눈에 보이던, 눈만으로도 모든 실을 쫓을 수 있을 것 같던 투박한 카펫을. 그녀의 말이 들린다. "제 마음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제목이란 것이. 베토벤 운운 거리는 평론가들에게는 더더욱." "어째서야?"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백작에게 헌정되어 발트슈타인 소나타라 불리지만, 프랑스에선 새벽 소나타라 불리죠." "그게 어때서 말이지?" "베토벤 영웅 시대의 시작이잖아요? 부자에게 반항하기를 낙으로 삼는 비평가들은 재벌에서 잘려나간 가문과 엮일 바에야 반항하는 제스처를 취할 거예요. 저희가 정한 제목을 쓰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원하신다면 길은 있어요." 그녀가 권한다. 나는 묻는다. 그녀가 답한다. "제가 발전하지 않는다면 비평가들은 소나타 제목에야 연연하지 않을 겁니다. 가문의 구호가 문제 없이 정착하겠죠." "하지만 그런다면." 그렇다면 역사에 남지 못하게 되지 않니. 나는 속물 같은 말을 참는다. 그녀의 의도는 무엇인가. 자신의 새벽을 내 가문의 이름으로 덮는다면, 자신은 더욱 나아갈 수 없다는 일종의 협박인가? 그녀가 싸구려 포장지에서 싸구려 녹차 티백을 꺼낸다. 갑자기 티백을 씹는다. 송곳니를 내보이며, 그러나 종이가 찢어지지 않을 만큼. 그러더니 선언한다. "다른 곳에서 후원 제의가 왔어요." "설마." 나는 떤다. "네. 거기요. 재벌 쪽에서." 당신의 아버지가 밀려난 그 재벌요. 나는 말해진 적 없는 말을 듣는다. 이 이상 이곳에 있다간 허물어질 것 같아, 나는 서둘러 일어선다. 지갑도 명함도 병실에 둔 채로. 우리 가문에 굴러들어왔다 떠났던 돌을 잊기로 했다. 병원을 나오며 벤치에 주저앉았더니 가슴이 아프던 환자가 누웠다 갔는지 따뜻하더라. 걱정 말자. 돈으로 치료를 받을 것이다. 순간, 이 나라에 사는 사람 중 내 적과 결탁하지 않은 자가 있나 싶더라. 이 대지, 저 하늘마저도. 과분한 바람이었다. 곡의 이름은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새벽 그룹의 이름을 따, 새벽 소나타가 될 것이다. 재능과 자본이 결탁한 장에서, 애매한 자리에 놓인 우리 가문이 들어설 길은 없었다.
다음 주제는 관람차
[관람차] 자료를 찾아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침대 밑, 책꽂이의 위부터 아래까지, 책상의 서랍들과 옷장 안에 넣어둔 각종 상자들, 거실에 놓여진 선반위와 온갖 물건들을 박아 넣어놓은 작은 방까지. 결국 자료를 발견한 곳은 가방의 한켠이여서 허탈했다. 그렇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던 건 아니였다. 우연히 찾은 앨범 한 권. 기억도 하지 않고 있던 앨범은 과거의 추억들을 꺼내기 딱 좋은 물건이였다. 표지를 넘기자 가장 먼저 보이는건 '사랑하는 내 아들의 첫 앨범'이라는 글귀. 동들동글한 글씨체와 끝이 둥그스름한 펜은 퍽 잘 어울려서 절로 웃게 만들었다. 다음 장을 넘겼다. 빨갛고 쪼글쪼글한 못생긴 아기. 저렇게 작았던 내가 벌써 이렇게 커버려 곧 있으면 저렇게 생겼을 아이를 보는 입장이 되었단 것에 감회가 새로웠다. 첫 사진을 필두로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점차 커가는 모습과 달리 갯수가 점점 적어지는 것을 느끼며 진한 아쉬움이 몰려들었다. 후회는 언제나 늦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늘 남는건 사진밖에 없다며 이리저리 사진기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찰칵거리는 셔터음이 뭐가 그리도 마음에 안들었었는지 중, 고등학교때의 사진의 얼굴은 미묘한 표정이 가득이라 뿜어버렸다. 젊은 부모님의 표정은 밝았다. 햇볕에 인상이 찌푸려진 사진 몇 개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햇볕에 의한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이건 챙겨둘까." 어느덧 마지막 장까지 전부 본 뒤, 중간에서 조금 뒤에 있던 사진 한 장을 꺼내 조심스럽게 지갑 안에 넣었다. "뭘 챙긴거에요?" "아, 당신. 언제 왔어요?" "내가 먼저 물었는데 질문으로 대답하기 있기, 없기?" "아하하.. 별것 아니니까요. 그냥 사진 한 장이죠 뭐." 내 말에 바로 눈을 빛내며 표정으로 재촉하는 이사람의 모습에 방금 집어 넣은 사진을 꺼내어 보기좋게 들어올렸다. "가족끼리 관람차를 타러가서 찍었던 사진이에요." "잘찍혔네요. 아, 그러고 보니.. 언제 한 번 내려오라고 했었는데. 주말에 갈까요?' "당신이 괜찮으면 난 좋은데요." 당연히 괜찮다며 어깨를 툭 쳐오는 행동에 눈을 휘며 웃었다. 이제부터라도 사진은 계속 찍으면 되니까. 아주 유익했던 시간이다. 다음주제 : 어린시절의 꿈
어릴 때 꿈은 아이돌이었다. 춤추는 언니,오빠 혹은 내 또래의 아이돌을 보며 즐거운 망상에 사로잡혔던 나다. 나는 데뷔하면 메인보컬이 될까, 아니면 랩을 할까? 아니면 춤? 귀엽거나 오글거리는 건 잘 못할테니 멋있는 걸 할까?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나는 '꿈'만 꾼다. 다음주제:녹색
항상 높디 높던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름모를 녹색의 푸르른 나무들이 아른거렸다. 언제나 시원한 추억을 선사해주던 그 푸르던 나무들은 어느새 봄,여름을 지나 가을에 도착해 잎들이 찬란한 빛을 잃었지만, 내 머나먼 기억 속 파편 한 자리에는 어딘가 짙은 녹색빛을 띤 빛줄기들이 각자 열띤 빛을 내며 기억하고자 발버둥 치리라. 기억하리라. 내가 올려다본 하늘의 높던 푸르른 녹빛을, 가볍게 얼굴을 스치던 잎들의 손길을, 조용히 그늘을 내어주던 넗은 품을 녹색이 하늘을 물들일 날, 나는 잊지 않겠다. 다음 주제: 무지개
다음주제: 무지개 하늘이 우중충 하내. 혼자 내 방에서 밖을 내다봐. 안녕. 하늘의 비구름아. 창문위에 덮힌 끈적한 무언가에게도 인사를 건냈다. 무언가. 비오기 전 창문에 손을가져다 대고 쭉 그어보면 비가 내릴때와 다른 끈적한 불쾌감이 든다. 그리고 나는 그 끈적한 무언가를 창문에 덮힌 무언가라 부르기로 했다. 사실 끈적한것은 내 손가락일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무언가라 지칭한 것은 장마에 흘린 습기 일지도 모른다. 또 그렇다면 사실 내가 인사를 건낸 무언가는 나 자신일지 모르고 나는 내 자신에게 인사한 꼴이 되고 만다. 또한 그 무언가란 장마에 의해 태어난 꼴이니 장마또한 어떤 그 무언가 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 장마를 계절에 하나로 포함 시키자. 그렇다면 또 장마란 여름의 모든 시기질투를 안고가는것이 되어버린다. 사람들은 비가 습하고 덮게 내리는 날은 유독 여름이라고 하지 않고 장마때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장마란 그런것이 아닌가? 문득 나는 창문을 닦아 무언가를 지워보려고 했다. 닦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빗방울 지나간 흔적이 있었는대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 이것은 장마 때문일 것이다. 머침 뒤를 돌아보니 친구가 나를 보고 싱긋 웃고 있었고. 아마 내가 창문을 닦는사이 들어온 것 같았다. "뭘 그렇게 열심히 닦는거야? 어차피 비가 올거같은대" 나는 무언가를 지우려 한다고 대답하기 사뭇 망설여져 이렇게 말했다. "비오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려고." "하하하, 정말 너다운 놈이라니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창문을 닦았다. 빗방울 자국을 하나도 남기지 않기 위해 세세하게 닦아나가느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하는수 없이 나는 손가락을 창문에 대고 죽 그어보았다. 아까의 끈적한 불쾌감은 사라졌지만 그것은 내가 창문을 세세하게 닦았기때문인지, 아니면 비거 내리기 시작해서 인지 알 수 없었다. 또 뒤를 돌아보니 웃고만 있을줄 알았던 친구는 나를 아련하게 바라보며 가볍게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래, 오늘이었나." 나는 말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충동적으로 대답했다. "그래" 무언가 고개를 푹 숙여야할 것 같은 압박감에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친구의 반응을 살폈다. 사실 바닥을 보며 끈적한 무언가에 대한 행방에 대해 좌뇌와 우뇌가 나뉘어 열띈 토론 중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게다가 딱 오늘같은 날이었지. 벌써 일년이라니. 지금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나를 반겨줄 것 같은데." 좌뇌와 우뇌는 아직 행방을 찾느라 바쁜나머지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참 예뻣는대." 나는 너무 많은 생각에 어지러움을 느꼈다. 토할것 같은 생각에 미간을 짚었다. 미간이 끈적했고 내 손은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찾아 눈을 비볐다. 아마 끈적한 것은 눈물이었다. "울지 말게 친구,나도 슬퍼지잖아."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계속 눈를 비볐다. 눈이 아파왔고 나는 다시 끈적한 무언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는 사이 친구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울고 있었다. "너는 왜 우는대" 내가 묻자 친구는 침묵으로 답하는듯 하더니 입을 열고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가 먼저 좋아했다." "뭘?" "시연이" "..." 한동안 침묵이 계속 되었다. 나는 침묵이 계속될거같아 다시 바닥을 보며 이번엔 시연이에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하지망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행복하게 보내줘서 고맙다.아니,이런말 하는것도 우습내, 처음부터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었는걸" 나는 침묵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 손은 덜덜떨리고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오열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고 또 다시 내 왼편의 뇌는 그래야만 할것같은 이유와 분위기에대해 논의 하고 있었다. 사실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그렇게 슬픈일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장례식장에는 나의 부모님과 장모님과 장인어른과 나의 친구와 그녀의 친구와 나와그녀의 친구와 친척들이 와있었고 그런 분위기는 나에게 퍽 슬픈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슬픈것이 맟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장례식에서 나오는 찬송가 대신에 가요나 발라드가 들렸다면 나는 그때 울지 않았을까? 그녀가 죽던날도 오늘처럼 비가 오던 날이었다. 피곤하던 나를 졸라 창문을 깨끗히 닦게 하고 꼭 내 무릎에 누워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었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말,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는말, 자기 죽으면 꼭 좋은 사람 만나라는말. 그녀는 창백하고 또 창백한 얼굴을 하고선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냐를 바라보면 하염없이 머리를 쓸어넘겼었다. 그때 그녀가 무지개를 보고 싶다고 내게 말했었는대. 만약 그녀가 무지개를 봤다면 나는 정말로 슬펐을까. 사실 정말 어떤 감정이 솟아 올라 눈물을 흘렸다명 그건 하나의 감동이 아닐까. 좀 이따 쓸래 다음주제~ 스펙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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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거기서 뭐하니?" "정리하고 있었는데...뭔가 잘못이라도 했나요?" "위험하니까 나와. 여긴 적어도 1년이상 있던 사람이 정리해야 하는 곳이야." 약간의 인상을 지푸린 여자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눈치를 보던 남자가 여자의 행동에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듣기만 해도 소심해보이는 목소리에 여자가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려는지 목을 가다듬고 방금 전, 급했던 것과 달리 약간 느릿하게 말을 했다. "아냐. 이번에 들어오게 된 신입이지? 네 담당이 있었을 텐데 안알려 줬어?" "담당자분이 바빠보이시더라구요.. 그래서 아마 깜박하신게 아닐까요? 아! 물론 다른것들은 다 알려주셨어요." "그래?" 조금 더 부드럽게 하려던 노력이 통했는지 내내 바닥과 주변의 벽만 흘끔흘끔 쳐다보던 남자의 시선이 여자와 맞았다. 양 손을 모아 붙잡고 연신 손가락을 문지르던 남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화가 끝나고 남자가 슬그머니 청소용품들을 정리해 품안에 한아름 들고 방 밖으로 나왔다. 여자가 입꼬리를 끌어당겨 살짝 웃어보이고는 남자의 어깨에 손을 탁 올렸다. "우리 연구소에 온 걸 환영해, 신입. 앞으로 종종 보게 될꺼야. 내가 여기 머리거든." "아...! 그, 머리라면.. 설마, 그 유명한 약 그거, 그그!! 암튼 만드신 분인거죠?" 허공만 바라보던 남자의 눈이 반짝이며 여자를 향했다. 여자가 어깨에 올렸던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하하, 그렇게 목소리 크게 낼 수도 있네? 아무튼. 어서 가봐. 저녁시간 끝나겠어." "선.. 배님께선?" "먹고 왔으니까. 실험복 입고 볼 날을 기다릴께." "가보겠습니다!" 식당으로 향하는 남자를 보던 여자가 뒤돌아 자신에게 주어진 개인실로 걸어갔다. *** 다음 주제는 [주작(사방신의 주작.< o >/ 없는 사실을 꾸며 만들다의 주작이 아님)]
그날의 일이 꿈이였는지 현실이였는지는 몇년이 지난 지금도 구분 하지못한다 현실이라 하기에는 내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였고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생생했으니깐 그날 내가 본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붉은 새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것이였고 그새는 마치 불에 휩싸인듯 하지만 불에 타는것이 아닌 불을 지배하듯이 보였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나는 말을 잃었고 홀린듯 그것만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린곳은 내가 그것을 보았던 창가앞 해는 이미 떠올랐고 급히 인터넷을 뒤져 그새로 추측할수있는 새를 찾았다 주작 동양의 전설 속의 새 그날 내가 본것이 진짜 주작인지는 모르겠으나 난 평생 그날의 기억을 잊지못할것이다 다음주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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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아직 하는거임..?
사람은 추악하다. 언제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신을 제외한 이들을 깊고 깊어서, 결코 빠져나올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어버리려 노력한다. 자신이 올라가기만 해서는 부족하니까. 자신이 위로 향하면서 동시에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을 잡아당겨 넘어뜨리고, 그걸 추진력 삼아 더 위로, 더 위로 향한다. 사람은 그 누구나가 연기인이다. 언제나 자신의 진정한 얼굴 위에 가면을 덧대어 쓴다. 타인을 대할때마다, 그 가식적인 미소가 걸린 가면을 뒤집어쓴다. 타인이 가면을 쓰는걸 가식적이다, 라고 표현하면서 본인 역시 가면을 벗지 못한다. 사람은, 외로움을 많이 탄다. 본인의 반려, 자신과 함께 해줄 인생의 동반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똑같이 외로움 타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한다. 제 아무리 노력해도, 제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은 완벽하지 못한다. 사람은, 애초에 완벽할수 있도록 설계된 몸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 세상 모두는 본인만의, 어떤 의미에서는 완벽하며, 누군가가 보기에는 완벽해 보일터이다. 사람은, 비참하다. 추악하게남들을 짓밟고 선 그 위에는, 과연 뭐가 있을까. 그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어떠할까. 자신이 지금까지 끌어내린 사람들과, 자신을 끌어내리려 미친듯이 욕설을 내뱉으며 쫓아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을 애써 무시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은 더욱더 위로 향해야한다. 연기인이 쓰는 가면은, 영원하지 못한다. 가면에는 금이 갈것이고, 이내 부서져버려, 더 이상 가면을 쓸수 없게 될것이다. 새로운 가면을 구한다 해도 결국 다시 부서져 버릴 것이다. 사람은, 불편을 감수해가며 평생 가면을 바꿔가며 계속해서 자신의 얼굴에 덧댄다. 외로워서 찾은 나의 반려자, 그 사람과 함께하는 인생이 언제나 행복할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 끝이 좋을 것이라는 보장따위, 어디에도 없다. 사람은 평생토록, 그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못하거늘,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죽도록 노력한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의 일면만을 보며 남들이 알아주지도 못하는 곳에서 발버둥치며 노력한다.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그 사람은 만족치 못하리라. 사람은, 이 무한의 굴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산다. 그들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사람은, 비참하다. 스레는 오래전꺼지만 뭐.. 심심해서 써봤어. 다음 주제는 하늘.
구름이 떠있는 하늘. 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별들이 가득한 밤 하늘. 나는 하늘 중에서 밤 하늘, 별이 정말 많이 보이는,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저 단어가 좋다. 알고 지낸 사이가 길어 그녀에게 나는 단지 친구라는 한 단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 그녀는 단어로 나열할 수 없는, 말로 꺼낼수 없는, 한 사람이다. 그녀와 알게 된 첫 날은 중학교 1학년이던 여름방학. 내가 사는 동네는 학생들보다 주로 노인분들이 많이 살고 계시는 동네여서 이 근방에서는 나이가 어린 사람들을 찾는게 힘들다. 우리 부모님은 요양원에서 노인분들을 돌봐드리는 일을 하고 계셔서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이곳으로 이사왔다. 이후로 쭉 살고 있어서 누가 어디 사는지, 나이가 어린사람들이 누군지, 몇 명인지 알고있었다. 방학만 되면 부모님을 따라 요양원에서 도와드렸는데 같은 반 애를 봤다. 우리 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던가에 의문을 가졌지만 부모님을 도와드리는게 바빠서 이를 미뤘다. 오후가 되고 날이 선선해지자 몇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맞았고 나도 요양원 밖 자판기 앞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옆으로 오는 사람 기척이 들리자 마시던 음료를 들고 벤치로 갔다. 신발을 벗고 자리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며 마시고 있었는데 내 옆에 누군가 앉았다. 아까 봤던 같은 반인 밤 하늘. 먼저 인사하는 그 애가 나를 보고 웃었다. 박장대소처럼 눈물이 나오는 웃음이 아닌 미소가 담긴 웃음을. 내겐 친한 친구가 없었기에 내게 웃어주는 또래 사람은 처음이었다.그녀와 대화를 하며 사람과의 대화가 이렇게 좋은거구나를 알게되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서도 먼저 인사해준 그녀가 너무 고마웠고 행복했다. 어두웠던 학교 생활은 그녀 덕에 밝아졌고 어딜 가도 그녀와 함께 했다. 그녀와 같이 있다보니 친구들도 생기고 내 얼굴에 생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며 하루하루 보냈다. 어느 덧 그녀와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머지않았을 때 그녀는 나에게 한 이야기를 알려줬다. 동화에 나올 법한 열린 결말의 이야기.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요양원에서 매일 같이 있었다. 부모님께서도 그녀와 같이 있는 나를 보며 웃으셨지만 걱정하셨다. 그녀의 사정을 아시는 부모님은 나에게 그녀와 오래 있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그 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싫다고 소리치고 그녀에게 갔다. 이를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부모님이 옳은 소리 하신거라고 말했다. 그에 나는 슬펐고 그 날은 그녀와 같이 있지 않았다. 며칠 뒤 부모님은 내게 잠시 할머니께 가 있으라며 기차표를 주고 역에 데려다 주셨다. 그녀와 대화하고 싶었지만 그 일 이후로 그녀에게 갈 용기가 자꾸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의 말씀에 알겠다 대답하고 기차를 탔다. 한 달 정도 할머니댁에 지내면서 밤에 꼭 하늘을 바라봤다. 그녀가 보고 싶었고, 그녀에게 말 하고 싶은게 많았으니까. 다시 올라가면 그녀에게 말해야겠다며 다짐하며 한달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요양원으로 갔다. 우리가 항상 앉았던 자리에 그녀가 없자 나는그녀를 보고 싶음 마음이 더 커졌다. 요양원에 있는 곳은 모두 찾아봤지만 그녀가 없었다. 늦은 오후, 일을 마친 부모님께서 집에 오셨을 때 그녀는 어디있냐 물어봤지만 부모님은 내일 알려주겠다며 지금은 이야기하지 말자고 하셨다. 다음 날 아침부터 부모님께 계속 그녀에게 가자고 말했고 13시 10분에 그녀가 있다는 곳에 도착했다. 그 곳은 이름과 사진이 있었고 그것들 옆에 꽃다발이 들어가 있는 곳이였다. 왜 그녀가 있는 곳이 여기인지 부모님께 물어보자 그녀는 내가 할머니께 가 있던 그 한 달안에 하늘로 갔다고 했다. 그 말에 눈물이 쏟아지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후회하며 그녀와 같이 있는 날이 얼마없었다는걸 나중에 알고나니 너무 심장이 아팠다. 부모님은 그녀가 남긴 종이 한 장을 나에게 주고 이게 그녀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며 벤치에 가서 읽으라고 했다. 우리는 요양원으로 가서 나 혼자 벤치에 앉아 그녀의 선물을 읽었다. 선물안에는 그녀가 졸업하기 전 들려줬던 이야기. 그 당시에는 열린 결말이었지만 선물에 적힌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로 끝났다. 그리고 맨 밑 한 문장에 눈물을 쏟으면서 소리내서 울었다. '내 마지막 이야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그녀에게 빨리 고백할걸, 그녀와 더 있을걸 같은 후회와 슬픔이 몰아쳤고 빈 자리가 너무 커서 더 눈물이 나왔다. 매년 13시 10분. 그가 그녀에게 꽃과 편지를 주러 오는 시간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벤치에 그녀만을 생각하는 그가 앉아있다. 잘 쓴건지 모르겠지만..음 다음 주제 : 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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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비오듯이 오는 여름날의 체육대회 대체 왜 언제부터 시작 한 건지 모르는 체육대회 시즌은 매년마다 돌아온다 대부분의 반 학생.들은 좋다고 소리 치겠지만 아니다 체육대회 라 봐야 우리 학교 에서는 소외 당 하는 애들은 교실에 있으라는 식 이고 흔히 반에서 절반만 나가는 형식이다 보니까 친구도 없는 나같은 애들은 마땅히 할 것도 없어 교실에 남아서 자는수밖에 내가 열등감에 찌는 애 라는건 잘 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나를 포함해 교실에 있으러는 애들까지 포함 시켜서 외로움을 덜으려 하고 있으니까 어쩔수 없는건 나라는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을것이다 여기가 책으로 비유 하자면 나는 상황에 이용당하는 인물에 불과 하겠지 앞으로 일주일 뒤면 시작되는 체육대회에 체육시간 연습을 취하려 수근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상위에 침울한 얼굴을 숨겼다 한참을 자다 일어나보니 교실안은 몇명의 애들을 제외한 나머지 애들은 운동장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엎드려있어서 뻐근한 목을 감싸쥐고 땀에 젖어 추레한 몰골로 일어났다 시선이 따가운거야 그렇다 치고 복도로 걸어나갈려는데 복도쪽 맨 끝자리에 책상을 겹치고 누워서 자고 있는 애가 보이자 난 깨워야 하나 마냐에 생각이 갈렸다 다른애들은 자기들끼리 얘기중이고 누워있는 애닌 이재현 이어 달리기 출전종목에 지원한 애였다 반듯한외관과는 여러모로 다른 애여서 그런진 몰라도 다이젠 저렇게 냅둬도 깨워주지 않는건가 밖에서는 연슺경기가 이어질거였다 한숨을 내쉬도 다가가서 손을 뻗어서 옷 가지를 잡은 동시에 계속감겨있던 눈이 떠지고 내 손은 내쳐졌다 방금까지 자고 있던 행색과는 다르게 반사적으로 일어난 재현은 잠에서는 덜 깼는지 얼굴을 감싸며 물었다 지금 몇시야 몇시더라 소매를 걷어 시강을 확인했다 1시 18분 그말에 이재현은 가방을 매고 일어섰고 내 팔을 잡았다 넌 안나가? 어디를 체육시간 연습 한다고 그러지 않었어? 아니 난 출전 안하는데 충전도 안할거고 잠이나 잘려 그랬는데.그런 나 의도를 다르게.해석했는지 이재현은 곤란하다는듯이 다시 물었다 너 안나간다고? 응 안나가 이재현은 골돌히 뭘 생각 하는듯이 머리를.듥적이다가 다시 교실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을때 아까의 모습과는 다르게 기분좋게 가방까지 챙겨맨 이재현은 내가 웃으면서 가방을 내밀었다 그럼 째자 뭐? 학교 째자고 체육대회 나도 안나갈거거든 아 난 순식간에 휩쓸려서 복도 교무실 1층 복도 교무실 현관 까지 쓸려갔다 무더운 여름의.햇살처엄 바스라질거같던 상황에서 빠르게 뛰는 내 손을 잡은 상대방 처럼 앞으로 달려가는 이 상황을 생각하니 이번여름은 좀 다를거강다 다음 < 마트>
이 마을은 정말이지..변하질 않는다 - 저벅저벅 카트를 끌고 장을 보는 와중에도 수많은 눈길들이 나를 따라다니는걸 느낄수있었다 - "(소곤소곤) 쟤야 쟤!" 세제코너 앞에있던 사람들의 입이 마치 어린시절 종이로 만든 '동서남북 놀이'처럼 많은 입들이 이리저리 삐쭉거렸다 "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저 눈들... 저 눈들은 마치 형체없는 칼같이 소리없이 다가와 내 심장을 향해 마구 내려꽂는다 다음 주제
태어나서부터 몸이 부쩍 약한 나에게 엄마는 목걸이 하나를 쥐어 주셨다. "이건 행운의 목걸이야. 목에 걸고 다니면 내게 좋은 일을 가져다 준단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어린시절부터 그 목걸이를 걸고 다녔다. 정작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데 말이다. 왜 내게 엄마라는 행운은 오지 않는 걸까. 나는 그런 현실을 원망하면서도 유일한 유품을 놓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히 그 목걸이를 팔아야 할 일이 생겼다. 전당포에 맡길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아는 친구에게 맡기면 돈을 더 챙겨주지 않을까 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나 이거 팔고 싶은데 좀 봐줘." "안돼. 이건 못 팔아" 그런데 예상외로 친구는 거절했고, 나는 화가 났다. "왜? 죽은 사람이 쓰던거라 못 쓰겠냐?" "아니..그게 아니라.." 친구는 우물쭈물 댔다. "왜 그래?" "그거 우리 엄마한테 준 건데..." 다음 주제
'쓸쓸하구나.' 한때, 나는 많은 관심을 받았었다. 어떤 때는 아나운서의 차분한 목소리로, 어떤 때는 아침 프로 진행자의 정다운 목소리로, 어떤 때는 인기 가수의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내가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모두 나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도색은 다 벗겨져 여기저기 얼룩지고, 버튼은 눌리고 눌려 닳아졌고, 개구쟁이 아이 손장난에 안테나는 부러지고, 심지어 몇 번은 바닥에 떨어져서, 소리를 내면 듣기 싫은 잡음이 딸려 나왔다. 이렇게나 망가진 나였지만, 거실의 한가운데에서 날 치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그런데 언젠가, 고장 난 나를 대체할 더 좋은 기계를 들여왔다. 바로 티브이었다. 녀석은 비단 소리만 낼 뿐 아니라 직사각형의 화면에서는 울고, 웃는 사람들이 잔뜩 나왔다. 번쩍이는 불빛으로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매료시켰다. 녀석은 당당히 내 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자연스레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창고방으로 나를 밀어 넣고 다들 나를 모른 척했다. 그러는 새에 나는 먼지 뽀얗게 쌓인 고물이 되었다. 아아, 다시 말하고 싶다. 놀라운 소식을 알리고, 인사를 건네고, 노래 부르고 싶다. 그렇지만 이제 낡은 고물에게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겠지. 쓸쓸하구나. 다음 주제
제비야, 제비. 저 인간은 멍청이요. 지가 누군가를 도우며는 흥부가 되어 제비가 날아올 줄 아는가 보오. 멍청이요. 저 인간은 세상에 박씨따위 없다는 것을 모르오. 이 땅에 심을 박씨래야봤자 가벼운 복권을 긁어보는 작은 희열뿐인것을 그는 그렇게도 좋다고 여기오. 그는 똑똑치 못하다고 다들 말하오. 저 인간은 세상에 제비가 많다는 것은 알지만 제비보다 제비 새끼를 물어죽이는 뱀이 더 많다는 것을 모르오. 단순히 수를 세어보면 분명 제비가 더 많을지는 몰라도 뱀은 한 마리마다 머리가 두 세 많으면 몇 대가리씩 달려있어 고개 한번 까딱만 하면 제비따위 수십마리 물어죽일 수 있다는 것을 저 치는 모르오. 멍청이요.
아 진짜 싫다 남자친구와 한바탕 싸우고 헤어지는 길이었다. 그렇게까지 싸울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서로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언성만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추악해 보이는 제자신과 그가 싫어 도망치듯 빠져나온 거리였다. 멍하니 걷기만 하다가 정신을 차려서 그런지 주변이 소란스러움을 뒤늦게 알았다. 원체 저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아 어디를 가든 이어폰을 쓰는 편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려 가방문을 열때 즈음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네가 아무리 불러도 듣지 못한 내 이어폰을 빼며 처음 만난 우리였는데. 다른 무엇도 방해할 수 없다는 듯이 둘만의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전화도 하던 우리였는데. 결국 싸울때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눈물이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가방에서 꺼낸 이어폰은 이리저리 엉켜 있었다. 다음주제 (저물녘)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대체 이 사람은 언제 오는 걸까. 점심을 먹고 하루종일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분명 금방 가겠다고 전화까지 해놓고선.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살리기 위해 방금 빈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몇시간 전부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전원이 꺼져있는 듯 했다. 왜 이렇게 미련스럽게 기다리는 건지...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상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내용물이 험하게 다뤄지는 걸 주인이 보면 미쳤냐고 욕을 하겠지. 하지만 나도 너에게 욕할 건 많단 말씀이야. 반지 두개도 말없이 동의할 걸. 내 것도 아니지만. ...내 것도 아니지. 그런 걸 왜 나보고 맡긴건지 원. 아무리 내방에 두고 갔다곤 해도, 집을 찾아와서 알아서 가져가든가 해야지. 까짓 비밀번호 얼마든지 누르면 되는 걸. 투덜거리는 동안 해는 뉘엿뉘엿 지평선을 이불삼아 저물어가고 있다. 에휴, 피곤해. 나도 이불덮고 자고 싶다. 이게 다 그녀석 때문이야. 피곤하게 남 커플링 가지고 사람을 만나자고 하고선... 연인과 함께 서글서글 웃던 그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음, 설마 나를 까먹고 데이트라도 간 건 아니겠지. 그 녀석이라면 있을법한 일이었다. 한숨을 푹 쉬었다. 하늘이 붉구나. 나는 왜 기다리는 걸까. 이 황금같은 주말에 하는 일이 없기도 했고, 날씨가 좋아서 산책을 하고 싶기도 했고... 그리고... 손안에 있는 상자를 한바퀴 굴렸다. 이걸 보면 마음이 붉게, 붉게 잡아먹을 것처럼, 이글이글, 혓바닥을 낼름거리는 독사같이 타들어가는 마음이... 마치 내 것인양...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그런 걸 생각한 건 아니었지. 다만. 작은 상자가 염주마냥 또 손안에서 한차례 굴렀다. 보는 건 오늘로 족한 거지. 그걸로 충분하고, 저물 때도 됐고. 녀석이 늦지 않게 도착했으면 좋겠다. 이제 하늘도 저물녘이니까. 다음 주제
아 ㅅㅂ 1시간 쓴거 날아갔네 그러므로 다음주제는 [빡침과 화남]
"뭐..라고 .. 했어" '하아 멍청아 다시 말할테니까 똑똑히 들어. 니 아내 이제 내꺼라고 알겠냐? 그리고 이집도 이제 내꺼니까 나가줄래? 꼬우면 덤비던가' "우리 이러지 말자 응?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여보 이게 무슨말이야 둘이 짜고 치는 장난이지? 응? 아하하하.. 장난은 대성공이니까 여기서 마치자" '뭐래니? 내가 너처럼 약해빠진 비실이를 좋아해서 부부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이 튼실한 팔과 가슴을 봐 너처럼 살이 뒤룩뒤룩찐 돼지와는 차원이 다르지' '하하하역시 자기는 보는 눈이 남다르다니까 하하하하하.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이만 꺼지시라고 몸 성히 보내줄떄 가라' 그날 나는 항상 가던 건물에 올라 갔다. 한참을 비관하며 욕하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걸 눈치 채었다. "지금은 밤인데 왜 저기는 빛이날까? 마치 다른 세상인것처럼 말이야.. 하하하.. 뭐 아무 상관도 없지 저게 내 환상이던 아니던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나는 떠나야하는 몸인데 말이지" 나는 실의 에 빠진 몸을 이끌고 빛나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처음 맡아보는 향기와 소리가 들려온다. "형 어제 내 햄스터 집 만졌어?" '아니 왜?' "이상하다 햄스터가 사라졌어" '아직 2마리나 남았구만 신경쓰지말고 얘네나 간수 잘해 또 잃어버릴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영 이상하네요. 다음 주제는 [허무]입니다.
욕심처럼 되지 않아 아쉬움과 동시에 이제껏 쏟아왔던 감정이 탁 하고 풀리며 허무감이 몰려왔다. 깊고 깊었던 너의 눈 나를 바라보던 아득한 눈빛. 그 눈빛에 홀려 너의 눈속에 넘실거리고자 욕심을 냈던 탓일까. 성큼성큼 다가갔다 가슴이 아릿하게 저려올 만큼 아프게 너에게 빠졌다. 온통 너였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 했던 때 넘칠듯 기뻤다. 같이 있던 시간이 찰나같이 느껴져 너무도 아쉬웠다. 나에게 들어온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아 꽉 쥐었던 탓일까 너는 스스륵 흘러내려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허무했다. 기다림은 길고 기쁨은 컸으나 끝은 한 순간이었다. 쓰다보니 이상허네요 ㅋㅋㅋ 다음주제는 나뭇잎 입니다.
햇빛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초가을, 아직 낙엽이 떨어질 시기는 아니다.여름에 푸르게 푸르게 칠해졌던 나뭇잎들은 이제 노란빛,빨간빛으로 물들어가고있다.색이 조금만 더 진해지면 나뭇잎들은 떨어지고 만다. 가장 아름다울때, 가장 행복할때. 따뜻한 햇빛과 시원한 빗물을 받으며 행복하게 자라다가 비로소 제일 아름다워졌을때 찬 바닥에 깔려 딱딱한 굽에 밟힌다. '할아버지가 그랬던것처럼' 나는 지난 가을, 한참 낙엽이 떨어질시기에 날리는 낙엽하나를 잡아 따뜻한 손으로 감싸서 집으로 가져갔다. 두꺼운 책에 깔려 뜨거운 코팅지에 싸는것보다는 제습제를 넣은 상자에 쌓아두었다. 그 상자 안에는 작년,재작년, 그 전년도 낙엽 까지 모두 들어있다. 모양과 색 같은건 상관 없었다. 그냥, '그 나무'의 나뭇잎이면 되었다. 억지로 따지도, 바닥에있는걸 줍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적으로 떨어지는 잎을 받은것 뿐이었다.그 나무의 잎들에게 찬 바닥과 딱딱한 굽을 알려주고싶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뭇잎은 더워지기 시작하는 봄에 돋아나 뜨거운 여름에 자라나고 추워지는 가을에 떨어져 차가운 겨울엔 눈꽃에게 자리를 양보해준다. 하지만 보통 한 두개쯤 은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 나무'는 그런일이 없었다.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사진사들은 그런 나무를 열심히 찍어댔다. 나무는 모두 잃고 나서도 아름다웠다. 아니, 사실은 잃은것이 아니라 '나눠준것' 일지도.. 너무 짧다ㅠ 다음주제 '베개'
누구의 베개에는 짠 맛이 감돌았다. 척척하게 젖은 베개를 보다보면 아지랑이 처럼 뭔지 모를 동정심이 피어올라 괜시리 슬퍼지기도 하였는데, 그건 나의 개인적 감상이 아니라 나의 예견되는 미래의 향후 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고 새기게 되어 덧없이 후회되는 날이었다. 침대에 허물없이 누워 이미 젖은 베개에 더 많은 눈물을 쏟았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했을까 같은 질문이나 축축한 눈물 결 사이에 적으며 고개를 파묻는다. 이 질문이 너에게 전해줬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너의 단절된 관심 속에서 끊긴 연이니 너는 이 자그마한 질문 한 개 조차 관심 갖지 않겠지, 모든 내 행위는 잊고 바스라지길 마련인 한 동안의 말미와 같았던 너에게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넘긴다.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마음 써준 적이 많아서 그런가? 내가 너를 못잊어서? 너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 괜히 나 혼자 설레었어서? 들떠서? 마음 속이 어지러웠다. 쉬고 싶은 마음 이었지만 쉴 수 없었다. 책상으로 손을 뻗어 마지막 연결 수단인 핸드폰을 가져온다. 너는 괜찮아? 쓰다만 미연결 문자를 재빠르게 지워버린다. 버내고 싶지만 보낼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야금야금 캐먹은 감정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는 괜찮아. 문자는 보내지지 않았다. /개짧아ㅜ 다음 주제는 햇빛!
너는 항상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있었지. 하얀 피부에 연한 갈색 머리카락, 얇은 금테 안경은 내 마음을 움직이기에 아주 충분했다. 어느날처럼 나는 교실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 때였다. 천천히 돌린 고개 끝에 마주친 시선은아침부터 내 마음을 이리 저리 흔들어 놓았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은 제 자리로 돌아올 줄을 몰랐고 혼자 그것을 진정 시키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원래.. 이 시간에 와?" "응." 단순한 거짓말이었다. 부모님의 회사 출근 때문에 매번 일곱시 남짓한 시간에 나와 차를 타고 10분 밖에 안 되는 거리를 달리다보면 학교에 도착 해 있었다. 어쩌면 텅 빈 교실은 열고, 그 속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아이가 일찍 온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거짓말임을 앎에도 모른척 속아주기로 했다. "그렇구나. 부지런한가보네." "그닥" 다정하거나 상냥한 성격은 아니었다. 무뚝뚝하고 툭툭 무심한 듯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실은 마음 속에 콕콕 박혀 아플 때도 있지만 그만큼 챙겨주는 행동들 때문에 그 아이를 포기하기는 힘들었다. 그건 첫 대화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로 둘이 있거나 얘기를 할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 아이를 바라보는 건 나였지만 그 아이는 항상 등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년이 바뀌면서 반이 갈라졌고, 문득 떠올라 생각을 해 봐도 너는 보이지 않았던 거 같다. 잊고 지내던 너를 본 건 나의 졸업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졸업식이지만. 그 아이는 교복이 아니라 단정한 사복을 입고 왔었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졸업식 후 알게 된 사실인데 너는 이미 전학을 갔었더라. 그럼에도 이 학교에 온 이유는 뭐였을까. 지금은 아마 답할 수 있을 거 같다. 졸업식이 끝난후 번뜩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 아니면 나는 평생 보지 못하겠구나.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 아이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아루지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한참을 두리번 거리다 툭 - 누군가 내 팔을 잡더니 당기는 느낌이 났다. 나빠지려는 기분에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니 내가 간절히 찾던 그 아이가 서 있었다. "..... ..." "......" "미안. 내가 급해서.." 그 아이임을 확인하는 순간 내 심장은 쉴 새 없이 뛰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도 새빨개져 있었을 거다. 잡은 팔은 어느새 놓아져 있었고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말했다. 몇 초의 정적은 내게 몇 분처럼 느껴졌다. 복잡한 생각과 뛰는 가슴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졸업 축하해" "응. 너도 축하해." "....." "앞으로 잘 지내고." "......." 저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졸업을 축하한다며 앞으로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그 아이는 등을 돌렸다. 붙잡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찼다.나는 그 아이를 붙집아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졸업을 했고 앞으로 볼 일도 없다. 고백도 하지 못했지만 했다가 그 아이의 마음을 직접 듣는다면 나는 그 날 새벽을 지새며 울 거 같은 느낌에 그만 두기로 했다. 붙잡기 위해 멈칫했던 손을 접어 떨어뜨렸다. 그렇게 대학교를 가고, 취업을 하면서 그 아이는 추억 속의 한 사람이 되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뭘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왠지 말하지 않아도 잘 지내고 있음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그 날 그 전화만 아니었으면 지금도,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했을텐데. 어느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우리반 회장이었다.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는 목소리에선 떨림이 느껴졌다. 별로 친하지는 않았기에 반갑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한참을 대답하지 않고 몇 분이 흘럿다.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가 말했다. "기억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 "우리 반에 있던 '그 아이'" ".. 그 아이가 왜?" "오늘 죽었대" "뭐?" "장례식 내일부터 치뤄질 거야." "......"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연락했어." "....." "이만 끊을게." 사고 회로가 정지됐다. 무슨 말이지? 반장이 무슨 말을 했더라. 아 맞다. 죽었다고 했지. 누가? 그 아이가. 하염없는 눈물이 쏟아진 건 그 전화을 받은 후 한참 뒤였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한 때의 사랑을 나는 아직 잊지 못했나보다. 어쩌다 죽은 건지 누가 그런 건지 그런 건 몰랐다. 내가 아는 건 그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과 나는 아직 그 아이를 잊지 못했음이다. 언젠가 나는 그 아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전해주지도 못한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햇빛이 따스한 날 따뜻한 너를 만난 건 행운일 거야.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어. 내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해도 그 느낌이 다 전해지도록. 네가 나에게 빛으로 다가온 것처럼 나도 너를 다시 만나는 날 너의 빛이 되어 줄게.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좋아해. 어쩌면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차라리 고백할 걸. 그 날 고백할 걸. 이미 후회하기엔 너무 늦은 걸 알지만 이렇게라도해야 조금은 털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아프기도 행복하기도 했던 나의 사랑은 막을 내려야 했다. /좀 짧네ㅠㅠ 다음 주제
어느 작은 집에 작은 인형 하나가 있었습니다. 언제 사라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작은 인형이었습니다. 작은 인형은 생각했습니다.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작은 인형은 행복해지기로 결심하고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오랜 시간 끝에 작은 인형은 창문을 열고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작은 인형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대로 창 밖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작은 인형은 떨어지면서 생각했습니다. '이제 모두가 행복해질거야' 작은 인형은 길바닥 위로 떨어졌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속이 터져 솜이 마구 튀어 나왔습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작은 인형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다음주제
째깍 째깍- 벽면에 걸린 시계를 봤다. 시침이 8을 가르키고, 분침은 12를 가르켰다. 8시... 더 자고 싶지만, 아침 햇살은 빨리 일어나라며 내 눈을 콕콕 찌른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아... 어제 아무것도 안 먹었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다음날에는 몸에 기운이 없고, 근육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한 걸음 내딛기 무섭게 바닥으로 가라앉는 몸이 되버린다. 오늘은 바삐 움직여야 하는 날인데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나쁘지 않네." 이렇게 혼자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기로 했다. 앞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다가... 눈이 감기는 속도가 느려진다. 앞이 보이더라도 흐릿하게 보인다. 밖은 아침이지만, 내 몸은 한밤중이다. 이젠 영원히 밤이겠지. 다음 주제는
가끔, 내가 내 분에 못 이겨 당신에게로 달려가면, 당신은 말없이 나를 지켜봤다. 그리고 씩씩대는 내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당신은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밤 바닷가,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를 지르고,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고,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마구 던지고, 신발을 벗어서 저 멀리 팽개치고, 모래사장 위를 뛰어다니다 넘어져서 모래 범벅이 되어도, 당신은 한심하다는 표정도, 경멸하는 표정도, 측은하다는 표정도 하나 없이, 그저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지쳐 조용하게 되면 그제서야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왔냐고, 왔냐고 맞이하는 당신의 소리. 다음 주제
거친 숨을 내쉬자 따뜻한 숨결이 차가운 공기를 만나 안개같이 짙은 김을 만들어내며 바람을 따라 휘날린다. 김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하니 서있자 뒤에서 등을 두드리며 누군가 말을 걸어온다. 뒤를 돌아보니 내 아내 리카다. "----? -- ----?" "뭐라고? 미안 순간 딴 생각 하느라 못들었어." "괜찮아요? 많이 힘들어요?" "괜찮아. 당신은 어때? 조금만 더 가면 국경이 나올거야. 그때까지만 조금만 더 참아줘." "좀 힘들지만 괜찮아요. 난 오히려 당신이 걱정이예요." "걱정마. 어떻게든 국경까지는 참을테니까." 그렇게 짧은 대화를 주고 받은 후 돌아서서 다시 걸음을 떼려는 찰나. 발밑에서 짧지만 확실한 기계의 장치가 울린다. -철컥. 지뢰를 밟은 것이다. 하지만 철책에는 지뢰지대 표시가 없었는데...... 아마 블리자드에 날아가 버린건가......... 몸을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뒤를 돌아보며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의 표정은 절망적으로 변해있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기 시작했다. "리카. 진정해. 지뢰에서 발을 떼지만 않는다면 괜찮을거야." "하지만 우리를 쫓아오는 이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들어봐, 당신이 날 위해서 힘들겠지만 해줘야할게 있어. 지도를 보면 이쪽 방향으로 가면 국경이 나올거야. 국경에 다다르면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 둘다 무사할거야." 지도를 보여주며 아내에게 가야할 길을 표시했다. 그리고 손에 쥐어주며 재촉을 했다. "가면서 막대기로 땅을 찌르면서 가면 지뢰를 조금이라도 더 피할수 있을거야. 제발 조심해. 사랑해." 아내는 떨리는 손으로 지도를 받아들고 주변에서 막대를 찾아들고 땅을 확인하며 휘청이듯 한걸음식 멀어져갔다. 그렇게 점점 멀어져서 모습이 안보이게 되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폭음이 들려왔다. 무슨일인지는 몰라도 알것만 같앗다. 몸이 딱딱하게 굳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안나오지만 눈물은 흘러내렸다. 그리고 아내의 이름을 부르려는 그 순간 뒤에서 총성이 들렸다. 나의 몸은 총알의 힘에 의해 앞으로 밀려나며 발이 지뢰에서 떨어졌고 폭발에 휘말려 나는 만신창이가 되어 피투성이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차가운 땅위에 누워서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다. 그저 조금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었을 뿐인데 라는 후회와 함께 말이다. 다음 주제
어둠이 나를 집어삼킨다. 나는 '그것'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가 내가 약해진 순간 나를 집어삼킨다. 숨이 막히는 느낌보다는 가슴이 서린다고 말하는게 정확할 거 같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혀서 자꾸만 눈물이 나올 거 같다. 나는 언제부턴가 그것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존재하는한 나는 영원히 스스로가 만든 독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방에 불을 끄고 스탠드 하나의 불빛에만 의존한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생각이 많은 밤이면 이렇게 글을 쓰는 게 시간도 보내고 정신집중에 도움이 된다. 문득 속이 답답함을 느끼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려고 한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이봐 그렇게 사는거 재미없지 않아?" 내가 평소에 생각한 악마의 목소리라고 직감했다. 악마는 우리가 상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설령 그게 괴물이든, 잘 빼입은 신사의 모습이든. 한가지 확실한 건 악마는 달콤한 제안을 하는데, 거절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 밖의 실루엣은 공중에 떠 있음에도 어딘가에 기댄채로 점잖게 서 있었다. 검은색 정장과 모자를 쓰고 머리는 핑크색에 펌을 했다. 뱀파이어같은 느낌도 들었다. 내가 용기를 내서 물었다. "당신은.. 왜 제게 나타난 건가요?" "그야 내가 필요해 보였으니까. 이제 슬슬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거든." 나는 내 인생을 바꿀만한 전환점이라도 나타난듯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그토록 기대했던 비현실적인 존재와의 조우. 그것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니까 말이다. "저를 도와주실 건가요?" "도와줄 수도 있지만.. Give and Take. 뭔지 알지?" 당연히 요구할거라 생각했다. 악마든 누구든 아무 대가없이 남을 돕는 사람은 오히려 위험하니까 말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쪽이 오히려 안전할지도 모른다. 근거없는 천사보다, 악마와의 거래가 오히려 나를 구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뭘 원하시는데요? 제가 팔 건 목숨이나 시간밖에 없는거 같은데요" "워워. 베이비. 나는 그정도로 욕심쟁이가 아냐. " "그럼 뭘 원하시죠?" "단지 네가 날 위해 시간을 써 줬으면 해" 구두 계약은 생각보다 위험하다는점. 구체적인 시간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이 악마가 나를 속이려는 걸까 의심을 해 봤지만. 일단은 관계의 기본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므로 좀더 믿어보기로 했다. "시간이요? " "너도 누군가가 옆에 있어줬으면 했잖아? 앞으로는 너와 같이 다닐거야. 그게 조건이다." "제가 뭐 수명을 20년 판다거나 영혼을 매각한다거나 그런 일은 아니구요?" "우린 그정도로 사기꾼이 아냐. " "그럼 제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적어도 오늘 밤같이 혼자 있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야." 그 말에 나는 정곡을 찔렸고, 악마의 제안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내일을 조금씩 기대하게 되었다. 내일은 내일이 아닌 하루들과 얼마나 달라질지. 다가올 위험이 있는지도 모른채 말이다. 하지만 만약 나를 속일지라도, 잠깐이라도 행복하다면 나는 그 사탕발린 속임수에도 넘어가고 싶다. 그정도로 나는 누군가의 존재가 간절했던 걸까. 여러 생각에 얽매이고 휩싸인다. 다음 주제
겨울만되면 생각나는 그이름. 여러분에게는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고구마이죠! 시끄럽게 소리치는 티비속 쇼호스트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이내 휴대폰을 든다. "여보세요. 지금 나오는..네. 고구마요. 사고싶은데요" 충동적이다. 나는 충동적이다. 내 인생은 언제나 그랬다. 충동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버리고, 계획없는 여행을가고 돈을 쓰고. 사실 나는 스스로가 별로인 삶을 살고있다고 생각했었다. 그사람이 내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맛있어보이네요. 고구마에요?" "아..네. 호박고구마에요." 평소에 말을 걸지도 않았고 딱히 서로에게 관심이 없던 사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간식으로 챙겨온 노란 호박고구마를 한입 베어먹었을때 말을 걸어왔다. 다 식은 상태에서 들고와서 말하는건 어렵지않았다. 그냥 조금 당황했을뿐. "혹시 하나 더 있어요?" "있어요. 드실래요?" 다행이도 오늘나는 고구마를 두개 챙겨왔고 하나를 이제 막 먹기 시작했을 때였다. "인석씨 고구마 좋아하나봐요?" "뭐, 그냥. 겨울이잖아요" 창밖에 흩날리는 눈을 보며 두 손에 꼬옥 쥐고있는 고구마를 한입 더 베었다. 달다. "고구마 감사했어요" "아니요. 뭘요" 손인사를 하면서 제 자리로 돌아가는 인석씨를 보면서 생각했다. 특이한 사람이네, 고구마가 그렇게 좋나? 아침에 늦잠을 자버린 나는 고구마는 커녕 점심도 챙겨오지못한 채 출근했다. 덕분에 점심시간때 나가서 사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침에 상사가 내게 넘긴 일들로 마우스를 붙잡고 컴퓨터앞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나 둘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뜨는 직장동료들을 보면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마우스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어제 먹었던 고구마 껍질이 아직도 책상위에 남아있는걸 발견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인석씨. 점심먹으려 갔을려나..그리 친하지도, 아니. 사실 어제 처음 말 튼 사이면서 무슨.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멀리 쫒아보내려 하고있을때였다. "유민씨" 파티션 너머로 보이는 키큰 인석씨. 두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의 인석이. "무슨 생각해" "아니 그냥..우리 처음 만났을때 생각나서" "호박고구마 먹고싶다" 충동적으로 사버린 고구마가 이렇게 혼자였던 내게 인석이를 안겨줬다. 나는 사실 충동적인 내 삶과 소비방식이 조금은 마음에 든다. 전혀 별로이지 않다. 난 내삶이 좋다. 충동적인 내가 좋다. 다음 주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브베친구들과 생방송을 하고 있었다 악플도 많았지만 브베친구들이 있어 방송한다. 그때, 나는 콘치즈와 오이를 먹으며 방송하다 그릇을 씻으러 갔다. 그때는 친구들이 뭘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건 안다. 나쁜친구들은 없다고 믿고싶었지만 나도 나이가 들고 나의 어머니 박미애씨는 열심히 그릇을 녹이고 방송끝에는 나의 적 턱형치킨을 먹으면서 잠에들었다. 오늘도 사람을 해하고 잠들었지만 괜찮다. 면할 수 있는 건 알밤뿐이니까. 너무짧아서 미안행 친구들~ 다음주제는
"안녕, ---. 오늘 기분은 어땠니?" "... ...." "오늘 날씨 정말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해. 아 맞다. 오늘 아침에 내가 먹은 빵이 있었ㅡ" * "---, 내가 오늘 뭘 가져왔게?" "... ...." "이전의 자료들을 보니 ---가 좋아할ㅡ" * "요즘 잠은 잘 자고 있니?" "....ㅇ..." "그러고 보니 말이야, 벌써 추수감사ㅡ" "안녕하세요." "---!! 오- 그래! 안녕 ---! 추수감사절이 기대 되지 않ㅡ"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 오늘은 말이야ㅡ" "... ...." "아, 혹시 그 소식 아니?.. 어머 내가 바보같았네. ---이 알리 없지 참?ㅡ" * "꺄아아악-!" "사람 살려!!" "당장 지원요청ㅎ.. 으악!" . . "안녕." "...안녕, (---)" "가자." "..어디로...?" "어디던." "... ...응" *************** 횡단보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늦은 오후. 나는 초록불을 기다리며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어깨가 시큰거리고 눈이 뻐근하니, 오늘따라 자꾸만 기분이 묘하다. 아무 이상없는 완벽한 날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이상했다. 차가 쌩쌩 달리고, 비는 토독토독 우산 위를 거닌다. 당연하고, 평범한 일상. 그러면서도 시선이 자꾸만 앞 쪽으로 이끌려 따라가니 무언가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으며 신호를 기다리듯 서 있었다. 사람이다. 분명히 말하는데 저건 사람이다. 검은색 바지, 검은색 신발, 검은색 후드를 눌러 쓴 사람. 내가 이렇게 사람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꾸 의심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문뜩 사람인가? 의구심이 든 그 때, 신호가 바뀌었다. 마침내서야 내가 노려보던 사람도 내가 있는 방향으로 오고있었고, 나도 그 사람 상체를 보며 횡단보도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터벅터벅- 우산 손잡이를 꽉 잡은 손. 왜인지 심장이 빠르게 뛴다. 그리고 그 사람 옆을 지날칠 때쯤이였다. "너, 나 볼 수 있지? 끄윽크킄-" 철덩어리끼리 맞대어 그은듯 소름끼치는 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괴이한 그 사람의 목소리는 나를 당황시켰다. 듣기만 해도 절로 소름이 끼쳤고, 온몸을 굳었다. 몇 초가 흘렀을까, 충격에서 조금 벗어나자 그 사람과 살짝 스쳐진 손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피가 묻어있었다. 나는 순간 얼음이 되어 그 자리에서 도저히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지 못했다. 차들은 빵빵 클락션을 울려댔고, 나는 몸을 벌벌 떨며 손에 묻은 피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우산은 나뒹그러진지 오래라 비를 피할 수도 없이 온전히 맞고만 있었다. 빠앙- 그렇게 나는 사거리를 돌던 버스에 그만 치여 죽고 말았다. 공포와 두려움을 모두 떠안은 채로. ========================================== 추성훈님 실화를 바탕으로 썼오!! 다음은 [생일케이크]
오늘은 2018.12.3 내 생일이다. 눈을 뜨자마자 생각나는건 '미역국'. 부엌으로 나가보니 미역국이 아닌 생일케이크가 놓여져 있었다. 그 위에는 ㅇㅇ아 생일축하해:) 라는 글씨가 쓰여져있었다. 갑자기 화가났다. 분명 어제 내가 미역국 끓여놓으라고 했는데 갑자기 무슨 생일케이크냔 말이다. 식탁을 다 엎어버렸다. 생일케이크는 바닥으로 떨어져 처참한 모습을 하고있다. 식탁을 둘러싼 가족들이 날 쳐다본다. 그 순간 내가 말했다 "뭘봐" . . . 다음 주제는 콧물
[콧물] 어렸을 적 난 왜 코찔찔이 널 좋아했을까? 어릴 때부터 장난기가 심했던 너를 챙겨주는 건 나에게 일상이었다. 같은 나이지만 그래도 항상 내가 먼저 나서서 널 챙겨줬어. 매일같이 콧물을 흘리던 너는 나 없이는 밖에 나가려 하지도 않았어. 내 옆집에 살던 너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친해지셨고, 넌 알지 모를지 모르겠지만 항상 너의 어머니와 우리 엄마는 장난이신지 "둘이 결혼하면 되겠네~"의 말을 자주 하셨다? 내가 너를 챙길 수록 우리엄마는 "우리딸 다 컸네. 친구도 챙겨줄 수 있고. 진수랑 결혼하면 딱 되겠다~" 라는 말을 많이 하셨고 난 그게 더 좋아서 널 챙기려 했던 것 같아. 이제 한달 뒤면 성인이 되는 우리의 연애는 여기가 처음 시작점이 아닐까 싶어. 이젠 너가 나를 챙겨주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 누군가가 나를 챙겨준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을 너를 통해 배웠어. 그래도 내 머리속에 코찔찔이 박진수는 없어지지 않을거야. 사랑해. 진수야. 다음 주제: 야광별 스티커
야광별 스티커 벽에 부쳐진 별모양 스티커를 힘겹게 때어 냈다. 한 개 두개. 나는 거기서 이내 멈추고 만다. 아직 벽엔 스티커가 가득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니 떨려서 못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녀의 흔적을 내가 뭣하러 지울려는 걸까. 그녀를 죽게만든 나의 열등감이 아직 사그라 들지 않은건가? 나는 대답을 찾지 못한 체 기계적으로 그녀의 것을 지워나갔다. 다음 주제: 비녀
손에 쥔 유리조각은 햇살에 비춰보면 세상을 녹아내리듯 투명한 광채를 빛냈다 이미 내 주머니안은 유리조각과 자갈 돌 모래로 가득찼고 온 몸은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도저히 버릴수없었다 우리동내에 떠돌던 작은 미신 때문이었다 어디서부터 퍼진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한 또래 아이들은 소원을 들어주는 비녀가 7살이 되던날 유체통을 통해 집으로 도착한다 하지만 그건 귀한집의 아이들이거나 성품이 바른아이들 한정이었고 집 안의 골칫덩어리나 소위 말하는 한가지 결점을 가진 아이들에겐 오지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7살이 되던해에 달려가서 살펴본 우체동안에는 비녀란 온데간데없고 먼지구덩이만 쌓여있었다 그걸 본 언니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소원을 들어주는 비녀를 못받았으면 직접 만들고 가지고 다니면 될거아냐? 대수롭게 물었고 난 집 앞의 모든 길 거리를 해집고 다니며 저녁이 되자마자 언니에게가서 다급하게 외쳤다 대체 뭘 해야 만들수있는거야? 땀을 뻘뻘흘리며 숨이 차있는 내게 언니는 아무말도 못했고 모든사단을 꽤뚫고있는 이모는 내게말해줬다 소원을 들어주는 비녀는 없다고 그 이후 비녀라는 물건과 그런 소문은 헛된거라는걸 알게되었지만 괜히 심통난 나는 와전된 소문을 퍼트렸다 소원을 들어주는 비녀는 모래 돌 자갈 색모래로 만들구있다며 비녀를 못 받은 집집마다 찾아가 알리고 비녀를 받은 집 앞 우체통을 몰래 주시하다 훔쳐 달아나 부셔버린체 온 동네에 뿌려버리곤 랬다 지금 내 손안에 있는 유리조각이 그 결과물이다 부러지고 낡아도 깨끗하게 빛나건 그대로인데 난 한참 어긋나있었다 세상을 녹아내리듯이 빛내준다면 나도 녹여주면 좋을텐데 간절히 소원을 빌다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 있으면 집으로 갈 시간이니 =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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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윽- 눈부셔. 울창하게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몸을 일으켜서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나무들 뿐... 몸을 완전히 일으켜서는데 머리가 핑 하고 돌았다. 꼭 누군가에게 맞은 것 처럼 뒷 통수가 저릿저릿한게 이상했지만 우선 이 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한 참을 걷다보니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큰일이네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어. 걸음을 재촉하며 숲을 뛰다시피 걸어 내려갔다. 그때였다. 앞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인가? 나는 그 곳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저기! ...?" 아아- 이런 멍청한. 나는 말을 꺼낸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곧 밤이 찾아왔다. 다음주제 : 전기장판
겨울이 지나고, 꽃샘추위마저 지나 완연한 봄이 왔다. 몇개월동안 제 침대를 따뜻하게 데워주던 전기장판도 이제는 집 한켠에 곱게 개어놓은 지 오래다. 처음 꺼냈을 때는 한참을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터라 먼지가 잔뜩 쌓여 오만상을 찌푸렸었더랬다. 이게 다 전기장판이라면 질색하던 당신의 탓이었다. 유독 몸에 열이 많고 게으르던 당신은 내가 돌아오기 한참 전부터 침대에 누워 나를 반기곤 했다. 덕분에 한겨울에도 전기장판을 튼 것처럼 따뜻한 침대 속에서 나는 좀 움직이라며 당신을 타박하곤 했지만, 그 따뜻한 침대에 한껏 날카로워진 내 신경이 여름날 아이스크림처럼 눅진히 녹아버린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버릇처럼 되뇌이는 내 잔소리에도 하하 웃으며 넘어갔을 터였다. 추위에 약한 내가 그 겨울날 전기장판을 잊고 지낼 수 있었던 건 다 당신 덕이었다. 함께 지내던 고작 일년을 조금 넘는 시간동안 내가 당신에게 한껏 익숙해져버렸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떨까. 처음 보았을 때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넘길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처럼 잔뜩 인상을 찌푸리곤 화를 낼까. 고작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있게 전자라 장담할 수 있었을 터인데, 지금은 글쎄,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생각치도 못한 반응을 내보일지도 모르겠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당신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장담할 수 있는 사실은, 결국 나는 또 당신이 없는 하루에 익숙해질 것이라는 거다. 내가 당신에게 익숙해졌던 그 날처럼, 한편으론 천천히, 또 한편으론 빠르게 익숙해져 이젠 당신을 추억 속에 뭍을 수 있는 사람이 될 거라는 것이다. 저 구석의 전기장판처럼, 당신 또한 마음 한구석에 개켜둘 수 있을 것이라는 거다. 다음 주제 : 겨울
에구 겨울 했었네;;ㅎㅎ 그럼 상처로 주제 바꿀게!!
어려서부터 나는 상처가 많았다. 넘어져 생긴 상처,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생긴 상처, 날카로운 것에 찔린 상처 등등. 참 다양하게도 다쳐왔고 나는 다칠 때마다 치료 받기 위해 사람들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놀라며 상냥히 치료해주었다. 상처에는 딱지가 생겼고 새살이 돋아났다. 하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자 치료해주던 사람들도 점점 짜증난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에 점점 상처가 생겨도 혼자 넘기기가 일쑤였다. 그에 치료받지 못한 상처들은 이상하게 낫거나 낫지 못 하고 터져버리는 등의 일이 생겼다. 그것이 아려왔지만 미움 받기 싫어 혼자서 참아가며 그것을 넘겼다. 사람들은 내가 귀찮게 하지 않자 다시 나에게 상냥해졌다. 몇몇은 나에게 괜찮냐고 걱정스레 물었지만 웃으며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하면 안심했다는 얼굴로 다시 평소처럼 말을 걸었다. 가끔 상처가 터져 표정이 일그러질 때가 있었지만 눈 깜짝할새에 원래대로 돌아온 내 얼굴에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넘어갔다. 그에 나는 안심했다. 귀찮게 하지 않으면 돼. 상처정도야 익숙하니까. 어릴 때부터 있던 거잖아. 참아, 넘겨, 웃어. 아. 시야에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바닥을 구르는 반지가 보였다. 익숙한 모양의 반지. 그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엉망으로 깨져 원래의 모습을 알아 볼 수 없는 반지를 훑는다. 그가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다. 그에 상대방이 움찔거리더니 자신이 그랬다는 것에 화라도 났는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뭐, 뭐야, 왜 표정이 그 따위야?! 이딴 싸구려 반지가 뭐라고 그딴 표정을 지어?! 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가 그 소리를 듣고선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먼 곳을 보듯이 초점이 흐린 눈동자, 창백히 질린 피부와 그 위를 타고 흐르는 눈물, 그리고 공허한 표정. 그 표정이 마치 상대를 타박하는 듯 했다. 그에 상대는 얼굴을 매섭게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아, 뭐야. 갑자기 질질 짜고 지랄이야 지랄은. 쯧, 알았어, 알았다고. 새로 사주면 되잖아, 사주면! 진짜 저딴 싸구려 때문에 이게 뭔 꼴이야, 진짜. 짜증나게 시리.” 마치 자신이 한 수 봐준다는 어투로 내뱉어진 말에, 공허했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초점이 흐렸던 눈동자에는 이채가 서렸다. 아, 또다. 또 상처가 터져버렸어. 웃자. 웃어야지. 저 눈에 짜증이 서리기 전에.. ‘넌 숨기는 게 문제야. 상처 받았으면 울어야지 왜 웃어? 어쭈, 또 웃네? 내가 우숩냐, 엉?’ ‘이걸 줄게. 이걸 가지고 있으면 내가 널 찾을 수 있어. 금방 올게. 나 믿지?’ ‘... 거짓말쟁이.’ 아. 일그러졌던 그의 얼굴이 담담해졌다. 이채가 서렸던 눈은 평온해졌다. 그에 상대가 자신이 우쭐거리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곧 그 표정에 당황이 서렸다. 그가 그를 돌아 나갔기 때문이다. “뭐, 뭐야. 어디가?! 야! 사람 말 무시하냐?! 어디가냐고! 당장 이리 안 와?!” 뒤돌아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상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한 번 뒤돌아 보지 않고 그대로 걸어나갔다. 마치 아무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상처가 나면 바로 치료해야해. 아무리 사소한 상처여도 그 안으로 세균이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다고!’ 귓가에 들리는 듯한 소녀의 목소리에 걸음을 옮기 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에는 네 말이 맞아. 근데 이미 늦었는 걸. ...보고싶네. 금방 온다고 했으면서, 거짓말쟁이. 네가 나한테 안 왔으니까, 내가 갈게. 화내면 안 돼, 네가 먼저 거짓말 했으니까. ..그렇다고 네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응, 그냥 내가 널 너무 좋아해서 그런거니까. 지금 만나러 갈게. 쿵ㅡ. 다음 주제: 밤하늘
551년 백제. 나는 한강유역에서 살고 있었다. 나이는 12살. 집에는 돈이 필요했다. 한강 근처에서 멀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한강유역은 석방된 죄인이나 도망친 노비, 유배된 양반, 가난한 농민 등이 모여 하나의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수도 없이 일어나는 전쟁때문에 늘 가슴 졸이며 살아야했고,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 사체로 발견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12살은 살림살이를 하기에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해가 뜨면 일어나 눈을 감기 전까지 집안일, 집안일, 집안일. 그 소년을 만나게 된 건 그 해 여름에서 가을 그 사이 쯤일 것이다. 빨래를 하러 개울에 갔다. 그 개울에서는 한 소년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나였다. - 그렇게 돌을 던지다가는 개울에 남아나는 개구리가 없겠습니다. 분을 풀고 싶으시거든 빨래나 두들겨 보시는게 어떠십니까? 소년을 조용히 손에 있던 돌을 놓고 내가 내민 빨래 방망이를 집어들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빨래를 내어주었다. 이후 우리는 매일 그 곳에서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며 친해져갔다. 그 소년은 양반집 첩의 자식이라고 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소년은 왕과 사노비 사이에서 나온 아이였다. 거의 버린 자식이나 다름 없는... 왕의 씨를 가진 노비의 자식. 소년은 곧 나의 세상이 되었다. 소년이 가져다주는 곡식덕에 가난했던 우리집은 조식과 석식 두끼를 든든히 해결 할 수 있었고 혼인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었다. 매번 나의 옆에서 집안일을 도와주던 그 소년이 나의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행복했던 2년, 그리고 553년 신라 군이 쳐들어와 닥치는대로 집을 불태우고 사람을 죽였다. 백제가 한강유역을 포기한다고 선언을 하였다고 한다. 이미 불타버린 집과 바닥에 누워 의식이 없는 부모님. 소년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그 소년은 산 속으로 도망을 쳤다. 우리가 살았던 한강유역의 작은 마을은 군사 기지가 되어갔다. 산 속으로 도망을 오고 사흘 밤을 보낸 후 나와 소년은 먹을 것을 찾으러 계곡으로 갔다. 그 때였다. - 거기 서라!! 신라의 군사들이었다. 잡히면 안되는 것을 알기에 나와 소년은 도망쳤다. 최대한 멀리 도망가려 했지만 신라의 군사들은 진을 치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 군사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군사들은 계집인 나를 겁탈하려 하였고 그런 군사들을 막던 소년의 비단 옷에 피가 물들었다. 신라 군이 때리고 짖밟아도 악에 바쳐 소리를 지르는 나를 차마 겁탈 할 수가 없었던가보다. 그들은 돌아갔고 피로 물든 그 산 속에 소년과 나 둘 뿐이었다. 쓰러진 소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소년의 가쁜 숨소리가 나를 더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 안됩니다.. 아니되어요...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눈 감으면 아니되옵니다! 그 소년의 눈 끝에서는 눈물이 떨어졌다. 힘겹게 힘겹게 겨우 말을 내뱉는 소년의 손을 잡아주었다. - 오래.. 있다.. 오시오...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눈을 감았다. 나의 세상이었던 그가 사라졌다. 절망 속에 흐느끼며 10살이 되던 해에 선물 받은 작은 칼이 달린 노리개. 그 노리개를 꺼내들어 목에 가져다 대며 마지막 말을 그 산 속에서 혼자 남겼다. - 신체발부 수지부모... 이런 선택 하는 것, 용서해주십시오. 부디 평안하시어요. 작은 그 칼로 있는 힘껏 베었다. 베인 곳을 또 베고 또 베었다. 힘이 다 빠질 때 까지. 그리고는 털썩-. 소년의 옆에 몸을 뉘었다. 희미해져가는 눈 앞에 별이 빛났다. -‘ 벌써 밤입니다. 짧은 삶이었지만 함께하여 행복했습니다.’ 옆에 있던 소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내 생에 마지막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다음주제: 미소
지금 내 앞에 있는 수많은 술병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저거 다 내가 마신건가..?'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 차가운 밤공기가 몸을 스쳐지나간다. 그제서야 주변을 살펴보면 포장마차의 간이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있던 저를 발견하고는 허탈한 웃음을 흘려보낸다. ''아아, 이거 혼나겠는걸..?'' 주머니에 고이 들어가 있던 휴대전화를 확인해 보면 '부재중 59통, 문자 167통' 이란 하얀 글씨에 다시 웃음이 나오고 만다. 그레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무거웠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 지는 느낌이였다. ''흐이차..집에 들어가 보실까나ㅡ?'' 집에가는 길 휴대전화가 한번 더 울렸다. ''여브세오오?'' 술기운에 혀가 조금 꼬인다.. -..! 야..! 너 지금 어디야? ''나아~? 지금..집에 가그이써..'' -... ''여브세여?'' -걱정했잖냐.. 역시 나를 걱정했나보다. 내가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에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 피어오른다. -드르륵 ''나왔어~'' ''ㅇ..어서와'' 나를 기다렸던 것인지 조금 피곤해 보이는 동생이 현관에서 마중을 나와 주었다. 내가 웃어보이자 동생은 뭐가 웃기냐면서 툭- 치더니 나를 따라 웃는다. 역시- 행복하다
>>204 다음주제 가방
며칠 전 가방이 고장 났다. 지퍼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뻑뻑하게 올라가는 지퍼에 그저 올리는 방식이 잘못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국에 지퍼는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게 벌써 며칠 전이지만 난 아직 가방을 바꾸지 못했다. 다른 가방을 들고 나가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결국에는 그 고장 난 가방을 다시 들고 나섰다. 그 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을 메고 나가면 어딘가 내가 향하는 곳을 잊게 되는 듯 했다. 제 기능을 못하는 건 버려져야 한다. 라고 늘상 말했지만 이미 은연 중에 알고 있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모두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님을. 이 가방은 이미 지표와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 가방이 없는 날엔 길을 잃는 것만 같았다. 아무 것도 없이 세상에 버려진 고아가 된 것 마냥 처량해지는 듯 했다.
>>206 ?다음주제는 어디있니
>>207 안보는거 같은데 다음에 쓸 사람이 쓰고싶은데로 쓰게하자
그냥 내가 하고싶은 주제로 쓸게! 스크류바 오늘같은 날이면 꼭 아파트 옆 꼬질꼬질 작디작은 슈퍼에서 분홍색 어여쁜 포장지 속 스크류바를 집어들곤 했다. 쪼르르 집으로 돌아와 얇은 비닐포장지를 뜯으며 슬쩍 뒤돌아본 창밖 속 하늘은 늘 우중충한 먹구름들이 한가득. 오늘같은 날 내가 꼭 스크류바를 사먹어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왠지 오늘같은 날들엔 꼭 스크류바가 먹고싶어질 뿐. 언제부터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한 날마다 스크류바가 그렇게나 떠올랐던 걸까, 굳이 기억쪼가리들을 헤집어보면 아마 그 애가 떠나고 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들을 봤던 날이었지? 그 애랑 같이 있으면 나는 하늘을 보지 않게 된다. 해서 그 애와의 시간속에서 나는 그날의 하늘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맑은 날들 뿐이었을걸. 그 애가 제일 좋아하던게 스크류바였다. 사실 나는 그애가 스크류바를 좋아하기 전까진 그다지 스크류바를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사실은 애초에 아이스크림 자체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아니였고. 근데 언제부턴가 슈퍼만 들렸다하면 한 손에는 스크류바를 집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건 언제부터였는지 곰곰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더웠던 여름날, 내 옆의 그 애가 건넨 스크류바 하나에 물들여져있었다. 공원 옆 큰 바위에 나란히 앉아 손에 든 아이스크림도 까먹고선 신나게 웃어버리다가 그만 녹아버린 그 해의 여름은 온통 시큼한 딸기향으로 뒤덥힌, 끈적끈적 분홍색 시럽이 녹아내리던 스크류바였다. 정말이지 그 애가 내 옆에 있었던 기억들은 모두 웃고있어서, 나는 그 몇년 남짓 기억을 놓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스크류바를 먹으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이제는 훌쩍 옛날이 되어버린 그때처럼, 바보같게도. 스크류바를 찾는다 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순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있다. 이제는 함께했던 시절보다 떨어져 지낸 세월이 훨씬 긴 그 애가 어젯밤의 꿈이었다는 듯 다시 내 앞에 나타나 함께 웃을 리 없다는 것도. 나는 뭘 하자고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던 스크류바를 손에 쥐고있는지. 그제서야 깨닫는다. 아, 내 세상은 온통 스크류바였다. 내 주위를 둘러싼건 수천개의 스크류바. 코를 찌르는 지독한 딸기 향은 사실은 그날 여름의 향, 너의 향기. 그리고 스크류바는 금세 눈녹듯 녹아버리고 만다. 네가 있었던 그 날들이 모두 꿈이었다는 듯이. 진득한 분홍 시럽만이 질척거리는 세상 속에서 나는 헤엄치지 못한다. 온 세상이 분홍빛 딸기향이 가득한 스크류바. 어쩌면 나는 영원히 딸기 시럽 속에 잠겨버리는 건 아닐지. 순간 손끝에 차가운 감각이 스며든다. 아, 스크류바가 녹고 말았구나. 나는 멍하니 흘러내리는 분홍색 싱그러운 시럽을 바라본다. 아니 내가 뭘쓴거지ㅋㅋㅋㄱㄲㅋ 다음 주제 : 낙엽
가을이구나 라고 깨달은 건 하교길에 흩날린 붉게, 또 노랗게 물든 낙엽들을 보았을때였다. 이제는 떠나버린 그가 옆에서 속삭인다. ''이야~ 단풍 이쁘다. 그치? 다 떨어지기 전에 소풍이라도 갈까?'' 밝게 미소지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공중으로 흩어지고 그 자리에 붉은 단풍 하나가 바람에 날려 떨어져내린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의 모습이 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그때 더 잘해줄걸 이라고 생각해봤자 그는 돌아오지 안는다.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교과서에 소중히 끼워넣고 조용히 그와의 추억을 되새겨 본다. 어느 봄날 그와 함께 벚꽃 축제에 갔던 일, '그는 내 앞으로 뛰쳐나가' 여름에 같이 바다에 가 수영을 했던일, '그대로 역에 들어오던 기차에 부딪쳐' 겨울에 같이 눈사람을 만들었던 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정도로 뭉게지고 피로 물들어' 그리고 가을, 내가 그를 떠나보낸 일. '내 앞에서 떠나갔다.' 아 정말 빨갛네. 가을에 물든 낙엽보다 빨게. 예쁘구나... 어느새 내 발걸음은 한 건물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 놓여있었다. 이 앞으로 가면 나도 낙엽처럼, 너처럼 붉게 물들어 너에게 갈 수 있을까? 낙엽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붉게 물들어 나무를 장식하던 낙엽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짓밟히고 뭉게져 사라져간다. 다음주제: 버스
톡, 톡 지끈거리는 머리에 직접 울리온다. 이 시간만 되면 머리가 아파온다. 머리 위에서 냉기를 뿜어내는 에어컨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아침에 약해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억지로 움직이고 있어서 뇌가 오작동이라도 일으키는걸까. 원인 모르는 미약한 통증이 계속되는 머리를 살짝 들었다 다시 차가운 ㅡ방금전까지 머리를 대고 있어 약간 열이 오른 부분의 옆의ㅡ유리창에 머리를 갖다댄다. 톡, 톡 톡 마치 자신이 머리를 대길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오는 약한 진동에 다시 머리를 땐다. 이번엔 눈을 반쯤 뜨고, 하지만 옆으로 돌아보진 않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좌석 커버의 스피치 광고는 눈에 띄는 주황색 배너를 번쩍이고 한편엔 멈춰있는 사진임에도 입을 크게 벌리고 금방이라도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 듯한 남성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버스 좌석의 광고가 자주 바뀌지 않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그런 광고를 쳐다볼 여유가 없어져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하는 참으로 실속없는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고 머리를 창문에 탁, 톡 톡 톡 톡 가져가는 순간 다시 울렸다. 이번엔 정신을 차려 자세를 똑바로 하고 눈을 크게 떴다. 사람은 세번 참으면 군자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은 두번 밖에 참지 못했으니 성인 군자는 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리라. 하지만 이번엔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유리 맞은편을 치는 듯한 소리였다. 이런 소리를 듣고도 그냥 가만히 있을 사람은 없으리라. 주변엔 사람들이 빼곡히 늘어서서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을 하고 있다. 하품을 쩍쩍 하지만 잠에 들진 못하고 잠을 깨기 위해, 혹은 다른 무언가를 위해 각자의 손 안의 여러가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들의 신경은 오직 자신이 서있는 자리와 그 주변에 앉을 자리가 생기는지 아닌지에만 반응한다. 하지만 8차선 도로에서 쌩쌩 달리지 못하고 머리를 상대의 뒷꽁무니에 부딪히며 나아가는 이 안에서 그들의 신경이 제대로 작동하긴 힘드리라. 반쯤 감겼다 다시 뜨인 눈을 돌려 창문을 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창문을, 내 머리를 두드린 것을 보기 위해. 하지만 그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체되어있다해도 버스라 그 누군가를 지나쳐버린 것일까. 창문엔 그저 피로에 찌든 유리같은 눈을 한 자기 자신이 죽상을 쓴 상태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이 정말 추하면서도 우스워 피식 웃고 말았다. ㅡ다음 정류장은ㅡ 머리를 가볍게 한번 털어주고는 머리 위에 놓인 버튼을 누른다. 빽빽히 들어찬 사람들에게 죄송합니다를 연신 말하며 그들 사이를 비집고 가까스로 출구를 빠져나왔다 두통은 이내 사라졌다. 다음 주제: 클렌징폼
정말로 잘못했어요. 근데... 나는 그냥... 언니가... 낮에는 이뻣는데... 저녁에 오며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못생겨져서 나오고... 자고 일어나서 또 이뻐지고 하니까... 화장실에, 언니가 쓰는거... 물어보니까... 클렌징폼 이라고 해서... 그거... 없으면... 언니 안 못생겨지니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거, 버려놓고... 엄마가, 나 예뻐지라고 쓰라고 준거... 샴프 놔뒀는데... 언니가 오더니... 나한테... 그거, 버렸냐고... 왜 버렸냐고... 막 화내서... 나도... 샴프 줬는데... 막 소리 질르니까... 나를... 먼저 때리고... 나도 때리고... 해서... ...언니꺼 물건... 함부로 버리는거... 잘못 했어요... 앞으로 언니꺼 물건, 함부로 안 건드릴게요. ...언니... 미안해요... 다음 주제: 면허(증)
따르르릉ㅡ "음..?" 무슨소린가 했네. 알람이였어 근데 내가 알람을 왜 맞춰놨지? 아....설마...... "오늘 면허 따는 날이였어!!!!!" 지금 시각은 8시. 아침을 거르면 늦지 않는다. '내가 과연 안늦을수 있을까..?' 내 예상과는 달리 30분만에 준비가 끝났다. 어젯밤에 머리감길 잘한듯하다. 바로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 버스가 언제 오는지 봤다. '아 C..왜 하필 10분 후야' 오늘따라 차 타는 사람들이 더더욱 더 부러웠다. 때마침 택시가 보였다. 바로 택시를 잡아 장소를 말했다. "00운전교육장으로 가주세요." 택시운전사는 별 말 없이 목적지를 향해 갔다. 15분후. 도착했다, 드디어.. 드디어!!! 순서 표를 뽑았다. 내 번호는 266번. 왜지. 아무튼. 순서를 기다렸다. '배고프다..' 순서가 생각보다 오래걸려 삼각 김밥 하나를 먹었다. 평소에 챙기는 자이리톨로 입을 대충 헹궜다. "266번. 266번 대기자님 들어오세요." 헉. 이렇게 빨리? 난 씹고있던 껌을 뱉고 달려갔다. 비주얼은 버린지 오래. "당신이 226번입니까?" "ㄴ..네..." 아니 왜 평소처럼 말이 안나오냐고!!!! "운전석에 앉으시고.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려주시면 됩니다." "아 네. 엑셀은 여기 브레이크는 여기 핸들은 여기 사이드 미러는..." 한 10분은 걸렸다. 쉣 "다음엔 자율 운전입니다." 난 배웠던 대로 운전을 하였다. 아 기운빠져 이젠 주찬가? "이젠 주차입니다. 얼마 안남으셨네요" "아..그러게요" 주차도 펄펙트. 생각보다 잘했다. "결과는 1시간 뒤에 나올 예정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66번 000님." "네 감사합니다~' 이제 1시간만 기다리면 되는구나..과연 합격할수 있을까 어디서 감점될지 몰라..되게 떨린다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다음ㅁ주체:초능력
어쩌면 아무도 이해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남의 머릿속 생각을 너무도 빨리 읽어낼 수 있다는 것도 때로는 피곤하니까. 매체나 소설 등에서 독심술을 무슨 대단한 능력처럼 여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비약적으로 빠른 내 두뇌 회전 속도에 우쭐했고, 종내에는 절망했다. 알고 싶지 않았어. 정말로. 하지만 날카롭게 다가오는 진실은 나를 상처 입히고, 타인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이제 더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따위 읽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참 멍청하다. 자신이 완벽한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라이투미'에서 그랬듯이 분명히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고, 나는 그것을 읽을 수 있다. 타인이 속아 넘어갔다고 믿곤 자축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만을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작 그런 것만으로는 돌아가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글러먹었다는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침대에 누워서, 이제는 별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내 꼴이 참 한심하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쉴 새 없이 머릿속에 들이치는 정보, 그리고 익숙한 두통. 나는 그것을 활용하여 괴로워지기보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을 택했다. 차라리 그 편이 나아. 오늘도 방 안에 갇힌 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아, 어쩌면 가장 멍청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일 지도 모른다. 다음주제 : 거짓말
소년과 소녀가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에 두툼하게 쟁여넣은 가방을 메고 길을 걷고 있다. "야 사회 숙제했어?" 소년보다 두걸음 더 앞선 소녀가 소년을 보며 걸으며 물었다. "응" 소년의 시선은 소녀 한번, 소녀의 배경의 한번 소녀는 히죽이고는 걷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야 이제 벚꽃에 남녀공학이면 나도 남자친구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소녀의 말에 소년은 퍽이나- 웃고 말아버린다. "야 비웃었냐?!" 소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소년에게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앞이나 보고 걸어" 라며 소녀의 팔을 잡고 옆으로 당겼다. "아니 솔직히 나정도는 괜찮다고 보는데?!" 몸을 돌려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웃기고 있다" 아이씨- 소년의 뒤를 따랐다. "숙제 걷어라" 얆은 뿔테 안경을 올리며 남성이 말했다. "헐 나 어떡해 안 빌려왔다" 옆자리 친구에게 속삭이며 울상을 지었다. "숙제 어딨냐" 교실을 한바퀴 돌던 남성이 소녀의 자리 앞에 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물었다. "..제가 친구한테 교과서를 빌려줘서.. 딸꾹!"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던 소녀가 큰소리를 내며 딸꾹질을 했다. "끝나고 교무실로 와라 피노키오야" 아 진짜.. 소녀는 스스로를 멍청하다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오늘도 교무실에 출석했냐" 축 처진 어깨의 소녀의 옆으로 소년이 걸으며 딴지를 걸었다. "이번에도 깜지?~" 소녀의 손에 있던 종이를 빼았았다. "내놔라 장난칠 기분아니다" "난 장난칠 기분인데" "아 내놓으라고!" 종이를 가지고 달리는 소년의 뒤를 소녀가 뒤쫓으며 소녀의 반까지 다다르었다. "ㅋㅋㅋ잡아봐" "아 달라고!" 종이를 들고 팔을 올려 소녀가 닿지 않도록 뛰었다. "야 매점 안가?" 창문 너머로 소년을 부르는 소리에 소녀가 소년의 옆구리를 치자 소리를 내며 팔을 떨어트렸다. "꼭 매를 벌어요" 소녀가 소년의 손아귀에서 종이를 빼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쌤이 깜지쓰래?" 소녀의 친구들이 물으며 다가왔다. "야 근데 너네 사겨?" 한 친구가 고개를 숙이며 소녀에게 물었다. "아니?" "그럼 너 쟤 좋아해?" "아니~.." 대롭지 않게 여기며 필통을 꺼내는데 순간 소녀의 목구멍에서 큰 공기방울이 올라오더니 딸꾹- 소녀의 딸꾹질이 터졌다. 다음 주제 : 텀블러
사고 전, 소년은 웃는 얼굴로 즐겁게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했다. 나는 이 그림을 반드시 완성할 것이라고, 완성한 그림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할 것이라고. 소년이 항상 들고 다니던 무색의 낡은 텀블러 안에는 수십 장의 그림과 몇 장의 손으로 쓴 글귀가 들어 있었다. 화통을 살 돈으로 더 많은 물감과 붓, 종이를 살 것이라며 집에 찌그러져 있던 텀블러를 가져온 네가 그렇게 실없이 보일 수 없었다. 단순한 사고사라 했다. 내가 위험하다며 극구 뜯어말린 끝에 올라가지 않기로 약속한 건물 옥상에서의 추락사였다. 내가 없는 며칠 간을 틈타 몰래 올라간 거겠지. 그 옥상의 야경은 끝내주니까. 너는 타인과 다른 세계를 본다. 두 개의 눈으로 야경을 듣고, 두 개의 귀로 소리를 본다. 해서, 너는 항상 신비롭고 다채로운 그림을 그렸다. 그 날도 너는 텀블러를 들고 있었다. " 그 텀블러, 너무 밋밋하지 않아? " 도시의 매캐한 야경을 보며 내가 생각없이 툭 던진 말에, 너는 깜짝 놀라 한동안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네가 죽는 날까지, 이 텀블러를 네가 버린 줄로만 알고 있었다. 너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들고 다니는 작은 노트에 몇 문장을 끼적이며 나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도시의 야경을 설명하는 것이 다였다. 네가 죽고 난 뒤에 무명으로 배달돤 택배 안에 들어있는 무색의 낡은 텀블러에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도시의 매캐한 야경이 새겨져 있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텀블러가 새하얀 국화 사이를 이질적으로 메운다. 잘 가, 나의 도시. 다음 주제: 타로카드
나의 아름다운 아가씨. 이 손을 놓으면 당신이 사라져 버릴 까 무서워. 당신을 잡은 손에 힘을 줘요. 그런 나를 바라보는 당신이, 당신의 그 눈에 나만을 담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이 순간이 영원하면 좋겠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어요. 당신도,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듯이 나의 손을 꽉 잡아요. 당신이 울고 있어요. 당신의 뺨을 따라 흐르는 그 눈물이 이제는 내 손마저 적시고 내 마음마저 적시고 있어요. 그런 그대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저는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당신이 나에게 처음 안기던 날, 저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나요? 신분 차이를 운운하며 당신을 향한 제 마음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랑마저 외면하던 제가 너무 답답해 점성술사를 찾아갔다고, 그 자가 저희 사이를 The Lovers라는 카드로 예측했다고요. 점성술사가 말했다고 했지요, 봄을 간직한 나무의 따스함과 여름 매미 소리를 담은 두근거림, 가을 언덕 위에서 부는 바람, 그라고 겨울에 내리는 눈의 순수함을 담은 카드니, 둘은 천생연분이라고. 제 품에 안겨 아가씨는 신기하다고 했어요. 타로카드로 그런 것 도 읽을 수 있냐고 환하게 웃었지요. 그런 당신이 너무 당신다워, 저는 당신에게 입을 맞췄어요. 우리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서로의 신분을 잊기 위해서, 더욱 서로를 원하고 원하며 입을 맞췄어요. 그 때 아가씨는...저는...우리는 울고있었어요. ...집시인 제 친구가 얘기하더군요, The Lovers 라는 카드는 시련의 극복을 의미하기도 한다고요. 정말 우리에게 어울리는 카드지요? 우리는 시련을 극복했잖아요. 당신이 내 손을 조용히 놓아요. 문득 사라지는 당신의 온기에 마음 속으로 키스를 보내요. "우리의 사랑은..영원해요." 새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이 곳에 울리는 단 하나의 속삭임에 나는 웃어요. 그래요, 우리는 지금 시련을 극복하고 함께 있어요. 가문을 위해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명하던 '당신의 아버지' 그런 명에 결국에는 순응한 '당신'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밖에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지켜나갈 수 밖에 없는 '나'. "우리의 사랑은...영원해요." 나의 사랑스러운 아가씨, 당신이 듣질 못 할 걸 알지만 다시 한 번 속삭여요. 당신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아요. 당신에게 입을 맞춰요. 우리의 첫 날 밤처럼 우리의 입맞춤은 눈물을 머금고 있어요, 하지만... 그 때는 따스하던 아가씨, 당신의 입술이 왜 이리 차가운지, 그래도..걱정마요. 우리는 시련을 극복한 진짜 연인이니깐요. 예전 어느 나라의 어느 시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속삭이며 방랑하는 음유 시인들이 있었다. 그 중 유독 한 시는 아름답고 간절했지만, 음울했다고 전해진다. 그 시를 낭송하는 자 중 가장 인기 있던 자는 하인의 마지막을 연기하기 위해 단검을 들고 다니던 자로, 사랑으로 시작해 비극으로 막을 내린 그들의 사랑을 유독 슬프고 간절하게 읊었다고 한다. 시의 낭송이 끝나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에도 웃는 법이 없이, 늘, 타로카드 한 장 뒤로 그의 눈물을 감추었다고 전해진다. 앗..! 다음 주제는 봄의 노래! 잘 부탁해!!!
두근두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피를 흘리는 목덜미를 부여잡고 온 제 애인의 모습을, 제 피를 갈망하는 애인의 모습을. 그 일이 일어난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나와 애인은 3주년을 기념하여 파티를 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유난히도 그날밤은 애인이 늦었다. 시계는 이미 12시를 넘겼고 졸음을 이기지 못한 나는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 쯤 지났을까,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잠에서 깼다. 애인이 온 것이었다. 나는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한 채로 애인을 보러 나갔는데 숨을 헐떡거리며 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목에서는 답지 않게 달콤한 향이 나는 피가 흘렀고 나는 깜짝 놀라 왜 이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애인은 이렇게 답하였다. 나... 흡혈귀한테 물렸어.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그런 존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지만 날마다 애인은 변해갔다. 까맣던 머리칼은 점점 하얗게 변해갔고 송곳니는 점점 뾰족해졌다. 피를 원했고 아름다웠다. 나는 널 사랑해.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이제 앞으로 널 사랑하고 이해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어. 아, 이건 영원히 나만 아는 비밀. 다음 주제는 악기
>>218 분명... 주제가... 뱀파이어였던 것 같은데 ㅜㅜ 바꿨네??
앗! 중간에 수정했어ㅠㅜ
있지, 내가 일곱살 때인가? 그때쯤에는 거의 시골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지냈단말야. 그런데 진짜 시골이라서 막 전기도 안 통하고, 내 또래 애들도 없고. 거의 맨날 동네 개들이나 쫓아다니면서 놀았는데. 너어무 심심한 거야. 아, 정말로 이러다간 정신 나가겠다 싶어서. 그냥 막 돌아다니면서 뭐 할 거 없나 찾았는데. 피아노가 있더라? 그래서 좀 딩동거리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노래나 따라 쳐봤는데. 그걸 또 지나가던 누가 봤는지, 우리 할머니 귀에 들어간 거야. 그게 또 우리 엄마 귀로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더라. 그런데 어릴 때는 그냥저냥 말만 잘 들어도 잘한다고 칭찬해 주잖아? 그거에 기분 좋아져서 또 열심히 한다고 빨빨대고, 어쩌다가 상도 몇 번 타고. 난 나름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 그거 알아? 피아노는 페달이 세 개 달려있는데, 그중에 연음이란 게 있단 말야. 그걸 발로 꾹 누르고 치면 음이 계속 겹쳐지면서 나름 웅장하게 들리거든. 그냥 좀 길게 들리니까 있어 보이는 거지. 나도 그런 거였나 봐. 그냥 좀 오래 해서 그럴 듯해 보였나 봐. 발을 떼면 금방 사라져 버릴 텐데.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조금 말이 길었나? 다음 주제는... 그래, 별이 좋겠다.
별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도심 속에서 벗어나 잠시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홀로 밤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언젠가 우리들이 떨어져 있게 되어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서로를 생각한다면 분명,분명 닿을 수 있을 거야] 라며 말하던 너의 상냥한 목소리. 나는 홀로 밤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함께 별을 세며 웃었던 날들. 가끔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너는 성호를 긋곤 했었지. [별똥별이 떨어지는 건,별처럼 빛났던 누군가가 영원히 잠든거래.] 나도 옆에서 같이 성호를 그으며 너의 손을 잡았었지. 나는 홀로 밤하늘을 보며 너를 생각한다. 천문대로,옥상으로,작은 어느 시골 마을로,산으로,바다로. 너와 함께 했던 나날들. 그런 날 밤에는,늘 별이 함께 있곤 했었는데. 이제 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툭. 조용히 눈물이 떨어진다. 별똥별도 밤하늘에서 반짝,떨어진다. 나는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빛났던 네가 쉬러 돌아가는구나..... 정말 고맙고,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해.안녕.....]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다음 주제:자해
-너 팔에 그거 뭐야? -상처 -..누가 그런거야? -내가했는데 -왜 한건지 물어봐도돼? -그냥 -그냥? -빨간색이 좋아서 -피 말고도 빨간건 많잖아 사과도 빨갛고..무당벌레도 빨갛고.. -사과나 무당벌레 같은건 안예뻐서 싫어 -그거 안하면 안돼? -응,힘들어서 안돼 -그래도..아프잖아 소년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밴드를 꺼내들어 상처가 가득인 소녀의 팔에 붙여주었다. 꾹 눌러붙이자 채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 밴드를 적셨다. -너도 아픈거 싫지? -딱히 -앞으로 빨간색이 보고싶으면 상처내지 말고 나를 불러.사과던 무당벌레던 토마토던,정 없으면 성냥이라도 들고올테니까 -지금 너도 되게 빨간거 알아? -..그럼 나도 좋아? -아니 -...너 미워 노을지는 강가를 등지고 소년이 붉어진 귓바퀴를 만지작거렸다. 다음주제는 교향곡
텅 빈 교실에 혼자 누워있는 소녀, 지금은 점심시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은 순식간에 나가버리고 오직 고른 숨소릴 내뱉던 그 소녀만이 남아있었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저번 교시에 수업했던 내용이 빼곡히 칠판에 적힌 것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보이는 건 이미 급식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시계였다. "아, 망했네. 오늘 점심은 거를까...." 점심을 거를까 생각중이던 그녀는 갑작스레 들린 피아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반은 음악실 아래인데, 빈 복도에서 울린 피아노소리가 어느새 그녀의 귀에까지 들렸다. "무슨... 누구지? .......피아노. 정말 잘친다." 왜인지 끌리는 듯한 느낌에 일어서 윗층에 발을디딘 그녀는 열린 음악실 사이로 누군가가 피아노를 치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 연주가 가장 절정에 올랐을때, "....와아." 그 짧은 감탄사 한마디에 피아노 소리는 뚝 끊겼다. "어, 언제부터..?" 얼굴이 화악 붉어지는 누군가는 바로 옆반의 소년이었다. 그녀는 살풋 웃므며 아까부터-라고 대답하였다. "네 연주를 듣고싶어." "....." 붉은 귓볼을 만지작거리다 곧이어 팔을 뻗어 피아노에 소년의 손이 향한다, 그리곤 다시 아름다운 피아노소리가 들렸다. '교향곡 5번...' 눈을 감고 감상하다보니 어느새 끝난 연주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박수를 쳤다. "난 피아노 연주가 좋더라~" "...그럼 내일 점심시간에....오면 들려줄게." "정말? 고마워, ...벌써 종이 칠 시간이네. 내일 점심시간에 만나자!" "....."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 소년과 웃으며 달려나가는 소녀의 볼에는 붉은꽃이 잔뜩 피어난 그날은 어느 한 여름날이었다. 다음 주제는
미래는, 없다. 왜일까,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오늘은 내일도 아니다. 내일은 오늘의 다른 말일 뿐. 내일은 언제 올까? 우리의 미래는 언제 올까? 미래는 언제 와? 현재는 미래야? 아니, 현재는 현재일 뿐이야. 그럼 내일은 내일이야? 그렇지, 오늘은? 내일이야? 아니, 오늘은 오늘이야. 반복되는 현재의 삶 미래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다음 주제는 이왕 하는거 여자가 남자되는거 해줘
깜빡- ''아, 졸아버렸네...'' 시계는 오후 11시 56분을 가리킨다. 아, 오늘도 얼마 남지 않았네. 혼자사는 작은 자취방에는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 차갑게 빛난다. '그나저나, 목소리는 쉰... 건가? 낮고 갈라지네...' 아- 아- 목소리를 몇번 울려본다. 졸아서 그런지 몽롱한 머리 속 낮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푸훗, 남자목소리같아~ 이제 자고, 내일 회사나가야지...'' ----삐비비빗, 삐비비빗 '후으아암... 아, 머리가...?' 어째서인지 잔뜩 짧아진 머리, 낮은 목소리, 뭔가 찬... 느낌...? 아, 설마 달려간 화장실, 거울 속에 비치는 것은 건장한 성인 남성...? ''우아아!? 이게 뭐야? 핸드폰 스크린 안에 있어야 할 사건이 왜!? 뭐야이게!'' 하.. 회사 나가야 되는데? 치마입고 가라구요? 제정신입니까? 혼란한 머리속을 비집고 나온 건 회사. 곧 출근 시간이다. ''어머나.. 이제 과장님께 뭐라 말해야되? 자고 일어났더니 남자가 됬다? 믿겠냐! 사실, 남자였다는 반전입니다? 돌았냐고...'' 왜 이딴 일이 하필 나한테 일어난걸까? >>226 너 위에 ts써달라 했던놈이지!? 일단 너 확정이니까ㅠ 그런건 네가 쓰라구... 다음 주제 라디오
오랜만에 라디오를 틀었다. 기분좋은 딸깍- 소리와 함께 전파의 잡음이 들려왔다. 굳이 라디오 방송을 틀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져오는 백색소음. 치지직 거리는 그 소리가 마음을 평온하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그 전파의 소리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있다. 누군가의 고민, 하소연, 풋풋한 사랑이야기, 끈끈한 우정의 이야기가 섞여 조화를 이룬다. 무질서처럼 느껴지는 그 소리속에는 자연의 속삭임이 있고,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음주제:
아이들이 웃는 소리, 작지만 소란한 대화 소리, 자연스러운 일상의 소음들이 마구잡이로 얽혀 귀를 비집고 들어온다. 신경질적으로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잠깐 잠들었었나, 중얼거리곤 테이블에 놓여있던 파우치를 집어들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하루, 이 곳은 낙원이다. 낙원,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2074년, 점차 시스템이 무너지고 지독한 열기가 지구를 집어 삼켰다. 이에 세계 각 국가들은 생존자들을 모아 연합지구를 결성하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Protection in Atrium of Radical Air-heated situation by Instant System for Everyone, 즉 PRADISE. 생존자들은 낙원에 모여 열기 완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고, 그렇게 진행된 것이 ' 프로젝트 여름밤 ' 이었다. 낮의 열기를 밤에 식히는 여름처럼, 사람들을 한 곳에 모은 뒤 뚜껑을 덮어 지열을 식히고, 충분히 식었을 때 인공 태양을 띄워 부족함을 해결하자는 프로젝트. 여기까지만 풀겡... 피곤해ㅠ 다음 주제는
꿈을 꿨다. 어쩐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너와 함께였다. 바다를 보면서 너와 얘기했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기쁘고 슬펐던 기억만이 남아있었다. 잘 기억나지 않는 가게에 들어갔다. 하루에 몇번이고 먹었던, 우리가 가장 좋아한 사탕이 있었다. 그 사탕을 먹으면 항상 어금니 사이에 사탕의 부스러기가 끼어서 불편했지만 투덜대면서도 매번 먹었던 사탕이었다. 사탕을 입에 물고 너와 그 가게를 나왔다. 막연하게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라는걸 깨달았다. 너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느껴질리 없는 사탕의 달디단 맛이 어금니 사이에서부터 퍼지는 걸 느끼면서 다음 주제
빈민가의 허름한 반지하 집에서 한 남자가 고독사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자 언론은 앞다투어 그 남자의 죽음을 대서특필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 남자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수려한 외모와 훌륭한 연기력으로 각종 드라마,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유명 배우 K씨였기 때문이다 K씨는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거머쥐는 등 승승장구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으나 수 년 전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이후 성추문까지 생기며 이미지가 추락, K씨는 끝까지 자신에게 걸린 모든 혐의를 극구 부인했으나 경찰의 압수수색 결과 K씨의 집 창고에서 마약의 일종인 메스암페타민이 발견되고, 결국 연예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는 그 이후 술과 도박에 빠져 비참한 생활을 하다 결국은 알콜 중독으로 사망한 것 같다고 경찰은 밝혔다. 장례식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배우 L씨가 사비를 털어 아주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각종 범죄에 연루되었고 알콜중독자로 전락한 K씨였기에 한시대를 풍미한 배우였음에도 조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초라한 마지막이 끝나고 화장된 그의 뼛가루를 든 친구이자 배우 동료 L은 그가 생전 좋아했던 한 호숫가에 그의 뼛가루를 뿌려주러 갔다. 아무도 없는 호숫가에 서서 L은 우수에 잠긴 표정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S양이 많이 울더라고, 그래도 네가 그렇게 추락하기 전까진 너랑 연인이었으니 남은 정이 있었겠지" 그렇게 말하는 L의 표정이 점점 싸늘하게 굳어져갔다. "그러게 작작좀 나대지 그랬어, 그렇게 욕심 부려서 이거 저거 전부 다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고 말이야" "내가 S양을 좋아하는걸 알면서도 보란듯이 사귀게 됐다고 선언하러 왔을때 니새끼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부터 치밀하게 준비했지, 유통 경로를 통하면 꼬리가 밟히니까 아는 약사 형한테 큰돈 찔러주고 기록 안남게 재료를 구해서 제조법 공부해가며 마약을 직접 만든다던지, 여자를 하나 고용해서 일부러 너한테 접근시킨 거는 뭐.. 그건 어렵지는 않았네 아무튼.. " L은 흥분을 가라앉히듯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혼잣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네가 이렇게 죽어줘서 한시름 놓았어, 굳이 내가 수고를 들여서 제거할 필요가 없어졌거든.. 잘 가라, 이렇게 돼서 유감이지만 그쪽에서는 적당히 나대고 행복해라" L은 등을 돌려 돌아가려다 뭔가 생각난듯 다시 호숫가로 달려왔다. "아 맞다 나 다음달에 S양하고 결혼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거, 그래도 마지막에 꽃 하나 정도는 줘야지." 그는 노란 히아신스 한 다발을 친구의 유해가 뿌려진 호숫가에 꽂아놓고는 등을 돌렸다. "그리스 신화의 제피로스도 사실 죽이고 싶었던 것은 휘아킨토스가 아닌 아폴론이었을거야 .. 하지만 그에게 불사신인 아폴론을 죽게 만들 힘이 없었을 뿐이지.. 그런데 너는 불사신이 아니었잖아?"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단 한 점의 죄책감도 없었다. 노란색 히아신스, 꽃말은 승리 그 의미대로 그는 승리를 거둔 것일까.. 노란 승리의 꽃 위에 붉은 단풍이 떨어져 덮었다. 다음 주제는
그러니까 구름이 되고 싶다고 뭐라는 거야, 내 대답을 들은 욱은 하늘을 봤다. 그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훑었다. 물감을 종이에 흩뿌린 모양새의 구름이 하늘에 널브러져 있었다. 욱은 담배를 마저 피우며 연기를 내뿜었다. 그의 속에는 이미 구름이 있었다. 나는 그렇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입술을 씹기만 했다. 욱의 눈은 담배연기가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붉어졌다. 무작정 담배를 피우자고 나오라던 욱의 메시지가 아른거렸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말 했잖아 구름이 되고 싶다고 퍽이나 왜 담배 하나 피려고 여기까지 왔냐고 그럴 수도 있지 듣고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럴 수도 있었다. 그래도 욱의 떨리는 입가와 턱, 코를 마시는 소리, 길게 머금고 뱉는 담배 연기는 나를 더 궁금하게 했다. 요근래 욱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었다. 물론 내가 그의 모든 걸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내게 보이는 모습이 그의 전부였다. 그래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그러길 바라기도 했다. 왜 우려는 거야 사실 나는 구름이야 네 입에 물고 있는 게 대마였던 거야?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움직이고 있어 비밀이다? 이해가 안 가 연거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느새 필터 끝까지 태우고 말았다. 난간에 기댄 한쪽 팔로 팔을 괴고 구름을 봤다. 담배 연기가 위로 올라가 잠깐 맺혔다 흩어졌다. 욱, 너는 이런 존재가 되고 싶은 거야? 그는 담배 연기가 아닌 구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내게는 비슷했다. 담배 연기가 사라지는 것처럼 구름도 다음 날엔 사라져 있었다. 욱은 그렇게 몇 주 후 실종됐다. 읽지 않은 취업 최종탈락 메일만 남긴 채. 다음 주제는
누렇게 뜬 황색깔 빛은 식탐을 만들어내지 않건만 입안에 들어가면 녹아오르는 풍미는 혀를 적시네. 이에 씹히는 건 감자. 혀로 녹이는건 당근. 목에 넘어가는 건 고기.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밥에 뿌리면 그야말로 저녁 한끼의 라면이 두렵지 않네. 한국인의 마음이 울어나오는 김치 한조각도 있다면 동네 박씨 아저씨 가게의 돈까스가 생각나지 않지. 유럽인조차 따봉을 치켜세운 인도 문명이 만들어낸 음식은 그렇게 오늘도 내 식탁 위에 오르네. 그래. 오늘 저녁은 카레. 다음 주제는
비가 주륵주륵 내리던 그 날, 좁은 자취방에서 처음으로 혼자 끓여먹었던 라면이 그렇게나 맛있었다. 언제나의 인스턴트 식품이지만 '혼자' 라는 느낌이 새로워 가슴이 묘하게 저렸다. 계란도 풀고 파도 썰어넣은 뒤 조금 더 끓이면 어느새 맛있어 보이는 붉은 빛이 감도는 라면이 끓고 있었다. ''완성-'' 아무도 없는 좁은 자취방. 아무도 듣지 않는 작은 나의 음성 ''잘먹겠습니다~'' 따뜻한 라면이 차가운 이 방 안을 따뜻하게 대워간다. 나의 마음부터 서서히. 다음주제 《모니터》
문득 그런 기분있지.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쳐다 보는 기분. 내가 눈을 감으면 옆에서 날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 들어 슬그머니 눈을 떴을 땐 내 시야엔 항상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어. 어쩐지 모니터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거야. 하루는 마음 편히 자기 위해서 모니터가 벽을 향하도록 돌려놓았어. 그날 밤 신기하게도 시선이 느껴지지 않더라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고 모니터가 향한 벽을 봤는데, 마치 커터칼로 긁어놓은 것 마냥 거친 글씨체로 벽에 적혀있는거야. '왜 내 목을 꺾어?' 다음주제
쓰고 나서 정신차리고 다시 보니 주제랑 상관 없는 내용이라 지움. 다음 주제는 그대로 캔들.
흔들흔들거린다. 흔들거리는 캔들속에 불을 보면 그때의 너와 나의 사이가 다시끔 떠오른다. 문뜩 떠오른 너의 미소와 그에 맞는 그때의 내 감정, 지금의 내 감정. 좀 다르지. 아니, 많이 다르다. 우리가 그렇게 헤어지지않았다면 난 이 캔들을 다시 볼려고 하지않을까. 매일 밤 잠에 들지못할때 캔들에 불을 붙이고 멍때리며 흔들거림만을 바라보는 지금의 내가 없지않았을까. 다음 주제는
너무 어두웠던 밤, 깜빡거리는 가로등의 불빛에 의존해 너에게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백했어. “좋아해” 지금은 우린 각자의 길을 걷지만 난 아직도 기억해. 너희 집 앞 공원길 앞에서부터 6번째 가로등 밑 그곳.. 그날의 추억속 향기가 나에게는 지금도 생생해.. 잘지내지? 8월의 한여름밤 그날에 우린 너무 어렸던 걸까 다음주제는 (보라색)
보라색 어느덧 나의 하나뿐인 엄마가 말하는걸 들었어.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보라색이야" 그래서인지 침대 이불도 배게도 벽지도 보라색이야. 엄마는 집을 보라색으로 채울때 웃어 채우다가 힘들어도 웃어 하지만 내가 엄마가 힘들게 할때도 내가 싫대 어떻게해야 엄마를 힘들게해도 안 힘들까 생각하다 나는 엄마가 벽지를 색칠하던 보라색을 나한테 칠했어 이제 나를 좋아하겠지?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다가왔어 엄마는 분명 좋아할꺼야. 보라색을 좋아해서 이제 나를 좋아할꺼야! 힘들때도 화내지 않을꺼야..! 엄마는 나를.. 다음날 드디어 나에게 보라색이 생겼어! 전에는 검은색이여가지고 싫었는데.. 이 보라색으로 나를 채우면 엄마는 날 좋아하겠지? ... 이상하게 검은색밖에 안 생겨.. ... 드디어 생겼어! 빨간색도 있지만 곧 있으면 보라처럼 될거야 이제 보라색 많으니까 엄마가 좋아하겠지? 그치 엄마..? 엄..ㅁ..ㅏ 진짜 의식의 흐름대로 썻네; 다음 주제는 [ 창문 ]
창문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차들이 점점 줄어 들어가고 한 두 대의 차만이 지나갈 때 쯤이 되서야 커튼에 그림자가 지며 네가 왔다. 언제나처럼 검은 정장에 검은 구두를 신고 창문을 통해서 내 방으로 들어오는 네게서는 피곤함과 죽음의 향이 느껴졌다. "왔어?" 평소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너를 불렀지만 나를 잠식해가는 죽음이 네게도 전해졌는지 아니면 내 명부가 네게 전해진 것인지 몰라도 네 표정은 내 남은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짐작 할 수 있을 정도로 안 좋아졌다. "들어가있어." 기껏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너와 한마디 대화조차 해보지 못 하고 끝나는 매일 매일이 내게는 심장을 찌르고 혈관을 자르는 듯 한 아픔이란 걸 너는 알고있을까... 죽음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을 알고 있기에 내게 그렇게 대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창문 너머로 다시 올 너를 기다린다 다음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순간!]
세상에서 가장 짧은순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순간이라, 어떤 순간일까." 평소 매우 부정적인 나는 머리에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다. 자금 드는 생각은 차에 치일때? 아니면 즉사하는 경우들? 오늘도 나는 별 시답잖은 주제로 고민에 빠져본다. 근데 있잖아, 어찌보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이렇게 부정적이고 불행한 나에게 이보다 짧은 순간이 어딨을까. 온갖 불행함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에게 미소라는걸 찾아볼 수나 있을까. 근데 너는 그런 짧은 시간을 생기게 하는 능력이 있더라. 너만 보면 웃음이 나고 계속 생각나. 해맑게 웃는 걸 잊은 나에게 다시 웃는 법을 알려준 너는 웃는게 참 예뻐. 하지만 웃는 널 보면 내가 너무 비참해.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지 않는데, 이보다 더 비참한게 어딨겠어. 그래서 나에게 미소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이 될 수밖에 없나봐. 고마워, 날 웃게 해줘서. 너가 날 바라보지 않는 것은 알지만 나는 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내 삶의 작은 낙이자 소소한 행복인 넌 웃는게 예뻐, 눈 부실 정도로. 그니까 날 보면 웃어줘, 제발. 다음주제 [죄책감]
죄책감 아이야.아이야.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를 나는 애정하고 내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고 있단다. 너를 사랑하는 나는 너를 위해서 저기 저 하늘을 위에서 밝게 빛나는, 뜨거운 태양도. 저기 저 하늘 위에서 고고히 빛나는, 차가운 달도. 저기 저 하늘 위에서 작게 빛나는, 진주같은 별도. 아이야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단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아이야. 부드러운 비단을 주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부를 너에게 주랴? 누군가의 위에서 설 수 있는 권력을 주랴? 그도 아니라면 이 세상을 너에게 주랴? 아이야. 무엇이든, 어떤것이든, 너는 다 가질 수 있단다. 하지만 한가지. 한가지만 지켜주렴. 다치지말고, 아프지 말고, 혼자서 슬피 울지말고, 걱정을 숨기지 말고, 혼자서 상처 받지 말거라. 너에게는 정말로 모든 것을 줄 수 있단다. 내 목숨도 사랑도 줄 수 있는데. 네가 죽어버리면 쓸모가 없어지지 않겠니. 혼자 남을 나는 어찌하고. 나는 어찌하고. 그렇게, 그렇게 가버리려하니.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너에게 태양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너에게 달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너에게 별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너에게 부도, 권력도 주지 말걸 그랬지. 이럴 줄 알았으면, 세상도, 너에게 안기지 말걸 그랬지. 아이야. 난 후회한단다. 내가 애정하고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죽도록 후회해. 내 모든 사랑이 너를 죽음으로 이끌고 말았구나. 내 모든 것이 너를 불행으로 떨어뜨리고 말았구나. 내 모든 애정이 너에게 상처로 남게하고 말았구나. 아이야. 아이야. 내가 부르다 슬퍼 울게 될 아이야. 미안하다. 미안해. 염치도 없이 나는 너에게 상처를 주고 불행으로 떨구게 한 나는 오늘도 또 이렇게 밤을 새고 있단다. 눈물 한 방울에 네가 웃는 모습이 떠오르고 눈물 한 방울에 네 웃음소리가 들리고 눈물 한방울에 네 따쓰한 손이 보이는데. 아이야 아이야. 내가 사랑하는 아이야. 너는, 너는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 미안하구나.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모든것이 미안해. 하지만 염치없게도 못난 나는 네가 이렇게 그립단다. 다시 와주련, 밝게 웃은채로 따뜻한 웃음소리를 내며 내게 손을 뻗어서. 다시 나에게 와주지 않겠니. 아이야 죄책감과 그림움과 슬픔이 얼룩진 밤이. 오늘따라 더 아프게 느껴지는구나.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은 너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과오요.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요. 슬픔이 느껴지는 것은 이 모든것이 합쳐진 나의 미련과도 같은 마음이란다. 아이야. 꿈에서라도. 한번이라도 와주련. 미안하단다 아이야. 다음주제:복수
만약 네 눈동자가 나를 스쳐갔다면 그렇게 스쳐만 지나갔다면 날 알아보고도 그 눈길을 거둔거라면 나를 보고도 못본 척 그렇게 고개를 돌린거였다면 나는, 너를 죽여버릴거야. 복수를 한다는 건 누군가가 나를 져버렸다는 말이고 누군가가 나를 져버렸음에, 단지 누군가를 죽여버릴 듯 치솟는 감정을 휘젓지 못한다는 건 네가 나에게 폭풍의 크기만한 사람이었음을 뜻한다. 나는 너를 죽여버릴거야.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네가 빠져버린다면 사라져가는 널 보고 난 눈물흘릴거야 너를 죽일만큼 좋아하고 있어. 다음주제 : 꽃이 피던 겨울날
우리는 죽었다. 우리라는 것은 이제 없다. 그 겨울날은 이상하게도 꽃이 피었다. 꽃은 추위속에서 덜덜떨며 피어났지만 우리라는 것은 그렇게 졌다. 그렇다만, 한가지 말을 너에게 전하고싶다. 언젠가 해는 지고, 달은 지고, 별 또한 지고, 꽃도 진다. 이리도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이기는 것이 아닌 지는 것이다. 그래, 우리라는 것은 너무 아름다웠기에 진거야. 그러니까 울지마. 담주제 [ 절망 ]
검붉은 덩어리가 울컥울컥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 처참한 모습에 나는 눈을 감지도 못하고 한때 생명이었던것을 바라보았다. 계획은 실패했다. 언제 어디부터였지 어디서 오류가 난거지? 계획은 완벽했다. 난 앞으로 이어질을 알고있었고 그들의 패는 이미 까발려져 시험지 앞에 문제의 답이 붙어있는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조커는 내손 안에 있었고 그저 원하는 카드만을 뽑아 이 판을 짜고치는 포커로 만들어버려 그들을 밟고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 아래 있었고 모든것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없었다. 이미 체크메이트까지 무결점에 가깝게 계획된 시나리오. 그런데 내앞에 물결치는 저 심홍빛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당신이 왜 내 앞을 가로막은거지.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식어내리고 머릿속에 응어리진 생각들이 날선 고드름이 되어 머리를 차가운 서릿조각으로 가득 메우고 아무생각도 할수없게 뇌를 그대로 박제시켜놓으며 조소를 날렸다. 뇌수부터 차갑게 얼어붙어 흘러내리며 천천히 온몸을 시체같이 날카롭게 푸른 냉랭함으로 물들였다. 당신은 여기 있어선 안되었다. 당신이 내앞을 막고있는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였다. 당신이 나를 사실은 지키고 싶어했다는 사실자체부터 부정되어왔다. 나는 당신의 온정에 기댈만한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죽음은 내 계획에 있지 않았어. 섬세하게 피어난 얼음장미의 가시에 살점이 뚫리고 할퀴어져 온통 검은 핏방울로 세상이 물든다. 아아 그래. 나는 결국 실패했다. 커다란 까마귀때의 무자비한 절망이 차갑게 식은 나의 시체를 흑암의 색깔로 덮어버린다. 다음 주제: 노스탤지어
담담하게 굴던 지난날들이 순식간에 무너졌어요. 이럴까봐 그토록 악을 썼던건데. 연휴철, 공휴일, 대학생 시절의 방학도 포함해 엄마는 고향에 내려오라고, 잠깐이라도 좋으니 얼굴 좀 비치고 가라고 수십번을 애원했어요. 내가 당신이 있던 곳을, 당신과 함께 했던 곳을 길가의 풀마냥 취급하며 아무렇지 않게 다녀갈수 있을리 없잖아. 결국 나는 엄마가 병들고 나서야 이 곳을 다시 오게 되었네. 당신의 기억으로 묽어졌던 이 곳을 나는 또 다시 오게 되었네. 마냥 당신과의 기억을 곱씹으며 이 곳을 언제까지나 모른 척 하기엔, 고향을 떠나지 않은 채 그저 병상에 누워 계실 우리 엄마가 너무 불쌍했어. 그래서 다시 왔어요, 정말 미안해요. 십여년 전의 어느 날 결국 당신을 죽여버린 그 날, 바다에 흘려보내기전 그 때 흐린 화질의 카메라로 당신의 모습을 열심히 담아두었던 걸 너무 다행으로 여기고 있어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두 눈으로 볼 수 있으니. 사실 틈만 나면 그 사진들을 뒤적이지만, 역시 당신의 아름다운 시체가 있던 이 곳을 직접 오는건 견디기 힘들것 같았어요. 그 날의 생각만 하면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흥분하는데 하물며 직접 오는건 어떠려구. 마지막까지도 죽고 싶지 않아했던 당신에게 미안한 마음도. 그런데 역시 직접 오니까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 오지 않겠다며 욕망을 억누른 지난 십년이 허무할 정도로. 창백했던 당신은 인어공주같은 예쁜 모습으로 바닷속에 고요히 잠들어 있을까, 혹은 다른 누군가의 뱃속에 있을까.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 당신은 그래도 사랑스러울테니까. 주체할 수 없이 좋아져버렸어 어쩌면 좋지. 난 정말 당신의 핏자국이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이 곳이 너무 좋아요. 그 때도, 지금도. 당신을 잊으려했던 그 십년조차도 고요히 눈을 감은 당신을 너무 사랑했고, 사랑했어. 사랑해요. (다음 주제-손목)
아이의 손목은 말끔했다. 누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손목이였다. 어느날, 상처가 하나 생겼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하지만 깊지는 않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내 가벼운 질문 하나에 상처가 하나 더 생길 것만 같아서. 다음날 그 애의 손목에는 상처가 하나 더 늘어있었다. 당연히 물어보지 않았다. 그 애의 아픔을 꺼내기 싫어서. 그 애 손목의 상처가 없어질 때쯤 그 아이도 없어졌다. 이유는 모른다. 다만 나에게 말없이 떠닌걸 보면 많이 힘들었나보다. 그랗게 나는 깊었고 길 것 같았던 운명을 잃은채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손목을 감싸줄, 잡고 행복한 미래까지 이끌어줄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내 손목은 깔끔했다. 볼 때마다 그 애가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게 상처 하나가 생겼다. 그 애의 상처보다는 깊고 컸다. 하지만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다. 혼자 버티기에는 너무 힘들었고, 무거웠다. 다음날 내 손목에는 상처가 하나 더 늘었다. 그 누구도 보지 않을 수 없을만큼 크고, 아픈 상처였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내 손목에 상처가 점점 사라져갈때쯤, 나도 같이 사라졌다. 다음 주제:포스트잇
기억과 거리를 두고 싶으면 메모하는 습관을 버리라던 말이 생각났다. 고작 패러독스에 마음이 동했는지 한참 수첩을 들고 서 있었다. 정신 차리니 그 애는 가고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건 일말의 대수. 사람 하나의 존재를 습관에 담기에는 너무 컸기 때문에 손이 부을 터였다. 숨을 쉰 지 햇수로 십년이 훌쩍 지나 자율 신경에 중독된 머리는 이미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네가 그걸 몰랐을 리 없다. 항복을 권하는 말조차도 스치듯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게 네 고질병이라면 다정이 베인 습관은 버리라고 썼다가 지웠다. 글자가 남은 자국이 보기 싫어 포스트잇 조각을 뗀다. 구겨서 버렸다. 파과같은 썩은 단 내가 입 속에 고였다. : 그림
"제 얼굴을 그려주세요." 길거리에 앉아 용돈이라도 벌려고 자판상인이 된지도 대략 두어 달. 간간히 커플들을 그리고 4000원 정도를 받았다. 더운 날씨에 이마의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이만 들어갈까싶은 참에 그녀가 나타났다. 조금 앳된 나이에 보드라워 보이는 볼살은 혼자서만 뽀송해 보였다. "아~ 네네. 여기 세 종류의 그림타입이 있는데 어떤 걸 원하세요?" "음... 세밀화로 그려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당장 주시지 않아도 되고 어떤 가격이든 상응하게 드릴게요." 어딘가 결연한 듯한 목소리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곧 흥정을 시작했다. "저 작가는 아니지만 미술 전공자거든요. 아무리 못해도 세밀화면 20000원은 받아야 되겠는데..." "좋아요." 응시하는 시선에 표정은 망설임없이 흔쾌하다. "언제까지 주실 수 있나요?" "아... 저도 오래끄는 건 싫으니까, 3시간 정도면 충분 할 거에요." "...계속 여기 앉아 있어야 할까요...? 사진으로 찍어두면.." 그녀는 조금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그것도 돼요. 사진 지금 찍을까요?" 이 자리에서 고생 안 하고 다른데서 그려도 된다는 생각에 도달한 나는 마음에 신이 났다. 찰-칵 "여기서 다시 오후 6시에 뵈요." 하고 헤어지고, 인근의 친구 작업실에서 시원한 커피와 함께 선을 따는데 착수했다. 그런데.. 앨범 속의 그녀의 사진이 온데간데 없었다. 갑자기 전보다 더한 땀이 흘렀다. 어쩌지...? 낭-패, 큰일이다. 기억에 의존하여 그리거나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거나하는 선택의 순간이 남았다. 세밀화를 요구한 탓에 기억에 의존하기는 조금 무리다. 퀄리티가 낮아서 상대가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나가지 않는 것 또한 양심의 가책이었다. 3시간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자. 애초에 그녀가 시간은 걸려도 된다고 했으니 약속장소에 나가서 내일 만나기로 하고, 어떻게든 사진을 다시 찍어보자며 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단은 손풀기로 그녀를 그려본다. 앳된 얼굴의 검고 긴 머리카락.... 손이 허공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그림은 실존하는 대상이 확실하다면 그 앞의 대상이 없고서는 담아낼 수 없었다. 진실이 정직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다음주제: 결혼
단상에 서있던 주교가 나에게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묻는다. 아니, 답은 이미 정해져있으니 대답하라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매일 자신에게 노래를 불러주던 성녀가 떠올랐다. 밤마다 찾아오던 정체불명의 그도 떠올랐다. 참았던 눈물이 조금씩 조금씩 흘러나온다. 두 사람이 보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있고..... 쨍그랑! 단상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지며 검은 인형이 떨어져내렸다. 온몸을 휘감은 검은 망토와 얼굴 전체를 가린 하얀 가면. 그였다. 단상 위로 사뿐히 내려않은 그는 무언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몸을 일으켜 내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큰일이다. 그가 위험했다. 당자 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커다랗고 억센 손이 나를 막았다. 고개를 돌리자 왕자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서있는 게 보였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왕자에게 손을 놓아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왕자는 여전히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힘이 점점 강해졌다. 손목이 아파졌다. 어떻게든 그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왕자는 끈질기게 나를 놓지 않았다. “놔.” 듣기 좋은 미성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더 이상 손목에 통증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미안해. 당신을 포기할 수 없었어.”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가 그에게서.... 아니,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녀가 내게 묻는다. 자신과 함께 가겠냐고. 날 안고 있는 그녀의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이 사람을....... 나는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영원한 사랑의 맹세를 속삭였다. 신기했다. 아까는 무언가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처럼 나오지 않았던 말들이 너무나도 쉽게 쏟아져 나왔다. 그녀도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답했다. 신전에 그려져있던 여신의 문양이 밝은 빛을 내며 우리를 축복해주었다. 신탁이 맞았다. 성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나도......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 다음주제: 겨울
내가 동성의 후배에게 고백을 받았던 날은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은 눈이 펑펑 내렸고, 그 아래서 나는 소복히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상장을 받았다. 앞에선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옆에선 선생님이 날 부르는 소리가, 밑에선 카메라 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모든걸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크게 와닿진 않았지만 이 광경을 무대 위 가운대서 한번에 보자니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끄러움 사이에서, 그저 나는 기타부타 없이 상장을 받고 꾸벅 인사하고 내려왔다. 친구들은 가운데서 엉엉 울고있었지만 나는 딱히 달래주고싶지도, 그쪽까지 많은 사람들의 인파를 뚫고 갈 자신도 없었다. 나중에 연락하면 되겠지. 안일히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자 가까이 있던 애들이 졸업을 축하한다고 붙었다. 딱히 기억도 안나는 아이들이지만 사진을 같이 찍었다. 구경하고 있던 여자후배와 남자후배들도 다가왔다. 의도치 않게, 내가 마치 이 커다란 강당의 주인공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눈을 빛내던 여자 후배가 꽃다발을 나에게 안겼다. 눈에 익은 아이였다. 나는 웃었고, 그 애도 따라웃었다. 나는 눈을 내리깐채로 웃음을 흘렸다. 사실 모든게 지루하고 따분했다. 나는 어쩌면 공감장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강당 밖으로 나왔다. 잡는 아이들에겐 부모님이 기다린다고하고선. 밖에도 학부모들과 학생이 많아 혼잡했다. 난 걸었다. 어짜피 내 부모님은 오지 않는다. 나는 걷고 걸어서 집에 가려다가, 마지막으로 학교를 한번 둘러보려고 걸음을 멈췄다. "...." "...." 고개를 돌리자 네가 있었다. 같은 동아리라 이름은 기억했다. 뛰어왔는지 숨은 헐떡거렸고, 무릎은 후들거렸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고개를 기울였다. "아, 그니까, 선배..." 그 애가 눈을 굴렸다. 얼굴에 열이 쏠렸는지 붉었다. 나는 시선을 마주했다. 같은 동아리, 접점은 많이 없고 학년도 다르지만 날 언제나 눈동자로 쫒았던 주인공. 나는 내가 한발자국 다가갈때마다 한발자국 뒤로 물러갔던 너를 기억한다. 어려운게 있다며 질문을 했으면서 내가 다가가면 숨도 멈출정도로 긴장하던 너도, 순간 손이 닿았을때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서 얼굴을 바라보니 붉었던 너도, 축구를 하다 같이 엎어졌을때 내 아래에서 멍하니 날 올려다보던 네가. "졸업축하드려요!" ".. 고마워." 나는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동자가 휘었다. 이 웃음을 지을때마다, 저 애는 날 멍하니 바라보았다. 티가 안날꺼라고 생각한건가. 나는 이 순간이 퍽 기꺼웠다. "너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고." 나는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다시 따라올거라는걸 느낌적으로 예상했다.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그 애는 내 생각대로 따라왔다. 팔목이 잡히고, 몸이 뒤돌려진다. "저, 선배..." 바로 앞에서 시선이 엉켰다. 그 아이의 눈동자가 일렁인다. 그 눈동자 속에는 기민한 남자아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미묘하게 웃는 그 남자아이가. "어, 그러니까, 사실 저," 볼이 붉어지고 눈동자가 일렁였다. 눈위를 엄지로 쎄게 짓무르면 울겠지. 피부가 하얀편이라 붉어지면 티가 잘날것이다. 내 음습한 마음을 읽었는지, 그는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했다. 속눈썹이 팔랑인다. 평소에는 답답한걸 싫어했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선배를... 좋아하고 있어요." 그가 시선을 들어올렸다. 다시 눈이 마주친다. 올곧은 시선이었다.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다음주제 사랑
"바다가 보고싶어." 뜬금없는 소리였다.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네가 그런 소리라니... "그러고 싶으면 어서 낫기나 해. 못 데려다 준다는 걸 알잖아." "나는 못 나아." "그런 소리 하지 말랬잖아." "부정 못 하는 사실이야. 받아들이지 그래?" 물론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도 받아들이면, 너를 포기하면 되면, 정말로 네가 떠나버릴 것 같아서... 다시는 널 못 보게 될 테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럼 약속 하나 해줘. 언젠가 정말로 바다를 보게 해달라고." "...그래." 그런 기억도 이젠 추억이다. 이제야 너에게 바다를 보여줄 수 있어... 네가 떠난 지도 오래인데, 왜 나는 계속 너에게 붙잡혀 있을까. 밀어내려해도 결코 나가지 못하는 너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다음 주제는 솜사탕!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구름이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걸 좋아한다. 그 모습이 너무 자유롭고 평화로워서 멍하니 바라볼때가 많았다. 그 때도 그랬다. 학교에 창가에 위치한 내 책상에 팔을 포게어 눕고 구름을 보면서 스르륵 눈이 감길때 갑자기 "우악!!!" 하며 큰 소리에 놀란 나를 보며 푸하하 큰 소리로 웃는 너의 모습을 보며 얼굴에 열이 오르는걸 느끼며 들키고 싶지 않아 엎드려 버렸다. 이런 나의 모습을 화났다라고 생각했는지 안절부절 못하며 미안해하는 너를 보며 겨우 괜찮다라고 말하는 나를 향해 맑게 웃으며 별 내용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갑자기 "있지, 근처 대학교에서 오늘 저녁에 축제를 연다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라는 말에 그러자 라고 하니 기뻐하며 저녁에 보자하고 가버린 너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구름을 보았을 때 문뜩 너는 구름을 닮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든 친절하고 자유롭고 보고 있으면 편해지는게 딱 구름이라고 생각했다. 저녁날 축제에서 만나기 전까지는. 축제에서 만난 너는 학교에서보다 더 펄펄 날아다녔다. 신기한것도 많고 연애인 무대를 보기 위해 사람들 틈에서 서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손을 잡았다. 무대가 끝나고 신이나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너를 보고 있으니 나까지 신이나서 웃어버렸다. 그러다 눈에 띈 꽃 모양 솜사탕이 보여 빨간색으로 사줬더니 너가 좋아해줘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불꽃놀이에 너는 갑자기 내게 볼을 붉히며 좋아한다고 고백해왔다. 주변이 어두움에도 너의 두 볼을 빨갛게 물들여 있었다. 불꽃때문에 더 그렇게 보인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들고 있는 빨간 꽃 모양 솜사탕을 보며 너가 더 예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나는 참 중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낮에 했던 내 생각을 정정해야 했다. 너는 구름이 아니였다. 보고 있으면 평화로워 구름같고 나에게 달콤함을 스며들게해 기분 좋게 만드는. "그래."너는 솜사탕이였다. 다음 주제는 달!
그날 밤도, 오늘처럼 아름다운 야경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네온사인, 시끄러운 차 소리, 하늘에서 떨어져 녹는 흰 눈, 그 모든것이 이미 한번 내 눈에 펼쳐졌던 것이었다. 그날 그곳에서 네가 나에게 물은 것. "있지, 네가 기억하던 모든게 누군가 만든 거짓이라면 어떡할거야?" 그 말에 내가 "일단 내 기억을 전부 거짓으로 만든 사람을 의자로 쳐버릴거 같아!" 라고 대답한게 문제였냐고... 내 대답을 듣고 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린 그때도 일의 심각함을 잘 몰랐었지. 네가 그런 말을 한다면 분명 무슨 일이 있다는 건데.. 나는 그렇게나 오랬동안 너와 만났으면서도 아직도 너를 전부 알지 못했었나봐 "..." 그날과 같은 풍경인데도 이 자리에 너는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날짜를 확인했다. 2××3년 1월 13일 수요일, 역시 그날이 맞다. 달라진것은 고작 그날의 시끄러운 차소리는 사람들의 비명으로, 밝게 빛나던 네온사인은 피에 덮혀 붉은 색을 발하는것 뿐인데 어째서일까 "...인하야" 아, 네가 왔다. 나는 아래를 응시하던 얼굴을 돌려 너를 보았다. 넌 어째서 그렇게 표정을 찡그리고 있는걸까 "이거... 네짓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표정이 조금 찡그려졌다. 평소처럼 웃어주길 원했는데 어째서? "... 대답해줘 서인하, 네가... 이 좀비사태를 만들었어?" 목을 크게 끄덕였다. 너는 얼굴을 찡그린다. 나는 그때 네게 말한대로 내 삶을 거짓으로 만든 그것과 대면했을때 앉아있던 의자로 그것을 쳤다. "왜 너야.. 왜..!!" 그리고 그 후에 그것이 내게 뭐라 한것 같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라지기 직전에 나의 시간을 돌렸고, 나는 금세 일의 심각함을 깨달았었다. 이젠 전부 옛이야기 "...싫어... 싫단말이야... 서인하... 아니라고 해.. 아니라고 하라고..!!!" 거짓말은 안되니까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는 얼굴을 찡그린다. 이번에도. 이것으로 몇번째지? 수없는 시간을 보냈다. "인하야... 서인하... 이런걸 원한게 아냐... 눈 떠, 응? 서인하... 눈 뜨라고!!" 그리고 오늘 너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 이제, 달은 붉어졌다. 다음주제는 데스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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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고 무언가 가득 찬 공기가 숲을 에워싸고 있다. 습기 때문에 발은 계속 미끄러지고 왼쪽 팔목은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다. "퉷-" 무거운 공기를 좀 가볍게 하고 싶어 무심결에 침을 뱉는다.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입안에 가득 찬 피의 비릿함이 더욱 진해졌을 뿐이다. 상쾌하고 시원한 물을 한껏 들이켜서 입속의 비릿함을 지워버리고 싶었으나 지금은 물은커녕 붕대조차도 없어 지혈도 못한다. 어제저녁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난, 이 나라 왕녀이며 곧 있으면 대관식을 거행하는 몸이니까. 즉, 왕이 될 사람이었다. 이 대제국 그뤤바흐의 제왕으로 말이다. 재수 없게도 지금은 비렁뱅이보다도 못한 신세지만. 어제 나에게 왕위를 탈환한 사람은 내 오랜 친구였던 진이었다. 예전부터 내가 많이 의지하고 참 좋아했던 친구였다. 하루 종일 일한 진을 내가 안아주면 그는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가 하루 종일 입고 다닌 셔츠에서는 아침에 뿌리고 나간 버베나와 시트러스 향이 옅게 베여있었고 시큼하지만 포근한 그의 체취가 강하게 나곤 했다. 난 그 향기가 좋았다. 진의 체취와 옅은 향수내음새는 궁중에서 썩어가는 나를 들뜨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진은 언제나 진중했고 조심스러웠으며, 행동 가지 하나하나마다 이유 없는 것들이 없었다. 반면 나는 내 본능대로 움직였으며, 왕녀라고 하기엔 좀 천박한 행동이나 말투를 사용했다. 궁중에서는 그런 나를 어떻게든 엘레강스한 여성으로 만들기 위해 진을 보냈지만, 진 또한 나에겐 궁중에서 의지할 즐거운 장난감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난 그를 사랑하게 됐지만, 아쉽게도 그는 아니었나 보다. 지금 숲에서, 이렇게 뒹굴고 있으니 말이다. "진-!" 무심결에 튀어나온 그의 이름이 숲속 가득히 울려 퍼진다. 아니다. 무심결은 아니다. 좀 화가 났다. 이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되는데, 그렇지만 한 나라의 왕녀를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내가 사랑한 그에게 화가 치밀었다. 당연한 건가. 진은 이해타산적이었지만 나는 이익이고 뭐고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니까. 숲을 돌아다니며 내 딴에는 결판을 짓겠다고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으나, 아쉽게도 그 숲속에는 내 목소리만 가득 차 올랐다. 그래도 허튼짓은 아니었나 보다. 옅은 잠에 취해서 이끼 낀 바위 옆에 기대 있던 나에게 익숙한 버베나와 시트러스 향이 밴 짙은 적색 망토가 덮여졌다. 내 어깨에 그의 손이 닿을 직전, 나는 눈을 부릅 떠버렸다. 조금 놀랄 줄 알았지만 상대는 진이었다. 그는 전혀 놀라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건넸다. "셰, 여기를 떠나도록 해. 곧 날이 개면 왕실 군대를 숲에 보내겠다고 내가 결재를 해 놓았으니까." 익숙한 향기와 무심한 말투지만 사람을 조금은 화나게 만드는 말이었다. 나는 참을 수 없었고, 비릿한 피맛이 다시 입안에 가득 올라왔다. "뭐 하자는 거야. 진. 네가 이 상황을 초래했어. 그런데도 뻔뻔하게 그런 말을 지껄인다니. 전부터 느꼈지만 나를 우아하게 만들긴커녕 나에게 사람 피도 거꾸로 솟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 같네." 진은 아무 말 없이 내 말을 들어줬다. 그리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래도, 셰. 난 네 곱슬머리 정말 좋아했어. 앞으로 만날 수 없겠지만 건강하게 잘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는 나를 별 무리 없이 쳐다보고는 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난 이성을 잃고 폭주해버렸다. 그가 말안장에 앉았을 무렵, 난 재빠르게 그의 등 뒤에서 단도를 꺼내어 진이 타고 있던 말의 동맥을 끊어버렸다. 진의 말은 곧이어 피가 솟구쳤고, 사지가 꺾이더니 쓰러져 버렸다. 진은 빠르게 안장에서 내렸지만 발을 빼는 도중 오른발 인대가 나간 것 같았다.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 같아? 내가 그냥 보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진." "셰, 내가 항상 말하지만, 넌 너무 감정적이야." "하, 내가 누누이 얘기했지만 진, 네 그 이해타산적인 태도를 인간관계에까지 끌어들이면 언젠가는 자멸할 거라고 충고했을 텐데." "미안, 셰. 그 말 명심하도록 할게." 나는 평소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진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왼쪽 팔목이 저릿하게 아파온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진. 아쉽지만 넌 왕실까지 타고 갈 말이 없지. 곧 30분 뒤엔 왕실 군대가 찾아올 거야. 자. 누구 시체가 먼저 군대에게 보일지 궁금하지 않아?" "셰, 아까도 말했지만-" 난 곧바로 아까 진의 단도로 진의 급소를 찌르려고 했다. 진의 말과 같은 방법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미스였다. 진은 아무렇지 않게 급소로 향하는 내 손을 쳐냈다. 나 또한 반동을 통해 차분하게 진의 또 다른 급소를 향했다. 진은 또 막았다. 우습다는 듯이 왼쪽 손에는 그의 또 다른 단도가 쥐어져있었고 생각을 끝마칠 시간도 없이 욱신거리는 내 왼쪽 팔목을 진은 아예 보내버렸다. 아팠지만 틈을 보여줘선 안된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아니 죽이기 위해선 말이다. 경동맥을 끊어 아예 보내버리리라. 다시 진의 경동맥을 향해 칼날은 향한다. 진은 간과했다는 듯 경동맥을 내어주지 않는다. 우습다는 듯 그의 나이프는 나의 경동맥을 향한다. 빠르게 쳐내지만 곧이어 그 칼날이 허벅지에 박힌다. 차가운 칼날이 극렬한 근육을 스치는 듯한 고통에 조금은 흔들리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난 그의 나이프를 뽑아낸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아까의 나이프로 깊숙이 담근다. 진의 따듯한 피가 내 손을 적신다. 진은 작게 신음한다. 곧이어 내 허리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나와 진의 피가 무겁고 중후한 그 숲을 붉게 물들인다. 내가 칼을 뽑으려고 하자 진은 그 칼을 더욱 깊숙이 내 허리로 담근다. 다시 입 안 가득 피비린내가 올라온다. 질세라 나 또한 들고 있던 칼로 진의 아랫배를 그어버린다. 이제 그 누구도 살아나갈 수 없다. 진의 아랫배에선 붉은 선혈과 함께 내장이 조금씩 비겨 나온다. "셰, 너무 아프잖아. 아무리 그래도, 난-" "숲에서도 버베나와 시트러스 향기가 나니까 만족하도록 해. 진은 이제 죽어줘. 난 새로운 진을 찾은 것 같으니까." "셰, 그 말-" "진?" "..." "진, 이번 데스매치는 내가 이겼네. 하지만 이젠 축하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저 멀리서 왕실 군대의 행군 소리가 들린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일어나 진을 바라본다. 저렇게 눈을 감고 있으니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의 가방을 뒤지니 가벼운 리볼버가 들어가 있다. 조심스럽게 4발의 탄환을 장전한다. 그리고 진의 시체를 향해, "하나-" 탕- "이건 우리 가족에 대한 복수." 탕- "이건 선대 왕들에 대한 복수." 탕- "이건 내가 하는 복수." 마지막 탄환이 남았다. 총소리를 들은 군대가 바삐 달려오고 있는 듯하다. 탕- "이건, 네가 하고 싶었던 나에 대한 복수." 총으로 죽는 건, 역시 아니다. 진. 이 개새끼. 다음번엔 리볼버 말고 한 방에 가는 샷건 같은 걸 가져오란 말이야. 조금씩 잔상이 흐려진다. 역시, 이 숲은 버베나 시트러스 향기가 진해. 다음주제는 연호(年號)!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께서 승하하신 후 첫째 아들이 병을 얻어 일찍 죽어 둘째 아들인 '용덕'이 그 뒤를 이었다. 그는 자존감이 낮아 속이 좁은 자였다. 그래서 일까? 대신들이 조금만 뭐라해도 화내기 일 수 였다. 그 눈빛들이 마치 첫째 대신 저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 속상하고 화가 났다. 첫째 용한은 아버지처럼 무예가 뛰어났으며 머리또한 좋아 한가지를 알게 되면 열을 알게 되는 천재였던 것이다. 그런 형을 존경하고 따라가려고 애를 쓰고 이겨보려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했으나 이겨본적이 없거늘 그리 허망하게 가버려 자신은 영원히 그에게 이길 수 없게 되버렸다. 그렇게 그는 술독에 빠져 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이룬 업적들을 더럽히고 있을 때 어느날 자신의 아이가 다가와 울며 말하기를 "폐하! 밖에 백성들이 지금 굶주려 있고 탐관오리들은 배를 불리고 있사옵니다. 또한 오랑캐들이 우리의 땅을 더럽히고 있사옵니다! 부디 제발 통촉하여 주시옵서서! " "그래서 어찌하란 말이더냐!! 짐이 무능하다 이것이냐?! 그래서 너 또한 내가 죽어야 하고 내 형님이 살아계셨어야 한다 이말이더냐!" 그 말에 아들은 더 통곡하며 말하기를 "그 말이 아니옵니다! 폐하 나의 아버지.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은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들 이옵니다. 큰아버님이 천재였든 뭐든간에 저에게는 아버님께서 최고 이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리 변하셨습니까. 또한 그분을 이기기 위해서만 아버님께서 공부를 하신게 아니지 않사옵니까? 아버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부디 총기를 되찾으셔 어진 임금이 되주소서. 이 소자 간절히 바라옵니다." 하며 아들이 울자 머리에 벼락을 맞은듯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형님과 자신을 비교하는 말과 시선에 이길수 없다는 것만 생각에 실의에 빠져있었거늘. 오직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형님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였다는 사실을 자신의 아들을 통곡에 깨달았던 것이였다. 존경하는 형님과 함께하고 싶어 노력했거늘 왜 이리 변했나 자책하려는 그때 갑자기 미친듯이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아들앞이라 내색하지 않고 차분하게 천천히 말하였다. "그래. 미안하구나. 내 그동안 무심했구나. 걱정하지 말고 자러 가려무나." 하고 아들을 돌려보내고 용덕은 생각했다. 자신은 민심을 돌리고 탐관오리들을 휘어잡기엔 너무 늦었다고. 다만 자신의 아들이 뒤를 이어 왕이 되기전에 왕실에 대한 위엄을 되찾겠다고. 그래서 다음날 용덕은 대신들을 불러 뜬끔없이 자신의 연호를 건흥이라 부르기로 했다며 세자는 나의 명을 받아 아버지 광계토대왕을 기르는 비석을 만들라고 지시하였고 그는 자신의 연호대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법의 기반을 잡아 간신들을 쳐내었다. 하지만 자신이 이리 한들 앞서 한 만행때문에 자신의 대한 평이 좋지 않아 결심하고 역사를 쓰는 사관을 불러 이르기를 "나의 아들은 나의 아들이 아닌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아들로 기록하거라 또한 짐이 한 좋은 일들을 다 그가 했다 쓰거라. 또한 저가 한 일은 아버지의 흠이니 기록하지 저를 기록하지말라." 라고 하고 아들에게 너는 부디 오래 살고 어진 임금이 되길 바란다 라고 말하고는 사망하였다. 그렇게 아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어진 임금이 되고 나라를 부흥시켰다. 그가 바로 장수왕이다 *사극은 어렵네요.... 연호가 힘들었 쿨럭. 장수왕을 검색해보니 광개토대왕의 아들이 아닌 그의 둘째아들 '용덕'의 아들이였다는 말이 있길래 썼습니다^^;;;; 다음 주제는 물!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을까?' 우리가 마시는 물은 어디서부터 오고 어떻게 순환하는지를 생각할때마다 봉착하는 질문이다. 내 냉장고 속에 깨끗한 천연암반수라고 포장해놓은 생수도 누군가의 오줌이고 체액이고 피였겠지? 쓸데없는 상념에 잠겨 문득 마시다 놓은 생수병을 보니 슬슬 또 구비해놓을때가 되었구나 싶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얼굴부터 목,그리고 팔 다리. 옷으로 가려지지않은 맨살에 달라붙는 기분나쁜 음습함 들숨으로부터 폐까지 전해지는 축축한 느낌 몸에 남이있는 기운을 전부 인터넷 서핑같은것에 소모라도 했는지 다리에 기운도 하나 없는 느낌이 정말 익숙하다 밖으로 나가는 그 짧은 찰나에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못하고 딱히 뭘 할 계획도 없이 인터넷에 들어간다. 왜 인터넷 접속이 안되지? 애초에 데이터도 켜지지않고 있다. 미납된 요금으로 드디어 정지가 된건가? 층수는 4층에서부터 3층, 2층.. 1층.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고 시선을 자동문 밖으로 옮긴 순간 유리 밖 풍경은, 아쿠아리움처럼 물로 가득찬 세상이었다. 이 물은 다 어디에서 온거지? - 다음주제 : 사후세계
주변이 조용했다. 매일 지나던 횡단보도를 건넌 후 였다. 여름인데도 덥지 않았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게 회색빛이지만 바닥에 핏자국이 흩뿌려져 있지만, 온도가 느껴지지 않지만, 여기는 내가 지나던 길이다. 지났던 길이다. 여기는 그곳이 아니라고 알지못해도 처음봐도 알수있었다. 나는 죽었고 여기는 죽은 나의 세상 다음은 보라색 초!
소녀는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작고, 차갑고, 보잘것없는 그 무엇이었다. 작은 방은 소녀를 삼키며 점점 커지더니 광활하고 외로운 우주가 되었다. 그 긴긴 시간을 떠다니던 소녀는 문득, 무언가를 가까스로 떠올려냈다. -저, 이거. -뭔데? -보면서 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소녀는 손을 뻗었다. 넓디넓은 공간의 크기에 비해 서랍은 너무도 쉽게 그녀의 손에 닿았다. 떨리는 손으로 소녀는 그 안에서 작은 초를 꺼냈다. 몇 번의 서툰 시도 끝에 마침내 불을 붙인 소녀는 홀린 듯이 일렁이는 불빛을 바라봤다. 작고, 밝고, 뜨거운 그것은 소녀의 시야를 부옇게 흐리며 타올랐다. 너를 생각하고 있어. 초를 들고 맑게 웃던 소년의 미소처럼 화려한 보라색이 높이, 더 높이 타올랐다. 다음 주제는 고양이!
밤의 공원은 화목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1시간 전 그에게 온 메시지가 합격 문자였다면 그 또한 웃고 있는 저 군중 사이에 끼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귀하의 능력은 참으로 우수하나...' 그는 메시지를 곱씹었다. 우수하다고? 우수하다면 뽑혔겠지. 정말 우수한 놈들은 따로 있으니까 떨어진거겠지. 그렇게 그는 자기비하를 하며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발목을 부드러운 무언가가 쓸고 지나간다. 빗자루인 줄 알았더니 길고양이였다. 정말 흔히 보이는 잡종 얼룩 고양이일 뿐이다. "먜옹" 짧은 울음소리였다. 어째서인지 고양이는 계속 그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급기야는 위로 올라와 옆구리를 부비적대기 시작했다. "줄 거 없어." 그는 미안해하며 달라붙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올려 바닥에 내려놓았다. 고양이의 안전한 배송을 마치고 일어났다. "다음에 회사 합격하면 뭐라도 사줄게." "먜옹" 그의 말에 고양이는 마주앉아 알겠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떠나고 난 빈 자리에는 그와 고양이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번 주제는 가난으로 해볼까. 이거 재밌네.
난 어렸을때 부터 가난이 두려웠다 매일 좋은밥 좋은옷 좋은것들로 나를 치장하고 학교에서 웃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나이지 못했다 매일 너그러운척 괜찮은척 하면서 나를 좀먹었다 언젠가는 나를 덥쳐올것 같은 가난에 내 마음은 조금식 조금식 좀먹어 그음달만큼 남아버린 것 같았다. 그러다 한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가난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속이 좁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없어도 남에게 배풀고 매일 싱그러운 웃음을 보일 뿐 이었다. 그는 많은 나에게도 배풀어 주었다 치가 떨렸다. 어떻게 가난함에도 남에게 배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려웠다 항상 내 주변은 사람은 많으나 진실한 친구는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좋은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사실 내가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가난이 나를 덥쳐왔다. 이번 주제는 시선
오늘도 길을 걷던 중 시건을 느꼈다. 운동을 하던 중 시선을 느꼈고 밥을 먹던 중 시건을 느꼈다. 난 그 시선들이 싫다. 좋은 시선이든 나쁜 시선이든 누군가가 나를 쳐다본다는 건 나를 판단하는 기분이 든다. 나를 좋게 보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 시선들이 너무 무섭다. 시선들이 무서워져 이제는 사람들조차 무섭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스스로 일어서기도, 눈을 마주치기도 어렵다. 이제는 모든게 다 무섭다. 그러던 어느날 내 속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겼다. 내가 말을 하면 들어주고 위로해준다. 그 사람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마음을 바라봐준다. 위로의 눈길로 말이다. 내가 울때나 우울할 때나 곁에 있어준다. 기쁠때도 나와 같이 내 기쁨을 나눈다. 하지만 언제나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 왜 항상 혼자인 기분인걸까. 나와 같은 반에는 좀 특이한 친구가 있다. 항상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경계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유 모를 공포에 떨고 있던 그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안정 되어 갔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갑자기 평소 보인 적 없던 미소를 보인다. 허공을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가끔은 말도 한다. 흔치 않은 미소도 잠시 가끔씩은 멍을 때리기도 한다. 그 아이가 멍을 때릴 때 한 구석이 많이 쓸쓸해 보인다. 웃는게 예쁘던데, 좀 웃고 다녔으면 좋겠다 - 호감
"대충 면도를 해서 그런지 군데군데 삐죽 튀어나온 수염에 웃을 때마다 고르지 못한 치열이 거슬려요." "넙데데한 콧망울에 아주 잠깐 자세히 쳐다봤는데 보이는 코털도 더러워 보이고요. " "눈을 마주치지도 않으면서 허세같은 말만 늘어놓는 허영심같은 자신감도 마음에 안들어요." "계속해서 말을 섞고 싶을 정도로 호감이 있는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야기 할때 눈을 쳐다보면서 허물없는 대화라도 어느정도 대화가 이어져 가는게 이런 고문에 시간을 내준 나한테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친구 및 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에어컨은 추울정도 쌩쌩 돌고 있었지만 여자는 속이 타는 것처럼 음료수를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실내의 분위기는 싸늘했고 입 안에서 날붙이를 뱉어대는 듯한 여자의 말에 남자의 간담은 더욱 더 오싹해져 간다. 더 이상 관계 개선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남자도 여자도 그리고 숨죽이고 두 남녀를 지켜보던 카페 안의 누군가도 그렇게 확신했다. 이윽고 여자는 눈길을 끌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내려쳤다. 손을 떼자 곱게 펼쳐진 천원짜리 네 장이 늘어져 있었다. 그녀가 마신 망고 스무디의 가격이었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지품을 가지고 카페로 나가 버린다. 사고회로가 세 박자정도 느려터진 멍청한 머리통과 눈앞에 일어난 갑작스러운 상황이 엇갈려 간신히 입에서 나온 말은 알아듣지도 못할 고장난 헛소리였으며, 자기도 모르게 뻗은 손은 내려올 기약도 없이 문을 지나서 유유히 떠나는 여자의 모습을 바라만 볼 뿐인 남자였다. 하릴없이 뻗은 손을 어색하게 거두기도 민망해 그녀가 남기고 간 천원짜리를 줏어 든다. 4천원. 그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한 그녀의 마지막 인내였으며, 관계의 종막을 알리는 무언의 선고였다. - 하얀 와이셔츠
나는 그 아이가 아버지의 흰 와이셔츠 깃을 쥐고 울던 순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유년기의 귀뚜라미 우는 여름밤에, 죽은 친구의 초상을 치르러 그 아이는 아버지의 등을 타고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리를 건너 강물을 건너 산골짜기의 적요한 집으로 가는 내내 그 애는 울었다. 때때로 아버지는 어르듯 어린 아이를 업은 등을 춤추듯 덜썩거렸으나 이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묵묵히 걸었다. 어머니는 조금 초조한 표정이었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조금은 맹한- 부모님의 핀잔에 의하면- 나는 축축하게 땀이 밴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끔씩 코를 훌쩍거리면서 종종걸음으로 가족들을 따라왔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말없이 초상집 가는 길을 걸었다. 어렴풋이 흐느끼는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풀벌레도 그 애와 같은 마음이었던지 우리가 가는 길 내내 구슬프게도 울었었다. 나는 조금 졸린 눈꺼풀을 껌벅이면서, 오늘을 아마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아버지의 옷자락과, 축축하게 물기를 머금은 그 아이의 울음을. 왜, 노스텔지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겐 아버지의 와이셔츠가 그것이었다, 이제는 지나간 것들을 추억하는.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의 옷들을 불태우기 전 어머니가 정갈히 다려 놓은 흰 와이셔츠가 문득 눈에 띄었었다. 혹, 아버지가 죽었다고 한다면 너는 뭐라고 했을까? 그 때처럼 서럽게 울었을까? 물어보았자 내 가슴을 할퀴는 생채기임에 지나지 않음을 알면서 나는 반문했다. 이제는 아버지와 나란히 세워져 있는 그 애의 영정을 보면서. 젊어서 죽은 아이는 웃는 얼굴이 예뻤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걸 느끼며, 난 조용히 사진 액자 틀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다 문득 뺨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축축한 물기가 부드러운 살 위에 죽죽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벌겋게 열이 오른 눈가를 필사적으로 무시하다가, 결국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뜨거운 눈물이 시야를 흐리고, 쇳소리인지 짐승의 비명인지 모를 소리만 목구멍 너머에서 윽, 윽 하고 꿀떡꿀떡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새 손에 쥔 와이셔츠기 젖어들어갔다. 바스락 하고 손아귀에서 옷깃이 구겨지는 걸 느끼며 나는 눈을 감았다. 제아무리 참으려 해 봐도, 결국엔 이런 짝이었다. -장미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싶어 졌습니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다가간 나에게 그녀의 가시가 꽂혔습니다. 그녀에겐 상처가 있었습니다. 16살때 옆집의 20살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것입니다. “너도 내 몸이 좋아서 그러는 거지!” 그녀의 말이 가시가 되어 쏘아 집니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그녀에게 깊은 상처가 있는 걸 알았는데 어떻게 그걸 요구하겠어요. 저는 그녀의 다친 마음을 만져주고 싶었습니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하지 않을 거야. 너의 다친 마음, 내가 고쳐줄 수 있을까?”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에 자리잡고 있는 깊은 상처는 가시를 쏘아댑니다. “너에게 상처주는 말을 마구 내 뱉을지도 몰라. 결국엔 너도 돌아서겠지.” 지금, 나는 아름다운 그녀와 사귄지 5년째, 아니 3년동안 사귀고, 2년동안은 부부의 연을 맺고 살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지내는 5년동안 그녀의 얼굴에도 웃음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마워.” 그녀의 나체를 사랑스럽게 보듬을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행복합니다. 나는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아픈 가시도 점차 줄어드는, 장미같은 그녀와 함께....... 주제 : 청룡언월도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이 사 주셨던 삼국지를 자주 읽었다. 분명 어린이용은 아니었으나 책장을 펄럭거리면 생생하게 펄떡거리는 그림이 신기해서,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삼국지에 푹 빠져서, 아마 종잇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그 책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마 잃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초록색 옷과 긴 수염, 적토마의 붉은 말갈기를 쓰다듬으며 긴 창칼을 우뚝 쥔 대추색 얼굴의 남자. 삼국지의 다른 인물들은 몰라도, 난 그만은 기억했다. 언젠가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간 중국집의 카운터에서 그 남자의 목각상을 보았던 게 계기였다. 그리고 그 목각상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중국집의 카운터 위에 세워져 있었다. 여전히 긴 창칼을 손에 쥐고, 들어오는 손님들을 부리부리하게 노려보면서 말이다. 지금이야 남자의 이름이 관우고 그 창칼이 청룡언월도라는 것을 알지만, 어린 날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어린애가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유독 선명했던 건, 온통 초록색이며 거친 바람에 펄럭거리는 옷차림을 한 남자가, 그리고 눈이 아프게 빨간 털갈기를 한 말의 곁에서 서 있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어린 나의 눈에 보기에도 대단히 멋있고, 또 굉장히 '쩔어 보이는' 그림이었다. 비록 그땐 이름도 뭣도 몰랐었지만.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특히 긴 창칼을 휘두르면서 적들을 베는 장면은 내가 만화책에서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였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꽤나 강도 높은 따돌림을 당했다. 인마, 새끼, 등신, 머저리, 병신... 온갖 모욕적인 인신공격은 물론 지속적인 '셔틀' 노릇을 떠맡으면서 내가 매일 생각하던 것이 있었다. 아, 그냥 죽을까? 그때 즈음 부모님이 별거를 시작하시고 이혼을 준비하면서 나의 이상야릇한 충동은 박차를 가했다. 아침에 학교를 가는 길에, 횡단보도의 초록불 신호를 기다리며 트럭 앞에 뛰쳐나가 볼까 생각했었고, 수업시간 내내 창문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뛰어내려 볼까도 고민했었다. 우울증이 왔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니, 진짜 우울증이 왔었다. 하루 종일 죽음을 생각하고 오늘이 며칠인지, 내가 머리를 감았는지 아닌지조차 구분을 못했으니까. 그때 우연히 삼국지 만화책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펼쳐 본 책장에는 그가 그려져 있었다. 관우 말이다. 위풍당당한 나의 영웅. 어쩌면 그는 진짜 나의 영웅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난 관우가 그려진 페이지를 잘라 지갑에넣고 다녔다. 어쩌면 나도 관우처럼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자기암시와 함께. 그건 거의 지독한 맹신이요 동시에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몰아치는 폭풍우 사이의 구명줄 같은 거랄까. 그렇게 2년을 버텼던가? 드디어 난 나를 그토록 괴롭히던 개놈들과 작별하게 되었다. 사유는 갖가지 비행과 학교폭력 혐의로 인한 퇴학이었다. 놈들이 검은 손을 뻗은 상대가, 재수없게도 소위 '높은 분'의 자제였던 것이다. 시나리오가 뻔히 보인다. 그 멍청한 놈들은 꽤 잘 살아보이고 동시에 유약한 인상을 풍기는 안경잡이 멸치를 하나 붙들어서, 적당히 손을 봐주고 꽁돈을 뜯어냈을 것이다. 그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실컷 낄낄댔겠지. 그러게 좋은 말 할 때 순순히 상납했어야지, 응? 아마 그것이 본인들의 마지막이 될 줄도 모르고. 애지중지하던 외동아들이 험한 꼴로 집에 돌아온 것을 본 '높은 분'과 '사모님'께서는 크게 분노했을 것이다. 누가 그렇지 않을까? 그리고 학교 당국에 압박을 넣고, 범인을 색출해 온갖 혐의와 죄목을 덕지덕지 매달아 나락으로 꼴아박는다, 끝. 정말 전형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한 마디 첨언하자면, 나에겐 절대로 상투적인 시나리오가 아니다. 존나게 짜릿한 복수극이지. 나는 질릴 정도로 삼국지를 팔락거리며, 그리고 지갑 속의 관우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그 개새끼들을 지옥에 쳐박을 용기를 다졌다. 그리고 그 위대한 첫 발걸음을 떼기 위해서, 일단 병원을 찾아가 진단서를 뗐다. 증거사신이 될 만한 신체 사진을 충분히 찍어 둔 후에 말이다. 그들은 내게 SNS로 매일같이 욕을 퍼부으면서, 동시에 본인들의 계정에도 날 핍박한 증거를 자랑스럽게 올렸었다. 내가 고통스러운 과거를 전부 캡쳐하고 놈들의 계정에 올라가 있는 글과 사진들을 백업하자 그 수가 몇백장에 달했다. 정말 대단하더라,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그러나 제일 중요했던 건, 놈들이 건드린 안경잡이 멸치의 유일한 친구가 나였다는 것이다. 그 애는 돈만 썩어넘치게 많았지 인간관계에 있어선 영 꽝이었으니까. 난 그 애의 부모님이 나는 새도 떨어뜨릴 권세가임을 알았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개가 순진하거나,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내가 그 애를 조금... 이용했다. 그러니까, 그 개새끼들이 이 도련님을 괴롭히는 데 어느 정도는 일조했다는 뜻이다. ... 자세한 내막은 말할 수 없다. 그건 내가 살면서 드러낸 가장 어두운 일면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저 순진한 친구가 울면서 내게 괴롭힘당한 일을 늘어놓자마자 나는 대답했다. 복수하자고. 지금 네가 한 말을 전부 녹음해서 퍼뜨리면 그 새끼들 매장되는 건 식은 죽 먹거라고. 그건 사실이었다. 특히 빅-브라더를 등에 업고 적을 짓뭉개기란 식은 죽 먹기보다 훨씬 쉬웠다. 그리고 짜릿했다. 그 빌어먹을 사회의 버러지 종자들이 처참하게 으깨지는 꼴을 구경하기란 두번 다시 없을 기회였다. 나는 여전히 관우의 그림을 지갑에 넣고 다닌다. 청룡언월도를 들고 위풍당당히 서 있는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습이다. 사실 난 아직도 모르겠다. 만화책의 한 페이지에서 찢어낸 이 종이 쪼가리가 나를 어떻게 바꿨는지. 내겐 그 그림이 관우의 청룡언월도요, 여포의 방천화극이었다. 끄트머리가 노랗게 바래진 그림이 이렇게 큰 힘을 가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랜만에 들린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으며 난 생각했다. 10년 전과 똑같은 자리에 선 관우상이 내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 부리부리한 눈을 바라보며 난 살짝 눈을 찡긋해 보였다. -태양
저 멀리로 해가 진다. 산 너머로 숨어버리는 햇님의 뒤를 따라 석양이 내려앉는다. 동쪽은 이미 완연한 밤, 내 곁으로 다가온 네 얼굴에 주홍빛이 어렸다. 곧 시작할거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붉게 타는 줄 알았던 해가 져간다. 원래의 해는 무서워 숨어버렸으니 우리가 만들어야지. 처음에 네가 이 말을 꺼냈을때 나는 네가 미친줄알았다. 이 세상엔 이제 영원한 밤이 올것이라고 모두가 포기했을때 너만이 희망을 외쳤다. 아직 시간이 있어요, 해는 오늘밤까지는 있을테니까. 고작해야 미성년인 꼬맹이의 급조한 계획에 과반수가 반대했다. 빠듯한 수가 있느냐는 물음에는 모두가 침묵했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듯 목청을 키우며 너무 허술한 계획이라고 비난했다. 많이는 필요없어요. 하고 싶은 사람만 나와요. 등을 돌려 떠나가는 네 뒤를 따라 나간건 고작해야 나와 널 잘 따르던 해일이, 그리고 안경 누나와 백수 아저씨뿐이었다. 쭈뼛거리는 해일이를 보고 너는 활짝 웃었었지. 태양은 네가 되어야해. 해일이 이름에 해 자가 들어가서 그래? 안경 누나를 보지도 않고 너는 대답했다. 해는 안돼요. 지금 있던 해도 졌는데 하나 더 있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우리가 만들건 태양이에요. 이 세상 가장 거대한 존재 태양. 그 아래서 어둠은 물러날거예요. 확실하냐? 백수 아저씨가 묻자 너는 고갤 저으며 해질녘을 올려다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몰라요. 그냥 가만히 죽기싫어서 나온거니까. 그리고 지금이다. 우리는 각자 얼마 남지 않은 빛가루를 탈탈 털어 해일이에게 건넸고 안경 누나와 백수 아저씨, 나는 삼각형의 꼭짓점에서 손에 나름대로의 무기를 든채 태세를 정비했다. 너는 해일이와 내접원에 들어서 모두를 지휘하기로 했다. 우우웅. 대기가 운다. 시린 바람이 얼굴을 핥고 지나간다. 골프채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상체를 낮췄다. 저 멀리서 어둠이 온다. 조심해! 안경 누나의 외침과 함께 곧 눈 앞이 어두워졌다. 딱딱하고 차가운 것들이 옷자락을 잡아챈다.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골프채를 정신없이 휘둘렀다. 골프장에서 휘둘렀다면 바로 장외가 될만큼, 그렇게. 팔뚝이 욱씬거리고 찢어진 바지자락에 들어난 발목에 어둠이 휘감아 온다. 몸이 무겁다. 정막 속에서 혼자 있는듯한 두려움이 치솟았다. 혹시 나 혼자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섬찟한 예감이 든다. 볼에 서리가 에인양 찢길듯 아팠다. 어깨가 삐걱대기 시작했다. 몇번이나 손잡일 고쳐쥐었는지 모르겠다. 덜컥 어둠이 울부짖는다. 더불어 비바람이 몰아치듯 찬기가 사방으로 뻗는다. 더이상은 버틸 수 없다. 단단히 힘을 주던 팔에서 힘이 나도 어쩌지 못할정도로 빠지는 순간. 후욱, 온기가 끼쳤다. 아. 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누나와 아저씨가 나처럼 두리번 거린다. 엄마품처럼 등 뒤를 따뜻하게 감싸안는 빛에 홀린듯 뒤를 돌아보았다. 빛을 내는 것은 태양. 가히 세상의 가장 거대한 존재. 울음이 쏟아질것같았다. 주춤거리는 어둠을 향해 공격 태세를 취하며 소리쳤다. 포기하지 마요!! 태양이 여기, 태양이 있다. 다음 주제 : 쪽지
상자에서 낡게 바랜 쪽지 하나를 꺼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그 시절 제가 가장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건 말간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네와 나를 깊은 구렁텅이로 밀어너었습니다.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 할 그런 구덩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했고 그건 언제나 내 속에 있었습니다. 그 구덩이 속에 계속 있고 싶었습니다.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구덩이 속에서 밀어내 밖으로 나가게 했습니다. . . 나는 그걸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황급이 달려간 곳에 더 이상 천국은 없었습니다. 당신은 멀리 떠나간 후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종이에 모든 걸 적어내렸습니다.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적었습니다. 이제까지 보관하고 있던 소중한 추억입니다. 쪽지 한 장은 그렇게 다시 상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언젠가 힘들 때 나의 위로가 되어주겠죠... 다음은
휴일이면 엄마는 동거남과 싸우기 바빴다. 그 싸움이 너무 격렬하여 나는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집 앞 도서관으로 향했다. 동생과 함께 장서실에 들어가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었다. 동생은 배고프다고 칭얼거렸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동거남 사이에 오가는 고성이.......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다.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잠이 든 동생을 들쳐 업고 그렇게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 엄마!” 엄마는 두 눈을 부릅 뜬 채, 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하질 않았다. “엄마. 엄마!” 나는 엄마를 마구 흔들었다. “엄마! 일어나! 일어나라고!” 높아진 내 목소리에 동생이 잠에서 깼다. “오빠 무슨 일이야.......” “영미야.......” 나는 다리가 탁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동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엄마에게 향한다. “엄마? 엄마 추운데 왜 여기서 자?” 어린 동생의 순수한 모습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영미야.” 나는 영미를 끌어 안고 펑펑 울었다. 영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나를 밀쳤다. “오빠 왜그래.” 나는 엄마가 죽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영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영미가 엄마를 흔든다. 일어나라고. 배고프니까 밥 달라고. 하지만 엄마는 꼼짝하지 않았다. 잠시 패닉상태에 빠져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엄마가 살해 당했다고.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같이 살던 남자라고........ 잠시 후, 경찰들이 몰려와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락커로 엄마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표시하고 엄마를 어디론가 옮겼다.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을 한다고 했다. “오빠. 나 배고파.” 동생의 칭얼거림을 들은 한 경찰 누나가 우리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꼬마야.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그 누나는 영미에게 다가왔고, 영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그런 영미을 보고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우리는 집 근처의 식당으로 갔다. “돈까스. 돈까스. 돈까스 먹을래.” 우리는 몇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영미는 천진하게 잘 먹었지만, 나는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설에 맡겨지게 될까? “너도 배고프지? 좀 먹어봐.” 누나가 친절하게 이야기 했다. “네에.” 그래 그런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맛있는 음식을 보니 배가 고파져 한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그날 밤, 우리는 그 누나네 집에서 하루동인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의 언니라고 하는 사람, 그러니까 우리에겐 이모가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를 찾아 왔다. 하도 울어서 퉁퉁부은 얼굴로 우리를 보더니 또 울기 시작했다. “아이고. 이 어린 것들을 놔두고. 아이고.” 이모는 우리를 끌어 안은채 큰 소리로 울었다. 이모라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이제보니 생각났다. 엄마는 유일한 혈육이라면서 언니와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이모는 또 소리내어 울었다. 엄마의 사인이 나왔다.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목이 눌릴때의 괴로움으로 저항하던 엄마의 손톱밑에서 검출된 피부조각의 디엔에이를 검사한 결과 범인은 역시 동거남이 맞았다. 경찰은 지명수배릉 내리고 최선을 다해 범인을 검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는 엄마의 시신을 넘겨 받아 장례를 치루었다. 이모는 끝까지 함께 해주었고, 우리는 이모집으로 들어 갔다. “이모. 죄송하지만 학교는 다니고 싶지 않아요.” 이모의 어머어마한 저택의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이모부의 어마어마한 서재에 압도당한 나는 이모부의 허락을 받고 그 곳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만의 작은 도서관. 나는 그곳에 처박혀 책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우리는 이모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어릴적의 독서는 나를 지혜롭게 하였고, 지금은 명문대 정치학부에서 공부하며 올바른 정치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날 도서관에 가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결국 엄마를 죽인 것은 나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보면 동거남과 싸우던 엄마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독서....... 독서는 내 인생의 8할을 키웠다. The end. 주재 : 레드 드래곤 「아르타니스」
비는 그의 눈물이요, 천둥은 그의 울부짖음, 땅의 울림은 그의 목소리이며, 화산은 뜨거운 그의 성정이다. 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니, 바로 적색거룡 아르타니스이다. 그, 아르타니스가 개입하기 전의 대륙은 삭막했다. 있는 거라곤 흙과 모래, 그리고 돌뿐이었다. 가끔 초목이 자라긴 했으나 척박한 환경 때문에 얼마 가지 않아 시들었다. 그런 대륙에서 거룡의 유일한 낙은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대륙은 늘 변함없음을 유지했으나, 하늘은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변했다. 오랫동안 주위를 밝히는 커다란 광원이 사라지면 수없이 많은 작은 광원들이 하늘을 메웠다. 마침내 그것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게 되면 그는 그 아름다운 것들을 배경으로 잠자리에 들곤 했다. 어느 날,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로 하늘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는 자는 것도 잊고 큰 광원이 떠오를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았다. 작은 광원들이 점차 사라지고 주위가 밝아지자 거룡은 울기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울었고, 흐른 눈물은 대륙을 적셨다. 신음하는 대륙을 뒤로, 생명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가 울음을 그쳤을 땐, 대륙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후였다. 며칠밖에 살지 못했던 시한부 생의 초목들이 생명력 짙은 그의 눈물로 긴 생을 얻게 되어, 벌건 흙과 모래를 비집고 그를 향하여 자라난 것이다. 또, 초목이 번성하자 그를 닮은 작은 생명들이 생겨났다. 그 생명들은 저마다 다른 행동을 보여주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하는 모습은 매일 거룡을 놀라게 했다. 하늘을 보는 것만이 낙이었던 그에게, 그 작은 생명들은 매일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주었지만, 거룡의 나이만큼의 시간이 흐르자 그 작은 것들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생명력이 다 해 가는 것을 매일 지켜보던 그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가 작은 것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작은 광원들이 수백 번 하늘을 메우고 난 뒤, 거룡은 울다 지쳐 잠시 눈물을 거두었다. 겨우 생을 부지하던 작은 생명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빠르게 번성했다. 거룡이 다시 기운을 차렸을 때는 그들이 장대한 문명을 이룩한 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거룡으로부터 탄생하였다고 볼 수 있는 작은 생명체들이 거룡을 찾아왔다. 그는 신기하게도 그들이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거룡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했다. 개 중에는 그들의 기원과 그들이 쓰는 힘의 원천에 대한 것도 있었다. 거룡은 무엇 하나 빠짐없이 답해주었다. 그들은 그의 답에 만족해하며 큰 감사를 표하고 돌아갔다. 거룡은 그들에게 도움이 된 게 기뻤다. 그리고 막연하게 알아챈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가 울고 난 뒤면, 생명이 자라났다는 것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서였던지, 그들 스스로 일궈낸 것이었던지,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거룡은, 그에게 있어서 아주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난 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작은 생명체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알게 되었다. 그의 눈물은 생명체들에게 번성을, 울음소리는 반성을, 뒤척임은 공포를 주었다. 거룡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적절히 이용하여 그들, 생명체들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홀로 보낸 시간이 무색하게, 그는 다음에 오게 될 생명체들에게 그리움을 품었다. 다음 주제: 비틀린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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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ㅡ라 말했던가. 지x도 심하면 병이다.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 같은 동아리도 아니었고 같은 반도 아니었다. 다니는 수학학원이 같았을 쁜이고 그마저도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어쩌다 자리를 비켜줘야한다는 용무가 생긴다면 모를까, 그녀와 나에게 있어서 대화란 요원했고 아는 사람으로의 관계개선은 이뤄지지 않을 것같았다. 실제로도 이뤄지지 않았지ㅡ 당연하다. 인생이 만화도 아니고 갑자기 찾아와 이러쿵 저러쿵 말해댈 명분이 없잖은가. 그녀가 없어지기 전까지 나눈 대화라곤 단답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전혀 몰랐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5월 21일, 그녀가 땅으로 올라가기 하루 전, 사랑해란 말을 들었던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 속하는 이의 고백은 참 황당하기만 하다. 언제 나에게 관심을 표출하였으며 좋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혹시 티가 팍팍 나는데 나만 몰랐던 건가? 신이 나서 얘기하는 그녀를 잠시 멈춰세우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나냐고. 이런 볼품없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 외에도 왜 이렇게 고백을 하는지등등 물어볼 것은 많았으나 생각의 가위에 잘려버렸다. 가관이었다. 그냥. 그냥 좋댄다. 그래, 인간관계 참 알다가도 모츠니 그냥 좋을 수 있지. 거기까진 이해해. 왜 좋은데? 물어보니 그것도 그냥이랜다. 어쩌라는것인지. 내게 있어서 그냥을 연발하는 그녀는 어린아이와도 같았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문제를 푸는게 낫지ㅡ라 생각한 나는 고백은 감사하나 아무래도 난 당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같다라고 돌려보냈다. 아련하게 눈물 한 방울 휘날린 것 같았으나 그 정도는 혼자 인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실연에 옥상에서 몸을 날릴 거라곤 상상의 상상에서조차 상상못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녀에게 무리한 애정행각을 요구했기 때문에 아직 사랑하지만 감당하기 힘들어 떨어졌다는 그녀의 유서는 거짓이다. 정 못 믿겠다고? CCTV라도 돌려봐라. 난 절대 그녀에게 달콤한 세레나데를 속삭인적이 없고 은밀한 만남을 가지자 한 적도 없으며 달콤한 마음을 품고 았던 적도 없다. 나는 완전히 결백하다. 십수년 짧은 인생 모두를 걸어서라도 자신할 수 있다. 그녀의 유서는 날 옭아매기 위한 밧줄일 뿐이다. 난 1년전 예리말곤 좋아해본 사람이 없다. 진짜다. 내가 뭣하러 그런 여자아이를 좋아했겠는가? 슬프게도 학교 sns에서 이와 관련된 소문이 돌고 있음을 들었다. 그건 죽은 그 X 기분만 좋게 해주는거다. 제길, 피해자는 난데 왜 걔가 동정을 받는거냐고. 지금 솔직히 말해보자면, 억울해 죽엤다. 미쳐서 팔짝 뛰고만 싶다. 지금 이걸 보고 있는 당신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자면,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내가 암만 말해도 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믿어주질 않는다. 이미 여론은 기울어졌고 다들 나를 쓰레기 취급하고 있다. 난 사랑에 대해서도 범죄에 대해서도 결백하다. 미안하다, 계속 말이 반복되는데 흥분해서 그렇다. 이 모든것은 그녀가 날 죽어서까지 자기걸로 만들기 위해 벌인 일이다. 알겠는가?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비틀린 애정탓이다. ㅡ다음 주제:바보
갇혔다. 갑자기 창궐한 전염병 바이러스로 인해, 자그마한 시골 복지소 건물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되었다. 복지소 건물은 전부 3층. 각 층에는 복도와 고작 4개의 작은 방이 있을 뿐이다. 갇힌 사람은 8명. 그 중 대부분인 넷은 50대의 남성이다. 때를 맞춰 동네친구들끼리 모여 혈압약을 받으러 왔다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것이다. 나머지 4명 중 두 명은 각각 의사와 간호사로 대체복무로 공중보건의로 와있는 어린 남자의사, 30대 후반의 남자간호사였다. 그리고 남은 두 명 중 한 명은 보건소에 봉사활동을 하러 온 날 따라온 동네 바보. 굳이 성별을 표기하자면 남자다. 나와 동갑. 그러니까 절망적이게도 식수와 식량이 제한된 좁은 건물안에 갇힌 이들이 20대 여자인 날 제외하면 모두 사지 멀쩡한 남자라는 이야기였다. 성별을 떠나 모두 생존을 향해 인간성이 돌변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시점에서 홀로 여성이라는 점은 내게 너무나 불리한 요소였다. 게다가 보건소 내의 인물들은 내게 전부 초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색한 사이. 수도권 대학을 다니다 방학 때 봉사활동 명목으로 오늘 막 보건소에 방문한 날 알아보는 사람 같은건 아무도 없는게 당연했다. 동네 친구인 아저씨 넷은 당연히 협심해서 행동할 것이고 의료진 두 명도 서로 의지하겠지. 그나마 내게 남은 선택지라곤 동네 바보가 있을 뿐이지만 바보는 바보일 뿐. 어렸을 때부터 내게 호감인지를 귀찮게 보내며 놀자고 들러붙던 녀석이지만 한번도 녀석과 어울려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게 그는 이상한 냄새가 났고 기분나쁜 장난을 쳤고 대화가 통하질 않았고 모두가 멸시하는 대상이었다. 그는 내게 어떤 도움을 주기는 커녕 나와 관계된다면 내가 먹여 살려야할 입을 하나 떠맡게 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할 것이었다. 큰일 났다. 바깥은 오염된 흙과 수증기로 인하여 통행이 불가능한 상황. 전파는 터지지만 굶주림에 이성을 잃은 인간이 어떤 짓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그것을 막아줄 공권력이 찾아오길 기대할 수가 없는 상태다. 나는 곧바로 사무실 하나를 차지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다행이 안에는 생수통을 끼워쓰는 정수기 한대와 커피와 녹차티백, 둥굴레차 티백같은 것이 있었다. 거기다 캐비닛을 뒤지니 커피믹스는 100개짜리 한박스가 나오더라. 커피원두는 모르겠지만 설탕과 크림가루는 귀중한 식량이었다. 당황하여 쫓기듯 아무 방이나 골라 스스로를 가둬버린 상황에 이 정도로도 충분히 감지덕지할 일이었다. 바깥의 그들은 처음 하루는 상냥하게 잠긴 문을 두드리고 불안해하는 나를 이해못하겠다는 듯, 그러나 달래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러나 안에서 대답이 없자 다음 날 부터 욕설과 협박이 날아들었다. 안에 있을 식량을 나눠가지기가 싫어 모두를 기어코 굶어죽게 만들 년이라고 부서질 듯 문을 두드리는 쾅쾅 두드리는 굉음이 내 머리를 때렸다. 젊은 의사는 안에는 커피와 물뿐이다. 바깥에도 그건 많지 않느냐, 또 내게는 바깥에 정수기 물통이 많은데 그 한통으로 버틸수 있겠냐는 둥 나와 동네 아저씨들 사이를 중재하고 내가 문을 열도록 설득하려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그러나 나는 미친소처럼 흥분하기 시작한 아저씨들의 횡포에 말문이 닫혀버렸고 그도 그런 아저씨들의 태도에 질렸는지 간호사와 같이 입을 다물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 결국 내가 마실 물은 동이 나고 말았다. 충전기가 없어 방전되버린 스마트폰은 내가 얼마나 더 이 굶주림과 갈증을 참아야 하는지 알려줄 수도 없었다. 한발짝 한발짝 뛰어 다가오던 지옥이란 놈이 결국 코앞에 머리를 디민거였다. 난 어떻게도 저항할 수 없었다. 그저 절망. 죽음과 폭력과 갈증으로 말라비틀어지는 고통속에 죽어가는 미래 예지만이 내 머릿속을 깜박깜박 밝혔다. 하루는 그저 참았다.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배뇨활동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기적적으로 나에게 한계가 찾아오기 직전에 날 구원해주러 올 외부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형편좋을 일이 마침 생겨날 리가 없었다. 환기를 전혀 하지 못해 쿱쿱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공기를 섧게 마시며 나는 흐르는 눈물을 받아다 다시 입속에 넣었다. 미련하게 자꾸,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귀찮게... 손가락으로 눈가를 조심스럽게 훔치며 나는 계속 조심스럽게 받아마셔야만 했다. 한방울이라도 바닥에 떨어질까.. 그러나 정말 미련하게도 제 살을 깎아먹는 그 진물 마저도 혀를 적시니 한동안은 기분이 좋아서 우는데 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람. 더 기다릴 순 없었다. 죽기전에 행동하려고 해봤자 힘이 없어서 실패할 것이다. 그러니 뭔가 하려면 지금, 아니 지금도 좀 늦은 감이 있었다. 나는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빨리 내가 마실 수 있는 물을 찾아 안전한 공간을 확보해야만 했다. 문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했다. 문 앞에 아마 뭔가를 쌓아놓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소리로 추측해보면 문을 깨부수기 위해서 던지고 내리치던 의자나 기타 잡기들이 또 며칠 후에는 날 가둬놓기 위한 소품으로 쓰인것 같았다. 어차피 날 끄집어낼 수 없다면, 내가 저들의 식량을 몰래 훔치지 않을까가 뒤늦게 걱정이 된 거겠지. 그러므로 문은 포기했다. 사실 그보다도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음, 내가 문밖으로 나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을 미지의 무언가가 너무도 두려워 그들의 예상 범위 안으로 감히 뛰어들 수가 없었다. 사무실의 커다란 창문에는 두껍고 긴 커튼이 달려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찢고 묶어 긴 천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커튼 고리를 휘어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뒤 창틀에 걸고 밤을 틈타 아래층 창문으로 내려갔다. 손으로 밀어보니 창문은 잠겨있었다. 기분탓인가 오랜만의 바깥공기가 너무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먹은 것도 없는데 갑자기 활력이 생긴것 같기도 햭다. 갇히기 전 뉴스로는 땅과 땅 위를 흐르는 강 일부가 오염되어 수증기조차 위험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니 그런 위기 의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당장 눈앞에 닥친 또하나의 죽음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일까, 나는 전염병 바이러스가 크게 두렵지 않았다. 갈증이 너무 심해진 나머지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확신이 있었다. 이번에는 잘 될것이다. 난 살아남을 것이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운동화가 유리 창에 부딪히자 먹먹한 빗소리 같은 것을 부르짖다 잦아들았다. 벽을 타고 올라 다시 원래 방으로 돌아간 뒤 갈고리를 풀어 옆방 창문 가에 던진 커튼 줄을 잡아당기자 팽팽하게 늘어졌다. 죽음의 공포를 또다른 죽음의 공포로 극복하면서 나는 마치 벽타기 선수라도 된것마냥 벽을 밟으며 옆 방 창문 아래로 진자운동 하듯이 순식간에 이동했다. 소음이 좀 거슬릴정도로 나고, 숨이 헐떡이는걸 참을 수 없었다. 몸무게를 지탱하는 팔이 겁을 먹은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여 부들부들 떨리다 뜯겨져나갈 듯 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무슨 소리가 나지 않는지 살폈다. 시끄러운 나의 심장소리뿐 딱히 인기척은 없는 듯 했다.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곧장 창턱으로 기어올라 창문을 밀었다. 그 기이한 예감 덕분일까, 거짓말처람 창문이 드르륵 밀렸다. 아쉽게도 이 방은 마실것과 먹을 것이 없는 방이었다. 만약 있었다면 몸싸움이 벌어졌을 테니 뒷일을 알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최후를 빨리 재촉할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고 다시 이번엔 이 아래 방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조심이 기어 내려가 손으로 밀자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순간 덥고 텁텁한 공기가 확 풍겨져 나오며 누군가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안 들키고 물을 훔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곧장 창문을 더 밀어젖히고 물을 찾았다. "뭐야...."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생수통을 막 품에 안고 있었다. 악 소리나게 무거운게 무서우면서도 설렜다. "야.. 누가 창문 열었어...?" "뭐라고..?" 슬슬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쯤에 나는 막 창문가에서 매달린 줄을 잡고 있었다. "저 미친!" 달빛은 내 등을 비췄고 홉뜨여진 그들의 눈동자도 비췄다. 그들은 내 존재와 활짝 열린 창문에 기겁했다. "야! 창문 닫아! 죽고 싶어?!" 고맙게도 그들은 도둑을 눈 앞에 두고도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물러나려 하고 있었다. 순간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계획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바이러스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결코 식량을 빼내 올 수 없었을 것이었다. 기아와 갈증에 평소처럼 사고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 이런 구멍을 만들었던 거였다. 뜻밖의 원인으로 위기를 넘겼지만, 난 또다시 언제든 위태로워질 수가 있었다. 기껏 물통을 훔쳐서 무사히 방을 탈출했건만 무거운 물통을 들고 매달려 있는 온몸이 너무 무거웠다. 나는 물통과 함께 떨어져 죽을 것이냐 물통을 버릴 것이냐 두 선택지가 남아버린 상황에 미칠것 같았고 웃음이 나왔다. 이럴 수는 없다. 내 팔이 이 줄을 잡지 못할 수는 없어. 그럴 순 없는 거야. 아니 여기서 이게 이렇게 된다는게.. 말이 되냐고? 소리를 질렀다. 이대로는 죽는다. 죽기 싫으면 여기서 물통을 포기해야한다. 더 매달려 있을 수도 없었다. 팔꿈치 관절이 뜯기듯 늘어나는 것 처럼 느껴졌다. 너무 아프고 온몸이 욱신 저렸다. 그 때였다. 커튼 줄이 매달린 윗 방의 창턱 아래로 한 사람의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숨도 쉴 수가 없었다. 희끄무레하게 흐린 눈앞을 달빛이 빛과 어둠으로 나누었다. 공포가 서서히 그 얼굴 위에서 한 거풀을 벗었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왠지 낯설게 느꺼지는 우리 동네 바보의 웃는 얼굴. "....."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나진 않았겠지만 나에겐 그 위치의 인물이라면 지금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였다. 그는 타인에게 악의를 가질만한 지능이 허락되지가 않았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바보는 내가 걸어놓은 갈고리를 들어 창틀에서 빼내는 듯 하더니 갈고리가 옷과 엉켜 나와 함께 아래로 상체가 훅 딸려갔다. 나는 부들부들 떨며 간신히 물통과 줄만을 붙잡고 있었다. 뭐라고 말할 여유가 없없다. 아픈 짐승처럼 숨을 짧게 씩씩거리고 몸을 떨며 매달려 있는 나를, 그는 줄을 당겨 방 안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마침내 창틀에 내 발이 닿고, 내 몸이 안전한 곳에 착지했을 때 그는 날 보는게 아니라 팔에 엉킨 커튼줄을 보고 있었다. 갈고리가 걸린걸 빼내려다 되려 더 엉켜버린 모양이었다. 그가 힘주어 잡아당긴 덕분에 나는 방 안으로 올라올 수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당연스레 내게 줄이 묶인 오른팔을 내밀며 뭔가 소리를 냈다. 풀어달라는 뜻이겠지. 나는 그의 오른팔을 잡고 그가 창틀에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있는 힘껏 그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그는 어어- 하는 소리를 내더니, 아래로- 추락했다. 떨어지는 소리는 났는데, 몸이 튼튼한 그는 정신을 잃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에 생생히 독기가 맺혀 듣는 내 몸의 온몸에 털을 세웠다. 끔찍한 울음소리였다. 난생처음 감정을 깨우친 짐승이 있다면 이런 소리를 낼까. 나는 문을 잠그고, 귀를 막고 주저앉았다. 그도 그럴게, 너도 나 죽이려고 했잖아? 아까 그는 날 죽이기 위해 갈고리를 빼내려던 거였다. 그러다 엉켜버리지 않았다면 저 곳에 떨어진 것은 내가 되었겠지. 그 며칠간의 굶주림이 짐승에 가까운 바보에게도 먹는 입이 줄면 자기 몫이 늘어난다는 걸 깨우치도록 한 걸까. 바이러스가 천지라더니 바보는 빨리 죽지도 않고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목이 찢어져라 울어도 아무도 와주지 않자 제풀에 지친 바보는 점차 씨끈대더니 절뚝거리면서 멀리로, 안개 저 편으로 발걸음 소리는 그렇게 점점 사라져갔다. ---다음 주제:캔디
ㄱㅅ
갱신
최근까지만 해도 나는 커피맛사탕을 먹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알러지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죽은 절친이 가장 좋아하던 게 바로 그 커피맛사탕이었기 때문이다. 걔는 항상 주머니에 사탕을 가득 넣고 다녔다. 자기도 하나 먹고, 다른 사람도 하나씩 나눠주고는 했다. 하도 익숙해져서 나는 왜 하필 커피맛사탕이냐고 툴툴대기도 하고, 이제 그만 줘도 된다고 거절한 적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녀석은 가만히 웃으며 커피맛사탕을 또 한 개 까서 자기 입에 넣고는 했다. 녀석은 말했다. "인생이 쓰니까 사탕 하나로 기운을 낼 수 있는거야." "그럴 수도 있겠네." "너도 네가 좋아하는 사탕을 찾아 봐. 분명히 더 기분이 좋아질거야." 지금은 알고 있다. 그 커피맛사탕은 단순한 사탕이 아니었고, 이제 두번다시 녀석이 줬던 것 같은 사탕은 먹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녀석의 영정 앞에 커피맛사탕을 올려놓고 나는 울었다. 그러자 묘한 일이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사탕을 가져와서 영정 앞에 올려놓는 것이다. 시작은 그 애의 부모님부터였다. 아버님이 가져오신 인삼캔디와, 어머님이 가져오신 박하사탕이 녀석의 영정 앞에 놓이면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탕이 수북히 쌓여갈수록 나는 오열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사탕이 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그날 밤, 조문객들은 모두 그 사탕들을 나누어 먹었다. 녀석이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했으리라. 빈소를 지키는 동안에도 사탕은 지친 육신을 달래주는 것처럼 마냥 달았다. 나는 여전히 커피맛사탕이 입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탕은 누룽지맛 사탕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었다. 때때로 사탕처럼 녹아내리던 녀석의 미소를 떠올린다. 그러면 조금 더 살만해진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제: 치유
갱신
내가 바라는 건 치유가 아니다. 이 상처의 피가 멎고 딱지가 생기고 그것마저 떼어져 종내엔 말끔하게 되더라도, 그건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 다시 되돌아가는 것. 진정한 의미로서의 회복.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다. 아니면 하다못해 상처가 치유된 후에 내 기억을 없애 나 자신은 이게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하지만 네가 할 수 있는 건 사과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용서뿐이다. 너는 절대 내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없고 그걸 알기에 나는 네게 그걸 요구하지 않는다. 너에게 화내지도 않는다. 화낸다고 없었던 일이 되겠는가. 다만 같은 일이 반복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자 냉정히 널 밀어내는 것이다. 용서야 해줄 수 있다. 나는 이미 널 용서했다. 널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 다음 주제: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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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나는 우주나 행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는 밤에 밖에서 돗자리를 깔아주셨고, 나는 그 돗자리에서 별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빠에게 태양계에 대해 배우고, 별자리에 대해 배우고, 우주에 대해 배웠다. 아빠는 명왕성을 유독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나는 졸린 눈을 깜빡이며 명왕성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갔다. 하나 하나 나이를 먹고, 내가 중학교에 갈 시절이 되었을 때. 나는 그때도 우주를 보는 걸 좋아했고, 그 때문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 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우주나 명왕성을 포기할 수 없었고,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절정은 중학생이 되었을때였다. 이제 애들은 날 안친한 아이가 아니라, 기피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2006년 8월 24일. 따돌림 속에 괴로워하던 그때 명왕성이 태양계 행성으로 박탈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행성으로 분류되었고, 134340이라는 답답한 분류번호를 가지게 되었다고.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 울었다. 사실 내가 운게 정말 명왕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명왕성 핑계를 대며 따돌림에 대한 괴로움을 쏟아낸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8월 24일은 그렇게 통곡의 날이 되었고, 나는 그 후로부터 우주에 대해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교에서 말고, 다른 곳에서 점점 사람을 만났다. 친해지고, 믿고, 의지하고. 처음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쌓이자, 명왕성은 한참 뒷전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는 과거에 내가 우주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조차 흐릿해졌다. 그리고 부모님께 중학교때 따돌림에 대한 설움을 풀었다. 나는 울지 않았지만 울 지경까지 갔었고, 그런 나를 보며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명왕성이 널 사랑했나 봐. 널 위해서 왜행성으로 태어난 거야. 네가 자신에게 너무 빠져있으면, 네가 힘드니까. 아빠는 감정적인 위로는 못했지만, 그 말은 충분히 감동을 주었다. 실제로 명왕성엔 하트 무늬가 있지 않는가? 나는 실제로, 명왕성에게 사랑받는지고 모른다. 주제: 인어
" 저거 봐, 호수에 인어가 있어. " 침묵을 깬 것은 그 아이의 탄성이었다. 철망 너머, 호수는 그때까지도 조용히 물결치며 스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노란 두 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옛 이야기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해양 생물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 인어를 믿으면 잡아먹히고 말아. " 나는 아이의 작은 손을 꽉 잡고는 뒤돌아 성큼성큼 걸었다. " 인어는 외롭지 않을까? " 어린아이다운 상상이다. 자신이 인어와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을 법도 하다. 그러나 물가는 안 된다. 괴물이 산다. " 인어도 친구들이 있을 거야. 외롭지 않을걸. " 나는 아이를 안심시키려 머리를 쓰다듬는다. " 네가 인어에게 가 버리면, 내가 더 외로울 거야. " 그 아이는 인어에게 간 것 같다. 인어는 그 아이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부드러운 머리카락부터 하얀 손, 작은 발까지 모두 말이야. 아마 인어는 너와 친구가 되기 싫었나 보다. 주제: 우주선
나는 보았다. 우주선이 나와 멀어지는 걸. 길게 이어진 줄이 나를 잡아채려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보았다. 나를 포기하고 떠나는 그 우주선을. 내것이라 생각했던 우주는 내것이 아니였다. 나는 우주에 홀로 떠다닌다. 우주에는 발 딛을 것이 없다. 나는 누워있는지, 서있는지도 모를 그 암흑에 있다. 보이는 건 반짝이는 별들 뿐. 나도 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너무 어두우니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며 바뀌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이 우주복은 얼마 버티지 못한다. 내 죽음을 시간으로 매기고 싶지 않다. 영겁인지, 찰나인지. 세지도 못할 그 시간을 그저 즐기고 싶다. 암흑이 날 잡아먹는 기분이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내 꿈을 달성했던 그 환희가 어제같았는데.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시야가 뿌옇지만 닦지 못했다. 외롭다. 춥다. 실제로 춥지 않겠지만, 마음이 얼어버릴 듯 춥다. 나는 혼자다. - 카네이션
흔히 카네이션은 어버이날 부모님에게 드리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꽃말에 자신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으면 어떤 꽃이든 상대방에게 선물해도 괜찮지 않을까. 처음 그 사람을 만난 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려움에 처한 나를 몇번이고 구해주었고, 꽃을 좋아한다며 나를 넓고 화려한 화원에 데리고 가 이런저런 꽃들을 구경시켜 주곤 했다. 그의 집에 초대받아 꽃 이야기로 그칠 줄 모르는 환담을 나누곤 했다. 그 이후로도 많은 교류가 있었고 점점 시간이 흘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그에게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걸 자각했을 때, 남들과는 조금 색다른 고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내 손에 들린 카네이션 다발을 슬그머니 내려다 보았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같이 전달하고 싶어 고른 꽃. 항상 나를 정성껏 신경써 주는 그에게 열렬한 사랑과 감사하고 있다는 두 메시지를 동시에 담은 분홍색 카네이션. 나는 들뜬 마음을 다잡고 그에게로 향했다. 분홍색 카네이션 꽃말 검색해봤는데 여기저기 전부 다 제각각이라 저게 맞을지 모르겠다ㅠㅠ 다음 주제: 괴도
나에게 괴도는 어렸을 적 티비에서 봤던 애니, 의 주인공이다. 흰 정장에 푸른 띄가 둘린 실크 햇(탑햇)을 쓴 청안의 소년. 그러나 그건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하나의 꿈일 뿐이다. 나는 자랐고 그건 몸뿐만이 아니다. 그저 내 어린 시절을 더불어 산 하나의 추억일 뿐이다. 아, 이런 생각을 할때면 꼭 과거형이던데. 그리고 내 눈앞에 진짜 괴도가 나타나다던가? 하하... 그러면 진짜로 좋겠다만. 난 현실을 산다. 그리고 난 이 추억이 당황 섞인 회상이 되길 바란다. 안녕, 나의 어릴 적 영웅이여. -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작은 나뭇잎 하나가 손 위로 떨어졌다. 아직 푸르른 은행잎 하나. 가을인데도 노랗게 변하지 않은 잎. 너는 무슨 꿈을 꾸었기에 노란 빛을 버리고 이리로 떨어졌나. 푸른 빛을 꿈꾸었기에 그대로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노란 꿈을 꾸었지만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붉은 꿈을 꾸었기에 슬퍼하며 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너는 어땠는가. 너는 무슨 꿈을 꾸었을까. 아마 내가 그 손을 잡아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래야 했을 것이다. 그 손이 네가 마지막으로 뻗은 손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손을 잡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너는 그대로 떨어졌을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했을까? 그렇다면 너는 떨어지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물어봐도 답은 없다. 이제 내가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네 손에는 닿지 못한다. 나는 그저 떨어지는 나뭇잎을 손 안에 고이 잡아서 놓는다. 그게 네 손이라도 되는 것 마냥 다음 주제는 비밀
졸업사진을 보니 몇 년 전 일이 떠오른다. 청소 당번이었던 나는 쓰레기통만 비우고 얼른 집에 가 놀 궁리를 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자루에 대고 탈탈 털으며 게임을 할지, 그냥 잘지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반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내가 청소 당번이냔다. 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겠냐고 대답하자, 그 애는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뒤로도 그 애는 별 쓸데없는 질문들을 몇개 더 던졌고, 착한 나는 일일이 다 대답해주었다. 조금 대화를 나눠보니 어색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웃을 때마다 그 애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에는 딸기맛 사탕도 받았다. "수고해. 내일 봐." 그 말을 끝으로 아이는 쓰레기장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길게 대화를 나눠본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애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것도 처음 보았었다.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좋은 일이 있었나? 내 작은 농담에도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웃던 그 아이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나는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다. 그래서 다음날, 나는 그 애에게 돌직구로 물었다. "어제 너 뭐 좋은 일 있었어?" 내가 묻자, 그 애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필요 이상으로 당황해서 오히려 내가 더 놀랐었던 것이 기억난다. "어… 어? 왜?" "아니, 어제 너 기분 좋아 보이길래." 그 애는 나와 눈조차도 맞추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단어 하나를 툭 내뱉었다. “비밀이야.” 그랬었지, 정말 이상한 아이였다 싶다. 무슨 비밀이었길래 그렇게 신이 나 거의 남남이었던 내게 말을 걸었을까? 그 친구는 졸업하고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다. 졸업앨범 뒤편에 써져 있는 전화번호부에서 그 아이의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걸어본다. 다음 주제: 눈물
눈물을 맛본 적 있어? 혀 끝을 톡 쏘고 지나가는 짭짤한 감각, 그 뒤에 퍼지는 비릿한 단맛. 너무 울어버리면 코가 막혀서 제대로 맛볼 수 없어. 자주 우는 것도 그 맛을 퇴색시키지. 아주 가끔, 눈물이 고여 흐르는 감각조차 흐릿해질때쯤 한 번씩만 울어야 달콤한 눈물을 맛볼 수 있어. 그러니까 그만 울지 그래? 다음 주제 : 커피
나는 쓰디쓴 커피를 마시다 말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내 맞은편 그녀는 나를 못마땅한 듯 쳐다보더니 이내 가방을 들고 매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와 그녀는 더 이상 운명도 뭣도 아니라는 것을 커피에 비친 내 얼굴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그녀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커피를 마셨다. 테이블 위엔 커피, 그리고 몇 번의 눈물자국만이 남았다 다음 주제: 여명과 바다
남극의 빙하가 녹았다. 어떻게 녹았는지는 밝히지 못했다. 하루아침만에 그 큰 빙하가 다 녹아서, 영문도 모르고 녹아버렸다. 우리가 사는 지구. 바다의 수심이 늘었다. 얼마 되지 않아 그 큰 지구의 대륙들이 대부분 잠겨버렸다. 역설적이게도 그 풍경은 너무나도 청아하고 푸르르고 파란 아쿠아마린 색 바다와 하늘로 칠해져 있었다 수평선의 경계가 모호한, 마치 하늘과 땅이 이어진듯한 광경이였다. 남극의 빙하엔 인류가 모르는 바이러스가 많다고 했었다. 그 카더라는 곧 사실이 되었다. 그 바닷물이 인체에 닿으면 그 부분이 굳어버린다. 그 바닷물을 뒤집어 쓴 사람은 움직이질 못해서 살아있는 산 송장 느낌이였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살았다. 해가 뜨는 여명의 시간까지 모두가 죽었지만 나는 살아있다. 바다를 걷는다. 걸을 수 있었다. 바이러스의 또다른 작용인가 싶다가도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다. 모든 생명체가 죽은듯 고요하고 잔잔한 바다를 걷는다. 작게 찰팍 찰팍 소리가 났다. 비가 온 뒤 웅덩이 위를 걷는것처럼, 고요한 평면을 누르는 소리가 무소음의 세계에 울려퍼졌다. 무릎을 꿇고 아래를 보았다. 해가 뜨는것 같이 표면에 비쳤다. 그대로 나는 표면속으로 가라앉았다. 여명에 잠긴 바다였다. 다음주제는 허수와 허공
허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수학시간이었다. 허수 虛數 는 비어있다의 허를 쓰는데, 막상 그 존재 자체는 다른 수를 부정함으로써 파생되는 것이다. 실수가 아닌 수, 그게 허수의 첫번째 뜻이다. 두번째 역시 학교나 학원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의미인데 조금 웃긴 것이 수라는 한자가 들어가있음에도 이 뜻은 사람을 향한다는거다. 쉬운 문제를 잘 틀리는 애, 빼야할 것을 모르고 더해 사칙연산도 못하냐며 가벼운 비웃음 사는 애, 한 문제 차이로 문을 열었을 때 등등... 이또한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하나로 통한다. 제 분수를 모르고 허황을 바라는 애. 세번째는 무언가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허수, 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므로 뜻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야 얘 진짜 허수라니까." "어떻게 3번을 틀려?" 성적표를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말장난들이다. 그럼에도 뒤를 돌아본건 빈말으로라도 성을내며 아니라고 우기기보다, 짧고 나지막하게 울리고 마는 웃음소리가 발걸음을 멈춰세워서다. 본래 의미로 쓰이질 못할 단어를 사람에게 갖다붙이는 것이 조금 못마땅하기도 했지만, 뒤를 돌아보니 이름 모를 애들이 왜 그 애더러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 갔다. 굳이 실수와 허수, 두 수 중에 갖다대어보자면 후자가 어울리는 애였다. 손에 들려있는 시험지에는 빨간 색연필로 성의 없이 선들이 항방향으로 그려져있었는데, 어째 곡선보다 직선이 더 많은 듯 보였는데도 그 애는 해맑게 웃어넘기기만 했다. 얼굴 한 번, 이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애였지만 그 웃음만큼은 깊숙하게 남아 한동안 종종 그 앨 생각했다. 어쩌다 쉬운 문제를 실수하면, 손에 힘을 주어 빨간 선을 긋기 급급하던 나였는데 자취 없이 따라온 기억덕에 전보다 부드러운 직선을 그을 수 있었다. 말을 걸어볼까, 이름을 물어볼까하는 용기는 없었다. 그냥 열아홉살에는 별것도 아닌 것에 위로를 다 받을 수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하기만 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 학원가 근처를 걸을 때에도 가끔, 아니 사실 자주 그 애를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 얼굴 대신, 더욱이 또렷해진 웃음소리만을 이따금 다시 떠올렸다. 의미도 없고, 내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때로는 하루를 마무리할 힘을 줬고 어떤 날은 마음을 다잡을 용기를 주었으며, 고등학생 때의 추억을 환기시켜주기도 했다. 그 애가 공부하기를 싫어했는지, 못 했는지, 그저 그 달의 시험만을 망쳤던 것인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의 웃음 하나로 일면식 없는 사람의 머릿속에 몇년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네 가까이에서 그 미소를 온전히 누릴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머릿속은 허공과 마찬가지랬나,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많이 떠올려도 과한것 같지는 않았다. 부유하던 생각들이 침전되기라도 한 것일까. 어쨌거나 비어있음이 더 잘 느껴질 뿐이었다. "졸업식날은 말이라도 걸어볼걸 그랬나..." 한 번만 다시 하루의 모서리에 불쑥 나타나줬으면 좋겠다. 꽤 오랜만에 혼잣말로 허황을 바라봤다. 그 날로부터 봄이 세 번이나 지나고 난 후였다. 그 순간, 기적처럼 익숙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뒤를 돌아보자 이제껏 떠다니던 생각과 감정들은 가라앉아있었던 것인지 순식간에 머릿속을 떠올라 채우기 시작했다. 조금 음침하게도, 네가 만들어낸 허공이니 이를 채우는 것도 너여야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발걸음을 떼었다. 다음 주제는 궤도
나는 사람에게 모두 정상적인 궤도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제일 큰 폭의 변화이며 하나의 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비슷한 각도와 비슷한 속도로 공전을 한다. 나는 그 중에서 더없이 평범한 하나의 사람이다. 지구는 무척 넓고 다양하나 사실 사람들은 비슷하게 살아간다. 두려워하고, 주저하고, 때로는 용기내지만 후회하길 반복. 나아가기보다 머물고 현실을 부정하며, 그렇게 살다 살고 죽는다고. 자전이란 결국 자신의 지축을 중심삼아 돈다는 것이 그렇다. 각자 자신이 규정한 한계에 특어박힌다던지. 그리고 뻔하게도 나는 그런 삶에서 편안함을 얻는다. 그것은 평범한 관성이다. 우리가 늘 수백번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는 것처럼. 너는 조금 특별하긴 했다. 그 흔한 사람들 중 너만 특이한 궤도로 돈다는 것이 그랬다. 마치 너를 억업하는 것들은 없는 것처럼, 괴상하고 또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살아갔다. 가끔은 무모한 도전을 하고 끝까지 그에 굴하지 않는다던가, 갑자기 든 확신에 온몸을 던진다던가. 그래프로 따지면 너는 정해진 수치를 훌쩍 넘은 괴상한 관측물이다. 너는 엉망이었고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3차원에 세상에서 사는 나에게 4차원의 너는 아득하게만 보였다. 그러니 그런 너에게 관심이 가는 것도 딱히 이상한 게 아니겠지. 늘 돌던 궤도, 늘 하던 일, 늘 하던 말. 그런것들이 조금 식상하게 보이고 너만 새로워 보이고. 내가 일궈왔던 것들이 사실은 더없이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조금 염증이 났다. 너의 세상에는 중력도 공기도 세상에 모든 당연한 것이 없는데 행복해한다. 나는 중력도 공기도 흔해빠진 그 무언가도 가득 가지고 있는데 왜 삶이 초라한거지? 그러니까 이건 궤도의 문제인가? 너는 궤도도 속도도 방향도 큰폭으로 널뛴다. 하지만 네가 지나간 그 자리에 늘 아름다운 것을 남긴다. 너를 처음 본 나처럼, 그것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 땔수가 없는 것. 그러니 이건 사랑이겠지? 주제: 아름다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외모?,마음?,양심?,재산? 이모든 것이 합쳐져야 아름다움이 되는것일까? 치킨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너를 만났다. 네가 나를 바라보듯 나도 너를 바라본다. 너는 내게 향기를, 나는 네게 손길을 전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바삭! 신경이 찌릿하다. 불 꺼진 몸 구석구석에 전기가 들어온다. 아, 황홀한 이 감각. 살아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다. 라이벌
흔히들 완벽한 인생이라고 하던가. 전교 1등, 학생회장, 근면성실 부유한 집안, 그야말로 그린 듯이 완벽한 생활. 남부러울 것 없는 이정아의 삶은 흔히들 이렇게 평가되어 왔다. "정아야, 좋은아침." 정말, 남 부러울 게 없는 인생.... 이라니! 웃기는 소리하고 앉아있네, 남부러울게 없긴! 완벽해? 평화로워?? 열불 나는 소리가 머리 끝까지 뻗혀나가는 게 홧홧하니 아주 홧병 걸리기 딱 좋은 날이다, 라고 정아는 생각했다. "응, 좋은아침! 근데.. 아침부터 너네 너무 닭살인 거 아냐? 팔짱 못 끼면 죽는 귀신이라도 붙었니? 한 번도 떨어지는 걸 못 봤어." "부러우면 너무 남친을 만들렴, 그치-?" "어휴..." 허참, 나참, 거참. 마음 속에서야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선 꼬맹이 정아가 퉷 침을 뱉었지만 현실의 이정아는 그럴 수 없기에, 장난스럽게 수현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지금 나 놀려? 흥이다, 너. 자습시간에 떠들기만해봐!" "앗, 너무해!!! 이거 권력남용이야!" "내가 널 평소에 봐주던게 권력남용이지! 안 그래, 박진혁?" "아이참, 너넨 어떻게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어..." 근면성실한 학생회장, 부유한 가정? 겨우 이게 완벽한 삶이라면 다 집어치우라고 이정아는 당장에라도 항의하고 싶었다. 최소한 제가 생각하는 완벽한, 이라는 수식어에는... "쌍둥이끼리 좀 싸우지 말아." 망나니 같은 쌍둥이 여동생과 사랑의 라이벌이란 요상한 관계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것도 이미 제가 패배자로 낙인 찍힌! // 다음 키워드; 용포
비단은 차갑고 부드러웠다. 솜과 면을 덧대고 몇번을 꿰매어도 결국 내 손에 닿은건 얇은 소맷단이었다. 비단이야 벗어던지면 그만, 그 안에 누가 들었든 사람들은 금실자수만 바라보며 고개를 조아릴터였고 그럴바에야 너와 도망치겠다 다짐하곤했다. 흙바닥에 쌓인 눈은 녹을줄을 모르고, 난 그 위를 더럽힐 너의 발자국만 기다렸다. 눈이 녹고,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눈이 오고. 눈길에 더럽혀진 용포의 끝자락을 보며 깨달았다. 너는 내 비단옷을 참 좋아했다. 차갑고, 부드럽고, 깨끗한. 비단결을 입은 나를 참 좋아했다. 다음 주제: 자전거
자전거를 처음 배웠던 기억이 점차 흐려져간다. 아담한 사이즈의 물방울 무늬 자전거를 끌고 아빠와 공원에 나와 처음 패달을 밟았던 기억. 아니 하트 무늬였나? 그런건 이제 중요하지 않아 빠르게 쌓여가는 새로운 나날들 아래로 묻혀 색을 잃어간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돌아보면 아주아주 작아져 복잡한 감정 저 아래로 가라앉아 버리겠지. 중심을 잡고 페달을 굴리는 것은 이제 무의식적으로도 할 수 있다. 자전거를 처음 탔던 기억이 사라져도 난 자전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내가 자전거를 배웠다는 사실. 그 날 자전거를 배웠기에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 페달을 힘차게 밟자 지나온 풍경이 등 뒤로 빠르게 작아짐이 느껴진다. 단풍나무 길은 아직 멀었나, 아니면 지나쳐 왔던가? 다음 주제: 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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