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간 날은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었다. 어렸던 나는 왜 부모님의 손을 떠나 외할머니의 손에 맡겨져야하는지 몰랐다. 덜컹거리며 자동차는 외진 길을 따라서 그 마을로 향했다. 그저 지도 한 구석에 이름만 간신히 나오는 잊혀지기 직전의 마을. 엄마는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마을에서의 기억
터널에는 전등 하나조차 없었다. 그러나 마을을 둘러싼 산을 뚫고 들어가려면 그 길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 터널에 도달했을때는 줄곧 무표정이던 엄마도 침을 삼켰다. 아직도 그 표정은 기억에 남아있다. 공포인지 죄책감인지 모를 그 표정. 나는 울지도 못하고 그저 똑같이 침을 삼킬 뿐이었다.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차는 길 한복판에 정차했다. 엄마는 내 손을 이끌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것만 같았다. 아직 낮이었을텐데도 마을은 조금 어두웠다. 터널을 경계로 세상이 변한것만 같았다.
엄마는 내 손에 편지 한 장과 지도 한 장을 쥐어주고는 지도대로 길을 찾아가서 외할머니께 편지를 드리라고 했다. 3개월 뒤에 다시 찾아올테니 잠시만 버티라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대로 차를 타고 다시 마을 밖으로 나갔다. 분명 엄마도 오랜만에 자신의 엄마를 만나는걸텐데, 왜 인사도 안 하고 급하게 떠나는지 의아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넘겼다. 그때 나는 어렸다.
지도는 아주 낡아서 찢어질까봐 조마조마했지만, 의외로 그려진 내용을 알아보는건 어렵지 않았다. 마을 전체가 그 지도 안에 그려진듯 했고, 집 중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여기가 할머니 집이겠구나 생각하고 길을 나서려했다. 그때 지도 뒤에도 뭔가 써져있는걸 발견하고 나는 뒤집어서 확인해보았다.
지도 뒤에는 수상한 규칙들이 잔뜩 적혀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적혀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때는 미친듯이 외웠던 규칙이었지만 시간의 흐름은 많은걸 흐려지게 한다. 기억을 최대한 살려서 써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정리하기가 힘들다. 아무래도 지도를 다시 찾아봐야할것 같다.
1. 이 지도를 누구에게도 주지 말고, 계속해서 스스로 지니고 있어라. 2. 밤에는 지도에 검은색으로 칠해진 길을 다니지 마라. 한발자국도 들여서는 안 된다. 3. 땅에 떨어진 돈을 줍지 마라. 시선을 최대한 돌려라. 4. 오전 6시 ~ 7시 사이에는 마을 서쪽의 학교에 절대로 가지 마라. 근처에 가는것은 괜찮지만 교문을 넘어서는 안 된다. 5. 산에 혼자서 올라가지 마라. 6. 문을 열기 전에는 반드시 노크를 해라. 7.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나 계단이 보이면 절대로 내려가지 마라. 8. 이방인에게 이 마을에 대해서 직접 말하지 마라. 9. 마을의 규칙들은 여기의 내용과 반대되지 않는 이상 반드시 지켜라.
나는 지도를 펼쳐들고 길을 찾기 시작했다. 마을 안 쪽으로 들어가니 주변은 다시 밝아졌고, 사람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내가 지나갈때마다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이 그럴때마다 지도의 수상한 규칙들이 떠올라 무서웠다. 그때는 어린 나이인게 오히려 도움이 된것 같다. 규칙들을 무시할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침내 나는 표시된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지도는 품 깊숙한 곳에 넣어놨다. 철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노인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보자마자 그 분이 내 외할머니임을 알 수 있었다. 엄마와 아주 비슷한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냈고, 할머니는 편지를 받아들어 읽더니 내게 들어오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보셨다. 엄마는 어떻게 지냈는지, 아빠는 어떤 사람인지- 처음에는 할머니가 무섭게 느껴졌지만 그동안 연락을 안 하시고, 이번에도 나만 맡기고 가버린 엄마가 섭섭했는지 상당히 슬픈 눈을 하시는걸 보게 되자, 할머니가 안쓰럽게 느껴졌고 괜히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번에 할머니가 한 질문은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엄마가 여기까지 안내해준건 아닐텐데 어떻게 찾아온거냐고, 할머니는 물어보셨다. 그러고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그리고 추가로 이렇게 물었다. 이 마을의 지도를, 가지고 있냐고.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