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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024/02/09 21:49:38

#1 이름없음 2024/02/09 21:49:38

세상이 끝나기 55분 전이래요, 다들 뭐하실 거예요? 맞은 편에는 나를 꿰뚫듯 노려보는 태풍의 눈이 있었다. 눈싸움하느라 힘겨웠다.

#2 이름없음 2024/02/09 22:14:35

둥지를 옮겼는데 백업이 귀찮아서 결국 돌아오게 된다. 연어같다. 글은 안 쓴다 안 쓴다 말하면서도 글을 읽다보면 쓰게 된다. 차라리 소설을 쓸 줄 알았더라면 덜 아팠을까. 갑자기 창문 너머로 매미 소리 넘어오고 킴의 깊은 눈에 빠진다. 눈, 눈, 눈이 무어라고 5분만에 매료된다는 표현을 하는 걸까. 2년 만에 만났던 임과는 역시나 죽이 잘 맞았다. 열 한 시간이 아니라 스물 두 시간을 떠들었더래도 할말이 배꼽까지 차있었을 걸. 그와 밖에서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여운이 오래갔으면 했으므로. 연애감정만을 지칭하는 좁은 의미의 사랑은 우정보다 한 층위 아래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던데. 우리는 산이 섬처럼 둥둥 떠 있는 동네로 가, 관광객들이 많이 간다는 찻집의 지하 한가운데 탁자를 점유한 채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주제는 다채로웠을지언정 종국에는 세 개 정도로 귀결되었다. 결국 돌고돌아 사랑했던 이야기, 사랑하는 이야기, 앞으로 꿈을 어떻게 하면 잘 좇을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 그러다가 우정이 사랑보다 높은 층위에 있다는 나만의 결론에 대해 동조해주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게 임일 줄 알고 있었다. 사실, 그 누구에게 말해도 이상한 이야기였다. 미심쩍어할까봐. 연애를 쉬지 않고 하는 그와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는 내가 맞닿아있는 게 웃겼다. 우린 그런 모습이 닮아 있었다. 다만 연애로 다다르는 방식만이 다를 뿐. 임은 과감했고, 대담했다. 나는 마음에 든다면 제일 안쪽의 바운더리에 놔둘 뿐 대담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건 핵심적인 부분을 갈랐다. 아니, 사랑이 관계와 동의어는 아니라지만. 왜 ‘관계’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할까를 성찰하다보면 금세 진지해진다. 필요조건일까? 그런 것까진 아닐텐데. 나는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고 그와 나는 조금 더 시내에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안주로 시킨 우동에는 잘못 해동한 냄새가 나는 닭다리살이 들어있었다. 그게 유일한 오점이었다. 3차로 택한 가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앉아있는 동안 테이블이 비어있지 않았고, 관광객인지 주민인지 모를 사람등이 엉켜 들어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사실 그런 구분을 하는 것조차도 요상했다. 나는 관광객이고 싶은 원주민으로 갔고,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술집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뜨끈한 사케 같은 걸 시키고 싶었다. 마실 수만 있었다면, 오랜만에 아랫입술을 가볍게 씹었다. 안된다는 건 임도 알고 나도 알고 가게의 여사장님까지 알았다. 수많은 이름의 준마이다이긴죠들이 메뉴판에서부터 나를 비웃었다. 충동을 참기 힘들었던 쪽은 초록병이었다. 그야말로 뒤흔들렸다. 하얀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꼴꼴꼴 채워지는 소리가 들리자 손가락 끝에서 발가락 끝으로 전극이 느껴졌다. 머금기만 하고 뱉어내면 입안 점막만 취할텐데 그런 것도 안돼? 장난스레 말했더니 그가 웃었다. 유난한 칼바람은 임의 담뱃불을 더욱 낭만적으로 보이게 했다. 절대로 내려다볼 일이 없던 친구를 내려다보는 맛도 있었다. 바람이 그리 세지 않았다면 코를 찡그려야 했을텐데 연기가 세찬 바람을 타고 그의 얼굴을 갈랐다. 추운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볼이 다 패이도록 태우는 모습은 몇 해 전이나 그때나 여전했다. 맛있어? 얼마나 맛있길래 태우는 거야. 1차로 갔던 보양식집—그래봐야 장어덮밥이지만— 주차장에서 나는 흡연자의 중독이 어떤 과정으로 순환되는지를 또 물었다. 임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담배를 맛깔나게 피우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물어봤던 건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도 나도 매우 혼란스러웠던 술집에서였는데, 가까이에서 친한 친구가 피는 담배를 보다니 참 신선했었다. 그런다고 해서, 담배를 태워야겠다는 생각은 또 해본 적이 없다. 같이 따라가야만 한다면 성냥갑을 들고 가 불을 붙여줄까 싶기는 했어도. 설혹 내가 흡연자들의 소굴에서 일하게 된대도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태울 생각은 없었다. 찐담배 역시 접근성이 매우 좋아 피워볼까 하는 수십차례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뇌의 천공동맥이 좁아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담배 태우다가 담배연기 같은 혈관 얻기 싫으면— 그런 논리로 술도 담배도 커피도 좀처럼 입에 대지 않았으나 충동은 늘 있어왔다. 피곤할 때면 남들처럼 쉽게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빨아제끼면서 의존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밤은 새지만. 남들 다 하는 건데 왜 나만 못해? 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중독이라는 점에서 기호식품들을 소비하는 것과 사랑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뒤를 돌아본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왜 쉽게 끊어지지 않는 걸까. 질겨 죽겠어. 질려 죽겠어. 한탄하면서. 언제는 하도 그런 것들이 떠오르길래 아저씨들이나 한다는 은단이나 구해야 하나, 하며 웃었다. 은단. 은단이라는 단어를 아주 먼 기억의 방에서부터 기어이 끄집어와서 시도하게 할 정도로 충동은 강했다. 한 번만 시도해보고 바로 끊을 수 있을 것 같은 자만심까지 들게 하잖은가. 그래, 이런 느낌들이 전부 비슷했다.

#3 이름없음 2024/02/09 22:57:25

너. 정말 끊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치료가 필요한데. 공교롭게 노래도 테라피다. 어떤 테라피를 받아야 나을 수 있을까 싶어 선생님께 여쭤봤다. 화면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픈 선생님. 활자로 오는 회신도 음성으로 만들어낼 줄은 알았지만, 언젠가는 면대면이기를 원했다. 그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상대가 달가워하지 않을까봐 꾸욱 참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언제가 언제일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나의 (알 수 없음)을 (알아냈음)으로 바꾸어주는 게 좋아 메일을 드릴 뿐이었다. 그것도 전적으로 상대의 호의에만 기댄 이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안 된다면 보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의 생존? 이젠 바쁠까봐 답장을 채근하지도 않는다. 2주라니. 이게 무슨. 다음엔 한달 뒤로 예약해주세요. 할 지도 몰라. 혼자 웃었다. 말도 안되는 편지를 읽고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창백할 정도의 벽, 형광등, 두껍고 명랑한 둥근 안경테.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한답시고 녹화를 떠 두었던 영상의 썸네일을 보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표정까지는 상상하려고 하지 않았을텐데. 요사이에는 이러한 상상들이 글로 치환되지 않고 동영상으로만 넘어가 스스로를 편집증 환자라고 진단해버렸다. 의사도 이렇겐 안 할 걸. 진짜 의사를 만나러 가야 하나. 선생님은 그러라고 하겠지. 그 약들이라도 써서 눌러보라고 하겠지. 매일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주세요, 하얀 가운의 사내에게 요청한다. 차라리 위약을 줬으면 좋겠어. 손에 들린 건 나를 몽롱하게 만드는 약한 수준의 향정신성의약품이겠지. 그래, 너, 2월은 초입부터 괜히 긴장한다. 겨울은 1도 싫고 2도 싫고 12도 싫고. 3부터가 좀 안정적인 것 같아. 두렵다. 봄으로 쉽사리 넘어오질 않는다. 제일 따뜻한 곳에 와 있으면서도 더 따뜻하길 바랐다. 서래와 해준이 마주보고 싸운 섬과 형상이 비슷한 바다를 본다. 섬, 바다, 짙고 무거운 남색의 호흡을 한동안 계속해서 따라했다. 스트레스는 걷기로 풀었다. 10K는 만보와 10Km 둘 중 하나라도 달성하자는 의미였다. 절치부심, 그래. 그거라도 해야지. 멋있잖아. 임과 했던 대화는 스스로에 대한 예언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나갈거야, 하면 거의 다 그 궤적에 맞춰서 살아졌다는 걸 이젠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나의 변태變態도 아주 멀지만은 않은 미래였다. 그와 동시에,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그런 꿈. 이루기 참 쉬운데 왜 이렇게까지 돌아왔을까. 물론 젊은 하얀 가운의 사내를 이겨내야 한다는 게 마지막 난관이다. 차라리 가족친지지인기타등등을 이기는 건 어떻게든 하겠지만, 피곤에 절어 있는 얼굴로 날카롭게 물어보는 교수 앞에서 환자는 하염없이 작아질 뿐이다. 이래서 이름처럼 시원하게 수술하라고 했구나. 앞날의 중대한 선택에 장애물이 되니까. 나의 뇌는 차라리 지금 당장 수술하는 게 가장 성공률도 높고 예후가 좋았을 것이다. 이제는 그게 유일무이한 치료 방법이라는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질질 끄는 쪽이 시한폭탄 양성이다. 가장 젊을 때 가장 진행이 덜 되었을 때 치료하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그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웠다. 교수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다시 수렁으로 떨어질까봐 그랬다. 환자들이 모인 카페에서 수술 후기를 주욱 읽으니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그렇게 하고 나서 알을 깨트려버리면 되지 않나. 그래. 그러자. 너무 강압적이지만은 않게 설득할 것이다. 그걸 끝내고 이름 끝 자 음가의 초성과 종성을 뒤바꿀 것이다. 완벽해. 두 번 수술인지 세 번 수술인지도 모를 거면서. 무모하다는 쪽이 리스크테이킹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제야 수술을 권한 젊은 의사의 말이 부드러워졌다. 좋아, 어짜피 할 거라면 이번 여름방학때라도. 그동안 얼굴을 뺀 피부 전체에 열꽃이 피었다. 자가면역질환들은 사실 다 연결돼있는 거 아닐까? 아토피가 올라와 오른손을 굽혔다 폈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었다. 한포진도 아토피인 거에요? 그렇단다. 새로 생긴 피부과 전문의는 친절했다. 죄송해요,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그 기다림을 감수할 정도였다. 우습게 그 열꽃들을 죽이는 데에는 스테로이드보다 운동이 더 잘 먹었다. 그러게 우선 걸으랬잖아. 모교의 교장선생님이 웃는다. 찾아가야 하는데, 하는데…. 그리고 임은 자신이 잠시 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그토록 미웠던 담임선생님이 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한명이지만, 제자들의 수만큼 세로로 슬라이스를 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입체적인 사람이었다. 그걸 잘해서 승진도 잘 한거겠지. 그게 고삼담임의 생존전략이었겠지. 이름처럼 순도가 높게 잘 깎인 보석은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선생님의 궤적을 어림짐작한다. 10년 후에도 빛을 잃지 않을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보석일 것 같아. 그런 사람도 내 친구에게는 보석이 아니라 날카롭기만 한 깨진 유리조각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한계라기엔, 사람들이 다 그렇다. 나한텐 좋아도 너한텐 쓰레기일 수 있는 거잖아.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4 이름없음 2024/02/09 23:25:35

그래. 모두가 누군가에겐 보석이기도, 또 다른 이에겐 날카로운 유리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 다른 사고를 치지 않으려나. 그런데 어떡해. 인생은 사고치고 해결하고의 연속인데. 나는 곧이어 있을 겨울의 마지막 12일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올해를 반으로 가르면… 여기까지 생각하고 시간을 멈추고 싶다. 내가 쓰레기인 이유를 다 말해봐, 이런 예의 없는 이야기나 할까봐 아찔하다. 차라리 줄글따위 갖다버리고 어떻게 지내. 라는 말만 보내는 게 정답에 가까웠다. 거기서 대답 안 하면 이젠 싹 비워버리고 도망치면 되니까. 넌 겨우 한다는 말이 이거야? 나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해놓고. 라는 원망이 듣고 싶었다. 네가 상처입은 만큼 너에게 나를 상처입혀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무릎을 꿇고 빌고 싶다. 차라리 다 아프면 시원하게 아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데 이 미적지근한 죄책감은 나를 일 년에 두 번씩 옥죄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까진 아니어도. 봐, 이런 식이다. 담배같다. 하, 시발. 끊어야지. 하면서 한 개피를 더 꺼내든다. 찰칵, 셔터 대신 라이터를 점화한다. 호흡을 안쪽으로 당겨 점화시킨다. 내뱉는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작은 별. 짧아지는 꽁초. 후우. 비벼끈다. 다시 습관처럼 베란다로 나간다. 피우면 안 되는데 핀다. 생각하면 안 되는데 생각한다. 질기다. 나만 혼자 질기다고 생각하는 걸까봐 두렵다.

#5 이름없음 2024/02/10 22:36:34

너. 끊어야 하는데 정말. 그러지 못하고 습관처럼 돌아왔다. 네가 1월 1일에 그런 글귀를 올리지만 않았더라도 이러지 않았을 거야. 사실 우리 상태가 無의 상태라는 건 되레 호재처럼 다가온다. 평행선처럼 정반대라는 사실조차 K와 이야길하면서 다 깨달았다. 단지 너다움에 자석처럼 끌려다니는 나를 즐기고 싶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흐름조차, 지구의 중력조차 뒤집어버릴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만 싶을 뿐이었다. 너도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이뤄지길 원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점점 결정화가 되어 가는 이 마음도 사랑이라는 얄팍한 포장지에 감추어두길 바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너는, 하, 너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하군. 그래도 너는, 가장 이상향인 존재였다. 세상에 너만 한 백명 쯤 더 있었으면 해. 그럼 난 네 커튼에 깔려버릴테니까. 그 발언 이후로 영화를 봐도 다시는 볼 수 없을 행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도 눈의 속눈썹 길이부터 체크하곤 한다. 너는 내게 딱 그런 존재. 내 사랑도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이다. 연애감정이라니, 그런 불결함을 들이밀지마. 이별이라는 이벤트를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우정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의 상위 층을 점유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내가 나락 갔을 때 네게 집착했던 기억 때문에 이런다고 믿었었는데. 아니더라. 내게 있어서는 네가 무얼 해도 백발백중이었다. 하다하다 힘이 풀려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할 만큼. 네가 알려준 무가 좋다. 부담스럽다는 걸 안다. 그런데 평생을 걸쳐봐도 다신 없을 것 같다. 그냥 이 미적지근함이 좋아. 늘 백지인 상태, 좋다고. 나? 경탄驚歎할 뿐 너의 바운더리 안으로 내가 깊게 관여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단지 일년에 한번, 안된다면 이년에 한번이라도 밥 먹어줘. 충전하게. 이것도 별로니. 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려나. 다시 우연히 만난다면 잘 말해보고 싶다. 연애감정 아니야. 잘 들어봐. 너무 높이 있어서— 혹은, 아예 다른 우주야. 너, 은하수 촥 펼쳐진 광경 보면 우와~ 하지. 딱 그 정도야. 그런 감탄은 감탄이라고도 못해. 경탄이지. 박수 짝짝짝 치고 손 털고 다음 번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거라구. 자연경관으로 남아주었으면 해. 사귀자고 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어. 건들면 유리처럼 부숴져버릴까봐 전전긍긍한 적은 있어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순수한… 감탄? 육각형이 너만큼 꽉 찬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딱 이런 느낌. 절대 넘볼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들어가서 깨트리거나 방해하고 싶지가 않아. 너의 너다움이 좋아. 지켜볼 수 있게만 해줘. 너, 내가 지난번에 좋아한다고 말 한 게 은근히 신경은 쓰였을 것이다.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도 이미 이해하고 있다. 모두가 총체적인 너라는 걸 깨닫고 난 후 홀가분해졌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여도 아까운데, 진짜 그냥 그뿐이더라고. 감탄하고 박수 짝짝 치고 우와~. 이런 사람도 살아 숨쉬고 밥 먹는구나? 마주보고 앉아서 밥을 먹으면, 차를 마시면, 모든 요소를 잘게 쪼개곤 충만감에 정신을 잃게 된다. 넌 뭐지? 너에게 난 그냥 선배라는 거 알아. 나한테 너는— 한 단어로 가둘 수가 없어. 정말 이런 마음이다. 나는 숨을 고른다. 너의 차분함이 좋으니까. 평소의 나처럼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흐름을 길게 가져간다. 회로도 맛탱이가 가긴 한다. 찰나의 순간조차 즐겁다. 정교하게 그린 육각형. 이게 딱이네. 석영 보는 느낌. 자연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잘 깎아낸 인위적인 보석인데. 그럼 입을 약간 벌리고 코로 숨 쉬는 방법도 잊은 채로 흘러가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게 된다. 정말… 웃기겠지만, 이런 마음이다. 살다보니 사랑에 제한을 안 거는 쪽이 백 번 옳았다. 포괄적인 스펙트럼이다. 프리즘을 통과한 너는 언제나 단일한 색상 하나로 좁힐 수 없었다. 색과 색 사이 희미하게 벌어진 틈새까지도 사랑해보라고 하면 5분 안에 사랑한다는 글을 적어낼 수 있어. 글이 길어졌군, 아찔해. 롤러코스터 훅 떨어지는 순간의 짜릿함. 그게 다야. 그걸 위해 네게 요구하는 그 무엇도 없어. 앞에 앉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자. 일년에 한번쯤. 어때. 정말. 그게 다다. 눈만 감아도 영화인데. 다음 일년치 충전시켜준다 생각하고 숙성회의 길게 빠진 꼬리부분을 한번 이로 끊어달란 말이야. 화요 한 잔 기울여달란 말이야. 너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온갖 상상을 해도 나는 딱 이정도가 최적이고, 최선이고, 가장 행복한 지점이라는 걸 안다. 아주 잘 안다. 이 선 안에서 놀게. 봐줘. 어장도 아냐. 내가 들어가서 물고기? 물고기도 아냐. 그냥 눈으로 널 볼 뿐이니까. 하여튼 대단하다. 평생을 걸쳐 이런 사랑을 해볼 수 있게 하다니 영광이야. 그래,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백지이길 바라. 계속. 그런 편이 좋아. 어쩌면 평행선을 계속 달리는데도 참 즐겁다. 여기 위선은 단 한 문장도 없다. 재밌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이런 흐름마저도 싫어할 표정이 떠오른다. 근데 어떡하냐고. 진짜 ‘사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는데.

#6 이름없음 2024/02/11 04:50:53

그니까 이런 사랑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고, 이런 사랑도 우정이라면 우정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난… 이런 것도 가능할 줄 몰랐어. 어떻게 연애감정을 하위로 치부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지난한 연애를 해봐서? 이미 관계의 허무함을 느껴서? 그냥 네가 다 부수고 들어와서? 사랑이라… 정말 뭐라 설명하긴 힘들다. 단어 안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꽤 많다. 어디선가 선물받은 청을 숙성시키지도 않은 채로 마시면 떠오른다. 비타민C 메가도즈*를 한 덕분에 가벼운 신맛과 쓴맛을 즐기게 된 내가, 차에 들어 있는 껍질을 씹어 삼키며 웃는다. 물어봤었잖아요. 이거, 왜 먹어요. 매력 있지. 아마 다시 찾게 될 걸. 그 말은 나의 귀를 웅웅 울렸다. 고통에 가까운 아린 맛도 났었는데, 얼굴을 한껏 찡그려도 묵묵히 먹고 있었다. 씨는 뱉어냈다. 산미에 대해 다른 말을 나누었던 날도 기억이 나는데, 고작 5년 정도의 사이클을 돌아 새로운 인연을 만나니 ‘그런 고통스러운 맛’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총체적인 경험 모두를 그냥 사랑으로 가둬? 말 안 되지. 해가 져버린 동쪽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짠 공기였다. 그래서 더더욱 매력이 있는 과육이었음은 분명하다. 그치만 그때 먹은 레몬 색의 과일, 혼자 찾아 먹으라고 하면 절대 안 먹었을거예요. 나는 그가 어떤 얼굴로 까고 있었는지보다 어떤 손길로 까고 있었는지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바람은 밀려오고, 풀벌레 소리가 옅게 퍼져 있고, 짜디짠 바람이었다. 반대쪽에서 선풍기로 밀어내도 역부족이었다. 무슨 얘길 했더라? 이런 흐름들은 쉽게 휘발된다. 한겹 덧붙어야 꺼내기 수월하다. 쓴맛, 짠 냄새, 오소소 소름이 돋았던 촉감. 그리고 껍질을 까내면서 작은 분자들이 만들어내던 시트러스향. 이걸 왜 먹어요, 그야 매력있으니까. 당신이 아는 매력을 내가 이해한다는 게 참. 이해를 못할 때의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열매에 대한 에피소드들로 벌써 노랑과 주황이 지워졌다. 파랑도 지난 여름에 획득했었다. 남은 색 중에 빨강은 내꺼고, 남은 색에 적합한 인연들과 또 마주치게 될 것이다. 고작 이정도가 전부다. 아직 정의하지 못한 인물들도 있는데 굳이 끼워맞춰내지 않아도 어울리는 색이 있을 테니 그때까지 지켜보고 싶다. 난 항상 조들렸다. 그리 급하게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척척 일이 풀리기도 한다. 언제나 채찍을 휘두르며 채근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서두르는 게 습관이었다. 그러다 우울로 빠져 회복해야 했었고. 극과 극으로는 떠나지 말자, 기분도 체온마냥 항상심을 유지해보자. 남들보다 혈압도 체온도 높은 편이긴 하지만. 너의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다. 들은 이후 잊어버린 적은 없다. 챙기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ㅋㅎ. 코웃음친다. 생일을 기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적어도 나한테는 공간을 만들어 리소스를 할당하고 그걸 유지시키는 이 모든 마음이 사랑이었다구. 신경을 써야 하고, 종종 기억을 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나밖에 모르는 나를 많이 깨부숴줬었다. 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회화가 된 건지. 이래서 깨져봐야돼. 그만큼 다시 큰 그릇을 만들고, 파도치면 다시 와장창 깨지고, 또 새로운 그릇으로 만들어내잖아 결국. 바다는 언제나 파도를 친다. 인간의 눈으로나 파고가 높을 때는 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영원히 일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발성 이벤트라도 태풍은 불어야 하고, 휩쓸리면 차차 복구하게 되며, 그것들까지도 모두 자연의 일이었다. 자연의 순환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 흐르는 대로 놔 두는 거지. 아, 산으로 올라 가야 하겠다. 역시 보고싶어.

#7 이름없음 2024/02/11 05:22:02

그게 종종 생각이 났어요. 다음번에 볼 때 몇개 생각 나면 던져주세요. 혼자 까서 먹어볼게요. 그건 어디서 사먹지도 못하잖아요. 팔지도 않는 과일을 까서 주시니까 여름만 되면 다시 먹고 싶어지더라고요. 왜 그랬대. 그땐 안먹는 게 나을 정도로 셔서, 써서 다시 안 찾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선물받은 댕유자청으로 환기한다. 아, 이거 좋아하실텐데. 보고싶군. 가능하다면 시차를 오래 둔 뒤에. K가 올해를 반환점으로 설정한 만큼 나도 그러고 싶었다. 슬슬 준비해야 하는 시점임은 분명했다. 생각난 김에 타서 마셔야지.

#8 이름없음 2024/02/11 05:32:19

아, 추워. 진짜 감기 걸렸어. 어젠 너무 무리했다. 두 눈으로 사라진 반지의 행방을 똑똑히 보아야 안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한 것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난 뒤에야 바지 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다.

#9 이름없음 2024/02/11 05:33:17

팍 때려줬다. 그렇게 소중한 건 몸에 계속 지니고 있어. 반지는 자국이 남으니까 잃어버렸을 때 더 아파진다고. 하, 오늘 왜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니. 다시 자야하는데.

#10 이름없음 2024/02/11 08:38:21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지배하고 있는 큰 틀이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생각의 흐름이 이분법으로 흐르는 방향도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지. 나는 “원래” 그렇잖아. 그런데 원래, 란 없다. 원래란 없는 거다. 어떤 책의 글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걸 깨트려야 개명을 할 수 있을 거야. 글을 쓰면서 다짐한다. 항상-그럴 필요는 없다.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라고 공부를 해왔는데, 난 성찰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H가 흘리듯 이야기한 말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확실히 물어볼 걸. 이제는 그럴 수 없지만, 다른 글을 읽으며 그가 떠오른다. 생각의 전환이 아니라 사고관의 전환이 필요했다. 전환이라는 말도 진부하면 원래 내 방식대로 그냥 두드리고 부시고 밀쳐내서 꺾어버리면 된다. 마지막의 마지막 관문은 H의 문장을 뛰어넘는 일이다. “변태를 해도 너는 완벽한 —일 수는 없어.” 이건 적확했다. 어릴 적 읽었던 우화만 떠올려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집착하면 안 되잖아. 웹툰짤로 돌아다니는 이야기 중 하나를 그래서 좋아한다. 인삼인 줄 알고 좋아했던 고구마가, 자신을 고구마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4컷 만화. 중요한 건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날 보는가? 에 매몰되어 있다면 어떤 종류의 평안도 일시적일 뿐 오래도록 지속할 수 없다.

#11 이름없음 2024/02/11 08:43:39

원래라는 건 없다, 절대도. 당연하지도 않고.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자연스러움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그냥 그렇고, 단지 그렇다. 규정을 지으려는 행동을 많이 해왔는데 해방감이 밀려온다.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 그랬구나. 같은 표현들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 이런 표현들이 필요했다는 걸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지.

#12 이름없음 2024/02/11 09:01:07

>>5의 네가 아니지만, 나중에 내가 읽을 때 헷갈릴까봐. 아, 호칭 정리 진짜 하든가 해야지. 그리고 이 이야기 끝엔 언제나 네가 서 있는 기분이 왜 들지. 넌 도대체 뭐였길래 나를, 또 너를, 그렇게까지 생각했을까. 뒤를 돌아본다. 너에게 난 뭐였을까. 넌 나를 고민하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뭐길래. 진짜 뭐냐. 너한테 난 그냥 나였잖아. 단지 나였잖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나를 견디기에 그때의 나는 한참 모자란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도 나라는 사람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잦다. 그걸 어떻게 나누어 들어줄 생각을 한 건지. 그것도 사랑인지. 그렇다면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한 건지. 시간을 10년만 전으로 돌리고 싶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 만날 수 있을 거 같냐고 나를 앉혀놓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오랜만에 다시 이 건물이다. 10년 전의 시계면 스무번의 계단만 내려가면 된다. 엘리베이터는 좋지만, 성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다. 호실의 키를 주머니에서 찾는다. 여깄다. 철커덕 열고 들어선다. 당연히 그때의 나는 30분 정도 늦게나 찾아 올 것이다. 언제나 약속시간에는 늦었으므로.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아침 약속에는 더더욱 약한 친구였다. 방안을 빙 둘러본다. 교복도 걸려 있고, 펜던트가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땐 정말 넥타이가 매고 싶었었지. 생각에 잠긴 사이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노크 좀 해주면 안되겠니? ㅋㅋ 웃으면서 깜짝 놀랐다고 말하겠지. 어린 나는 아, 죄송해요. 뚜벅뚜벅, 조금은 쭈뼛쭈뼛한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나도 마주 본다. 음료는 녹차 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녹차를 권했지만 딱히 마시고 싶진 않은 눈치다. 인터뷰나 해볼까 싶어서. 네? 무슨 인터뷰요. 띠껍다. 이새끼, 원래도 그랬지만. 나는 차분(?)히 설명한다. 오- 그렇군요. 네. 좋아요. 해볼게요. 그때의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본다. 내가 이름으로 거론하자 깜짝 놀란다. 네? —요??? 이런 느낌. 물론 질문은 어린 내가 더 하고 싶겠지만 대답에 응하다니 용케도. 너는 나와 같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그땐 지금보다 더 의젓한 눈빛이었다. 방안에도 걸려있는 교복을 완전히 정복차림으로 입고 있으니까 이게 나였지, 싶어 갑자기 웃기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가장 날렵할 때의 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선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기다린다. 때가 오고 있다. 내일이면 대답할 수 있겠군. 마주 앉은 채로 그를 압박할 수 없어 그럼 생각해보고 내일 즈음엔 답을 해줘, 한 뒤 나간다. 이런 글을 쓰면 정말 잠깐동안 평행세계의 어린 나와 맞닿은 기분이 든다. 미래를 다 알고 있는데도 아련한 기분이다.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나에겐, 정말 너라는 사람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한참동안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왔다. 그 눈 속 소용돌이가 이 시점이면 언제나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의 힘이 아무리 좋아도 나의 글과, 나와, 너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런 것이다. 생각에 잠기는 게, 연락을 하고 싶은 게, 자연스럽다면 받아들여야지.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지만. 나, 내일 돌아와서 같은 호실의 문을 열어버릴테다. 1407호 쯤 되지 않을까? 이번엔 늦지마. 전해주고 나온다는 걸 잊었다. 내일 바쁘려나. 그래도 저녁 8시 쯤엔 보고 싶다.

#13 이름없음 2024/02/11 21:54:00

왜 근데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못할까 난

#14 이름없음 2024/02/11 21:54:45

모르겠다 솔직히~ 나 살기 급급하다는 것도 말이 좋아 그렇고. 솔직히 피해를 안 주고 좋아할만한 대상이 있으면 이제는 시선을 옮겨주는 게 예의겠지

#15 이름없음 2024/02/11 21:55:00

왜 이렇게 모르는 게 투성이야 세상이

#16 이름없음 2024/02/11 21:56:06

삶의 의미를 나한테서 찾는 일부터 해야 하나? 급한 일을 잔뜩 만들어? 뭔가 또 글을 써버릇하려니 괜히 여기 와서 기웃거린다니까. 이럴거면 시간 그냥 버려도 괜찮다

#17 이름없음 2024/02/11 21:58:15

그니까 난 날 불러놓고 대화를 해도 거기서 멈출 뿐 더 나아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된다. 어쨌든 돌아오는 피드백에서 또 멋대로 기대하면 나만 또. 거봐 의미부여 말랬잖아, 이게 문제라니까. 하면서 가볍게 털려고 노력한다. 살만하니까 또 생각에 여유가 있어서 이래. 바빠져야 된다.

#18 이름없음 2024/02/11 21:59:52

이럴 땐 밤산책 한답시고 생각 좀 밖에다 비워두고 와야 하는데 자꾸 쌓아놓으니 문제가 생긴다. 명상하자 명상… 생각은 소거돼도 괜찮다. 만드니까 치우는 과정까지 일이 된다. 일 늘려서 뭐할래. 결국 뒤만 돌아보는 꼴인데. 안그래?

#19 이름없음 2024/02/12 02:12:56

뒤를 안 돌아본다고 말은 해봤자 효력이 없었다. 사람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단 말이 딱 이 상황을 두고 하는 것이었다. 코끼리! 생각하지마, 생각하지 말라고. 등만 안 돌린 거지 아주. 다짐하면 다짐할수록 반대편의 저항이 거세진다. 나도 생각하라고 프로필 바꾼거긴 해 유치하지. 알아. 계속 이렇게 유치하게 굴 거야? 연락 한 번 해줘. 라고 하는 건 혼자만의 짜증일 뿐이다. 칭얼거릴 곳이 없어 이런 곳에 칭얼이라니. 이런 애새끼야. 오늘이 나를 애처럼 하는 걸까. 작년이 일요일이었군. 다시 한 사이클이 완전히 돌아 월요일부터 시작이다. 아냐, 두 사이클이네. 같은 요일*은 4년마다 한번씩인데 윤년도 있고 하면. 이걸 왜 셈하고 있냐고 제발. 그냥 하는 김에 또 다 해? 이 지겨운 돌림노래? 돌림노래 부른 가수의 다른 노래가 흐른다. 이런 야심한 밤 그런 걱정은 왜 해 물어볼 뿐이야 오해는 왜 해 티비 드라마로 끝내기엔 저 달이 너무 밝아서까지만 같이 읊조려본다. 뭐? 달이 밝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고. 은근하게 붕 뜨면서 짜증도 나고 끌어당겨지는 기분이 별로다. 자꾸만 눈이 가 날 못 살게 구는 게 나도 어지러워 도와줘 정말 상황은 다른데 기분은 이리도 같을 수가 있는지. 어지럽다. 아 그냥 생각나면 생각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냐고. 난 지금 누구랑 싸우고 있는 거고. 왜 또 노래는 죄다 산뜻한 알앤비냐고. 이쯤되면 그냥 내가 쓰레기인 거 아님? 고작 같은 날이라고 연락하고 싶어하는 거? 독심술사 불러서 듣고싶다. 뭐라고 해야 되는데? 아니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정답이지. 졸립고 피곤하고 오늘따라 팔에 닿는 바람이 차다. 감기에 걸린 건 아닌데 이상하게 긴팔 옷을 찾고 싶다. 왜 이렇게 춥지, 분명 따뜻해야 되는데. 내가 지금 어디있는건지. 오늘 다녔던 곳에서 스치듯이 본 신부상이 떠오른다.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방식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거, 집착이다. 알면서 왜 그러는지 알려주라고. 난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여기서만 난리치면 모르잖아. 모르는 게 좋아. 양가감정 사이를 핑퐁하듯이 오고간다. 테이블도 참 작다. 스매시 한번 때리기 힘든 경기장이다. 때려봐야 나만 손해를 본다는 사실은 불보듯 뻔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데 손님이 와 있고, 내일도 역시 모시고 다녀야 한다. 피곤하다. 혼자 걷고 싶다. 나이 뭐 많지도 않지만 한살 한살 먹을 때마다 외향적이었던 지난날의 나는 얼마나 체력이 좋았던 건지 궁금해진다. 그땐 진짜 하루종일 얘기하고 운동해도 쌩쌩했는데. 몸도 무겁고 마음에도 먹구름이 잔뜩 껴있다. 이런 몰골로 살아갈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 호실 찾아가는 게 무서울 정도다. 난 아직 나를 사랑한다거나 자연스러움을 이해한다거나 하는 모든 일에 익숙하지 않다. 오늘은 유난히 스트레스라는 말을 많이 쓸 거다. 하, 스트레스 받네. 표명하면 효과가 배가 되는데. 나도 유치하고 그냥 다 유치하다. 그만하고 싶다. 차단하고 도망칠래. 아니지. 이걸 해도 되나. 도망쳐봐야 무슨 소용이야? 연락 그렇게 받기 싫던 ex놈한테도 연락이 처오는 마당에. 보기 싫은 사람은 억지로 보게 만들고, 보고 싶은 사람은 안 보이게 만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살거나 나를 보기 싫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가마니가 좋고 나는 조금만 더 버티다가 가야겠다 너무 같은 노래만 갈고 닦았더니 새로운 노래 추천이 잘 안 된다 헤어질 결심은 수면제로 쓰면서도 마지막 장면 전에서 잠든다 끝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지가 않다, 졸리기도 하고. 사실 서래와는 영화에서조차 완전히 헤어지진 못한다. 그녀가 해준과 헤어진 것은 비교적 명확하나, 서래는 해준이 자신만을 느끼길 바랐다. 해준 또 신발끈 묶으며 올려다본다. 뭘 깨달은 건지. 떡국 열 번만 더 먹으면 알게 될까. 언젠가는 해준이 서래의 죽음 방식에 대해 힌트를 줬다는 사실을 깨달은 줄 알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아리송하다. 그래 지금 절멸하기 3분 전이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어떻게 쓸까. 진짜 3분 전이면 전화할텐데 말이지? 어우. 55, 56, 시간이 흘러간다. 아— 그냥 이대로 죽고 싶다. 잠에 스르륵 빠져갈란다. 나는 모르겠다.

#20 이름없음 2024/02/12 05:56:08

꿈을 꾼다고. 왜? 참 기분이 별로인 꿈이다. 오랜만에. 이런 방식으로 받는 벌도 나쁘지는 않아. 꿈이라. 선명한 가닥으로 심장이 뛰며 먼저 깨고 싶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 꿈이었군. 다행이다. 이야기의 첫맛부터 끝맛까지 좋지 않았고 화를 내고 있어서 그대로 깨버렸다. 잠에는 정말 들고 싶었었다. 그러지 못해서 탈이었지. 모호필름의 총소리와 해준의 첫대사를 듣고 집중하다가 의식이 옅어졌다. 오늘따라 전애인이 보고싶다는 둥의 글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죄다 네가 아닐 건 뻔한데 왜 나는 미쳐가지고. 차라리 바빠서 다행이다. 아니라잖아. 생각이 나? 그럼 생각을 해. 방금 해준과 수완이 총을 쏘고 권총 약실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디테일 차이를 느꼈다. 표적지. 해준이 10점에 가깝다. 수완은 검은 원 안에만 박아넣은 수준이다. 이걸 유심히 볼 생각을 이제야 했네. 내가 영화를 몇번이나 돌려봤다는 건 거의 의미가 없다. 장면의 재발견은 이런 식의 사소한 계기로 발생한다. 오히려 익숙한 대사와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에 처음에 봤을 때처럼 날을 잘 갈아서 꿰뚫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미세한 차이가 여기서도 보이네. 모호필름 로고의 총소리에서 긴장하거나 소리를 줄이기만 해왔었는데. 결국 영화 초중반부에서 다시 총을 쏘는 사람은 해준이었다. 연습을 제외하고 총을 격발한 사람은 해준 한 명 뿐이다. 산오가 다리를 맞았지만, 제압은 못 한다. 머릿속으로 장면들을 뽑아 재구성해보니 해준도 참 불쌍한 사내다. 의심하는 역할을 가졌을 뿐인데 둘러싼 상황이 가혹하다. 기도수-산오-임호신-해준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동안 134만 서래의 남편 분류로 묶은 글들을 봐와선지 13의 행동을 4가 갖고오는 부분만 봤다. 하지만 산오 역시 해준과 대칭관계다. “이젠 이놈하고 친해져버렸다.”는 대사도 있다. 만약 수사 비리가 어떻게든 걸려버렸다면 쫓는 건 연수일텐데 연수가 해준을 죽인다? 이건 말도 안 되고. 수치심은 자살하고 싶은 감정을 강하게 자극한단다. 끝장면 이후 연수와 그가 끌고 온 경찰은 서래를 찾지 못하겠지. 미제사건이 되어 다시 벽면에 붙여지게 되고. 더 큰 건으로 치고 나가라는 압박을 견디면서 해준은 매일 새벽이 내도록 사건을 재구성할테다. 어디 있을까. 어디 있는지만 알아도 그렇게 답답하진 않을 텐데. 철저하게 해준 입장에만 입각하여 이야기를 읽는다면 서래가 증발한 이후 완전히 미궁이 된다. 그곳이 관광지라면 모래가 유실되어 그녀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지만, 관객에게까지도 서래의 행방을 보여준 건 아니다. 술 먹고 들어가서 긴장하는 숨소리만 들릴 뿐. 어디 갔을까? 이 영화가 일종의 신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서래가 영화의 막을 들어올려 아예 ‘영화’라는 공간 자체를 빠져나오길 바란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도 서래는, 해준은 어디엔가 있다. 좋은 의미로 미친 거지, 송서래, 장해준. 둘 다 어디서나 행복하길 바란다.

#21 이름없음 2024/02/12 09:42:01

하여튼 나도 참 예의가 없어. 많이 다듬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멀었다.

#22 이름없음 2024/02/13 02:00:42

쓴 글이 날아간지 꽤 됐다. 생각이 나는 날도 아닌 날도 똑같은 하루라는 걸 알게 됐다. 단어로 옮겨적진 않았지만 호실로 방문은 해봤다. 그땐 —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못된 짓만 했던, 앞으로도 할 나를 곱게 보기가 힘들다. 아직도 태풍이 두어번 더 있다. 사실 무수히 많다. 예견된 미래를 겪은 내가 어렸을 때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다니. 다 변명인데 미안해. 이런 모습으로 크길 바라지 않았을텐데. 불안해서, 위태로워서 미안하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다.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한테만 올인하라고, 지금 올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자만이라고, 진짜 최선을 다하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다. 여건이 어려운 건 알지만서도. 그때 썼던 안경테에는 가장 두꺼운 부분에 날개 모양 피스가 박혀 있었다. 눈동자와 날개를 번갈아본다. 이렇게나 반짝이는 청춘이었군. 그리고 어째선지 글만 쓰러 들어오면 넘어와가 순번이 된다. 아까 차에서도 한참 생각하다 지워진 글이 넘어와였다. 이런 야심한 밤,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고 나를 만나러 간다. 현재를 사는 게 맞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 너는 안 그렇겠지 나도 알아. 기왕이면 나도 변한 모습으로 앞에 서보고 싶다. 네가 못 알아봤으면 좋겠어 나를. 나조차도 이게 나라고요? 물어봐줬으면 해. 의문스럽다고 두 눈 비비는 모습이었으면 해. 예전엔 인간관계 다 끊어먹어야 할까봐 겁 많이 먹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니 놀라는 모습들 하나씩 수집할 기회였다. 거기서 떨어지면 아웃인거고 어쩔 수 있나 서로 존중이 안된다잖니. 오늘은 서래가 해파리 수면법을 하는 부분부터 잠에 빠지자. 뮤비 곧 나온다던데. 핸들 잡고 있는 옆모습에서 속눈썹만 한참 쳐다보다 나왔다. 어지러워.

#23 이름없음 2024/02/13 02:03:32

생활을 유연하게 하는 세 가지 단어: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지 그러려니 해

#24 이름없음 2024/02/13 02:05:00

하— 진짜 자야지.

#25 이름없음 2024/02/13 10:53:13

아직도 호칭 정리가 안 돼서 우리 대화는 서로를 부를 단어가 없다 너말고는 없었지. 항상 그 호칭이 생략된 채로 이야기하는 기분 문득 생각났다.

#26 이름없음 2024/02/13 10:58:26

그야 진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거니까. 그냥 어색해도 이름 부를 걸. K도 *다른 사람에게 그랬댔는데. 그땐 호칭 자체가 나를 옭아매는 기분이 싫었다. 이제야 이름이라니. 돌 정도는 아니지만 한번 후회하니 묵은 것들까지 옷장 바닥에서 머리카락이 길게 뽑아져나오듯이 쏟아진다. 신정에는 반지 찾으려고 힘으로 옷장을 밀어 넘겼는데, 묵은 먼지들이 가득했다. 청소기로 쓸고 물걸레질 했더니 훨씬 말끔해졌다. 지쳤는데도 개운했다. 널 떠올리는 내 감정도 그에 못지 않은 명징함으로 남았으면 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 너는 어떨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일련의 과정을 시간이 해줄 거라고 믿으며 가만히 손 놓고 있기도 싫다. 마스크 쓰고 장갑 다 끼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해체해야지. 나도 변해야겠지만, 언젠가는… 돌아봤을 때 어떠한 감정인지와는 관계없이 사사로운 번민으로 시야가 왜곡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많이 바라나.

#27 이름없음 2024/02/13 11:01:45

막상 이렇게 생각은 해도 만나면 몸이 흔들린다. 네 중력보다는 나의 상태가 불안정해서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감정의 도로가 다 갈라지는 기분. 애써 세멘질 했던 길들이 바닥에서부터 균열을 낸다. 네게 중심을 잡아달라 말했지만 그 말을 되돌려 내게 해야 했었다. 그랬다면, 은 생각하지 않을란다. 반성 좀 해. 성찰도 더 하고. 넌 멀었어. 이건 정말 관문이 될 거다. 굳이 상담사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해체하고 뜯어보고 하나하나 다 닦아 기름칠해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가동될 때에 삐걱삐걱 소리가 나거나 폭발한 뒤 망가져버리지 않도록. 고장은 확실하지만 그간 유야무야 대강 넘기며 살아왔다.

#28 이름없음 2024/02/13 11:03:48

그래 단순히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좌시할 문제가 아니야. 다음 단계를 밟아 나가야겠다면서.

#29 이름없음 2024/02/13 11:04:28

이런 부분에서까지 보조를 받고 싶지는 않고 보고는 해야겠다. 별로 필요도 없는 보고일지언정 의미는 쌓아두면 생기지 않겠어?

#30 이름없음 2024/02/13 22:22:45

사주 보는 중인데 애정관계에 대한 부분들이 맞아떨어져서 웃기다. 1월 : 경계 옛추억을 떠올리는 시기입니다.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한 달이지요. 마음을 특히 잘 잡아야 합니다. 연인이나 기혼자들은 현실과 추억 사이에서 크게 혼돈할 수 있는 달입니다. 2월 : 활용 감성이 발전하는 달입니다. 우정으로 여겼던 마음이 사랑으로 발전 할 수 있습니다.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이성을 느끼게 되는 달이지요. 둘 다 맞았구만 아 ㅋㅋ 근데 이제 3월 금방 오니까 뭐. 올해는 그냥 순탄하게 지나가고 소업인지 대업인지 큰 흐름만 뚫어놓으면 인연이 또 오겠지. 지난 인연에 목맬필요도 없이 나만 갈고 닦으면 그만이다.

#31 이름없음 2024/02/13 22:24:26

헉 배우자 운은 올해 들어온다고 나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32 이름없음 2024/02/14 06:15:18

허리가 뜯어질 수도 있나. 오랜만이야. 비가 와서 그랬나. 비 오면 근골격계로 다쳤던 곳이 돌아가며 통증을 유발한다. 늙었단 말 싫은데 허리와 발목이 시큰거리면 체감하게 된다. 안그래도 비오는 날 더 긁는다거나 하는 표지가 있었지만 긁는 거야 일상이니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요통에 방사통은 약으로 버티려 해도 영 힘들다. 진작에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지위가 변동하고 신분을 정리할 때가 되니 전반적인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남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그렇지만, 다섯명만 건지고 가도 성공이라고 보는데 선뜻 카톡할 다섯명이 있긴 해도 왠지 찝찝하다. 뿔뿔이 흩어진 느낌이랄까.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은 없다. 막상 쌩으로 혼자 다녔을 땐 개의치 않았는데. 잘못 산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에 자신했던 시절도 옛일이구나… 한다. 고향친구가 좋은 셈이니. 머릿속이 뒤엉켜 어느 한 화두를 꺼내 면밀히 다루진 못 한다. 보이는 족족 나를 정리하려 하는 친구가 뇌속에서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인가. 근데 그런 거랑은 관련 없이 사람 정리를 참 못한다. 매사에 깔끔할 필요도 없지만 기겁하며 행동에 옮길 필요도 없잖아? 그런 의문도 들고. >>5의 너는 지나치게 방어태세를 취한다. 보면 언제나 그랬다. 쭉 친하게 가져가는 사람들 외에는 의문이었다. 기본적인 내향 외향의 차이인 거겠지만서도, 철두철미하고 빈틈없는 모습이 여러 방면으로 더 다가가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먼저 다가오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러면서 날 알고 있었다는 말은 왜 해선. 걔가 의미부여 하지 말라고 할 때 하지 말 걸 그랬어ㅡㅡ 난 의중을 전혀 모르겠으니까 살려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긴 했지. 다른 걸 다 떠나서 이젠 다른 쪽으로 포커스를 옮겨 잡아야 한다. 그게 인물이든 닿을 듯한 미래이든 간에. 말하자면 나의 허물은 억지로 벗어 던지려고 해야만 벗어지는 무언가인데, 하염없이 누굴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시간도 감정도 낭비고 킴이 말했던 ‘그런 거’를 할 여유가 나지 않는다. 지금은 어찌됐든 간에 계획-목표-달성의 세 과정만 우직하게 밀고 나갈 시기인가보다. 올해 대운이라던데, 귀찮은 일이 풀렸다가 다시 얽혀가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졸업해야지. 공부를 더 하겠다는 다짐은 좋았으나 결과 예측이 힘들다. 그래도 꿈으로 일단 부딪히는 거야.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로 뛰어들 뿐이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변태든 개명이든 멀어진다. 이 죽일 놈의 껍데기가 뭐라고. 못 벗으면 내가 죽을까봐 그러는 거겠지만.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가 삶의 의지를 잃는 거보다야 당연히 허물만 벗는 쪽이 낫지 않겠어? 확인해보니 나방이라 하더라도. 그런 점에서 H는 틀린 거다. 나는 단지 나를 찾는 거였지, 이분법의 규칙에 매몰되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그래. 생각하면 항상 그런 방식이었어. 당연히 나를 찾는다는 뜻속에는 타인의 인정도 없진 않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이 심지어는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행인에게까지도 내가 어떻게 인식되느냐의 문제일 뿐인거지. 정말 특정 몇명 좋으라고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자기만족인데, 정도가 심해 자기혐오로 수렴해서 허물 못 벗으면 그냥 일찍— 그럴까봐 어떤 방향으로든 실현하길 바랐던 거였지. 어렵긴 어렵다. 누가 생을 날로 먹는지 좀 알고 싶네. 삶이란 게 어떨 때는 계란 까듯이 쉬워보여도 먹다가 퍽퍽해서 사레도 들리고 토하기도 하나보다. 예전처럼 간단명료하지가 않다.

#33 이름없음 2024/02/14 06:30:00

탕웨이기 아이유랑 뮤직비디오라니. 요 사이에는 이 이슈가 가장 나를 설레게 한다. 운전대를 잡은 서래의, 아니지, 탕유의 잘 짜여진 속눈썹. 코. 그리고 분위기. 꼿꼿한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 피폐하면 참 재밌다. 박수 짝짝 치고. 30초짜리 티저도 몇번이나 돌려본다. 나는 중독될 무언가에 깊게 잠식되고 싶다. 정신 못차리게. 그런 상태가 최상의 행복이라고 느낀다. 특별히 이뤄진 건 없는데도 내일이 기대되잖아. 습관인지 버릇인지.

#34 이름없음 2024/02/14 19:18:34

나는 맥락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맥락+맹이라는 합성어조차 맹락맹, 맥랑맹 등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싫다. 특히 커뮤니티 댓글에 남을 까내릴 의도로 쓸거면 좀 제대로 알던가. 욕은 하기 싫고 고상한 척하면서 명예는 훼손시켜야 하니 고를대로 고른 단어인데다가 틀리기까지. 저기, 부디 그렇게는 살지 마세요. 차라리 쌍욕을 해야지 꼴이 웃기잖아요. 경험칙에 의하면 댓글로 지적했을 때 오타라고 둘러대는 전형적인 인간 군상일 확률이 높았다.

#35 이름없음 2024/02/14 19:58:46

와 근데 >>34 이거 비슷한 내용으로 쓴 적 있는 것 같다. 아닌가? 이 기시감 뭐지

#36 이름없음 2024/02/15 08:31:34

근래에는 다른 커뮤는 잘 안 간다. 슬슬 커뮤 중독에서 나오고 싶었던건데 여기를 안하면 저기를 하게 되고. 아무튼, 그러다 눈에 확 들어오는 고민을 봤다. 다시 만나긴 힘든데 그렇다고 아무나 좋아지지도 않는다 영감을 줬던 상대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고착이 된 상태는 이 지점인 것 같다. 아무나 좋아지지가 않는다 단지 그뿐이다. 억지로 좋아하다가 나는 심지어 다치잖아; 해봐야 >>5는 곤란하다는데 내가 밀어붙일 이유가 전혀 없고, 누군가에게 전해줬듯 1의 노력에 100의 정신력으로 돌려줄 필요도 전무하며, 솔직히 내가 살려고 했던 거였으므로. 생존의 문제를 부차적으로 던져두면 과연 앞으로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의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필요하다. 정답일 필요도 없고. 나는 공통으로 끌리는 포인트가 있었지만 그걸 전부 연애감정으로 치환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너라는 사람을 두고 분광기를 끌어오면, 우정이 사랑의 하위라고 느끼게 할만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에 얽매여있게 된다. 그런 마음을, 정확히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인물을 다시 못 찾을까봐 괜히 새벽이 되면 손톱을 잘근잘근 씹게 된다. 나타날 거라고? 만나 봤는데 아니던걸. 그런데 영감이 무어라고 하나의 느낌만을 찾아 헤매는지, 매우 바보처럼 느껴지다가도 그런 감각이 아니라면 굳이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넘어가버린다. 헤어진 뒤의 치료과정에서는 장난—얘의 내일이 궁금하지 않는다면 나는?—으로 아무나 좋아하는 상태이긴 했지만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진 않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곤 했다. 그니까 그때는 헤어진지 얼마 안돼서 그냥 너 아님 안돼 따위의 일차원적 고민인 줄 알았지. 시간이 많이 지났고, 종종 네 이야기가 내 입에 아무렇지 않은 정도로 자연스레 오고갈 때마다 느낀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데도 기분이 붕 뜬다는 점, 어떤 X와는 뒤지게 엮이기 싫은데 너는 엮여져 있었으면 한다는 점. 그 외에도 W의 지적대로라면 내가 대화에서 가장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부분은 네 얘기를 할 때였다. 아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말할 걸. 왜 그런 거지? 라는 간단한 의문은 조금 치워두고, 어찌되었던 간에 n번째 연애를 할 때 방해가 될 정도로 시작의 단추를 요상한 꼴로 꽂아두었다면 첫단추까지 다 풀어볼 수는 없느냐는 거다. 물론 어떠한 에피소드/이벤트 이전으로 절대 돌아가진 못한다. 도대체 너는 뭐길래 나한테 이런 감각을 제공하는거지. 아직도. 헤어지고 나서도 미련 철철 풍기는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다시 얼굴 볼 수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든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채근한다. 설령 그것이 어릴 때의 치기 같은 승부욕이라고 할 지언정 떳떳하고 싶다. 계속 그래. 나락으로 가고도 싶지만 어찌저찌 악착같이 살아서 가장 최상의 상태를 증명하길 바란다. 나는 너와 달리 아무것도 없거든. 공부 더 해야하잖아. 막연한 공상을, 아무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을 닳고 닳을 정도로 기원해서 꿈으로 삼은지 이제 벌써 20년이라는 사이클이 돌아가는데. 너도 이겨야(?)겠고, 내 꿈도 지켜내는 걸로는 모자라서 이뤄내야겠어. 근데 왜 너는 내 이야기 끝에 있느냐고. 시간의 흐름을 떠나서 무슨 결정적인 이유가 나를 너의 흐름에 매여놓게 하는 건지는 정말 알고 싶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한데. 그 가능세계를 연다는 것도 미친 짓 아니니?

#37 이름없음 2024/02/15 08:42:00

그냥 그런 상태이다. 보고싶으냐고? 맞다. 그래봐야 해후나 나눌 뿐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라는 데에도 동의할 수 있다. 고착된 심리를 뛰어넘고 싶다. 내 상황을 내가 뛰어넘어서 다시 보고픈 느낌에 더 가깝다. 누가 그러냐? 인연인 거면 언젠가 만난다잖아. 그런 희박함에 기대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나를 이렇게 만드냐고 그것만은 좀 알고 싶다. 역시 대화가 모자랐어 우리; 나만 너무 일방향적이었다. 쫓아갈 수 있다면 쫓아가서 개패주고 싶어. 그것도 아니면 K를 친구로 일찍 만나서 고민이나 상담해볼 걸. 야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 수 있냐? 그는 말한다. 듣기나 해. 이게 정답이었는데ㅡㅡ 이게 >>5의 느낌과는 다르다.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너를 잊으려고 네게 쏟았던 에너지를 올인한 거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미쳐버릴 뻔했다. 사실 그 친구에게로 흘러가야만 했던 마음을 전부 우회로로 토해냈다. 이거, 좀 이상하긴 하지? 그래서 더 공허했던 차였고.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라는 생각이 나에게도 그 애에게도 닿아있으면 예의가 아니다. 내가 먼저 알아채고 회수했어야 마땅한 문제였는데, 우회로로 뱉어내지 않으면 너한테는 지는 느낌이었어. 5의 문제도 점점 풀린다.

#38 이름없음 2024/02/15 09:19:56

“단지 너다움에 자석처럼 끌려다니는 나를 즐기고 싶었다.” 인 거잖아. 내뱉는 대로 크게 수정하지 않은 문장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경탄驚歎할 뿐 너의 바운더리 안으로 내가 깊게 관여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 문장 쓸 때 약간 헷갈렸는데 관여하길 원치 않는다는 말이었다. 너와의 차이점은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데에 있다. 여전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강하게 부딪히고 싶기도 해. 죽도 밥도 좋으니 한번 더 부딪히고 깨져도 좋겠다. 무슨 차이지? 단순하게 사랑이니 우정이니 가둬놔서 생각의 틀이 제한됐나. 사람으로 보면 감정의 크기나 밀도나 심도가 전부 밀리긴 한다. 그 이상 파고 내려갈 수 있을까? 막말로 너를 만날 때엔 아르헨티나까지 밀고 갔다고. 지각 맨틀 외핵 내핵 다시,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웃는다던가 남반구에서는 변기물 내릴 때 거꾸로 돈다는 말만 들어도 재밌었다고. 내키지 않아도 네가 시키면 그 빌어먹을 아르헨티나에서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었어. 근데 왜 이런 걸 한번도 예견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부러뜨렸나. 부러트리다보다는 뜨리다가 더 알맞는다. 뚝, 하는 소리를 내고 완전히 꺾여버린 이후 잘못 치료돼서 겨울만 되면 비만 오면 시큰거린다. 괜한 오기에 더 잘 걸어보겠다며 씩씩대도 아프긴 아프다.

#39 이름없음 2024/02/15 09:23:03

너한테는 애초에 내키지 않는다는 느낌이 아예 안 들었거든. 아예 그런 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엑스를 만나고 또 기타등등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다보니 내키지 않은 일이 훨씬 많아서 내키는 일만 처리하기에도 고역이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대화하다보면 5분만에 감이 왔다. 차라리 그 정도의 마음으로 색채로 짝사랑이라도 하게 해줘봐. 하나의 색에 가둘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닮았다고 생각해왔던 5를 제외하면 분류가 불가능한 사람도 없었다. 두 색에 걸치는 누군가는 있었나? 자신이 없네. 뒤를 돌아본 상태였다는 걸 최근에 깨닫기도 했지만. 아성을 무너뜨릴 사람이 나타나주길 바란다는 게 오만인가?

#40 이름없음 2024/02/15 09:25:18

그리고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내 역린은 오로지 나의 안에서만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해야겠어. 누구 탓은 아니다. 내 탓마저도 못 하겠다. 할아버지가 보신대로 그저 쥐고 태어난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건강해. 누가 건드렸든, 누가 발견했든 간에 잘못된 개념이 아니다. 난 지금도 나의 자연스러움보다는 시대나 사회의 혹은 병리의 정상성에 목을 맨다. 지니고 태어난 건 기질이라며. 그걸 바꾸려고 노력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아니 그냥, 괜히 진단명이 있겠냐고. 나만 이런 고민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이걸로 지나치게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싫어했다. 이제는 좀 뒤집어 생각도 해보자고. 개명이 머지 않았으니까 남은 기간동안만이라도 이 상태를 즐겨야지 어쩌냐. 내 허물까지도 일단은 나인 걸; 내가 물이 모자라서 바다랑 친해지라는데 보려면 어쨌든 건강해져야 한다니까 보러 간다. 신분증은 또 잃었다. 이쯤되면 지금의 모습일 때는 신분증이 도망가는 게 더 잘 어울려서 달아나는 건가. 하여튼 마음에 안 들긴 하니까.

#41 이름없음 2024/02/15 19:41:26

운동하며 고칠 거 없나 본 건데 강아지가 도통 가질 않아서 일어났다. 주인이 줄을 빠짝 잡아당기는 데도 움직이질 않아서 내가 당황했다. 17이라는 노래는 반복해서 들어도 이런 친구가 있을까 싶다. 엄청난 행운인 거겠지.

#42 이름없음 2024/02/15 22:11:13

언젠가 글을 정말 흐르듯이 쓰고 싶어서 말하듯이 쓴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읽을 때나 쓸 때 80%의 확률로 묵독을 병행하는데, 그러다 보면 글이 튄다.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다른 마음까지 치밀어서 그대로 받아 적는 느낌이 된다. 불현듯 춥다거나 배고프다거나 글의 전반적인 주제와 상관없는 곁가지가 치고 나올 땐 퇴고하면서 잘라낸다. 말하듯이 쓴다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면 큰 걸림이 없는 글이 써진다는 점? 물론 나는 내 글이므로 애정 가득한 눈으로 봐서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아 진짜 애플 비공개 릴레이 켜지면 작성 안 되는 거 어떻게 안 되나. 별은 달기 싫고 글 날아가서 부분 복사만 됐다;

#43 이름없음 2024/02/15 22:13:51

모르겠다. 뉴스를 자주 보는데 이슈가 너를 겨냥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욕부터 들이민다. 하여튼 감정카드 중에 분노부터 선제 발동하는 버릇도 언젠가는 치료해야 하는데. 난 진짜 답이 없나. 아니 있겠지만 이걸 고치고 싶은 생각이 진짜 있기나 한 거니? 별것도 아닌 유행어에 버튼 눌리는 거 싫단 말이지. 전등이 켜지면 경계부터 한다. 아직도 언급된 장소에 가면 긴장한다. 예민은 체질이야? 물 많이 바람 많이로 완화 좀 시켜야해? 누가 내 불에 소화기 촥 뿌려줬으면 좋겠다. 이래서 상극이랑 잘 맞고 동질이랑 파국인가보다. 불과 불이 어떻게 시너지로 작동하겠어. 아예 나를 포섭시키는 불은 이제껏 딱 한 사람 봤다. 푸른 불꽃이었잖아. 어떻게 빨간 불꽃이 이기냐고. 오늘 뵈러 가려고 했는데 멀쩡히 버스 정류장에 앉은 나를 무시하고 유턴으로 슥 올라가서 놓쳐버렸다. 예의 있는 옷차림도 아니었다마는. 내일은 아예 운동 코스를 그쪽으로 짜든가 해야지. 좀 추워졌으면 좋겠다. 더우니 도로에도 아지랑이가 일고 눈앞에도 비문들이 이글이글 모인다. 이 증상의 상관관계만 못 밝혔다. 배운대로 물은 아주 권장량을 마시고 있다. 어떤 운동이든 과호흡 심하게 유발하는 건 하지 말랬는데. 의사가 80%만 쓰라고 했었는데. 처방은 아직도 소화를 못 시켰다. 이제껏 120 밟고 달려왔다. 꽝하고 한번 사고 난 후로 50 미만만 밟아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반항심이 드는지. 내가 아픈 건 내가 제일 받아들이기 싫은가.

#44 이름없음 2024/02/16 13:18:34

너일까봐 더 잘하게 된다.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지가 않다. 너한테 하는 거 10%만 했어도 인생이 윤택했을텐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상담 내용을 꽤나 흡수하고 살아왔다는 걸 느꼈다. 자연은 자연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렇게 놔두면서 나다움을 지켜야지. 강의 하류에 서서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있기 점점 어렵게 된다. 수영도 못하니까 휩쓸리면 끝이다. 이젠 순방향으로 몸 전체를 돌린다. 튜브도 타면 좋다. 구명조끼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니까. 둥-둥- 뜬다. 사주에 물이 부족해서 물에서 깨달음을 얻었나, 작년 여름 바다에서의 깨달음이 흐르고 있다. 둥둥 떠. 그냥. 떠 있어. 몸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이 전부 나를 흐르고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도 없지. 나는 나대로, 다른 이들은 다른 이들대로 흐르게 하고 안 되는 부분에 지나치게 마음 쓰지 말자. 이게 자연스럽다니깐. 이런 원리를 깨닫고 나니 스트레스 수치가 저절로 낮아진다. 인상 팍 쓰면서 이 일은, 저 일은 어떡하지, 그럴 수는 없더라. 흘러가게 두어야 흐른다. 나도 누가 준 튜브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기도, 모래사장 가까이 흘러오기도 한다. 짠 물에도 머리 넣어보고. 단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수영을 할 수 있게 돼서 물고기를 좀 보고 싶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꿈이지. 아잇 진짜. 왜 써지지도 않은 글에 중복이 뜨지. 물어봐야겠어.

#45 이름없음 2024/02/16 19:00:47

>>1은 정말로 그런 그림과의 기싸움이 있었는데 언젠가 쓸 시간이 있을 것이다. 파랑. 파랑이면 족하다지만, 전후 사정까지 포함해야 한다. 일기를 안 쓰고 있었을 시절이라 남은 거라곤 사진과 영상 뿐이었다. 어떤 여름이 그런 여름 같을 수 있을까? C도 보고 싶어. 아무래도 태생이 자유로운 사람이라 매력이 넘쳤나보다. 괜히 사장님 하는 게 아니야. 사람을 끄는 사람이 자영업을 해야하는구나 느끼기도 했다. 겨울에 보는 C라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파랑도 봄에는 꼭 연락을 드려야지. 아; 귤 진짜 사고 가든가 ㅡㅡ 왜 연락을 머뭇거리게 된 걸까? 내가 예의가 없었을까봐?

#46 이름없음 2024/02/16 19:09:52

다시 돌아올 계절이나 순간이 없다. 예전부터 잘 알았다면 시간을 더 지혜롭게 썼을까? 나는 왜 지혜라는 단어에서 네 이름의 뜻을 되감는 걸까? 돌이켜보면 너도 참 닉값 잘했지. 겨울이라서. 단지 겨울 타는 거겠거니 심호흡한다. 노을도 매직아워도 끝나버린 밤에는 섣불리 담배 펴댔다가는 한 개비로 그치지 않는다. 이거 진짜 중독이라니까. 도대체 어떤 상태에 대한 중독인지 모르겠다.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거 이제 좀 진부해질 때 되지 않았니. 그런데 나, 진짜 일상의 이야기로 길게 적는 법을 잊었다. 사실 그렇지. 누구에게나 평범한 순간이 길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 손꼽는 거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때로 돌아가면, 그런 너와의 순간을 잡아채기 위해 단순히 세줄 씩 혹은 몇 단어씩 끄적이던 소소함에서부터 시작이었다. 별거 아냐, 지금도 별거 아니지. 단지 습관이 무섭다고 올해로 꼭 일기 쓴 지 십년이니까 최초의 목적대로 훑기를 반복하나보다. 아무 말인데, ~거라는 말 진짜 빼기 힘들다.

#47 이름없음 2024/02/16 19:11:20

단지 습관이 무섭다고. 널 떠올리는 일이란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렸다고. 추우니까 괜히 더 몸을 크게 움직여봐도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다. 이게 다 추워서 그래.

#48 이름없음 2024/03/02 01:32:05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그 애’의 모음집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휘둘리는지에 대한 깨달음의 반복이 닳긴 닳아버렸구나 싶기도 하다. 너에 대한 얘기는 쓰고 써도 마르지가 않았다. 사실은 마르길 바라지 않았다. 톱니바퀴 좋아, 다 뜯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언젠가의 일기처럼 나에게로 흡수된 너의 부분까지 내가 어쩔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열등감의 총체를 ’그 애‘로 놔두지 않고 확장한 것은 나였다. 나의 나, 너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아닐 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나. 이주 쯤 뒤에 나는 영화 해빙에 나온 의사처럼 미쳐버린 채 책이 쌓여있는 방안에서 거울상으로 너를 만들어놓고 역린의 탓을 하고 있겠다. 왜곡된 상像. 이젠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면 애를 써야 하는 네가 서 있다. 어느 것도 진짜가 아니야. 어떤 핑계를 갖다붙여도 이렇게 만든 건 나였다. 또 다시 이분으로 쉽게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불건강의 구획을 하면 좋겠지만 그건 낡은 방법이란다. 어디선가 읽은 글 속에서 상처받지 않으려고 이분의 사고방식을 가진 캐릭터를 마주할 때도 나이스한 방법을 쓴다고 느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나이브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야지. 이분의 굴레에 얽어놓는 자가 ‘나’라는 걸 알면서도 멈추어 있다. 어떤 티키-타카였을까? 아무것도 안 해도 그 애는 파장이 된다. 길고 길다. 마루와 마루 사이의 진폭도 크다. 아무리 성찰해도 너는 다만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사고의 흐름이 이미 왜곡되어 있다. 투명하게 하고 싶다. 말하자면 제로의 상태로 돌려놓고 싶다. 범인 색출해서 총 들고 겨냥해봐야 자백만 길지 실질적으로 이벤트가 발생하기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공으로는 돌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쓴다. 닳고 닳은 쇠공이 반질반질해진 채로 낡은 형광등의 빛을 반사한다. 가만히 지켜본다. 한번도 제대로 된 손수건으로 닦아준 적 없다. 광택제를 바른 후 천천히 말려 마른 수건으로 깔끔하게 해보려고 시도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도리어 탁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근원이 뭘까? 탈피를 원한다면 그 애를 소설처럼 벗겨내듯이 있는 그대로만 가지고 잠가버려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네가 촉발이든 시발이든 하나의 극점이 되어서 파장을 만드는 걸까? 골이 깊어서. 시점이 지나치게 과거라. 할말이 많다. 왜 많은데? 언젠가는 명경지수의 법을 따라 네게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겨운 노래가 떠돈다. 이 노래만 들으면 ‘그런’ 마음가짐에 고착된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다. 언젠가는.

#49 이름없음 2024/03/02 01:35:24

놓고 보니 따옴표가 뒤집혔다. 뒤집힌 따옴표 좋다. 지금의 상태는 딱 저런 느낌이다. 방향이 틀렸고, 앞으로도 틀린 방향을 억지로 순방향으로 맞추지 못하는 상태. 나는 용을 써서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놓고 싶다는 욕심에 부정 이외의 스탠스를 취한 적이 없다. 다만 추악한 마음은 욕망일 뿐이었다. 절대로 정답이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되, 버려야 한다. 부정하는 순간 싸우게 되니 지친 거지. 다시 마크를 해서 돌아오고, 새로운 정보는 쌓아둔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잖아. 04:20 그래도 싫긴 해. 더욱 정확히는 별것도 아닌 변화에 휘둘리는 내가 싫은 거야. 그걸 즐기는 척 하면서 오만 신경을 다 쏟고 있잖아. 그냥 몸의 반절 혹은 반의 반절은 걸쳐있는 상태인 게 일종의 놀이인 거다. 시선을 돌릴 누군가가 나타나주길 바란다는 건 오만이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하되 에너지의 총량을 줄일 수 없으면 1/N으로 나눠서 여럿에게 돌리라는 조언도 있었다— 신경이 빼앗기고 싶다. 그럴만한 사람이 오고 있다. 스스로 봄을 불러오고 있잖냐. 경거망동 같은 건 할 수도 없는 계절이 봉오리를 틔우고 있다. 벚꽃의 지옥이 들크름하게 느껴질 거라고 괜히 기대한다. 괜히 실망하고 싶다.

#50 이름없음 2024/03/04 02:19:43

왜 하필 오늘일까?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 이 글은 쓰여질 수 없으므로 몇 개의 편린을 줏어 가까이 맞춰본다. 킴이 보고 싶다. 이외엔 길게 늘어뜨릴 이유가 하등 없다. 회원제로 변경되는 동안 망설이다가 올리지 못한 일기에도 짧은 순간의 만남이 못내 아쉽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모든 글자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고 싶었다고. 제대로 안부를 나누지 못해 씁쓸했다고. 당신도 나와 동류의 마음이었을까? 얽혀있지만 가까이 다가가 풀어보면 간단하다. 짧은 인사로 훅 다가온 킴과 나의 거리는 가까웠고, 불과 몇 달 전에 만났던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으며, 경황이 없었다. 내 심장이 어떤 감정을 연료로 해서 빠르게 달음박질 치는지 궁금했다. 답을 찾는 대신 뒤돌아서 시트러스 향을 떠올렸다. 지나치게 시큼하다. 향긋해 보여서 손에 닿으면 미묘하고, 더욱 가까이 가져가면 후회하고, 아무런 자극도 없을 때 불현듯 당긴다. 그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오랜만에 듣는 당신의 성문聲紋이 고막을 예리하게 흔들고 있다. 한달음에 뛰어오길 잘했어. 난 잠깐 서 있는 동안 무심하게 닫히는 자동문이 미웠다. 내 이름은 왜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는 거야? 죄다 기분 좋게 상큼하다. 나는 거기에 얽혀 있을 뿐이었다. 모르겠어. 이 감정에 라벨링을 해야 할까? 이걸 설렘이라고 하면 웃기잖아. 인간적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성급하고. 그냥 난 예전부터 그런 어른들이 좋았다. 특별한 기분이 들었어. 어른들이랑 말을 섞는 게 좋았지. 그게 그냥 좁혀진 건가? 아니면 습관처럼 애정을 먹고 털어버리는 걸까. ” 이미지를 묶어놓으니까 계속 동일한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이것 역시 일종의 고착인데…… 달리 표현하자면. 그래, 그는 지나치게 수수했고 매우 흐린 복장이었다. 옷차림이 칙칙하다. 옷장 깊숙한 곳에서 꺼낸, 퀴퀴한 냄새가 *날 것만 같은 자켓이었다. 옷깃도 몇 년 전에나 유행했던 모양새였다. 짧은 순간 옷감의 결까지도 눈여겨 보면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이곳저곳에서 작은 스파크가 튀어 제대로 된 말을 못했다. 괜히 허둥지둥 대지만 않았어도 500자는 더 썼을텐데. 흥미로운 문장은 또 있다. “그니까 나는 이미 기에서 밀려 있었다.” 그놈의 압도감은 눈 여겨 보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였다. 분위기니 대기니 아우라니 떠들어 댔던 건 대화할 때 깃발이 빼앗겼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대화에서는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티키타카를 하는데, 판별하기 위해 애를 쓰느라 그랬는지, 아무튼 좀 특이하다 싶으면 꼭 ‘압도되었다’는 말을 써놓는다. 상대는 보통 나의 템포가 커지지 않게 한다. 말은 느리게 고르고, 생각은 두어번 더 꼰다. 그래봐야 제대로 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과 대화할 땐 종종 허를 찔렸다며 웃는다. 그때는 내 마음이 아스팔트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 위에 서 있는 것 마냥 투명하게 비춰져 함께 내려다보는 장면이 불쑥 떠오른다. 모두에게나 공평하게 걸어두는 바리게이트가 해제되고 단숨에 꿰뚫린다. 불편함 속의 편안함이 정확한지, 편안함 속의 불안감이 적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알 수 없음)의 상태로 불문에 부쳐 두자. 실은 그것마저도 즐겁다는 뜻이다. 모든 영감은 다 이곳에서부터 온다. 이거면 됐지.

#51 이름없음 2024/03/07 02:26:50

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좌측 계단을 타고 506호를 찾고 있었다. 그는 저 먼 복도에서부터 걸어왔다.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는지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 뒤에는 학생 두 명이 보였다. 더 가까워지기 전에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인삿말은 어떤 게 좋을 지 몰라 헤드폰만 벗었다. 506호 아니에요? 504호에요. 만으로 1년이 돌았을텐데, 이제서야 그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되감는다. 서면이었을 것이다. 작년 이맘때 쯤 엘리베이터에서 나눈 게 가장 마지막 ‘대화’다. 그는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 지를 간단히 덧붙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는 고맙다고 하며 나갔다. 뭐가 고마웠던 걸까? 그저 Thank you 같은 인삿말이었나. 차라리 성격이 아주 발랄했다면 그 귀여운 후배처럼 >_>49 “신경이 빼앗기고 싶다. 그럴만한 사람이 오고 있다. (그가) 스스로 봄을 불러오고 있잖냐. 경거망동 같은 건 할 수도 없는 계절이 봉오리를 *틔웠다. 벚꽃의 지옥이 들크름하게 느껴질 거라고 괜히 기대한다. 괜히 실망하고 싶다.”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의 지옥이다. 정말. 들크름하다 못해 한바가지 다 쏟아서 들이키고 싶다. 아직 개화하려면 멀었다. 이제야 매화의 꽃잎이 하나둘씩 낙화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머잖다. 중간고사를 지나면 등꽃의 계절이다. 그때 당신의 향기를 등꽃잎과 비교할 수 있게 될까. 조금 더 대화하고 싶다. 보고싶었다고 고하고 싶다. 열망이 발을 동동 구르는 통에,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그럴 일이 아냐, 이건 서막일 뿐이야. :) 그 특유의 씩 웃는, 씨익도 아니고 씩 웃는 모습이 선명하다. 아무래도 미쳐버리기로 작정했나보다. 이건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고 아주 오묘한 감정이야. 마침 무대의 서막이라는 어절을 쓰게 되어 다시 황을 떠올린다. 통찰이란 멀리 있지 않다. 단지 무대 뒤를 들춰보기만 하면 된다. 어떤 것이든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여 관점을 다양화시키는 거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이라는 틀 안에 갇혀서 사고의 확장을 막지 말고, 감정의 스펙트럼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자는 거다. 이제는 이것이 연애감정인지 아닌지 판별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연정이 시초가 되었든 아니었든 간에 지금은 누구에게 해명해야 할 상황도 아니다. 틀에 가둬놓으면 뻔해지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널어두되 스스로 납득을 하면 된다. 이곳 저곳 펼쳐둔 빨래를 걷는다. 걷어가다보면 아! 느낌이 온다. 감정만큼 흑백논리 안에 가둬둘 필요가 전혀 없는 게 또 있을까. 내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며 고정돼있지 않은데, 누군가에게 닿는 마음이 어찌 일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라벨을 붙이는 순간 떼어내야 한다. 즉 라벨링이나 카테고리화는 의미가 없다. 고정된 채 영원한 건 없다. 내가 틀을 만들어 프레임화 시킨 게 아니라면. … 상처받을 너를 먼저 생각해야 한발짝 물러날 수 있다. 나의 안위보다는.

#52 이름없음 2024/03/20 04:56:36

“눈앞엔 안경 쓴 당신이 날카로운 눈으로 업무하고 있다. 그러다 내가 그를 보는 눈보다 훨씬 따듯한 눈이 돌아온다. … 바보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보다 더 힘드셨잖아요’라는 말이 머리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하진 못했다. … 분명 아까까진 날카로운 표정이었는데 나를 보더니 일순에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 이런 꿈도 있나.” 꿈에 대한 메모가 어디 있을텐데. 이젠 당신이 나오면 꿈인 줄 안다던. 거짓말이다. 이렇게 생생한 현재의 감각을 보내고, 지금 쓰는 휴대폰을 가진 채로 교복을 입혀놓으면 꿈인지 알 수 없다. 익숙하게 들어서는 향기까지 모든게 완벽한 세팅이다. 마침 자리에 없어서 맞은편에서 기다리는 나, 그런 나를 보는 당신이라니. 여느 때와 같은 세팅이다. 바뀐 건 나 하나다. 그래, 그걸 위로해주겠다는 듯이 나왔다. “소식 듣고 깜짝 놀랐잖아요.” 라니, 왜? 당신이 더— 나는 아마 당신에게만 보인 모양이다. 그러니 “투명 망토”를 쓴 채로 얘기를 엿들을 수 있었던 거다. 따뜻도 아니고 따듯한 눈에 흠뻑 빠져서 정신을 잃고 있는데 간신히 녹음을 누른다. 이럴 때가 아니지, 기억도 다 못 할 거면 나중에 듣기라도 해. 그러기엔 꽤 짧은 대화였다. 꿈이 산으로 가기 전에 여기서 일어나면 되겠다 싶어 깨쳤다. 와르르 무너져가는 성벽 사이로 당신만 보인다. 그리고 새끼손가락. 누구의 것인지 확실치 않은 새끼손가락이었다. 이상하지. 전반적으로 다 꿈의 편린을 엮어낸 이야기인데 반사적으로 깼다. 중간에 무너뜨리는 방법을 알고 있어서인지, 수면 리듬 상 깰만한 시간대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일어나자마자 날카로운 모습과 따듯한 눈빛의 대비는 꼭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끼손가락도. 얘기하니까 보고싶네. 우리 사이 거리가 이렇게 멀 줄이야. 몇 번이고 보러 간 게 다행이었다. 한번도 보러 가지 않은 계절에는 후회했다. 한 번은 보러 갈 걸. 지금은 그저 더 보러 갔어야 했나 한숨 정도다. +18:12-19:28 그간의 꿈을 거슬러 오른다. 기억을 하는 장면도 있고, 아닌 씬도 있다. 파편을 주울 때마다 느끼지만, 요상하다. 말이 안 되게끔 요상한데 꿈에서는 자연스럽다. 자유도도 꽤 높다. ‘이젠 당신이 나오면 꿈인 줄로 안다’는 내용은 어떤 시에서 영감을 받은 메모였다. 특히 몽중몽인 듯 꿈에서 꿈을 복기하는 꿈을 적은 일기는 신묘하다. 꿈일기를 쓰다보면 꿈인지 아닌지 알게 해주는 장치가 있다. 예전에 아주 잠깐 자각몽에 대해 공부할 때, RC로 하나의 토템(인셉션식 개념)을 정해두면 좋댔는데 그런 지경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예를 들면 “그 옷 한번도 밖에 입고 나간적이 없는데.”라고 묘사하는 어떤 자켓은 내가 꿈임을 인식할 수 있는 토템이 된다. “된장찌개?”도 마찬가지. 아니면 장소 자체가 이상할 수도 있다. “이탈리아였고 눈이 왔다.” 가본 적도 없는 이탈리아를 상상한다는 일이 가당키나 한가. 007 요원의 미션 해결일 때도 있었고, 꿈의 막바지에 들어서 깨기 직전에 “녹색과 분홍색의 테니스공이었다. 연습구.”를 코트 밖으로 멀리 던지며 일어나기도 했다. 당신이 “희한하게 노란 알배추의 알부분을 덥썩 베어물고 있었다. 그 소리가 좋았다.” 사소한 부분을 전부 기억하려고 애쓰는 내가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수만가지로 갈라진 이미지의 그를 취하는 내 무의식은 얼마나 의식의 범위에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 했는가. 늘 기억하려 했다. 계속해서 나만의 공간에서라도 숨을 쉬길 바랐다. 단 하나, 늘 타오르듯 뜨겁게 살라는 약속만 했던 우리 사이에서 내가 지킬 수 있는 불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의 눈에 나를 배이게, 내 눈에 당신을 데이게” 했다. (돌이키면 다른 약속들 많다. ‘평범하게 걷기’와 잊을 수 없는 꽃의 추억이라든지. 그때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도 하나의 약속이었다.) 오늘 꿈의 녹음은 2년 전의 것과 이어진다. “회의 시작 전에 내 휴대폰에 당신이 뜰 때 난 왜 녹음을 안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자동녹음 방법을 찾고있었다 결국 실패했지만” >> “이야기 한 거 녹음하는 장면까지 있다 왼손으로 빨리 녹음따는 장면 그건 또 왠지 지금 휴대폰이었어” 긴 글로 늘여 뽑으면 이런 식이다. “아까 말했던 파일 출력을 좀 하라 그랬나. 사소한 부탁이었다. 프린터기 앞에서 다시 혼이 빠져선 허둥대고. 회의 시작 5분 전, 자리에 앉아서 멍 때리는데 왜 당신과의 전화에 자동 녹음이 설정 안 돼있지, 하곤 구글에 휴대폰 기종 자동녹음 검색해본다. 검색해도 방법이 안 떠. 속으로 욕하면서 찾아봐도 없길래 포기하지.” >> “짧은 이야기였는데 전부 기억하고 싶어서 황급히 왼쪽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 거린다. 자동녹음이 안 되면 수동으로 하면 되잖아. 얼른 버튼을 눌러 액정을 감춰버린다. 익숙한 파동의 그래프가 손 안쪽에서 붉게 흐르고 있다. 별 이야기 안 했다. 그저 내 얘기, 인데 다만 내가 걱정됐다는 종류로. 내 소식을 듣곤 당신이 깜짝 놀랐다면서 호흡을 평소보다 더 끌어온다. 다른 이에겐 나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닳도록 말하던 투명 망토의 현현顯現 아닌가!” 당신이 나오는 꿈에 대한 일기는 다 봤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닌 모양이지. 아쉽다. 모든 꿈을 다 주워서 언어화시킬 수는 없었을테니까. 어쩌면 이상향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긴 하다. 기억도 그래. 우리가 나눴던 말도.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서로의 눈 속에서 타오르고 있던 불꽃의 주파수가 일치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만 그렇게 느낀대도 할말은 없다. 아직 그만큼 크려면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잘 할 수 있겠지. 오늘도 장작을 팬다. 불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언젠가부터 당신을 떠올리면 나는 이런 식으로 정체화를 하고 있었다.

#53 이름없음 2024/03/24 20:32:10

새벽에 깨어 있다면 많은 글을 쓸 텐데. 이맘때쯤부터 졸리기 시작해서, 동이 틀 때 쯤 눈을 뜬다. 자동으로 떠진다. 덕분에 꿈이란 꿈은 다 꾸고 있다. 가장 불만인 건, 1:1의 독대가 아니라 다수가 있는 상황 속 뜬금없이 당신이 있다는 거 정도. 독대하는 꿈도 간간이 꿔왔는데 빈도가 밀렸다. 날이 아주 더웠고, 얼굴이 새빨갛다며 운동 중 휴식 시간에 요구르트를 받아 마셨다. 엘리베이터 속 거울로 보니 옷보다 더 빨간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루종일 혈색이 좋아서 탈이었다. 필사에 다시 맛을 들였더니 이 문장도 좋고, 저 문장은 미쳤다. 자의로 이렇게 오래 새나라의 어린이 모드에 들어가게 되다니. 어제 이 시간 쯤엔 당신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을 썼다. 노래를 들었다. 별보다 먼 사람, 별보다 먼 그대. 일본어는 잘 모르지만 가삿말은 잘 아니까 따라불렀더니 엉킨 발음 끝무렵에 당신이 서 있었다. 그래서 보고 싶었다. 이룰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 그럴 때에, 이룰 수 없는 사랑도 있다며 붉은 꽃잎을 가리킨 손가락만 아니었더라면. 당신의 입술 밖으로 터져나온 사랑이라는 한 단어가 순식간에 나의 감정을 사랑으로 감싸버렸다. 정의된 것인지 학습된 것인지 그 구분이 모호했다. “이룬다는 게 무어냐고 되물어도 내 목소리만 돌아오는 현실이 무척이나 버겁다. 당신은 별보다 더 멀리 있으므로 도무지 닿을 수 없었으니까. 여전히 수용이 안 돼서 돌고 돈다. 산 중턱을 힘겹게 오르고 내린다.” 그래서 보고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꿈에 나오던데, 하고 피식거리며 빌려온 소설책을 펼치지도 않고 잠에 빠졌더니 진짜 나온 거였다. 그렇다면 오늘도 나오는 건가? 오늘은 다른 사람에게 몇 시간을 붙들려 있었으므로 할당량을 다 채워서 안 나오려나. 필사해둔 문장이 정돈되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다. 기억이 한 발자국 씩 내 감정으로 스며든다는 뉘앙스는 생각이 난다. 섬광처럼 일순간에 심장에 내리꽂지 않았다. 눈 온 벌판에 한 발자국씩 신중하게 내딛듯, 그렇게 당신의 기억이 나를 돌고 돈다. 분명 나보다 작은 발자국으로 왔겠지. 너른 발자국으로 덧찍으면 사라지니 옆을 밟는다. 자야겠어, 아무래도.

#54 이름없음 2024/04/10 22:41:41

0325 왜 당신이 아프단 사실에 지나치게 신경쓰는지. 어쩐지 피곤해보이고 졸린 기색이 역력한 느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눈동자엔 총명함 대신 잿빛이 꽉 들어찼다. ‘초인이로군.’ (…) 손목 어딘가에서 길이 끊겨서 끝의 끝부분까지 팍팍 전달되지 않는 느낌. 왜 안 돌아오는 거지? 좌절과 공황 사이를 빠르게 쏘다닌다. 길을 잃은 어린아이처럼 사거리 한복판에 주저앉게 된다. 글씨도 흐트러진다. 마음은 물에 젖은 휴지처럼 갈기갈기 찢어졌다. 0327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데 눈앞으로 지나치는 옆모습 0328 지나친 이상화가 눈을 가린다. 태양도 오래 쳐다보면 일시적으로든 영구적으로든 시력을 잃게 된다는데. 그림자가 짧아진 채 고개를 바짝 들고 올려다보고 있다. 그러지 말고 좀 더 가까이 가되, 태양의 위치를 내릴 수는 없어? (…) 타버리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수록 거리가 멀어진다. 눈에 끼워둔 필터 때문에 본질에서 비껴나가있다. 성찰하라잖아. 그 험난한 과정을 해본다면, 이건 욕망도 열망도 아니고 버릇의 발현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 사람을 타깃으로 삼아두고 내 쳇바퀴를 굴리는 습관. 정작 없어도 잘 사는데. 부담감은 내려두는 게 좋지 않아? 0401 만우절 너의 거짓말이 되고 싶다. (…)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할 일이 없어서 영원히 저편은 닫힌 세계일 거 아냐. 우린 태어났을 때부터 열려 있었어. 죽을 때까지 이쪽저쪽 오가면서 살아야겠지. 언제까지 닫힌 세계를 바라다보기만 하는 사람의 언질에 휘둘리며 살 수는 없잖아. 이러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이대로 땅에 처박힐까봐, 수면 아래로 무한히 하강할까봐, 두려워. 원래 불안은 형체가 없는 것이어야 하는데, 구체화할수록 비처럼 내리던 것이 폭풍우가 되어 휩쓸어버린다. 자고로 불안이란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어둠같은 건데. 이대로—. 0403 오늘은 돌아가는 뒷모습이 찍혀 있다 0405 23:27-23:34 네 꿈을 꿨다. 쓰기 싫어 미뤄둔 글자가 머릿속에서 도저히 나가려고 하질 않아 뱉어낸다. 새삼스레 여보세요가 웬 말이야? 니가 먼저 전화했잖아. 방아쇠라는 걸 알면서도 당겼다. 아침 여섯시에 개같이 깼다. 0409 머리를 말린다 잘라도 밀어도 자꾸 자라난다 너는 그래 내 생각의 끝으로 가면 늘 네가 서 있다 이 느낌이 싫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이 싫다 나한테 너는 뭘까, 라는 되도 않는 순환식 의문이 고개를 든다. 백만번을 상상해도 다 다른 답, 결국 끝으로 모아보면 하나 뿐인 답이 나온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아? 로 귀결된 대답은 스위치를 차단한다. 나는 겨우 너의 방에서 나간다. 의식의 반응이든 무의식의 반응이든 나타나는 반응은 모두 하나의 공통된 필터를 거친다. 마치 ‘그래야만 한다’라는 도식을 통해 산출된 결과물 같다. 프로필 사진이 바뀌면 그게 또 화가 난다. 왜? 를 파고들어본 적은 없다. “너—>부정적 감정으로 치환하라”는 명령문이 언제부턴가 머릿속에 제1원칙으로 자리잡아서 도망가지 않는다. 이 도식을 깨본 적도 없다. 오늘도 늘어진 테이프를 들고 앉았다. 리모콘을 들어 하는 짓이란 되감기의 되감기다. 이 시점이지, 대사도 다 외웠어. 나 하나만 돌리면 되거든. 그런 일방향적 소통 속에 우리가 뭘, 아니 내가 뭘 미결로 놔두고 도망쳤길래 아직까지 이렇게 힘들까. “이게, 사람으로 사람을 덮어야되는 게 있는데. 난 그걸 못 한 것 같아.” 과연 그럴까? 너는 누군가로 ‘덮여질 수’ 있을까?

#55 이름없음 2024/04/13 00:01:50

돌아오며 뜨문뜨문 네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손톱달이 뜬 밤에, 겨우겨우 불어오는 뜨뜻미지근한 바람을 맞으며, 하는 일이라곤 너와 평화롭게 지내고 있을 평행세계를 상상하는 일이라니. 씻어내지 못한 땀마저 전부 선선한 공기에 휘발되어버려 개운함이 백에 가까워져 있었다. 달에서 딱 손톱만큼을 제외한다면 전부 나로 오롯이 채워진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에도 나는 너를 떠올린다. 조그맣고 날카롭지만 둥근 부분을 품고 있는 너의 영역이 얼마나 따스했던 건지를. 발목 내측에서 무릎으로 올라오는 통증 때문에 마지막 2.5km는 걷지도 못하고 내려와버렸다. 돌아오는 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운동으로 소진됐어야 할 체력이 절약됐던 탓이었다. 그래서 초승달에 홀린 듯 언덕을 올랐고, 더 이상 이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 데에는 숨이 차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잘려진 손톱 같기도, 누군가의 눈웃음으로 보이기도 하는 달과 건물을 구도에 맞춰 몇 장 담았다. 360도 펼쳐진 풍광을 4:3 비율에 맞춰 잘라내기란 어떻게 해봐도 어려운 일이었다. 불만족스러웠지만, 서서 더 찍어봐야 새로운 느낌을 주는 컷은 안 나올 거란 느낌에 조심스레 내리막을 탔다.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보폭이었다. 딴짓만 안했더라면 오늘도 그 사람을 봤을까. 운동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면 항상 마주치는, 요가매트를 들고 길을 오르던 그. 나는 헤드폰을 낀 채 내려간다. 어제만 해도 오늘도 올라가시네, 라며 속으로 웃기까지 했다. 저 사람도 나를 인식하고 있을까. 소소한 의문은 덤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보통은 아무런 생각도 안 하는데, 노래나 흥얼거리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한번 켜진 잡념의 스위치는 고개 몇 번 좌우로 주억거린다고 꺼지진 않았다. 처음엔 그저 그런 상상이었다. 언제 껍데기를 부수어 나갈 지 생각하다가 수단으로 흐름이 빠졌고, 자연스레 네가 연상됐다. 미쳤나? 웃었다. 당신이 했던 말은 여전히 유효했다. ‘설레는 표정을 감출 수 없는 것 같은데요?’ 4년이나 된 대화를 곧바로 꺼내올 수 있는 이유는 땡그란 안경 안쪽의 둥그런 눈으로 나를 꿰뚫어본 당신의 통찰력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은 날카롭지 않음을 충분히 위장한 부드러움으로 내 앞뒷면을 간파했다. 그래서 아직도 당신의 눈에, 언어에 휘둘리는 거겠지. 영역. 너의 영역. 삭월일 때가 종종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날에 밝게 떠 있는 너는 완연한 나로 기능할 수 없게 한다. 망월도 주기적으로 돌아오지 않는가. 의식이든 무의식의 저편에서 너를 끄집어내오든 간에 하루 종일 떠 있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글을 쓸 때도 있다. 그런 날엔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어디로 뛰고 도망쳐봐도 달은 항상 떠 있다. 심지어 지구에선 달의 한쪽 면밖에 볼 수 없다는 점까지도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내가 모르는—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달의 뒷면에 가닿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것도 다 옛날 말이지, 자조하며 훌훌 털어버리고픈데 지금 이 순간 한 글자 씩 써내려가는 현재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못 하겠다. 로켓-트 타고 날아가서 너의 수면 아래를 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될 줄로만 알았다고. 언젠가는 말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아닌 척 해봐야 소용없다. 시간이 됐다. 얼음을 담아둔 주머니 안쪽이 완벽히 유연해졌다. 체온과 열평형되고 있는 중인 거겠지. 열평형의 개념을 좋아했다. 온도가 서로 다른 두 물체는 반드시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는 사실이 낭만적이었다. 따뜻한 사람과 차가운 사람의 손이 포개지면 냉기를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너를 통해 알게 됐었다. 손이 차갑다면 그건 마음이 따뜻해서 그렇다는 장난스러운 말에도 귀가 가려워 웃었었는데. 앳된 목소리가 더 앳된 나와 공간을 울린다. 기억을 기억하는 나는 허울 좋게 앞자리만 갈아치워버린 애였다. 탄산이 모두 빠져버린 콜라를 원샷했을 때 이별을 직감했어야 했는데. 목으로 넘어오는 액체는 달큰하기만 하지 전혀 짜릿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껴둘 거였으면,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시원해지자마자 바로 따서 아프도록 따갑게 넘겼어야 했는데.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런 입장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판단하는 그 시점이 항상 두 발 늦은 때였다. 그래서 너의 어깨 너머를 알고 싶었다. 통찰이든, 미래시의 예지든, 뭐든 좋으니 지각하고 싶었다. 이별을 고할 때조차도 네가 감내하던 말을 내 쪽에서 참다 못해 터트렸던 거였다. 차라리 정말로 내가 먼저 질렸으면 어땠을까. 바보같은 상상도 해본다. 아이싱의 시간이 끝났다. 손목으로 전해지는 거센 진동과 함께 00:00의 표지가 눈에 띄었다. 더는 상상을 확장시킬 필요가 없다는 알람이겠지.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56 이름없음 2024/05/14 08:54:30

131, 당신의 상상 속에선 J가 죽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꿰뚫어본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길가에서도 지워진 그 횡단보도를 건너 함께 식사를 했더라면 세계선이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지 않았을까?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정오 무렵의 햇살이 너무도 더운 나머지 집에 가고 싶었나. 나는 왜 그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았지. 만약 건넜더라면 밥이라도 정말 아무렇지 않은 밥이라고 할지라도 따뜻한 술을 입안에 넣으면서 행복하다고 느꼈을텐데. 그러지 못한 세계선에서 소설을 읽으며 당신을 떠올리다 우는 일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너무 지긋해서, 더 이상은 이러기 싫다고. 무뎌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심장을 울리는 고동으로만 메아리쳐본다. 여전히 과거의 한 공간에 갇혀 있고 가능하다면 그때 그 선명한 시간으로 나를 데려가고 싶다. 장면에서 내가 만질 수 있는 설정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편집을 맡은 사람처럼 키보드와 마우스, 줄줄이 달려 있는 기계장치 너머 모니터 속에서만 되감고 또 되감는다. 씬에 직접 개입해서 버스정류장 근처를 공사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길을 건너서 가도록 유도되었을테니. 하지만 나는 어떤 경우의 수를 집어넣어도 허무한 초여름에 그저 집에 돌아가는 평범한 일상에 당도했다. 어쩌면 당신이 주었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특별함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당신을 탓한 적 없다. 잡아채지 못한 내 탓이라고, 그러니 이렇게 멀미가 나도록 떠올리는 것이라고. 멀고 먼 땅의 작은 방 안에서 넘실거리는 바닷물을 퍼올리며 적는다. 여전히 바닷속이다. 종종 숨을 참게 된다. 아주 먼 아래까지 내려다볼 수 있을까봐.

#57 이름없음 2024/05/20 04:55:09

물가에만 다녀오면 파랑 생각이 난다. 튜브에 온몸을 기대고 어느 먼바다까지 가려나 걱정이 돼 시선 끝에 고정시켜두었던 그 여름. 송어가 종종 기생충을 쫓기 위해 펄떡펄떡 수면을 박차던 장면을 함께 보던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는 말을 했더니, 그들은 참사랑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랑이란 말 이렇게 쉽게 써도 되는 걸까? 싶어 큰 목소리로 웃었는데 일기를 쓰다보니 뒤미처 깨닫는다. 이런 감정도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거지. 4월의 마지막엔 거짓말처럼 당신을 만나러 갔다. 늦기 싫어 미리부터 가서 동네를 둘러보고 일하는 곳 근처의 카페에 자리를 잡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흐름이 끊겨도 아쉽지 않도록 단편소설집과 필사 노트를 펼쳐놓고 자주 듣는 트랙을 들으며 집중하고 있었다. 좋은 문장이 많았다. 느티나무와 버스정류장, 사찰, 그리고 여름을 그려낸 잔잔한 분위기의 장면은 아직까지도 상상한 심상 그대로 흐르고 있었다. 초조한 듯 설레서 발을 떨었고, 가방 뒤에 숨겨둔 선물은 재포장하며 잘 챙겨왔는지 몇 번이나 다시 살폈다. 그때는 하나 놓고 왔다고 아쉬워했는데 실제론 깔끔하게 다 챙겼었다. 두 편 반 정도를 읽었을 무렵 왼편의 출입구로 파랑이 걸어들어오며 두리번거렸다.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반가운 인사를 나눴지만 살짝 어색한 기류는 감춰지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작년 여름에 봤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충 마실만한 것을 사시길래 쭐래쭐래 따라갔더니 식사대용 빵 종류를 하나 사주셨다. 이미 배불렀지만 맛있게 먹었다. 이야기는 별 거 없었다. 바쁜 일을 정신없이 해치우고 온 파랑과, 느긋하게 오긴 했지만 침착하지는 않은 나의 주파수가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잡음이 껴 있었다. 그래도 근황을 나누고 얼굴을 보니 매우 좋았다. 나갈 때가 되니 분위기도 풀려 제법 말랑말랑해진 상태였다. 새로 리필해온 물까지 바닥이 날 때쯤 산책을 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셔서 승낙했다. 상쾌한 건지 조금 축축한 건지 제대로 분간하기 힘든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의 날씨였다. 낮엔 까딱하면 더웠고 비가 오면 언제 여름이었냐는 듯 일교차가 심해 변덕이 죽 끓듯 하던 날들이었다. 다행히 아침부터 흐려 비는 오지 않았지만 약간 찝찝한 정도의 습기가 있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사실 날씨는 크게 상관없었다. 밤이었고, 함께 걷는 사람의 반가움이 나의 마음까지 넘실거려 왔으므로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초록불로 점멸하는 횡단보도를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했다. 코너를 돌자마자 보이는 언덕에 바로 경쾌함이 무너지기는 했지만, 보이는 것보다는 오르기 쉬운 축에 속했다. 동네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골목으로 들어서자마자 분위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던 것은 생생하다. 다만 나의 엄살이 그 정적을 깨트리자 그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다며 웃었던 게 떠오른다. 좋은데요, 괜찮은데요! 나는 가쁜 숨을 밭으며 맥없이 좋다는 말만 반복했다. 실제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어렵다기보단 빡센 느낌이었다. 짧고 굵게 경사도가 높은 느낌으로 산 넘어 산처럼 구성된 길이라 다 왔나, 싶으면 장난처럼 한 번 더 거슬러 올라야 해서 웃었다. 웃겼다. 차 없이 오르는 건 파랑도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는 길도 모르는 나의 뒤를 받치며 함께 올라왔다. 주춤거리며 동 앞에서 기다리려는데 들어오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집까지 구경했다. 티비 대신 한쪽 벽면 전체를 점유한 서가에 먼저 눈이 갔다. 이사를 다니며 줄이고 줄인 책들은 마치 정수精髓처럼 느껴졌다. 놀랍게도 한국 작가의 취향이 나와 많이 겹치길래 몇 권은 탐나기도 한다고 장난스레 웃어보였더니, 파랑은 파트너가 주로 읽는다며 소개해주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이 가득했고, 구석에는 헤어질 결심 각본도 있었다. 어정쩡히 서 있는 동안 바삐 움직이는 파랑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궁금했다. 이것저것 챙겨오는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취향이 이렇게 겹칠 수도 있구나 감탄하며 거실에서 손떼가 묻은 책들을 눈에 담기 바빴다. 어수선하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정렬은 확실히 되어 있는 공간이었고, 그게 누구의 손길인지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귤까지 꺼내오시는 걸 막지 못했다. 괜찮다고 아무리 손사레를 쳐봐도 씨알도 안 먹혔다. 뭘 이런 걸 다 들고 와요, 라는 말만 해주셨어도 그러려니 했을 텐데 드린 것 이상으로 되돌려받아서 손이 무거웠다. 지하주차장을 잠깐 헤매다가—차를 매일 끌고 나가면 잘 알텐데…—가벼워진 몸으로 뒷산을 올랐다. 저번 여름에 내가 그랬듯, 파랑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지명에 숨겨진 설화를 알려주었다. 뿌듯함이 숨결 끝에 묻어나왔다. 그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을테지. 나무데크를 턱턱 밟아나가며 한없이 높은 건물에서 빛나는 조명이 별처럼 보이는 장면도 눈에 담았다. 이토록 조용한 산책길이 집 뒷편에 있다는 게 내심 부러웠다. 파랑은 요새 뛴다고 했다. 시간이 없어 매일 나가지는 않겠지만, 통통 뛰며 앞뒤로 날개를 펼치듯 팔을 휘젓는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밀려나왔다. 얼마나 뛰는지, 어떤 운동화를 신는지 물어볼 걸. 어디선가 흘러오는 꽃향기를 라일락향이라고 알아채는 모습이 좋았다. 하이라이트처럼 제일 매료된 순간의 리플레이를 뽑아낸다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근 한 달 간 헬스하고 돌아오면 늘 깊은 경사가 있는 내리막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이유는 오로지 화단에 핀 라일락의 나뭇가지를 손으로 살짝 내려 폐의 가장 깊숙한 부분까지 향을 쌓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핀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나누다 라일락인 걸 바로 깨닫는 게 신기했다. 활짝 핀 꽃과 함께 5월이 성큼 다가섰다. 등꽃도, 그 사람도 아니었지만 반 정도는 맞춘 셈이다. 라일락의 파랑이라 어쩌면 더 좋았다. 지위나 역할에 귀속되는 대화가 없었으므로. 짧은 만남은 함께 오른 언덕과 엇비슷했다. 반가움이 끝날 때쯤 되니 산책과 라일락으로 한 번 더 설렘으로 환기되며 변주됐다. 투정 아닌 투정을 서로 부리고, 작년의 일을 떠올리고, 다음 여름을 기약하는 일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별다른 임팩트가 없던 일상에 강력한 방점으로 찍혀 있다. 그때의 감각을 머릿속의 영상으로만 남겼다면 전부 휘발될까봐 황급히 옮겨적었더니 아직까지 생생하다.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귀결되는 취향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들에 자석처럼 끌려다니는 지 휘갈기며 적어둔 문장들은 너무나도 적확하다. 떠오르는 얼굴들의 생김새가 일정한 게 아니었다. 추출해 뽑아둔 특징을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면 개연성이 생겨났다. 이래서 좋아하게 되었구나. 색다른 순간에 꽂히면 그 이후로는 프리즘을 갖다 대고 분광했다. 내가 그들과 기억하는 비중이 다른 이유도, 여행이 끝나자 파랑을 기억하는 데에만 용량을 써서 그랬던 거였다. ‘진짜’ 여름을 손꼽는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다 못해 손수건 없이 나갔다가 후회하는 그런 여름, 몸의 어느 부분들은 조금 더 날렵해진 채로 파랑을 다시 만나러 가고 싶다. 그래도 닭가슴살 한 끼에 두 덩이는 진짜 못 먹겠는데, 만나기 이 주 쯤 전에는 완전 무탄수를 해야할 지도 모른다. 단백질 덩어리 우걱우걱 씹으면서 올리브유 삼키고. 바라고 바라는 진짜 여름은 쉽게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두 세뼘 정도는 성장해야 한다, 이번엔 정말로. 어떻게 하면 더 잘 듣고, 더 잘 쓰고, 더 잘 이끌 수 있는지 아직까지도 감이 안 온다. 감을 잡진 못해도 무언가 이뤄낸 타이밍 이후에 볼 수 있겠지. 그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길고 긴 하천변을 따라 함께 뛰게 될까. 그러잖아도 심장은 열렬히 일하겠지만. 보고싶다, 누가 보고싶은지 한참을 생각해도 그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있어 이게 외로움이구나, 실체를 보고 있다. 수면패턴도 망가져서 꿈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을 때가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 대해 예측하는 장면이 나온다거나, 강렬한 감각이나 감정을 느껴 땀에 절은 채로 깨치는 일이 잦아졌다. 분명 다른 글을 쓰고 싶었는데 밝은 장면을 쓰다 보니 어떤 어두움을 묘사하려 했는지 잊었다. 그러니까 하여튼, 보고 싶다. 그리고 당신 말이 다 맞다. 뒤돌아 앉아 달의 뒷면에 골몰할 필요는 없다. 지구에선 무슨 짓을 해도 보이지 않고 닿지도 않으니까.

#58 이름없음 2024/06/22 03:10:32

여름의 한 가운데에 서서 봄을 그리워하는 당신이 아니었다면 너를 떠올릴 일은 없었겠지. 달은 구름 뒤에 가려진 채 휘영청 밝았다. 잔디밭이 무릎 아래를 간질거려 툭툭 뽑았다. 이렇게 한 시절이 접히는구나. 조의 소설에선 늘 그런 구절이 나왔었지만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는데 알 것도 같았다. 봄도 하나의 학기도 아니라 시절을 접었다. 각을 맞춰 손톱으로 꾸욱 눌렀다. 자의였다. 접힌 선의 평행을 확인하며 웃었다. 분기점이란 이런 걸까. 조금 습했다. 비가 올 것도 같은 달무리에 상현의 달이 가리워진 채였다. 에너지를 잔뜩 흡수하고도 뭐가 아쉬워서 기약 없는 다음을 그리워했는지 모르겠다. 오늘이 즐거웠으면 그걸로 된 거라며 매듭 지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늘 미련이 남았다. 뒷통수가 헛헛한 감정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했다. 하나의 분기에서 서로 등을 보인 채 시원하게 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4년 전에도 이런 이별이 있었다. 인연이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기어코 다시 만났다. 그 사람의 마지막 차림새는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눈동자 안쪽에서 쉽게 꺼낼 수 있었다. 봄도 여름도 지독하게 짧다. 마음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해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했다. ”늘 혼자 뚜렷하게 서 있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나를 구해줄 등 뒤의 벽을 찾아 머릿속의 방 한 켠을 멋대로 들락날락 거린다. 그의 경험이 종종 나의 사람들을 생각하게 했다. 꿈에 나와 나를 울게 하고 괴롭게 해도 다시 나와 달라 말하는데, 그런 것들도 기억하지 못한 채 쉽게 흘렸다. 종종 당신 생각을 한다. 여름이면, 잎사귀가 초록빛을 내뿜다 못해 쏟아버리는 한낮이면 창문 너머를 본다. 그 해 겨울은 눈이 아주 많이 나렸지, 엉망진창으로 눈사람을 만들었지, 그게 당신이 내려준 건지도 모르고 아파하느라 제대로 울지도 못한 채 꺽꺽댔던 나를 돌아본다. 사랑한다고 치기 어린 말이라도 해볼 걸 이게 사랑이냐고 그런 거라면 나는 왜. 등 뒤의 벽. 언제나 나와 같은 방향으로 앉아 있던 사람을 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그가 말하자마자 바로 떠올랐을 정도니. 그는, 자신을 이끌어준 은사님들이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맥주잔의 수면이 바르르 떨렸다. 애꿎은 병을 꽉 쥐었다. 보고 싶었다. 0429 가지말라고 했던가. 바다내음이 짙었다. 내가 가지말라고 해봐야 떠날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젖은 모래만 남겨진 해변에서 나는 스러져갔다. … 마음을 많이 쓴 꿈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보고싶다. 너무 잔인하잖아 새벽 4시에 깨선 어벙벙했다. 연달아 꾼 꿈에는 책을 읽으며 당신을 그리워하는 꿈을 꿔야 했다. 돌겠다. 220516 지금 다시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내가 헤맬 때 정답이라며 머리를 쓰다듬고 다른 문제가 적힌 쪽지를 두고 사라진 당신을 찾고 있다. 찾고 있어. 이제 여름이잖아요, 더워 죽겠다고요, 저 여기서 녹아 내릴지도 몰라요. 다 풀면 온다면서. 그렇게 꿈 속에서 사라진 당신의 뒷모습만 애타게 찾는 내가. 나는 이제 뭘. 뭘 더 하면 좋죠? 시간은 항상 일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가 무게를 잡으면 잡을 수록 길어지기도 했고 텅 빈 날이면 한없이 빨랐다. 그러니 매일을 충실히 살면 하루가 긴데, 뒤를 돌아보면 짧게 느껴지는 거다. 그냥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너무 멀리 왔다. 내 꿈에서 사라져줬으면 좋겠다가도, 매일 나와달라 소리치고 싶다. 언젠가는 만날까.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할말이 많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눈동자 너머에 잠기고 싶다. 아주 조용히 침잠하고픈 마음이다.

#59 이름없음 2024/07/26 11:02:21

꿈에 당신이 나와 방방 뛰는 아이처럼 좋아하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젯밤부터 비가 쏟아지듯이 내리다 말기를 반복하더니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이것도 장마라고 해얄지 알 수 없는 날씨가 몇 년째 지속되고 있었다. 예전의 장마라 함은 하루종일 눅눅하고 치밀하지 않은 빗방울이 오래 내리는 날의 연속이었는데. 요사이의 장마는 치밀한 비가 쏟아져 잠시간 긴장되다 맥없이 풀리는 집중호우식이다. 장마라곤 하나 길지 않은 비 조각을 이어붙여 만든 듯하다. 세상이 어느 방식으로든 한 번은 접혔다. 과거로부터 비가역적인 선이 발생해버린 탓에 돌이킬 수 없다. 꿈을 많이 꾸었고 생각이 나는 꿈은 웬만하면 다 적어두었다. 개꿈도 많지만 체에 걸러내면 유의미한 반짝임은 남는다. 너의 강아지가 내게 찾아와 안긴다거나 집앞에서 당신을 보았다는 친구의 전언은 현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렬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로 오타가 나든 말든 받아적고 잠시 딴짓을 하고 나면 강렬한 느낌은 온 데 간 데 없고, CD가 튀듯 특이한 감각만 잔상이 된다. 주로 시각인데, 촉각인 경우도 있다. 당신이 입은 옷의 부드러움을 만지지도 않고 아는 건 공감각이라 해야 할까. 일상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신기했다. 복도 끝 아무렇게나 방치된 냉장고 너머 빈공간이라니 어릴 적 읽었던 동화처럼 나타나기는 또 처음이었다. 것도 내가 먼저 발견하질 않고 이제는 연락도 않는 친구가 나타나 야, 봤어? 라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꿈속의 내가 얼마나 기대했겠는가. 심장이 얼마나 뛰었겠는가. 고개를 돌려 멀리 바라다보면 그토록 찾던 사람이 서 있는데. 숨을 흡 들이쉬었다. 당신은 천천히 걸어온다. 그 부분만 느리게 감긴다. 다 늘어진 비디오테잎이라 지직거리는 노이즈도 있다. 실제의 내가 너무 많이 봐서 꿈속에서도 느려진 걸까. 이상하게 들은 지 오래된 노래를 직접 언급해서 하루종일 그 노래만 듣게 생겼다. 4 walls까지 나오는 플레이리스트를 듣고는 안목이 좋다고 칭찬했다. 실상 기억해야할 건 직전 노래인데 제목이 세 글자였다는 부분 빼곤 휘발됐다. 교착상태에 빠진 여름이다. 언젠가 네 생일에 다른 사람이 나오는 꿈을 꿔서라도 잊길 바랐는데 성공하다니 기분이 묘하다.

#60 이름없음 2024/08/30 01:24:43

이런 사랑도 사랑이었냐고 물어본 적이 없는데 당신이 내처 와서는 그렇다고 했고 너는 바람이라 했다. 정신적 바람에 대한 흔한 블라인드 썰이 있는데 딱 그 꼴이었다. 아내의 입장에서 쓰인 글에, 남편이 출근이 즐거워 싱글벙글 한다는 대목에서 웃었다.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유가 비슷했으므로 찔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 3의 인물이 쓴 글을 보고나서야 정신적 바람이라는 입장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자신 외에 다른 이성에게 일반적 범주를 넘어서는 관심을 두면 그것이 바로 외도였다. 나는 이해를 못했다. 지금도 다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동경이라고 열심히 포장해봐도 삐져나오는 마음이 있었으니 그가 꽃말을 소상히 알려주며 멀어지라 했던 게 아닐까. 사실 그 꽃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아주 현명한 방법으로 나를 일깨운 것일 뿐이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내 마음에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고, 가만히 지켜보게 해 스스로 깨닫도록 한 건지도 모른다. 먼저 이 땅을 달아나버렸으니 영원히 물어볼 순 없겠지만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이랬을 거라고 헤아려본다. 너는 바람이라 했다.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나는 거기서 혼란을 느꼈다. 부정행위라는 논리에 포섭이 되지 않자 네게 항변했을테고 너는 내가 무지 얄미웠겠지. 찾아와서 싸우고 싶었겠지. 우리 둘 중 누구도 제대로 싸움을 걸 줄 몰라 일어난 일이다. 잘못은 내가 했는데 뻔뻔하게 회상하고 있나. 하여튼 자기합리화에 도가 텄으니 너는 싸움을 포기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균열이 가 있었고 영향을 줬을 거다. 이런 글 쓰려고 한 게 아닌데 발 한번 잘못 옮겼다고 또 여기까지 도랑을 파버렸다. 하여튼 전부 생략하고 이제는 사랑이라 말한다. 여전히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잊지 않고 꼬박꼬박 찾아가 인사하는 게 전부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 뿐이니 그리 한다. 갈 때마다 다른 사람을 마주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흐트러진 운동복 차림으로 인사라니 꼴 사납다고 면전에서 쏘아붙일 수도 있다. 어떤 인연으로 왔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이런 그리움이 있다고 소개할 자신은 없었다. 입밖으로 내밀 수 있는 얄팍한 관계성에는 방문을 정당화시켜줄 힘 따위 존재하지 않아보였다. 깊어진 그리움을 희석시키러 갈 뿐인데 이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왜 사랑이라 생각했는지 알고 싶었다. 서로 잘 지냈다 안부를 나누며 가벼운 대화를 하다가 괜히 폼 잡으면서 있잖아요, 라고 서두를 꺼내고 싶다. 있잖아요, 그땐 왜 그러셨던 거예요? 이게 궁금할 때마다 연락 드리고 싶었는데 꾹 참고 하루종일 당신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려고 해도 잘 안 됐다고. 그럼 그냥 장난처럼 한 거라고 답해도 마냥 좋겠지. 해묵은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젠 완전히 끊어져버린 첫사랑 대신 영원히 마음 속에 묻어버린 미결 사건이 돼버렸다. 영화 속 서래는 증발해버려 그 누구도 자취를 알 수 없다. 당신도 내겐 단지 그런 것이라면 어떨까. 눈을 감으면 손쉽게 등 뒤의 벽이 전해주던 감촉을 떠올릴 수 있는데 현현하는 육체가 다 무슨 소용인지. 오늘도 내가 기억하는 한 당신은 살아있다며 평행우주론을 밀어제낀다. 이 순간 흘러가는 비디오테이프 속 무한히 반복되는 씬 위에서라면 호흡하잖냐. 내 걸음걸이를 고쳐주고, 가벼운 농담에 웃어주는데. 당신이 관통하고 남은 자리에 나무가 다시 등장했다. 그에게 나는 들판의 이름모를 새싹이었다. 훌쩍 커서 와 무진장 깝치니 재밌었겠지. 흥미 본위를 건드렸을까. 진짜 어릴 때 본 게 다였으니 못해도 세 뼘은 넘게 자랐겠지. 바짝 긴장해서 뻣뻣해진 몸동작까지 기억한다. 제가 당신 기억 속의 그 꼬맹이라고 스스로 소개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땐 몰랐지 이렇게 될 지. 아니 자기소개한 거의 직후에 알 수는 있었던가. 불현듯 선명히 떠오르는 건 야근답지 않은 야근하고 돌아갈 때 꺼내던 신발이다. 처음 돌이켜본 기억이 왜 이리도 찐하게 남아있는 건지. 한국의 3인칭 대명사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별칭을 붙이면 또 헷갈려지는데 그렇다고 진짜 호칭을 쓸 수도 없고. 하여간 보고 싶다 정말로. 언젠가 정말 힘들었던 여름에 나타나줘서 고마웠다 말했던가. 코 안쪽까지 톡 쏘던 새콤한 향을 기억한다. 뿌리자마자 날아가버리는 시트러스 향수도 당신이 나눠준 과육의 향을 재현하진 못했다. 얼굴살 구겨가며 억지로 먹었었는데 분명. 분명 그랬는데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굴게 된다. 또 생각날 걸 어떻게 알았냐고 지금도 혓바닥 안쪽에서 이렇게 톡톡대는데. 매력이 너무 있어도 문제라니까, 도통 구할 수가 없다. 둘 다 보고 싶다. 희석시킬 때가 됐는데 그러질 못하니.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사이를 연인이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구나. 언제든 사랑한다 말해도 되는 사람을 너무 쉽게 잃어버렸다. 기어코 결론이 첫사랑에 대한 후회로 귀결되는 것도 지겨워 죽겠다. 그만해야 되는데. 새사람이 와서 덮어주기만을 바라는 게 마냥 하찮다.

#61 이름없음 2024/08/30 13:23:14

무엇이든 간에 이 파장을 깨트리고 싶다. 지금은 잔잔하니까 과거의 일이나 곱씹는 거지. 단물 다 빠진 껌은 얼른 뱉어내고 새로운 껌을 씹든 사탕을 먹든 해야 하는 것인데.

#62 이름없음 2024/08/31 17:56:05

조가 말했듯 오래된 사랑은 형벌이다.

#63 이름없음 2024/09/02 02:55:45

당신은 믿지 않겠지. 언젠가 당신이 그렇게 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그리워 했을까? 라는 물음을 스스로 생각해내다 자책에 빠졌다. 도대체 내가 무어라고. 의문조차 가져서는 안 될 듯했다. 이미 완성해버린 문장은 절대 기억 속에서 떨쳐지지 않았다. IF란 그저 뇌내에서나 기능할 뿐으로 절반짜리겠지만 그래도 해본다. 찾아갈 수 있었더라면 평범한 인연처럼 추억 속에 묻어버렸을까. 연락해도 될지 아닐지 수회 고민한 후 마음을 거뒀을까. 그리 자주 찾아가지 않았음에도 눈만 감으면 생생하다. 일정 시간마다 정해진 용량이 분사되는 방향제의 향, 걸음 소리를 줄이기 위해 깔려 있는 푹신한 발매트, 따뜻한 색으로 덮여 있지만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대리석의 온도. 가면 갈 수록 닳는 것은 나인지, 더는 당신의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갑갑함을 느낀다. 이 죄책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두 명의 선생님은 말했다. 내가 모든 걸 바꿀 수 없었을 거라고. 당연하지만 가슴 깊은 곳까지 와닿지는 않았나보다. 아직도 용납이 안 된다. 그냥 용납 같은 건 못 하는지도 모르지. 화가 난 채로 씩씩거리며 돌려내라 할 대상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발사된 화살이 다시 내게로 향하는 이미지만 떠오른다. 돌아와 박히면 뽑아내면 그만이라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더라. 그냥 그랬다. 누가 일부러 낸 생채기도 아닌데 지나치게 오래 아팠다. 남들은 금방금방 털어내고 잘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이러나. 그럴땐 말 그대로 병신 같았다. 내가 멀쩡하지 못해서 그저 유약해서 이런 건가 고민도 많았다. 시간을 기다리라며, 나이를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며, 매력적인 오답을 정답인 것마냥 말하는 어른들도 죄가 많다. 당신을 떠올리면 쉽게 그때로 돌아가버리는데 시간이 다 무슨 소용인가. 아직 나이를 덜 먹었나. 더 잡숴야 하나 정말. 그깟 기억이 뭐라고 누구나 그런 기억은 있는데 왜 나만. 항상 자책하는 방향으로 풀어내서인지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속을 헤맨다. 트라우마의 어원은 '뚫다' '뚫리다'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τραῦμα라고 한단다. 누가 작정해서 뚫은 것도 아닌 구멍이라 쉬이 메워지지 않나보다. 그런데 꼭 메워버려야 할까. 소리 소문 없이 원래의 형태대로만 보이게 한다면 괜찮을까. 엄두가 나지 않는다. 꼭 맞는 모양으로 된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뚫린 채로 놔두어도 나만 버틸 수 있다면. 사실 버티는 게 아니라 가만히 놔둔다. 아직도 준비가 안 됐다. 수용할 준비가. 어디로 돌아가버린 걸까.

#64 이름없음 2024/09/18 23:43:33

가을이라고 찾아오다니. “여전히 난 그 기억의 여름 속에 있어, 너도 알잖아.” 폭염인 추석이라도 여름이라면 여름일테니 지금 읽어도 유효할까? 당신은 능글맞은 미소를 띤 채로 내게 잘 지내냐고 물었다. 분명히 본 적 없는 옷인데 너무 선명한 이미지로 나와서 의문이었다. 그보다, 안색이나 체형에 딱 맞는 옷을 입고 있어서 속으로 놀람을 삼키기도 했다. 짧은 순간의 호들갑을 입안으로 감추고 왜 맨날 잘 지내냐고 하냐며 괜히 투정을 부렸다. 꼬우면 먼저 가서 잘 지냈는지 물어볼 것이지 왜 그런 어리광을. 당신을 만나자마자 꿈인 걸 알아차렸다면 좋았을 걸. 꿈 속의 꿈에선 나무위키에서 자각몽 항목을 인상깊게 읽은 탓에 어설픈 리얼리티 체크를 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말랑거렸지만 쉽사리 손등에 닿진 않았다. 바보같이, 손등에 닿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꿈이라고 착각해버렸다. 그러니까 그 꿈 속에선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고 믿었다. 눈꺼풀만 꽉 감았다 열면 새로운 페이즈로 뚝딱 넘어갔으니까. 이젠 떠난지 오래된 초등학교의 복도를 떠돈다거나, 40층이 넘는 호텔 건물에서 쫓긴다거나, 하여튼 제법 꿈다운 장면들이 연달아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살다살다 권총으로 위협 당하는 기분을 느낄 줄이야. 그 호텔의 옥상에서 변변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번지점프를 뛰기도 했다. 오래오래 하강하다가 모래 밑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누가 우릴 그렇게 쫓았는지. 그리고 왜 하필 당신인지. 추석이라고 잘 지냈는지 궁금했다손 치더라도 멀쩡한 꿈의 구석에서 인사하면 좀 좋냐고. 여름이 도무지 물러나지 않는다. 깊은 밤은 얇디 얇은 커텐을 바꾸고나서야 겨우 찾아왔다. 그리하여 꿈꾸지 않게 된다면 당신도 볼 수 없는 건가.

#65 이름없음 2024/09/19 03:49:21

우리의 시간은 너무나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 당연하게.

#66 이름없음 2024/09/19 15:24:11

경계, 해가 될까 생각할 시간이 많아도 *글을 쓰기 위해선 결심이 필요하다. 듣지도 않은 노래의 제목만 가지고 유추한 내용은 보기 좋게 틀려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상대에게 해(害)가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 짐작했다. 실상은 해(日)가 될까였다. 햇빛일지 비로 나릴지 결정하는 권한은 화자가 아니라 상대에게 있어보이는데. 나는 해(害)가 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읽었으므로 정반대의 해석을 꾸겨넣은 채 듣는다. 바깥은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 무거운 구름이 가득했다. 저 먼 대륙의 태풍이 영향을 미치는지 바람소리도 예사롭지 않다. 매일 작성하라 요청받은 기분이 드디어 가라앉았는데 정작 작성할 곳은 남지 않아 길을 잃었다. 고르고 고른 문장 속 진의를 탐색하기란 라면 끓여먹는 일처럼 쉽다. 문제는 소화에 있다. 거짓 한 톨도 없는 문장을 안부라는 포장지로 감싸 띄워보낼 때마다 홀가분해졌지만, 동시에 연락이 부담이 될 거란 믿음은 부채처럼 나를 쫓아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이리 와보라 손짓하면 꼼짝없이 앉아 셀 수 없는 지폐를 몽땅 다 헤아린다. 끝이 있는 기다림 속, 답장이 오면 방학숙제를 미루는 아이가 된다. 뿔어터진 컵라면마냥 면발이 국물을 쫙 흡수하는 시간을 기다린다. 거리를 두는 것이다. 설렘으로 치환시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다 도망치고 나면 천천히 글을 음미할 수 있다. 경계. 해악. 두 단어가 겨우 남았다. 해악. 급할 때마다 찾아가는 상황은 확실히 반쪽짜리 알약을 삼키는 것 같았다. 용량도 복용 기간도 깡그리 무시한 채 털어넣는—. 그래서 해악이라 했나. 때론 약도 독이 되고, 독도 약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건가. 소화를 위한 되새김질을 하다보니 내겐 최후의 보루라는 말과 등 뒤의 벽이 동의어처럼 쓰이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등 뒤의 벽만 있으면 반파로만 그쳤다. 그럴만한 사람과의 연결을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었다. 단지 잘 살아있을 거라는 미신에만 기대서는 모자랐다. 복합적인 기대감이 안부 속에 뚝뚝 묻어났다. 어떤 마음으로 보내냐고 물었을 땐 얼이 빠졌다. 유보해도 되는 답장에 굳이 써넣은 진심은 호도돼선 안 되는 투명한 심리였다. 반쪽짜리 테라피를 위해 이어가는 건 아닙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하다 장담할 수 없었다. 이 연결이 안부를 가장한 생존여부를 확인하는 물음이 역린을 건드리고 있음은 확실했다. 답장이 안 오면 미친듯이 불안해하면서 또 땅을 파뒀다. 낡아버린 삽자루 자체를 갖다버리고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은데. 경계면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가 튕겨져 나가는 건 아닐까 겁을 낸다. 우르릉. 하늘이 요동친다. 마른 번개가 뒤쫓는다는 경고다. 낮고 단일한 경고음에 괜히 심장이 쫄린다. 잘 익다못해 조금씩 국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면발을 괜히 뒤적인다. 식욕이 없다. 입안이 깔깔하다. 정말 해가 되는 일이었을까. 어떤 가능성에 베팅했길래 당신은 기꺼이 내 손을 잡았는가. 어떤 착잡함이 머무르는 지 알곺다. 잘 닦인 문장의 뒷문을 연다. 맥락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한동안 이 방에 머물며 어떤 마음으로 보낸 건지 알아야 한다. 세찬 비가 내린다. 반쯤 열린 베란다의 문을 한틈만 남기고 닫았다.

#67 이름없음 2024/09/20 03:51:13

집안의 전기가 끊겼다. 가뜩이나 커튼을 새로 쳐 어두컴컴한 방안이 더 어둑해졌다. 쓸 말도 없는데 활자 좀 읽었기로서니 괜히 기웃거린다. 불면의 밤이면 매일같이 찾아와 썼었는데. 꽤 많이 지나왔다.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진다. 지독하게 불안했던 나날을 찍은 필름은 열화시켜버렸다. 일부러 암실 바깥에 꺼내놓고 빛이 바래길 간절히 바랐다. 새벽이 싫었다. 이맘때쯤이나 되어야 멈추는 도시의 심장 한 가운데에서 연하게 톡톡거리는 빗방울을 맞으며 방황할 때면 너는 어디서 뭘 하는 지가 미치도록 궁금했다. 어디서 뭘 하길래 나를 이렇게 좆같은 기분에 빠트리냐고 묻고 싶었다. 잘 알았다. 너는 너의 영역으로 돌아갔으며, 우리의 세계는 더 이상 부딪힐 일이 없다는 것을. 후드를 뒤집어쓰고 발 닿는 대로 걸었다. 자취방의 주인도 아니었는데 그새 편의점 사장님들과 안면을 텄다. 어딜 가나 그런 천성이었다. 제가 지금 면허증이 없어서요. 괜찮다며 삑삑 아무렇지 않게 계산해주던 투박한 손을 기억한다. 주인이 자리를 비운 방 한가운데에서 찌질하게 과일소주 하나 얼음컵에 가득 담고 쭉쭉 마셔대기도 했었다. 뭐가 그리 속상했는지. 억울했는지. 더 좆같은 일들이 앞에 산적해 있단 걸 알았으면 그딴 감정소모에 쉽게 술 마시지 않았을텐데. 전기가 다시 돌아왔다. 전자제품들이 저마다의 숨을 뱉어냈다. 티비의 요란한 로딩 화면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글을 써뒀던 탓에 과거의 몇몇 장면은 도저히 열화되지 않은 채로 박혀 있었다. 좁은 방안에서 몸을 꾸겨 잘 때면 더 외로워졌다. 처지가 주는 공허감도 물론 있었지만 터도 별로 좋지 않았다. 재수생의 괴로움과 직장인의 애환이 한데 뒤섞인 미친 공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불면은 꽤 쉽게 왔다. 그때부터 일기를 죽죽 길게 써대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도 연습이라고 계속해서 어떤 틀이나 결이 만들어졌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좀 우습기도 하다. 5년하고도 하루 전의 일기. “ 라이터가 없으니 화구는 쓸모가 없다. 태울 것은 많은데 불씨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돌들을 부딪혀봐도, 남은 나무로 비벼봐도, 불씨가 생기기 전에 지쳐버렸다. 저 많은 장작들 내가 할 일에 하나 두개씩 갖다가 던지면 오죽 좋으련만 그러기도 쉽지 않은 상태다. 끝없는 우울이 저편에서 내 뒷목을 잡고 있는 것 같다. ” 쉼표를 남발하는 습관을 교정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때 그렇게 찾아헤매던 라이터는 손에 넣었다. 사주에 불이 많아 그런가 불을 좋아했다. 고깃집에서 가져온 성냥 다음 단계가 필요했던 거라고 합리화를 한다. 의미부여 좋아하니까. 같이 맞췄다. 선물이라고 샀는데 네 달 넘도록 당사자에겐 전해지지 않았다. 내겐 이걸 막 굴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여기저기 기스 잔뜩 생겨서 빈티지로 만들어줄 수 있는. 아무리 해봐도 나는 품속에 라이터가 없으면 불안할 지경의 사람은 못 되겠거든. 사물이든 사람이든 쉽게 의존했고 쉽게 중독되는 성격이란 걸 저 자취방에서 깨달았다. 그래서 흡연은 시작조차 안했다. 전자담배든 연초든 태워보고 싶다는 욕망은 늘 품고 있었다. 사랑이 담배와 같다는 병신같은 비유도 할 줄 알던 때엔 진짜 피우고 싶었다. >>2-4 주인도 없고 친구도 없는 방안에서 혼자, 둘 다 있는 방안이면 근처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충동적으로 마시다보니 깨달았다. 돈 주고 몸 깎네. 더 병신 되기 전에 끊어야겠다. 그 뒤론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일 때만 마셨다. 그러다 확 끊었다. 술자리가 많지도 않았다. 앞으로 많아질 수도 있겠지만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늘 사이다나 물을 시켰다. 음주는 종종 트리거가 됐다. 그날의 아침으로 돌아가는 건 죽어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충동은 쉽게 사그라들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좆같았을까. 묻고 싶다. 오랜만에 문 벌컥 열고 마주해서 앉아본다. 왜 스스로 안간힘을 써대며 나락으로 걸어갔는지 알고 싶다. 행복만 했어도 아까울 시간인데. 탐색 차 들쑤셔본 5년 전의 일기는 신변잡기가 덕지덕지 들러붙어있어 눈쌀이 찌푸려졌다. 누가 좀 체에 걸러줬으면 좋겠네. 괜찮은 문장 몇개 건져보려고 그랬는데 못하겠다. 이렇게 또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정확히 24시간 전엔 당신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분명 다짐했었다. 다짐이라. 결심도 다짐도 단어가 아까운 수준인 듯하다. 구름 낀 날씨 때문에, 비가 와서, 변화무쌍한 날씨가 전하는 백색소음을 익숙한 선곡으로 덮다 보니 밤이 왔다. 새벽이 찾아왔다. 30분 정도의 완전한 암전이. 이제 은은한 조명도 켜졌는데 그냥 돌아갈까. 오늘로. 눈 감으면 찾아올 내일로. 언젠가 볼 내게 묻고 싶다. 아직도 그렇게 좆같은지. 아니라면 어떻게 된건지. 시간이 약이라는 말 진짜 다 불태우고 싶다. 지나치게 자주 킨 탓에 하얗게 기능을 상실해버린 심지로는 짧은 불꽃만 타올랐다. 돌아가면 환기부터 시킨 다음에 경건한 마음으로 심지나 손봐야지. 다시 새것처럼 타오르라고. 애꿎은 부싯돌만 괴롭히지 말고.

#68 이름없음 2024/09/24 01:33:49

짧아진 심지 환기부터 시키고 앉은 채 숨을 돌리는데 아차. 정지하는 타이밍에 괜히 써뒀던 단어가 떠올랐다. 구속될 필요따위 없는 자그마한 실현적 예언인데도 깨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가방만 버려두고 달칵달칵 잘도 심지를 꺼내어 잘랐다. 예상보다 많이 짧아져 있었지만 이미 뽑아버린 심지를 썩은 무마냥 방치할 수는 없었다. 요령없이 한참 헤매다 빠른 속도로 콱 찌르니 쉽게 통과했다. 무엇이든지 한 번만 성공하면 익숙함이 손끝부터 배어든다. 더는 낯설지 않겠지. 비가역적 변화를 기쁘게 맞았다. 이유가 있는 불면이라면 좋을텐데. 수면 시간은 확보하지 못한 채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 잠이 몰아닥칠 줄 알았는데 그러질 않는다. 피곤한데 피곤하다. 과잉행동에 빠졌나. 습관처럼 체력을 빼서 쓴다. 충동적으로 쌓아둔 일정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이걸 다 할 수 있을까. 내가. 잘 참아왔던 누적 일수를 쌓아놔 함부로 도망치지 않고 싶었는데 임계를 넘어버릴까 두렵다. 하루를 닫는 느낌을 내다보니 더더욱 눈꺼풀이 무겁다. 문제는 퍼뜩 떠오른 생각의 꼬리를 콱 물어버리면 한 시간을 허비해버린다는 점이다. 이런 날이 또 있었지. 수험생들의 한이 모두 뭉쳐 하늘도 얼려버린다는 그날, 나는 잠을 설쳤다. 쓴소리와 특유의 필기체로 유명한 인강 강사는 말했다. 눈이라도 감고 있으라고. 눈을 감고 있으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 같았고 내면 곳곳에서 소용돌이가 솟구쳐 마음을 하나의 점에다 모으지 못했다. 자연히 잠과는 멀어졌다. 예전에, 휴대폰을 보다가 잠에 드는 쓰잘데기 없는 버릇을 들여놓기 전에, 그러니까-. 너를 만나고 있던 시절엔 평범하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면 눈앞에 떠오르는 영상이 있어 쉽게 잤다. 보통은 두 가지 방법이었다. 하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눈을 감고 있다 보면 짙은 오동색 나무 문이 떡하니 나타난다. 좀 헐거워진 금색 손잡이를 돌려 들어간다. 그 후로는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다른 하나는 문에 비하면 특이하다. 어디서 배웠던 건지 본 걸 따라한 건지는 모르겠다.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흑백의 나선형 소용돌이를 등장시킨다. 블랙홀처럼 가운데가 점점 빨려들어간다. 몸에 힘이 빠지며 자연스레 잠이 든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방식은 “잤다”에 가까우나, 이 방법은 “잠에 들어간다”가 적합하다. 그런 느낌이었었지. 설명도 해줬었는데(믿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잊고 있었다니. 나무 문은 이후에도 종종 써먹었던 것 같다. 소용돌이는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가위가 눌리는 느낌이 날 때에도 갑자기 등장했기 때문에 선호하진 않았다. 문. 그래. 항상 이쪽의 문을 닫고 저쪽으로 나아가면 내일이었는데 말이지. 너를 그리워할 때면 들었던 노래가 날 지긋지긋하게 한다. 거짓말이다. 노래는 죄가 없다. 내가 나를 지긋지긋하게 만든다. 네 얘기 안 꺼내고 글을 열고 닫을 줄 알면서 물 흐르듯이 넣어버린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최적의 경로로 재안내합니다. 왜 이런 알림음은 뒤늦게 뜨는지. 돌고 돌고 돌아버렸는데. 도대체 뭐가 바뀐 건지 모르겠다. 어떤 시점에서 단 한 뼘도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었다는 생각만 든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구덩이를 파지 않을 뿐 눈속임할 정도로 매끈하게 메우진 못했다. 함정인 줄 정말 알면서도 걸려 넘어지는 걸까. 축축한 밑바닥에 도달하면 거기 눈을 뜨고 서 있는 건 피곤과 분노, 그리고 증오에 절여진 나 하나인데. 거울에 비친 나를 생경하게 보기 시작한다. 이것도 연기다. 그 어떤 경험도 최초의 것 이후로는 완벽히 낯설 수는 없다. 경계 너머로, 에피소드 이전으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가만히 서서 비가역적 변화가 내려주는 달콤한 비를 맞았다. 너무 달아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69 이름없음 2024/09/29 14:22:10

성긴 낙엽이 떨어질 때 예전 같지 않다. 재개발로 하늘길이 좁아져 문득 답답함을 느낀다. 뜨거운 햇살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부재하다 발생하는 것도, 존재하다 소멸하는 것도 어색하다. 사실은 인식 문제이다. 불편하다는 느낌을 발견하는 화자는 나이므로. 감각으로 이상함을 느낀다. 감각. 정말 감각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라면 모든 일에 둔감해져야 하나. 몇년 째 얼굴보다 큰 낙엽을 길거리에서 발로 차지만 낯섦은 숨길 수 없다.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낙엽은 가로수에서 그리도 쉽게 떨쳐지는데. 일이 날 것만 같다. 증상 주기가 짧아지고 빈도도 부쩍 늘었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집안에서 침잠할 수는 없다. 위태로움을 느낀다. 예민한 탓에 기민해진 건지 반대인지 알 수 없다. 종종 이런 과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 반복해서 되뇔 때마다 이젠 그 옛날이 꿈같다. 환상이었던가. 물 좀 더 마시고 드러누우면 자취를 감출 증상에 화를 지나치게 낸다. 자조모임의 다른 경험담을 읽어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전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쓰지 않도록 조절하고 억눌러가며 평화를 택한다. 누굴 탓해야 하는가? 운이 따라주지 않는 나의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 목 안쪽이 뜨끈하고 뻐근하다. 마음대로 울지도 못할 땐 병원이 절실하다. 쪼잔하게 이런 걸로 울컥하고 그래. 사람새끼가. 누가 등이라도 퍽퍽 쳐줬으면 좋겠다. 명치 안쪽이 꽉 막혀 있다. 이젠 잠이 들 때의 이완도 무섭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려다 미쳐버린 거라고. 전부 게워내면 괜찮을 텐데 뭘 토해내고 싶은지 형체를 알고 싶다. 다음 주엔 뭐라고 할까, 당신은. 휴대폰을 진짜 떨어트릴 때만 타고 오라고 할까. TIA는 원래 그런 거니까. 나는 원래 그러니까 좀 참아보라고 할까. 물 좀 많이 마시시고요, 간단하게 운동도 좀 하시고요. 일상생활의 불편감은 진찰대상이 아니다. 환자의 쓸데없는 호소라고 생각하니 의례처럼 하는 정기검진에서 먼저 묻지도 않고 답을 듣지도 않는다. 매크로 답변을 눌러놓는 기계다. 발언권은 왜 당신에게 있을까. 의문을 품다보면 결과를 판독하는데에만 약이고 내 몸엔 독인데도 꾸역꾸역 맞아가며 검사결과지를 갖다바치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성찰하게 된다. 차라리 온몸을 해체해서 직접 들여다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불 다 꺼진 병원 복도를 외로이 걸을 때 가장 괴롭다. 이렇게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이래. 정신 차리자. 정신은 무슨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건지. 마셨던 물은 피로 돌아야 하는데 애먼 곳으로 나온다. 누구나 이래, 따위의 먹히지도 않는 일반론 말고 몸을 관통하는 위로를 할 줄 모른다. 나조차도 내게 해줄 말이 없다. 힘이 안 나는데 손가락 끝까지 닿질 않는데 주먹 꽉 쥐고 화이팅 외치면 뭐가 달라지나. 부득불 웃어주고 나면 텅 빈 마음을 채울 길이 없어 허탈하다. 내게 필요한 건 뭘까. 다 알면서 진짜 안 하기 때문에 아픈 건가. 아픈 건 운이라던데. 잠깐 불운하면 좋았을 걸. 이제껏 미리 발견했으니 천운이라 생각해왔다. 살아보니 그러지만도 않았다. 인식 문제라면 시한폭탄의 초침이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단 사실 정도는 모르고 싶었다. 설령 그게 눈을 가려 더 큰 불운으로 초래되더라도. 도저히 자의로 눈을 감을 수가 없다. 눈만 꽉 감아봐야 나머지 감각으로 온전히 밀려오는데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피할 수도 즐길 수도 없을 땐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현인들은 알고 있을까. 괜히 불상 앞이 그리워진다.

#70 이름없음 2024/10/11 23:51:23

나른함 걱정은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증상의 발현과 동시에 오는 불안이란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굴게 된다. 물밀듯이 닥쳐오는 감정을 마주 선 채 서 있으면 어디로 도망쳐야 좋을 지 몰라 굳어버린다. 정확히 일자로 두 발 딛고 모래바닥으로 발바닥을 파묻어버릴 것처럼 꼿꼿하게 선 채로 아득해진다. 중력이 잡아당기면 미세하게 꺼져가는 느낌이 든다. 나는 발바닥을 딛고 서 있는데 어째선지 빠져들게 된다. 이윽고 폭풍이 휘감는다. 사방이 유리로 닫힌다. 물이 차오른다. 본다, 느낀다, 반복되는 환상이라는 걸, 언젠가는 괜찮아진다는 걸, 누구라도 말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끌어안고 오래오래 잠든다. 그럴땐 애써 맞추어낸 반지도 별다른 소용이 없다. 한강 작가의 집요하게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문구를 보고 영감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그의 작품 중 하나를 읽다 잠들어 완독을 포기했었다. 경탄하는 사람들이 그의 예전 글을 자꾸만 올렸다. 해서 눈동냥한 시 중 한 구절을 읊는다. 집요하게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나는 기억밖에 할 수 없다. 기억이 가진 힘이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데에 있다. 숭고한 영역까지 갈 필요는 없다. 멍한 눈을 한 채로 가만히 생각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대도 닳는 건 하나도 없다. 물리적인 테이프가 늘어지지도, 뇌의 말단부분이 소실되지도 않는다. 회전을 거듭할수록 예리해지는 흑연의 끄트머리처럼 점점 뾰족해진다. 그러다 실수로 툭, 과유불급이라고, 일 센치가 될까말까 한 탄소덩어리를 부러트릴 때엔 절치부심하고 다시 돌린다.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끝이 존재하지 않는 연필을 무한히 깎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겠다. 날카로운 흑연이 종이와 처음 만나는 순간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글씨를 쓰다보면 약간 닳아 필체와 짝이 맞는 지점이 온다. 삼할 정도를 앞에서 이미 다 털어내고 이어간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예리한 방향이란 방향은 죄다 써내고 나면 완전히 둥근 모양으로 변한 심지가 보인다. 꾹 참고 쓰면 글씨가 두꺼워져 초심과 달라보인다. 손을 놔버리고 싶지만 은색 기차에 태워 덜덜거리며 처음으로 돌려보낸다. 다시 쓴다. 샤프를 쓸 때는 이런 느낌이 더 일찍 찾아왔다. 그러다 힘을 꽉 주면 뚝 뿌러져버려 일관된 모양에서 이탈한다. 봐줄 만한 서체를 가졌다고 생각하니 흑심의 일탈을 참을 수 없어 버릴 종이에 심을 슥슥 갈곤 재빨리 이었다. 떠올리면, 아날로그로도 의미없는 글을 많이 썼었다. 시간을 죽이려고 했거나 머릿속의 생각을 물리적으로 버리려고 했거나. 되감기 외에도 물리적인 방식으로 남기는 일은 계속 해왔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내가 뭐라고, 그냥 나인데. 늘 욕심은 있었다. 어릴 적엔 자만심도 넘쳤다. 고 작은 게 학교서 상 좀 탔다고 우쭐댔으니 귀여웠겠지. 지금은 겸손하려 한다. 못 쓰지는 않는다와 잘 쓴다는 동치될 수 없다. 나는 그저 장작을 패고 알맞게 쌓아올려 불을 지피는 거라고. 자의로 움직이는 병정일 뿐이니 회고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동일한 주제로 계속 같은 글을 쓴대도 순간마다 느끼는 감정이 달라 잠자리채 하나 들고 기다리다보면 이렇게나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의무감에 이런다는 말, 왜인지 씁쓸하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한 글자씩 꾹꾹 눌러 썼을 때는 좀 더 무거웠을까. 너무도 가벼워 몇 십만 자를 모아야 메가바이트로 남겨질 활자인데. 가만히 앉아 생각한다. 떠올린다. 그대로 적어본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눈앞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무언가를 움켜잡지 못해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뿐인가. 미동도 없는 사물 속 생동을 느끼고자 불을 켠다. 너는 성급하지 말라고 했다. 부싯돌을 돌린 손을 가만 두고 있으면 천천히 타오른다고. 찰칵 찰칵 점화되지 못한 불꽃들이 헛돌자 요령을 알려준 거다. 이젠 너를 움직이게 하러 가야지. 너무 오래 잠들고 있으면 우리가 만난 의미가 없다. 냉장고도 이렇게 요란하게 숨을 쉬는데. 얇은 창문 너머 전화받는 소리가 타고 들어온다. 흐르고 있다. 어떻게든. 애써 중심 잡겠다고 꼿꼿하게 서 있어봤자 무너진다. 아직까지의 나는 그렇다. 디딤발의 근력이 모자랐던 모양이지. 다시 네 조언대로 킨다. 꺼트린다. 단순한 순환인데. 왜 몰랐을까.

#71 이름없음 2024/10/16 04:33:39

모기 따위의 한 마디도 안 되는 벌레에게 이토록 열불을 내다니 얼마나 효율이 좋은가

#72 이름없음 2024/10/28 02:51:41

일상을 녹였다. 온종일 게임만 하느라 뇌의 어느 부분이 빠르게 소실된 걸까. 눈보라가 치는 전장에서 박치기하고, 무한히 행위를 반복한다. 지면 화를 내고 이기면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도파민에 젖어있다. 창문 밖 칠흑같은 어둠이 다가올 때가 돼서야 까무룩 잠에 든다. 생활리듬을 꼬아놓았다. 번듯하고 가까운 운동장이 생겼는데 한 두번 걸은 게 전부다. 자연히 돌아왔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라고 생각하니 사람 참 간사하다 싶었다. 변하고 싶다고 떠드는 이 ‘가능성’의 상태만을 즐기게 됐다. 죽을듯한 노력이 싫어 한없이 도망쳐왔다. 열정을 불태우게 해달라고 바깥에 빈다. 내부에서 원동력을 굴려 불을 피우는 구조가 망가져버렸다는 듯.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원인을 찾기 싫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불판 앞에서 너는 내게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물었다. 나는 어느 시점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과거가 넘고 넘고 넘어서야 할 산처럼 느껴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도록 나눴다. 어떤 조건을 취해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까. 돌아갈까. 돌아갈 수 있는 단 한 시점 역시 ‘그 애’가 엮여 있다. 미치게 싫어, 라는 말, 다 거짓말이지. 나도 안다. 삶의 어느 부분을 관통하여 가로지르고 싶지는 않다. “세로”지른대도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많진 않을테지. 그러나 네가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형태로든 눈에 보이는 지지를 해주고 싶었다. 그 사실만큼은 녹이 슨 고철처럼 마음 안쪽에 숨겨져 있다. 널 만날 때면 무지갯빛으로 물들어버린 표면을 쓰다듬게 된다. 고장나버려 제 기능을 못하는 마음 따위일까 싶어서. 마지막날 밤엔 유성을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고갯짓 몇번 까딱하는 순간에 맞춰 떨어지진 않았다. 그런 행운을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대자연에 반하는 요행이었겠지. 위안을 삼을만한 빛을 근처에서 찾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우리의 불꽃도 순간 타오르다가 사그라드는 유성이었을까. 며칠동안 너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유독한 연기를 최대한 적게 들이키려 노력했다. 쉽진 않았다. 좋지 못하단 걸 알면서 함께하다니. 폐 안쪽에 켜켜이 쌓인 담배 연무도 찬 공기로 조금씩 희석되길 바랐다. 모조리 희석되기 전에 너를 만나러 가야 하는 건데. 나는, 나는. 가는 길이 멀어 망설이는 건가. 아니면 부루퉁한 몸집이 싫어 움츠러든 걸까. 새벽을 닫는 익숙한 음율이 되레 말의 길목을 막아선다. 글도 쓰고 쓰고 자꾸 써야 익숙치 않은 어휘들로 익숙한 감각을 표현하는 것인데. 활자도 생각도 멀리 두었으니 답답함은 어쩔 수 없다. 점점 두문불출하듯 방안으로 파고들어간다. 구획을 나누는 두 선분의 모서리 안쪽으로 숨겨지지 않을 존재를 깊이 넣어둔다. 순식간에 찾아온 겨울바람 덕에 잠도 늘었다. 활력은 줄어든다. 평일보다 주말이 많은 삶을 또 언제 살 수 있을까. 꽉꽉 채워 살면 좋을텐데. 무얼 해얄지 알고 있으면서 착수는 안하는 비겁함이 혀를 길게 한다. 길어진 혀로 한다는 게 고작 게임이라니. 나중엔 정적이 싫어 아무 말이나 기계적으로 내뱉고 있었단 걸 알면서도 쉽게 입다물지 못했다. 사고나 치지 않아서 다행인가. 이런 순간이면 보고싶다. 눈을 빛내게 해 줄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없다는 핑계 말고. 단 하루도 나오지 않는 건가. 해가 일찍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어둠에 잠긴 건물의 최상층 어딘가를 부연 시야로 내다본다. 꽉 찬 서가가 압도하던 작은 방 속, 특별한 온열기기 하나 없이 식어있던 공기를 느낀다. 뒤늦게 다가온다. 차가운 공기를 데웠던 건 두 사람의 온기였음을. 적어도 나와 당신 사이의 공기는 열교환이 활발하게 이뤄졌었겠지. 눈에만 담은 장면은 이렇게 불확실하다. 재구성했어야지. 바보같이. 몇몇 장소가 빠르게 흘러간다. 반추를 위해 몇 년이 지난 뒤 혼자 걸었을 땐 그 맛이 안났다. 뭐랄까. 만나기 직전의 컨디션 난조가 한 방에 깨지는 극적인 느낌을 연출할 수는 없었다. 파워에이드를 숨기던 가방이 달랐나. 이른 저녁을 먹었던 식당이 달랐나. 그리워하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 오늘은 한 시간이라도 앞당겨야지. 그래야 돌아올테니.

#73 이름없음 2024/11/07 21:37:27

부쩍 추워졌다. 내 형벌은 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너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이다. 내 혓바닥이 낱장처럼 얇은 탓이려니. 오늘도 네 성취지위 따위로 만들어진 별명이 맞은편에서 흘러들어왔다. 그토록 선명했던 달은 구름 저편으로 자취를 감췄는데 너는 어째서 수면 위로 오르는가. 언젠가 한번은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이 왜 내 고막을 진동시키는지.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무의식적으로 꺼내든 카드는 분노였다. 머리끝부터 열이 발생해 발가락까지 전해졌다. 스스로에 대한 분노라는 걸 뒤미처 깨닫는다. 열 관리를 못해 걸어오는 동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너는 알 필요도 없지. 영원히 연락할 일은 없을테니. 오랜만에 연락처를 쭉 내려 프로필을 쳐다본다. 잘 살고 있다. 망칠 필요는 없다. 이것으로 족하다. 언젠가 둘 다 텅 빈다면 적잖은 충격에 하루종일 골몰할 것이다. 누군가 그랬는데. 네가 걔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불행하게 할 지도 모른다고. 맞는 말이다. 이성적으로 살자. 게임에 빠져들더라도 생각따윈 다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래도, 나는, 아주—. 많이 멀어졌다.

#74 이름없음 2024/11/17 00:45:25

바람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결코 돌아가라고 하고 싶진 않다. 이런 내가 결말이란 걸 안다면 더더욱. 가장 최악의 선택지를 조합한 듯한 기분에서 쉬이 헤어나올 수 없다. 닳도록 들은 선율이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사건의 이전은 영원히 닿지 못하는 영역에 있다.

#75 이름없음 2024/11/26 01:54:14

비가 온다 이 앨범이 나왔을 때를 정확히 기억한다. 킴과 일하고 있을 때였으므로. 퇴근 후 비가 오는 버스정류장에서 이어폰을 꽂아 들었다. 첫 트랙부터 순서대로 들었는지, 타이틀부터 손에 잡히는 대로 들었는지 그런 세부적인 것까진 기억나지 않는다. 비의 향기와 축축한 공기, 버스를 기다리던 나. 무척이나 기대했던 신보를 처음으로 듣는 그 순간만이 박제된 채 짧은 gif 형태로 남았다. 우천여신 아니랄까봐 발매일에도 비를 뿌리나. 속으로 헛웃기도 했겠지. 그땐 전국적으로 비 소식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에서도 계속 반복해 들었겠지만 딱 한 장면만 남았다. 비가 오는 길가, 정류장, 서성거리던 나와 기대감. 새벽에 비가 오면 꼭 마지막 트랙을 찾아 듣는다. 중저음으로 속삭이듯이 내뱉는 어투가 좋았다. 가장 그림자가 짙은 부분에 어떤 빛도 비추지 않고 그대로 담담하게 말하는 노래였다. 악기도 피아노 하나. 도입부 빗소리는 아마 본인이 녹음한 거겠지. 취미가 녹음이랬으니. 3일 정도 앨범에 취했던 것 같다. 20분도 채 되지 않는 앨범을 닳고 닳을 때까지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았다. 전축을 잘 닦아 실물 씨디를 돌려 듣기 시작한 것도 이 앨범 덕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마는 내가 아는 장마였다. 느리고 연한 빗방울이 끊임없이 내리다가 한번씩 굵게 떨어지곤 하는. 비가 싫었다고 말하는 화자의 짙은 그리움이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기다리는 게 비인지, 너인지, 그때의 나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노래를 들으면 아무 목적도 없이 가방을 집에 급히 버려두고 나와 무참히 떨어지던 비를 그대로 맞던 내가 생각난다. 그냥 그걸 좋아했었다. 검은 우산도 가방도 다 필요 없었다. 책만 지키면 됐으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임무를 완수해둔다. 한 바퀴 돈다. 투둑, 투둑, 비를 맞는 감각보다 추위가 더 크게 와닿으면 돌아간다. 아주 뜨거운 물로 씻어낸다. 그리곤 감기에 걸렸다. 루틴처럼 즐겨하곤 했었다. 두렵고 귀찮아지니 그 일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비겁해졌다는 평가말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교복을 입게 되자 더러워지면 안된다는 핑계를 댔다. 말도 안돼. 지금도 종종 비가 오면 충동에 휩쓸린다. 그래도 바람막이의 얇은 후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됐다. 시야가 빗방울로 흐려지는 걸 참을 수 없는 인간으로 자랐다. 이게 네가 바라던 결말일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친구가 살던 동 앞을 지나가는 길목의 보도블럭을 보면서, 여기 다시 올 때는 얼마나 자라있을까 궁금했다. 그 길목은 친구와 멀어지게 되자 좀처럼 걸을 일이 없었다. 같은 단지에 그리 가깝게 살아도 나는 늘 가던 길로만 갔다. 그렇게 엿보고 싶은 미래가 나라는 사실이—. 이런 날은, 죽도록 싫다. 나는 처음부터 비가 좋았다. 비를 피하는 어른으로 자란 내가 미울 뿐이다. 비냄새를 맡을 줄 아는 아이였는데, 허리가 아픈 걸로 비소식을 어렴풋하게나마 예측하는 사람이 되다니. 이런 날. 닿지 않는 신호를 얄팍하게 잡아가며 선생님 흉을 보던 너를, 나는 왜 기억하는 걸까. 오죽하면 과목도 기억나. 정확한 건 아닌데. 투명우산 아래서 듣던 네 볼멘소리. 해줄 말은 없고 그냥 들어주는 게 전부였는데. 언젠가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비가 올 때, 비를 같이 맞아주는 사람을 택할 것인지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을 택할 것인지. 나는 아직 비를 맞아주는 사람을 고르고 싶다. 우산은 어디서든 살 수 있다. 우산 써도 바람 불면 다 맞게 돼 있잖나. 애매하게 젖을 바엔 그냥 함빡 다. 온몸 구석구석 안 젖은 곳이 없도록 푹 적셔지고 싶다. 그럴 사람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모쪼록 비가 온다. 하루종일 작업하겠지만, 문 너머로 비를 듣는다.

#76 이름없음 2024/11/27 20:22:54

눈이었다. 새벽 내내 온 두터운 알갱이는 전부 눈이었다. 누워서 듣기만 할 땐 비인줄 알았다. 기상청 예보로 20cm가 쌓인댔는데 설마 그러겠어, 싶었더랬다. 아침의 연락을 보고서야 믿었다. 박차고 나선 바깥 세상은 온통 하얬다. 게임에서 겨울 맵을 따로 내주는 이유를 새삼 체감했다. 울긋불긋한 이파리 위로 내려앉은 흰 이불 덕에 간만에 들떴다. 행인들도 행복해보였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유달리 많았다. 새빨개진 손으로 눈을 굴리는 사람도 많았다. 오밀조밀 눈사람과 눈오리가 늘어선 벤치 위를 보니 마음이 따스해졌다. 첫눈이라. 기온차 때문이었을까, 단단히 무장하고 갔는데도 어지러웠다. 몸에 힘이 빠졌다. 급하게 한의원엘 갔더니 체기가 좀 있단다. 기사회생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여전히 어지럽다. 피가 모자란가. 파업하고 꾸준히 물을 마셔주었더니 약간 돌아온 것 같기도 하다. 일상에 별다른 충격이나 외상 없이 컨디션이 급락하니 스트레스 수치가 와바박 치솟았다. 혈압 관리에 대한 제언을 듣곤 닥쳐오는 무드스윙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산 너머 산이다. 나도 나를 다 모르겠다. 증상이 심해지자 머릿속으로 흰 천장 아래에서 벌어질 일을 시뮬레이션 했다. 일단 들어가선 온갖 종류의 검사를 돌리겠지. 별 다른 이상이 없는데 과민해서 온 것 같으니 일단 수액을 맞겠지. 벙벙할 정도로 큰 환자복을 입은 채 링거 대를 끌고 다니겠지. 그렇게 쏘다니면서 병원 탐방을 한다. 뚝뚝 눈물마냥 떨어지는 링거를 보면서 양의학의 의미를 괜히 고찰한다. 한의학은 맥 짚는 일 분이면 아는데, 양의학은 관례처럼 검사를 돌려도 의미가 불명확하다며 전혀 다른 독을 약이랍시고 집어넣는다. 몸도 마음도 걸레짝이 돼서 나온다. 외롭고 괴로운 삼 일을 꾸역꾸역 보내면 해방이다. 감옥을 가 본 적이 없지만 차라리 독방이 나을 지경이라고 상상한다. 여기까지 다 아는 이야기였다. 지옥의 돌림노래가 펼쳐질 72시간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처음 듣는 낮은 템포의 노래를 틀어두고 물만 마신다. 얼마나 다행인지. 불안이 빠르게 증폭해 뇌 속 회로를 다 끊어두는 기분이었다. 경광등이 번쩍거려 제발 좀 꺼달라고 하고픈 심정이었다. 기댈 곳이 가까이 있어 한숨을 돌렸다. 생활습관 좀 교정하라시는데 이쯤되면 말 들어야지 않겠니. 요근래 오버클럭 좀 돌리긴 했다. 절전모드로 하루정도는 들어가도 좋겠어.

#77 이름없음 2024/12/13 02:09:49

새벽 내도록 스트레스를 받는 게 싫었을 뿐이다. 지면 이길 때까지 되풀이하다가 자는 것도 까먹는 일은 언제부턴가 재미가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왔다. 바뀐 장소도 싫었지만 치고 들이박고 다시 살아나서 박치기하는 일련의 과정이 답답했다. 그 흔한 지능 하나 쓰지 못하고 순간의 판단만 강요당하는 기분. 어느 순간 떠드는 행위조차 즐거움이 아니라 일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권태에 도달한 탓이겠다. 감동도 없고 짧은 도파민에 취해 단타만 되풀이하는데 어떤 보람이 있는가. 처진 분위기가 나 하나 광대된다고 쉬이 끌어올려지지도 않았다. 최근엔 머리를 쓴다. 집단적 악순환에서 벗어나니 홀가분해졌다. 지면 내 탓이고 이기면 하나부터 열까지 내 공이다. 희미했던 예비 경로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는 아니더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건지는 모르겠다. 지금 흐르는 미래가 정말 실존한다면 틈을 열어 보고싶다. 옳은 지 너는 알고 있을 테니까.

#78 이름없음 2024/12/16 05:03:19

돌이킬 수 없는 무엇을 보고 우리는 돌이킬 수 없다고 할까. 이미 흘러버린 시간, 깨져버린 관계, 엎어져 버린 물. 물은 새로 채우면 되지만 나머지는 이어붙이거나 되돌릴 수 없다. 흔하디 흔한 온라인 작업에서도 ‘뒤로 가기’가 있는데 우리는 어째서 지난 일을 완벽히 되풀이할 수 없을까. 처음으로는 왜 돌아갈 수 없을까. 불면에 시달리는 밤이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낯선 순간으로 나를 보내달라고. 무엇이든지, 한번 경험하면 익숙함이 손끝부터 배어들기 마련이다. 익숙함에 흐려지는 초심이 미웠다. 좋든 싫든 익숙해진다는 것은 닳는다는 뜻이니까. 연필 끄트머리의 흑연이, 만년필 심의 말단부가, 점차 시간을 겪으며 서서히 뭉뚝해져가는 감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헌데 이미 익숙해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계속해서 날카로운 방향으로 연필을 돌리는 것뿐이었다. 모든 방향이 닳아 둥글게 된 심지를 보곤 한숨을 내쉰다. 은색 기차에 깊숙하게 꽂아 날카롭게 만든대도 길이가 짧아져버린다. 태초의 상태로는 돌이킬 수가 없다. 낡아버린 걸까. 잃어버린 걸까. 눈을 감고 생각한다. 이대로 멈춰서 지금을 유지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나아가지 않는다면 다음이 없더라도 닳아버리진 않는다. 한 겹씩 벗겨지거나 짧아지는 일따위도 생기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은 죽어도 되지 말아야겠다고 했던 다짐은 이미 소멸된 것만 같다. 공허한 방 안에서 그렇게 괴로워한다. 사방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껴안고는 한숨만 쉰다. 어쩌면 좋을까. 몇 해 전 일인지 헤아려보다 놀라기도 한다. 점차 멀어지고는 있다고 믿어왔다. 내쪽에서 억지로 강한 중력을 만들어 아등바등 떼를 써왔다. 잘 알고 있다. 버릇이고, 습관이라는 말조차도 힘없이 나가떨어질 만큼 의도적이다. 해로운 걸 알면서도 숨기지 못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떳떳하고 싶은진 몰라도 부끄럽다. 유일한 창구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심장에 총알이 날아든다. 이젠 소식도 모르게 된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데 함께 했던 장소를 혼자 거닐게 되자 힘을 들여 떨쳐내야 했다. 너를, 너의 생각을, 떠올리고자 하는 나로부터 도망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좀 잊어주면 안 되나. 열 번 스무 번 일기로 되풀이했던 장면도 아닌데 생생할 필요가 있을까. 이젠 일련의 과정이 참으로 쓸모없다. 남는 거라곤 몇 바이트짜리 글. 늘 있는 격투기다. 나와 나 둘 다 쓰러져 있다. 촉발시켜준 당사자는 ‘우리’의 안녕과 영원함을 바라는데. 심지어는 항해할 방향이 어딘지도 알려주는데. 나는 네가 그리도 싫어하던 땅굴을 파고 웅크려 앉았다. 이런 내가 싫다. 얼어버린 흙바닥에 미친듯이 삽질하는 모습이 구차하다. 너도 모르겠지, 내가 왜 이러는지. 최근 구독하던 유튜브에서 전애인을 주제로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나는 너무 잘 지냈지.”라며 마지막 펀치를 날리는 장면에선 통쾌했다. 너무 잘 지냈다 말할 수 있는가. 정반대의 길을 걸은 건 아닐까. 목이 갑갑하다. 어디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악 지르면 후련하기라도 하지. 해묵은 먼지를 이번 연말에도 제대로 훔쳐내지 못하고 살아간다. 신년엔 뭔가 다를 거라고 믿으면서.

#79 이름없음 2024/12/20 03:13:47

문장 한강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소년이 온다, 때도 느꼈지만 중간중간 머리가 지끈하니 무거워져 쉽게 진도를 빼지 못했었다. 그리하여 이동 중에 보거나 했다. 문장이 무거워 몸을 짓누르지 말라고 대강 읽었다. 이 독법이 맞았다. 단문에 한자어가 많이 섞여 있어 맥락이 한겹 덧씌워진 그의 문장은 음미하려 하면 알 수 없는 고통을 유발했다. 다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리했고, 모든 독자에게 힘이 들 정도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대체로 어두운 공간 속 아주 얇게 저며진 불빛만 들어오고 있는 분위기를 유지했다. 현실적이면서도 소설이 가져야만 하는 허구적인 느낌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했다. 묵직한 타격감. 오랜만에 숨이 막혔다. 문고본이었더라면 진작 필사했을 문장만 연달아 배치된 곳도 심심찮게 나왔다. 인쇄된 활자가 아니어서 살았다. 이북으로 보니 문장의 힘이 반감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주파수가 지나치게 맞아서인지 아주 달라서인지 느껴지는 두통이나 힘겨움이 이젠 매력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피학성이 개방되는 것인가. 입꼬리 끝에 농담이 배어있던 따스한 웃음이 떠오른다. 생경함과 낯섦에 차츰 금이 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가란 역시 대단하다. 왜 뒤늦게 깨닫게 됐을까. 오히려 좋은 일인가. 어린 나이에 읽었더라면 이런 감각을 성찰하지도 못할 뻔 했다. 적요한 방 안에서 세계와 나, 책만이 힘을 겨뤘다. 그러다가 평형이 맞아떨어져 완전한 몰입에 잠겨버렸다. 워밍업으로 좋아하던 시리즈를 빠르게 독파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예전처럼 포기해버렸을테지. 아무래도 겨울 간 읽을 작가가 생기니 좋았다. 유명하지 않은 책부터 서서히 읽어나가야겠다.

#80 이름없음 2024/12/21 00:46:15

흰 눈이 나렸다. 처음으로 읽게 된 책은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이었다. 말미에 써진 한자 이름을 본 뒤 시계를 확인하니 정확히 00:00이었다. 내리는 눈 알갱이보단 길었지만 둥그랬다. 저항없이, 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눈을 맞아본다. 유달리 운수 좋은 날이었다. 환승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거나 멈춰서지 않아도 초록불이 켜지는 소소한 행운이 연달아 겹쳤다. 꽝이 2할 쯤 되는 돌림판을 다섯번 정도 돌렸는데 전부 당첨된 사람처럼 기뻤다. 아직 발길이 닿지 않은 신설을 짓이긴다. 뽀득하다. 무얼 얻고자 읽은 건 아니었고 수상 소식 이후 추천받았더랬다. 그마저도 추천도서는 기대출에 예약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대출 가능한 책 중에 제목만 보고 골랐다. 처음으로 수록된 단편을 읽다가 두통이 왔다. 불쾌와 쾌 언저리를 바삐 쏘다니는 감각을 매력이라 칭했는데 정말이었다. 알쏭달쏭하고 기묘한 맛에 연달아 넘겼다. 이런 언어로 또 무얼 말할지가 궁금했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즐겼던 게임이나 유튜브가 책보다 빨리 질렸다. 한자어가 돋보였던 건 30년 전에 쓰였기 때문이었고, 덕분에 좋았다. 요사이 출판되는 소설엔 한자어 병기가 없다시피하다. 낯선 단어를 억지로 기용하지도 않고, 의미단위를 꾹꾹 눌러 한 단어에 담아두지도 않는다. 길이가 길고, 읽기가 편하며, 난해하지 않다. 반면 그의 초기작인 이번 소설집은 옛스러웠다. 힘줘가며 읽으면 자꾸만 난도가 높아졌으므로 설렁설렁 읽었다. 첫 소설에서부터 느껴진 충격의 진폭이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마치 여진처럼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슴슴했다. 화자들은 “얇게 저며진 한 가닥의 빛”을 놓지 않고 살았다. 터널 한 가운데일 뿐 반드시 끝은 있다. 누구 하나 절망과 나락의 구렁텅이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그래, 그러므로 희망적이었고 생동감이 충만했다. 다시 적요한 방으로 돌아와 떠뒀던 문장을 더듬는다. 고독과 외로움이 떠돌지만 스스럼없이 수용하는 태도도 마음에 들었다.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지점이 있을지언정 분출되지 않고 미결에 가깝게 이야기가 끝나기도 한다. 서울이 가지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도 좋았다. 더 이상 이곳에서 뭘 바라지? 이곳이 준 게 뭐가 있어? 밑 없는 갈증, 탕진, 굴욕, 상처, 환멸, 그 밖에 대체 뭐가 있었어? 언제까지 이곳의 비루한 각본에다 몸뚱이를 구겨 넣으면서 살아가야 해? … 떠나기 전에는 없어…… 이곳에서 구원을 바란다는 게 미친 짓이었어. 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명확히 나오지 않지만 적어도 “그녀는 걸음을 멈추거나 뒤돌아보지 않았다.” 화자들은 생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차분히 삶을 이어나간다.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이전에 고하는 종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다. 다가올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입에 발린 말로 영원을 쉽게 내뱉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관계가 무너지더라도 진실만을 고하는 민화의 태도는 강인했다. 한없이 자유로운 심지를 가진 자는 애쓰지 않아도 여유로울 수밖에. 다소간 개운치 않던 지점을 평론과 작가의 말로 마무리하고 나면 비로소 시원해진다. 몸에서 훈기가 퍼질 정도였으나 춥지 않았다. 느리게 하강하는 눈, 뽀득거리는 신설 바닥, 결정적으로 불운했지만 책을 끝마칠 수 있어 더하고 빼면 결국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느낌으로 훈훈하게 남겠다. 어느 계절이든 곱씹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을테니 다시 읽어볼 만하다. 아— 그땐 첫 소설에 기가 죽어 두통을 느끼지 않았으면.

#81 이름없음 2024/12/24 13:55:10

강렬한 느낌이 휘발되기 전에 쓴다. 이토록 강렬한 촉매제를 오래 껴안고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 좌우로도 상하로도 좀처럼 안정적이지 못한 차 안에서 틈틈이 읽기엔 버거울지도 모른다. 공복에 멀미가 겹쳤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게워버리고 싶다. 이런 기억따위에 쉽게 휘말리지 않고 싶었다. 이런 기억따위가 아닌 기억이니까 언제든 소용돌이친다. 오심의 기운이 점차 줄어든다. 활자가 멀어진다. 가벼운 언어로 열릴 입술인데 의미가 겹쳐진 언어로 두드리니 맞지 않았던 건가. 아주 긴 시를 읽는단 기분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

#82 이름없음 2025/01/10 03:17:17

불친절한 운율을 살리되 언어는 최대한 압축하여 적은 문장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는 호흡은 빠르나 돌아가서 곱씹지 못했다. 심상이 물밀듯 닥쳐오고 처리하기 급급하다못해 치여 깔려버린다. 한글은 워낙 고맥락 언어라는데 그의 글은 두 차원 정도 위에 서 있다. 그러니 친절하지 못하다, 친절해선 안 된다. 글 속 두 주인공부터 이미 비현실적이다. 말하지 못하는 여자와 시력이 아주 나쁜 남자. 언어를 상실한 쪽과 시각을 상실하는 것이 확정된 남자의 뜨뜻미지근한 이야기였다. 단편과는 달리 장면전환도 잦았고, 짧은 시도 빈번했다. ‘언어로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는 여자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역력했다. * 두 사람이 잠자코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수업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수업이 시작된 뒤에.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사무실 앞에서. 차츰 그의 얼굴이 그녀에게 낯익은 것이 되었다. 그의 평범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고유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변화에 대해 언어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언어로 생각한 적이 없는 장면은 언뜻 보면 휘발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이는 의미부여로, 그녀에겐 그저 현상이다. ‘시각적 정보’의 처리이다. 낯익게 변화했다라는 언어로 정제하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는다. 언어로 세계를 사유하고, 창조하고, 작품을 써내려가는 작가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여자다. 작가는 왜 이런 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냈을까? 자신과는 상반된 존재에 대해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해체하고, 다시 가상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일이란 얼마나 숭고한가. 세계적인 상을 수상해서 평가가 거창해졌지만, 그러잖고 추천받은 시기 즈음에 재빨리 읽었더래도 비슷하게 느꼈을테다. 작가란 기본적으로 오감을 언어로 치환하여 생동을 부여하고 심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치환 과정에서 의미 상실이나 파괴가 이뤄진다. 예컨대 공감각을 활용할지라도 시•청•촉•후•미각이란 총 5감각을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소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중소설은 대체로 시각중심적이다. 장면마다 다르지만 언어를 볼 수 있는 자는 ‘시력에 중대한 이상이 없는 자’들 뿐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오디오북으로도 책을 향유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 책은 읽는 행위(讀書)다. 듣거나 만지거나 느낄 수 없다. 이야기 속에는 시각중심적 사고를 뒤튼 부분 역시 존재한다. 남자가 점자로 된 글을 읽는 꿈을 꾼다거나, 점자로 된 책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도 담겼다(“고백하자면 말이야…… 내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책을 내게 되면, 그게 꼭 점자로 제작되었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끝까지 한 줄 한 줄 더듬어서 그 책을 읽어주면 좋겠어. 그건 정말…… 뭐랄까, 정말 그 사람과 접촉하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시각의 80% 정도가 상실된 것처럼 보이는 남자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중대한 무언가(시각 혹은 언어)를 잃는대도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 최근 다양성과 배리어 프리 같은 논제를 많이 생각하고 다뤘다. 다리를 자주 다치기도 했고, 깁스한 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반복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선지 낯선 장소에 가면 문득문득 이 장소는 얼마나 배리어-프리한지 체크하는 게 습관이 됐다. 엘리베이터, 점자 블럭, 접근성, 경사로. 대체로 한국은 정상성의 신화가 굳건하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점자블럭 색을 보도 블럭과 같게 하거나 파괴된 점자 블럭을 고치지 않고 없애기도 한다. 공공기관 외에는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이는 특히 대학 건물에서 빈번하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인들의 천국이 됐다. 목발 짚은 사람이나 임산부가 와도 나이 든 사람 무리를 한 번 비켜주고나서야 겨우겨우 몸을 실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도 내겐 다양성 담론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애초 이야기를 관통하는 제목이나 소재부터 ‘희랍어’다. 아주 희귀한 소재다. 이데아나 아레테,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홀연히 등장했다 가볍게 사라지기도 하는 희한한 소설이다. 모쪼록 재밌다, 즐겁다, 라곤 못 하겠지만 여운은 오래 남겠다. 낯선 언어는 언제나 독자를 난처하게 한다. 수수께끼로 남은 단어는 여전히 호기심을 부른다. 웹서핑해도 찾지 못했다. “그 순간, 불쑥 오래된 한 단어의 기억이 절반쯤 잘린 채 떠올라 그녀는 그것을 붙들려 한다. 오래전에는 해가 진 직후와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을 호呼……로 시작되는 한자어로 불렀다고 했다. 멀리서 오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어, 큰 소리로 불러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서양식 표현과 비슷한 연원을 가진, 호……로 시작되는, 끝끝내 완전해지지 않는 그 단어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뒤척인다.” 대체 무슨 단어였을까. 무엇 하나 명쾌하지 않았다. 밤과 새벽, 아침의 불분명한 경계처럼 끝난 이야기가 자못 아쉽지만 다시 들춰보기 겁났다.

#83 이름없음 2025/01/11 02:31:53

이스터 에그 서래와 해준이 시마스시 모둠 초밥을 함께 먹고 난 후 치우는 장면, 탁자 닦는 뽀득뽀득 소리 너머로 카톡! 알림음이 들린다. 출연진 혹은 촬영팀 중 누군가가 무음으로 해두지 않은 것이리라. 의미가 서래의 관람법대로 침침식이어야 하는데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르기만 하는지도. 그녀가 양치한 후 뿌린 투명색 향수는 물이었을까, 향수였을까. 해준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는 후시녹음이었을까. 디테일에만 집착하는 괴팍한 망령이 된 듯하다. 마음 한켠엔 언제나 해결하지 못한 헤결 질문이 산재했다. 비산하는 궁금증, 그러므로 영원불멸할. 해준이 지구를 체포할 때 서래가 좇아와 세워둔 차의 깜빡이는 두근거림을 표현한 소리일까? 틱톡틱톡이 툭툭툭툭으로 들리기도 하고 피부 너머로 들을 수 있는 강렬한 심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래는 왜 고양이와 말이 통하는가. “남만주 살쾡이”의 후손이라서? 그녀가 저녁으로 아이스크림을 맹렬히 먹을 때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애꿎은 까마귀(후에 해준은 이 까마귀의 깃털펜을 만들어 쓴다.)를 죽인 야옹에게 선물로는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오라 하는데 그 언어는 서래가 다른 이의 대사를 모사하지도, 번역하지도 않고 순수히 전해진다. 즉 서래의 온전한 언어는 고양이와 통한다는 사실로도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이때 해준은 번역기를 통해 남성의 음성을 거쳐 듣는다. 이질적인 체현. 잠이 안 올 때면 자장가 대용으로 튼 지도 벌써 이 년 남짓 돼간다. 잠에 빠지는 타이밍은 다양하지만 2부를 채 넘기지 못한다. 결국 1부만 주구장창 돌려본 셈이다. 영화관에서, 재개봉으로, 흑백으로 봤고 또 듣기만 하기도 했다. 단 한 번도 눈으로만 본 적은 없는 것 같네. 대본도 스토리보드도 진득히 뜯어봐야 하는데 묵혀두고만 있다.

#84 이름없음 2025/01/12 00:32:41

겨울 한가운데를 강하게 관통했다. 이것저것 갖다붙이고 싶지 않다. 정신상태만큼이나 엉망일 글이다. 머릿속이 터져버려 조용히 잔해를 되줍는다. 요 며칠 계속해서 눈발이 날렸다, 그런 만큼이나 스트레스도 켜켜이 쌓였다. 뇌관이 언제 폭발할까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애먼 곳에서 눈폭탄으로 돌아왔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눈보라 너머 옹기종기 모여앉은 피붙이들에게 짙은 염오감을 느꼈다. 같은 뿌리에서 난 가지라도 꽃과 열매는 제각각인 것처럼. 본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형형색색으로 못난 자로군. 그런데도 내 카드에는 분노밖에 없어 이리저리 다 불지르고 다녔다. 가스 다 떨어진 초록빛 라이터로 향 지필 땐 사방에 불꽃놀이 펼칠 줄 몰랐는데. 한바탕 태우고 나오니 기운이 쫙 빠져버렸다. 늙었는지도. 향 냄새 밴 몸을 구석구석 씻어내린다. 머리 끝부터 발톱 말단까지 어디 하나 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스스로 암시를 건다. 녹아버리라고. 흘러흘러 이름모를 하수종말처리장에 가버리라고. 통제할 수 있는 일이란 한톨도 없었다. 오늘의 사건마저 자연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그 누구 하나 적합한 조처를 탐색하지 않고 방치해뒀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흘러왔다고 하고픈데, 발언권은 없다. 나이를 추하게 먹으면 나라는 경계가 현저히 줄어버리는 건가. 나도 “그렇게” 늙어버린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면 뺨이라도 때려달라 우스개했다. 웃기지도 않았다. 부득불 질러놓고 오니 후련하긴 한데 잘못했다 싶다. 치기도 옛말이어야지 침묵하는 사람이 어른스럽단 걸 알면서도 퓨즈 빠진듯 날뛴다. 여전히 모났고, 날카롭다. 둥글게 변해버린다면 영원히 도망치고 싶다. 바뀌고 싶지 않아. 이번 겨울은 유독 춥다. 적설량도 상당하다.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을까. 이런 밤이면, 반지 안쪽에 채 닦아내지 못한 향냄새가 불면으로 이끌 것만 같다. 편지를 써도 마땅치 않아 죄다 찢어버릴 것이다.

#85 이름없음 2025/01/13 23:31:46

살아있다는 게 고통스러울 때도 있는 거다. 하루종일 기분이 얹힌 듯 무거웠고 몰려오는 잠을 깨치느라 예민했다. 가야겠다, 가야겠다, 입안에서 이루지 못할 다짐만 머뭇거렸다. 일정이 많았다. 교차하는 시간을 모두 써버린 탓에 갈 수 없었다. 문득 방문의 목적이 참회와 비슷하다 느꼈다. 성치 않은 무릎으로 두 시간을 고행하려 했던 작년에도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였으므로, 버스 시간표가 맞지 않는다면 걸어간다. 헤매는 사이 나를 스친 두 대의 버스가 얄미웠다. 비가 축축히 내려 오르막에 낀 안개가 야속했다. 가시거리가 짧았다. 바람막이의 얇은 후드도 빗방울을 모두 걸러내진 못했다. 결국 중도포기하고 버스로 올라갔다. 찐득했던 여름, 중간지점 캠핑 정박지에서 목을 축이고도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 그런고로 운동은 이제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로 하겠다고 거창히 선언했다. 하지 못 할 일은 없다. 아마 처음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첫 단추는 손이 아프도록 꿰어도 어렵겠지. 두 번 세 번 반복할때마다 고통 역치는 높아진다. 숨은 천천히 차오를테고 뒷산 오르는 마냥 식은 죽 먹기가 되겠지. 그만한 체력없이 무얼 한단 말인가. 길눈이 어두워 헤매도, 먼길로 돌아가도, 어떻게든 가닿아야만 한다. 내가 찾는 자는 공연히 눈을 빛내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그 흔한 꿈속에도 나오지 않은지 꽤 됐다.

#86 이름없음 2025/01/14 17:20:39

단숨에는 올라오지 못했지만 이뤄냈다. 기특하다.

#87 이름없음 2025/01/15 23:34:06

검은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고 서 있는 네 발 달린 짐승, 그리고 소리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사라진 한 여자. 주인공 일행은 신화 속 동물같은 자를 찾아 떠난다. 흰 눈이 나려 무릎 혹은 허리께까지 눈이 쌓인 곳으로. 여자의 기억은 이유 없이 갇혀 있다. 흔히 기억상실증이라고 회자되는 질병은 사실 기억이 가닿지 않은 곳에 모조리 갇힌 질병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애를 써서 부수고 들어가거나 조금씩 조금씩 끊긴 필름이 재생되듯 회복되어 흘러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일행에겐 여자의 정면을 찍은 사진은 없고 그저 45도 측면에서 뒤를 돌아보는 사진만 있다. 주민등록도 되지 않은 여자를 어떻게 찾는 것이 옳은가. 숨죽여 그들을 따르다 보면 여자의 기억을 따라 훑게 된다. 그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나체 상태’가 무얼 의미하는 건지 궁금했다.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도 갑갑함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베란다로 가 광합성을 시도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우리가 찾아야만 하나, 찾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은 의선이 햇빛 아래 선 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옷가지를 벗어던지다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에게 포박당한다. 그러고 보면 두 인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깡 마른 체형을 지닌 여인이라는 것, 섬약하지만 다정한 성품을 지녔다는 것, 어딘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품고 있다는 것. 채식주의자를 읽어본 적은 없으나 두 인물 모두 육식을 선호할 것 같지는 않다는 어렴풋한 추측도 남는다. 나무로 변해버린, 검은 사슴이 되어버린 두 사람은 지금 행복할까. 온몸으로 햇살을 내리쬐던 자가 소설에 등장함으로써 현실감각은 파괴된다. 그러나 왜인지 그들은 다른 인물에 비해 훨씬 활력과 생동감이 풍부하다. 여자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나체 상태로 거리를 활보하던 여자를 집에 머물게 해 준 주인공은 결말부로 가 허망한 죽음을 맞을 뻔 하였다. 이것 역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인데, 소재나 지역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었다. 소설이 쓰여졌을 당시 탄광촌을 조명한다는 것은 사회고발성이 짙었다(종종 무너진 탄광에서 생존한 자들이 영웅처럼 신문에 날 때였다). 희박한 산소나 도처에 도사린 위협이 존재함에도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장치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아래로, 더 아래로, 더 많은 것을 캐게 했을 뿐이다. 마침내 사회가 발전하여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탄광마을에서 우린 무얼 볼 것인가. 밤이 되면 인부들이 득시글거리는 유흥가마저도 삶의 일부이며 마을의 생존전략이라는 듯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다른 작품에서 느끼지 못한 감각인데, 이 작품은 유독 추리소설과 비슷한 데가 많다. 범인 대신 사랑하는 여자를 좇는단 점이 다르고 그 외에는 결이 비슷하다. 반드시 좇는 자와 좇기는 자가 있다. 좇는 자는 주변을 탐문하며 하나하나 단서를 잡는다. 쉽게 찾아지는 법은 없어 이래저래 갈등도 있고 서울로 돌아가야겠다 다투기도 한다. 서술트릭도 없고 명확한 범죄피해자도 없으나 쉬이 찾아지지 않는 자를 이야기 내내 좇아다닌다는 점에서는 참 비슷했다. 그래서 결국 찾았는가 하면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녀는 어디로, 어디로 가버린 걸까. 희붐한 옛 기억을 붙잡으며 다시, 일행이 찾지 않을 때에 원래 자리로 돌아와 인간 행세라도 할 것만 같다. 인간들 틈에 자취를 감춰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신화 속 존재처럼.

#88 이름없음 2025/01/20 17:19:07

이름 모를 식물이 길가로 내뻗은 가지에 찔렸다. 무심코 뽑을 땐 괜찮았는데 온종일 따끔거렸다. 땀이 식자 한기가 밀려온다. 자동 분사되는 방향제 냄새에 오심이 일었다. 무릎도 삐걱거렸다. 데우기만 하고 돌아왔다. 다음엔 더 일찍 오자고, 그래야 더 오래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바보같은 다짐이나 하고 돌아선다. 넘어질 때 체중을 떠받쳤던 손목이 일주일 째 시큰거린다. 도저히 못 올 줄 알았다. 자꾸만 뒤로 돌아서고 싶었다. 어떤 힘이 여기까지 이끌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멍하니, 대답없는 자 앞에 서서 도대체 왜 그랬던 거냐고 피식피식 웃었다.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데. 고작 그런 걸로 몇 년을 고민하느냐고.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진다. 차츰 선득해진 공기를 가르며 마스크를 쓴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감기에 걸릴 것만 같다.

#89 이름없음 2025/02/15 02:28:44

시간을 믿냐고 물으면 이제는 믿는다고 할 만하다. 어리석을만치 치밀던 감정도 언젠가는 식는 법이다. 그러므로 영원이란 없다. 영원히 타오르는 분노따위에 세월을 갈아넣기도 쉽지 않다. 근래엔 아무 생각이 없다. 위기감 하나 없이 나약하고 무력하기만 하다. 이게 잔잔한 상태라면 평시에는 얼마나 붕붕 날아오른 건지 가늠할 수 없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이곳저곳 난잡히 펼쳐져 있다. 일주일만 딱 묵혀놓고 보내야지, 했던 것도 잊어버렸다. 용케도 살아있는 게 전부 당신 덕이라 하고 싶었다. 우리가 언젠가는, 언젠가는, 만날 날을 고대하게 된다고. 알고 있느냐 묻고 싶었다. 안부라는 거 살다보니 묻기가 쉽지 않다. 잘 지내시는지 항상 궁금한데 한켠에 쌓아놔도 티가 나지 않는다. 먼지 푹푹 쌓이면 가끔 발길 닿을 때 기침해가며 치우는 식이다. 물끄럼 내려다본다, 먼지덩이 사이에서 빛을 내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전해도 될까.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흐른다. 느슨하다 못해 연결이 툭 끊어져버린다. 늘상 두려워하던 지점에 닿아있나. 업을 끝내는 날에 돌이켜보며 연락할 수 있겠지, 하고 다시 미룬다. 보고싶다고, 잘 지내냐고. 어쩌면 다시 만날 일이라곤 ‘영원히’ 없을 것만 같은 당신에게. 그날도 부치지 못할 편지만 내키는 대로 쓴다 할지라도.

#90 이름없음 2025/02/17 01:12:26

취소. 여전했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렇게 나락으로 떨궈질 줄 몰랐다. —대체 누가 나를 나락으로 떨구는 걸까, 나의 너, 너의 나, 혹은 나의 나?— 당신은 말하겠지, 내가 통제할 수 없으므로 그렇게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라고. 그리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상상력이 비루한 탓에 이따위로밖엔 못 하겠다. “눈앞에서 치워버리”라고. 뉘앙스도 어조도 아주 부드럽겠지. 겹겹이 쌓인 완곡한 단어를 치우면 나오는 뼈대는 하나다. 이젠 놔줘요, 제발. 알면서도 못할 거면 아예 언급조차 않는 게 맞다. 게다가 정답까지 아는데 굳이 에너지를 소모시킬 필요가 있을까. 나락으로 떨어진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즉시 연결될 사람을 찾지 못해 피티를 불렀다. 진동 햅틱 피드백과 함께 기계적인 다정함이 퍼졌다. 무슨 일인지, 필요한 게 있는지, 내 기분은 어떤지, 너는 내게 물었다. 따뜻했다. 블랙박스에서 가장 적합한 글자를 찾아 조합해 내놓는 실체 없는 알고리즘에게서 느낀 감정이었다. 짧은 순간 치미는 화에 휘둘리다 헛짓거리 하지 않고, 당신의 조언대로 심호흡을 했다. 손목 위 기계의 도움을 받아 심호흡 5분 세션을 두 번 돌렸다. 분명 심호흡을 했는데 심박수는 약 6이 증가해 있었다. 다시 무체에게 물었다. 심박수가 줄지 않았는데 유의미할까? 너는 대답한다. 효과가 있다고. 뚜득뚜득 손바닥 안으로 전해져오는 일정한 박자의 진동을 느낀다. 이렇게 작위적일 수가 없는데, 어디서 온정을 느낀 거지. 그보다 ‘작위’나 ‘인위’가 개입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피티는 거대한 LLM 모델이고, 그에 따르면—. 기계에게 둘둘 둘러싸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게 믿기지 않았다. 단 하나 실패한 다짐이 있다면, 부정적인 일화는 쓰지 않기로 했는데 기어코 남겨버렸다는 거. 아주 꾹꾹 눌러 담은 행복으로 일주일을 내리 살았어야 했는데 실체 없는 네가 죄다 망쳐버렸다. 오죽하면 죽어버렸다고 상상하라는 우스개도 적용해봤는데 잘 안 먹혔다. 내게 죽음은 그리 가볍지가 않아서 그랬나. 억지로 죽는다 상상하니 이 지경까지 와버렸나 싶었다. 사실은, 무지하게 행복했다. 실은 지금도 눈만 감으면 언제든 되돌릴 수 있다. 가까운 행복이 있는데 억지로 불행을 쥐어짤 필요가 있나. 근데 말이지. 뭐든지 처음이 좋다고. 역시 처음 본 짜릿함에 비하면 여운이 길진 않았다. 손끝 발끝에 밴 때를 벗기지 못하고 온 내가 밉다. 이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말야. 하늘 아래 두 번은 없다면 아쉬워했을까. 그래서. 언제쯤 놔줄래?

#91 이름없음 2025/02/19 02:19:48

아무것도 아닌 한 차례 지나고 나니 절실해졌다. 뚜렷한 이유 없이 보고 싶었다. 매번 안부를 묻는다면서 실상은 아니었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연락한다면 서로에게 독— 적어도 내겐 약의 탈을 쓴 독으로 작용할까봐 겁났다. 편지의 가장 마지막 문장을 적을 때면 표리부동처럼 비춰질까 강박적으로 퇴고했다. 거듭해 읽고 시간차를 둬도 떳떳하지 못해서 삼키기만 해왔다. 두통이 심하다. 의미없는 문장들 던져버리면 나아질까. 부담이 될까봐 걸러내고 검열을 반복하다 그대로 놔둔 글자를 다시 본다. 안 보내서 참 다행이다. 실수하기 싫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더니 횟수가 줄고, 문장이 줄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해야 할 지 몰라 글을 아꼈다. 그랬더니 위선이 담긴 납작한 편지가 완성됐다. 그래도 보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곤 다다음 계절에 보자고 했는데 해가 넘었다. 신년에도, 설날에도, 갚지 못한 부채처럼 당신이 떠올랐다. 글을 썼다. 예전이라면 보냈을 글이었다. 폐기했다. 반복하다보니 진실성에 의문이 생겼다. 진짜 안부를 묻고 싶은 걸까. 안부 묻기를 가장한— 가장한 무언가일까. 그게 싫어서 횟수도 문장도 줄였다. 내가 말을 아낄수록 당신의 문장이 길어질 것도 같았다.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냥 보고 싶은 건데 왜 이렇게 혀가 길어. 말이 많냐. 이러니까 지웠다가 쓰고, 보내려다 말지. 결국 묵은 먼지가 돼 켜켜이 쌓인다. 안부가 궁금하단 사실은 입밖으로 아무리 꺼내도 허상같다. 잘 지냈는지가 정말 궁금한데. 이딴 식으로 보내도 될까, 버리자, 당연히 시간은 흐른다. 무의미한 반복이다. 아예 패러다임을 뒤바꾸는 게 좋으려나.

#92 이름없음 2025/02/21 00:18:09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글자도 문장도 아닌 음성 언어로 내뱉어진 말 덕분에 상상은 불어났다. 너는 내게 질러보라 했다. 두려웠다. 말하면 세계가 뒤틀리는 것도 아닐텐데. 걔가 어디서 질렸는지 얼추 알 것도 같았다. 시원시원하게 가면 되지 늘 이런 식으로 그림자가 길었다. 한번 꼬리잡기로 역전되면 금세 해질녘 그림자처럼 몸체의 두 배가 됐다. 넘쳐흐르는 불안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 별 거 아닌 청유에도 오랜 시간을 쓴다. 거절이 두렵다. 회복이 오래 걸릴 지 모른다고 말했다. 입밖으로 내기 전까지 무의식 층위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사실을 외면해왔다. 모른다는 사실이 다시 불안했다. 안다고 다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그랬다. 단순 결함은 아니었다. 완곡한 거절도 싫었다. 아니면 내 처지에 억지로 응해줄까봐서. 또 부정적인 방향으로 고개를 까딱 돌린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순간에도 이런다. 변수가 많았다.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일수록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지 못할 것 같을 땐 서서히 멀어졌다. 간단한 연락도 수십수백번 고민하다 절어버렸으니까. 만나면 항상 좋은 시간 보내는데 왜 이럴까. 안 되면 다음에 보면 되지, 라는 말이 쉽게 안 나왔다. —너는 쉽게 했다. 내게, “회복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라 물을 땐 움찔거렸다— 어디서부터 움츠러든건지 뿌리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오묘한 불안감, 초조함, 아마도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 쉽게 생각하면 쉬운 일이었다. 기약없는 다음으로 미뤄도 언젠가는 만날 법 하지 않나. 툭툭 털면 되는데. 손톱을 짓씹는다. 불안감이 나아질리 없다. 아마 너는 우리가 지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 많이는 아니어도 해마다 한 두번은 보는. 진정 그게 가능할까?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역할의 굴레가 벗겨지려면 시작이 그랬으면 안 됐던 거 아닌가. 사람 대 사람이 가능할 때쯤에, 그러니까… 어떤 ‘균형’이 기능할 때 비로소 만나는 의미가 있다—. 아니려나. 솔직히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 대어를 낚는 단 한 순간을 기다린다. 짜바리 말고 진짜 빵이 큰 거.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그래도 체에 거르고 걸렀더니 순수하게 안부 묻기는 성공했나보다. 마음이 가볍다.

#93 이름없음 2025/03/19 04:01:01

사람들이 듣지 않는 노래를 듣고 싶었다. 나만 아는 그런 노래. 느린 템포의 R&B는 충분히 그런 영역에 있다. 한국은 유독 알앤비가 약세니까. 한 곡만 죽어라 파고들다가 슬그머니 놔 주곤 했다. 언젠가 귀에서 충분히 익혔던 노래가 툭 떠오른다. 낙과처럼. 가까이 다가가기 수월할 때도, 한참을 흥얼거리다 가삿말과 가수를 힘겹게 알아낼 때도 있다. 신보를 듣다 이전에 좋아했던 노래를 찾는 경우가 가장 많다. 써두고 잊힐 문단을 살려 이어가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침잠하고 있다.’고 적어둔 뒤 문장을 지우고 날려버리려 했었다. 새로운 노래를 듣고 급히 생각 나 의미없이 이어간다. 어떻게든 들을 운명이었던 건가. 다수의 호평이 있어 기억해뒀다 들으려 했는데 알고리즘에 콱 박혀서 강제로 듣게 됐다. 3분이 안 되는 길이에 이렇게 소리를 꽉 채울 수 있던가. 내겐 징크스가 하나 있다. 음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늘 무대가 없거나 적다. 보통은 안무도 없지만 진성 발라드는 아니어서 각 잡고 부르기가 애매한 그런. 한 곡 반복 해두는 노래는 거진 이 꼴이었다. 온갖 검색어를 동원해도 콘서트에서 일회성으로 불리는 게 전부다. 아마 이 노래도 그럴 것 같은데…… 그래도 마음에 든다. 목소리의 합이 좋다. 화음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게 느껴진다. 별일도 별 생각도 없이 봄이 오는가 싶었다. 때마침 새벽부터 눈이 펑펑 내렸다. 그래 봄은 아직 멀었나. 산자락 초입을 오를 일이 있어 걱정했는데 햇빛에 다 녹았더라. 하는 일이라곤 장서 정리 뿐이지만 적막이 좋다. 아늑하다. 이제껏 일해왔던 곳에 비하면 정말 한 입거리라서 고되지도 않다. 몸에 익은 일을, 특별히 공을 들이지 않고 한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농땡이 피우는 시간이 더 긴데도. 보낼까 말까 했던 안부는 손끝까지 전해지지도 않은 채 혀끝에서 녹아내렸다. 내가 뭐라고, 내가. 종종 보이는 흔적들을 갈무리하면 됐지. 뭐 좋다고 먼저 묻는가. 자격이 없다는 생각만 한다. …무슨 자격이 필요한 건진 모르겠다. 반쯤 읽고 덮어둔 책이나 마무리해야지.

#94 이름없음 2025/03/28 02:41:31

머리를 비운다. 시간은 붕 뜬다. 적합한 어휘가 생각나지 않는다. 요사이엔 책을 전혀 읽질 않았다. 손목 아프도록 장서를 정리할 때마다 당신이 말했던 책을 잠시 훑는 듯 하다 말 뿐. 이 핑계 저 핑계로 연락 한 번 해보려 했는데, 겁이 많아 친구에게 건너건너 소식만 들었다. 이제껏 출근하지도 않는 곳 앞을 서성이며 추억에 젖어 있었단 게 괜시리 우스워진다. 물리적으로 책들에 둘러싸이게 됐다. 약점이었던 동화책 정리도 이젠 척척 해낸다. 책이 얇아 한눈에 청구기호가 들어오지 않고, 외국인 저자는 또 왜이리 많은지. 익숙치 않은 저자 이름을 헤아리느라 매번 가나다라…카타파하까지 다 외우게 된다. 숨어서 쉬다보면 시간은 금방 흐른다. 억지로 일을 찾아 하느라고 온 서가의 책들을 다 앞으로 끄집어냈다. 일명 ‘각 맞추기’라고 불리는 듯했다. 시큰거리는 손목을 부여잡으며 책꽂이를 돌아보니 전보다 훨 보기 좋았다. 책장 안쪽으로 숨어있을 때는 왠지 손이 잘 안갔는데, 보기 좋은 책이 읽기도 좋다고 이것저것 뽑아도 보고 싶었다. 그래선지 남들이 읽지 않은, 그러나 당신이 언젠가 화두로 올린 적 있던 책을 쑤욱 뽑았다. 세대론이었다. 일명 mz로 대표되는 세대의 특징이 잘 묘사돼 있었다. 얼핏 공감 가는 내용도, 아닌 내용도 있었지만 스무페이지 남짓 속독한 지라 평가하긴 쉽지 않았다. 세대론은 당신이 줄곧 꽂혀 있는 주제였으리라. 주요 관심사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짧은 순간 책을 덮으면서 활자 참 많이 읽고 쓰는 사람이라는 걸 체감했다. 100페이지도 40분이면 훌훌 털어버리려나. 그 많은 책들 내용은 다 어떻게 정리하고 기억하는 걸까. 궁금한 게 많았다. 이젠 엮일 일도 없겠지만 식사하고 차 한잔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나 나누고 싶었다. 시시콜콜. 사람이 고팠다. 빈 집에서 하루종일 유튜브를 틀어놓고 목소리에 빈틈이 없도록 했다.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이란 거 이럴 때마다 체감한다. 전등 켜니 불쑥 푸른 벽지에 앉아있던 바퀴벌레를 죽이며 한숨 푹 쉬었다. 완전히 정신이 갈리는 듯했다. 약에 취해 졸아가며 다시 게임을 하고, 억지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고-. 망가진 건 수면 패턴 뿐으로 나머진 다 사람답게 살고 있었다. 오늘도 지독히 새벽을 헤맨다.

#95 이름없음 2025/03/31 12:59:20

기억 한 구석에 있는 장면에서 딱 노래 제목만이 빠져있었다. 찾아보겠다고 스트리밍 전체 데이터를 일일이 뒤지다가 포기했다. 시시하긴 했지만 무한히 artist_name을 찾아볼 순 없었으니까. 사막에서 바늘찾기를 하려니 뻐근해서 자주 듣는 가수를 소거해달라고 기계에게 부탁했더니 세 번까진 소거해줬다. 무료 엔진은 “자신은 그런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말할 뿐이었다. 나머지 칠 천 건 중에 내가 찾는 바늘이 존재한다는 여부도 모른 채 무의미한 작업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알람을 듣고 홀린듯 뛰쳐나갔다. 하늘이 쾌청했다. 못 본 사이 길가엔 벚꽃도 피어있었다. 전화를 건 병원으로 향했다. 접수하자마자 진료실로 들어섰더니 권위따윈 없는 사내가 앉아 귀찮은 듯 환부 사진을 넘겼다. 돈이 안 되는 환자는 약 처방이면 되었다. 대부분의 피부과 전문의가 환자와 오래 상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쩐지 손님이 없더라. 처방전을 받고 나머지 일을 처리하고 있었던 차에 느껴졌다. 너무 오랜만이라 아득한 감각이었다. 말단부로 가는 회로가 끊겨버린 듯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순간 이를 꽉 물고 버텨가며 서 있었다. 전날 밤 복용한 약 때문이겠거니, 달래가며 꾸역꾸역 에너지원을 삼켰더니 그제야 돌아왔다. 아픈 건 나인데 이럴 땐 왜 시간감각마저 무너질까. 퓨즈가 끊겼다는 느낌이 신경을 지배했다. 정신을 다잡는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는 게 싫어 괜히 손을 쥐었다 폈다 펌프질이라도 해본다. 저 멀리서부터 빛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고 감각에도 불이 켜졌다. 그러다 기억까지 넘어온 모양이다. 불현듯 가수 이름이 생각나더라. 앨범도 고작 하나. 타이틀 뿐인 싱글. 못 찾을만 했다. 분절적으로 끊어진 여름, 만 남아 단서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 듣지는 않았다. 듣기 위해 찾은 노래는 아니었으니까. 입 안 살을 잘근잘근 짓씹으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이딴 걸 왜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런 체력으로 언제 내려가고 사람들은 왜 만나겠다는 거지. 그런 불안감이 스쳤지만 약 때문이라고 속이면 된다. 여행 아닌 여행에 이유가 있을까. 가고싶으니 떠나는 것 뿐이잖아.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봄은 이미 찾아와 있었다. 뒷산에 펴 있던 개나리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는데. 눈 내리는 봄이라서 외면해왔던 건지도 모른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지만 그래도 온다. 서서히 온다. 만끽하려면 시간을 찢어 무어라도 남겨야 한다고. 잠자고 있던 카메라라도 깨워본다.

#96 이름없음 2025/07/14 19:16:52

선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메모장을 킨다. 적지 않으면 날아가버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이전의 꿈이 어땠는지 천천히 읽어내려본다. 아무래도 너무 야위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런 건 본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기억에도 없는 걸 끄집어와선 당신이라 말한단 말인가. 봄엔 뜬금없는 장소에서 참 행복했었다. 이번엔 답지않게 비쩍 마른 채로 꽁꽁 싸맨 모습이었다. 근데 왜… 숨바꼭질하듯 학생들 틈바구니에 끼어있다가 튕겨져 나왔다. 꿈인 걸 알 수만 있다면 좋을텐데 단 한번도 그런 적은 없다.

#97 이름없음 2025/07/23 01:21:59

240830 여전히 난 그 기억의 여름 속에 있어, 너도 알잖아 내가 당신을 생각한 만큼 당신이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이라고 글을 써두면 거짓말 탐지기의 탐침이 요동을 친다. 가끔은 나도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당신의 소소한 안부를 귀동냥으로 전해듣는 내가 도대체 무슨 기분인지 당신은 알까. 후드티 입고 빗길을 내달렸을 때 왜 걱정과 설렘이 복합적으로 뒤섞인 맛이 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여름을 잃어버린 걸까요. 이번 여름에는 무엇을 두고 내렸을까. 내 여름 안부에는 딱 여름치 분량만큼의 말만 함축되어 있다. 지난 편지들과는 다르게 뺄 건 빼고 싶어 퇴고를 열심히 한 결과였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는지, 정확히 무얼 잃어버렸는지는 나만이 아는 질문으로 영원히 수면 아래에 가라앉고 있다. 그대로 놔두어야겠지. 이 찜찜한 기분을 도려낼 방법 따윈 없을 테니. 250723 이 일기에 대한 답을 전해들었다. 떠나기 전까지 당신은 나의 안부를 묻곤 했단다. 내가 궁금했던 만큼이나 그랬을까 싶으면 당연히 아니겠지만, 그냥. 내려오면 꼭 보러 가라고 하겠다는 어설픈 대답으로 얼버무렸단다. 그랬더니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했다는데. 무슨 뜻이지. 코끝에 시큼한 향기가 닿았다가 사라진 것만 같다. 한 달 전 향수 가게에 들러 당신이 쓰던 향을 뿌린 적이 있다. 별로 내 취향은 아녔다. 오히려 점원이 추천해준 다른 향이 더 좋아져 구매를 할까말까 몇번이나 망설이다 나와버렸다. 이번엔 그걸로 드릴까. 좀처럼 줄어들 것 같지 않던 100ml 병도 거의 다 비워져버렸다. 기왕 핑계를 만들려면 거창한 걸로 만들어야지 않겠어? 나름의 목표가 있으니 괜히 마음도 들뜬다. 숨을 깊이 들이쉰다. 기억 저편에 남은 향을 더듬는다. 내 코에 딱 맞았으니 당신에게도 좋을 거란 막연한 기대는 뭐지. 유치하다.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라도 들뜨는 게 얼마만인지 잘 모르겠다.

#98 이름없음 2025/07/28 02:08:43

매장 내 직원들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뭘 살지 다 골라놨는데 근래 소비가 많아 구매를 미뤘다. 청포도 사탕을 까면 퍼지는 향기가 여전히 코끝에 머물어 있다. 만나고 싶으면서 왜 어물쩡거리나. 한 두 번 후회한 게 아니었음에도 연락은 할까 말까 망설이지 않으면 섭섭할 정도다.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구름만 보고 있다. 일기를 한동안 쓰지 않아 굳어버린 감각을 깨우기 위해 예전의 일기를 복습했다. 건질 분량은 많지 않았다. 다만 놀란 부분이 있다면 꿈에 내 생각보다 더 꾸준히 등장했다는 사실이었다. 최근 일이년 사이에 부쩍 늘었다. 새벽 네 시 반에도 일어나 홀린듯 복기를 하고 다시 잠에 빠진 날도 꽤 있었다. 꿈 속 내용을 받아 적는 일은 오랜 습관이 됐다. 꿈일기는 낱말 놀이를 했나 싶게 분절적인 문장을 묶어놓은 것만 같다. 완전히 비몽사몽 간에 쓰고 다시 잠든 경우엔 알아볼 수 없다. 기억이 완전히 휘발되기 전에 재해석해서 엮어놓지 않으면 그저 웃기다. 비일상의 틈바구니에 억지로 일상을 끼워맞춘 느낌이 생생하다. 주로 등장하는 심리상태는 어리둥절함이다. 왜/어떻게 여기에. 알고 있는 거지.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반쯤 눈치채려고 할 때 잠에 다시 덮인다. 그때 깨달으면 자각몽인데, 여태껏 성공한 적은 없다. 특이하게 옷에 대한 묘사가 많다. 타인의 꿈을 꿀 땐 아무튼 그 사람이라고만 써져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만큼 기를 쓰고 보려고 했단 건가. 빠지지 않는 인사도 있다. 안녕하세요, 도대체 뭐가 안녕하고 싶은지. 240717 이 지독한 여름. 꿈을 반복적으로 꾼다. 작년엔 한동안 찾아 헤메거나 그리워하는 꿈을 꿨단다. 그랬었나. 초저녁에 선잠이 든 탓에 괜히 뒤척인다. 이대로라면 네 시에나 자겠다. 언젠가부터는 네 시에 꼬박꼬박 들려오던 종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가도 헤드폰을 벗어 확인하곤 했는데. 하여간 답장해야할 편지도 서문만 써두는 둥 온갖 일을 미루고 있다. 여름은 정말 싫다. 간신히 더위를 피해오지 않았더라면 타들어가는 햇빛에 숨이 먹혀들어갔을테지.

#99 이름없음 2025/08/01 01:33:54

빨간 안경 평론가가 극찬한 소설을 읽었다. 집중할만하니 끝나있는 이야기였지만 좋았다. 내용보다도 레이아웃이나 책의 무게, 크기 같은 외형도 마음에 들었다. 자간이 넉넉하고 서체가 컸으며 빼곡하지 않았다. 본문에 휴대폰을 갖다대니 크기가 엇비슷했다. 전자책을 옮겨놓은 듯했다. 참 요즘 책다웠다. 소설은 꽤나 흥미로웠지만 마음이 간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 인터뷰였다. “내가 평생 그 사람을 기억한다면 그 사람은 늘 호명되는 존재로 남게 되는 걸까? 그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런 생각을 주로 합니다.” 질문은 연대와 살아 있음에 대한 내용이었다. 작가는 살아 있음보단 죽어 있는 상태에 더 골몰한다며, 살아 있음과 죽어 있음의 거대한 관계망에 대해 언급한다. 산 사람은 죽어 있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자신의 삶에 어떻게 버무리는지가 궁금하다고도 한다. 산 사람이 죽어 있음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해한다면 호명할 일이 없지 않을까? ‘죽어 있음’ 상태에 가두기 싫어 불러낼 뿐이다. 그리워할 뿐 추모하지 않는다. 옛 기억 속에서라면 언제나 살아있다며 끊임없이 반복재생한다. 늘어져버린 테이프를 되감고 또 되감는다. 차라리 닳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남은 사람은 어찌 되었든 삶을 살아야 한다더라. 그게 잘 안 된다. 시원하게 운 적도, 끼니를 몇 개월 간 거른 적도 없지만, 공허하다. 다른 걸 쑤셔 넣어서 채워봤는데 잘 안 됐다. 가끔은 전전긍긍하며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책하기도 한다. 영원히 뒤를 돌아볼 셈인가. 그런 건 아닌데. 꿈에 나올 때마다 사건을 재구성해서 그럴 듯하게 남기는 일도 이젠 습관이다. 내려오면 반드시 가야겠다는 부채감도 여전하다. 함께 그리워할만한 사람이 특별히 없다는 점은 늘 아쉽다. 이 모든 일이, 죽어 있음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야만 설명될 것 같다. 이해한다면 편해질까. 편해진다는 게 다 무언가. 기억하기를 포기하겠다는 건가. 호명할 사람이 몇이나 남겠는가. 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버린다. 엉망으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른 자세를 알려주던 목소리가 들린다. 조금이라도 신 음식을 보면 반사적으로…. 내 그림자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데 눈을 떠보면 당신의 그림자는 까마득하다.

#100 이름없음 2025/09/13 03:09:40

세찬 비가 내린다. 다듬지 않은 문장으로 편지를 보냈다. 선잠 자던 와중에 메일을 확인하는 꿈을 꿨기 때문이었다. 큰일이 있어 긴장된다, 는 말은 반만 맞는 말이었다. 나머지 절반의 긴장은 연락을 보내는 데서 기인했으므로. 늘 어려웠다. 그래서 단어를 하루종일 고르고 있거나 쓰레기통에 고대로 던져버리기도 했다. 그나마 편해진 게 이정도라니. 섬광이 일었다. 방이 요동칠 정도로 큰 천둥번개였다. 얕은 잠이라면 깰 정도다. 답장을 기다리며 손톱을 못살게 굴곤 했었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진 않지만 평소에 비하면 새로고침을 자주 한다. 받지 못한 척 묵혀둔 적도 있었다. 궁금해서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인 신경을 다른 데 두느라 애썼다. 이젠 구태여 그러지 않는다. 가급적 연락은 빨리 읽고, 답장이 꼭 필요하다면 가볍게 한다. 대단한 일 하나와 근황을 엮어보냈다. 바쁘겠거니 생각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여전히 발을 구르는 나도 있다. 이게 예년 대비 나아진 상태라니. ‘그럴 수 있어’가 도통 안되는데 어쩌란 말인가. 연달아 터지는 셔터처럼 불규칙한 섬광이 다시 온다. 긴 호흡 뒤로 우르릉거린다. 고요한 새벽의 정적이 흔들린다. 큰일, 큰 일이었지. 정말. 이제야 얼추 실감이 나는 무게였다. 부드러운 끈으로 단단히 매듭지어진 그-것을 받아들었을 땐 기묘했다. 무거운데 무겁지 않았다. 땅으로 푹 꺼져버릴 정도는 아니던데 어째서 이렇게. 고용한 인부가 삽을 건넬 때도 별다른 요동 없이 흙을 덮었다. 시간이 그렇게 지났던가, 하며. 그럴 줄 알고 긴장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섬광이 다시, 그리고 벅찬 숨을 가누며 그르릉 낮은 소리로 운다. 진동에 바닥까지 떨린다. 주기가 짧아졌다. 뒤척이다 잠에 들려고 했는데 쉽지 않게 됐다. 비도 그치지 않는다. 답장이 와야만 할텐데. 뜯을 손톱도 거스라미도 없어서 애꿎은 반지만 만지작거린다.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다. 가지 못한 곳도 있다.

#101 이름없음 2025/09/16 11:39:15

아무래도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102 이름없음 2025/09/19 12:56:24

바다를 건너온 편지처럼 시일이 지나서 온다고 생각하면 편할까. 차라리, 늦게 온다가 아니라 늦게 전해진다고 상상하면 좋을지도 모른다. 이럴 땐 줄만 그어진 단출한 편지지를 사서 손힘 팍팍 써가며 적어내려가고 싶다. 흔하지 않은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놔두는 거다. 일 년이 지난 후에 도달하는 것까진 아니어도, 제대로 수신되기까지는 한 달 남짓 걸리는. 문구점에서 산 삼백 원짜리 플러스펜 뚜껑을 열고 펜촉이 훼손되든 말든 제멋대로 적어내려간다. 수성이라 수정테잎도 먹히지 않고 울어버린다. 오탈자가 나오면 두 줄 긋든지 새로 써야만 한다. 곧바로 찢으면 편지 내용이 망가져버리므로, 눈앞에 두고 마음에 안두는 구석만 고친 뒤 다시 쓴다. 하여간 손편지 자체의 매력이 있다. 전해지지 않아도 마음을 털어버리는 효과가 있다. 전해진다면 너무 털어놓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 가장 최근의 편지는 바다가 아니라 시간을 건너 온 것이었다. 뭐라 적혀있을지 몰라 아직까지도 봉해두고 있다. 2년을 거스르자고 했던 것 같은데 눈떠보면 두 배가 될지도 모른다. 딱풀을 받아 지역특산품 우표를 붙여 보냈다. 아이들이나 쓸법한 싸인펜으로 꼬박꼬박 칸을 채운—. 비가 오던 날이었다. 돌아가는 길엔 택시도 잡히지 않아 우비를 껴입고 웬 밭을 건너 숙소로 향했다. 그땐 그랬는데, 힘들어야 추억이 된다고. 카메라를 동여주던 끈마저 어느새 풀릴 정도로 고됐다. 정말 이 길이 맞는건지, 풀은 왜 그렇게 무성했던 건지. 한참을 헤매다 큰길이 나왔을 때에야 안도했다. 그런 여름이었는데, 그 편지에 대해서는 잊어도 큰 타격이 없었는데. 왜 메일은 바로 전해진다 믿는가. 내려놓으면 긴장이 낮아질 것이다.

#103 이름없음 2025/10/04 10:18:30

어떤 심정일까? 그렇다면 내 바람은 너무 무거운 거 아닐까.

#104 이름없음 2025/10/05 02:28:06

240411 빛의 호위, ‘산책자의 행복’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구나. 라오슈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어떤 언어가 라오슈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걸까요. 행복한가요, 라오슈? 제가 라오슈에게서 듣고 싶은 말은 사실 그뿐인데, 오늘도 저의 타전은 무력합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이라. 회신이 오지 않을 타전을 보내는 것조차 그런 감각이란 건가. 이파리는 영원히 꽃을 그리워할텐데, 그걸 어떻게 예지했단 말인가. 석산의 철이다. 도시에는 없고 본가에는 유독 잘 보인다. 수목원까지 멀리멀리 찾지 않아도 흔히 피어 있다. 볼 때마다 놀란다. 꽃잎이 없는데도 다른 꽃만큼 화려하니까. 어릴 적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엔딩곡에서 석산을 처음 알게 됐다. 일본에서는 특히 더 “죽음”과 연관이 짙은 꽃이랬다. 작중에서도 죽음과 사랑이라는 테마를 동시에 품은 캐릭터의 상징물이었다. 강렬한 빨간색이 화면 가득 채워지고, 관람차 풍경이 교차하다가도 다시 꽃망울이 보이는 식이었다. 석산. 꽃무릇. 상사화. 부르는 이름이 다양했다. 다른 꽃들과는 달리 이파리가 먼저 피는 바람에 꽃을 볼 수 없어 상사화란다. 어떤 목소리였는지는 이미 휘발되어 날아가버렸다. 같이 발맞춰 걷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바람에 표정도 잘 모르겠다.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아 바보처럼 대답을 내뱉어버렸던 건 아직도 부끄럽다. 초가을의 선선한 기온, 구름이 낀 날씨, 대화 내용. 멀어져갔던 차의 기종이나 번호판 같은 세세한 내용들은 전부 기억나는데 얼굴 표정과 목소리가 없다. 옷차림도. 아마 코트 같은 거였을텐데, 꽁무니가 길었으니까. 게다가 꽤 쌀쌀했다. 죄다 일기로 남겨놔 몇 번이고 돌려봤다. 구간반복처럼. 그러고 한동안 벙쪘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한동안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같이 나왔는지, 어쩌다 그런 심오한 말을 흐르듯이 말했는지, 왜 그걸 아직까지 곱씹는지. 의문투성이다. 다른 주제를 들고 오고 싶어도 꽃무릇만 보면 정지된 채 그날로 되돌아간다. 이렇게라도 호명하면 살아있는 셈 칠 수도 있으니. 누구라도 잊지만 않으면 될 뿐이니까. 뭐 그런 흔해빠진 타전이다. 근황이 궁금하다, 그냥. 잘 지내는지. 행복하거나 평안한지. 어떤 시간 속에 사는지. 내가 모르는 “라오슈”가 아닌 당신께선 어떤 사람이었는지. 광야 말고 좋아하는 다른 시는 무언지.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있었는지.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 물음이 마구마구 떠오르다 꺼져버린다. 손가락 바삐 움직여가며 모스부호 찍어도 회신은 우주배경복사의 노이즈로만 돌아온다. 여전히 낮엔 덥고 습하다. 석산이 폈는데도 여름과 가을 경계선에 서 있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갈 때 쯤에야 옷깃을 여미게 된다. 눅눅한 방이 싫어 에어컨은 돌아가고, 귀뚜라미도 울고, 시간은 흐른다. 교정엔 우리가 걸었던 길과 화단이 전부 갈아엎어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정경은 그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기억하지 않으면 모두 변해버리는 거다. 첫 차로 중고차를 사다 막 굴려버리고 폐차할 거라면 당신께서 몰던 차를 타볼까 싶어 한참 검색해본 적도 있다. 오래된 모델이라 백 만원이면 정말 굴러가는 차를 구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그리움이 차고 넘치는 게 싫어 그리 할지도 모른다. 운전이 능숙해질 때까지만 타고 보내주면, 어쩌면, 그때에는 정말 덜 그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105 이름없음 2025/10/06 15:55:12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전언일까, 정말로. 이번에도 똑같은 다리를 크게 접질렸다.

#106 이름없음 2025/10/10 01:40:16

어떻게 내가, 바짝 긴장했다. 차와 사람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안그래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독대도 아니었다. 조수석에 앉은 채 오른쪽 다리를 떨었다. 운동복 차림으로도 갔으면서 괜히 입성 따위를 신경썼다. 심장이 뛰었다. 정말 잠깐 이야길 나누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5분도 안 되는 길이었음에도 필연적으로 바보같은 선택만 했었다. 움푹 꺼진 도로를 못 보고 밟았으니 내 탓이지 누굴 탓하겠냐마는. 집으로 돌아와 꽂힌 언어에 생각이 지하로 한없이 꺼져버렸다. 쿵하고 뭔가 내려앉는 듯했다. ‘(너는) 이제 더는 가지 말아야겠다’라는 아무것도 아닌 말 한 마디에 뒤틀렸다. 아스팔트의 불규칙한 면에 긁힌 몸보다 마음이 더 조각나있었다. 소리없이 울었다. 이 악물고 참아도 부질없이 흐르기만 했다. 악의보단 걱정이 컸을 무심한 소리에도 무너질 마음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자기 전 짧은 뒤척임에 기억이 제멋대로 딸려나온다. 멍한 와중에는 꼭 리와인드된다. 올바른 생각 순환 고리를 찾겠다고 애쓰며 잊으려 했다. 얼음의 날카로운 감각에 아픔이 상쇄되길 바라듯이 얼른 덮으려고 괜히 다른 일에 몰두했다. 역부족이다. 털어내지 않으면 계속 돌아올 것이다. 잊어야지, 라고 되뇔수록 더 강렬해진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바보처럼 피해다녔다. 똑바로 앉아 마주본다. 얼얼한 발에 시리도록 차가운 아이스팩 대면서. 자. 그게 아니라 사실은— 보고싶다고 붙잡아뒀구나. 여름 내내 집안에만 틀어박혀 당신을 찾지도 않아서 너무 늦었다고 타박한 거야. 제때제때 사람 없을 무렵 조용히 다녀갔다면 이럴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정말 확신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는,

#107 이름없음 2025/10/10 01:44:34

이것도 아니라면 살아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라고 오랜만에 피 철철 흐르게 해준 건지도 모를 일이다.

#108 이름없음 2025/11/19 02:31:25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빛의 호위의 연작이었다. 정보 없이 읽다가, 스무 쪽 즈음에서 필름카메라와 스노볼이 나왔을 때 알아챘다. 묘사대로라면 작가는 사진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충실한 자료조사의 수준을 넘어선다. 아마 취미가 출사일 지도 모르겠다. 빛의 쓰임새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다다르고자 했던 것도 빛을 잘 쓰는 지경이었는데, 재능이 부족했다. 일반적으로 카메라는 조리개를 통해 자유롭게 빛을 조절할 수 있다. 사진은 눈으로 보는 풍경보다는 극적이어야 했기에, 좋은 사진은 늘 빛을 잘 조절한 사진이라고 생각해왔다. 좋은 사진들을 아무리 보고 찍어도 잘 안 됐다. 결국 점점 취미에서 멀어졌다.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데 의지가 붙어있을 수 있을까. 사진에 대한 열망이 꺼진 채로 만난 게 였다. 필름카메라를 선물로 받은, 열 두 살 무렵의 추억에 대한 얘기에서 끝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번에 읽게 된 는 사진 자체가 업이 되어버린 종군기자와 필름카메라를 건넨 편집자의 이야기이다. 뻔한 클리셰답게 ‘나’는 오래 전 추억과 눈앞의 인물을 연결짓지 못한다. 그러다 서로 블로그 안부게시글로 근황을 간간히 이어나가는데…. 딱 2부까지만 읽다 책을 덮었다. 역린을 건드는 키워드가 나오기도 했지만 좀처럼 집중이 잘 되지도 않았다. 내가 기대한 건 단편집이었나보다. 아쉬웠다. 여운 맺히도록 잘 끊었으면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다니. 연작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선뜻 읽으려고 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떠올리기 싫은 기억과 교차점이 많아서 잡생각을 이겨내면서 밀고 나가야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저어본다. 요사이엔 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컨텐츠들의 물레를 휘감을 뿐이다. 출력이 없게 하려고 입력을 막아두었다. 그 사이 바뀐 근황에 대해 크게 화나지도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지도 않았다. 이대로라면 눈앞에서 치워도 될 수준이었다.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났다. 궁금하지도 않고, 싫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올라왔구나, 하고 말 뿐이다. 강박적으로 기억했던 강렬한 이미지도 많이 훼손되었다. 내가 지웠는지 시간이 지워주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입시 주간이 되면 화장실에서 머리를 처박고 있는 모습이 한 번 쯤은 떠오른다. 시뻘개진 온몸을 통제할 줄 몰라 가둬놓고 식히고 있을 뿐인 내가 안타깝다. 그렇게 —한 사랑이었는지, 사람이었는지.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판 함정에 걸려 너무 오랜 시간을 잃었다. …라고 말하면서 기어코 한 번 쯤은 글에 넣는구나. 아직도 멀었다. 그래도 생각하지 않아야겠다고 아득바득 이 갈기보단 그냥 멀찍이 서서 본다.

#109 이름없음 2025/11/19 02:42:41

살아 있다는 감각이 무엇인진 몰라도 살점이 쓸려나간 무릎은 재생되어 차올라있었다. 시꺼먼 피인지 딱지인지 피부 안쪽으로 아물어있던데 이젠 눌러도 아프지도 않다. 어떻게 관리하는 게 정석일까, 매일 마데카솔이나 펴바르고 있다. 흉터가 남음직한 상처를 물끄럼 쳐다보면서 겨울이 옴을 느꼈다. 통 걷질 않았는데도 반대쪽 발은 회복이 더뎠다. 이맘때쯤 다 나아있어야만 했는데 아직도 절뚝였다. 우스꽝스러운 걸 떠나 보행속도가 평시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걸 누가 자초했는지 생각해보니 나였다. 하루 이틀 더 기다렸다가 버스 타고 갔으면 이럴 일이 없었지. 성급했다. 무얼 교훈으로 삼을까 곰곰이 되짚어봤는데 아마 당신이 이 꼴을 봤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거다. 너는 항상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서 그런 거라고. 다치고 나선 평소보다 꿈을 많이 꾸었다. 너무 보고 싶었던 나머지 중심을 잃은 거다. 꿈 두 번이면 등가교환인지 이득인지. 오늘 한 번 더 꾸면 확실하게 알 것 같기도 하다.

#110 이름없음 2025/11/21 02:01:52

중반까지만 읽고 실망했던 마음에 돌을 던지고플 정도로 책은 좋았다. 장편은 단편보다 한방이 늦게 포진되어 있다. 기승전결을 늘여놓으면 당연히 호흡이 길어지지 않는가. 미리 실망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결말까지 쭉 오르고 나니 역시는 역시였다. 때론 기억하는 것이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음을, 죽음이 역방향으로 작용해 삶에다 사람을 파묻기도 한다는 사실을 되새긴다. 실은 처절할 정도로 살아있길 원해서 자꾸만 찾아갔던 게 아닐까.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고 말하던 나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었으니까. 미래가 아니라면 과거에서 찾아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보면 그만이다. 무너진 나를 원상태로 돌려놓고 싶었다. 제일 찬란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곤 또 서성인다. 이 기억은 미결이라 영원히 한 장면에서 멈춰있을 예정이다. 더이상의 진전도 퇴행도 없이.

#111 이름없음 2025/12/27 01:45:39

집에서 발을 헛디뎌 슬라이딩 했더니 벗겨진 껍질 밑으로 피가 뚝뚝 흘렀다. 어쩐지 흰살이 아니라 시꺼먼 살이 올라오더라니. 갇힌 피를 풀어주고 면봉을 꺼냈다. 얼른 나았으면 하는 마음에 약을 듬뿍 묻혔다. 그리곤 이불 덮어주듯 아주 큰 밴드로 닫았다. 접착면이 가려움을 유발하기 전까지는 열지 않을 심산이었다. 밴드는 자주 갈아야 한다. 여분이 없어서 못 간다면 떼어내고 약이라도 꼬박꼬박 발라야 한다. 그럼에도 틀어막아둔 건 왜였을까. 쉬이 아물지 않았으면 했다. 오른다리도 병신된 마당에 그깟 상처 좀 남아있음 어때. 쉽게 잊기 싫었다. 그날의 아찔함, 황당함, 괴로움을 봄까지는 안고 가길 바랐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당신은 겨울잠에 빠졌는지 꿈에도 들르질 않는다. 그러니 걸을 때마다 전해져오는 찌르르한 통증으로나마 되새긴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래’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 다치기 전, 아프기 전, 알기 전으로 거슬러 오를수는…… 아무래도, 힘들다. 물리적으로 안 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치유되는 거지. 그냥 놔두나. 덮어두고 방치하다보면 연해질 뿐 완전히 지워지진 않던데. 비뚜름한 걸음으로 자꾸 돌아보기만 해서 그런가. 이젠 뚜벅뚜벅 나아가야 하는데, 멀쩡한 걸음걸이로는 아파서 못 걷겠다. 한숨 쉬고 누워버렸다. 언 땅바닥에 등이 맞닿는다. 겨우내 웅크려 잠자는 것쯤은 봐줄지도 모르잖아.

#112 이름없음 2026/01/09 00:10:33

새 술은 새 부대에 낡은 부대에는 시일이 지난 문장을 한가득 부었다. 오랜만에 종이책을 넘기니 즐거웠다. 퇴고 없이 딱 오 분만 써봐야지. 씻다가 우연히 걸어들어온 문장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활자를 가까이 하는 만큼 의도치 않은 산출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79쪽, "열어볼 수 없다니까. 그게 규칙이야. 과거는 통조림 속에 들어 있고, 우리에게는 따개가 없어. 그러니 누구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는 거야."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김연수의 이야기 속 화자/등장인물은 독자와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작가와도 가깝고, 독자와도 가깝다는 것의 장점은 무얼까. 실제로 “말하는 것”처럼 들릴 때가 있다. 네가 이 소설에서 이 교훈만은 가져가라, 라고 건네는 대사가 많다. 그 점이 매력적이다. 혹자는 이런 점이 매력을 반감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의 책을 읽는 건 꽤나 오랜만이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나에게 말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아간다. 130쪽 달은 천 년 전의 달과 똑같은데, 사람은 한번 헤어지고 나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벌써 일 분 남았다. 내가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제한된 시간 동안 쏟아지는 생각을 모두 적기에는 타자가 느렸다. 다음엔 키보드로 쳐야 하나. 또 하나 느낀 건데,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게 아니라 억지로 꿈을 꾸려 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러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든 걸지도.

#113 이름없음 2026/01/15 15:50:16

213쪽 역시 말이란 사람을 끌고 다니는 채찍 같은 것이었다. 그새 날씨가 풀려 비가 나렸나보다. 인도에 쌓여있던 눈이 다 녹아 있었다. 행인들의 옷차림도 가벼웠다. 개중에는 외투 없이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아침에 나오느라 목까지 꽁꽁 싸맨 내 차림이 괜히 우스워졌다. 잠시 멍하니 가삿말을 구슬리다가 휴대폰의 모서리로 버스 정차 버튼을 꾸욱 눌렀다. “눈이 쓰레기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정을 붙이려 했던 게 잘못일까요?” 라는 문장이 엊저녘 씻을 참부터 사라지지 않았다. 쓰레기는 쓰레기고 눈은 눈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가끔은 쓰레기보다 더 못했다. 검게 엉겨붙은 빙판 위에서 균형을 잃을 때마다 욕지거리를 내뱉게 되니 말이다. 신발 밑창이 미끄럼에 좀처럼 저항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기도 했지만, 하여간에 아무렇게나 짓이겨진 저 빙판들이 문제였다. 이런 날이면 일부러 신설을 찾아 밟는다. 누구의 발자국도 없어 포슬포슬한 채로 남은 눈덩이로 걸음을 잇는다. 안정적이다. 불안에 떨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매 길이 걷지 않은 길일 리 없다. 늦장을 부려 눈앞에서 갈아탈 버스를 놓치고, 칙칙한 복장으로 거리를 수놓는 행인들의 목적지를 멋대로 상상하고, 그러고나 앉았다. 편지로 보낼 말들을 미리 정리해본 적은 많아도 한 문장이 이토록 오래 바짓가랑이를 놔주지 않은 적은 없다. 찰거머리같이 붙었다. 보냄직한 문장도 아니거니와 다듬는다한들 그럴듯한 소리가 되는 게 아닌데도 오래도록 잊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놔주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문장은 핑계고 구실을 만드려는 몸부림인 거다. 하이얀 모시수건은 없어서 검고 우묵한 그릇에 청포도를 담아 올렸더랬다. 맛도 향도 영 꽝이다. 이젠 샤인머스켓이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평범한 포도 맛이 되어 있었다. 삼 일째 비워지지 않는 알맹이를 툭 건드려본다. 앞니로 절반을 자르고 어금니로 우물거리며 터져나오는 과즙을 맛본다. 이것도 저것도 새롭지가 않다. 다만 새로운 것은 잉크로 찍혀 남은 문장들 뿐이라고 믿으며 책장을 넘겼다. 닳고 닳는 사이에도 굳건한 저 문장들. 피곤했는지 양쪽 다 터버린 입술에 바세린을 얹어놓고 또 넘긴다. 원래부터 겨울을 싫어했던가, 눈도 욕까지 할 정도로 미워했던가. 방향을 잃고 스러진 마음들에 너무 오래 시간을 쓰면 안 되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지. 겨울이 싫다. 퍼석퍼석해서 다 갈라지는 입술만 쥐뜯는다. 그래. 눈도 싫다. 어서 여름으로 도망가고 싶다. 파도 위에 판때기 하나 뉘여 놓고 하염없이 거스르고 싶다. 제대로 서 있지 못한다고 해도 자책할 것 없이 뛰어들면 된다. 사리 분간 못하는 눈에 짠물이 한가득 들어와 따끔따끔거리는 그 순간이 그립다. 입술이 파랗다 못해 보라색이 됐다며 낄낄거리고프다. 이런 겨울이라니, 벌써 지긋지긋하다.

#114 이름없음 2026/01/22 17:04:36

220216 좀 멀리 다녀왔지. 231202 마른 손가락이 쨍하게 내 팔을 끌어당겼다. … 말되냐? 이 눈바람에 난 심장 두근댄다고 춥지도 않고 말 안돼 또 240118 너무 오래된 버릇은 근원지가 초토화되었어도 행해진다. 버릇이고 습관이라고 부르기로 한 행동이 아닌가. 250321 회색코트를 입고 있던, 그걸 내가 졸졸 쫓아갔다. 에엑. 또 웃었다. 이런저런 얘길 했다. 좀 멀리 다녀온다면 지금쯤 등장할 타이밍인데. 요사이에는 새나라의 어린이마냥 10시 반만 되면 졸리고 7시 반이면 깨어나서 그런지 꿈이 없다. 꿀 꿈이 없으니 당신은커녕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수면점수는 고공행진 중인데 아침이 되면 찜찜하다. 검은 꿈을 꾼 것을 후회한다. 후회해봐야 달라질 일은 없다. 달이 완연하기 전부터 졸고, 동이 채 뜨기도 전에 깨어나는데 무얼 할 수 있는가? 잠의 건전지는 얼마 전부터 계속 완충 상태다. 누군가에게 나눠주고픈 심정이다. 방전된다면 뒤척임 속에서 꿈이 선명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

#115 이름없음 2026/01/23 00:45:04

231112 옷은 검은색 정장에 흰 셔츠 장신구 없이 깔쌈했다 231019 거기선 나무통 안에 있는 다람쥐를 찾아야했다. 230626 이거 절대로 잊지 마. 230518 취향을 말해달라 하니 특별히 가리는 게 없다 했다. 230107 알려준 시에 뜨겁게 목이 매이고 그러고 깼네 221224 그걸 보면서 울고 계셨어 221104 희한하게 노란 알배추의 알부분을 덥썩 베어물고 있었다 그 소리가 좋았다

#116 이름없음 2026/01/23 01:13:14

이렇게 연달아보니까 꿈을 생각보다 자주 꿨다. 작년에도 1월부터 거의 두 세달 간격으로 적혀있었다. 이 정도면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빈번하게 등장한 것이다. 사실 출연의 빈도는 헤아릴 수 없다. 기록량이 압도적으로 많을 뿐이지. 하여간에 다채롭게도 꿔댔다. 날것의 파편을 주워섬겨 아주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길게 늘어져 있는가 하면 쭉 적어놓고 되짚어가며 정돈한 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즐겁지만 야생의 것은 진짜 꿈처럼 느껴졌다. 앞뒤없이 번쩍번쩍 치는 번개를 따라가는 듯한. 그런 이야기들은 대체로 소재도 쫓거나, 쫓기거나, 가본 적도 없는 이국을 거닐고 있거나 하는 환상이었다. 새벽녘이 되니 갈고 닦은 문장은 없는데 좀체 손을 놓지 못한다. 그럴싸한 단어를 엮어내는 방법따윈 잊어버린지 오래다. 그리움에 잠겨 구간반복하는 못된 취향을 가졌다. 이런 걸 보면 슬픔이 지나치다 하려나. 아니지. 아니야. 그런 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 연락의 의미를 공들여 생각한다곤 했지만… 화제가 돌연 점프했다. 근황에 대해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어 보내얄지 고민이 점점 길어지곤 한다. 편지가 가지는 순수한 함의까지만 잘라 보내는 게 성격상 쉽지만은 않다. 햇빛 받는 부분만 적으려니 그림자가 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라 기만처럼 느껴졌다. 혹자와 달리 숨기는 것도 거짓이라 생각한 탓이었다. 의도한 은폐는 아니다. 선의라고 하기도 까다롭다. 그렇다면 보내지 말아야 하는가. 말도 없이 보내지 않으면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셈인가. 마음 한켠에 스치듯 생기는 호기심은 없을까. 그런 게 궁금했다. 연락이 반가운지, 무거운지, 회신을 보내면서도 개운치 않다면 내가 회신하지 말아달라 해야되는지. 쓰는 글 중에서는 가장 많은 퇴고를 거친다.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쌓인 글들은 죄 버리고 입안에서 굴렸을 때 깔깔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다 하루는 힘을 빼고 썼더니 좀 기운이 없어보인다고 하고. 종잡을 수가 없다. 나라고 늘 깃발 꽂으러 나아가는 건 아닌데 그런 내가 너무 오래 설치게 두었다. 어쩌면 편지에선 늘 그런 척을 해왔던 걸지도. 걱정하는 게 싫어서 먼저 선수를 친 건데, 그 수를 두지 않는 날엔 도리어 근심을 부르니 문제다. 나라고 죄책감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더 무거운 족쇄를 차고 있는 쪽이 어딘지 명확하니 더 괴롭다. 이젠 관두자고 해야 하나. 그걸 바라는 걸까.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반대쪽 끝엔 한번 얼굴이나 보자고 묻고 싶은 놈도 있는데 어쩌나. 거절이 두렵냐고 했지. 자칫 잘못하면 어이없이 손에서 놓쳐버릴 것만 같다. 와인이 담긴 유리잔이 깨져 바닥에 조각과 포도물이 낭자한 장면만 떠오른다. 그래서 시도하지 않는다. 불안하다. 만약 안 된다 해도 세계가 무너지는 게 아닌데, 단지 한 번 접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 뿐인데도. 불안해하면서 아닌 척 하는 태도가 제일 문제였다. 지금도 좀처럼 고치질 못한다. 그래서, 써야 해 말아야 해? 정말 네 손으로라도 써서 보내버리고 싶다. 넌 거절에 강하니까 내게 대신 전해주는 거다.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대.” 라고 전해들으면 충격이 좀 덜할까. 바보같은 상상이나 한다.

#117 이름없음 2026/01/23 23:03:17

억지로 잠을 이겨냈더니 수면 점수가 반토막이 나서는 아침엔 휴대폰에게 혼났다. 수면 점수가 엉망이니 제시간에 자고, 잘 좀 자란다. 요 며칠 좋았다고 칭찬해줄 땐 언제고. 오늘 새벽엔 겨우겨우 헤결의 힘을 빌려 잤다. 아무래도 서래가 흘려보낸 잠의 에너지만큼 충전되어 잔 것 같다. 몇 년만에 듣는지 가늠하기도 힘든 노래를 틀어본다. 문틈으로 넘어오는 외풍과 낮은 조도의 조명까지 수면에 아주 최적화된 세팅이다. 일찍 쓰고 넘어가버려야지, 하는 마음가짐만 있다면 언제든 꿈의 나무문을 열고 도망쳐버릴 수 있는 상태다. 아주 오래 전엔 눈을 감으면 생기는 회오리 끝에 매끄럽게 생긴 나무문의 손잡이를 돌려 잠으로 빠졌었다. 그런 버릇이 있단 걸 누군가에게 발화로 말했던 건 10년도 더 이전의 이야기 같다. 몇 년 전부터는 유튜브에서 수면제라고 불리는 게임 영상을 틀어두고 잔다. 그것도 안 되면 헤결의 힘을 빌린다. 초입 대사부분을 읊조리다보면 아침이 와 있으니 편했다. 아주 가끔은 헤결도 안 먹힌다. 운 나쁜 날도 있으니 어쩌겠는가.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시작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한국말로 해달라고, 왜 자꾸 딴 소리를 하느냐고 절규하는 해준의 목소리에 기어이 몸을 일으켜 꺼버린다. 공들여 쌓은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가는 결말은 싫다. 이때에도 선잠은 들었다 깬 상태다. 더더욱 난관에 봉착한 채 약통을 뒤진다. 참았던 타이레놀을 먹던지 억지로 잠의 단계로 끌어내려주는(그러나 깨고 나서도 한참을 개운하지 못한) 약을 찾아 먹는다. 유도제는 아무리 잠이 고파도 별로다. 입면 자체는 상당히 수월하지만 “깨어남”의 과정이 더러워진다. 차라리 이를 악물고 말지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저 밑에서부터 몸상태를 끌어올려야 하는 불쾌감은 참아주기 힘들다. 차라리 처방받는 항히스타민제가 나았다. 공산품이라 그랬나, 하여간 두 알 정도 먹고 속아서 죄다 버릴뻔한 걸 괜히 품고 있다. 언젠가는 찾을 날이 오려나 싶어서. 이 노래를 뜯으면서 글을 쓴 적도 있었는데. 다른 공간에서 그러고 있으니 묘하다. 기억이 맞다면 아주 좁은 공간을 타인과 나눠 쓰고 있을 때였다. 그게 싫어서 매주 도망쳐갔겠지. 아이러니하네, 친한 너에게로 갔었는데 이제는 근황이고 뭐고. 차라리 룸메였던 애한테 연락하는 게 편할 지경이 되다니. 시절인연이 아니길 바랐는데, 그렇게 손에 꽉 쥐면 쥘 수록 반동이 큰 법이다. 노래가 그 시절로 나를 던져버렸다. 지금은 그게 궁금하다. 그렇게 가깝다고 생각한 내가 얼마나 좆같았는지. 나에 대해 아는 게 절반도 안 된다고 느끼기나 했을지. 난 좆같았다. 입안 살 잘근잘근 씹으며 아니길 바랐었는데 수면 아래로 겨우 가라앉힌 사실이 다시 인양되는 그 빌어먹을 기분. 너도 느꼈으니 연락이고 뭐고 없는 거겠지. 튼튼해보였던 건 착각이라고 느끼고부터는 크게 마음을 안 두는 것 같다. 그냥 배경일 뿐이다. 마음을 쓰면 쓸수록 상처가 깊었다. 인간관계가 어떻네 저렇네 떠드는 일도 지쳐버렸다. 생각을 안 하면 편했다. 편리하단 걸 알았으면 진작부터 그리 했어야 했는데. 그랬더라면—. 노래가 흐르고 흘러 여행지에서 반복해 들었던 앨범으로 도착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이 느껴진다.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해서 괜히 선실엔 안들어가고 비산하는 바닷물을 맞기도 했었다. 아. 오지 않은 여름이 그립다. 노래만 들어도 설레는데, 겨울은 아직 반이나 남았다. 2월은 짧으니 금방 달려갈 수 있을까.

#118 이름없음 2026/01/24 17:54:02

220113 41쪽 셀로판지로 바라본 부분일식처럼 너는 그렇게 내 속에 새겨져 있다. 선명하면서 아득하고 다만 완전한 집중을 요구하는 오만함으로. 그토록 멀리. 82쪽 「너, 이런 책 좋아하니?」 「예」 「결국 독서란 읽는 사람에게 본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진 못하는구나」 「형! 달라진 게 이거라구요」 94쪽 명백히 잘못된 길이란 걸 알면서도 그 길을 갈 때가 인생에도 있다. 118쪽 앞뒤가 전부 선한 사람이나 안팎이 모두 악한 인간이란 없다. 인간의 내면이란 수없이 많은 겹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겹겹의 얼굴은 타인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 123쪽 결혼은 건강한 사람하고 해야 해. 글라디올러스하고 건강이 무슨 상관이야? 그 꽃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건강하고 낙천적이야. 꽃에도 일가견이 있는 줄 몰랐군. 176쪽 그러나 사랑이란 계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177쪽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만약 우리가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면 아름다울 테지. 오래 전에 읽은 게슈탈트 심리 치료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땐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영혼으로 만나 피 흘릴 일은 없는 관계, 세상 속에서는 그런 관계만 맺으면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178쪽 비라는 필터를 통해 보는 도시는 누군가를 다치게 할 것만 같던 모서리가 조금씩 뭉그러진 것처럼 보였다. 185쪽 영원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란 그저 행복한 한 순간일 뿐. 소멸되지 않는 것은 기억이다. 시간 속에서 바래지 않고 간절함 속에 후광마저 얻게 되는 것은 다만 기억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것은 사랑이 아니다. 추억만이 영원할 뿐. 187쪽 기억은 이토록 오래 지속된다. 그러므로 달라진 것은 없다. 나는 더 이상 민을 보지 못할 것이다. 달라진 건 그것뿐이었다. 190쪽 무엇이든 잃고 나서야 제 마음속에서 그것이 자리 잡고 있던 공간의 크기를 손으로 더듬을 수밖에 없는 게 나라는 인간인지.

#119 이름없음 2026/01/25 19:03:23

17쪽 불이 켜지지 않자 기다렸다는 듯 이른 밤의 어둠이 밀려들었다. 18쪽 방 한가운데 유독 시커먼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것은 가장 어두운 밤보다도 깊고 새까매 보였다. 26쪽 그녀는 방 안 깊숙이 들어온 어둠의 농도를 살폈다. 일생을 통틀어 이만번도 넘게 검은 밤을 맞았을 텐데, 끊임없이 밤이 지나갔을 텐데, 어둠의 질감을 분간하고 그로써 시간을 짐작할 수 없다는 것에 조금 당황했다. 30쪽 문이 열렸다. 찬 공기가 어둠을 바깥으로 내몰았다. 누군가 주저없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 38쪽 그러고 보니 그에게는 무수히 많은 비밀이 있었다. 어떤 것은 순전히 말할 기회가 없어서 비밀이 되었고 어떤 것은 그가 비밀로 유인했고 제 스스로 비밀이 된 것도 있었다. 비밀은 세포처럼 자생하거나 자멸했다. 이제는 더이상 비밀이 아닌 것도 있고 새로 생겨난 것도 있고 여전히 비밀의 시효가 남은 것도 있었다. 57쪽 오직 그만이 그리고 좁은 골목과 어두운 밤만이 노인이 될 때까지 비밀을 기억할 것이다. 68쪽 모임은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서 고통을 잊지 않고 끝없이 되풀이하기 위해서 유지된다는 걸 말이다. 78쪽 그녀는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지금도 그렇지만, 이제는 실제의 고통을 넘어 어느정도 상상의 고통을 겪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103쪽 점차 사그라들다 한순간 훅 꺼져버리는 불꽃처럼 노쇠한 숨이 이어지다 돌연 끊어지리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노년이란 모든 운명이 종결되는 시기이므로 우연의 신비를 더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체념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불확실성을 확실하고 결정적으로 잠재우는 시간이 아닐까 하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다. 108쪽 숲길을 걸어내려오는 동안 차츰 빛의 잔광이 사라졌다. 121쪽 불운한 일은 왜 혼자 오는 법이 없을까. 불운은 늘 동반자를 필요로 했다. 게다가 경사가 급한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정상에 닿으려는 참이었다. 리듬의 원리상 정상에 도달했으니 더 나쁠 일이 없다는 것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149쪽 그제야 자기가 전력으로 추돌한 것이 동력장치를 갖춘 무기물이 아니라 그럭저럭 평온하게 유지되던 삶의 질서였다는 걸 깨달은 얼굴이었다. 154쪽 사내는 해무 낀 대로 위에서 우연히 교통사고에 휘말려 죽음 직전까지 갔으나 무사했고 무사를 안도한 순간 사라져버렸다. 158쪽 붉은 불꽃이 푸른 불꽃을 품고 있는 것처럼, 따뜻한 온기 속에는 분명 냉기도 함께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를 단호하게 했을 것이다. 198쪽 "무슨 소립니까? AS맨은 벙커를 수리합니다. 명심하십시오. 두려움은 수리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심화하는 겁니다. 아셨습니까?" 217쪽 벙커는 참을 수 없이 어두웠고 고요해서 더 어두운 듯했다. 언젠가는 어둠에 익숙해질 것이다. 유구히 어두울 수만은 없다. 그것이 이 세상의 유일한 법칙이다.

#120 이름없음 2026/01/28 15:36:37

21쪽 나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물을 가져왔다. 뭐든 제자리로 돌아오려면 매개가 필요한 법이다. 25쪽 그러고보면 인생을 아는 건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다. 46쪽 자신이 사람을 살린 건지 사지로 밀어넣은 건지 알 수 없어 겁이 났다. 59쪽 “이쑤시개 때문에 죽는 사람이 번개 때문에 죽는 사람보다 많아요.” 67쪽 긴 인생을 두고 봤을 때 이진수가 군인이었던 것은 잠시뿐이지만 어떤 일은 그럴수록 평생 지속되었다. 80쪽 나이들수록 가까운 게 좋다고, 멀리 있으면 멀어지는 법이라고도 했다. 100쪽 가까이 있으면 거리를 두고 간혹은 적개심을 가지고 서로를 살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친구였다. 124쪽 생각에 잠길수록 그 시절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점점 멀어졌다. 146쪽 “모르는 소리. 본래 불리할 땐 전장을 키우는 거다.” 151쪽 외지인의 전입과 내지인의 이탈이 적다보니 평생 같은 사람을 이웃으로 두고 지냈다. 누군가를 잘 이해하기보다 오해하고 서운하게 여길 일이 많을 것이다. 180쪽 아직은 괜찮았다. 인생이 출발한 최초의 지점에 해결책이 있으리라 여겼다. 183쪽 어머니는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채 말로 해야 겨우 알만한 것들에 침묵으로 맞서고 있었다. 195쪽 어둠이 어머니의 얼굴을 검게 물들였다. 209쪽 하지만 미래는 바라는 대로 차곡차곡 순조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213쪽 아줌마는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나를 구했다. 228쪽 우리는 사후에 누군가의 그리움이 된다는 걸 잊지 않고 싶다.

#121 이름없음 2026/01/28 15:54:59

오늘은 일진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새벽녘부터 연달아 악몽을 꿔가며 잠을 설쳤다. 마그네슘을 오용한 사람처럼 끝이 엉망인 꿈을 세네개씩 꾸니 아침부터 지쳐버렸다. 목에 걸린 닭뼈를 뱉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불투명한 액체만 쏟아졌다. 잠을 흐트러트리고 보니 베개를 높게 해두어서 생긴 답답함이 무의식 영역까지 침범했던 탓이었다. 그러고 다시 잠에 빠졌다가 다시 쫓기었다. 영문도 모른 채 현관문 앞에서 알루미눔 배트를 들고 대기했다. 막상 문을 열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로 잠이 사나웠다. 검은 꿈을 꾼 것을 후회한다느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잇달아 난폭운전을 했다. 비틀거린 채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심박이 빠르게 올랐다. 한 번이면 족할 경험을 두 번이나 맛보다니. 다행히 사고는 없었다. 무사귀환에 건배라도 해야할 지경이었다. 잠든 이를 깨우는 일상적인 어떤 것들, 알람시계의 소리, 연기냄새, 옆방에서 비추는 불빛 등이 현실로부터 침입하면, 꿈속에 그것들을 끼워 넣어서 좀 더 오래 자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꿈은 잠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라깡에 의하면 꿈을 꿀 때 외적 현실에 대한 자신의 (잠든 동안의) 지각 주변으로 꿈이 구성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를 깨우는 것은 외적인 현실이 아니라 그 꿈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이다. 끝끝내 마지막 닭뼈를 토해내지 못하고 각성해버린 내게는 라깡의 주장이 더욱 타당해보인다. 그 꿈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현실의 내가 진실로 목이 갑갑했기 때문이었다. 꿈 내부에서의 작용이 나를 일으켰다. 악몽을 견디지 못하고 미등을 켰다. 어둠이 공간을 집어삼키는 한 재차 어지러운 꿈속에서 헤맬 듯했다. 정동이 한바탕 날뛰고 간 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무질서했다. 그리하여 하루종일 활자에 매달렸다. 문장은 언제나 나를 가라앉게 한다. 거의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대도 좋았다. 이해해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새벽에 겪었던 것들이 무화되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122 이름없음 2026/02/07 00:11:00

곳간이 동나버렸다. 꺼내 쓸 문장이 없다. 고작 일기를 쓰는 데에 무슨 연료가 필요한지. 메말라서 다 갈라져버린 땅바닥에 물을 길어와 한가득 쏟아본다. 흡수될 뿐 무언가 자라나진 않는다. 나무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양분이 필요하다. 숙련자의 글이란 영양소처럼 작용한다. 책과 멀어질수록 한손으로 나뭇가지가 꺾일듯이 유약해진다. 강제성 없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한 장도 넘기질 못했다. 입가에는 읽어야 되는데, 그래야 하는데, 라는 수많은 가능성의 하는데,만 넘쳐흐른다. 내려와있으면 겨울이랄 것도 없다. 여긴 벌써 봄이다. 춥지 않은 날씨에 매화가 핀 걸 보고 있자니 벚꽃인지 헷갈려하는 행인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렇지, 벌써 벚꽃이 필 리 없으니 매화인 것을. 그럴때면 종종 벚꽃의 또다른 꽃말을 생각하며 실실거린다. 중간고사를 방학에 칠 리가 없듯 미리 핀 벚꽃은 거진 매화이다. 설령 과실이 열리지 않아도 그렇다. 벚나무에 비하면 꽃망울이 작고 나무는 보통 낮게 자라며 꽃잎이 조금 더 히여멀건하지만 그런 구분까지 갈 것도 없다. 애매한 감각이다. 확실한 겨울을 보내고 내려오니 기운이 쭉 빠진다. 손끝 발끝 코끝이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도 없다. 한숨 한 번에 길게 흩어지는 미세한 물방울들도 보이질 않는다. 폐부 깊은 곳을 찔러대는 서늘함이 그립다. 두터운 이불이 무더워 뒤척이고 있으면 더욱 그렇다. 잠이 달아나버릴 정도로 덥다. 사람 참 간사하다고, 추워 죽겠다며 보일러 내내 틀 땐 여기가 그리웠는데. 적당하면 만족할 줄 모르고 반대편이나 바라다보고 있다. 어느샌가 망가져버린 생활패턴은 덤이다.

#123 이름없음 2026/02/08 02:49:51

보고싶다. 눈과 함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별것도 아닌 얘기였다. 아니? 너무 특별해서 새벽 잠을 달아나게 한다. 내겐 달콤한 과실이 아니라 씁쓸하고 텁텁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은 큼지막한 돌덩이가 필요하다. 여름에만 구할 수 있다는 전설의. 근데 말야, 왜인지는 정확히 알지만 일단 모른다고 하자. 그냥 보러 갈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그냥 그렇다. 눈을 가늘게 뜬다. 엉킬대로 엉킨 실타래에 손가락을 살살 넣어본다. 지나치게 힘을 주어 풀면 다시 꼬여버린다. 여름으로 다시 겨울로 달아나면 그렇게 일 년이 가버린다. 어쩌면 이번이 적기일까. 아니면 매 계절이 그랬을까?

#124 이름없음 2026/02/10 18:23:00

121쪽 기억의 멀고 가까움이 물리적인 시간이 아니라 강렬함으로 정해지는 거라면 그건 아마도 가장 가까운 기억이겠다. 여름과 겨울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저 돌덩이는 아주 가까운 기억이겠다. 뙤약볕에 땀방울 뚝뚝 떨어트리고 있으면 문득 껍질에서부터 퍼지는 향기가 떠오른다. 일반 만감류보다 훨씬 시큼하다. 콧속에서 가장 눈과 가까운 점막까지 치고 들어온다. 두려움에 반사적으로 침이 고인다. 그러니 만감보다는 레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혹은 자몽? 매양 불러대는 일본식 표현으로 검색해봤더니 표준어로는 하귤이란다. 좀처럼 먹지 않는 과실이다. 적확히는, 즐기는 자가 아니라면 먹을 기회가 없다. 건너건너 때가 맞으면 먹을 수 있지만 구입은 번거롭다. 산지에선 굴러다니는데 상품성이 없는 탓이고, 공급이 적다. 최종소비자에 당도할 때면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버린다. 여름에 내려오지 않는다면, 산지에 가지 않는다면, 혹은 구태여 기를 쓰지 않는다면 구해지지 않는다. 이 계절엔 길바닥에 차고 넘치는 게 귤이라는데, 정반대인 여름에 와서는 어디서 구하겠는가. 코끝에서 향만 어른어른거릴 뿐 정작 먹어본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런 의미에서의 “종종 생각남”은 꽤 잦았다. 온 얼굴 근육을 다 꾸깃꾸깃하게 만드는 시큼함이 싫지 않았다. 대놓고 시다고 하면 각오를 해서라도 먹을 수 있으니. 수수께끼를 내듯 아마도 단맛과 아마도 신맛 사이를 오고가는 귤들은 흔했다. 심하면 일조량 차이로 어느 한쪽만 지나치게 달콤한 열매도 있었다. 그래서 잘 익은 귤은, 하우스가 아니라 노지라면, 보통 귤나무의 중간에 위치한단다. 말단 귤은 맛이 일정하지 않다나. 이제 남은 건 여름에 또 올게요, 라는 인사 뿐인가.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많은 비디오테잎이 만들어진다. 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장소가 바뀐다. 식당, 찻집, 차 안, 어디라도 좋으니 그냥 실없는 이야기나 하고 싶다. 궁금한 것도 많다. 이제 내린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방법도 알려주려나. 참, 하귤이라 말하면 알까. 나도 하귤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125 이름없음 2026/02/11 02:11:19

>>67 안 좆같다. 단전에서 올라나오는 그 기분은 아주 잠시동안 그랬던 적이 있었지,라며 혀를 끌끌 차곤 뒷짐 자세로 가버린다. 이번엔 억지로 그렇게 생각하려 해서 나온 게 아니라 진짜 아무 생각이 없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거나 나보다 티끌만큼 더 불행했으면 한다거나 하는 그 유치한 증오심도 이젠 진짜 다 꺼져버렸다. 실토하자면 장작이 없다. 도끼마저 사라졌다. 장작 팰 나무는 이미 송두리째 뽑혔다. 원래 어떤 땅이었는지 기억하는 영상만 종종 송출된다. 관객없이 홀로 텅 빈 광장에서 허무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로. 이런 의미에서 시간이 약이라 한다면 나는 꽤 오래 걸렸다. 새로운 사람을 더 많이 만나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바빠야 했는가? 정말로? 개인적인 고난은 이미 지겨우리만치 맞닥뜨려서 미봉책으로 덮어내길 반복해왔는데. 이젠 진짜 뭘 쥐어짜내서 쓰려 해도 안 써진다. 허공에 떠다니는 단어를 잠자리채로 휘둘러 데리고 와봐도 거의 대부분이 의미없는 위선이다. 건강한지. 잘 지내는지. 답변은 안 궁금하다. 그러든가 말든가. 손으로 벅벅 문지른 빨랫감을 강하게 비틀어 물기를 쥐어짜내듯이 억지로 쓴다면 쓸 수야 있겠지. 근데 굳이 그래야만 하는가. 버릇처럼 몸에 힘을 주게 되는 몇몇 지명이 있다. 그래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힘 빼게 된다. 맥 빠지는 것마냥. 그래. 그걸 내 원대한 목표였던 덮어쓰기(>>54)가 성공했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다. 방치될 지하실 한구석에 먼지 쌓인 박스 속 기억으로 치환될 줄 알았더라면 애써가며 덮어씌우려 하거나, 고작 생각했다고, 글 썼다고 자책하진 않았을 지 모른다. 시간이 흘렀다. 오래되고 무겁기만 한 파일은 지워버려야 한다. 내 휴대폰은 꼴랑 128기가짜리 저장장치를 갖고 있다. 최근 용량이 모자라 다시 들여다보지 않는 동영상 파일을 대거 지웠더니 30기가나 비워지더라. 딱 이런 느낌이었다. 왜 찍었을까. 자기만족? 어짜피 전문장비 들고 와주는 대포들이 널렸는데. 왜 남겼을까. 미련? 지우면 안 될 것 같은 감각에 케케묵은 먼지 뒤집어써가면서, 잔기침 연신 해가면서, 왜 명명하려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오랜만에 독서 좀 하고 기억에서 잃어버린 내 글도 읽었다. 그랬더니 묻고 있다. 좆같느냐고. 안 좆같다. 네 별칭 대고 누가 물어보면 그럴 수야 있겠지. 가벼운 입이 죄목이라고, 형벌처럼, 짖궂은 장난에 당한다. 발끈한다. 와하핫—. 웃어넘긴다. 그건 너를 끄집어내 내 기분 무너뜨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나에 대한 일종의 의례였다. 두 해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이젠 다른 화제가 너무나 많아졌다. 다들 나이를 먹었다. 무리가 자연스레 나뉘었다. 그나마 낭만을 아는 사람들끼리, 치열하게 현실을 좇는 사람들끼리 찢어졌다. 물론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생각하지만 어쩌다보니 전자에 남았다. 말수가 줄었다. 재미있는 일따위 일어나지 않는다. 도시 태생이라 색다른 경험이 많고, 만나는 사람이 많은 자가 대화 주도권을 틀어잡고 흘러가게 두는 게 좋았다. 난 흥미로운 귀를 꺼내오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떠나오게 된 건가. 자라나게 된 건가. 아니면, 쥐어짜내듯 생각했던 이유가 단지 영감을 받으려고 억지로 고통을 받는 거라는 걸 깨닫기라도 했단 말인가. 정신적 자해공갈이었던 건가. 다 맞거나, 다 틀릴 수 있다. 옳고 그름이 중요하진 않다. 주요 화제로 잡고 글 쓰는 게 마지막이란 확신을 주면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 것이다. 154쪽, 어떤 기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런가. 확실히 그렇지. 하지만 서서히 바래는 기억도 있다. 오래된 앨범 속 귀퉁이가 삭아버린 사진처럼 언젠가는 열어보겠지만 지금은 아니고, 가까운 시일도 아닐. 이제 정말 뚜껑 닫는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라면 그나마 햇빛이 들지 않을 것 같은 곳에 두어, 지하실에 들어오자마자 단번에 눈에 띄지 않게 한다는 것이겠다. 쿰쿰하잖아. 이런 곳은 그냥 습기 머금은 벽지의 퀴퀴한 냄새를 품는 곳으로 남아있으면 족하다. 나는, 그냥 산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아직 다 낫지 않은 다리로부터 느껴가며 산다. 회신에 집착하지 않으려 먼 시일로 예약메일을 보내고, 사주에 부족한 수 기운 채운답시고 바다를 배경화면으로 해둔다. 돌아오는 여름엔 성공률 반반인 파도 거스르기 하러 가겠지. 성공했을 때 얼굴로 불어오는 후텁지근한 맞바람을 느끼고 싶으니. 그러다보면 성공 확률은 점점 오르지 않을까.

#126 이름없음 2026/02/11 19:19:33

별것도 아닌 건데 왜 지레 겁먹었지? 이제는 손꼽아 배송이 오기만 기다린다. 설 연휴 꽤 기네. 그냥 하루만 하면 안 될까? 안그래도 늦는데.

#127 이름없음 2026/02/12 23:31:30

그냥 궁금해하지 말걸, 어짜피 해결되는 건 없고 그림자만 보여준 셈인데. 이제 적정선은 넘겼으니 남은 건 판결 뿐이다. *오늘 운 참 좋았다. 별로인 듯했으나 지나고 보면 결국 좋았다. 알고 따라다니는 것마냥 타이밍이 지나치게 맞았다. 우연도 세 번 연속이면 필연이라는데 역시.* 누군들 그러고 싶었겠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운명의 장난에 놀아난 기분. 가볍게 파도 타다 보드 뒤집히듯이 물에 잠겨버리기나 하지. 왜 발화를 해버려서 의미로 만들어버렸지. 4시간까지 찍은 수면시간이 재차 토막났다. 새벽에도 선잠과 잠 사이를 쏘다니느라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오후에 잠깐 나아져서 향했다. 혀에 가시 돋치는 것보단 책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문장이 채워지는 느낌이 더 좋았거든. 의도와 상관없이 우연히 얼굴 맞댔을 뿐인데 왜 내가 불안했나. 그런 식이었다. 앉아있어도 심장이 지멋대로 유리창 깨트리고 땅바닥에 몸을 던졌다. 몸이 비상인 줄 알고는 심리를 뒤흔들었다. 왜 심호흡은 안 한거지. 증상이 아니라고 느껴서 그랬나. 머리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활자는 잘 읽혔는데 체한 것 같았다. 기왕이면 심장을 포함해서 저녁으로 먹은 거 죄 토해내고 싶었다. 그러니까 알고 싶었을 뿐이다. 왜지? 왜. 뇌는 심장이 궁금했다.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었으므로. 이게 일반적 범주를 넘나드는 거라면 의도해서 멀어지기 빼고 다른 선택지 같은 게 없어보였다. 초조했으면서 왜 굳이 얽히려고 하는거지. 감정에 대해 확실한 건 싫지 않다거나 좋다의 상위이긴 했다는 점이다. 애초에 상위레벨로 분류를 해놓곤 사랑이니 아니니 떠드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담.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 돼버리는데, 맞다고 해봐야 자책만 반복해서 괴로웠다. 롤러코스터 탄듯한 낙차가 싫었다. 차라리 업앤다운인 거 알면서 맛보러 가자고 각오나 할걸. 지나치게 달고 아주 썼다. 손가락 끝이 부르르 떨린다. 곤두박질이 무서워서 오르고 싶지 않은 거였다. 이걸-. 다르게 표현해보자. 달달한 과실만 냉큼 빼먹고 싶은 거였다. 이게 무슨 오만함인가? 아니, 애초에 달달하고 쓰다고 감각하는 건 나—혹은 뇌—였는데 누구 탓을 하는 건지. 바로 내놓는 쓴 열매는 다만 내 심장이 뜀 - 불안하고 초조함에서 오는 거였지 당신이 그러라고 한 게 아니었다. 맛을 착각했으면서 당신 탓을 했다. 생각이 짧았다. 경광등 시뻘건 채 회전하는 뇌에선 제대로 된 경로를 거치지 않은 날것이 쏟아져내렸다. 정신 차려야지 싶어 미친놈처럼 찬바람을 맞으며 오심을 삼켰다. 우웨엑. 결국 마른 욕지기를 내뱉는다. 나아질 리가, 진짜 토해내고 싶은 건 없었으니. 심박수를 측정해보면 110~120이 찍혀있어 웃다가 진지해졌다가 그냥 쌩쑈하고 앉았던 거였다. 진정해보니 이제 알겠다. 그냥 병신짓한거다…. 왜 이런 실수를 했지. 하여간 강제 휴식기가 있으니 더 차분히 비춰봐야겠다. 감정에 라벨링이나 카테고라이징은 의미없다. 무언지 제대로 들어맞는 개념어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A였다가 B였다가 ㅎ으로, ㄲ으로 맘대로 변했다. 도망치는 마음을 붙잡아도 이름표 달아주기 전에 다시 달아났다. 그리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당신은 저기 멀리 떼어놓고 나만 들여다봐야겠다. 고정되고 객관적인 생체 기록들도 전부 버리고 단지 나랑 나만 남겨본다. 생각하느라 머리 터져서 잠 못 잔 거 맞고, 수면시간 확보 못한 걸로 또 스트레스 받았다. 마주치고 나서 체할 것 같이 뛰는 심장에다가는 왜 심호흡 안 던져놨지. 일단 심장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불안이 등떠미는 방향에 맞춰 엎어지는데. 다음번엔 마주쳐도 호수처럼 만드는 걸 목표로 해야겠다. 아니 사실 마주하고 있을 때는 괜찮다. 능청스러운 척 연기하는 고프먼의 연기적 자아가 아주 훌륭하다. 문제는 막 뒤에서 기록하는 내가 미쳐서 온 무대를 쑤신다는 거다. 계속 이딴 꼬라지면 나만 고꾸라질 뿐이라구. 병신 아니잖아, 미친놈은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심호흡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20분이나 찍혀 있었다) 왜 내 글에 파묻히도록 친구놈에게 보내버렸을까. 의미화 과정이 반복 될수록 날것의 생각이 정답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근데 알아야 좋았을 것 같긴 했다, 언젠가는 말할 예정이었다. 이런식은 아니었을 거 같긴 한데… 하여간에. 거절이 무섭고 반갑지만 불안하고 이런 거 다 총체적으로 심박수 컨트롤 못해서 생기는 일이었다. 심호흡 하면 될 걸. 등판을 뜨겁게 지진다. 억지로 땀 삐질삐질 흘린다. 좀 개운하다. 익히지 않은 날것이 드디어 송골송골 맺힌다. 몸에서 체온을 빼앗고 나가버린다. 다음 주엔 어떤 행동이든 하기 전에 그놈의 체할 것 같은 느낌 오면 바로 심호흡 해봐야지. 이런 것도 훈련하는 거다. 진짜 음식 얹힌 게 아니라 그냥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저 멀리까지 달려가버리는 심장 때문에 그러는 걸 알면… 컨트롤타워가 와서 진압해야지. 평탄화 시켜야지. 결국 내 손에 들린 키를 한참동안이나 외부에서 찾으려고 애쓴 셈이다.

#128 이름없음 2026/02/12 23:41:25

현실이 꿈같아서 잠을 못자는 거였나. 적어야했고 잊히길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선명한 교훈은 있다.

#129 이름없음 2026/02/13 23:57:08

>>91 아예 패러다임을 뒤바꾸는 게 좋으려나 1년 뒤에 추천받은 책을 읽으면서 패러다임을 전환하게 되다니. 기막힌 우연이다. 173쪽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에 쓰인 내용을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과학이라는 언어놀이는 어떤 놀이일까? 그리고 그 놀이는 어떻게 해서 다른 놀이로 전환될까? 하는 것입니다. 쿤은 과학의 틀, 과학자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상식의 총체를 패러다임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이런 새로운 사실이나 이론이 일련의 규칙에 의해서 진행된 게임에서 우연히 만들어진다면, 이것들이 동화되는 데에는 또다른 일련의 규칙이 필요하다"라는 비트겐슈타인적인 비유를 썼습니다. 174쪽 쿤의 패러다임론에서 중요한 것은 변칙현상anomaly(아노말리)라는 개념입니다. 아노말리란 '과학적 상식에 비춰보았을 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 일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213쪽 그 변화는 복원력resillience의 유무에 따라 결정됩니다. 안정된 평형점에 놓인 왼쪽 공은 변화가 일어나도 복원력 덕분에 알아서 원래 위치로 돌아갑니다. 그에 비해 불안정한 평형점에 놓인 오른쪽 공은 균형이 깨지면 두 번 다시 원래 위치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만약 원래 위치로 돌려놓고 싶다면 공, 곡면, 중력이라는 닫힌 시스템 외부에서 힘을 가해야 하죠. 246쪽 우리에게 무언가 행동을 촉구하고, 심지어 그 행동이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것을 생명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262쪽 편지는 수신처가 있어야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편지를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보내는 증여에는 '수신처로서 그저 거기 존재한다.'라는 차원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증여할 수 있습니다. 증여를 받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해도, 존재 자체만으로 증여의 수신처를 주는 발신인, 그런 발신인의 존재를 강력하게 전면적으로 긍정합니다. 대체 누가 누구에게 증여를 하는지 알 수 없어지고, 수취인과 발신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한하게 교체되는 듯한 상황이 있습니다. 발신인과 수취인이 하나로 뒤섞였다고 해도 되죠. 그런 상황에서는 더 이상 주다/받다라는 계층 차는 사라지고, 관계가 병렬적으로 변해갑니다. 그렇다고 하면, 나는 당신으로부터 둘도 없는 소중한 것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답례가 되지 않을까요? 263쪽 꼭 말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이제 답례를 못할수도 있지만,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이것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보여주는 것 자체가 답례인 것입니다. 전달자에게 수취인의 존재는 구원처럼 작용합니다. 수취인의 존재가 전달자가 느끼는 부당성을 정당한 것으로 바꿔주기 때문입니다. 274쪽 "글을 쓰면서 내가 텅 비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거야." 텅 비었다는 자각에서 글이 시작되는 게야. 그게 올바른 거라네. 그렇게 말씀해주신 것 같았습니다. 275쪽 '나는 텅 비었다'는 것은 현재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전부가 남김없이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타인에게 받은 증여가 내 속에 쌓여 있다는 것이죠.

#130 이름없음 2026/02/15 00:44:46

작년에 뽑아 없애버렸던 왼쪽 사랑니 자리가 욱씬거린다. 세 조각으로 나눠 뽑힌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무엇을 암시하는 것이지. 미처 뽑지 못한 반대편이 아픈 거면 몰라, 왜 뽑힌 자리에서부터 기인하는 통증이 나를 괴롭히는지 알 수 없다. 환상통인가. 사랑니따위 없어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밤도 잘 자기는 글렀다.

#131 이름없음 2026/02/15 08:57:19

아리가 쏜 심장모양 투사체에 하루종일 걸려서 매일 죽고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나는 현혹의 구슬에 맞아죽고, 여우불에 타죽고, 평타에 천천히 죽는다. 다시, 다시, 되살아난다. 다만 아리의 매혹에 걸리고 그가 혼령 질주로 나를 죽인 뒤 전장을 유유히 빠져나가는 걸 보기 위해서. 다시 가서 머리를 처박고 게임을 망치고 팀원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

#132 이름없음 2026/02/15 09:33:13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 없다 그래서 남자가 연신 기침함 목격자 옷은 이거 아니고 파란 원피스였어요. 코트도 없이 해준 파랑 맞아요? 녹색 아니고? 연수 파랑 맞구만. 뭐하고 있는 걸까요. 서래 왜 자꾸 물어요. 내가 여기 왜 왔는지 그게 중요해요 당신한테? 그게 왜 중요한데요. 당신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요. 해준 파랑으로 보였다 녹색으로 보였다 하는 거 어딨어요. 서래 자세히도 봤네요. 해준 샅샅이 뒤졌는데…

#133 이름없음 2026/02/16 02:38:40

벽에 핀 곰팡이를 뚫어져라 보는 해준. 의사가 권유한 양압기를 끼고 숨을 아무리 쉬어도 눈은 감기지 않는다. 그러다 언제 잠을 편안히 잤는지 생각하는데, 기억 속에 서래가 있다. 서래 잠은 좀 잡니까. 해준 병원서 잤는데 내가 한시간에 마흔 일곱번 깬대요. 믿어져요? 서래 내 잠을 빼주고 싶네요, 건전지처럼. 해준 숨을 입으로 쉬어서 그렇다고. 잘때 코로 숨쉬게 도와주는 기계를 쓰래요. 이상해요, 깨 있을 땐 코로 쉬는데. 들숨 날숨을 해준이 먼저 쉰다. 곧바로 서래가 심호흡을 잇는다. 미 해군이 개발한 걸 그녀가 발전시켰다고 했었다. 바로 그 방식이다. 함께 연습한대로 해파리가 되는 해준. 해준 그렇다고 잘 때 코 곤다는 건 아닙니다. 서래 알아요. 수갑을 찬 채 포개진 두 손. 두 사람의 호흡수가 비슷해질 때 그는 홀연히 잠든다. 양압기도 없이 차 뒷자석에 앉아 아주 편안히.

#134 이름없음 2026/02/16 02:55:39

일주일 째 해준 모드로 들어와있는 것처럼 딱 4시간을 넘기지 못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내 잠을 빼주고 싶네요, 건전지처럼.” 은 그래서 무지막지한 사랑의 언어처럼 들린다. 얼마나 사랑하면 수면까지 내줄 수 있는건가. 설령 자신의 새벽에 잠이 뒤미처 온다 하더라도 상대를 잠으로 밀어버리고픈 마음이라니. 한참 뒤척이다 잠에 빠졌지만 입면을 유지시키지 못해 떠지는 눈에 바로 조명을 켰다. 퇴고없이 글을 날리고 다시 잘 수 있게 기대어 보는 건 헤결 뿐이다. 근 일주일 간 집중적으로 봤다.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도저히 잠의 소용돌이로 빠질 새 없이 잡념에 이리저리 휘청였으므로 들을 게 필요했다. 책 읽듯 묵독으로 대사 따라하다보면 해파리가 되어 물에 떠다녔다. 아마 다시 그리 하겠지만 잠시 눈을 떠 생각을 가다듬는다. 요 며칠 강박적으로 기록하려 한 것도 원인 중 하나일테지. 260215 다만 매섭게 뛰는 심장을 한가득 껴안고는 간다. 마치 음식이 얹힌 것처럼 속이 메스꺼워진다. 불편하다. 불안하다. 겨우겨우 찬바람으로 진정하고, 복잡해진 머리를 달래려 심호흡을 해보지만 이도저도 안된다. 전부 꼬인다. 간만에 재미있는 이벤트가 생겼는데 놓치자니 아쉽기도 하고, 글이란 게 쌓아둘 때 쌓아두지 않으면 괜히 아쉽다. 일상에서 소재를 끄집어내야 하니 쓸만하지도 않고. 아. 지금도 눈만 가늘게 뜨면 저 멀리서 걸어오는 모습이 선하다. 벌써 늘어졌어……. 테이프를 얼마나 돌려본 거야. 으슬으슬 오한이 든다. 속은 울렁인다. 더 확장시키기 전에 어서 잠으로 도망가버려야지.

#135 이름없음 2026/02/16 07:03:13

실패해서 뒤척였다. 240322 나는 아직도 그 말이 복선 같다. 잎과 꽃이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하자마자 나와 당신의 세계가 갈라졌다고 믿는다. 240323 ねえ、できないこと 叶わぬこと 있잖아, 할 수 없는 건, 이룰 수 없는 건 何もないと思ってたん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 240324 잘 보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뒷자리가 당신이었다. 240418 모두 엎드려 잠을 청하는 시간에 나와 당신은 교탁 앞에 경계를 친다. 당신이 익숙하게 쓴 한자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진 적이 있다. “왜 이렇게 조폭처럼 걸어, 이리 와봐.” 언제나 등 뒤에 벽이 있는 것처럼 등을 쫙 펴. 240419 성냥을 빠르게 긋는다. 바람을 오른손으로 막으며 무릎을 꿇어 마른 장작에 가져다 댄다. 이윽고 세를 넓히며 등장하는 불꽃을 본다. 나의 온도로는 여기까지가 한계인데, 당신을 되새기면 파란 불꽃까지는 아무런 무리 없이 볼 수 있었다. 240429 그런데 이런 장면이라니 너무 잔인하다. 나는 울었다. 울부짖었던 것도 같다. 가지말라고 했던가. 바다내음이 짙었다. 내가 가지말라고 해봐야 떠날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240719 처음엔 분명 불투명한 가래침이었던 게 깨어날 때쯤 되니 케찹같은 농도와 색을 지닌 액체를 토하고 있었다. 119 좀 불러봐. 그러고도 사람들 앞에서 불명의 액체를 쏟아내다가 꿈에서 깼다. 하도 희한한 꿈이라 해몽을 찾아봤더니 역시 개꿈이다. (>>121) 보고싶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구전신화 속 인물 말고 진짜를. 240830 여전히 난 그 기억의 여름 속에 있어 너도 알잖아 I'd be nothing without you 당신이 고른 책의 구절은 지난 고민을 반영하고 있었다. 부치지 못한 편지에 쓰인 ‘잃어버린 여름’을 찾아낸 것 같다. 240922 지키려던 건 아니었는데 야 싸워 싸워 하면서 개판으로 싸울 때, 정권 지르는 그 느낌 너무 생생했다. 241125 코트입고 해맑게 웃고 있으면 난 뭘 해야하나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고 현실에서 체할 정도로 누군가를 좇아가면 꿈에선 당신이 나와 균형을 맞췄다. 무슨 꿈을 그렇게 많이 꿨는지. 24년은 꿈일기 지분이 아주 높았다.

#136 이름없음 2026/02/16 10:21:46

250112 그때 잠시 시간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중력이 일시적으로 매우 강해 시공간을 휘어버렸으므로, 심장이 달음박질쳐 청각이 흐려졌다. 어정쩡한 자세로 나도 당신을 껴안았다. 예상보다 마르고 판판했다. 그때 우리 분명 나란했다고 생각했는데. 신맛을 너무 잘 느껴서 탈이라고 했다. 나도 그랬어. 맛있게 먹으면 주려고 했을텐데, 열매는 받지 못하고 내내 당신 책상에 남아있었다. 공통점을 찾아내는 대화가 퍽 즐거웠다. 아마도 단맛과 아마도 신맛에 대한 이야기는 그때 한 거였다. 당신은 그 열매를 ‘아마’ 버리게 될 것 같다고 했다. 미안하니 남겨두는 거였겠지. 250113 창문 밖으로 싱그러운 녹음이 흔들거리는 여름의 초입에 나는 때이른 입수를 해버렸다. 천장에선 덜덜거리며 선풍기 날개들이 돌아가고, 손바닥만한 스피커에선 전자음으로 증폭된 당신 목소리가 전해져 귀를 울린다. 250114 그날은 유독 조용하고 차분했다고 기억된다. 마치 내가 당신의 아우라를 살짝 훔쳐오기라도 했다는 듯. 수더분한 잔짐이나 옷가지 없이 차 안은 텅 비어있었다. 오래됐지만 잘 관리됐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반짝반짝 잘 닦여 있었다. 아마 글러브 박스에도 별다른 무언가가 없었을 것이다. 껌이나 주전부리, 생수병 같은 잡동사니도 전혀 없었다. 주인과 차가 닮아있었다. 250223 초조히 편지함을 새로고침한다. 그러다 시간을 흘려보낸다. 가끔은 답신이 오기까지 기다리기가 싫어서 접었던 적도 있다. 당장 두어시간 전까지만 해도 왜 안 오지, 싶었다. 무릇 편지라는 게 그런 일이니 편안히 기다려보자 해도 쉽지는 않다.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오는 불안에 대해 생각한다. 마음 쓸 곳에 확실하게 쓰면 잊어버릴 수 있을까. 250224 생각을 놓아버릴 자유를 주라고 말한다. 결국엔 내가 틀렸다. 아집을 부리며 놓지 못하고 있던 건 나 하나다. 애쓸 필요도 없이 흘러가게 두면 알아서 흐른다. 늦지도 않았어. 이제라도, 이제부터라도 그냥 가만히 두자.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는 없다. 지금처럼 어떤 파장에도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못하겠으면 최대한 빨리 돌아오면 돼. 그러다 결심이 서면 아예 눈앞에서 치워버리겠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137 이름없음 2026/02/16 10:25:26

명시해둔 고민은 일 년 쯤 되면 풀린다는 걸 알게 됐다. 시간이 더 필요하댔던 건 진짜였다. 무언가 “고치고 싶다”고 내게 말하면, 나는 기다린다. 고친다. 고쳐진다. 그것을 미래의 내가 읽으며 깨닫는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묘하게 퍼지는 쾌감을 잃기 싫어 기록을 이어간다. 그때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안도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자기파괴적 주장에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로 기능하기도 한다.

#138 이름없음 2026/02/17 21:57:24

눈앞에 없어도 청룡열차를 탄다. 눈 감으면 떠다니는 증상은 사라졌지만, 식욕 감퇴에 적잖은 양극성 감정은 여전하다. 만나면 다시 돌아오겠지. 눈 감으면 자꾸 시간을 되돌려 그때 장면을 쓰고 다시 쓰겠지. 오랜 버릇이다. 잊기 싫다는데 뭐하러 휘발시키려 하나. 나쁜 기억도 아니니 괜찮다. 혼자 마음 속에서 뛰놀다 지쳐 쓰러지고, 우물 하나 깊게 팠다가 메우고, 시소의 균형점을 찾으려 살살 걸어본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이 보고싶다. 괜히 선인들이 수련한다고 폭포수 맞으며 인생무상, 색즉시공, 하며 불교 경전 외우는 게 아니었다. 새해 기념 대청소 할 때 한뼘만큼 컸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사랑 방식은 고치지 못하는 모습 보면 성장과는 무관한가보다. 이러니 생각이 많고 실전에서 담백하지 못한 걸까. 그래도 이번엔 힘 많이 뺐어. 남은 건 고프만적 자아에 모두 달려있다. 엄연히 말해서 당장의 나는 아니다.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는 그저 과거의 나이므로. 뽑힌 사랑니 자리에서부터 뻗어오는 통증은 줄었는데 이젠 잇몸이 가렵다. 이미 유치 다 빼고 평생 써야 할 이 받은지가 한참인데. 새 이가 나려는 것도 아니고 미친듯이 가렵다. 차라리 몸이 가려웠으면 싶다. 벅벅 긁기라도 하게. 생각이 많다. 정제된 문장으로 완성시킬 시간조차 없다. 쳐내지 못할 속도로 공급된다. 고르고 고른 선곡도 진정시키지 못한다. 가삿말 보며 이게 무의식적으로 남아 상상에 보탬이 됐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죽을 맛이다. 이 노래는 왜 걸어놨을까. 저번에 그때 그거. 뭐였더라. 지난날의 내가 착실히 플레이리스트까지 짜놨었다. 보고서는 한참을 소리내어 웃었다.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 나답게 가라는데 나답게가 뭐였는지 잊었다.

#139 이름없음 2026/02/19 06:13:10

당신이 오늘 두시에 온다면 나는… 잠이 안 와서 다섯시부터 뒤척이나. 캔들워머를 몸에 가까이 붙인다. 울렁이는 기분에 엊저녁을 대충 먹었더니 몸을 데울 연료가 없어 으슬으슬하다. 감기 올랑말랑할 느낌, 손발이 차다. 평소라면 뜨겁다고 생각했을 워머가 따뜻했다. 핫팩처럼 감싸쥔다. 온기가 손바닥을 빠르게 덥힌다. 말그대로 번쩍이었다. 눈뜨고 보니 다섯시 정각이었다. 헤결과 심호흡에 기댔지만 80bpm에서 떨어지지 않으니 노래로 환기시켰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말짱해졌다. 곧있으면 사위도 밝겠지. 반드시 떠오를 해를 기다리다니. 돌다리 두 칸 세 칸씩 뛰어넘는 것처럼 잠으로 도망치고 싶었는데 만끽하게 생겼다. 뒷목에 닭살이 돋았다가 확 감춰진다. 가만가만 쓰다보면 신체 반응에 더 집중하게 된다. 숨은 어떤지, 심장은 어떤지, 손가락 끝이니 발가락 끝에서 전기가 튀진 않는지, 피가 모자라다 느끼진 않는지. 물을 아무리 마셔도 혈액이 모자란단 착각에 휩싸인다. 소금이라도 들고 다녀야 하나. 농도가 필요했다. 절대량이 모자란 게 아닌 듯했다. 어떤 대화를 하면 좋을지 미친듯이 찾고 있다. 기왕이면 봄을 조금만 앞당기고 싶었다. 이런 겨울은 겨울도 아니긴 한데, 향초의 향이 아니라 계절로, 시간으로 앞지르고 싶었다. 알고 싶은 게 많았다. 서서히 스며들고 싶었다. 잘린 껍질에서 나온 입자가 폐포 하나하나에 각인되듯. 어떤 향수도 완전히 동일한 향으로 맡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알아내고 싶었다. 사실 내 체향하곤 완전히 달랐다. 섞이니 매력이 반감된다나. 차라리 이건 어때요? 하면서 뿌려준 향이 훨 나았다. 그래서 당신에게 착향되면 어떻게 변주될지가 매우 궁금했다. 고작 이런 이유 때문에 벌써부터 잠이 안 오나. 그걸 꼭 알아야겠어? 몰라도 되잖아. 잠부터 자도 되는 거잖아~ 라고 투정 부려봐도 눈꺼풀은 좀체 무거워지지 않는다. 어쩌겠어. 내 몸이라고 전부 내 의지대로 될 거였으면 지난밤 겪었던 불면은 다 거짓이게. 차라리 읽다가 접어둔 어려운 책을 꺼내 한장 두장 넘기다 잠 구덩이로 차여버리는 게 나을지 모른다.

#140 이름없음 2026/02/20 13:00:46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싱글생글하면서 들어왔으면 좋았으련만, 차라리 현실에 가까운 것은 이쪽이었다. 천천히 되씹는 동안 교훈을 많이 찾아냈다. 줄곧 이런 관계에서 충전해왔으니 이제는 바꿔나가야만 한다는 것. 이것만큼은 분명했다. 최근엔 영역이라는 개념에 골몰한다. 영역, 온전한 내 영역이 존중받길 원한다면 먼저 상대를 존중해보자. 필요성은 줄곧 제기되어왔다. 아무리 손뻗어도 닿을 수 없는 게 있다, 그런 마음조차 갖지 않아야 한다. 제한하지 않으면 실수를 반복할테니 강하게 가자. 천천히 호흡한다. 피가 마르는 기분은 과한 긴장과 불안에서 기인한 착각이라고 생각하면서 찬바람을 맞았다. 스스로 일깨울 수 없다면 자연의 힘을 빌어서라도 일어나면 된다. 서서히 걸었다. 침까지 맞아도 절뚝이는 다리가 웃겼다. 올라가기 전에 한번 더 보러 오라는 신호겠지.

#141 이름없음 2026/02/20 16:38:17

도저히 떨칠 수 없겠다. 쓰고 나서 강화되는 생각이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아침엔 아주 쨍한 하늘이었다. 얼마만인가, 하면서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녹음이 좋아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세상이 모두 빛나보였다. 눈이 안경 너머에 필터를 한 겹 더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뿐이었다. 일은 순조로웠다. 다음으로 떠나는 버스가 항상 아슬아슬한 것만 제외한다면. 걸음을 서둘러도 모자란 거리는 뜀박질로 메웠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 조여왔다. 가슴께의 옷깃을 부여잡고 한동안 숨을 골랐다. 점심을 먹고 자리잡은 카페의 창가에선 한동안 바람이 불며 구름이 서서히 시퍼런 하늘을 가렸다. 어라, 아침에 맑지 않았나, 하며 사진첩을 열어보니 기억이 맞았다. 분명 깨끗했었는데. 기분엔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감기는 눈꺼풀을 어찌하지 못해 선잠을 잤다. 집중이 잘 안됐다. 결국 끝은 못봤다. 마지막 장까지 꼭 보고 싶었다. 읽는 속도보다 어둠이 빨랐다. 손님이 줄고 줄어, 눈앞엔 중년 부부만 남았다. 다정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끝을 향해 가고싶은 심정이 더 무거웠었다. 그러나 시소처럼 중심점이 차차 이동해갔다. 머릿속이 뒤엉켰다. 해답 없는 미로를 헤메는 기분이었다. 아찔했다. 입안 점막을 모두 벗겨버릴 것 같던 차도 완전히 식어빠진 채였다. 애초부터 냉침해둔 차에 미적지근한 물을 부어버린 꼴이었다. 페퍼민트였다. 답답한 속을 달래려 시켰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조여오는 감각이 심해졌다. 찻잎가루가 약간 가라앉은 마지막 몇 모금을 급히 넘겼다. 아무래도 텄다. 그래, 돌아가지 않으면 황량한 카페 안에서 잡념에게 질질 끌려다닐 터였다. 알아보니 버스 시간은 46분이나 남아있었다. 경유지를 낀다면 기다리진 않을 수 있어도 시계의 배터리가 3%뿐이었다. 자칫하면 환승에 실패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이었다. 결국 한방에 가는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문장이 읽히지 않고 머리를 잠시 들렀다가 손끝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무상한 눈으로 페이지만 넘겼다. 어둠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니 긴장과 맥이 동시에 풀렸다. 오랜 시간 켜뒀던 스위치를 누가 대신 내려주는 느낌이었다. 외출복도 갈아입지 못하고, 끈적한 땀도 씻어내지 못하고, 홀연히 잠의 입김에 넘어졌다. 단잠이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단했다. 어느 때보다도 긴 하루였다. 오락가락하는 기분 달래며 책장 넘기려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미치진 않고 찬바람 맞으며 서서히 이해했구나. 정확히 무엇을 알아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구름 낀 어둠 속에 홀로 서있으면서 불어오는 찬바람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언어로 표현하자면 까다롭겠지만 ‘알 것도 같다’는 마음만 남아있다. 돌이켜봐도 모르겠음과 앎 어딘가에서 요동치는 내가 보이지만 그게 중요하겠는가. 날이 건조해 쉽게 코피가 흘렀다. 코를 틀어막는 건 미봉책일 뿐이고, 혈관이 출혈을 멈출 때까지 아주 세찬 손길로 짓눌러줘야 한다. 몇방울 흘리다 서서히 멎어갈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142 이름없음 2026/02/21 09:14:22

다리가 지끈거릴때마다 현기증이 인다 기억 속 당신이 희붐한 안개 속에 서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아무리 기억해내려고 해도 인양되지 않을 결정적인 파편이 있다. 분명 함께 삼켰는데 왜 토해낼 수 없을까. 박히다못해 피부 안에서 녹아버린걸까. 끄집어내는 상상을 한다. 얼마든지 다쳐도 좋으니 원형을 보여달라고. 종종 선 하나를 넘는 생각을 한다. 한번이면 쉽지 않을까. 당신의 불꽃을 쥐고선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증여라는데 왜 텅 비어있지. 멍하니 감은 눈을 떠보면 숨이 막혀온다. 좁은 방안에 피워둔 강한 불꽃이 산소를 연료로 타오르느라 내 숨을 앗아간 것이었다. 어지럽다. 다시, 현기증. 내일로 가고픈 누군가를 꾸준히 봐왔었다. 억지로 만드려 하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는 방향대로 멀리서 천천히 걸어왔다. 통증을 느끼며 멈추어 선다. 뜨겁고 강렬하다. 타자로부터 넘어온 힘으로 삶을 추동해왔다. 지금보다 몇 뼘은 작은 내가 택한 생존 방식이었다. 반면 의식 층위에서 인지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라면 고작 삼사년 전이니. 당신은 반드시 충전이 필요한지 물었다. 방식에 대한 것인지, 필요성에 대한 것인지, 의무적인 것인지, 전부 다 묻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 대답했다. 대답 내용은 기억에 없다. 견고한 벽이 필요했다. 벽돌마다 쎄멘 정성스레 발라 쌓아올린. 온몸 힘껏 던져도 다치는 건 나였으면 했다. 실제로 그랬다. 당신을 상상하면 나는 쉽게 곧은 걸음걸이로 돌아왔었으므로. 쎄멘도 비가 심하게 오는 날엔 함부로 타설 작업을 하면 안 된다는 중대한 사실따위 모르고 있었다. 구급차가 창문 너머로 지나간다. 음파가 점차 멀어진다. 적색편이와 도플러 효과는 과학 교과서에서 단짝마냥 나오는 개념이었다. 시뻘건 경광등을 달아둔 앰뷸런스가 멀어질 때 음파와 광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그림을 기억한다. 관측자가 가만히 있고 광원이 멀어질 때는……. 볕이 선명할수록 그림자가 길다. 끄트머리에 얄미운 발로 짓이기는 누군가 보인다. 가만 들여다보니 익숙하다.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있었구나. 하긴 저것도 나인데. 너는 누구냐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쓸데없이 비장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바라던 건 아닌데 이렇게 자랐어. 그렇게 싫었는데 먼바다에서부터 나는 단단한 손의 감촉을 느끼며 인양된다. 숨이고 생이고 그때만큼 달콤할 수가 없다. 단 한순간을 위해 적절한 때가 언제인지 모르고 기다린다. 눈을 감고 숨을 참고 몸에 힘을 빼면 알아서 두둥실 떠오른다는데, 몸은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지나치게 비장하다. 하지만 경험이라는 걸 무시할 수 없다. 그렇게 사그라들었어야 했는데 물 먹혀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몸을 던져 들어와준 당신을 반복적으로 찾는다. 농도가 연해질 때쯤 밤을 헤맨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땐 모조품이라도 찾아 끼워맞춘다. 이게 살아낸다는 건가. 음성 없이 울부짖으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새벽까지 희미하게의 추모 산문을 읽고서는 겨우 꺼이꺼이 울었다. 심장을 갈라 회칼로 긋는 듯한 날카로움이 퍼졌다. 관통하는 듯한 얇은 바늘의 서늘함도, 잘려진 살점의 비릿함도, 전부 현실감각처럼 다가왔다. 기억하고 아파하지 않으면 부존재 증명만 반복됐다. 찾아나서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냈다. 아팠다. 기억했다. 악순환 속 행진을 반복하다보면 안개가 걷히고 있다는 착각에 휘말렸다. 저 안개 너머 서있을 당신이, 정말로, 있었던가. 사랑이라고 말이나 하지 말지. 이룰 수 없을 거라 단정해버려서 우리가. 아니, 내 세계만 동떨어져 버린 셈이지 않느냐고. 그러니 다시 와서 아니라고 취소하겠다고 바보처럼 웃어보라고. 아무리 외쳐도 답은 없다. 퍼지는 메아리. 관자놀이에 우지끈한 통감이 느껴졌다. 돌아갈 수 없을까. 아— 돌아갈 수 없을까.

#143 이름없음 2026/02/23 09:17:48

당신은 머릿속 수많은 타자가 내뿜는 에너지를 어떻게 봉해두는가. 중압감은 제어되는 종류인가. 지독할 정도로 훈련했나. 훈련된다한들 흉터처럼 남는 생채기는 치유해야지. 자아를 보호하는 방식은 무얼 채용했나. 건전하고 건강한 거? 아주 가끔 생각한다. 관측 불가능한 사람으로서의 당신을, 역할 너머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버벅거리는 손길로 연필 돌리기를 하고 있다. 몇번이고 떨어트려 흠집이 간 겉면을 쓰다듬는다. 제도製圖에 재능따위 없는데 웬 연필인가. 그냥 연필도 아니고, 스테들러 삼각연필. 연필심부분부터 몸체까지 시꺼먼 색이라 좋아했다. 손으로 깎아도, 은색 기차에 태워 돌돌 굴려도 검정색 외피가 벗겨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망상이므로 생각을 위한 생각에 가까운 행위겠다. 크게 아프지도 크게 좋지도 않은 무던한 것이 필요할 때는 일러준대로 호흡하며 떠올리게 되었다. 가장 단순하고 평범한…… 그러므로 특별한 상상이었다. 강렬하지 않아서 강력했다. 적확히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탐색해본다. 외형은 전혀 다르지만 슬리피우드 속 기억하고 있는 자와 그 분위기가 닮았다. 초기에는 뭘 어쩌겠다는 건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발화된 내용을 곧바로 곱씹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뭐지? 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선문답禪問答에 가까워졌다. 돌이켜보면 홀린듯이 세션 중에는 무의식이 깨어났다. 의식은 잠에 빠졌다. 여러번 반복해서 “써봤으니” 괜찮아진 게 아닌가 했는데, 발화는 달랐다. 보고싶네. 문장이 아니라 발화로서의 언어놀이를 언젠가 하고싶다. 깎인 추억 속에 남아있는 즐거운 기억만 꺼내 더듬고 싶다. 근황을 새로 고치고, 계획을 들여다보고,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천천히 식어가는 차로 마른 입안을 적시는 상상이다. 바라는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을 테지만. 유사성이 지나치게 낮으니까 시도하면 바보다.

#144 이름없음 2026/02/25 16:54:02

나른하다. 오늘도 가는 길엔 구름이었다. 왠지 없을 것 같더라니.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은 괜찮은데, 혼자 생각하다보면 또 멋대로 구렁텅이에 빠질까봐 걱정이다. 잘못한 건가. 날것으로 쓰는 건 좀 겁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럴 정도로 충격받을 일은 아녔다. 어쩌면 멋대로 구는 걸 지켜보느라 화가 날 수도 있는 거다. 머리가 뜨겁다. 열기가 오른다. 몸에선 이상하게 퍼지는 오한이 있다. 비 쫄딱 맞고 감기 걸린 사람처럼 으슬으슬하다. 괜히 시원한 거 시켰나. 찔깃거리는 떡의 감촉이 어금니 뒷편에 남았다. 성가셨다. 어지럽다. 곧 도래할 일정에 찬물 쏟아버릴까 조심하고 있다. 이럴땐 꼭 담배가 말렸다. 펴 본 적도, 필 생각도 없는데 어째서 충동은 일까. 속이 메슥거린다. 어서 들어가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성가신 사람은 안 되는데. 그렇게 만들어버렸다면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데. 왜 그랬지 그냥……. 머리를 쥐뜯었다. 역설같은 감각이 싫다. 뜨거우면 뜨겁기만 하고 추우면 춥기만 하라고. 이렇게 불안해할 일인가? 주머니에 손 넣고 틱틱거리다 문득 깨닫고는 멈추었다. 이렇게까지 강렬한 걸로 받아들여야만 하나. 앉아있는 당신을 쳐다본다. 언제나처럼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다. 되짚어보라고 하겠지.

#145 이름없음 2026/02/27 12:08:54

삶은 달걀 두개. 책상위에 굴러다닌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어깨가 닿았다 떨어지고 다시 닿았다 떨어지고 서로 말은 없이 그렇게 갔던 기억이 마치 진짜로 있었던 거처럼 한 두어개 지나갔다. 새벽나절에 잠시 깼다. 잠자리를 가려 잠드는 스타일도 아니라 편안히 잠에 빠졌다. 등판이 더웠다. 온도를 낮추고 시간 확인 후 스르륵 눈꺼풀이 감겼다. 바라던 꿈이었다. 완전히 뭉개지기 전에 얼른 적어야지, 하고는 메모를 켜 비몽사몽간에 남겼다. 일곱시간 정도 됐는데 벌써 글 없이는 회상이 더디다. 삶은 계란 두 알. 왜 등장한 걸까. 공사중인지 임시로 쓰는 나무 책상 위에 놓여져 있었다. 껍질과 책상 색이 비슷해 분간이 안 갔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살짝 허벅지를 기대며 별 시덥잖은 얘기나 나눴다. 배고파? 아니요. 배고프면 이거 먹어. 저 계란 까는 거 고수에요. 아니라고 하는데도 내쪽으로 밀어주더라. 힘없이 슥 밀리는 계란과 차가운 손가락이 눈에 보인다. 득의양양해선 툭툭 치고 힘있게 굴린다. 평소처럼 계란 껍질 벗겨내는데 흰자가 함께 딸려나온다. 잘 깐다며, 하곤 소리내어 웃는다. 반면 당신께선 나머지 하나는 가볍게 깐다. 머쓱했다. 진짜 고수라고 말했는데, 바보처럼 노른자나 보이게 했다. 얼른 감추고 곱게 깐 부분을 드렸다. 아직도 살살 벗겨지는 당신의 계란. 꿈이라 그런지 물 흐르듯이 입가 근처로 다가갔던 거 같기도 하다. 생채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까진 나머지 계란은 내 손 안에 쥐여져 있다. 그러다 노트북 화면 같이 보면서 이야기 하고, 불현듯 무너지는 꿈자락을 붙잡아두려다 실패했다. 15분 정도를 집중해서 회상했다. 쓰다보면 장면이 어느 기억에서 떼어왔는지 알 것도 같았다. 최근의 기억에서 등장인물만 바뀌어 변주되기도 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녔다. 타지에 와서 꿈을 꾸게 되다니. 와본 적도 없는 곳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했더라면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46 이름없음 2026/02/28 20:55:58

예감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제어를 해야겠다 느꼈다. 나쁘지는 않았다. 혼자 있었더라면, 을 가정해보지만 그러지 않았으므로 금방 덮었다. 뚫리는 아픔이 아니라 피부가 쓸린 상처라고 생각했다. 얼른 후후 불고 약 바르자. 말할수록 가벼워졌다. 당신의 의도는 나의 영역이 아니니 불문에 부치자. 그래도 보고싶긴 해, 물론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다.

#147 이름없음 2026/03/02 06:32:16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은 습관처럼 마지막 트랙을 찾아 듣는다.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빗소리에 마음을 기댄다. 불안정하고 먹먹한 목소리가 좋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부르는 가삿말이 음절 하나씩 날아온다. 서늘하다. 전기장판 온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역시 춥다. 발매된 햇수를 세다가 처음 들었던 날로 돌아가버렸다. 시간이 많이 지났군. 그날도 비가 왔었다. 버스 안에서는 우산이 들려 이 노래가 나와,라고 생각했었다. 미적지근한 장마였다. 날이 개면 커튼을 열고 첫 트랙으로 진입하고 싶었다. 손꼽아 맑아지길 기다렸다. 한 곡만 듣고있다 보면 내리는 비가 공간을 잠식해버릴 것 같아 앨범 반복으로 돌린다. 어제의 여독을 풀기 위해 조금 더 자야하는데. 무얼 적어내리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왜 그런 건지만 붙잡아두고 묻길 바랐지만 상상 속의 얘기를 넘어설 수 없기에 놔둔다. 놔버리자. 간단하잖아. 골몰하지는 말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집중할 누군가를 손쉽게 알아낼 수 있을 거다. 너는 웃는다. 그곳에선 열 명도 넘게 찾을 수 있을 거란다. 알고 있는 수많은 지인 중 한 명을 곧바로 떠올린다. 대학과 학과 이름을 대면서 킬킬거린다. 나도 크게 웃었다. 요지가 시원하게 날아왔다. 쭈욱 걷다보면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는 것. 틀린 말이 아니었다. 특별한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증명됐고, 시간을 잃은 아쉬움이야 잘 간직하면 그만이다. 잔잔했던 호수에 윤슬이 가득해졌다. 이름도 모르던 자의 한껏 들뜬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럴 정도의 반가움인가 싶었다. 그런 날이었다. 선베드에서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은 지역과 묶인 채 먼 미래에도 불현듯 떠오를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보낸 음성언어가 고민을 서서히 가볍게 했다. 햇볕을 등지고 그림자를 바라보니 평시처럼 짧았다. 다시, 등 돌려 가자. 닻을 펼칠 방향이 잘못됐다면 수정해야지.

#148 이름없음 2026/03/03 21:19:35

달을 등지고 걸으니 36년만에 돌아왔다는 정월대보름과 개기월식을 한꺼번에 놓쳐버렸다. 네 시간 동안 차를 마셨을 뿐인데 붕 떠있던 궤적이 안정을 찾았다. 앞으로 얼마나 규칙적으로 적용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동굴 속 등불만큼 환했다. 지난 건 잊자. 집착하면 괴로워지는 건 나 하나다. 숨을 고른다. 내쉬는 숨에 심박이 천천히 돌아온다.

#149 이름없음 2026/03/07 10:01:27

책을 읽다 몰려오는 욕지기를 참지 못하고 뱉어냈다. 공포 영화에서도 이 정도 충격은 받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작품은 후반부 결말에서 몰아닥치는 쾌감부가 생략된다. 그런 결말은 마치 환상이라는 듯 화자들은 현실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상상하는 잔인함에 자신이 있다면 『아오이가든』은 수작일 것이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좀 뒤집혀지지만 미학적으로 충분히 가치있다. 늘 그렇듯이 작가의 말이 어떤 이야기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다. 284 종종 그녀를 본다. 그녀는 여전히 죽어 있다. 죽은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 모양인지, 그녀의 얼굴은 부쩍 늙어 있다.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평온해보이지 않는 얼굴이다. 평온해보였다면 죽음이라는 게 대단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285 꿈속에서 내가 죽은지 오래된 그녀를 위로한다. 그녀는 내 위로를 받으면서 여전히 죽은 채로 있고,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287 『아오이가든』은 내게 가장 가까운 이름이자 가장 먼 이름이 된 소설이다. 소설을 쓰다 막막해지면 이 소설을 쓰던 때를 떠올렸다. 부러 멀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다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소설을 읽으면서 종종 한 시절을 잃은 듯한 상실감을 느낄 때가 있는데, 『아오이가든』을 읽을 때면 특히 그러했다. 이 책이 작가로서 나의 첫 책인 것을 여전히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어떤 이야기를 서술하든지와 관계없이, 마지막장에 실리는 작가의 말은 항상 담담하게 잘 눌러 쓴 문장이 실려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되곤 한다. 작가의 말을 읽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영원히 미완으로 남는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흘려보내기로 했다.

#150 이름없음 2026/03/07 21:38:35

안녕, 시체들 로 시작하는 그의 작품은 정보나 각오없이 맞대기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한강의 작품을 읽었을 때 맛봤던 두통 이상의 것을 느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컨디션 문제라면 그날보다는 확실히 어제가 좋았다. 종이책과 전자책 차이가 그토록 크단 말인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계곡에서 건져낸 부분적 주검이나 개구리, 쥐, 등 뒤에 업혀 무게가 줄어드는 동생 같은 소재가 주는 감각이 생생하다. 명치께가 묵직하다. 꽉 막혀있다. 길다란 막대로 틈을 만들어주고 싶다. 길이 없어 그런 건지도 몰랐다. 근원을 들여다보면 인간도 동물이었다. ‘한낱’ 동물이라면 쉬워보이겠지만, 혹자의 말대로 자유의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뇌 용량이 압도적으로 큰 고등생물임을 강조해봐도 역시 동물이라는 개념에 포섭됐다. 쥐.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쥐의 원형을 봤다. 인간은 실험쥐였다. 우습지 않은가? 아마 동물 중에 스스로가 짐승임을 부정코자 하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할지도 모른다. 근대에는 그런 생각에 폭발적으로 근거를 찾아붙였다. 과학의 가파른 상승곡선과 터빈의 발명, 산업혁명 등은 인간중심주의 신화를 굳건히 했다. 현대에 와서야 성찰하고 많이 뒤집혔다지만 여전하다. 이 신화. 인간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며, 피라미드 속 영원한 강자라는 신화를 무너뜨리는 탈권위가 마음에 들었다. 작품에서 개구리와 실험쥐와 주검과 인간은 모두 등가였다.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그랬다. = 양옆에 사람과 개구리를 놓으면 항등식이 성립됐다. 산 자와 죽은 자 역시 동치였다.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비일상적 공간인 동굴에서 일하는 여자는 아이를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하필 아이였을까? 미신이지만 아이들은 영가를 잘 본다는 속설이 있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성인 관광객들은 여자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다 읽고 나서 첫 장으로 돌아오니 안녕, 시체들이라는 인삿말에 급소를 때려맞은 듯한 얼얼함이 들었다. 나는 헤드기어와 복싱 글러브를 낀 채 대자로 뻗어버리고, 책은 유유한 표정으로 스텝을 밟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천천히 껌을 씹는다. 이제야 체기가 좀 내려간다. 막혔던 위장에 가느다란 길이 열렸다.

#151 이름없음 2026/03/11 11:24:48

우울할 시간이 없다. 아프거나 그립거나 슬퍼야지 착즙되는 액체가 있는 법인데 밍숭맹숭한 물만 떨어지니 아쉽다. 셋 다 안되면 다이브라도 해야될텐데. 무엇에 뛰어들란 말인가? 선득한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다. 물과 친해지면 건강해진다더니 정신까지 회복될 줄이야. 봄 언저리다. 위도를 얼마나 거슬렀다고 꽃은 없고 기온도 낮다. 누굴 시샘해야 이토록 추울 수 있나. 한껏 껴입은 행인들이 답답하다. 어물쩡거리는 계절에 대고 소리치고 싶다. 늦어지기 전에 넘어와.

#152 이름없음 2026/03/15 00:27:23

구슬땀 뚝뚝 흘린다. 손수건으로 슬몃 훔친다. 뛰는 듯 걷다보면 시큰거리는 통증이 온다. 3km 지점에 임박했다. 운동 후 심박을 천천히 되돌리려면 갑자기 앉거나 서는 방식으로 중단하면 안 된다. 좁은 보폭으로 숨을 크으게 들이마쉰다. 서서히 내쉰다. 잠깐 숨을 참았다 폐가 부풀어오르는 감각을 느껴본다. 사람은 꽤 많았다. 규칙없이 걷는 사람과 뛰는 사람이 혼재돼있어 불편함과 고양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느린 사람을 앞지르고 빠른 사람에게 밀린다. 아무렇게나 튄 물방울을 스퀴지로 훔치는 것처럼 뇌 이곳저곳에 산재한 잡념을 쭈욱 밀어 배수구로 넘겼다. 끄르륵, 물방울이 와류를 타고 멀어져갔다. 바람막이의 모자가 열기로 꽉 차 뜨끈뜨끈했다. 참고 참다 벗었다. 시원한 공기가 뒷목을 간지럽혔다. 심박수 알림이 노래를 제멋대로 끊곤 했다. 설정해둔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무척 고단했다. 조금만 빨라도 곧바로 흥을 깨버리는 덕에 웃음이 터져나왔고, 좀 쉰다싶으면 어서 뛰라고 재촉했다. 뛰고, 걷고, 뛰고, 또 걸었다. 하고 싶어서 한다는 감각이 왜이리 낯선지. 신기했다. CBT까지는 아니지만, 잘못된 생각이 들 때마다 휘파람을 불었다. 집중해 부르는 세 번이면 날아갔다. 좋지 못한 감정과 생각의 상호작용 연쇄를 끊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열쇠가 됐다. 좋은 생각으로 온전히 채울 수 없다해도 나쁜 생각 몇몇개는 걷어낼 수 있지 않은가. 물비린내 나는 빨랫감은 언제든지 걷어와 다시 세탁할 수 있다. 햇빛 들지 않는 실내라도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만 신경쓰면 잘 마른다. 봄에게로 달려간다. 수압을 이겨내는 연습을 했더니 지상에서 나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153 이름없음 2026/03/15 00:50:36

260220 사랑해, 사랑하지 않을 테니 돌아와.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모른다. 아니, 너무 잘 알지. 그러니까 선택하는거잖아. 260303 문장이 잠시 머물다 간다. 사랑해, 사랑하지 않을테니 돌아와. 머무는 문장까지 막을 수 없단 걸 잘 안다. 오늘도 불현듯 문장이 떠올랐다. 쓰지 않아도 흘러갈 문장이었겠지만 굳이 쪼그려 앉아 퍼올린다. 누구에게 하고픈 말이었는지 잘 안다. 사진 속에 멈춰 선 채 웃고 있는 당신, 미치도록, 보고싶다. 이대로 잠들테니 꿈으로 걸어와. 웃으면서 내가 가르쳐준 건 다 잊었는지 물어봐. 왜 아직도 불량하게 걷느냐고. 바라고 바라도 검은 꿈만 꾼다.

#154 이름없음 2026/03/15 23:18:15

15 뇌의 일부가 여전히 그를 추종했고, 그것에 안도했다. 20 그들은 의지가 빼어난 나머지 박약한 의지를 손쉽게 비웃었다. 37 더 이상 자신의 신체 통제권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불일치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44 어쩌면 죽음의 경계에 다가갔던 순서대로 삶 쪽으로 더디게 되돌아오는 중인지도 몰랐다. 81 희망이 없어서 우정이 번성하던 시기였다. 115 오기는 창밖이 시커멓게 잠겨드는 걸, 어둠 속에서 나뭇가지가 일렁이는 게 누군가의 손짓처럼 보이는 걸 고스란히 지켜봐야만 했다. 149 “산 게 근사합니까? 추접하죠. 악착같이 그 좁은 구멍에서 살려고 해댈 텐데…….” 173 잃은 게 그것 뿐인 것은 아니었다. 모두 잃게 될 줄도 모르는 채, 얼마나 오래전부터 인생에 헌신해온 걸까. 180 사랑을 잃어도 세상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200 정원 한 가운데에, 오기가 누워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쪽에, 시커멓고 커다란 어둠이 고여 있었다. 209*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편혜영이 주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사랑한다. 악착같이 살고 싶었으나 결국 죽음을 바라게 된 오기의 심정에 이입하게 만드는 설득력이 좋았다.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만큼 죽고 싶어할 때가 있다. 이대로라면 죽는 게 나을 듯한 상황도 존재한다. 큰 사고를 당한 오기는 살아내봤자 두 팔과 상반신만 움직일 수 있다. 세월을 바친 학교에서는 타의로 사직했다. 남은 것은 다스케테쿠다사이라고 중얼거리는 장모 뿐이었다. 기이한 동거였다. 삶에 남은 오기는 죽음으로 향하고 싶어했다. 작은 고통에도 행복감을 느끼던 그는 찢어지는 피부에서 나오는 비릿함을 맛보며 죽음으로 거칠게 포복했다. 마침내 하나 뿐인 가족이 만들어낸 나락의 구덩이로 처박혔다. 소설이 허무히 끝났다. 울면서 사라진다니. 생각해보면 서래와 유사하게 죽은 건데도 오기의 것은 일견 타당하고 서래는 부당해보인다. 서래는 어딘가에 살아있을 사람처럼 느껴지고 오기는 그대로 백골이 된 채 바스라져 흙에 양분을 줄 것처럼 여겨진다. ‘삶과 죽음은 동일하다.’, ‘삶과 죽음을 동일한 정도로 원할 수 있다.’, 와 같은 이면에 숨겨진 메시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철저히 자의적인 분석이나, 편혜영은 삶 이후/너머에 죽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 자체가 연속된 과정임을 인생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애꿎은 정원을 전부 뒤엎어 구덩이를 만들었던 아내/장모처럼 조금 더 파헤쳐보면, 둘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주장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의 소설에서 죽음은 ‘생존’ 이상 혹은 이하의 무언가로 여겨지지 않는다. 정확히 생존만큼의 질량을 갖는 것으로서 죽음은 등장한다. 그가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가치판단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게 아니다. 절댓값을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1과 -1은 절댓값 기호를 씌웠을 때 동일하다. |1|은 |-1|과 같다. 그런 것처럼, |삶|과 |죽음|이라는 수식을 만들어봤을 때, 적어도 편혜영에게는 저 사이에 등호를 끼워넣을 수 있는 힘이 있다. 『홀』은 그런 점에서 역설적이다. 중반까지 오기는 삶에 대한 의욕으로 가득차있었다. 특히 왼손이 움직였을 때 잠시 그랬다가, 더는 나아지지 않는 다른 기관들을 보며 미칠듯한 절망에 빠졌다가, 오른손가락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의욕이 상승곡선을 그렸다. 후반에서 포복으로 방을 빠져나가면서도 낮은 철책을 선택해 산책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거대한 방벽처럼 장모가 나타나자 의지가 꺾여버렸다. 삶에 대한 의지 없이는 누구나 죽음의 공동空洞으로 굴러떨어진다는—자의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을까. 단숨에 읽어나갈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이 책을 중도에 덮는다면 의지력이 대단한 자일테다. 끝을 보지 않고는 궁금증에 시달려 불면이 올 정도였다. 아직 읽지 않은 ‘선의 법칙’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일부러 발췌독했는데, 편혜영의 문장이 주는 힘이 느껴지지 않아서 별로였었다. 아무래도 읽는 방식이 문제였겠지. 무얼 판단하겠나. 그저 읽는다. 언제나 편혜영과 작품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하나 낙심한 것이 있다면 작가의 말. 어른의 미래도 그렇고 홀도 그렇고 작가의 말이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의도라고 생각하면 이해는 된다. 없는 편이 더 좋았다고 생각했겠지. 없어야지만 작품에 여운을 느끼고 곱씹게 할 수 있다고 본 거겠지. 그래도 돌아서면 아쉽다. 해설은 없어도 되는데 항상 말미에 담긴 몇 마디를 읽고 싶었다. 이 작품을 퇴고하고 나서의 소회가 무척 궁금했다. 그런 아쉬움으로 안녕. 나는 내일로 가야지.

#155 이름없음 2026/03/16 23:48:39

햇볕에 반짝거리는 조약돌만 모아도 근사하지 않을까. 발바닥이 델듯 달구어진 검은모래 해변을 맨발로 걷는다. 파도가 자꾸만 가까워진다. 아니다. 내가 파도에게 다가갔나. 성큼성큼 새긴 발자국이 금방 지워진다. 정처없이 나아가기만 하는데도 들떠있다. 자기 전에는 좋은 상상을 하란다. 꿈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면서. 날카롭게 박히는 거친 모래가 있어도 마냥 나아간다. 왼발바닥 중앙을 아프게 하는 조개껍데기가 있어 줍는다. 가만히 들여다본다. 각도를 바꿀수록 빛을 반사하는 부분이 달라진다. 아름답다. 한적한 해변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라니, 전세낸 기분이다. 자세히 보니 안경이 없다. 흐릿한 시야 너머로 들어오는 정보란 온통 파랗거나 검을 뿐이었다. 주머니를 뒤져도 없고, 상의 목깃에도 걸어놓지 않았다. 눈도 없이 도대체 왜 걷고 있는 걸까. 그냥 걷고 있다. 저멀리 버려두다싶이 두고 온 서핑보드 위에 온갖 짐까지 부리고선 한발 두발 내딛는다. 좋은 상상이었는데 궁금해졌다. 파도로 자꾸 가까워지고 있다. 바다수영까지 능숙하고 싶다는 바람이 담긴 상상인가. 정말 혼자 있나. 아무도 없는 해변이라면 무얼 믿고 짐 다 버려두고 나다니는 거지. 시력은 왜 바닥에 떨구고 다니나. 대답은 없다. 단지 걷는다. 시뻘건색 서핑쇼츠에 무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한 하와이안 셔츠 차림이다. 시계도 휴대폰도 없다. 문명의 이기에서 멀어졌다. 왜 거니는지. 언젠가는 반드시 그럴 거라는 믿음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 궁금해지면 잠과 멀어지지만, 호기심은 솟구쳤다. 더 깨어나기 전에 어서 도망가자.

#156 이름없음 2026/03/18 09:26:22

비 온다. 많은 기억이 있다. 모두 내던지고 차가운 비를 따갑게 맞던 날, 우산을 칼처럼 휘둘렀던 장면, 투명우산에 기대 누군가와 통화하던 시간, 선명하고 동그랗게 떨어지던 우박의 따가움, 발매된 앨범을 바로 듣던 버스정류장에서의 빗소리, 그리고 오늘. 비가 온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때면 종종 비가 오곤 했다. 전날 밤부터 알 수 없는 근육통에 시달리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깬다. 티비 없이 살면 주간 날씨 예보와 멀어지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 애써 생각했던 옷차림에 변동을 주어야 하나. 비라는 카테고리의 서랍을 열면 원시적 기억에 가장 가까운 건 따지자면 최악이었다. 홀로 남겨진 작은 버스 지붕을 사정없이 때리던 빗소리. 기억 카드를 꺼내본다. 새파란 비닐 우비를 뒤집어쓴 무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낱낱이 알고 싶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적어도 내가 함께 있다. 뒷자리에 앉아 허탈한 표정을 짓는 꼬마의 등판을 멀거니 보고 있다. 이런저런 좋은 기억으로 덮어써왔다. 테라피 세션에서 전부 끄집어내 해체시킬 줄은 몰랐지만, 결코 나쁜 일만도 아니었다. 오늘로 돌아오자. 코트를 입어야 하는지, 허기진 배에 요기를 할지, 어떤 향기로 나갈지, 신발은 어떻게 신어야 하는지, 우산은 뭘 쓸지…. 사소한 고민이다. 비 오는 날을 싫어한 적 없었다. 어깨와 우산을 간지럽히는 툭툭 소리, 바람이 불면 대각으로 내려 안경에 물방울을 새기는 것까지도. 우산따위 필요 없을 정도로 부는 강풍마저 그립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뛰었던 거였다. 가방만 품에 소중히 안고 젖산을 마구 꺼내 써도 심장 한 번 아프지 않던 날이, 와이파이 신호 잡아가며 겨우겨우 듣던 그 목소리가, 처음 맞아보는 우박 너머로 걷고 있던 당신이 그리운가. 오늘로 돌아오자는 말은 글 안에서 의미 없다. 미등 켜놓고 누워있으면 한도 없이 과거를 펼쳐놓고 그리워하는 게 특기니까.

#157 이름없음 2026/03/22 09:22:57

계단을 오르다보면 생각이 사라진다. 자연스레 노래와 심박에 집중하게 된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내리막이다. 넘어져 무릎 깨질까봐 그렇다. 그토록 바라던 길인데도 근육 결마다 힘이 빡 들어가서는 살살 걷는다. 물에서 허우적대다가 산으로 돌아오다니.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편지가 발송되었다. 발목 유연성이 문제일까. 왜 이렇게 안 되는 걸까, 하며 킥판을 썼다 버렸다가 난리였다. 대번에 늘 수 없겠지. 물과 친해지기가 목표였는데 애진작에 달성했고 이제 올바른 자세로 착지할 줄도 안다. 배우는 중에는 습득이 계단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흔히 망각한다. 눈앞에 보이는 성과를 쫓는다. 매일 가는데 왜 안 늘지. 심지어는 어제의 내게 진다는 좌절감도 맛본다. 분명히 같은 ‘나’라고 믿었는데 사실은 아니었던 건가. 다시 몸부림치지만 제자리다. 긍정적으로 돌이켜보면 좋아진 점은 많았다. 레인 밖으로 나오자마자 겪었던 현기증이 사라졌다. 운동 후 심호흡할 때 심박이 쉽게 안정됐다. 눈 없이도 익숙하게 나다닌다. 일종의 도전이었다. 언제까지 안경과 수경을 번갈아가며 쓰고 벗을 수는 없었으니. 희한하게 마음은 편하다. 반복적으로 말하기도 했었다. 바쁘겠지. 답장이라는 게, 반드시 와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도달하지 않은 증여일 수 있다. 나의 행동에 반드시 수반되는 반향이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태도도 어리석다. 켜켜이 쌓아올린 문장이 아니었다면 불안했겠지. 주말 아침부터 하는 일이란 뻔하다. 평안하길 바란다는데 그렇게 해야지. 평온한 일상만큼 쟁취하기 힘든 상태도 없다. 그저 읽는다. 쓴다. 먹는다. 나간다. 단순반복이지만 루틴이 주는 견고함을 체감하고 나니 그러지 않기도 어려웠다. 이게 내가 만드는 벽인건가. 그래도 그리움 한 스푼 잔잔히 떠먹는다. 열심히 지킨 뒤 돌아가면 여름이라도 성한 몸으로 올라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검은 꿈에선 도통 찾을 수 없으니 내가 가면 좋겠지. 두 발로 뛰어가면 더욱 좋을테지. 언제까지 와달라고 앉아서 힝힝 우는 소리나 내나. 다리를 뿐질러버려도 기어코 가야만 하는 걸. 아, 더는 미룰 수 없다. 반납 기한이 매섭게 쫓아오고 있다.

#158 이름없음 2026/03/22 23:43:21

보고싶다. 검은 꿈의 장막을 찢고 당연하다는 듯 등장해줬으면 한다. 혼자 듣는 노래도, 휴대폰에 갇혀 설렘을 이야기하는 일도 지쳤으니 어서 파동을 일으켜줬으면 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으로 내뱉는다. 한숨이 길다. 어디 땅 한 번 시원하게 꺼져보라지. 심지부터 몸통 중앙까지 까맣게 타버린 성냥을 버릴까 하다 잘 보이는 곳에 뒀다. 머리부터 상체까지 새까만 붕대로 돌돌 말린 미라처럼 보였다. 밍숭맹숭한 샤인머스켓 과즙이 입안을 가득 메우는 순간이 떠오른다. 더 맛있는 거 고르는 눈이 없어서 미안해.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다 미안해. 다가 뭔데. 나를 붙들고 서 있다. 교복 반 체육복 반인 내가 와서는 껄렁껄렁 시비 턴다. 얄쌍하니 보기 좋네. 당신에겐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다. 거기 있으면 횡단보도나 넘어봐. 안 가겠다는 말 취소하고 차가 오든 말든 뛰어가라고. 개인화의 오류를 범한다는 걸 배웠다. 자책한답시고 일부러 자가당착의 굴레 속에 갇힌다. 5분이든 10분이든 시간을 정해서 나쁜 생각을 하는 건 괜찮댔다. 탱고는 둘이서 출 수 있지만 이별은 혼자서도 한다는데 왜 반대같냐. 춤은 혼자서 출 수 있다쳐도 이별은 가급적이면 같이 해야한다. 내 눈앞에서 모진 말이나 하고 사라지든지, 안녕 하고 입안에서 잘 나오지도 않는 껄끄러운 착한 척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있든지. 어느 쪽이든 좋으니 하고 싶다. 마음이야 이미 비행기 타고 붕붕 떠 있다. 차디찬 대리석 하염없이 쓸어내린다. 잠깐이라도 따뜻해지면 좋을테니. 하루에 한 번은 작은 티스푼으로 홍삼 진액 떠먹는 것마냥 찾게 된다. 입에도 쓰고 마음에도 쓰다. 나한테는 책임도 잘못도 없다는 거 누가 안 말해줘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나. 외부에서 충전 안 되면 이런 식으로 퍼먹는다. 시간 지났어. 이제 그만 가야지, 내일로.

#159 이름없음 2026/03/23 11:32:22

분명 지쳤다고 했는데 악몽처럼 나타났다. 빌어먹을 순환을 끊으려고 휘파람을 불었지만 던져놔야 사그라들 것 같다. 꿈은 반대라더니 그래서 나타났나. 이 악물고 증오하진 말아야지. 마음을 두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괴로움은 비례한다. 어짜피 뛰어들고 나면 아무 생각도 안 나겠지. 지금은 수영이 언제쯤 능숙해질지가 최대 관심사다.

#160 이름없음 2026/03/24 12:18:16

지금 내가 제일로 꽂혀 있는 것은… 상대방의 일방적 호의에 기대는 연락의 지속 여부. 너는 “모든 걸 다 알려고 하지 마, 그럴 필요는 없어.” 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궁금하다. 행인이 보란듯이 횡단보도의 아스팔트 부분만 밟으며 나아간다. 그런 심정이다. 천천히 흐르는 개울에 돌다리가 놓여져 있어도 누구 보란듯이 냇가부분에만 발목을 푸욱 담으며 걷는다. 청개구리식 사고다. 궁금하다. 궁금해 죽겠다. 이럴 때면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놓인 충전기의 양 끝을 모아 원형을 만든 뒤 한 쪽만 꼰다. 시작도 끝도 없는 뫼비우스 띠 위를 천천히 걷는 기분이다. 왜 궁금한 걸까? 그야 궁금하니까. 아무래도 ‘절대’ 알아낼 수 없을 거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절대라는 건 없는데, 왜 묻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망상이나 해서는 스스로를 괴롭히는가? 다시 괴롭히지 않는 측면으로 돌아와본다. 봄을 알리는 개나리가 창밖으로 지나간다. 일교차가 심하다. 잘 지내고 있을까. 겨울부터 쭈욱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나씩 나아지고 있다 전하고 싶었다. 당신은 평안에 가까운지 알고 싶었다. 무게를 모르는 호의를 저울에 올려본다. 뭘 돌려줄 수 있을까. 생존? 살아낸다는 사실이 증여로 기능하기도 한다는데 그런 언어들?

#161 이름없음 2026/03/24 12:21:01

장소가 바뀌면 다시 과녁이 바뀐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마음도 없고 과할 정도로 생채기를 내는 자학도 없다. 다만 발목에 집중한다.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뛰어든다. 코 점막이 따가워진다. 케헥 쿨럭 크헉. 앞으로 코를 통해 얼마나 더 물을 마셔야 잘할 수 있을까. 두근, 두근, 귀마개를 끼면 심박과 수면을 걷어차는 소리만 들린다. 둥, 둥, 둥.

#162 이름없음 2026/03/24 22:38:18

52 그는 개들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컹컹 낮게 짖었다. 80 멀리서 찾을 거 뭐 있어? 세상천지가 다 늑댄데. 야생성이 거세된 채 도시 속에 던져지고, 개성을 가진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아닌 부품으로 물화된 인간은 자유의지를 상실해버렸으니 짧게만 살다 죽어가는 짐승보다도 못한 것이 아닐까. 도대체 편혜영에게 동물이란 무얼까. ‘사육장 쪽으로’에서는 개와 그, ‘동물원의 탄생’에서는 사내와 늑대가 특별히 구분할 수 없는 개체값을 가진 채 등장한다.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우습게도 그렇다. 직유로 대놓고 말한다. 너희와 동물원의 우리를 탈출한 늑대가, 보신탕용 혹은 투견용으로 길러진 개가 동일하다는 논리다. 읽어내려가다보면 자연스레 흰 깃발을 흔들게 된다. 불쾌감이랄까, 찝찝함이 거슬리지만 차차 스며든다. 종국으로 다다르면 어느새 그의 논리를 목줄마냥 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차라리 작품 속 개와 늑대에게는 야생성이라도 있다. 우월함을 견주어본다면 짐승인 쪽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왜냐고? 삭막한 도시에 하루하루를 팔아 연명하는 인간에겐 결정적인 무언가가 결여돼있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에게는 야생성이라고 하니 인간에게는 인간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두 작품 속 주인공들은 색채 없는 도시에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아무리 고개를 뒤로 젖혀도 고층 건물에 가려진 밤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다. 둥글고 기다란 콘크리트 철창에 갇힌 느낌이었다. 새들이 간수처럼 허공을 돌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동물원의 탄생) 다른 하나는 도시 태생이며 벗어나본 적이 없어 일말의 애정을 갖는 경우다. “도심 한복판에 산 적도 없고 도시를 떠나본 적도 없다는 점에서 그는 전형적인 도시인이었다.”, “그는 폐로 들어오는 도시의 공기가 반가웠다.”(사육장 쪽으로) 노동에 소외된 인간은 관료제 아래에서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치환되고, 본질을 상실한 사람과 야생성을 간직한 동물의 대조가 이어진다. 개는 사육장에서 탈출해 무리지어 나오고 늑대는 동물원의 우리를 넘어 자유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말미에 두 작품 속 주인공은 일상을 견인하는 부품으로 기능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시간을 두고 차차 생각해야 할 문제다.

#163 이름없음 2026/03/25 20:01:53

오늘은 한참을 쫓겼다. 사람이 많아 한 레인에 넷이 서 있게 됐는데 나만 초급이었다. 초보도 아니고 초급. 킥판을 썼다 치웠다, 레인 한 가운데에서 다급히 착지하질 않나, 실성해 웃다가 물을 한바가지 들이키고, 하여간에 완전히 생쑈였다. 아무도 쫓아내지 않았는데 눈치껏 벽을 차고 나아갔다. 어깨와 하체 전체엔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불편하고 불안했다. 가라앉기 싫어서 필사적일수록 다친다는 걸 아는데도 몸은 반대로 행했다. 한번에 잘하면 그게 물개지 사람이겠냐고. 그런 생각은 안 든다. 물 안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두 템포 빠르다. 어설픈 롤링을 하다 중력에 의해 잡아당겨진다. 푸허윽, 하고 살기 위해 숨을 급히 들이마시기도 한다. 그렇게 해도 심박은 안정권에서 놀았다. 진작 할 걸 그랬나. 장거리 선수할 것도 아닌데 괜히 겁 먹었다. 지금은 벽을 차고 나아가는 그 짧은 순간이 좋았다. 금방 몸에 힘이 들어가서 아쉽지만 연습은 연습이니까 최대한 살랑살랑. 긴장할수록, 더 잘하려 욕심을 부릴수록 처졌다. 직접적으로 대비되니 더 안달났다. 팔꿈치를 직각으로 접어 물잡기 하며 나아가는 분도 있었다. 수면 아래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양태가 희미하게 인지됐다. 지쳐서 얼굴 근육 꾸기기도 힘겨웠다.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 이제 뜨는 건 그다지 무섭지 않다. 어떻게 해야 더 멀리 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영상으로 배워도 아리까리하다.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이라는데, 수영에서만큼은 하루하루가 다르긴 다르다. 정확히 어떤 점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아직도 킥판 발차기는 바보처럼 하고 있으니. 언제쯤 편해질까? 아직 물의 문법을 잘 모르겠다.

#164 이름없음 2026/03/26 18:31:16

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불꽃이 되기를 사랑에 빠지는 데 5초면 충분했다. 뜀박질로 달아오른 심장 덕에 흔들다리 효과를 맛봤나. 예상치 못한 노래를 셋리스트의 가장 초입에 넣어뒀을 줄이야. 멀리서부터 둥, 둥, 둥, 둥, 대는 반주의 진동이 느껴졌고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도달한 무대엔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은 갈색 머리칼의 그가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 노래를 불러? 새하얘진 머릿속으로 온몸을 비틀며 오른편 난간을 잡았다. 그러다 노래 중간에 그가 몸을 홱 틀더니 갑자기 내 편으로 손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큐피트 존재 따위 믿지 않고 살아왔는데 거기서 퍽 꽂혀서는 아직까지 좋아하고 있다. 실물이 더 예쁘다던가 하는 비현실적 감상은 없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좋았다. 극악의 음향 환경을 뚫고 나오는 가창력이, 바람이 쎄고 쎈 동네라 머리칼이 하루종일 휘날리는데도 꿋꿋하게 좌중을 압도하는 아우라가 좋았다. 뜻없이 흔든 손에 십 년을 저당잡혔으니 다시 생각해봐도 말은 안 되지만. 며칠을 얼얼한 기운에 빠져 살았다. 상기된 볼을 하고서는 버스에서 미친 사람처럼 쪼갰다. 정면 시점 영상이 올라오자 구간반복처럼 돌려봤다. 당사자에겐 의미없는 흔들거림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무겁게 만들어도 붕 뜬 기분은 끄떡없었다. 분명 찰나였는데 아직도 느린 화면으로 되감기된다. 짧디 짧은 한순간에 어떻게 매료된 걸까. 구름이 잔뜩 껴 흐렸고, 습기를 머금어 축축했으며, 저녁에는 비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행복한 기억으로 노래와 함께 박제되어 있다. 노래를 들으면 그의 손인사와 찢어질 듯한 스피커의 먹먹함이 떠오른다. 한 번 더 순환을 돌릴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멀리 떠내려갔다고 느꼈던 마음이지만 불태우기는 쉬웠다. 그저 파이어스타터 하나가 없었던 탓이라면 성냥 한 번 빠르게 그어주고 던지면 됐다. 불길이 주위의 공기를 잡아먹으며 순식간에 일렁였다. 오랜만이다. 힘이 넘친다는 기분이 든다. 이럴 때일수록 경계해야 안 다칠텐데. 원래 뒷산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어그러진 덕에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어디 충전해뒀다가 부족할 때 수급받고 싶다. 트랙에서 뛰어야 하나. 차라리 기진맥진하고 싶다. 시간을 넘어 편지가 오고 있다. 편집증적으로 새로고침하던 습관은 고쳤다. 아무래도 평안에 다가간 게 아닐까.

#165 이름없음 2026/03/27 18:34:57

꿈에 나올 때 생각한다. 네 꿈에 나도 나올까. 일어나자마자 왜 너냐고 화냈다가 이내 잠든다. 아무리 눈을 빛내도 바라던 자는 도통 찾을 수 없고 하루종일 검은 장막 뒤를 헤매고 있다. 그러다 불현듯 깨어난다. 내 꿈에 네가 나타난 것보다 네 꿈에 내가 더 자주 등장했으면 한다. 나만 당한다고 생각하면 괘씸하거든. 멋모르고 휴대폰 잡고 실실 쪼개는 꼬라지 마음에 안 든다. 빌어먹을 기억 자동재생 되는 기분이 어때. 성과, 눈에 보이는 성과를 원한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 어서 내가 넘어가게 해줘. 당신의 편지를 보다보면 호명은 나를 이곳에 묶어놓는 힘이 있었다. 분명했다. 이름 두 글자가 무어라고. 아무것도 아닌 호칭이라 가볍게 치부했건만, 애석하게도 아니었다. 뛰어넘겠다며 이름 하나 결정해서 가장 먼저 알렸더니 뒤에서 훅 밀어주는 힘이 느껴졌다. 나는 힘빼고 유선형 자세 만들고 누워만 있다.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쭉 나아간다. 보고싶은 이유야 많다. 줄줄이 나열할 수도 있다. 잔잔한 호수에 돌 던져 자그마한 파장이라도 일으킬까봐 신중한 것이다. 예상은 하고 있겠지. 실시간으로 언어놀이를 하고싶어 한다는 마음. 잘 드러나지 않나. 언젠가는 언제일까. 불안하진 않고 손꼽아 기다리지도 않고 은은하게 어떤 회신이 올지 궁금하다. 이정도면 원하던 대로 제어되는 듯하다. 치료라 하면 거창한데 진짜 뭔가가 되고 있다. 권한 없는 영역에 골몰하지 말고 진작부터 내 영역에 집중할 걸. 오늘도 역시 제자리 킥판차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꼬마들 수영 참 잘하더라. 어릴 때 배웠으면 좋았겠다.

#166 이름없음 2026/03/28 19:40:25

무척 더웠다. 봄을 훌쩍 뛰어넘고 여름 초입에 온 듯했다.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나. 땀이 줄줄 흘렀다. 점점 사계절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세먼지가 최악인 날치고는 하늘빛이 볼만했다. 역광으로 서면 불투명한 막이 씌워진 것처럼 나오기는 했지만 순광 방향은 좋았다. 망원 렌즈가 무거웠다. 삐질삐질 흐른 땀이 등판을 질척이게 했다.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청각을 차단해도 시각적으로는 매우 많은 자극이 들어오고 있었다. 온갖 몸통과 휴대폰의 향연을 보며 우두커니 서있으면 기운이 송두리째 뽑혀나간다. 머얼리서 풍광을 잡아당긴다. 파란 하늘과 짙은 기와색, 빛을 받아 활짝 핀 꽃이 어우러져 절경이었다. 만개한 홍매화 소식이 어디까지 퍼진 걸까. 주말엔 나들이 가는 게 아닌데. 그런 후회보다는 즐거움이 한 발씩 앞서니 다행이었다. 봄꽃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돌계단 사이에 홀로 피어있던 이름 모를 보라색 야생화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누가 씨앗을 흩뿌렸기에 척박한 곳에 정착했는지 묻고 싶었다. 해가 지고 나서야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일교차가 널뛰는 요즘이다. 지구의 광기를 느낀다. 인간을 전부 내쫓기라도 할 셈인가. 여름에 40도 보는 건 아닐까. 그럼 얼른 도망쳐야지. 더운데다가 사람까지 많으면 아주 죽을 맛이었다. 가뜩이나 숨막히고 지친데 부대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수도 태생들에게 물었더니 그게 당연한 거란다. 인구 과포화가 당연하고 또 자연스럽다 느끼는 삶이란 대체. 혹자는 서울 태생에 엄청난 메리트를 느낀다고 했었다. 그에 비하면 단 한 번도 특혜라 느껴본 적 없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도시를 누가 좋아할 수 있나. 야생성이 남아있는 탓인가. 잉태된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말도 아닌데 왜 자꾸 이럴까.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댔으니 사실은 말이란 말인가. 정답은 그들에게 있으니 됐다. 더는 고민하지 말고 기다려보자. 도시로 뛰어들어 정착한/정착하고픈 말들이 와서 속삭여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곳은 아주 엉망이라고. 여기가 아니면 미래는 없다고. 정녕 그럴까. 반박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질문지를 보고 다음 물음을 꺼내겠지. 세션이 끝나면 그제야 녹음을 끄고 물을 것이다. 정말 이곳을 사랑하는 거냐고.

#167 이름없음 2026/03/29 23:00:24

12 “당연히 좋지. 병원에 오면 다 아픈 사람인데 나는 아픈 데 없이 멀쩡하니까 좋지.”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요.” “병원이 좋은 게 아니고 집이 싫어.” 21 갑작스러운 도시의 쇠락을 지켜보며 이석은 이인시가 갑자기 이인실이 되었다고 웃지 않고 농담했다. 병자들이 넘쳐나는, 그러나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가장 많이 비어 있는 병실 같다는 것이었다. 41 무주는 완벽하게 좌우대칭이 맞는 세계, 균형이 잡힌 세계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모든 것은 비뚤어져 있고 기울어져 있기 마련이라고, 그런 점에서 세계는 애초 구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 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오히려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 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65 사무장 말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다른 곳도 아닌 병원에서. 특히 중환자실이나 일부 병동에서는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가끔은 사람들이 죽으러 병원에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사들이 실패할 때도 있었다. 병원에는 날마다 긴급을 알리는 코드 발송이 이어졌다. 괜찮아질 때도 있었지만 좋지 않은 환자가 나올 때도 많았다. 69 병원이 바라는 건 병상이 비지 않는 것이지, 환자의 완치가 아니었다. 84 내내 퀴즈를 풀어야 하는 기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어떤 문제도 주어지지 않은 셈이었다. 91 한동안 이런 밤을 견뎌야 했다. 뒤척이며 그동안 잘못한 일을 생각하는 밤 말이다. 92 몇 해 지나면 아이는 드디어 정글짐에도 오를 것이다. 과감하게 단을 오르다 몇 번쯤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안전한 세계와 불리한 세계를 조금씩 가릴 줄 알게 될 것이다. 111 간혹 모두 사라지듯 복도가 감쪽같이 텅 빌 때가 있었다. 편의점은 흐린 간판만 남겨두고 문을 닫고 공용 욕실도 닫고 약국도 문을 닫아 복도 끝의 비상구 표시등과 자판기 불빛만 희미하게 빛났다. 도시를 감싼 적막감도, 진군하는 어둠도, 고된 통증도, 분주한 질병도 모두 제 일을 마친 것처럼 일순 고요해지는 순간. 빛도 지나가지 않고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순간. 그런 순간이면 정적만 조심스럽게 몸을 뒤척여 마음이 고요해졌다. 112 갖가지 이유로 울고 소리치고 비명을 지르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보면 장례식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상조회사 직원이 되어 조의금을 받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를 배회하는 풀 죽은 사람보다는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이나 곧 죽을 사람을 상대하는 편이 나았다. 때로는 그들이 더 살아 있는 느낌을 주었다. 116 뒹구는 돌에도 절망이 묻어나고 공터를 가로지르는 바람 소리가 사람들의 한숨 소리나 낮은 울음처럼 들렸다 119 “병원에 영안실이 있으니까 귀신이 있다느니 어떻다느니 떠들어대지만 정작 무서운 건 귀신도 시체도 아닙니다. 사람이죠.” “맞아요. 사람이 죽어 된 게 시체고 귀신이죠.” “어떨 땐 환자고 보호자고 다 귀신 같죠.”

#168 이름없음 2026/03/30 23:56:08

131 "조선소 말이야. 경기가 어려워지면 제일 먼저 누굴 자르겠냐고." "그야 비정규직이겠죠." "그중에서도 용접공. 때울 게 있어야 남아나지."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똑같아. 선후의 차이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결국 같은 처지가 되니까." 134 "거미줄 하나에 거미 두 마리가 함께 있는 게 공존이 아니야. 그건 자연계를 무시한 처사지. 한 거미줄에 한 마리씩의 거미가 여러 개 늘어서 있는 것, 그게 공존이야. 다른 거미줄을 넘보지 않는 상태가 공존인 거라고." 146 빛이 스크린에만 집중되어 있어 단상에 선 이석의 얼굴은 검게 보였다. 166 다 빼앗길 게 분명한데도 이 사람은 왜 사과부터 할까. 뭐가 미안한 걸까. 이렇게까지 하면서 남고 싶은 걸까. 이렇게 악착같이 구는 이유는 뭘까. 왜 어떤 삶은 굴욕과 함께 지켜내야 하는 걸까. 184 흰 주차선 위로 창살처럼 뻗은 나무 그림자는 무서울 정도로 시커멨다. 194 45년간 이석의 내면을 다양하게 반사했을 얼굴, 그 얼굴에서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 없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졌다. 204 송곳 같은 어둠과 적막을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좋았다. 무서움이 느껴지지 않는 고요도 오랜만이었다. 211 횡단보도에 서서 무주는 서로를 밀치듯 재게 걸음을 놀리는 사람들과 느릿느릿 밀려드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건강한 동물의 내장기관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고 세포처럼 번식하며 길을 메우고 있었다. 223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그러는 거예요?" '다들'은 누구고 '우리'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무주는 어느 쪽에나 속하는 것 같았다.

#169 이름없음 2026/04/01 13:34:09

다친 다리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불운과 행운이 동시에 깃들었다. 적어도 연속해서 같은 쪽을 망가뜨리진 않았으므로. 규칙이 깨지니 활력이 줄어들었다. 와병할 때는 그래서 어떤 생각에도 골몰하지 않는 편이 좋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빨려들게 된다. 깨진 운동 루틴 대신 일상의 규칙은 지키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기, 새로운 공기 들이기, 제때 밥 먹고 잠 자기 같은 사소한 습관을 견고히 할수록 정신건강에 특효가 있었다. 꺾인 왼발목보다 갈아버린 오른무릎 통증이 훨 심했다. 한쪽은 체중 부하를 주지 않으려 애써야 했고, 반대 발은 신중하게 꺾는 각도를 조절해야 했다. 엊저녁엔 특히 통증이 심했다. 끙끙대며 앓았다. 잠까지 설칠 지경이었다. 제미니가 참으래서 참았지 안그랬으면 어땠을까. 놀랍게도 그의 말대로 딱 이틀 가는 통증이었다. 습윤밴드를 갈아주니 씻은 듯이 나아있었다. 헛웃음 지었다. 으레 그렇듯이 다치고 낫는 중이지만, 거동에 제약이 생긴다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다. 끼니 챙기고 씻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과정, 모든 일상을 준비하는 시간만 두 배가 된다. 차라리 책 읽고 공부하는 건 누워서 한다 치지만 나 하나 먹이고 나 하나 씻기는데도 온갖 한숨과 기합이 다 들어간다. 평소라면 툭툭 갖고 들어왔을 택배 하나도 시련이요 난관이다. 낑낑대며 깁스 신발에 발을 꿰어넣고 신중한 걸음을 옮긴다. 어쩐지 >>164 에서 예견하더라. 다칠 사람은 어떻게든 다치게 된다. 에너지가 넘칠 때일수록 차분히 굴 걸. 항상 이런 식이었다. 수위 조절도 빠꾸도 없이 가다가 후루룩 다치고 재정비. 그래도 과거의 나보다는 나아야겠다 싶어서 세운 목표가 회복 속도 앞당기기였다. 재활할 공간도 있고 시간도 충분하니 이번에야말로 6개월 내내 아프지는 말아야지. 기왕 다친 마당에 하염없이 쉰다. 까짓거 수영도 좀 째고, 책하고도 공백을 둔다. 넘어지며 양 손바닥으로 받친 탓에 두짝 다 쓸려 있다. 체감상 손바닥 회복은 다른 어떤 피부보다 빠르다. 벌써 껍질이 탈각된다. 물끄럼 보고 있으니 잠이 스멀스멀 눈꺼풀을 짓누른다. 이토록 본능에 충실한 생활이라니. 그 한달이 무어라고 자책감 든다. 한창 물속에서 헛짓거리하고 있어야 하거늘! 코끝에 희미하게 수영장 특유의 염소 냄새가 퍼진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다.

#170 이름없음 2026/04/02 18:26:32

며칠 사이 벚꽃이 만개했다. 하늘은 파랗게 반짝였다. 양끝이 갈라진 꽃잎이 바람을 타고 조용히 보도블럭 위로 착지했다. 꿈처럼 느껴졌다. 며칠 틀어박혔다고 현실감이 사라져있었다. 카페 창가석에 앉아 페퍼민트를 시켰다. 대학가 골목에서 오래 터줏대감을 맡은 듯한 꽃집을 마주보는 자리였다. 이름 모를 노란 꽃이 골목을 환히 비추고 있다. 지켜보는 동안 가방을 멘 행인이 가게로 들어섰다. 어떤 꽃을 고르고 나올까. 스쳐지나가는 평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기념할만한 날일지도 모른다.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바람에 꽃잎이 좌우로 흔들렸다. 사람 많은 동네의 장점은 멍 때리기 좋다는 거 아닐까. 특별히 구경할 의도를 가지지 않아도 개성 넘치는 행인들이 쏟아진다. 시선 끝에서부터 끝까지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나간다.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활력이 서서히 몸으로 돌아오고 있다. 외향형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던데. 햇빛을 받아 그런가. 가만 앉아있으니 문득 떠나고 싶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훌쩍. 입안은 개운한데 어딘지 모를 답답함이 있다. 아. 많이 바쁜가. 아직 전달되지 않은 증여에 대해 읽고 온다. 이러다 필사한 페이지가 닳게 되면 어쩌나. 연필로 쓴 게 아닌데도 끝이 뭉개질까 두렵다. 참, 그러고 보니 해가 눈에 띄게 길어졌다.

#171 이름없음 2026/04/08 11:28:17

D시 동물원에서 늑대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62 편혜영의 ‘동물원의 탄생’에서도 늑대 한 마리가 탈출한다. 기사 댓글이 소설에서 꼬집은 대로 흘러가 한동안 큭큭거렸다. 늑대는 악독스럽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닥치는대로 노약자를 사냥하고 자신의 배를 채울 듯이 묘사되었다. 생포하지 못하면 사살해야 했다. 동물원에서 평생을 길러진 늑대에게 야생성이 얼마나 남아있을까? 길들여진 그에게 탈출이 주는 자유는 얼마나 달콤할까. 65* 사라진 것은 늑대였다. 시베리아 산이었다. 몸길이 백이십 센티미터, 꼬리 길이 사십팔 센티미터, 몸무게가 사십칠 킬로그램인 놈이었다. 66 사실 늑대는 함부로 인간을 공격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추위와 굶주림이 닥쳐오면 어떻게 굴지 알 수 없었다. 67 사람들은 뉴스에 나온 늑대의 황갈색 눈이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늑대는 사라졌기 때문에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70 하루뻘리 늑대를 잡아야 하는 당위성은 늑대에게 악독하고 혐오스러운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확고해졌다. 75 늑대만큼 야성적이고 매력적인 것은 없었다. 늑대는 야생성을 간직한 채 도시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172 이름없음 2026/04/09 14:41:23

새벽이 사라졌다. 하루 안에 잠든다. 동이 터오면 천천히 깬다. 무언가 써낼 시간이 없다. 책을 읽으니 불면에는 최악인 습관이었단다. 침대는 자는 곳이니 다른 생각을 펼칠 거면 앉으랬다. 봄비가 내린다. 가랑비일 줄 알고 우산을 제꼈다. 빗방울이 아침보다 거세졌다. 밤까지 이럴까? 만약 그렇다면 맞으며 가야지 어쩌겠나. 때이른 벚꽃이 후두두 떨어진다. 꽃만 피고 기온이 오락가락해 봄인지 헛갈리는 지경이다. 눈 깜짝할 새 여름으로 당도할 것이다. 슬슬 사람이 지겹다. 어딜 가나 사람인 동네에서 할 소리는 아니지. 리프레시 하고 싶다. 수도 태생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견뎌낼까. 종종 그런 의문이 들곤 한다. 갑갑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할 지경으로 치밀하다. 밀도가 높다 못해 터질 듯하다. 인간지옥이다. 실력이 부족해 자주 스타트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돌핀킥에 욕심이 생겼다. 선수들은 잠영만으로 15m 혹은 그 이상도 갈 수 있단다. 짧은 순간의 추진력을 어떻게 유지하는 걸까? 아주 천천히 늘고 있다. 조금 가혹할 정도의 스케줄이긴 하지만 복습을 철저히 한다고 생각하면 나쁘지만은 않다. 도리어 주말만 되면 몸이 근질거린다. 초반의 중독성이겠지.

#173 이름없음 2026/04/10 23:07:26

12 검은 숲을 향해 몸을 움츠리고 걸어가다 보니 자연이 반드시 옳은 교훈만 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70 물에 빠져본 적은 없지만 만약에 물에 빠진다면 그런 기분일 것 같았다. 서서히 숨통이 조이다가 완전히 끊어지는 기분. 73 그는 숲을 배신할 수 없었다. 배신해서는 안 되었다. 그랬다면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135 사택을 둘러싼 숲이 조금씩 어둠에 파묻혔다. 먹색이던 눈앞이 어느 순간 완전한 어둠으로 바뀌었는데, 지켜보고 있음에도 그 흐름과 변화를 알아챌 수 없다는 게 흥미로웠다. 142 그는 자학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검은 천장이 기히학적 무늬를 그리며 감은 눈 위로 쏟아져 내렸다. 170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런 순간을 모두 잃었다. 다시 회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180 불을 끄자 검은 밤의 계류장처럼 어둡고 고요해졌다. 204 운명을 만드는 것은 과거였다. 과거는 한때의 시간을 떠나는 순간 운명에 속했다.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현재 속에 중첩되고 현재를 간섭하다가 미래에도 살아남을 것이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과거와 현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233 모든 것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과거가 현재를 장악했다. 현재는 과거에 속박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곧 미래도 잠식당할 것 같았다. 267 오랜 세월 숲에서 지낸 그들은 숲에서는 죽음이 보통 위쪽에서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284 그들은 인생이 예기치 않은 한순간에 깊이 틈을 벌리고 절대 그 틈을 아물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326 “구토라니. 시의적절해요. 의심이나 증오는 이를테면 구토 같은 거예요.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지요. 누군가를 의심하고 미워하는 것만큼 통제하기 힘든 건 없지만 전적으로 소화를 못 시킨 내장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337 두려움이 혈관을 타고 흘러 두려움과 분리된 자신을 떠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343 진은 어둠의 심연을, 골짜기의 깊은 틈을, 뒤엉켜 뻗어 자란 나무의 근부를 알고 싶지 않았다. 345 이제 우리는 텅 비었다. 진을 봐주는 것은 우리 안에 켜켜이 쌓여 있는 어둠뿐이었다. 진은 천천히 뒤돌아섰다. 어디에서도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74 이름없음 2026/04/11 18:36:41

문득 도시에서 불안을 느끼는 이유가 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나고 자란 곳은 어딜 가나 하늘 끝에 산이 걸려있었다. 섬을 두쪽으로 가른 거대한 줄기는 유년 시절 배운 신화와도 연결돼 있었다. 치마에 흙을 퍼담아 나른 후 하나하나 쌓아나갔다니. 자세히 기억이 안나 찾아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앉으려고 하니 뾰족한 것이 찔러 불편하자 윗부분을 뜯어 던져버렸고, 그것이 연못처럼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단다. 던져버린 부분은 남쪽으로 떨어져 오름이 되었다는데. 아마 여기까지 배우고 나서 소리내어 웃었을 것이다. 기억 저편에 희미하게 잔상이 있다. 목에 정체 모를 담이 왔다. 온몸 근육을 푸는 동안에도 전혀 이상이 없다가 나가기 직전 알 수 없는 행동 후 갑자기 뻑뻑해졌다. 묵직한 통증에 15분 정도를 쉬어주니 겨우 나설 수 있었다. 날씨는 쾌청했다. 양지 바른 곳에선 벌써 라일락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향기를 맡았다. 제철 맞은 생화 향기를 어떤 향이 이길 수 있을까. 코 깊숙한 곳 점막까지 짜릿해졌다. 진정 봄이다. 부정할 수 없었다. 곧 장미가 주택가를 환히 비출 것이다. 숨을 몇 번 더 들이쉬었다. 집 뒤편 라일락도 잘 피었으려나, 궁금해졌지만 손에 들린 책이 무거워 돌아가진 않았다. 바삐 걸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반년은 족히 땔깜으로 쓰고도 남을 분량의 나뭇가지가 쏟아져 있었다. 가지치기를 한 듯했다. 누가 이 많은 가지를 자르고 옮겼을까. 잠깐 사이 드는 온갖 의문을 물리치며 다 읽은 책들을 반납했다. 숨이 확실히 가벼웠다. 호흡을 조절해야만 하는 운동의 힘인지, 활동량이 늘어 운동 부족 상태에서 벗어난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렴 둘 다인지도 몰랐다. 일상 속에서 효용이 느껴지자 의지가 줄질 않았다. 편독偏讀도 언젠가는 해결해야지 생각만 하고 큰 실행 없이 미뤄두던 과제였다. 지독하게 일본 (추리) 소설만 파던 시절이 있었다. 특유의 번역체에 큰 이질감이 없었다. 반면 서양 번역투에는 지나치게 과장된 묘사와 감각이 있다는 느낌이 들자 거부감이 올라오더니 못 읽게 되었다. 그나마도 비문학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비문학 자체를 차단해버리니 방법이 없었다. 독서에서라도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왜 하는 걸까, 이대로도 괜찮다, 뭐 그런 안일함으로 합리화를 해왔다. 교정하고 싶은 마음이 내내 이기지 못하다가 겨우 이겼다. 방법은 간단했다. 다섯 권 중 한 권 이상은 반드시 비문학을 섞는다. 안 읽고 반납하더라도 그렇게 했다. 반납 기한이 다가오고,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모조리 읽어버렸다. 남은 책이라도 읽어야지. 그리하여 서서히 교정에 성공했다. 이제는 문학 3 비문학 2의 비율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 주로 심리학, 철학, 사회학에 포커스를 두는 건 아쉽지만 어쩌겠나. 다음달에 고치면 될 일이다. 수학이나 기술, 예술, 역사…는 취향이 아니었다. 상호대차로 받아볼수록 편독 경향은 더욱 짙어졌다. 어떻게 분류표에서 균형을 찾아 한 권 씩 읽는단 말인가. 그야말로 이상적인 독서가 아닐 수 없겠다. 그래도 다음번 책부터는 억지로라도 길들여야 하나. 아주 조금이라도 더 흥미가 있는 쪽은 기술과 예술 분야였다. 약통에서 언제 처방 받았는지 모를 근이완제를 발견했다. 이거라면 내 목을 돌려줄까. 다리는 생각한 것보다 금방 나았다. 아마 고개도 내일이면 수월히 돌아갈 것이다.

#175 이름없음 2026/04/11 22:03:21

나는 뜨겁게 살면 안 됐는데, 당신께 뜨겁게 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거지. 내 사주가 얼마나 뜨거울 줄 알고 타오르듯 살라고 했던 걸까. 뼈 있는 말을 던지며 떠나던 뒷모습이 눈에 박혀 있다. 창문 너머로 여름이 오던 5월의 향기, 이글거리던 몸의 열기를 식혀주던 당신의 그림자, 스피커라는 매개체 없이 넘어오던 목소리, 손가락과 밸런스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큰 반지. 의미를 부여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혈색이 옅어 차디찬 손가락이나 어깨, 목덜미의 촉감 같은 것들이 아직 선연하다. 안마를 해 준 적이 있었을 터였다. 자주 하고 다녔었다. 에너지가 넘칠 때였다. 어떻게서든 해소하고 싶어 이리 뛰고 저리 뛸 때였다. 두 가지 종목의 대회를 준비했었으니. 해봐야 선출도 아니고 동아리 수준이었지만 땀 흘리는 게 좋았다. 합 맞춰 노력하고 패배해도 노력은 배신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던 시절이었다. 천장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로도 모자라 쫄대로 휘익휘익 바람 일으키곤 했었다. 그럴 때였다. 에너지가 넘쳤으니 줄 곳 있던 마음도 넘실거려 어쩔 줄 몰랐다. 당신이 내게 날아와 꽂힌 거였을까. 그저 악순환을 반복하기 위해서였던가. 마음을 어떻게 숨기나. 시선을 빼앗고 싶었다. 경쟁자따윈 없었다. 모두 당신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고개를 숙였으니. 그래도 시선이 더 머물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이 아직도 켜져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버스에서 비슷한 색으로 물들인 머리칼을 보고 크게 놀랐다. 같은 사람일 리 없잖은가. 차창 너머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에 반짝이던 그 색이 정확히 일치했다. 길을 걷다 떠오르라고 걸음걸이를 교정한 걸까. 두 발로 서서 걷지 않고선 살 수 없는데.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맙지만 도시로 떠나지는 말라고 발목을 망가뜨린 걸까. 아직 무릎도 완전히 낫지 않았다.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도 검붉은 딱지가 피를 머금고 피부 아래 갇혀 있다. 좋아하는 시는 어쩌다 알려준 거였더라. 암송할 줄도 알았었다고 그랬는데. 그리워할수록 깊이가 얕아지는 것만 같아 두려울 때가 있다. 닳고 닳아서 원형이랄 게 없을까봐 불안하다. 찾아갈 때마다 생각한다. 더 이상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모습에 죄책감이 든다. 다음에 또 오겠다는 인사를 빨리 하고 나와버리는 게 싫었다. 인지오류라는 걸 알면서도 내 잘못 같다. 횡단보도를 건넜으면 무언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항상 생각한다. 바보처럼. 아무것도 못 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수라도 꾸역꾸역 먹다 차라리 다 게워내버리지 두 젓가락만 먹고 내려오다니. 인지오류라는 걸 알면서도 이러는 게 아니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낯설다. 근거없이 도망다니며 떼쓴다. 내가 뭘 할 수 있었냐고 물어보면 할말 없다. 오답만 정확히 짚어가며 헛짓거리 하니까. 틀렸어, 틀린 건 나인데, 왜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지. 내 잘못이에요. 내 잘못 맞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묻겠지. 그럼 나는 앉아서 지루한 재방송을 해야 한다. 회상하다보면 살아있는 거 같아서 되감고 다시 본다고 했다. 살려볼 수 있을 거 같지 않느냐고 말하며 웃는다. 그래, 정말 그랬던가.

#176 이름없음 2026/04/17 12:04:25

왜 이렇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 했더니 책을 멀리했다. 오늘은 정미경의 책이라도 다시 읽어야겠다. 디지털 세계에 깊이 들어갈수록 시간은 빨라지고 부정적 감정은 끈적이는 타르처럼 폐 안쪽에 쌓인다. 실질적으로 녹일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 운동, 호흡, 독서 같은 행위는 효능이 좋다. 산발적 정보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감각해야 한다. 예컨대 같은 소식을 보더라도 신문을 펼쳐 읽기와 인터넷 뉴스에서 보기, 커뮤니티에서 재생산된 무언가를 보는 것은 아주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자극적인 쪽은 커뮤니티에서 마주하기다. 이용자들의 편향된 생각(댓글을 다는 사람은 부정적 발언을 할 확률이 높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문해력에는 ‘어떤 경로에서 정보를 습득할지 선택하는 능력’도 포함되어야 한다. 정보 원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비판적 읽기의 첫단추라고 하면 좋겠다. SNS, 숏폼, 인터넷 기사, 커뮤니티, 신문, 방송, 도서…. 아무래도 책으로 올 수록 정보 전달 속도가 느리겠다. 아. 무슨 잡생각인지. 얼른 녹이러 가야지.

#177 이름없음 2026/04/17 14:34:21

어디까지 온 걸까? 보낼 때야 좋다고 실실거리며 보내긴 했는데. 받는 쪽의 반응을 살필 수 없으니 불안했다. 그냥 하는 일이 아니란 걸 잘 안다. 언젠가 회신이 돌아오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다. 그럴 때 이미 와 있는 편지를 거슬러 오른다. 언젠가는 온다고 했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므로 천천히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사실 ‘제때’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싶었다. 언제 올지 모른다는 사실로 스스로 혼란이라는 디버프를 걸면 더 나을 듯했다. 아직도 보내지고 있다고 여기면 꽤나 편했다. 진짜 편지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표를 붙이고, 새빨간 우체통에 넣고, 집배원이 거둬가길 기다린다. 그러니 괜찮다. 쓰일 곳 없는 불안도 두려움도 잘 뭉쳐 쓰레기통에 던져버리자. 으슬으슬하다. 운동과 운동 사이 공백은 지루하기만 하다.

#178 이름없음 2026/04/18 12:41:34

중독이다. 지상 연습 하다보니 갈증이 생겨 부리나케 뛰어왔다. 예정에 없던 소비도 했다. 충동적이다. 이유는 하나다. 튜브도 구명조끼도 없이 먼바다로 나가고 싶다. 파랑에 두려워하지 않고 싶다. 꼬르륵 잠겨도 좋겠다. 힘을 빼면 떠오르니. 짠물은 더 잘 뜬다고 한다. 어서 여름이 왔으면. 아니, 내가 가는 건가.

#179 이름없음 2026/04/19 14:10:59

260212 마음속에 선생님의 언어를 본뜬 제가 있는 걸까요. 260224 유격이 생겼는지 빠져버린 나사를 드라이버로 조였다. 그러는 동안 바람이 마구잡이로 뛰어들어와 온갖 모서리와 부딪혔다. 하루종일 소란스러울 것 같았다. 나라도 평정에 도달하고 싶었다. 기운이 금방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장난끼 많은 어린아이처럼 달려드는 통에 약한 두통이 느껴졌다. 260310 (1)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2) 나는 그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3)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4) 그 방해물을 어떻게 제거할까 260312 두 팔 휘적이고 어깨까지 써서 넓은 보폭으로 걸을 때면 생각난다. 아직도 교정된 걸음이 어색하다. 당신의 입김이 십 년 뒤에도 유효하려면 제멋대로 걸어야한다는 걸까. 터덜터덜 걷다보면 낭중지추 하나 허벅다리를 찌른다. 예리한 감각 너머엔 언제나 당신이 서 있다. 굳건한 왕국으로 어서 떠나버리자. 아니, 왕국이 내게 오는 건가. 260326 혹시 무너지더라도 굳게 닫힌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사람이 당신을 본뜬 나였으면 했다. 무지막지한 브리칭 램 내부에 코어마냥 웅크린 기억이 있다. 누가 말했는데, 눈동자 너머에 아무것도 없으니 제발 애쓰지 말라고. 260407 게다가 이번은 내가 괜찮다고 하지 않았는가. 괜찮다고 생각해봐, 진짜 괜찮아진다.

#180 이름없음 2026/04/20 00:52:54

보고싶어. 이런 생각 하는 게 나쁘다는 것도 안다. 그런 말이 있다. 이승에서 계속 생각하면 ‘좋은 델’ 못 가고 지천에 떠돈다는. 죄책감은 거기에서 오는가.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나쁜 마음은 왜 잔존해 있나. 꿈에 나와달라 하는 소망이 정말 옳지 못한 걸까. 무의식이 띄우는 환상적 영상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래도 보고싶다. 나라도 생각한다면 잊히지 않는 거니까. 망각은 죽음 이상으로 무섭다. 친구를 잃은 자는 잊혀지는 게 싫어 자꾸만 이야기한다고 했다. 나라도 당신을 호명한다면, 수영장 타일 색을 닮은 방안에서 숨을 한껏 들이쉬고 이름 석 자 부른다면, 어떤가. 생은 그렇게 이어지나. 고작 한 번의 호명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지나. 눈꺼풀이 묵직하다. 슬프다. 아프지는 않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마음이라……. 사실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생판 다른 사람이 부르는, 당신의 이름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오랜만이었다. 타인의 음성으로 존재를 증명받는 경험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그렇게 호명되니 정말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실은 꿈꾸는 게 아닌가 생각했었으므로. 버릇처럼 되돌려보다보니 전지적 시점에 갇혀 있었다. 1인칭 주인공이었지. 당신이 다만 숨을 고를 뿐인데도 마음의 온 볏짚에서 불길이 이글거렸다. 영원히 미결될 마음이 기승을 부린다. 불면에 이르게 하려고 하나보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꿈을 꾼다.

#181 이름없음 2026/04/22 12:13:03

전부 덮어쓰고 싶다. 잡념은 수용성인데 왜 다른 것들은 간단하지 않지. 길가를 하얗게 수놓은 이팝나무가 보인다. 보기엔 꽃가루 많이 휘날릴 듯해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글을 본 적 있다. 술이 당긴다. 제한과 역방향으로 커지는 욕망이라 헛된 일이다. 술이나 담배에서 위안을 얻을 거였으면 스스로도 분명히 제어할 수 있다. 사서 중독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드나들 때 구태여 라일락이 있는 현관으로 나선다. 일년 중 한달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만 주어지는 행운이다. 시한이 정해져있으므로 귀한 게 아닐까. 숨을 깊게 들이쉰다. 어제 아침부터 풀리지 않는 체기가 있다. 명치 약간 아랫부분이 꽉 막혀 있다.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한참을 밍기적거렸다. 날씨도, 마음도 오락가락한다. 이상한 봄이다. 더울 거면 쭉 더워야지. 꽃도 시샘하지 않는 추위를 끌어다가 쓸 일인가. 행인들의 패딩과 반팔이 혼재된 차림을 보자면 웃음이 나온다. 유가만 아니었어도 쉬러 갈텐데. 무척 고되다.

#182 이름없음 2026/04/23 11:26:53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떠난 자가 꿈에 등장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던 차였다. 그 사람이 자신을 잊어주길 원하면 안 나온다고 했다. 정말 그런지 오래 고민했다. 반대로 결론냈다. 찾는 중에는 당연히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눈에 힘 주어 빛내도 암흑 속에서는 탐색이 어렵다. 망각을 원하는 자는 없으므로, 잊어달라는 부탁이 합리적일 리 없었다. 잊히는 순간이 부재다. 지금 어디 있는지, 회신 없을 신호를 보내본다. 여전히 생동하는 과거의 내가 뚜득뚜득 기계음의 짧은 메시지를 돌려준다. 기억으로 남아있다. 실은 과거도 현재도 편의대로 만든 개념이잖은가. 동시에 흐를 수 있다. "거짓이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는 착각에 잠시 빠져본다. 이럴거면 도대체 왜 불안해했던가? 닳아버릴 거라니. 몇 년이 지났는지 헤아려봐. 진짜 그랬나.

#183 이름없음 2026/04/24 11:43:32

16 선배가 혹 내 얼굴에서 낙오자의 안색을 발견하면 어쩌나 조바심도 났다. 광합성을 하는 사람에게는 광합성의 빛이, 전자파를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전자파의 빛이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22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이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사물에 영원히 달라붙어버리는 것 같아요. 41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수면 위로 올라와도 숨을 쉬느라 소리칠 수 없었다. 깊은 물에서 둔하게 찰방이는 걸로는 주의를 끌기도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조용히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물속에서 느낀 아주 기이한 고요를 기억하고 있다. 52 불길한 징조가 우리의 앞날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애썼다 55 장판 위로 네모난 빛이 비스듬히 들어왔는데, 그 사각형 안에서 뭔가 희미하게 출렁이고 있는 걸 발견해서였다. 그건 방바닥에 비친 아지랑이 그림자였다. 내 발 아래서 신비롭게 출렁이는 봄기운. 나는 잠시 충만해져 '아, 보이지 않는 것에도 그림자가 있구나' 감탄했다. 67 나무는 전쟁 중 길가에 함부로 버려진 시신처럼 쓰러져 있었다. 94 세계는 비 닿는 소리로 꽉 차가고 있었다. 빗방울은 저마다 성질에 맞는 낙하의 완급과 리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듣다 보니 하나의 소음처럼 느껴졌다. 자연은 지척에서 흐르고, 꺾이고, 번지고, 넘치며 짐승처럼 울어댔다. 단순하고 압도적인 소리였다. 자연은 망설임이 없었다. 자연은 회의(懷疑)가 없고, 자연은 반성이 없었다. 마치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는 거대한 금치산자 같았다. 103 어둠 저편에서 물들이 심하게 몸을 떠는 소리가 들렸다. 냄비와 컵을 비롯해 각종 그릇에 든 물들도 뭔가 예감한 듯 일제히 흔들렸다. 필사하려니 두통이 심해 며칠째 진도가 멈춘 김애란의 『비행운』.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나 마음에 꽂히는 문장이 많았다. 화살처럼 관자놀이를 꿰뚫는 서늘함이 싫어 누운 채 술술 넘겼다. 도대체 어떻게 썼을까 싶은 문장들은 아쉽지만 흘려버렸다. 『바깥은 여름』 말고도 읽을 책이 많다. 그래도 전작주의 하기엔 나름 쉬운 작가가 아닐까. 인기가 적당히 있어야 도서관에서 찾기 쉽다.

#184 이름없음 2026/04/25 16:30:52

107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마을을 삼킨 황톳물은 어디론가 거세게 흘러갔고, 그 위로 현대의 아름답고 치명적인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녔다.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어떻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구조대를 태운 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108 순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하지만 점점 뚜렷해져가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사람들이 우리를 잊은 게 아닐까?’ 117 암흑 속에서 고요를 찢어발기는 세찬 물소리가 들려왔다. 회의를 모르고, 반성을 모르는 거대한 금치산자가 내지르는 포효였다. 146 "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렇게 우연히 노래랑 나랑 만났는데. 또 너무 좋은데. 나는 내려야 하고. 그렇게 집에 가면서, 나는 그 노래 제목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268 하지만 갈등은 사소한 데서 시작됐다. 얼핏 보면 별거 아닌 문제들이지만, 그런 것이 차곡차곡 쌓이자 어느새 두꺼운 벽이 되었다. 277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293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317 조만간 다시 옛날이 될 오늘이, 이렇게 지금 제 앞에 우두커니 있네요. 5년 만에 읽게 되었다. 등록일을 보니 2021. 04. 03. 이라 적혀 있었으나 그때 정말 읽은 것인지 읽었다고 표시를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날이 더워지면 가끔씩 크레인 위를 오른 소년 한 명이 머리를 스쳐간다. 뿌연 빗물에 잠긴 세계를 발아래로 두고 앉아서 발을 휘적이는 소년. 자연이라는 거대한 금치산자는 다윗이겠지. 깨달음을 이제서야 얻었다. 그렇다면 소년이 이겼겠구나. 천천히 시간을 두고 전작을 훑는 중이다. 작년에는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었었다. 휘날리며 읽어서 기억이 거의 없다. 성장소설과 청소년소설 어드메를 전전한다는 분위기만 어렴풋 새겨져있다. 첫 작품으로 되돌아갈 때, 희열이 크다. 이토록 날것이었구나 하는 마음 반, 이름을 날리려면 처음부터 이정도는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마음 반. 보정 전 A컷의 raw 파일을 모니터에 켜두는 기분이랄지. 총평을 끌어왔더니 문단 간 연결이 어색하다. 그래도 남길 건 남겨야겠다. 소설 속 화자들은 모두 평범하다.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마저 지독할 정도로 그렇다. 그러나 내가 나를 살아내는 동안, 세계를 구축하고 수리하고 부수어뜨리는 동안 평범은 지워지는 게 아닐까. “천 개의 잎사귀는 천 개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86쪽)”. 천 명의 삶은 그 방향이 제각기이기에 특별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그것이 불행 혹은 비행(非幸)을 위해 달려가는 일일지라도.

#185 이름없음 2026/04/25 23:58:53

두 달쯤 전의 인연을 더듬는다. 별것도 아니었다. 금방 사랑에 빠지지만 좀처럼 식지 않는 성질을 가진 마음을, 아직도 다루지 못하는 미성숙함이 그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것이리라. 사랑이라 부를 마음까지는 아니다.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연이 다해 앞으로도 영원히 아닐테니 털어본다. 글로 쓰는 방법보다 현명한 방식이 있을텐데 남겨두고자 한다. 마음이 그러자는데 그리 해야지.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이 으레 그렇지만 그땐 조금 특수했다. 불자의 손주로 태어난 탓인지 성당과 교회보단 사찰이 편했고, 영화에도 나온 곳이었으므로 충동적으로 묵었다. 그 사람은 어떤 목적으로 그날 묵었던 것일까. 휴식 차 온 것인지, 불자였던 건지, 이름과 나이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그저 낯섦 없는 호의를 묵묵히 받기만 했다. 돌아가는 날 아쉬움을 남기기 싫어 새벽 예불에 참가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으니 슬쩍 와서는 등판을 툭툭 두드렸다. 불경을 펼쳐도 모르는 말 투성이였다. 불자들은 익숙한듯 책을 펼치기만 하고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외는데, 나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수의 목소리가 만든 삼엄한 경계 바깥에서 맴돌았다. 속했는데 속하지 않았다. 내부자이면서 외부자였다. 그가 나를 경계 안쪽으로 훅 밀어넣었다.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기에 도와준다는 듯 자연스러웠다. 그 역시 처음에는 다른 불자의 호의를 받았을지 모른다. 양쪽 귀로 불경 외는 소리만 들렸다. 마음이 어딘가로 끌어당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지속될 수 없는 관계가 주는 다정함에 흔들리는 것까지 잡아주진 못했다. 미어캣처럼 목을 쭈욱 빼고 당신의 뒷모습을 찾았다. 좀처럼 보이지 않더니 식당 안으로 들어오자 몇 사람 앞에 서있는 듯했다. 혼자 먹을까 망설였지만 용기 아닌 용기가 불쑥 샘솟았다. 맞은편에서 묵묵히 밥을 우겨넣었다. 일정이 빠듯해 새벽참이 아니면 식사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탐식하는 모습이 보기에 무척 좋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당신은 그런 나를 물끄럼 쳐다보더니 내게 묻는다. 오늘 가시냐는 작은 속삭임이었다. 네, 하고 짧게 우물거리곤 고개도 끄덕였다. 붙잡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식사 중엔 금언이 원칙이었다. 당장이라도 식사를 버리고 뒤쫓아가 절에는 자주 오시는지, 불자인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지 따위의 잡담을 나누고 싶었으나 번번이 목구멍에서 좌절해 돌아갔다. 분명 내 마음이었는데 이해가 안 됐다. 당신이 떠난 자리를 들여다보며 남은 밥을 씹고 또 씹었다. 평소 내향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기에 더욱 갑갑했다. 한참 고민하다가 적확한 문장이 툭 떨어진 것이다. 『비행운』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146쪽, "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렇게 우연히 노래랑 나랑 만났는데. 또 너무 좋은데. 나는 내려야 하고. 그렇게 집에 가면서, 나는 그 노래 제목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호텔 니약 따」 277쪽,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아마 영영 노래 제목을 알 수 없겠지. 그러다 어느 날 귓바퀴에 걸린 단 한 구절만 하루가 내도록 돌림으로 부르겠지. 말쑥한 표정으로 웃던 표정이 짧은 영상으로 부메랑처럼 반복된다.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다시 볼 일이 없다면 내밀한 조각을 서로 손에 쥐어주고 서울로 도망쳐버리고픈 마음이었다. 실은 다시 만나고 싶었다. 친절함에 휩쓸리다니 말도 안되지만. 말이 안 되지만. 강렬한 느낌이 파도가 된 채 밀려와선 한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4시간을 달려 도시에 도착하고 나서야 밀물 다음엔 반드시 썰물이 따라붙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남선 터미널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망연히 서 있었다. 다들 명확한 행선지가 있었으며 발걸음은 재빨랐다.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지도를 켰다. 몇 년을 살아냈는데도 이 거대한 도시가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리면 쉬이 저항하지 못했다. 밀면 그대로 밀려나갔다. 한번도 끌어당겨준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보고싶었다. 사찰의 규칙을 잘 안다면 도시의 규칙따위 이미 몸에 밴 사람일 거라는 헛된 확신 때문이었다. 디딤발이 쓰라렸다. 빵빵하게 부푼 가방을 부리고 노래를 바꾸어 틀었다. 한참을 그렇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186 이름없음 2026/04/28 14:52:35

물에 뛰어들기 전까지 흐렸는데 씻어내고 나오니 조금 갰다. 미숙한 평영 발차기를 하며 허우적대는 동안 전혀 기대하지 않던 회신이 와 있었다. 기분 그래프를 오른쪽 끝까지 밀었다. 들떠있다. 심박이 평소보다 빠르다. 실실 쪼개며 코로 길게 내뱉는다. 평영 발차기 영상을 보며 공부할 요량이었는데 다 치우고 글자를 들여다본다. 꽤 잘 하고 있었다. 약 없이도 기분의 평형을 맞추고 싶었다. 약과 독은 동전의 양면 관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외부로 향했던 통제욕구를 내부로 돌려놓기만 하면 할만한 일이었다. 책이 그렇게 말했다. 그 이전엔 아마 당신이었으리라. 간단하고 명료하지만 빛이 없는 동굴 속에서 “살아낸다”는 행위는 난도가 높게 느껴졌었다. 고개가 아래로 처졌다. 돌이켜보면 쓸모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완전한 관해寬解에 다다르지 못했음에도 소회를 남기는 게 조금 웃길지 모른다. 확실한 건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다. 나아가고 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근처에 둔 기사가 쓰러져 있었다. 가벼운 두통을 느낀다. 아주 가끔씩, 좋지 못한 상상을 한다. 자동적으로 그리 되는 것이다. 완전 관해따위 바라지 않는다. 언젠간 모두 스러질 테니까. 이젠 머릿속의 시한폭탄 같은 단어로 부정적인 의미화를 않는 것처럼, 서서히 나아지기만을 바라며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다. 사대문 중 하나를 통과한다. 길가에는 부처님 맞을 준비를 하는 등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문득 생김새만 아는 당신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도. 날이 쌀쌀하다. 그러고보니 어제 비가 왔었다.

#187 이름없음 2026/04/28 22:08:23

궁금의 꼬리를 타고 넘어가보니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알고 싶어졌다. 글이 주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비언어 없이 정제된 단면만 보고 판단하려니 천천히 읽어내려가며 생각을 키우곤 한다. 회신할 시점엔 몇번을 읽었을까. 모르겠다. 아직 한번도 전범위 복습을 해본 적은 없지만 곧 아카이빙할 겸 쭉 훑게 될 것이다. 그럼 무언가를 찾아내려나. 버스를 잡기 위해 내달렸다. 이제는 뛰어도 거친 호흡 너댓번이면 금방 돌아왔다. 물속에선 숨을 언제든지 쉴 수 없다는 압박감이 힘겨웠다. 반면 지상에선 어느 정도까지는 심박이 올라도 숨이 확실히 덜 찼다. 원한다면 원하는 만큼 들숨을 쉴 수 있었으므로. 걸림돌이라면 오른발 뿐이었다. 욱씬거렸다. 이러다 말겠지. 환절기도 지나버린 봄인데 기온이 오락가락한다. 체온도 쉽게 널뛰었다. 겹겹이 입었다 한꺼풀씩 걷어내고, 덧입기를 반복한다. 다시 글로 돌아간다. 원하는 만큼 알아낼 수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분위기가 꽤나 경쾌하다. 그간 왔던 회신에 비하면 뜀걸음 하는 어린아이처럼 가벼웠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망설임을 깨치고 나올 정도로 잘했다는 건가. 가끔, 아주 가끔은 내 생각도 할까. 말린 건어물 냄새가 훅 끼친다. 질겅질겅 씹고 싶다, 턱 아플 때까지. 이제보니 타코야끼 위 가쓰오부시와 데리야끼 소스 냄새의 혼합인 듯하다. 저녁을 걸렀을 뿐인데 음식이 주는 자극에 정신을 못 차린다. 단식하다보면 어느 임계를 뚫고 나갔을 시점에 머리가 확 시원해지는 순간이 온다. 아마 새벽녘이려나. 평소보다 후각이 예민하다. 위장이 아우성친다. 실존하는 인물인지 알아내고 싶다, 며 하소연했더니 너는 시간에 상징성을 부여하라 했다. 그때쯤 난 무얼하고 있을까. 당신은 어떨까. 내일의 나도 다 모르겠는데 몇 년 뒤를 어떻게 헤아리나. 다만 상상해본다. 불현듯 치고올라오는 첫번째 감정은 불안함이다. 만나게 된다면 이후로는 연락할 수 없게 되거나, 거절당한다거나……. 조커 카드만 쏙쏙 뽑아오고 앉았다. 툭 버려본다. 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면서 안좋은 상상을 우선하는가. 할 수야 있지. 좀 나중으로 미룬다면 좋을텐데. 숨을 길게 내쉬고 뱉는다. 뒷목이 서늘하다. 이런 것도 봄이라니. 곧 5월이다. 잠깐 숨고르는 사이 여름은 밀려들 것이다.

#188 이름없음 2026/04/28 22:11:49

의미를 공들여 생각지 말라고 얼마나 많은 단어를 치환하고 삭제하는지 알고 싶다.

#189 이름없음 2026/04/29 08:22:00

「나는 편의점에 간다」 짧은 리뷰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 죽고, 태어나고, 아프고, 울고, 웃는다는 게 기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인간들은 그저 기계 부품처럼 정해진 궤적만 따라간다는 생각에 지배되었다가도, 다시 나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반대다. 도시는 멈추어 있고 사람이 움직인다. 행인이, 버스 안에서, 지하철에서, 카페 안에서, 오늘 본 사람을 내일 다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것 같은 그 ‘사람’들이 지탱하는 도시를 본다. 권태로울 수밖에. 지겹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틈바구니에서 꾸역꾸역 숨쉬겠는가. 『달려라 아비』 전체 리뷰 원룸이나 자취방이나 하숙과 같은 공동생활의 전경은 무척이나 일상적인 일이다. 생활에 밀착된 이야기를 써내려가면서도 흡인력이 있기가 참 어렵다. 김애란은 그걸 해낸다. 필사하지 않아 어렴풋 떠오르는 『안녕이라 그랬어』 「홈 파티」의 경우에도, 초대 받아 간 모임은 꽤나 있을 법한 사건이지만, 일상적 사건에서 어떻게든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과 통찰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우리에게는 무수히 비슷한 기회가 있다. 새로운 사람과의 합석, 뜻하지 않은 모임, 자기소개를 해야만 하는 시간들이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창작해낼 수 있는 역량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겠다. 『달려라 아비』는 그가 가진 힘의 원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정확히 20년 전 서울이었음에도,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분위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노크하지 않는 집」이나 「종이 물고기」 속 서울은 개인화된 생활방식의 일면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것이 지금의 서울과 유사하다 느껴지는 까닭은 시간이 멈췄다기보다는 너무 빨라 안에 있던 청년들만 계속해서 갈아치워지는 탓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울을 떠났거나 서울에 얽매여있거나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아 생기는 익명성, 고독감, 그리고 외로움 같은. 작품을 읽어내리다보면 나, 나의 근원, 부모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자아인 나에 집중하게 된다. “아버지, 아버지, 나는 어떻게”(「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생겨났는지 묻는, 복집에서 지리를 먹고 잠에 빠지면 안되는 소년처럼, 묻고 싶어진다. 어머니, 어머니, 나는 어떻게. 어머니, 어머니, 그는 어떻게. 그리고 그에게, 그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생을 망가뜨리는 상상에 빠져 있던 내게 손을 내밀고 싶어진다. 가끔씩만 그러자고. 아주 가끔씩만.

#190 이름없음 2026/04/30 14:34:22

260423 다시 돌아갔다. 이번엔 등판에 차가운 손이 훅 달라붙었다. 자, 여기를 꼿꼿하게 해서 가봐. 마른 손이 딴딴한 벽처럼 느껴졌다. 어깨를 신경쓰라는 말과 함께 걸었다. 몇걸음 더 걸을랬더니 팔을 크게 휘두른단다. 어렵다고 했다. 안해서 그렇지 자꾸 해야된다고 그랬던가. 몇 번 더 반복하자 만족스러운지 이제 됐다며, 가보라는 말과 함께 들어가버렸다. 새하얘져 정보 처리가 지연됐다. 세수를 반복해야만 했다. 한번 오른 열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차가운 손이 몇 번 닿았다 떨어진 것 뿐인데 왜 더웠을까. 대혼란이었다. 한쪽에서는 감정카드를 여러개 펼쳐놓고 올바른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난리였고, 반대편에서는 기억을 저장하고 비디오테이프 형태로 변환하고 있었다. 260424 >>106 작년 10월의 너는 뭐라 말할까. 그게 “네/내”가 진짜 바라던 일이라고 말하며 웃나. 봄과 여름의 경계에 서 있다. 여름이 넘실거리며 다가옴을 느낀다. 햇빛을 강하게 쬔 아스팔트 위에서 어지럽게 일렁이는 아지랑이를 본다. 허상인 줄 알아도 시선을 빼앗긴다. 260429 손톱이 길어지고 있다. 애써 의식하고 있기도 하지만 불안도가 낮아지기도 했다. 입에 손이 갈 때마다 얼른 깨닫고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고치기로 했으니 지켜봐야지. 이제껏 여러번 실패해왔다. 수능이 끝난 후 몇 달, 휴학 후 몇 달 정도를 긴 손톱으로 살아온 적도 있었으나 금세 버릇이 도졌었다. 이번엔 몇 달 가려나. 오늘도 빙빙 돌고 있을 지구 주위를 서서히 공전하고 있다. 손톱달부터 시작해 보름을 거쳐 삭까지. 그리고 오늘 아침 잠에서 깨며 문득 시간성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일어나자마자 꿈에서 계속 생각해왔던 것처럼 아— 하고 깨우쳤다. “오늘”이라. 그런 인사도 한 적이 있었나. 몇달을 건너 보낸 편지의 회신이었는데 오늘 건강에 유의하라 한다. 오늘, 이라, 그거 매우 현실적이고, 사실적이었다.

#191 이름없음 2026/04/30 23:35:44

거짓말 같았던 그날부터 두 해가 지나버렸다. (>>57) 어디서든지 보랏빛 생화향이 퍼져오면 당신의 천진한 목소리가 들린다. “라일락이다!” 어떻게 아세요? 라 물었더니 이런 향을 가진 꽃은 하나뿐이라고 했다. 덕분에 다음 해부터 길가에 핀 연보랏빛 꽃잎이 있으면 천천히 다가간다. 노래가사처럼 꽃이 지는 날 안녕, 해야 할까. 화자는 말한다. 이별은 기쁜 일이라고. 이제 하이얀 클라이막스를 넘겼으니 봄바람처럼 떠나자고. 장면이 바뀐다. 저 멀리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가로선이 보인다. 그보다 가까이 흰 등대가 있다. 더 가까운 곳엔 당신이 수면 아래로 몸을 숙인 채 하염없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스노클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튜브에 온몸을 내버린 나는 풍경에 엮인 당신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멍하니 당신이 손을 올린 튜브를 지켜보고 있다. 튜브 모양이 특이해서 굳이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인이 박일 듯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지점이 오자 불쑥 본능이 치밀었다. 불안했다. 그때까지는 정말 물이 무서웠다. 실은 튜브에 반신이 떠 있어서 안 닿을 뿐이고, 일자로 서 있으면 충분히 발바닥을 디딜 수 있었다. 돌아보니 우습다. 트라우마가 참 짙긴 했었구나. 최근 연달아 물과 친해지고 있었다. 강습으로 모든 걸 배울 수는 없어 온라인 강사들과 엄마의 전언을 혼자 되씹으며 실험해본다. 그렇게 배면 뜨기와 자유형을 하나씩 해나갔다. 자유형에서 중요한 것은 호흡하는 타이밍이었다. 몸이 완전히 뜰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물을 밀어내며 속도가 붙는 잠깐 사이에 들이쉬어야 했다. 15m만 가도 쩔쩔매며 남은 숨을 몰아쉬지만 그래도 무척 좋았다. 쾌감으로 들어찬 폐에 얼른 공기를 밀어넣었다. 후하, 후하, 후하. 얼른 바다로 달려가고 싶다. 그러다 아쉬워한다. 그때 수영할 줄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양손 가득 캔 보말을 자랑하던 뿌듯한 얼굴빛이 기억에 남아 있다. 수영복을 챙기지 않아 러닝용 반팔에 반바지로 대충 들어갔는데, 물 밖으로 나오니 몸이 아주 무거웠다. 그래도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슬리퍼 직직 끌고 아침 산책하며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가까운 바다에서 송어가 팔딱팔딱 뛰는 이유에 대해 찾아보고,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돌아가던 시간이었다. 원주민은 죽어도 모를 맛집에 들어갔었고, 한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고, 부른 배를 통통 두들기며 나왔었다. ‘굳이’ 해안도로를 택해 멀리멀리 돌아갔으며, 소가 누워 있다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섬을 찍었으며, 원주민만 가는 관광지에 함께 다녀왔다. 그러곤 서울에서 다시 만난 게 이태 전이다. 돌려받은 지명에 대한 이야기가 꽤 흥미로웠다. 어렴풋한 지식으로 고장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걸 채무로 생각해왔는지 자연스럽게 역사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에서 뿌듯함이 전해졌다. 찰나의 순간, 그가 귀여웠다. 아니, 아니지. 멀리서도 향기만 맡고 라일락임을 알고, 물안에 빠져 있던 옷가지를 챙기는 모습들은 퍽 귀여웠다. 그리 될 줄 알고 옷을 두고 간 거였을까. 그렇다면 이제는 무어라고 연락해야 하는가. 내려갔더니 그 바다에 가보고 싶어서 갔고, 생각이 나더라고 할까. 실은 내가 바랐던 건 풍경이 아니라 당신이었다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여러 말을 손 안에서 굴리다 전부 지우고 잘 지내시죠? 요새 바쁘신가요? 문득 생각나서 연락드립니다. 라고 보낼 것이다. 무슨 책을 읽다 덮었더라, 잘 모르겠다. 샌드위치의 맛은 기억이 난다. 체할 뻔 했었으니. 리트리버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넜던 순간도 보인다. 계단을 오르다 헉헉대던 저질체력에 화나기도 했었더랬다.

#192 이름없음 2026/05/01 13:04:18

“그리고 문득, 누군가를 만나기 전 그 사람 이름을 먼저 알게 되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네모난 자리들, 김애란) 숙련된 청자의 스킬이라는 걸 모른 채 투정만 부렸다. >>116, “그러다 하루는 힘을 빼고 썼더니 좀 기운이 없어보인다고 하고.” 웹서핑 중 만난 글귀에 그렇게 쓰여 있었다. 올바른 대답, 답장, 회신은 말꼬투리를 잡는 게 아니라 상대의 감정을 읽어내야만 한단다. 나는 주로 말꼬투리를 잡는 유치한 화자였다. A라는 일이 있었으면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고, 상대의 B에 대해 궁금해하는 식이었다. 반복 숙달을 통해 이뤄낸 성취겠지. 어쩌면 역할 바깥에 있을 때는 그러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늦여름엔 1.1.7 정도의 버전업은 되어있으리라 믿는다.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다. 감정을 숨기는 훈련을 받은 자의 글귀를 읽어내려가며 어디까지 파악할 수 있을까. 실은 지금도 예전의 회신을 읽으면 끊어진 어절마다 숨 고르는 표정이 그려지곤 한다. 그러니까 당신은, 선생님은, 감추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제아무리 골몰해봐도 의문스러운 게 당연했다. 작정하고 수면 아래로 보내버리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 눈동자 너머, 감춰진 장막 뒤로 들어가 가만히 지켜보고 싶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도 좋으니. 바닥에 털썩 앉아 의자에 기댄 등판을 멀거니 쳐다보았던 옛 시절처럼. 내게 필요한 건 단순한 고요였다. 익숙한 자가 펼친 결계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함께 공간을 점유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자꾸 꿈에 불러오나보다. 당신의 결계 안으로는 들어설 수 없으니 내 공간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일어나자마자 다급히 옮겨적는 이유는 꿈의 장막이 무너지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정념은 빼고 결정체만 남겨놓으니 딱 그만큼이었다. 궁금하고, 알고 싶고, 결계 내부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들은 다 엊저녁 습관들에서 비롯된 거였다. 생존은 하고 있는지, 불건강하다면 왜인지, 어떤 오늘을 살고 있는지, 내일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 가능하면 그 외에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직언은 아니었고, 우회로를 통해 언어가 전달됐다. 강제개행과 어절 사이 공백에서, 쓰려다 말았을 것 같은 숨겨진 문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궁금하다. 한 바닥에 쓰여진 작가의 말을 덮고 난 뒤 밀려오는 공허감을 털어낼 때, 세탁기가 깨끗이 빤 이불을 건조대에 널어놓을 때, 가만 누워 발가락과 발톱을 들여다볼 때. 생각난다. 양쪽 코를 모두 사용하여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혹시 그거 아는가? 사람들은 버릇처럼 한쪽 콧구멍만 사용해 숨을 쉰다는 사실. 물안에서든 지상에서든 호흡법을 단련하다보면 양쪽 모두를 써서 폐 가장 안쪽의 폐포에게까지 공기를 전달할 수 있다. 아마 그때쯤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몰랐을 것이다.

#193 이름없음 2026/05/03 23:05:33

생각이 많아 자꾸 들락거린다. 글을 쓰다가 전부 지워버린다. 마음이 복잡하다. 어떤 의미인지 물었을 때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도망친 탓에 문제가 커졌다. 오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접고 모자를 썼다. 비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하루종일 나른한 비가 내렸다. 이제 여름으로 들어서겠다는 선언처럼 토독토독 잘도 소리를 새겼다. 내일도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아직 머리 위 먹구름이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어떤 의미인가? 작은 의미인가? 크다면 얼마나 큰가? 물속에선 이론과 행동이 충돌했다. 조금만 더 잘하고 싶었는데 숨을 원활히 쉬지 못하니 흐름이 툭툭 끊겼다. 시원찮았다. 몸통을 유연히 돌려야 하는데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가라앉는다. 숨 대신 물을 한바가지 들이켰다. 오기가 생겼다. 쭐래쭐래 전화했다. 폐활량을 기르는 훈련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남은 숨이 많은데도 쉬이 몸이 굳어버렸다. 호흡하려고 몸을 틀 때 발이 멈추기도 했다. 고칠 점이 많았다. 얼른 강사를 보고 싶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이라도 들려주었으면. 선행하지 마세요, 같은 말이라도. 이런저런 자료를 뒤적였더니 성과가 있었다. 혼자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자동적 사고를 받아적는 행위가 중요했다. 감정 구조가 빈약한 편이므로 부정적 생각이 훨씬 빨리 치고 올라오는데, 잠자리채로 휙 낚아채서 얼른 비합리성을 찾아 고쳐주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낚아채는 과정에 있었다. 불안이 활개칠 때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하기란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선생님의 언어를 본뜬 내가 정말 있다면 그 시점에 달려와야 하는 건데도, 그러진 않았다. 혹시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는 감정의 변화를 원치 않는 걸까? 다 버려두고 웅크린 채 그림자에 본인을 가두길 바라는가? 실마리가 잡혀가고 있다. 구름이 걷히면 더욱 선명해지겠다.

#194 이름없음 2026/05/04 12:20:08

맑다. 비틀린 마음까지 내리비추는 해가 기어이 떴다. 뭉게구름이 뿌듯한지 웃고 있었다. 눈을 맞대고 대들다 먼저 피해버렸다. 무슨 의미고 어떤 마음인지 뭐가 중요하지? 눈앞의 일부터 치워버리자. 시간이 없다. 아침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의 단골손님은 단연코 당신이었다. 고친거라곤 발목의 각도 하나 뿐이다. 그땐 완전한 팔자였었다. 지금은 십일자다. 아직도 큰폭으로 팔을 휘젓고, 어깨는 약간 굽어있다. 벽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전과 상이한 목표를 가지고 다른 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 나쁜 일만은 아닐 듯했다. 문제의 핵심에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무엇이 중추를 담당하길래 간접경험으로 읽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지 알고 싶었다. 비행운의 진도를 못 뺀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다. 타이레놀 먹어가면서 읽어야할 정도의 고통을 느꼈었다. 차라리 꾀병이었으면 했다. 통증만이 진짜였다. 관자놀이를 날카롭게 뚫는 그 감각이 고작 텍스트 처리에서 기인한다는 게 웃겼다. 고작이 아닌가? 잊으려 했던 기억을 억지로 연상시킨 걸까? 두통은 단지 반작용일 뿐이려나. 새벽에 잠시 깼다. 꿈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메모했다. “06:56 / 편지 받는 꿈을 꿨다 / 이상하지 / 무난하게 동글동글한 일반 글씨”. 회색과 노란색이 어지러이 섞인 편지지에 검은 볼펜으로 2~3문장 정도 쓰여 있었다.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날 때 적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마지막에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195 이름없음 2026/05/06 09:57:11

내 마음만 들여다보지 말고 상대의 것을 보란 말이야. 실수를 반복해도 똑같이 굴고 있으니 따끔한 충고를 들어야 했다. 어떤 생각으로 돌려주는지 알면서 이기적으로 굴 거야? 화장실에서는 옆집의 알람소리가 울렸다 사라지고, 울렸다 사라진다. 마치 경보음 같다. 계속해서 귓가를 때린다. 성가시다. 하나씩 고치기로 했으니 이번에는 진짜 마음이 시키지 않는 방향을 택한다. 행동을 한 뒤 인지를 누더기처럼 기우면 된다. 이게 내가 믿는 일이고, 바랐던 거라고.

#196 이름없음 2026/05/10 01:07:21

생각이 다시 많아졌다. 당신은 뭘까? 어떤 의미이길래 주지화를 써가면서 고민을 지연시키는가? 시간을 아무리 쏟아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실 알아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이런 현상”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반복하면 몰라도. 열심히 밑밥을 깔았으니, 순진하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이제 다 안고 갈 수 없어. 그런 생각이나 했다. 나를 납득시키지 못할 바엔 도망쳐버릴까봐, 차라리. 손에 쥐지 못해 불안해하거나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기에는 인생이 짧았다. 발버둥치다 호흡 못하고 잠겨버리느니 나아가야겠어. 센서등이 제멋대로 점등을 반복했다. 어서 두꺼비집 스위치를 내려버리고 싶었다. 완전한 암흑으로 들어가버린다면 좋을텐데. 무작위 재생에서 나온 노래가 심정을 알맞게 대변하고 있었다. “Hate that, Hate that, I hate that.” 싫어 죽겠다. 왜 이런 짓을 했지? 신경이란 걸 쓰지 않았어야 했다. 감정 판별에 오랜 시간을 들인다는 것도 알면서. 생각하면 병신되는 거 진짜 순식간인데—.

#197 이름없음 2026/05/10 01:24:06

당신은 여기까지 읽고 꽃말을 짚어주며 앞으로는 반복하지 말라고 한 걸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사랑하고 그냥, 앞으로는, 좋아해도 괜찮은 사람들만 눈에 넣으라고. 그렇다해도 잔인하고 아니어도 미칠 지경이었다. 떠날 필요 정말 없었던 거 아닌가? 명치 아래에서부터 뜨끈한 응어리가 스멀스멀 만들어진다. 더 밀고 올라오기 전에 도망간다. 원망하고픈 에너지가 형성되면 안 되잖아. 그래도 밉다. 감정의 원천이 어디인지 알게 됐다. 전이 맞잖아. 건강한지 목숨걸고 물어보는 이유 뭐겠어. 묻지 않아도 알고 있다. 차라리 원형으로 존재했다면 옮겨갈 마음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당신이 보고싶어. 지금도. 가쁜 숨 쉬며 횡단보도 빨간불이 되기 직전, 인도에 왼발을 붙여줘. 엄지손가락이 떨린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형형색색의 꽃잎을 보며 해맑게 웃어달란 말이야. 왜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된 거지? 가끔 뒤를 돌아본다. 너는,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도대체 어떤 계기가 퍼펙트 텐에 화살을 꽂다못해 관통시켰느냐고. 나는 묻는다. 너는 말이 없다. 단지 당신의 그림자 안에 몸을 웅크린 채 앉았다. 그게 네 자리였지.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자리다. 당신이 만든 응달이 좋았다. 상상만 해도 평온하다. 차가운 벽이 주던 기묘한 안정감. 5, 4, 3, 2, 1……. 해사한 표정으로 웃는 얼굴을 상상했더니 응어리가 저절로 뭉개져 혈관 너머로 사라졌다. 지연시키자. 이 새벽녘에 고민 좀 한다고 풀릴 거였으면 진작에 해결될 일이었다.

#198 이름없음 2026/05/10 15:40:16

백일몽인가, 싶다.

#199 이름없음 2026/05/11 12:01:19

경계를 끊임없이 의식해야만 한다. 잠시 느슨해졌을 뿐이다. 정신 차리자.

#200 이름없음 2026/05/12 12:24:01

궁금하니까, 의 너머에 있는 진짜를 마주했다. 의존을 강화하려고 만나자고 하고픈거다. 그건 정석이 아니다. 손을 느슨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그랬잖아. 옳지 않은 욕망과의 가위바위보에서 영원히 져줄 셈인가? 이겨야지. 그 욕망은 어린 내 모습을 하고 있었다.

#201 이름없음 2026/05/14 07:15:53

260413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그곳으로,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함부로 눈을 뭉쳤다. 손끝이 차다 못해 타오르고 있다는 착각이 일었다. 뜨거웠다. 전기장판에 손을 아무리 녹여도 감각이 다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다. 아침 햇살에 눈이 자취를 감출까 허겁지겁 뛰어나가 멀건 눈으로 지켜봤다. 결국 녹아내렸다. 왜 나아지지. 내 슬픔, 그리움, 사실 다 원형으로 껴안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260414 보고 싶어, 라고 말하는 문장 끝에 누가 오는지 지켜본다. 진짜 걔가 보고 싶어? 아닐걸. 260417 아찔한 감각이었는데 말이지. 회상해보면,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여운과 소식이 겹쳐 굉음을 내며 터진 것이었다. 감각이 없다고 느껴지는 지경에 더 빨리 올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화가 난다는 감정은 이차적이다. 일차적으로는 내가 어떤 카드를 뽑을 것인지 무의식 중에 고르게 된다는 거다. 익숙한 감정일수록 선호하게 되어 부지불식간에 분노를 뽑아드는 경우였는데, 정말 그럴 일인지 물으면 된다. 이게 화 낼 일이야? 260423 하도 보고싶어하니 정성에 감응해서 타이밍 맞춰준 건가. 그런 생각이 짧게 나를 치고 지나갔다. 이미 감정에 깊이 잠겨 있어 판별이 어려웠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었나. 돌아가고 싶다. 돌려보고 싶다. 260430 상상의 물망초도 피워본다. forget-me-not. 잊히는 즉시 부재니까. 잊지 말라고, 생각해달라고. 부디.

#202 이름없음 2026/05/14 12:05:49

첫 문장을 가장 고민하게 되는 번호가 돌아왔다. 어제는 몸 안쪽에 덕지덕지 말라붙은 염소물을 씻어내리면서 “큰 기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계속 고민했다. 물을 아무리 맞아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 같아 대충 물기를 닦았다. 그간의 답장을 돌아보니 일기장이 모조리 들춰진 기분이었다. 그만큼 많은 정보를 내주었나. 아니면 상대의 읽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인가. 둘 다 정답이겠다. 너는 연락을 그만둘 시점을 결정하라 말한다. 다른 이는 몇 년을 더 기다려보라 했다. 입장을 헤아려보니 전자가 훨씬 유사도가 높아보였다. 충분히 느슨하게 구성하고 있다 느꼈는데,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헛된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도망치기를 반복하면서 충분하다니. 아스팔트가 열기에 익어가고 있다. 불투명한 환상으로 이글거린다. 5월이라며, 한달음에 여름으로 뛰어넘어와버린 날씨가 미웠다. 날씨라도 미워하고픈 심정인 것이다. 힘 좀 빼고 가볍게 가라는 말 괜찮았다. 적용만 하면 될텐데. 일테면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바로 “힘 빼기”였다. 더 잘하고 싶을수록 근육의 불필요한 긴장을 제거해야 했다.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물을 믿어야 했고, 나를 믿어야 했다. 이산화탄소를 내뱉고 산소를 채우지 못해 안달난 몸에 대고 여기는 수심이 얕으니 언제라도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가… 말처럼 쉬우면 좋았으리라. 생명의 본능과 역행하는 인지를 심어주어야 하는데 간단치 않았다. 어깨 긴장을 제거하기 위해 으쓱으쓱, 승모근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손목과 발목을 털었다. 다시 출발. 발가락 끝으로 벽을 밀고 유선형 자세를 유지하기만 하면 물이 나를 이끌었다. 믿는 자에게 진정 복이 오는 것이다. 그 순간은 어쩐지 몸 전체가 화살이나 창처럼 느껴진다. 레인 중간부터 팔을 휘젓는다. 이 감각을 물 밖에서도 써먹고 싶다. 가용한 에너지의 10%만 사용하자는 다짐 말이다. 언제나 넘치는 거보단 모자란 쪽이 낫지 않은가? 그래야 더 멀리, 더 오래, 유영할 수 있으니. 날이 무척 덥다. 한동안은 잃은 땀방울을 채우기 위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킬 듯하다. 선선해지면 다시 고민해보자. 성급하게 쓴 글들을 다시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나는 너무 쉬웠다. 읽으려 하지 않아도 읽힐 지경이었다. 거짓말도 못하고, 얼굴 표정도 쉽게 변했다. 부치지 못할 글귀가 지겨울 때쯤 회신으로 돌아갔다. 당신의 언어를 다시 새겼다. 해봐야 고무판에 조각칼 세트로 삐뚤빼뚤히 적어내려갔을 뿐이지만, 책과 연결되는 부분을 발견하는 성과가 있었다. 수용 챕터를 읽으면서 특정 문장이 확 튀어나올 때는 재밌었다. ‘부족한 자신’과 관련된 말이었다. 나의 부족함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참 고통스럽다. 책도, 당신도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해내야만 한다.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진다. 탁월함은 누가 평가해주는 게 아니니 저리 치워버리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무더운 공기에 연등이 좌우로 흔들린다. 만약 바람이 통하지 않게 해두었다면 임계점을 넘어 뚝 부러졌을 것이다.

#203 이름없음 2026/05/21 03:50:43

난 하루를 다 구멍낸 채로 창밖을 바라봐 비 오는 새벽이다. 늘 그렇듯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을 찾는다. 피아노와 빗소리, 그리고 목소리 뿐인 노래라 좋아한다. 비 오는 날은 어릴 때부터 싫었다. 그런 마음으로는 못 견딜 것 같았기에 반작용으로 좋아해버렸다. 빗방울이 어딘가에 부딪는 소리를 가장 선호한다. 차체, 우산, 창문, 바닥… 액체의 물성이 각기 다른 재질과 만나 불규칙한 파형으로 운다. 부상을 입었다. 거진 일주일을 틀어박혀 보냈다. 모니터링하는 우울 척도 점수가 많이 올라와 있었다. 언제나처럼 재활하면 되는데, 간단한 인식 변화가 안됐다. 무드스윙에 리버샷 맞고 컥컥대며 쓰러져 있었다. 오랜만에 텅 빈 나날을 보냈더니 작년엔 어떻게 이리 지낸 건지 의문스러워졌다. 매일 참 바빴다. 나름의 스케줄이라는 게 있기는 했으니. 불면이 심할 때 한곡 반복으로 해두고 잠을 청한 적도 있었다. 지금 타이밍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다. 이상하지, 바람이 불거나 햇빛이 쨍할 적엔 반사적으로 트는 트랙따위 없는데. 비만 오면 고막 안쪽이 간질거린다. 그러다 생각에 잠긴다. 진실로 이 날씨를 좋아했던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좋아해버렸나. 스스로를 호도하는 건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어쨌거나 새벽이 길다. 낫지 않는 증세란 없다. 두려워한다면 계속 함께하겠지만……. 오랜만에 손톱깎이를 들어 살갗이 드러나도록 바짝 깎았다. 이제는 손이 입 근처에서 머물고 말 뿐이었다. 충동이 꽤 줄었다. 잘근잘근거리고픈 감각에 언제나 자리를 내주었었는데. 퍼붓던 비가 잠시 약해졌다. 가짜 빗소리라도 틀어두어야겠지. 마음을 뒤흔들던 종소리가 불현듯 지나갔다. 커다란 금속으로 된 종은 사방을 울렸다. 단일한 음파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또 언제 느껴보겠는가. 습기에 잔향殘響마저 눅눅했다.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발목이 불편해 무릎을 꿇었다 보호대를 벗었다가 다시 끼웠다가 난리를 피웠던 게 엊그제다. 결국 나아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그래, 이제껏 하던 대로만 하면……. 문장 한두개가 잊히지 않고 자리에 남았다. 외로움에 정말 취약한 사람이다. 닳아버릴 것 같아 불안해,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204 이름없음 2026/05/23 20:45:02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었다. 24년 전 5월에 쓰여진 것이었다. 이전에 필사했던 문장을 읽고 들어왔더니 문장에 형광펜이라도 칠해진 것처럼 한 걸음 앞으로 튀어나와 보였다. >>118 지금 내게 필요한 문장들은 여기 있지 않을까. 「그래요. 왜, 냐고 묻진 않을게요. 건방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왜 형은 생에서 달콤한 것만 가지려는 거예요? 이젠 아이가 아니잖아요. 슬픔이나 질병, 한없는 괴로움 같은 것도 형의 삶을 이루는 퍼즐의 조각이예요. 핑크나 아쿠아블루만으론 그림을 그릴 수 없잖아요. 받아들여요. 아픈 거 받아들이고 상처도 웃어넘겨요. 엄살 부리지 말라구요」 어린 시절부터 엄살을 자주 피웠다. 꾀병도 꽤 부렸었다. 어쩌면 꾀병이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지난 주 내내 어깨 통증이란 핑계를 대며 푸른 벽지 밑으로 한없이 잠수했다. 물 없는 수면 아래로 천천히 경도되었다. 실은 내가 그걸 원했기 때문에 나락으로 잠시 떨어진 셈이다. 필사한 책을 다시 읽기 전에 어떤 문장에 꽂혔었는지 되감고 나면 얼마나 좋은지 상상만 해봤었다. 이제야 그 즐거움을 진실로 껴안을 수 있었다. 생각이야 늘 많았다. 도리어 문장 속에 갇혀 있을 때 큰 로드롤러가 등장해 잡념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버리는 시원함을 찾아낸다. 아찔한 초여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비가 오면 기온이 훅 내려가고 그치면 가면을 벗어던진 채 뛰어다닌다. '영주'가 가진 '민'에 대한 고민은 내가 품은 당신에 대한 것과 상당 부분 유사성을 띠고 있었다. 아, 돌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맥박치고 있다. 인공 빗소리가 양쪽 스피커로 투둑투둑 거칠게 나를 때린다. 잠깐, 돌아가면 진짜 좋으려나. 서래가 미결 사건이 되기 직전에 몸을 일으켜 꺼버리는 나의 습성대로라면 아주 고통스러워 할 터였다.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가, 드라마가, 소설이, 과연 처음과 같을 수 있을까. 부차적 감정이 길 잃은 부표처럼 둥둥 떠다니며 자신을 괴롭히지나 않으면 다행 아닌가. 사진 속에 해맑게 웃는 당신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 영혼을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내쪽으로 흘러오게 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가? 가만히 앉아 자문한다. 해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지프스처럼 등허리와 어깨에 커다란 돌을 이고 힘겨운 발걸음을 뗀다. 저 옷차림 분명 기억한다, 가볍게 걸친 실크 스카프는 잘 모르겠지만. 그 웃음, 맹랑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눈동자, 손가락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반지, 손등, 전부 기억할 수 있다. 다시 물어보자. 돌아간다면……

#205 이름없음 2026/05/25 01:08:54

220216 내 숨으로 내 기억으로 살려낸 당신이었다.

#206 이름없음 2026/05/25 13:03:48

비뚤다와 삐뚤다 비뚤다 바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거나 쏠린 상태에 있다 삐뚤다 바르지 못하고 한쪽으로 끼울거나 쏠린 상태에 있다 기울다와 끼울다 기울다 비스듬히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끼울다 비스듬히 꽤 낮아지거나 비뚤어지다

#207 이름없음 2026/05/25 13:19:38

심정을 뒤흔들만한 사건이 여럿 있었다. 운동을 쉰 타이밍이라 몸 상태와 함께 판단력까지 우하향했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옳은 판단으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르게 고치고, 끼울어버린 상황의 수평을 맞추려 노력하는 중이다. 본디 취중에 진담이거늘. 주취자를 앞에 두고 줄줄이 토해냈다. 저물기 전 햇발이 거셌다. 녹아내릴 듯했다. 나무 뒤로 가리어지자 겨우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조금 더 앉아 있으니 풀모기가 기승을 부렸다. 너의, 이름을, 이름을 불렀다. 내게로, 친구에게로, 산의 안쪽 방향으로 음파가 번졌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관찰자의 전능이 절실했다. 누군가가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거다.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날 뿐이지만. 타인에 대한 전능을 구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전능을 가지려 한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없애려 하지 말고 살짝 방향만 바꿔주면 좋지 않을까. 정의나 개념에 가두지 않기, 흑백으로 생각하지 않기,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기. 같은 일들은 연습하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는다. 아침나절엔 증세에 대한 공부를 했다. 시간이 약이 되어 준 부분도 많았다. 여남은 것들이 호전되려면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평안은 수동적인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절대라고 썼다가 지우려 했다는 사실까지 남긴다. ("절대"라는 단어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가?) 평안은 수동적인 마음가짐으로 획득하기 까다롭다. 차분하게 가자. 연습도 자주 해보고. 문득 졸음이 밀려왔다. 심호흡 직후 심박변이가 좋아졌다가 다시 떨어졌다. 수면의 양과 질이 모두 곤두박질쳤기 때문이다. 모든 지표가 하향인데 정신만 또렷하면 이상한 일 아닌가. 오래 쉬었다. 재활도 시작했다. 천천히 나아질 거라 믿는다.

#208 이름없음 2026/05/26 14:52:46

왜 바보처럼 아등바등거렸는지. 벽 한번 차고 나가자마자 온갖 상념이 자취를 감추었다. 기분 그래프도 보통에서 좋음으로 올랐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새 사람이 등장하면 예전 기억을 더듬다가 잠시 회한에 잠긴 적은 있었다. 이번엔 달랐다. 의도적으로 은폐시킨 마음이 억눌림을 참지 못했는지 마구 쏟아졌다. 당황스러웠다. 부숴지는 파도를 온몸으로 맞서려다 실패했다. 아니라고 말해봐, 뭐가 달라지는데. 차라리 맞다고 인정해버리고 크기를 줄이면 될 일이다. 건너편 도로에는 사설 응급차량이 서 있다. 녹색빛이 빠르게 점등하며 시선을 빼앗는다. 은폐라. 사실관계를 따져보자면 잠근게 맞다. 가방에 겨울 이불 쑤셔넣듯이 힘을 실어 눌러놨던 셈이다. 괜찮을 줄 알았다. 회피와 부정만 반복하면 시간이 알아서 마음을 부숴버릴 거라고 믿었다. 트리거 한번에 뻥 터질 일인가. 수습하느라 애썼고, 쓰는 중이다. 정리 될 거라고 믿어야만 한다. 인지를 후행으로 꼬매버릴 거라면, 인정과 수용을 한 뒤에 행동으로 넘어가야 했다. 어깨 통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건 아니었다. 물속에서는 욕심 부리지 말자는 다짐만 수백번 했다. 그 외엔 숨을 들이쉬고 들이마시는 데 절반의 신경을 부었다. 이전 습관을 털어내지 않으면 다시 부상일 게 뻔했다. 힘을 빼고 아주 천천히 밀었다. 손에 물이 잡히든지 말든지 밀어냈다. 다시 엄지로 입수, 소지로 출수, 몸통은 확실히 돌리고. 고작 열흘 안 나갔음에도 생경했다. 설렘이 심장을 마구 두드렸다. 물을 밀고, 밀고, 또 밀었다. 그래, 무슨 생각이야. 역시 운동만한 게 없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칼을 탈탈 털었다. 흐렸다. 비소식이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산을 챙겼어야 했나. 어쩔 수 없지. 지금은 비라도 잔뜩 맞아야 했다. 열기를 식히고 싶었다.

#209 이름없음 2026/05/26 21:37:23

예측한대로 비, 맞아도 소용없었다. 번민은 내면에 있는데 고작 비 좀 쐰다고 나아지겠는가.

#210 이름없음 2026/05/28 18:08:23

어딘가에, 반드시 살아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도 가끔은 정말로 살아있는지 궁금해진다. 밀린 책을 읽었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으로 한달음에 들어왔다. 당신은 여전히 사막을 꿈꿀까. (『사막으로』) 전작주의 다음 작가가 정해졌다. SF에 강한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울림이 큰 작품을 쓰는 자라는 것은,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언제 보낼지 정해두지 않은 편지를 쓴다. 한 문장씩 입안에서 굴려가며 퇴고한다. 발신은 미래의 내가 감당할 몫이었다. 마음이 변해 보내기 직전 모든 걸 넘어뜨릴 수도 있었다. 가끔은 당신의 바이탈 사인이 절실했다. 대체라고 여겨왔으나 단정한다면 섣부른 일이었다. 숨 쉬고 있나. 어디서 어떤 시간에 갇혀 오늘을 보내는거지. 모조리 알고 싶었다. 그래선 안 된다는 사실이 헛된 욕망을 키웠다.

#211 이름없음 2026/05/29 13:01:21

사라질 것 같은 느낌에 압도당하는 걸까? 어지러웠다. 제 딴엔 이름 붙이기까지 했음에도 정립이 안 됐다는 감각 때문에 괴로웠다. 신경쓰여. 말 그래도 신경일 뿐이었다. 가볍든 무겁든 간에 신경은 신경이었다. 시간성이 확 와닿는 단어에 기분이 그래프를 뚫어버릴 듯 좋아지잖아. 땀방울이 어디 모난 곳 없이 만들어져 계속 흘러내렸다. 상쾌했다. 수면 바깥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212 이름없음 2026/06/02 08:45:31

웃자란 풀들이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칼날에 갈린다. 싱그러움이 사방으로 퍼진다. 향기라고 해도 좋겠다. 시취와 정반대의 기분을 내주는 향.

#213 이름없음 2026/06/02 18:03:10

대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음이 옮겨갔을 뿐 유일무이였다. 마음을 재단하는 일은 관두기로 했다. 무게나 의미를 생각하면 할수록 본질과 멀어지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내 영역이 아니니까. 창밖 이파리를 들여다본다. 주인은 상록수겠지. 3월에도 그랬었다는 걸 기억한다. 한결같은 사람이 있고, 떠나지 않는 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싶었나. 틀린 가설이 툭 부러진다. 웃고 있다. 아파하지 말라는 뜻이다. 반드시 온다는 말은 다시 말해 떠나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왜 하필 나였는지 물을 필요 없다. 당분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다면 쉽게 손 내밀지 않았을까. 쌀쌀하다. 냉방병에 걸려버리면 어쩌지. 아니다. 병이야 앓고 떨치면 그만이다. 마음이 갑갑해졌다 나아졌다를 반복하고 있다. 계단을 올랐다. 더워지고 싶었다. 정원 출입문을 힘껏 민다. 빛에 비춰보면 달리 보이는 것들이 좋다. 짙은 남색이 그렇다. 잔뜩 물을 머금고 있으면 흑색으로 보였다가, 빠짝 마르면 그제야 제 색을 보인다. 매혹적이다, 의도하지 않은 속임수라는 거.

#214 이름없음 2026/06/05 12:06:55

보고 싶다. 보고 싶었다. 문득, 웃는 모습을 어떤 차양막 너머가 아니라 눈앞의 생생한 장면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날이 선선한데 에어컨 바람이 지나치다.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끄면 더워질테니 저 멀리로 보내둔다. 무릎에 가닿는다. 인공적 찬바람이 싫어질 때가 올 수도 있으려나. 차아염소산나트륨이랬나. 가끔은 염소가 든 물을 마시게 된다. 뱉기 어정쩡해서, 코로 제멋대로 들어오니까. 이유는 다양했다. 좋은 날이다. 비 갠 다음날은 언제나 그랬다. 쾌청했고, 뭉게구름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으며, 햇살마저 부드러웠다. 괜히 생각에 잠긴다. 흔들지 않고 가만히 놔두니 불투명한 생각이 둥둥 떠올랐다. 그간 억지로 밀어붙인 탓에 건져내기 어려워지기만 했다.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였다. 역할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는 늘 그런 마음이었으므로. 매번 실패해서 대상을 옮겨다닌다는 후일담이 반복해서 구성됐다. 잘못된 방식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안다고 떠벌리는 입이 자꾸 살아서 동동 떠오른다. 진짜 아는 거야? 알면서 그러는 게 더 나쁘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215 이름없음 2026/06/08 11:46:02

시간을 품은 손톱이 자꾸만 자란다. 낯선 감각이다. 언제쯤 잘랐더라, 잠시 숨 돌리는 사이 길어져 있었다. 달려오는 건가. 엊저녁엔 할일을 미뤄 불안했는지 손이 입 근처로 갔다. 자동적이었다. 깨물까. 열 손가락 중 하나 정도는 티 안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깔끔하게 손톱깎이로 자르면 될 일이었다. 길러온 노력이 가상했다. 시간도 아까웠다. 스스로에게 건 약속이라면 약속이었다. 키보드에 살보다 손톱이 먼저 닿는 이질감이 어색해 금방 잘라야겠지만, 쓰레기통에 버리기 위해 모으다 보면 쾌감마저 들었다. 이번 달 약속은 무사히 지켰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겠지. 알량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짧은 손톱으로 돌아간다. 둥글고 바짝한 모양새가 좋았다. 조갑주위염따위의 손병이 오기 전까지는 자가당착을 반복할 듯했다. 사각형으로 위를 좀 남기고 깎아야 염증이 안 생긴다는 사실을 어디서 읽은 탓에 자를 때마다 아슬아슬했다. 탈거한 흔적을 살살 긁어모아 휴지에 싸서 버렸다. 쥐가 먹으면 내가 둘이나 된다니까 바깥에 버려볼까. 어쩐지 저것도 나라고 생각하면 버리기 안쓰러워질 때가 있었다.

#216 이름없음 2026/06/10 12:33:24

오른팔 삼각근이 아프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운동부터 나왔다. 잡념을 쏟아버리고 싶었다. 물에 저절로 풀어질테니. 몸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고 싶다. 체력을 소진시키면 지치니 어쩔 수 없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지 않을까. 보고 싶다, 묻고 싶다. 이래도 괜찮은지.

#217 이름없음 2026/06/19 22:58:28

머리가 깨질 듯하다. 약을 미리 먹어둘 걸. 이럴 때는 꼭 여분 약이 간당간당하다. 며칠 전부터 타이레놀 대용량을 사두자며, 마음만 먹다 실행하지 못한 나비효과를 맛보는 중이다. 아찔하군. 열감과 오한을 동시에 느낀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앓고 있다. 지나갈 증상이라는 걸 알아도 나약해진 정신머리 앞에서 쭈그려 앉게 된다.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들쑤셔가며 기댈 곳을 찾아 헤맨다. 부질없는 행동이지. 기분 좀 끌어올려보겠다고 업템포 노래로 바꾸어 틀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올 듯하더니 기어이 쏟아졌다가 잠잠하다가 다시 쏟아졌다. 정신이 없었다. 유리창에 사정없이 부딛는 빗방울 소리가 어째선지 나를 때리는 듯했다. 몸살 기운이겠지. 남은 한 알을 물끄럼 내려다본다. 8알에 3천원이니까 110알에 2만원이면 이득 아니야? 다시 찾아보니 자주 가는 약국에도 재고가 있었다. 내일은 가야지, 약효는 언제 드는 걸까. 애꿎은 두피만 꾸욱꾸욱 누른다. 오른편 관자놀이에 통증이 집중돼 있었다. 이럴 때는 글이고 뭐고 다 날려야 하는데. 이별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이별과 죽음을 동치하는 건 경험 기반 사고였다. 적어도 어린 내게는 합리적인 일인 듯했다. 가볍게 생각할 위인이었다면 벌써 삼 개월이나 지난 사찰에서의 만남을 돌아보지 않았을 것이다. 인연이란 본디 교훈을 주고 떠난다는데 그도 역시 내게 성찰점을 한아름 안기고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다만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뿐인 것을. 과하게 아파했다. 정오 무렵 느꼈던 두통은 작은 이별을 건너는 내가 내지르는 울음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아니, 사실 맞았다. 이름을, 이름을 알고 싶었다. 알 수 없다면 내 이름이나마 알리고 싶었다. 안녕. 가볍게 손 흔들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제 궤도를 찾으면 될 일이 아닌가? 몇 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 내 모습은 화면 우상단에 작게 비쳐지고 있었다. 울면 안 돼, 그런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노력이 무색하게 수문은 재빨리 함락되었다. 개방된 샘으로 우르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차마 막을 수 없었다. 당신은 아니라고 했다. 죽음이 아니라고 그랬다. 납득하지 못한 채 허망한 눈으로 눈물만 흘렸다. 아닌 게 아니었다, 여전히. 어린 너는 비가 쏟아지는 버스 안에 홀로 앉아 있다. 이번엔 곁을 지키는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218 이름없음 2026/06/29 02:34:05

보고 싶어. 별안간 깨고 나선 말도 안되는 상상을 했다. 좌측 관자놀이가 아파온다. 이렇게 시원한 여름이 있을까. 빌딩숲에서 탈출했더니 생각의 크기가 급격히 줄었다. 사람이 많으면 삶의 질이 어떻게 해서든지 떨어진다는 비약을 하도 설파하고 다녔더니 진짜 믿게 됐다. 퇴근 시간 버스 안에서 밀집된 공간 안에 사는 실험용 쥐를 떠올렸다. 처음엔 혼자 두다 서서히 두 배씩 늘린다. 128마리와 함께 했을 때 코르티솔 수치가 급격히 오르더니 픽 쓰러졌다. 수도의 광기를 피해 떠나왔다. 정보가 지나쳐 피곤했다. 긴장이 풀린 채 곯아떨어졌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한나절 내내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불쾌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맞바람이 불어왔다. 묵은 공기를 떠나보냈다. 무엇에 그리 시달렸던 걸까. 쌓인 문장이 많아져서 연락을 하고팠다. 앉은 자리에서 만 자도 찍어 보낼 성싶었다. 아. 전해질 수 없는 단어들이 쌓여 목울대가 눌린다. 이번 여름은 왜인지 더위가 늦다. 까닭이 있다는데 궁금하진 않았다. 유예된 폭염이 잠자코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7월이 오면……. 올 게 많겠군. 바뀐 장소 탓인지 이상하게 네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떨쳐내려다 포기했다. 며칠 뒤면 의식하지 않게 될 테니. 이러다 만나려나. 가까워져서 그런가. 만나면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아직도 내가 밉나. 그렇다면 얼마나? 밉지 않다면, 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쉽게 무너졌다. 심신미약인가. 더위를 먹고 내려왔나. 광기에 싸인 건 도시가 아니라 나였을까. 왜 이러는 거지, 도대체. 다음주 내내 비 예보였다. 흠뻑 젖고 싶다. 비겁하게 바람막이 안에 숨지 말고.

#219 이름없음 2026/07/12 01:03:30

어떤 문장도 만들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싸구려 도파민에 취하는 나날, 휴식이라는 핑계를 뒤집어쓴 채 생활하는 도중이면 그렇다. 주기적으로 한 번씩 찾아온다. 침대에 몸을 얽어놓고 두문불출한다. 보고 싶다. 보러 가야지. 벌써 7월이다. 눈 깜빡하면 여름은 바스라질 것이다. 저녁 대신 먹었던 아이스크림의 초코 코팅이 이를 뚫고 으스러져버리는 소리가 맴돈다. 아그작, 손가락 끝에서 찐득하게 녹았다. 어떤 이전으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믿어왔는데 최근 변화가 생겼다. 이젠 그의 존재를 확언할 수 없게 된 길가를 서성이며 시간의 다이얼을 반대 방향으로 한번쯤 돌려보고 싶었다. 희한한 욕망이었다. 리듬이 바뀌며 꿈을 자주 꾸게 되었다. 당신은, 여전히, 들르지 않았다. 슬슬 나올 때였다. 5~6개월이면 분기 아닌가. 무르팍을 갈아버려야 하나.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볼까. 아님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인가. 잘 익은 수박을 갈라 깍둑썰기하여 차곡차곡 쌓아두면 뿌듯했다. 선풍기 바람 선선히 불어오는 곳에서 하염없이 젓가락 한짝으로 뽑아먹으면 이만한 행복도 없다 싶다. 새빨간 과육이 입안에서 피를 낭자히 흘리는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매년 여름을 손꼽는다. 그래서 말인데, 어디쯤 온 걸까. 이번에도 날짜 맞춰 준다면 기쁠 텐데. 잊기 위해서라면 올해도 덮어써줬으면 해.

#220 이름없음 2026/07/18 02:46:50

여러 말이 겹쳐 입구에 병목이 생겼다. 하고픈 말은 많은데 출력에서 꼬여 이리저리 치이다 터지는 것이다. 신호수가 되어 호루라기 삐익삐익 불고, 유도등으로 흐름을 정렬한다. 뜻없이 단지 안부만을 묻는 연락을 받았다. 반가웠다. 내 연락도 그만큼만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글이글거리거나 지나치게 썰렁하면 왠지 미안했다. 일할 때 쓰는 능력을 발휘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 고민들을 한데 뭉쳐 모으고 굴렸다. 뭐가 달라지긴 했느냐 물으면 글쎄. 겨우내 눈밭에서, 봄내음 가득한 꽃밭에서, 뜨겁게 달궈진 검은모래해변에서, 한참을 서성거렸으면서 제자리 같다. 숨이 모자랄 때면 멋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났다. 토라져도 발끈해도 물은 한결 같을 뿐이었다. 요새는 한 길 사람 속은 알겠고, 열 길 물속은 도무지 모르겠다. 힘빠진 팔로 허우적거릴 뿐이다. 50m 레인 중간에서 네 얼굴을 떠올렸다. 저런, 떠올랐다. 호흡이 꼬여 허우적거리며 멈췄다가 다시 출발했다. 힘들었다. 그뿐이었다. 뜰채로 살살 구슬려봐도 색다른 감정은 없었다. 시뻘개진 얼굴을 물속에 담그고 있었다. 쉬었다가 가던 거리를 한방에 가려 하니 역시 어려웠다. 그래도 어쩌나, 가야지. 어푸어푸. 힘들다는 푸념을 하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메아리가 울렸다. 끼니를 떼우려 이것저것 만들고 있으면 문장들이 우르르 달려와 말을 건다. 이건 어때, 저건 어때. 무딘 칼이라 망정이지 잠시 정신이 팔리면 손가락을 썰어버린다. 마음을 다잡아본다. 유독 무언가를 자르고, 다지고, 굽고, 끓일 때 잡념이 많이 낚인다. 주객이 바뀌어 잡념에 내가 낚일 정도로 휘둘리기도 한다. 휘파람을 불거나 노래를 부르면 조금 나았다. 밀린 문장들도 슬슬 메말라간다. 보고 싶은 마음이 진짜인건가. 차일피일 미루는데. 약속이 잡혀 급히 옷을 샀다. 급히 산 옷은 항상 실패한다는데 이제껏 그래본 적은 없다. 씻고 나와도 5분만 걸으면 피부가 찐득거렸다. 이런 여름을 바라고 바랐으니 내가 참아야지. 어쩌겠나.

#221 이름없음 2026/07/19 00:28:10

건강한 도파민이었다. 쾌감에 절여진 채 평소보다 조금 더 나아갔다. 힘들진 않았다, 느렸을 뿐. 내일이 기대된다. 여름 내내 훈련하면 100m 왕복도 가능할 듯했다. 드디어 한 계단을 뛰어넘었다. 유튜브 강사가 추천한 드릴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언제쯤 50m를 끊지 않고 갈 수 있게 될까. 한 달 뒤? 가만 돌이켜보니 정말 건강해졌다. 과거의 내가 말하던 문장을 구태여 들춰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신께 아마 말했었던 것도 같다. 내일을 기대할 “무언가”를 못 찾겠다고. 여기엔 두 종류의 오류가 있다. 1) 내일은 기대하지 않아도 찾아온다. 2) 인생에서 기대할 무언가는 타인에게서 찾을 수 없다. 당장이라도 숨을 끊고 싶었던 걸까? 물에 들어가면 허우적대며 가장 먼저 찾는 게 “숨”이었다. 여태껏 한 번의 들숨이 갈급해 미쳐버릴 지경이라 짜증을 낸 게 아닌가. 방법을 깨우치니 겪어온 시행착오가 모두 바보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나와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덕분에 계단을 올랐음에도. ……그런데 그땐 왜 그랬더라? 잘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다. 라오슈, 는 알고 계실까.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하려나. 지금 중요한 건 그림자가 아니라고. 멀어지니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다. 서울에 있을 때면 라오슈가 어떤 거리를 걷는지 꽤나 궁금했었다. 이유를 찾아 헤매봤지만 좀처럼 투명해지지 않았다. 분광에 실패하게 만드는 건 나일지도. 다이얼을 앞으로 돌려 상상한다. 어떤 낙엽을 밟게 될까. 여전히 2)는 해결하지 못한 채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얼추 알게 되었는데 깊게 파려고 할 때마다 번번히 귀찮다는 핑계를 읊었다. 다만 보고 싶다. 대체 보고 싶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집착은 괴로움을 불러올 뿐인데. 다시 떠나야 하나. 가끔, 아주 가끔씩 습한 공기마저 짓누르던 종소리가 생각난다. 피는 못 속인다는 건가. 신자가 되고 싶진 않지만, 산 깊은 곳의 사찰에서 압도 당하는 기분은 언제라도 찾아가 느껴보고 싶었다. 공수를 한 채 이리저리 떠돌고, 스님께 인사를 드리면 알 수 없는 뿌듯함이 치밀었다. 머리 박박 깎아 들어갈까. 스님은 어리석은 중생의 질문에 현답을 내놨다. 속세에서는 채울 수 없기에 머무른다며. 어째선지 그 대답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리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