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나기 55분 전이래요, 다들 뭐하실 거예요? 맞은 편에는 나를 꿰뚫듯 노려보는 태풍의 눈이 있었다. 눈싸움하느라 힘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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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옮겼는데 백업이 귀찮아서 결국 돌아오게 된다. 연어같다. 글은 안 쓴다 안 쓴다 말하면서도 글을 읽다보면 쓰게 된다. 차라리 소설을 쓸 줄 알았더라면 덜 아팠을까. 갑자기 창문 너머로 매미 소리 넘어오고 킴의 깊은 눈에 빠진다. 눈, 눈, 눈이 무어라고 5분만에 매료된다는 표현을 하는 걸까. 2년 만에 만났던 임과는 역시나 죽이 잘 맞았다. 열 한 시간이 아니라 스물 두 시간을 떠들었더래도 할말이 배꼽까지 차있었을 걸. 그와 밖에서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여운이 오래갔으면 했으므로. 연애감정만을 지칭하는 좁은 의미의 사랑은 우정보다 한 층위 아래라고 생각했었다. 그게 아니던데. 우리는 산이 섬처럼 둥둥 떠 있는 동네로 가, 관광객들이 많이 간다는 찻집의 지하 한가운데 탁자를 점유한 채 수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주제는 다채로웠을지언정 종국에는 세 개 정도로 귀결되었다. 결국 돌고돌아 사랑했던 이야기, 사랑하는 이야기, 앞으로 꿈을 어떻게 하면 잘 좇을 수 있을지에 대한 얘기. 그러다가 우정이 사랑보다 높은 층위에 있다는 나만의 결론에 대해 동조해주는 사람을 찾은 것이다. 그게 임일 줄 알고 있었다. 사실, 그 누구에게 말해도 이상한 이야기였다. 미심쩍어할까봐. 연애를 쉬지 않고 하는 그와 사랑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는 내가 맞닿아있는 게 웃겼다. 우린 그런 모습이 닮아 있었다. 다만 연애로 다다르는 방식만이 다를 뿐. 임은 과감했고, 대담했다. 나는 마음에 든다면 제일 안쪽의 바운더리에 놔둘 뿐 대담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건 핵심적인 부분을 갈랐다. 아니, 사랑이 관계와 동의어는 아니라지만. 왜 ‘관계’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말할까를 성찰하다보면 금세 진지해진다. 필요조건일까? 그런 것까진 아닐텐데. 나는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고 그와 나는 조금 더 시내에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안주로 시킨 우동에는 잘못 해동한 냄새가 나는 닭다리살이 들어있었다. 그게 유일한 오점이었다. 3차로 택한 가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앉아있는 동안 테이블이 비어있지 않았고, 관광객인지 주민인지 모를 사람등이 엉켜 들어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사실 그런 구분을 하는 것조차도 요상했다. 나는 관광객이고 싶은 원주민으로 갔고,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술집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뜨끈한 사케 같은 걸 시키고 싶었다. 마실 수만 있었다면, 오랜만에 아랫입술을 가볍게 씹었다. 안된다는 건 임도 알고 나도 알고 가게의 여사장님까지 알았다. 수많은 이름의 준마이다이긴죠들이 메뉴판에서부터 나를 비웃었다. 충동을 참기 힘들었던 쪽은 초록병이었다. 그야말로 뒤흔들렸다. 하얀 게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꼴꼴꼴 채워지는 소리가 들리자 손가락 끝에서 발가락 끝으로 전극이 느껴졌다. 머금기만 하고 뱉어내면 입안 점막만 취할텐데 그런 것도 안돼? 장난스레 말했더니 그가 웃었다. 유난한 칼바람은 임의 담뱃불을 더욱 낭만적으로 보이게 했다. 절대로 내려다볼 일이 없던 친구를 내려다보는 맛도 있었다. 바람이 그리 세지 않았다면 코를 찡그려야 했을텐데 연기가 세찬 바람을 타고 그의 얼굴을 갈랐다. 추운지 온몸을 덜덜 떨면서 볼이 다 패이도록 태우는 모습은 몇 해 전이나 그때나 여전했다. 맛있어? 얼마나 맛있길래 태우는 거야. 1차로 갔던 보양식집—그래봐야 장어덮밥이지만— 주차장에서 나는 흡연자의 중독이 어떤 과정으로 순환되는지를 또 물었다. 임은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담배를 맛깔나게 피우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물어봤던 건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도 나도 매우 혼란스러웠던 술집에서였는데, 가까이에서 친한 친구가 피는 담배를 보다니 참 신선했었다. 그런다고 해서, 담배를 태워야겠다는 생각은 또 해본 적이 없다. 같이 따라가야만 한다면 성냥갑을 들고 가 불을 붙여줄까 싶기는 했어도. 설혹 내가 흡연자들의 소굴에서 일하게 된대도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태울 생각은 없었다. 찐담배 역시 접근성이 매우 좋아 피워볼까 하는 수십차례의 갈등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뇌의 천공동맥이 좁아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담배 태우다가 담배연기 같은 혈관 얻기 싫으면— 그런 논리로 술도 담배도 커피도 좀처럼 입에 대지 않았으나 충동은 늘 있어왔다. 피곤할 때면 남들처럼 쉽게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빨아제끼면서 의존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아도 밤은 새지만. 남들 다 하는 건데 왜 나만 못해? 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중독이라는 점에서 기호식품들을 소비하는 것과 사랑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뒤를 돌아본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돈을 기꺼이 지불한다. 왜 쉽게 끊어지지 않는 걸까. 질겨 죽겠어. 질려 죽겠어. 한탄하면서. 언제는 하도 그런 것들이 떠오르길래 아저씨들이나 한다는 은단이나 구해야 하나, 하며 웃었다. 은단. 은단이라는 단어를 아주 먼 기억의 방에서부터 기어이 끄집어와서 시도하게 할 정도로 충동은 강했다. 한 번만 시도해보고 바로 끊을 수 있을 것 같은 자만심까지 들게 하잖은가. 그래, 이런 느낌들이 전부 비슷했다.
너. 정말 끊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치료가 필요한데. 공교롭게 노래도 테라피다. 어떤 테라피를 받아야 나을 수 있을까 싶어 선생님께 여쭤봤다. 화면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픈 선생님. 활자로 오는 회신도 음성으로 만들어낼 줄은 알았지만, 언젠가는 면대면이기를 원했다. 그럴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상대가 달가워하지 않을까봐 꾸욱 참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 언제가 언제일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나의 (알 수 없음)을 (알아냈음)으로 바꾸어주는 게 좋아 메일을 드릴 뿐이었다. 그것도 전적으로 상대의 호의에만 기댄 이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안 된다면 보답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의 생존? 이젠 바쁠까봐 답장을 채근하지도 않는다. 2주라니. 이게 무슨. 다음엔 한달 뒤로 예약해주세요. 할 지도 몰라. 혼자 웃었다. 말도 안되는 편지를 읽고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창백할 정도의 벽, 형광등, 두껍고 명랑한 둥근 안경테. 휴대폰 사진첩을 정리한답시고 녹화를 떠 두었던 영상의 썸네일을 보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의 표정까지는 상상하려고 하지 않았을텐데. 요사이에는 이러한 상상들이 글로 치환되지 않고 동영상으로만 넘어가 스스로를 편집증 환자라고 진단해버렸다. 의사도 이렇겐 안 할 걸. 진짜 의사를 만나러 가야 하나. 선생님은 그러라고 하겠지. 그 약들이라도 써서 눌러보라고 하겠지. 매일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주세요, 하얀 가운의 사내에게 요청한다. 차라리 위약을 줬으면 좋겠어. 손에 들린 건 나를 몽롱하게 만드는 약한 수준의 향정신성의약품이겠지. 그래, 너, 2월은 초입부터 괜히 긴장한다. 겨울은 1도 싫고 2도 싫고 12도 싫고. 3부터가 좀 안정적인 것 같아. 두렵다. 봄으로 쉽사리 넘어오질 않는다. 제일 따뜻한 곳에 와 있으면서도 더 따뜻하길 바랐다. 서래와 해준이 마주보고 싸운 섬과 형상이 비슷한 바다를 본다. 섬, 바다, 짙고 무거운 남색의 호흡을 한동안 계속해서 따라했다. 스트레스는 걷기로 풀었다. 10K는 만보와 10Km 둘 중 하나라도 달성하자는 의미였다. 절치부심, 그래. 그거라도 해야지. 멋있잖아. 임과 했던 대화는 스스로에 대한 예언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나갈거야, 하면 거의 다 그 궤적에 맞춰서 살아졌다는 걸 이젠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나의 변태變態도 아주 멀지만은 않은 미래였다. 그와 동시에,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그런 꿈. 이루기 참 쉬운데 왜 이렇게까지 돌아왔을까. 물론 젊은 하얀 가운의 사내를 이겨내야 한다는 게 마지막 난관이다. 차라리 가족친지지인기타등등을 이기는 건 어떻게든 하겠지만, 피곤에 절어 있는 얼굴로 날카롭게 물어보는 교수 앞에서 환자는 하염없이 작아질 뿐이다. 이래서 이름처럼 시원하게 수술하라고 했구나. 앞날의 중대한 선택에 장애물이 되니까. 나의 뇌는 차라리 지금 당장 수술하는 게 가장 성공률도 높고 예후가 좋았을 것이다. 이제는 그게 유일무이한 치료 방법이라는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질질 끄는 쪽이 시한폭탄 양성이다. 가장 젊을 때 가장 진행이 덜 되었을 때 치료하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그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려웠다. 교수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다시 수렁으로 떨어질까봐 그랬다. 환자들이 모인 카페에서 수술 후기를 주욱 읽으니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차라리 그렇게 하고 나서 알을 깨트려버리면 되지 않나. 그래. 그러자. 너무 강압적이지만은 않게 설득할 것이다. 그걸 끝내고 이름 끝 자 음가의 초성과 종성을 뒤바꿀 것이다. 완벽해. 두 번 수술인지 세 번 수술인지도 모를 거면서. 무모하다는 쪽이 리스크테이킹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제야 수술을 권한 젊은 의사의 말이 부드러워졌다. 좋아, 어짜피 할 거라면 이번 여름방학때라도. 그동안 얼굴을 뺀 피부 전체에 열꽃이 피었다. 자가면역질환들은 사실 다 연결돼있는 거 아닐까? 아토피가 올라와 오른손을 굽혔다 폈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었다. 한포진도 아토피인 거에요? 그렇단다. 새로 생긴 피부과 전문의는 친절했다. 죄송해요,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그 기다림을 감수할 정도였다. 우습게 그 열꽃들을 죽이는 데에는 스테로이드보다 운동이 더 잘 먹었다. 그러게 우선 걸으랬잖아. 모교의 교장선생님이 웃는다. 찾아가야 하는데, 하는데…. 그리고 임은 자신이 잠시 동안 살고 있는 동네에서 그토록 미웠던 담임선생님이 나고 자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한명이지만, 제자들의 수만큼 세로로 슬라이스를 쳐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입체적인 사람이었다. 그걸 잘해서 승진도 잘 한거겠지. 그게 고삼담임의 생존전략이었겠지. 이름처럼 순도가 높게 잘 깎인 보석은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선생님의 궤적을 어림짐작한다. 10년 후에도 빛을 잃지 않을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보석일 것 같아. 그런 사람도 내 친구에게는 보석이 아니라 날카롭기만 한 깨진 유리조각이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한계라기엔, 사람들이 다 그렇다. 나한텐 좋아도 너한텐 쓰레기일 수 있는 거잖아.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 모두가 누군가에겐 보석이기도, 또 다른 이에겐 날카로운 유리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 다른 사고를 치지 않으려나. 그런데 어떡해. 인생은 사고치고 해결하고의 연속인데. 나는 곧이어 있을 겨울의 마지막 12일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올해를 반으로 가르면… 여기까지 생각하고 시간을 멈추고 싶다. 내가 쓰레기인 이유를 다 말해봐, 이런 예의 없는 이야기나 할까봐 아찔하다. 차라리 줄글따위 갖다버리고 어떻게 지내. 라는 말만 보내는 게 정답에 가까웠다. 거기서 대답 안 하면 이젠 싹 비워버리고 도망치면 되니까. 넌 겨우 한다는 말이 이거야? 나한테 그런 몹쓸 짓을 해놓고. 라는 원망이 듣고 싶었다. 네가 상처입은 만큼 너에게 나를 상처입혀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무릎을 꿇고 빌고 싶다. 차라리 다 아프면 시원하게 아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데 이 미적지근한 죄책감은 나를 일 년에 두 번씩 옥죄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까진 아니어도. 봐, 이런 식이다. 담배같다. 하, 시발. 끊어야지. 하면서 한 개피를 더 꺼내든다. 찰칵, 셔터 대신 라이터를 점화한다. 호흡을 안쪽으로 당겨 점화시킨다. 내뱉는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작은 별. 짧아지는 꽁초. 후우. 비벼끈다. 다시 습관처럼 베란다로 나간다. 피우면 안 되는데 핀다. 생각하면 안 되는데 생각한다. 질기다. 나만 혼자 질기다고 생각하는 걸까봐 두렵다.
너. 끊어야 하는데 정말. 그러지 못하고 습관처럼 돌아왔다. 네가 1월 1일에 그런 글귀를 올리지만 않았더라도 이러지 않았을 거야. 사실 우리 상태가 無의 상태라는 건 되레 호재처럼 다가온다. 평행선처럼 정반대라는 사실조차 K와 이야길하면서 다 깨달았다. 단지 너다움에 자석처럼 끌려다니는 나를 즐기고 싶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흐름조차, 지구의 중력조차 뒤집어버릴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만 싶을 뿐이었다. 너도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이뤄지길 원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점점 결정화가 되어 가는 이 마음도 사랑이라는 얄팍한 포장지에 감추어두길 바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너는, 하, 너라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하군. 그래도 너는, 가장 이상향인 존재였다. 세상에 너만 한 백명 쯤 더 있었으면 해. 그럼 난 네 커튼에 깔려버릴테니까. 그 발언 이후로 영화를 봐도 다시는 볼 수 없을 행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도 눈의 속눈썹 길이부터 체크하곤 한다. 너는 내게 딱 그런 존재. 내 사랑도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이다. 연애감정이라니, 그런 불결함을 들이밀지마. 이별이라는 이벤트를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우정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의 상위 층을 점유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내가 나락 갔을 때 네게 집착했던 기억 때문에 이런다고 믿었었는데. 아니더라. 내게 있어서는 네가 무얼 해도 백발백중이었다. 하다하다 힘이 풀려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할 만큼. 네가 알려준 무가 좋다. 부담스럽다는 걸 안다. 그런데 평생을 걸쳐봐도 다신 없을 것 같다. 그냥 이 미적지근함이 좋아. 늘 백지인 상태, 좋다고. 나? 경탄驚歎할 뿐 너의 바운더리 안으로 내가 깊게 관여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단지 일년에 한번, 안된다면 이년에 한번이라도 밥 먹어줘. 충전하게. 이것도 별로니. 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려나. 다시 우연히 만난다면 잘 말해보고 싶다. 연애감정 아니야. 잘 들어봐. 너무 높이 있어서— 혹은, 아예 다른 우주야. 너, 은하수 촥 펼쳐진 광경 보면 우와~ 하지. 딱 그 정도야. 그런 감탄은 감탄이라고도 못해. 경탄이지. 박수 짝짝짝 치고 손 털고 다음 번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하는 거라구. 자연경관으로 남아주었으면 해. 사귀자고 하는 마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어. 건들면 유리처럼 부숴져버릴까봐 전전긍긍한 적은 있어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순수한… 감탄? 육각형이 너만큼 꽉 찬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딱 이런 느낌. 절대 넘볼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들어가서 깨트리거나 방해하고 싶지가 않아. 너의 너다움이 좋아. 지켜볼 수 있게만 해줘. 너, 내가 지난번에 좋아한다고 말 한 게 은근히 신경은 쓰였을 것이다.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도 이미 이해하고 있다. 모두가 총체적인 너라는 걸 깨닫고 난 후 홀가분해졌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여도 아까운데, 진짜 그냥 그뿐이더라고. 감탄하고 박수 짝짝 치고 우와~. 이런 사람도 살아 숨쉬고 밥 먹는구나? 마주보고 앉아서 밥을 먹으면, 차를 마시면, 모든 요소를 잘게 쪼개곤 충만감에 정신을 잃게 된다. 넌 뭐지? 너에게 난 그냥 선배라는 거 알아. 나한테 너는— 한 단어로 가둘 수가 없어. 정말 이런 마음이다. 나는 숨을 고른다. 너의 차분함이 좋으니까. 평소의 나처럼 즉각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흐름을 길게 가져간다. 회로도 맛탱이가 가긴 한다. 찰나의 순간조차 즐겁다. 정교하게 그린 육각형. 이게 딱이네. 석영 보는 느낌. 자연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잘 깎아낸 인위적인 보석인데. 그럼 입을 약간 벌리고 코로 숨 쉬는 방법도 잊은 채로 흘러가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게 된다. 정말… 웃기겠지만, 이런 마음이다. 살다보니 사랑에 제한을 안 거는 쪽이 백 번 옳았다. 포괄적인 스펙트럼이다. 프리즘을 통과한 너는 언제나 단일한 색상 하나로 좁힐 수 없었다. 색과 색 사이 희미하게 벌어진 틈새까지도 사랑해보라고 하면 5분 안에 사랑한다는 글을 적어낼 수 있어. 글이 길어졌군, 아찔해. 롤러코스터 훅 떨어지는 순간의 짜릿함. 그게 다야. 그걸 위해 네게 요구하는 그 무엇도 없어. 앞에 앉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자. 일년에 한번쯤. 어때. 정말. 그게 다다. 눈만 감아도 영화인데. 다음 일년치 충전시켜준다 생각하고 숙성회의 길게 빠진 꼬리부분을 한번 이로 끊어달란 말이야. 화요 한 잔 기울여달란 말이야. 너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온갖 상상을 해도 나는 딱 이정도가 최적이고, 최선이고, 가장 행복한 지점이라는 걸 안다. 아주 잘 안다. 이 선 안에서 놀게. 봐줘. 어장도 아냐. 내가 들어가서 물고기? 물고기도 아냐. 그냥 눈으로 널 볼 뿐이니까. 하여튼 대단하다. 평생을 걸쳐 이런 사랑을 해볼 수 있게 하다니 영광이야. 그래,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백지이길 바라. 계속. 그런 편이 좋아. 어쩌면 평행선을 계속 달리는데도 참 즐겁다. 여기 위선은 단 한 문장도 없다. 재밌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이런 흐름마저도 싫어할 표정이 떠오른다. 근데 어떡하냐고. 진짜 ‘사귀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는데.
그니까 이런 사랑도 사랑이라면 사랑이고, 이런 사랑도 우정이라면 우정으로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난… 이런 것도 가능할 줄 몰랐어. 어떻게 연애감정을 하위로 치부할 수 있게 되는 걸까. 지난한 연애를 해봐서? 이미 관계의 허무함을 느껴서? 그냥 네가 다 부수고 들어와서? 사랑이라… 정말 뭐라 설명하긴 힘들다. 단어 안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꽤 많다. 어디선가 선물받은 청을 숙성시키지도 않은 채로 마시면 떠오른다. 비타민C 메가도즈*를 한 덕분에 가벼운 신맛과 쓴맛을 즐기게 된 내가, 차에 들어 있는 껍질을 씹어 삼키며 웃는다. 물어봤었잖아요. 이거, 왜 먹어요. 매력 있지. 아마 다시 찾게 될 걸. 그 말은 나의 귀를 웅웅 울렸다. 고통에 가까운 아린 맛도 났었는데, 얼굴을 한껏 찡그려도 묵묵히 먹고 있었다. 씨는 뱉어냈다. 산미에 대해 다른 말을 나누었던 날도 기억이 나는데, 고작 5년 정도의 사이클을 돌아 새로운 인연을 만나니 ‘그런 고통스러운 맛’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총체적인 경험 모두를 그냥 사랑으로 가둬? 말 안 되지. 해가 져버린 동쪽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짠 공기였다. 그래서 더더욱 매력이 있는 과육이었음은 분명하다. 그치만 그때 먹은 레몬 색의 과일, 혼자 찾아 먹으라고 하면 절대 안 먹었을거예요. 나는 그가 어떤 얼굴로 까고 있었는지보다 어떤 손길로 까고 있었는지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바람은 밀려오고, 풀벌레 소리가 옅게 퍼져 있고, 짜디짠 바람이었다. 반대쪽에서 선풍기로 밀어내도 역부족이었다. 무슨 얘길 했더라? 이런 흐름들은 쉽게 휘발된다. 한겹 덧붙어야 꺼내기 수월하다. 쓴맛, 짠 냄새, 오소소 소름이 돋았던 촉감. 그리고 껍질을 까내면서 작은 분자들이 만들어내던 시트러스향. 이걸 왜 먹어요, 그야 매력있으니까. 당신이 아는 매력을 내가 이해한다는 게 참. 이해를 못할 때의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열매에 대한 에피소드들로 벌써 노랑과 주황이 지워졌다. 파랑도 지난 여름에 획득했었다. 남은 색 중에 빨강은 내꺼고, 남은 색에 적합한 인연들과 또 마주치게 될 것이다. 고작 이정도가 전부다. 아직 정의하지 못한 인물들도 있는데 굳이 끼워맞춰내지 않아도 어울리는 색이 있을 테니 그때까지 지켜보고 싶다. 난 항상 조들렸다. 그리 급하게 가지 않아도 때가 되면 척척 일이 풀리기도 한다. 언제나 채찍을 휘두르며 채근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서두르는 게 습관이었다. 그러다 우울로 빠져 회복해야 했었고. 극과 극으로는 떠나지 말자, 기분도 체온마냥 항상심을 유지해보자. 남들보다 혈압도 체온도 높은 편이긴 하지만. 너의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다. 들은 이후 잊어버린 적은 없다. 챙기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ㅋㅎ. 코웃음친다. 생일을 기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적어도 나한테는 공간을 만들어 리소스를 할당하고 그걸 유지시키는 이 모든 마음이 사랑이었다구. 신경을 써야 하고, 종종 기억을 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나밖에 모르는 나를 많이 깨부숴줬었다. 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사회화가 된 건지. 이래서 깨져봐야돼. 그만큼 다시 큰 그릇을 만들고, 파도치면 다시 와장창 깨지고, 또 새로운 그릇으로 만들어내잖아 결국. 바다는 언제나 파도를 친다. 인간의 눈으로나 파고가 높을 때는 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영원히 일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돌발성 이벤트라도 태풍은 불어야 하고, 휩쓸리면 차차 복구하게 되며, 그것들까지도 모두 자연의 일이었다. 자연의 순환을 내가 어떻게 이해하겠어. 흐르는 대로 놔 두는 거지. 아, 산으로 올라 가야 하겠다. 역시 보고싶어.
그게 종종 생각이 났어요. 다음번에 볼 때 몇개 생각 나면 던져주세요. 혼자 까서 먹어볼게요. 그건 어디서 사먹지도 못하잖아요. 팔지도 않는 과일을 까서 주시니까 여름만 되면 다시 먹고 싶어지더라고요. 왜 그랬대. 그땐 안먹는 게 나을 정도로 셔서, 써서 다시 안 찾게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선물받은 댕유자청으로 환기한다. 아, 이거 좋아하실텐데. 보고싶군. 가능하다면 시차를 오래 둔 뒤에. K가 올해를 반환점으로 설정한 만큼 나도 그러고 싶었다. 슬슬 준비해야 하는 시점임은 분명했다. 생각난 김에 타서 마셔야지.
아, 추워. 진짜 감기 걸렸어. 어젠 너무 무리했다. 두 눈으로 사라진 반지의 행방을 똑똑히 보아야 안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한 것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난 뒤에야 바지 주머니에서 찾을 수 있다.
팍 때려줬다. 그렇게 소중한 건 몸에 계속 지니고 있어. 반지는 자국이 남으니까 잃어버렸을 때 더 아파진다고. 하, 오늘 왜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니. 다시 자야하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지배하고 있는 큰 틀이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생각의 흐름이 이분법으로 흐르는 방향도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지. 나는 “원래” 그렇잖아. 그런데 원래, 란 없다. 원래란 없는 거다. 어떤 책의 글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이걸 깨트려야 개명을 할 수 있을 거야. 글을 쓰면서 다짐한다. 항상-그럴 필요는 없다.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라고 공부를 해왔는데, 난 성찰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H가 흘리듯 이야기한 말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확실히 물어볼 걸. 이제는 그럴 수 없지만, 다른 글을 읽으며 그가 떠오른다. 생각의 전환이 아니라 사고관의 전환이 필요했다. 전환이라는 말도 진부하면 원래 내 방식대로 그냥 두드리고 부시고 밀쳐내서 꺾어버리면 된다. 마지막의 마지막 관문은 H의 문장을 뛰어넘는 일이다. “변태를 해도 너는 완벽한 —일 수는 없어.” 이건 적확했다. 어릴 적 읽었던 우화만 떠올려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집착하면 안 되잖아. 웹툰짤로 돌아다니는 이야기 중 하나를 그래서 좋아한다. 인삼인 줄 알고 좋아했던 고구마가, 자신을 고구마로 받아들이고 기뻐하는 4컷 만화. 중요한 건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세상이 어떻게 날 보는가? 에 매몰되어 있다면 어떤 종류의 평안도 일시적일 뿐 오래도록 지속할 수 없다.
원래라는 건 없다, 절대도. 당연하지도 않고.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자연스러움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그냥 그렇고, 단지 그렇다. 규정을 지으려는 행동을 많이 해왔는데 해방감이 밀려온다. 그럴 수도 있지, 어쩔 수 없지, 그랬구나. 같은 표현들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에 이런 표현들이 필요했다는 걸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지.
>>5의 네가 아니지만, 나중에 내가 읽을 때 헷갈릴까봐. 아, 호칭 정리 진짜 하든가 해야지. 그리고 이 이야기 끝엔 언제나 네가 서 있는 기분이 왜 들지. 넌 도대체 뭐였길래 나를, 또 너를, 그렇게까지 생각했을까. 뒤를 돌아본다. 너에게 난 뭐였을까. 넌 나를 고민하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뭐길래. 진짜 뭐냐. 너한테 난 그냥 나였잖아. 단지 나였잖아.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나를 견디기에 그때의 나는 한참 모자란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도 나라는 사람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잦다. 그걸 어떻게 나누어 들어줄 생각을 한 건지. 그것도 사랑인지. 그렇다면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한 건지. 시간을 10년만 전으로 돌리고 싶다. 앞으로는 그런 사람 만날 수 있을 거 같냐고 나를 앉혀놓고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오랜만에 다시 이 건물이다. 10년 전의 시계면 스무번의 계단만 내려가면 된다. 엘리베이터는 좋지만, 성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다. 호실의 키를 주머니에서 찾는다. 여깄다. 철커덕 열고 들어선다. 당연히 그때의 나는 30분 정도 늦게나 찾아 올 것이다. 언제나 약속시간에는 늦었으므로.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아침 약속에는 더더욱 약한 친구였다. 방안을 빙 둘러본다. 교복도 걸려 있고, 펜던트가 태양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땐 정말 넥타이가 매고 싶었었지. 생각에 잠긴 사이 나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다. 노크 좀 해주면 안되겠니? ㅋㅋ 웃으면서 깜짝 놀랐다고 말하겠지. 어린 나는 아, 죄송해요. 뚜벅뚜벅, 조금은 쭈뼛쭈뼛한 자세로 의자에 앉는다. 나도 마주 본다. 음료는 녹차 뿐이다. 그때도, 지금도. 녹차를 권했지만 딱히 마시고 싶진 않은 눈치다. 인터뷰나 해볼까 싶어서. 네? 무슨 인터뷰요. 띠껍다. 이새끼, 원래도 그랬지만. 나는 차분(?)히 설명한다. 오- 그렇군요. 네. 좋아요. 해볼게요. 그때의 나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어본다. 내가 이름으로 거론하자 깜짝 놀란다. 네? —요??? 이런 느낌. 물론 질문은 어린 내가 더 하고 싶겠지만 대답에 응하다니 용케도. 너는 나와 같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다. 그땐 지금보다 더 의젓한 눈빛이었다. 방안에도 걸려있는 교복을 완전히 정복차림으로 입고 있으니까 이게 나였지, 싶어 갑자기 웃기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가장 날렵할 때의 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선지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기다린다. 때가 오고 있다. 내일이면 대답할 수 있겠군. 마주 앉은 채로 그를 압박할 수 없어 그럼 생각해보고 내일 즈음엔 답을 해줘, 한 뒤 나간다. 이런 글을 쓰면 정말 잠깐동안 평행세계의 어린 나와 맞닿은 기분이 든다. 미래를 다 알고 있는데도 아련한 기분이다.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나에겐, 정말 너라는 사람은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한참동안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나왔다. 그 눈 속 소용돌이가 이 시점이면 언제나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의 힘이 아무리 좋아도 나의 글과, 나와, 너는 어쩔 수가 없다. 그런 것이다. 생각에 잠기는 게, 연락을 하고 싶은 게, 자연스럽다면 받아들여야지.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지만. 나, 내일 돌아와서 같은 호실의 문을 열어버릴테다. 1407호 쯤 되지 않을까? 이번엔 늦지마. 전해주고 나온다는 걸 잊었다. 내일 바쁘려나. 그래도 저녁 8시 쯤엔 보고 싶다.
왜 근데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못할까 난
모르겠다 솔직히~ 나 살기 급급하다는 것도 말이 좋아 그렇고. 솔직히 피해를 안 주고 좋아할만한 대상이 있으면 이제는 시선을 옮겨주는 게 예의겠지
왜 이렇게 모르는 게 투성이야 세상이
삶의 의미를 나한테서 찾는 일부터 해야 하나? 급한 일을 잔뜩 만들어? 뭔가 또 글을 써버릇하려니 괜히 여기 와서 기웃거린다니까. 이럴거면 시간 그냥 버려도 괜찮다
그니까 난 날 불러놓고 대화를 해도 거기서 멈출 뿐 더 나아갈 생각은 하지 말아야 된다. 어쨌든 돌아오는 피드백에서 또 멋대로 기대하면 나만 또. 거봐 의미부여 말랬잖아, 이게 문제라니까. 하면서 가볍게 털려고 노력한다. 살만하니까 또 생각에 여유가 있어서 이래. 바빠져야 된다.
이럴 땐 밤산책 한답시고 생각 좀 밖에다 비워두고 와야 하는데 자꾸 쌓아놓으니 문제가 생긴다. 명상하자 명상… 생각은 소거돼도 괜찮다. 만드니까 치우는 과정까지 일이 된다. 일 늘려서 뭐할래. 결국 뒤만 돌아보는 꼴인데. 안그래?
뒤를 안 돌아본다고 말은 해봤자 효력이 없었다. 사람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단 말이 딱 이 상황을 두고 하는 것이었다. 코끼리! 생각하지마, 생각하지 말라고. 등만 안 돌린 거지 아주. 다짐하면 다짐할수록 반대편의 저항이 거세진다. 나도 생각하라고 프로필 바꾼거긴 해 유치하지. 알아. 계속 이렇게 유치하게 굴 거야? 연락 한 번 해줘. 라고 하는 건 혼자만의 짜증일 뿐이다. 칭얼거릴 곳이 없어 이런 곳에 칭얼이라니. 이런 애새끼야. 오늘이 나를 애처럼 하는 걸까. 작년이 일요일이었군. 다시 한 사이클이 완전히 돌아 월요일부터 시작이다. 아냐, 두 사이클이네. 같은 요일*은 4년마다 한번씩인데 윤년도 있고 하면. 이걸 왜 셈하고 있냐고 제발. 그냥 하는 김에 또 다 해? 이 지겨운 돌림노래? 돌림노래 부른 가수의 다른 노래가 흐른다. 이런 야심한 밤 그런 걱정은 왜 해 물어볼 뿐이야 오해는 왜 해 티비 드라마로 끝내기엔 저 달이 너무 밝아서까지만 같이 읊조려본다. 뭐? 달이 밝아?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고. 은근하게 붕 뜨면서 짜증도 나고 끌어당겨지는 기분이 별로다. 자꾸만 눈이 가 날 못 살게 구는 게 나도 어지러워 도와줘 정말 상황은 다른데 기분은 이리도 같을 수가 있는지. 어지럽다. 아 그냥 생각나면 생각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냐고. 난 지금 누구랑 싸우고 있는 거고. 왜 또 노래는 죄다 산뜻한 알앤비냐고. 이쯤되면 그냥 내가 쓰레기인 거 아님? 고작 같은 날이라고 연락하고 싶어하는 거? 독심술사 불러서 듣고싶다. 뭐라고 해야 되는데? 아니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정답이지. 졸립고 피곤하고 오늘따라 팔에 닿는 바람이 차다. 감기에 걸린 건 아닌데 이상하게 긴팔 옷을 찾고 싶다. 왜 이렇게 춥지, 분명 따뜻해야 되는데. 내가 지금 어디있는건지. 오늘 다녔던 곳에서 스치듯이 본 신부상이 떠오른다. 신이 정말 있다면 이런 방식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거, 집착이다. 알면서 왜 그러는지 알려주라고. 난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여기서만 난리치면 모르잖아. 모르는 게 좋아. 양가감정 사이를 핑퐁하듯이 오고간다. 테이블도 참 작다. 스매시 한번 때리기 힘든 경기장이다. 때려봐야 나만 손해를 본다는 사실은 불보듯 뻔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데 손님이 와 있고, 내일도 역시 모시고 다녀야 한다. 피곤하다. 혼자 걷고 싶다. 나이 뭐 많지도 않지만 한살 한살 먹을 때마다 외향적이었던 지난날의 나는 얼마나 체력이 좋았던 건지 궁금해진다. 그땐 진짜 하루종일 얘기하고 운동해도 쌩쌩했는데. 몸도 무겁고 마음에도 먹구름이 잔뜩 껴있다. 이런 몰골로 살아갈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 호실 찾아가는 게 무서울 정도다. 난 아직 나를 사랑한다거나 자연스러움을 이해한다거나 하는 모든 일에 익숙하지 않다. 오늘은 유난히 스트레스라는 말을 많이 쓸 거다. 하, 스트레스 받네. 표명하면 효과가 배가 되는데. 나도 유치하고 그냥 다 유치하다. 그만하고 싶다. 차단하고 도망칠래. 아니지. 이걸 해도 되나. 도망쳐봐야 무슨 소용이야? 연락 그렇게 받기 싫던 ex놈한테도 연락이 처오는 마당에. 보기 싫은 사람은 억지로 보게 만들고, 보고 싶은 사람은 안 보이게 만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살거나 나를 보기 싫다고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가마니가 좋고 나는 조금만 더 버티다가 가야겠다 너무 같은 노래만 갈고 닦았더니 새로운 노래 추천이 잘 안 된다 헤어질 결심은 수면제로 쓰면서도 마지막 장면 전에서 잠든다 끝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싶지가 않다, 졸리기도 하고. 사실 서래와는 영화에서조차 완전히 헤어지진 못한다. 그녀가 해준과 헤어진 것은 비교적 명확하나, 서래는 해준이 자신만을 느끼길 바랐다. 해준 또 신발끈 묶으며 올려다본다. 뭘 깨달은 건지. 떡국 열 번만 더 먹으면 알게 될까. 언젠가는 해준이 서래의 죽음 방식에 대해 힌트를 줬다는 사실을 깨달은 줄 알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아리송하다. 그래 지금 절멸하기 3분 전이야.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어떻게 쓸까. 진짜 3분 전이면 전화할텐데 말이지? 어우. 55, 56, 시간이 흘러간다. 아— 그냥 이대로 죽고 싶다. 잠에 스르륵 빠져갈란다. 나는 모르겠다.
꿈을 꾼다고. 왜? 참 기분이 별로인 꿈이다. 오랜만에. 이런 방식으로 받는 벌도 나쁘지는 않아. 꿈이라. 선명한 가닥으로 심장이 뛰며 먼저 깨고 싶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하. 꿈이었군. 다행이다. 이야기의 첫맛부터 끝맛까지 좋지 않았고 화를 내고 있어서 그대로 깨버렸다. 잠에는 정말 들고 싶었었다. 그러지 못해서 탈이었지. 모호필름의 총소리와 해준의 첫대사를 듣고 집중하다가 의식이 옅어졌다. 오늘따라 전애인이 보고싶다는 둥의 글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죄다 네가 아닐 건 뻔한데 왜 나는 미쳐가지고. 차라리 바빠서 다행이다. 아니라잖아. 생각이 나? 그럼 생각을 해. 방금 해준과 수완이 총을 쏘고 권총 약실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디테일 차이를 느꼈다. 표적지. 해준이 10점에 가깝다. 수완은 검은 원 안에만 박아넣은 수준이다. 이걸 유심히 볼 생각을 이제야 했네. 내가 영화를 몇번이나 돌려봤다는 건 거의 의미가 없다. 장면의 재발견은 이런 식의 사소한 계기로 발생한다. 오히려 익숙한 대사와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에 처음에 봤을 때처럼 날을 잘 갈아서 꿰뚫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미세한 차이가 여기서도 보이네. 모호필름 로고의 총소리에서 긴장하거나 소리를 줄이기만 해왔었는데. 결국 영화 초중반부에서 다시 총을 쏘는 사람은 해준이었다. 연습을 제외하고 총을 격발한 사람은 해준 한 명 뿐이다. 산오가 다리를 맞았지만, 제압은 못 한다. 머릿속으로 장면들을 뽑아 재구성해보니 해준도 참 불쌍한 사내다. 의심하는 역할을 가졌을 뿐인데 둘러싼 상황이 가혹하다. 기도수-산오-임호신-해준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동안 134만 서래의 남편 분류로 묶은 글들을 봐와선지 13의 행동을 4가 갖고오는 부분만 봤다. 하지만 산오 역시 해준과 대칭관계다. “이젠 이놈하고 친해져버렸다.”는 대사도 있다. 만약 수사 비리가 어떻게든 걸려버렸다면 쫓는 건 연수일텐데 연수가 해준을 죽인다? 이건 말도 안 되고. 수치심은 자살하고 싶은 감정을 강하게 자극한단다. 끝장면 이후 연수와 그가 끌고 온 경찰은 서래를 찾지 못하겠지. 미제사건이 되어 다시 벽면에 붙여지게 되고. 더 큰 건으로 치고 나가라는 압박을 견디면서 해준은 매일 새벽이 내도록 사건을 재구성할테다. 어디 있을까. 어디 있는지만 알아도 그렇게 답답하진 않을 텐데. 철저하게 해준 입장에만 입각하여 이야기를 읽는다면 서래가 증발한 이후 완전히 미궁이 된다. 그곳이 관광지라면 모래가 유실되어 그녀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지만, 관객에게까지도 서래의 행방을 보여준 건 아니다. 술 먹고 들어가서 긴장하는 숨소리만 들릴 뿐. 어디 갔을까? 이 영화가 일종의 신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서래가 영화의 막을 들어올려 아예 ‘영화’라는 공간 자체를 빠져나오길 바란다는 점 때문이다. 지금도 서래는, 해준은 어디엔가 있다. 좋은 의미로 미친 거지, 송서래, 장해준. 둘 다 어디서나 행복하길 바란다.
하여튼 나도 참 예의가 없어. 많이 다듬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멀었다.
쓴 글이 날아간지 꽤 됐다. 생각이 나는 날도 아닌 날도 똑같은 하루라는 걸 알게 됐다. 단어로 옮겨적진 않았지만 호실로 방문은 해봤다. 그땐 —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못된 짓만 했던, 앞으로도 할 나를 곱게 보기가 힘들다. 아직도 태풍이 두어번 더 있다. 사실 무수히 많다. 예견된 미래를 겪은 내가 어렸을 때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다니. 다 변명인데 미안해. 이런 모습으로 크길 바라지 않았을텐데. 불안해서, 위태로워서 미안하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한다. 그래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한테만 올인하라고, 지금 올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자만이라고, 진짜 최선을 다하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다. 여건이 어려운 건 알지만서도. 그때 썼던 안경테에는 가장 두꺼운 부분에 날개 모양 피스가 박혀 있었다. 눈동자와 날개를 번갈아본다. 이렇게나 반짝이는 청춘이었군. 그리고 어째선지 글만 쓰러 들어오면 넘어와가 순번이 된다. 아까 차에서도 한참 생각하다 지워진 글이 넘어와였다. 이런 야심한 밤, 습관적으로 뒤를 돌아보고 나를 만나러 간다. 현재를 사는 게 맞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 너는 안 그렇겠지 나도 알아. 기왕이면 나도 변한 모습으로 앞에 서보고 싶다. 네가 못 알아봤으면 좋겠어 나를. 나조차도 이게 나라고요? 물어봐줬으면 해. 의문스럽다고 두 눈 비비는 모습이었으면 해. 예전엔 인간관계 다 끊어먹어야 할까봐 겁 많이 먹었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니 놀라는 모습들 하나씩 수집할 기회였다. 거기서 떨어지면 아웃인거고 어쩔 수 있나 서로 존중이 안된다잖니. 오늘은 서래가 해파리 수면법을 하는 부분부터 잠에 빠지자. 뮤비 곧 나온다던데. 핸들 잡고 있는 옆모습에서 속눈썹만 한참 쳐다보다 나왔다. 어지러워.
생활을 유연하게 하는 세 가지 단어: 그럴 수 있지 어쩔 수 없지 그러려니 해
하— 진짜 자야지.
아직도 호칭 정리가 안 돼서 우리 대화는 서로를 부를 단어가 없다 너말고는 없었지. 항상 그 호칭이 생략된 채로 이야기하는 기분 문득 생각났다.
그야 진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난 거니까. 그냥 어색해도 이름 부를 걸. K도 *다른 사람에게 그랬댔는데. 그땐 호칭 자체가 나를 옭아매는 기분이 싫었다. 이제야 이름이라니. 돌 정도는 아니지만 한번 후회하니 묵은 것들까지 옷장 바닥에서 머리카락이 길게 뽑아져나오듯이 쏟아진다. 신정에는 반지 찾으려고 힘으로 옷장을 밀어 넘겼는데, 묵은 먼지들이 가득했다. 청소기로 쓸고 물걸레질 했더니 훨씬 말끔해졌다. 지쳤는데도 개운했다. 널 떠올리는 내 감정도 그에 못지 않은 명징함으로 남았으면 한다. 투명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절대 그럴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 너는 어떨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일련의 과정을 시간이 해줄 거라고 믿으며 가만히 손 놓고 있기도 싫다. 마스크 쓰고 장갑 다 끼고 만반의 준비를 한 뒤 해체해야지. 나도 변해야겠지만, 언젠가는… 돌아봤을 때 어떠한 감정인지와는 관계없이 사사로운 번민으로 시야가 왜곡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많이 바라나.
막상 이렇게 생각은 해도 만나면 몸이 흔들린다. 네 중력보다는 나의 상태가 불안정해서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감정의 도로가 다 갈라지는 기분. 애써 세멘질 했던 길들이 바닥에서부터 균열을 낸다. 네게 중심을 잡아달라 말했지만 그 말을 되돌려 내게 해야 했었다. 그랬다면, 은 생각하지 않을란다. 반성 좀 해. 성찰도 더 하고. 넌 멀었어. 이건 정말 관문이 될 거다. 굳이 상담사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내가 나를 해체하고 뜯어보고 하나하나 다 닦아 기름칠해서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가동될 때에 삐걱삐걱 소리가 나거나 폭발한 뒤 망가져버리지 않도록. 고장은 확실하지만 그간 유야무야 대강 넘기며 살아왔다.
그래 단순히 시간 지나면 나아지겠지, 하고 좌시할 문제가 아니야. 다음 단계를 밟아 나가야겠다면서.
이런 부분에서까지 보조를 받고 싶지는 않고 보고는 해야겠다. 별로 필요도 없는 보고일지언정 의미는 쌓아두면 생기지 않겠어?
사주 보는 중인데 애정관계에 대한 부분들이 맞아떨어져서 웃기다. 1월 : 경계 옛추억을 떠올리는 시기입니다.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한 달이지요. 마음을 특히 잘 잡아야 합니다. 연인이나 기혼자들은 현실과 추억 사이에서 크게 혼돈할 수 있는 달입니다. 2월 : 활용 감성이 발전하는 달입니다. 우정으로 여겼던 마음이 사랑으로 발전 할 수 있습니다.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이성을 느끼게 되는 달이지요. 둘 다 맞았구만 아 ㅋㅋ 근데 이제 3월 금방 오니까 뭐. 올해는 그냥 순탄하게 지나가고 소업인지 대업인지 큰 흐름만 뚫어놓으면 인연이 또 오겠지. 지난 인연에 목맬필요도 없이 나만 갈고 닦으면 그만이다.
헉 배우자 운은 올해 들어온다고 나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요
허리가 뜯어질 수도 있나. 오랜만이야. 비가 와서 그랬나. 비 오면 근골격계로 다쳤던 곳이 돌아가며 통증을 유발한다. 늙었단 말 싫은데 허리와 발목이 시큰거리면 체감하게 된다. 안그래도 비오는 날 더 긁는다거나 하는 표지가 있었지만 긁는 거야 일상이니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요통에 방사통은 약으로 버티려 해도 영 힘들다. 진작에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지위가 변동하고 신분을 정리할 때가 되니 전반적인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남는 사람이 없다. 누구나 그렇지만, 다섯명만 건지고 가도 성공이라고 보는데 선뜻 카톡할 다섯명이 있긴 해도 왠지 찝찝하다. 뿔뿔이 흩어진 느낌이랄까.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은 없다. 막상 쌩으로 혼자 다녔을 땐 개의치 않았는데. 잘못 산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에 자신했던 시절도 옛일이구나… 한다. 고향친구가 좋은 셈이니. 머릿속이 뒤엉켜 어느 한 화두를 꺼내 면밀히 다루진 못 한다. 보이는 족족 나를 정리하려 하는 친구가 뇌속에서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인가. 근데 그런 거랑은 관련 없이 사람 정리를 참 못한다. 매사에 깔끔할 필요도 없지만 기겁하며 행동에 옮길 필요도 없잖아? 그런 의문도 들고. >>5의 너는 지나치게 방어태세를 취한다. 보면 언제나 그랬다. 쭉 친하게 가져가는 사람들 외에는 의문이었다. 기본적인 내향 외향의 차이인 거겠지만서도, 철두철미하고 빈틈없는 모습이 여러 방면으로 더 다가가기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먼저 다가오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러면서 날 알고 있었다는 말은 왜 해선. 걔가 의미부여 하지 말라고 할 때 하지 말 걸 그랬어ㅡㅡ 난 의중을 전혀 모르겠으니까 살려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긴 했지. 다른 걸 다 떠나서 이젠 다른 쪽으로 포커스를 옮겨 잡아야 한다. 그게 인물이든 닿을 듯한 미래이든 간에. 말하자면 나의 허물은 억지로 벗어 던지려고 해야만 벗어지는 무언가인데, 하염없이 누굴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시간도 감정도 낭비고 킴이 말했던 ‘그런 거’를 할 여유가 나지 않는다. 지금은 어찌됐든 간에 계획-목표-달성의 세 과정만 우직하게 밀고 나갈 시기인가보다. 올해 대운이라던데, 귀찮은 일이 풀렸다가 다시 얽혀가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졸업해야지. 공부를 더 하겠다는 다짐은 좋았으나 결과 예측이 힘들다. 그래도 꿈으로 일단 부딪히는 거야.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로 뛰어들 뿐이다. 그 방법이 아니라면 변태든 개명이든 멀어진다. 이 죽일 놈의 껍데기가 뭐라고. 못 벗으면 내가 죽을까봐 그러는 거겠지만. 껍데기만 남고 알맹이가 삶의 의지를 잃는 거보다야 당연히 허물만 벗는 쪽이 낫지 않겠어? 확인해보니 나방이라 하더라도. 그런 점에서 H는 틀린 거다. 나는 단지 나를 찾는 거였지, 이분법의 규칙에 매몰되기 위해, 혹은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그래. 생각하면 항상 그런 방식이었어. 당연히 나를 찾는다는 뜻속에는 타인의 인정도 없진 않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이 심지어는 다시는 마주치지 않을 행인에게까지도 내가 어떻게 인식되느냐의 문제일 뿐인거지. 정말 특정 몇명 좋으라고 그런 건 전혀 아니었다. 자기만족인데, 정도가 심해 자기혐오로 수렴해서 허물 못 벗으면 그냥 일찍— 그럴까봐 어떤 방향으로든 실현하길 바랐던 거였지. 어렵긴 어렵다. 누가 생을 날로 먹는지 좀 알고 싶네. 삶이란 게 어떨 때는 계란 까듯이 쉬워보여도 먹다가 퍽퍽해서 사레도 들리고 토하기도 하나보다. 예전처럼 간단명료하지가 않다.
탕웨이기 아이유랑 뮤직비디오라니. 요 사이에는 이 이슈가 가장 나를 설레게 한다. 운전대를 잡은 서래의, 아니지, 탕유의 잘 짜여진 속눈썹. 코. 그리고 분위기. 꼿꼿한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 피폐하면 참 재밌다. 박수 짝짝 치고. 30초짜리 티저도 몇번이나 돌려본다. 나는 중독될 무언가에 깊게 잠식되고 싶다. 정신 못차리게. 그런 상태가 최상의 행복이라고 느낀다. 특별히 이뤄진 건 없는데도 내일이 기대되잖아. 습관인지 버릇인지.
나는 맥락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맥락+맹이라는 합성어조차 맹락맹, 맥랑맹 등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싫다. 특히 커뮤니티 댓글에 남을 까내릴 의도로 쓸거면 좀 제대로 알던가. 욕은 하기 싫고 고상한 척하면서 명예는 훼손시켜야 하니 고를대로 고른 단어인데다가 틀리기까지. 저기, 부디 그렇게는 살지 마세요. 차라리 쌍욕을 해야지 꼴이 웃기잖아요. 경험칙에 의하면 댓글로 지적했을 때 오타라고 둘러대는 전형적인 인간 군상일 확률이 높았다.
와 근데 >>34 이거 비슷한 내용으로 쓴 적 있는 것 같다. 아닌가? 이 기시감 뭐지
근래에는 다른 커뮤는 잘 안 간다. 슬슬 커뮤 중독에서 나오고 싶었던건데 여기를 안하면 저기를 하게 되고. 아무튼, 그러다 눈에 확 들어오는 고민을 봤다. 다시 만나긴 힘든데 그렇다고 아무나 좋아지지도 않는다 영감을 줬던 상대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고착이 된 상태는 이 지점인 것 같다. 아무나 좋아지지가 않는다 단지 그뿐이다. 억지로 좋아하다가 나는 심지어 다치잖아; 해봐야 >>5는 곤란하다는데 내가 밀어붙일 이유가 전혀 없고, 누군가에게 전해줬듯 1의 노력에 100의 정신력으로 돌려줄 필요도 전무하며, 솔직히 내가 살려고 했던 거였으므로. 생존의 문제를 부차적으로 던져두면 과연 앞으로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가? 의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필요하다. 정답일 필요도 없고. 나는 공통으로 끌리는 포인트가 있었지만 그걸 전부 연애감정으로 치환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너라는 사람을 두고 분광기를 끌어오면, 우정이 사랑의 하위라고 느끼게 할만한 진정한 사랑이라는 생각에 얽매여있게 된다. 그런 마음을, 정확히는 마음이 들게 하는 인물을 다시 못 찾을까봐 괜히 새벽이 되면 손톱을 잘근잘근 씹게 된다. 나타날 거라고? 만나 봤는데 아니던걸. 그런데 영감이 무어라고 하나의 느낌만을 찾아 헤매는지, 매우 바보처럼 느껴지다가도 그런 감각이 아니라면 굳이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넘어가버린다. 헤어진 뒤의 치료과정에서는 장난—얘의 내일이 궁금하지 않는다면 나는?—으로 아무나 좋아하는 상태이긴 했지만 어떤 사람도 만나고 싶진 않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짓곤 했다. 그니까 그때는 헤어진지 얼마 안돼서 그냥 너 아님 안돼 따위의 일차원적 고민인 줄 알았지. 시간이 많이 지났고, 종종 네 이야기가 내 입에 아무렇지 않은 정도로 자연스레 오고갈 때마다 느낀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닌데도 기분이 붕 뜬다는 점, 어떤 X와는 뒤지게 엮이기 싫은데 너는 엮여져 있었으면 한다는 점. 그 외에도 W의 지적대로라면 내가 대화에서 가장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부분은 네 얘기를 할 때였다. 아마 다른 사람도 그렇게 말할 걸. 왜 그런 거지? 라는 간단한 의문은 조금 치워두고, 어찌되었던 간에 n번째 연애를 할 때 방해가 될 정도로 시작의 단추를 요상한 꼴로 꽂아두었다면 첫단추까지 다 풀어볼 수는 없느냐는 거다. 물론 어떠한 에피소드/이벤트 이전으로 절대 돌아가진 못한다. 도대체 너는 뭐길래 나한테 이런 감각을 제공하는거지. 아직도. 헤어지고 나서도 미련 철철 풍기는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다시 얼굴 볼 수 있다면 어떤 방향으로든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채근한다. 설령 그것이 어릴 때의 치기 같은 승부욕이라고 할 지언정 떳떳하고 싶다. 계속 그래. 나락으로 가고도 싶지만 어찌저찌 악착같이 살아서 가장 최상의 상태를 증명하길 바란다. 나는 너와 달리 아무것도 없거든. 공부 더 해야하잖아. 막연한 공상을, 아무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일을 닳고 닳을 정도로 기원해서 꿈으로 삼은지 이제 벌써 20년이라는 사이클이 돌아가는데. 너도 이겨야(?)겠고, 내 꿈도 지켜내는 걸로는 모자라서 이뤄내야겠어. 근데 왜 너는 내 이야기 끝에 있느냐고. 시간의 흐름을 떠나서 무슨 결정적인 이유가 나를 너의 흐름에 매여놓게 하는 건지는 정말 알고 싶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한데. 그 가능세계를 연다는 것도 미친 짓 아니니?
그냥 그런 상태이다. 보고싶으냐고? 맞다. 그래봐야 해후나 나눌 뿐 생산적인 논의가 아니라는 데에도 동의할 수 있다. 고착된 심리를 뛰어넘고 싶다. 내 상황을 내가 뛰어넘어서 다시 보고픈 느낌에 더 가깝다. 누가 그러냐? 인연인 거면 언젠가 만난다잖아. 그런 희박함에 기대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나를 이렇게 만드냐고 그것만은 좀 알고 싶다. 역시 대화가 모자랐어 우리; 나만 너무 일방향적이었다. 쫓아갈 수 있다면 쫓아가서 개패주고 싶어. 그것도 아니면 K를 친구로 일찍 만나서 고민이나 상담해볼 걸. 야 어떻게 하면 소통을 잘 할 수 있냐? 그는 말한다. 듣기나 해. 이게 정답이었는데ㅡㅡ 이게 >>5의 느낌과는 다르다.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너를 잊으려고 네게 쏟았던 에너지를 올인한 거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미쳐버릴 뻔했다. 사실 그 친구에게로 흘러가야만 했던 마음을 전부 우회로로 토해냈다. 이거, 좀 이상하긴 하지? 그래서 더 공허했던 차였고. 왜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라는 생각이 나에게도 그 애에게도 닿아있으면 예의가 아니다. 내가 먼저 알아채고 회수했어야 마땅한 문제였는데, 우회로로 뱉어내지 않으면 너한테는 지는 느낌이었어. 5의 문제도 점점 풀린다.
“단지 너다움에 자석처럼 끌려다니는 나를 즐기고 싶었다.” 인 거잖아. 내뱉는 대로 크게 수정하지 않은 문장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경탄驚歎할 뿐 너의 바운더리 안으로 내가 깊게 관여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 문장 쓸 때 약간 헷갈렸는데 관여하길 원치 않는다는 말이었다. 너와의 차이점은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데에 있다. 여전히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강하게 부딪히고 싶기도 해. 죽도 밥도 좋으니 한번 더 부딪히고 깨져도 좋겠다. 무슨 차이지? 단순하게 사랑이니 우정이니 가둬놔서 생각의 틀이 제한됐나. 사람으로 보면 감정의 크기나 밀도나 심도가 전부 밀리긴 한다. 그 이상 파고 내려갈 수 있을까? 막말로 너를 만날 때엔 아르헨티나까지 밀고 갔다고. 지각 맨틀 외핵 내핵 다시, 그리고 하늘을 보면서 웃는다던가 남반구에서는 변기물 내릴 때 거꾸로 돈다는 말만 들어도 재밌었다고. 내키지 않아도 네가 시키면 그 빌어먹을 아르헨티나에서 다시 여기로 돌아올 수도 있었어. 근데 왜 이런 걸 한번도 예견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부러뜨렸나. 부러트리다보다는 뜨리다가 더 알맞는다. 뚝, 하는 소리를 내고 완전히 꺾여버린 이후 잘못 치료돼서 겨울만 되면 비만 오면 시큰거린다. 괜한 오기에 더 잘 걸어보겠다며 씩씩대도 아프긴 아프다.
너한테는 애초에 내키지 않는다는 느낌이 아예 안 들었거든. 아예 그런 일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엑스를 만나고 또 기타등등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다보니 내키지 않은 일이 훨씬 많아서 내키는 일만 처리하기에도 고역이었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대화하다보면 5분만에 감이 왔다. 차라리 그 정도의 마음으로 색채로 짝사랑이라도 하게 해줘봐. 하나의 색에 가둘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닮았다고 생각해왔던 5를 제외하면 분류가 불가능한 사람도 없었다. 두 색에 걸치는 누군가는 있었나? 자신이 없네. 뒤를 돌아본 상태였다는 걸 최근에 깨닫기도 했지만. 아성을 무너뜨릴 사람이 나타나주길 바란다는 게 오만인가?
그리고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내 역린은 오로지 나의 안에서만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해야겠어. 누구 탓은 아니다. 내 탓마저도 못 하겠다. 할아버지가 보신대로 그저 쥐고 태어난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건강해. 누가 건드렸든, 누가 발견했든 간에 잘못된 개념이 아니다. 난 지금도 나의 자연스러움보다는 시대나 사회의 혹은 병리의 정상성에 목을 맨다. 지니고 태어난 건 기질이라며. 그걸 바꾸려고 노력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아니 그냥, 괜히 진단명이 있겠냐고. 나만 이런 고민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이걸로 지나치게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싫어했다. 이제는 좀 뒤집어 생각도 해보자고. 개명이 머지 않았으니까 남은 기간동안만이라도 이 상태를 즐겨야지 어쩌냐. 내 허물까지도 일단은 나인 걸; 내가 물이 모자라서 바다랑 친해지라는데 보려면 어쨌든 건강해져야 한다니까 보러 간다. 신분증은 또 잃었다. 이쯤되면 지금의 모습일 때는 신분증이 도망가는 게 더 잘 어울려서 달아나는 건가. 하여튼 마음에 안 들긴 하니까.
언젠가 글을 정말 흐르듯이 쓰고 싶어서 말하듯이 쓴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글을 읽을 때나 쓸 때 80%의 확률로 묵독을 병행하는데, 그러다 보면 글이 튄다.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다른 마음까지 치밀어서 그대로 받아 적는 느낌이 된다. 불현듯 춥다거나 배고프다거나 글의 전반적인 주제와 상관없는 곁가지가 치고 나올 땐 퇴고하면서 잘라낸다. 말하듯이 쓴다는 것에도 장점이 있다면 큰 걸림이 없는 글이 써진다는 점? 물론 나는 내 글이므로 애정 가득한 눈으로 봐서 그리 보일지도 모른다. 아 진짜 애플 비공개 릴레이 켜지면 작성 안 되는 거 어떻게 안 되나. 별은 달기 싫고 글 날아가서 부분 복사만 됐다;
모르겠다. 뉴스를 자주 보는데 이슈가 너를 겨냥하는 기분이 들어 괜히 욕부터 들이민다. 하여튼 감정카드 중에 분노부터 선제 발동하는 버릇도 언젠가는 치료해야 하는데. 난 진짜 답이 없나. 아니 있겠지만 이걸 고치고 싶은 생각이 진짜 있기나 한 거니? 별것도 아닌 유행어에 버튼 눌리는 거 싫단 말이지. 전등이 켜지면 경계부터 한다. 아직도 언급된 장소에 가면 긴장한다. 예민은 체질이야? 물 많이 바람 많이로 완화 좀 시켜야해? 누가 내 불에 소화기 촥 뿌려줬으면 좋겠다. 이래서 상극이랑 잘 맞고 동질이랑 파국인가보다. 불과 불이 어떻게 시너지로 작동하겠어. 아예 나를 포섭시키는 불은 이제껏 딱 한 사람 봤다. 푸른 불꽃이었잖아. 어떻게 빨간 불꽃이 이기냐고. 오늘 뵈러 가려고 했는데 멀쩡히 버스 정류장에 앉은 나를 무시하고 유턴으로 슥 올라가서 놓쳐버렸다. 예의 있는 옷차림도 아니었다마는. 내일은 아예 운동 코스를 그쪽으로 짜든가 해야지. 좀 추워졌으면 좋겠다. 더우니 도로에도 아지랑이가 일고 눈앞에도 비문들이 이글이글 모인다. 이 증상의 상관관계만 못 밝혔다. 배운대로 물은 아주 권장량을 마시고 있다. 어떤 운동이든 과호흡 심하게 유발하는 건 하지 말랬는데. 의사가 80%만 쓰라고 했었는데. 처방은 아직도 소화를 못 시켰다. 이제껏 120 밟고 달려왔다. 꽝하고 한번 사고 난 후로 50 미만만 밟아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반항심이 드는지. 내가 아픈 건 내가 제일 받아들이기 싫은가.
너일까봐 더 잘하게 된다. 가능성을 배제하고 싶지가 않다. 너한테 하는 거 10%만 했어도 인생이 윤택했을텐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상담 내용을 꽤나 흡수하고 살아왔다는 걸 느꼈다. 자연은 자연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은 그렇게 놔두면서 나다움을 지켜야지. 강의 하류에 서서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있기 점점 어렵게 된다. 수영도 못하니까 휩쓸리면 끝이다. 이젠 순방향으로 몸 전체를 돌린다. 튜브도 타면 좋다. 구명조끼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니까. 둥-둥- 뜬다. 사주에 물이 부족해서 물에서 깨달음을 얻었나, 작년 여름 바다에서의 깨달음이 흐르고 있다. 둥둥 떠. 그냥. 떠 있어. 몸을 맡길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일이 전부 나를 흐르고 내가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도 없지. 나는 나대로, 다른 이들은 다른 이들대로 흐르게 하고 안 되는 부분에 지나치게 마음 쓰지 말자. 이게 자연스럽다니깐. 이런 원리를 깨닫고 나니 스트레스 수치가 저절로 낮아진다. 인상 팍 쓰면서 이 일은, 저 일은 어떡하지, 그럴 수는 없더라. 흘러가게 두어야 흐른다. 나도 누가 준 튜브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기도, 모래사장 가까이 흘러오기도 한다. 짠 물에도 머리 넣어보고. 단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수영을 할 수 있게 돼서 물고기를 좀 보고 싶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꿈이지. 아잇 진짜. 왜 써지지도 않은 글에 중복이 뜨지. 물어봐야겠어.
불친절한 운율을 살리되 언어는 최대한 압축하여 적은 문장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읽는 호흡은 빠르나 돌아가서 곱씹지 못했다. 심상이 물밀듯 닥쳐오고 처리하기 급급하다못해 치여 깔려버린다. 한글은 워낙 고맥락 언어라는데 그의 글은 두 차원 정도 위에 서 있다. 그러니 친절하지 못하다, 친절해선 안 된다. 글 속 두 주인공부터 이미 비현실적이다. 말하지 못하는 여자와 시력이 아주 나쁜 남자. 언어를 상실한 쪽과 시각을 상실하는 것이 확정된 남자의 뜨뜻미지근한 이야기였다. 단편과는 달리 장면전환도 잦았고, 짧은 시도 빈번했다. ‘언어로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는 여자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역력했다. * 두 사람이 잠자코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수업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수업이 시작된 뒤에.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사무실 앞에서. 차츰 그의 얼굴이 그녀에게 낯익은 것이 되었다. 그의 평범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고유한 이목구비와 표정과 체구와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변화에 대해 언어로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언어로 생각한 적이 없는 장면은 언뜻 보면 휘발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이는 의미부여로, 그녀에겐 그저 현상이다. ‘시각적 정보’의 처리이다. 낯익게 변화했다라는 언어로 정제하지 않고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는다. 언어로 세계를 사유하고, 창조하고, 작품을 써내려가는 작가와는 정반대에 서 있는 여자다. 작가는 왜 이런 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냈을까? 자신과는 상반된 존재에 대해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해체하고, 다시 가상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일이란 얼마나 숭고한가. 세계적인 상을 수상해서 평가가 거창해졌지만, 그러잖고 추천받은 시기 즈음에 재빨리 읽었더래도 비슷하게 느꼈을테다. 작가란 기본적으로 오감을 언어로 치환하여 생동을 부여하고 심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치환 과정에서 의미 상실이나 파괴가 이뤄진다. 예컨대 공감각을 활용할지라도 시•청•촉•후•미각이란 총 5감각을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소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중소설은 대체로 시각중심적이다. 장면마다 다르지만 언어를 볼 수 있는 자는 ‘시력에 중대한 이상이 없는 자’들 뿐이다. 세상이 좋아져서 오디오북으로도 책을 향유할 수 있으나 우리에게 책은 읽는 행위(讀書)다. 듣거나 만지거나 느낄 수 없다. 이야기 속에는 시각중심적 사고를 뒤튼 부분 역시 존재한다. 남자가 점자로 된 글을 읽는 꿈을 꾼다거나, 점자로 된 책을 만들고자 하는 소망도 담겼다(“고백하자면 말이야…… 내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책을 내게 되면, 그게 꼭 점자로 제작되었으면 좋겠어.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더듬어서, 끝까지 한 줄 한 줄 더듬어서 그 책을 읽어주면 좋겠어. 그건 정말…… 뭐랄까, 정말 그 사람과 접촉하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시각의 80% 정도가 상실된 것처럼 보이는 남자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중대한 무언가(시각 혹은 언어)를 잃는대도 삶을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 최근 다양성과 배리어 프리 같은 논제를 많이 생각하고 다뤘다. 다리를 자주 다치기도 했고, 깁스한 채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반복해야 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선지 낯선 장소에 가면 문득문득 이 장소는 얼마나 배리어-프리한지 체크하는 게 습관이 됐다. 엘리베이터, 점자 블럭, 접근성, 경사로. 대체로 한국은 정상성의 신화가 굳건하다.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점자블럭 색을 보도 블럭과 같게 하거나 파괴된 점자 블럭을 고치지 않고 없애기도 한다. 공공기관 외에는 경사로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이는 특히 대학 건물에서 빈번하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노인들의 천국이 됐다. 목발 짚은 사람이나 임산부가 와도 나이 든 사람 무리를 한 번 비켜주고나서야 겨우겨우 몸을 실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도 내겐 다양성 담론의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애초 이야기를 관통하는 제목이나 소재부터 ‘희랍어’다. 아주 희귀한 소재다. 이데아나 아레테,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홀연히 등장했다 가볍게 사라지기도 하는 희한한 소설이다. 모쪼록 재밌다, 즐겁다, 라곤 못 하겠지만 여운은 오래 남겠다. 낯선 언어는 언제나 독자를 난처하게 한다. 수수께끼로 남은 단어는 여전히 호기심을 부른다. 웹서핑해도 찾지 못했다. “그 순간, 불쑥 오래된 한 단어의 기억이 절반쯤 잘린 채 떠올라 그녀는 그것을 붙들려 한다. 오래전에는 해가 진 직후와 해가 뜨기 직전의 어스름을 호呼……로 시작되는 한자어로 불렀다고 했다. 멀리서 오는 사람을 알아볼 수 없어, 큰 소리로 불러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는 뜻의 단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서양식 표현과 비슷한 연원을 가진, 호……로 시작되는, 끝끝내 완전해지지 않는 그 단어가 목구멍보다 깊은 곳에서 뒤척인다.” 대체 무슨 단어였을까. 무엇 하나 명쾌하지 않았다. 밤과 새벽, 아침의 불분명한 경계처럼 끝난 이야기가 자못 아쉽지만 다시 들춰보기 겁났다.
이스터 에그 서래와 해준이 시마스시 모둠 초밥을 함께 먹고 난 후 치우는 장면, 탁자 닦는 뽀득뽀득 소리 너머로 카톡! 알림음이 들린다. 출연진 혹은 촬영팀 중 누군가가 무음으로 해두지 않은 것이리라. 의미가 서래의 관람법대로 침침식이어야 하는데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르기만 하는지도. 그녀가 양치한 후 뿌린 투명색 향수는 물이었을까, 향수였을까. 해준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는 후시녹음이었을까. 디테일에만 집착하는 괴팍한 망령이 된 듯하다. 마음 한켠엔 언제나 해결하지 못한 헤결 질문이 산재했다. 비산하는 궁금증, 그러므로 영원불멸할. 해준이 지구를 체포할 때 서래가 좇아와 세워둔 차의 깜빡이는 두근거림을 표현한 소리일까? 틱톡틱톡이 툭툭툭툭으로 들리기도 하고 피부 너머로 들을 수 있는 강렬한 심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래는 왜 고양이와 말이 통하는가. “남만주 살쾡이”의 후손이라서? 그녀가 저녁으로 아이스크림을 맹렬히 먹을 때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애꿎은 까마귀(후에 해준은 이 까마귀의 깃털펜을 만들어 쓴다.)를 죽인 야옹에게 선물로는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오라 하는데 그 언어는 서래가 다른 이의 대사를 모사하지도, 번역하지도 않고 순수히 전해진다. 즉 서래의 온전한 언어는 고양이와 통한다는 사실로도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이때 해준은 번역기를 통해 남성의 음성을 거쳐 듣는다. 이질적인 체현. 잠이 안 올 때면 자장가 대용으로 튼 지도 벌써 이 년 남짓 돼간다. 잠에 빠지는 타이밍은 다양하지만 2부를 채 넘기지 못한다. 결국 1부만 주구장창 돌려본 셈이다. 영화관에서, 재개봉으로, 흑백으로 봤고 또 듣기만 하기도 했다. 단 한 번도 눈으로만 본 적은 없는 것 같네. 대본도 스토리보드도 진득히 뜯어봐야 하는데 묵혀두고만 있다.
겨울 한가운데를 강하게 관통했다. 이것저것 갖다붙이고 싶지 않다. 정신상태만큼이나 엉망일 글이다. 머릿속이 터져버려 조용히 잔해를 되줍는다. 요 며칠 계속해서 눈발이 날렸다, 그런 만큼이나 스트레스도 켜켜이 쌓였다. 뇌관이 언제 폭발할까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애먼 곳에서 눈폭탄으로 돌아왔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눈보라 너머 옹기종기 모여앉은 피붙이들에게 짙은 염오감을 느꼈다. 같은 뿌리에서 난 가지라도 꽃과 열매는 제각각인 것처럼. 본을 따질 필요도 없이 형형색색으로 못난 자로군. 그런데도 내 카드에는 분노밖에 없어 이리저리 다 불지르고 다녔다. 가스 다 떨어진 초록빛 라이터로 향 지필 땐 사방에 불꽃놀이 펼칠 줄 몰랐는데. 한바탕 태우고 나오니 기운이 쫙 빠져버렸다. 늙었는지도. 향 냄새 밴 몸을 구석구석 씻어내린다. 머리 끝부터 발톱 말단까지 어디 하나 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스스로 암시를 건다. 녹아버리라고. 흘러흘러 이름모를 하수종말처리장에 가버리라고. 통제할 수 있는 일이란 한톨도 없었다. 오늘의 사건마저 자연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그 누구 하나 적합한 조처를 탐색하지 않고 방치해뒀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흘러왔다고 하고픈데, 발언권은 없다. 나이를 추하게 먹으면 나라는 경계가 현저히 줄어버리는 건가. 나도 “그렇게” 늙어버린단 말인가. 설령 그렇다면 뺨이라도 때려달라 우스개했다. 웃기지도 않았다. 부득불 질러놓고 오니 후련하긴 한데 잘못했다 싶다. 치기도 옛말이어야지 침묵하는 사람이 어른스럽단 걸 알면서도 퓨즈 빠진듯 날뛴다. 여전히 모났고, 날카롭다. 둥글게 변해버린다면 영원히 도망치고 싶다. 바뀌고 싶지 않아. 이번 겨울은 유독 춥다. 적설량도 상당하다.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을까. 이런 밤이면, 반지 안쪽에 채 닦아내지 못한 향냄새가 불면으로 이끌 것만 같다. 편지를 써도 마땅치 않아 죄다 찢어버릴 것이다.
살아있다는 게 고통스러울 때도 있는 거다. 하루종일 기분이 얹힌 듯 무거웠고 몰려오는 잠을 깨치느라 예민했다. 가야겠다, 가야겠다, 입안에서 이루지 못할 다짐만 머뭇거렸다. 일정이 많았다. 교차하는 시간을 모두 써버린 탓에 갈 수 없었다. 문득 방문의 목적이 참회와 비슷하다 느꼈다. 성치 않은 무릎으로 두 시간을 고행하려 했던 작년에도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였으므로, 버스 시간표가 맞지 않는다면 걸어간다. 헤매는 사이 나를 스친 두 대의 버스가 얄미웠다. 비가 축축히 내려 오르막에 낀 안개가 야속했다. 가시거리가 짧았다. 바람막이의 얇은 후드도 빗방울을 모두 걸러내진 못했다. 결국 중도포기하고 버스로 올라갔다. 찐득했던 여름, 중간지점 캠핑 정박지에서 목을 축이고도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 그런고로 운동은 이제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로 하겠다고 거창히 선언했다. 하지 못 할 일은 없다. 아마 처음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첫 단추는 손이 아프도록 꿰어도 어렵겠지. 두 번 세 번 반복할때마다 고통 역치는 높아진다. 숨은 천천히 차오를테고 뒷산 오르는 마냥 식은 죽 먹기가 되겠지. 그만한 체력없이 무얼 한단 말인가. 길눈이 어두워 헤매도, 먼길로 돌아가도, 어떻게든 가닿아야만 한다. 내가 찾는 자는 공연히 눈을 빛내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그 흔한 꿈속에도 나오지 않은지 꽤 됐다.
검은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고 서 있는 네 발 달린 짐승, 그리고 소리없이 왔다가 소리없이 사라진 한 여자. 주인공 일행은 신화 속 동물같은 자를 찾아 떠난다. 흰 눈이 나려 무릎 혹은 허리께까지 눈이 쌓인 곳으로. 여자의 기억은 이유 없이 갇혀 있다. 흔히 기억상실증이라고 회자되는 질병은 사실 기억이 가닿지 않은 곳에 모조리 갇힌 질병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기에 애를 써서 부수고 들어가거나 조금씩 조금씩 끊긴 필름이 재생되듯 회복되어 흘러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일행에겐 여자의 정면을 찍은 사진은 없고 그저 45도 측면에서 뒤를 돌아보는 사진만 있다. 주민등록도 되지 않은 여자를 어떻게 찾는 것이 옳은가. 숨죽여 그들을 따르다 보면 여자의 기억을 따라 훑게 된다. 그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나체 상태’가 무얼 의미하는 건지 궁금했다.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도 갑갑함을 이기지 못한 아내가 모든 옷을 벗어던지고 베란다로 가 광합성을 시도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우리가 찾아야만 하나, 찾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은 의선이 햇빛 아래 선 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모든 옷가지를 벗어던지다 검은 제복을 입은 경찰들에게 포박당한다. 그러고 보면 두 인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깡 마른 체형을 지닌 여인이라는 것, 섬약하지만 다정한 성품을 지녔다는 것, 어딘가 알 수 없는 그림자를 품고 있다는 것. 채식주의자를 읽어본 적은 없으나 두 인물 모두 육식을 선호할 것 같지는 않다는 어렴풋한 추측도 남는다. 나무로 변해버린, 검은 사슴이 되어버린 두 사람은 지금 행복할까. 온몸으로 햇살을 내리쬐던 자가 소설에 등장함으로써 현실감각은 파괴된다. 그러나 왜인지 그들은 다른 인물에 비해 훨씬 활력과 생동감이 풍부하다. 여자의 애인이었던 남자와, 나체 상태로 거리를 활보하던 여자를 집에 머물게 해 준 주인공은 결말부로 가 허망한 죽음을 맞을 뻔 하였다. 이것 역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인데, 소재나 지역을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었다. 소설이 쓰여졌을 당시 탄광촌을 조명한다는 것은 사회고발성이 짙었다(종종 무너진 탄광에서 생존한 자들이 영웅처럼 신문에 날 때였다). 희박한 산소나 도처에 도사린 위협이 존재함에도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장치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아래로, 더 아래로, 더 많은 것을 캐게 했을 뿐이다. 마침내 사회가 발전하여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탄광마을에서 우린 무얼 볼 것인가. 밤이 되면 인부들이 득시글거리는 유흥가마저도 삶의 일부이며 마을의 생존전략이라는 듯 담담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다른 작품에서 느끼지 못한 감각인데, 이 작품은 유독 추리소설과 비슷한 데가 많다. 범인 대신 사랑하는 여자를 좇는단 점이 다르고 그 외에는 결이 비슷하다. 반드시 좇는 자와 좇기는 자가 있다. 좇는 자는 주변을 탐문하며 하나하나 단서를 잡는다. 쉽게 찾아지는 법은 없어 이래저래 갈등도 있고 서울로 돌아가야겠다 다투기도 한다. 서술트릭도 없고 명확한 범죄피해자도 없으나 쉬이 찾아지지 않는 자를 이야기 내내 좇아다닌다는 점에서는 참 비슷했다. 그래서 결국 찾았는가 하면 그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녀는 어디로, 어디로 가버린 걸까. 희붐한 옛 기억을 붙잡으며 다시, 일행이 찾지 않을 때에 원래 자리로 돌아와 인간 행세라도 할 것만 같다. 인간들 틈에 자취를 감춰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는 신화 속 존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