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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4 21:32:09 ID : pbxyE1g1BcE
확실해. 이젠 정말 다 잊었어. 가끔 네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긴 하지만, 거기서 끝이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너를 만나면서 느꼈던 감정, 특히 기억나는 그 때의 분위기를 여기 털어놓으려고 해. 그 때 들었던 노래와 함께.
2018/11/04 21:33:39 ID : k5U1zWnRwtA
현철이 부릅니다. 봉선화 연정-!
2018/11/04 21:50:49 ID : pbxyE1g1BcE
1. 피카부 작년 가을에 너를 처음 만났어. 꽤 혼잡한 번화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얇지도, 두껍지도 않았지.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그 정도 날씨였고 그 정도 계절이었어. 그건 정말 우연이었어. 금요일 밤, 번화가의 버스 정류장이 으레 그렇듯이 버스 정류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어. 벌써 술기운이 올라왔는지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옆의 남자를 붙잡는 여자 그저 그런 표정으로 거래처의 전화를 받는 남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시답잖은 이야기에도 낄낄대는 교복 무리들 커다란 등산 배낭을 지고 아이폰을 들여다보는 외국인 사나운 얼굴로 버스도착정보시스템을 노려보는 너 많고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에 불과했어.
2018/11/04 21:58:16 ID : pbxyE1g1BcE
큰 편에 속하는 키, 양 옆으로 찢어진 눈, 잔뜩 찡그린 눈썹, 제멋대로 삐죽삐죽하게 잘린 앞머리. 어디선가 많이 봄직한 사람이었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어. 이성적인 호감? 전혀. 그런데 어째서, 그 날 너한테 말을 걸었던 걸까. 아직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해서 가끔 고민하곤 해.
2018/11/04 22:02:59 ID : pbxyE1g1BcE
"저, 저기요, 제가 원래 이런 건 진짜 잘 안 하는데요, 아니 정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요, 아니 제가 아니라 그 쪽이요, 그 쪽이라고 하면 좀 그런가? 아 모르겠어 어떡하지 죄송해요 정말, 말이 너무 막 나오는데, 아 정말, 그러니까, 그, 죄송한데 너무 제 이상형이어서 그러는데요, 정말 죄송한데요, 혹시 괜찮으시면 연락처 주실 수 있으세요?"
2018/11/04 22:14:55 ID : pbxyE1g1BcE
버스가 도대체 언제 오나, 사나운 표정으로 버스도착정보시스템을 노려보던 너를 톡톡 건드리는 건 상당히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 저 말을 전하는 건 더더욱 그랬어. 넌 일관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거든. 웃고 있지도, 당황스러워하지도 않는 애매모호한 얼굴로 말야. 약간은 무섭고 긴장되고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덜덜 떨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을 내밀어 휴대폰을 달라는 제스쳐를 취했어. 아무 말 없이. 속으로 일이 도대체 어떻게 풀리고 있는 건가 궁금해하면서도 별 말 없이 휴대폰을 내민 나와는 다르게, 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이얼 패드를 꾹꾹 누르고 친절하게도 이름과 함께 연락처를 내 주었어. 여전히 사납게 보였지만. 마냥 사나워 보이기만 하던 네 얼굴이 실은 엄청나게 말랑말랑하게 풀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몇 달 후의 일이야.
2018/11/04 22:24:00 ID : pbxyE1g1BcE
설렘 반, 후회 반의 마음으로 너와 작별하고 돌아가던 도중, 뭔가 심심한 느낌이 들어서 이어폰을 귀에 꽂아 넣었어. 마침 볼빨간사춘기의 '썸 탈거야'가 들려오더라. 어느덧 불어오는 차가운 가을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바로 몇 분 전의 놀라운 만남을 계속해서 되새기면서, 애써 다른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하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았어.
2018/11/04 22:32:54 ID : g46o5e0mpSH
듣고있어
2018/11/04 23:41:59 ID : 60k4Fjy3TSI
까부네ㅡㅡ
2018/11/05 00:43:40 ID : pbxyE1g1BcE
앗 스레주야,! 잠시 어디 좀 다녀오느라 ㅜㅠ 보고 있을 줄은 몰랐어. 무슨 노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고마워 ") 모쪼록, 끝까지 잘 들어줘! ㅋㅋㅋㅋㅋㅌㅋㅋㅋ너무 귀여운걸 그럼, 졸리기 전까지 쓸게
2018/11/05 00:59:50 ID : pbxyE1g1BcE
2.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OST, 가을아침 그리고 응급실 넌 그렇게 내 일상에 들어왔어. 우리는 그렇게 아침이면 일어났냐고, 늦은 밤에는 잘 자라고. 매일 매일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 거야. 짬짬이 시간을 내어 잠깐 만나기도 하고, 통화를 하다 보면 한 두 시간은 훌쩍 가 있고. 그땐 그 시간들이 부담스럽다거나 아깝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어찌나 시간이 무서운지.
2018/11/05 01:14:34 ID : pbxyE1g1BcE
슬프기로 유명한 어떤 일본 로맨스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어. '이때다' 싶어 당장 만날 약속을 잡았어. 가을답지 않게 꽤나 쌀쌀했던 10월 넷째 주 일요일 저녁 여섯시에 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을 거야. 너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 조금이라도 더 청순해 보이고 싶어서 브라운 렌즈를 끼고, 앞머리를 예쁘게 말고, 화장이 번질 때를 대비해서 수정용 화장품도 준비하고, 네가 어떤 옷을 더 좋아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무난한 원피스를 입기로 결정하고, 다시 영화 시간표를 확인하고, 약속 시간 5분 전에 미리 나오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네가 오는 줄 알고 설렌 가슴을 진정시키던 그 모든 시간 동안 너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어.
2018/11/05 01:19:17 ID : pbxyE1g1BcE
어떤 옷을 입었냐고 묻는 내 문자에 아무 말 없이 입고 있던 옷을 즉석에서 찍어 보낸 너를 보고 속으로 얼마나 귀엽다고 느꼈는지 몰라. 물론 귀엽다고 말하면 사나운 표정을 지을 것 같아서 말은 하지 않았지만.
2018/11/05 01:32:02 ID : pbxyE1g1BcE
드디어 너를 만났어. 잘못 잘라 삐죽삐죽한 머리를 가리려고 고민한 건지, 넌 새하얀 야구모자를 쓰고 왔더라. 막상 영화관에서 얼굴을 보자니 괜히 부끄러웠지만, 딱 1분 남짓이었어. 번호표를 뽑고, 영화 티켓을 예매하고, 팝콘을 사는 동안 우리는 쉴 새 없이 조잘거렸어. 아 맞아, 그때 영화 내가 사려고 했었는데. 내가 카드를 내밀기가 무섭게 넌 나를 제지하더니 잽싸게 직원에게 만 원 두 장을 내밀었잖아. 기억 나? 머쓱해진 내가 그럼 팝콘은 내가 사겠다고 자연스레 네 팔을 잡았고. 그거, 네 팔 잡는 거 사실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한 열 번은 돌려 본 거야. 이러면 이상해 보이려나, 이러면 괜찮으려나 만나기 전날 새벽에 말야.
2018/11/05 01:32:33 ID : pbxyE1g1BcE
졸리다보니 엄청 횡설수설이네 이만 자볼게 보고 있는 레스주들도 잘 자!
2018/11/05 10:26:19 ID : g46o5e0mpSH
8이야 듣구있당
2018/11/12 00:26:16 ID : 0785UY2pTXw
듣고있어!

레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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