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9/05/19 01:21:20 ID : Xy1xva2oNvA 0
제목 그대로 오늘 고백받고 고민하다가 거절했어. 허무한데 풀 곳은 없고 그냥 주절거린다고 생각해줘. 친구가 이번 여름에 해외로 적어도 2년은 공부하러 떠난다고 해서, 오랜만에 만났어.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 되는거지... 그래서 최대한 추억을 만들려고 평소엔 안가던 곳도 가보고, 처음으로 방탈출 게임도 해보고, 참 즐거웠어. 마지막으로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폐점시간이 되어서 헤어지려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할 말이 있다는거야. 얘가 무슨 고민이 또 생겼나 걱정돼서 말해보라고 했는데, 걔가 날 좋아한대.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했는데...나랑 사귀고 싶다는거야. 당황해서 처음엔 아무말도 못하고, 카페를 나온 후 공원으로 걸어가면서 어떻게 날 좋아하게됐냐고 물었어. 걔는 힘들 때마다 나한테 고민을 풀곤했는데, 작년엔 대학원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나에게 자주 고민상담을 했어. 그렇게 나에게 더욱더 의지하게되던 중에, 내가 반 년전 쯤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해서 지금도 하고있거든? 그래서 오늘 다시보니 살을 빼고있는 내 모습이 너무 예뻐보였다는거야. 음...너한테 어필하려고 살을 뺀건 아니지만 예뻐보인다니 고맙구나.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야. 나에게 너무 의지하고있다는거지.
2 이름없음 2019/05/19 01:36:54 ID : Xy1xva2oNvA 0
처음 만났을 때도 기억나. 내성적이여서 반에서 조용히 책만 읽으면서 도서부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매일 책을 빌려가던 남자애가 있던거야. 그런데 빌리는 책마다 나와 공통된 취향이었던거지...그걸로 책을 추천해주면서 말문을 조금씩 트고 친해진게 엊그제같은데...벌써 이렇게 되어버렸네. 친구인 내가 걔가 힘들 때 해줄 수있는건 고민을 들어주는 것밖에 없으니까 이것저것 들어주다보니 나에게 의지하게됐나봐. 나와 비슷한 성향이니까 주위에 말도 못하고. 처음엔 도움이 되어서 기뻤는데...시간이 지날수록 연락이 조금 늦으면 "어디 사고났어? 무슨일 있어?" 라고 계속 전화로 울먹이려하고, 못만나는 날이면 "너무 아쉽다 다음엔 언제만날래? 다음은? ?그 다음은???"이라고 말하며 다음 날짜를 잡을 때까지 끝까지 연락오고. 책을 같이 못읽는 날이면 빨리 다음엔 이거 보고싶다라며 책정리하는 바쁜 날에도 매일 찾아오고. 지금 생각해보니 대학교 진학할 때까지 반복된 것같아. 대학교 들어가고나선 물리적으로 멀어지고 생활때문에 바빠지니 덜해졌지만, 그 이후로도 고민때문에 연락오는 패턴은 비슷했어. 그 때까지도 내 위치는 아마 의지할 때 찾기 좋은 사람정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스킨쉽이라던가 좋아하는 티라던가 일절 없었고, 걔도 나 안좋아한다했고...그냥 그렇게 지냈지. 그러니 오늘 갑자기 좋아한다고 말하니 당황스러운거야.
3 이름없음 2019/05/19 01:47:39 ID : Xy1xva2oNvA 0
걔한테는 말하지않았지만, 내가 의지하기 좋은 사람인건 사실인지 널 볼때마다 편안하다고 같은 말로 고백받은 적이 2번 있어. 처음엔 고등학생 때, 두 번째는 대학교 입학하고 나서. 둘 다 적어도 3년 이상은 된 친구였지. 그 당시 둘의 고백을 받아들인 이유로는, 지금관계를 파탄내고싶지않다는 마음과, 애인까지는 아니지만 친구이상으로 좋아하니까였어 . 그들도 똑같이 친구이상으로 날 좋아하고, 편안하게 곁에 있을 수있는 나에게 호감이 가니까 사귀자고 했고.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었지. 결국 그건 호감이 아니라 의존이었을 뿐인걸... 처음엔 소설이나 드라마같은 두근두근한 일은 없었지만 정말 좋았어. 바닷가에 놀러가보고 자전거도 타보고, 벚꽃을 보러 산에도 가보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이 찾는건 고민을 들어줄 나일 뿐 진짜 내가 아니더라.
4 이름없음 2019/05/19 02:05:17 ID : Xy1xva2oNvA 0
나는 3년이상 함께지내면서 걔네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함께 지내면서 다 알고있는데, 그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조차 몰라. 다른 연인들이 한다는 형식적인 커플링, 형식적인 커플아이템, 그런 물질적인 것만 가져오지. 내가 이전에 바닷가에서 함께 주운 조개껍데기가 그 커플링보다 소중해서 지금도 보관해서 가지고있다고하면 웃을까? 내가 문자나 카톡보다 손편지로 주고받는걸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 받았던 편지를 지금가지 갖고있었다고 말했다면 얼마나 웃을까. 어느 시점부터인가, 주위 커플들은 이런걸 하는데 왜 너네는 안해? 그건 네 애인이 애정이 부족한거아니야? 라는 주위의 말을 듣고 날 시험하기 시작하더라. 나와 약속을 잡았는데 누군가와 우연히 만났다는 이유로 연락도 없이 2시간을 기다리게 만든다던가, 내가 시간이 없어서 못만난다고 말하면 다른 남자 만나는거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그랬어!라고 추궁하고, 결국엔 매일매일 죽고싶다ㅠㅠㅠ너무 우울해ㅠㅠㅜ힘들어...나 좀 위로해줘ㅠㅠ 라는 연락만 올뿐. 있던 애정 없던 애정 다 떨어져서 포기하고 헤어지니까 그제서야 "요즘 뭐하고지내?" "난 요즘 이래서~"라는 카톡만 주기적으로 오고. 애정이 떨어지면 더이상 안받아준다는걸 그제야 알았는지..?
5 이름없음 2019/05/19 02:20:21 ID : Xy1xva2oNvA 0
그걸 두 번이나 겪고서야 깨달은거야. 아. 이건 애정도 뭣도 아니고 그냥 의존하고 있을 뿐이구나. 그래서 친구와도 서서히 거리를 두는 중이였는데, 오늘 만나서 똑같은 말로 고백받으니까 너무나 허무해진거야. 그 상황을 반복하고싶지않았어. 그래서 솔직히 말했지. 나는 너의 고민은 들어줄 수있고, 너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만, 너의 마음에는 답할 수없다고. 그랬더니 "지금 내가 너에게 의존하고 있는건 사실이야" "하지만 난 이미 애정을 받지 않을 각오가 되어있어"라고 하더라... 내가 그럴 수없다는걸 알면서도, 서로 의존만 할 뿐인 관계가 되어 고통받는걸 알면서도?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봤자 답은 나오지않았고...역시 난 거절했어. 이런 일방적인 관계는 둘 다 병들테니까
6 이름없음 2019/05/19 02:26:56 ID : Xy1xva2oNvA 0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에 물어봤어. "혹시 내 이름이 뭔지 기억하고는 있어?" ...모르더라. 그래도 7년동안 알고지낸 사이인데, 내 이름을 몰라. 카톡엔 내 본명이 아닌 이니셜로 등록해놔서 그 이니셜만 아는거야. 내 진짜 이름을 몰라...... 결국 그렇게 헤어졌어. 해외에 가더라도 연락하겠다고 하는데 모르겠어...너무 허무해...결국 그 7년이란 무엇이었을까 허무하고 또 허무해...
7 이름없음 2019/05/19 02:35:13 ID : Xy1xva2oNvA 0
만약에 내가 거기서 고백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됐을까? 조금은 덜 비참했을까? 아니, 해외에서 적어도 2년, 아님 그 이상이 될 수있는 세월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언제 연락이 오려나, 오늘은 무슨 고민이 있으려나, 아님 다른 일이라도 있으려나?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겠지. 내 이름조차 모르는 상대를 기다리면서. 그럴바엔 차라리 거절하는게 답이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싶어도 억울하더라. 허무하더라.
8 이름없음 2019/05/19 02:46:46 ID : Xy1xva2oNvA 0
아. 울고나니까 조금 속시원해졌어. 이 스레 읽고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면 지금까지 이 긴 푸념을 읽어줘서 고마워. 이젠 슬슬 자러가야겠어.
9 이름없음 2019/05/19 09:20:07 ID : k60k1eHwpO3 0
그런 사람도 있는거야...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냥 간단한 배려와 호의를 과대해석 해서 고백하는 사람 의외로 많더라...
10 이름없음 2019/05/19 09:23:11 ID : k60k1eHwpO3 0
나도 허무하게 깨진 인연들 있었는데, 그냥 사실 원래는 둘이 안맞던건데 배려하고 호의적으로 대해서 순간적으로 맞아들어간거...라고 이해하려하고 걍 그러려니 하려고 해. 뭐, 우울하고 가라앉는 기분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 살다보면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인연도 만날거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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