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1/04 01:13:54 ID : BwJQpVe7uk5 0
평소에 결혼도 애를 낳는 것도 당사자의 자유라거나 소수자 인권에 관해 자주 얘기했거든. 주변 친인척들이 꽉 막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아빠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오늘 내 배우자가 여자면 어떨 것 같냐고 떠봤어
2 이름없음 2020/01/04 01:14:15 ID : BwJQpVe7uk5 0
그랬더니 그런 사람들 다 살아가는 건 자유지만 자신과 개인적인 친분은 맺기 싫다고 하더라
3 이름없음 2020/01/04 01:16:35 ID : BwJQpVe7uk5 0
차별하는 거냐 물었더니 그냥 인정하지 않는 거라 답했어 종교적인 이유도 있고 그동안 여남이 서로 사랑하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자라와서 평생 이해는 못 할 것 같대
4 이름없음 2020/01/04 01:16:53 ID : BwJQpVe7uk5 0
무슨 소리야 그게 차별이지.
5 이름없음 2020/01/04 01:18:08 ID : BwJQpVe7uk5 0
그렇게 말해도 자기는 절대 인정 안 해 생각 깊고 뚫린 사람은 되고 싶은데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니까 핑계대는 거지 뭐
6 이름없음 2020/01/04 01:18:48 ID : BwJQpVe7uk5 0
그리고 정말 그런 거라면 호적에서 파버릴 거라더라
7 이름없음 2020/01/04 01:20:45 ID : BwJQpVe7uk5 0
거기서 웃고 말았어 큭큭 너무한 거 아냐 말꼬리도 늘이면서. 내 애인이 여자인 걸 들킬까 봐 올라가지도 않는 광대를 붙들고 아빠가 아니 아버지가 담배 피러 나갈 때까지 시덥잖은 농담을 늘어놓곤 손을 숨겼어
8 이름없음 2020/01/04 01:23:03 ID : BwJQpVe7uk5 0
방금 매니큐어를 발라서 공중에서 말려야만 했는데 도저히 손을 위에 둘 수가 없더라 맨스플레인이 심한 사람이었지만 이러나 저러나 좋은 부분이 더 많아서 나는 아버지가 내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이라고 어느정도 믿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손이 떨렸거든
9 이름없음 2020/01/04 01:25:14 ID : BwJQpVe7uk5 0
그 와중에 지문이 묻을까, 찍히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손을 숨겼어 지금도 아주 반짝거리고 예쁘다. 그 사실에 화가 난다 왜 나는 아버지가 나를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불안하기보다 손톱의 안위를 더 고려했는가. 이런 거. 어쩌면 예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10 이름없음 2020/01/04 01:26:58 ID : BwJQpVe7uk5 0
내가 범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도 몇 없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그동안 이끌어냈던지라 호적에서 파버린다. 라는 말을 들으니까 현재 한국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압축해서 내게 꽂아넣은 듯했어
11 이름없음 2020/01/04 01:27:45 ID : BwJQpVe7uk5 0
여지껏 나는 운이 좋았다. 대부분 아버지와 같지. 조심해야겠다.
12 이름없음 2020/01/04 01:27:55 ID : BwJQpVe7uk5 0
근데 왜 내가 조심해야하지
13 이름없음 2020/01/04 01:30:57 ID : BwJQpVe7uk5 0
아버지의 반응을 듣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이건 아무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어. 아무도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듯이. 그래서 말하는 데에도 점점 거리낌이 없어졌고 이대로 누굴 만날 때마다 내가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굳이 애인이라고 바꾸는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싶었어
14 이름없음 2020/01/04 01:34:35 ID : BwJQpVe7uk5 0
근데 아버지의 말이 날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아버지에게도 내게도 실망하는 순간이었어. 나는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소중한 누군가의 한마디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 또 휘둘린다. 앞으로 아버지를 대할 때 오늘의 대화를 지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이럴 거라는 예상을 했어야 했어. 좀 더 단단해지고 나서, 호적이든 뭐든 아버지의 말을 흘려 넘길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나서 떠 봤어야 했어
15 이름없음 2020/01/04 01:35:04 ID : BwJQpVe7uk5 0
그 상태는 언제 올까. 지금으로써는 가늠이 안 된다.
16 이름없음 2020/01/04 01:36:24 ID : BwJQpVe7uk5 0
이래도 아버지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다 말만큼 나를 바로 내다버릴 수 있는 딸로 여기는 것 같지도 않고 나만 숨기면 좋은 부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텐데
17 이름없음 2020/01/04 01:37:35 ID : BwJQpVe7uk5 0
자주 얘기하는 그 애가, 친구가 아니라 애인이라고 말하고 싶어 정말 몹시 너무너무 말하고 싶어
18 이름없음 2020/01/04 01:38:55 ID : BwJQpVe7uk5 0
우리는 그런 비밀을 늘어놓는 사이가 아니잖아 아버지. (갈수록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라기엔 거창하고 편지와 엽서 사이 그쯤 되는 무언가를 쓰는 것 같은 기분이다)
19 이름없음 2020/01/04 01:41:17 ID : BwJQpVe7uk5 0
쓰다보니 머리가 차가워진다. 분명 아까는 울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스위치를 끄고 켜듯 태세를 전환하는 나를 보면서 가끔 꺼림칙해. 나는 얼마나 삭혀왔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나보다 남 슬픈 일에 더 눈물을 잘 보이나 싶고,
20 이름없음 2020/01/04 01:41:43 ID : BwJQpVe7uk5 0
독립하고 싶다.
21 이름없음 2020/01/04 01:47:11 ID : BwJQpVe7uk5 0
다들 주변에서 이런 얘기 들으면 어떻게 대처해? 난 여기다가 쓰면서 생각 정리한 건데 아직도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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