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4/17 08:27:08 ID : 44Y3xzPclg4 0
전날 밤 술을 마셨다. 오늘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달렸는데, 애석하게도 아침은 자비없이 나를 맞는다. 창 밖을 보니 희끄무리한게 꼭 비가 올 것 같다. '이런 날이면 네가 우산을 챙겨줬는데.'같은 생각을 하며 나갈 준비를 서두른다. 오늘은 아침을 먹을 시간은 없을 것 같다. "다녀올게." 언제부턴가 버릇이 된 말을, 아무도 없는 집안에 남기고 집을 나선다. 벌써 4월도 중순을 지나고 있지만 아직 아침 공기는 쌀쌀하다. 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에 움츠리며 아울렛에서 산 5만원짜리 싸구려 코트의 옷깃을 여맸다. 아침은 고요하지만 바삐 흘러간다. 페인트가 벗겨진 정류장의 기둥 앞에는 이미 몇 번이고 얼굴을 본 사람들이 여럿 모여있다. 물론, 인사는 하지 않는다. 덜컹거리는 버스의 뒷좌석에 앉아 빠르게 흘러가는 창가를 멍하니 바라본다. 아침마다 항상 보는 풍경이지만 이상하게 질리지가 않는다. 낡은 버스의 창문을, 나는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보듯 계속 쳐다본다. 함께 걸었던 공원, 같이 갔던 음식점, 좋아하던 카페들이 휙휙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그녀를 만난 날은 오늘과 비슷했다. 나는 아침을 먹지 못했고, 하늘은 흐렸다. 그리고 일찍 집을 나섰다. 곧 정류장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여전히 인사는 나누지 않는, 얼굴만 아는 무리가 있었다. 이런 내릴 때가 되었나 보다. 다들 좋은 하루 보내고 잘 출근해. 코로나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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