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O2mpPdBbzQk 2020/06/03 08:11:43 ID : JTRwnvcspap 0
제곧내. 난 고딩이고 현재 나랑 10살 차이나는 언니를 좋아하고 있어. 학생들이 선생님 가볍게 덕질하고 좋아하듯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진짜 엄청 진지하게 짝사랑 중이야...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좋아해본적이 없었을 정도로. 물론 그 언니는 나를 연애적인 의미로 좋아하지 않고 좋아해서도 안되는 위치지. 그렇기 때문에 조금씩 포기하려고 노력중인데 그 과정이나...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을 좀 정리할까 싶어서.
2 ◆O2mpPdBbzQk 2020/06/03 08:13:18 ID : JTRwnvcspap 0
자세하게 말하면 인증감이 되니 조금 두루뭉술하게 말해야지. 언니는 그냥 A 언니라고 해둘게. 언니랑은 가족끼리 좀 건너건너 연이 닿아 알게 된 경우였어. 가족이었다는 건 아니고, 가족의 지인분들의... 여차저차해서 알게 됐고, 가족 일...? 이라할까 그런 일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조금 친해졌어.
3 ◆O2mpPdBbzQk 2020/06/03 08:16:00 ID : JTRwnvcspap 0
처음에는 호칭이 문제가 됐어. 언니는 나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면 됐지만 나는 언니를 뭐라 불러야 할지 감이 안잡혔거든. A씨? 라고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모 소리 들을 나이도 아니잖아? 그래서 난 처음부터 언니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언니가 그걸 싫어했었어. "이 나이 먹고 10살이나 어린 고등학생한테 언니 소리 들으면... 양심이 좀 아파..." 그렇게 말하면서 쓰게 웃길래 언니 아직 충분히 젊다고, 언니 소리 들어도 손색 없다고, 그리고 언니라고 안 하면 따로 부를 호칭도 없다고 하면서 거의 반강제로 호칭을 밀어붙였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난 언니말고 다른 호칭이 더 어색할 것 같았으니까.
4 ◆O2mpPdBbzQk 2020/06/03 08:18:27 ID : JTRwnvcspap 0
언니는 키도 크고, 피부고 하얗고, 예쁘고, 번듯한 직업도 있고, 학벌 좋고, 착하고, 아무튼 내가 보기엔 완벽한 사람이었어. 처음에는 좋아하는 것 까지는 아니고... 그냥 미성년자들이 어른 보면 느끼는 그런 동경이었어. 뭔지 말할수는 없지만 언니는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돈도 꽤 잘 벌고 엄청 지적이었거든. 물론 단순히 내가 어려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5 ◆O2mpPdBbzQk 2020/06/03 08:20:37 ID : JTRwnvcspap 0
왜 다들 이런 상상 많이 해보잖아? 난 크면 어떻게 살거다~같은 ㅋㅋㅋ 나도 그런 이상이 있었고 A 언니는 나의 그런 이상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만 같은 사람이었어. 그래서 더더욱 언니에게 관심이 갔고 호감이 갔어. 아, 물론 이때는 그냥 단순히 어린애가 언니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고 올려다보는? 그런 정도였어. 그래서 난 언니가 날 귀찮아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자주 연락도 하려고 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길때마다 달려갔어. 언니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내 꿈과 목표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희망이 생겼거든.
6 ◆O2mpPdBbzQk 2020/06/03 08:22:49 ID : JTRwnvcspap 0
언니는 내가 어려서 그랬는지 날 엄청 귀여워했어. 처음엔 안 그랬는데 조금 친해지니까 막 머리 쓰다듬고, 가끔 볼 찌르고 늘리는 장난도 하고 하면서 귀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같이 밥 먹고 있는데 내가 밥 먹는 걸 보길래 왜 그러느냐 물으면, "레주야. 너 햄스터 같아서 귀여워." 대화하다가 내가 의욕적으로 신나서 얘기하면 갑자기 머리 쓰다듬으면서, "어른스러운 줄 알았는데 역시 아직 애네. 귀엽다." 연락하다가 이모티콘 쓰면 갑자기 웃으면서, "그 이모티콘 너랑 닮았다. 귀여워."
7 ◆O2mpPdBbzQk 2020/06/03 08:24:40 ID : JTRwnvcspap 0
언니는 진짜 틈만 나면 나한테 귀엽다고 했어. 그런 칭찬을 아예 안 들어본 건 아니었지만 A 언니가 하듯이 시도때도 없이 그러는 건 들어보질 못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좋기도 했어. 귀엽다는 칭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언니가 예뻐서? 그도 아니면 언니가 내 목표와도 같은 사람이어서? 이유나 시기는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보니 난 이미 언니한테 동경을 넘어선 마음을 품고 있었어. 그냥 서서히 좋아졌는데, 어느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건 단순한 동경 같은 게 아닌 것 같다고.
8 ◆O2mpPdBbzQk 2020/06/03 08:26:26 ID : JTRwnvcspap 0
언니를 좋아한다고 자각하게 된 뒤로는 매일이 행복함과 동시에 지옥이었어. 언니랑 연락하고, 만나고, 언니를 생각만해도 기분이 너무 좋아지는데, 그와 동시에 언니의 나이를 떠올리면 갑자기 침울해졌거든. 난 언니랑 사귈 수 있으면 정말 너무너무 좋을 것 같다고 느꼈지만 머리로는 알아. 그래선 어차피 행복할 수 없다는 걸. 언니는 날 연애적인 의미로 좋아하지 않고 무엇보다 그러해서도 안된다는 걸 머리로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괴로웠어. 사실 지금도 그래.
9 ◆O2mpPdBbzQk 2020/06/03 08:29:01 ID : JTRwnvcspap 0
언니는 틈만나면 나한테 귀엽다고 했는데, 그 말이 설레임.. 같은 감정에서 비롯된 게 아닌 정말 어린아이나 소동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잘 느껴졌어. 왜냐면 내가 길가다 귀여운 강아지를 봤을 때 아마 언니가 날 볼때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 같거든.
10 ◆O2mpPdBbzQk 2020/06/03 08:30:05 ID : JTRwnvcspap 0
하루는 A 언니가 내게 말했어. 본인이 외동이라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가정사는 더더욱 말해주지 않는 사람이라 조금 놀랐어. 그 날 A 언니는 말했어. 어릴때는 동생을 가지고 싶었다고. 그리고 A 언니는 또 말했어. 내가 동생 같다고. 언니는 그 말을 들었을때의 내 기분을 알까.
11 ◆O2mpPdBbzQk 2020/06/03 08:32:17 ID : JTRwnvcspap 0
A 언니가 말해줬어. 본인은 엄한 집에서 자랐대. 많이 맞았대. 대들기라도 하면 그날이 제삿날이라고 할 정도였어. 언니가 그랬어. 어릴때는 혼자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게 무서워서 형제나 자매를 원했다고. 그런데 커서 보니까 그런 시간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고 나 혼자만 견디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그랬어. 그리고 그 시간을 넘어선 지금은 마치 내가 동생 같이 느껴진다 그랬어. 어릴때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아서 기쁘다고 그랬어.
12 ◆O2mpPdBbzQk 2020/06/03 08:33:48 ID : JTRwnvcspap 0
이게 조금 친해졌을 때 들은 얘기였어. 좀 더 지나서는 뭐랬는지 알아? ㅋㅋㅋㅋ 내가 언니의 자식 같이 느껴진대. 말 잘 안 듣는 웬수새끼가 하나 생긴 것 같다고 웃으면서 말했어. 그래서 내가 말했어. 언니 아직 서른살도 안되지 않았느냐고. 그랬더니 A 언니가 말했어. 그만큼 내가 어려보이는 거라고. 가슴이 아팠어.
13 ◆O2mpPdBbzQk 2020/06/03 08:36:03 ID : JTRwnvcspap 0
나는 늘 언니의 말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반항했어. 늘 툴툴거렸어. "나도 이제 고등학생인데. 애 아니야." 내가 아무리 투정을 부려도 언니는 그것마저 귀엽다는 듯이 웃었어. "고등학생이면 애지. 레주도 내 나이 돼 봐. 20대 초반도 막 애기처럼 보여."
14 ◆O2mpPdBbzQk 2020/06/03 08:36:37 ID : JTRwnvcspap 0
한국사람들은 1인칭을 자주 쓰잖아? 언니가~ 오빠가~ 하는 식으로. 언니는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어. 맨 처음 만났을 때 언니라는 호칭이 양심에 찔린다더니, 아직도 그렇게 느끼나 봐.
15 ◆O2mpPdBbzQk 2020/06/03 08:39:13 ID : JTRwnvcspap 0
A 언니가 자꾸 나보고 고등학생이면 아직 애라길래 내가 그랬어. 나도 이제 몇 년만 있으면 성인이라고. 얼마 안 남았다고. 그랬더니 언니가 말했어. 내가 성인이 되면, 언니는 서른살이 넘어버린다고 말이야. "난 그때쯤이면 서른도 넘어~ 언니한테 넌 평생 어린애야." 그제야 눈치챘어. 내가 성인이 된다 해도 언니와의 나이차이가 줄어드는 건 아니라고. 아니, 눈치챘다는 말은 조금 어울리지 않으려나? 알고 있었지만 열심히 부정해 온 사실을 직면했어. 그래도. 아무리 10살 차이가 적은 차이는 아니라고 해도, 너무 애기 보듯이 보는 거 같아서 조금 서글퍼졌어. 그야 언니는 날 귀엽고 어린 동생 정도로만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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