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10/01 05:50:40 ID : 8koK3TRxyNB 0
안녕하세요, 처음 글 올려봅니다. 저는...글쎄요. 스스로 확실한 마음을 지닌 건 아니지만, 제가 좋아한 친구가 여자라는 건 확실해요. 혼란스러웠지만 이 감정은 도저히 친구를 위해 생길 수 있는 호감이 아니더라구요. 그 친구를 만난 건 2018년의 봄이었습니다. 여고에 입학해서 친구를 만들고, 그러다가 제 중학교 친구 반을 놀러가 이 아이를 보게 된 거예요. 처음엔 솔직히 호감은 아니었어요. 초면인데 너무 무뚝뚝하고 까칠해서 예의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같은 취향을 가졌다는-성적 취향이 아닙니다- 것을 알게 되어 그 것을 계기로 굉장히 친해졌어요. 그 아이는 제가 깊은 얘기를 하는, 유일한 상대였어요. 겉으로는 밝았지만, 속은 문드러지고 썩어있던 저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그 애밖에 없었을 거라고 믿어요. 그러다가 한 번 이 아이와 싸운 적이 있어요. 계기는 하잘것 없었어요. 아니, 적어도 그 애에겐 하잘 것 없었겠죠. 그 아이가 저와 공유하는 취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다른 친구들에 대한 얘기를 하던 그 아이는, 제가 "그래도 그 아이들은 그게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라며 말을 꺼내자마자 휙 노려보며 말하는 거였어요. "너도 그 애들이랑 다를 바 없어." 가슴이 무너지는 거 같았어요. 우리가 지금껏 보냈던, 소중한 시간들이 점심 시간에나 어울려 밥 같이 먹는 애들과 보낸 시간과 마찬가지의 것이었다니. 소중하게 품고 있던 시간이 짓밟히는 게 끔찍해서 저는 저도 모르게 그만하자고 중얼거리고 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서로 화해했어요. 그 아이는 울며 사과를 했고, 저는 받아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애는 울기만 했고 저는 차분히 제가 왜 속상했는지를 설명해주었어요. 그리고 얼렁뚱땅 끝났습니다. 그 날 이후부터 그 애는 차가워졌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다정다감하게,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친구처럼 대해주면서도, 제가 말을 걸면 모두 단답으로 응수하기 일쑤였습니다. 응, 아니, 또는 눈길 한 번. 그걸 견딜 수 없던 저는 그 애에게 온갖 다정한 말들, 행동들을 했어요. 부끄럽지만 여보라고 부른 적도 있습니다. 괴로웠습니다. 인격적 모독감은 호감과는 별개였습니다. 저는 마치 개 목줄에 스스로의 목을 걸어 그 애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기분이었거든요. 어째서 그렇게 차갑게 하냐고 물은 날에는, "난 원래 친해질 수록 좀 무심하게 굴어." 란 대답을 듣고 힘없이 기뻐했습니다. 내게 너무도 차가우니, 그럼 나를 그만큼 좋아한다는 뜻이겠구나, 라고 스스로 위안했거든요. 그렇게 위태로운 짝사랑, 아니 '친구관계'는 한 2년동안 이어졌습니다. 중간에 저는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2주 전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저에게 차가워야 했느냐고요. 얼굴을 보지 않게 되니 부담감이 없어진 건지, 그 아이는 4일 전 덜컥 답을 주었습니다. 그 내용이 얼마나 가관이던지요. '친해질 수록 무심하게 군다는 건 거짓말이었다','그래도 난 널 위했다', '난 너에게 진심이었다', '날 바라보는 네 눈빛을 견딜 수 없었다'... 하나같이 정말 더럽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말하기를, 이렇게 차갑고 못되게 굴면서도 늘 자책감이 들 정도로 저를 아꼈다는 군요. 표현하진 않았지만 늘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친구였다구요. 표현하지 않으면 도대체 뭘 알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추하고 싶지 않아 끝까지 미안하다, 고맙다 라는 말로 그 아이를 떠나보냈습니다. 잔뜩 헤어진 걸레가 된 듯한 기분입니다.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것은 도중에 멈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슬프고 화가 나고,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혼란한 마음을요. 그렇게 저는 2년동안의 짝사랑, 호모포빅인 친구를 좋아한 마음을 단단히 접어야 했습니다. 첫사랑은 절대 안 이뤄진다더니 그 말이 맞나봐요.
2 이름없음 2020/10/01 05:52:08 ID : 8koK3TRxyNB 0
+2시간동안의 차가움을 2년의 차가움으로 돌려받았습니다. 제 짝녀는 어디가서 되로 받고 말로 줄 사람인 것같아요.
3 이름없음 2020/10/01 18:54:22 ID : k5O2lfQlbfX 0
수고했어요
4 이름없음 2020/10/03 00:56:48 ID : cpWpgo7xWo6 0
마음고생 많았어 스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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