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1/09/30 22:50:48 ID : vxzSLeZdyMq 3
난 올해 스물이고 지방에서 국립대 치대 다니고 있어 중1쯤부터 레즈비언이라는 걸 자각했었고.. 고2때 여자친구 사귀다가 충동적으로 부모님께 커밍아웃 하고 집에서 온갖 폭언 듣고 맞으면서 했던 생각은 공부 열심히 해서 얼른 독립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어차피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네 부모님께 아빠가 찾아가서 다 말해버렸고 내가 걔한테 미안하다고 싹싹빌고 헤어졌거든 항상 아무런 이유가 없어도 우리의 자식이라는 사실만으로 널 사랑한다고 말하던 부모였는데 그 모든 시간이 무의미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고작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였다는 게 웃기고 씁쓸하더라 그 시기 이후로 나도 부모님에게서 마음을 끊어내기 시작했던 것 같아 암묵적으로 집에서 연애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았고, 그 주제만 건들지 않은 채 어쩌다 보니 고3이 끝났고 수능이 끝났더라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부모에게서만큼은 사랑받지 못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뭐든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 열심히 노력했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최상은 아니더라도 만족할 만한 좋은 결과로 이어지더라고 내가 다니게 된 대학이 이모네 집이랑 가까워서 수능 끝난 뒤로부터 한동안 이모네에서 눌러 살았어 엄마의 언니네 가족인데, 내겐 제2의 부모님이라 하고 싶을 정도로 날 많이 아껴주셨거든 이모네가 나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살았기에 한 4년 정도는 실제로 나를 키워 주시기도 했고... 운전면허도 따고 운동도 다니고 사촌동생들 공부도 알려주고 석 달 정도 되게 행복하게 보냈어 첫 커밍아웃이 아직도 너무 큰 상처로 남아 있어서 많이 고민했지만 이모에게만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기지 않고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같이 살면서도 여러 번 떠본(?) 것 같아 도서관에서 캐롤 책 빌려와서 이모 이 책 재밌대요, 하기도 했고 우리 그때 미국에서 퀴어퍼레이드 기억나냐고, 그때 구슬목걸이 ㅇㅇ이(사촌)랑 나랑 좋아했었잖아요, 그랬어 부정적이지 않은 반응이라 더 기대하게 되기도 했고... 그러다가 1월 중순쯤 자러 가기 몇 시간 전에 소파에서 빨래를 개고 있다가 이모에게 물었어 이모, 이모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 해도 나를 사랑해줄 거예요? 했더니 당연히 그렇다고 하시더라고 여기까지야 엄마아빠에게 커밍아웃을 할 때와 같은 레퍼토리였으니 별 생각 없었고... 그리고 바로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해 나 꽤 오랫동안 여자를 좋아해 왔다, 이모는 상상도 못했을 것 같은데 당황스럽고 놀랄 거 안다, 이런 나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이해하라는 강요가 아니다, 내가 봐온 이모라면 내가 어떤 성별을 사랑하든 나를 나 자체로 봐줄 거라 믿었기에 이런 말 하는 거지만, 나를 직접 낳고 이모보다 오랜 시간동안 길러 온 내 부모님도 이런 나를 이해해 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모가 나를 내쫓아도 받아들이겠다, 엄마아빠는 내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고 하지만 내 자신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앞으로도 이런 사람일 것이라는 것도 안다, 나도 이모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는 거니까 이모도 나에게 솔직해줬으면 좋겠다... 대충 그런 말들을 담담히 풀었어 아무 말 없이 빨래만 개시더라고... 이모에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생각하는데,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다가는 내가 조금 힘들 것 같다, 오늘은 좀 일찍 먼저 자러 들어갈테니까 이모도 많이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만약 이런 나라도 예전과 같이 대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다면 내일 아침에 우리 미국에서 많이 해 먹었던 떡국을 먹고 싶다, 만약에 다른 메뉴가 올려져 있다면 이모의 결정을 존중하겠다... 그러고 자러 갔었어 누워서 많은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어 괜히 말했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이렇게라도 말하니 후련하다는 마음도, 내가 거의 유일하게 존경하는 어른에게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는 마음도 있었어 그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부엌으로 갔는데 식탁에 육개장이랑 쌀밥이 네 그릇씩 있는 거 있지 심장이 턱 하는 기분이었지만 묵묵히 수저 챙기고 있는데 이모가 날 부르시더라고 솔직히 기대 안했다 하면 거짓말인 거잖아... 눈물 떨어지려는거 참고 이모 봤는데 이모가 너 좋아하는 떡국 해주고 싶어서 6시에 나가서 이 근처 떡집 다섯 군데 정도 돌았는데 다 7시 지나서 문을 연다고 한다, 괜찮다면 ㅇㅇ이 학교 가고 나서 점심으로 같이 해 먹자, 그래도 될까? 하시는데 진짜 주체 못하고 울음이 터졌어....ㅜㅜㅜ 이모도 같이 울면서 나 안아주시고 네가 어떻든 널 사랑한다고... 내 언니가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대신 사과한다고.. 좋은 사람 만나서 이모한테 데려오면 너랑 여자친구랑 밥 맛있는거 사준다고... 얘기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러셔서 그냥 펑펑 울었어....ㅋㅋㅋㅋㅋㅋㅋㅜㅜㅜㅜ 사촌 씻고 나와서 어리둥절해서 육개장 먹고,, 그날 떡국 끓이면서 고2때 얘기, 짝사랑 얘기, 다 털어놓고 그냥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 6개월 좀 넘게 만난 여자친구랑 이모 이모부(얼떨결에 알게 되심...ㅋㅋㅋ큐ㅜㅠ 근데 긍정적인 반응이셨음 대신 여자친구가 나 울리면 가만안둔대)랑 넷이서 이번 주 주말에 갈비 뜯기로 했는데 문득 작년 일이 생각나서 써봤어 꽤나 긴 글이었는데 다 읽어줬다면 고마워 가장 믿을 수 있다 생각했던 부모에게도 정체성을 부정당한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처럼 이 세상 어딘가에는 꼭 레더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노트북 앞에 앉아봤어 그러니까... 결론이 없는 것 같지만 모두들 행복하자...!! 입시 거치는 레더들은 특히나 더 좋은 결과 있길 바라!!!
2 이름없음 2021/09/30 23:48:42 ID : MrwNtjvDvyH 0
야아ㅠㅠ너무 좋으신 분들이다ㅜㅜ마음이 따뜻해지네
3 이름없음 2021/10/01 00:02:30 ID : nyIHvdu6ZfR 0
마음 따듯해져 ㅠㅠ
4 이름없음 2021/10/01 01:05:16 ID : bhhuq7y1zUY 0
와 읽다가 눈물 날 뻔 했어..이제 좋은 사람들이랑 꽃길만 걸어!
5 이름없음 2021/10/01 02:36:53 ID : 3vjyZjwJU5f 0
정말 좋으신 분들이다 ㅠㅠ 커밍아웃한 너의 용기가 대단해 행복하게 잘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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