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2/19 05:30:18 ID : RyNtio4Y2k3 0
1.누나와 지방 여행을 간 적이 있었어. 쇼핑 잘 했고, 볼거리 잘 봤고, 먹을 것도 나름 만족하면서 돌아다녔어. 밤까지 신나게 놀다가 예약해둔 호텔에 갔어. 아쉬운 마음에 핸드폰을 붙잡았지만 금세 잠에 빠져들었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옆 침대에 누워 있는 누나가 자꾸 등을 툭툭 건드렸어. 잠에서 깬 나는 갖은 불평을 읊조리며 다시 눈을 감았지.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나가 또 등을 건드렸어. 그리고는 '야 뭐하는데.'하고 묻는 거야. 적잖게 놀라면서 깨버린 나는 대충 손만 휘젓다가 다시 잠에 들었어. 그후로는 깨우지 않았나 봐. 여행을 다너온지 일주일쯤 되던 때였어. 누나와 집에 가던 중 여행 얘기가 나와서. 서로 후기를 하나씩 뱉다가 호텔 얘기가 나왔어. 누나가 말했어. 잠을 왜 그렇게 자냐더라. 태아처럼 웅크려 잔 것 때문에 그런가 싶었던 나는 그냥 버릇이라 말했어. 그런데 알고보니 처음엔 내가 상체만 일으킨 채 고개를 끄덕이며 자고 있었대. 그래서 무서움을 느낀 누나가 등을 툭툭 건드리며 깨웠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잠에서 깼다는데, 내가 침대 옆면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꿇은 채 입을 벌리면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대. 나를 정면으로 마주친 누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웠던 거고. 나는 그제서야 누나가 나를 두 번씩이나 깨운 이유를 알 수 있었어. 하지만 두 번째에는 등 대신 어깨를 두드렸댔는데, 그렇다면 내가 왜 두 번째에도 등을 두드린 것에 놀란 건지는 아직도 의문이야.
2 이름없음 2020/02/19 05:47:43 ID : RyNtio4Y2k3 0
2.이상한 꿈을 꿨어. 시멘트를 바른 듯 하얀 바닥뿐인 평지 위에 서 있었고 시야의 끝은 보이지 않았어. 평소 자각몽을 자주 꾸지만 루시드드림처럼 꿈세계를 바꿀 능력은 없었던 나는 뭐 이런 꿈을 꾸냐며 스스로를 꾸짖으며 돌아다녔어. 어이없게 돌아만 다니다가 꿈에서 깼어. 문제는 다음날 들른 편의점에서 내 꿈을 사겠다는 노인이 나타났다는 거지. 어제의 꿈을 사겠다며 돈 5만 원을 건네는데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 내가 전날 꿈을 꿨는지 어떻게 알고, 그 꿈이 뭐일 줄 알고 무작정 사겠다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 미신 따위를 믿는 노망난 할아범 같았지만 꽁돈이야 받아서 나쁠 게 없었지. 대신 받을 때 재차 확인 질문을 대여섯 번은 했어. 혹시나 꿈이 진짜 팔렸나 싶었지만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꿈을 꿨어. 그것도 건물 하나 우뚝 솟아 있는 것 말고는 똑같은 내용의 꿈이었지. 다만 유럽풍 건물이 떡하니 있는 것에 신기해하며 다가가서 외부 디자인 같은 걸 구경하다가 꿈에서 깼어. 그 다음날에도 노인은 또 나타났어. 이번엔 버스 정류장. 꿈 입장권을 판매가의 절반가격에 팔겠대. 그러니까 본인이 5만 원 주고 산 내 꿈을 다시 2만 5천 원에 팔겠다는 거지. 웬 돌팔인가 했지만 왠지 이상했어. 입장권이라니. 어제 같은 꿈을 잘만 꿨는데 입장권 같은 게 무슨 같잖은 소리겠어. 노망난 할아범으로 확신하고 대충 둘러대며 자리를 빠져나왔어. 일주일이 지났어. 다시 꿈을 꾼 날이었지. 이번엔 아예 내용이 달라 보였어. 초원의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눈앞에는 커다란 저택과 대문이 있었지. 뒤로는 롤로코스터 가드레일이나 바이킹 등 놀이동산의 조망이 보였어. 난 직감적으로 이 꿈이 전의 꿈과 동일한 장소라는 걸 알아챘지.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고, 저택에 입장하기 위해 대문을 열려던 순간 문고리에 걸려 있는 펫말의 문구가 보였어. 이곳은 후문입니다. 입장객 외 출입금지 이후로는 그 꿈이 나타난 적은 없어. 지갑에 항상 3만 원을 챙겨두고 외출을 할 뿐이야.
3 이름없음 2020/02/19 05:57:29 ID : RyNtio4Y2k3 0
3.리트리버를 키우고 있어. 천사견으로 소문난 견종이지. 어릴 땐 비글과 다를 바 없다지만 난 폐공장에 방치되어 있던 노견을 데리고 온 거라 점잖은 일상이 대부분이었지. 어느날 리트리버가 TV 구경을 하다 말고 나를 보더니 미친 듯이 짖기 시작하는 거야. 혼낼 엄두도 안 나고 다가갈 엄두도 안 나게끔 아주 사납게 말이야. 순간 개는 귀신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어. 집에 혼자 있던 터라 무서웠지만 용기를 내서 옆으로 빗겨섰어. 그러자 리트리버가 짖음을 멈췄어. 고개도 나를 따라오고 있었지. 꼬리도 슬슬 살랑살랑 흔드려는 게 보였어. 안심한 나는 리트리버를 쓰다듬으려고 가까이 가려 했지만 리트리버는 나를 지나치고 내가 있던 곳으로 직진했어. 그러더니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천장 쪽을 바라보고 헥헥거렸어.
4 이름없음 2020/02/19 06:24:54 ID : RyNtio4Y2k3 0
4.무당 지인이 있어. 젊은 여자인데 사실상 단골손님이 나뿐인 초수라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도 몇 개 주워들을 수 있었어. 무당에게 신점의 원리 같은 걸 묻던 중에 질문을 바꿨어. 손님으로 오는 사람이 아이를 가질 팔자인지 아닌지도 다 보이냐며 물었지. 무당은 자신은 감으로 느끼는 편이지만 대신 낙태아의 혼령을 뚜렷이 볼 수 있댔어. 최근 낙태 경험이 있는 출산모가 점을 보러 입장할 때면 대부분이 배에 낙태아를 주렁주렁 달은 채로 온대. 낙태 경험이 여러 번인 산모의 경우엔 임신기간 중 더 많은 공을 들인 아이일수록 배에 더 철썩 달라붙어 있대. 어느날 무당이 초췌한 모습을 한 중년 여자를 손님으로 받은 적이 있었대. 그 여자도 낙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낙태아가 배는 기본이고 다리 두 짝에도 한 명씩 매달려 있더래. 낙태 경험이 최소 3번은 된단 소리였지. 무당은 그 여자가 앉는 순간 신기가 극대화되면서 느껴졌대. 이 여자는 내보내야 한다고. 자신의 신이 얼른 안 쫓아내고 뭐하냐며 호통치는 듯했대. 어쩔 수 없이 무당은 여자를 보냈고, 여자는 별 말 없이 일어서서 뒤도는데, 양팔이 잘린 아이가 여자의 목에 거꾸로 매달린 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웃고 있었대. 양갈래 머리를 한 다섯 살 정도의 여자아이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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