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4/18 04:54:32 ID : hvyNBusqkld 0
짝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조금은 무뚝뚝해도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몇십번의 고민 끝에 고백하기로 마음 먹고 학교 뒷뜰로 그를 불러 냈을 때, 내 심장은 이미 미친듯이 뛰었다. 하교 시간이 지난 조용한 학교 뒷뜰로 미친듯이 뛰는 심장을 다잡고 가는 순간, 내 귀에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한번도 듣지 못한 사랑이 가득 담긴 달콤한 목소리였다. 설마, 여자친구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심장이 더욱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 애인은 없다고 들었는데. 모퉁이에 숨어 그를 살짝 훔쳐봤다. 그는 학교에 유명한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아 처음보는 표정을 하고 고양이를 부르고 있었다. 애인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그의 의외의 모습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무조건 잘 될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내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여전히 고양이 앞에 앉아 말을 걸고 있는 그의 뒤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고양이 좋아해?" 깜짝 놀랐는지 그는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고양이도 놀랐는지 풀숲으로 사라졌다. 건욱을 다시 바라보자 그의 얼굴에 약간의 절망감이 드러나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불쾌함도. "안 좋아해." "그래?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 걸고 있었잖아. 함부로 만지려 들지도 않고." 내 말이 그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는지 그의 미간이 한껏 좁아졌다. 한숨을 깊게 쉬며 머를 헤집는 그는 매우 난감해 보였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는게 매우 불안한 것 같았다.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아줘." "왜?" "알리고싶지 않으니까." 왜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려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그의 부탁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믿을 수 없었는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왜 부른 거야?" "아, 그게." 이 곳으로 부른 이유를 묻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묻어 있었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했다. 고백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큰 소리를 내는 심장을 진정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마름 침을 삼키고 겨우 입을 열었다. "좋아해." "…" "이 말 하고 싶어서 불렀어." "그래서?" "어?"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아, 너만 괜찮으면 사귀고 싶어." 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걸 나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점점 냉랭해지는 것도. 조심스레 그를 올려다보자 그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나는 생각했다. 차였구나.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거절하면 아까 일 말하고 다닐 거야?" "아니. 알리고 싶지 않다며." "그 말을 어떻게 믿어?" "어?" "내가 거절하면 나한테 악의를 품지 않을 거라고, 악의적으로 소문을 내지 않을 거라고 내가 어떻게 믿냐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그가 작게 비소를 흘렸다. "그래. 사귀자. 대신, 아무한테도 말 하지마." "무슨 뜻이야?" "입막음 값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귀어주겠다고." 이번에는 황당함 때문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침묵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그가 먼저 자리를 떴다.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좋게 생각하려 했다. 들키기 싫은 모습을 들켜 당황스러워서 그런 거라고. 조만간 나의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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