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서른 하나. 아마 스레더들 중에선 나이가 상당히 많은 축에 속할 것 같다.(그래서 평소엔 눈팅만 함) 그래도 여기에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마음 속에 있는 무수한 말과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하고 싶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선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하는 이상한 연애라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우선 나에 대해 말해보자면, 나는 페미니스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교차주의 페미니스트. 나라는 인간은 여자, 4년제 대학 졸업자, 비장애인 등의 정체성이 '교차되어' 만들어진 인간이고 이런 나의 정체성에 기반하여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함으로써 페미니즘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무조건 남자를 혐오하고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그러면 이 세상을 살아가지도 못한다... 물론 그렇지만 간혹 정말 이런 사람과 같은 나라에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하고 참담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게 세상사더라....... 왜 내가 페미니스트인걸 굳이 밝히냐면, 나는 열다섯 살부터 비혼을 다짐하던 본투비 비혼주의자 페미니스트였기 때문이다...... 아마 열다섯 살인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오렌지주스를 주르륵 흘리는 아저씨처럼 놀란 얼굴로 날 볼 게 틀림없다.

열다섯 살의 나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고 어이없게도,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줄 아는 여자애였다. 사실 어느 정도 불쌍한 애인 건 맞았다. 그 당시의 내 기준으로는 몇 년 전인 초등학생 때 따돌림을 당했고, 다니던 학원에서 남자아이들에게 교묘하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건 가족. 특히 외할머니가 나를 정말 싫어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게된 해였다.

외할머니는 내가 유치원을 다닐 적부터(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시절이 그 시기다) 나를 구박하셨다. 여자애가 식탐이 너무 많다는 둥, 살이 쪘다는 둥, 밥상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구박이 날아왔다. 아니 여덟,아홉 살 꼬마애가 살이 쪘으면 얼마나 쪘겠는가. 하지만 외할머니는 종종 한창 잘 먹어야 될 나이의 막내 외손녀의 입에 들어가는 쌀 한 톨도 아깝다는 듯 구셨다. 나는 그게 내심 정말 억울하고 서러웠다. 외할머니는 사촌들과 내 오빠는 놔두고 나한테만 그러셨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너무 서러워서 엄마한테 울면서 투정도 부렸다.

근데 그런 대접도 계속 받다보니 익숙해졌다. 중학생 즈음엔 외할머니의 구박이나 잔소리도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열다섯 살 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엄마의 발목을 잡아 주저앉힌 딸이었단 걸 알게 되었다.

내 엄마는 꿈도 많고 야심도 많은 여자였다. 외할머니의 옷가게를 물려받아 부산에서 가장 큰 옷가게로 만들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 이모들 말을 들어봤을 땐 장사수완도 꽤 좋았던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불량배들에게 안 좋은 일을 당할 뻔 했었고, 그걸 지나가던 내 아빠가 막아주었다. 그 사실을 안 외할머니는 마침 혼기가 찼던 엄마를 냉큼 아빠와 결혼시켰다. 내 엄마는 얼굴 본 적도 한 번 밖에 없는, 그런 일을 당하기 전까진 존재조차도 몰랐던,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난 대체 외할머니가 무슨 생각으로, 뭘 믿고 엄마를 아빠와 결혼시켰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 삭제된 레스입니다

부산의 중심 중 중심인 곳에서 세련되고 멋진 옷들을 파는 옷집 사장 딸이던 아가씨는 갑자기 사방이 논밭밖에 없는 깡촌의 총각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차라리 그것 뿐이었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남편을 여의고 홀로 육남매를 키우며 늙어버린 시어머니와 어린 두 시동생들을 부양하며 혹독하고 고된 시집살이를 시작해야했다. 어렸을 때부터 안 해본 일이 없던 엄마는 가사일이나 밭일은 그럭저럭 잘 했던 것 같았다. 문제는 종교였다. 엄마는 열정적인 가톨릭 신자였고, 시어머니... 그러니까 내 친할머니는 열정적인 불교 신자였다. 세상의 전쟁 대부분이 종교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친할머니와 아빠는 집안일이 많다는 핑계로 엄마가 성당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웃긴 건 엄마와 아빠는 성당에서 혼례미사를 드렸다는 거다.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는 교인이 아닌 사람(비신자라고 한다)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한다.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리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물론 요즘은 신자가 적다보니 비신자와의 혼인도 많지만... 아무튼 내 부모님처럼 신자와 비신자의 결혼을 가톨릭에서는 관면혼이라고 하는데, 이 관면혼을 올리려면 비신자 쪽에서 신자인 배우자의 종교활동을 막지 않고, 태어날 자녀 역시 가톨릭 교리에 따라 영세(영아 세례)를 주겠다고 서약해야 한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내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갈 것이다.

시집살이는 너무 고되고, 도심에서 살다 갑자기 농촌으로 오게되니 향수병도 생기고, 열정을 바치던 종교활동까지 못하게 되니 사람 성격이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꿈도 많고 야망도 있던 여자는 자기 내면의 것들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갔다. 그리고 그 때 아이가 생겼다. 내 오빠가. 내 엄마는 오빠를 무척 사랑했다. 오빠가 뭘 어쨌든 뭘 하든 아들이 최고였다. 아이들만 두고 외출할 때마다 아들보다 세 살 어린 딸에게 네 오빠의 밥을 잘 챙겨주라고 신신당부할 정도로, 아들을 사랑했다.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했다. 오빠는 엄마의 좋은 점만 물려받았으니까. 똑똑하고, 어렸을 땐 엄마 닮아 꽤 잘생겼었고, 패션센스도 좋고 운동도 잘 하고. 반면 나는 아빠를 닮았다. 엄마는 당연히 아들이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 입장에서는 제법 공평하게 우리 남매에게 사랑을 줬다. 내가 엄마였다면 엄마만큼 하진 못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오빠를 낳고 난 후 도망가려고 했던 것 같다. 그 시절엔 감히 여자 쪽에서 이혼 얘기를 꺼내는 건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갓난쟁이 아들이 계속 눈에 밟혀 어영부영 하며 세월을 보내던 사이, 내가 생겼다. 감히 짐작하건대 아마 아빠가 엄마의 의사를 무시했을 것이다.

내가 엄마의 발목을 꺾었다. 열다섯 살 봄, 엄마에게서 내가 생겨난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확신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차라리 유산됐어야 했는데. 내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열다섯의 나는 지독한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유일하게 자기혐오가 덜한 날은 역설적이게도 내 생일이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내 엄마에겐 자신을 붙박아버린 이 태아도 생명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도 낙태 시술은 존재했고, 어쨌든 알아보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내 엄마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그 자비에 기대어 한여름에 태어났다.

무기력 직장인은 이제 출근을 위해 자러 갈 시간....... 읽고 있는 레더가 있다면 레스 남겨주면 좋을 거 같아.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친구랑 남자친구 외에는 말하지 않은 내 약한 면을 익명을 빌려 털어놓은 거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

남자친구가 추천해준 노래 들으며 쓰는 중. 음 나도 오타쿠지만 내 남친의 오타쿠력도 정말 어마무시하다. >>14에서 이어보자면.... 사실 그런 걸 알게 되었어도 세상이 뒤바뀌고 그런 일은 없었다. 너무 당연하게도. 하지만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열다섯 여자애는 자연스럽게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부모에게 호소했지만 "세상 사람들 안 힘든 사람 없다. 너만 그런 거 아니다." 라는 말을 듣고 그 날로 마음을 걸어잠궜다. 가족에 대한 기대치가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실망도 덜하게 되었다. 그래도 기대치가, 애정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라 나는 항상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답답한 삶을 살았다.

로또 당첨돼서 남자친구랑 놀고 먹고 싶다 일하기 싫다....... 친척 때문에 도박이 너무 싫어서 평생 복권 살 생각도 안 하던 사람인데 남친이랑 살고 싶어서 복권 생각을 하게 되다니 진짜 사람 앞날 한 치 앞도 모른다.........

대대로 경상도에 거주한, 정치성향이나 도덕관념이 뼛속까지 보수적인 집안에서 나고 자라 가족 중 유일하게 나 혼자 페미니스트로, 진보적인 성향으로 사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다. 사사건건 옳지 않은 발언을 하는 가족들과 갈등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때로는 빨갱이냐는 말까지 듣게 된다. (경상도에서 31년 살아보며 터득한 진리인데, 대체로 빨갱이라는 어휘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기분을 거슬리면 나오는 단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그래도 어린 자식에게 손을 올리는 인간말종은 아니라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린 자식을 학대하는 너절한 인간들이 널린 세상에서 폭력을 당하지 않고 빨갱이라는 욕설만 종종 듣는 것 정도야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가족을 비롯한 일가친적들에게 나는 공부도 잘 못하면서 대학도 취업 안 되는 이상한 과를 가더니 빨갱이 사상에 물든 막내였다.

아무튼 그 빨갱이 사상에 물든 막내는 대학교에서 첫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물론 지금의 남자친구는 아니다. 이 사람과의 이야기는 구레딕에서 한 번 풀었었는데 지금은... 사이트가 없어져서............ 아무튼 대학교 3학년에 첫 남자친구를 사귀었으니 연애에 아무리 관심이 없었어도 그렇지 늦되어도 한참을 늦된 편이었다. 그는 내가 전과한 과의 신입생이었다. 학년으로는 2학년 아래지만 재수생이어서 나이는 1살 아래. 나는 전과생이고, 그는 신입생이다보니 우리는 필연적으로 1학년 전공필수 수업에서 자주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말을 건 것은 그였다. 나는 전과생이다보니 과 행사 같은 것엔 거의 나가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분명 같은 과인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자주 눈에 띄니 내가 누군지 궁금했던 것 같았다. 수업을 다 마치고 자취방으로 가는 내리막길을 걷던 나를 그가 불렀다. 사실 9년 전 일이다보니 대화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20 으악 이것저것 현생에 치여 살다가 이제 왔는데 봐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고마워... >>19에 이어서. 그와 나는 성격을 비롯해 여러가지 면에서 꽤 잘 맞았다. 둘 다 경남 토박이에 진보적인 성향이었고, 신앙이라는 공통점도 있었다. 우리의 첫 대화로부터 약 다섯 달 뒤, 무더운 7월의 어느 날 밤. 내가 먼저 고백해서 우리는 사귀게 된다. 내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고백은 감정의 통행이 쌍방이라는 기쁨과 자기가 먼저 고백하고 싶었다는 귀여운 아쉬움이 담긴 승낙으로 돌아왔다. 대학교 과CC가 다 그렇듯 우리는 선배들의 장난 섞인 야유와 교수님들의 과제와 함께 연애를 했다. 반 년도 채 못 간, 아주 짧은 연애였다. 갑작스럽게 시작한 연애는 갑작스럽게 끝났다. 내 우울증이 원인이었다.

30대가 되고 문득 내 첫 연애를 되돌아봤을 때, 내가 정말로 그를 사랑해서 연애를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 가장 친한 친구들이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연애라는 게 대체 뭔지 아주 많이 궁금했었다. 그게 얼마나 좋길래 친구와도 시간을 못 보내나 싶어서.(물론 지금은 안다. 그리고 동시에 우정이란 것이 얼마나 가치있고 소중한 것인지도.) 경남 어느 소도시의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간 좁디좁은 우물 안에서 지내며 서로의 집 사정을 훤히 꿰던 우리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며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고,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친구에 대한 의존이 강했던 나는 아주 큰 상실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친구들의 연인들을 남몰래 질투하곤 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에게 사랑받는 내 친구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예뻐보였다. 그랬다. 사실, 나는 그냥 연애라는 걸 경험해보고 싶었다.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여기던 자존감 낮고 자신감 없는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가치있는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수 루시아의 노랫말처럼 "내 어둠은 내가 밝히고 누가 나를 비춰주길 바라지 않아"야 했는데 나는 그걸 몰랐다. 당연했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걸 나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고, 사람답게 살려면 그걸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걸 나는 몰랐으니까. 그리고 나는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아주 운이 좋았다. 첫 남자친구가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도 자신을 먼저 탓하고 나를 탓하지 않던 착한 남자여서. 사랑 대신 이별을 건넸다는 이유로 폭행당하고, 스토킹당하고, 끝내는 죽는 여자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나는, 너무나도 운이 좋았다.

해가 바뀌고, 착하고 다정하고 가족에게 강한 책임감을 가진 그 남자에게서 곧 군대를 간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어리고 강퍅하던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연락이 끊겼다. 기만적이고 이기적이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길,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행복한 삶을 보내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첫 연애를 내 손으로 망쳐버리고 나서 나는 연애와 사랑에 관해서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사람이 됐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연애를 비웃었고, 한심하게 생각했다. 현실적인, 현실에 있을 법한 연애와 성애를 다룬 컨텐츠들은 모두 통속적인 신파극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에 쏟아부을 여력이 있으면 현실에 산재한 온갖 사회문제에나 신경쓰길 바랐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고, 내 삶이 술술 풀리지 않는다는 짧은 생각으로 부리는 심술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부리는 심술은 그들 나름의 의사소통이며 보기에 나름대로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어른이 부리는 심술은 그저 꼴불견이라는 걸 그 때의 나는 몰랐다.

>>23 저번에 보고있다고 올렸던 스레더야!! 문득 레주 이야기 생각이 나서 나도 오랜만에 스레딕 들어와봤는데 알람이 하나 떠있네!! 레주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구나 언제든 환영이야
스크랩하기
1레스 아니 나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데 이거 왜 이러는지 아는 사람 4시간 전 new 13 Hit
연애 2022/06/27 04:20:55 이름 : 이름없음
8레스 연애가 처음이라 그러는데 4시간 전 new 88 Hit
연애 2022/06/26 19:15:09 이름 : 이름없음
2레스 전여친을 아는 애가 좋아한다면? 4시간 전 new 10 Hit
연애 2022/06/27 04:15:11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남자들은 첫사랑한테 4시간 전 new 9 Hit
연애 2022/06/27 04:10:43 이름 : 이름없음
3레스 enfp여자 심리가 궁금하다. 5시간 전 new 25 Hit
연애 2022/06/27 01:23:04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보통 어때야지 좋아한다고 생각해? 5시간 전 new 19 Hit
연애 2022/06/27 03:12:47 이름 : 이름없음
766레스 재회부적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적어주세요 7시간 전 new 6454 Hit
연애 2019/02/26 23:31:44 이름 : 이름없음
1레스 후유증 때문에 미칠 듯 7시간 전 new 19 Hit
연애 2022/06/27 01:10:34 이름 : 이름없음
8레스 10살 차이 첫사랑 썰 푼다 7시간 전 new 310 Hit
연애 2022/06/12 02:56:18 이름 : 이름없음
7레스 오타쿠의 100일 계약 연애 썰 10시간 전 new 208 Hit
연애 2022/06/20 23:05:36 이름 : 이름없음
8레스 완전 무뚝뚝한 istj 남자애랑 친해지는 법 제발 ㅠㅠㅠ 10시간 전 new 118 Hit
연애 2022/06/26 01:39:31 이름 : 이름없음
3레스 망할 11시간 전 new 41 Hit
연애 2022/06/26 21:13:43 이름 : 이름없음
3레스 남자들은 자기랑 키 같은/비슷한 여자 어때 12시간 전 new 111 Hit
연애 2022/06/26 03:41:21 이름 : 이름없음
547레스 다이스로 짝사랑 확률 점쳐보기 3판 13시간 전 new 2788 Hit
연애 2021/10/12 09:35:24 이름 : 이름없음
6레스 남사친이 맨날 화이팅 보내는데 무슨 의미....? 14시간 전 new 190 Hit
연애 2022/06/25 22:15:48 이름 : 이름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