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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고 졸업하기 전 국어선생님께 안부편지 한통 써서 보냈는데 답장을 받고는 질질 짜고 말았어.
이래서는 장가 못가겠구만 ㅋㅋ
안녕하세요, 선생님. XX입니다.
벌써 1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저희의 학창시절, 10대, 유년기의 종막을 알리는 졸업을 목전에 두게 되었으니 여러 의미로 감정이 벅차오르는 요즘입니다.
수업이 끝난지도 어언 한달이 넘게 지나버린지라 선생님을 뵐 일도 잘 없어 먼저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여쭈려 합니다.
저는 물론 잘 지냈습니다만, 벌써 소식을 들으셨을지는 몰라도 저는 아무래도 대학 진학을 위해 1년을 더 보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원망이나 후회는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떠나보낸 것은 누구도 아닌 저 자신의 의지였거늘 누구를 탓하며 무엇을 후회하겠습니까?
다만 한가지 드는 감정은, 저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운 생애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스운건지 씁쓸한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저는 자기객관화의 탈을 쓴 자학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저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학업수준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부터 공부에만 하루종일 몰두해도 모자랄 상황이겠지만, 저는 그런 위인이 아니었던지라 마음이 영 굳세지 않고 썩 위태위태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때가 왔으니, 저 자신을 진정으로 돌아보고 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며칠 동안 제 자서전, 아니 자조전(自嘲傳)을 써내려갔습니다.
조금은 죄송한 일이지만 제 주변에 이런 글을 보여드릴만한 분은 선생님 뿐인 것 같아 글 전문을 한글 파일로 첨부하여 보내드리니 시간이 되실 때 한번 쯤 읽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이제 이 학교를 떠나가 더 크고 험난한 세상을 향해야 하지만 선생님께서 모쪼록 안온한 일상을 보내시도록 늘 염원하고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12.28 XXX 배상
XX, 고등학교에서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었다. 수고 많았다.
언젠가 수업 시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선택된 소수의 타고난 인간, 그게 아니라면 끊임없는 수양과 모방을 통해서 어딘가에 도달하려 하는 따뜻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명예로운 저주이자 괴로움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너는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을 돌아보며, 이를 표현해낼 수 있는 재주를 갖추었으니 앞으로, 점차, 어디에서든, 서서히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너의 앞날을 나는 길게 보고 따로 큰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너무 많이 하지는 말아라. 모든 것이 전부 네 잘못이 아님을 너도 곧 알게 된다.
너는 타인의 악의와 조롱에 갇혀서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다.
너는 몇 개의 숫자로 측정되는 존재 또한 아니다. 너는 그보다는 조금 더 큰 무언가일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당장 어떤 것이든 증명해내거나 큰 성과를 내야 네가 너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너의 지성은 뛰어나지만 우울과 함께 내면으로 몰입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내 바람은 너의 명민한 지성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실현으로 점차 나무처럼 성장해서
네가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문득 이런 상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네 아버지의 꺾인 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좋은 정치인 혹은 사회인의 꿈을 네가 이루게 되는 운명을.
깊은 우울과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너의 모습을.
그것은 뛰어난 외모나 학벌에서 오는 것은 아니겠지. 언젠가 네가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렇게 살아간, 살아가고 있는 존경할 만한 시민들이 꽤 많이 있다. 차차 알아나가길 바란다. 네 인생은 오늘 끝나는 것이 아니니.
섣부른 충고가 길어졌구나.
항상 건강하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선생님께서 편지를 받아보시고 얼마나 대견하고 굳센, 하지만 아직은 나약해 보듬어주고싶은 강한 병아리같고 아들같았을까 그래서 해주고싶은 말이 많아져 쓰시다보니 마지막엔 섣부른 충고가 길어졌다고 말씀하신것같아
이런 사제지간이 될수있다는게 눈물이고 감동이다
선생님의 애정어린 상상의 꿈이 이루어질진 몰라도 스레주는 어떤방식의 미래로든지간에 본인의 태생적, 환경적인 내외면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인생을 멋지게 펼쳐나갈거야
그게 네가 쓴 편지와 너를 지켜봐오신 선생님의 말씀에서 보여
졸업 축하하고 재수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너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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