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2/12 22:08:40 ID : MnU5bzRvh89 3
내가 11살 때 쯤일거야. 어느날 심심해서 거실 벽장에 있는 책을 하나 꺼내 읽었어. 평소에는 어른들이 할아버지꺼라며 손을 못 대게 하셨는데, 마침 어른들은 친척들 만나러 전부 나간 상태고, 내 여동생이랑 나만 집에 있는 상태였지.
2 이름없음 2020/02/12 22:09:12 ID : MnU5bzRvh89 0
기똥차게 벽장 문을 열어재끼고 안에 있는 파란 책을 펴서 읽었어. 그때 아마 이 책엔 저주를 씌우는 법이 담겨있을거라면서 동생 놀려줬던걸로 기억해
3 이름없음 2020/02/12 22:09:45 ID : MnU5bzRvh89 0
물론 딱딱한 하드커버 책에 적혀있는 내용은 저주와 일말의 관계도 없었어. 그냥 평범한 내용의 한자 좀 많은 옛날 책이었지.
4 이름없음 2020/02/12 22:09:56 ID : nXzhzdUY79g 0
ㅂㄱㅇㅇ
5 이름없음 2020/02/12 22:10:13 ID : QnDzdTQq5dS 0
보는ing
6 이름없음 2020/02/12 22:10:33 ID : MnU5bzRvh89 0
나는 그 책을 그대로 내 방 책상에 올려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어. 어른들이 가져갈 걸 알면 혼났을텐데, 다행히 걸리지는 않았지. 어떻게 다시 제자리로 책을 돌려놓아야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7 이름없음 2020/02/12 22:11:23 ID : MnU5bzRvh89 0
그런데 갑자기 시시한 내용의 책, 별로 흥미가 없는 책에서 묘하게 짙은 향기가 느껴졌지. 장미꽃의 짙은 향기. 누가 향수를 뿌린 것 처럼 아주 짙은 향기였어.
8 이름없음 2020/02/12 22:12:05 ID : MnU5bzRvh89 0
홀린 듯 책에 이끌려 아무 페이지나 펴니 그 짙은 향기가 폭발하듯 내 코를 자극했어. 결국 머릿속엔 향기가 가득차게 되고, 다른 감각들은 거의 무신경해졌지.
9 이름없음 2020/02/12 22:13:00 ID : MnU5bzRvh89 0
냄새는 좋지만 갑자기 책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책을 얼른 덮어버리려고 했어. 그 때, 작게 연필로 사박사박 글씨 적는 소리가 책에서 들려왔어.
10 이름없음 2020/02/12 22:13:35 ID : MnU5bzRvh89 0
책의 144페이지, 유난히 여백이 넓은 그 공간에 저절로 까만 연필 글씨가 써지는 걸 보고는 어린 나이에 놀라 말 그대로 주저 앉아 버렸어.
11 이름없음 2020/02/12 22:15:07 ID : MnU5bzRvh89 0
"누구야?" 그게 책에 적힌 유일한 한 마디였어. 그 때 너무 놀란 나머지 눈물까지 흘렸던걸로 기억해. 귀신이나 괴담같은 걸 유독 잘 믿던 시기라, 그런게 눈 앞에 나타났는데 오즘 안 지린건 다행일 정도. 그때 나는 엄마한테 달려가서 책이 미쳤다고 하려다가, 이 책을 빼온 걸 알면 어마마마의 거대한 불 호령이 있을 것이기에 그냥 책을 덮고 방 구석 아무데나 집어넣었지.
12 이름없음 2020/02/12 22:16:24 ID : MnU5bzRvh89 0
책을 숨긴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건 아니지만, 어린 나이였으니까 외면하는 것으로 일이 해결된 걸로 알았지. 하지만 그 날부로 내 방에선 계속해서 짙은 장미향이 서서히 뿜어져나오기 시작했어. 급기야는 옆 방을 쓰는 동생이 새어나오는 냄새를 맡을 정도였지.
13 이름없음 2020/02/12 22:17:14 ID : MnU5bzRvh89 0
나도 이제는 지독하다고 느껴지는 그 향기를 참을 수 없었어. 결국 큰 마음을 먹고 책을 펼쳐본 나는, 기가 막히게도 처음에 글씨가 나왔던 페이지 수를 잊어버려서 일일이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있었지.
14 이름없음 2020/02/12 22:18:15 ID : MnU5bzRvh89 0
그러다 얼마 안 가 144페이지에 도달했고, 그 글씨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어. "누구야?" 라고 묻는 그 큼지막한 글씨를 보니 글자 공포증이라도 생기는 기분이었어.
15 이름없음 2020/02/12 22:19:02 ID : MnU5bzRvh89 0
나는 그 글씨에 이끌리듯 펜을 쥐어들고 사각사각 글씨를 써내려갔어. "귀신인가요?"
16 이름없음 2020/02/12 22:19:22 ID : MnU5bzRvh89 0
대답이 어땠을 것 같애?
17 이름없음 2020/02/12 22:20:03 ID : MnU5bzRvh89 0
네도 아니고, 아니요도 아닌 "귀신일까?" 였어. 황당한 역질문의 역질문
18 이름없음 2020/02/12 22:20:38 ID : xRwnBcMmNBx 0
나잡아봐라
19 이름없음 2020/02/12 22:22:00 ID : MnU5bzRvh89 0
그 때부터 나는 책과 필담을 하기 시작했어. 내 이름을 밝히고, 그 책에 쓰인 글씨의 주인도 자신을 소개했지. "A(가칭을 쓰겠습니다. 저는 스레주라고 지칭하겠습니다.) 02년생." "동갑이네요" "어떻게 나랑 대화할 수 있어?"
20 이름없음 2020/02/12 22:22:25 ID : MnU5bzRvh89 0
우유 마시고 있었는데 뿜었잖아 이 자식
21 이름없음 2020/02/12 22:23:09 ID : MnU5bzRvh89 0
"몰라요. 책에 그냥 글씨를 쓰고 있어요." "나도 마찬가지" "귀신이세요?"
22 이름없음 2020/02/12 22:23:55 ID : MnU5bzRvh89 0
"몰라" "왜 몰라요?" "글쎄" 한동안은 이런 시덥잖은 대화가 지속되다가, 어느샌가 나는 긴장이 풀려버리고, 이제 그냥 힘없이 책에 아무말이나 적는 처지가 되었어.
23 이름없음 2020/02/12 22:24:44 ID : MnU5bzRvh89 0
"어디 사세요?" "나도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 "사는데도 몰라요?" "산다고 해야 할까?" "못 알아듣겠어요."
24 이름없음 2020/02/12 22:25:42 ID : MnU5bzRvh89 0
그냥 봐도 멍청해보이는 대화가 한 30분은 진행된 것 같아. 그렇게 나는 대답하기도 질렸고, 이 냄새를 해결하고 싶었기에, 그냥 책에 딱 이렇게 적었어. "이 냄새 좀 어떻게 해주세요 제발"
25 이름없음 2020/02/12 22:26:03 ID : MnU5bzRvh89 0
"무슨 냄새?" "장미 꽃 냄새요." "장미는 여기 많은데"
26 이름없음 2020/02/12 22:26:32 ID : MnU5bzRvh89 0
앗 잠깐.. 끊어서 미안한데 나 잠깐 친구가 불러서 나갔다 옴 가서 폰으로 쓸 수 있으면 쓸게
27 이름없음 2020/02/12 22:49:11 ID : Ru67unyIJWo 0
ㅂㄱㅇㅇ!
28 이름없음 2020/02/15 22:20:25 ID : y6ryZa3u2tz 0
ㅂㄱㅇㅇ
29 이름없음 2020/02/15 22:31:19 ID : xRu1fWqqnO9 0
ㅂㄱㅇㅇ
30 이름없음 2020/02/15 22:47:14 ID : inO9xTSK7tb 0
ㅂㄱㅇㅇ!!
31 이름없음 2020/02/15 22:51:39 ID : XumleIK6o0s 0
보고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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