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8/03/15 09:16:01 ID : E79a08lyIGl 0
조상님에 관한 백일몽을 꾼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열여섯 살이었고 환청에 시달리고 있었다. 환청의 종류는 다양했고 여러 명이 있었다. 가끔 내 눈에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내게 정신적이던, 신체적이던 피해를 준 사람이라는 것.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한 분은 맑고 깨끗한 정신의 나를 나락까지 친히 넣어 주신 분. 그분 덕에 학교 건물만 보면 구역질이 나고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정신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까지 받았었다. 그런 사람들 목소리가 내게 매일매일 들렸었다.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매일. 가장 심한 건 시험시간이었다. 어짜피 해도 오십 점도 못 넘을게, 멍청한 게. 이런 소리들이 한 문제를 풀을 때마다, 한 글자를 쓸 때마다, 한 글자를 읽을 때마다 들려왔다. 여러 명이서 웅성웅성. 죽을 것 같이 괴로웠다.
2 이름없음 2018/03/15 09:18:34 ID : E79a08lyIGl 0
성적이(특히 수학) 이 점점 내려가자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수학 학원에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곳에 등록해서서도 환청은 계속 들렸다.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는 않았었다. 자습실에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소리도 계속 들렸었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데 위에서 누가 따갑게 쳐다보는 느낌. 옆에서는 멍청이라는 말이 계속 들려오고, 죽을 듯 힘들었다. 겪어본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종류의 소음들은 정말 참기 힘들다.
3 이름없음 2018/03/15 09:28:09 ID : E79a08lyIGl 0
환청은 열 네살때부터 들렸다. 환각도 비슷한 시기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마 여기에 털어놓는게 처음일 것이다. 열 네살때 환청이 들리기 전에 정신과를 가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었다. 열 여섯살 때였다. 내가 공부를 할 때 마다 괴로워하는 나를 본 엄마 손에 이끌려 다른 정신과를 다시 한 번 더 갔었다. 그러나 환청과 환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었다. 시험 결과도 다 조작했다. 조작했단 건 일부러 긍정적인 문항만 체크했다는 소리다. 어릴 때의 나는 그런 쪽에는 도가 통해 있었다. 하기사 2년 간 지인들에게 내가 그저 조금 공부를 못 하는 유쾌한 아이로 통하고 있었으니까. 심리검사, 각종 테스트도 모두 문제 없음의 결과가 나오도록 만들고 상담도 문제가 없도록 확실히 불안을 통제했었다. 상담을 할 때 눈동자를 돌린다던지, 목소리가 떨린다던지, 손을 쥐어뜯는다던지, 입가로 손을 가져간다던지... 하여튼 심리학 책에 나왔었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특징들이 모두 나오지 않게 나 자신을 조정했었다. 내가 환청과 환각이 보인다는 걸 말하기라도 하면 나는 정신병원에 끌려가거나 다른 시설에 들어갈 게 뻔하니까. 결국 정신과 측에서 내게 내린 결론은 고입이 겹쳐 가벼운 학업 스트레스가 있는 것 뿐, 큰 문제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때의 나는 환각과 환청이 너무 심하고 덤으로 가위까지 거의 매일 눌리는 상태였다. 밤에 잠을 자면 가위에 눌리고 가위에 눌렸다 깨어나면 각종 환각환청이 나를 반기는 지옥같은 삶이 연속되어 살아도 살은 게 아니였다. 죽고 싶었다.
4 이름없음 2018/03/15 10:32:48 ID : O5TSK0rcNz8 0
힘들었겠다 스레주...
5 이름없음 2018/03/15 14:27:07 ID : 1g1A43O7cFf 0
헉....환청은 들어본적 없지만 어떤느낌인지 알것같아....정말 힘들었겠다....
6 이름없음 2018/03/15 14:51:52 ID : E79a08lyIGl 0
다시 왔다. 그리고 그렇게 죽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것도 아닌 하루하루를 살았었다. 사람이 잠을 제대로 못 자면 폐인이 된다고 하는데 내가 딱 폐인 꼴이었다. 눈 밑에 시커멓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병들, 교문을 들어갈 때마다 밀려오는 구토감... 참기 힘들었었다. 그렇게 버티고 또 버티고 또 버티다가 여름방학이 되었다. 여름방학때 나는 보통 수학학원의 여름 특강을 들었다.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입을 눈 앞에 두고 있어서 공부를 잘 해야 했으니 수학학원에서 배로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저 환청과 환각들도 같이.
7 이름없음 2018/03/15 14:56:32 ID : E79a08lyIGl 0
매일매일 치는 테스트가 있었는데, 나는 늘 20점(5문제 중 1문제) 나 0점을 맞기 일쑤였다. 다 아는 문제인데도 손을 대지 못했다. 풀이과정을 좌르륵 써내려갈수 있는데 눈 앞이 어질어질하고 귓전에서는 자꾸 나를 깎아내리는 말들이 들렸었다. 절망감을 느꼈다. 이게 언제까지 이어질까, 나는 왜 이런 것들에게 시달리고 있을까, 그리고 죽고 싶다. 여름 특강은 아침에만 이뤄졌다. 점심 때가 되면 밥 먹으라고 애들을 집에 보냈다. 집에 가던 나를 같이 있던 친구 둘이 붙잡았던게 기억난다. 내용인즉슨 이번 주 일요일에 서울로 놀러가지 않겠나, 친구 한 명의 부모님이 같이 놀러가라고 표를 끊어 두셨다고 한다. 나는 그 환청들에 시달리면서도 좋다고 응했다. 사실 무지 신났지만 신난다는 걸 몸으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이 없었다.
8 이름없음 2018/03/15 16:04:04 ID : BBy7xU3VcE5 0
환청,환각이 들리고 보인단 이유만으로 오 미친놈이군!하고 가두거나 하진 않으니까 약물과 의학으로 치료하길 바란다 근데 환각,환청 만으로 PTSD에 걸린다는건 본적이 없는데 뭔가 이전에 큰일이 있었던거야?? 근데 정신과에서 단순히 설문지로만 검사하는게 아니라 뇌파검사도 할텐데 정상으로 나왔다고?
9 이름없음 2018/03/15 18:02:27 ID : xU3O2ts5U0n 0
정신병원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마..아프면 치료를 받아야지
10 이름없음 2018/03/15 20:28:37 ID : E79a08lyIGl 0
질문 고마워. 지금은 괜찮아. 오래 전 일이니까... 네 말대로 14살 때 어떤 일이 있긴 했어. 설명해달라면 설명해줄수 있지만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고(그래도 궁금하면 물어봐도 돼. 난 괜찮아!) 그게 트리거가 되서 환청이 들렸던 거 같아. 1에 제대로 썼어야 하는데, 설명이 어눌해서 미안. 뇌파 검사는 하긴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거 보고는 별 말 안하셨던 거로 기억해. 너의 친절함이 고맙다... 이건 2년쯤 전의 과거 이야기야. 그래도 걱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11 이름없음 2018/03/15 21:11:24 ID : BcLak9usktB 0
시간 순대로 한번 사건을 정리하겠다. 14살때의 한 사건- 그 이후로 학교에 가기만 하면 벌벌 떨었음- 1차 정신과 방문- PTSD 진단받음- 환청 시작, 환각 시작- 15살-16살- 다른 정신과 한번 더 감- 고입 스트레스라는 진단 받음 이 정도면 될 것 같다.
12 이름없음 2018/03/15 21:12:14 ID : BcLak9usktB 0
이야기가 중간에 끊길지도 모른다. 미안 모두들.
13 이름없음 2018/03/15 21:14:11 ID : BcLak9usktB 0
친구들하고 놀러가기로 한 주말이 되었다. 시골 촌놈이던 우리들은 서울 놀러간다는데 들떠서 이상한 코스를 잡았고 그건 심지어 고궁과 각종 문화재와 유적지들을 탐방하는 코스였다. 지금 봐도 왜 그렇게 잡았나 싶다. 고궁에 들리고, 무슨 박물관에 들리고, 또 고궁에 들리고.... 무지 힘들었는데도 재미있었다. 그러고선 집에 돌아와서 잠에 들었을때 한 가지 꿈을 꾸었다.
14 이름없음 2018/03/15 21:25:29 ID : BcLak9usktB 0
꿈 속에서 나는 고궁 문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입어보지도 못한 예쁜 파란색의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예쁜 한복이었다. 신발은 운동화였던 게 기억난다. 고궁 문 앞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쫘악 서 있었다.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사람, 한복을 예쁘게 입고 머리를 쪽 진사람, 댕기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꼬까옷 입은 꼬마...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고궁 문 안으로 들어갔었고 내 차례가 되자 나도 아무 문제없이 고궁 안으로 들어갔었다. 고궁 안에서는 잔치라고 해야 할지, 그냥 조금 시끄러운 시식대?라 해야 할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떠들고 있었고 곳곳에 음료와 음식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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