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9/02/07 04:02:43 ID : 5V8060oL85P 1
머릿말 꼰대. 그렇게 좋은 어감은 아니다. 뜻도 좋은 뜻은 아니다. 그저 앞뒤가 꽉막혀 퇴보된 시대를 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어느 날 스레딕에 꼰대인 아버지에 관한 글이 올라왔고 나는 성심성의껏 조언을 해주었다. 내 어린시절을 보고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글마저 꼰대의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나도 꼰대가 되었구나' 머릿속에 잠시 스친 생각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토록 싫어하고 나는 저렇게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는데. 난 꼰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글은 내 인생을 돌아보며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점검하는 의미의 글이다. 다른의미로 반성문 또는 자서전이나 에세이로 볼 수 있겠다.
2 1. 어렸던 시절 2019/02/07 04:26:11 ID : 5V8060oL85P 0
우리집은 가난했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본가에서 쫒겨나 겨우 얻은 보금자리가 포항의 한 아파트였다. 건설회사가 부도나 짓다만 아파트였다. 창문과 베란다는 유리창이 없어 비가 들어왔고 바닥장판이 없어 고물상에서 안테리어공장에서 얻어온 자투리 장판을 박스테이프로 아어붙여 깔았다. 비가오면 습도는 올라가 여기저기 곰팡이와 구들(구더기의 대구사투리)이 들끓었고 옆집에서 얻어온 쌀로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 세 식구가 이틀을 아껴먹었다. 쌀이 없는 날은 호떡으로 끼니를 떼웠다. 그 당시 하나에 500원이었던 호떡 세 개를 사와 먹었는데 어머니는 항상 배부르다며 반을 갈라 나와 내 동생에게 나눠 주었다. 나는 당시 미숙아로 태어나 몸이 많이 아팠다. 태어날 당시 심장의 판막이 만들어지지 않아 피가 거꾸로 역류하는 삼천판폐쇠증을 앓았는데 의사가 8살을 넘기 힘들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6개월 마다 한 번 검사를 받으러 가는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검사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화물차를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셨는데 그 탓에 아버지의 얼굴을 자주보지 못하였다. 21살인 지금 아버지 얼굴을 뵌 햇수를 대충 헤아려보니 6년이 넘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동사무소에서 개인이름으로 화물차가 등록되어있어 저소득층 지원이 안된다고 하셔서 그 자리에서 우셨던 기억이다. 난 그 이후로 아버지가 우신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아버지의 일때문에 우리가족은 거의 매년 이사를 했었고 친구하나 없었다. 몸도 아팠기에 밖을 나가지 못해 매일이 혼자였다. 포항, 양산, 부산, 구미, 왜관, 기장 그리고 대구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대구에 정착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의 화물차를 팔아 전셋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어머니도 일자리를 구하셨고 어머니의 첫 월급날 그토록 먹고싶다고 졸랐던 떡볶이3000원치와 하드(아이스바)를 한 가득 들고 사오시며 현관에서 우리 형제이름을 불렀다. 그때 먹은 떡볶이와 하드는 절때 잊을수가 없는 기억이다. 어머니는 금융공부를 하기 시작하셨고 경제학 책을 매일 보시던게 기억이 난다. 8살이 되던 해 나는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갔고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판막이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머니는 나를 안으시며 잘했다며 내 이름을 연거푸 부르시곤 눈물을 흘리셨었다. 초등학교시절 나는 집안에서만 자라왔던 탓에 몸도 약했었고 친구도 없는데다 아이들과 놀아본 적이 없어 항상 외톨이였다. 하지만 어머니께는 친구들과 놀다 왔다며 거짓말하고 일부러 흙을 묻혀갈때도 있었고 늦게 들어갈때도 있었다. 늦게 들어가면 어머니께 야단을 맞았는데 야단을 맞을때도 나는 어머니가 속아 넘어가 가분이 나쁘진 않았다.
3 2. 가면을 쓰고(1) 2019/02/07 05:08:13 ID : 5V8060oL85P 0
친구하나 없던 초등학교시절 나는 방황을 많이 했다. 그 당시 방영해주었던 동방불패라는 무협영화를 보고 나도 무술이 배우고 싶어졌다. 어머니께 졸라 태권도장을 겨우 등록했고 초등학교3학년때에 태권도장 관장님의 아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 소문난 문제아였다. 당시 친구가 없던 나로써는 그 아이라도 내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에 같이 놀았었다. 집단폭행, 수금, 도난, 학교폭력 등 모든 사고의 중심에는 그 친구와 내가 있었다. 지금도 그게 과연 초등4학년짜리가 할 짓인가 싶을정도로 악랄하고 못된 짓을 하고 다녔다. 자전거를 훔쳐 고물상에 내다팔고, 싸움하러 다니는 등 술 담배만 안했지 거의 양아치였다. 나는 어쩌다 한 아이의 인생까지 망쳐버렸었다. 너무 무서웠다. 그 당시 학교에는 CCTV가 없었기에 피해학생의 진술로만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당시엔 학폭위나 징계위가 없어 직접 경찰이 수사를 했었고 폭력죄는 형사처벌을 받았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법(당시 소년법)이 적용이되어 나는 가까스로 처벌을 피했었다. 그리고 초등5학년 되고 나는 더욱 더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학교에서 학생을 관리 못하겠다며 집으로 접화가 오기까지 했다. 한 달에 한 번있는 짝을 바꾸는날 어떤 남자아이와 짝이 되었다. 나는 그 학교에서 엄청난 문제아였기 때문에 그 사건 이후 반 친구들은 나를 피했었고 나 또한 어차피 결국 혼자 앉게 될께 뻔했기에 짝이 바뀌든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선생님께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청을 하지 않았다. 나는 괜한 심술에 그 아이를 괴롭혔다. 그래도 그 아이는 웃어주며 내 장난과 심술을 다 받아주었다. 나는 같은 남자에게 반했다. 웃는모습이 너무 예뻤다. 중독성이 있는 웃는 얼굴이었다. 그 아이와 우리집은 멀었지만 나는 항상 같이 하교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회계사시험에 합격하여 형편이 더 나아진 우리는 그 아이 집 주변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나는 매일 등하교를 그 아이와 같이 했다. 그렇게 나는 졸업을 하고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1학년 ×반 같은 반에 배정이 되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비가오는 쌀쌀했던 어느 봄날 우산을 꺼내 펼쳤다. 그 아이는 우산이 없는 듯하여 같이쓰고 하교를 했다. 교복위에 바람막이를 걸쳐입고 춥다며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는데 그 아이의 열린 가방 틈으로 우산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내 주머니에서 손을 빼내어 그 아이가 손을 넣고있는 그 아이의 점퍼주머니에 내 손을 넣고 조용히 그 아이의 손을 잡았다. 주머니 속에서 깍지를 끼자 살며시 그 아이도 내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곤 나는 많이 춥다며 멋쩍은 듯 웃으며 같이 걸었다. 우산을 쓰기 불편했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아니, 좋았다.
4 2. 가면을 쓰고(2) 2019/02/07 16:07:40 ID : Bf866qmLgi5 0
초등학교때와는 달리 중학교 생활은 비교적 온순하게 생활을 했다. 같이 놀았었던 초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강제전학이나 정학 조치를 받고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나 혼자서만 다니게 되었다. 서로 다른 여러초등학교에서 온 아이들을 모아 놓아서 그런지 남녀분반이라서 그런지 서로 으르렁거리기 바빴고 자기들의 무리를 서로 구축해 나갔다. 이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나는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는 그 반에 그 아이밖에 없었다. 나는 내가 먼저 다가가는 성격도 아니었던지라 늘 그 아이와 단둘이 였다. 하지만 그 아이의 친구는 늘어가고 그러다보니 싸움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꼭 한 반에 한명씩 있는 사춘기가 지독하게 온 특이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조금 심하다 싶은 야한장난을 많이 쳤는데 그날 내가 보는 앞에서 그 아이를 화장실 대변기칸으로 끌고 들어가 거의 추행급 장난을 쳤고 나는 그걸보고 눈이 뒤집혔었다. 난 그 아이를 반으로 보낸 뒤 장난을 친 친구를 그 자리에서 개패듯이 팼다. 다시 한번더 그런 짓하면 죽여버린다고 으름장을 놓고 가려는데 그 친구가 둘이 사귀냐며 묻길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시작됬다. 보복으로 반 아이들에게 전부 소문을 퍼트린것이다. 그 아이와 같이 등하교하고 항상 붙어있으니 물증보단 심증이 먼저였다. 그리고 서로 으르렁대던 무리들은 나라는 좋은 먹잇감을 발견하고는 서로 달려들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그때까지만해도 사회적으로 그렇게 좋은 인식을 받고 았지 않다는 것을 몰랐다. 남자 좋아하냐 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 뒤로 부터 내 책상엔 온갖 욕설과 협박들이 써져있었고 아침에 와서 그걸 지우는게 하루일과의 시작이었다. 하도 지우니 칼로 새겨놔 못지우게 만들기 까지 했고 몇 번이나 책상을 바꾸기도 했다. 선생님은 그냥 친구책상에 칼로 파지 마라 학교재산이라는 소리만 늘어놓았고 무슨 말이 파여져있는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할머니 선생님. 왕따는 이유가 있다라는것을 굳게 믿고계시던 분이었다. 일명 꼰대였다. 나는 그때부터 꼰대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나를 집요하게 괴롭히더니 눈길을 그 아이로 돌렸다. 그들은 내게 와서 그아이를 가르키며 쟤도 게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고 14살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 14살의 머리로 겨우 도출해낸 생각이 '쟤랑 멀어지면 쟤를 의심안하겠지'였다. 그것이 최악의 선택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아이에게 친구가 많아 나 하나쯤 없어도 괜찮겠지 하며 일부러 싸웠고 멀어졌다. 그리고 더이상 그들은 그 아이를 의심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다가가려했지만 이미 너무 멀어져 내 말조차 듣지 않았다. 아팠다. 나는 어머니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 어머니께 게이에대해 물어봤다. 어머니는 평소에 욕을 안하시는 그런분인데 소름이 돋을만큼 사람이 바뀌어 욕을 하기시작했다. 나는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가면을 쓰고 이성애자 연기하는 나를 좋아하는 거였구나.' '내가 나로써 사랑을 받지 못하는 구나.' ' 언제까지 연기해야되는 거야.' 여러생각이 머리를 나돌았다. 나는 너무 괴로워 죽고싶었다. 아파트의 꼭대기층인 15층을 눌렀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숫자가 커질수록 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두려웠고 아팠다. 이내 다리엔 힘이 풀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계단을 타고 한 층을 더 올라가니 옥상 문이 보였다. 나는 막상 옥상 문을 열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밑층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경비아저씨였다. CCTV를 우연히 보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울고있는거 같아 미심쩍어 올라와 보았다며 주머니에서 단지바나나우유와 빵을 꺼내어 주었다. 옥상에 올라간 이유는 묻지 않는다며 생각 잘 해보고 다사 내려오라고 하시고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셨다. 나는 끄윽끄윽하고 울며 빵과 우유를 마시고는 다시 내려왔다. "누가 뭐래도 넌 내 아들이야." "누가 뭐래도 넌 내 친구야." 너무 듣고 싶었던 말이다. 너무 간절하게 듣고싶었던 몇 마디였다. 나는 그 이후로 아무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웃지 않는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1년을 혼자 지냈다. 그리고 2년이 흐르고 졸업을 했다. 나는 내 고향을 뜨고 싶었다. 대구가 너무 싫었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니 먹여살릴께" "알았으니까 얼릉 다음 문단 해석해봐라 공부해야 돈벌지" 순간 문득 떠오른 대화였다. 차라리 돈을 벌자고 생각한 나는 내가 좋아했던 기계공학특기를 살려 부산의 어느 한 실업계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나는 너무 없이 자랐기에 돈이 전부 해결할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내 몸은 여기저기 망가졌고 어깨는 덜그럭소리가 난다. 그래도 난 멈추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되니까. 돈을 가져다 주면 다시 웃어 줄거라 믿었다. 돈에 울고 웃는 사람을 많아 봐왔었으니까. 쇳가루와 용접흄을 많이 마셔 기침과 가래가 들끓었고 손은 기름때로 엉망이 되었다. 손톱은 몇 번이고 떨어져나갔다 생겼다를 반복하며 동상과 화상은 달고 살았다. 팔뚝은 기름독이 올라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비도 아까워 가지 않았다. 내 가면을 벗겨줄 사람은 오직 그 아이 뿐이었다. 6년이라는 공백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아무도 흥미있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동생의 대학갈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 편으로는 그 아이 때문에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 수당을 제외하고 월급 100퍼센트를 모조리 적금에 쏟아부었다. 회사에서 나오는 밥과 물만 먹고 살았다.
5 3. 앞만보고 달려온 2019/02/08 00:11:13 ID : u05Xusrtdvf 0
너무 앞만보고 달렸다. 중학교때 피아노와 기타 플룻 등 여러 악기를 배워도 보았지만 역시 무리였다. 돈이 문제였다. 아이돌 가수, 티비프로그램, 게임 등 나는 셋 중 하나도 관심았는 매체가 없다. 가끔 영어공부 겸 영자막으로 쳐다보는 미드를 제외하고는 취미가 없다. 통장에 돈은 쌓여간다. 눈처럼 불어가는 돈이 처음엔 마냥 좋기만 했다. 점점 꿈이 다가오는 듯 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는 화면에 찍힌 8자리 숫자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다. 내 나이 21살 지난 20년을 돌아보았을때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난 가진것도 이룬것도 없었다. 다만 화면에 찍힌 8자리 숫자. 쓰지도 못하는 숫자. 내 수중에 남은 돈은 6개월동안의 수당 92만원. 그것조차 아까워 쓰지 못했다. 취미가 없다보니 수당으로 가끔 술과 담배를 사간다. 혼자 방에서 홀짝이기 일쑤다. 술을먹고 옛생각이 떠오르면 지우려 담배불을 붙인다. 담배가 타면 탈수록 쓴맛은 혀끝에 남고 기억은 더욱 선명해진다. 나쁜기억은 아니지만 좋은 느낌 또한 아니다. 괜스레 한숨을 푹 쉬고 다시 홀짝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 나를 덮쳐온다. 가끔 그 엘리베이터가 생각난다. 밭끝부터 머릿털 끝까지 찌르르르하고 떨린다. 너무 하라는대로 살아왔고 내 목표만 바라보고 앞만 보고 살아왔다. 세대가 거듭할 수록 앞만보고 달려가는 학생들이 많아진다. 너무 안타깝다. 그들에게 귀띔이라도 해주고 싶지만 이것마저 꼰대가 될까봐 이제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세상이 안타깝다. 측은하다. 앞만보고 달려왔고, 머리에 든건 없고, 가방끈도 짧으니 벌써 꼰대가 되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나는 젊은 꼰대다.
6 4. 지금 내 모습은 2019/02/08 00:54:09 ID : u05Xusrtdvf 0
꿈은 계속 변한다. 살이오면서 수 많은것을 배울수록 꿈은 유동적이다. 대부분 커다란 틀을 벗어나지 않지만 그 틀마저 바뀌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꿈이 항상 변하는 사람. 그리고 꿈이 변하지 않는 사람. 꿈이 변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한다는 이야기다. 반대로 꿈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막연한 뜬구름이거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멈춰선 사람. 즉 꼰대다. 꿈이라는 큰 타이틀은 변하지 않아도 과정이나 세부사항은 변한다. 왜냐하면 우린 항상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쉬운길을 찾고 힘든 것은 피하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석만 고집하며 일관된 주장만 하는 인간. 꼰대다. 인간은 젊을때 자신의 꿈을향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손에 무언가가 들어왔을때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숨기며 그 시대에 정착한다. 자신은 그 자리에 멈췄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는 세대가 교체되고 세로운 세대가 들어오면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보았을때는 퇴보하는것이다. 나는 일찍이 목표를 이루었다. 곧 있으면 8자리 숫자가 9자리로 바뀐다. 이미 빠르게 이루어져버린 꿈은 이내 식는다.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나. 막상 돈을 모으니 그 아이 한테는 어떻게 다가가야하나. 돈을 벌어보니 돈이 다가 아닐때가 더 많던데. 걱정만 늘어간다. 혹시 허황된 꿈을 쫒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허무하고 쓸쓸하다. 이젠 두려움이 앞선다. 돈 때문에 희비가 갈리는것을 눈앞에서 쳐다보고 살아왔었기 때문에 돈이 너무 무섭다. 많이 불어난 돈은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있다. 돈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계속 주체할수 없이 써야될것 같다. 돈을 못쓰겠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나한테 투자해본적이 없었다. 내가 산것이라곤 일주일마다 그깟 술 한 두병 담배 한 갑. 동기들은 휴가때 여행도 다닌다. 차도 사고 좋아보인다. 하지만 나는 휴가도 반납해왔다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고 발버둥 쳤다. 동기들보다 1년 반정도는 앞서갔다. 승진도 빨랐고 여기저기 불려갔다. 일잘하는 호구가 되었다. 직장에선 일잘하는 호구. 사회에선 젊은 꼰대. 그것이 내 모습이다.
레스 작성
잡담 실시간
4레스스팸 구워서 57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4레스화장좆밥입니다. 살려줘ㅠㅠ 132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40레스알바하면서 '아가씨'라고 불리는거 나만 짜증남???? 1671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31레스예전에 썼던 소설들이 흑역사라 곤란하다 201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3레스요즘 인스턴트만 먹어서 몸이 엄청 찌뿌둥한데 만들기 엄청엄청 쉬운 식단 좀 알려줘! 37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209레스나 상류층 사람이야 질문받을게 926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2
2레스내 친구 레즈같아 168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45레스나를 혼내달라해야할지 도와달라해야할지 위로해줘라해야할지, 144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6레스» 꼰대가 되어간다는 것. 126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1
9레스돈이 있을때 사고싶지만 돈을 아끼자하는 편이야 아니면 사고싶은건 사야돼 !! 편이야 ?? 83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27레스너네 여기 어떻게 알아서 들어왔어?? 236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3레스골반뼈 통증 흔한 일이야? 병원 안가도 되겠지? 124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8 0
17레스노랫말들을 이어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자 111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7 0
11레스계속 알아 알아 거리는 친구 151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7 0
2레스쪼아하는 스트리머가... 62 Hit
잡담 ◆dXs7attheY0 예아님팬 19.02.07 0
32레스다들 적금 어느정도 넣어? 690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7 0
1레스갑자기 생각난건데 27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7 0
7레스돈 빌릴까 말까? 39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7 0
31레스다들 용돈얼마받았는지 적어보자 246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7 0
3레스티켓 현장수령 어떻게 해야하는거야 86 Hit
잡담 이름없음 19.02.0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