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qmK5e1yKZf 2019/03/13 19:39:10 ID : JVhz9g6jdyF 0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변하고, 살아있지 않은 것도 모두 변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는데, 우리만 알아채지 못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 따위를 지루하고, 진부하다고 여긴다. 어떤 변화를 겪어도 우리는 결국 적응하고, 그 비일상을 일상으로 느껴 끝내는 지루하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수없이 많은 비일상을 겪고도 비일상은 그저 일상 사이의 작은 틈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채로 비일상이 주는 마약 같은 흥미로움에 이끌려버리고만다. 그건 마치 식충식물의 달콤함에 이끌리는 벌레와도 같고, 모닥불에 이끌리는 나방과도 같다. 당신은 괴이의 존재를 믿는가? 괴이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는다면, 그에 따르는 그 어떤 단어여도 좋다. 귀신, 괴물, 크립티드, UFO 하물며 신까지. 나의 비일상은 괴이다. 우습게도 나는 공학을 전공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괴현상을 믿는다. 오히려 공학자이기 때문에 괴이에 흥미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과학쟁이인 나에겐 미지는 탐구의 대상이자, 탐닉의 대상이었다. 마치 신대륙에 발을 딛는 콜럼버스라도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항상 미지로 손을 뻗었다. 어릴 적부터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능력으로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 그런 초월적인 힘엔 아이라면 누구든지 끌리는 법이다. 증거로서 어떨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아이는 공룡을 좋아한다. 그런 대상은 크고 강한데다 직접 눈으로 본 적 없는 존재인 경우가 많아서 제약 없이 상상의 덧살을 붙일 수 있다. 누구나 현실의 공룡과는 다른 자기만의 공룡을 만들어 취향껏 소비할 수 있는 셈이다. 나 역시 같은 맥락으로 초현실을 좋아했다. 직접 눈으로 본 적 없고, 강했다. 게다가 그것이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묘한 믿음마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믿음은 헛됐다. 오만하고 조심성 없는 스스로의 행동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주변에 민폐도 많이 끼쳤다. 하지만 그 과거를 전부 다 부정하고,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문자 그대로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있었는가 하면, 추억삼기에 나쁘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이 있었으니까. 당신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그런 나의 이야기이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그리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인격적으로 완성이 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내가 전달하려는 그 무엇을 당신들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를 읽는 당신들이 내 이야기를 반면교사로라도 삼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 17년즈음에 타 사이트에 올렸던 반쯤 실화인 이야기를 리메이크. 소설판에 올릴까 했지만 괴담판에 왔음. 판 틀렸으면 스루.
2 이름없음 2019/03/13 19:43:09 ID : wIL85SK7tju 0
기괴한 이야기가 괴담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일단 보고있어.
3 이름없음 2019/03/13 20:34:49 ID : xRzPdB89wGr 0
보고있어!
4 이름없음 2019/03/13 22:32:32 ID : vfVhAi9y5bC 0
굿
5 ◆WqmK5e1yKZf 2019/03/14 01:06:24 ID : JVhz9g6jdyF 0
위기를 찾지 않는다면 위기는 찾아오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는 말 그대로다. 높은곳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떨어질 일이 없고, 길을 나서지 않는다면 길을 잃을 일이 없다. 모든 위험을 피하는것은 불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위험은 어느정도 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위기는 피하는게 당연하다는걸 이해하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현명한 사람은 아니였던 모양이다. 배고픈 사자 앞을 얼룩말 옷을 입고 지나가는것과 비슷한 짓을 밥먹듯이 하고 다녔고, 매번 그 대가를 치르느라 고생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선 오컬트를 탐닉하는 나의 주접스러움은 그 어느 때보다 심해졌다. 일부러 집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자유를 즐기지 않으면 손해라는 기분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하면 안되는 짓도 많이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엔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교내에는 오컬트 쪽에 유명한 선배가 하나 있었다.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소문의 선배' 같은 역할을 톡톡해 하고 계신 선배였고, 나는 어느샌가 그 선배의 존재 자체를 오컬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에게 오컬트는 집착 대상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신입생이고, 아무리 그래도 교내에서는 막내다. 즉, 아무리 내가 오컬트에 미쳐서 살아간다고 해도, 선배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 쳐들어가서는 "귀신 본다는 선배 여기 있습니까!!" 라고 외치고 다닐수는 없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선 내가 찾아갈 수 없다면, 나를 찾아오게 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실로도 멍청한 결론을 도출해냈다. 당연하게도 나를 찾아오게 할 방법같은건 떠오르지 않았다. 영능력자끼리 텔레파시로 통신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나는 일단 애초에 오컬트를 좋아할 뿐이지 영감이 특별히 강한것은 아니였기 때문에 무언가 내가 주체가 되어 호출을 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 통감했을 뿐이다.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조금 더 열심히 굴려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강력한 무언가를 불러내서 그녀석을 조금 설치게 두면 되지 않을까, 하는. 멍청함만 수 배 단위로 증가한것 같은 말도 안되는 작전이었지만, 어떻게든 소문의 선배를 대면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들어있던 나에게 이성의 브레이크가 작동할 리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이것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할 예정이고, 지금은 계속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셈이 되지만, 나에게 영감 (어떤 의미에서는 영능력)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다. 정확히는 이 당시에는 없었다. 따라서 나는 내가 불러내는 무언가가 강력한지 어떤지 알 방도가 없었고, 실제로 뭔가를 불러냈는지 아닌지 감별할 수 있는 방법조차도 없었다. 뇌하수체 저편에 남아있는 아주 작은 이성의 편린이 잠깐 일을 해서 역시 그만둘까도 생각해봤지만, 젊은이에게 남아도는건 치기 뿐이였다. 확실하지 않다면, 아무튼 많이 해 보면 될 일이다. 성공률 1퍼센트짜리 가챠도 100번 이상 돌리면 아무튼 나온다. 물론 가챠의 내용물을 확인하지 못하고 다음 가챠를 계속 뽑아야 하니까 굉장한것들을 엄청 불러올 가능성도 있었지만, 굉장한 녀석이라는게 그렇게 쉽게 불러질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실행으로 옮겼다.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적을 마음이 없다. 어느정도 자료를 검색할 줄 아는 사람이고,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는 강령술이라는 것만 이야기 해 두도록 하겠다. 강령술에는 술이 필요했다. 제사에 쓰는 맑고 투명한 청주가. 성인이 되었으니 술을 구하는건 어렵지 않았고, 그것 말고도 딱히 준비하기 어려운 재료는 없었기에 실행까지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재료를 구하는데 노력이 들지 않으니 결행일도 순식간에 다가왔다. 같은 의식을 여러번 반복해서 성공률을 높일 생각이였기 때문에, 첫 한두번만에 성공하리라는 기대는 가지지 않았다. 적은 기대는 적은 부담감으로 이어졌고, 나는 내가 하려는 일이 생각보다 비일상적인 일이라는 자각 없이 의식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변은 빠르게도 일어났다. 첫 번째 의식을 마치고 술잔에 남은 술을 바닥에 뿌리려는 찰나, 기척도 없이 나타난 사람이 내 손에서 잔을 빼앗았다. 일부러 늦은 시간에, 일부러 인기척이 드문 장소를 골라서 진행한 의식이다.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분명 소문의 그 선배일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고 갑작스럽게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 나는 적절히 반응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그 인물은 잔의 술을 마셔버리고는 잔을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윽고 바닥에 내려놓은 술병을 발로 차더니, 술을 전부 흘려보내며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이제 여기에 네것은 없어. 돌아가!" 당신을 만나는게 내 목적이니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가위에 눌린 것 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가위에 눌린 것 같다는 감각을 기억해 내는 순간, 등줄기가 싸늘해지며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익숙한 감각이다. 영감이 전혀 없는 나도 느껴본 두려움. 내 머리가, 내 상상력이 멋대로 무엇인가를 상상해내는 두려움. 코끼리를 생각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는가?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내가 노력할수록 내 머리는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보게 되는게 두려워 눈을 감고 있어야 할지,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사이에 무언가에게 공격당하는것이 두려워 눈을 뜨고 있어야 할지도 결정하지 못할 정도로 불안정했다. 그런 나를 두고 그 사람은 가버렸다. 찰랑거리는 곱슬머리 단발이 잔인했다. 그림자가 뱀의 혀처럼 일렁거리며 나를 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지는 않을것같네, 나는 간다." 그게 나와 선배의 첫만남이였다. 이후에 나는 정신을 잃었지만 용케도 얼어죽지 않고 아침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날을 기점으로 내 삶도 변했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고, 느낄 수 없던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날 그 꼴을 당하고도 끈질기게 따라붙어 이후에 친해진 선배가 설명하기론 나는 원래 전기가 흐르지 않는 나무같은 녀석이였나보다. 영감이 한없이 0에 수렴해서 에지간한 괴현상은 나에게 간섭조차 하지 못했던거라고 하던가. 그러나 그날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나무에 억지로 전류를 흘려 새카맣게 태운 것 같은, 마치 벼락을 맞은 나무가 불타오르듯이. 숯이 되다 못해 바스라져 재가 되어버린 사람. 나를 그렇게 표현했다. 이건 재의 이야기다.
6 ◆WqmK5e1yKZf 2019/03/14 13:39:43 ID : 4Ntg3Ve0la2 0
선배와 있었던 이야기다. "너 그 집에서 산지는 얼마나됐냐?" 행동에 예열이 필요없는건 이 선배의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저녁으로 뭘 먹을지를 결정해야 할 때엔 확실히 편리하다. 그것 말고는, 전부 다 불편하다.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존경하는 선배와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즐거울 줄 알았다. 솔직히 즐겁지 않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화가 아니라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다. 취조에서 즐거움을 느낀다고 고백하는건 스스로의 이미지에 악영향만 끼칠것이 분명하니까 말을 아끼기로 하자. "야, 듣고있냐?" "ㅇ...네.. 듣고는 있는데요..." "집에서 얼마나 살았냐고. 홈. 하우스!" 도대체 이게 무슨 질문인가. 나는 대학교 1학년이고, 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이런 촌구석에 대학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첫 학기가 절반도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히 집에서 산지도 몇달 되지 않은 셈이다. 선배의 질문엔 언제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걸 알지만 단 한번도 함정을 우회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솔직히 문제에 함정이 있는 기분이 아니라 문제 자체가 함정인 기분이다. "세달..정도 됐을걸요..?" 오늘 아침에 하지 못한 설거지를 떠올리며 말했다. "엥? 아니, 네 자취방 말고." 네 집말이야. 지이이이이이입. 일부러 과장되는 모션으로 발음을 길게 늘인다. 아마 하우스가 아니라 홈을 말하는 거겠지. "대학교 오기 전엔 한번도 이사 안했어요" "오, 좋아. 재미있는걸 하자" 재미있는걸 찾았다는듯이 눈을 반짝이며 엉덩이를 당겨 의자에 걸터앉는다. 또다시 대화를 따라갈수가 없다. 이게 대화인가? "눈을 감고 네 집을 떠올려봐" 얌전히 눈을 감는다. 반항해봐야 소용 없다는걸 알고있다. 솔직히 데리고 다녀 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우니까 이정도 기행은 어울려 줄 수 있다. "너는 막 집에 돌아온 참이다. 이제 집 구석구석을 돌아볼거야." ...역시 어울려 주기 좀 힘들다. 최대한의 반항심을 발휘해서 실눈을 뜨고 이게 뭐하는건지 물어보았다. 선배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눈썹이 거의 완벽한 팔자를 그렸다. 생각해보면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재미있는거! 라고 대답한다. 역시 제대로 된 대화는 아니다. 더 매도당하는것도 즐겁긴 하지만, 선배가 진짜로 화를 내면 그건 그것대로 상당히 곤란하기 때문에 반항은 그만두고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집중하기 조금 힘들었지만, 이내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성공했다. 어째선지 상상속의 나는 어린 나였다. 중학생..? 어쩌면 초등학생 정도의 키일지도 모르겠다. "벽지를 만졌을 때 느껴지는 손 끝의 감촉. 현관에 놓여있는 신발들, 바닥을 밟는 발의 감촉까지도 전부 다 떠올려라." 현관은 텅 비어있었다. 아마 가족들은 전부 외출중인 모양이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방부터 들어가볼거야. 단순히 훑어보지만 말고 책상 서랍부터 장롱 안까지 전부 다 열어봐. 그리고 다시 닫아놓고, 다음 방으로, 그리고 또 다음 방으로. 그렇게 집 전체를 돌아보는거다."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노을빛이 집에 가득 차 있었다. 옅은 오랜지색 황혼은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킨다. 내 어깨 높이보다 조금 높은 형광등의 스위치를 누르며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으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는 보다 만 교과서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서랍 속에는 학용품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들어있었다. 장롱 안에 무질서하게 걸려있는 옷들의 감촉도 느껴보았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은 내 방이였다. 선배가 그걸 알고 가장 가까운 방을 먼저 보낸건진 모르겠지만, 내 방은 당연하게도 내가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다. 덕분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내 방을 나서자, 집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졌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가재도구들을 눈으로 훑으며 다음 방으로 향하던 와중에, 누군가가 현관을 두드렸다. 자연스럽게 진행방향을 틀어 현관으로 향한다. 똑똑똑. 정갈하기까지 한 노크는 마치 내가 문을 열어주는게 당연하다고 나를 설득하는 듯 했다. 홀리듯 현관까지 다가갔다. 어린 나에게 현관문을 열기 위해 슬리퍼를 신는 건 너무나도 귀찮은 작업이였고, 나는 여느때처럼 습관적으로 맨발인채로 현관의 타일을 딛었다. 찬 기운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오며 정신이 들었다. 당황했다. 내가 현관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는것을 아는 듯, 현관을 두드리는 존재는 마치 내게 문을 여는 것 이외의 선택지를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더욱 거세게 문을 두드렸다. 당혹스러움은 이내 공포로 바뀌었고, 상상속이라는걸 완전히 망각한 채로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마치 정신연령마저 상상속의 그 나이대로 돌아 간 듯 했다. 똑똑똑 하며 정갈하게 울리던 노크소리는 아주 빠른 템포의 쿵쾅거림으로 바뀌더니, 이내 느릿하지만 귀가 울릴정도의 강한 타격으로 바뀌었다. 어느샌가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던 집 안은 어둠에 묻혔다. 나는 울었다. "야, 우냐?" 한대 맞았다. 눈을 뜨니 선배가 주먹을 쥐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아 마치 중학생 꼬맹이가 된 기분으로 스언배늬임 하고 울며 징징댈 뻔 했지만, 참아냈다. "이게 대체 뭐에요? 그리고 저 안울었어요" "얼씨고. 그러시겠지. 그래서 뭘 봤냐?" 선배는 창문을 열며 말했다. 솔직하게 현관의 이변에 대해서 말했더니 선배는 창가에 등을 지고 서서 팔짱을 끼고는 날 내려다보며 웃었다. "재미있네" "하나도 재미 없었어요. 그래서 대체 뭐였어요 그게? 대답 안해줘요?" "나는 모르지, 네 상상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맞는말이라서 짜증난다. "그래도, 고생했으니까, 재미있는걸 알려줄게." 선배는 본인 등 뒤의 창문을 엄지로 가르키며 말했다. "이 창문은 일주일만에 열었다. 그동안 한번도 환기를 시키지 않았으니까 아마 이 방의 산소 농도는 생각보다 상당히 낮아져 있었을걸. 그리고 쓸데없이 과하게 난방도 올려놨지. 산소가 부족한 따듯한 공기로 가득 찬 방에 사람을 집어넣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 줄 알아?" 선배는 괜시리 좀 뜸을 들이고선 말했다. 나도 괜히 긴장했다. "존다" "네????" "존다고." 춥다고 겨울에 창문을 몇시간씩 닫아놓은 교실에서 학생들이 특히나 많이 졸지 않냐. 라고 선배는 사족을 덧붙였다. 듣고보니 확실히 맞는 말 같았다. "그러니까 너는 잠깐 졸면서 꿈을 꾼거야." 선배는 아무것도 아니였다는 듯한 톤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톤을 유지한채로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 이야기들도 이어나갔다. "단지, 이번 경우에는 내가 조건을 걸었지. 집을 기억하라는 조건. 그건 이를테면 어떤 암시야. 네 꿈의 배경을 너의 집으로 한정시켜버린거지. 일부러 집 이야기를 오래 한 것도 밑작업이고." 확실히 집을 배경으로 한 꿈을 꾼 기억은 별로 없다. 어느쪽이냐고 하면 의외로 가상공간 (나의 경우에는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백화점의 꿈을 자주 꾼다) 을 배경으로 하는 꿈이 많다고 생각한다. "암시를 건다는건 최면을 건다는것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해도 괜찮아. 억지로 꿈의 공간적 배경을 익숙한 장소로 한정시켜서, 꿈속에서도 본인이 꿈을 꾸고 있다는걸 깨닫지 못하게 하는 트릭이지. 약간의 저산소와 높은 온도, 그리고 암시로 렘수면과 최면을 섞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데." 솔직히 조금 무섭고, 조금도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라는건, 가장 무서운 부분이라고 치환해서 들어도 되는 모양이다. "앉아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떨구고 호흡하는건, 몸에 별로 좋지 않거든. 호흡이 불규칙해지니까. 그리고 넌," 선배가 손가락으로 날 가르켰다. 그리고 나는, 당연히 앉아있다. "앉아있지." "...그러네요" "수면중에 호흡이 불규칙해지면 결국 깊은 잠을 못 자고, 수면이라는 행위 자체를 뇌는 위기라고 판단해버려. 저산소, 높은 온도, 불규칙한 호흡. 잠을 자려는 몸과, 깨어있으려는 뇌. 이 둘이 섞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 자고있는 몸과 깨어있는 뇌. 잘 알고 있는 현상이다. 현상으로서는 알고있다. "가위에 눌린다." 선배는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듯 자랑스럽게 말했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날 괴롭힐 셈인지 알고싶었다. "뭐, 생각대로 잘 된 것 같네. 재미있었어?" "전혀요. 다음부터는 뭘 하면, 뭔가,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귀띔이라도 해주면 안돼요?" "뭐어어어어???" 선배는 다시 눈썹을 팔자로 만들었다. 미간에 없던 주름까지 만들어 표정을 과장하고 있는게 보인다.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 선배는 '놀이 끝!' 같은 느낌으로 다시 의자를 빙글 돌려 나에게 등을 지고 책상을 향해 앉았다. 선배가 나를 등지고 한 마지막 말을 듣지 않았으면 하고 후회했다. "그래도 그건 의외네, 꿈속에서 보통 가위에 눌리나?" 방의 현관문을 누군가 노크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레스 작성
괴담 실시간
10레스가위눌리면 기분어때? 253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50레스환공포증 있는사람 나좀 도와줄래...? 757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109레스그 팩이라는거말야 내가 몇가지 알려줄게 1429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4
5레스가끔 꾸는꿈에 나오는 날 슬프게 또는 위로해주는 무엇 143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14레스길에 버려진 토끼모자 주워 왔는데 괜찮을까? 675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8레스실험 1일차 310 Hit
괴담 ◆a7dVanwoIGn 19.03.15 0
28레스가위 눌릴때 어디 끌려가는 느낌? 1417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4레스나 기가 좀 센 편인가? 좀 알려 주라 179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91레스아무래도 거기에 뭔가가 있어. 932 Hit
괴담 ◆xxxDxTPcoHx 19.03.15 3
2레스귀신 나온 꿈 얘기 풀어보고 가자 82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1레스. 79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6레스흐나ㅣ이ㅣ니ㅜㅜ 누가 알고있으면 좀ㅁ 204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5 0
19레스꿈과 현실이 혼동되는일이 계속되고있어. 270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4 0
10레스살인꿈 96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4 0
4레스저녁 한때 ㅡ 임길택 118 Hit
괴담 Taxus cuspidata 19.03.14 0
18레스귀신들이 입고있는옷은 죽었을때 옷이야? 866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4 0
6레스» 재 이야기 167 Hit
괴담 ◆WqmK5e1yKZf 19.03.14 0
6레스야 이쯤 되면 그 스레 찐같지 않냐 838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4 0
9레스귀신들렸을때 234 Hit
괴담 이름없음 19.03.14 0
35레스별거아닌데 내가 가끔 괴물같이느껴져 338 Hit
괴담 ㅇㅅㅇ 19.03.1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