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19/10/24 02:18:30 ID : MruqZg7Bzhw 0
몇년간 우울증 앓고 결국 자살시도까지 했다가 어찌어찌 극복하고 약물 치료도 마쳤다 잘 해냈구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몸의 이상을 발견했다 정신은 숨길 수 있었지만 몸은 어쩌지 못해서 결국 본가 온 날 쓰러져 응급실에 갔는데 그 후부터 가족들이 더욱 더 나를 기피했다 수술 후 병원에서는 최소 6개월 간의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본가에 내려오게 되었다 대학 진학 이후 처음으로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돌아와보니 동생 역시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한동안 우리 가족이 아닌 것처럼 서로 우호적으로 잘 지냈는데 그저 내 착각이었나보다 오늘 밤 동생은 울음을 터뜨렸고 과거의 오류가 나에게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으레 그래왔듯이 자라는 동안 대체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냐 동생이 저 모양이 되도록 넌 뭘 했냐 너만 좋은 대학 가고 동생은 똥통학교를 보내냐, 집에서 공부 안 시키고 뭐했냐 동생이 아프면 너라도 건강했어야지 장녀로서의 책임이 없다 약 달고 있는 것 보기도 싫으니 당장 나가라 스물 일곱, 당연히 독립을 해야 하는 때는 한참 지났고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 내 삶을 스스로 책임져왔고 음, 그래, 집에서 나오게 된 것이 서글플 이유는 없지만 추방당했다는 사실이 왜 이리 가슴이 시큰한지 모르겠다 병이 나을 때까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너무 어린 생각이었나보다 요상하게도 병원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같은 병을 앓는, 내 또래의 딸을 둔 아주머니들은 병에 무엇이 좋고, 무엇은 좋지 않고, 그래서 딸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해준다고 하셨다 왜 엄마는 같이 오지 않았냐며, 집에 가면 엄마에게 이런 것들을 챙겨달라고 하세요, 하시는데 나를 위해주는 따뜻한 마음과 그렇지 못한 나의 현실 사이에서 씁쓸했다 그래도, 병을 이겨내고 내 삶을 살아낼 것이다 다만 애써 쌓아올린 마음의 힘이 오늘 와르르 무너진 듯해서 복구작업을 위해 풀어본 속 얘기.
2 이름없음 2019/10/24 02:32:22 ID : 40ldwoFjxU0 0
고생했다. 하염없이 슬퍼하며 하소연하는 글보다 이렇게 좋은 마음을 먹고 스스로가 다시 위상을 지켜내려는 모습은 보기 너무 좋아. 글을 읽어보니 정말 많은 시간과 생각을 거쳐낸 사람이 쓴 글같아. 이정도 스스로의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충분히 잘 해낼거라 생각해. 분명히 그럴거야. 그리고 그날까지 응원할게.
3 이름없음 2019/10/24 02:36:34 ID : 40ldwoFjxU0 0
특히 마지막 문단의 모든것이 너무 와닿아. 특히 마음이 무너져 내려서 쓰는 글이 아니라, 다시 한번 '복구작업을 하기 위해' 라는것이 진짜 너무 멋있고 존경스러워. 또 '삶을 살아낼 것이다.'. 이겨내고 살거라는것고 멋있는데 무엇이 오든 살아 낼 것이다 라는건 너무 멋진 표현같애. 흔히 될놈될 안될안이라 하는데 스레주는 될놈같아.
4 이름없음 2019/10/24 02:37:33 ID : 40ldwoFjxU0 0
그런데 그런 굳건한 사람이 어째 마음이 무너질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정말 가늠이 안가.하지만 스레주가 마음먹은대로 삶은 살아내면 본디의 목적 그 이상을 도달할 수 있을거라 확신해.
5 이름없음 2019/10/24 09:06:45 ID : vyLhvwsphxX 0
장녀로서의 책임감이 없다거나 그런 말에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아. 레주에게는 아무 잘못 없는걸. 레주는 지금까지도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마음의 힘은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조금씩 쉬어가면서 다시 쌓아올리자. 강해지려 노력하는 게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 잘 참는 게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무엇보다 레주가 건강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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