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9/29 06:34:55 ID : O7dRyGsi9vC 0
연립식 주택, 즐비하게 늘어진 비슷비슷한 외관의 '집'들. 그렇게 작지도 크지도 않으며 그럭저럭 매일이 사사로운 사건의 연속인 주택가. 이웃들 간의 정은 잊은지 오래, 아니 잊었다기 보다야 바스러진 거지. 삭막한 도시에 말라죽지 말라고 뚫어놓은 창문이라 어떤 쪽은 아침잠을 깨울 정도로 강렬한 태양빛이 들고 어떤 쪽은 손 뻗으면 이웃집과 닿을 거리로, 빛은커녕 습한 공기조차 순환이 되지 않는……. 그래 뭐, 쉽게 말하자면 나쁘지 않은 공간. 누군가의 손길이 매일 닿아왔기에 더럽지는 않지만 어딘가 조금 어수선한 부엌 한편에는 작은 창문이 있다고 치자. 작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드나들 수 있어. 그게 어린애이든, 성인 남성이든. 어쩌면 방황하던 길고양이든. 그 창문 밖에는 역시나 이웃집의 옥상으로 향하는 통로가 보이는데 난간은 시멘트로 대충 쌓아올려 허리춤까지 오고, 없어보이기 싫어 집주인이 발라둔 하늘색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오히려 흉한 모습이지. 다행인건 이웃집 통로 벽에는 창문이 없다는 것 정도? 적어도 통로에 나와있지 않는 한 서로를 관찰 할 수는 없을테니까. 불행한건, 그 통로는 누구라도 드나 들 수 있을 법한 높이라는 거. 하긴 부엌 창문의 경치는 아무래도 좋지. 어쨌든 그 창문의 바로 옆에는 작은 다락으로 향하는 문이 있다. 가파른 계단이 서너개, 그마저도 면적이 아주 좁아 내려올 때는 아주 조심해야하지.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뚫어둔 창문으로는 제법 괜찮은 볕이 든다. 삶은 전쟁과도 같다 했나, 전쟁에는 여러가지 장비가 필요한 법. 다락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들어있다. 철지난 옷, 쓰지않는 가구들하며 주문해두고 쓰지 않는 운동기구들……. 주인 잃은 잡동사니들의 무덤과도 같지.
2 이름없음 2020/09/29 06:57:43 ID : O7dRyGsi9vC 0
부엌의 이야기가 길어져 버렸네. 조금만 더 설명하자면 부엌에는 집 한쪽 벽을 둘러쌀 만큼 길고 좁은 베란다로 향하는 문이 있어. 뭐, 다락과 비슷한 쓰임새지만. 그 좁은 계단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럼 이제 전체적인 집의 형태를 설명해 줄게. 일단 머릿속에 그려봐. 앞으로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필요할 테니까. 이 집은 2층이고, 1층엔 사람 좋은 주부와 발랄하고 친화력 좋은 딸, 조금 과묵한 남편이 살아. 대문에서 들어오면 오른 편에 계단이 있고 한번 왼쪽으로 꺾인 계단을 쭉 타고 올라가면 텅 비었고 먼지 날리는 옥상이 나와. 2층 집은 옥상으로 향하는 중간에 애매하게 현관문이 자리 잡았어. 어쩔수 없지. 집값은 쌌으니까 그런 것에 일일이 예민하게 굴 필요 없고. 현관문에 들어서면 세탁실이 보이고 중문을 지나 거실이……. 그래. 그런 눈을 하지 않아도 말을 줄이려고 했다. 간략하게 오른쪽부터 큰 방, 작은방이 있고 부엌문이 있으며 정면에 화장실, 그 옆으로 안방이 있어. 취미가 고약한 집주인 탓에 웃기지도 않을 진한 분홍빛의 방문들은 마치……. 음, 그래. 마치 싸구려 술집 같았지. 이런 집이라고 해서 그 집에 사는 가족이 싸구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지, 그들은 서로 가끔 죽일 듯 노려보고 저주를 퍼붓지만. 입만 닫고 있다면 평화롭기 짝이 없는, 아주 평범한 가족이지. 어쨌든 철없는 큰딸, 무뚝뚝한 둘째 아들, 일하느라 바쁜 아내와 삶에 찌든 남편까지. 완벽한 가족이란 이런 걸까! 나는 누구냐고? 그건 나중에. 그래, 오늘은 이 가족들이 겪은 얼어붙는 공포심 까지는 아니라도 발끝을 스치는 기분 나쁜 공기쯤은 가져다줄 이야기다.
3 이름없음 2020/09/29 07:04:04 ID : O7dRyGsi9vC 0
때는 작년 이맘때, 아니 좀 더 이른 가을장마가 휘몰아칠 때쯤이었나. 그 가족이 이사오고 꼭 1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쏴아아, 창문을 거세게 흔들고 두드리는 비바람에 먹구름까지. 그날은 왠지 더 어두운 날이었다. 또, 그 장마라는 것이 어찌나 지독한지. 무섭도록 쏟아지는 빗줄기에 큰 딸은 이러다 옥상에 고인 물이 무거워 천장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을 지경이었다.
4 이름없음 2020/09/29 12:10:53 ID : hbvdzQtz9jt 0
보고잇져!
5 이름없음 2020/09/29 18:51:06 ID : 42Mi5SIIIHD 0
오오 필력.. 보고있어!
6 이름없음 2021/03/27 22:13:13 ID : Bbu1a2rfhBB 0
ㄹㄷ괴담 느낌나고 좋다 필력 짱임 굿굿 ㅂㄱㅇㅇ!!
7 이름없음 2021/03/27 22:19:41 ID : zRDzgp87e6m 0
친구야..2020년 9월스레잖아..
8 이름없음 2021/03/27 22:23:46 ID : Bbu1a2rfhBB 0
아 ㅁㅊㅋㅋㅋㅋㅋ 근데 이거 왜 올라와 있었지 검색도 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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