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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1/08/06 21:37:23 ID : bfTO5QljwE6
구레딕에서부터 풀던 썰인데 결국 한 번도 끝까지 쓰지 못했네...ㅎ 스레딕 진짜 오랜만이다. 이 사이트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그립다. https://thredic.com/index.php?document_srl=20559417 구레딕에서는 '빙글빙글빙글'이란 제목으로, 그리고 여기에서는 2018년 즈음에 글 쓰다가 잠수탔었는데 아는 레더들 있으려나? 상단 링크가 그 썰이야. 한 2년 정도 스레를 방치했던 주제에 완결을 지으려고 결국 돌아왔어. 정말로 한 번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어지는 얘기니까.
이름없음 2021/08/06 21:42:03 ID : bfTO5QljwE6
일단 썰 풀기 전에 경고 겸해서 알아둬야 하는 것들. 1. 이 썰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과거완료시제. 2. 현재 스레주는 지극히 멀쩡히 잘 살고 있음. 3. 지명, 인물, 사건 순서, 시간대를 포함해 사건의 큰 틀을 제외한 거의 모든 디테일을 바꾸어 쓸 예정임. 그래서 서술상의 모순이 있을 수 있음. 4. 기승전결이 완벽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닐 예정임. 어떤 멍청이의 장장 15년에 걸친 장대하고 허무한 뻘짓 이야기임. 그리고 그 멍청이는 바로 나지. 5. 괴담보다는 차라리 흑역사판에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처음 이 글을 썼던 게 괴담판이었으므로 그냥 괴담판에 씀. 6. 폭력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있음. 유혈 표현 있을듯. 조심해줘.
이름없음 2021/08/06 21:43:29 ID : 5WrBvu1hbu2
응응
이름없음 2021/08/06 21:43:45 ID : jh9dA7AqmE3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8/06 21:49:51 ID : bfTO5QljwE6
내 청소년기를 잡아먹었던 악몽이 있었어. 유아기 즈음 시작됐던 지긋지긋하고 긴 악몽이었어. 비유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꿈. 악몽. 며칠에 한 번씩 방문하는 친구처럼 날 떠나지 않았던 같은 꿈.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야 이 모든 일이 대충 정리됐고 난 더 이상 그 꿈을 꾸지 않게 되었어. 이건 멍청한 괴담중독 여자애가 자기 꿈의 뿌리를 찾겠다고 설치면서 멍청한 일을 벌이는 이야기야. 그리고 그 몇 년간의 뻘짓 끝에 내가 알게 된 거라고는 난 사실 그닥 특별한 인간이 아니었고, 인간의 정신은 지극히 취약하고, 때로 어린아이는 굉장히 잔인해질 수 있으며, 결국 귀신이고 저주고 자시고 제일 끔찍한 건 인간이라는 것 정도겠네. 그리고 추억은 때로 그냥 묻어두는 편이 제일 아름답다는 거? 딱 그 정도. 그만큼 생산성 없는 얘기야.
이름없음 2021/08/06 21:57:20 ID : s4K1A1woGle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8/06 22:01:30 ID : bfTO5QljwE6
기억을 되살리는 것에 제일 효과적인 건 냄새라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순간 아찔해지면서 과거의 어떤 한 순간으로 돌아가는 경험 다들 한 번 정도는 느껴봤지? 사실 내가 2021년 한여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따위는 이제 동창회의 술안주로 여겨질 정도로 하찮아진 시점에 다시 이 사이트로 돌아온 것도 그 경험 때문이야. 오늘 친구 만나고 가볍게 걸쳐서 살짝 알딸딸한 상태로 집 들어오는데... 페인트통 뚜껑도 안 닫고 그냥 퇴근하기로 한 건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어디 사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감사하네요(반어법임. 하나도 안 감사해 시발). 그 페인트 냄새랑 습기 찬 철큰 콘크리트 냄새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옛날 기억에 압도당해 길거리에서 울어버릴 뻔했다. 한여름의 축축한 풀냄새, 상쾌하기보다는 끈적할 정도로 진득한 장마철의 그 나무, 젖은 흙 냄새. 그리고 페인트 냄새. 어딘가에서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새가 죽어 썩어들어가고라도 있는지 묘하게 들척지근한 썩는 냄새가 나고... 살짝 서늘한 밤공기. 그리고 시발 옛날 주황색 가로등. 벌레가 끓어서 틱틱 소리가 나는 그 옛날 가로등 시발. 도대체 이 동네는 왜 아직도 가로등이 주황색이냐? 그 덕분에 복합적으로 다 생각났다. 대충 기억 아래에 묻어두고 다 극복했다고 자기암시를 걸고 있었는데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5살 꼬꼬맹이 시절 트라우마에 쫓긴다는 그 사실을 새삼 알아버렸다.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님. 절대 아님.
이름없음 2021/08/06 22:13:13 ID : bfTO5QljwE6
우리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무렵 느꼈던 전능감을 추억하지. 내가 뭐든지 될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믿었던 그 전능감 말이야. 어른이 되면서 그 근자감은 착착 갉아먹혀 마침내는 애처로운 현실감각만이 남게 되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 때 추억하는 건 보통 그런 거지. 유년기의 환상, 모험, 꿈, 기타 등등 유니콘과 무지개로 범벅이 된 그딴 환상동화. 우리는 유년기의 공포를 너무 쉽게 잊는 것 같아. 진심이야. 보호자의 비호 없이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죽어버릴 수 있다는 그 나약함. 그리고 그 나약함이 주는 한없는 공포를 우린 정말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 평소에 다니던 길을 단 한 발짝만 넘어가 어두운 수풀 너머를 들여다봤을 때, 그 공포를 기억해? 아직 세상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아이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었던 그 무렵만의 공포. 어린아이의 삶은 '당연함'이라는 단어로 채워져 있지. 당연히 엄마는 날 사랑해. 당연히 난 착한 아이야. 당연히 내일은 유치원에 갈거야. 당연히 오늘 밤에도 난 집으로 돌아갈거야. 경험한 루틴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으니까 '당연히'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것이라 믿는거야. 그리고 그 개같은 '당연함'이 깨어지는 건 어린아이들에게는 세상의 멸망과도 같아. 그리고 난 아마 5살 무렵에 그 멸망 비스무리한 경험을 했어.
이름없음 2021/08/06 22:13:39 ID : bfTO5QljwE6
술 들어가서 구구절절 말 길어지네 양해바람.
이름없음 2021/08/06 22:19:28 ID : bfTO5QljwE6
잡설 길었다. 미안. 일단 이 모든 건 내가 여름이라는 계절을 싫어하게 된 이유에 대한 한탄이야. 이 길고 괴상한 이야기의 거의 모든 이벤트가 여름에 일어났으니까. 난 아마 죽을 때까지 여름을 생명이나 열정의 계절이라기보다는 부패의 계절로 기억하게 되겠지. 한쪽 날개가 떨어진 채 길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매미, 납작하게 밟혀 짜부러진 새끼 새의 시체와 거기에 끓는 구더기, 땀에 전 손바닥 위로 들러붙던 부서진 매미 허물, 어딘가에서 썩고 있을 마네킹의 문드러진 얼굴 따위나 생각하게 되겠지. 와 개같다. 이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트라우마는 내가 품고가냐? 나도 여름에 하이킹 좀 가보자 어우.
이름없음 2021/08/06 22:21:08 ID : bfTO5QljwE6
맥주를 위장으로 부어넣으며 타닥타닥 인생한탄을 하다가 문득 제정신 들어서 다시 경고할게. 이거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불쾌한 얘기야. 읽어준다면 난 감사해하겠지만, 면역 없는 사람은 빠르게 여기서 도망쳐줘.
이름없음 2021/08/06 22:27:53 ID : bfTO5QljwE6
근데 사실 내 잘못이기도 하구나.
이름없음 2021/08/06 22:30:33 ID : bfTO5QljwE6
나 진짜 미친 쓰레기새끼였네 옛날 일기 보니까
이름없음 2021/08/07 09:50:15 ID : nwnCo3QoK7A
다시는 술 안마실거야 위장아파 죽겠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는 서울 근교의 낙후된 배드타운이었지. 아마 이 글을 읽는 레더들이라면 하나 정도는 떠올릴 법한 그런 작고, 근처에 산과 계곡이 있는 배드타운. 유난히 나무가 많았더랬어. 지금에 와서는 재건축이니 뭐니 해서 죄다 갈아엎어져 옛날 모습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결국 모든 사건은 시간순대로 푸는 게 맞겠지? 전 스레에서 이미 적었던 내용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볼게. 5살 무렵의 내 짧은 실종, 그리고 내가 보인 이상행동, 그리고 그 이후로 쭉 이어진 15년 가량의 지긋지긋한 악몽에 대해서야. 어린 시절의 작은 경험이 어떻게 이후 인생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길고 쓸데없이 장대한 기록이겠다.
이름없음 2021/08/07 09:54:20 ID : nwnCo3QoK7A
난 어렸던 시절 겁이 많고 소심했던 아이였어. 말하는 건 느렸지만 글을 읽는 건 이상할 정도로 빨랐고, 그래서 친구들과 노는 대신 혼자 책을 읽는 일이 더 많았던 꼬맹이였어. 나에게 또래 친구라는 건 거의 없었고 부모님은 이런 나를 걱정하셨지. 1990년대 중반 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련가 모르겠다. 아직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저주가 우리의 정신머리를 잡아먹기 이전의 일이야. 학교 끝나고 옆집 문을 두드리면서 누구누구야 놀자~ 따위를 부르던 시절이었어. 우리 동네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아이들은 뭉쳐다니며 놀았고 어느 정도의 나이차는 개의치 않아했지. 물론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5살 무렵 난 겉돌고 있었어. 그런 나를 걱정한 부모님이 옆집 동갑내기 남자아이랑 짝을 지어 밖으로 내보내셨지. 가서 놀고 오렴.
이름없음 2021/08/07 10:47:45 ID : eFbcoJTRDs8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8/08 15:36:12 ID : jAmE3va4HA1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8/08 18:17:03 ID : nwnCo3QoK7A
사실 썼던 얘기 또 쓰기 너무 귀찮으니까 전 스레에서 대충 긁어올게. 좀 수정하기도 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냥 복붙이야. 밖으로 나가자마자 그 남자애는 당연하다는 듯이 날 두고 초등학교 남자애들 무리에 합류했고 난 꿍시렁대면서 가지고 나온 책을 읽었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기억해. 그 당시의 나는 몽상가였고 책벌레였지. 현실보다는 책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았고, 아직 픽션과 현실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나이였고. 무슨 이유였던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난 혼자 앉아있던 벤치에서 내려와서 어디론가 아장아장 사라져 버렸어. 아마도 정황상 토끼풀을 뜯으러 갔던 거 같은데 잘은 모르겠다. 저녁을 먹을 때가 되어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니 온 동네가 뒤집어졌지. 그때까지는 아직 이웃들 간의 정이라는 게 있었던 시기니까. 어른들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온 동네를 뒤졌어. 퇴근하셨던 사서분께서는 일부러 도서관에 돌아가셔서 다시 도서관을 뒤지기까지 하셨어. 행여나 내가 그 안에서 잠이라도 들었을까봐. 내 부모님들께서는 겁에 질리셨고 날 따돌리고 계곡에 놀러갔던 앞집 남자애는 호되게 혼났다고 해. 이건 지금 생각해도 좀 미안한데. 그리고 오후 여덟시가 넘어갈 무렵에 아버지가 나를 발견하셨어. 우리 집 뒷편의 쓰레기장에서. 쓰레기장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고물 집하장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겠다. 이사를 가면서 사람들이 가구나 물건들을 두고 간 게 쌓인 곳이야. 낡은 침대나 옷장, 인형, 페인트, 비닐 천이나 심지어 찢어진 비닐하우스에 폐차까지. 그 위에는 풀이니 넝쿨이니 하는 게 잔뜩 자라서 어쩐지 세기말스러운 분위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 우리 동네 애들은 거기서 엄청 놀았어. 부모님들은 위험하다며 말리셨지만 뭐 그 나이 애들이 부모님 말을 듣던가? 거기에는 동네 꼬마들이 만든 아지트가 제법 많았고 개중에는 내것도 있었어. 난 친구가 없었지만 아지트는 가지고 싶어했었거든. 침대의 뼈대에 낡은 천막천을 씌운 그건 5살짜리의 솜씨답게 굉장히 조잡했지만 나 하나 들어가기에는 충분한 사이즈였어.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날 발견한 것도 그곳이야. 처음에는 그냥 쓰레기 더미인 줄 아셨지만, 그 안에서 뭔가가 바스락대는 소리를 듣고 안을 들여다보셨다고 해.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리고, 늦여름의 공기는 후덥지근하고, 모기는 날아들고. 그리고 그 안의 어두운 공간에 내가 앉아 있었대. 맨바닥에, 가슴팍에는 책을 끌어안고서. 아버지는 안도하고 나를 끌어내려고 하셨어. 근데 내 상태가 좀 이상했다는 거야. 얼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하고 온 몸이 흙투성이였대. 그리고 무엇보다 팔에 모기가 몇마리나 앉아서 피를 빨고 있었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이 계속 '빙글빙글'을 중얼거리고 있더래. 어쨌든 아버지는 날 꺼내려고 내 아지트 천장을 걷고 나에게 손을 뻗었어. 그런데 아버지의 손이 닿는 순간 내가 비명을 질렀대. "하지마"와 "오지마"의 중간쯤 되는 비명이였다나. 난 순해빠진 꼬마였고 큰 소리를 낸 적이 거의 없었어. 그런 내가 실성하듯 비명을 질렀으니 아버지는 많이 놀라셨대. 초보 아빠는 울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몸부림치는 날 껴안고 집으로 뛰셨다고 해. 난 그러다가 뻗어서 잠들었고, 살펴보니 애가 어디 아픈 것 같지는 않아서 일단 집에 데려와서 재웠대. 그리고 다음 날 나한테 어디 갔었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니까, 난 빵 가장자리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졸렸어"라고 태평하게 대답하고 입을 다물었다나.
이름없음 2021/08/08 18:19:56 ID : nwnCo3QoK7A
기억이란 건 얼마나 상대적이고 바뀌기 쉬운 걸까. 특히 자기가 가해자인 사건을 마주할 때 정확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난 이 사건에서 가해자일지도 몰라. 어렸다는 게 면죄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난 정말 끔찍한 인간이었어. 그리고 내 머릿속에 트라우마를 남긴 건 그 사실 그 자체야. 내가 잔인하고 정신나간 또라이 꼬맹이었다는 그 사실 자체. 어쨌든 사담이 길었고, 계속 얘기해볼게.
이름없음 2021/08/08 18:21:59 ID : nwnCo3QoK7A
난 이 사건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게 전혀 없어. 앞집 남자애가 날 두고 가버리던 건 기억나지만 이게 그 사건 당일의 기억인가는 확실하지 않아. 내가 왜 그 아지트에서 혼자 그러고 있었는지, 내가 벤치를 떠난 오후 한시부터 여덟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난 오랫동안 몰랐어. 중간에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서 내가 도서관에 혼자 왔다 갔다는 말을 해주셨기는 한데(도서관이 성인 걸음으로 걸어서 5분 거리거든. 꼬맹이한테는 10분?) 내가 도서관에 나타난 것도 2시 정도거든. 그러면 내가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거기 있었다 쳐도, 도서관 이용시간이 끝나는 저녁 6시부터 내가 발견된 8시 사이의 공백은 도무지 무슨 일이였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그리고 그 날 이후부터 난 계속 꿈을 꾸었어. 하얀 벽의 원통형 건물이야. 벽에는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수없이 꽂혀 있고, 비어 있는 천장에서는 햇살이 비쳐 들어와. 건물 내부는 밝고 차분한 분위기야. 벽면을 따라서 내려가는 통로가 있어. 건물이 원통형이라고 말했지? 그러니까 통로는 커다란 나선계단 형태지. 설명하기 좀 어렵네. 화장실 휴지의 심을 생각해봐. 그런 모양의 건물이고, 내부 벽을 따라서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맨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연결한다고 치면 그 내리막길은 나선계단처럼 빙글빙글 돌게 되지? 그런 꼴이라고 생각하면 돼. 꿈에서 난 그 건물 안에 있고, 그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어. 그리고 뒤에서는 항상 뭔가가 쫓아와.
이름없음 2021/08/08 18:22:29 ID : nwnCo3QoK7A
내가 그 꿈을 꾸는 건 잦으면 일주일에 두어 차례, 가장 드물 때는 한달에 한 번. 난 그 꿈을 거의 십여년간 계속 꿔왔어. 자주 꿀 때도, 드물게 꿀 때도 있었지만 그 꿈을 한달 이상 꾸지 않았던 적도 없었지. 그 꿈 속에서 나는 어린아이야. 그리고 나는 공포에 잔뜩 질려서 그 건물의 내리막길을 따라 달려내려가고 있어. 뒤에서는 항상 뭔가가 나를 쫓아오고 있지. 죽은 돼지였던 때도, 낡은 고양이 인형이였을 때도 있었어. 하지만 가장 많이 나오던 건 낡은 마네킹이야. 내가 살던 그 동네의 쓰레기장에는 마네킹이 잔뜩 버려져 있었던 곳이 있었어. 낡아서 부서지고 때탄 마네킹들의 위로 음침한 분위기의 넝쿨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지. 소나무가 잔뜩 자라서 항상 음울한 분위기였던 그 쪽으로는 어떤 아이도 혼자 가지 않았어. 분위기가 매우 무서운데다 인적도 별로 없어서, 부모님들의 만류 이전에 일단 아이들부터가 그곳을 피했었지. 하지만 난 내가 사라졌었던 날의 사건과 꿈이 뭔가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당연하잖아? 나한테 그 꿈은 일상 같은 거였어. 기억조차 희미한 유년기부터 계속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그 사건이 얼마나 이상한 것이든 간에 그건 그냥 일상이 돼. 뭔가 이상하다며 의심을 할 이유도 없는 거지. 난 모든 사람들이 나 같이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꾸는 줄만 알았어. (내가 꾸는 꿈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뒤로 거의 10년이 지나서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야.) 나에게 그 꿈은 지독한 악몽이였어. 항상 그 꿈을 꾸고 난 다음에는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가끔씩은 엄청난 공포와 함께 한밤중에 깨어나기도 했었지. 그래도 뭐 일상이였으니까, 난 사소한 수면장애가 있긴 해도 그냥 평범한 아이로 자랐어. 내가 살던 그 문제의 동네는 재건축을 하게 되었고 난 근처의 주택가로 이사하게 되었지. 걸어서 15분 쯤 걸리는 가까운 곳이였어.
이름없음 2021/08/08 18:22:57 ID : nwnCo3QoK7A
여름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정말로.
이름없음 2021/08/08 18:23:15 ID : nwnCo3QoK7A
그렇게 한 5년을 보내다가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이였나? 그 즈음에 난 내가 내가 어린 시절에 짧게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는 수도권치고는 말도 안되게 작고 유동인구가 없는 곳이야. 길을 걷다 보면 아는 얼굴과 수없이 마주치고, 유치원 동창이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동창으로 이어지는 그런 조그만 동네지.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타인은 날 기억하고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매우 익숙했고, 그 날도 그런 경우였어. 난 이사한 다음부터는 내가 어렸을 때 자주 가던 그 도서관에 가지 않았어. 이사한 집 근처에도 작은 도서관이 있었으니까 그 쪽으로 갔었지.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 다녔던 그 도서관에서 내가 전부터 보고 싶어했던 영화를 상영해 준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친구랑 손을 잡고 쭐래쭐래 도서관에 영화를 보러 갔었어. 그런데 어딘가 익숙하지만 누군지는 잘 알 수 없는 어떤 중년 여성분이 나한테 엄청 살갑게 인사를 하시는 거야. 알고 보니까 그 분께서는 내가 위에 상기한 바 있는, 도서관 단골이였던 나를 퍽 예뻐하셨던 그 사서분이셨어. 내가 그 분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그 분은 조금 섭섭해하시며 "스레주야~ 내가 너 없어졌을 때 도서관까지 다시 다 뒤지면서 찾아줬었는데, 이렇게 선생님을 잊어버리면 어떡하니~" 라고 너스레를 떠셨지. 난 어색하게 웃으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쳤고. 원래 그런 분이랑 만나면 정말 옛날,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할 얘기가 없지. 사서 선생님께서는 내가 반가우셨던지 아이스크림을 사 주시며 내가 어렸던 시절의 우리 동네 얘기를 늘어놓으셨고 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그걸 어색하게 들어야 했어. 어쨌든 그 날에 난 내가 온 동네를 발칵 뒤집어놓는 실종 사건의 주인공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무사히 돌아오긴 했지만. 뭐 이 사건도 딱히 별 일 없이 지나갔어. 내가 내 꿈과 내 짧은 실종이 뭔가 연결되어 있지 않나 의심하기 시작한 건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이니까. 내가 어린 시절 살던 동네의 재건축이 끝나고 우리 가족은 다시 그 동네로 돌아가게 되었어.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난 중학생이 되었지.
이름없음 2021/08/08 18:23:42 ID : nwnCo3QoK7A
우리 동네는 수도권 근교의 조금 낙후된 배드타운이였어. 산이 있고, 나무가 많고,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으슥한 수풀과 비허가 쓰레기장. 그리고 마네킹. 우리 동네에는 마네킹이 정말 많았어. 버려진 낡고 더러운 마네킹이 줄지어 길가에 서 있었던 게 또렷하게 기억나. 아무리 더럽고 버려졌다 해도 인간을 닮은 물건은 왠지 함부로 대하기 꺼려지지. 약간 금기같은 느낌이 들잖아. 인간을 닮은 인형의 목을 함부로 자를 수 없는 것처럼 난 마네킹도 왠지 함부로 손상시키기 무서웠어. 하지만 내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지지. 누가 더 또라이같고 누가 더 반사회적인 짓을 저지르느냐가 남자아이들 사이의 서열을 정하던 시기인걸. 우리 반 아이들 중에서는 독보적인 애 하나가 있었어. 폭력적이고, 걸핏하면 욕설을 하고, 여자아이들에게 성희롱을 퍼붓는 걸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추앙받는 그런 유형의 미친놈 있잖아. 개구리 해부를 하는 날이면 다리를 잘라서 그날 하루종일 휘두르고 다니는 그런 애. 걔를 A라고 부를게. A와 나는 근처에 살고 있었어. 나는 만성적인 수면부족으로 음침하기 이를데가 없는 찌질한 여자애였고 걔는 우리 반을 대표하는 일진이였고. 하여튼 이건 마네킹이랑 A에 대한 이야기야. A는 나를 싫어했어. 난 조용하고 음침한데다 딱히 잘난 것 하나 없는 찌질이였고, A는 누군가를 찍어누르는 것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딱 그 나이 또래 남자애였고. 서로 궁합 잘 맞겠지? 직접적인 신체적 폭력이나 물품 갈취는 없었어. 대신 내 공책에 적는 성적인 욕설이나 대놓고 앞에서 날 바라보며 말하는 강간해버리자는 앞담이 주였지. 난 멍청해서 그게 학교폭력인 줄 몰랐고, 그래서 신고도 하지 않았어.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여름쯤 됐을 때였어. 말했지만 우리 동네에는 마네킹이 많았어. 토막난 몸뚱이처럼 해체돼서 굴러다니는 팔다리와 허리, 머리통이 수풀에 쳐박혀 있고는 했어. 어디 옷가게가 폐업하면서 버렸다더라, 지금은 못 들어가는 폐가가 원래는 마네킹 공장이였다더라 하는 얘기는 많았지만 그 중 어떤 것도 확실하지는 않았어. A는 그런 마네킹을 보다가 진짜 괴랄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나중에 들은 거지만 걔네는 처음에 나를 상정하고 그런 장난을 친 건 아니라고 해. 그냥 마네킹을 짜맞추고 거기에 성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놀다가 걔네가 모여있던 골목이 내가 저녁마다 지나가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왕 짜맞춘 마네킹을 그냥 던져두기도 그래서 나나 놀려먹자는 식이 된거라고 하더라.
이름없음 2021/08/08 18:23:56 ID : nwnCo3QoK7A
옛날 가로등 불빛 기억하는 레더 있어? 주황색, 가끔 깜빡거리고, 램프 안에는 벌래 시체가 쌓여서 빛을 흔들리게 하는 그런 진한 주황색 불빛 있잖아. 그 때는 초여름 해질녘이었고 모기가 더럽게 많아서 나는 팔다리를 가끔 쓸어내리면서 골목을 지나가고 있었어. 매타세콰이어 나무가 양옆에 크게 자라서 어둑어둑했기 때문에 가로등 불빛 말고는 괄목할만한 광원이 없었어. 그 골목길은 으슥했어. 나무가 잔뜩 자란 가파른 둔덕과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가득한 아파트 화단 사이를 가로지르는 낡은 시멘트 길이였어. 아무도 지나는 사람이 없어서 그쪽으로 가면 안된다는 경고를 몇 번 들었지만... 그 길을 통하는 게 집까지 가는 데는 가장 빨랐으니까 난 언제나처럼 그냥 그 길목을 지나고 있었어. 근데 아무생각 없이 매미 허물을 하나 집어들고 걷고 있는데 길 저편에 뭔가가 있더라고. 팔다리가 토막난 채로 짜맞춰져 있는 마네킹이 길바닥에 누워 있었어. 머리가 핑 도는 기분 알아? 옛날에 있던 어떤 일이 어떤 계기로 갑자기 생각날 때 드는 기분 있잖아. 오랫동안 잊고 있었고 별로 기억해낼 가치도 없는 일이 갑자기 의식의 표면 위로 확 끌어올려질 때 드는 그 기분. 정신이 아득하고 어지러울 정도였어. 기분이랑 같이 구역감, 공포,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잡다한 감정이 머리를 강타했어. 주황빛 가로등 불빛 아래에 마네킹이 쓰러져 있었어. 난 가로등 불빛이 그려낸 그림자 때문에 사실 그게 마네킹인 줄도 몰랐어. 난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어. 숨이 막혀서 그 정도의 힘도 없었거든. 그대로 다리가 풀려서 시멘트 바닥 위에 쓰러졌어. 스타킹 올이 풀리고 다리가 긁혔지만 그건 안중에도 없었어. 공포영화에서 살인마를 앞에 둔 주인공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건 과장이 아니더라고. 일어날 정신도 없었고 쓰러진 채로 어떻게든 마네킹에서 멀어지려고 꼴사납게 질질 짜면서 버둥거렸어.
이름없음 2021/08/08 18:24:09 ID : nwnCo3QoK7A
내 손 안에서 매미허물이 박살나서 뭉그러지던 감각이 기억나. 애매미 허물이였나? 보기 드문 거여서 신기해서 집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뭔지도 모르겠다. 난 중학생 때 곤충을 좋아했고 그것도 따돌림 원인 중 하나였거든. 어쨌든 나는 꺽꺽 울면서 바닥에서 버둥거리다가 간신히 이성을 찾았어. 건물 그림자 뒤에서 한 무리의 애들이 나왔거든. 평소에는 꼴보기도 싫었던 애들이였는데 공포로 이성이 나가있던 그때는 진짜 구세주 같았어. 나는 비명을 지르며 마네킹을 지나쳐 그 애들에게로 달려가 매달렸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어. 진짜 죽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걔는 당연하게도 A였어. 걘 깔깔 웃어대며 눈물로 범벅된 내 얼굴이 더럽다며 날 뒤로 밀었어. 내가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여서인지 당황한 것 같던 다른 남자애들도 리더격인 A가 웃자 다들 같이 비웃었어. 근데 진짜로 내 알 바 아니였어. 난 진짜 무서워서 돌아버릴 지격이였거든. A가 밀자 난 마네킹 옆으로 쓰러졌어. 진흙과 페인트 따위로 더러워지고 이목구비가 갈려나간 토막난 마네킹 위로 넘어진 나는 교복 치마가 뒤집어지든 말든 바둥대며 마네킹에서 떨어지려고 애를 썼어. 그 이후 걔네가 학교에서 날 뭐라고 불렀고 그래서 내가 어떻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 스킵. 중요한 건 내가 마네킹에 지독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근데 왜 하필 그 날 그 때 그렇게 과민반응을 보였을까? 난 평소에 마네킹을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 집 옆에 마네킹이 있든 없든 그건 내 알 바 아니였다고. 마네킹 머리가 굴러다니는 옆에서 소풍 놀이를 하면서 컸단 말이야. 근데 강조하지만 난 그 때 사춘기였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내 인생에는 무슨 특별한 서사가 예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을 시기였단 말이지. 특별한 거 없고 음침한 애였던 내가 내 인생의 '특별함'을 어디서 찾았겠어? 내 꿈이야. 보통 사람들은 반복되는 꿈을 꾸지 않는데 나 혼자만 반복되는 꿈을 꾼다는 걸 알아차린 뒤에 난 좀 흥분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나한테 무당 혈통이 있는 거 아니냐는 망상까지 했다.
이름없음 2021/08/08 18:25:17 ID : nwnCo3QoK7A
지속적인 폭력은 사람을 돌게 만들지만 동시에 무뎌지게 만들기도 한다고 생각해. 그 후 중학교 1년은 어떻게든 흘러갔어. 이후 난 친구가 생겼어. 근데 그걸 친구라고 불러야 하나...? 어쨌든 걔를 B라고 부를게. B는 중학교 2학년답게 괴담이나 오컬트에 미쳐있는 애였어. 근데 나도 같이 미쳐있었으므로 할 말은 없다. 사실 나 이거 구레딕에서도 풀다가 사라졌었어. 그 때가 내가 고등학생 때였나? 내가 아직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을 때였고. 그때는 난 아직 내가 특별하다고 믿는 중2병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무렵이였고, 아직 귀신이니 원혼이니 하는 것들을 믿고, 괴담과 오컬트를 좋아할 때였지. (근데 사실 괴담이랑 오컬트는 지금도 좋아행.) 하여튼 그래서 괴담판에 내 꿈 얘기를 풀었었어. 내가 무슨 악령의 저주에 걸린 줄 알았거든ㅋㅋㅋㅋㅋ 그래서 그 때는 내 꿈 얘기를 하면서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이걸 어쩌지?'가 주된 내용이였어. 주로 꿈에 대한 설명과 나한테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대해 얘기했었고. 혹시 그거 봤던 사람도 있으려나?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어'라는 스레였던 것 같은데. 미안 잡소리가 길었다. 마저 풀게. B와 나는 순식간에 친해졌어. B는 그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태도에 단호한 말투를 가진 여자아이였어. 사실 내가 동경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이였지. 난 B를 거의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로 의존했어. 난 학교폭력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사회성 없는 애였고, 친구의 존재는 진짜 너무 달콤했단 말이야. B와 나는 괴담, 오컬트 이야기로 의기투합했어. 서로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고 강령술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실행하자고 떠들었지. 내 꿈 얘기가 나온 것도 그때였어. 내가 반복되는 악몽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B는 적잖게 흥분했어. 몽마, 저주, 원령... 진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괴담의 래퍼토리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나를 쫓아오는 그 무언가가 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한다'였지. 그래서 뭘 했겠어? B는 나에게 이번에는 꿈에서 좀 다르게 행동해볼 것을 권유했어. 반대로 뛰든, 난간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리든, 아니면 나를 쫓아오는 그 '무언가'에게 붙잡히든 간에 뭐든지 해보라고. 그러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거라고. 하지만 난 괴담판 잔뼈가 긴 공포물 매니아였고, 그래서 '보통 그렇게 행동한 놈들이 가장 먼저 죽지 않냐?'라고 대꾸했어. 뭔가 해보겠다고 나대다가 죽는 건 공포물 클리셰잖아. 꿈 속에서 다른 걸 시도하는 것은 뭔가 위험할 것 같았거든. 하지만 B는 굳건했어. 뒤에서 뭔가가 쫓아오는 이유는 그것이 너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으니 원한을 풀어줘야 한다. 너에게 영감이 있는 것 아니냐. 넌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이 당시에는 꽤 솔깃했어. 말했잖아, 난 나를 특별하다고 믿고 있었다니까. 그 날 밤에도 나는 꿈을 꿨어. 하얀 건물과 나선형 비탈길, 뒤에서 뭐가 쫓아오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마네킹이였겠지. 하지만 꿈 속의 나는 그 날도 그냥 도망칠 뿐 그 외의 다른 행동은 할 수 없었어. 자각몽이 아닌 이상 꿈 속의 자신을 마음대로 컨트롤한다는 건 애초에 가당찮은 짓이였겠지. 다음날 B는 크게 실망했어. 왜 그랬냐며 나를 다그치는 B를 나는 더 이상 실망시키기 싫었어. B는 내가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까. 난 버림받는 게 너무 무서웠거든. 그래서 그날 밤 난 계속 한 가지를 중얼거리다가 잠에 들었어. 뒤로 달릴 것, 뒤로 달릴 것, 뒤로 달릴 것. 운 좋게도 그날밤에 난 또 꿈을 꿨어. 하지만 뭔가가 좀 달랐어. 내가 꿈 속에서 늘 가던 건물의 바닥은 흙바닥이 되어 있었던 게 기억이 나. 내가 움직일 때마다 진한 주황색 불빛이 어둑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벽에 꽂혀있던 책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어. 천장의 박제된 새와 공룡 모형도 없었어. 대신 창문 밖으로 어두운 공원이 보였어.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랑 같이. 그리고 내가 달려 내려가야 할 앞길은 공사장처럼 낡고 녹슨 철봉으로 얼기설기 막혀 있었지. 꿈 속의 나는 도무지 그걸 넘어갈 수가 없었어. 하지만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억지로 그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데, 위화감이 느껴졌어.
이름없음 2021/08/08 18:25:37 ID : nwnCo3QoK7A
왜 도망가야 하더라? 의문이 든 꿈 속의 나는 뒤를 돌아보았어. 그리고 내 뒤를 쫓아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어. 꿈 속인만큼 사고는 느리고, 비틀린 방향으로 나아갔어. 나는 내가 평소에 꾸던 꿈과 지금 내 상황이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지.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꿈 속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던 건 아니야. 대신 나는 공포에 빠졌어. 어떻게 해, 아무도 안쫓아오네. 이러면 B가 화를 낼텐데. 그렇게 비논리적인 결론을 내려버린 꿈 속의 나는 나선형 건물의 위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어. 날 쫓아오는 '누군가'가 있어야만 B와 얘기할 거리가 있으니, B에게 버려지지 않으려면 난 그 '무언가'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발 아래로 잘그락대는 흙바닥의 감촉이 너무 생생했어. 오르막을 올라간 끝에 어느샌가 내 옆으로는 수풀이 자라났고, 난 언제부터인가 공원을 걷고 있었어. 꿈 속의 배경은 아마 여름 즈음이였을 거야. 가로등 아래에서 벌래가 날고 있었으니까. 꿈 속의 공원에 가득했던 그 먹먹한 침묵과 긴장감을 견디지 못할 지경이였을 무렵 난 발을 헛디뎌 안전매트가 깔린 바닥 위로 넘어졌고, 바닥에 무릎이 닿음과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어. 그리고 난 루시드드림을 연습중이였기 때문에 바로 꿈일기에 그 꿈을 적었어. 손에 땀이 흥건해서 종이가 살갗에 달라붙었어. 창 밖으로 비쳐드는 가로등 불빛이 주황색이 아니라 흰색이란 사실이 반가웠어. 난 더 이상 그 공원에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거든.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B는 기뻐했어. 자기가 말한 게 역시 옳았다고 으스댔지. 그녀는 나에게 그 꿈 속의 공원을 알고 있냐고 물었어.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어. 실제로도 그 공원을 알고 있었거든. 악몽 속 발 아래에서 느껴졌던 낡은 분홍색 체크무늬 안전매트는 분명 내가 아는 물건이였어. 내가 어릴 적 살던 도서관 옆에 딸린 작은 공원, 그리고 그 옆에 있던 그보다 더 작은 어린이집 놀이터. 그 놀이터에 깔려있던 안전매트였어. 확실해. 그쪽 동네는 싸그리 갈아엎어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도서관은 아니였지. 도서관과 공원은 아직 옛날 모습 그대로일 거야. B는 내가 그 공원에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어. 하지만 거긴 여기서 버스 3정거장 거리고, 우린 기말고사 기간이였지. 학원도 가야 하고 말이야. B와 내가 학원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에 공원에 가보자는 얘기는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어. 그렇게 내 꿈 얘기도 공원도 우리 사이에서는 잊혀지고 말았고. 결국에는 이 이야기 전체가 통채로 심심한 여자애 둘의 심심풀이 땅콩일 뿐이였으니까. 그렇게 여름방학이 되었어. B는 우리집과 꽤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갔기에 그 애와 나는 여름방학 동안은 만날 일이 없었어.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그 도서관 근처로 가게 될 일이 있었어. 꿈이 생각난 나는 곧바로 그 공원을 찾아갔지. 근데 아무 일도 없고 아무것도 없더라. 여름이라서 분수에는 물이 틀어져 있었고 아이들이 거기서 꺅꺅대며 뛰어다니고 있었어. 뜨겁게 달아오른 미끄럼틀에서는 쇠냄새가 물씬 풍겼고 바닥의 안전매트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낡아서 일부를 제외하면 모조리 다 갈아엎어져 있었지. 여름이라 무성한 수풀과 매미 소리까지, 죄다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좀 많이 달랐어. 난 좀 더 음침한 곳일 거라고 멋대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거긴 결국 그냥 공원이였을 뿐이였으니까.
이름없음 2021/08/08 18:30:05 ID : nwnCo3QoK7A
좋아. 다 긁어왔다. 매미 소리를 들으면 아직도 17살 무렵의 나 자신이 생각나. 이제 술을 사든 담배를 사든 민증 검사를 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난 아직도 그 날의 기억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어. 그리고 이 기억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차라리 전부 털어놓고 편해지고 싶어. 하지만 솔직히 말하건데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혹시라도 내 신상이 특정될까 무서워 픽션 40%에 내 경험 60%를 섞어 말하고 있고... 그 진짜 경험이라는 60%의 내 기억조차 어디까지 진실인지도 가늠하지 못하겠어. 내가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정말 순간적인 인상이나 충격 정도밖에 없어. 그리고 냄새. 페인트 냄새랑 비에 젖은 녹슨 철골 냄새. 썩은 피 냄새랑 구더기가 끓는 썩어들어가는 살점 냄새. 그건 꼭 곪은 상처 위에 오랫동안 반창고를 붙였다가, 떼어냈을 때 나는 그 역겨운 악취와도 닮아있지. 그리고 시발 뱀딸기. 뱀딸기랑 장마철의 젖은 진흙이 내 종아리에 닿던 느낌.
이름없음 2021/08/08 18:30:56 ID : nwnCo3QoK7A
다시 써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자리에 앉고 나서 맥주를 3캔 마셨어. 그냥 긁어오기만 한 건데 정신적 피로감이 장난이 아니네.
이름없음 2021/08/08 18:31:27 ID : nwnCo3QoK7A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왜 좀 더 깨끗하게 살지 못했던 걸까? 아니 시발 누구든 간에.
이름없음 2021/08/08 18:32:56 ID : nwnCo3QoK7A
처음에 구레딕에 이 글을 처음 썼을 때 난 고등학생이었어. 이 모든 게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괴담의 일환이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그 해맑았던 내가 그립다. 내가 신비하고 특별한 초자연적 괴담에 휘말렸었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 그 해맑은 멍청함이 그리워. 유감이다 멍청아, 넌 그 뒤로 2년쯤 뒤에 네가 얼마나 개새끼인지 눈치채게 될거다.
이름없음 2021/08/08 18:39:29 ID : nwnCo3QoK7A
시체 본 적 있는 사람? 크고 따뜻한 피가 흐르는 동물의 시체 눈 앞에서 본 적 있는 사람?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에 가면 큼직하게 잘린 고깃덩이를 팔지. 팔뚝보다 훨씬 두껍고 잘려나간 근육의 결과 힘줄이 그대로 보이는 고깃덩이를 팔아. 그걸 보다가 어느 순간 아, 저건 사실 소의 죽은 시체구나. 이딴 생각 든 적 있는 사람? 혹시 죽은 생물의 눈을 본 적 있어? 여름은 부패가 빠르지. 버섯 같은 것도 봐, 장마 직후 순식간에 자라났다가 검게 녹아내리면서 흐물흐물 물러터져 썩어 죽어가잖아. 정말 금방 썩어. 생명이 빠져나간 것, 살아있던 것에서 분리되어 떨어진 유기체가 썩어들어가는 속도는 정말 놀랍도록 빨라. 특히 눈은 정말 빨리 썩어. 왜지? 수분이 많아서인가? 사람은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잖아. 자폐증이 있는 아이들은 눈을 마주치기 힘겨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 그런데 내가 사람의 눈을 잘 보지 못하는 이유는 죽은 시체의 눈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야. 하얗게 뜬 그 동공을 본 적 있기 때문이야. 백내장처럼 희게 곰팡이가 슨 안구를 본 적 있어? 까마귀는 눈을 파먹는다지만 이상하게 그 시체는 멀쩡했었지. 두 눈을 뜨고 있었어. 흰색이었어. 냄새가 역겨웠어. 그 하얀색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눈은 원래 까맣잖아. 그런데 하얬어. 썩었던 걸까 아니면 백내장이 있었던 걸까? 그런데 깨끗한 흰색이 아니었어. 다 썩어들어가는 불결한 버섯같은 그 희끄무레한 흰색이었어.
이름없음 2021/08/08 18:42:08 ID : nwnCo3QoK7A
어제 악몽을 꿨어. 다행히 반복되던 그 꿈은 아니었지만 또 그 눈을 봤어. 내가 얼마나 역겨운 새끼였는지 알아차리고 다 젖은 부엽토 위에서 위장을 비워내던 그 무렵의 꿈을 꿨어. 올 나간 스타킹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얼굴에 달라붙던 머리카락과 다 썩은 마네킹에 대한 꿈을 꿨어. 억지로 그 기억을 눌러넣고 오늘 퇴근해서 이렇게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지만 역시 난 아직 그 과거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분명 오늘 정신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겠지.
이름없음 2021/08/08 18:50:11 ID : A6rwIJVdU5d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8/08 18:58:32 ID : dRyNunDxRCn
에구...
이름없음 2021/08/09 12:47:57 ID : L9bjteK0txQ
길가에서 뱀딸기를 봤어. 어렸을 때는 뱀이 먹는 딸기라서 뱀딸기라는 이름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래도 빨갛고 반짝거려서 참 예쁘기는 해. 그렇지?
이름없음 2021/08/09 12:50:25 ID : L9bjteK0txQ
오늘 안에 다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래도 정리하고 나아가야지. 술에 취한 채로도 사람 눈 보고 말할 이야기는 절대 아니지만,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감히 말할 수 없는 부끄럽고 더럽고 잔인한 이야기지만 어떻게든 써야지. 감정이라는 건 원래 문자로 정리하고 나면 조금은 단정하고 건조해서 다루기 쉬워지기 마련이니까 어떻게든 써봐야지. 여름이 끝나기 전에 정리하고 싶어. 올해 여름 안에 다 끝내고 싶어.
이름없음 2021/08/09 12:50:55 ID : L9bjteK0txQ
아무도 읽어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이건 고해성사에 가까울지도 몰라.
이름없음 2021/08/09 12:52:07 ID : L9bjteK0txQ
어젯밤에 내가 유년기를 보냈던 그 동네로 돌아갔다 왔어. 기억 못했던 사건들이 좀 더 생각났어. 묻어두는 편이 나았을까.
이름없음 2021/08/09 12:52:38 ID : L9bjteK0txQ
도대체 다들 왜 그랬을까? 난 왜 그랬을까?
이름없음 2021/08/09 12:55:23 ID : L9bjteK0txQ
나 자신을 미화하고 싶다는 욕망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감안하고 읽어줘. 이건 1인칭 시점의 이야기고 그래서 난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선택을 정당화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어렸던 난 절대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아니었어. 어리다고 면죄부를 줄 수는 없겠지.
이름없음 2021/08/09 12:58:36 ID : L9bjteK0txQ
아 진짜 두서없네 정신나간듯;;;; 대가리 좀 비우고 와서 다시 차근차근 풀게. 마네킹까지 썼구나... 대충 중학생 시절부터 계속 쓰면 되겠다.
이름없음 2021/08/09 13:15:45 ID : A6rwIJVdU5d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8/09 13:40:09 ID : dRyNunDxRCn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8/09 15:27:54 ID : ck783Ci1jul
보고있어 스레주
이름없음 2021/08/09 17:47:46 ID : L9bjteK0txQ
비를 맞은 뱀딸기는 검게 물들어서 흐물흐물 녹아내려. 어렸을 때 조금만 수풀과 나무와 친하게 지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겠지. 수풀 아래, 대놓고 빛이 쏟아지는 곳이 아니라 살짝 어둑한 곳에 맺혀 자라곤 하던 그 딸기 얘기를 하는 거야. 낮고 가느다란 줄기, 야생화답게 억센 뿌리, 뱀딸기. 빨갛고 예쁘지만 아무도 식용으로 쓰지는 않았던 그 야생 산딸기. 고작해야 아이들의 소꿉놀이 장난감이었던 뱀딸기. 내 유년기의 배경에는 항상 뱀딸기가 지천이었어. 새빨갛게 익은 뱀딸기, 조금만 손에 힘을 줘도 뭉그러지던 그 시뻘건 열매가. 너무 흔해서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맛대가리 없어서 아무도 굳이 먹지 않아. 하지만 아이들만은 그 뱀딸기를 모으면서 놀고는 했어. 시큼한 냄새와 풋내가 풍기는 그 열매를 따다가 나뭇잎과 빻으면서 놀았어. 수풀 사이에서 그 특유의 선명한 핏빛은 눈에 잘 띄기 마련이었어. 성인보다 시야가 낮은 어린아이들에게는 더욱 잘 보였겠지.
이름없음 2021/08/09 17:50:10 ID : L9bjteK0txQ
도서관 옆 공원 얘기까지 했었지? 왜 굳이 뱀딸기 이야기를 꺼내냐면 그게 트리거였거든. 그 공원을 보고 맥이 빠져서 돌아가려고 했을 무렵이었어.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길목은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잔뜩 자라 거의 숲같은 분위기였고 길바닥은 낡아 쩍쩍 갈라진 시멘트였지. 그 갈라진 틈새로 듬성듬성 풀이 자라 있었어. 그런데 사이로 빨간 뭐가 있더라고. 뱀딸기.
이름없음 2021/08/09 17:51:15 ID : L9bjteK0txQ
아 지하철 내려야겠다. 봐주는 레더들 고마워. 그런데 전개 느릴 예정이니까 차라리 한 일주일 뒤에 몰아보는 편을 권장할게.
이름없음 2021/08/09 17:58:40 ID : ck783Ci1jul
알겠어 기다릴께!
이름없음 2021/08/12 23:56:13 ID : fgrxQtvwoMl
계속 써볼게. 여름도 끝나가고 나도 이제는 유년기 기억에 그만 집착해야 하니까. 난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던 걸까? 정말 후회밖에는 남지 않아. 멍청하고 멍청하고 자기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잔악하고. 뱀딸기를 보는 순간 갑자기 불꽃이 튀듯 기억이 돌아왔어. 기억이 돌아왔다고 하기보다는 어떤 예감이나 위화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돌아갔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거야. 난, 분명 예전에 뱀딸기를 찾아 잘 들어가지 않았던 어떤 숲 속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어. 어린 시절의 기억과 왜곡된 인상으로 덧칠된 기억. 난 분명 21세기 대한민국의 수도권 근교에 살고 있었어. 숲 따위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지. 하지만 난 어렸잖아. 메타세콰이어 나무 다섯 그루만 모여 있어도 숲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렸잖아. 수국 덤불 아래의 짐승길 사이로 능히 몸을 숨기고 기어들어간 뒤, 앨리스가 그러했듯 토끼굴 사이로 굴러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몸도 작고 어렸으니까. 난 도대체 어디에 갔던 걸까? 그 기억에서 내가 느꼈던 건 손에 한가득 움켜쥔 뱀딸기, 그리고 그걸 다급히 움켜쥐어서 흘러나오던 풋내나고 끈적한 딸기즙, 그리고 페인트 냄새였어.
이름없음 2021/08/17 01:53:43 ID : K6o5e6jbfTU
레주 기다릴게!!
이름없음 2021/09/13 22:39:12 ID : Y6Za3u1fQnB
뱀딸기는 그냥 놓아두면 겸은색으로 썩어들어가. 물컹하고 흐물흐물하게. 말단부터 천천히 썩어들고 마지막에는 풋내와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썩은 과일이 되어 녹아내리겠지. 어렸을 때, 아직 내가 이 모든 일을 깨닫지 못했고 아직 내일 아침 해뜨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있을 때. 그 무렵 나는 뱀딸기를 따 모으고는 했었어. 이유는 달리 없었어. 그냥 뱀딸기는 흔했고, 어린아이도 딸 수 았을 높이에 낮게 열렸고, 붉은 색이라 예뻤고, 그 무렵 한참 읽던 이국의 동화책에 나오는 라즈베리나 블랙베리에 대한 환상 따위도 있었고... 아, 이유가 뭐가 중요하겠어? 그냥 지금 중요한 건 어렸을 시절 내가 뱀딸기를 따러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는 거야. 어느 사이인가 공기가 서늘해지고 해가 짧아졌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난 창문 밖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아직 매미가 울고 있을까, 그 슬픈 벌레들 중 하나라도 아직 살아남아 생명을 부르짖고 있는 걸까 귀를 기울여. 나에게 있어 여름의 종막은 미지막 매미의 죽음과 함께 오니까. 오늘 아침 난 매미 소리를 들었고 그래서 아직 여름은 끝나지 않았어. 계속 써볼게. 지금 좀 과하게 마셔서 오타나 비맥락적인 문장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해줘.
이름없음 2021/09/13 22:48:55 ID : Y6Za3u1fQnB
어렸을 때의 공포는 각별하지. 침대 아래에 괴물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공포감, 토끼굴 아래 원더랜드가 있을 것이라는 망상, 나무뿌리 사이로 뛰어들면 그 곳에는 토토로라는 이름의 정령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환상. 전부 다 비슷하지 않아? 어린 마음이 현실 위에 덧칠한 환상이라는 맥락에서는 말이야. 뱀딸기를 따모으던 나는 말이야, 아주 어렸을 적에 평소에 간 적 없는 길로 가버렸던 적이 있었어. 난 겁쟁이었고 착한 아이라 퍙소라면 엄마의 '절대 어른 없이 멀리 나가지 마라'는 말을 들었을텐데, 하필 비가 온 직후라 뱀딸기가 다 흐물흐물하게 녹아버렸고, 그래서 에쁜 빨간 뱀딸기를 모으려면 점점 길도 나지 않은 산속으로 가야만 했어. 산이라기에는 거창하지만 나무가 많이 난 오르막길, 지금은 재개발 때문에 내 기억 속에서만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조그마한 언덕.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아 길 위로 거미줄과 웃자란 덩쿨이 우거진 곳,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조그마한 어린아이들은 쉽사리 드나들 수 있었던 방향으로 난 나아갔었지. 아침에 엄마가 골라줬던 하얀 셔츠 앞자락에는 자줏빛으로 가장자리가 곱게 물든 토끼풀 꽃과 고르고 골라 예쁜 빨간색으로 반짝이는 뱀딸기 한 줌, 그리고 설익어 떨어진 개매실 따위가 들어 있었어. 다섯 살이었을까, 여섯 살이었을까. 어렸던 나는 열심히 따모은 그 예쁜 물건들로 화관을 엮어 엄마한테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아. 정말 그랬던 것 같아. 토끼풀 꽃으로 바구니를 엮고 그 안에 예쁜 나무열매를 잔뜩 담아 선물해야지. 동화책을 좋아했던 아이가 품을 만한 메르헨적인 꿈이었어. 하지만 예쁜 뱀딸기가 부족했고 그래서 난 인적 드문 풀숲 사이로 깊게 들어깄어. 내가 살던 곳은 분지야. 조금만 길에서 벗어나면 산길이 나와.
이름없음 2021/09/13 22:56:16 ID : Y6Za3u1fQnB
난 아마 그 길로 들어갔던 것 같아. 오래된 주공아파트에서 흔히 보이는, 시멘트로 바른 이끼낀 길과 갈라진 틈새로 고개를 내민 민들레와 질경이풀. 과하게 자란 수국 덤불, 축축한 여름 공기, 누군가에게 밟혀 납작히 으깨진 매미 시체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산산조각난 섬세하고 얇은 매미 날개. 죽은 지렁이 시체와 그 위에 앉은 파리. 비가 온 다음날이라 공기는 텁텁하도록 습하고 나뭇잎에는 투명한 이슬이 방울지고 있었지. 버섯, 썩는 냄새, 부패힌 나무둥치, 비에 녹아내려 굳은 핏물처럼 검게 탁해진 뱀딸기. 손 끝에 묻어나던 시큼하고 씁쓰레한 딸기즙. 그 맛을 피나 위액과 비슷하디 기억하는 건 내 뇌가 내 기억에 장난을 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짜로 부패해가는 모든 것은 비슷한 맛을 내기 때문인걸까. 뱀딸기를 보며 스파크처럼 떠오른 과거의 기억이 바로 그 장면이었어. 이제는 재건축으로 사라진 오래된 수풀 사이를 헤메던 나, 고개를 숙여 뱀딸기를 찾다가 그만 썩은 딸기즙이 손에 묻어버렸지, 어린애들이 늘 그러하듯 난 반사적으로 손을 입에 가져갔어. 그 썩은 듯한 맛. 시큼하고 쓰고 축축하고 풋내가 나고.
이름없음 2021/09/13 23:04:21 ID : Y6Za3u1fQnB
뱀딸기는 바닥에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열려. 덤불에서 열리는 블루베리나 블랙배리랑은 달라. 뱀딸기를 따다가 손에 흙이 묻는 건 당연한 일이야. 근데 그러다가 난 뭘 만져버렸던 거였어. 그 기억이 갑자기 확 생각이 나더라고. 뱀땰기라는 키워드 하나에 갑자기 뇌가 빙긑 돌더니 과거 기억을 토해내더라고. 부패한 유기물을 만지는 감각 다들 알지? 어떻게든 다들 접해봤잖아. 부엌에서 요리하던 엄마가 갑자기 부르는 거야, 베란다 감자 상자에서 김자 세개만 꺼내오라고. 넌 투덜거리며 감자를 꺼내러 가. 근데 상자를 열고 감자를 딱 손 끝의 감각에 의지해 쥐었는데, 손가락이 갑자기 푹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 느낌. 부패한 뭔가를 만지는 그 느낌, 끈적하다고도 부드럽다고도 표현하기 어려운 그 부패하는 무언가만의 느낌이 있어.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본능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인간이라는 종이 태생적으로 혐오하도록 진화한 그 특유의 느낌이 있다고. 썩어들어간다는 건 항상 현재진행시제야. 그리고 썩는다는 건 죽은 생물에게만 적용되는 말이잖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차가운 시체가 부패할 때는 묘한 온기가 멤돌아.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분명 차가워야 할 고깃덩이가 미지근하다는 걸 깨닫고, 지나치게 익혀버린 감자처럼 이상하게 뭉근하다는 걸 깨닫고.
이름없음 2021/09/13 23:05:01 ID : Y6Za3u1fQnB
고깃덩이가 썩는 냄새는 이상하게 달아.
이름없음 2021/09/13 23:11:50 ID : Y6Za3u1fQnB
아 미친 진짜 과음해ㅛ다
이름없음 2021/09/14 01:47:07 ID : Y6Za3u1fQnB
썩은 고깃덩이에 손가락이 푹 들어가는 그 느낌이란.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해. 만져보면 돼. 손가락이 닿는 순간 어떤 상황에서든 본능적으로 알게 될거야. 내가 지금 이미 죽은 것을 만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될거라고. 고양이를 쓰다듬어본 적 있겠지, 부드럽고 따뜻하고 탄력있는, 생명력 그 자체로 맥박치는 듯한 그 탄탄한 몸을 쓰다듬어 본 적 있겠지. 하지만 죽은 고양이를 만져본 적 있어? 죽어 다 썩어들어가는, 그냥 손을 가져다 대기만 해도 문드러지는 그 시체를 만저본 적 있어? 사실 그 정도까지 갈 필요도 없겠지. 비에 맞아 뭉그러진 뱀딸기랑 똑같아. 그냥 만져보면 알아. 죽은 시체를 만져보면, 설령 내 눈으로 본 게 아니더라도, 그냥 손 끝에 와닿은 찰나의 감각일지라도 그냥 알게 돼. 방금 내가 시체를 만졌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그냥 알게 된다고. 방금 내가 끔찍한 걸 건드렸다고 알게 된다니까. 부패가 시작되어 뭉그러진 미지근한 시체든 아니면 방금 죽어 식은 뻣뻣하고 싸늘한 시체든 그냥 알게 될거라고.
이름없음 2021/09/14 16:31:42 ID : ck783Ci1jul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1/09/14 22:33:35 ID : VfcK7umk2rc
죽어있는 것, 썩어들어간다는 것. 뱀딸기를 보며 내가 떠올렸던 건 그 강렬한 부패의 냄새와 손 끝에 닿은 썩어가는 살점의 감촉. 시체를 차갑고 뻣뻣하다고 흔히 묘사하지. 근데 그건 여름에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라. 내가 만졌던 시체는 축축하고, 뭉근하고, 부드럽고 미지근했어. 죽은 것들 특유의, 그리고 썩어가는 것들 특유의 감촉이었어. 아직도 선명해. 뱀딸기의 선명한 빨간색에 정신이 홀려 수국 덤불 아래로 손을 뻗었던 나. 어제 내렸던 비에 잎사귀 위로는 투명한 물방울이 방울져 있었어. 손등이 젖었지만 상관없었어. 뱀딸기가 상하지 않도록 줄기 아랫부분을 잡고 비틀어 꺾었는데 새끼손가락에 그게 닿았어.
이름없음 2021/09/14 22:34:03 ID : VfcK7umk2rc
달짝지근하고 불쾌하고 역겨운 냄새
이름없음 2021/10/10 00:06:35 ID : E5VbCpgrwNA
죽은 시체에 대해서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었네.
이름없음 2021/10/10 00:07:25 ID : E5VbCpgrwNA
털어놓으면 편해지겠지만 글 쓰는 것도 무서워 사실 그리고 무기력하고
이름없음 2021/10/10 00:07:56 ID : E5VbCpgrwNA
내가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그 때 사람이 죽지는 않았겠지만
이름없음 2021/10/10 00:08:16 ID : E5VbCpgrwNA
난 다섯살이었다고
이름없음 2021/10/10 00:11:06 ID : E5VbCpgrwNA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사람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가리가 녹아내릴 정도로 알코올을 퍼부어도 죄책감에서 벗어날수가없다 그새끼는 출소했을까 엄마는 끝까지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고 사실 나도 무서워서 물어보지 못하겠어 내 기억 속 그 고깃덩이와 시발 그 날짜에 일어났던 그 일이 정말로 같은 사건인걸까 난 죽은 사람들을 봤던 걸까 아니면 엄마 말처럼 너무 책을 많이 읽어서 내 뇌가 감성적이고 엽기적인 환각을 만든 걸까 난 모르겠지 영원히 모르겠지 그리고 알아볼 생각도 없어 너무 무샤우니까
이름없음 2021/10/10 00:12:04 ID : E5VbCpgrwNA
인간이 적응하는 생물이라는 게 끔찍해 결국 시체와 죄악감에도 적응하게 된다니까 그게 얼마나 징그럽고 역겨운 일이냐고
이름없음 2021/10/10 00:13:05 ID : E5VbCpgrwNA
그냥 다 착각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나았다고 생각해 그 멍청했던 호기심을 후회해
이름없음 2021/10/10 00:13:31 ID : E5VbCpgrwNA
시체가 썩는 냄새는 달아
이름없음 2021/10/10 00:14:10 ID : E5VbCpgrwNA
뭉그러지고 불어터진 살점 파리가 앉은 하얀 안구
이름없음 2021/10/10 00:16:06 ID : E5VbCpgrwNA
도대체 난 왜 그랬을까 왜 혼자 도망갔을까 그 새끼는 날 못봤던걸까 아니면 날 놔준걸까 난 영원히 모르겠지 알고싶지도 않아 사실 그 사람 얼굴도 기억이 안나 난 아마 담담하게 옛날 기억을 떠올리지는 못할거야 평생평샹 그리고 내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정리하긴 개뿔이 그냥 죄책감이라도 느껴야 해
이름없음 2021/10/10 00:16:34 ID : E5VbCpgrwNA
한여름에 까만 비닐우비릍 입고 있었지 그 사람 공기가 습하고 끈적했는데
이름없음 2021/10/10 00:18:05 ID : E5VbCpgrwNA
분명히 그 애는 나보다 컸어 몇살이었을까 분명 소문이 돌았는데 6학년이었다고 근데 내가 그때 몇살이었지
이름없음 2021/10/10 00:18:20 ID : E5VbCpgrwNA
왜 디들 그랬던 거냐고
이름없음 2021/10/10 00:18:41 ID : E5VbCpgrwNA
쓰레기새끼
이름없음 2021/10/19 17:55:57 ID : JSMoZija1he
레주 잘 보고 있어!! 오랜만에 잠깐 보다가 여기까지 들어왔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 진 모르겠지만 힘내 어릴 적의 스스로를 지금의 레주가 완전히 이해할 순 없잖아. 다 괜찮아
이름없음 2022/03/16 01:05:02 ID : nwnCo3QoK7A
정말정말 오랜만이다...
이름없음 2022/03/16 01:05:29 ID : nwnCo3QoK7A
시발 한발짝도 못나아갔다는게 진짜 개같다
이름없음 2022/03/16 01:06:03 ID : nwnCo3QoK7A
그때 그 일만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더 나았을까,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하는 거겠지만 말이야
이름없음 2022/03/16 01:06:57 ID : nwnCo3QoK7A
이 스레만 완결내고 이 사이트랑은 정말 연을 끊든가 할래. 어렸을 때랑 거리를 좀 두고싶어. 이 사이트에 거진 10년 넘는 시간을 머물렀다는 게 나도 안믿겨
이름없음 2022/03/16 01:08:59 ID : nwnCo3QoK7A
보고있는 사람이 있든 없든 그냥 얘기할게. 술 마시고 질질 짜다가 또 여기로 돌아왔어. 뭔 연어냐고.
이름없음 2022/03/16 01:09:39 ID : nwnCo3QoK7A
중학생 때의 기억으로 되돌아갈까. B에 대해 이야기하다 말았구나. 내가 내 기억을 헤집고 일부러 내 꿈의 배경으로 되돌아가게 만든 B.
이름없음 2022/03/16 01:11:47 ID : nwnCo3QoK7A
애초에 이거 읽은 사람이면 대충 알겠네??? 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살인 목격이었고, 내 멍청한 행동으로 눈 앞에서 사람이 죽었고, 난 시체를 발견했고, 그 이후로 난 반쯤 미쳤고
이름없음 2022/07/24 00:46:13 ID : nwnCo3QoK7A
이건 아마 미친놈의 헛소리일 거야
이름없음 2022/07/24 00:48:46 ID : nwnCo3QoK7A
이건 5살 무렵의 내가 살인현장을 목격했던 얘기고 동시에 10년 뒤에 그 기억을 더듬어 유기된 시체를 발견하는 얘기다 다 썩어들어간 뼈를 보고 내 기억이 그냥 악몽이 아니었구나 생각하며 안심하는 얘기다 괴담이라기보다는 내 멍청했던 10년간에 대한 기록이고 귀신이니 나발이니 그딴 것보다는 산 사람의 이기심이 얼마나 추악하고 끔찍하고 역겨울 수 있는지 그 사실에 대한 얘기다 난 내 악몽의 근거를 찾은 이후부터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아 내가 얼마나 끔찍한 사람인지 그걸 알고 알코올중독에 걸렸을 뿐이지
이름없음 2022/07/24 00:49:11 ID : nwnCo3QoK7A
신고했어야 했을까
이름없음 2022/07/24 00:55:35 ID : nwnCo3QoK7A
습한 공기 웃자란 풀 다 썩은 뱀딸기 어딘가 들척지근한 썩는 냄새 한쪽 날개가 떨어져나가 비명처럼 울어대며 바닥 위에 쓰러져 있던 매미 그걸 짓밟던 누군가의 발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시체 위에 꼬이던 파리 껍질이 깨져 죽은 달팽이 시체 위에 모여들어 동족을 먹던 달팽이 무리 그걸 바라보며 역겨움을 느끼던 나 하얗게 썩어들어가던 안구 비에 젖어 손에 징그럽게 얽히던 머리카락 뭉그러진 살 손가락을 휘감던 그 감촉 멍한 시선 검은 우비 새빨간 피 시멘트로 발린 길 사이에 피어난 뱀딸기 바닥에 두껍게 말라붙어 얼룩처럼 남은 핏자국 안개비 얼굴에 얽히던 머리카락 콘크리트 길에 쓸려 올이 나간 스타킹 비강에 들러붙던 악취 닥치지 않으면 나도 죽는다는 그 공포 인간이 결국 짐승에 불과하다고 실감하게 해줬던 그 본능적인 공포 잘려나간 살의 단면 거기에 이어지던 흰 살 치킨 날개에서 깃털을 발견하는 것처럼 정말 불쾌하고 역겹고 소름끼쳐 사람한테는 왜 체모가 나는거야 악몽을 여전히 꿔
이름없음 2022/12/17 00:19:05 ID : nwnCo3QoK7A
치킨 먹다가 깃털 발견한 적 있어? 감자탕 뼈 뜯다가 힘줄이 이에 걸린 적 있어? 고기라는 게 사실은 죽은 생물의 살과 피와 핏줄이라는 걸 깨닫고 구역질을 했던 적 있어?
이름없음 2022/12/17 00:19:55 ID : nwnCo3QoK7A
다시, 다시 처음부터 얘기하자.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더라도 이건 끝을 내야만 한다. 나 때문에 사람이 죽었고 시체를 다시 발견했던 그 날의 이야기까지 어떻게든 정리해야만 한다.
이름없음 2022/12/17 00:20:50 ID : nwnCo3QoK7A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뭣도 아니다. 그냥 내가 죽은 사람을 발견했었던 그런 얘기다.
이름없음 2022/12/17 00:22:23 ID : nwnCo3QoK7A
그 새끼는 출소했을까. 술을 미친듯이 마시고서야 다시 여기 들어올 용기가 났다 난 아마 영원히 이 이야기를 완결짓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그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 뇌가 녹아내릴 때까지 알코올을 들이부어도 그 희게 문드러진 시선을 잊을 수가 없다 여름이란 단어에서 썩어들어감이란 단어를 떼어낼 수가 없다
이름없음 2022/12/17 00:23:56 ID : nwnCo3QoK7A
다시 그냥 처음부터 써야겠다. 내가 실종됐던 5살 무렵의 그 날 이후의 일부터다.
이름없음 2022/12/17 00:24:27 ID : nwnCo3QoK7A
내가 어떻게 내가 실종됐던 그 날의 일을 알게 됐는지, 그 순서대로 써볼까 했지만 결국 아무래도 의미가 없는 일 같아졌다.
이름없음 2022/12/17 00:25:46 ID : nwnCo3QoK7A
5살, 어렸던 내 눈에는 도서관으로 가는 길과 반대쪽 길이 똑같이 메타세콰이아 나무로 가득 차서 구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 길을 잃었다. 아마 뱀딸기를 따려다가 그랬겠지. 여전히 그 반짝이는 뱀딸기만은 기억한다.
이름없음 2022/12/17 00:26:14 ID : nwnCo3QoK7A
그냥 작은 아파트 단지였지만 5살짜리, 지금 내 키의 반도 되지 않는 애한테 그 곳은 너무나도 넓은 미로였다.
이름없음 2022/12/17 00:27:03 ID : nwnCo3QoK7A
그래서 난 계속 걷고 걷다가 그만 산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내가 살던 아파트에서 성인 걸음으로 20분만 걸으면 제법 큰 산의 등산로가 나온다. 어린아이 걸음으로 난 거의 1시간은 걸었었을 것이고, 그래서 피곤했을 것이다
이름없음 2022/12/17 00:28:07 ID : nwnCo3QoK7A
그리고 난 그때 산 언저리, 시멘트로 간신히 마감된 그 길의 끝에서 봤다. 습기에 젖어 늘어진 수국 덤불 아래로 기어들어가 아지트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기억난다. 그 자리에는 내가 먼저 왔었다
이름없음 2022/12/17 00:29:32 ID : nwnCo3QoK7A
너무 오래 걸어서 피곤했던 탓에 수국 덤불 아래에서 바닥에 낙엽을 깔아 모아두고 그 위에 앉아 있었는데 어른 한 명이 왔다 까만 우비를 입고 있었다 덤불 안에서는 밖이 잘 보였다 비밀기지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나가지 않고 그냥 거기 있었다 마네킹이 쓰러져 있었어 수국 덤불 옆으로 마네킹 상체가 쓰러져서 썩어문드러지고 있었어
이름없음 2022/12/17 00:30:01 ID : nwnCo3QoK7A
얼굴에 빨간 마카로 낙서가 된 마네킹이 얼굴을 수국 덤불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어
이름없음 2023/07/09 00:48:31 ID : WqqpbwtumtB
여름이란 단어에서 썩어들어감이란 걸 떼어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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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이름 : 이름없음 2024.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