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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
2
이름없음
2023/02/18 02:08:18
ID : wFilu3zSK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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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돈을 잘 번다. 하지만 우리집은 절대 금수저가 아니다. 아빠 혼자 돈을 벌어 나와 동생 둘의 교육비를 감당하고 식비와 각종 지출을 책임진다. 나는 부모님께 할 말이 없다. 남들보다 조금 여유있는 평범한 집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한 건 죄다. 내 레슨비 악기 유지 수리비 학비 연습실비 과외비 등 돈 들어갈 곳은 너무도 많고, 무슨 일을 하든 부모님의 지원 없이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떤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내 잘못이 맞으니까. 배부른 소리라는 말이 딱 맞다. 좋은 집에서 곱게 자라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부모님께 큰절을 해도 모자를 판에, 어떻게 불만을 가질 수가 있어? 그러니까 내가 잘못했다는 거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스스로 경제활동을 시작할 나이가 되어서도 이 원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을 때까지 부모 등골 빼먹어서 음악한 애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한다. 엄만 내게 필요한 건 무조건 지원해주겠다고 하지만, 돈이 나가는 속도는 무섭게도 빨라서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던 원망을 만든다. 처음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거의 몇 달을 조르고 화내고 싸워서 어찌저찌 음악을 하게 됐을 때, 나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을까? 내가 얼마나 무겁고 어리석은 선택을 한 건지 알고는 있었을까?
엄마가 나에게 막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너무너무 힘들어져서 음악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기를 바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엄마도 너무 밉다.
입시 때부터 그랬다. 이른 새벽 연습실로 가는 차 안에서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기적인 년, 자기밖에 모르는 년, 개같은 년, 무슨 년... 년이란 년은 다 들었다. 뒷자리에 악기를 안고 가만히 앉아 그런 폭력적인 말들을 듣고 있으면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때부터인가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귓가에서 말이 웅웅 울려서 힘들었다. 어이없는 일로 책을 잡혀 그런 말을 듣고 있자면 화가 나서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난 레슨비를 받아야 레슨을 갈 수 있고 용돈을 받아야 연습실을 예약할 수 있고 엄마 기분이 좋아야 악기 케이스를 바꿀 수 있으니까.
뒤늦게 사춘기가 온 걸까, 고민한 지도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래도 엄마기에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이젠 그보다 경계의 마음이 먼저 든다.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과 세계가 너무 달라서 맞출 수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은 뒤로, 대화하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됐다. 내가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쌓아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엄만 모르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한다. 엄마에게 모든 걸 다 말해버리고 실컷 소리를 치는 내 모습. 패륜이고 불효고 죄악임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이나마 속이 시원해진다. Les Furies라는 곡을 할 때, 죄송스럽게도 엄마 생각을 하면 미치도록 몰입할 수가 있다. 선생님은 Furies가 분노, 불꽃이라는 뜻이라고 말해주셨다.
내가 알던 엄마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변해 버린 걸까. 어렸을 때의 엄마는 참 이상적이었다. 잘못을 하면 혼을 내고,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 뒤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고 뭐든 함께하려고 하고 좋은 기억만을 심어주려 애썼다.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래 난 이기적이라 엄마의 아픔을 공감해 주지 못한다. 엄마의 어린시절도, 엄마가 받은 상처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도 뭐 하나 공감할 수가 없다 아니 그러고 싶지가 않다. 엄마는 내 마음을 살펴 준 적이 있냐는 게 그 이유다. 나는 엄마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는데 도대체 왜 내가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자처해야 하지?
나밖에 몰라서 이런 생각밖에 할 수가 없어서 나는 나쁜 사람인 것 같다. 존재 자체만으로 감사해야 할 부모님에게 이런 원망을 가지는 게 과연 정상일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고 상담할 수 없어 평생 마음속에 묻고 살아가야 할 이런 마음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자존감이 낮고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그러면서 자기애가 높은 엄마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으로 나를 키워 이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꿈이 나름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걸 죽도록 싫어한다. 본인과 생각이 다른 딸을 이해할 수 없고, 틀린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엄마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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