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이 관군을 16만 징집했고 의병들 모두 관군으로 흡수해서 전쟁의 주역이 관군이라는 것. 처음 일본 함대가 건너올 때 원균이 놀라서 자침시킨 판옥선 숫자는 전쟁이 끝날 때 까지 복구가 안된 것. 일본은 서군만 참전한 것. 명나라가 구원군으로 오면서 조선은 징집을 해제하고 명나라 육군을 보조하는 형식으로 민중의 피해를 줄이려했다는 것. 풍신수길은 진짜 조선과 명을 정복하고 경영하려고 했던 것. 명나라와 협상 때, 삼남도(충청 경상 전라)를 일본이 가지고 명 공주를 첩으로 보내고 조선 고위 신료와 왕자를 보내라는등의 요구를 진짜 했고, 일본이랑 명나라 장수들이 숨기려하다가 결국 실패해서 정유재란이 일어났다는 점 더 알고 있는건 많은데 당장 생각나는건 이 정도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실들을 적자면 1. 임진왜란 개전 얼마 전에도 명나라는 이미, 일본에 보내거나 심어놨던 세작을 통해서건 유구국을 통해서건 일본이 조만간 침략할 것임를 파악해두고 있었으며 오히려 명나라가 의심했던 쪽은 조선 조정 측이었다는 것. 명나라 조정 입장에서는 일본이 조만간 침략할 게 훤히 보이는데 조선 조정은 유난히, 일본의 군사행동에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아예 일본과 같은 편이 되어 같이 중국을 침략하려 했던 건지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도통 이야기를 하지 않아 의심스러웠다나. 2. 1의 부속으로, 당시 조선 조정에서 일본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전을 펼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파악한 일본의 침략 의중을 중국에 이야기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고. 안 해야 한다는 쪽은 어떻게 감히 오랑캐들이 중원을 범하겠느냐며 그런 망녕된 이야기를 천자에게 올리는 것 자체가 불경이라는 게 이유였고, 해야 한다는 쪽은 이야기를 올리지 않는다면 명나라 조정에서 우리를 왜와 한패로 의심할 것이라는 것이 이유. 3. 명나라가 조선 측을 도와 임진왜란에 참전하기로 한 것은 무슨 역사 속 전해지는 전설마냥 '안타까운 사연을 가지고 기생으로 전락한 여인을 가련히 여겨 양민으로 신원시켜 준 조선의 의기에 감동한 중국 관리가 충의의 나라를 도와줘야 한다는 분위기를 이끌어내서 도와준 것'이 아니라, 조선을 도와 임진왜란에 참전하면 전장을 조선에 한정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서 왜군이 조선을 무너뜨리고 만주에까지 진격했을 경우 전선이 무지막지하게 확대되어 전비 지출이나 이런 부분에서 걷잡을 수 없는 막대한 비용이 소모될 것이 뻔히 보이는 계산이었기에 어떻게든 전장을 조선에 한정시키기 위해 출병시킨 것이라고. 여담으로, 이 조선 출병에만 명나라가 소비한 전비는 은 1만 냥이라고 하며 이는 명 조정이 마지막으로 쥐어짜낸 여력이었다고 함. 4. 3의 부속으로, 3에 언급했던 그 역사 속 낭만적인 전설에서 일컬어지는 중국 관리는 당시 명나라의 국방을 관장하던 자로써 '석성'이라는 인물인데 실제 역사 속 '석성'의 행보는 그와는 정반대로 조선 출병을 끝까지 반대했었다고. 조선에 출병했다간 여진족이나 해적, 타타르에 대한 방비가 허술해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나. 5. >>1에 나온 조선할지론을 보강하자면, 한강 이남 삼도를 일본이 가지고 한강 이북 평안, 함경, 황해도 지역은 명이 직할하며 조선 조정에게는 한성과 그 주변 지역만 직할령으로 남긴다는 이야기가 오갔었다. 참고로 당시 조선 임금이었던 선조 놈은 한낱 장수들끼리 이렇게 땅따먹기가 이뤄지고 있을 때 '본디 명 조정의 신민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내 꿈이었다'라며 명나라에 임시 피난이나 망명도 아니고 아예 귀부하려 달려들었었고 일부 뜻있는 중신들이 필사적으로 '압록강을 한 발자국이라도 건너시는 그 순간부터 조선은 조선의 것이 아니게 되옵니다!!!'라며 뜯어말리고 있었던 상황. 6. 흔히 임진왜란을 막기 위한 율곡 이이의 방책으로 십만양병설이 거론되지만 십만양병설은 그 존재부터가 의심스러운, 율곡 이이의 생전 행보를 미화해서 떠받들기 위한 훗날의 유생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율곡 이이의 서간문이나 상소문 등을 1차 사료로 하여 모두 살펴보아도, 선조 임금에게 부국강병책을 간언한 상소문인 '만언봉사'에서도 십만양병은 나오지 않고, 율곡 이이 사후에 나온 율곡행장 등을 비롯해 율곡 이이의 행적을 한참 후대에 정리하여 남긴 기록물이나 이를 반영해 펴낸 '선조수정실록'에서야 십만양병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든지, 당시 조선의 인구 구조와 군수 병참보급능력 등을 생각하면 십만에 달하는 병력을 양성, 유지할 여력이 없었다든지 하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음. 7. 6의 부속이자 여담으로, 양병론이 실제로 있었다고 해도 이것이 이율곡의 공으로만 돌려지는 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음. 중종 시절 회재 이언적의 '일강십목소'라는 상소문에도 양병론이 명백히 나와 있기 때문. 일단은 이 정도?

조선은 전쟁 대비를 했다. 조선통신사를 보내 도요토미를 만난 일화가 이를 증빙한다. 전국에 성을 쌓게 했다 이 때문에 전국 곳곳에서 상소가 올라왔다. 이몽학의 난 이전까지 선조는 이순신을 굳게 신뢰했다. 일개 만호에서 전라 좌수사로 몇 단계나 파격적인 진급을 시킨 덕분에 상소가 빗발쳤다. 조선은 일본의 침략 규모를 삼포왜란 수준으로 예상하였다. 광해군은 태종 이방원 이후 처음으로 친정을 나간 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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