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08jdA6jdyG 2020/03/11 13:49:27 ID : 5e3O63Vfhs7 0
글 연습하면서 피드백도 자유롭게 주고 받는 스레 저어는... 존잘님들의 조각글... 너무 보고 싶으니까... 얼른 써라... 써달라..
2 ◆008jdA6jdyG 2020/03/11 14:14:43 ID : 5e3O63Vfhs7 0
경이는 동이 틀 무렵 눈을 뜬다. 몇 해 전 했던 신문 배달의 영향이다. 그 짧은 시간도 버릇으로 남을 만큼 물들기 쉬운 인간이었다. 어딘가 빠져 있고 모자라고 뚫려 있는 경이는 아직도 운명을 믿는다. 말의 처음에는 어엉, 힘빠지는 소리를 붙이고 쌀은 꼭 찬 물에 씻는다. 그런 몇 가지의 규칙을 정해 두고 살았다. 쿠쿠 하세요, 쿠쿠. 저번 달에 일하던 식당을 그만두며 받아 온 밥솥은 취사가 끝날 때마다 말을 했다. 경이는 그 소리가 듣고 싶어서 밥솥을 머리맡에 두었다. 경이, 불러주는 이 없어서 혼자 되뇌이는 애칭이다. 내일은 쿠쿠가 불러주지 않을까. 기대감은 혓바닥을 구르고 콧등만 시큰해진다. 경이는 남들의 발밑에 산다. 악의없는 구둣발에 돌맹이가 튀는 반지하 단칸방에 기거한다. 거스를 수 없는 게 있다. 낮으면 싸고 높으면 비싸다는 거. 경이는 사계절 내내 덮는 얇은 솜이불로 낯짝을 가렸다. 염세적인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경아. 경이는 결국 발음한다. 경아, 경아... 경아. 사는 게 참 지독하다, 그치.
3 ◆008jdA6jdyG 2020/03/11 15:36:39 ID : 5e3O63Vfhs7 0
잘생기면 전부 다 좋았다. 사춘기보다 빨리 앓은 열여섯의 첫사랑 윤호는 싹수가 노란 애였다. 그 나이에 하면 안 된다는 건 전부 골라 배우고, 입은 걸고, 주제에 나무랄 곳 없는 이목구비를 가진. 중학교 졸업 사진을 찍을 무렵에는 좋아하는 애의 명찰을 지니면 길고 긴 시간의 끝에서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는 저주 같은 미신이 유행했다. 그래서 민지는 도현이의 명찰을 훔쳤고 한비는 찬수와 교환했다. 지금은 그냥 길고 긴 후회로 남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소문엔 관심이 없었다. 되려 다른 게 더 운명 같고 좋았다. 윤호와 나만 알아보는 비밀. 윤호와 나만의 속된 언어. 내 중학교 졸업 사진의 조끼에 가려진 셔츠는 본래 윤호의 것이었다. 내가 윤호처럼 못된 심보를 가졌다는 건 이후에 처음 알았다. 고등학교 입학 전 교회 청년부장 세준 오빠의 까만 티셔츠도 고등학교 이학년 같은 반이었던 빈이의 아디다스 져지도 심지어는 고삼 문학을 가르쳤던 재현 쌤의 베이지색 가디건도 이젠 모두 다 내 것이다. 사람은 영 간사하고 약아서 기억을 그대로 두질 못하니 남길 수 있는 것은 사건의 증거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별의 끝에 얼굴 반반한 남정네들은 옷가지 하나씩을 빼앗긴 채 돌아갔다. 허물을 사랑했으니 허물만 곁에 남아 있음 된다. * 도저히... 더 쓰지 못하겠는... 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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