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레주 2020/03/12 10:31:06 ID : hzcMnQlio6n 1
*지름작, 3일전에 떠오른 소재로 막 쓴거.* 옛날,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 생기기도 훨씬 전, 아주 무서운 여우가 살았다. 여우의 본래 털색은 눈처럼 희고 고운 하얀색이었으나, 여우는 포악한 성질로 무고한 인간들을 해하며, 하얗고 아름다웠던 하얀 털은 피가 굳으며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난폭한 여우의 지속된 살인에 신이 노하여 여우에게서 한 가지를 빼앗으니, 그건 바로 '3가지 감정'이었다. 가장 중요한 3가지의 감정을 잃은 여우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였고, 여우는 사람의 간을 먹고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가고자 했다. 난폭하고 잔인한 여우는 감정을 잃었으나, 외모는 누구보다 뛰어나 여우를 흠모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끝은 모두 좋지 못하였다. "우웅... 할머니 그러면 여우는 여자예요 남자예요?" 늙은 노인의 품에 안겨, 노인의 이야기를 듣던 아령이 고개를 들어 노인을 올려다보았다. 노인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건 할머니도 모르겠구나." "네? 왜요?" "여우는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란다."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령은 짧은 칭얼거림과 함께 할머니의 팔을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여우는 너무 오랫동안 다른사람의 삶을 살아서 자신의 원래 모습도, 성별도 기억 못 한다고 하더구나." 노인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담으며 아이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속삭여 주었다. "여우가 잃은 3가지 감정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알아요?" "그럼. 할머니는 뭐든 알고 있지." 아령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올려다 보았다. 빨리 말해달라는 눈빛이었다. "여우는 가장 중요한 3가지의 감정을 잃었단다. 그건 분노와 슬픔, 기쁨이었지." 노인은 아이의 머리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아이는 노인의 품에서 노인이 말한 3가지 감정을 곱씹으며 품에 든 인형을 꼭 안으며 눈을 감았다. ***** 눈을 떠보니 온통 붉은색이었다. 잠에서 덜 깬 듯 눈을 두어 번 깜박이자, 그제야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할 수 있었다. 검은색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남자는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돌아보았다. "...비영." 남자의 목소리는 원래 듣기 좋았지만, 지금은 잠에 취한 나른한 목소리가 남자로부터 흘러나왔다. 남자는 손으로 무거운 머리를 받치고 다시 한번 불렀다. "장난치지 말고 나와." "일어나셨어요 여호님?" 붉은색 가림막 뒤에서 붉은남자가 나왔다. 붉은 남자ㅡ 비영은 상체만 일으킨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여호는 그런 비영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몇년이나 잠든거지." "213년이요." "그렇군." "물을 드릴까요? 아님 술을 드릴까요?" 침대에 걸쳐 앉은 여호는 나지막하게 "물."이라고 말하곤 다시 눈을 감았다. 비영은 눈을 감은 여호의 옆자리에 앉아, 여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여섯째가 물을 가지고 올 거예요" "소섭?" "아뇨. 소섭은 다섯째죠. 여섯째는 진화에요." 비영은 입꼬리를 싹 말아 올렸다. "여호님이 잠들기 전에 수녕을 죽이셨잖아요."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 그런것 같기도 하다. 비영의 말을 되새기며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뜨자, 방문 앞에서 물 잔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귀엽게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여호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시선을 내렸다. '저 아이가 여섯째.. 이 모습은 처음이겠구나.' 여호는 남자의 모습인 제 모습이 낯설 여섯째를 위해, 기억을 더듬어 여섯째를 만났을때의 모습을 생각했다. 앉은키가 비영보다 크던 여호는 어느 순간 비영보다 작아져 문밖에 서 있는 남자를 불렀다. "진화야." 아까의 나른하고 저음의 목소리와 상반되는 맑고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진화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여호를 보았다. 여호는 어서 다가오라는 듯이 두 팔을 벌렸고, 진화는 한층 상기된 표정으로 여호에게 다가가 물 잔을 건넸다. "고마워." 20살을 막 넘긴듯한 외양을 가진 여인이 웃으며 진화로부터 물 잔을 받아들었다. 잔을 다 비운 여호는 잔을 옆으로 치우고 무릎을 꿇어 제 눈높이와 맞춘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간 잘 있었니?" "네, 누님!" "형들이 잘 해주던?" 진화는 여호의 옆에 붙어 자신을 내려보는 비영의 눈치를 잠깐 살피는가 싶다가 "응?"하고 묻는 여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바로 위가 소섭이였지. 소섭은 착하니 분명 잘 해주었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진화의 머리에서 손을 내린 여호는 옆에 앉은 비영을 돌아보았다. 비영은 여호의 눈빛을 알아차리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깨어나시자마자 나가시게요?" "응." "제가 가지말라고 부탁해도요?" "그래." 단호한 여호의 대답에 풀이 죽은 비영이 흥하고 고개를 돌렸다. 여호와 비영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는 진화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머지 얘들은 잘 있니." "어련히 잘 살고 있겠죠." "삐졌니?" 비영이 시선을 피하자 여호는 가볍게 웃고는 비영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말했다. "돌아올때 네가 좋아하는 장식구를 몇개 사오마." "됐어요!" "첫째가 없으니 네가 첫째나 마찬가지야. 나머지들을 부탁하마." 제 누나의 모습을 한 여호가 비영에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게 된 진화가 흠칫 놀라자 여호가 다시 한번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몸을 일으켰다. 어깨에 가볍게 걸치고 있던 겉옷이 흘러내릴려고 하자 진화가 화들짝 놀라며 겉옷을 붙잡았다. "누나!" 진화로부터 겉옷을 받아든 여호는 옷이 흘러내리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옷에 팔을 대충 집어넣으며 진화를 보지 않은채 말했다. "진화야." 여호가 옷을 입는 걸 도와주고 있던 진화가 고개를 들어 여호를 보았다. "네?" 여호는 옷을 다 입고 비영의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아이들을 한 번만 보고 바로 인간세상으로 갈거다. 그런 줄 알거라." 그 말과 함께 여호는 발부터 흐려지더니 신기루 처럼 사라졌다. 여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진화가 비영을 돌아보았지만, 비영은 진화의 시선이 귀찮다는듯이 말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내 방에서 나가!" 쫓기듯 비영의 방에서 나온 진화가 사라진 여호를 찾아 해 화각을 돌아다니고 있자니, 진화 바로 윗 사람인 소섭의 방앞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노크를 하자 안에서 소섭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역시나 여호는 소섭의 방에 있었다. 소섭은 여호의 머리를 묶어주고 있었다. "진화 왔니?" 소섭은 여전히 여호의 머리를 가지런히 빗으며 말했다.여호와 소섭 둘 다 이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들었다. 이번 '사냥'에는 네가 간다며?" "사냥이요?" 하고 진화가 되묻자 소섭이 놀란 눈으로 여호를 쳐다보았다. 여호는 귀찮다는듯이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여호의 모습에 소섭은 짧게 한숨을 내쉬곤 진화에게 '사냥'에 대한 설명을 했다. "여호님이 몇백년을 간격으로 인간세상으로 가시는걸 말하는거야. 여호님은 인간세상으로 나가실때 마다 우리같은 인간들을 한명씩 데려왔고, 우린 그걸 사냥이라고 불러." 소섭의 손길에 여호의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묶였다. "여호님이 연극하러 가시는거지. 이번에는 널 데려간다는구나." "내가 바로 잠들어서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잖아." 계속 조용히 있던 여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소섭은 여호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부인. 진화는 애화각에 들어온 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지요." 진화는 너무나도 달콤한 시선으로 여호를 보는 소섭의 모습이 낯설었다. 호섭이 다정하기는 했으나, 언제나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켰고 이처럼 표정이 풀려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멍하니 여호와 소섭의 다정한 모습을 보던 진화는 다시 들려오는 소섭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부인은 밖에서 여성의 모습으로 자주 있으니 네가 부인 옆에서 이상한 녀석들이 오지 않게 막아야 한다. 알겠지?" 진화가 소섭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소섭에게 몸을 기대고 있던 여호가 옷 속에 가려져 있던 고운 손을 들었다. 여호의 엄지와 검지를 교차하자 여호와 진화, 두 사람의 시점이 순식간에 포근한 방안이 아닌 가을 저녁의 선선한 숲속 한가운데로 바뀌었다. 213년 만에 여호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 애화각을 벗어난 진화가 놀라워하며 주변을 충분히 둘러보기를 기다리던 여호는 진화가 어느 정도 진정하자 그에게 제안했다. "우선 가까운 마을부터 가자." ***** "할머니..할머니." 늙은 노인의 품 안의 아이가 꿈틀거리며 제 할머니를 불렀다. "으음..무슨 일이냐 아령." "나 화장실가고 싶어." 노인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아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혼자서 갈수 있니?" "응.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아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령은 조그마한 몸을 움직여 할머니의 품에서 나와, 아끼는 토끼인형을 챙겨 방을 나왔다. 따뜻한 할머니의 품과 다르게 밖은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아령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인형을 끌어안으며 신발을 신고 집 앞마당에 위치한 화장실로 걸어갔다. 오늘따라 달이 무척 밝은 게 무섭지 않았다. "토끼야 여기서 기다려야해!" 아령은 소중한 토끼 인형을 화장실 밖 땅바닥 위에 올려두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다 본, 아령이 화장실 밖으로 나와 인형을 챙기고 다시 할머니가 있을 방으로 돌아 갈려는데 집 밖 거리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역시...게 좋겠죠?" "사람의...아니...동물도...괜찮....배고파져." "여자...남자..아이의.." 한 명의 남자 목소리였고 다른 한 명은 여자 목소리였다. 아령의 할머니는 밤이 되었나 하면 아령을 재우려고 해, 아령은 밤에 밖을 돌아다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늦은 밤 잠을 자지 않고 밖을 돌아다니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어린 아령에게 호기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아령은 집 대문에 작은 머리를 빼곰 내밀었다. 아령이 머리를 내밀자, 머리 위로 그림자가 져 있었다. 고개를 든 아령은 '헙'하며 숨을 들이마셨다.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와 여자와 닮은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아령과 눈이 마주치자 붉은 입술을 말아올리며 웃었다. "아이네?" 난생 처음으로 느껴본 공포에 아령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아령을 내려다보는 두 쌍의 눈동자는 어린 아령이 견디기에는 너무 차가웠다. "누나. 그래도 너무 어리잖아." "원래 어린게 좋아. 네 누나 10살 때 죽었는걸?" 두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령은 알지 못했다. 남매로 보이는 두 사람은 아령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알았지? 정 못하겠으면 동물이라도 가져와." "알았어. 근데 못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 "미쳐버리겠지." "아." 짧은 탄성을 내뱉은 남자가 여자를 보던 시선을 돌려 아령을 내려다보았다. "그럼..이번에는 이 얘야?" "응." 짧고 간결하게 대답한 여자가 몸을 숙여 아령과 시선을 맞췄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편해질 거란다." 아령은 서서히 다가오는 여자의 손을 보곤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 시끄러워. "...령아!" "아...령..아!" 누가 이렇게 부르는거야. 시끄러워 자고 싶어. 인상을 찡그리자 나를 방해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아!...령아!!" "정신..차려...령아!" 아. 할머니 목소리다.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앞에서 연신 내 이름을 부르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 그러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내가 눈을 뜨고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끌어안았다. "아이고! 왜 여기에서 누워있는 거냐! 저 도령 아니었으면 얼어 죽었겠어!" "도령?" "그래 욘석아! 왜 화장실 간다면서 바로 오지 않는거야!" 나를 끌어안은 할머니의 어깨 뒤로 가볍게 손을 흔드는 키가 큰 남자가 보였다. 할머니가 말한 도령이 저 사람인가봐. "에구, 이 손 차가워진 거 봐라. 어여 들어가자." 호호, 내 손에 입김을 불어주는 할머니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여전히 할머니 뒤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고맙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남자는 태연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음부터 조심하렴." 할머니는 남자에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내 어깨를 잡아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다시 할머니의 품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눈을 감자, 할머니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아령아. 토끼 인형은 어찌 했느냐?" "아. 인형? 그거." 나는 할머니의 품안으로 더 파고들며 중얼거렸다. "검은색 개가 물어갔어." 피드백 조아
2 이름없음 2020/03/12 11:10:52 ID : moLgjdxu09t 0
오 재밌네 보고있어 스레주!
3 스레주 2020/03/12 15:00:57 ID : hzcMnQlio6n 0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가려났던 천이 사라지며 따스한 햇빛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햇빛에 눈부셔 인상을 찡그리자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령아 이제 일어나야지." "조금만 더 잘래.." 이불을 끌어올려 햇빛을 가리며 중얼거리자 주름진 손이 내 이마에 닿았다. 손은 이마를 몇 번 쓰다듬고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 냄새는 갈비탕?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나는 이불을 걷어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난 나로 인해 할머니는 음식들을 놓은 쟁반을 들고 들어오다 놀라며 웃었다. "요 녀석, 밥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구나." "할머니 오늘 갈비탕이야?" "그래. 자 이리와서 밥이나 먹자구나." 할머니는 탁자위에 음식을 놓으며 말했다. 고소한 밥과 맛있는 냄새를 흘리는 먹음직스러운 갈비탕이 탁자 위에 예쁘게 놓여있었다. 와. 맛있겠다. 꼴깍 침을 삼키며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탁자에 앉자마자 수저를 들어 갈비 하나를 집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렸다. 할머니는 갈비 하나를 벌써 다 먹고 다른 갈비 하나를 더 집어 밥그릇에 놓는 내 모습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로 왔다. 할머니가 잠을 자며 엉망이 된 내 머리를 한 개로 묶어주는 동안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먹었다. 야금야금 꼭꼭 고기를 씹어먹는 내 모습에 할머니는 갈비탕을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할머니는 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흐음." 내가 밥을 다 먹고 의자에 기대 괴상한 뉘앙스로 콧소리를 내자, 할머니가 익숙하다는 듯이 밥그릇을 치워 방을 나갔다. 나는 빈 그릇들을 들고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여전히 콧소리를 내었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돌려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따스한 햇빛과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날 한번 스치고 지나갔다. 날씨가 좋았다. 선선한 바람을 느끼고 있던 나는 웅성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뜨고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가며 소리쳤다. "할머니! 나 밖에서 놀다 올게!" 뒤에서 무어라 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대충 점심때에 돌아오라는 말이겠지. 대문을 열자 나와 가장 친한 세화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이 보였다. 세화는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 아령아!" "안녕, 여기서 뭐해?" 집 밖으로 나가자 내 또래의 어린아이들이 옹기종기 땅에 쭈구리고 앉아있었다. 왜 우리 집 앞에서 이러고 있는 거야? 나는 세화의 옆으로 다가가 같이 쭈구려 앉으며 물었다. "뭐야? 왜 여기에 다들 있어?" "이거 봐바 아령아. 이게 뭘까?" 세화는 바닥의 어느 부분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세화의 가리킨 손가락의 끝을 보자, 거기에는 붉은색 핏자국이 있었다. 피는 이미 한참 전에 굳어버린 듯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 순간 여호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변했지만 아이들은 그 자국을 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들은 흙에 있는 이 '자국'이 뭘까 서로 의견을 내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아는 척 자리에서 일어나 팔짱을 끼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면 민망하지만, 난 이곳 마을 아이들에겐 가장 똑똑해 천재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벌떡 일어난 내가 이게 무엇인지 아는 거냐며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정말로 이게 뭔지 모르는 거야? 나는 눈을 빛내고 날 쳐다보는 세화를 보며 입을 벌렸다.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내기 전, 그보다 먼저 누군가 다가와 내 말을 끊었다. "이건 피잖아!" "피?" "피라고? 왜 여기에 피가 있어?" "누가 다친 거야?" 아이들이 혼비백산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보며 물었다. 몇 명 여자아이들은 "꺅꺅"소리를 지르며 남자아이들의 뒤로 숨었다. 고작 핏자국 하나에 저렇게 놀라는 모습이 우스웠다. "너네들 이건 고작 피인데 왜 그렇게 놀래? 이상해." 내 말을 끊고 말했던 남자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남자아이는 이 인근에서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남자아이의 말에 방금까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피웠던 아이들은 민망하지 금방 잠잠해졌다. 개중에는 나와 친하게 지냈던 여자애들도 있었다. "너네들 피 본적 없어?" 남자아이의 물음에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난 매일 보는데." "피를 매일 본다고?" 남자아이의 말에 의아해하던 동네 아이들중 한명이 물었다. 남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 아버지가 사냥꾼이야." "사냥꾼?" "사냥꾼이라고?" "거기 마을 끝에 사는 그 무서운 사람?" 아이들은 '사냥꾼'이라는 말에 얼굴을 구기며 쑥덕였다. 반년 전에 이 마을로 이사 온 나만이 아이들이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남자아이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는지 눈썹을 찡그렸다. "뭐야 너희들? 우리 아버지가 어때서?" 그러자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사냥꾼은 어린아이들을 잡아다가 먹는다고 했어!" '어?' "맞아! 우리 아빠도 그랬어! 사냥꾼을 보면 도망가라고! 사냥꾼은 아주아주 무섭데!" "사냥꾼은 매일 피로 씻는다던데 진짜일까?" 상황이 이상하게 변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들었던 '사냥꾼'의 소문을 얘기했고, 사냥꾼의 아들이라던 남자아이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다. "네가 정말 그 사냥꾼의 아들이라면 넌 괴물이야!" 제일 먼저 사냥꾼에 대한 소문을 얘기했던 아이가 앞으로 나와, 남자아이를 보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아이의 말에 동네 아이들이 맞장구를 쳐주자, 아이는 더욱 기세등등해져 남자아이의 어깨를 밀치며 말했다. "저리가 괴물!" 남자아이는 붉어진 눈시울로 자신을 밀친 아이를 노려보았다. 남자아이의 시선에 흠칫 놀란 동네 아이는 질 수 없다는 듯이 남자아이를 노려보았다. "사과해." 굳게 닫혀있던 남자아이의 입이 열렸다. "내가 뭘 사과해? 얼른 저리가 괴물!" "우리 아빠한테 사과하라고!" 남자아이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자신을 괴물이라고 불렸던 아이의 가슴팍을 밀쳤다. 아이답지 않은 강한 힘에 밀쳐진 아이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손바닥이 까진 건지 아이는 금세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했고,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와 사냥꾼의 아들을 나무랄 하며 제 아이를 챙겼다. "정말..그 사냥꾼의 자식 아니랄까 봐! 뭐 하니? 얼른 너네 아버지한테나 가렴!" '어쩔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남자아이는 여전히 "사과해."라며 우는 아이를 보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사냥꾼의 아이에게 말했다. "우리애가 무슨 짓을 했다고 애를 밀쳐? 난폭한 게 정말 너 아빠를 닮았구나!" "쟤가 먼저 아버지 욕을 했어요." "어머, 말대꾸하는거 봐? 썩 꺼지지 못해?!" 아이의 엄마는 우는 아이를 안아들고 남자아이를 무시하며 소리쳤다. 누가 그 아이의 부모 아니릴까봐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게 똑같았다. 내가 대신 해명을 해줄까? '아니야. 할머니가 이번 마을에선 튀면 안된다고 했잖아.' 다른 아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지 마라. 아이처럼 굴어라. 9살 또래의 아이처럼 놀아라. 할머니는 누누이 말했다. 그러면서 밤이되면 글공부를 시켰다. 나는 글을 알아야 한다며. 무고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글을 알고, 지식을 쌓아야한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남자아이를 도와야 할까, 말아야 할까? 할머니의 어느 말을 따라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버렸고. 남자아이는 동네 아이들의 시선에 화를 참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 가버렸네. 너무 집중하느라 상황이 끝난지도 몰랐다. 남자아이가 지나가면서 보인 오른쪽 뺨이 빨갛게 올라오는 게 아이의 엄마에게 뺨을 맞은 것 같았다. "정말 무섭다. 그치 아령아?" 세화는 멀어지는 남자아이의 뒷 모습을 보며 말했다. "뭐가 무서운데?" "응?" 세화의 커다란 눈이 깜박이며 물었다. 나는 세화와 눈을 맞추고 다시 물었다. "뭐가 무서운데?" "어? 그야 사냥꾼의 아들이잖아." "사냥꾼이 무서워?" "뭐야 아령아, 갑자기 왜 그래." 세화가 옷깃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이제 그만하자는 뜻이었다. 나는 옷깃을 잡아당기는 세화의 손을 내려보다가 고개를 들어 세화를 보았다. "나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왜 다들 사냥꾼을 싫어해?" "움...음. 그야 사냥꾼이 무서우니까 싫어하지." "왜 무서운데?" 다시 질문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세화는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대답했다. "사냥꾼이 여기와서 큰 호랑이를 혼자서 잡았데." "그럼 고마워해야하는거 아냐?" 근데 왜 무서워하지? "아령아 생각해봐! 우리 아빠랑 옆집 아저씨랑...마을 아저씨들이 전부 가서도 잡지 못한 호랑이였어. 근데 그 사냥꾼은 혼자서 잡았잖아! 당연히 무섭지않아?" 세화가 웃으며 말했다. "아 됐어!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 아. 아령아 우리 저기가서 놀자!" 세화는 지겹다며 내 손을 이끌고 마을 여자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왔다. 얼떨결에 동네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였고, 난 놀이를 하면서도 계속 그 상황을 생각했다. 난 거기서 무슨 선택을 했어야 했을까? 그러던중 세화가 날 불렸다. "아령아!" "응?" 멍하니 땅을보다 세화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세화의 뚱한 표정이 보였다. "아령아!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네가 술래잖아!" "아..그랬어? 미안해." "아령아. 너 오늘 좀 이상해 왜 그래? 계속 이러면 너랑 못 놀아줘." 말투가..이상한데? 세화의 말속에서 이상함을 느낀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못 놀아준다니? 그럼 지금까지는 억지로 논거야?" "어? 아, 아니..우리 엄마가 너랑 친하게 지내라고 해서.." 세화는 그제야 자기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는지 횡설수설 말을 덧붙였지만, 그럴수록 말이 꼬였다. 그러면서 화가 났는지 신경질스럽게 말했다. "아. 그래! 우리 엄마가 너랑 제일 친하게 지내라고 했어! 너네 할머니 돈 많으시니까 너랑 친하게 지내라고 했단 말이야! 너 모르지? 우리들은 고기를 못 먹은 지 몇 년이나 됐어! 그런데 너는 매일 고기반찬 먹잖아!" 세화는 혼자서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고 나서 서럽다는 듯이 눈물을 글썽였다. "나 진짜 너 싫어. 챙겨주기 싫다고!" --------- 약간 얘들 말투를 모르겠당..억지스럽기는 한데 뭐..ㅎㅎ
4 이름없음 2020/03/12 19:08:55 ID : AY8mHwmpTXv 0
오 재미있다. 저기 에서 인형을 검은개가 물어갔다는건 검은여우가 아령이랑 바뀐거 나타낸거야? 재미있엉
5 이름없음 2020/03/13 17:08:07 ID : eGnva9thbxD 0
ㅂㄱㅇㅇ 글잘쓴다 스토리도 개꿀잼
6 이름없음 2020/03/13 17:15:24 ID : Zio7xV89s09 0
짱잼,, 더 써줘
7 스레주 2020/03/14 16:27:41 ID : hzcMnQlio6n 0
"그랬..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옷자락을 쥐고 말했다. 슬쩍 곁눈질로 세화를 쳐다보자, 세화는 다른 아이들 속에 섞여들어가 위로를 받고 있었다. "너 진짜 싫어. 뭐든 다 아는척하고ᆞᆞᆞ진짜 싫어." 세화가 이방인이 내게 이상할 정도로 잘 해줬던걸 알고 있었다. 난 당연히 세화가 원래 그렇게 친구를 금방 사귀는 아이인줄 알았는데ᆞᆞᆞᆞ 꾸욱.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여기서 난 뭐라고 해야하지? 태연하게 돌아서야 할까, 울면서 미안하다고 해야할까. "아령 뭐해? 빨리 세화한테 사과해!" 내가 사과해야하는 일인가.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왜 오늘 이런 일이 생긴걸까. 어제까지는 이러지 않았잖아. 왜ᆞᆞ갑자기 이러는거지? 어제까지는ᆞᆞ어제는ᆞᆞᆞ 질끈. 머리가 아파왔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시야가 흐려지는 듯, 제자리에 서 있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몸의 균형을 맞춰 자리에 섰다. 그러나, 또 한번 머리가 질끈거려왔다.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자, 세화와 아이들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게 보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다가 눈을 감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면 편해질 거라는걸. "아령아?" 세화는 갑자기 머리를 잡으며 비틀거리더니 이내 눈을 감고 서 있는 아령을 보고 불안감에 아령의 이름을 불렀다. 아령은 세화와 아이들이 몇 번 더 제 이름을 부르자 천천히 눈을 떴다. ****** 여호는 제 앞에 놓인 여자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우글우글 모여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남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방금까지 울었는지 눈가가 빨갛게 변해있었다. 왜 자신이 여기 있고, 이 아이들이 여기 있는지 잠깐 생각을 하던 여호는 "음."하고 짧은 신음과 함께 다시 제 앞에 놓인 여자아이들을 똑바로 보았다. 자신은 방금까지 '연극'중이었다. 그러다 생각이 많아졌고, 기억의 충돌로 인해 자신이 깨어났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기억의 충돌이 일어난 이유가 저 남색 머리의 세화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무 오랜만에 어린아이의 삶을 선택했나,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생각이 많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 자신이 왜 '연극'중에서 깨어났는가.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아령은 남을 배려하는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으니까. "그래. 알았어." 여호는 고개를 기울이고 말했다. 세화는 여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여호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아령아?" "알았다고. 그동안 고마웠어 이제 안 그래도 좋아." 아령의 모습을 한 여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여호의 말을 들은 세화와 아이들이 바보같은 표정으로 여호를 보았지만, 여호는 "안녕."이라며 웃고는 몸을 돌려 아이들로부터 멀어졌다. 아이들은 여호의 그 해맑은 미소에 멍하니 여호와 하늘색 옷감이 멀어지는 걸 보고만 있었다. 여호는 아이들로부터 멀어져, 마을 중앙을 벗어나 마을의 가장자리까지 걸었다. 마을의 가장자리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곤란하네ᆞᆞᆞᆞ.' 이왕 깨어났으니 다시 연극에 들어가기 전까지 마을 구경이나 할 겸,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걷다 보니 전혀 모른 곳으로 왔다. 게다가 배도 고팠다. "진화야?" 대답은 없었다. 밤이 아니라면 찾아올지 말라고 진화에게 말 해둔 게 이렇게 될 줄이야. '길은 모르고, 배는 고프고 진화도 옆에 없고.' "으음ᆞᆞᆞ." '사냥이나 해 볼까?' 아니야 그러면 옷이 더러워지잖아. 피 묻은 옷으로 어떻게 돌아가.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나왔다. 너도 배고프냐? 나도 배고프다. 배가 고프니 아무 생각이나 하게 되었다. 내 스스로도 지금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 재미있다니! 고마워! 약간 여주가 요괴인건 첨이라서 계속 쓸까말까 고민했거든!
8 스레주 2020/03/14 16:28:27 ID : hzcMnQlio6n 0
TMI 아령이랑 여호 이름 언급되는거 잘 봐야해 소근)
9 스레주 2020/03/14 16:29:37 ID : hzcMnQlio6n 0
앉아 있는게 서 있는것보다 낫겠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걸어오면서 무리한 두 발을 편하게 피며 땅을 짚고 머리를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에 뭉실뭉실 구름들이 바람을 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멍하니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자니, 누군가의 그림자가 시야를 가렸다. "너 뭐야?" "응?" 어디선가 들어온 음성에 의아해하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보자, 은발에 가까운 회색 머리-사냥꾼의 아들이 서있었다. 한 손에는 기절한 닭 한 마리를 들고서. "너 뭐냐니까?" 아 군침 도네. 닭고기 맛있는데. "야! 내말 지금 무시하는 거야?" "응? 아. 그게 아니란다 얘야." "얘야?" 남자아이 이상하다는 듯이 내 말을 따라 했다. "그래. 근데 그 닭은 뭐니? 맛있겠구나." 정말 맛있겠네. 아 약한 불에 천천히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남자아이가 든 닭에 시선을 고정하고 대답하자 아이는 자기가 들고 있는 닭을 한번 쑥 들어 올렸다. 올라가는 닭에 내 시선도 덩달아 올라가자,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ᆞᆞᆞ지금 어디 보는 거야?" "그 닭은 몇 년 살았니? 난 2년 정도 산 닭이 맛있더구나." "이상해ᆞᆞᆞ." 2년을 산 닭은 그동안 많이 움직여서 살이 참 맛있지. 근육도 많고. 아 더 배 고프다. "너 아까 걔네들이랑 있던 얘 아냐? 여길 왜 와? 혹시ᆞᆞᆞ" 남자아이는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찡그렸다. "하! 여기까지 쫓아와서 우리 아버지랑 날 욕하려고? 너도 참 끈질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젠 모르는척하는 거야?" 아니. 정말로 모르는데. "뭐, 상관없어. 아버지가 그랬어. 나쁜 말을 하는 얘들은 무시하라고." "그랬구나." "그러니까 난 널 무시할 거야." "그러렴." 아 저 살 오른 거 봐. 저건 몇 살이지? 암탉 같은데. "넌ᆞᆞᆞᆞ화도 안내?" 응? 그제야 닭에게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남자아이에게 향했다. 남자아이는 정말로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널 무시한다는데 넌 화도 안 나?" "화를 내야하나?"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자, 남자아이가 심각하다는 듯이 귀여운 미간을 모았다. "너 좀ᆞᆞᆞ어디 아파?" "배가 좀 고프구나." "그 말이 아니잖아ᆞᆞᆞ." 남자아이는 내 옆으로 걸어오더니 풀썩하고 옆에 앉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남진 아이가 앉던, 말던 오로지 아이의 손에 다리를 붙잡혀 기절해 있는 닭만을 쳐다보았다. "너 왜 여기 있어? 친구들은?" "친구 없는데." '아령에겐 있어도 내겐 없지.' 그래 나한테는 없지. 다 죽었으니까. 아, 이제 아령도 친구가 없나? "너ᆞᆞᆞ 아까 걔네들이랑 있었잖아." "걔들은 친구가 아니더구나. 친한척한 거지." "걔네들이랑 싸웠어? 싸운 거면 화해해." 남자아이는 혼자서 고된 일, 힘든 일 전부다 겪어본 사람처럼 말했다. 고작 아령의 또래로 9살 10살 정도 밖에 안된 꼬마가. 애 늙으니 말투로 말하던 남자아이는 갑자기 기지개를 펴더니 아까와 다른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남자아이를 쳐다보았다. "내이름은 아원이야. 너는?" "여ᆞᆞᆞ아니 아령." "그래 아령. 우리 친구 할래?" "딱히 필요하지는 않은데." "너 참 이상한 얘구나." 내가 이상해? 눈썹을 치켜들고 쳐다보자, 아원은 머쓱해하며 손을 저었다. 아. 배고프다. 말을 많이 했더니 아까보다 더 배가 고파왔다. 닭은 안 줄것 같고ᆞᆞᆞ. 나는 시선을 들어 앞에 쑥스러워하며 머리를 긁고 있는 아원을 쳐다보았다. 어린 남자아이. 어리니까 술을 마시지도 않았을 거고 활동량도 많으니 아마 건강하고 싱싱하겠지. 꿀꺽 침을 삼켰다. 배고프다. '연극'을 하면 이상하게 배가 고팠다. 몇백년을 잠만 자도 고프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연극'을 좋아했다. 아원이 부끄러워하며 무슨 말을 하는 게 보였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ᆞᆞᆞ아." 아원은 말을 하던 도중 나를 한번 보더니 말을 멈췄다. 내가 자기를 먹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그러고 보니 너 배고프다고 했었지?" "응." "음ᆞᆞᆞ." 아원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닭을 내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럼 이거 먹을래?" "ᆞᆞᆞ응?" 당황한 내가 바보같이 묻자, 오도 통한 닭 뒤로 빼꼼 머리를 내밀며 웃는 아원이 보였다. "이 닭 너 줄게." "어ᆞᆞᆞ?" "사실 아버지한테 혼날 것 같기는 한데ᆞᆞᆞ넌 내 첫 친구니까 특별히 줄게." 그러고는 내가 거절이라도 할까, 허둥지둥 내게 닭을 넘겨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그만 가야지!" "나 길 몰라." 아령은 얼떨결에 받은 닭을 품에 안고 아원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원은 설마 내가 길을 모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설마 길 잃어서 여기 있던 거야?" "응." "ᆞᆞᆞᆞ." 아원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이 닭은 할머니에게 주면 요리해 주겠지?' 아원은 한숨을 내쉬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바래다줄게. 마을 중앙까지 데려다주면 알아서 찾아갈 수 있지?" "응! 거기서부터는 길 알아." 싱긋 웃으며 아원이 내밀 손을 잡았다. 아원은 마주 잡은 손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따라 웃었다. "내일ᆞᆞᆞ같이 놀래?" "그래, 내가 어디 갈까? 여기로 올까?" 아원의 손을 잡은 팔을 앞뒤로 흔들며 웃었다. "너 길 모르잖아." "아 맞다." 눈을 동그랗게 뜨자 아원이 웃었다. "그냥 중앙 나무에 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 "응. 근데 우리 내일 몇 시에 만날 거야?" "점심? 점심 먹고?" "그래! 그럼 우리 뭐하고 놀 거야?" "어ᆞᆞᆞᆞ." 내가 빤히 쳐다보며 묻자, 아원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인지 어버법 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냥 술래잡기나 하고ᆞᆞᆞ." "우리 두 명이서?" "물고기 잡으면서ᆞᆞᆞ." "나 물고기 잡아 본 적 없는데." 마음 먹고 아원을 놀리자, 아원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원은 친구가 생긴 게 처음이라, 자기가 내일까지 뭐하고 놀지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아원을 놀리며 그를 따라가자 어느새 마을 중앙 큰 나무 앞이었다. 아원은 그제야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럼 난 이제 갈게." "응, 내일 보자 아원!" 멀어지는 아원의 모습에 닭을 잡고 있는 손이 아닌, 반대쪽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아원에게 이름을 말했던가? "아! 아원! 난 아령이야! 서아령!" 아원은 이미 아령의 이름을 알고 있는데 또다시 제 이름을 말해주는 아령을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기에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아원에게서 받은 암탉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자, 할머니는 어디서 받은 닭이냐고 물었다. "친구." "뭐라고?" "친구가 준 선물이야!" 어느친구가 선물이라고 귀한 암탉을 주겠는가. 할머니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듯했지만, 내가 어디 가서 닭을 훔쳐 올 아이는 아니었기에 애써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 난 한편당 5000자 정도 써서 너무 긴것 같아서 반으로 나눠서올릴게
10 스레주 2020/03/14 19:32:38 ID : hzcMnQlio6n 0
점심과 저녁은 아원이 줬던 닭을 반찬으로 먹었다. 다른 집들과 다르게 할머니와 나는 저녁을 일찍 먹는 편이었는데, 밥을 빨리 먹고 글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미가 준 책은 다 읽었니?" "응, 거의 다 읽어가." "그래 그럼 과일도 먹으면서 하려구나." 할머니는 탁자 위에 정갈하게 손질한 과일들을 올려주며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방해되지 않게 방을 나갔다. 할머니가 나가고 펄럭펄럭 책을 넘기며 할머니가 놔두고 간 과일을 먹고 있자 끼익, 하는 대문이 열리는 소리와 쿵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갔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 계속 책을 읽으며 방문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 닫는 소리가 들리고 5분 정도 흘렀는데도 밖은 여전히 조용한 게, 할머니가 집 밖으로 나간 거였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방에 들어가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방을 나와 할머니가 지내는 방 주변을 어슬렁 돌아다녀도 방안에는 인기척이 없는게 할머니가 나간게 확실해졌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여호는 창문으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문을 열고 시선을 살짝 내렸다. 아니라 다를까, 진화가 창문 아래에서 쭈구리고 앉아있었다. 진화는 벌컥 열린 창문에 한번 놀라고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두 번 놀랐다. "뭐해?" "어, 어떻게 아셨어요?" "뒤에서 계속 움직이는데 모를 수가 없지." 창가에 기대 턱을 괴고 웃음을 띄운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죄, 죄송해요." 진화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했다. "죄송할 것까지야." "..전 역시 형님들보다 뒤떨어지죠?" 여호의 눈이 가느스름하게 변하자, 진화가 서둘러 시선을 내리깔았다. 여호의 피를 마시고 불로불사가 된 사람들은 여호의 힘을 작게나마 사용할 수 있었고 형님들은 자유자재로 힘을 사용했지만, 진화는 힘을 사용하려고만 하면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 탓에 진화는 여호가 잠들어있던 213년간 힘을 사용할 수도, 연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진화는 여호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등골이 오싹했다. 거슬리기는 하지만 위협은 안되니 봐준다, 하는 느낌. 진화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형님들은 힘을 잘 쓰는데 저는 못 쓴단 말이에요." "왜 못 쓴다고 생각해?" 진화는 여호의 곁을 지키던 비영과 소섭을 포함한 5명 형들보다 여호의 피를 옅게 마셔서 그렇다고 제 입으로 얘기해야 하는 진화는 울상을 지었지만 여호는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을 기색이었다. "저는 형님들보다 약하고, 나이도 어리고, 피도 희석해서 마셨기 때문에요?" 더듬거리며 제 생각을 말하는 진화는 말하는 동중에도 계속해서 여호의 눈치를 살폈다. 여호는 진화의 말을 들으며 미간을 찡그리고 "아아ᆞᆞᆞ."하고 알겠다고 중얼거렸다. 여전히 턱을 괴고 진화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아 배고프다. "그나저나, 사냥은 해 왔니?" "아ᆞᆞᆞ네!" 나는 진화가 내게 내민 동물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작고, 작은 새끼 토끼였다. "이걸 먹으라고?" "죄송해요 도저히 토끼를 잡을수가 없어서ᆞᆞᆞ." "토끼하나 못 잡아?" "죄, 죄송해요 누나." "됐어." 진화로부터 새끼 토끼를 받아든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간에 기별은 갈까ᆞᆞᆞ? "다음엔 못 잡겠으면 닭이라도 사서 가지고 와." "네에." "이건 뭐 먹을거도 없잖아." 두 손가락으로 새끼토끼의 발을 잡고 흔들어 보이며 말하자, 진화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눈물을 글썽였다. "죄송해요...그래도 제가 잡은 걸 드리고 싶어서. 다음부터는 닭을 사 올게요." "우는거니?" "아. 아니에요" "아닌데, 울고 있잖니." 손을 뻗어 진화의 눈끝에 매달린 눈물을 닦아주며 말하자 진화가 놀라며 홱 고개를 돌렸다. 돌린 고개 옆으로 귀끝이 붉어졌다.
11 이름없음 2020/03/14 20:51:10 ID : eGnva9thbxD 0
개재밌다 보고있어!!
12 스레주 2020/03/15 08:47:49 ID : hzcMnQlio6n 0
'창피한가.' 그래 처음인 얘한테 뭘 바랄까. 사고나 안치면 다행이었다. 짧은 한숨과 함께 진화가 잡아왔다는 토끼의 간을 빼먹고 있자니 진화가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왜?" "누나도 식욕을 느껴요?" "느끼니깐 배고프다고 한 거겠지." "전 더 이상 못 느끼겠던데요?" "내 피를 마신 얘들은 배가 고프지 않지. 나도 평소에는 그래." 간을 다 먹고 입가를 혀로 한번 훑었다. 역시 부족해. "근데 왜 지금은 배가 고파요?" "나도 몰라. 아마 억지로 감정을 느끼려고 그래서 일 걸." "누나는. 정말로 그 3가지를 못 느껴요?"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러지. 무심한 시선으로 진화를 내려다보자 진화는 또다시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그모습에 픽 웃으며 진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너에게 한 번이라도 화를 낸 적이 있니?" "아." 방금도 새끼토끼를 가지고 온 진화가 황당했지, 화는 나지 않았다. 진화는 그제야 알겠다는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머리를 내 쪽으로 살짝 내미는 게 머리를 쓰다듬어 돌라는 의미였다. 9살 여자아이가 제 보다 큰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걸 다른 사람이 보면 무척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진화나 나나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담 때문에 밖에서는 볼 수도 없었다. "그래 진화야, 내일은 닭이라도 사오너라." "네ᆞᆞᆞ. 근데 괜찮으세요?" "뭐가?" "배 아직 고프시잖아요." "뭐, 할머니가 잠들면 나가서 들개나 잡지." "저도 도와드릴게요." 그러렴, 하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몸을 틀어 다시 탁자에 앉았다. "뭐 하세요?" "공부." "누나가 공부라니 낯설어요." 창문을 넘어 방안으로 따라 들어온 진화가 내 뒤에 서서 내가 보고있는 책을 훑어보곤 말했다. "그야 난 지금 '아령'이니까." "..저한테는 언제나 '진설하'에요." "마음대로 생각해." 진화는 뒤에서 나를 한번 끌어안고서는 창문을 넘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진화가 방을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왔다. ***** 다음날. 아침에는 채소를 가다듬고있는 할머니를 도우고, 할머니가 어제 새로 사자온 책을 마저 읽고나서 간단한 점심을 먹자마자 아원과 만나기로 약속한 중앙 나무 앞에 앉았다. 내가 막 나왔을때만 해도 아이들은 다들 밥을 먹으러 집에 가 있었기에 중앙 나무 앞에는 늙은노인이나 갓난아기를 재우기 위해 나온 젊은엄마들밖에 없었다. 혼자서 나무에 머리를 기대고 땅에 닿지 않는 발을 앞 뒤로 흔들고 있으니 우리 할머니 나이 쯤 되어보이는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는게 느껴졌다. 그 할머니의 품에는 자고 있는 어린 손자를 있었다.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눈웃음을 지으며 이리 와보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얘야. 여기에 혼자서 뭘 하고 있는거냐?" "친구 기다려요." 포근한 인상의 할머니는 한번 소리내서 웃더니 제 옆자리를 두드렸다. "친구가 오기 전까지 이 할머니의 말동무나 해주지 않을래?" "물론이에요." "넌 올해로 몇살이니?" "올해로 9살이에요. 할머니 손자는 몇살이에요?" 할머니는 역으로 내가 질문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는지 '허허'웃으며 자고 있는 손자의 등을 쓰담았다. "얘는 올해로 7살이란다." "저보다 두 살 어리네요." "그래, 그렇지. 얘야 이름이 뭐니?" "제 이름을 말해주면 할머니도 말해주실 거예요?" "응? 하하. 할머니는 그냥 수할머니라고 부르렴." "전 아령이에요. 서아령." "아령...좋은 이름이구나." 수할머니와 짧은 얘기를 주고 받는동안 중앙 나무 근처에는 점점 아이들이 많아졌다. 수할머니는 한곳에 모여 노는 아이들을 보다가 돌아봤다. "저기에 친구들이 없는거니?" "제 친구는 조금 멀리에 살아서 오는게 느려요." 아이들 사이에는 나와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도 몇 명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세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화는 아까부터 계속 힐끔거리며 나를 훔쳐보았다. "저 여자아이와 아는사이니? 계속 보는구나." "예전에 친했던 얘에요. 지금은 아니고요." 발을 앞뒤로 흔드는 걸 멈췄을 즘, 멀리서 회색머리의 남자아이가 이쪽으로 오는게 보였다. 아원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수할머니는 아원을 한번 보며 '잘놀거라'하고 말해주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잠든 손자가 혹여 깰까, 조심스레 안아서 파란색 꽃이 활짝 핀 집으로 들어갔다. "아령! 많이 기다렸어?" "아니 많이 안 기다렸어." "미안해. 아버지한테 혼나느라 늦었어." 아원은 미안하다며 뒷목을 쓰다듬었다. "왜? 어제 준 암탉 때문에?" "뭐 그렇기는 하는데, 너무 신경쓰지마. 우리 아버지도 그냥 얼간이라고만 하셨지 뭐라고 안 하셨어." 음. 그거 욕한거 아닌가? 하지만 당사자인 아원이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차마 내가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아원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오는길에 봤어 오늘이 장날이래! 우리 시장 구경하자!" ***** "솔직히 말해 봐." 방금 전까지만 해도ᆞᆞᆞ. "와! 아령 이거 봐!" "아령! 이거 진짜 보석이야?" "아령! 이거ᆞᆞᆞ." "아령!!" 연신 내 이름을 부르며 시장을 돌아다니던 아원이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면서 물었다. "너 지금 재미없지?" 아주 눈치가 없는건 아니였네. 아니지, 이미 몇 군데나 돌아다니고 나서야 눈치챈 거니까 눈치가 없는 쪽인가. "난 별로 재미없어." "왜? 장날이잖아? 평소에 없는 물건들도 있어!" 내가 뚱하게 대답하자 아원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말로 재미가 없는데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원래 살던 곳 시장이랑 비슷해. 거기 장날이랑은 확연히 다르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천아란'이라는 마을로 수도와 거리가 마차를 타도 사흘이나 걸리는 수도와 떨어진 시골이었다. 물론 다른 주변 마을들 중에서는 가장 발달된 마을이기는 했지만 수도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시골이었다. "네가 원래 살던 곳이 어디였는데?" "ᆞᆞᆞ말해도 넌 모를 거야." 여기서 내가 수도에서 살았던걸 말하면 안된다. 아원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수도에 살다가 왜 이런 시골로 온 건지 궁금해할 테니까. 말할 수 없었다. "뭐야? 이름이라도 말해줘." "안돼. 넌 어차피 모를 거라니까?" 아원으로부터 몸을 돌려 시장을 걸었다. 아원은 끈질기게 따라와 이름을 물었고, 내가 끝끝내 대답하지 않자 너무하다며 혼자서 앞으로 걸어갔다. "아령. 저게 뭔지 알아?" 그러다 문득 아원은 손으로 나를 끌어당기고는 사육장 안에 든 동물을 가리키고 물었다. "금계잖아." 사육장에 갇혀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리를 보는 금계를 한번 보고 대답하자, 아원은 신기하다는 듯이 한참을 금계를 구경했다. 낮에는 아원과 시장을 돌아다니거나 물가에 가서 놀았고, 밤이면 진화가 잡아오는 동물들을 먹었다. 시간은 매우 빠르게 지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는 작은 토끼에서 꿩으로, 닭으로 멧돼지로 서서히 사냥을 잘하게 되었고, 나와 아원도 몸이 자라 14살의 생일을 맞이했다. -- 어린얘들 놀이 같은거 못 쓰겠다..얘들아 좀 크자!
13 스레주 2020/03/15 14:23:48 ID : hzcMnQlio6n 0
그날은 내 생일이었고,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아원과 할머니로부터 축하를 받고 할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아원과 함께 먹었고, 아원과 밖으로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었다. 아원이 다음날 제 비밀을 말해주겠다고 했던 날이다. 진화는 낮 동안은 어딘가에 숨어서 날 지켜보고 있을 것이고, 저녁이 되어 할머니가 잠들면 날 찾아와 내가 먹을 먹잇감을 가지고 올 것이었다. 할머니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방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도중 한 달의 한번 할머니를 찾아오는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할머니에게 돈을 주고 몇 마디를 주고받으면 그 사람은 집을 나갈 것이었다. 단지, 내가 목마름을 참지 못하고 방을 나갈 때 눈을 제외하고 모든 얼굴을 검은색 천으로 가린 남자와 마주치지만 않았다면 모든 게 똑같은 날이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남자의 금색 눈동자가 커졌다. "이 아이는ᆞᆞᆞ." "아! 이 아이는 그냥 펑범한 아이입니다!" 남자와 내가 서로를 쳐다보자 할머니가 급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그냥 제 손녀같은 아이입니다!" 할머니가 이렇게 다급하게 외치는걸 처음본 내가 놀란 눈으로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다. 남자는 눈썹을 치켜떴다. 믿을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이내 불쾌하다는 듯 차갑게 말했다.
14 스레주 2020/03/15 14:24:29 ID : hzcMnQlio6n 0
3"비키거라 소." "도련님 정말입니다! 이 아이는 제 손녀입니다." "판단은 내가 한다. 비키거라." 강압적이고 묵직한 목소리가 나왔다. 할머니는 차마 거절할 수 없는지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남자와 내 사이를 막던 할머니가 옆으로 빠지자 남자가 내 쪽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그는 아까 할머니를 대했을때와 다르게 목소리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이름이 무엇이냐." 힐끔, 할머니를 쳐다보자 할머니는 내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름을 말해도 되는걸까. "날 보거라! 이름이 무엇이냐." 남자는 언뜻 들어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할머니에게 있던 시선을 옮겨 나를 내려보는 거구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15 스레주 2020/03/15 14:25:10 ID : hzcMnQlio6n 0
"아령이에요." 남자는 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자가 무슨 생각인지 내게 손을 뻗어오는걸 가만히 보고있자, 남자는 도로 손을 거두었다. "성은..성은 무엇이냐." "서씨입니다. 서아령." 그러자 남자는 차마 나를 볼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감았고, 손을 들어 눈가를 쓸어내렸다. "소.. 이게 정말인가." 남자는 최대한 무언가를 억제하는 표정에 눈빛이 무섭게 빛나는게 뭔가 조금 아까와는 달랐다. 몹시 화가 난 것인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남자의 시선에 할머니는 아무 대답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그런 할머니를 보다 다시 나를 한번 보고는 몸을 돌려 대문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남자의 뒷모습을 보던 시선을 바꿔 할머니를 보자,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할머니?" "ᆞᆞᆞ령아. 얼른 들어가서 자거라. 오늘 피곤했잖니." 할머니는 애써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할머니는 터벅터벅 힘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서 내 방으로 들어가자 진화가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은 사슴을 잡아왔어 누나." 칭찬해달라는 아이처럼 고양된 목소리로 말하는 진화의 머리를 쓱 한번 쓰담아주고 여호는 의자에 걸쳐진 검은색 겉옷을 입고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오늘도 거기 산에 있는 창고에 놔두고 왔어." "잘했어." "누나. 나 이제 사람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잡아와. 우리 마을 사람은 안되는 거 알지?" "당연하지! 내가 몇 번이나 사냥했는데!" 잘했다는뜻으로 진화의 머리를 다시 쓰담아주었다. 진화는 뭐가 좋은지 바보처럼 싱글벙글 웃었다. ***** 날이 밝았다. 아령의 금색 눈동자가 번뜩 뜨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한번 쭉 하고 창문을 열어 햇빛이 방안으로 들어오게끔 했다. 할머니는 여느때 처럼 밥상을 차려 내 방으로 들어와 같이 아침을 먹었다. 어젯밤 일이 전부 꿈인것마냥,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할머니." "왜 그러냐." 할머니는 묵묵히 밥을 먹으며 대답했다.
16 스레주 2020/03/17 18:42:25 ID : hzcMnQlio6n 0
"어제..온 사람 누구야?" "ᆞᆞᆞᆞ." 내게 고기반찬을 주며 분주히 움직이던 할머니의 손이 일순 멈칫했지만, 할머니는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단호해 보이는 눈이었다. "몰라도 된다." "할머니." "밥이나 먹어. 오늘도 아원이 산에 갈거면 배가 고플거다." 그렇게 말한 할머니는 먼저 다 먹은 밥그릇을 들고 방을 나가버렸다. 역시. 할머니는 어젯밤의 일을 언급하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저렇게 도망가듯 자리를 비우자 어젯밤 일에 대한 내 궁금증은 한층 더 깊어져 갔다. "아령 무슨 생각해?" 어떤 일에 한번 꽂히게 되면 하루 종일 그 생각에 빠지게 되는 나는, 아원이 날 찾아왔을 때도 머릿속에는 온통 의문의 남자와 할머니.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두둥실 날아다니고 있었다. "아령?" "어? 왜?" 아원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그를 쳐자보며 물었다. "다 왔어." "어? 벌써 도착했어?" "응. 너 무슨 생각해? 아까부터 계속 멍해." 아원은 자기네 닭 사육장에 도착하자, 익숙하게 닭 모이가 든 바구니를 들고 사육장 이곳 저곳에 뿌리며 대답했다. "너 강에 발 빠졌을때도 멍하던데, 발 빠진건 알고 있어?" "아? 어라? 정말이네!" 언제 빠진거지? 시선을 내리자 오른쪽 다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축축한게 영락없이 물에 빠진 다리였다. 물에 빠졌던 것도 모르고 있던 내가 허둥지둥 신발을 벗어 신발 안에 들어간 물을 밖으로 버렸다. 내가 신발의 물을 밖으로 꺼내는 동안 닭 모이를 다 뿌린 아원이 사육장에서 나와 내 옆에 앉아, 주머니에서 육포하나를 꺼내 먹으며 말했다. "너 무슨 고민있어? 왜 이렇게 바보같아." "바보?" 신발을 다시 싣고있다가 눈썹을 치켜들고 아원을 쳐다보자, 아원은 머쓱해하며 내게도 똑같이 육포 한 개를 건넸다. "에이 농담이야, 농담." "흥, 농담같은 소리하네. 나한테 글을 배운 주제에 감히 스승님한테 바보라고?" 아원이 준 육포를 받아 잘근 씹어먹었다. "네가 왜 스승이야? 아니야." "너, 나 한테 글 배웠잖아? 그러면 내가 스승이지. 어떻게 14살이 되도록 자기 이름밖에 못 써?" "우리 아버지가 글은 배워도 쓸모없다고 했어. 그리고 나는 장군이 될거라서 글 쓸 필요없어." 당당하게 가슴팍을 치며 말하는 아원을 나는 어이없어하며 보았다. 쟤 바보인가? "너 바보야? 장군이 되면 글을 써야하는데, 글 쓸 필요가 없다고? 장군이면 병사들 훈련일지나, 업무일지 같은거 써야하는데?" 게다가 일반 병사들도 실기시험이 필요했다. 그런데 꿈이 장군이라는 얘가 내게 글을 배우기 전까지는 글도 못 썼으면서 그런 말을 하니 우스웠다. "어? 아니야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했어! 몰라도 된다고!"
17 스레주 2020/03/23 15:56:56 ID : hzcMnQlio6n 0
너네 아버지는 네가 장군이 되는 걸 바라지 않으신가 보지." 육포를 먹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원이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야! 우리 아버지는 장군이 될뻔하셨다고!" "장군이 어디 동네 개 이름이니?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알아? 너네 아버지가 누군데?" 아원을 돌아보며 묻자, 아원은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다가 손짓으로 이리오라는 체스처를 표했다. "이리 가까이 와." 어디 무슨 말을 할까, 가만히 다가가서 귀를 대자, 아원이 목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우리 아버지가 사실은 현 황제의 심복이었데." 현 황제라면ᆞᆞᆞᆞ. "류비연?" 황제의 이름을 거론하자 아원은 놀라며 소리쳤다. "야! 너 그렇게, 그렇게 막 황제의 이름을 부르면, 어? 안돼!" "뭐 어때? 여기에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라도 있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아원이 못 말리겠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아원은 이어 말했다. "어쨌든, 우리 아버지가 황제의 심복이었어. 나도 5살때 까지는 온낙원에 살았구." 얘가 수도에서 살았다고? 이건 좀 의외였다. 시장 장날이면 그렇게 좋아하는 게 영락없이 시골 아이인데, 수도에서 나고 살았다니.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라며 아원을 돌아보았다. 아원은 내시선을 받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왜? 이 오라버니의 출신에 놀랐냐?"
18 스레주 2020/03/23 15:57:41 ID : hzcMnQlio6n 0
''오라버니는 무슨, 웃기고 있네. 됐고 계속 말해봐."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어떤 전쟁에서 적수의 목을 베어 황제에게 가져다주었데. 공을 세웠으니 당연히 장군이 될 예정이었어. 그런데 마지막에 적의 공격에 발목을 다쳐서 말을 못 타게 되셨데." 장군이면 전쟁에서 말을 타고 군대를 몰아야 하는데 말을 타지 못 하는 장군이라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황제폐하께 장군의 직을 반납하고 이곳으로 오신거야. 요양차 말이야." 그후 천아란으로 요양을 오고, 마을 사람들의 부탁으로 호랑이를 혼자서 죽이고 사냥꾼으로 이 마을에서 지낸다고 아원이 말했다. 아원은 전부 내게 말해주고는 내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비밀이야." "이미 말했으면서 비밀이라고?"
19 스레주 2020/03/23 15:58:35 ID : hzcMnQlio6n 0
"당연히 널 믿어서 말한거지! 어쨌든 비밀이야. 알겠어?" "뭐ᆞᆞᆞ. 그래 알았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계속 걸으며 대화를 했기에, 대화가 끝날 때쯤 차가운 냇물가에 도착했다. 아원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듯 신발을 벗고 냇물에 발을 담갔다. 5월의 여름날에 발을 차가운 물에 담그니 차가운 기운이 몸안으로 들어와 시원해졌다. 차가운 기운을 맘껏 느끼며 두 눈을 감고 있자 옆어새 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넌 고민이 뭐야?" "응? 내 고민?" "그래 고민. 너 아까까지 계속 멍 때리고 있었잖아. 고민있는거 아니였어?" 아원의 말에 나는 잠깐의 침묵을 가졌다. '이게 고민인가?' 그 남자가 누구인지, 할머니와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한 것을 고민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원은 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자 더 궁금해졌는지 옆에서 조잘거렸다. "야 나한테 말해보라니까? 내가 이야기 하나는 잘 들어!" "이게 고민일까?" "고민이 아니여도 괜찮아! 말해 봐!" "음ᆞᆞᆞ"
20 이름없음 2020/03/27 19:38:58 ID : hzcMnQlio6n 0
나두 피드백 받고 싶은데...짧게 짧게 자주올까, 길게길게 올릴까...? 지름작이다보니 초반에는 재미있다가 후반되니까 내가지금 잘 쓰고 있는건지 모르겠어..
21 이름없음 2020/03/27 20:59:54 ID : 441yGslDvyH 0
오 재밌다!!! 잘 쓰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22 스레주 2020/04/01 13:14:08 ID : hzcMnQlio6n 0
결국 계속되는 요청에 어젯밤 일을 말해주자 아원은 하얀 턱을 매만지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그사람!" "응?" "너네 아버지 아니야?!"
23 스레주 2020/04/01 13:14:47 ID : hzcMnQlio6n 0
아버지라고? 아원의 말에 두눈을 깜박이자 아원이 내 눈을 가르키며 말했다. "봐! 너도 금색 눈동자잖아! 금색 눈동자가 흔한것도 아닌데, 혈연이 아니겠어? 게다가 남자라며! 아버지야 아버지!" "아니야." 나는 흥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원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24 스레주 2020/04/01 13:15:13 ID : hzcMnQlio6n 0
"뭐? 아니 왜?" 제 추리가 맞다고 생각한 아원이 믿을수 없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결코, 그 남자는 내 아버지 일 수가 없었다. 왜냐고? 어떻게 그렇게 단호하냐고? 그야, 내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니까. "내 아버지는 돌아가셨어." "어?" "돌아간 사람이 어떻게 여길 와." 서서 바람이나 막지 말라고 아원의 옷자락을 힘껏 잡아당기자, 아원이 물 위로 넘어지며 물보라가 일어났다. 다행히 나는 많이 젖지 않았지만 아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었다.
25 스레주 2020/04/01 13:15:56 ID : hzcMnQlio6n 0
의도치 않게 아원을 물에 빠트린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아원을 쳐다보았다. "아. 아원!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아버지가 아니라고?" ᆞᆞᆞ얘도 참 보면 단순해. 이대로 돌아가면 제 아버지에 혼이 날거면서 그런건 신경쓰지 않는 아원에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ᆞᆞᆞ 숙부?" "숙부도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원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왜?" "할머니가 그랬어.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숙부라고. 그런 사람이 뭐하러 할머니를 찾아와?" "어, 그럼ᆞᆞᆞ 외숙?" "외숙?" 나는 뜻밖의 대답에 아원의 말을 따라 말했다. 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외숙도 돌아가셨어?" "아니... 몰라." 내가 왜 외숙은 생각하지 못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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