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5/06 23:13:04 ID : dSGtBBxTSMq 0
여자친구는 있는데 장거리에다 바빠서 만나기도 순탄치 않아. 늘 과분하게 넘치는 사랑을 받아와서 내 사랑의 기준과 여자친구의 사랑의 기준이 달라 가끔 나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걸까, 다른 사람이 생긴걸까, 얘는 원래 이런 성격인걸까, 그 외에 여러가지. 사실 어쩌면 내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내 한순간의 실수로 헤어져버렸어.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다 흘러보내고 살고 있는데 어째선지 그 친구만은 잊을 수가 없고 벌써 3년째 꿈에서 나와. 헤어진 지 벌써 3년짼데, 꿈 뿐만 아니라 심하면 우리와 비슷한 분위기의 커플만 봐도 그 애가 떠오르고. 관계나 배경은 다양하게, 고3때의 연애시절이라던가, 성인이 되고 나서 재회 후 싸늘해진 시선이라던가, 그런식으로. 어떤식이든 제발 그만 나와줬음 좋겠고 나는 내 현재를 살고 싶어. 걘 더 이상 내가 생각 안날테고 제 인생 스스로 잘 살고 있는데 나만 못잊고 이렇게 힘들어한다는게 말도 안돼.
2 이름없음 2020/05/06 23:17:19 ID : dSGtBBxTSMq 0
그때의 나는...나는 뭐랄까, 그저 방황만 했던 것 같아. 지금도 비슷하지만. 꿈이라고 생각하던 것들은 그저 그냥 대학을 가기 위해 막연히 생각만 하는 용도로 전락한 지 오래였고,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5분짜리 인스턴트 사색 잠깐, 그리고 15분은 문제풀기, 그리고 남은 40분은 노는데에만 치중했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걔를 처음 만났어. 남들 다 바쁜 시기에 혼자 바쁜 척 장단 맞추지만 사실은 그런 바쁨과 구속을 견디지 못하고 공부 할라치면 시간을 낭비해버리는 쓰레기 근성에, 반반하지도 않은 얼굴에다, 성적도 그렇게 좋지 못했는데, 갠 내가 좋다고 했어. 그때도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어, 이런 나를 왜 좋아하는걸까. 의문점을 갖고 우리 관계는 시작하게 되었지.
3 이름없음 2020/05/06 23:19:03 ID : dSGtBBxTSMq 0
사실, 바로 시작한 것은 아냐, 걔는 나에게 2번씩이나 고백을 했는데도 다 내가 찼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로라도 지내고 싶은 개가 좀 불쌍했었나봐. 사귀면 좋아질 줄 알았어, 그래서 사귀었어. 물론 실제로도 효과는 어느 정도 있었어. 그렇게 동정 반, 사심 반의 상태로 우리는 만났어.
4 이름없음 2020/05/06 23:22:25 ID : dSGtBBxTSMq 0
걘 나보다 키가 컸어, 한 170쯤, 긴 생머리에, 너무나도 날카롭고 매서웠던 눈매가, 그치만 날 볼때면 한없이 간질거리고 다정해지는 그 눈이. 처음엔 진짜 나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모르겠더라, 이렇게 잘난 애가 어째서 나같은걸? 이건 지금도 말하지만 지금도 모르겠어. 왜 그랬을까. 우리가 만난건 서로의 인생에 너무나도 치명적인 실수였는데.
5 이름없음 2020/05/06 23:25:58 ID : dSGtBBxTSMq 0
그냥 오타쿠인 것 뿐인 공통점을 가지고 이렇게나 좋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걘 나를 정말정말 좋아해줬어. 나는 준비하지 못한 기념일을 걔는 준비해준다던가, 크건 작건 할 것 없이 해달라는 것의 대부분은 아무 거부 없이 전부 들어준다던가. 그 애의 사랑이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솔직히 너무 쉬워서 질렸던 것 같아. 쓰레기만도 못한 놈ㅋㅋ... 나는 진짜 하고싶은대로 했던 것 같기도 하고.
6 이름없음 2020/05/06 23:29:39 ID : dSGtBBxTSMq 0
그 행복에 익숙해져서 나는 평생을 그 PTSD에 시달리면서 살 것 같아. 그 애로 인해서 내 사랑과 행복의 기준은 전부 그 애로 맞춰졌거든. 상대방이 조금만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왜 이런 행동을 하지? 나를 사랑하면 이게 아니라 내가 생각한대로 해야되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상대에게 기대감이 조금씩 낮춰지고, 흥미도 떨어지면서, 잘 사귀던 사람과의 관계마저도 망쳐버려. 걔는 이러지 않았는데, 하면서 그 애의 생각이 나는 것은 덤이고. 알면서도 나는, 이걸 고칠 마음도 없고 어떻게 고치는 지도 모르곘어.
7 이름없음 2020/05/06 23:33:53 ID : dSGtBBxTSMq 0
그리고 아마 지금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다면, 여자친구는 커녕 그애가 또 그리워질거야.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 평생을 이렇게 살게 될거라는 불안감이 밤마다 나를 덮쳐와. 죽고 싶은데도 죽을 수가 없어. 죽지 못해서 사는거야. 남들은 절대 이해할 수도 없고 알더라도 역겨움만 남는 내 감정에, 나는 목이 매달려 버둥거리고만 있는거야. 말 그대로 그 애는 내게 영원한 트리거로 남게 된 거겠지, 나는.
8 이름없음 2020/05/06 23:37:52 ID : dSGtBBxTSMq 0
내가 그렇게 내멋대로 헤어지자고 할거였으면,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제대로 안아줄 걸.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제대로 눈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걸. 3년째 똑같은 후회와 그 때의 내 행동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 난 더 이상 그 기억으로 건강한 연애도, 내 결단력에 대한 확신도 제대로 서지 않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내 행동에 대해 검열해. 하지만 그 끝은? 없어. 그저 앵무새처럼 의미없는 말들만 되풀이 할 뿐이야. 행동에 대한 결과도, 충분할 줄 알아야 하는 사랑도.
9 이름없음 2020/05/06 23:38:24 ID : dSGtBBxTSMq 0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22살의 성인으로.
10 이름없음 2020/05/07 01:08:58 ID : dSGtBBxTSMq 0
이름도 네가 다닐거라던 학교도 네 아이디도 전부 검색해보고 네 흔적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걸 보고서야 정신이 든다. 뭐랄까, 잘 지내? 네가 잘 사는 거 그거 하나만 본다면 난 다시 정신 차릴 수 있을텐데, 잘 모르겠다. 네 모습이 아니라 너네 학교 학과 게시판에 편입 문의를 보고서 머리를 좀 얻어맞은 기분이야. 네가 거길 졸업을 해서 취업을 했을 지, 편입을 해서 더 좋은데로 갔을지, 여자친구가 생겼을 지, 아무 상관 없는 내가. 이제 이런거 봐서 뭐하겠어, 네 꽁무니를 쫓아가봐야 넌 더 이상 그 자리에 없는데. 난 그냥, 그때를 잃기 싫은 것 같기도 해.
11 이름없음 2020/05/07 01:11:05 ID : dSGtBBxTSMq 0
실수로라도 마주치고 싶다. 널 버린 내 비참한 꼴을 보여주고 싶어. 네가 그토록 바라던 내 파멸이야, 이걸로 충분하잖아. 헤어지고 나서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 제발 그렇다고 해줘.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날 놔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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