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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1/11/18 03:38:07 ID : g5gi03u9Ai0
이 글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정리다. 자살, 자해, 우울에 관한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그럴 의도로 쓴 건 아니지만 쓰다보니 그렇게 됐다.) 읽을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읽기 전에 참고해주길 바란다. 또 글을 읽다 적고 싶은 게 있다면 편하게 적어주길. (단, 자살방법 질문같은 예민한 글은 무시할게.)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심경인 나를 위해. 살아있는 이유를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가던 어린 나는 오래 살지 말고 일찍 죽자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하루가 무의미 했으며,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 지겨웠다. 그때의 나는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너무나 지쳐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생각한 건 길지 않은 삶을 살아가던 중이었을 때였다. 첫 알바를 하며 생각했다. 40살이 되면 죽자. 아니, 25살이 되면 죽자. 목표가 생기니 계획은 간단했다. 원하는 고등학교와 대학에 가 돈을 벌고 짧은 청춘 마음껏 즐기다 죽자고. 즐길 수 없더라도 그 나이까지는 살아보자고. 알바를 끝내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나는 또 한번 생각했다. 사회에 이같은 사람만 널려 있다면 즐길 청춘도 씨가 마를 거 같다고.
이름없음 2021/12/05 01:32:30 ID : g5gi03u9Ai0
안되겠다, 나는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차라리 졸업하자 마자 죽는 게 낫겠어. 원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얻은 거라곤 수명단축이었다. 나는 내 수명을 깎아먹고 졸업하면 죽기로 다시 결심했다. 졸업이 가까워진 고3에 다시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졸업 전에 준비할 게 너무나 많았다. 코로나까지 겹쳤는데도 이 빌어먹을 학교는 행사를 강행했다. 덕분이라면 덕분에 난 내 시간을 조금 늘려보기로 했다. 졸업 후 20살이 되는 내 생일 날 죽자고. 가족들에게는 대학에 간다 거짓말을 하고 고등학교 내내 모아온 800만원을 들고 두 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이름없음 2021/12/05 01:35:49 ID : g5gi03u9Ai0
놀았던 게 맞나? 사실 잘 모르겠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먹는 것. 맛집이라는 맛집은 다 가서 맛있는 것들 잔뜩 먹고 죽자 했다. 혼밥하는 건 익숙했고, 혼자 이곳 저곳 돌아다는 것 역시 나에겐 쉬운 일이었다. 길치라도 걱정 없는 지도앱을 키고 돌아다녔다. 첫 한 달은 그럭저럭 보냈다. 맛집도 여러군데 다니고 가족들에겐 자퇴하고 놀러다니는 중이라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퇴를 한 건 맞으니까. 난 그렇게 총 두 달 하고 일주일 정도를 먹기 위해 살았다. 그 후에는 그동안 준비해 온 죽음을 진행시키는 일을 했다.
이름없음 2021/12/05 01:43:44 ID : g5gi03u9Ai0
남에게 피해 끼치긴 싫어 안쓰려던 유서까지 준비하고 죽을 준비를 마쳤다. 확신이 있었던 건 그만큼 확실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내 죽음에 자신 있었다. 무려 4년간 준비해왔던 죽음이다. 그러나 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쩌면,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존재했다. 애써 무시했으나 점점 날 좀먹어 온 건 확실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지 못하고 눈을 떴을 때 그만큼 덤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난 실패 역시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1%도 안되는 낮은 확률을 뚫고 살아난 것은 여전히 어이 없는 일이다. 혹시 했는데 그게 내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예상과 역시는 다르다. 죽기 위해 준비한 그동안의 노력이 전부 헛수고가 되었다. 버린 옷들을 가지러 갈 수도 없었다. 유일하게 나를 알아보라고 남겨둔 핸드폰이 내 손에 남은 전부였다. 동아줄처럼 쥐고 다이소에 가 충전기를 사고 어찌어찌 모텔을 예약하고 현금을 구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나는 다음 죽음을 준비했다. 수면제를 사서 술과 함께 먹어 두 번째 자살시도를 하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난 알고 있었다. 이건 예상이 아닌 확신이었기에 침착할 수 있었다.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잠시 잠을 자기 위해, 제발 하루만이라도 약에 의존해 푹 자보고 싶었기에 했던 행동이었다. 난 모텔에서 문을 다 걸어잠그고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낸 채 잠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떠 폰을 보니 7시였고 난 당연히 오후인 줄 알았다.
이름없음 2021/12/05 01:51:20 ID : g5gi03u9Ai0
내게 절망은 한 번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절망은 한 번만 찾아오지 않는다. 하늘에도 끝이 없듯이 절망도 끝이 없었다. 나는 하루도 채 잠들지 못하고 깼다. 그 순간 덮친 암울한 현실과 우울이 나를 양껏 파먹었다. 그대로 1층으로 달려가 주인 아주머니께 현금을 얻어 연탄을 샀다. 세 번째 자살시도를 위해서였다.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남을 피해주지 않는다는 것도, 조용히 죽겠다 다짐한 것도, 죽기 전 남길 물품은 내가 입은 옷과 핸드폰뿐이라는 것도. 다 무시한 채 모텔에서 연탄을 피웠다. 사실 피운 것도 아니다. 토치는 화력이 약했고 번개탄은 무용지물이었다. 연기만 올라온 걸 보고 모텔 주인이 119에 신고를 했다. 난 그때 다시 새 토치를 사러 다이소에 갔다 모텔로 돌아온 참이었다. 119에 신고한 주인과 대원들이 내 방에 들어왔다.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링겔을 맞았다. 그 순간 내 정신은 아주 멍했다. 망할 수면제는 효과는 더럽게 미미했던 주제에 부작용인지 뭔지 내 뇌를 바보로 만들어 놨다. 응급실에서 내가 기억하는 건 링겔이 아프지 않냐는 간호사의 말에 이보다 더한 짓도 하려 한 내가 이딴 게 아플까요 라고 했던 것과. 호구 조사하듯 내 죽음의 경위를 묻는 의사에게 고분고분 답했다는 것이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나중에 들은 말은 내가 부모님에게 따박따박 말대꾸를 했다는 것과 친구들에게 전화로 울며 사과를 했다는 거다. 그리고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이름없음 2021/12/05 02:02:20 ID : g5gi03u9Ai0
친구들은 만났다. 만나기 전 내가 겪은 일들은 아주 기분 더러운 것들이었다. 나는 뒤늦게야 부모님들이 내게 쏟는 돈을 보며 저 돈을 차라리 장례식에 쓰면 될것을. 하고 생각했다. 가족애라고는 눈곱만큼 없었다. 죽어서 남겨질 이들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차라리 다시 만난 친구들에게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그 애들에게 끝까지 거짓말을 했다. 죽으려 했던 이유, 정말 별 거 아니다. 살아갈 의지를 잃고 앞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놓았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렇기에 죽기 직전 망설임은 없었다. 긴장과 곧 닥칠 죽음에 대한 공포면 몰라도. 살아나고 내가 한 일은 정신병원에 간 거다. 부모님은 끝까지 내가 이런 게 호르몬 때문이라 하셨다. 날 산부인과에 넣으려던 걸 자진해 정신병원에 갔다. 심사숙고 해 간 정신병원은 초진에 상담받은 의사선생님만 좋으신 분이었다. 두 번째 상담 이후 병원은 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지역에 있는 정신건강센터에 방문해 며칠 다니다 가지 않았다. 점점 모든 게 허무해졌기 때문이다. 아직도 유일하게 후회하는 건 그때 죽지 못한 것이다. 미련이 남은 것도 불도 피워보지 못한 연탄이다. 앞으로 무얼하며 사나. 난 이 앞날을 계획해 둔 게 없는데.
이름없음 2021/12/05 02:14:55 ID : g5gi03u9Ai0
몇 달은 학원을 다녔다. 할 게 없었기도 했고 살아난 이상 뭐라도 해 다시 죽든 살아가든 할테니까. 학원에서는 변변찮은 자격증 하나 취득하지 못하고 끝냈다. 다시 뭘 해야 하나. 2주동안 방황하다 알바를 시작했다. 알바를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나마 죽지 못하고 살아났을 땐 글이라도 좀 썼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지겹다. 뭐하나 제대로 흥미 붙이지 못하고 금방 실증나는 나에게도 불만이 찬 상태다. 그럼 너, 대체 뭘 할거니. 어중간한 내가 너무나 답답하다. 다시 죽기 위해 돈이라도 벌고 있지만 이전에 쓴 방법은 더이상 확신이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 쓸 방법은 시간도 돈도 내가 준비해 온 만큼 걸릴 것이다. 난 이제 매 내 생일마다 죽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날을 연례행사처럼 기억할 것이고, 여전히 앞날을 정하지 못하는 겁쟁이 같은 정신머리에 한숨을 내쉴 것이다. 무엇이라도 해보고자 발버둥쳐도 여전히 흙탕물을 더럽히는 꼴일 것이다. ···정말 모르겠다. 왜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건지. 그때 119에 신고했던 모텔주인이 원망스럽고 살린 날 책임져야 하는 건 결국 나라는 현실이 잔인하기만 하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이유는 '죽기 위해'라는 단 한가지 이유일 텐데. 핸드폰 너머 들린 목소리는 여전히 기억한다. 죽으려면 당장 고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려 죽으라고. 난 여러 반박할 말과 나름의 내 4년동안 준비해오던 것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당장 죽고 싶으면 한강이든 옥상이든 올라가 뛰어내려 죽는 죽음은 참 쉽다. 그러나 그렇게 죽으면 지난 4년간 죽기위해 참아왔던 내가 너무 불쌍하다. 친구도, 나름 잘 하고 있던 것도, 가진 물건도 다 버리고 정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죽으려던 내 지난 날의 노력이 너무나 가엽다. 토해낼 거라곤 활자뿐이었던 외로웠던 시간을 혹처럼 안고가야 할 지금의 나도. 다시 죽기 위해 아등바등할 미래의 나도. 그럼에도 살아갈 용기는 쥐뿔도 없고, 사회에 낙오되든 도태되든 할 게 뻔한 미래 때문에. 결국 돌고 돌아 내 종착점은 다시 죽음일 것이다.
이름없음 2021/12/05 02:33:07 ID : g5gi03u9Ai0
나를 위한 정리라 해놓고 두서없는 글이 된 거 같다. 예전에 비해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글을 쓰기 위해선 더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조차 나에게 힘겨운 일이 되버렸다. 대체 얼마나 바보가 된건지. 새벽감성에 끄적이던 글도 이거보단 잘 썼었던 거 같은데. 당장 맞이할 내년을 코앞에 두고 어떻게 죽을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나도 참 나다. 어쩌면 난 지금 어느 때보다도 더 양가감정에 휘둘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 번의 실패는 내게도 비참하고 씁쓸한 최후였다. 두 번째는 남은 수면제를 다 털어넣어 하루만이라도 자고 싶었던 내 바람마저 실패했으니. 그 이후로는 뭐라도 하니 전보다 잘 자고 있다. 우울이 도진 채로도 그나마 푹 잠들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내 기분이나 상태 따위도 정확히 어떤지 모르겠다. 당장 몇 시간후에 가야 할 알바만 기다리고 있다. 알바를 하면 그래도 죽겠다는 생각은 덜 하니까. 매일 죽겠다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죽기 위해 미쳐있던 4년 간이라면 모르지만 그 나날을 위해 불태웠던 에너지는 바닥난 지 오래다.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지쳐있진 않을 것이다.
이름없음 2021/12/05 21:18:41 ID : g5gi03u9Ai0
새가 지저귀는 아침이면 깨질 거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베란다 너머 살아있는 잉꼬는 아무 걱정 없겠지. 당장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내일은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불안은 없을 것이다. 대학병원에 간 이유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만큼이나 변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땡볕에 당장 타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수원 날씨는 평소의 나였으면 당장이라도 덥다고 난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오히려 큰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분명 30도가 웃도는 날이었음에도 햇볕 아래 아스팔트 위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병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제일 크게 아팠던 게 독감이었을 정도고 감기조차 쉽게 걸리지 않던 건강한 몸이다. 난 대학병원과 연이 없었다. 초진을 위해 방문한 대학병원은 낯설고 생소하기만 했다. 살아난 이후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코로나의 여파가 한창인 와중에도 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건 거북하기만 했다. 시끄럽고, 난잡하고, 부산스러웠다. 대학병원에 대한 내 첫인상은 딱 그정도였다. 겨우겨우 정신과를 찾아 대기를 하고 두 번째 상담을 받았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의사쌤이 내게 뭐라 하셨는지. 난 선생님께 질문할 말들을 전날부터 생각해 뒀었다. 근데 그 질문 하나로 내가 하려던 말은 덩어리째 날아갔다. "죽음 이후엔 뭐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쌩뚱맞은 질문이었다. 죽고 난 뒤에 뭐가 있냐고? 난 늘 내 죽음 그 이후에 일은 상상하지 않았다. 죽으면 끝. 잠이 들면 기억은 지워지고 눈을 뜨면 아침이듯이, 죽음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잠에 드는 것. 그러니 그 이후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상상은 내 머릿 속에 남아있지 않을테니까. 그 질문 하나로 나는 병원을 더 가지 않았다. 10만원 넘게 쓴 병원비와 차비가 아까웠다. 차라리 이 돈으로 맛있는 걸 먹었으면 하루종일 먹을 수 있었을텐데. 그 순간에도 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름없음 2021/12/05 21:34:54 ID : g5gi03u9Ai0
옛날 내 꿈은 참 소박했다. 그 소박함이 간절했을 정도로 내 삶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용한 동네, 조용한 집을 구해 사는 것. 돈은 많이 못 벌지언정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해 그럭저럭 먹고사는 것. 가장 소박하게 해보고 싶었던 건 자전거 타고 장보러 가기였다. 그때 난 따릉이를 한번도 타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살면 꼭 따릉이를 타고 장을 보러가고 싶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요리를 해먹는 것. 보고 싶은 유튜브를 보며 하루 한 끼는 꼭 먹고 싶은 걸 만들어 먹는 것. 그게 가장 큰 일상이 되는 게 내 바람이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는 그때까지 내 상상의 영역 밖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세상에 널린 또라이와 미친놈들을 모아 가둬놓은 곳에서 난 더 피폐해져 갔다. 원해서 들어간 학교에 있는 놈들이 정상이 아닐 줄은 몰랐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절대 울지 말아야지 다짐해 놓고 한 달에 두 번이나 울었다. 소리도 내지 못한 눈물은 버석하게 말라갔다. 그제야 난 세상을 조금 깨우친 것이다. 미친놈들이 널려있는 세상을 난 상상하지 않았다. 실재가 되어 눈앞에 나타난 그것들은 내가 앞으로 겪어야 할 현실이었다. 끔찍했다. 차라리 여기서 당장 죽고 말지. 사회에 나가 저것들을 보는 상상을 했다. 졸업하고 죽자. 난 그때까지 살아있을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유예하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알바나 하고 있다. 남들처럼 자격증을 따 취업할 엄두도 못낸 채 말이다. 전형적인 사회부적응자. 지독한 현실 회피였다. 그런데 어쩌겠어. 난 지난 4년 간을 이렇게 살아왔는 걸. 4년 동안 내가 한 거라고는 하고 싶었던 일들 버리기, 친구 버리기, 감정 죽이기였는 걸. 죽음에 대한 확신이 불러온 부작용은 이렇게나 큰 피해를 입혔다.
이름없음 2021/12/05 21:50:15 ID : g5gi03u9Ai0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그러셨다. "앞으로 몇 달 남지 않았네요." 난 울었던 거 같다. 아주 기쁘게 울었다. 정말요? 저 정말 죽을 수 있는 건가요? 선생님, 거짓말 하시면 안 돼요. 바닥에 주저 앉아 두 번째로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흘렸다. 안도의 눈물이었다. 드디어 죽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지나면 난 죽을 수 있다. 미래에 닥칠 고통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전부터 참는 것, 기다리는 것에는 이골이 난 상태였다. 생살이 찢겨도 신음하나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눈을 떴을 때 꿈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침착했다. 살아난 이후 어떤 일이든 내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그 꿈에서의 나도 어쩌면 이게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꿈에서라도 그렇게 행복하게 엉엉 울 수 있다는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다시 아침을 맞이하고 일상을 영위해 나가야 할 때. 어쩐지 그 날 하루는 평소처럼 생활하기 힘들었다. 단순히 넷플을 보는 것도, 유튜브를 보는 것도 전부 버겁기만 했다. 그날따라 더 죽고 싶었던 거 같다. 꿈 속의 내가 부러웠다. 부러워서 죽여버리고 싶었다. 난 죽지 못했는데 꿈 속의 나는 결국 죽었겠지. 분명히 몇 달 안남았다 했으니 죽었을 것이다. 이 꿈을 꾸기 며칠 전 난 연명치료거부서를 쓰러 갔다. 버스 안에서 한 고3 학생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라디오로 송출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떠들기 바빴다. 그 속에서 나만이 그 학생을 부러워 했을 것이다. 난 실패했는데, 넌 성공했구나. 그당시 내게 그 학생이 자살한 것인지 타살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없음 2021/12/07 19:13:45 ID : g5gi03u9Ai0
타인에게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다. 당신은 감정을 도려내 본 적 있느냐고. 이제는 다 의미 없어졌지만. 아빠가 새를 한 마리 데려왔다. 지치지도 않게 짹짹 거리며 우는데 그게 너무나 거슬렸다. 4개월 된 새끼지만 하루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나름 애정을 갖고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다. 그러나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가정환경으로 유기견 보호소에 버려두고 왔다. 어쩌면 그 이후부터 나에게 가족애라는 개념이 거세 당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애정을 느끼지 않는 삶. 정을 주지 않는 삶. 필요하다면 버렸다. 그것이 친구라도 할지라도 망설이지 않고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탔다. 그런 식으로 주변 인물을 정리해 왔다. 지금 같이 지내는 이들도 결국 언젠가 헤어지고 만날 일 없는 짧은 인연이라 생각하며 더 정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기대도 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는다. 화도 잘 나지 않았고 공감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삭막한 인간관계를 맺어왔다. 맺은 것도 아니다. 필요했기에 함께 했을 뿐 언제든 끈 떨어진 연처럼 떨어져 나갈 수 있을 정도의, 그런 가벼운 관계였다. 감정을 지우는 건 쉽다. 버리는 것은 더 쉬웠다. 잊는 것은 자다 깨면 혼몽한 정신처럼 지워낼 수 있었다. 버리는 건 그렇게 쉬운데.
이름없음 2021/12/07 19:20:26 ID : g5gi03u9Ai0
알바를 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내겐 가면이 많다. 대외용 미소도, 인간관계를 위해 필요한 아부도 난 양껏 펼칠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 소모되는 체력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 곳에 나는 없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데려다 놓고 열심히 떠들게 만든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사회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쉬운 일만 골라해 온 나에게 어려운 일은 기피대상일 뿐이었다. 요즘은 다시 고민하기도 한다. 차라리 그때 하던 일을 마저 붙잡고 어떻게든 이어나가 볼 걸. 아니,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늦지 않았다는 걸 충분히 인지한다. 그러나 내가 버린 그것을 줍는 일은 없다. 이미 오래 전에 손 뗀 일. 도로 가져오기엔 너무나 낡고 삭아버렸다. 분명 그 속에 묻어 있던 열정과 끈기는 씻겨내려간 지 오래다. 난 더 이상 그것들을 느낄 수 없다.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 위에서 물을 찾는 느낌이다. 뜨거운 땡볕은 내 머리 위에서 날 조롱하는데 난 어떠한 부정도, 반박도 할 수 없다. 결국 난 물을 찾아내지 못하고 메말라 죽어갈 테니까. 또한 그러기 위해서만 살아왔으니까.
이름없음 2021/12/07 19:26:42 ID : g5gi03u9Ai0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아가야 하는 게 맞는걸까. 지금 난 행복한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난 안정을 느끼는가. 당장 내일이 닥쳐와도 난 평정심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삶의 원동력이란 무엇이고, 그것을 만들어내 난 나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노력하지 않는 몸뚱이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현재에 안주하며 내일을 외면하려는 회피습성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삶은 너무나 어렵고 피곤하다. 때문에 죽음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도 있다. 내 삶은 날 좀먹는다. 바꾸려 발버둥 치던 나도 분명 존재했던 거 같다. 결국 실패했지만. 이번에도 실패하게 되겠지. 나만이 나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난 나를 바꿀 생각이 없다. 죽고자 하는 내 목표는 여전히 뚜렷한 삶의 이유다. 그 밖의 삶의 이유? 찾아볼 수 없다. 여전히 나는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슬픔도, 행복도, 분노도, 원초적인 어떠한 감정도 결국 바스라져 가루가 된다. 그 가루가 모여 사막을 만들어 냈다.
이름없음 2021/12/07 19:36:11 ID : g5gi03u9Ai0
그래도 죽기 위해 살려면 뭐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넝마가 된 무언가라도 집어 올려 부득불 고쳐보려 애써야 하지 않겠어. 했던 거 많잖아, 과거의 도전정신과 실패를 모르던 전진은 아직 네 안에 잔존해 있지 않겠어. 그래서 살아난 뒤에도 자격증을 따려 하고 알바를 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지금도 봐, 복잡한 심경을 글로 풀어내서라도 정리해보려는 네 발버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 알바를 하며 대외용의 너로 갈아끼운다 할지라도 그 속에 온전히 네가 없다 할 수 있니.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네 모습은 노력도 아니었니.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이전에도 그랬듯 나는 죽기 위해서만 살아갈텐데. 죽고자 하는 나와, 죽기 위해 살고자 하는 나를 둘로 찢어 나눌 수도 없지 않니. 복잡하고 어렵고 어렵다.
이름없음 2021/12/07 19:42:56 ID : g5gi03u9Ai0
누군가 나에게 일거리를 주고 공부할 거리를 주며 넌 앞으로 이것들만 보고 여기 있는 일들만 하며 살아. 라고 한다면 망설임없이 그렇게 살 수 있을 거 같다. 키 없는 배는 난파당한다. 지금 내 상황은 방향도 모른 채 항해하고 있는 것과 똑같다. 이러다 난파당해 물고기 밥이 되어도 좋다 하겠지만. 뭘 해야 달라질 수 있을까. 뭘 해야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을까. 답을 알면서도, 고집을 꺾을 생각 없으면서도. 그렇다고 타협을 할 것도 아니잖아. 당장 열심히 살아도 후에 죽기 위해 전과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되풀이할 거잖아. 깊이 없는 자기혐오가 지금도 끝없이 외치고 있잖아. 나란 놈 정말 구제불능이라고. 갱생의 여지도 없는 쓰레기라고.
이름없음 2021/12/07 23:05:42 ID : g5gi03u9Ai0
다시 돌고 돌아 원점. 난 이 굴레에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생각난 대로 글로 옮겨쓴 게 결국 이 모양이니까. 방금 막 지금까지 쓴 글을 다시 읽어봤다. 형편없다.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정리가 아니라 혼돈 그 자체다. 갓난아이의 옹알이를 알아듣는 게 차라리 더 쉬울 거 같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살아갈 의지는 바닥이고, 죽고자 하는 바람만 치솟는다. 겨울이라 그럴까. 추워서, 없던 외로움이라도 탔나. 외로움을 느꼈으면 친구를 버릴 일도 없었겠지. 가증스러운 변명이다.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다시 죽을 생각만 머릿 속을 맴돈다. 이유를 대라하면 수십가지가 머릿 속을 부유하고 다시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살아가려는 이유를 찾아봐도 없다. 그러나 죽으려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모두들 내게 우울증이라 말한다. 약을 먹으면 나아질거라 말한다. 약을 먹어도, 상담을 받아도 근본적인 뿌리는 변하지 않는다. 죽음의 뿌리가 깊게 박혔는데 그 위에 삶이란 줄기를 자라게 할 순 없다. 뿌리부터 틀려먹었다. 됐다. 적으면 적을수록 더 복잡해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이름없음 2021/12/08 01:09:52 ID : Y8jeK42JWnX
글 잘 쓴다
이름없음 2021/12/08 02:05:52 ID : g5gi03u9Ai0
자기 전에 들어와 봤는데 보잘 것 없는 글 봐줘서 고마워.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줄 거란 생각은 전혀하지 못했는데..(조회수 올라가도 읽어본 사람은 없겠지 했어.) 부디 좋은 밤 보내길 바라.
이름없음 2021/12/08 11:11:40 ID : g5gi03u9Ai0
정말 죽고 싶으면 고층 옥상 건물에서 뛰어내려. 가끔 죽음을 다짐하고 되뇌일 때마다 네 그 말이 떠오른다. 핸드폰 너머로 차갑게 일갈했던 네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해한다. 누구보다 이해하기에 난 그런 너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뛰어내리는 건 쉽지. 넌 그때 나를 보며 그 아이를 투영했을 것이다. 나까지 죽으면 넌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우리가 극적으로 학교에서 만났을 때, 어쩌면 그때 난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아. 나 못 죽겠구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날 기다리고 있던 너. 날 보자마자 울던 너. 성질 부리며 나에게 소리쳤지만 그 속에 묻어 있던 걱정과 안도, 그 동안의 두려움은 아무리 나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난 그당시 어떻게 너를 속여야하나 고민했다. 어떻게 더 침착하게 표정을 숨기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어. 난 거짓말이 밥 먹듯 쉬운 사람이었고, 그건 너도 잘 알았을 거다. 그래서 내 말을 완전히 믿지 못한 것도 알고 있었다. 아마 그 순간 우리는 서로를 위해 속은 척 최선을 다해 연기하고 있었던 거겠지. 그러니까 카페에서 만난 날 나보고 내가 죽을 거 같다고 말했던 걸 거다. 넌 내가 죽을 줄 알았구나. 놀랐지만 은연 중 나도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 순간에도 놀란 척 목소리를 띄우며 말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학교 생활을 하며 거짓말은 철저한 내 무기였다. 죽기 위해 필요했고, 남들에게 최대한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기 위해서 나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했다. 허황된 미래를 늘어놓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듯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래. 빌어먹게도 악연인 그 학교에서 난 최선을 다해 살았다.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말이다. 후회는 없었다. 그것도 내가 저지른 결과에 대한 책임이었다. 죽기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서 치루는 값은 얼마여도 낼 수 있었다. 그럼 지금은 어떻지? 죽기 위해 열심히 살았건만, 그때의 쌓아올린 것들은 지금 내게 다 쓰레기 같을 뿐이다.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 그렇기에 버렸던 날, 조금의 아쉬움도 시원함도 없었다. 졸업 후 딱 한번 찾아간 학교는 놀랍지도 않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죽기위해 그토록 발버둥 친 과거의 내가 불쌍하기만 했다. 죽지 못해 살아난 나는 죄인이었다. 죄를 구할 사람은 나였다. 모두 나였다. 대학교까지 다시 찾아갈 일은 없단 게 다행이지. 그날 나는 엘리베이터 문 너머 네가 있을 거란 확신을 했었다. 확신이 눈앞에 펼쳐졌기에 죽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 난 너에게 밝힌 적이 없다. 왜 옥상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그렇게 4년간 아등바등하며 죽으려 했는지. 그 헛짓거리를 하면서까지 죽으려 했는지. 후에도 나는 너에게 난 나만의 신념이 있어서 그랬어.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었어. 라고 일축했다. 그날 내가 바랐던대로 결국 죽었다면 내 시신은 부패되고야 발견됐을 것이다. 그토록 열심히 고른 장소에서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죽고 싶었다. 내 죽음에 대단한 건 없다. 누군가에게 복수하기 위함도 아니고, 원망을 쏟아내기 위한 죽음도 아니다. 때문에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정말 딱 그정도만 원했던 거다. 내 유품도 찾아볼 수 없게 집 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버렸다. 죽는 순간까지 입고 있던 옷과 핸드폰 이외에 물건은 찾아볼 수 없게 했다. 아, 한 가지 더 있다. 원래는 쓰지 않으려 했던 유서. 그 유서는 살아나자마자 내 손에 구겨져 아무 쓰레기통에나 처박혔다. 그때 난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은연 중 알고 있었음에도 닥친 현실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짓거리를 해서 살아날 만큼 내 몸뚱아리가 그렇게 건강했나? 그건 아니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몸은 언제든 위장염을 불러왔다. 살아난 나는 분명 패닉에 빠졌고, 그럼에도 앞으로 할 일을 착실히 해나갔다. 죽음을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다. 다른 방법으로라도 기필코 다시 죽겠다는 원한 섞인 집착. 제정신 아닌 머리는 끝없이 다음 죽음을 갈구하고 생각해냈다. 결국 다 실패했지만.
이름없음 2021/12/08 12:29:37 ID : Y7fgjg5dVgi
선생님 난 이타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친구 버리기를 손에 익은 피아노 건반 두드리듯 익숙하고 매끄럽죠. 선생님 난 정이 없어요. 부모가 오늘 내일해서 수술받는 날에 난 내 죽음이 더 중요했어요. 말쑥해진 모습을 보내주며 언제 집에 올거냐는 물음에 곧 가겠다 대답했죠. 그토록 모진 자식이에요. 선생님 나는 받고 싶은 게 없어요. 정 받고 싶은 게 있다면 평생 쓸 돈이에요. 그럼 죽음을 준비하기가 지금보단 편하겠죠.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살아가길 바랐겠지만 난 죽지 못한 이후로도 쭉 거짓말을 해오고 있어요.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음을, 그 다음을 실패하면 또 다음을 준비할 거에요. 친구야, 죽음이 무섭다는 친구야. 나는 사는 게 무서워. 내일이 닥치는 게 두려워. 죽지 못해 사람들 앞에 나서는 내 모습이 끔찍해. 거울 속의 나는 단 한번도 웃지 않는데 사람들은 내가 웃음에 헤프대. 무슨 말만 하면 웃는대. 아주 조심스레 물었던 네 질문에 내 대답은 여전히 유효해. 그럼에도 나와 연락을 이어가겠다는 네 말에 넌 책임을 져야지. 난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까, 그래도 넌 나와 연을 이어가겠다 했으니까. 죽기 전에 연락은 남겨줄게. 유언이라도 남겨줄게. 하지만 내 유서에는 이번에도 어떠한 경위로 내가 사망했고, 부모님의 전화번호 따위나 남길거야.
이름없음 2021/12/08 18:17:43 ID : g5gi03u9Ai0
상처. 내가 나에게 남긴 4년이라는 시간은 상처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반 정신나간 상태로 썼던 글 속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4년은 내 인생의 5분의 1이다. 이 5분의 1은 내 신체 일부 중 하나와 다름없다. 난 이를 통째로 도려냈고, 절단했다. 난 이제 신체 일부 중 하나를 잃은 채 살아가야 한다. 그건 내게 너무 잔인하다. 난 그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낼 자신이 없다. 사람들은 내게 잔인해지라는 거다. 살아. 라는 건, 나를 불구로 만든 나에게 평생 죄책감을 느끼고 죄를 새겨넣으며 살아가라는 거다. 내가 나에게 저지른 업보는 그만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역시 살아날 경우를 대비해두지 않은 내 책임이겠지만.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날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꿈에서 나온 적은 없다. 눈만 감아도 생생히 그날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5월의 추운 새벽. 간간히 돌아다니는 차소리. 죽기 위해 틀어놓은 자장가. 풀벌레가 지나갈까 두려워 하며 누운 자리. 달도 별도 밤 속에 숨어 아침을 기다리던 새벽. 약을 먹고, 독을 삼키고, 다시 약을 먹고 잠들었다. 아니 추위에 덜덜 떨며 눈을 감아 몸을 웅크렸다. 혀가 마비되는 고통이 오길 기다렸다. 속이 뒤집히고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올라오길 간절히 바랐다. 세상이 흐리게 변해 이명이 들리고 뇌가 뒤집히는 느낌이 들길 바랐다. 내 몸뚱어리는 독을 해독했다.
이름없음 2021/12/08 18:34:54 ID : g5gi03u9Ai0
벌레가 날아다니는 소리에 깼다. 제일 처음 느낀 감정이랄 것도 없다. 내 몸에게 혐오가 치밀어 올랐다. 이 몸,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건지. 그렇게 약한 신장들이 독을 해독했다고? 말도 안 된다.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먹은 건 독이 아니었나? 그럴 리가 없다. 두 번, 세 번 넘게 확인했다. 모두들 내 얘기를 듣고 천운이라 했다. 살아가라는 뜻이라 했다. 그만큼 역겹기 짝이 없는 불행한 말이 또 있을까. 삶은 내게 지옥인데 어떻게 그게 천운이고 축복일 수 있겠느냐고. 처음으로 믿지도 않은 신에게 원망을 쏟아 붓고 싶었다. 원망을 토해낼 곳이 필요했다. 난 결국 다시 활자 속으로 들어갔다. 왜 살아난 건지 끊임없이 되짚어봤다. 그날의 일들을 글로 풀어내며 몇 번을 적어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건,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만약이었다. 만약 내가 이 독을 먹고 살아난다면. 죽지 못한다면 어쩌지. 단순한 불안이었을 뿐이다. 불안에서 끝내야 했다. 만약이 실재가 될 순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일어났다. 난 납득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건 가뜩이나 불안한 내 정신상태에 불을 붙이다 못해 폭죽을 쏘아올리는 꼴이었다. 그날 난 폭죽 터지는 밤바다를 보며 저 바닷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옆에서 떠드는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 난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흘러넘칠 물이었다. 바다를 보며 울고 싶진 않았다. 옆에 사람들의 희희낙락하며 폭죽을 쏘아올리는 꼴은 더더욱 보고싶지 않았다. 다 지겨워. 저 바다도, 당신들도, 나도.
이름없음 2021/12/08 21:59:40 ID : g5gi03u9Ai0
살아난 다음 난 가장 많이 울었다. 그렇게 울었던 건 중학교 2학년 이후로 처음이었다. 여전히 소리도, 눈물도 제대로 떨구지 못했지만 눈물이 흐르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어항에 갇힌 구피를 보며 울고, 개를 보다 울고, 바다를 보고 또 눈물이 날 뻔 했다. 내 몸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안다. 난 눈물을 흘릴 수 없는 몸이 되버린지 오래다. 벌써 3년이 넘어간다. 그런 상황에서 눈물이 나왔다는 것만해도 내가 죽음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오디지 영상 중에 아이유 앞에서 나의 아저씨 이지안 연기를 하는 아이 영상을 봤었다. 이지안을 연기하는 아이를 보며 덤덤한 아이유 표정이 왜 그렇게 슬펐는지 알 수 없다. 참아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사람 감정은 꾹꾹 눌러 담을 수 있는 쓰레기 봉투가 아니다. 쓰레기 봉투도 계속 눌러 담으면 언젠가 터진다. 터진 쓰레기에선 악취가 나고 파리가 모인다. 소거되지 못한 감정은 날 피폐하게 만든다. 터져서 악취가 나고 파리가 들끓으니까. 내게 그때 아이유 모습은 억누르고 억누르는 데 너무나 익숙해 보였다. 그래서 당연하다는 듯 덤덤한 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내 모습처럼 보였던 거 같다. 그 영상을 보며 처음으로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막을 수 없는 소나기 같았다.
이름없음 2021/12/09 18:14:28 ID : g5gi03u9Ai0
처음 자해를 한 사람을 본 건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였다. 그 전까지 나에게 자해는 자살예방교육 때나 듣는 단어였다. 자해를 한 그 애는 학기 초 친구로 지내던 애였다. 칭칭 감아놓은 붕대를 푸니 자해한 상처들이 드러났다. 난 처음 그걸 보고 신기하다 말했다. 친구는 당황했었다. 신기해? 신기하다 말하는 애는 또 처음이네. 어이없다는 듯 계속 웃었다. 자해란 단어는 내게 굉장히 생소한 것이었고, 죽을 생각을 하면서도 자해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무도 내 죽음을 몰랐어야 하니까 죽을 것처럼 위태로운 아이가 아닌 내일을 보고 달려나가는 의욕 충만한 아이로 보여야 했다. 또한 난 죽을 때 상처하나 없이 아프지 않은 몸 상태로 죽길 바랐다. 그렇기에 몸에 상처를 낼 생각은 없었다. 그 이후로는 자해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중학교 친구마저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그 애와는 연을 끊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다. 연을 끊을 계기가 생겼고, 그러다 자해를 하고 있단 걸 알게 됐다. 난 이미 학교에서 자해를 하는 수십의 학생들의 어리광과 우울을 받아내주는 선생님들을 가까이서 지켜봐왔다. 그 애 역시 내게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 애는 연을 끊은지 1년후에 나에게 다시 연락했다. 연을 끊을 계기를 만든 건 그 애였다. 그걸 사과하러 1년이 넘어서야 연락한 것이다. 난 연락처를 삭제하고 번호를 바꿨다. 그 애를 시작으로 차례대로 나머지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다. 그제서야 난 깨달았다. 아, 내가 일방적으로 연락 끊으면 쟤들은 나에게 연락할 방법이 아예 없구나. 그게 조금 우스웠던 거 같다. 인간관계라는 게 이토록 하찮고 부질없는 거였구나. 그 이후로 뭐든 버리는 게 쉬워졌다. 하고자 했던 목표를 이루면 버렸다. 다른 걸 도전했다. 성공하면 다시 버렸다. 그렇게 내 고등학교 3년 학창시절은 탑을 쌓고 무너트리고의 반복이었다. 무너져 내리기 쉬운 모래성, 젠가같은 삶이었다.
이름없음 2021/12/10 22:01:16 ID : g5gi03u9Ai0
몇 년의 유예를 두어야 할까. 나에게 얼마의 시간을 주면 다시 죽을 준비가 될까. 지난 4년 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4년의 시간을 주면 될까. 그 때까지 과연 살아있을 수 있을까. 이번에야 말로 못 참고 연탄에 불을 붙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 다만 그러지 않았던 건 실내에서 해야하며, 발견되기 쉽기에 언제나 배제되어 왔었다. 이제는 물 불 가릴 처지가 아니지만. 800만원만 다시 모으자 했다. 그것보다 더 필요하겠지만 일단 모을 수 있는대로 모아보자 했다. 같은 짓을 두 번이나 해야한다는 건 여전히 버겁지만 살아가려고 발악하는 것보단 나았다. 발악하는 건 쉽지 않다. 감정을 지우는 일도 내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설을 읽으며 느껴지는 감정들을 죽여왔다.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 사랑한 사람을 다시 만난 감격과 기쁨, 환희. 우정, 애정, 가족애. 결실을 맺고 이뤄낸 성취감, 열정. 모두 내게 없던 것이고 지워낸 것들이다. 없는 것은 만들어 연기를 해야 했고, 지워낸 것은 기억을 되살려 행동했다. 고역일 정도로 두 번 다신 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이지만 그런 날 비웃듯 나는 알바를 하며 과거를 되풀이 중이다. 내 감정은 굉장히 소모적으로 존재하고, 난 그걸 최대한 아껴쓰고 싶었다. 혹시 알까. 죽기 전 모든 게 원망스러워진 내가 하루종일 울고 있을지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때 당시 난 모든 게 아까웠다. 시간도, 감정도. 학교생활을 하며 울고 말았던 내가 비참할 정도로 한심했고 그런 유리멘탈로 해야할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무능함에 익사할 것만 같았다.
이름없음 2021/12/12 22:37:30 ID : g5gi03u9Ai0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아마 난 평생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어릴 적 순수했던 나는 엄마에게 예쁨받고 싶었고, 관심받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원했던 건 그게 다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던 난 애정을 갈구했다. 첫 알바비를 벌면서도 내가 쓸 생각은 안하고 아빠에게 알바비를 주었다. 할머니께 받은 새뱃돈도 주었다. 순수했을 적의 나는 돈 욕심이 크게 없었다. 베풀기를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랬다. 지금은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그럴 일 없겠지만. 가족을 사랑했던 순간이 분명 있었다. 지금은 그때 어떤 심정으로 그런 짓을 했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애정결핍으로 생긴 사랑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처음 언니와 몇 년만에 재회했을 땐 마냥 좋았다. 중2, 처음 해외로 떠나는 날 아빠가 큰맘 먹고 내게 돈을 주었다. 아주 큰 돈이었고, 현금이었다. 그 돈을 잘 간직해두라 해 꽁꽁 숨겼다. 당일 공항으로 가야하는 날, 돈이 사라졌다. 범인은 말 안해도 알 수 있었다. 언니. 그 인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남다른 도벽을 자랑하던 그것이 또 돈을 훔친 거다. 난 돈을 숨겨놓은 장소에서 처음으로 목놓아 엉엉 울었다. 애처럼 꺽꺽 숨 넘어갈 듯 울다 아빠에게 전화했다. 피해자는 아빠와 난데 상처를 받은 건 나였고 화를 내 심란했던 건 아빠였다. 그때 난 그냥 다 죽이고 싶었다. 그것도, 아빠도, 나도. 다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했다.
이름없음 2021/12/12 22:49:40 ID : g5gi03u9Ai0
겨우겨우 돈을 구해 간 공항에서 나는 여행가는 설렘, 동경이나 기대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해외로 나간 5박 7일은 내게 고역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아마 내 안에 감정이 죽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 였을 것이다. 살아난 날, 어찌저찌 집으로 가 청소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마트에 가 장을 봐왔다. 집에 오니 그것이 있었다. 내가 집을 나가라 해서 짐을 챙기려고 들어온 거였다. 아는 척 하지 않다 밥은 먹었냐는 한 마디에 울면서 했던 말. "난 너 없으면 못 살아. 죽지 마." 아니, 난 너 없으면 행복할 거 같아. 그나마 숨통이 트일 거 같아. 난 니가 있어서 죽으려 한거야. 그럼 너가 대신 죽어줄래? 그것은 날 안고 뭐가 그리 슬픈지 한참을 울었다. 니가 왜 우니. 무슨 자격으로 우니. 나올 눈물은 있나보네. 난 그럴 힘도 없는데 말야. 책망이었나. 사실 그것에게 어떤 감정도 들지 않는다. 분노도, 역겨움도. 그저 같잖았다. 귀찮았고 빨리 옷을 챙겨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그것이 집을 나가고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돈을 주면 받았고, 연락을 하면 대충 상대해줬다. 가족 중 누구든 나보다 먼저 죽어도 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들에게 내 눈물을 쏟기에 내 감정이 아깝다. 난 늘 가족 중 나보다 먼저 죽는 사람이 나오면 식장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한때는 유서에 시체는 태우고 유골함에나 넣으라 적을까 했다. 정신나간 내 뚫린 입이 그걸 아빠에게 말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도 생각한다. 알바를 하다가도 어느 순간 돌아버린 정신이 죽음을 찾아 뛰어든다면. 그래서 이번에야 말로 성공적인 자살을 할 수 있다면. 유골함이고 뭐고 내 존재는 이 세상에서 지워버린 채 죽고 싶다고.
이름없음 2021/12/13 14:58:51 ID : g5gi03u9Ai0
내게 잠은 죽어서나 잘 수 있는 거였다. 낮잠을 자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2시간이라도 깊게 자면 그날은 많이 잔 날이었다. 수업시간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실제로도 피곤했다. 머리는 아프지, 정신은 멍하지.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는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몸은 둔해졌고 느리게 변했다. 자연스레 무기력해졌고 행동이 굼떴다. 그럼에도 할 일은 열심히 해나갔다. 그 순간에도 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농땡이 피우고 게으른 시간도 많았으나, 그때 나에게 최선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수면제를 처방받을 생각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동네 내과에서 졸피뎀을 그리 쉽게 구할 수 있을거란 생각도 못했다. 알았다면 30만원을 날려 불법적으로 구하려 들진 않았을 것이다. 내 처방기록엔 아직도 한 달치 졸피뎀 내역이 남아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도 졸피뎀이었다. 선생님, 난 이거 한 통을 다 먹고도 하루를 잠들지 못했어요. 차라리 동네 내과에서 3천원에 졸피뎀 한 통을 처방 받는 게 더 나았다. 겨우 일주일 치 수면제를 처방받기 위해 10만원을 쓴 게 아니니까. 잠에 들면 악몽을 꾸는 건 일상이고 깨면 잊는 건 당연하게 따라오는 부작용이었다. 약은 그 이후 먹지 않았다. 악화될 뿐 나아지지 않았다. 또한 깨닫는다. 내게 평온한 수면은 죽고 나서야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이름없음 2021/12/13 16:47:29 ID : g5gi03u9Ai0
내게 가장 고통스럽고 힘겨웠던 일을 꺼내보려 한다. 왜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일들이 존재할까. 아물지 않는 상처를 통째로 도려낼 순 없는걸까. 언제였더라. 내가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중3때 였을 수도 있고, 중2때 였을 수도 있다. 사실 과거의 시간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니 나도 내 기억에서 지워냈을 것이다. 상처가 난 시기는 대부분 잊는다. 다만 그 상처가 어떻게 났으며, 얼마나 아팠고, 낫기까지 걸린 시간등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이 일은 내게 상처가 아니다. 그저 떠올리면 역겨운 냄새가 올라와 구역질을 하게 만든다. 기억 한구석에 집어넣고 잊고 있던 추악한 과거이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오물같은 것이다. 나는 이것을 떠올려야 했다. 상담센터에서 선생님이 내게 물으셨다. "가장 고통스럽거나 힘들었던 순간이 있나요? 그 순간의 일을 말해줄 수 있나요?" 물론. 어렵지 않다. 내게 내 속에 든 수 많은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제 먹은 메뉴를 읊는 것과 같다. 하여튼 중학생의 나는 여느 날과 같이 그것과 싸우고 있었다. 연년생인 그것과 내가 싸우는 일은 이제 매 년 오는 기념일처럼 익숙했다. 그 날은 아빠가 있었고, 나와 그것이 있었다. 어떻게 싸우게 됐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분명 그것이 잘못해서 난 그 잘못을 지적했고. -아마 또 돈 문제나 그것의 성격에 대한 문제였겠지.- 그것은 지레 찔렸는지 큰소리로 나에게 욕을 했다. 엄마 없는 년, 니 애미XX 같은 년. 그러니까, 그 때 나는 그저 어이없음만을 느꼈다. 엄마 없는 건 너도 똑같은데? 스스로가 자신을 욕하고 있었다. 지금은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대하면 나만 피곤하다. 다시 말하지만 아빠도 있었고, 아빠는 그 뜻도 알고 있었다. 아빠 저게 나한테 애미 없는 년이라는데? 아빠는 침묵했다. 언제나 방관했고 이 역시 난 이해하지 않는다. 아빠도 인간이 될 것은 아니었다. 나도 그렇지만 이 파탄난 집구석에 인간이라고 할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생님은 내게 말씀하셨다. 그 갈등의 순간, 그 순간을 긍정적으로 바꿔보자고. 난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갈등. 갈등은 사람과 사람이 겪는 건데 내가 겪은 건 짐승이 사람 흉내를 낸 건데요? 그건 사람이 아니에요. 결국 긍정적으로 바꾸진 못했다. 그저 아빠가 그 순간 나와 그것의 상황을 보고 속으로 많이 심란해 했을거라고. 이해한다는 척 굴었다. 물론 이해하지 않는다. 미쳤다고, 내가 그것들을 이해하면 나만 정신나간 미친 것이 된다.
이름없음 2021/12/13 17:00:22 ID : g5gi03u9Ai0
감정이 있던 내가 겪은 상처받은 일, 이랄까. 하여튼 그건 중 1때. 모든 사건이 중학생때 일어나니 당연히 중3때 부터 죽고 싶어졌을 수도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난 중 1때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무엇으로 복수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유서를 쓰자 마음먹은 건 그때부터였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됐는데, 우선 내 과거를 다시 파헤쳐 볼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경각심이 사라진 거 같다. 요즘 그것들을 대하는 데 정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한때나마 불탔던 불씨라도 붙잡아 보고자 쓰는 거다. 어쩌면 미련이고, 앙심이다. 유서를 써 당신들이 내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구절절 적고 싶었다. 구차해도 좋았다. 추해도 좋았고, 한심해도 좋았다. 난 무엇이라도 쏟아내야 했고 당장 이 시한폭탄을 떠안고 살 자신이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이 나오지 않고 뇌까지 올라갔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가슴과 명치가 답답했다.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고, 눈 앞이 흐려졌다. 숨이 막힌 것이다. 그때는 죽겠더라. 아, 정말 죽을 거 같다는 공포가 올라왔다. 죽기 싫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싹 싹 빌었다. 잘못 했어요, 죄송해요. 잘못 했습니다. 정말 잘못 했어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왜 그리도 빌었는지 지금 내가 보면 그저 한심하지만. 그땐 살고 싶어 빌었다. 죽이지도 못할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땐 어렸으니까. 그러려니 넘어간다. 난 나조차 이해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한심해서 당장 죽어버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여전히 살아있다. 자기혐오다. 그 이후 적으려 했던 유서는 첫 글자도 떼지 못한 채 꾹 꾹 눌러담아 굳혀졌다. 딱딱한 돌덩어리가 되서 캐낼 수도 없고, 파헤칠 수도 없다. 그때 내가 어떤 말을 하려 했더라. 유서에 뭐라 적으려 했더라. 지금은 기억나는 게 없다. 첫 죽음의 이유는 그렇게 복수심이었다. 분명 유서를 적고,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쓸모 없어졌고, 무의미 하단 걸 깨달았다.
이름없음 2021/12/13 17:15:54 ID : g5gi03u9Ai0
그래도 알바를 하고 뭐라도 하니까 좀 낫지? 속으로 몇 번을 비웃었더라. 난 앞으로도 평생 이 세상에 염세적일 것이고, 부정적일 텐데. 낫다라는 건 대체 누굴 위한 기준인가. 최악보다 차악이 낫다는 걸까. 그렇다면 난 최악을 선택해 다시 죽을 것이다. 뚫린 내 입은 자유분방하게 거짓을 늘어놓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쏟아지는 말을 그들은 믿었다. 무표정으로 말하면 안 되지. 최선을 다해 웃었다. 정말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느냐고, 난 내 죽음을 위해 모든 책임을 내 걸었는데 그들은 날 살려 놓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내가 바란 책임은 별 게 아니다. 적어도 내게 그딴 말을 짓거려선 안 됐다. 그도 죽고 싶대. 살기 싫대. 근데 죽는 건 또 무섭다지 뭐야.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그리도 무심하게 책임없는 말을 나에게 쏟아낸 걸지도 모른다. 어찌저찌 납득해도 비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티나면 안 되는데. 이럴 땐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다행이다.
이름없음 2021/12/14 00:27:04 ID : g5gi03u9Ai0
일기를 적는 건 단순히 약의 부작용으로 둔해진 기억력 때문이었다. 약 6개월 넘게 쓴 일기는 어느 덧 공책 한 권 분량을 꽉 채우고 두 번째 권을 쓰고 있다. 이런 내 얘기를 들은 알바생이 나는 뭘 해도 잘할 수 있을거라 했다. 그 말을 들은 난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요, 난 실패했어요. 그 어떤 것보다 간절히 바라던 것을 실패하고 내 인생을 망쳤죠. 한 번 쓴 일기는 기억이 안날 때 빼곤 들추지 않는다. 이제는 단지 쓰레기통이 돼버렸다. 기억할 건 남기고, 활자에 버릴 기억들을 차곡 차곡 쌓았다. 어느 새 쌓인 기록이 6개월치가 되고 이만큼이나 살아버린 내게 또 혐오가 올라왔다. 이대로 다시 4년을 버티는 건 무리다. 이 기록들은 다시 내게 짐이 될 것이고 버려야 할 쓰레기가 될 것이다. 4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많다. 난 지난 4년 동안 토해내지 못한 문장들을 글자로 남겼다. 그 기록만 해도 얼마나 많았던가. 일기는 한 번에 버리기 힘들 정도로 쌓일 것이다. 그러니 돈을 모으면 이번엔 최대한 빠르게 죽자. 더 이상 시간낭비 할 이유가 없다. 확고한 목표가 생기니 망설임도, 불안도 없다.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었던 것을 도전하고 이번에야 말로 삶을 끝내려 한다. 과거를 되짚어봐도 앞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내겐 죽어야 하는 이유가 더 많다. 그것들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고 날 좀먹을 것이다. 그럼 난 다시 지난 4년을 반복하겠지. 약을 먹어도 사람을 만나도 내 지난 시간의 휴유증은 여전할 것이다. 약이 듣지 않는 몸. 상담을 받아도 여전히 확고한 뿌리. 우울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죽음이라는 결론만이 날 움직인다.
이름없음 2021/12/17 22:56:35 ID : g5gi03u9Ai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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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1/12/17 23:00:20 ID : g5gi03u9Ai0
이 질긴 악연이자 숙원을 끊어내고 자유를 되찾고자 한다. 가족과의 연을, 친구와의 정을,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내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갈 것이다. 그럴려면 돈을 모아야겠지. 이번 달 50만원을 마지막으로 내년부터 다시 절약하며 악착같이 돈만 모을 것이다. 돈을 모아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버리고 나가면, 당신들은 다시 날 의심하겠지. 그러니 이번에는 모두 들고 갈 것이다. 그래봤자 옷 몇 벌과 책상 하나가 다일 테지만. 방은 넓지 않아도 된다. 청소하기도 귀찮으니 적당한 원룸을 구하면 되겠지. 물건을 채울 것도 없다. 모은 돈으로 준비를 마치면 이번에야 말로 고통없이 확실히 죽을 수 있다. 뭐든 준비가 어렵지만 막막하진 않다. 다들 내가 독을 구할거라 생각지 못한 것처럼 이번에도 어떤 경로로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외진 곳, 찾아내는데 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홀가분하다. 이제야 안개같던 시야가 탁 트이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 세운 목표만 이뤄내면 이 이상 여기에 머물 이유는 없다. 다들 안녕. 이 스레가 마지막 스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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