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3/04/30 00:44:00 ID : cLdU2ILbyHv 4
눈 앞에서 남친 생겼다는 말에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 온 몸이 정지하는 것처럼 아무 생각도 안 났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수줍음과 행복 가득한 눈을 보며 옆에 앉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행이 좀 더 빨리 도착하길 바랐다. 앞에 앉아있었다가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표정 관리를 못할 것 같았다. 원래도 밥을 맛있게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정말 더 먹기가 힘들었다.
2 이름없음 2023/04/30 00:49:29 ID : cLdU2ILbyHv 0
거의 매일 연락했으면서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당신의 연애, 그게 내가 될 수 없음을 알았기에 누구보다 응원했지만, 무방비로 맞닥뜨리는 당신의 연애. 그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만약 미리 알았더라면 오늘 나는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느것 하나 비밀이 없었는데 또 이렇게 사실 앞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진심이 닿기를 바랐지만 역시나 닿기엔 먼 거리였다. 오늘 물리적으로 긴 거리를 지나 집에 오면서 백 번의 연락보다 한 번의 마주침이 더 중요한 것임을, 물리적인 성별의 거리가 이렇게 큰 것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3 이름없음 2023/04/30 00:57:17 ID : cLdU2ILbyHv 0
스레딕에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스레를 보며, ‘그래도 나는 아직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하는 희망을 좇곤 했다. 사람은 대개 바닥을 보기 전까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듣고 싶어 한다. 그언젠가 당신과 잘 될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추켜세웠다. 성별에 매여 있는 건 너무 바보같은 생각이 아닌가 그렇게 내게 위로를 했다.
4 이름없음 2023/04/30 01:01:25 ID : cLdU2ILbyHv 0
마치 산낙지를 잘먹는 아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나를 추켜 세우니, 나는 정말 내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당신이 여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서 가능성이 있다는 말만 마음에 담고 오랜 시간을 친구로 기다렸다.
5 이름없음 2023/04/30 01:07:48 ID : 2E4JVgoY4Gr 0
마음 아프다
6 이름없음 2023/04/30 01:08:49 ID : cLdU2ILbyHv 0
한창 mbti를 확인하는 게 유행일 무렵, 혈액형보다는 mbti가 신빙성있지 않냐며 한참을 떠들었다. 나는 J형 인간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유료 검사에서도 온라인 무료 테스트에서도 같은 mbti가 나오는 건 드문 일이라던데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그리고 또 가능성에 취했다. ‘어, 우리는 완전 반대인데 여기 궁합표 봐봐요! 완전 천생연분이네!’ mbti도 이렇게 말해주는데, 어쩜 나도 옆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7 이름없음 2023/04/30 01:16:30 ID : cLdU2ILbyHv 0
사이비 종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 답이 있었다. ‘교리가 이상하다는 것도 알고 교주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치만 그순간의 믿음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에요.’ 나도 그랬다. ‘당신의 옆에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우리의 연애가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치만 그순간의 믿음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에요.’
8 이름없음 2023/04/30 01:20:12 ID : cLdU2ILbyHv 0
J형 인간은 세워둔 계획이 예상한 대로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이정도면 언제 고백해도 이상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날이 오면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계획을 세웠다. 예를 들면, 지금은 조금 친한 관계, 지금은 적당히 친한 관계, 지금은 매우 친한 단계, 지금은 죽마고우, 그리고 지금은... 그런 날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계획에는 늘 변수가 생겼다.
9 이름없음 2023/04/30 01:28:01 ID : cLdU2ILbyHv 0
남자와의 연애를 떠올려보면 그다지 어려울 것이 없었는데, 이성적이라는 이 단어는 어느 것보다 내게 더 큰 어려움이었다. 포기하려 할 무렵, 뒤늦게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 프로그램을 접했다. ‘1은 세상의 그 어떤 수보다 크다.’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 듯하다. 문장과 장면은 나를 또 가능성의 세상으로 이끌었다. 장미와 자스민이 커플이 되지 못한 장면에서조차 나는 ‘방송이 끝나면 두 사람이 잘 될 수도 있을 거야. 저건 방송이잖아.’ 라며 애써 이름 모를 출연자를 위로했다.
10 이름없음 2023/04/30 01:38:08 ID : cLdU2ILbyHv 0
‘그래, 이제 세상이 바뀌고 있어!’ 다음에 만날 때는 꼭... 다음엔 꼭... 안 되더라도 이번엔 꼭.... 다음과 이번을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아주 친해졌다. 정확히는 친해지긴 했다. 주말에 만나자는 말도 더이상 어색하지 않았다. 가끔 이야깃거리가 생기면 전화를 한다거나 가벼운 애교가 섞인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이나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그런 희망 속의 계획은 1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차근차근 진행됐다. 그리고는 듬성듬성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11 이름없음 2023/04/30 01:46:18 ID : cLdU2ILbyHv 0
작은 변수들은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은 마음에 싱크홀을 만들었다. 아직 마음을 전하려면 세 번은 더 만나야할 거 같은데, 그때 소개팅이라는 변수를 만났고 좌절했다. 당신은 언제나 그대로였으나, 나의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내 계획은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었기에 소개팅이라는 건 더욱이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머리를 싸매고 계획을 세운다. 소개팅에서 잘 되면 끝. 안 되면 위로해주며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 그날의 소개팅은 내게는 다행스럽게도 잘 안 됐고, 나는 계획을 수정했다. 이렇게 가까우면서 고백을 못하는 건 어쩐지 나답지 못하다는 생각에...
12 이름없음 2023/04/30 01:51:00 ID : cLdU2ILbyHv 0
다음번 만남에 이야기를 하려 했다. 이직 직후 바쁘던 시기도 끝났고, 자리도 잡았겠다, 봄이 오는 날, 여름되기 직전 집에 가는 길에 마음을 전한다면 참 좋겠다. 그게 거절이든 거절에 가까운 답이든, 수락이든 수락에 가까운 답이든 이제 답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의 고백으로 인해 어쩌면 당신을 잃을 수 있겠지만, 숨기며 사는 것보단 역시 말하는 게 좋겠지. 그리고 계획한 오늘이 왔다.
13 이름없음 2023/04/30 02:02:36 ID : cLdU2ILbyHv 0
오늘의 주인공은 결혼을 앞둔 일행. 일행의 이야기를 듣게 될테고 들으며 술 한 잔 하고, 적당히 기분 좋게 연애관도 나누며 술이 아쉬울 때쯤 헤어져서 일행을 먼저 보내고, 늘 하던 대로 당신과 두 개 정류장을 같이 걸으며 걷다가 진심을 전하고 버스를 타며 손을 흔드는 엔딩.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문장에 ‘진심을 전하고’ 단 여섯 글자가 들어갔을 뿐인데 약속 시간이 다가올 수록 미친듯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오지 말았어야 할 머피의 법칙도 함께 왔다.
14 이름없음 2023/04/30 02:13:40 ID : cLdU2ILbyHv 0
4월 봄의 끝자락, 초여름을 코앞에 둔 날은 흐려도 너무 흐렸다. 먼저 술을 마시자고 권하는 것 조차 여우의 권모술수처럼 보일까싶어 일행이 술 마시고 싶어하던 날을 콕 찝었던 건데. 아뿔싸. 일행이 위염에 걸리고 말았다. 우리의 술자리는 없던 일이 됐고 술자리는 밥자리가 됐다. 아픈 사람을 두고 둘이서만 술을 마시는 것도 이상하고 약속을 변경할 수도 없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며 이번에도 또 다음이 되는 건가 속이 상했다. 그치만 셋이서는 오랜만에 보는 자리라 우중충한 하늘을 뚫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15 이름없음 2023/04/30 02:18:23 ID : cLdU2ILbyHv 0
그리고 이 계획은 무너져내렸다. 내 마음도 무너져내린다. 아주 완벽하게. 당신이 혼자라는 사실은 1+1이 2인 것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16 이름없음 2023/04/30 02:24:10 ID : cLdU2ILbyHv 0
수십 번을 만나면서도 당신의 옆에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당신을 다시 본다면 누구든 이제는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으레 만날 때마다 했던 ’재밌는 일 있어요?‘라는 그 질문을 하지 말았으면 괜찮았을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당신의 말. 오늘의 계획에 그 대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17 이름없음 2023/04/30 02:32:22 ID : cLdU2ILbyHv 0
처음에는 쥐구멍에 몸을 넣고 하수구를 타고 타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 싶었다. 당신이 첫만남을 이야기하는 동안 빠르게 정신을 차리려 했다. 곧 일행이 도착할테고, 나는 일행에게 온 정신을 쏟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니까 최선을 다했다. J형 인간. 그게 뭐길래 산탄총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날짜를 계산했다. 당신은 2주 전부터 사귀었다고 했는데, 그땐 블랙데이였고 분명 혼자라고 했다.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일까. 왜 하필 오늘일까. 분명한 사실은 당신이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내가 그토록 믿어 왔던 가능성도 한 올 한 올 풀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18 이름없음 2023/04/30 02:42:10 ID : cLdU2ILbyHv 0
아둔하기 짝이 없었다. 카페의 마감 시간이 끝나도록 나는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 모를 정도로 기계처럼 이야기하고 웃으며 박수를 쳤다. 평소라면 절대 잊지 않을 사소한 것들까지 모조리 잊었다. 라식을 한 당신의 눈을 보며 의느님이 만들어준 비싼 눈 잘 간직하십사 깔깔대던 농담조차 까먹고 ’아, 맞다! 라식 하셨죠? 제가 잊었어요.’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를 떴다.
19 이름없음 2023/04/30 02:45:49 ID : cLdU2ILbyHv 0
울면 티나니까 울지는 않을 거지만, 아무튼 울고 싶은 건 맞으니 지금이 적당히 일어날 타이밍이구나. 그렇게 또 짧은 대화 틈에서 계획을 세운다. 자, 이제 모든 건 다 틀어졌어. 둘이서 2차를 가자고 해볼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할까. 전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많이 좋아해요. 현재형으로 말해야 할까. 아니면 좋아했어요. 과거형으로 말해야 할까. 화장실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티날텐데. 나가기 전까지 생각을 해야 할텐데.
20 이름없음 2023/04/30 02:51:34 ID : cLdU2ILbyHv 0
조금 더 걷자고 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쌀쌀한 저녁길을 혼자가 아닌 당신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짧디 짧았다. 여기서 마음을 전한다면 이 길은 반드시 불편한 사이로 가는 지름길이 되어 버릴테고, 하필 일행이 약속 장소를 당신의 동네로 옮긴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남자친구와 길을 걷다가 나의 고백이 떠오른다면? 내가 당신이라도 달갑지 않겠다, 싶다.
21 이름없음 2023/04/30 02:57:56 ID : cLdU2ILbyHv 0
그래서 그만. 나는 산낙지를 좋아하는 아이의 결말을 선택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능성의 세상을 정면돌파하고자 노력했으나, 정말 하필. 하필. 하필. 모든 준비를 마친 하필 4월 30일. 나의 고백이 아닌 되려 당신의 고백을 듣고 놓아 버렸다. 다시는 연락하지 못하겠지만, 연락하지 않는 내 모습이 어쩌면 눈치 없는 당신에게 내 마음을 어렴풋 전할 수 있는 시작이지 않을까. 연락처 목록에서 당신을 지우며 또 다시 알아차려주기를 바라는 가능성을 기대한다.
22 이름없음 2023/04/30 03:00:55 ID : cLdU2ILbyHv 0
당신의 시작이 곧 나의 마지막임을 기억하며. 죽어가는 연애 세포를 살려야겠다며 활짝 웃던 오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조금 더 빨리 전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며. 기록 끝.
23 이름없음 2023/04/30 23:04:14 ID : cLdU2ILbyHv 0
5월에 하기로 한 스터디가 발목을 잡았다. 애써 어제의 연락이 마지막이리라 다짐했건만, 단체 메시지방에 답장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기어코 당신의 메시지에 좋아요를 눌렀다. 커피를 마시다 휴대폰 액정 너머로 굳어가는 얼굴을 들켰는지 친구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나는 올 게 왔다는 듯 그간의 일을 풀어 놓았다. ‘걔는 갑자기 연락이 끊어져도 눈하나 깜짝 안 할 거야. 너한테 하는 걸 봐. 원래 연락 먼저 안 한다며? 그냥 너는 걔한테 거기까지인 사람인 거야. 심심이야 심심이. 아직도 모르겠어? 그러니 평소대로 대해. 그게 네가 너를 지키는 일이야.’
24 이름없음 2023/04/30 23:32:34 ID : cLdU2ILbyHv 0
얼음만 남은 빈 잔의 빨대를 휘휘 저었다. 내 머릿 속도 이렇게 비었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친구는 맛있는 걸 먹고 비우자고 했다. 몇 년 전, 사케와 꼬치 플레이팅이 예술이던 가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름 모를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 옆을 지나면서 친구는 나와 갔던 가게가 생각이 나 구태여 약속 장소를 바꿔 다른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며 사라진 가게를 아쉬워했다. 대학 시절 학교부터 지하철역까지 먼 거리를 그저 이야기가 좋아서 걸어다니던 우리는 10년이 흐른 지금도 같은 걸음으로 천을 따라 걷고 있었다.
25 이름없음 2023/04/30 23:39:51 ID : cLdU2ILbyHv 0
‘대학생 때 너는 참 커 보였어. 항상 베풀기만 해서 나는 네가 답답할 때도 있었어. 어떻게 저렇게 살 수가 있지? 내가 지갑을 두고 온 날, 항상 내 밥을 챙겨주던 너를 기억해. 지금의 너도 그때와 다르지 않아. 자주 보는 동네 친구들보다 1년만에 보는 네가 더 편해서 나는 오늘 급만남으로 보자할 때, 무조건 나와야한다 그랬다니까? 밥 내가 살게. 지갑은 넣어 둬, 넣어 둬~’ 천 위에 모여든 날파리 무리에 양팔을 휘적이면서 그런 감동적인 말을 하다니. 이거 완전 드라마아닌가? 진지한 말에 몹시 진지하지 못한 아이러니에 웃음이 터졌다.
26 이름없음 2023/04/30 23:47:36 ID : cLdU2ILbyHv 0
‘나는 유일하게 돈을 버는 학생 아닌 학생이었으니까 그런 건 당연하다 여겼어. 너 일부러 지갑 두고 온 건 아니고?’ 그렇게 옛날 옛적 이야기를 하며 걷다 사진을 남겼다. 퉁퉁 부은 눈이 부끄럽지만, 이것도 추억이려니 했다. 걸어온 길을 돌아 저녁 영업 시간에 딱맞춰 가게에 도착했다. 앞으로 다시 웃으려면 한 달은 걸릴 줄 알았지만, 외향형인 내 mbti가 이토록 감사할 줄이야. 한 달 걸릴 웃음을 하루만에 되찾았다.
27 이름없음 2023/05/01 00:04:39 ID : cLdU2ILbyHv 0
컨디션이 좋지 않았음에도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전화 한 통에 한달음에 달려와 준 내 친구. 친구는 나를 위해 함께 걸었고, 술잔도 기울여줬다. 솔직히 심심이는 좀 너무했다 싶긴 하지만, 뭐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당신의 비공식 라디오이자 가십 상자였으니. 주어진 일은 이미 완수했는데, 답지 않게 여러 일을 벌이고 말았다. 이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해.
28 이름없음 2023/05/01 00:16:18 ID : cLdU2ILbyHv 0
친구에게 당신은 결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이미 여러 번 내게 묻지 않아도 남자가 좋다고 말했던 당신이기에 이런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나의 힘듦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무거운 이야기까지 다 나누던 우리가 왜 하필 연애 앞에서 깜깜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서 기인한다고 소리 높여 말했다. 소개 받은 사람이 있다고 말만 해줬더라도 나는 괜찮았을 거다, 정말이다. 계획이야 엎어버리면 그만이니까. 마음이야 접어버리면 그만이니까. 근데 나는 그정도 말도 먼저하기 어려운 수준의 사람이었던 거라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어 힘들었던 거라 말했다.
29 이름없음 2023/05/01 00:21:01 ID : bcmrfcE7atB 0
진짜 나보는 것같아서 마음 아프다... 너무 마음 아프다 힘내자
30 이름없음 2023/05/01 00:23:59 ID : cLdU2ILbyHv 0
mbti가 유행일 때 mbti를 물으면 문항이 너무 길어서 포기했다, 관심 없다고 하던 당신은 이제 막 사귄 남자친구의 mbti를 막힘없이 말했고 비슷해서 잘 맞는 듯하다고 했다. 연상을 선호한다던 당신은 연하를 만났고, 같은 직종은 싫다던 당신은 그런 사람을 만났고, 어느 것 하나 내게 말했던 남자상과 들어 맞는 게 없는 당신의 상대는 남자친구라는 타이틀을 달기까지 일사천리, 그야말로 너무나 순탄한 과정을 지나지 않았던가. 나는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에도 늘 가시밭길을 걷는 기분이었는데. 이성이란 역시 내게 아주 어려운 단어였다.
31 이름없음 2023/05/01 00:30:30 ID : cLdU2ILbyHv 0
그럼에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겨내리라. 언젠가 올 청첩장에도 의연히 대처하리라. 두 번째 다짐을 한다. 나를 잘 아는 친구의 말처럼 나는 나대로 평소대로 유머러스한 당신의 덕후로 지내기로 했다. 어쩌면 이미 당신은 나를 어장 속 물고기로 대했을지도 모르겠다. 놓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가질 수는 없는. 조금의 질투는 있다. 뭐 아무렴 어때, 나는 나인 걸.
32 이름없음 2023/05/01 00:40:39 ID : cLdU2ILbyHv 0
이 곳이 있어 참 다행이다. 조회수가 잘 나오는 커뮤니티도 아닐 뿐더러 즐겨찾는 이들의 나잇대도 다르니 털어 놓기에 이만한 장소도 없다. 당신이 싫다거나 시간이 지나 미워진다거나 할 일은 절대 없겠지만, 나홀로 질투는 좀 해야겠다. 사실 어디를 보나 그사람이 나보다 나은 건 그것 달린 것밖에는... 앗, 나이도 어린 거.... 🥹 흑... 조금도 부럽지... 않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미리 들었으면 여기에 글 쓸 일? 단언컨대 없었을 거다. 하필 어제가 다 내려 놓고 고백하려던 날이었을 뿐이다. 그냥 그것.
33 이름없음 2023/05/01 00:51:59 ID : cLdU2ILbyHv 0
백역사는 그때 겪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흑역사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각종 전쟁과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들처럼 어제 역시 나의 백역사를 위해 존재해야만 했던 날이 아니었을까? 로맨틱 코미디는 나라를 막론하고 주인공들이 연애라는 결실을 맺으면 엿가락처럼 전개가 늘어지면서 재미가 급감해버리곤 하는데, 단 하루 감정의 변화만으로 앉은 자리에서 30개가 넘는 글을 써내려간 걸 보면 잘되든 아니든 이 장르는 역시 사귀기 전이 제일 재밌구나 싶다.
34 이름없음 2023/05/01 01:03:52 ID : cLdU2ILbyHv 0
글을 처음 올렸을 때는 순간의 감정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일정 문단에서 글을 끊고 적당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며 생각을 정리했다. 맹목적인 힐난과 감정의 배설은 읽는 이를 피곤하게 만들 것 같았다. 중언부언 말을 늘어 놓았지만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를 위해 한 줄 요약 정도는 남겨 두는 게 올라가는 조회수를 위한 아름다운 마무리겠다. ‘고백하려고 마음 먹었는데요. 아니 글쎄 상대방이 애인이 생겼다! 먼저 그러더래요? 그래서 힘듦을 겪고 있고요, 나아질 거지만, 그럼에도 질투는 조금 하겠습니다. 나보다는 더 잘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이름 모를 분, 달린 게 벼슬이니 부디 당신을 소중히 여겨 주세요. 처음 설레던 모습 그대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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