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름없음 2020/04/15 21:53:54 ID : z82oFeJTTUZ 0
룰은 간단. 세 줄로 쓸 것. 끝. 난 스타트니까 한 줄로 갈게. 그 날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2 이름없음 2020/04/15 22:34:15 ID : a09zfcE05O3 0
오늘도 집에 있었고. 취미 생활을 즐겼고. 평범히 살아 있었다.
3 이름없음 2020/04/16 05:18:43 ID : rwIK6p84Gts 0
정말로 살아만 있어서 문제다. 숨만 쉬는 기계를 가져다 놓으면 내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취미 생활이 있어서 불행하진 않지만, 금새 먹고 사는 불안이 엄습한다.
4 이름없음 2020/04/16 19:40:45 ID : RDxRvfXwHA6 0
오늘도 똑같은 불안을 안고 똑같은 책을 골라 똑같은 시간에 읽었다. 요즘따라 가장 좋아하는 대목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난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평범한 삶에 구멍이 나 걱정과 불안함이 쏟아져 앞이 보이지 않는다.
5 이름없음 2020/04/16 23:28:15 ID : 1jAlzPeNArB 0
정신을 차리려 몇번이나 눈을 꿈벅여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읽던 책을 덮고 일어나려는데, 책사이에서 무언가가 빠져나와 발밑에 툭-하고 떨어졌다. 낙엽이었다.
6 이름없음 2020/04/17 10:35:54 ID : lwmla5QrcLd 0
낙엽... 예전에 책갈피용으로 끼워둔 것 같았다. 이쁘지도 않은 단풍잎을 그때의 나는 왜 주워온걸까. 생각해보자면, 그 당시의 나는 이런 의미모를 행동을 많이도하곤 했다.
7 이름없음 2020/04/17 10:40:47 ID : 1a5TPdu4Mkq 0
낙엽을 손에 쥐고 이래저래 훑어보았다. 부서질 것 같이 바싹 마른 낙엽 뒷면에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뭔가 쓰여 있었다. "언제까지고 그곳에서 널 기다릴게"
8 이름없음 2020/04/17 13:45:40 ID : Dure6pe7ur8 0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가 써 준 걸까 아, 나는 30년째 모쏠이지
9 이름없음 2020/04/17 14:44:01 ID : cpWqp808nTV 0
변변찮은 상대가 없었던 것 뿐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피한 건지도 몰라. 그 낙엽을 빤히 눈에 담고 있다 이내 걸려오는 전화에 잠시 내려두었다.
10 이름없음 2020/04/17 20:11:18 ID : Dy2NzdWi7ap 0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불안이 엄습했다. 새벽 4시에 올 전화는 빌어먹을 산와머니가 틀림없다. 한참을 갈등했다.
11 이름없음 2020/04/18 14:45:53 ID : 8lyIE1hbzWq 0
울려대는 휴대전화를 뒤로 하고 나는 낙엽을 손으로 매만졌다. 퍼석거리며 가장자리부터 부서지는 꼴이 나와 같아 웃음이 나온다. 메마른 감성에 젖는다.
12 이름없음 2020/04/18 15:28:22 ID : lwmla5QrcLd 0
나와 같다면 낙엽은 환상통을 느끼는가. 툭툭 맞다보니 가장자리가 바스라져 손가락이 4개가 되었음에도 낙엽은 아무런 기색 없이 꿋꿋히 내 손에 들려있다. 어느새 뒷면에 써져있던 케케묵은 약속의 언어는 몇 글자가 사라져있었다.
13 이름없음 2020/04/18 17:29:21 ID : 1a5TPdu4Mkq 0
나는 느릿하게 머릿속을 더듬기 시작했다. 책, 낙엽, 편지, 아이, 약속, 손가락... 단어 수십 개를 거쳐 떠올려낸 것은 온 사방에 붉은 단풍이 흐드러지던 작은 동네였다.
14 이름없음 2020/04/19 00:11:41 ID : 40r82k4KY4H 0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사귀었던 친구가, 그 앳되고 파리했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몸이 아파 휠체어에 의지하던 아이였는데, 학교로 가는 비탈길을 올라갈 적엔 항상 휠체어를 밀어줬었다. 가을이면 굴러가는 바퀴 아래로 단풍잎이 버석거리는 소리를 냈었지.
15 이름없음 2020/04/19 14:09:31 ID : 9uoMoY7bDvC 0
그 아이는 이런 얘기도 했었다 "내가 불편하지 않니?" 난 그럴 일 없다고 아이를 향해 웃어 보였다
16 이름없음 2020/04/19 22:26:58 ID : dzSKY7cJVbA 0
우리는 매일 북쪽의 작은 산에 가려진 아름다운 평원에 놀러갔다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그러나 영원한건 없다 했던가
17 이름없음 2020/04/19 23:50:01 ID : U5dTVdRAZdB 0
평소와 다를 바 없던 토요일, 일기예보에도 없이 쏟아진 소나기, 그날의 바람은 그 아이에게는 너무 쌀쌀했다. 우리의 세상은 너무나도 쉽게 바스라졌고, 북쪽의 평원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18 이름없음 2020/04/20 00:13:33 ID : cIMkoNtg2JO 0
그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그는 항상 혼자이고, 그는 항상 외롭고, 그는 항상 아프며, 나약하다. 그에게 남은 친구라곤 함께 사는 고양이 유로.
19 이름없음 2020/04/20 10:40:46 ID : 1a5TPdu4Mkq 0
낙엽의 글씨는 그 애가 남긴 것일까? 그 동네는 꽤나 외진 곳에 있어서 다녀오려면 넉넉잡아 3일은 필요할 것이다. 고롱거리는 유로를 바라보며 나는 휴가가 통과되려면 뭐라고 변명해야 할 지 고민했다.
20 이름없음 2020/04/20 15:57:09 ID : O08lDxPfWnP 0
유로를 보며 참 부럽다고 생각했다. 너는, 걱정이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어디론가 의미없는 신호음을 보냈다.
21 이름없음 2020/04/21 23:33:00 ID : RDxRvfXwHA6 0
날이 밝았다. 빠르게 옷을 갖춰 입고 간단한 물건들을 챙겼다. 오늘만은 평범하지 않은 하루가 되질 않길 바라며 집을 나섰다.
22 이름없음 2020/04/22 23:16:31 ID : PeJSNvDwNy3 0
직장선배에게 나중에 술 한 턱 쏠테니 힘 좀 써달라며 톡을 보내고 집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가야겠지. 배차표를 보며 기다리고 있으니 금세 버스가 도착했다.
23 이름없음 2020/04/22 23:32:48 ID : cpWqp808nTV 0
그렇게 나는 망설일 것 없이 버스에 올랐다 어렴풋 느껴지는 이 가슴의 떨림을 언젠가 느껴본 것 같았다 이내 얕게 음악이 흐르는 이어폰을 두 귀에 꽃아 넣었다.
24 이름없음 2020/06/10 21:17:19 ID : 9uoMoY7bDvC 0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드니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차에서 내려 그때의 평원을 가보려던 차 그 아이와 가끔 들렀던 찻집이 생각나 그곳으로 향한다.
25 이름없음 2020/06/10 22:30:43 ID : BbA42K2JSHx 0
길 사이사이에는 그때, 그 시간의 추억들이 자리했다. 찻집으로 향하는 길에 주변의 소음들 사이사이로 새어들던 그 아이의 음성이 생생했고, 마주하며 걸어가던 그 아이의 눈동자가 생생했다.
26 이름없음 2020/06/15 17:08:23 ID : 9uoMoY7bDvC 0
딸랑- 카페 안은 많이 변해있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그대로다. 혹시나 해서 불러보니 그때의 모습에서 흰머리만 늘어난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어머, 오랜만이구나"
27 이름없음 2020/06/17 15:11:51 ID : PhcJO02pVgn 0
내가 어릴적 보았던 그 모습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듯한 아주머니는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부서진 흑백티비처럼 흐릿하게 윤곽만 떠오르던 마을의 정경이 점점 색을 되찾아갔다. 그래, 여긴 이런 곳이었지.
28 이름없음 2020/06/19 03:21:46 ID : rzaso5bwtta 0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자주 오곤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찻집의 구석 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했다.
29 이름없음 2020/06/19 12:03:03 ID : nDAlzPcso59 0
그런데 그때 어머니가 고함을 지르며 쓰러지셨다 "꺄악!!" 사람들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30 이름없음 2020/06/19 16:33:39 ID : albhe2FeNAr 0
어머니는 날 등지고 서 계셨다 사람들은 소리치고 비명을 지르고. 유로가 자기 혼자 동떨어진 세상인 듯이 창 건너 골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31 이름없음 2020/06/19 16:34:52 ID : albhe2FeNAr 0
창 건너에는 전등이 있었다 그 너머에는 수풀이 있었으며, 그 옆에 작고 환한 골목길이 있었다
32 이름없음 2020/06/19 16:36:03 ID : albhe2FeNAr 0
어머니가 다시 소리쳐 난 다시 어머니를 보았다 웅웅거리며 나의 귀의 감각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33 이름없음 2020/06/19 16:37:29 ID : albhe2FeNAr 0
아주머니는 "유로구나, 어딜 보고 있니?" 나 또한 유로를 바라보고, 골목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희미하던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착각일까
34 이름없음 2020/06/19 16:48:46 ID : albhe2FeNAr 0
이어폰의 멈췄던 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왜 멈췄던 거지. 유로가 앩 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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