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앵커판 관전스레★ (524)
2.🐞허물을 벗고🐜비로소🦋 (429)
3.앵커판) 스레 찾아주는 스레 (9)
4.나는 어릴때 백일장이 100일간 진행되는줄 알았어 (114)
5.포켓몬스터 소울 실버 랜덤 너즐록 챌린지 시즌 3 (184)
6.마법소녀 세계관>>86 (83)
7.해리포커와 죽빵의 기물(1) (601)
8."...이 파티 되게 재미없죠. 차라리 우리끼리 몰래 나가버릴까요?" (>>158) (158)
9.가자 가가자자 (667)
10.어느 유학생의 평온한 나날 >>476 (476)
11.신약: 유선형 비둘기와 경유 바다의 세이렌 / >>99 (99)
12.공자였는데 공녀가 됐습니다(2판) (>>365까지) (366)
13.☆★앵커판 잡담스레 6★☆ (984)
14.설화중고등학교 교생선생 곽지우 (240)
15.앵커판 설문조사 스레 (174)
16.앵커판 팬스레 💌 (40)
17.도시로 돌아가기 (688)
18.>>50 / 그래도 우리의 계절 (50)
19.스레주, 당장 돌아오지 못할까!? (110)
20.붕어빵 (218)
¢루프물입니다. 하나의 선택지만이 옳고, 그 이외의 선택지를 고를 시 주인공은 사망하게 됩니다. 이때, 여러 분기점 뒤에 사망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번 선택한 경로로는 다시 갈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전산오류로 처리되며 다시 선택하도록 유도됩니다. 주의해 주세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세계는 뒤틀립니다. 이때의 가상세계는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붕괴시키지 않도록 주의해 주세요. 이 경우 같은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상이한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한번 마주한 적이 있는 선택지는 주인공이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지 중 ▷는 전개를 쉽게 하기 위해 임의로 설정된 기호이며, 시스템상의 분기점은 >로 표기됩니다.
【안녕하세요, 플레이어님.
가상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 세계는 플레이어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생성되었으며, 플레이어님의 궁금증은 저희가 논의한 대상자 16억명 중 가장 가치 있는 궁금증으로 선정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궁금증을 최대한 해결해드리기 위해 본 가상세계는 실제적으로 설정되었으며, 플레이어님의 물음이 [공감]인 만큼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주의를 요합니다.】
눈앞은 깜깜한데 누가 내 귀에 억지로 목소리를 쑤셔넣는 기분이었다. 기분 더러운 꿈이라고 생각하는데, 다시 한번 글자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눈 앞에 말고, 머릿속에.
【플레이어님이 경험할 것은 극한의 공감, 혹은 극한의 결여입니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극한의 공감
>극한의 결여
▷선택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완전히 걷히며 빛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빛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눈이 아프지가 않았다. 이상해. 어딘가 이상해. 눈이 떠지자마자 보인 것은 시선을 내리고 있는 한 여자아이와 그 너머로 비집고 나오는 원색의 놀이터였다. 한낮에 교복과 놀이터라니, 어딘가 이상한 조합이 틀림없었다. 다 이상한 것 투성이네.
【당신은 극한의 결여를 체험하게 될ㄱ…】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십시오. 당신은 공감하지 않되 악하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아까와는 달리 머릿속이 계속 깜박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티비에 낀 노이즈처럼. 지직거리는 듯한 소리가 안에서 울려 사고가 잘 되지 않는 감각. 그럼에도 중요하다는 직감이 들어 말들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속으로 읊어보았다. 공감하지 않되 악하지 않은 사람…나는 몇번이고 그 말을 되짚었는데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도, 신경 안 쓰실 거고."
웅웅거리는 노이즈를 깨고 들리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르러서야 나는 이곳이 그 검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들리는, 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하여간 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기라도 했나 보지. 여러 생각이 부대끼는 와중에도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달래는 건 익숙하지가 않은데. 난감할 때의 습관대로 몸을 기울였다가 거의 떨어질 뻔했다. 그네에라도 타고 있었던 모양이네. 어쩐지 엉덩이가 배기는 느낌이더라니. 한번 더 움직여 자세를 잡자 오래된 그네 특유의 끼긱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는 그 소리가 컸는지 여자아이는 나를 흘깃 쳐다봤다. 퉁퉁 부은 눈은 그녀가 얼마나 오래 울었는지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어떡하지 진짜. 우니까 일단 달래야 하나?
무반응, 행동, 말 중 골라주세요
자유도가 높은 단계입니다. 에 따른 구체적 행위를 제시해 주세요.
"그래서, 무슨 일이야?"
조심스럽게 묻자 여자애는 입꼬리를 조금 들어올렸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웃으니까 뭔가 잘못한 기분인데. 나는 괜히 신발코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굴려 여자애를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세게 쥔 그네줄이 비틀리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그런 나를 앞에 두고 여자애는 계속 말없이 웃었다. 한창 내리쬐는 한낮의 볕 냄새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얼굴로. 아직도 이어지는 웅웅거리는 소리와 일반적이지 못한 상황이 어우러지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아주 약간은, 어쩌라는 건가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단 여자애는 생판 모르는 남이었고, 나는 저런 반응을 받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여자애는 입술을 세게 깨물더니 일어나서 웃었다. 사실 내게서 등을 돌린 채라 소리만 들을 수 있었어서 잘 모르겠다. 웃었을 수도 있고, 울었을 수도 있고. 그래도 그 애는 내가 그 애매모호한 소리를 헛웃음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할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다. 우는 단면만 슬쩍 엿본 아이인데도.
"가자."
잘게 떨리는 어깨에서 나온다기엔 너무 담담한 목소리였다. 방금까지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었던 것처럼. 날이 너무 좋아서 빠져나온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가 없는. 그게 이상해서 그 애를 소리내어 부르려다가, 이름조차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입을 뻐끔이며 여물지 못한 단어들이 스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에서 들리는 종소리에 놀라 그 애를 쳐다봤으나 여자애는 미동도 없었다. 내가 한참을 망설였던 것 같은데도.
▷따라간다
▷머리 좀 식히고 간다고 말한다
일단 따라가자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여자애는 바로 앞서 걸었다. 그렇게 천천히 걷기도 잠시, 놀이터를 벗어나자마자 여자애는 속도를 점차 올리기 시작했다. 어딘가 투박한 발걸음으로. 여자애의 심기에 거슬린 게 있나.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런 것 같지만 이대로 두면 놓칠 것 같다는 예감에 입을 열었다.
"잠깐만…"
나는 거짓말처럼 느려진 여자애를 따라 걸었다. 밤공기가 꽤 매서운데, 동복만 챙겨 입은 그 애에게 자꾸만 눈길이 갔다. 정작 나도 똑같은 차림이었는데도. 이래서 걸음을 재촉했던 건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넋을 놓고 뒤따르다 보니 나는 어느새 뜨끈한 바닥을 디디고 서 있었다. 뒤를 돌아보자 중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그 애는 의아하게 날 쳐다보더니 방 하나로 쏙 들어가 방문을 닫아 버렸다. 급하게 다가가 문을 두드렸는데도 잠금쇠가 잠기는 소리 외의 응답은 없었다. 따라오라더니 뭐지. 문고리를 살짝 감아쥐어 보니 안에 불이 난 것마냥 뜨거웠다. 불일 리가. 매캐한 냄새도 나지 않는데. 의아한 것 투성이인 집에 빈정이 상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두통과 잡음이 모조리 사라지고, 조용해진 곳에는 여자애의 목소리가 울렸다.
"설명해줄게."
"…어?"
"무슨 일인지 물어봤잖아."
키들거리는 목소리는 닫힌 방문에서 나는 게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울렁거리기 시작한 속을 진정시키며 두리번거리자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중년의 여자가 천천히 들어왔다. 그냥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행이다. 나는 잔뜩 힘이 들어간 몸을 조금 늘어뜨렸다. 그녀는 피곤하다는 듯 비척거리며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그대로 굳어 있기를 몇분, 여자가 들어갔던 방 안에서 한 여자아이가 뛰쳐나왔다. 팔꿈치 밑에 도드라진 푸른 멍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곳을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심하게 든 멍을 확인하고 시선을 맞추자 분명히 울고 있던 아이는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무슨 일이냐고? 무슨 일이냐고?"
아이 특유의 높은 목소리와 약간 새는 발음이 집을 울렸다. 들뜬 목소리와는 달리 나에게서 떼지 않는 시선을 보내던 아이는 내 팔을 쥐고 잡아당겼다. 휘청거리다 겨우 균형을 잡고 아이를 응시하자 여자아이의 얼굴은 그 애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말로만 들어서는 모르겠어? 맞아! 모르겠다고 했지?"
그 애는 여전히 어린아이 특유의 목소리를 냈고, 키도 방을 뛰쳐나왔던 아이의 키 그대로였다. 이질적인 건 그 얼굴이나 갑자기 끌어올린 광대뿐이었다. 입꼬리가 죽 늘어지자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잡아뺐다. 여자애는 그런 날 단단히 붇들고는 발랄하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 봐도 모르겠지! 모르겠지? 설명해줄까? 설명해줄까? 설명해줄까? 설명해줄까? 설명해줄까? 설명해줘? 내가 설명해줄까?"
그 애는 끝에 가서는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내게 얼굴을 붙였다가 몸을 뒤로 뺐다. 이때다 싶어 발끝을 돌린 순간 그 애는 내 귀를 쥐어잡고 자신의 쪽으로 끌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놀라 참아왔던 숨을 뱉으며 비명을 질렀다.
"봐도 모르겠으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애의 뒤에서는 아까 보았던 중년의 여성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와 웃어주며 머리를 쓰다듬다가 머리채를 거칠게 움켜잡았다. 누군가가 입을 막은 듯 비명은 나오질 않았다. 이렇게 아픈데. 비명이 왜. 흔들리는 시야로 보니 그 애는 아예 주저앉아 폭소하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빌어볼 요량으로 올려다 본 여성은 무서우리만치 표정이 없었다.
【오류가 발견되어 시스템 재부팅 중입니다…】
순간적으로 들려오는 망할, 머리를 울리는 그 이상한 문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둘이 일그러지기 시작해서. 머리를 당기는 통증이 사라지자마자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곳에 던져진 물건처럼 툭.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기만 했다. 주변이 완전히 검어지고, 분명히 숨이 거친데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계속.
곧이어 수십개의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어딘가의 주술 느낌이 나기도 했다. 이해할 여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한참을 기다리자 그제서야 조금 더듬더듬 판독해나갈 수 있을 정도의 말들이 들렸다.
【1차 붕괴 저지 완료】
【오류 발견, 제거 실패】
【체험과 관전에서 선택으로 반전. 1회 플레이 완료】
【관찰 결정. 수정 보류. 세계 붕괴 방지령 요청. 횟수 제한 삭제 요청】
【패치 진행중…】
.
.
.
정신이 없어 알아들은 게 오류라는 단어 하나뿐이었다. 오류, 오류. 나는 그 단어가 생명줄인 것처럼 계속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앞선 경험들을 다시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강해졌다. 나는 저번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어둠이 걷힐까봐 눈을 감았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가슴팍이 일초에 몇번이나 움찔대는 게 느껴졌다. 이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울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아닌가. 일어나 있었나? 전신에 감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놀란 것은 분명했다.
【패치가 완료되었습니다】
【플레이어님이 각 선택지에 맞게 행동하셔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극한의 공감
>극한의 결여
▷선택하지 않음
극한의 공감과 결여, 두 개의 선택지가 눈앞에 나타났지만 쉽게 고를 수가없었다. 다 끔찍할 것만 같았다. 다시 그 애가 튀어나오고, 이르든 늦든 그 여자가 나와서 머리채를 휘어잡고, 깔깔거리며 뒹구는 아이에게 있던 모든 상처를 하나하나 내고. 뭘 선택하든 그것을 봐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쉽게 선택했었던 옛날, 어쩌면 몇시간 전과는 달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선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경고성의 문구가 뜨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가만히 있자 글귀가 한번 더 떠올랐다.
【선택해 주시길 바랍니다】
혹시 경고성의 문구밖에 보내지 못하나. 갑작스럽게 떠오른 희망은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 어찌 됐건 내가 저걸 겪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가만히 있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왜,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도 있지 않나.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심장은 여전히 혼자 빨랐지만 어딘가가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개구멍 하나 정도는 있는 느낌. 그렇게 몇분이 지났을까,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말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해 주십시오】
>극한의 공감
>극한의 결여
▷선택하지 않음
계속 선택하라는 말이 울리고, 나는 선택해야만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아까까지 펼쳐진 것들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태연해질 수가 없었다. 깔깔거리던 여자애나 머리채를 잡은 우악스러운 손길. 그리고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서서히 생기던 핏자국과 아이에게 든 멍들.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겪었을 일들은 너무 선명했다. 둔해질대로 둔해진 촉각 사이로 눈물을 훔치자 손에 무언가가 약간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아까부터 울고 있었나 보다.
【선택해 주십시오】
이상한 것은 다시 말을 걸어 왔고 나는 이번에도 무시했다. 그래, 그러니까 나는 조금의 안정이 필요한 상태였다. 누가 봐도 그랬을 것이다. 아마 이곳이 검기만 한 공간이 아니었다면 달달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있지 않았을까. 사람은 울고 있다는 사실에 북받치기 일쑤니까. 지금도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글쎄. 내가 팔을 접었다 펴는 것조차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곳에서는 조금 담담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봤자 손발을 덜덜 떠는 꼬라지겠지만 계속 펼쳐질 것만 같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정감이 있었다. 눈을 떠도 어차피 검정일 테니까.
【선택해 주십시오】
이제 메세지는 거의 간혈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시간감각은 사라졌지만 어림잡아 보면, 적어도 5분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사실 10분이나 그 이상인 것도 같았고, 어쩌면 한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몇번 사이에 마음을 놓아버릴 만큼은 긴 시간이었다는 거다.
【선택해 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이 메세지도 그냥 넘기려고 했다. 고쳐 앉거나 그런 동작들 없이. 긴장감 하나 없이.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찬기가 훅 끼쳐왔다. 안면의 정면에만. 놀라 그곳을 더듬자 물기가 진득하게 묻어 나왔다. 그걸 깨닫자마자 가만히 뺨에 대고 있던 손 위로 다시 물이 쏟아졌다.
시야는 그대로였는데 감각만 돌아왔다. 의아해서 멀뚱히 깜빡이며 있자 무언가가 내 머리채를 그대로 잡아챘다. 그대로 넘어진 것도 같지만 거기까지는 감각이 없었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지도, 또 무언가가 보이지도 않는데 잡힌 두피는 아려왔다. 검정 너머로 그 아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벌벌 떨면서도 눈물을 문질러 닦아 앞을 보려고 했다. 이곳이 검정뿐일 거라는 건 직감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에도. 다행히 머리를 잡은 손은 금새 떨어져 나갔고, 나는 이번에야말로 내 흉곽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었다 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창 숨을 몰아쉬는데, 손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내려왔다. 순간적으로 숨이 뭠춰졌다가 끊어 나왔다. 손이 내려갈 때마다 내 어깨도 덩달아 덜그럭거렸다. 손은 금새 목에서 멈춰 뒷머리를 만지다 그대로 감쌌다. 홀로 예민해진 촉각으로는 그 지문까지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선택해 주십시오】
벌써 저걸 말할 타이밍이던가? 나는 익숙한 목소리를 복기하며 아까처럼 구해주기를 빌었다. 그 아이와 여자에게서 구해줬던 것처럼. 몇초 뒤, 목이 졸리며 생각이 마비됐지만. 턱이 자동으로 벌어지고, 침이 줄줄 새는 것도 같았다. 코가 막힌 기분이 들면서 알싸해졌다. 폐가 제대로 부푸는 것 같지 않자 나는 다급하게 몸을 이리저리 빼려고 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손이 풀렸다. 내뱉는 기침 사이로도 메세지가 한번 더 들려왔다.
【선택해 주십시오】
그 이후로는 무한정 반복이었다. 목이 졸렸다가, 다시 풀리고. 메세지가 들리고. 산소가 제대로 통하자마자 막히기 시작하자 머리가 멍해졌다. 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도 같았다. 나는 다시 졸라오는 손을 어떻게든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그래. 선택, 선택해야 돼.
목이 졸려 헐떡이는 와중에도 극한의 결핍만큼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공감을 계속 되뇌자 볕 특유의 냄새와 희미한 소음들이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뜨자 시야가 흐렸다. 검정이 아닌 볕에 안심했다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쨍한 색감들이 가득했다. 다행이다. 그 집은 아닌가봐. 반사적으로 몸에 힘이 풀리자 살짝 옆으로 기울어지며 무언가가 팔에 닿았다.
전혀 사람의 체온이나 감촉이 아니었지만, 나는 거의 소스라쳤다. 인식하지 못한 게 닿아왔다는 것 자체가 끔찍했다. 아니 그렇기보다는 놀랐다는 게 정확하다. 정말 그 무언가가 여기까지 따라온 줄 알았으니까. 닿아온 것을 피하면서 나는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온 거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듯 나는 뒤늦게 끼긱거리는 소리를 인식했다. 찰나에 무언가가 볼을 툭 치고 멀어졌다.
물건을 따라 더듬자 그건 살짝 끼긱거렸고, 짙은 초록이었다. 번져 있는 시야 사이로 겨우 하나를 알아챈 거다. 이게 그네라는 걸. 정확히 말하면. 처음 그 여자애를 만난 놀이터의 그네라는 걸 말이다. 그대로 시야가 아주 약간 어두워졌다.
"왜그래. 다쳤어?"
그 애였다.
▷도망간다
▷그대로 운다
▷대화를 시도한다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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