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는 웹소설 2~3개 분량이야. 제목엔 사제 로맨스라고 써놓았지만 사실은 굉장히 현실에 가까운 글이고. (사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건 흔치 않은 일이잖아?) 내 경험과 상상을 얽어서 만든 소설이야. 그런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끝을 낸 소설이기도 하구! 읽으면서 피드백 있으면 말해줄 수 있을까? 이런이런 점은 이렇게 고치면 어때? 라는 피드백도 너무나도 사랑해!!

여름, 맥주, 그리고 비.

또각, 또각, 또각, 또각 후덥지근한 공기에 이질적으로 청명한 구두 소리가 계단을 오른다. 구두소리 뒤엔 희미하게 비닐 스치는 소리, 그리고 깡통이 저들끼리 부딪히는 소리. 소리의 덩어리는 점점 선명해지다 뚝, 그친다. 잠시 기다려본다. 그 소리를, 너를. 똑똑 두드려지는 문이 울린다. "네." 낮은 내 목소리가 나무문에 잠시 머금어졌다가 이내 조금 흐릿한 소리로 석출되어 네게 닿았다. 그리고, 벌컥 "쌤!" 유리구두를 닮은 맑은 목소리가 그 무엇의 장애도 받지 않고 내게 닿는다.

*** "오랜만이네." "그렇죠?" 하율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책상 위에 두었다. 깡통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꽤나 소란하다. 깡통 하나가 책상 모서리에 아슬아슬히 걸려있다. 책상 위에 올라가고 싶어하는 듯 끈질게도 매달린다. "잘 지냈어?" "네. 저야 잘 지냈죠. 쌤은요?" "나도 잘 지냈지." 의미 없는 안부인사를 주고 받는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런 대화는 나와 이 애 사이엔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평소대로..' 오랜만이라 그런가, 조금은 어색하긴 했다. "수능 끝나고 한 번도 안 찾아오다니. 너무한거 아냐?" "그으..걸 기억하고 계시다니. 의외인데요?" "새꺄. 그래도 너랑 몇년을 봤는데." 대답없이 눈웃음을 치며 하율이 책상 위에 앉는다. 맨 앞에서 두번째 자리. 맨 앞줄은 아무도 앉지 않아 사실상 첫째 줄이다. 거기에서 하율은 중2, 첫 수업부터 수능 직전의 수업까지 항상 자리를 지켜왔었다. '저 자리는 여전히 좋아하네.' 15살부터 19살까지.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애는 거기에 있었다. 친구들이 하나하나 떠나가고, 마침내 처음 반을 만들었을 때의 학생들이 모두 떠나갔어도 하율은 남았다. 소규모 학원인지라 학생 하나하나의 존재가 각별했다. 그랬기에 하율에게 고맙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이리라. "웬일이야? 아무런 기별도 없이 학원에 오고." "뭐... 근황 보고도 하고, 할 말도 있어서요." 결석 한 번 없이 매번 수업에 오던 것과는 달리, 하율은 대학교에 입학한 뒤로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다. 고3때 수업을 듣던 학생들, 그 전에 학원을 끊은 학생들이 모두 한 번씩은 들른 후에도 하율은 오지 않았다. 이따금 소문으로만 잘 지낸다고 들었을 뿐 실제로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근황 보고라 하기엔 너무 오랜만인데." "ㅋㅋㅋㅋㅋㅋ에이... 쌤, 삐지셨어요?" 고개를 갸웃하며 천진하게 웃는다. 그래, 저 웃음. 저 웃음에 수많은 남자애들이 그녀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럴리가." 고등학생 때에는 전혀 꾸미지 않던 아이였다. 맨날 츄리닝, 아니면 교복.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는 항상 질끈 묶어 똥머리를 만들곤 했다. 그럼에도 하율은 빛이 났다. 늘 앞에서 환하게 웃을때면, 머리를 올려 묶을 때면 뒤에 앉아있던 남자애들의 시선이 칠판에서 하율에게 옮겨가는 것이 몇년 전의 내겐 일상이었다. "그쵸? 우리 쿨한 성주환 선생님께서 삐지실 리가 없죠." "...." 이제 막 20대의 중간지점에 다다른 하율은 더더욱 반짝반짝 빛이 난다. 연하지만 지나치지 않아 더 잘 어울리는 화장과 하늘하늘한 원피스. 거기에 적당한 굽의 구두까지. 하율은 제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떠한가. 내년에 40대로 진입할 예정이어서일까, 그녀가 마냥 부러웠다.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해(안한거다, 라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매일 지격지심에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참이었다. "쌤." "응." 하율이 말을 건 후에야 내가 원피스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은 급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 오늘 예쁘죠?" "..그래." "뭐에요, 그 마지못한 대답은!!" 부루퉁한 표정을 짓는다. 더 이상 캐물어지다간 난감해지리라. 주제를 어디로 돌려야 할까.. "그건 뭐야?" "아, 이거요?" 하율이 봉지에서 캔 하나를 꺼내든다. 아직 시원해 습기가 잔뜩 달라붙은 맥주캔이었다. "술이요."

*** 하율의 조름으로 어쩔 수 없이 시원한 실내에서 후덥지근한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하율이 가자는 곳은 학원 뒷편에 있는 주차장이었다. 차가 많지 않아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곧잘 간식을 들고 가던 자그마한 아지트이기도 했다. "와.. 여긴 여전하네요." "애초에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하율은 자연스럽게 주차장 모퉁이에 낮은 벽으로 향했다. 사람 두셋이 나란히 앉아 대화하기에 가장 좋은 높이와 두께를 가진 벽이었다. 쉬는시간이 끝났는데도 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여기로 찾으러 오곤 했었다. "쌤! 빨리 오세요. 맥주 뜨거워지잖아요!!" "에휴.. 그래, 그래." 저 성격만은 변하질 않았다. 쉽게 친해지고, 또 쉽게 다가가는 성격. 그랬기에 나와 하율의 사이에서 먼저 다가간 것도 하율이었다. 아, 물론 사제간의 사이 말이다. "쌤은...역시 그걸 고르실 줄 알았어요.ㅋㅋㅋㅋ" 자연스럽게 흑맥주로 손이 갔다. 그걸 보며 하율은 배싯 웃었다. 그러고보니 맥주는 두 가지였다. 쓴 맛이 강한 흑맥주와 달콤한 과일맥주. "전 이거!" 하율은 사과 그림이 그려진 맥주를 꺼내들었다. 맥주를 따려 손을 뻗자, 그녀의 맥주를 가로채가 캔을 따 주었다. 거품이 조금 올라오고 있는 맥주캔을 하율에게 건넸다. "자." "...." "뭐해, 안 받고." "아,네. 감사합니다아.." 하율이 받아든 맥주캔이 손아귀에서 살짝 우그러드는 소리가 들렸다. "짠 할까?" "네. 짠!" 언제적 짠이에요, 라며 핀잔은 없었다. 맥주는 시원하게 들이켰다. 7월의 뜨거운 공기를 시원한 맥주가 식혀주는 느낌이 좋았다. "하-. 시원하다." "그렇네. 야.. 시간이 참 빠르다." "네?" "너 15살때 만난게 엊그제 같은데, 네가 사온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내가." "그게 곧 10년 전 얘기가 되는것도 아세요, 쌤?" 하율이 맥주를 한 번 더 홀짝였다. 하율의 일침에 오늘따라 맥주가 썼다. "안주는 없냐?" "있죠." 하율은 안주를 봉지에서 꺼내어 둘 사이에 펴 내었다. 꽤나 아재 입맛에 맞춘 안주들이었다. "요새 애들도 이런걸 먹어? 우리같은 아저씨들이나 먹는 줄 았았는데." "어...네. 제 친구들도 많이 먹던데요?" 요즘 애들이 맥주에 곁들여먹는 안주는 아니었다. 아귀포, 황태포, 땅콩, 오징어다리.. 이제 편의점에선 구하기도 어려운 안주들이었다. "이걸 파는데가 아직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파는데야 아직 많죠, 뭐." 그런가? 내 주위 마트들이 유독 없는거였나.. "하아-" 달콤한 맥주의 향이 여름밤 바람에 섞여 풍겨왔다. 후덥근한 바람에 달콤한 향이 섞이자 전에 없이 농익은 향이 되었다. "...여기서." "?" "옛날에, 친구들이랑 쌤 서프라이즈 파티한거 기억나세요?" "아...그때? 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유쾌한 기억이었다. 내 생일을 알아낸 한 학생이 반 애들과 작당을 해 파티를 열어준, 소중한 기억이기도 했다.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반 친구들끼리 다 친하기도 했구.." 이 애는 알까. 본인을 구심점으로 반 애들이 친해졌다는 걸. "그래도 축하해줄 여친이 없다고 슬퍼하진 않으셨죠?" 갑자기 걸려온 시비에 맞는다, 라며 때리는 시늉을 했다. 하율은 익숙하게 웃으며 오징어다리를 앙 입에 물었다. "여친...하..." 그래. 사실이다. 학원 일에 치이고 치여, 연애사업은 결국 뒷전이 되었다. "그래두, 쌤처럼 매너있는 사람이면 좋다고 하는 여자 두 명쯤은 있을껄요?"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은 뭐야.. "갑자기 웬 매너?" "이거요. 이거." 하율이 손톱으로 맥주캔의 손잡이를 톡톡 건드렸다. 옅은 립스틱 자국이 묻어 있기도 했다. "아..그거? 그거 전 여친 때문에 습관 들인거야." 하율의 등이 조금 움찔, 떨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남친 있냐?" "있겠어요?" 하율은 그럴리가 있냐는 듯 되물었다. "너... 학원 다닐 때 고백도 많이 받고 그랬잖아." "그랬죠." 급격히 대답이 짧아진다. 아까부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던 것과는 다르게 하고 싶은 말의 뒷부분을 잘라버린 듯 말이 없다. "그런데도 없다고?" "네. 없어요."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율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다. 흔들림없이 앞을 응시하는 눈이다. "..."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그래요." 맴,맴,맴,맴, 매미가 우는 소리가 둘 사이를 맴돌았다.

*** 서로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두번째 맥주를 꺼내들었다. 어색했던 분위기도 잠시, 주제를 돌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제 그럼.. 네가 4학년인가." "어... 아니요. 중간에 1년 휴학했으니까 3학년!" 하율은 웃으며 손가락 3개를 쫙 펼쳤다. "휴학?" "네, 휴학." "언제 했는데?" "2학년 끝나고 했어요." 그말은, 작년 내내 휴학을 했다는 말이다. 그때 찾아오지 않고서, 마음속으로 소심한 뒤끝을 남겼다. "이제 제가 여쭤볼꺼에요!" "그래, 그래." 주도권이 넘어갔다. "쌤은 그동안 뭐하고 지내셨어요?" "나야 뭐 똑같지. 애들 가르치고, 혼내고.." "혼내고... 저 중3때 쌤 저 엄청 혼내신거 기억나세요?" 주도권을 넘겨주니 곧바로 공격이 들어온다. 나도 당연히 하율이 말한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아... 그거?" "그거라뇨! 그날 쌤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정말 별 거 아닌 걸로 격하게 화를 냈었다. 그 일만 떠올리면 하율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다른 일로 기분이 나쁜 상태에서 이 애한테 화풀이를 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일이었다. "..휴학은 왜 했는데." 화제를 급작스레 돌린다. 미안했어, 라고 사과하기엔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율은 못마땅한 듯 한참을 뚱하니 바라보다 시뻘겋게 물들었을 귀를 보고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냥.. 생각을 정리할게 좀 여러가지 있었었어요. 그러면서 알바도 하고, 여행도 가고... 다른 의미로 바빴죠." "무슨 생각." 하율은 대답 대신 나를 다시 빤히 쳐다본다. "음..." 여전히 웃는 낯이다. "쌤 생각?" 속도 없이 웃는다. 그냥 장난이라는 듯, 웃어제낀다. 또 말이 없다. 아까보다 커진 듯한 매미소리가 오디오를 채우고 마지막 남은 두 캔의 맥주는 점점 뜨거워져 간다.

*** "그래서- 할 말이 뭔데." 주제를 돌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두 번째 맥주를 비우고 마지막 맥주를 꺼내었다. "할 말...?" "그래, 너. 할 말 있다며." "아, 맞다. 그랬지. 아니, 그랬죠." 맥주 두 캔을 비우자 하율은 점점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너 취했어." 하율에게서 맥주를 빼앗자 하율은 오히려 내 맥주를 빼앗았다. "그만 마셔. 너 내일 강의 없어?" "내일으은... 아침에 있죠." "그럼 더더욱 마시면 안되잖아." 틱,틱. 예쁘게 기른 손톱으로 맥주캔을 따기엔 무리겠지, 그냥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버려두었다. "...취해야 해서 그렇지." 진지한 목소리. 나즈막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전에 없이 가라앉는다. 치익- 맥주캔을 따는 소리가 경쾌하다. 하율은 쓰디쓴 맥주를 단숨에 비워내었다. 하율의 볼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건 더위때문일까, 취기 때문일까, 아니면... 반말을 지적할 틈도 없이 벌어진 하율의 돌발행동에 어안이 벙벙했다. 저 쓴 맥주를, 과일맥주나 홀짝이던 애가 원샷을 해버리니 놀라는 것도 예사는 아니었다. "흐..." 쓴맛과 뜨거움이 섞여 신음에 가까운 탄식을 내뱉는다. 어깨를 바르르 떨고선 풀린 눈으로 안주를 더듬어 찾는다. "그걸 한 번에 마시면 어떡하냐, 바보야." 아까부터 하율이 계속 먹던 오징어다리를 하나 밀어주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이제는 확신했다. 하율이 사온 안주는 철저히 내 입맛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그나마 이 애의 입맛에 맞는건 오징어 다리 하나 뿐이었다. 하율은 내밀어진 오징어 다리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말이 없다. 그냥 뚫어져라 바라만 보고 있다. "뭐해? 안 먹고. 속 다 버려." "...." 하율은 여전히 말이 없다. 다만 오징어 다리에서 나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는, 마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는 사진사의 카메라 같았다 이 순간을 모두 담아버리겠다는 듯 까만 눈동자는 나만을 응시했다. "쌤." 곧은 눈빛이 다가온다. 일방적이던 하율의 눈빛이 순식간에 내 눈빛에 얽힌다. 하율의 입에서 나올 말이, 눈빛으로 전해졌다. '....' "좋아했어요." 과거형의 고백. 현재형이어서는 안되었기에, 과거가 된 지금에야 내뱉는 그 한마디. "처음 본 그날부터, 정확히 오늘까지." 눈빛이 자르르 떨렸지만 결코 눈을 피하진 않는다. "진심으로, 정말 많이 좋아했어요."

*** 침묵이 감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다름 아닌 갑작스런 빗소리였다. 오늘따라 비냄새가 많이 난다 싶더라, 하율은 속으로 생각했다. 투둑, 툭. 굵은 빗방울이 지붕 역할을 해주던 머리 위의 판자에 떨어진다. '이 비에 모든 감정이 씻겨 내려가기를.' 마지막 남은 찌꺼기도, 떨쳐내기 힘든 미련도 모두 씻겨 내려가고 오직 그대와 함께한 추억만이 상자에 담겨 남기를. "...비 오네요." 하율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기운이 맥주 3캔만에 제대로 돌았다. 아직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옛 첫사랑에게 하율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이 말.." 마지막 인사는 이걸로 해야지. 미리 생각해온 말은 아니었지만. "비 올때마다 혼잣말로 되뇌이던건데." 하율이 환하게 웃는다. 울음을 억누르려 웃음은 더더욱 환해진다. "쌤한테 비오는 날마다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하율의 눈과 주환의 눈이 닿는다. "비 오니까,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쌤." 매일 비가 오는 밤마다 우산 속에서 홀로 속삭이던 말을 내뱉은 그녀는, 답인사를 기다리지 않았다. *** 여기 까지 읽었다면... 당신은....천...사...!

헐 머야머야 개잘쓴다 완전 달달해서 혈당치 올라간것같아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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