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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음 2020/05/27 13:18:34 ID : 9vzQmoFcoMk
그 당시에 썼던 일기를 찾아서 쓰려고 왔어. 조금 길고 지루할수도 있어, 내가 필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시간이 조금 지난 이야기거든. 딱히 보는 사람 없어도 그냥 추억 회상할겸 쓸테니까 편하게 봐줘! 내가 18살때 찾아온 정말 꿈만 같았던 나의 첫사랑이야.
이름없음 2020/05/27 13:19:01 ID : 9vzQmoFcoMk
나와 그 사람은 친구를 통해서 만났어. 소개팅은 아니었고 엄청나게 인싸인 아는 언니 생일파티때 그 사람도 와서 우연히 만나게 된거지. 솔직히 처음 봤을때는 별 감흥 없었어, 그냥 와 몸 진짜 좋다, 정도? 얼떨결에 번호를 주고 받긴 했지만 우리 둘만 그런게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두루두루 다 번호 교환하고 서로 sns 구경하고 하면서 그런거라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
이름없음 2020/05/27 13:19:26 ID : 9vzQmoFcoMk
그 자리에 사람들도 엄청 많았고 텐션이 장난 아니게 높아서 안 그래도 시끄러운거 별로 안 좋아하는 나한테는 그 자리가 조금 힘들었어ㅠ 게다가 그 당시에 나는 미자라 술도 많이 안 마셨고 (그래도 분위기상 마시긴 했고 이게 자랑거리가 아닌건 알아 미안ㅠㅠ) 정말 진짜 친한 언니 생일이 아니었으면 절대 가지 않았을 자리에 그렇게 어색하게 껴있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3:20:35 ID : 9vzQmoFcoMk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2차 가자는 말이 나왔고 나는 2차까지 따라가는건 정말 못할것 같아서 언니한테 말을 하고 먼저 일어났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다 내 어색함을 느꼈는지 딱히 잡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 편하게 집에 갈수 있었어. 나 같은 성격인 사람들은 아마 공감 할 수 있을거야, 저렇게 시끄럽고 사람 많고 텐션 좋은 자리는 그곳에 있기만 해도 힘이 빠지고 지쳐. 내가 뭘 한건 없지만 그냥 기가 빨린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그날 밤 피곤해진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3:22:09 ID : 9vzQmoFcoMk
그 다음날 핸드폰을 보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저장 되어 있는거야 ㅇㅇ언니❤️, 잘생긴ㅇㅇ오빠 이런식으로 내가 절대 저장 했을리 없는 이름들이 수두룩했어. 솔직히 그 중 대부분이 기억이 잘 안났고, 어차피 나한테 연락이 올것 같지도 않아서 딱히 누가 누군지 알려고 하지는 않았어.
이름없음 2020/05/27 13:22:25 ID : 9vzQmoFcoMk
근데 그중에 한 이름이 눈에 들어오더라. 딱히 기억 하려고 한건 아닌데 성이 특이해서 그 몸 좋은 오빠였던게 생각이 났어. 지울까 했는데 번호가 있어서 나쁠것도 없으니 그냥 놔두기로 했어. 아까도 말했다시피 딱히 나한테 연락이 올것 같지는 않았거든.
이름없음 2020/05/27 13:24:11 ID : 9vzQmoFcoMk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학교도 다니고 알바도 하면서 내 나름대로 바쁘게 살고 있었어. 18살이었는데 그때 연애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와서 주변에 친한 남자도 없고 연애가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해본적이 없어서 특별히 외로워하거나 그러진 않았어. 근데 하나 나도 가끔 아쉬웠던건 좋아하는 사람조차 없었다는거야. 초딩때 했던 귀여운 짝사랑 같은걸 빼면 그냥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한적이 없었어. 그냥 남자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것 같아. 이정도면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당연히 모쏠이었고.
이름없음 2020/05/27 13:24:15 ID : A2E783u1ck6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0/05/27 13:25:56 ID : 9vzQmoFcoMk
그러다가 어느날 밤에 잠이 안와서 누워있는데 문득 그때 그 언니 생일때 만났던 사람이 생각이 났어. 보고싶다 뭐 이런게 아니라 그냥 정말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이 났고 정말 뭐에 홀리기라도 한듯이 내가 먼저 연락을 했어.
이름없음 2020/05/27 13:26:25 ID : 9vzQmoFcoMk
하나 짚고 넘어갈건 이때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거나 특별히 호감이 있어서 연락을 했던게 아니었다는거야. 정말 진짜 이제와서 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갈정도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갑자기 그 사람이 떠올랐고 딱히 궁금한 것도 아니었는데 뭐하냐고 연락을 한거야.
이름없음 2020/05/27 13:29:48 ID : 9vzQmoFcoMk
솔직히 새벽에 술자리에서 한번 본 여자애가 뭐해요? 라는 문자를 보내면 오해를 할수도 있잖아. 근데 그 사람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갔어. 그때 한번 본게 전부고 심지어 그때 따로 우리 둘이 얘기를 한것도 아닌데 모든게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갔어, 마치 오랜시간을 알고 지낸 사이인것 처럼 편했고, 별 이야기를 한것도 아닌데 시간이 정말 빨리 흘러갔어.
이름없음 2020/05/27 13:33:09 ID : 9vzQmoFcoMk
그날 밤 이후로 우리는 계속 그렇게 연락을 하면서 지냈고, 그때 생일 파티 주인공인 언니한테 슬쩍 물어보니까 좋은 사람이라고 응원한다는 말도 들었어. 근데 이상하게 나는 그때까지도 썸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거야. 좋긴 좋았어, 분명히. 근데 뭔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게 아니라 굉장히 좋고 믿음직한 친구가 생긴 기분이었어. 우리가 연락한지 한 2-3주? 정도 되었을때 그 사람이 손을 다쳐서 톡하기가 불편한데 혹시 전화를 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알겠다고 했어. 근데 그 사람 이름이 화면 속에 뜨면서 진동이 울리니까 갑자기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하는거야. 전화를 받지 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전화를 받으면 그 사람에게 내 심장소리가 고스란히 다 전해질것만 같았어.
이름없음 2020/05/27 13:33:22 ID : 9vzQmoFcoMk
하지만 받았지. 그 사람의 목소리는 내 기억속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던 것 보다 훨씬 낮고, 부드럽고 따뜻했어. 우린 또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했고, 재밌는 일을 기억하며 웃었고, 힘들었던 일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위로했어. 그렇게 우리는 핸드폰이 손으로 들고있기 힘들정도로 뜨거워질때까지 몇시간씩 통화를 했고, 내 마음은 그것보다도 훨씬 더 뜨거워지고 있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3:36:22 ID : koHA5e4441C
ㅂㄱㅇㅇ
이름없음 2020/05/27 13:37:12 ID : 9vzQmoFcoMk
그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면 편하고, 그 사람도 나를 믿고 호감을 가지고 대한다는게 조금씩 보이니까 단순한 호기심과 관심이 사랑으로 변하는게 정말 순식간이더라고.
이름없음 2020/05/27 13:38:36 ID : 9vzQmoFcoMk
나보다 세살이 많았던 그 사람은 대학생이었고, 일을 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느라 바빴고 나도 내 나름대로 할일이 많아서 딱히 만나려는 계획은 세우지 않고 있었어. 그냥 전화를 하고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좋았거든. 그리고 그것보다 난 그런 경험이 처음이어서 지금이 너무 좋아서 그 어떤것도 바뀌는게 싫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3:39:05 ID : koHA5e4441C
ㅂㄱㅇㅇ 시급해 빨리빨리!!!!
이름없음 2020/05/27 13:39:21 ID : 9vzQmoFcoMk
근데 어떻게 안 만나겠어.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가기로 약속을 잡았어. 나는 뭔가 중요한 날이면 꼭 한번도 입지 않은 새 옷을 입어야 하는 징크스 같은게 있어서 옷도 새로 사고 정말 18년만에 처음으로 정성을 들여서 나를 꾸몄어. 태어나서 처음 데이트를 하는거잖아, 그래서 주변 친구들한테도 엄청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내 친구들은 처음보는 내 모습을 신기해 하기도 하면서 진심으로 도와주고 응원해줬어.
이름없음 2020/05/27 13:40:08 ID : 9vzQmoFcoMk
읽어줘서 고마워ㅋㅋㅋ
이름없음 2020/05/27 13:42:17 ID : koHA5e4441C
레주야 3줄씩 써줘ㅠ 빨리 보고싮·ㅣㅠㅠ
이름없음 2020/05/27 13:47:13 ID : 9vzQmoFcoMk
그렇게 나는 우리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 도착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차를 하고있는 그 사람의 모습이 보였어. 근데 뭔가 그렇게 길거리에서 아는척 하기가 망설여져서 나는 먼저 안에 들어가서 도착했다고 연락을 했어. 일부러 입구를 등지고 먼저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정말 내 인생 가장 떨리는 시간이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3:47:41 ID : 9vzQmoFcoMk
나도 생각을 정리하면서 쓰는거라ㅠㅠ 빨리 쓰려고 해볼게!!
이름없음 2020/05/27 13:49:02 ID : 9vzQmoFcoMk
웃으면서 내 앞에 앉는 그 사람은 내 기억보다 훨씬 더 멋있었어, 그저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어깨도 정말 넓고 키도 크고 웃는게 너무 예뻤어, 진짜. 나는 우리가 벌써 하도 많은 얘기를 해서 할말도 없고 어색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 우린 메뉴를 고르는 것부터 밥을 먹고 뭘 할지 정하는것까지 일사천리로 술술 풀렸고, 그 사람이랑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정말 너무 행복했어. 우린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갔어. 공포영화라 나는 무섭다는 핑계를 대며 어쩌면 조금 뻔하게 그 사람 어깨 뒤에 숨었고, 그 사람도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고 있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3:52:43 ID : 9vzQmoFcoMk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다시 출출하다는 그 사람이랑 우린 카페를 갔고, 분명히 시끌벅적한 프랜차이즈 커피샵이었는데 마치 우리 둘만의 공간에 있는것만 같았어. 흔한 사랑 노래 가사에 클리셰로 자주 등장할법한 말인거 알고 조금은 오글거릴수도 있는거 아는데 정말 저렇게 밖에 표현이 안돼. 그 사람만 보였고, 그 사람 목소리만 들렸고, 그 사람 눈에도 나만 비치는것 같았어.
이름없음 2020/05/27 13:56:46 ID : 9vzQmoFcoMk
18년을 그렇게 혼자 남일에 관심 없고 연애는 그냥 언젠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던 내가 아주아주 지독한 사랑에 빠져버린거야. 우린 매일 하루의 시작과 끝을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하고 끝맺었고 정말 사랑에 빠진다는게 그 어떤 술이나 마약보다 강하구나를 몸소 느꼈어. 그 사람 생각에 아무것도 못했거든. 고개를 돌리고 어딜 보고 어딜가도 그 사람 생각이었고, 그냥 내 속에 그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터져버릴것 같았어.
이름없음 2020/05/27 14:05:35 ID : 9vzQmoFcoMk
두번째로 만난 날 우린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손을 잡고 우리 집 근처 공원을 걷고 있었어.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그 모든 상황을 더 떨리게 했던것 같아. 우린 공원을 한참 걷다가 한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았어. 주변에는 새소리 하나 나지 않았고 사람도 물론 한 명도 없었어. 우린 그렇게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한 여름 속에서 반갑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가만히 앉아있었어. 손은 꼭 잡은 채로 내가 그 사람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고, 그 사람도 나한테 기대는게 느껴졌어. 기분이 정말 너무 좋았어, 그야말로 모든게 완벽한 순간 같았지. 조명, 날씨, 분위기, 그 어떤것도 아쉬운게 없었어. 누군가 나타나서 내 삶에서 딱 한 순간 속에서만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나는 무조건 그 때라고 답을 했을거야.
이름없음 2020/05/27 14:11:14 ID : 9vzQmoFcoMk
그런데 갑자기 심장이 또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는거야. 내가 아무리 모쏠이고 남자를 만난 경험이 없다고 해도 이건 무조건 첫키스를 할것 같은 느낌이 딱 왔어. 아마 그 사람도 느꼈던거겠지, 내가 고개를 들어서 그 사람이랑 눈을 마주쳤을때 그 사람 입술은 이미 내 입술에 닿기 직전이었거든.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생각했던 첫키스는 아니었어. 나는 그때의 분위기랑 맞게 잔잔하고 여유로운 키스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4:14:41 ID : 9vzQmoFcoMk
처음엔 그랬지, 첫키스였던 나도, 내가 첫키스라는걸 아는 그 사람도 조심스럽게 시작했어. 하지만 마치 내가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과정처럼 너무나도 조심스럽고 혼란스러웠던 순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고 우린 누가 먼저라 할것 없이 둘다 불타 올랐어. 스레딕에 수위가 얼마나 허용되는지 모르겠어서 너무 자세하게 설명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하나 확실한건 그때의 키스가 몇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최고의 키스인건 확실해.
이름없음 2020/05/27 14:27:53 ID : 9vzQmoFcoMk
음 참고로 이 이야기는 시작만큼 끝이 아름답지 않아, 아쉽게도. 그러니까 혹시 해피엔딩을 좋아한다면 끝까지 읽지 않는게 좋을것 같아ㅠ
이름없음 2020/05/27 14:29:10 ID : 9vzQmoFcoMk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 가까워졌어. 나는 매일매일 그 사람에게 더더욱 깊숙하게 빠져버렸고. 그 사람이 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집이 약 1시간 반이 걸리고 둘 다 바쁜 탓에 만나고 싶은 만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를 더 애틋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우린 거의 매일같이 통화를 하면서 잠들었고, 잠들기 직전까지 서로에게 정말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았어. 내가 엄마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던 우울증으로 심하게 아팠던 때를 처음으로 남에게 털어 놓았고, 그 사람은 나와 함께 울어주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4:32:39 ID : 9vzQmoFcoMk
또 그 사람은 어렸을때 부터 부모님이 바쁘셔서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자란 탓에 생긴 애정결핍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고, 나는 이 모든게 드라마 속 이야기 같았어.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나를 믿고 나에게 함으로써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지. 평생을 누군가에게 기대면 안되고, 약한 모습은 보여주면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온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기대고, 나를 필요로 한다는게 너무 기분이 좋았어. 내 눈에는 정말 완벽하고 어디 흠잡을 곳 없던 그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의지 한다는게 정말 짜릿했어.
이름없음 2020/05/27 14:39:13 ID : 9vzQmoFcoMk
그래서 그렇게 더 매달리고, 최선을 다하고 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고 내 모든것을 쏟아 부었었던 것 같아. 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 만큼 나도 그 사람이 필요했거든. 그 이후에 겨우 그 사람에게 편한 시간을 맞춰서 잡은 데이트 날에 일이 생겨서 세네시간이 늦어져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기쁜 마음으로 그 사람을 기다렸어. 그때는 전혀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게, 그게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거든. 그렇게 만나서 겨우 밥만 먹고 헤어지더라도 나는 너무 행복했어. 그 사람은 나를 보면 힘든게 잊혀진다고,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누누이 말했고 나는 그냥 그렇게 그 사람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나라는 것에 만족을 하고 살았지.
이름없음 2020/05/27 14:47:35 ID : 9vzQmoFcoMk
그러다가 내가 졸업을 하게 됐어. 나는 그냥 보통 고등학교가 아니어서 18살에 일찍 졸업을 했고 그 사람은 나한테 갖고 싶은걸 얘기 하라고 했어, 졸업 선물로 뭐든 사주겠다고. 근데 나는 갖고 싶은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머릿속엔 딱 한가지 생각 뿐이었어,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이 내가 자기를 이렇게나 사랑하고, 언제나 곁에 있을거라는 확신을 줄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그 사람에게 같이 잠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어. 그 사람은 한번도 나한테 강요한적 없었고 데이트를 할때도 항상 키스에서 끝이 났었는데 뭔가 내가 나의 첫 경험을 그 사람이랑 하게 된다면 이 관계가 더 완벽해 질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거야.
이름없음 2020/05/27 14:49:08 ID : 9vzQmoFcoMk
참고로 말하지만 나는 저때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절대 저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보다시피 저땐 이미 나와 그 사람의 관계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4:55:50 ID : 9vzQmoFcoMk
어쨌든 내 말을 들은 그 사람은 꽤 괜찮은 호텔 방을 잡았고 나는 졸업식 당일 저녁에 내 첫 경험을 했어. 그때는 정말 모든게 완벽하고 황홀했던 기억이 나. 내가 사람하는 사람과, 무섭거나 불확실 한것도 전혀 없었고 그냥 그 사람이라면 무조건 뭐든 다 괜찮을것 같았어. 항상 내가 아무리 표현을 하고 사랑을 퍼부어도 내 마음만큼 전달이 안되는것 같았는데 내 몸까지 준다고 생각하니까 그제서야 만족스러웠어. 정말 내가 내 모든걸 그 사람에게 주고 싶다는걸 드디어 전달 하고 있는것 같았어.
이름없음 2020/05/27 15:01:03 ID : 9vzQmoFcoMk
하지만 불행은 항상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온다고 하잖아, 그 말이 틀리지 않았어. 그렇게 사랑에 정신을 놓은 18살의 내 기준에는 완벽했던 첫날밤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연락이 아주 조금씩 뜸해지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느끼지 못할 정도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매일 대여섯시간씩 하던 통화가 10분 내외로 줄어 들어있었고, 우리의 메세지 창은 온통 노란색 뿐이었어. 나는 그러면 그럴수록 그 사람이 바쁘고 힘드니까 나까지 보채고 귀찮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다 참고 넘어가고 이해했어. 헤어지는건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었거든.
이름없음 2020/05/27 15:10:10 ID : 9vzQmoFcoMk
하지만 결국 어느 날 올것이 오고야 말았어.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유가 없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는 그 사람의 메세지는 내가 도저히 읽을수도, 이해 할수도 없었어. 죽어도 듣기 싫었던 그 말은 내가 난독증 환자라도 된것 마냥 내 눈 앞에서 나를 비웃으면서 뒤죽박죽 엉켜있었지. 그때 그 사람이 보낸 메세지는 고작 세네줄 남짓 했었는데 나는 그걸 한 두시간 정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아. 그 날밤은 그냥 그렇게 멍때리면서 지새운것 같아. 바로 답을 할 생각도 하지 못했어 그땐,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었었으니깐.
이름없음 2020/05/27 15:15:57 ID : 9vzQmoFcoMk
그렇게 일방적인 통보를 받는다는 것에 가장 화가나고 답답한건 나는 더 이상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거야. 그 사람은 이미 마음의 정리를 끝내고 나에게 연락을 보낸거고, 나는 그 어떤 짓을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없었어. 이미 그 사람은 시간을 갖고 천천히, 꼼꼼하게 정리를 하고 나에게 온거였으니까. 그게 가장 슬프더라. 이 관계를 위해서 쏟아 부은건 내가 훨씬 많은데, 끝을 결정하는건 결국 그 사람 손에 달려있었어. 그리고 나는 끝까지 그 사람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서 그렇게 아무 말 못하고 겨우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고 차였어. 정말 바보같이.
이름없음 2020/05/27 15:24:20 ID : 9vzQmoFcoMk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땐 흔하디 흔한 사랑노래 가사들이 이해가 간다고 했었잖아, 근데 이제는 절절하고 아픈 이 세상에 모든 이별노래들이 나를 대변해주고 있었어. 예전에는 심장이 찢겨나갈것 같다, 왜 내 마음을 짓밟고 떠나갔냐, 이런 가사를 들으면 에이 너무 과장한다, 어떻게 이별을 했다고 가슴이 아플수가 있냐, 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이 무색해질 정도였어. 진짜로 가슴이 너무 아팠어. 진짜로 매일 밤 가슴을 부여잡고 숨이 막힐때까지 우는걸 거의 두달동안 계속했고, 당연히 나는 가면 갈수록 피폐해져갔어. 살이 엄청나게 빠지고, 우울증도 다시 도져서 약을 달고 살았어. 주변 사람들이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는 것도 귀에 안 들어왔고 그 사람을 욕하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감싸돌았어. 호구라고, 정신차리라고 있는 욕 없는 욕을 다 먹어도 나에게 그런 꿈만 같았던 사랑을 느끼게 해준 그 사람이 욕을 먹는게 싫었던것 같아.
이름없음 2020/05/27 15:25:36 ID : 9vzQmoFcoMk
그 사람의 연락처도 지우지 못하고 있었어, 근데 그 이유가 내가 생각해도 정말 가관이다.
이름없음 2020/05/27 15:27:33 ID : 9vzQmoFcoMk
내가 그 사람의 연락처를 지웠는데 만약에 나한테 연락이 오면, 내가 누구세요? 라고 답했을때 그 사람이 상처 받을것 같았어. 그래서 sns도 다 끊고 사진도 다 지웠는데 번호만큼은 끝까지 못 지우고 있었어.
이름없음 2020/05/27 15:32:58 ID : 9vzQmoFcoMk
하지만 모든것이 그렇듯 그 사람도 아주 조금씩, 잊혀지긴 하더라. 어느새 보니까 더 이상 그 사람 생각을 해도 눈물이 쏟아지지 않는 날이 왔고, 내가 얼마나 잘못되고, 힘든 연애를 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어. 그 사람이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는 소식을 봐도 조금 씁쓸할 뿐 죽을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고, 그 사람이랑 함께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흥얼거릴수 있는 날도, 그 사람이랑 갔던 식당에 가서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면서 밥을 먹을수 있는 날도 결국엔 왔어.
이름없음 2020/05/27 15:38:01 ID : 9vzQmoFcoMk
그렇게 내 18살의 첫사랑은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하게 시작해서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쓴맛으로 끝났어. 그 당시에는 정말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그 사람에게 아주 조금 고맙기도 해, 그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사랑에 대해 많은걸 배웠다는건 부정할수 없는 부분이거든. 그래서 그 사람에게 불행을 빌지는 않아, 그냥 나보다는 아주 조금 덜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름없음 2020/05/27 15:40:15 ID : 9vzQmoFcoMk
끝이야ㅋㅋ이렇게 쓰고 나니까 기억이 새록새록 나고 새롭다. 혹시라도 중간에 오타가 났거나 궁금한점 있으면 알려줘! 그리고 중간에도 말했지만 절대 나 같은 연애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ㅠㅠ 들어줘서 고마워!
이름없음 2020/05/28 04:01:22 ID : 9vzQmoFcoMk
후다닥 썼더니 글에 정신이 없네ㅋㅋㅋ이 사람 이후에도 썰로 풀만한 연애 몇번 했는데 그건 나중에 올려볼게!
이름없음 2020/06/20 21:50:07 ID : IIHyMknu03C
해피엔딩 좋아하지만 뭔가 나쁘지 않다...ㅎㅎ
이름없음 2020/07/07 04:24:07 ID : jzbwq0nDvB8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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