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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림도>
하늘아, 무정한 하늘아, 가슴 한켠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아. 멀어져가는 별들, 넓어 넓어 아스라한 하늘에, 초췌한 달은 내려오고, 우수를 죄 내뿜고 개운하게 떠도는 구름아. 이 내 몸의 물기도 모조리 앗아가 다오. 부엉이도 안 오고 열린 것도 없고, 외로이 손만 흔들고 오는 가장귀.
녹녹한 바람아, 서느렇게 일어선 풀들을 쓰다듬고 가는 바람아. 네 손길 부드러운 기운에 몸을 맡기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휘휘 고개저으며 흐느끼는 수풀 소리에, 절절절 가슴이 울어라. 생명을 잊어버린 숲과, 핏내음 가실 길 없는 황량한 숲에, 어쩌면 만나도 몰라볼 볼 고운 사람이, 난 혼자 두려워라. 가슴으로 두려워라.
먼지나는 세상에도 금수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을, 가슴 맑을, 믿고지운 나의 사람. 한낮이나 황혼에 홀로 서서 웃음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살 가고, 뼈 가고, 해도 가고, 깔려 올 어둔 하늘 깊은 저녁 이르면, 메스꺼운 황무지 붉은 언덕을, 해맑게 지르밟고 올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벌건 숲 한나절 구름은 가고, 칼 넘어, 팔 넘어, 나무는 비틀대는데, 눈에 띄어 식어가는 나목같은 사람 속, 묵묵하게 쌓여가는 흙 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박두진의 <청산도>에서 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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