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전에 이사 온 단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아직 끝난 일은 아니야. 앞으로 비 오는 날이면 만날 수 있으니까.
작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갈게.
이름없음2021/03/13 00:06:10ID : s9zgry6lvcs
우선 단지에 대해서 말을 해 볼까? 우리집이 있는 단지는 음기가 강해. 단지 뒷산에는 묘가 있고, 산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조선시대에 어느 집안이 실수로 가지를 집에 들였다가 큰 우환이 닥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방치만 하고 있는 고목 한 그루도 있어. 친절하게 설명이 적힌 팻말이 있는데, 흉물이 뭐 자랑이라고 써두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름없음2021/03/13 00:09:52ID : 9s2mlg6i02o
ㅂㄱㅇㅇ
이름없음2021/03/13 00:12:36ID : unCmE3u02mn
ㅂㄱㅇㅇ!!
이름없음2021/03/13 00:18:04ID : s9zgry6lvcs
어쨌든. 우리 단지 정문에서 우리집 방향으로 꺾지 않고 직진하면 이 뒷산의 입구가 있어. 닦지도 잘 다니지도 않아 울퉁불퉁한 흙길인데 여기 처음 이사왔을 때부터 저 입구는 마음에 안 들었어. 내가 예민한 편인 것도 있지만 그다지 좋은 느낌은 안 줬거든. 둔한 사람은 평범한 산 입구라고 생각하겠다. 하지만 난 꺼림칙해서 가까이는 안 갔어. 원체 안 좋아하기도 하고, 좋은 기운은 아니다 싶어서.
이름없음2021/03/13 00:23:02ID : s9zgry6lvcs
산 입구는 이곳 말고도 한 곳이 더 있는데, 그 길은 넓기도 하고 걷기도 편했어. 종종 과식했을 때 소화시키러 걸었던 기억이 나네. 참고로 지금은 산에 안 가고, 앞으로 다시 비가 내릴 때를 기다리고 있어. 어제도 잠시 내렸다는데, 그 때는 공교롭게도 학교에 있었어. 아쉽게도 대면수업 주간이라.
이름없음2021/03/13 00:37:54ID : s9zgry6lvcs
이제 정말 작년 여름으로 가 보자. 때는 7월 13일, 그 날은 전국적으로 비가 많이 내렸었어. 비릿한 빗물 냄새, 촉촉하게 젖은 흙과 풀잎 냄새. 지금은 좋아하지만 예전엔 비 내리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어. 저 냄새도 그렇고, 운동화도 젖고, 찝찝하고, 거기다가 우산 드는 것도 힘드니까 죽상을 했었지. 그런데 이상하게, 정말 이상하게도. 비 오는 날이 싫지가 않았어.
이름없음2021/03/13 00:44:37ID : s9zgry6lvcs
마침 학교도 비대면 수업이었어서 대충 출석체크 글만 올리고 부랴부랴 장우산 하나를 챙기고, 웬일로 샛노란 우비를 입고, 발목을 덮는 빨간색 바탕에 흰색 땡땡이 무늬 장화를 신었어. 전형적인 만화 속 비 오는 날의 초등학생일 법한 모습인데, 고등학생이 저 차림이라니 우습지? 무슨 이유로 저랬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반은 미친 짓인 것 같네.
이름없음2021/03/13 00:55:25ID : s9zgry6lvcs
밖에는 당연히 비가 내리고 있었어.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는 습했고, 아스팔트 길 중간중간 움푹 들어간 곳에서 물웅덩이도 찰박거리면서 걸었어. 애 같았지. 초등학교 마치고 학원 상가 앞 커다란 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쳤던 적도 있었는데,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어.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갑자기, 정말 갑자기 그러고 싶었어서 그랬다고 말할 것 같아.
이름없음2021/03/13 01:06:01ID : s9zgry6lvcs
목적지는 정하지 않고 가볍게 산책하듯 단지 내부를 걸어다녔는데, 어쩌다 보니 정문 앞의 산 입구까지 가게 됐어. 전에는 안 좋은 느낌도 받았고, 딱히 관심 가지고 싶지도 않아서 대강 위치만 보고 갔었는데 처음에는 못 보고 지나쳤던 부분이 보였어. 내 생각보다 단지 안에는 숨겨진 것들이 많았고, 모르던 곳들이 많았어. 산 입구 옆에는 작은 텃밭들이 줄지어 있었고, 줄로 된 펜스를 넘어가면 있는 다른 집들 앞에는 넓은 잔디밭과, 길고양이 집이 있었어.
이름없음2021/03/13 02:05:38ID : s9zgry6lvcs
한참을 처음 보는 풍경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발치에 뭔가 닿았어. 보니까 평소 밥 주던 길고양이가 비비적대더라. 이름을 미요라고 지어 준 아이고, 비 오는 날인데도 나 보러 나왔는데 그날따라 하는 게 너무 예뻐서 잠시 놀아주다가 들어가려고 했어.
이름없음2021/03/13 02:10:59ID : s9zgry6lvcs
손을 내밀어서 쓰다듬어주는데 얌전하게 손길 받고 있던 미요가 갑자기 스르륵 빠져나가더니 산 입구로 들어가려는 거야. 흙길이 험한데 비까지 와서 순순히 들어가게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미요야~ 하고 부르면서 미요를 도로 데려오려고 했어.
이름없음2021/03/13 13:06:24ID : s9zgry6lvcs
그런데 미요가 안 왔어. 원래 부르면 쫄랑쫄랑 오던 아인데 웬일로 계속 야옹 하고 울었어. 내가 멈칫대다가 앞으로 가니까 따라오라는? 제스처인지 와서 몇 번 더 비비적대다가 산 입구로 쏙 들어갔어. 그리 좋아하던 곳은 아니지만 미요가 가니까 가는 수 밖에.
이름없음2021/03/13 13:16:12ID : s9zgry6lvcs
내가 멈칫댈 때 마다 미요는 가던 길 멈추고 돌아봤고, 내가 걷기 시작하면 미요도 걸어갔어. 내가 밥을 오래 줘서 그런가 내가 좋아서 그런가... 어찌됐든 거친 산길을 계속 걸었어. 입구 부근에는 나무가 무성하지 않아서 조금씩 빗물이 떨어졌는데 깊숙하게 들어가니까 물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어. 나뭇잎에 맺힌 게 가끔 떨어지는 정도? 햇빛도 드문드문 들어와서 꽤 어두웠어.
이름없음2021/03/13 13:17:01ID : 3wnwmk1eGoF
ㅂㄱㅇㅇ
이름없음2021/03/13 13:30:03ID : s9zgry6lvcs
작은 동네 뒷산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더라...? 좀 으스스했지만 새소리도 들리고 좋았어. 앞에는 미요도 있고. 그래도 의도보다 깊게 들어왔으니까 이제 돌아가자고 미요를 꼬시는데 아이가 안 가려고 했어. 계속 장화에 대고 머리 부비고 꼬리 부비고... 계속 이러니까 잠깐만 더 있다 가자고 하고 천천히 산길을 걸어갔어.
이름없음2021/03/13 13:37:55ID : vdzO1bfQq5g
ㅂㄱㅇㅇ!
이름없음2021/08/11 01:22:02ID : s9zgry6lvcs
스레주야. 5개월 가까이 안 온 이유는 그동안 비 오는 날 겪었던 일들도 있고 이것저것 바빴어서야. 이제부터라도 있었던 일들을 좀 풀어볼까 해.
이름없음2021/08/29 07:22:12ID : HwpTSE4FfO7
마저 풀어주길 기다리고있다
이름없음2021/08/29 14:56:47ID : O1g3O60pXvv
화, 수, 목...
3일 연속으로 비 올 확률이 70, 80%야
이름없음2021/08/29 15:04:09ID : r9hffhs9tdz
레주 뭐해?
이름없음2021/11/12 00:28:13ID : s9zgry6lvcs
미안해...! 곧 고등학교 3학년이라 많이 바빴어. 지금이라도 들어줄 수 있어?
이름없음2021/11/12 00:29:22ID : s9zgry6lvcs
그동안 일이 정말 많았으니까. 시간이 될 때마다 와서 쓰고 갈게.
이름없음2021/11/12 00:34:44ID : s9zgry6lvcs
산길... 그래. 그 산길을 걸어가는데, 정말 험했어. 어느 한 시점부터는 높이가 불규칙했는데, 자동차가 지나갈 수 없는 너비고 들어간다고 해도 갈 곳도 없는 길인데도 좌우가 패여 있어서 울퉁불퉁했지. 거기다가 비까지 오는 날이라 미끄럽기까지 해서 고생을 꽤나 했던 것 같아. 나무뿌리가 얽혀서 걸려 넘어질 뻔하기도 했었어.
이름없음2021/11/12 00:35:01ID : vjBvxwq41Dx
보고있어!!
이름없음2021/11/12 00:38:55ID : s9zgry6lvcs
나는 당연히 겁먹었고... 제발 가자 미요야... 하고 아이에게 애원을 했는데 갑자기 잘만 걸어가던 아이가 날 보고 앉더니 고개를 위로 들고, 그러니까 내 머리 위를 빤히 응시하기 시작했어.
이름없음2021/11/12 08:03:15ID : SFhaoFeHxxB
ㅂㄱㅇㅇ
이름없음2021/11/12 14:44:01ID : 5go7zbBbxCn
ㅂㄱㅇㅇ
이름없음2021/11/12 15:33:26ID : Y1fQq43Wp9b
시간 여유 있을 때 말 해주면 안 돼..? 계속 말 하다가 가버리니까 좀..
이름없음2021/11/15 20:02:32ID : 02k9y7uljth
ㅂㄱㅇㅇ!
이름없음2021/11/15 21:27:39ID : g1A0rhs8ksj
주작이니까 깔짝깔짝 쓰러 오는거지ㅋㅋㅋㅋ 다 풀어버리면 티 나잖아ㅋㅋ
이름없음2021/11/15 22:11:10ID : si2pU1zXze3
곧 고3이라고 했잖아... 입시랑 스레딕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한지는 이미 내 처지 말했으니까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짜고짜 이러니까 기분이 상하네... 오늘은 학원 일찍 끝났으니까 그럼 귀갓길에 산 입구라도 찍어 올릴게.
이름없음2021/11/15 22:26:20ID : si2pU1zXze3
사실 좀 무서워
뭐 안 보이면 좋겠다
이름없음2021/11/15 22:26:47ID : si2pU1zXze3
밤에 가까이 가기는 무서워서... 멀리서 찍는 건 이해해줘.
이름없음2021/11/17 18:32:31ID : g1A0rhs8ksj
그래서 뭐ㅋㅋㅋㅋ 계속 써 봐바 한 번ㅋㅋ
이름없음2021/11/18 10:13:21ID : 5go7zbBbxCn
말 개4가지
이름없음2021/11/18 11:14:46ID : dyK7vCqo6qq
이건 실제 나무 사진
놀랍게도 이게 한 그루야. 함께 심었던 다른 세 그루는 벼락을 맞아서 죽고 이거 하나만 남았대.
이름없음2021/11/18 11:20:36ID : dyK7vCqo6qq
어련히 풀 텐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해...
맞아 개4가지야 35번 레더ㅠㅠㅠ 너무해...
이름없음2021/11/18 11:26:07ID : 5go7zbBbxCn
저런 나무 실제로 보면 별 생각없는데
꼭 사진은 을씨년스러워보이더랑..
왜 하필 또 쟤만 살아남았너!!
이름없음2021/11/18 11:34:59ID : dyK7vCqo6qq
나도 별 생각 없는데 같은 동네 사시는 한 할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저 나무의 가지나 낙엽을 집 안으로 들이면 위 레스에 쓴 것 처럼 우환이 생기고 팻말에 쓰이지는 않았지만 실수로 들였다가 한 집안이 폭삭 망했던 적이 있었대.
이름없음2021/11/18 11:41:28ID : dyK7vCqo6qq
참고로 이 나무 너머에는 묘가 몇 있는데 공동묘지는 아니고 사유지인 것 같아. 그 집 조상님이라도 모시는 걸까? 그런 것치곤 1년 내내 아무도 안 가던데. 고등학생이라 명절에도 안 내려가고 집에 남아서 공부하는데 한숨 돌리러 이 산에 올랐을 때도 아무도 없었어.
이름없음2021/11/18 11:57:28ID : dyK7vCqo6qq
그리고 지금도 올라가보려고 해
비는 안 오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가 보고 싶어.
이름없음2021/11/18 11:58:22ID : dyK7vCqo6qq
가까이 다가가서 찍은 입구
이름없음2021/11/18 12:00:37ID : dyK7vCqo6qq
묘도 있어
이름없음2021/11/18 12:05:49ID : dyK7vCqo6qq
도착. 다만 문제가 좀 있다면 레스 쓰는 지금은 사진만 찍고 바로 돌아가는 길인데 길을 잃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