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천장이 파란색으로 서서히 번져가는 것을 가만히 누워 보고 있다보면, 깊은 고민들이 함께 스물스물 번져온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어쩌다 이지경이 됐을까와 같은 고민들은 답을 낼 수 없다는 걸 알아 이미 놓아버린 지 오래다. 결국은 결론만이 남는다. 내가 이렇게 헤어짐에 오래 힘들어 하는 이유는 내가 그들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이고 내가 그럼에도 계속 사람과의 만남을 갈구하는 이유는 외롭기 때문이겠지. 파란 새벽빛을 몇 번이고 쳐다보며 내면과 내면이 울며불며 낸 결론. 나는 그 결론에 대고 계속해서 물어본다. 더 나은 결과는 없었을까요. 더 좋은 선택은 없었을까요. 결론은 답을 번복하지 않는다. 너는 너의 후천적인 외로움에 바싹 말라버린 미치광이 환자야. 너는 그런 애야. 그렇게 자랐어. 환경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지만 그러기로 선택한 것도 결국 너야.

그럼 내가 도대체 뭘 어쩌겠는가. 나는 다시 가만히 밤을 새다 파란빛과 맞닥뜨린다. 또 만나네요. 새벽 씨. 좀 안 좋은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리고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냥 또 도망만 쳤어요. 저는 그대로예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이 짓도 지긋지긋하네요. 근데 제법 할만해졌어요. 어차피 나아질 수 없잖아요. 그럼 새벽은 그걸 가만히 들어주다 하얗게 변해 아침이 된다. 장황하게 늘어놓기야 했지만 그냥 자기 자신을 너무 오래 싫어하다가 한 숨도 못 잤다는 소리다.

나라는 자식은 도대체가 뭐가 그렇게 틀어져가지고 이다지도 못되 처먹었단 말인가. 뭐가 그렇게 멍청해서 없는 형편에 가지고 싶은 건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그게 물질적인 것이던간에 그렇지 않던간에 가질 수 없는 걸 바라서는 안 되고 그걸 가지기 위해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일이 있는 것인데...

사람이라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나를 사랑해야 살 수 있고 남을 사랑해야 살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 견딜수가 없는 이 나약해빠진 몸뚱아리가 너무 싫다. 웃음도 많고 눈물은 더 많고 잡생각은 그 둘의 제곱보다 더 많은 이 사람이 나라는 게 진절머리나게 싫다. 결국은 다자이 오사무 당신이 맞았어. 인간이라는 게 도무지 뭐하는 놈인지 나도 모르겠다.

조금도 자지 못한 채 날이 밝았다. 지독하게 힘이 든다. 피곤함과 고뇌만을 얻은 밤이었다. 사람과 함께이고는 싶으나 충돌하기는 싫고 사랑을 주고도 싶지만 받고도 싶고 사람과 함께 웃고도 싶지만 울고도 싶고 화해하고도 싶지만 그냥 손절하고도 싶은 사람을 사랑하다가 혐오하다가 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가 뭐하는 망나니인가 생각만 하다가 여섯 시간이 갔다. 여섯 시간이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갔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는 사고가 만든 참상 위에 나는 널부러져 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만이 있는 삶이었던 것 같은데 나같은 놈이 살아 있어도 되나.

학생이던 때 엄마가 해주셨던 말씀처럼 정말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다들 내면 속에 후천적인 외로움에 바싹 말라버린 미치광이 환자를 하나씩 데리고도 그렇게 잘들 사는 것처럼 보인단 말인가. 다들 그러고들 살지. 다 똑같지.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의 차량 안에서 멀미의 울렁거리는 감각을 느끼면서 나직한 목소리로 들었던 그 말. 그 말만 믿었는데.

낡아빠진 침대에서 나자빠져 있는 지금. 나는 그 말이 틀렸음을 깨닫고 또 운다. 아침이 왔다. 꺼낸 지 얼마 안 된 선풍기의 바람이 먼지를 한가득 밀어온다. 눈물을 덮어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그 순간에도 결론은 결론을 낸다. 나를 미치광이 환자로 친절하게 규정지어줬던 것 처럼. 웃기지 마. 너만 그렇게 살아. 아. 내 세상 속에서는 나만이 가장 힘들다. 나의 삶 속에선 내가 제일 불쌍한 놈인 것이다. 아무리 티비에서 자살로 죽어나가는 연예인들을 보더라도, 굶어 죽어가는 말라깽이 아기들의 눈물을 보더라도, 두 눈이 먼 사람, 다리가 없는 사람, 평생을 병원에 갇혀지낸 사람을 보더라도 나는 건조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고뇌와 삶의 굴곡은, 나만이 안다. 그러니 타인의 삶 따위 신경 쓸 여유가 없는데도. 그런데도.

그럼에도 나는 다친 친구를 걱정한다. 삶이 힘든 친구를 공감하며 위로한다.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만 이용하는 사람에게도 기꺼이 쓰레기통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지내다가 바보같이 버려진다. 아주 작은 일로 틀어지기도 하고 아주 큰 일로 내팽겨쳐지기도 하고... 하여간 참 다양하게도 버려진다. 그래도 멀쩡한 척 살아간다. 그야 나도 누군가를 그렇게 이용만 하고 버린 버러지새끼일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날 내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한순간, 나는 조용해진다. 조용히 다시 생각만 한다. 사람이란 게 그럼 그렇지 뭐. 사람은 필수적으로 사람을 소비하며 살 수밖에 없다. 사람은 그런 종족이야. 그렇게 자랐어.

그럼 또 내가 도대체 뭘 어쩌겠는가. 나는 계속 이 상태로 누워만 있을 수 없다. 일어나야 하고 씻어야 하고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 정신 차리고 하루를 또 살아내야한다. 고뇌와는 잠시 멀어져야 한다. 그래야 산다. 나는 생각이 많았던 천재들이 그리도 일찍 세상을 떠났던 것처럼 그렇게 터무니없이 많은 생각만 하다가 이른 죽음을 맞이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나는 살기 위해서 멍청해지기를 선택했다. 그래 새벽. 당신, 기가 막힌 상담사야. 이러기로 선택한 것도 결국 나구나.

알겠다. 전부 내 잘못인 거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할 거지 같은 삶. 삶을 이렇게 살기로 선택한 내 탓인 거지. 맞다.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만화 영화에 나오는 영웅이 아니다. 너 혼자서만 책임질 필요는 없다며 함께 나서줄 동료도 당연히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바꿔서 말하면 이딴 놈도 사람이다. 정말 신기하지. 이딴 놈도 사람이라고 취급해주는 걸 보면.

정말인가봐. 나는 인간 실격이야.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

뭔가 내가 하는 생각이랑 비슷해서 그런가 공감된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랑 얽혀 있다는 말을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근데 너같이 이런저런 고민으로 가득 차 있던 나한테 이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있어. 날 사랑해 줄 사람도 내가 사랑할 사람도 없다고 느끼고 이젠 다 체념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항상 곁에 있다고, 네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받고 이용당하더라도 절대 너에게 그런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다고. 뭐 되게 진부한 말 같기는 한데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긴 하더라... 지금 당장은 내 주위에 없더라도 언젠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

>>12 좋겠다.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곁에 있다니 정말 부러운 일이야. 인상 깊은 말인 것 같아. 그래. 이 넓은 세상에 그런 사람 한 명쯤은 만나게 될지도 모르지.

분명 위로가 되는 말이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는 게 그런 막연한 구원은 아닌 것 같아. 기다리면 찾아올거라는 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 백마 탄 왕자님이 언젠가는 나를 데리러 올거라는 소리에는 이제 지쳤어. 내가 바라는 건 구체적이고 확실하고 선명한... 내 눈에 지금 바로 보이는 실질적인 구원이야. 다만 그렇지. 그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넷상에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남긴 작은 위로의 글에 만족해야 하는 게 내 위치인 거지. 멋진 글 고마워. 이 새끼는 뭐지. 기껏 위로의 말을 해줬더니 이 지랄인가. 이런 생각이 들어도 그냥저냥 넘어가줘. 나는 자기 혐오가 좀 심해. 그러니 따듯한 말들도 전부 굴절돼서 미지근해 보이는 거겠지. 미안해. 잘 자.

해가 뜬다. 진짜 아무것도 못 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꼭 나가야지. 나가서 뭘 사먹기라도 해야지. 아니면 피씨방에라도 가서 가만히 유튜브를 보던지 게임을 하던지 해야지. 쓰레기도 버리고 방도 조금은 치워야지. 잠깐이라도 좀 덜 우울해야지. 마스크 잊지 말고 샤워도 꼼꼼히 하고 오늘은 못 잤지만 내일은 반드시 자야지.

밖에 나가면 헤어진 친구들을 만날까봐 두려워서 대면 수업도 안 나갔더랬지. 응 다음주는 꼭 나가야지. 뭐라도... 뭐라도... 맞아. 과제도 해야지. 조금만 더 하면 되니까 꼭 이번주엔 완성해야지.

방 안이 파랗다. 새벽이 파란색이라서 파란 걸까. 아니면 빛은 아무 색도 없는데 내 방의 블라인드가 파래서 파란 걸까. 내가 힘들어서 파랗게 보이는 걸까. 지금의 나로써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가도... 걔네를 죽여버리고 싶다. 나는 뭐하는 놈일까. 지금 보니 구글 검색 기록 참 처참하다. 청산가리 구해요. 졸피뎀 공구. 졸피뎀 처방 안 받고 구하는 법. 약국 수면제 효과. 그렇게 내일 바로 죽을 것처럼 굴다가도 과제 자료 구하려고 폴라로이드 사진. 옛날 사진. 즉석 사진기 자료. 그러다가 다시 자살 사이트. 동반자살. 함께 죽을 사람. 또 빙글빙글 돌아 마라탕 소스. 먹방. 젤리. 피씨방 밥. 이건 뭐 살고 싶은 것도 죽고 싶은 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진짜 뭐하는 놈일까.

어처구니 없지만 죽고싶은 쪽도 나고 죽여버리고 싶은 쪽도 나다. 이런 걸 보면 성선설과 성악설이 전부 무슨 소용인가 싶다. 성선설로 시작해도 악함이 묻는 게 사람이고 성악설로 시작해도 애매하게나마 선해지는 게 사람인데. 처음부터 악하다느니 선하다느니 전부 쓸모 없다. 누구도 완전한 한 성향일 수는 없다. 그 애 참 착해. 나한텐 아니던데. 그 애는 좀 이상해. 나는 그냥 재밌던데. 조금이라도 반박하면 불편해하는 네가 싫어. 누구보다 너를 믿는 네가 싫어. 그래서 내 새벽을 이렇게 부숴버린 네가 싫어. 근데 너를 좋아했어. 좋은 친구라도 생각했어. 진짜야.

괜찮은 것 같아. 너랑 네 친구들은 네 말마따나 똑똑하고 잘나서 나를 말 한마디 못하게 밀어붙이는 그 실력도 아주 확실해서 나 없이도 나 같은 사람 하나 더 만들 수 있겠지. 멍청하고 뭔가 모자라서 자기 안의 커다란 구멍을 메워줄 친구나 거짓말이 필요한 사람. 비틀린 관심이나 거짓된 사랑이라도 좋으니 가지고 싶은 사람. 그게 나 이후 또 한 명 추가될 누군가일까. 너희 중의 한 명일까.

난 왜 이렇게 살까. 왜 이렇게라도 살고 싶은 걸까. 너무너무 살고 싶다.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다. 죽고 싶은 마음이 5할이고 나머지 5할이 소름 끼치게 정확히 살고 싶은 마음이어서 죽은 것 처럼 살고 있다. 이 삶이라는 천칭 위에서 만약 죽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기울면 나는 망설임 없이 죽으려 들까?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무거워 지면 순식간에 밝고 행복해질까?

죽을 용기가 없어 죽지 못한다. 살 용기가 없어 살지 못한다. 내 웃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미소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울음 소리는 쪽팔리니까 입을 틀어막고 우는 것 처럼. 사진사분은 늘 말씀하셔. 입꼬리를 더 올려보세요. 더. 더. 더. 더요. 더. 눈도 더 반달같이... 상담사 선생님은 말씀하셔. 이것 봐요. 마음이 아프니까 계속 울면서 말하잖아. 그 전화 너머로 제 울음소리가 들리는군요. 최대한 작게 울었는데.

시궁창 같은 마음. 가슴이 너무 아프다. 미어 터질 것 같다. 이 좁은 곳에 뭐가 그렇게 가득 들어찬 걸까. 아닌가. 뻥 뚫려 있을지도. 숨이 차 힘들어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말하다가 나는 금새 말을 바꿔 버린다. 도와달라고. 나를 죽여달라고... 와 이쯤되면 신이라는 작자가 나를 빚을 때 뭔가 실수를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이제 내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이 저 위에서 내게 실수로 채우지 못한 그 무언가를 다시 채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좋겠다. 그럼 나는 이렇게 돌아버리겠는 삶 속에서 마구 괴로워하다 허망하게 죽어버려도 신의 사과와 함께 채우지 못한 무언가를 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다시 태어나면 이런 고뇌를 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군. 종교라는 건 이렇게 생기는 걸지도 모른다. 하나 만들까요? 기독교나 불교처럼... 비어진 마음교? 공허한 마음교? 하하. 어이 없어.

하여간에 나는 행복하고 싶다. 내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뭐든 좋다.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서 행복을 주는 것들의 꽁무니만 쫒아다니다가 이딴 사람이 됐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시간 속 대부분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을 쫒아다니는 데에 썼고 나머지 시간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데에 썼다. 한 줄로 줄이자면, '평생을 낭비했다.'가 가장 깔끔할 것 같다. 진정 지금 행복하고 싶었다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을 쫒아다니는 게 아니라 공부를 쳐 했어야 했다. 코피 나게 공부하고 잠을 줄여가며 글씨를 쓰고 건강을 망쳐가며 숙제를 했어야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다며, 밖에 나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섭다며, 강의를 째고 과제를 미루는 게 아니라 공부를 쳐 해야지. 이 미련한 놈아... 왜 그걸 알면서도 이렇게 사는데. 알아. 개새끼야. 아는데도 힘들어서 잘 안된다고. 이미 망가진 사람이 그걸 할 수 있겠냐고... 그런 내면과 내면이 비분강개하며 싸우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또 하루를 낭비했다. 말도 안 돼. 벌써 토요일이다.

그냥 내가 하는 모든 짓거리가, 내뱉는 말과 취하는 행동과 하는 생각이, 다 나를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단 하나라도 나 자신에게 친절할 순 없었나? 말이라도 하나 따듯하게 해줄 수는 없었나? 행동이라도 하나 이롭게 해줄 순 없었나? 생각이라도 하나 둥글게 해주는 건 불가능했냐는 말이다. 알다싶이 그게 가능한 사람이었으면 여기서 이렇게 글 안 쓰고 있었겠지만. 타인에게 친절하기 이전에 나에게 친절했야 했는데. 후회된다. 그리고 또 운다. 아 나는 또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나를 싫어하고 있네. 진짜 글러먹었다. 나에게 상냥하지 못한 내가 싫어서 우는 내가 추하고 그런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못나고 그 순간에도 아무것도 안 하고 생각만 하는 내가 싫은 와중에 내가 글러먹었다고 생각하는 내가 싫다. 미친놈인가. 어쩜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싫기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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